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Ⅰ.에밀 뒤르껨1...... 생애와 저서2..... 에밀 뒤르껨Ⅱ.막스 베버1.......생애와 저서2.......막스 베버Ⅲ.칼 마르크스1.......생애와 저서2.......칼 마르크스Ⅰ.에밀 뒤르껨1. 에밀 뒤르껨 의 생애와 저서뒤르껨은 꽁트(Aguste Comte)와 스펜서(Herbert Spencer)등의 이론과 독일 학자들의 사회과학연구를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사회적 실재로서의 사회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교육학자로 변모해 갔다. 그는 사회학연구에 열중하는 한편 교육학연구와 강의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1913년에 그는 교육학 및 사회학 담당교수로 되었다. 그러나 교육학에 관한 저서는 그가 생전에 출판한 것이 없다. 사후에 제자들에 의해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1922년"교육과 사회학", 1925년"도덕교육론", 1938년"프랑스교육의 발전" 이상의 3권이 뒤르껨의 교육학 업적의 전부인 셈이지만 그의 강의록은 아직도 더 발굴되어야 할 상태다. 한편, 사회학자로서의 뒤르껨의 활동은 베버(Max Weber)와 더불어 현대 사회학이론을 정립한 두 기둥중의 하나다. 그는 1896년 창간한 "사회학년부"라는 학술지를 통하여 정열적으로 독립된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의 형성에 진력하였다. 그는 좁은 의미의 사회학뿐만 아니라 법제사, 문화, 종교, 도덕, 경제학 등 광범위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들을 포괄하는 폭넓은 사 건강이 악화되었다. 1916년 그의 외아들이 전선에서 실종되었다는 소식까지 접하게 되면서 그의 건강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로 빠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와 논문집필, 학술토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5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2.에밀 뒤르껨뒤르껨은 기능주의 이론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중의 한 사람으로, 그 시대의 사회학자들 가운데에서도 교육에 관한 관심이 가장 많았던 사람이다. 그는 사람은 비사회적 존재로 태어나므로 이를 사회적 존재로 길러야하는데, 교육이 바로 이 기능을 수행한다 하여, 교육을 사회화와 동일시하였다.그는 사회화를 위한 교육의 기능이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그 하나는 "보편적 사회화"이다.이것은 한 사회의 공통적 감성과 신념, 즉 집합의식을 새로운 세대에 내면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여 그 사회의 특성을 유지하고 구성원들의 동질성을 확보한다. 이는 한 사회가 존속하는데 뿐만 아니라 독특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것이다.또 하나는 "특수사회화"이다. 그가 말한 "전체로서의 사회"가 요구하는 신체적, 지적, 도덕적 특성의 함양이 "보편적 사회화"라면, "특수사회화"는 개인이 속하게 되는 특수환경이 요구하는 신체적, 지적, 도덕적 특성의 함양을 가리키는 것이다. 뒤르껨 은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하여 다양한 직업집단이 필요하며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분업화가 가속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분업화된 각 사회집단은 그 나름으로 요구하는 신체적, 지적, 도덕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에 특수 사회화가 필요해지는 것이다.뒤르껨 은 보편적 사회화와 특수사회화의 관계를 깊이 추구했다기보다는, 이념적으로 양자는 당연히 일치하는 것인데 이는 전자가 정의상 보편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라고 간주하였다. 즉 오늘날의 분화된 사회에서 전문교육이 없을 수는 없지만, 혹 전문교육이 중지되는 한이 있더라도 보편교육은 없어질 수 없으며, 보편교육이야말로 사회 존속에 불가결한 동질성을 지탱해 주는 지주라고 생각하였다.뒤르껨 은 교육판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에 있어서도 여러 집단의 교육을 둘러싼 갈등의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아 교육현상의 정확한 이해를 어렵게 만들었다.Ⅱ. 막스 베버1. 생애와 저서막스 베버는 사회학, 정치학, 기타 사회과학의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하나의 거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한 거장으로 받아들여진다.막스 베버는 1864년 4월 21일 독일 튀링겐주의 에르푸르트에서 상인출신의 국회의원 아버지와 경건한 청교도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베를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하이델베르크·괴팅겐 대학 등 독일 각지의 4개 대학에서 법학·철학·역사학·경제학을 공부하였고, 1889년 골트슈미트 교수 및 크나이스트 교수의 지도 하에 박사학위를 받았다.졸업 후 한때 사법관 시보로 법원에서 근무하다가 1892년 베를린 대학에서 골트슈미트를 대신하여 로마법과 상법을 강의하였고, 189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추천받아 다음 해 동대학에서 취임하여, 1987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국민경제학교수로 있었다. 베를린대학의 교수 자격 논문인 [로마농업사]와 프라이부르크대학 취임강연인 [국민국가와 국민경제정책] 등은 당시의 주요한 업적으로 꼽힌다.초기에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독일 국민국가를 러시아의 차리즘이나 영국·프랑스의 제국주의로부터 지키고, 독일 국민국가의 부르주아적 근대화를 추진하는 일이었다. 그러한 입장에 선 그는 사회정책학회와 복음파사회회의에 속하면서 반봉건적·보수적인 융커(귀족적 영주)지배와 급진적 사회주의운동이라는 좌우 양 세력에 대항하여, 시민층을 중핵으로 하는 중도세력의 결집에 힘썼다.동엘베의 농업노동자의 상태에 관한 일련의 조사(1892∼94)에서 자본주의의 압력에 의한 융커경영의 붕괴, 융커에 예속되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하는 농업노동자의 서부로의 이동, 그와 연관된 폴란드인의 진출과 동쪽으로부터의 위협 증대를 알리면서 대책을 논하였으며, 그 밖에도 "국민국가와 경제정책"에서는 국민적 권력 이해에 봉사해야 할 경제정책의 과제를 논하여, 경제적으활동을 시작하였으나 교수직은 사양하고 학문연구에만 전념하였다.1904년 이후 [사회과학·사회정책잡지] 편집에 관여하면서 사회과학적 및 사회정책적 인식의 객관성"(1904)을 기고하였고, 1905년 러시아 제1혁명에 대한 러시아의 자유주의화에 기대를 가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발표하였다.1909년 독일사회학의 창립에 관여하였고, 이해부터 홍서 [사회경제학강요]의 편집을 맡았으며, 그 제3권 [경제와 사회](1921~22)라는 대작을 저술하였다.