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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정치학, 세계화, 국민국가, 정치학 개] 세계화와 국가 평가B괜찮아요
    Ⅰ.서론세계화란 전 인류가 하나의 체제 하에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세계화는 개별국가의 국경을 초월한 세계무대로의 진출, 경쟁, 협력과 교류를 증대시키는 일련의 모든 사건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세계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광범위한 변화를 겪고 있다.)특히 급격하게 이루어진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전 세계를 점점 더 작게 만들어 가고 있고 각 국가 간의 거리를 좁혀놓으며 전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 간의 상호연관성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각 나라간의 사회와 문화의 교류를 증대시켰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 왔다. 특히 정치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서로 경쟁, 갈등, 협력관계가 생겨나고 쇠퇴하는 과정도 있었다. 현재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앞세워 국가간 무역장벽을 허물며 국가 간의 교역과 경제행위에 대한 규제까지 나타나며 국경이 무너지고 국가 간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국제주의 속에서 민족주의의 생존을 위한 경쟁과 국가 경쟁력강화를 위한 많은 노력들이 행하면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세계화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금융시장은 점차 국민국가를 축으로 한 정치/사회제도의 통제를 벗어나 범세계적으로 통합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21세기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가 세계시장이라는 단일 네트워크를 형성하였고 그 안에 더 이상 과거의 영토, 민족, 등을 중심으로 하는 주권국가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세계시장이라는 것에 조건지어진 물적 강제로서 단일네트워크조건은 각국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다양성에 상관없이 모든 개별국가는 같은 방향으로 흐르도록 강요하는 강제성을 갖기에 일국 중심의 정치는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오로지 이 조건에 적응하는 범세계적인 상호협력적인 정책을 추진할 때만 희망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우리 나라도 예외 없이 해방과 분단이라는 힘들었던 과거를 지나 ‘한강의 기적 한다.Ⅱ. 본론다양하고 복잡한 세계화의 경향에 대한 다양한 이론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공통점은 국가의 쇠퇴와 새로운 지구적 질서의 도래 즉 국가중심의 국제질서의 변화 전망이다.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패권전략(경제력, 군사력)은 세계화 추동의 중요한 요인이며 문명간의 충돌과 세계적 수준에서 불평등의 심화하게 될 것이다.세계화의 충격과 혼란 속에서 국가는 초국가들의 활동인 원심력과 지방과 시민사회의 구심력 사이에서 복잡한 상호관계를 연출하며 쇠퇴할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패권국가와 군사력의 역할은 존속할 것이지만 군사력의 사용은 제국의 영토확장이라는 국가이익보다는 복합적인 이익에 의해서 정의된 국제이익에 의해서 행사될 것이다.민족주의는 개인과 국가를 통합하는 유일한 정치적 유대 근거는 아니고, 제한의 탈규제는 불가능하다.세계화는 국가에게 탈규제화의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새로운 차원에서의 재 규제 reregulation 즉 통치구조의 형성을 촉구함 유럽연합은 시장에 대한 규제, 제도화를 강화함 국내적으로 국가, 지방정부, 시민사회를 연계하는 나라마다 독특한 제도가 자리잡았다.(crouch & streeck 1997, sweet & sandholtz 1998)통치구조의 중심축도 국민국가에서 초국가조직 및 시민사회로 옮겨갈 수 있다. 국가는 수요측면에서 공급측면으로 개입범위를 확산하고 있으나 여전히 시장통제의 기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시민사회는 아직 국가에 대체하여 주권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국가중심의 국제화세계가 국가, 지방정부, 시민사회, 초국가 네트워크가 중심이 되어 자율적 관계를 조성하는 복합적 세계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국민국가는 형성되는 그 과정부터 세계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사회계약설이 대 되고 그로 인해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전 유럽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게 됨으로써 ‘국민’의 개념이 발생하게 된다. 이 시기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 사회에 한정되어있는 것이었지만 현재 사회에서의래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민과 국민국가의 개념이 우리 나라를 포함한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다. 현재의 세계화의 바람은 또한 국민국가의 개념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현재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강대국의 지배논리가 세계화의 바람을 이끌어나가고 있는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바람은 경제분야에서부터 국경을 허물어 나가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와 같이 국제통화기금에 의해 신탁통치를 받고 있는 상황을 보면 국민경제가 무너져 세계시장의 조류에 편입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아직은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국가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진 못하고 있다. 서울 대학교 김수행(경제학)교수의 말을 빌자면 국민국가의 경제정책이 큰 제약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통제 하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금융시장의 국제화도 자본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각 국가들이 규제를 철폐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IMF, WTO, EU등 이제까지의 국제기구들도 모든 국가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킬 수 없어, 국가를 대신하기에는 힘이 모자란다고 보았다. 게다가 자본의 세계화과정에서도 실업문제, 사회보장제도 등 자본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결국 국민국가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혈연과 문화적 계속성에 바탕을 둔 민족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족국가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지금도 여전히 국제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고 있으며 전쟁과 평화, 갈등과 타협 등 모든 국제질서의 행위 또는 기본적인 국가 간의 행위에 아직까지도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민족 국가간의 협조와 협력을 통해서만이 세계평화가 이룩될 수 있는 것처럼, 민족 국가의 기능이 국제사회의 안정과 번영에 조화되어 작용할 때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할 것이다.