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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계이론 - 장소;영구성인가 생산인가
    ‘장소에 대한 기억방법...’- 『장소 : 영구성인가 생산인가』.-# 서론...Place: Permanence or Production 이라는 에세이는 너무나 어려운 텍스트로 나에게 다가왔다. 수많은 인물들과 그들의 이론들이 시간과 이론의 발전에 따라 전개가 되었다. 몇 번을 되새기며 독해를 하고자 했지만, 건축의 역사와 이론들에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탓인지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 하였다.하지만 글의 흐름 속에서 공간에서 출발해 장소로, 장소의 영속성에서 생산에 관한 담론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논의를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거나 발전하는 이 사상들에 대해 나는 내가 느낀 내가 살아온 생활의 변화에 따라 나의 장소는 어떻게 변해 왔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장소는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장소에 대해 정리를 하고 담론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나의 이야기...의문점...나는 1984년생이다. 모든 세대들이 각각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겠지만, 내 나이 또래의 세대들도 살아온 환경이 재밌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디지털 세대와 아날로그 세대의 중간지점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부모님 세대가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첨단 디지털 장비들의 탄생과 함께 자라오기도 하였고, 현재의 10대들, 태어나서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살아온 세대들에 비해 아날로그 적인 모습들을 봐오고 경험하며 살아오기도 하였다. 이 점에 대해 나는 축복받은 세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나 어릴 적, 불과 20년 안팎이지만, 현재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현재는 초등학교라 하지만 예전에 국민학교였던 시절 나는 서울 바로 외곽의 수도권에 살았었다. 서울과 버스로 10분이면 올 수 있었던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집 주변에는 논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작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던 야산도 있었다. 그래서 저학년 수업 중 과학-자연이라는 수업명이었던 것 같은-시간에 개구리알이나 도룡뇽 관찰이나 우산이끼 솔이끼와 같은 것들을 직접 채집해서 과제로 제출하고 책의 사진이 아닌 눈과 손으로 만지며 느끼기도 했었고, 여름이면 매미 잡으러 가을이면 잠자리 잡으러 잠자리채와 플라스틱으로 된 곤충채집통을 하나씩 목에 걸고 돌아다니고 겨울이면 논에서 연을 날리고 스케이트도 탔으며, 골목에서는 팽이치기와 공차기, 피구, 구슬치기 등이 한창이었다. 동네 골목골목은 우리에게 놀이터였고, 해가 질무렵이면 어머니의 아이들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집에는 연탄보일러가 있었고, 겨울이면 그 보일러에 고구마 구워먹는 것이 너무나 맛있었다.그런 국민학교 생활 중 한 번의 이사가 있었고, 전학이 있었고, 현재의 서울에서의 아파트에서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 가만히 앉아 기억을 돌이켜 보면 어렸을 적 기억과 현재의 삶에 굉장한 이질감이 느껴지고, 전혀 다른 환경의 모습에 내 기억이 맞는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얼마 전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집’, House가 아닌 ‘Home'을 생각하면 무엇이 생각나는 질문을 하셨던 때의 생각이 난다. 그 때 나는 ’잠자리‘라는 대답을 했었고, 교수님의 어릴적 이야기와 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위와 같은 나의 어릴 적 기억이 생각났고 속에서 무언가 커다란 것이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어렸을 적 기억의 ‘집’을 떠올리면, 집 그 자체 보다는 주변의 환경과 추억, 감정들이 먼저 떠오르고 집 내부보다는 외부의 집까지의 경로, 골목 등이 생각난다. 그런데 왜 지금의 나는 ‘집’을 생각하면 단순히 ‘잠자기’란 행위가 먼저 생각이 나는 것일까?나의 모습만 보더라도 삶의 모습이 변하고 생활 패턴의 변화가 일어났고, 주거환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나이가 듦에 따라 당면한 과제와 해야하는 일들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환경의 변화가 가장 큰 듯하다. 도시라는 환경 말이다. 나와 10살이상 차이가 나는 사촌동생들에게 질문이 하고 싶어졌다. 태어나서부터 도시에서, 아파트라는 주거환경 속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집’은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 ‘집’의 장소성은 단순하게 내부의 활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장소는 기능에 한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변화의 이유...도시는 점점 초고층화 되어가고 있고, 건물이 지어지는 대지는 예전부터 이어진 시간과 기억은 지워진 채 깨끗하게 다시 계획되어지고, 대지에 둘러싸이기 보다는 새로이 생산된 주변 건물들과 도로에 면하게 된다. 주변 건물들과의 관계에 의해 계획되어지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공학/기술| 2008.12.22| 3페이지| 3,000원| 조회(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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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계이론 - 장식과 죄악