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에 입대하고 퇴역 후 정치활동에 투신하였다. 패전 후에는 독일민주당결성에 참여하여 계몽활동을 하였고, 헌법작성위원회에도 참가한 후, 1919년 베르사유강화회의에 전문위원으로 나가서 전쟁책임 추궁의 논거를 비판하였다. 한편, 1918년에는 빈 대학, 1919년에는 뮌헨 대학에서 강의를 계속하다가 20년 6월 14일 폐렴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2. 막스 베버베버는 예리한 현실감각으로 당시 뒤져 있던 독일 사회와 정치를 비판하고, 그 근대화에 힘썼다. 또한 베버의 학설은 그 시대 이후 사회과학에 광범한 영향을 끼쳤으며, 가치자유, 이념형적 파악, 이해적 방법에 바탕을 둔 학문론은 독일역사학파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비판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행위론이나 관료제론, 종교사회학적 연구는 마르크스이론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극적인 의의를 잃지 않고 있다.막스 베버의 일반이론은 가장 기본적인 결점은 역사학이라는 것에 대한 베버의 몰이해라고 생각한다. 베버는 역사의 정상적인 순행을 거부하고 자본주의라는 역사의 산물을 단지 종교개혁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의해 탄생된 개혁의 산물로 보고 종교 개혁이전의 수많은 자본주의적 요소들을 전부 무시해 버리는 오판을 스스로 범했다.한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형이상학적이라는 점이다. 형이상학은 형이하학인 경제의 발전에 도움을 줄뿐 선행할 수 없다. 즉.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자본주의적 정신을 지닌 중산계사회학자인 칼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프랑스와의 국경인 트리에(Trier)에서 성공한 유태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1835년 독일 트리에의 김나지움의 졸업 논문으로 "인류전체의 복지에 힘쓰는 것이 인간에 대한 최고의 사명"이라는 휴머니즘적 사상을 토로했으며, 같은 해 본 대학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법학·역사·철학을 공부하고 헤겔철학을 접하게 되어 급진적인 성향을 가진 헤겔 좌파에 가담하였고, 특히 헤겔의 종교관에 반대하여 무신론자가 되었다. 1841년 대학과정을 마치면서 "데모크리스토의 자연철학과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의 의미"라는 철학박사 학위논문을 발표하였다.1842년 10월 퀼른으로 이주하여 급진적인 신문인 [라인신문(Rheinische Zeitung)]의 발행인으로 취임하여 혁명적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프로이센의 절대주의를 비판하고, 출판의 자유, 목재절도 단속법, 모젤강 농민문제 등을 다루었다. 이 시기를 통해 관념론적 견지에서 벗어나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고, 혁명적인 민주주의자에서 과학적 공산주의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라인신문]은 1843년 3월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폐간되었다.1843년 부친의 친한 벗의 딸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하였다. 그녀의 가족들은 마르크스가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하였다. 실재로 그의 가족은 극심한 빈곤 속에서 생활하였으며, 여섯 명의 자녀 중에서 세 명은 굶어 죽었다.같은 해 10월에 파리로 이주하여 루게와 함께 [독불연감]을 발간, 이 잡지에 "헤겔의 법철학 비판", "경제철학논고", "경제학 노트", "유대인 문제",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1844년 9월 학문적 동지이며, 후원자가 되었던 엥겔스를 처음으로 만났으며, 이때부터 그들 공동의 투쟁이 시작되었고, 같은 해 포이에르바하에 바탕을 둔 관념적 역사관을 비판하고 유물론적 역사관을 제시하였다.1945년 프로이센 정부의 요청에 따라 파리에서도 추방된 마르크스는 2원 브뤼셀로 이주하였으며 프로이센 국적을 포다.
유령화물을 읽고 난 어렸을 때 보았던 부시맨이 생각났다. 하늘에서 떨어 진 콜라병을 마치 신이 내린 선물인 듯 착각하는 부시맨들...마치 유령화물에 나오는 원주민 들처럼 문화의근원에 대해 알지 못하고 콜라병과 비행기에 탄 백인들을 신성화 하는 모습 은 내겐 재미를 주웠지만, 읽는동안 내 자신이 문화의 우월성에 젖어들어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주민들이자기들의 생활을 총체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화물을 기다리듯 우리 또한 과거식민지 지배하의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제국주의적 문화이해에 길들여져 왔지 않는가? 우리가 재미있게 보았던 '부시맨' 같은 영화도 아프리카라는 원시지역을 서구 제국주의가 들어옴으로서 원시지역을 지켜주고 보호한다는 의식을 알게 모르게 우리 의식에 주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이런 제국주의적 문화이해는 문화상대주의의 등장으로 많이 개혁되었다. 그러나 문화 상대주의에 입각해 문화를 바라본다면 정말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문화에 대한 어떤 견해를 가지고 문화를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문화의 파악은 그 문화를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에게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중요한 잣대를 제시해준다. 문화의 파악이 주관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그건 그 사람만의 문화이해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개고기에 대해서 객관적 과학성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개고기문화가 야만의 문화로만 보일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여러 편견을 버리고 인간적이고, 따뜻한, 긍정적인 시각으로 이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원시적이라고 깔보는 것들이 그 속에는 얼마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유가 있는지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볼 때는 부정적으로 보듯이 원시인들에 대해서도 많은 편견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문화적으로 앞섰다느니 뒤쳐졌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만, 문화에는 선진이나 후진 같은 수식어를 붙일 수는 없다.