민주주의는 영국의 의회 정치에서 시작되어 뻗어 나갔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함과 동시에 민주정치가 시작되었고 근대화가 빨랐던 일본은 영국의 정치제도를 모방하였다. 그 자본의 힘 앞에 맥없이 무너져 지금도 국제 통화기금에 의한 신탁통치를 받고 있는 우리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방안이 결국 세계화뿐이라는 것에는 의구심이 간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화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있다.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국민국가의 영토의 개념을 약화시키고 주권의 자율성을 제약하여 민주주의의 원리가 국가적 차원에서 작동될 수 있는 기반을 붕괴시킨다.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은 다음 내용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중산층을 분해시키고 갈등을 증폭시켜 사회의 안정성을 위협한다. 그리고 국가의 정책자율성의 상실로 사회보장기능과 경제관리기능을 유명 무실하게 만든다. 그래서 국민과 국가의 장래가 세계시장의 움직임에 내맡겨져 사회적 안정성을 크게 위협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게다가국민 국가의 협상영역에 뷸과하던 글로벌 정치가 오늘날 국민국가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세계정치를 규제하는 글로벌 민주주의에서 글로벌 경제가 주된 쟁점으로 떠오름에 따라 국민국가가 사회복지의 영역보다는 국가자본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세계화의 효용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지금까지 전개된 서구 사회의 세계화 과정은 자국의 이해가 허락하는 차원에만 국한되었음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자본의 이동은 가능했지만 민족 간의 노동력 이동, 즉 제3세계 시민의 서구사회로의 유입은 전혀 변화 없이 기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화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기대와는 달리 인류 공영을 위한 적극적 교류가 아니라 몇몇 강대국이 자국의 이해를 위해 앞세운 지배논리의 일환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도 평등의 이념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두 가지 계층을 만들어 내었다.이때 루소의 사상과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에 반발하고 나선 맑스의 사상이 유행하면서 복지에 대한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 2차 세계 대전 때 사회 복지가 본경에 얽매여 있는 개인에게 있어서 세계화의 의미는 개인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보다 더 열심히 일해 높은 생산성을 달성해야 하는 주체가 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 과정에서 열등한 개인은 자연 도태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개인의 입장에 서서 세계화를 바라봐야 한다. 이때 개인은 국가와 세계를 경영하는 지도자들이 아니라 일반 민중을 의미한다. 사회의 8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수적으로 전체의 20%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이 좋은 일자리를 갖고 안정된 생활 속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으며, 나머지 80%는 실업상태나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서 싸구려 음식과 열악한 생활환경, 그리고 매스컴이 뿜어대는 상업적 대중 문화 속에서 길들여지며 살아가게 된다. 20%대 80%의 문제는 어디서든지 볼 수 있다. 남북문제일수도 있고, 지배계급과 노동자의 문제일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현재 상황을 보면 국제통화기금의 신탁통치에 대처하고 국가자본의 경쟁력강화를 목표로 삼아 노동시장의 규제철폐, 즉 소득의 물가연동제의 폐지, 파트타임 고용제, 조기 퇴직제, 자발적 임금삭감의 도입은 국가 복지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 결과 복지제도, 고용안정 등에 기반을 두었던 사회질서의 안정성이 미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붕괴되고 있으며, 러?동구 지역에서는 민주주의적 안정성이 채 자리잡기도 전에 유입된 시장화의 물결로 기존사회의 질서와 가치관이 해체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격렬한 경쟁은 기존 가치관과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여 국민들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붕괴시킨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살았던 개인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노력한다. 또한, 경쟁에서 살아난 개인들은 그 경쟁의 주체가 아니라 거대 기업의 경영 원자재의 일부분으로 취급받게 된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기업이 이윤증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관계를 해체하게 된다. 세계화가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21세기에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개인과 사회의 관계한다.
    인문/어학| 2004.06.23| 5페이지| 1,500원| 조회(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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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정치] 테러와의 전쟁과 국제 질서 평가A좋아요
    목 차제1장 문제의 제기제2장 이라크 전쟁의 목표1. WMD의 수평적 확산 방지2. 중동질서 개편3. 경제적 실리주의제3장 이라크 전쟁의 정치 및 경제적 측면 분석제1절 정치적 측면1.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2. 반전여론의 심화3. 전쟁명분의 모호제2절 경제적 측면1. 세계불황과 이권경쟁2. 미국 경제 문제 돌파구의 하나3. 석유를 둘러싼 강대국간 이해관계4. 전 세계 공급과잉 위기 해결5. 국내 경제 여파제4장 향후 국제질서 전망1. 전후 이라크 관리의 갈등 예상2. 전후 중동질서의 변화3. 강대국관계 재편 및 국제질서변화4. 국제 안보환경 변화5. 대(對) 한반도 파장제5장 향후 전략적 제언1. 전후 복구비용 지원 문제2. 명분과 국익의 조화 도모3. 동북아 군비경쟁 유발 경계4. 한미공조 강화를 통한 북한 핵 접근제6장 마치며제 1장테러와의 전쟁이 국제정치질서에 미치는 결과는 무엇인가?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경제, 군사, 외교, 이데올로기, 테크놀러지,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지배적인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칫 미국은 자신의 힘만 믿고 일방주의, 독단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도 이런 미국의 패권적인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미국이 숱한 장애요인들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에 열을 올렸던 것은 어떻게 보면, ?테러의 근절?이나 ?악의 축 제거?라는 자국의 안보 보장을 넘어 석유를 둘러싼 자국의 이익 확보 내지 새로운 세계 경영 전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해석이 현실적이다. 