    ‘여전히 장식은 죄악입니까...’-『장식과 죄악』을 읽고...-# 서론과 소고...서구 건축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장식의 유형에 의해 시대를 구분하는 것이 편리할 정도로 건축에서 장식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에서도 많은 부분을 장식에 관련된 부분에 할애하고 있듯이 당대의 건축가들도 이러한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장식을 건축의 본질적 속성의 하나로 보았다. 이렇게 장식은 19 세기에 이르기까지 발전을 거듭하였지만 20 세기 초에 장식의 배제를 선언한 근대건축이 성립한 뒤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게 되고 건축가들의 장식에 대한 관심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그렇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면서 장식에 대한 관심이 건축에서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우리가 건축에서 ‘장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체로 ‘오나먼트 (ornament)’ 또는 ‘데코레이션 (decoration)'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두 어휘는 사용에서 많은 혼동을 야기하고 있으며 이러한 혼동은 오늘날 서로 대체가능한 동의어로 사용될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 혹시 이 두 용어가 처음부터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동의어는 아니었나 라고 까지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는, 고대부터 쓰이던 오나먼트와 별도로 르네상스 시기에 데코레이션이라는 용어가 나타나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오나먼트와는 성격이 다른 새로운 장식상의 경향을 담을 필요가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어서 다시 이 두 용어가 혼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어느 때인가부터 이 두 용어가 지시하던 별개의 두 실체가 동화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두 용어를 분별할 필요가 없어지게 될 정도로 어느 한쪽으로 동화되거나 어느 한쪽이 사라졌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혼용되고 동의어로 간주되면서도 간혹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 양자를 구분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다는 사실은, 이 두 용어가 본래부터 동일한 대상을 갖는 것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현실의 장식으로 눈을 돌려 보면, 장식의 배제를 선언한 근대건축이 성립한 뒤로도 장식은 현실 속에서 생생히 살아 있음을 바라볼 수 있다. 장식은 건축가들의 관심에서 떠나 있었을 뿐,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되어 지어진, 효율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건축물의 은밀한 내부에 장식은 여전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전에 엘리트 건축가들이 건축의 본질적 속성의 일부로 간주했던 장식과 근대 건축가들의 차가운 이성적 시선이 닿지 않는 음지에 남아 있는 장식은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 것 일까?# Ornament와 Decoration...오늘 날 건축물을 그 핵심인 구조체와 이것에 부수되는 장식으로 이분해서 파악하는 관점과 구조체를 역학 관계의 구현으로만 파악하는 안목으로 고전 건축을 바라볼 때, 건물의 하중을 받는 기둥에 사용되어진, 도리스식에서의 플루트, 에키누스, 이오니아식에서의 토루스와 볼루트, 코린트식에서의 아칸서스 등의 장식은 구조체 위에 존재하므로 더욱 본질적인 것이며 오나먼트에 해당하는 것이고, 트리글리프와 메토페, 페디먼트 등과 같이 벽체에 부조나 환조되어 있는 장식은 장식을 위한 장식으로 데코레이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또는 고전 건축의 대표적인 예인 그리스 건축이 원래는 목가구 구조로 지어졌으며 석조 건축으로 바뀐 이후에 전체 구성에서 목조 건축을 모방하고 있음을 생각해볼 때, 석조 건축의 구조체에 부가된 목조 건축의 장식 요소들을 구조체에서 분리가능한 장식으로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고전 건축에서 장식과 구조체를 분리해서 바라보려는 생각은 장식과 구조체의 관계에 대한 오늘날의 개념을 고대에 적용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하겠다. 고전 고대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페디먼트나 트리글리프, 메토페 등의 벽면 장식도 신전의 기능과 목적에 비추어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으며 단순히 장식을 위한 장식에 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고전 건축에서는 장식 요소들의 상징적인 의미가 구조체보다 더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는 건축물이 구조체와 장식이라는 두 요소의 결합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 장식은 구조체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것으로 생각되었다.