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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 밀레의 여정 평가A좋아요
    밀레의 여정1. 밀레의 여정에 끼어 들다.서울시립미술관 방문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아침, 신문 날씨 면에서 오늘은 산과 강으로 놀러나가기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따뜻한 날씨 덕분에 잊고 있었던 밀레가 생각났다.밀레가 서울에 오다니. 혹자는 평생동안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진짜' 밀레의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관에 간다는데, 나 역시 동감이다. 어릴 때 다니던 동네미장원에서 볼 수 있었던 밀레의 그림. 아마 동양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화가가 바로 밀레일 것이다. 그 흔한 그림의 진품, 아마 복제품도 있겠지만 어차피 가리기는 힘들 터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다.시립미술관은 정말 북적댔다. 방학인데다 토요일 오후가 아닌가. 방학숙제 때문인지, 어린아이들이 엄마 손을 붙잡고 미술관에 들렀다. 매표소부터 줄이 늘어졌다. 10여분을 기다려서야 티켓 한 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올 여름에 갔던 간송미술관과는 사뭇 다르다. 언덕배기에 위치한 작은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은 그 때, 산수화전을 하고 있었다. 사람은 민망할 정도로 뜸했었는데... 어쨌거나 들어가는 입구도 역시 긴 줄이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귀가 멍멍해질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미술관 안의 안내 컴퓨터로 장난질이 한창이다. 엄마한테 몇 마디 얻어듣고서도 컴퓨터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한 대는 이미 에러 메시지가 떠 있다.진행요원들은 난처한 표정이 역력하다. 줄을 세워봤자 조용히 관람하기에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인지 밀레의 여정을 제대로 된 순서로 보기는 힘들었다. 2층 바르비종 이전부터 봐야하는데, 진행요원은 3층으로 안내한다. 아마 2층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다소 언짢아진 마음으로 바르비종에서의 밀레를 먼저 만난다.2. 밀레를 만나다.1849년 바르비종으로 이주한 밀레는 죽을 때까지 그곳에 정착한다. 바르비종에서 밀레의 작품에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바르비종 화파의 대가라 불리는 사실주의적 태도가 바르비종에서의 밀레를 주목하게 만드는 요인인가 보다.성실한 데셍 작품들과 모티브가 동일한 동판화, 몇 가지는 유화로도 제작되었다. 그중 유달리 웃음이 나는 한 작품은 바로 「어머니와 아들」이다. 코믹하다고 하기보다는 따뜻한 모성애가 느껴지는 그림. 밀레가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고 하는데, 화면전체에서 情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어느 시골집, 그다지 넉넉해 보이진 않지만 튼튼해 보이는 돌담 집, 입구에서 한 어머니가 아들의 옷을 잡고 있다. 아들은 통통한 배를 앞으로 내밀고 볼일을 보고 있다. 문 옆의 소녀가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 때문인지, 시선이 절로 아이에게 집중된다.이 그림에서는 빛의 화가라는 램브란트의 별칭이 무색할 정도다. 밀레의 빛, 광선에 대한 관심은 「자비심」이라는 그림에서 극대화된다. 마치 램브란트의 데셍에서 보는 것과 같은 모티브와 빛의 처리를 보면 렘브란트의 재능이 밀레에게 계승된 느낌이 든다.하지만 「이삭줍기」, 「씨앗을 뿌리는 사람」, 「양치기 소녀와 양떼」등의 그림에서 나타나듯, 밀레는 농촌의 신성한 노동만을 그렸던 것은 아니다.초기에는 그에게도 아카데미즘의 표현이 나타나던 시절이 있었다. 다비드의 「파트로클」과 비교하듯 나란히 걸려있던 밀레의 남자누드 습작은 이러한 그의 기질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20대였던 밀레의 작품은 단단한 질감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다만 다비드의 작품에서 주인공의 몸이 좀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묘사되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다비드라는 신고전주의 작가의 영향을 밀레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그의 여러 작품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이나 종교적인 주제를 선택하고 있다. 이것은 밀레가 고전주의에 심취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밀레는 모사를 하거나 고전적인 주제의 작품을 할 때에도 자신만의 대담성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3. 고흐가 있었다.이 전시회에서 무엇보다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고흐와 밀레와의 만남이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혔듯, 밀레에게 상당히 심취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동일한 구도에 동일한 색상으로 단지 기법만을 바꾼 작품들도 있었다. 더군다나 고흐의 작품 중에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별이 빛나는 밤」이 바로 밀레에게서 모티브를 빌려온 것이었다니!그러나 고흐가 밀레의 그림에서 주목했던 것은 아마도 어슴푸레 나타나고 있었던 광선과 대기의 독특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비록 실사출력을 해서 다소 흐리게 보인 작품 비교였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진품 비교를 보게된다면, 정말로 흥분하게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고흐가 밀레의 작품을 모사할 정도였으니, 둘의 만남이 관람객을 흥분시킨 건 당연한 일이다. 밀레를 비롯한 바르비종 화파의 독특한 태도는 당대를 비롯하여 후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비록 바르비종 화파에 단일한 경향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예체능| 2003.01.25| 3페이지| 1,000원| 조회(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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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문화] 중국관련 감상문