그리고 3월 20일 미국의 대 이라크 군사공격이 시작되면서 이번 전쟁이 향후 경제에 끼칠 영향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게 되었다. 과거 대규모 전쟁이 국제 정치나 경제 등 여러 방면에 미치는 영향은 전쟁의 규모나 기간 뿐 아니라 전쟁 직전 경기상황, 경제구조, 정책대응의 수단 등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정형화된 특징(stylized facts of War)을 찾아내기는 매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라크가 휘어잡으면, 미국은 이들 이익과 관련된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강력한 교두보와 근거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미 미국 보수 강경파 사이에서 ‘다음 정권 교체 목표는 이란과 시리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란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이번에 당한 이라크와 함께 일찌감치 ‘악의 축’으로 찍힌 나라다. 시리아도 리비아 등과 함께 테러범을 끼도 도는 ‘불량국가’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부시정부는 이미 전후에 들어설 이라크 정권을, 기존 우방인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와 한데 묶어 중동 지역의 ‘친미3대축’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3. 경제적 실리주의이라크 내의 석유개발권을 도모하기 위해서,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결탁으로 말미암아, 혹은 미국 내 유태인 세력의 중동세력 약화 기도에 의해 일어났다고 보는 시각들도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으로 말미암아, ‘원유 매장량 세계제2위’ 나라를 직접 쥐고 흔들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미국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이라크 복구 사업을 독식할 계획이어서, 여기에서 벌어들인 돈은 침체한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높아지고 있다.제 3장 이라크 전쟁의 정치 및 경제적 측면 분석제1절 정치적 측면1.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전쟁 개시 시점에 미국측에 이라크전 지원의사를 밝힌 국가는 45개국임. 이들 중 30개국은 공개적으로 지원의사를 밝혔고 15개국은 막후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는 전세계 인구의 1/6에 불과한 규모이며,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것에 비하면 왜소한 규모이다. 또한, 1991년 걸프전 당시 총 33개국이 지원 참전해 미군을 제외한 이들 병력이 전체병력(78만명)의 24%를 차지한데 반해, 이라크전쟁은 미군 28만명에 영국군 4만5천명 등 총규모가 약 33만명에 불과하다. 지원세력의 내용을 보면, 직접 전투병력을 지원한 나라는 영국, 호주, 체코 정도이고, 걸프전에 적극적으로 참전했던 프랑스, 시리아 등은 오히려 미국에 반대 혹은릴 것으로 보이게 한다.3. 전쟁명분의 모호이번 이라크전쟁은 그 승인여부를 놓고 UN안보리에서 유례가 드문 심각한 분열과 대립을 겪었다. 미국의 안보리 결의안 표결 포기로 인해 UN안보리의 권위에는 심대한 타격이 가해졌지만, 반대로 보면 표결을 강행하여 프랑스나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시 강대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피한 효과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이라크전 결정의 국제법상 위법 여부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미?영 측은 UN안보리 결의 제1441호가 포함한 이라크의 의무 위반시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는 문구로써 충분하다는 입장이나, 엄밀히 따지면 의무위반 여부는 UN안보리가 판단하는 것이며, 중대한 위반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1441호 결의가 자동적 무력사용의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다고 보기에는 다소 미흡한 측면이 있다. 안보리 결의의 무력행사 허용 여부는 1441호의 경우에 비추어 묵시적으로 추정하기보다는 명시적으로 특정돼야 한다는 관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이라크전을 현행 국제법적 관점에서 평가하면 위법여부에 대한 논란의 소지가 있으나, 국제법 적용의 역동성을 감안할 때 미?영의 묵시적 합의에 관한 논거가 향후 국제관습법 형성 과정에서 새로운 선례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제2절 경제적 측면1. 세계불황과 이권경쟁미-이라크戰이 조기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초 기대와는 달리 국내외 경제가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에 경제상황은 계속 나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은 최근 미국경기가 부진한 것은 이라크전쟁 때문만은 아니며 다른 경제적 요인들도 가세해 미국의 경기가 활력을 잃고 있다고 분석하기 때문이다(The New York Times, 2003.4.6). 통신, 정보기술, 금융서비스, 항공산업 등이 그간의 과잉투자로 인해 앞으로도 계속 감원을 해야 할 상황으로 기업들이 신규투자에 대한 동기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방기금금리를 41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연 1.25%로 낮경제 전반이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호황의 끈을 쥐기 시작했다.세계최대 방위산업체인 록히드 마틴의 지난해매출은 266억 달러로 전년 대비 11% 증가를 기록했으며 손익도 10억 달러 적자에서 5억 달러 흑자로 반전했다. 이라크 전쟁에 대비하려는 국방부의 주문이 급증해 지난해4.4분기에만 78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덕분이다. 스팅어와 토마호크 미사일 등을 제조하는 레이시언은 미사일과 첨단무기용 센서 판매가 13% 증가한 데 힘입어 순이익이 2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보잉의 순이익도 전년도의 거의 6배에 달했다. 사실 지난해 4.4분기 미국의 성장은 방위산업이 홀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의 3분의 2는 방위산업 지출에 의한 것으로 분석됐으며 지난해 12월 제조업주문이 예상 밖으로 0.4% 증가세를 보인 것도 방위산업 주문이 늘어난 데 기인했다.방위산업의 이러한 호황에 필적할 만한 업종은 석유산업이 유일하다. 엑슨모빌의 지난해 4.4분기 순이익은 40억9천만 달러로 전년도에 비해 53%나 증가했다. 이 회사가 수익을 낸 것은 6분기만에 처음이었다. 이는 이라크 전쟁 위기감으로 유가가 급등한 데 힘입은 것으로 풀이됐다. 아파치와 페트로 캐나다 등도 같은 이유로 4.4분기 수익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메이저 석유 업체들의 관심은 당장의 손익이 아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친미 정권이 들어설 경우 서방권, 특히 미국의 업체들에 배분될 가능성이 큰 매장량 1천220억 배럴의 이라크 석유에 대한 이권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규모다. 공교롭게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등 미국의 핵심 지도자들이 취임 이전부터 석유업계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 이라크 전쟁이 석유산업의 이권 확보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3. 석유를 둘러싼 강대국간 이해관계미국은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움으로써 에너지의 안정적인 수급과 석유패권을 확보하려 한다고 일부에서는 지적한다.