한국 현대사의 이해 외솔 최현배에 관하여Ⅰ. 연보연도나이주요 활동1894. 10. 191경남 울산군 하상면 동리에서 최병수 씨의 맏아들로 태어남.1899 - 19076-14동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1907 - 191014-17하상면의 새로 차린 일신 학교에서 신식 교육 받음.1910 - 191517-22한성 고등 보통 학교 졸업.1910 - 191317-20주시경 스승의 조선어 강습원에서 한글과 말본을 배움.1915 - 191922-26일본 히로시마 고등 사범 학교 문과 제일부 졸업.1919. 3. 2526일본 문무성으로부터 수신, 교육, 일어, 한문, 법제, 경제의 중등 학교 교원 면허장 받음1919. 4. 1 -1919. 12. 3126관공립 고등 보통 학교 교원으로의 복무 취직을 칭병 사피하고, 향리에서 휴양하면서, 조선인 상권확보를 위하여, 지방 유지를 규합 출자하여 공동 상회를 설립.1920 - 192127-28경남 사립 동래 보통 학교 교원으로 근무.1922. 1월 - 3월29일본 히로시마 고등 사범 학교 연구과 수학.1922 - 192529-32일본 교오또 제국 대학 문학부 철학과 졸업(교육학 전공).1925. 4 - 1926. 332-33교또 제국 대학원 수업.『조선 민족 갱생의 도』를 짓다.1926. 1. 1533일본 문무성으로부터 철학 개론, 심리 및 논리의 고등 학교 교원 면허장 받음1926 - 193833-45연희 전문 학교 교수 재직. (흥업 구락부 사건으로 강제 사직 당함)1926 - 193133-38이화 여자 전문 학교 교수 겸직.1938 - 194145-48실직 중 한글 연구의 완성을 힘써『한글갈』을 지어 찍어냄.1941 - 194248-49연희 전문 학교 복직, 도서관에서 일봄.1942 - 194549-52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3개년 동안 왜정의 옥중 생활.1945. 8월 - 9월52조선어 학회 상무이사 취임. 해방된 조국의 국어 교육에 힘씀.1945 - 194852-55조선 주둔 미 군정청 문교부 편수국장에 재임해, 자유민 5. 4. 2362명예 문학 박사 학위를 연희 대학교로부터 받음.1957. 11. 1564세종 대왕 기념 사업회가 창립되어, 그 이사, 부회장 취임.1958. 7. 1565그간 학술원 인문 과학부 제 2어문 분과 회장, 인문 과학부 부장을 역임하고, 이날 정기 총회에서 학술원 부회장 당선. 또 학술원 임명 회원(임기: 종신)당선.1960 - 196267-69재단법인 숙명 학원 이사 취임.1961. 5. 368연세 대학교 명예 교수.1962. 3. 169연세 대학교 대학원 강의 시작.1962. 3. 1469한글 학회 부설 한글 기계화 연구소 신설, 그 소장으로 취임.1962 - 197069-77재단법인 연세 대학교 이사 취임, 중임.1962. 6. 169재단 법인 동국 대학 임시 이사 취임.1964 - 196671-73동아 대학교 문리과 대학 강사, 교수 취임.1966. 173종합 민족 문화 추진 위원회 부회장 겸 이사로 취임.1968 - 197075-77세종 대왕 기념 사업회 대표 이사로 취임.1970. 3773.1 국민회 이사 취임.1970. 3. 2377새벽 3시 35분에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1970. 3. 27사회장 엄수(연세대학교 대강당),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장현리에 안장.Ⅱ. 외솔 최현배, 뜨겁고 맵고 꼿꼿한 삶.1) 청소년 시절의 최현배 (우리글과의 인연)외솔 최현배는 1898년 10월 19일(음력) 경남 울산군 하상면 동리에서 태어났다. 외솔은 6살 때 서당에 다녔고, 1910년 3월 울산 병영의 일신 학교(日新學校)를 졸업했다. 그는 이 학교에 다닐 때, 처음 배우는 산수에 흥미를 느꼈으며 곧 산수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외솔은 곧잘 선생님 대신 문제를 풀곤 했다.4학년이 되던 어느 날, 그는 선생님의 부름을 받아 산수 문제를 풀게 됐으나 그 문제만은 해답을 구할 수 없었다. '선생님 뒷날 공부를 더하여 반드시 이 학교에 돌아와 학생들에게 이 산수 문제를 풀어 보이겠습니다'고 약속했다. 외솔은 이 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평생을 읽었다. 그러다 나이 22세에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 문과로 유학을 간다.」 ------ 최근학의 글 中한일 합방이 되자 외솔은 스스로 나라를 뺏긴 죄인이라 자처하며 머리를 빡빡 깎았으며 해방이 될 때까지 기르지 않았다. 외솔은 우리의 살 길은 우리 나라 말과 글을 지키는데 있다며 조선어 공부에 더욱 몰입, 1912년 3월엔 조선어 강습원 초등과 수업증을 받았고 이듬해 3월에는 고등과를 졸업했다. 그는 1915년 3월 한성보고를 졸업한 뒤 일본 히로시마 고등 사범 학교에 입학, 수신·교육·일어·한문·법제·경제 과목의 교원 면허증을 얻고 4년 뒤 졸업, 귀국했다. 그러나 그는 병을 핑계로 일제의 교원이 되길 거부하고 고향 울산에서 우리의 물건을 값싸게 사고 파는 공동상회를 주민들과 함께 설립, 운영했다. 고향의 순박한 이웃들에 파묻혀 민족혼을 일깨우던 외솔은 이웃 부산의 사립 동래 고보의 초빙을 받고 1920년부터 두 해 동안 이곳에서 조선어 독본과 발본을 가르쳤다.2) 외솔의 애국 사상외솔 최현배의 겨레 의식은 나라 잃은 비통과 울분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본격적 실천 운동은 그가 일본 교또 제국 대학을 마칠 때부터 시작된다. 외솔이 이 때 지은 『조선 민족 갱생의 도』는 네 장으로 꾸며져 있다. "민족적 질병의 진찰, 민족적 쇠약증의 원인, 민족적 갱생의 원리, 민족적 갱생의 노력"이 그것이다.정복자의 포악과 착취, 교만에 반항하면서도 주도면밀하게 민족의식, 독립사상에의 생기를 불러일으킨 걸작품이다. 그것은 1926년에 66회에 걸쳐 에 이어 발표되고, 1930년에는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나라 잃은 원인을 인체의 질병에 비유, 자성 진단하고 민족 갱생의 원리와 그 구체적 실천의 방법을 겨레 앞에 제시함으로써 대오 각성케 하여 망국의 한을 풀고, 민족 갱생, 조국 광복의 여명을 앞당기는 길잡이가 되기에 힘을 다하였다.「이 책은 외솔 선생의 삶과 학문의 속세계를 담은 것일 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민족주의적 이해를 위한 이치를 밝히며, 그 법칙을 들어내며, 그 온전한 체계를 세우는 것은 다만 앞사람이 끼친 업적을 받아 이음이 될 뿐 아니라 나아가 계계승승할 뒷사람의 영원한 창조활동의 바른길을 닦음이 되며, 찬란한 문화건설의 터전을 마련함이 되는 것이다.」----- 최현배의 '우리말본' 머리말 中이는 한겨레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하나의 언어체계가 그 겨레를 하나되게 하는 데에 본질적 요건으로 작용하며, 그 겨레 정신, 겨레 문화의 창조적 바탕이 됨을 강조한다.3) 한글 운동한글 운동에 끼친 외솔의 공적은 무척 크다. 