    금장태의 중국역사·철학·예술기행『山海關에서 중국역사와 사상을 보다』금장태 지음, 효형출판사0. 들어가며우리는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최근까지도 중국을 우리보다 못한 국가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중국을 빼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중국과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던 친밀한 관계였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졌던 부정적인 생각들로 중국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사라졌었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적으로 중국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거대한 땅덩어리에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서 벌써 세계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에 대해 우리는 좀더 자세히 알아둘 필요가 있으며 중국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나라와 중국간의 문화적 유사성과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이 책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책에 삽입되어 있는 중국의 문화에 관한 다양한 사진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단순히 문화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각 도시에 얽힌 역사적인 사실들을 맛깔스럽게 펼쳐내고 있었다. 그림의 크기가 작아서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중국에 꼭 한 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저자가 유학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는 교수인지라 글이 다소 딱딱하다는 것이다.이 글은 몇 가지 논점을 가지고 작성할 생각이다. 첫째, 중국의 자존심 만리장성, 둘째, 중국과 북한의 기로에서, 셋째, 일본이 중국에 준 상처, 넷째 자금성으로 대표되는 중국문화의 화려함. 이 네 가지를 중심으로 하여 글을 작성하려 한다.1. 중국의 자존심 만리장성필자는 만리장성에서 가장 뛰어난 지점으로 일컬어지는 산해관에서 만리장성을 바라보고 있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 새로운 통일 제국에 걸 맞는 호칭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천자(天子)라는 호칭대신에 황제(皇帝)라는 칭호를 사용하여 스스로 시황제라 칭하였다. 진시황은 통일 후 각종의 조치를 취하였는데, 우선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어 나갔으며, 도량형의 통일, 그리고 감숙성으로부터 요녕성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구축하였다.만리장성을 쌓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변방 이민족의 중국 침략을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거대한 규모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당시 2천만 정도의 중국인구에서 노동력을 가진 남성이 5백만쯤 되었는데, 이중 300만이 만리장성을 쌓는데 노역을 했다고 하니, 만리장성을 쌓느라 진나라가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뒤를 이어 한나라도 만리장성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돈황에서 요동에 이르는 만리가 넘는 장성을 쌓았다고 한다. 지금의 만리장성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명나라 때이다. 명태조 朱元璋은 건국이후 대장군 徐達을 시켜서 몽고족을 막기 위한 居庸關과 山海關을 쌓았다고 한다.하지만 장성의 규모가 너무나도 거대하다보니, 그 그늘에는 별의별 슬픈 전설들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강제로 생이별한 가족들의 슬픔과 악조건 속에서 노역을 하다가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중국 백성들의 비참한 사연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전설중 하나가 바로 맹강녀 이야기이다. 맹강녀는 노역을 온 남편을 찾아 왔다가 만리장성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다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망부석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흥미롭게도 우주인이 달에 착륙하여 지구를 볼 때 유일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이 만리장성이라고 하니, 중국인의 콧대 높은 자존심에도 이유가 있는 것 같다.2. 중국에서 보는 북한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인 단동에 위치한 압록강변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심정을 서술하였다. 우리나라의 근대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압록강변에서 멀리 신의주와 위화도가 보인다며 북한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압록강의 강물은 백두산에서 795킬로미터 즉 이천리를 흘러와 황해로 유입된다. 공장 매연으로 가득 찬 신의주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지면서 6.25당시 폭격으로 부서진 철교가 보인다고 한다.사실 압록강이면 우리나라의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갈 때, 그리고 일본의 눈을 피해 망명할 때 목숨을 걸고 건너야 했던 그 비운의 강이 아닌가. 