순환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의 공급과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함이 이라크전쟁의 배경이 될 수 있다.5. 국내경제 여파단기적 측면은 이라크전 개전 이후 도매물가인 생산자 물가의 전월대비 상승률이 5년 1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부정적 여파가 발생하였다. 3월중 생산자물가가 전월대비 1.2% 급등, 2002년 8월부터 8개월 연속 오르며, 월간 상승률로는 1998년 2월(2.5%) 이후 최고치를 기록함(한국은행 4.6. 발표). 이라크전 영향으로 유가가 크게 오른데다 과일?야채류 가격이 폭등한 것이 주 요인이다. 또한, 석유제품(2.2%), 화학제품(3.6%), 비금속광물(2.2%)의 오름세가 공산품 물가의 상승을 주도해 전월대비 1.1%, 작년 동월대비 6.4%가 상승하였다. 유가상승의 영향으로 전력, 수도, 도시가스 요금도 전월대비 1.1%, 작년 동월대비 3.6% 상승했으며, 시내버스와 지하철 등 공공요금의 지속적인 인상과 함께 서비스 물가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 추세이다.중장기적 측면은 전쟁의 조기종결 덕택으로 국내유가가 안정세로 돌아서고 에너지 수급에 있어서도 위기요인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원화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수출과, 투자, 소비 등이 두루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총체적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사스, 북핵 문제 등 일부 불안 요인이 향후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제 4장 향후 국제질서 전망1. 전후 이라크 관리의 갈등 예상미국은 이번 이라크 전후(戰後) 처리를 과거 동티모르, 코소보, 아프가니스탄의 그것과는 다른 경우로 인식고 있으며(4.4. Rice 국가안보보좌관 기자회견), 참전 연합국의 주도적인 역할 원칙을 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전쟁을 반대했던 프랑스?독일?러시아 등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전후 처리 작업의 명분 도모를 위해 적절한 수준의 UN 역할을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라크에 군정체제를 수립하여, 일정기간 통치하며 전후 질서를 수습한 뒤 과도정부
    사회과학| 2004.05.14| 11페이지| 1,500원| 조회(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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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역사학, 사학] 고구려 고분벽화 속의 고구려인의 삶과 음악
    고구려를 어떻게 볼 것인가?들어 가기에 앞서....▶시대적 상황요즘 중국과의 역사관계가 중요한 사회적 역사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고구려사를 중국의 종속 역사로 관망할 것인가? 아님 우리의 위대한 역사로 계승 할 것인가? 라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문제임에 틀림 없다.하지만, 현실적으로 볼때,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하지는 않다. 현재 공존하고 있는 또다른 역사적 문제인 ‘독도’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과 첨예한 대립적 양사을 유지하고 있다. 비단 독도 우표 문제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독도가 자국의 영토임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분석적으로 하고 있다. 수많은 자료수집을 통해서 객관성을 증명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당연히 독도는 우리땅이 맞다고 주장하며 일본의 활발한 독도 문제연구와 자료 분석에 대조적으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물론 ‘독도’ 의 문제에서 보면 ‘독도’는 당연히 우리 땅이라고 생각하기에 당연한 행동의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나중 세계사적 관점으로 보면 우리의 생각대로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비단, 독도 문제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지금 고구려사 또한 중국과 첨예한 대립적 갈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 고구려사에 대한 민족적 계승의 가장 큰 문제는 충분한 객관적인 자료의 부족과 안일한 국가적 대응 전략인 것이다. 이러한 민족적 자긍심의 가장 중요한 이슈인 고구려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마침 고구려 이야기를 고군벽화로 제시된 책을 읽게 되니 많은 관심과 걱정, 그리고 희망을 안고 접하게 된다.지금까지 수많은 전시회나 박람회 또는 역사적 자료물들이 무수히 제시되고 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고구려에 대한 벽화를 제시한 적은 거의 없었다. 예전 ‘아! 고구려’ 의 전시회가 있었지만, 완벽한 도판이나 컬러 화보의 고구려 벽화를 접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의 고구려를 고군 벽화를 통해서 우리의 시각을 좀더 통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또 하나의 새로운 중국과의 고구. 그러나 6세기 중반 이래로 신라 및 백제, 그리고 중궁을 통일한 수, 그 뒤를 이은 당과 잇달아 부딪치면서 고구려의 영역과 세력은 축소되기 시작한다. 결국 668년 수도 평양이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고구려는 멸망한다. 옛 고구려 땅의 대부분은 30년 뒤 고구려 계승을 선언하며 건국한 渤海의 영역으로 편입된다.2. 전쟁과 교섭1)전쟁고구려인은 활쏘기에 능하여 시조의 이름이 ‘활 잘 소는 사람’이다. 고구려는 ‘貊弓’ 이라는 활채가 심하게 굽은 짧고 강한 활로 유명했다. 짧은 활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사용하는 데에 적합한데, 고구려인은 보통 사람 키의 절반쯤 되는 짧은 활을 즐겨 썼다. 창과 칼, 도끼는 근거리 전투에 쓰이는 기본 무기이다. 창은 끝이 뾰족한 것과 넙적한 것이 기본형이며, 이외에 적의 기병을 걸어 당기는 데 쓰는 갈구리 형이 있다. 갑옷, 투구, 방패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우해 사용하는 방어 장구이다. 고구려의 갑옷에는 쇠로 만든 비늘모양의 패쪽을 이어서 만든 刹甲이 있었다. 투구는 대부분 찰갑 쪽을 꿰붙여서 만든 찰제 투구를 사용하였는데 신분이 높을수록 투구 꼭대기에 어려 가지 장식을 만들어 사용했다.고대의 전투란 대개 두 진영 장수의 대결로 시작된다. 두 나라의 군대가 들판에 마주치자 두 진영으느 먼저 자기 군대의 장수를 앞으로 내어 보낸다. 두장수의 일대일 대결로 전투의 승패를 사실상 결정 짓는다.2)교섭고구려의 첫 수도는 환인이나 다음 수도 집안은 모두 만주, 한반도 일대의 주요 교통로 상에 위치하엿다.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주변의 다양한 사회 및 세력들과 접촉하였다.3. 남긴 것들산성- 고구려가 남긴 자취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산성이다. 고구려가 산성 중심의 방어체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이다.무덤- 무덤 또한 고구려인을 마난ㄹ 수 있는 주요한 흔적이다. 고구려의 무덤은 크게 돌무지무덤과 흙무지돌방무덤 으로 나뉜다. 돌무지무덤은 고구려의 전형적인 무덤형태인 데에 반해, 흙무지돌방무덤은 외부로부벽화에는 수신, 신농, 단야신, 제륜신, 마석신등 여러 문명신들이 모습을 들어낸다.북아시아의 여러 민족에게 새와 개, 말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신성한 동물이다. 하늘을 나는 새는 신과 사람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전령이며, 개와 말은 죽은 자의 영혼을 조상신의 세계로 인도한는 사자이다.고구려 사회에는 성스러운 나무에 대한 신앙이 있었다. 건국 설화에는 시조 주몽이 커다란 나무아래에서 어머니 유화가 보낸 비둘기를 만난다는 내용이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신과 사람을 잇는 통로, 하늘사다리로서의 성스러운 나무에 대한 신앙을 읽을 수 있다. 