여기에서는 외솔이 한글 운동에 끼친 공적을 몇 가지로 간추려 보려 한다.첫째 외솔은 국어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한글 운동에 헌신했다. 세계의 글자 중에 표음(表音) 글자가 으뜸이라는 것은 대다수의 학자가 모두 인정하는 것이지만 외솔은 그의 스승인 주시경의 뜻을 이어 한글의 새 받침의 정확한 사용으로 표음 글자에 표의(表意) 글자의 역할까지 겸하게 하였다. 여기에 대한 그의 신념은 확고부동했으며 그 원리에 반대하는 세간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신념과 노력은 지금까지도 많은 학자들에게 높이 평가받고 있다.둘째는 훈민정음의 새 받침을 과학적으로 현대화하는데 따른 음성학적 접변(接變)에서 생기는 변이음(變異音)의 연구와 그 음운학적 한계성을 분간하여 맞춤법에 활용토록 한 공적이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대표적 저술인『우리말본』에서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 이전의 모든 국어 연구 서적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부한 자료와 설명이 들어 있다. 말소리의 음성학적 풀이와 품사의 형태학적 고찰, 문장 구조 분석의 체계에 있어서 현대에 와서 최초의 풍작을 이룬 것이라 평가받고 있다.「연희전문 교수 시절 '우리말본'이 씌어졌다. 학교에 나오면서 부인에게 아침마다 '불이 나게 되면 이 원고부터 옮기라'고 하다가 나중엔 독을 묻고 독 속에 넣고 다녔다.」----- 유경환(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글 中셋째로 들 수 있는 외솔의 공적은 그가 조선어 연구회 시대부터수 시절이었다. 1940년 출간시키고, 해직 3년만인 1941년 5월에 복직되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42년 10월 1일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또다시 체포되어, 함경도 흥원에서 영어의 생활이 시작되었다.「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었던 사람은 적지 않았었는데, 흥원 경찰 당국은 33명을 검사국에 넘겼고, 이 중에 24명만 예심에, 나머지는 기소유예되었다. 검거된 지 2년 2개월만인 1944년 9월 30일에야, 기소된 16명 중 옥사한 2명을 제외한 14명에 대한 예심이 종결되었다. 이 가운데 외솔은 언제나 두 번째로 불러다녔다. 44년 12월부터 공판이 시작되어 광복되던 해 정월에 9회 공판이 끝나고 외솔은 4년형을 받았다. 즉각 불복하고 고법에 상고했으나 이해 8월 17일에 함흥 형무소의 문을 나왔다.」----- 유경환의 '거면석상 외솔'中함흥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는 동안「한글 가로 풀어쓰기」를 연구해 이를『글자의 혁명』으로 펴냈다. 한글 학회가 해방 직후 그 동안 압수, 분실되었던 한글 자전 원고를 우연히 서울역 운수 창고에서 찾아 한글 자전 편찬의 사업을 계속하는 데도 외솔은 다시 힘을 기울였다.다섯째 외솔이 미군정 시대의 문교부 편수국장 직을 맡아 초·중·고등 학교의 교과서, 특히 국어 교과서의 편찬에 착수해 오늘날의 국어 교육 터전을 마련했다는 것도 큰 공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외솔은 본래 대학 시절 철학을 전공하였고, 교육계에 종사하면서 거기서 우러나온『조선 민족 갱생의 도』를 세상에 펴냈고, 또 아울러 민족의 얼을 담은 우리말의 연구에 그 구체적인 살길을 발견한 만큼, 해방 직후, 정치나 경제 분야에 진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외솔이 오직 그의 뜻하는 바를 위하여 국어 교과서 편찬의 실무를 맡았다는 것은 그가 겸허하면서도 장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광복 직후 미군정이 실시되던 때, 문교부장(장관) 유억겸이 세상을 떠나자 차장(차관)이던 오천석이 승진되면서, 그 자리에 편수국장이던 외솔을 앉히려 하였다. 이것이 1
게 놈 프 로 젝 트이러한 전 세계적인 '게놈프로젝트'의 개발 현황과 국내의 개발현황은 어떠할 것인가?우선 게놈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미국은 지난 86년 에너지성이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해 88년부터 국립보건원과 에너지성이 중심이 되어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두 기관은 지난 90년 게놈 프로젝트 5개년 계획을 발표한 후 목표가 조기에 달성되자 93년 제 2차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후 급속한 기술의 발전으로 지난 98년에는 2003년까지 인간의 모든 염색체의 유전자를 밝히겠다는 3차 계획을 발표했고 3월 클린턴 정부는 2달 안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립보건원은 지난 97년에 게놈 프로젝트를 총지휘할 국립 인간 게놈 연구소를 설립하여 미국 내 16개 게놈 연구 센터와 대학을 집중 지원하도록 하였다. 미 정부와 별도로 일을 추진하고 있는 셀레라는 2000년 1월 10일 인체 유전자 지도의 90%를 해독했으며 이로써 인간 유전자의 97%가 규명되었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의 학술기관 및 정부지원 연구소보다 이 회사가 먼저 인간 게놈 해독을 마칠 수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프랑스, 영국 등 유럽연합 내 11개국은 95년부터 공동으로 유전자 염기 서열과 기능 유전자 조절 분석, 유전병 진단, 유전자 치료, 유전자 데이터 베이스 구축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프랑스의 유전다형성연구소는 지난 95년 인간 게놈의 물리적인 특성을 표시한 1차 물리지도를 작성하였다. 영국은 의학원을 통해 지난 89년부터 3년 동안 매년 1천1백만 파운드를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지원하고 있다. 또한 인간 유전자 지도 및 소재 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영국의 제약회사인 글락소-웰컴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위한 생거센터를 설립하여 5년간 4천 4백만 파운드를 지원했다. 또 옥스퍼드 대학에 별도로 5년간 1천 3백만 파운드를 지원했다. 