또 위화도라는 곳은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으로 유명한 바로 그 섬이 아닌가. 이처럼 중국에서 보는 북한도 어느 순간 몹시 서러워질 것이다. 처음에는 아 저곳이 북한이구나. 서울에서 평양까지 몇 시간이라는데, 우리는 이렇게 머나먼 중국 땅에서 거꾸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구나 하고 생각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최근 유행하고 있는 드라마 중 「야인시대」에서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장군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독립투쟁의 역사가 이곳 중국 땅에서 이루어지기도 한 것이다.더군다나 북경과 평양을 왕래하는 국제선 열차가 압록강 철교를 통해 왕래한다고 한다. 언젠가 통일이되면 서울이나 부산에서 북경까지 국제선 열차가 다니는 것도 꿈은 아닐 것이다. 병자호란시 심양에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따라갔던 장현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읊었던 시조 한 수를 감상해보자.압록강 해 진 날에 어엿븐 우리 님이연운만리를 어뒤라고 가시는고봄 풀이 푸르고 푸르거든 즉시 돌아오소서.3. 일본제국주의, 중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다.{장춘에 가면 일본의 침략의 잔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장춘의 시가지는 중국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면서 건설한 도시라고 한다. 장춘 시내에서 가까운 광복광장 근처에는 일제가 세운 만주국의 황궁 위만황궁 이 남아있다. 지금은 이 황궁이 길림성 박물관으로 바뀌어 당시의 생활상을 보존하고 일본의 침략상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일본은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만주에서 식량을 강탈하고 중국인에게는 사료로나 쓰는 콩깻묵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인을 3등 공민이라 하여 2등 공민이라는 조선인과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민족 이간정책을 펼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패망하자 조선인들은 이곳에서 모두 죽거나 쫓겨나 지금은 단 한 가구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이러한 중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은 중국인들에게 어마어마한 자존심의 상처를 입힌 것임에 틀림없다. 중국에 유학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중국인들은 한국인들도 우습게 생각하지만 일본인들은 아주 대놓고 싫어한다고 한다. 외딴 섬나라에 대륙의 자존심이 짓밟혔으니 그 증오심이 어련할까? 중국의 청년들은 일본을 침략하는 것이 후대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는데, 약간은 섬찝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일본에의 뿌리깊은 증오는 우리나라와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면서도 친일세력으로 정권을 유지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과는 달리 중국은 친일 세력을 깨끗하게 정리했다고 한다.또한 진회하 근처 강동문 쪽에는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남경을 침공할 때의 만행의 현장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당시 일본군이 남경일대에서 30만의 중국인을 학살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의 중국인들이 그 현장의 하나인 만인갱 자리에다가 日軍南京大屠殺遇難同胞紀念館 을 세웠다고 한다.일본군은 남경을 함락시키고나서 2개월 동안 조직적인 대규모 학살을 감행하였는데, 당시 희생자가 30만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러한 끔찍한 학살의 현장에 대해 林語堂은 그저 반문만 되풀이 한다.적어도 제국일본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그 정신을, 그 이데올로기를, 그 전술의 조잡함을, 그리고 소화불량의 서구 군국주의와 그 자신의 봉건적 신도, 중세적 구조속에 불안전하게 이식된 마친가지로 소화불량의 중국유교와 의 혼합을,…일본장교들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일본병사들은 그들 자 신을 어떻게 보았을까?4. 화려함의 극치, 자금성 紫禁城{명청시대 5백년동안 24명의 중국황제가 머물렀던 자금성은 북경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지상의 중심인 자금성, 하늘의 중심인 자미원의 별자리와 사응한다는 상징이 있다고 한다.
    독후감/창작| 2002.12.10| 5페이지| 1,000원| 조회(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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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reantraditional 2nd 평가A+최고예요
    생활/사회| 2002.12.10| 1페이지| 100원| 조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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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reantraditional 평가A+최고예요
    생활/사회| 2002.12.05| 1페이지| 100원| 조회(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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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백표지
    동물/식물| 2002.12.05| 1페이지| 100원| 조회(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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