# 로스의 장식...아돌프 로스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장식을 제거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다. 그는 “문화 수준이 낮을수록 장식이 현저하다. 장식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문명은 사물을 장식으로부터 체계적으로 해방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라고 주장했다. 근대와 같이 고도화된 문명사회에서의 장식은 현실을 망각한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로스가 장식을 공격하면서 의도했던 것은 단순히 장식을 제거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고전적, 장식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가 시카고 트리뷴 현상설계에서 사용한 도릭 오더는 이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가 의도했던 것은 시간, 장소, 역할이라는 면에서 적합지 않은 장식의 남용을 제거하자는 것으로 국한시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여기서 남용된 장식이라는 것은 19 세기의 절충주의에서 실체와의 상응능력을 상실하고 무의미해진, 즉 각질화된 장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새롭게 창안된 근대적 장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그래서 절충주의 건축가들만이 아니라, 전통적 부하가 얹혀진 형태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영역을 추구하고자 했던 아르 누보, 빈의 세제션, 심지어는 독일공작연맹의 건축가들조차도 로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로스의 입장에서 볼 때, 종합예술작품을 꿈꾸는 아르누보 또는 빈의 세제션 건축가들의 의도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창안을 통해 새로운 언어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스는 “재능있는 개인이 그의 시대가 갖는 역사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낭만적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로스가 볼 때 근대적 장식은 언어의 관습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의해 창안된 새로운 관습으로 말하는 뿌리가 없는 언어이며, 공유되는 언어의 한계를 넘기 때문에 소통이 불가능한 언어였던 것이다.빈 세제션의 건축가들이 새로운 언어를 창안하고자 한 이유는, 그것을 통해 예술과 생활의, 더 나아가 건축이 지니는 문화적 측면과 근대의 공업화된 조건의 균열을 치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로스는 이러한 전략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였다. 로스의 입장에서 보면 조화로운 문화와 건축은 다시 만들거나, 창안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는 예술에 속하는 건축과 실용적 건축을 구분했고, 세제션 건축가들과 공작연맹 구성원들이 그들을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로스는 문화와 현실, 예술과 기술을 화해, 타협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대항한다. 그에게 양자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이질적인 관계만을 갖는 것이었다. 로스의 비판적 입장에서 볼 때 독일공작연맹은 공업적인 생산방식에 정신적인 가치를 부여하려 한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며, 구분해야 할 것을 혼동한다는 점에서 세제션과 마찬가지로 오류에 빠져있는 것이다. 로스가 비판적 의식을 통해 외롭게 투쟁했던 문제는 바로 근대 문화의 이접적 특성을 무시하고 그것이 마치 자연스러운 것인양 화해시키려 했던 시도인 것이다.자신이 설정한 구도에 대응하기 위한 로스의 건축적 전략은, 추상적 피복을 사용함으로써 침묵하는 볼륨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문화가 소멸된 근대도시의 조건을 그대로 투영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는 임의로 부여된 미학으로 허위적으로 통합시키려는 것을 거부했다.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옷을 입는 것”이 근대적인 것처럼, 근대에 있어서 좋은 건축이란 눈에 띄지 않는 건축이다. 그의 주택들에서 내부는 외부와 달리 풍부하고 다채로운 장식으로 채워진다. 모자이크, 채색유리, 고급 목재, 페인트, 색조 띈 대리석 등이 동원되는 내부는 ‘따뜻한 감정’에 대응하는 것이다. 외부의 추상적 피복은 내부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전략은 침묵하는 외관과 내밀함에 충실한 내부를 별개의 체계로, 즉 균열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한 것이다.
    공학/기술| 2008.12.22| 4페이지| 3,000원| 조회(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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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건축사 - 로마인이야기 평가A좋아요