일본은 3, 11, 21번 염색체의 염기서열을 밝히는 데 주력하였으며 2000년 3월 18일 네이쳐지를 통해 인간 21번 염색체에 대해 "The DNA sequence of human chromosome 21"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일본은 지난 98년 과기청 문무성, 후생성, 농수산성, 통산성 등이 총 1억 4천 8백만 달러를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일본 정부는 게놈 연구를 국가적 연구과제로 지정하고 치매 암 당뇨병 고혈압 등 주요 질환의 유전자 정보 해석,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신약 및 단치료법 개발, 세포기능의 해명 및 이용에 대한 연구와 기술개발 등의 내용으로 이를 위해 2000년부터 5년간 기존 예산의 두 배 가량인 2조엔을 이 분야에 투입할 예정이다. 일본의 인간 게놈 연구는 SNP(일염기다형) 연구에 중점을 두고 앞으로 2년간 15만개의 SNP를 찾아내려는 계획을 세웠으며 벼 유전자 연구를 중심으로 식물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유전자 지도의 완전한 완성을 앞두고 있는 지금 유전이 주원인인 결장 암, 유방암, 헌팅턴 병등은 이제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발병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낭포성 섬유증에 대해서는 최근 미 국립보건 연구소가 산전검사로 추진하기에 이르렀다.이에 반해 우리 나라의 게놈 연구 수준은 아직 초보 단계이다. 사실 "초보"라는 단어는 세계적인 연구 추세에 비해 우리 나라의 연구 수준을 평가하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므로 언제까지 "초보"라고 평가될 지는 모를 일이다. 우리 나라는 그 동안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정부 차원에서 게놈 연구를 추진하는 사업단이 출범한 것은 1996년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1996년 대전에 소재한 생명공학연구소 이대실 박사가 정부에서 10억 원의 연구비를 받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처음이며, 당시 연구는 과기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으며, 인간을 비롯해동물, 식물, 미생물로 연구대상이 다양했으나 위암, 간암과 같이 한국인에게 잘 발병하는 난치병의 원인유전자를 밝히는 것이 주요 연구목표였다. 이는 인체의 전체 염기서열을 밝히는 미국의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규모와 비교할 때 매우 보잘 것 없는 시도로 큰 연구성과를 얻지는 못했다.1997년에는 서울대 임정빈, 이병재 교수가, 1999년에는 성균관대 김영준 교수가 정부 지원을 받아 게놈 연구를 시작했다. 1999년 11월 23일 과학기술부는 21세기 프론티어사업의 일환으로 생명공학연구소 유향숙 박사(유전체 연구 센터)를 사업단장으로 하는 게놈사업단을 발족하였으며, 2000년 3월 22일 인간 유전체 연구 사업단은 국내 산,학,연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전문가 실무위원회' 및 '기획운영위원회'를 구성,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인' 게놈 기능 분석을 이용한 신유전자 기술 개발 사업'에 대한 최종목표와 구체적인 세부 사업내용을 확정 발표하였다.이 연구과제는 선진국 중심의 인체 게놈 프로젝트에 대응해서 우리 나라 상황에 적합한 분야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한편 국내, 외 유전체 소재의 확보와 개발, 유전체 대규모구조분석과 기능분석 시설의 구축, 데이터 베이스 구축과 생물정보 네트워크 활용 시스템을 구비하여 국내 유전체 연구를 핵심적으로 수행하고 지원함으로써 21세기 생명공학산업의 핵심 기술과 자원을 도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하지만, 외국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에 비추어 볼 때 그 투자액이 매우 적기 때문에 다가올 21세기의 주도 사업 중 하나가 될 바이오 산업에서 우리나가 외국의 속국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낳고 있는 실정이다.그렇다면 이 '게놈 프로젝트'가 가져올 변화는 무엇일 것인가?많은 이들이 여기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우선 '게놈프로젝트'가 끝나게 되면 인간의 유전자를 암호화하고 있는 30억 개의 염기서열로 만들어진 긴 DNA서열에 대하여 알게 되는데, 이 DNA서열이 모두 유전자를 암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이들 중 약 5%가량만이 실제 유전자를 이루고 있는 암호들이므로, 과학자들은 이들 중 어느 부분이 유전자를 암호화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그 다음으로 진행될 일은 DNA서열에 들어있을 약 10만개의 유전자에 대한 기능분석이다. 물론, 유전자들에 대한 기능분석이 현재까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고, 과거로부터 진행 중에 있는 상황이지만, '게놈프로젝트'가 종료되면, 거의 모든 DNA서열을 알게 되므로 DNA chip, 단백질(Protein) chip, Spectrophotometry와 같은 실험방법으로 대량적인 분석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유전자상호간의 연관성을 알아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유전자에 의해 나타나는 산물의 변화마저 알게되므로 유전자 기능에 대한 연구는 가속화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기능에 대해서 충분히 조작마저 가능한 단계에 이르게 하게 만들 것이며, 따라서 '게놈프로젝트'의 종료로 인간은 지금까지 인류의 불가침지역이었던 생명체의 신비가 담긴 상자를 열 수 있는 만능열쇠를 손에 거머쥐게 되는 것이다.물론 이들의 모든 기능을 밝혀내는데는 약 20년 가까운 세월이 요구될 것이라고는 하나 '게놈프로젝트'의 완성이 앞당겨졌듯이 모든 유전자들에 대한 분석 역시 매우 앞당겨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이러한 '게놈프로젝트'의 종류가 가져올 변화로 인해 인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암과 같은 각종 질병(특히, 유전병)의 퇴치는 물론이고, 대머리, 이상비만과 같은 외모를 조기에 치료할 수도 있을 것이며, 경찰은 범죄 현장에서 한 방울의 혈흔을 이용하여 범인을 색출해 낼 수 있을 것이고, 각 개인은 자신의 장기가 손상하였을 때를 대비하여 각 개인에게 맞는 장기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을 수도 있으며, 감기 약을 지을 때조차 자신의 몸에 부작용이 없는 자신만의 약을 만들어서 복용하게 될 것이며, 장차 자신의 몸에 어떠한 병적 위험이 닥칠 것인지를 미리 알아서 이에 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지난달에 게놈 프로젝트가 끝난 쌀의 경우 각국에서 이미 알려진 서열을 바탕으로 연구를 통해 새로운 종을 내놓았는데, 각가지 색이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정 영양분이 많이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든 쌀도 있다.