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사조론 레포트유럽의 중세는 5세기로부터 14세기까지의 약 1000년에 걸치는 기간을 가리키는데, 이 시대의 문화는 아름다운 것(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것)을 멸시하고 지상적인 것, 현세적인 것을 거부하는 풍조가 주류를 이루었다. 카톨릭의 엄격한 내세주의와 금욕주의가 인간성의 자유로운 발전과 신장을 억눌렀기 때문에 이 시대를 암흑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학은 종교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창작의 자유가 허용되었으며, 자유로운 문학적 활동은 오히려 대중들에게만 허락되었다. 일반 대중들은 시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로맨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 앞에 모여 춤추고 노래하며 즐겼다. 이리하여 상류 계급이 아닌 대중들 사이에서 노래와 이야기가 퍼졌는데, 중세기의 로맨스는 민간에서 생겨나서 민간에서 육성된 민중의 문학으로 주목할 만하다. 14세기에 이르러 중세기의 최후를 장식하는 문호 단테가 나타나는데, 그가 이탈리아어로 쓴 '신곡'은 중세인의 우주관, 세계관을 잘 반영하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 사상도 형상화하고 있다.12세기 프랑스문학의 융성을 고비로 하여, 그 이전의 중세 라틴어문학과 그 이후의 속어(俗語)문학으로 대별할 수 있다.게르만 민족 침입하의 서양에서 로마 문명의 전통을 지킨 것은 베네딕투스회 수도원이다. 수도사는 수도원장 ·주교 ·국왕의 요구에 따라 성자전 ·역사 작품 ·찬가를 썼다. 8, 9세기의 카롤링거왕조 르네상스에 의해 성직자의 라틴어 지식은 정확했으나, 일반대중들 사이에서는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문학작품에는 독창적인 것이 드물고 교과서적인 것이 대부분으로, 그 내용도 금욕적이고 현세 부정적 경향이 강했다. 중세 라틴어문학은 대부분이 성직자가 썼으며 민족성이나 지방성도 희박하였으나, 수사학 등의 문장기술로 후대의 속어문학 기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영국에서는 7세기 말경에 이교적 색채가 짙은 가 속어로 쓰였고, 프랑스에서는 842년에 최고의 속어작품 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몇 개의 성자전이 속어로 쓰였다.그러나 속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 십자군 붐이 높아진 12세기의 일로, 봉건제후의 기호에 맞는 등의 무훈시가 이때 프랑스에서 쓰였다. 같은 무렵 남 프랑스에서는 귀부인을 찬미하고 관능적이며 신비한 사랑을 노래하는 음유시인(트루바두르)이 나타났다. 그들의 사랑에 대한 관념은 북프랑스와 영국의 궁정으로 옮겨져, 크레티앙 드 트루아 등에 의해 윤리성과 사회성이 부여되고, 등의 궁정 풍 로망을 낳았다. 그 속에 등장하는 궁정 풍 기사는 게르만적 기사와 그리스도교 로마 적 성직자가 종합되어 이루어진 유형으로, 그 후 서양에서의 이상적 인간상의 출발점이 되었다. 따라서 이 궁정 풍 로망은 서양 각국의 문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영국에서는 노르망디 공 기욤에 의한 정복(1066년) 이후 프랑스어가 국어로 되었다. 헨리 2세(재위 1154∼1189) 치하의 영국은 서양궁정문학의 중심이 되었고, 등 많은 프랑스어 문학작품이 나타났다.독일에서는 프랑스 궁정문학의 영향으로 호엔슈타우펜왕조의 기사문학이 왕성해지고 와 궁정 풍 서정시로 여러 작품이 나타났다. 또한 1200년경에 쓰인 민족서사시 에서는 궁정 풍 기사의 이상상이 (9세기 초)의 전통을 잇는 게르만의 영웅주의와 결부되었다.이탈리아 속어문학의 발생은 다른 서양 여러 나라에 비해 늦어, 13세기 북이탈리아에서 트루바두르의 모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남쪽에서 ‘시칠리아파’, 북쪽에 ‘청신체파’의 시파가 나타났으나 어느 쪽이나 트루바두르의 영향을 받았다.에스파냐에서는 8세기 이래의 이슬람교도와의 접촉이 독특한 문화를 낳았다. 프랑스 궁정문학도 이 나라에서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1140년경에 나타난 서사시 는 영웅전설적 분위기가 부족하고, 당시 에스파냐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이 강하게 반영된 사실적 작품이다.13세기의 프랑스에서는 카페왕조가 확립되면서 문학의 중심이 각지의 제후궁정에서 파리로 옮겨졌다. 