    서양건축사REPORT‘로마인 이야기’소 속 : 건축학과담당교수 : 교수님학 번 :이 름 :제목부터가『로마인 이야기』인 이 책은 사실상 로마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위해 그리스에 대해 부수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초반부에는 로마가 어떻게 건국 되었는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에 대한 내용이 재미있고도 자세히 기술 되어있다.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로마의 건국 이야기는 따지고 보면 굉장히 실망스럽다. 쫓겨난 사람들이 건국한 국가라 다른 민족으로부터 여자를 강탈하는 등 로마의 시작은 그리 장대하지 못하다. 반면 그리스는 숱한 전쟁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다른 나라의 침략을 물리치면서 도시국가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시작은 미미해도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있듯 약간은 어설픈 시작을 했던 로마는 현명한 초기 역대 왕들에 의해 안정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이런 안정적이 발전을 할 수 있는 계기에는 아마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들에게 로마는 별로 매력적이지 못한 나라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여기서 그리스와 로마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두 나라의 발달수준이 차이 났다는 점과 로마와 그리스 인들의 생활 생계 수단이 달랐다는 것이다. 로마가 이제 막 울음을 터뜨리고 걸음마를 시작할 유아기의 국가였을 무렵 이미 그리스는 건장한 청년으로서 사회, 정치, 문화, 군사적 측면에서 발달한 강대국이었다. 단순한 발달수준의 차이를 넘어 서서 사회 문화적으로 본다면 그리스는 해안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해상 무역을 통해 살아가는 상업적인 나라인 반면 로마는 농사를 짓고 가축을 사육하는 농업 국가였다. 자업자득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로마에게 그리스인들은 어떤 물건도 팔 수 없었고 자연히 로마는 그리스의 관심 밖일 수밖에 없었다. 로마는 그리스인들이 자신의 영토를 잠시 통과하는 것을 허용해 주기만 하면 될 뿐이었고 그리스 역시 로마 땅을 지나가 다른 영토를 차지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이런 이점을 토대로 로마는 점차 성장하게 되고 그들도 주변국들로부터 견제를 당한다. 많은 전쟁에서 이기면서 로마는 식민지를 거느리게 된다. 반면 그리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나라와 영토를 점령하고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큰 차이가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로마와 그리스의 식민지 관의 차이이다. 그리스의 경우 식민지 나라에서 그리스 문화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피지배 국가에 대한 영향이 미미했다. 즉 그리스는 피지배국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었다. 반면 로마는 점령한 많은 피지배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피지배 국가라기보다는 연합국가에 가까울 정도로 식민지 국가와 화통한다. 심지어 타 민족에게서 왕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그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식민지 관에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여기서 또 다른 로마와 그리스의 차이가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지리적 특성의 차이이다. 그리스는 국가의 형태 자체가 도시국가이다. 그리스가 도시국가로 발달하게 된 이유는 지형이 산지가 많아서 국가자체가 폐쇄적인 지형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식민지에 대한 관점역시 개방적이라기보다는 배타적이었을 것 이라는 것이다. 반면 로마는 지리적으로 그다지 높은 산이 아니고 폐쇄적이기 보다 개방적인 지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에도 개방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따라서 로마와 식민지간에는 긴밀하고 유기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다는 것이다.사실 나는 로마에서 식민지국 출신인 사람도 신임이 두터우면 왕으로 추앙받았다는 대목에서 조금 놀랐다. 오랫동안 절대 왕정이 지속되었던 우리나라 역사에 익숙해져서인지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기서 로마와 그리스의 정치적 사회적 차이가 또 한 번 드러난다. 로마사회는 계층 간의 이동이 보장되는 유동적인 사회였다. 때문에 계급갈등과 같은 사회의 동맥경화 현상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었으며, 귀족, 평민, 노예, 그리고 외국인 등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구성원들은 로마인, 즉 포풀루스 로마누스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국가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협동을 통해서 로마를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로마사에는 집정관에 속주 출신들이 대거 당선되기도 하고, 혁혁한 전과를 올린 인물 중에 로마의 속주 출신들이 많다. 능력이 있으면 그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시민권이 보장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로마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이끌어냈다. 아테네에서는 아무리 무식하더라도 당시의 국적인 시민권만 있으면 권리를 완벽하게 인정받았지만, 시민권을 갖지 않은 사람은 참정권을 완전히 봉쇄당했다. 아테네에 거주하는 비시민은 외국인과 노예다. 