고분벽화에는 눈이 크고 코가 우뚝한 얼굴을 지닌 사람들, 이른바 심목고비의 力士들이 등장한다. 그 문화적 기원과 관련하여 눈에 띄는 존재들이다. 중국에서도 前漢이래 장의미술 중에 ‘세계를 떠받치는 역사’가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인종적인 특지응로 볼 때, 정천1호분과 삼실총 등에 보이는 고분벽화의 역사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고구려에 전해진 서역계 문화의 한 요소로 보아야 할 것이다.2. 하늘세계의 가족들1)해와 달, 별자리고구려에서는 시조 주몽을 ‘해와 달의 아들이며, 河伯의 外孫’ 으로 믿었다. 이렇듯 고구려인에게 해와 달은 민족정체성과 관련하여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天體이다. 때문에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거의 빠짐없이 해와 달이 그려진다.고구려인은 별자리에 대해서도 각별한 신앙을 지녔다. 벽화고분 무덤칸 천장고임에는 해와 달과 함께 여러 가지 별자리들이 보인다. 무덤칸 천장고임에 가장 즐겨 그려진 별자리는 남두육성과 北斗七星 이다. 南斗六星과 北斗七星은 남쪽과 북쪽을 가리키는 별자리이다.2)신선과 싱서동물들고구려인의 신선 신앙은 고분벽하를 통해 그 내용과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고분벽화에서 신선은 보통 하늘세계의 별들과 함께 무덤칸의 천장고임에 그려진다. 기린은 중국의 옛 문헌에서 ‘모양은 사슴 같고, 이마는 이리, 꼬리는 소, 굽은 말과 같으며, 머리위에 뿔이 한 개 있는’ 동물로 묘사된다. 기린은 우주질서의 운행이사람이 생긴 시기는 이보다 훨씬 전이다. 고구려가 불교를 공인한 것은 고구려 자신의 필요성에 의해서이다. 소수림왕은 즉위 초기부터 사회체제 전반을 재정비하고자 허였는데, 불교는 사회 전반의 정신적 통합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국가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게 되자 한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내세관에까지 불교의 영향력이 미치게 된다. 불교에서는 지금의 삶 이전의 삶과 현재의 삶을 통해 맺은 인연, 이로 말미암아 쌓은 業에 따라 내세이 삶이 결정된다고 한다.불교에서는 수미산위에 48개의 하늘세계가 있다고 한다. 이 하늘세계이 신들은 과거에 쌓은 선업이 결과 현세에 하늘세계에 태어나 모든 즐거움을 누리 수 있으나, 죽음만은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일반적으로 하늘의 꽃잎을 뿌리며 여래나 보살의 덕을 기리며 공양하는 천인을 飛天이라 일컫는다.2)새삶의 꿈, 정토왕생의 소망고대 인도에서 연꽃은 생명과 빛의 상징이다. 불교에서도 연꽃에 대한 관념은 이와 동일하다. 化生이란 석가불이 말한 네 가지 탄생법 가운데 내세에서이 초 현실적 탄생 방법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연꽃과 화생을 결합시켜 연꽃화생이라는 새로운 관념을 성립 시켰다.보주는 지닌 이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여의보주를 가리킨다. 워래 용왕의 뇌 속에서 나온 것으로이 구슬을 가지고 있으면 독이 해칠 수 없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고 한다. 불교에서 보주는 중생을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功德과 신통력을 가진 상징이다. 연꽃은 불교 성립 이전부터 이집트, 인도, 중국, 등지에서 건축, 기물, 의복 등에 장식되었다. 고구려에서 연꽃은 4세기 중엽부터 고분벽화에 표현된다. 5세기에 이르면 매우 다양한 형태와 비중으로 무덤 칸 내부에 연꽃이 묘사된다. 연꽃 표기방식에 나타나는 집안, 평양 지역의 차이는 5세기말의 쌍영총 벽화에서는 어느 정도 해소디는 모습을 보인다.고구려에서 장식무늭계 고분벽화는 5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에 다수 출현한다. 특히 연꽃무니를 주제로 는 무덤칸 천장고임의 여러 제재 중 하나로 나타난다. 고구려의 사신계 고분벽화에 표현된 사신은 사실상 각각 한 벽면의 유일한 제재이며 우주의 한 방향의 방위신이자 무덤 주인을 위한 수호신이다.청룡은 황도상의 동방 7별자리를 대표하는 영물이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초기의 청룡은 9가지 동물이 억지로 합성된 어색한 모습이다. 그러나 6세기에 이르러 널방 벽화이 사실상 유일한 제재로 선택되면서 사신은 상상적 동물 특유의 신비적 사실성을 갖추게 된다.백호는 자연계에 실재하는 호랑이를 영물시하면서 등장한 신수이다. 황도상의 서방 7별자리를 대표한다. 고분벽화에서 백호는 초기에는 머리와세부는 호랑이와 같으나 몸체는 청룡처럼 목과 몸통 꼬리가 가늘고 긴 파충류와 같이 그려진다. 주작은 황도상의 남방 7별자리를 상징한다. 고분벽화에서 주작은 거의 예외 없이 암수 한쌍이 함께 그려진다. 현무는 황도상의 북방 7별자리를 상징하며 뱀이 거북을 감은 형상으로 그려진다.▶삶1. 사람들중기 이후의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실물 크기이 문지기가 주로 그려진다. 관리나 시녀 모습으로 표현되는 문지기의 예를 찾기 힘들며, 대부분 무사나 역사 천왕이나 괴수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문지기를 무덤 속 언식처의 안내자라기보다는 수호자로 여기는 의식이 강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고구려 귀족부부의 모습은 생활픙속계로 분류되는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다. 초기와 중기의 생활풍속계 고분벽화에서 무덤 주인이나 주인부부는 주로 초상형태로 그려진다. 하지만, 일상생활 중 손님을 맞거나 춤과 노래를 관람하고, 나들이를 즐기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2. 건물고구려의 다양한 건물양식과 구조는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다. 특히 귀족 저택의 전경은 안악1호분 벽화에서 잘 드러난다. 고분벽화 중의 전각도를 보면, 귀족의 저택은 사랑채와 안책로 나뉘며, 앞 편에는 커다란 2층집 형태의 사랑채를 두고, 뒤편에는 제일 뒤의 안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살림살이와 관련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온돌은 우리 고유의 난방
    인문/어학| 2004.04.23| 7페이지| 1,000원| 조회(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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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산관리,국제 물류] ERP의 기업에서의 활용과 전략적 가치
    ERP의 기업에서의 활용과 전략적 가치ERP가 기업에 도입되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1) 자료의 정확성, 2) 합리적인 반응시간(response time), 3) 사용의 편이성, 4) 유연성 등 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자료의 정확성이란 ERP가 다루는 자료는 가능한 오류가 없어야 하며, 실시간 등록과 갱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반응시간은 ERP시스템으로부터 정보를 얻고자 할 때에 사용자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때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사용의 편이성이란 현장 작업자부터 최고경영자에 이르는 ERP 사용자 가 친숙하고 쉽게 또 오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사용자환경을 의미한다. 유연성이란 변화하는 기업환경 및 제조환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변경가능 한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 자료의 정확성 부분은 ERP를 도입 및 운영하고자하는 기업의 책임이며, ERP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생산관리 기법을 기업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아보자.