그렇다면, 과연 '게놈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위와 같은 청사진만을 줄 것인가?결론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미 정부에서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서 '게놈프로젝트'의 총 사업비 중 5%를 투자하여 충분한 검증을 해 오고 있다. 특히, '게놈프로젝트'의 종료와 함께 더욱 활기차게 될 전망이나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미미한 실정이다.'게놈프로젝트'종료에 우려하는 주요 논제들은 윤리적, 법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폭넓게 나오고 있으며 이 중 주요 논제는 다음과 같다.첫째, 얻어지는 유전정보를 이용한 개인 자료의 철저한 보호다. 이는 '게놈프로젝트'에 자신의 DNA를 분석용으로 제공했던 사람 뿐 아니라, 앞으로 밝혀지는 개개인의 정보로서, 개인의 신상을 위해서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한 예로 갑이란 사람이 모 대학병원에서 유전자 검사를 받은 결과 갑에게 간암 유발 유전 물질이 있음이 밝혀졌다. 담당 의사는 유전 상담을 통해 이 사실을 갑에게 알려주었다. 여기서부터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간암 유발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미래에 언젠가 필연적으로 간암에 걸린다는 법은 없다. 왜냐하면 유전인자는 단지 하나의 잠재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미국에서 신입사원 채용이나, 보험가입 시 유전적으로 간암을 일으킬 요인이 많을 것이라는 것을 안 회사가 고용 및 접수를 거부한 사례도 있었다. 또한 개인정보나 유전정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시에는 많은 윤리적인 논란거리가 제공될 것이다.
1. 진화론의 이미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는 진화론에 관하여 간단히 정의를 내렸다."진화란 물질의 통합과 운동의 소산"이라고 하였다.진화론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낮은 단계의 생명에서 높은 형태의 생명으로 점진적인 발전을 한다.스펜서가 의미하는 말하는 진화론은, 무한한 결합력이 없는 동질로부터 유한한 결합력이 있는 이질(heterogeneity)로 변화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진화론은 우주는 "원시적인 성운 상태의 물질"(primitive nebulosity)에서 현재의 세계로 발전했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진화론은 진화의 범위 속에 물질의 모든 원자를 포함하여 극소의 작은 생물체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진화론은 진화의 과정 때문에 연속성(continuity)을 강조하면서 자연도태, 유전, 환경에로의 적응, 적자생존(適者生存, survival of the fittest)등을 인정한다.진화는 크게 생물진화와 화학진화 두 가지 측면에서 발전하여 왔다. 원래는 사회진화와 역사발전을 설명하려는 체계였으나 자연발생에 의한 생명의 기원을 밝히고(성경의 하나님에 창조가 무너지게 됨) 실험에 의한 진화를 증명하는 화학진화와 적자 생존에 의한 생물진화를 강조하다보니 진화가 과학적이라는 신념 즉 종교를 만들어냈다2.진화론의 역사적 배경1. 기계와 생존경쟁다윈이 생존했던 시대는 빅토리아 시대로서 농업경제로부터 자본주의 경제로 이행해 가는 그 전환기에 해당된다. 농업생활이 몇천 년 동안 이어져 오다가 공업이 발달하는 새로운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 시대의 상징으로 '기계'와 '생존경쟁'을 들 수 있다. 이 시대는 바로 기계의 시대였다. 기계가 발명되면서 사회에 큰 변화가 생겨났다. 자연에 이끌려 살던 사람이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히 자연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또 하나의 상징은 생존경쟁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기계와 속도를 따라잡으려 했으며 조금이라도 제 몫을 찾기 위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히 그 생존경쟁 속에서 약한 자는 죽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이 시대의 투쟁정신이 다윈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2 .다윈의 진화론1750년대 영국은 대규모적인 농업혁명에 착수했다. 그 이후 품종개량기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산업기술의 중심이 되었다. 다윈의 농업기술에 대한 착안이 종의 기원에 대한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다윈은 동식물의 품종개량, 즉 인간에 의한 선택적 교배를 통한 다양한 변종의 발생을 보면 종의 기원의 문제도 조금은 해명되지 않겠는가 하고 직관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윈은 새로운 난관에 부딪쳤다. 가축에 있어서 어떤 종에서 무수한 변종을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전혀 '새로운 종'은 발생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윈은 '인간의 품종개량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탄하는 한편, 오랜 시간을 두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갈림길로 그대까지의 관찰과 실증에서 떠나, 그는 상상력과 추측을 가지고 자연을 논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인류의 역사보다도 훨씬 오랜 시간을 사용해서 변종에서 변종으로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면 마지막에는 전혀 새로운 종으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상상했던 것이다. 