당시 아테네에는 일이나 그 밖의 이유로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었지만 이들의 대다수는 같은 그리스인이었다.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그리스의 종교를 믿고 그리스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아테네 시민과 전혀 다르지 않았던 이들은 아테네 이외의 도시국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아테네에서는 부모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이 아테네 시민이어야만 아테네 시민이어야만 아테네 시민권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도 페리클레스 시대에 이르면 더욱 배타적으로 바뀌어, 부모가 모두 아테네 태생이 아니면 시민권을 가질 자격이 없게 되었다. 이 부분에서도 그리스가 실제로 얼마나 배타적이었는가가 또 한 번 드러난다. 아무리 오랫동안 아테네에 살아도 아니 아테네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죽어도 외국인은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막혀있었다. 경제나 문화 분야에서 이루어진 자유화를 생각하면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권리를 주려면 자연히 시민의 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이런 두 나라의 특성은 계급제도에도 나타난다. 두 나라 모두 평등국가는 아니었다. 곧 계급이 있었고 이를 정비해 놓은 계급 제도가 있었다. 로마 시민은 귀족과 평민의 구별 없이 경제력을 기준으로 하여 여섯 계급으로 나뉘었다. 제1계급에서 제5계급까지 그 외는 무산자로 나누었다. 무산자는 시민의 의무, 즉 직접세인 군역을 면제받았으며, 나머지 다른 계급들은 군역의 의무를 가졌다. 그리스의 경우 아테네는 솔론의 개혁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아테네 시민을 네 계급으로 나누었다. 수입이 많은 사람부터 차례로 제1계급, 제2계급, 제3계급으로 내려오고, 무산자인 시민은 제4계급을 이룬다. 스파르타는 엄격한 계급분리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확실히 분리되었다. 스파르타인이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두 번째 계급은 상공업에 종사하는 ‘페이오이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고 마지막 신분은 ‘헬토르’라 고 부르는 농노들이었다. 금권정치라고도 일컬을 수 있었다.개방적인 로마와 폐쇄적인 그리스의 특성은 노예에 대한 처우에서도 드러난다. 그리스의 노예는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노예인 채 평생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반면 로마에서는 평생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회복할 수 있어 이들을 해방 노예라 불렀다. 그들의 자식 대에는 로마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그렇다면 두 나라는 어떻게 정치체제가 발전해 왔을까? 로마의 경우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게 된다. 사실 로마가 초기에 왕정이라고 해도 이집트와 같은 ‘왕은 곧 신이다’와 같은 절대 왕권은 갖지 못했다. ‘왕정’일 때에 로마의 정치 구조는 왕과 원로원 및 민회의 3개의 기관을 만들어 국정을 나누어 주었고 이 3개 기둥이 로마를 오랫동안 떠받치게 된다. 왕은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민회의 투표로 선출되었고, 원로원의 승인을 받아 취임됐다. 그러나 임기는 한번 당선되면 죽을 때 까지 왕인 종신제였다. 따라서 왕은 종교제의와 군사 및 정치의 최고 책임자였을 뿐 신으로 추앙받거나 신과 인간의 매가자 같은 역할은 그 시작부터가 설득력이 없었다. 원로원의 경우 각 가문의 어른들로 초기에는 100명으로 구성되었다. 원로원 의원은 정부의 관직이 아니라 왕에게 조언이나 권고를 하는 역할을 하였다. 민회의 경우 전원이 로마 시민으로 구성되어 왕을 비롯한 정부 관리를 선출하는 역할을 하였고 왕의 정책이나 군사 문제에 찬성표나 반대표를 던질 권리를 가졌다.이후에 왕은 없어지고 집정관(콘술)이 최고의 책임자가 되는 ‘공화정’이 시작된다. 관직은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창설하는 방식으로 하였다. 집정관의 역할은 왕정 시대의 왕을 대신하는 공화정 로마의 최고위 관직으로, 종신제였던 왕에 비해 임기가 1년밖에 되지 않지만 재선은 허용되었다. 집정관이 둘 다 동의하지 않는 정책은 실시되지 않았다. 군무는 집정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로마의 공화정에는 독재관(닥타토르)이란 관직이 있었는데 이는 국가 비상사태에 임명되는 관직으로, 임시 독재 집정관을 의미했으며 독재관 제도는 공화정 로마의 위기관리 체제였다고 할 수 있다. 임기는 불과 6개월로 짧았다. 호민관(트리부누스 플레비스)이라는 관직은 평민계급의 대표라고 말할 수 있는 직책으로 평민만이 참석 권을 가지며 평민집회에서 선출되었다. 임기는 1년이고 평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으며 정부가 결정한 일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호민관은 로마에 일시적이나마 국론 일치를 가져다주었다. 마지막으로 원로원의 경우 ‘리키니우스 법’이 제정된 뒤로는 평민 출신이라도 관직을 경험한 사람이면 원로원 의원이 될 수 있었고 식견과 책임감, 능력과 경험이 모두 합당하다고 인정받은 사람만이 원로원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임기는 종신이다. 조언과 충고 및 권고의 권한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리스의 경우를 보자. 아테네의 정치제도는 초기에는 왕정이었다가 기원전 8세기 무렵에는 왕정이 귀족정치로 바뀌게 된다. 귀족 출신인 9명의 통령이 1년 임기로 행정과 군사와 제사를 담당하고, 그 밖의 귀족들로 구성된 장로회의가 이들을 보좌했다. 스파르타는 두 명문 귀족 출신이 군사와 정치의 최고 지도자인 왕으로 선출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두 명이 동시에 왕 노릇을 하는 세습제 쌍두정치였다.