모든 문화는 그 문화 고유의 특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문화간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데, 이 것을 문화의 상대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다른 사회의 문화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고, 그 사회의 맥락에서 그 문화를 평가하고 이해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모든 민족, 모든 부족의 문화는 각기 나름대로 고유한 것이다. 편견을 버리는 일은 다시 말해서 문화의 상대성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우리는 문화의 상대성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문화의 상대성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잠재 의식 속에는 '유령화물에 나오는 원주민은 미개하다' 든가 같은 것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이 완전히 없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각 나라나 사회의 고유한 문화를 바라볼 때에는, 우리가 정말 그 사회에 들어가서, 아니면 그 사회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따져보는 것만 하더라도 문화의 상대성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다른 문화에 대해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독자에게 문화가 발생하게 된 과정과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문화의 상대성에 대한 이해를 넓히도록 도와주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비판하는 데에도 폭 넓은 생각을 가지고 해야 하며, 다른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과 그 문화에 대한 상대적인 뜻을 알아나감에 있어서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또 나만의 입장이 아니라 그 문화를 겪고 있고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7장에서 언급된 내용은 유령화물에 관한 내용이다. 뉴기니아 산맥 속 정글의 가설 비행장 근처에서 원주민들은 자기들의 신이 화물을 보내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비행기가 다시 살아난 조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화물은 자기들의 생활을 총체적으로 향상 시킬수 있는 새로운 것들이고 유령선들과 유령 비행기들은 전혀 새로운 시대를 예언 한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수단에 의해서 어느 먼 곳에서 창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문화에서 화물예언자들이 생기고 화물예언자들은 화물을 자기들의 추종자 손에 넘겨주냐 못넘겨주냐 에 따라 능력의 잣대를 보여준다.화물에 관한 원주민의 이론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였다. 2차세계대전 전에는 흰피부의 인종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었으며 그 후에는 일본인을 닮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검은 피부의 미군들이 일본인을 내쫓았을 때 조상들은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로 사진에 찍혀있었다. 이것은 훨씬 발전된 문명의 사람들에게서 원주민들은 신화 외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 특히 화물이 있었고 이를 신처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이런 유령화물은 재분배적인 교환제도와 대인제도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우연한 사고로 추락한 여객기나 화물기도 이들에게는 신이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물에 관한 원주민들의 이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들에 따라 발전되어 진다. 그러나 화물이 떨어진 당시 가장 실질적이고 지각있는 원주민 지도자들을 선교사들은 철저한 사기꾼이라고 확신했다.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는 그들조차 자신의 조상이 아담과 이브가 아닌 원숭이 ,개 ,고양이 또다른 다른 동물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이 원주민을 기만하여 그들의 토템을 버리게 했던 당시 까지 원주민들이 믿고 잇었던 것 들이였다.
과목명 :정보 체계론주 제:정보통신기술이 행정조직에미치는 영향조 :4조 배민웅 강대석담당교수 :정봉현저희 조는 온라인 상의 대화를 토대로과제 수행을 했습니다 채팅내용 과제 다음장에 첨부..목차1....서론2....본론1.행정정보화의 배경1) 국제적 환경2) 국내적 환경2. 정보통신기술이 행정조직에 미치는 효과1) 긍정적 효과2)부정적 효과3. 정보화에 의한 행정혁신의 비전 과 과제1) 기존의 행정모형2) 정보화의 미래 행정비전3) 정부의 추진과제3....결론Ⅰ. 서 론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토대로 진전되고 있는 정보화의 물결은 우리의 일상생활, 주민자치와 행정, 그리고 국제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혁명적 사회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존의 공공행정모형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 요청되고 있다. 특히,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국민들의 전반적 교육 및 생활수준의 향상은 행정에 대한 참여욕구의 증대와 함께 다양하고 신속한 행정서비스 욕구의 증대로 나타나고 있어, 이에 부응하는 새로운 행정의 이론적 기반 및 체계정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정보통신기술이 행정조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Ⅱ. 본 론1. 