다윈은 자연에 있어서의 교미가 전혀 우발적으로 행하여짐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서 자손을 남기는 것'과 '전멸하는 것'과의 사이에는 무엇인가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자연계에서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생물만이 생존경쟁에 이기고 자손을 늘려갈 수 있다'고 하는 유명한 진화론의 기본 개념이었다.3. 아담 스미스의 이론다윈에게 영향을 준 사상이나 인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당시 위대한 경제학자였던 아담 스미스이다. 다윈의 생각에 우선 커다란 자극을 준 것은 노동분업론 이었다. 노동분업론은 노동의 분업에 의하여 같은 수의 직공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윈은 이런 경제변동을 생물계의 이론에 도입시켰다. 자유 경쟁의 경제시장에는 항상 전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수요와 공급을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이므로 그것에 맡겨 놓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자유로운 이익 추구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없는 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적당히 유지해 준다는 이론이다. 다윈은 무엇인가 그것을 닮은 법칙이 자연계에서도 작용하여 번영하는 자와 멸망하는 자와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과학이론을 받아들인 다윈은 자연도태에 맡겨 놓으면 모든 것이 진보한다라는 생물에 있어서의 진화론을 주장하게 되었다.진화론은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부르주아 계급의 사람들은 사회에는 적자만이 번영하고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진화론은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의 중요한 정치이념이 되었다 . 진화론 신봉자들은 법률개정 따위는 하지 않고 자연에 맡겨 놓은 채, 시행착오를 되풀이해 가면 '자연 도태'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사회는 서서히 개선되어 나간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 관찰보다는 시대 관찰에서 태어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산업화 시대의 모든 것을 시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다윈이즘을 신봉하고 산업화시대에 사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행위가 자연의 활동과 일치하고 있다고 믿음으로써, 환경이나 인간성을 끊임없이 짓밟아 온 사실에 대해 단 한번 만이라도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 긍정은 인간성의 특징이지만 이것은 너무나 무모했다고 할 수 있다.3. 진화론이 인류사회에 미친 영향어느 시대이든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세계관이 있기 마련이다. 19세기 산업화시대 이후 지금까지는 진화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한 과학이론의 하나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주는 가치관으로서 말이다. 진화론은 우리 인간생명의 출발을 물질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단세포가 물고기, 파충류, 조류, 원숭이를 거쳐서 사람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역사적으로 정치, 경제, 사상, 종교, 문학 등의 모든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첫째, 현실위주적인 삶의 방식이 만들어 졌다. 생명체를 물질적으로 분석하게 되면서 생명 기계론이 대두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생명의 존엄은 물론 내세관에 대한 소망과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현실위주적인 삶의 방식을 가져다 주었다. 따라서, 쾌락주의, 배금주의, 한탕주의, 이기주의 등이 자연스럽게 팽배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생명 존엄 사상에 근거한 전통적인 윤리관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과연 이대로 나가다가 인류사회의 질서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둘째, 칼·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끼쳤다.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과 자연선택 이론은 칼·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그는 결국 자연선택이론을 "계급투쟁의 과학적 정당성"에 응용하게 되었다. 칼 마르크스가 다윈에게 바친 [자본론]의 속표지 마르크스의 자필로 이렇게 쓰여져 있다."찰스 다윈 선생께, 그 분을 진심으로 숭배하는 칼 마르크스로부터 ― 1873년 6월 16일 런던에서."이와 같은 사실은 현대세계에 영향을 미친 진화론의 영향의 범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함을 보여준다.셋째,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근거가 상실되게 하였다. 생명현상을 단순한 물성과 그 상호작용의 결과로 해석하기 때문에 생명, 특히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근거가 상실되게 하였다.얼마전 북경천안문 사건 때 중공정권이 무자비하게 탱크로 시위대를 밀어붙여서 유혈이 낭자하게 사태를 진압하고서도 이 사건에 대하여 사죄와 반성은 커녕 오히려 유혈진압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이유는 공산주의 이론으로 인간을 기본적으로 하나의 물질로 보기 때문이다. 