    독후감/창작| 2008.12.22| 5페이지| 1,000원| 조회(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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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의 제조과정과 목 명 :건축 구조 시스템 설계담당교수 :교수님팀 명 :팀 원 :- 목 차 -Ⅰ. 철의 역사 ------------------------------------------ 21) 인류의 역사2) 철의 발견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역사3) 산업혁명과 철Ⅱ. 철강의 제조공정 ------------------------------------ 4Ⅱ-Ⅰ. 제선공정 ---------------------------------------- 41) 개요2) 제선공정과정Ⅱ-Ⅱ. 제강공정 ---------------------------------------- 61) 개요2) 제강공정과정3) 노의 종류Ⅱ-Ⅲ. 압연공정 ---------------------------------------- 101) 개요2) 방법 별 공정Ⅲ. 참고문헌 ------------------------------------------- 12Ⅰ. 철의 역사1) 인류의 역사인류문명은 불로 싹트기 시작해 철로 꽃피어 왔다. 인간은 불을 발견하고 이용함으로써 야수들의 발톱과 억센 이빨보다 더 강한 무기를 얻게 됨과 동시에 추위를 물리칠 수 있었고 음식을 익혀먹게 됐다. 불의 힘으로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 인간은 맹수들에게 잡아먹히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인류 고유의 문화와 문명을 일구기 시작 할 수 있었다.불에 이어 신이 인간에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지혜였는데 다른 동물과는 달리 두 발로 걷는 능력을 갖춘 직립보행으로 두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인간은 가장 손쉬운 도구로 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구석기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후 인류가 걸어온 발전의 역사는 곧 도구의 사용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갔느냐 하는 문제가 이끌어온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도구라고 하기엔 엉성하기 그지없고 무딘 구석기시대를 넘어서자 더욱 세련되게 다듬은 돌칼, 돌도끼가 등장했다. 이시기를 우리는 신석기시대라고 부르는데, 이 시대도 어느새 새로운 도구의 역사인 청동기시대에 자리를 넘겨주었다.2)용한 철기 시대의 시작은 기원전 8세기경이고 이집트 에서는 기원전6세기에 이르러서야 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철이 등장하면서부터 인류 역 사는 한층 더 힘의 논리에 지배를 받게 된다. 불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반면, 철은 늘 강자 편 에 서서 문화와 문명이 되고 힘이 되었다. 철을 잘 다루는 민족이 세계역사의 주 무대로 나서게 되었고 철을 더욱 많이 확보하는 민족이강한 군대와 부유한 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3) 산업혁명과 철이렇게 시작된 철기문화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현대문명으로 꼴을 갖추기 시작 한 것은 18세기 들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라는 공업화 개혁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기계의 눈부신 발명과 기술의 발전으로 요약되는 이 산업혁명은 면직물 공업에서 출발했는데, 이렇게 시작 된 기계의 개량과 발명은 모든 산업 분야에 급속히 퍼졌다. 이와 동시에 증기기관의 개량에 따른 동력혁명이 일어났고, 더 나아가 제철업, 석탄 산업, 기계 공업도 크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영국은 철과 석탄의 시대를 맞이했는데 이 시기부터는 철을 얼마나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가가 그 국가의 국력을 좌우할 만큼 한 국가에 있어 철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Ⅱ. 철강의 제조공정< 그림 1 철강제품 생산 공정 >< 그림 2 포스틸 철강 제조 공정도 >철광석에서 여러 가지 강재를 만들기까지는 여러 공정이 필요하지만 크게 나누어 제선, 제강, 압연공정의 3단계로 나눈다.Ⅱ-Ⅰ. 제선공정1) 개요< 그림 3 제선공정도 >고로에 철광석을 넣고 코크스를 태워서 철광석중의 산소를 제거하고 용해시켜 선철로 만드는 공정이지만 철광석을 사전 처리하는 소결이나 코크스를 만드는 과정도 포함하여 넓은 의미의 제선(製銑)이라 한다.고로(高爐)는 문자 그대로 높이 우뚝 솟은 고대한 노(爐)를 말하여 제철소의 상징이다. 본체는 길쭉한 원통형으로 바깥쪽은 두꺼운 철판으로 되어 있고 안쪽은 내화벽돌로 두껍게 쌓여 있다. 노의 높이는 40~50m 정도이며, 부속설비까지 포함하면 100m를 넘는다. 또한 고어 내는데, 이를 소결공정이라 한다.< 그림 5 원료탄 >b. 석탄(원료탄)과 코크스 공정< 그림 6 코크스 공장 >코크스는 석탄을 코크스로(爐)에 넣어 1,000 ~ 1,300℃의 고온으로 장시간 구운 것으로 철과 산소의 화합물인 철광석을 고로 내에서 녹이는 열원인 동시에 철분을 철광석에서 분리시키는 환원제로서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한다.< 그림 7 고로위치 >< 그림 8 고로 >c. 제선공정고로(용광로)는 제철소의 상징이며 심장으로 일컬어진다. 철광석(소결광), 코크스, 석회석은 고로 윗부분에 넣어져 서서히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 코크스는 고로 밑 부분에 유입되는 열풍에 의해 연소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CO)가 철광석과 환원반응을 일으키면서 쇳물이 생산된다. 