행정 정보화의 배경정보화 사회의 변화는 사회 전반적으로 구성체계를 변화시키는 것이지만 이와 같은 변화가 무엇으로 인해 나타날 것이며 이에 따라 행정정보화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행정환경의 변화① 국제적 환경- 국민에 대한 국가기관의 반응력은 높여 나아가야 하는 반면에, 관료제의 영향 력은 감소시켜야 한다는 압력 → 고객 지향적 행정으로의 변화- 공공정책의 효과성과 정부서비스의 정책 의제에 대해 행정정보 체계를 통해 다양하게 축적·저장된 행정정보를 가지고서 구체적인 정책목표의 설정, 대안의 탐색과 작성, 대안의 분석, 0대안의 평가와 선택의 과정을 합리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② 행정업무의 능률성 증대행정정보 체계는 중복되거나 반복적인 업무를 기계화함으로써 인력, 예산, 시간및 공간의 제반 비용을 절감시킨다. 또한 행정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한정된 자원으로 만들어진 행정정보를 공동 활용함으로써 업무의 저장과 재생으로 인한 인적·물적 자원의 중복 투자를 방지하여 자원과 예산의 절감을 가져온다.→ 행정정보 체계의 효과- 정보자료의 수집·저장·산출 등과 같은 정보자료처리의 단순한 육체적 작업의감소- 전문적인 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증가시킴으로써 조직구성원들의 업무내용을 향상- 구조적이고 반복적인 관리자의 의사결정을 자동화함에 따라 중간관리층의 인원수와 역할을 상대적으로 감소③ 행정서비스의 질 향상행정정보 체계는 행정업무의 신속성과 정확성을 증진시키고, 공평한 민원처리, 부 패 근절, 처리 서식의 간소화로 업무처리의 효율성을 높여 국민에 대한 행정서비스가 개선, 향상될 수 있게 한다. 사회 전반적인 쌍방향의 뉴미디어 보급과 정부내의 공동이용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완전한 종합창구가 실현되게 되면 각 가정에서도 행정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재택(在宅)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행정서비스의 질적 향상의 내용ⅰ) 행정업무 처리의 신속화ⅱ) 형평성의 제고ⅲ) 부패 근절과 친절한 대민 서비스의 증대④ 행정업무의 개선행정사무 자동화와 행정정보 체계의 구축 등 행정 내부의 변화와, 가정과 기업의 뉴미디어의 보급과 통신체계의 구성 등의 외부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행정서비스 의 내용이 다양해짐과 동시에 행정서비스의 제공방법도 변화하게 된다.→ 행정서비스의 제공방법의 변화ⅰ) 창구 서비스의 종합화·일원화ⅱ) 인접지 행정서비스ⅲ) 행정 구비서류와 서식의 간소화ⅳ) 행정결정 권한의 체계화2) 부정적 효과① 공공서비스의 상품화와 사유화의 가능성 확대공공서비스의 상업화보화를 추진하는 경우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그에 따른 부작용과 행정적 불편이 국민에게 이전되어, 해당 행정기관으로서는 비용이 절약되지만 국가 전체로는 오히려 비용이 증가하는 모순을 낳는다.④ 컴퓨터 범죄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이제 컴퓨터는 행정, 산업, 교육, 국방 등 우리 생활의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컴퓨터 시스템의 갑작스러운 정지나, 비정상적인 작동, 오류, 고의적인 조작 등에 의한 사고는 단순히 경제생활뿐만 아니라 개인의 재산과 생명 그리고 프라이버시 침해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⑤ 정보시스템의 취약성- 기술적 측면에서 본 취약성정보시스템은 대량 데이터의 고속처리로 인하여 오류 발견 및 복구가 어렵고 데이터의 불가시성으로 수정 변경의 증거수집이 곤란하다. 또한 기능과 데이터의 집중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피해가 커질 위험이 있다. 시스템 온라인 접근이 용이하며 주요 자료의 구분 없이 모든 자료를 균일하게 처리하여 보안성이 취약한 측면도 있다.- 조직적 측면에서 본 취약성소수 인원에 의한 데이터 처리의 장점이 오히려 내부통제가 취약할 경우에는 부정사용의 위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또는 전문가에게만 블랙박스화되어 있는 장점은 내부통제가 취약할 경우에는 부정 조작의 위협을 유발한다.- 사회적 측면에서 본 취약성정보시스템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의존도가 높아져 고장 발생시 큰 혼란과 손실을 야기하며 네트워크화가 됨에 따라 시스템의 신뢰성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취약성이 있다.3. 정보화에 의한 행정혁신의 비전 과 과제1) 기존의 행정모형- 관중심, 관편의 위주의 행정 : 국민을 관리나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행정- 시·공간의 제약이 있는 행정 : 행정기관을 찾아다녀야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행정-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행정 : 불투명한 행정, 예측이 어려운 행정, 상호 불신하는 행정, 면대면(面對面) 접촉이 있어야 하는 행정- 신체부자유자나 외국인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행정2) 정보화의 미래 행정비전① 시민중심, 시민편의 위 필요한 정보만 스스로 입력하기만 하면된다. 해당민원과 관련하여 행정기관끼리 확인될 수 있는 일체의 정보와 서류를 민원인이 해당기관에 가서 입증 받아오지 않아도 된다.3) 정부의 추진과제① 고객 지향적 행정서비스 실현② 행정업무의 효율적 재설계③ 행정정보 공동이용의 활성화④ 정보기술기반 정비⑤ 공무원 개인의 생산성 제고⑥ 법·제도의 개선Ⅲ. 결 론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성과를 전체 행정과정에 적극 도입·활용하고자 함은 행정업무와 서비스 수행상의 효율성을 제고시켜 궁극적으로 행정정보화를 통한 국민의 삶의 질을 제고시키기 위한 것이다.하지만 이것이 수단으로써 사용이 되어야지 잘못된 방향의 도입과 목적의 추구는 고객(행정에 있어서 내부고객과 외부고객)의 수단에 대한 종속화 현상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행정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가. 결국 공익의 실현에 있다. 행정에 있어서 정보화의 도입은 총체적 국가의 합이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되게끔, 즉 발전방향으로 나아가게끔 하여야 한다.행정서비스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국민의 입장을 중시하는 대국민 서비스의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며, 내부고객인 관료들에게도 정보화를 통한 이점이 제공되게끔 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정보화의 추구는 허울 좋은 잔상에 불과하다.