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인터넷 서점에 대해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아마존을 거론할 정도로 아마존은 독보적 위치를 확보했다. 아마존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자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아마존의 폭발적인 매출액 성장이 인터넷 기업의 성공 가능성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아마존의 폭발적인 매출액 성장에는 ‘가치 있는 서비스를 통한 고객 확보’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고 있는 아마존의 경영 전략이 큰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생산 관리 시스템(Operation Management System)의 초점이 ‘가격’에서 ‘가치’로 옮겨갔다는 것을 고려할 때, Amazon.com은 효과적인 생산 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파악할 수 있다.많은 기업들이 아마존을 대표적인 전자상거래의 성공 사례로 평가하면서 이를 벤치 마킹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1. 이론적으로 분석한 아마존의 성공 요인인터넷 쇼핑 수 있는 기능까지 제공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보다 깊고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며, 다른 사람들과의 정서적인 교류로 인해 더 큰 만족감을 얻게 된다.따라서 아마존은 고객이 원하는 것, 책에 대한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 자신이 원하는 책을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는 것, 자신이 흥미 있고 필요로 하는 정보의 제공 등을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에 최대한 접근하는 방법으로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이룩하고 있다.2) Flexibility고객이 추구하는 가치가 변화함에 얼마나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가가 그 기업의 유연성을 결정한다. 이 점에 있어서 아마존은 다른 기업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일대일 고객 만족을 위한 서비스는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를 최대한 만족시키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가 어떻게 달라졌나를 빠르게 감지해 낼 수 있다. 따라서 고객이 원하는 책, 정보 등을 그 가치가 변함에 따라 거의 같은 타이밍으로 제공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아마존이 매우 높은 유연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또한 아마존은 직접 책을 가져다가 비치해 놓고 고객들이 사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므로 고객의 수요에 따라 책을 사 놓고 재고로 비치해 놓은 필요가 없다. 따라서 고객의 수요를 미리 예측할 필요성이 낮으며 고객이 원하는 책을 출판사와 서점과 연계해 언제든지 공급할 수 있다. 이는 책의 수요와 공급에 있어서 융통성 있는 운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역시 매우 높은 유연성을 가진다.그리고 주문 후 90분 이내라면 온라인으로 주문 수량 조절, 주문 취소 등 변경 사항을 고객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으며, 포장지를 뜯지 않은 상태에서 30일 이내에 교환 및 환불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3) SpeedLead time을 줄이는 것이 속도를 좌우하는 주요 요인으로 아마존은 주문에서의 Lead time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바로 ‘원-클릭(One-이 차지하는 비율은 엄청나기 때문에 이런 비용의 절감으로 책값을 낮게 책정할 수 있다. 또한 고객들이 얼마나 책을 살지 제대로 예측할 수 없어 필요 이상으로 책을 사서 재고로 남겨둘 필요가 없어 재고 창고 비용이 덜어질 수 있다. 또한 재고를 반품하는 비율도 오프라인 서점에 비해 매우 낮아 이에 따른 비용 또한 절약할 수 있다. 이 모든 이점은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가 가격 인하를 가능하게 하고 이는 고객이 원하는 가격(즉 싼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원인이 된다.2. 아마존이 모색하고 있는 새로운 전략들1) 소프트웨어 다운로드 서비스 도입소프트웨어 다운로드 스토어(Software Download Store)라고 불리는 이 Amazon.com 의 새로운 판매 서비스는 다음과 같이 간단한 절차를 거치게 된다. 즉, 고객이 아마존의 사이트에서 소프트웨어 구입 절차를 마치게 되면, 사용자는 바로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URL을 E-mail로 제공받게 되는 것이다.현재 개설된 소프트웨어 다운로드 스토어에는 시맨텍(Symantec)의 노턴 안티-바이러스 (Norton Anti Virus)부터 매크로미디어의 드림위버(Dreamweaver)와 플래시(Flash)를 비롯한 각종 세금 정리, 멀티미디어, 바이러스 방지 관련 타이틀들이 구비돼 있다.2) 온라인에서 주문한 상품을 오프라인 상점에서 찾아가는 서비스Amazon.com은 2001년 말, On-line에서 주문한 상품을 가전 제품 체인점 서킷 시티 (Circuit City) 매장에서 찾아갈 수 있는 서비스를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아마존은 이 서비스를 위해 작년 8월 서킷 시티와 제휴를 맺었다. 아마존은 자사 사이트의 가전 제품 코너를 통해 판매된 서킷 시티 가전 제품 판매 수익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게 되고. 아마존은 거래 과정에 책임을 지게 된다. 서킷 시티는 제품 주문 과정과 제품 관련 고객 서비스 부문을 담당하게 된다. 참고로 이 서비스는 현재 우리 나라의모닝365라는 대표적인 인터넷 서점에서도 도사로 현재 국내 3개 지역에 위치한 공장에서 제지, 종이기저귀, 화장지, 여성생리대 등을 생산하는 1500여명의 종업원과 매출이익 2960억 원, 영업이익 484억 원, 순이익 125억 원(1997년 기준)에 이르는 기업이다.또한 나무를 원료로한 펄프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지닐 수 있는 자연 파괴적인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1984년부터 환경친화적 경영활동인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시작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히고 실천하는 기업이다.유한 킴벌리의 기업 문화는 자율경영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사원이 가진 창의력과 잠재력을 조직내에서 충분히 발휘하자는 차원에서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발, 운영하고 있다.유한킴벌리는 사원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경력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중시하는 기업으로 재무, 마케팅, 영업, 기술 등 각 기능별 육성팀을 구성하고, 경력개발 경로 설계 및 모니터, 교육훈련 프로그램 개발을 지원 하고 있다.사원은 자신의 업무 경험, 능력, 목표 등을 고려해 경력개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상사와 협의하여 실행함으로써 자신을 체계적으로 개발해 나갈 수 있다.롯데 마그넷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통 전문 그룹인 롯데에서 1998년 4월 1일 설립된 할인점으로 전국 23개의 판매매장을 소유한 유통기업이다. 특히 보유하고 있는 판매매장에 첨단 시설을 이용하고, 매장의 위치가 교통이 편리한 입지를 지니고 있으며, 고품질의 상품을 최저 가격에 판매하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고객을 상대하고 있는 기업이다.2. 