즉, 코크스는 철광석을 녹이는 열원으로서의 역할과 산화철인 철광석에서 산소와 쇳물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 고로에 장입된 철광석이 쇳물로 나오기까지는 5 ~ 6시간 정도가 소요되고, 이때 쇳물의 온도는 1,500℃ 정도이다.공기가 코크스를 태우면서 일산화탄소(CO)가 발생하여 철광석이 환원되고 코크스로 직접 철광석중의 산소를 빼앗아 환원작용을 한다. 환원된 철은 탄소를 흡수하여 선철이 되어 노바닥에 고인다.Ⅱ-Ⅱ. 제강공정1) 개요< 그림 9 선철 >제선공정을 거쳐 나온 선철은 탄소함유량이 많고 상당량의 인(P), 황(S), 규소(Si)와 같은 불순물이 함유되어 있어 경도가 높고 취약한 성질이 있다. 이러한 선철을 잘 늘어나면서 강인한 강(鋼)으로 만들려면 다시 정련하여 탄소(C)의 양을 줄이고 유해한 불순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유해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예로부터 여러 가지 방법이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철은 탄소량이 감소하는데 따라 용융점이 높아지므로 겨우 선철을 용해하였더라도 다시 굳어져 버리는 난점이 있어 근세에 이르기까지 철의 대량생산이 불가능하였다.1784년 영국의 헨리코트(Henry Cort)가 교련법(Puddling Process)을 발병하였다. 이 방법은 철화된 LD전로(두 공장의 첫 자를 따서 LD로 명명함)의 출현은 재래의 제강법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현재의 제강법은 LD전로와 전기로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평로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2) 제강공정과정a. 제강공정< 그림 10 제강공정 - 토페도카, 전로, 2차 정련 >고로에서 생산된 쇳물(용선)은 탄소(C) 함유량이 많고 인(P), 유황(S)과 같은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어 부스러지기 쉽다. 이러한 쇳물을 강인한 강(鋼)으로 만들려면 탄소의 양을 줄이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러한 과정이 제강공정에서 이루어진다. 제강공정은 용선예비처리, 전로제강, 2차정련이라는 세 가지 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첫째, 용선예비처리는 쇳물에 포함된 불순물 인과 유황 성분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둘째, 전로제강공정은 전로에 쇳물을 부은 후 고압, 고순도의 산소를 불어넣어 탄소를 태우고 불순물을 없애는 공정으로서 철강의 기본적인 품질을 결정하는 공정이다. 마지막으로 2차정련은 최종제품 내부품질(성분, 재질 등) 요구조건에 맞게 제어하는 공정이다.b. 연속주조 공정< 그림 12 연주공정 >연속주조법은 제강공정을 거친 쇳물(용강)을 주형(Mold)에 주입하여 일정한 모양을 만들고 연속주조기를 통과하면서 냉각, 응고시켜 연속적으로 슬래브나 블룸, 빌릿 등을 제조하는 방법이다.< 그림 13 슬래브, 블룸, 빌릿 >3) 노의 종류a. 평로(平爐, Open Hearth Furnace)영국인 지멘스(William Siemens)는 축열식 가스로를 연구하여 이를 제강로에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하였고 프랑스에서 마틴(Martine)은 1864년 이 노(爐)에 의하여 용강을 제조하는데 성공하였다. 이것이 평로제강법의 시초이며 용해실이 평단(平袒)한 선저형(船低形)을 이루고 있어 평로라고 명명되어 왔으며 양시조의 이름을 따서 지멘즈-마틴노(爐)라고도 불린다.평로의 연료로는 중유 또는 중유와 코크스가스의 혼합방식이 대부분이며 평로의 용량은 보통 조업 1회당 표준출강량으로 표시되며 대형일수은 강을 제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즉 불순물이 적은 양질의 강을 불과 30~40분(평로는 4~5시간)이라는 단시간 내에 얻을 수 있고, 건설비가 비교적 저렴한 것 외에도 생산성이 높아 작업비가 싸다는 이점이 있다. 이 외에도 원료로는 용선이 대부분이고 고철 장입량은 10~20% 정도로 낮으므로 일관제철소에서는 제철소 내에서 발생하는 고철로 대부분 그 소요량을 메울 수 있다. 따라서 고철을 외부에서 구입할 필요가 없는 이점도 있다.c. 전기로(Electric Arc Furnace)전기로는 전열을 이용하여 강을 제조하는 노(爐)로서, 전기양도체인 전극에 전류를 통하여 고철과의 사이에 발생하는 아크(Arc)열에 의하여 고철을 녹이는 아크로와 도가니의 주위를 감은 코일에 전열을 통해서 유도전류에 의한 저항열로 정련하는 유도로의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따라서 전기로는 제강시, 특히 고철용해시 막대한 전력이 소요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라 전기로 공장 내에는 고전압 수전설비가 필수적으로 설치되어 있다.아크로는 1878년에 독일인 지멘스(William Siemens)가 발명하였고, 1899년 프랑스인 에루(Heroult)가 에루식 전기로를 완성하였다. 현재 흔히 쓰이고 있는 아크로는 대부분이 에루식 또는 그 개량형이다.한편 유도로는 1861년 에이젝스(Ajax Noslap)가 발명한 것으로서 노의 용량이 10톤 미만의 소규모이므로 내열강, 고속도강 등의 고급 특수강이나 주물을 제조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며, 사용하는 전류의 주파수에 따라 고주파유도로와 저주파유도로로 구분한다. 그러나 아크로만큼 일반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전기로라고 할 때에는 아크로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Ⅱ-Ⅲ. 압연공정1) 개요강에는 연성과 전성이 있으므로 힘을 가하면 상온에서도 길게 늘이거나 얇게 넓힐 수가 있으며 빨갛게 되도록 가열하면 상온에서 보다 더욱 쉽게 형태를 바꿀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을 이용하여 사용목적에 맞도록 편리한 모양으로 가공 변형한 것이 강재(鋼材)이다. 강괴를말한다.