물질이기 때문에 인권 따위가 보장되어야 할 아무런 근원적인 근거가 없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물질로 만들어졌고, 동물(원숭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또 다른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넷째, 인종우생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게 되었다. 진화론의 영향으로 다윈과 종형제지간이던 C.Calton(1883)은 인종우생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었는데, 이는 인류자체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신박약아, 불구자, 유전적 질병을 가진 자 등은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하는 비인도적인 소위 '임의 단종법안'을 만들어서 미국의 일부 주정부와 나치 독일에서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우생학은 1907년 영국에서, 1926년 미국에서 학회의 설립을 보게되었는데, 미국 우생학회가 당시의 주장한 내용의 일부를 보면, 미국내의 백인종은 유색인종들보다 우수하며, 백인 중에서는 북유럽계 백인(Nordic white)이 가장 우수하다는 내용이다. 그 결과 유색인종에 대한 이민 제한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고 27개 주에서 단종법이 발효되었는데, 1935년까지의 한 통계에 의하면 캘리포니아 주에서만 총 9,931건의 단종이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이 법이 그 뒤에도 덴마크, 스위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북부유럽국가들에 의해 채택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최근 자신의 사상이나 종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병역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주지 않고 처벌 조항만 둔 현행 병역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위헌심판을 제청한 가운데 ‘국방의 의무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교계와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이 강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병역의 의무를 회피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불살생(不殺生)과 생명존중(生命尊重)이라는 불교적인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살생을 연습하는 군사 훈련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사단법인 ‘좋은 벗들’에서 2년 동안 북한동포돕기에 앞장서 온 오태양(26)씨. 그는 12월 17일 논산육군 훈련소에 입소하는 대신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 빌딩 내 국가인권위를 찾아 양심적 병역거부를 금지한 현행법에 의해 기본적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진정서를 제출함으로써 불교계 첫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됐다.그는 이날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 “불살생과 생명존중이라는 오계를 수계한 불자로서 총검술을 비롯한 각종 군사훈련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육식 등 종교적 신념에 반한 행동을 할 수 없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했다”고 밝히고 “군복무 대신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오지의 초등학교에서 무보수 교직 활동으로 병역을 대체 할 수 있도록 대체 복무제를 허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97년 서울교대를 졸업해 줄 곧 불교 NGO에서 활동해 온 그는 “인터넷에서 집총 거부로 탄압을 받고 있는 ‘여호와 증인’들의 수기를 읽고 양심적 병역 거부를 결심하게 된다”며 “자신의 행동이 1만여 명의 병역거부 피해자와 1600여명의 병역거부 수감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용과 구제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오태양씨(26)는 기자회견에서 “불살생과 생명존중의 종교적 신념과 평화·봉사의 인생관에 따른 양심을 지키기 위해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며‘민간대체봉사제도’ 도입을 호소했다.이같은 사실이 과 임전무퇴를 표방한 것은 단지 신라가 당면한 시대적 상황, 즉 삼국 간에 전쟁이 빈번하여 모든 국민들이 생명을 죽이는 것을 쉽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향시키려는 깊은 종교심의 발로가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면, 살생은 불가에서 원칙적으로 금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 무량한 공덕과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그러한 살생을 죄악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세속지선계(世俗之善戒)라고 못 박은 것이다.이처럼 종교적 계관(戒觀)의 범주에서 탈피하여 국가에 응용되고 민족을 구할 수 있는 실천윤리로서 공익성의 계관으로 변용시킨 것이 그의 종교관이요 국가관인 것이다. 이 세속지선법이 확고부동하게 실천되고, 이러한 신념이 국가와 민족에 바로 직결되는 역사적 계관의 일심귀일로 나아가야 된다고 원광은 생각했던 것이다.