분명한 것은 정보화를 통한 이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완벽한 행정의 정보화가 조기에 실현되게끔 유도하여야 할 것이며 도입과정의 불합리성은 철저히 배제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결국 고도의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빠른 행정의 정보화로 내부행정에 대한 행정능률의 향상과 대국민서비스의 개선을 이루는 것이 정보화시대의 발전적 행정정보서비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4조 토론 채팅 내용)배민웅 님의 말:안녕강대석 님의 말:안녕 민웅아배민웅 님의 말:응 방가워배민웅 님의 말:첫 토론이구나강대석 님의 말:자 우리 이제 정보 통신과 행정 조직에 대해서 토론해 보자 .. 일단 내 생각은 정보통신이 행정 조직에 필요한 이유와 그에 따른 장 단점 그리고 마님의 말:그리고 너무 행정 업무가 수직 적인거 같아요강대석 님의 말:그렇지.. 많은걸 알고 있구나 .. 수직적인 행정 업무가 정보화 도입으로 수평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배민웅 님의 말:맞습니다 맞고요....행정업무의 복잡성도 큰문제지요강대석 님의 말:내 생각도 너와 일치해.. 그리고 이제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데 정부의 규모는 작아지고 힘은 더욱 강력하게 변화할 수 도 있겠지강대석 님의 말:그리고 행정 정보를 관리하는 데도 효율적인거 같아배민웅 님의 말:그리고 서류 업무도 넘 많은거 같아요 문서관리도 많구강대석 님의 말:정말 똑똑하구나.. 나도 같은 생각이야강대석 님의 말:근데 나는 개인적으로 행정 정보화 업무에 반대하는 입장이야배민웅 님의 말:왜???좋은 점도 많은데....강대석 님의 말:물론 좋은 점이야 많지 .. 하지만 현재 정보화가 실행되는 단계를 보면 수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거 같아..강대석 님의 말:그렇다면 너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행정 정보업무의 장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니?배민웅 님의 말:우선 세가지 말해볼께요배민웅 님의 말:긍정적 효과로는① 정책과정의 합리화행정정보 체계가 구축됨으로써 현대사회의 다양한 국민들의 욕구 분출에 대한 정 보를 신속히 수집 분석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항을 정책의제의 대상으로 삼 는다. 아울러 정책 의제에 대해 행정정보 체계를 통해 다양하게 축적·저장된 행 정정보를 가지고서 구체적인 정책목표의 설정, 대안의 탐색과 작성, 대안의 분석, 0대안의 평가와 선택의 과정을 합리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② 행정업무의 능률성 증대행정정보 체계는 중복되거나 반복적인 업무를 기계화함으로써 인력, 예산, 시간 및 공간의 제반 비용을 절감시킨다. 또한 행정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한정된 자원 으로 만들어진 행정정보를 공동 활용함으로써 업무의 저장과 재생으로 인한 인배민웅 님의 말:비효율성을 탈피 할수 있겠죠배민웅 님의 말:③ 행정서비스의 질 향상행정정보 체계는 행정업무의 신속성과 정확성을 증진시키고, 공평한 민원처리, 부 패 근절.
report장애인과 이동권 문제제 목: 현대사회와 문화학 과: 경제학부학 번: 9905053이 름: 배민웅교수님: 정근식 교수님▷ 목 차 ◁Ⅰ.서론Ⅱ.본론1.이동권이란2. 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실태3. 장애인 이동궝 무엇이 문제인가4. 장애인의 이동문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Ⅲ. 결론▷ 참 고 문 헌 ◁Ⅰ. 서론얼마전에 버스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 대해서들은게 있다. 어느 장애인이 라디오 프로그램서에 자신의 사연을 보냈는데 ,자신뿐 아니라 장애인의 이동원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장애인이 우리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많음을 알리고자 하는거 같았다. 사연은 이러했다. 그녀는 미대진학과 화가를 꿈꾸는 고1소녀 였다고 한다. 자신에게 불행이 닥치지 전까지는.... 그녀는 고1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서 하반신 불수가 되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하반신 불수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꿈일거라고 외치며 빨리 그 꿈에서 깨어나길 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횔체어 없이 생활할수 없는 그녀 자신을 발견 하고는 그녀의 학교 및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다. 자신의 보습 때문에 밖에 나가길 꺼려 했고, 우울증에 시달려 고생 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티비에서 두팔이 없는 (선천적 기형으로인해) 장애인이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보고, 자신도 꿈을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림공부를 다시 시작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다시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기위해 자신의 불행을 버리고 굼을 향해 달려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그녀의 꿈도 몇일 못가서 커다란 벽에 부딪 치고 만다. 그녀는 그림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니고 싶어 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다닐 만한 학원을 서울 시내를 돌며 찾아 다녔다고 한다. 그녀의 특성상 높은 턱이나 교통이 어려운 곳은 엄두를 낼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어렵사리 학원을 알아보고 집에서 30분 거리의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녀는 학원 다니던 첫날 들분 마음을 쉽게 가라앉을수 생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지요" 그녀가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혼자서 다닐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이동권이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그리고 대중이 이용하는 건물을 마음대로 이용하기 어렵다. 학교도 혼자서 다닐 수 없다. 