    공학/기술| 2008.12.22| 13페이지| 3,000원| 조회(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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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계이론 - 이중 심층구조
    ‘Semantics, Syntactics...’-『컨셉츄얼 ? 아키텍츄어』 이중 심층구조.-# 서론...피터 아이젠만은 ‘컨셉츄얼 ? 아키텍츄어’의 이중 심층구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논문을 쓰면서 자신의 10년간의 활동을 짧은 논문 안에 압축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이해에 대한 어려움에 대한 내용으로 논문을 시작한다. 나 역시도 아직 건축에 대해 얄팍하게 가지고 있는 지식만으로 그의 논문을 이해하는 것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기에 아이젠만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이외에 많은 논문과 기호학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봐야만 했다. 이제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들과 내가 이해한 가운데 나의 생각을 미루어 에세이를 시작하고자 한다.# 아이젠만의 이야기...피터 아이젠만은 자신의 활동을 4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로 기존 건물에 대한 형태의 분석인 역사적인 면과 둘째로 논리의 형성인 ?컨셉츄얼 ? 아키텍츄어?이다. 여기서 ?컨셉츄얼 ? 아키텍츄어?는 다시 형태의 개념화와 이중심층구조, 변형적 분리의 방법으로 나뉜다. 셋째로 통사론적 구조에 관한 내용으로 형태화의 법칙과, 변형화의 법칙을 얘기한다. 마지막으로 피터 아이젠만의 실제 건물을 얘기하는데, 자신의 건물을 완벽하고 모멸적 의미에서 ?카드보드 ? 아키텍츄어?라고 표현하였다.이렇게 시작한 서론 중에서 그가 본론에서 다루고자 한 내용은 ?컨셉츄얼 ? 아키텍츄어?의 내용이다. 먼저 간단히 얘기하자면 최초의 피지컬한 요소는 같지만 개인의 해석차이 즉, 컨셉츄얼한 능력의 차이에 의해 다르게 해석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는 해석하는 자의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가령 A라는 벽이 있을 때 이벽에 엇갈림이란 ‘활동’이라는 요소가 하나의 ‘상태’가 만들어 진다. 여기서 엇갈림이란 실제의 조건과 선행조건, 다시 말해 규칙이 주어져 바뀌어 짐을 말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태는 A라는 개념을 넘어 새로운 B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A와 B는 서로의 조합에 있어서도 그 차이를 나타내게 된다.뿐만 아니라 공간적 개념에서도 적용된다. A라는 벽 2개가 하나의 통로를 만들 때에도 이 벽이 가로로 연결되는 것과 세로로 연결되는 것에는 큰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A라는 벽 2개의 요소로 이루어진 공간이라고 할지라도 그 두개의 공간은 같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새로운 B, C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다.여기서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이론은 이렇다. 건축가가 하나의 Semantics한 의미를 만들어 공간을 만들었지만, 이러한 것들의 연속 즉, 이중 심층구조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것은 의미를 변형 시킬 수 있고, 또한 이것을 이해하는 자에게 자신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힘들다는 이야기 이다. 그렇기 때문에 Semantics한 내용보다는 Syntactics한 내용을 더 주장하는 것이다.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만약에 건축가가 의도하고자 하는 순수 100%의 의미만을 이해하는 자가 이해한다면 그것이 과연 건축에서 말하는 멋진 건축물일 것인가 라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 의문점?...인간은 정말 대단한 존재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 해 내기도 하면서 훌륭한 업적을 이루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단점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즐기지만 그것에 쉽게 질려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인간의 모습 중에서 가장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들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사주었다면 그 아이는 이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 장난감이 아이에게 버림을 받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는가? 바로 이 장난감이 실증 날 때, 다시 말해 이 장난감에 대한 모든 것을 아이가 알아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느끼지 못할 때이다.건축물의 이론도 이와 같지 않을까? 건축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내용이 요약되어 있는 책을 보기 보다는 그 안에서 해석자는 자가 하나씩 찾아가고, 그러다가 건축가는 의도하지 않은 부분들을 더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이 건축물이 주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물론 건축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다. 의미 없는 건물엔 누구나 호감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건물을 짓는 가장 큰 목적 중에는 그 건물 안에서 생활 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즉, 반드시 건축가가 의도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 안에서 사람이 즐겁게 생활하고 행복하다면 그 사람은 무의식중에 건축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 의도에 만족한다는 것이다.피터 아이젠만 역시 그러한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무의식중에 이해하는 방식이 자신의 신조라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만을 추구하기 위해 syntax한 건축만을 주장한다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피터 아이젠만은 4개의 벽을 통해 보는 시각에 따라 4개의 벽이 ABBA, ABCD 즉 각각 다른 이름의 벽이 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벽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 해석의 차이에 감각적인 지각작용과 개념작용이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게 만들었다는 내용도 있다.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벽이 꼭 건축가가 의도한 AAAA가 아니라 다양하게 해석되어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경험에 의한 차이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학/기술| 2008.12.22| 3페이지| 3,000원| 조회(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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