이와 같은 세속지선계는 화랑의 수행덕목이 되어 신라 젊은이들을 하나의 이념과 통일된 사상으로 결속시켜 나갈 수 있었고, 나아가서는 고구려와 백제가 끊임없이 범경(犯境)하여 전쟁이 그칠 날이 없던 상황에서 역사와 민족의 철학으로 그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사실 출가자는 불살생을 근간으로 하는 계관에 투철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미 세속지선계를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그 속에서 임전무퇴와 살생유택을 강조했다는 사실은 적어도 종교적 입장만을 내세워 나라의 처지를 모른 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원광은 국가와 종교가 일원론적인 궤(軌)를 갖추기 위해서는 주권(國王力)·인민(諸衆生)·영토(器世)가 함께 온존해야만 한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 나는 바로 위기가 직면한 신라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에 의존하면서 생을 부지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원광이 신라가 직면한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종교인이 지녀야 할 자세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즉, 불교는 광의적 현실참여 정신을 충분히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국가를 위해 호국일선에 나선 사람은 원광만 민족적 이익을 가져오는 일이라면 불가의 살생은 대승적 차원에서 광의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이렇듯 최근 자신의 사상이나 종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병역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주지 않고 처벌 조항만 둔 현행 병역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위헌심판을 제청한 가운데 ‘국방의 의무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교계와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이 강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서울지법 형사항소1부(길기봉 부장판사)는 지난 1월31일 병역의무를 기피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김모씨(23)에 대해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다시는 징병소집영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최소 형량인 만큼 결과적으로 현행법이 인정하지 않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편법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적지 않은 반발을 사고 있다.양심적병역거부는 그 동안 이단으로 규정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기 되어온 문제이다. 사실 이 문제는 특정 종교의 이기적 행태 때문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었지만 지난해 말 오태양씨가 양심상의 이유로 입영을 거부,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내면서 양심적 입영거부와 대체병역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그러나 기독교계에서는 양심적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병역제 도입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한기총(대표회장 김기수목사)은 지난 1월30일 ‘병역거부 위헌제청에 대한 논평’을 통해 “대체병역제도의 시행은 특정종교에 혜택을 주는 형평성에 위배되는 것이며, 차후 병역도피의 제도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며 대체병역제도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한기총은 특히 “어느 종교든 전쟁이나 군 입대를 거부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면서 “이를 방치하면 대체병역을 특화하는 새로운 종교의 출현을 막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한국교회언론위원회(대표회장 장광영목사)도것으로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사회적 이슈에 민감한 네티즌들도 관련 사이트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강한 반발을 보이며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병역거부자’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국방부에서도 ‘예외없는 병역의무’를 강조하고 있다.이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기독교계의 명확한 입장 정리나 대응책이 마련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최근 가수 유승준씨의 미국 시민권 취득을 두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의적으로 병역을 회피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 병역의무를 마치지 않은 연예인들에 대해서도 사회적 이목이 쏠리면서 병역기피자는 사회적 적으로 간주돼 여론의 강한 질타를 받고 있다. 이와같은 분위기속에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은 병역기피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에서 출발한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의 종교관에 따라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군사훈련을 받지 못하겠으니 다른 복무로 대체해 달라’는 것. 아직까지는 국방부가 ‘대체복무 불허’입장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어 해마다 600여명이 군입대 대신 항명죄란 명목으로 감옥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달 30일 서울지법 남부지원 박시환 부장판사가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을 제청하고 지난 4일에는 민변과 참여연대를 주축으로 2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연대회의’가 출범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여호와의 증인 등 소수 종교인들의 문제로만 인식돼온 ‘양심적 병역거부’가 공론의 장으로 나왔다. 