그래도 어렵사리 대하게 입학한 학생 중에는 학교건물을 이용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원활하게 강의에 참여할 수 있는 보조장치도 없어 계속해서 수학할 수 없어서 학교를 그만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장애인이 사회, 경제적 지위향상과 인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통합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통합된 사회가 가능하려면 이동에 있어서나 건축물 그리고 모든 장치, 사회, 문화, 체육 등에서의 접근(Access)) 접근건축물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는 물론 대중교통에의 접근, 청각장애인의 통신에의 접근, 정치적 기본권인 투표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문화적 유적지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각종 분야에서 장애인은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다.이 가능해야 한다.Ⅱ. 본론1. 이동권이란?이동권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접근권(rights to access)과 함께 쓰이거나, 접근권의 하위 권리로 이해되기도 합니다.이동권은 물리적 장벽, 특히 교통시설 이용 등에서의 제약을 받지 않을 권리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이러한 교통 시설 이용 등에서의 제약은 주로 대중교통 이용에서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중교통 또는 여객시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공공재는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로 구성되어야 하며, 또한 그 시설의 이용에 있어 어떠한 사람도 차별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현재의 국내의 대중 교통 시설은 비장애인들만을 위한 장비들만 갖추어 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애인들은 이러한 교통 수단의 이용에 많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위해 구직활동을 못해 실업자로, 나아가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기도 합니다. 교육을 통해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 욕구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다른 사람들만의 행복으로만 바라봐야 합니다.뿐만 아니라, 이동하는 자유로움을 맛보지 못하면, 정치적 권리도 표현할 수 없게 됩니다. 선거를 하기 위해 집에서 투표장까지 이동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 한 사람의 국민, 또는 시민으로서의 자기 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해야 합니다. 또한 문화적 권리를 누리는 것도 이동 수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만지면서, 느끼고, 감상하며, 비판할 수 있는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대중 교통 시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는 한 사람을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하는 것으로까지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교육받을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은 이동 수단의 부재라는 현실 때문에,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따라서 장애인이동권이란 단지 교통시설에서의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권리로까지 이해될 수 있습니다.2. 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실태2000년 장애인실태조사) 장애인 실태조사장애인의 집밖 활동 시 불편한 이유로 '대중교통수단의 편의시설 부족'을 이유로 든 장애인이 전체 응답자의 52.5%나 되었습니다. 이는 등록 장애인 1,307,484명으로 환산하여 계산했을 때, 무려 501,097명의 장애인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에 의하면 장애인이 대중교통 이용시의 불편함 때문에 집밖 활동을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중 교통 이용시의 불편함은 결국 장애인의 교육, 노동, 문화 등 다양한 사회 영역에의 참여를 박탈하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각종 기회를 누릴 수 없게 되는 사회적 차별로 이어집니다.현재 대중교통 시설에서 기준, 안전기준이 존재하지 않아, 매우 위험합니다. 2001년 1월에 발생한 오이도역의 수직리프트 추락참사는 어쩌면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직리프트와 고정형리프트 이외에 안전하고 편리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엘리베이터의 경우`, 전체 지하철 역사 366곳 중 21.3%인 78곳에 불과한 상황입니다.가장 일반적인 대중교통이라고 할 수 있는 버스의 경우 단지 비장애인들에게만 '대중'교통일 뿐, 대부분의 장애인들에게는 원천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교통수단입니다. 외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저상버스) 저상버스버스 밑바닥이 매우 낮게 설계된 저상버스는 마치 길에서 걷는 듯 탈 수 있어 장애인은 물론 노인, 임산부, 아동 등 모든 이동약자에게도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가 보편화되고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저상버스가 생산은 되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 부재로 인해 아직까지 실제로 운행되는 저상버스는 한 대도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3. 장애인 이동권 무엇이 문제인가""나는 목발을 사용하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그야말로 쥐약이다. 지하철을 한 번 타려면 온 몸에 기운이 모두 빠져 나간다. 그렇다고 버스를 탈 수 있느냐? 제자리에 서지도 않는 버스는 낑낑거리며 달려가는 날 기다려 주지도 않을뿐더러 어찌어찌 올라탔다고 해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거의 굴러다니는 짐짝의 수준이다. 어쩌다 출퇴근시간이 되면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밀려 몇 대를 놓치고 결국 눈물을 흘리며 택시를 타야하는 일들이 많다. 내 몸이 절대로 따라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난 언제쯤 마음놓고 외출을 할 수가 있을까?"