유한킴벌리와 롯데 마그넷의 SCM 추진과정최초 유한킴벌리는 SCM의 구축에 대해 KCC와 협의하고 있었다. KCC는 SCM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CPFR 프로젝트를 추진한 경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유한킴벌리에서는 효과적인 SCM 구축에 대한 내용을 교육받을 수 있었고, 이들은 다시 유한킴벌리의 SCM 프로젝트팀을 구축하여 SCM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유한킴벌리가 SCM전략을 운영하기 위하여 사전준비를 하고 있던 중, 판매시점(POS)시스템 정보에 의지하면서 제조업체가 스스로 재고 수준을 맞춰나가는 재고 감소 전략으로 SCM을 추진하기 시작했다.성공적인 1차 시범사업(강변점Pilot)의 성과와 교훈을 기반으로 현재는 기존 파트너업체의 CR사업의 전점포 확산추진 단계에 있다. 기존 업체이외 새로운 제조 파트너와 사업공유도 추진중이다.롯데 마그넷은 시범사업 초기 단계에서는 CMI(Co-Managed Inventory:공동재고관리)기법을 통해 시스템 충돌을 완화해 현재는 VMI(Vendor Managed Inventory:공급자주도재고보충관리)기법을 적용하고 있다.유한킴벌리의 SCM프로젝트의 긍극적인 목표는 롯데 마그넷(Magnet)과의 프로세스 통합과 정보교류를 통한 파트너쉽 증대에 있다. 예상되는 프로젝트의 효과는 롯데 마그넷과의 사업관계 강화, 소비자 만족도 증대, 재고감소를 통한 운영비용 감소, 효과적인 수요 예측 및 생산 계획, 재고 가용률 증진을 통한 판매 증대에 있다.4. 유한 킴벌리와 롯데 롯데 마그넷의 SCM 추진시 문제점롯데 마그넷과 유한킴벌리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SCM 시스템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기업문화를 지니게 되는 제조업과 유통업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두 기업이 서로의 정보와 시스템을 교환하는 문제 외에도 참여하는 부서조차 서로의 의견을 교환해 보기 힘든 여러 부서의 조합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롯데 마그넷에서는 물류팀, 매입팀, 영업팀, 전산팀등 5개 부서가 유한킴벌리에서는 물류기획팀(SCM 프로세스), 카테고리 관리팀, 영업팀(구매, 매입과의 협의조정), MIS, 고객지원팀(주문처리)이 SCM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프로젝트의 관리를 맡은 관리자는 물류 및 영업과 관련된 업무를 때론 지원하기도 하고 IT에 있어서는 이들을 리드하기도 해야하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또한 SCM 시범사업 초기에 까르푸와 이마트가 SCM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던 서로 사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공유는 기업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경영/경제| 2003.12.27| 11페이지| 1,000원| 조회(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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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에 대하여
    당시 상황오늘날 영국인들의 자부심과는 반대로 당시 영국은 유럽의 후진 지역이었다. 봉건 왕조의 중앙집권력이 강했던 대륙의 나라들과는 달리 영국은 왕권이 구심점의 역할을 할 만큼 강력하지 못했다. 지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유럽 문명의 ‘변방’ 이었던 만큼 영국은 중세 내내 대륙의 정치종교적 질서 재편에 따라 몸살을 앓는 전형적인 후진국이었다. 게다가 하나의 섬에서 조차 정치적 통일을 이루지 못해 늘 바다 건너 남으로는 대륙의 중심 프랑스, 북으로는 프랑스와 결탁한 스코트랜드의 침탈을 당하는 처지였다. 섬이라는 지형적 조건이 주는 장점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대륙 강대국들의 직접적인 타깃이 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정도였다. 이 장점 덕분에(?) 영국은 어느 정도 국력을 키워 프랑스에 도전하지만(백년 전쟁)결국은 왕실의 프랑스 혈통 덕분에 소유하고 있었던 프랑스 내의 영토를 모두 잃고 만다. 절체절명의 위기, 그러나 아직 엘리자베스의 출현을 재촉하는 영국의 국난은 끝나지 않았다. 백년 전재의 실패는 내란(장미 전쟁)을 낳았고, 내란의 결과로 들어선 튜더 왕조는 처음으로 프랑스와의 전통적인 혈연 관계를 단절한 상태에서 출범한 정권이었다. 그랬기에 헨리 8세는 유럽 대륙의 어느 나라와도 다른 독립적인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었으나, 그것은 독립적이라기보다는 기형적인 것이었다. 그 후유증은 그가 죽자마자 터져나왔으면, 그의 외아들(에드워드 6세)과 큰딸(메리 1세)의 치세에 영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그 결과 엘리자베스가 즉위할 무렵의 영국은 국내외적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첨예한 시기였다. 우선 국내적으로는 신교에서 구교로 컴백한 데서 비롯한 종교적 위기가 있었고, 점점 영향력을 키워오고 있는 의회로 인해 왕권이 심각하게 불안정한 상태였으며, 경제적으로는 격심한 무역 부조와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는 형편이었다. 또 국외적으로는 프랑스와 스코틀랜드가 여전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고, 기형적인 종교개혁으로 대륙의 구교 국가들(특히 에스파냐)과 로마 교제스처를 통해 영국을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길로 이끌고 무역과 국제 관계에서 강국으로 만들 것임을 분명히 했다.엘리자베스는 대관식 전날 밤 런던의 시장과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다.여러분은 내게 언제까지나 훌륭한 여왕으로 남으라고 요구하는데, 여러분은 내가 백성들을 대하는 여느 여왕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을 대할 것임을 분명히 믿어도 좋소. 내게는 어떠한 의지도 모자라지 않고 어떠한 힘도 부족하지 않소. 여러분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서라면 나의 피도 아끼지 않을 것이오.엘리자베스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바를 100퍼센트 수행하겠다고 약속한다. 즉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서약한 것이다. 물론 우리의 기업 세계에서는 신체적 생명까지 요구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우리가 관리하고, 함께 일하고, 이끄는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생명이 그들의 개별적인 요구와 기대, 그리고 집단적 전체로서의 조직과 완전히 얽혀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바로 리더십이라는 역할의 근저에 놓인 약속이다.엘리자베스는 갑작스럽거나 요란하게 행동하지 않고 신중하게 처신 했다. 유년기에 겪었던 위험과 절제심은 그녀에게 필요한 인내심을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서서히 여러 가지 변화를 도모하면서도 낡은 요소들의 일부를 버리지 않고 유지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배려했다. 나아가 엘리자베스는 단호하고 과단성 있는 태도를 취하는 한편, 자질이 뛰어나고 명석한 정치경제의 지성들을 측근에 모아 내부 자문단으로 추밀원을 구성했다. 여기서도 그녀는 전 왕들의 치세에서 활동했던 최선의 인력을 추밀원 내에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그 가운데는 열렬한 가톨릭교도들도 있었다. 여왕은 거기에다 자신이 직접 선택한 새 위원들을 추가하는 세심한 조치를 취했다. 엘리자베스는 전대부터 내려온 추밀원 위원들을 무조건 ‘해임’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자신의 측근 그룹을 점차적으로 키워 꾸준히 옛 요소와 새 요소, 즉 물려받은 인력과 자신이 직접 선발한 인력을 결합했다. 그런 방식을 프로테스탄트의 반란을 교묘히 이용하여 스코틀랜드에 개입함으로써, 남부 스코틀랜드를 점령하는 데에 성공하게 된다. 