헌법의 기본권 측면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조명하는 내용의 공개토론회가 열리는가 하면 법안의 개정 및 입법도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누구일까.지난해 9월 서울지법에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대를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을 수 있을 만큼의 최소 실형이 선고돼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5개월여가 지난 요즘 이 문제는 대체복무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의 이야기가 공론화되지 않은 것은 가장 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였는데, 기독교에서 이 종파를 ‘이단’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2월17일 불교계에서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발생하면서 최근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지난 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 29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실현과 대체복무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발족식을 갖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의 인정을 촉구했다.연대회의측은 발족선언문을 통해 “양심상의 이유로 군대에 갈 수 없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 중 600여명이 매년 감옥행을 택하고 있으나 분단에 따른 군사주의와 특정 종교에 대한 선입견으로 이들의 인권문제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며 “개인의 문제로 국한돼 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이제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여 논의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는 지난 달 30일 서울지법 남부지원에서 자신의 신앙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해 구속됐던 이모(21)씨가 “병역을 거부했다고 해서 대체 복무의 기회도 주지 않고 무조건 처벌하는 현행 병역법 규정은 위헌”이라며 낸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을 제청한 이후 일어난 움직임이라 그 의미가 더욱 크게 전달됐다.양심적 병역거부의 대체복무제를 찬성하는 입장은 주로 소수의 인권을 보호해야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교양학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문제가 우리 사회를 오랜 동안 지배해 온 국가주의, 군사주의의 문제와도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라며 “분단에 따른 군사주의와 특정종교에 대한 선입견으로 소수에 대한 인권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주장했다.동국대 조국 교수(법학)도 “양심적 병역거부와 단순 병역기피를 가려내는 판단절차, 사회구성원들이 수용할 만한 대체복무 양태와 기간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 있다.
1. 영화의 장면 전환에 따른 시간의 변화를 설명는 전체 구조가 플래쉬 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것입니다. 이 영화 를 우리 수난의 역사와 맞물려서 역사물처럼 찍을 것인가, 아니면 이 땅을 살고 있는 인간과 우리가 부르고 있는 소리가 무엇인가를 다룰 것인가 쪽에서 단연코 후자를 택한 셈입니다.플래쉬 백 구조이지만, 의외로 그 구성이 복잡합니다. 얼핏 동호의 회상처럼 보이지만, 후반에 가서 낙산거사의 회상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그 누구도 아닌 영화 바깥의 회상도 있습니다.엄마의 죽음으로서 현재로 바뀌고 송화가 장님소리를 듣고 다시 과거로 바뀌고 유봉은 칭구들과 갈등이 있은후 길을가게되면서 아이들은 성장하고 딸이 술을 따르는것에 화가나서 다시 길을가고 동호는 가난이 지겨워져서 길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 현제로 바뀌는데 그때 아저씨를 만나서 과거 회상을 하게된다. 아버지가 딸을 눈을 멀게 한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는 동호가 끝내는 다시 누님을 만나게 된다. 이런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2. 서편제에서 갖는 길의 의미:서편제에서의 길이란 곧 삶의 길, 인생의 길, 좀 비약하자면 한을 인생과 소리의 길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길 속에 한이 묻혀 있다고도 볼 수 있다.서편제의 주인공인 유봉은 소리꾼이다. 그는 과부와 도망을 하다 아이를 낳다 죽자 피도섞이지 않고 서로 배도 다른 남매를 데리고 길위를 떠돈다.영화에서 길을 가는 장면을 아주 많이 나온다. 처음에는 네 식구, 다음엔 세 식구, 다음엔두 식구, 마지막에는 송화 홀로...마치 '사람이 집에 있지 않다면 길 위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이렇게 떠돌이 삶을 사는 이들을 흔히 '역마살'이 꼈다고 한다. '살'은 사람에게 병을 내리거나 하는 해로운 기운이다. 이런 살을 어겼을 때는 느닷없이 화를 부린다.그들은 소리를 해주고 돈을 벌고, 약장수를 따라다니며 소리품을 판다. 그들은 바람 따라스산한 바람이 부는 산천초목 사이를 걷기도 하고, 때론 눈보라를, 비탈진 오솔길을 걷는다. 그들은 고달프기만 하건만 매우 아름답게 묘사된다.이것은 길이 곳 삶, 그곳에 안식이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그리고 영화 속에서 길의 의미를 말한 부분이 있다.북에도 길이 있고, 소리에도 길이 있다.유봉는 아들에게 북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한다."북은 장단과 추임새로 소리의 길을 닦아주는 것이여. 일년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있듯이, 북도 밀고, 달고, 맺고, 푸는 길이 있다 이 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