위의 한 지체장애인의 이야기는 현재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히 지체장애인 중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게는 지하철에 휠체어 리프트 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야 이동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리프트사고를 통해 지하철 역사 내에 설치된 리프트시설이 무용지물임이 확인되었음을 감안 장애인이 6.8%인 것으로 보아 서울의 지하철 여건은 열악함을 알수 있다역사의 장애인 탑승 환경은 매우 열악한 수준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마찬가지로 버스 역시 지상으로부터 차내 바닥 사이의 높이가 무려 78cm나 되어,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목발을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의 경우 거의 이용할 수 없도록 제작되어 있습니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정보시스템이 차내에만 설치되어 있거나, 실제 설치되어 있더라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전광판 등을 통한 정류장 및 경유지 안내 서비스가 일부 좌석버스에만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현재의 버스는 장애인이 이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이 명백합니다.이러한 부적합한 대중교통수단의 대안으로 택시 이용이나 자가용 이용을 들 수 있지만, 택시의 경우 독일의 경우처럼 교통증을 발급해 어떠한 교통수단이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 그 비용 때문에 저소득층이 많은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자동차 등록세·면허세 등을 할인해 주고, 자동차 연료로 LPG를 이용하도록 허가해 줌으로써, 이동의 불편을 겪고 있는 장애인들이 자가용을 구입해 이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현재 실시되고 있지만, 이 취지에 맞춰, 실제 자가용을 직접 이용해 자신의 이동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장애인은 35.5%에 불과합니다.4. 장애인의 이동문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대책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중 가장 필요한 것은 일반인의 문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보통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이동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장애인에 대해서 구체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이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고 있다. 불쌍하다거나 돕고싶다는 마음을 갖는.
report오아시스 감상문제 목: 현대사회와 문화학 과: 경제학부학 번: 9905053이 름: 배민웅교수님: 정근식 교수님군대를 제대하고 초여름 쯤에 이영화를 보고 수업시간에 다시 한번 이영화를 봤을 때 처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었다. 솔직히 처음 영화를 보기전엔 불량배인 전과 3범 설경구와 착하고 순진한 문소리의 러브스토리가 될줄 알았다. 뻔한 삼류인생과 여인과의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멜로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보게되었다.그러나 영화가 시작되고 영화가 전개 되면서 내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었다. "저여자 왜이러지??" 영화를 보며 처음 으로 말한 단어였다.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아닌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한 영화. 그래서 생각을 하면서 봐야 하는 영화 ..두 번째로 오아시스를 보게되었을 때는 '오아시스' 가 "무슨의미일까" 라는 물음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를 보게 되었다한 남자가 한 겨울에 반소매 차림으로 다가와 담배 한 개비만 빌려 달라고 조른다. 어수룩하게 생긴 홍종두(설경구)와 우리는 처음에 그렇게 만난다. 이제 막 세 번째 ‘별’을 달고 교도소에서 출소한 홍종두가 집에 와 보니 이미 이사 가고 난 다음이다. 그는 음식점에서 무전취식을 하고 경찰서에 끌려간 다음에야 보호자라고 나타난 동생을 만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 집에서 형수는 힘들게 말한다.“삼촌, 정말 미안한 말인데요, 삼촌 없을 때는 살 것 같았어요. 난 정말 삼촌이 싫어요.”그래도 홍종두는 먹고살기 위해 중국집 배달부가 된다. 그리고 가난한 동네 아파트에 배달 갔다가 뇌성마비 장애자 한공주(문소리)를 만난다. 그렇게 영화 「오아시스」는 시작한다.한 남자가 있다. 전과 3범으로 사회에서는 쓰레기, 조용한 가족의 평온을 깨는 문제아, 홍종두. 그는 이제 막 형을 마치고 가족에게 돌아가려 한다. 한 여자가 있다. 한공주. 자기 몸뚱아리 하나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 그녀는 세상에 오직 한 명 남은 혈육인 오빠와 오빠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뺑소니와 폭행, 그리고 강간미수로 별 세 개를 달고 출소한 종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가족은 이미 그 곳을 떠나고 없다. 다행하게도, 혹은 불행하게도 종두는 다시 가족을 찾게되지만 그들은 종두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 나눠주지 않고, 종두에대한 형제의 냉대는 여전하다. 다음 날, 형(兄)을 대신해서 형(刑)을 살고 나온 종두는 죄를 사죄하기 위해 피해자 가족을 찾아간다. 형이 사고 쳤던 그 환경미화원의 다 스러져가는 집을 찾아간다.환경미화원 아버지를 잃은 피해자 가족에게는 장애인 공주가 있다. 종두가 막 찾아가던 그 순간, 그들은 이삿짐을 꾸리고 이사를 떠나느라 바쁘다. 공주 오빠는 그녀의 장애로 입주할 수 있게 된 아파트로 이사하며, 정작 그 혜택을 받아야할 공주를 버리고 떠난다. 혼자 남겨진 공주와 아버지의 원수 종두는 그렇게 만난다. 가족의 냉대와 버림 속에서 전과자와 장애인은 끝도 보이지 않는, 가슴 시린 사랑을 시작하려한다.그렇다. 「오아시스」는 타인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배척받고, 증오받는 전과자 홍종두와 장애인 한공주의 사랑이야기다. 이영화가 드러내는 메시지는 ‘정상인들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환상에 대한 타파다. 혹은 비주류의 사랑법... 그들도 우리처럼, 우리보다 더욱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랑법이 「오아시스」가 보여주는 주테마이다.