그 결과로 에든버러 조약을 체결했고 실질적으로 육상 국경을 철폐하는 데에 성공하여 영국은 섬나라가 되었다. 즉 이 시점까지는 영국은 섬나라가 아니었지만 엘리자베스가 즉위하기 직전인 1588년, 대륙에 마지막 남아있던 영토 칼레를 상실했다. 칼레의 상실은 영국인들에게 대륙을 향한 영토지배에 대한 욕망이 꺽인 것을 의미한다. 이것 말고도 여왕이 직면한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고 미묘한 것으로써 균형 있는 정책과 지혜로운 선택, 그리고 대세를 잘 파악하는 신중함으로 그녀는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그녀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다룬 것은 유럽의 열강인 에스파냐, 프랑스와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교회에서 그녀의 위치를 교리 상으로 확고히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녀는 이 문제 역시 우선순위를 정해서 잘 해결해 나갔다. 우선 에스파냐에 대해서는 펠리페 2세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한 것이 변수로 작용했고 그녀는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함으로써 후자의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여기서 엘리자베스의 경중을 가려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엘리자베스가 대외적인 명분을 역이용하여 문제를 풀어나갔던 일화가 하나 있다.1572년 4월, 엘리자베스의 영국은 프랑스와 블루아 조약에 의한 동맹을 맺었다. 이 동맹 체결과 동시에 엘리자베스는 잉글랜드 동남부의 항구를 요새로 삼아, 영불해협을 통과하는 스페인 선박을 습격하던 “바다 거지들(Sec Beggars)"라고 불리는 네덜란드 해적선단을 추방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이것은 스페인과 경쟁관계에 있던 프랑스와 동맹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오히려 스페인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또한 여왕은 도버에서 쫓긴 바다거지들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미리 알고 있었다. 그 곳은 저지대의 로테르담 하구의 브릴과 앤트워프 하류의 프라싱이었다. 이 두 전략 거점을 엘리자베스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은 그녀의 불우했던 가정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여섯 차례 결혼했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처형되었으며, 비열하고 잔인한 배다른 언니는 그녀의 목숨을 손에 넣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심리적 동기를 넘어 정치적 동기에도 주목해야 한다. 엘리자베스는 ,남성들을 상대로 하는 자신의 권력, 권위, 행동의 자유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그녀가 어떤 남성을 남편으로 택하든 결혼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그에 못지 않게 큰 문제를 낳을 수 있었다. 만약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영국은 외국과의 동맹에 손발이 묶이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종교 분쟁이 야기 될게 틀림없다. 또한 만약 영국인과 결혼한다면 시기와 파벌주의가 생겨날 것이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단지 위대하고 뛰어난 업적을 가진 여왕이라고 봐 왔던 엘리자베스가 인간으로서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모든 것에 뛰어나고 전략에 능하고 상황판단이 빠른 사람일 뿐 아니라 가슴에 아픔을 담아 놓은 사람으로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아픔을 결코 남들이 자신의 약점으로 이용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시련을 통해서 더욱 강해졌고 의연한 모습에 익숙해 졌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리더십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많은 일화와 엘리자베스의 연설을 보면 그녀가 행동하나 말 한마디에도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녀는 매번 여름 영국을 다니며 백성을 돌보았고 백성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았던 것이다. 결국 그녀가 끝까지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은 백성이 있기에 자신도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보통 그 자리에 오르면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그녀는 눈감는 그 순간까지도 그 사실을 잊지 않았고 동시에 자신의 권위를 확실히 했다. 바로 이런 점을 통해서 차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위기에 처했던 영국을 살릴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그녀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길고 지루한 설교를 참지 못했고 그것은 시간을 낭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리더의 한 능력인 것이다. 또한 그녀는 이론보다 현실을 중요시 했다. 즉 탁상공론이나 일삼는 것을 싫어했고 현실적인 대답과 직접적 접근을 좋아했다. 그녀의 실용적인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녀는 미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즉 실질적인 상황이 아닌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현실에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미래를 형성하는 것인데 말이다. 엘리자베스의 이런 면들이야 말로 현재 우리가 배워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복잡하고 엉켜있는 현대사회에서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의 현실적인 대안과 그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야 말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인 것이다.엘리자베스는 남의 의견을 듣고 합의와 조화에 의한 통치를 했으나 양보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자신의 영역을 고수했다. 그 선을 넘는 자에게는 용서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의 한 예로 제임스 6세가 자기 어머니와의 공동정권을 반대하고 나선 동시에 의회의원인 윌리엄 패리 박사의 여왕 암살 기도가 탄로된 사건이 있었다. 패리는 한 동료와 함께 여왕이 세인트 제임스 공원에 걸어들어 올 때 여왕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꾸몄던 것이다. 패리는 곧 체포되었고 반역죄인의 판결을 받았다. 그녀는 패리를 처형하라고 명했고 이점에서 그녀는 전혀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것이다. 사건에 맞게 공정함과 이성을 잃지 않았던 엘리자베스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사소한 것으로 대사를 그르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많은 지도자들이 이런 점을 간과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어느 한 쪽이 지나쳐서 자신이 균형을 잡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독후감/창작| 2003.12.27| 9페이지| 1,000원| 조회(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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