그러나 「오아시스」에 대해 언급할 때, 이러한 주제는 너무나 많이 이야기되었다. ‘정상/비정상’이라는 이분적 구분에 대한 논의, 장애인 처우에 대한 문제, 전과자의 출소 후 재활의 가능성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테마 등은 많은 함축적 의미들이 오아시스라는 단어 안에 함축돠어 있다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공주마마와 장군이 세상을 보여지는 대로 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목이다. 말하자면 「오아시스」는 자기 최면에 관한 영화다. 그래서 장군은 공주마마를 편안히 잠들게 만들기 위하여, 또는 같은 말이지만 그녀를 잠자는 숲 속의 공주로 만들기 위해서 마지막 마술을 건다. 그녀는 이제 결코 그녀 스스로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홍종두의 마술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자신을 기만하면서 자기의 자리를 거기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왕자님이 나타나기 전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며, 공주마마 한공주는 결코 뇌성마비 장애자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공주의 밤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잠들면서 그렇게 꿈을 꾸어야 하는 한공주가 차지하는 그 자리는 어디인가?결국 한공주가 차지하는 것은 인간의 자리가 아니라 아내의 자리이다. 이 영화가 마지막 장면을 감옥에서 보내 온 홍종두의 편지를 읽으면서 방안을 청소하고 있는 한공주의 모습으로 끝내고 있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장면이다. 그러나 나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청소를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불편해 보였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부드러운 폭력의 환상으로 다가올 때, 그래서 당신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인간의 자리를 버리고 여자의 자리로 끌어내려지게 만들 때, 우리는 더욱더 그것에 복종하게 된다. 어쩌면 이 영화는 가정이야말로 오아시스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참으로 아름다운 동화일 것이다. 신기루는 그것이 있다고 믿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생각해볼 문제)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왜 제목이 '오아시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마도 오아시스는 사막의 구세주 같은 것? 만나기가 아주 힘든 것 등을 상징한다고 생각된다.그러한 의미에서 장애인으로서 자신을 그 본연의 모습 그대로 알아주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을 표현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 영화는 장애인이 가득하다.일반적으로 우리는 장애의 의미를 일반적으로 신체의 어떤 부분에 결함이 있는 자와 지능이 뒤지거나, 사회적응에 문제가 있는 자를 포함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애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적응에 문제가 있는 우리도 장애인 일 수 있는 것이다. 혹은 이러한 이유가 아니라면 영화에서 나오는 공주의 오빠네 부부같은 양심 장애인도 있는 것이다.오아시스는 사회부적응아인 종두와 장애인인 공주 그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린영화이다.오아시스는 거울에 반사된 빛이 공주의 집 천장에 새 한 마리로 변하여 날아다니는 것으로 처음 시작한다.나는 이것이 공주의 환상임을 안다. 아니 환상이라기 보다 소망이라는 표현이 올바른 것일까?그녀가 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은 마음을 상징하는 지금 현재는 자신의 몸조차 주체할 수 없는 안타까움은 공주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라고 생각한다.그럼 홍종두의 상황은 어떠할까?'홍종두' 그는 형의 뺑소니 사고로 형 대신 감옥살이를 하다 출소한다. 반 팔 차림의 그를 처음 맞이하는 것은 차가운 바람이다. 전에 살던 집에 가보았지만 가족들은 이미 몰래 이사한 후이다. 이렇듯 홍종두도 몸은 가벼울지라도 마음만은 상처투성이 장애인인 것이다.이런 상황의 두 남녀는 뺑소니 사고를 당한 피해자의 집에 사과를 하러간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의 사이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종두는 다음날 다들 이사가고 난 낡고 초라한 아파트 거실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장애인 한공주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공주가 예쁘다는 생각에 그녀의 몸을 만지려 한다. 그러나 공주는 일그러진 몸으로 그를 거부하다 실신하고 만다. 종두는 당황하여 전화번호를 남기고 도망쳐 나와버린다이렇게 시간은 지났다. 그러나 혼자 남은 공주는 밤마다 보이는 창문 밖 나무 그림자를 무서워한다. 이것은 언제나 혼자일 수밖에 없는 혹은 장애는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비춰져 가슴이 아팠다.그렇게 그녀는 무서움에 떨다 종두에게 전화를 하게 되고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종두는 마법을 걸어 나뭇가지 그림자를 없애준다. 그러나 이것은 마법이 아닌 종두의 노력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둘의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둘은 서로는 '공주마마'와 '장군'으로 부르며 소외된 자신들을 서로 달래주며 사랑했다. 공주마마의 장군이 된 종두는 그 뒤 공주의 집에가 공주와 놀아주기도 하고 같이 외출을 하기도 한다. 종두가 일하는 형의 가게에 데려가 자장면을 같이 먹기도 하고 노래방을 가기도 한다. 공주는 늘 자기가 뇌성마비 장애인이 아닌 평범한 비장애인으로서 종두의 여자친구인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장난도 치고 많은 사람 앞에서 팔짱도 껴보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런 상상 중 가장 마음 아팠던 장면은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었다. 공주와 바깥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힘들어 쪼그리고 앉아 있는 종두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그에게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이란 노래를 불러 주게 된다. 그런 그녀의 소망은 그녀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