프랑스어는 여러 방언을 통일하여 위신을 높였고, 라틴어와 함께 서양 지식인의 공통어가 되었다. 또한 파리대학을 중 보급되었다. 그 결과 우의를 구사한 교훈적 작품 가 나왔고, 또한 종래의 이상 상을 웃음거리로 만든 여우 이야기와 파브리오가 성행하였다.13세기 후반에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단테는 사랑의 개념, 어법, 시형 면에서 ‘청신체파’에 속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중세의 모든 사상이나 신학, 인간감정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런 점에서 서양 중세 최대의 시인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영국에서는 13세기 초에 라야먼에 의해 최초의 중세영어 작품 가 쓰였고, 14세기에는 공용어로서의 영어의 지위가 높아졌다. 따라서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와 의 영향을 받은 초서는 14세기 말경 영국 중세문학 최고의 걸작인 를 썼다. 14∼15세기의 프랑스에서는 백년전쟁과 페스트의 만연과 기근으로 문학 활동이 정체되었다. 기사도도 쇠퇴하고 현실주의적 경향이 강해졌다. 시와 산문이 나누어지면서 산문이 발달하여 역사소설과 중편소설이 많이 쓰였다. 또한 연극이 성하고 성모기적극과 성사극 등 대규모의 작품이 상연되었다. 시에서는 기법의 탐구에만 전념하였으나, 평생을 방랑하면서 인간의 비참함을 노래한 근대시의 비조라고 할 수 있는 F.비용(1431∼?)도 이 시대의 사람이다.르네상스 문학은 중세를 통하여 동로마 제국(1461년 투르크에게 멸망됨)과 접촉을 가졌던 이탈리아에서 우선 일어나, 전 유럽에 파급되었다. 중세는 그리스 ·로마 문학에 대하여 그다지 무지하였던 것은 아니고, 특히 13세기에는 고대를 알고자 하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교를 통하여 본 고대였고, 인간의 육체나 감각을 멸시해온 중세는 고대의 예술미를 인식하는 안목은 지니지 못하였다.근동무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한 북 이탈리아 여러 도시의 번영과 더불어 고대예술에 대한 안목이 트이고, 그것을 본보기로 하여 창조하려는 의욕이 강해진 것은 14세기 중반부터였다. 단테는 그 관념에서는 오히려 중세적이며 그리스도교 적이었으나, 교회 공용어인 라틴어 아닌 고국의 언어 토스카나 어로써 예술적으로 뛰어난 시문 인문학자들은 고대문학에서 문학의 규범을 만들었다. 보카치오는 에서 육욕을 가진,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긍정하고 색정으로부터의 해탈을 주장하는 성직자를 마음껏 비웃었다. 그와 시대를 같이하여 나타난 페트라르카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핀다로스의 시풍을 모방하여 이탈리아어로 우수한 서정시를 썼다.15세기 말부터 16세기에 걸쳐 아리오스토, 타소 등 시인이 나타나 등의 현란한 장편시를 가지고 전 유럽의 이목을 끌기도 하였지만 16세기 말이 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유럽의 패권이 이미 에스파냐로 옮겨짐에 따라 급속히 빛을 잃었다.에스파냐 문학의 융성기는 대략 1540∼1680년으로, 이 시기는 르네상스라고 하지 않고 황금세기라고 한다. 7~15세기에 남쪽에서 침입해온 아랍민족과 싸워야 했던 에스파냐는, 국왕이 농민의 힘을 빌어 영주를 억압, 일찍부터 절대주의를 확립하고 있었으며, 이 싸움의 목표였던 그리스도교에 의심을 품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이 시대의 에스파냐 문학 속에는 중세문학의 기사도적 관념과 서민적 사실주의가 뒤섞여 있다. 이 시대의 에스파냐 문학 최대의 걸작은 S.세르반데스의 라 할 수 있다. 연극의 C.베가, 칼데론 데 라 바르카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으며, 근대소설 발생에 공이 큰 피카레스크 소설도 이때에 에스파냐에서 발생했다.프랑스의 르네상스 문학은 이탈리아에 갔던 인문학자들이 이탈리아 문학을 들여오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라틴어로 글을 썼지만 F.라블레 나타나 프랑스어로 을 써서, 교회와 소르본(파리대학 신학 부)의 교조주의 및 위선을 민망할 정도로 조소하였다. 이어 1549년경부터 P.롱사르를 맹주로 하는 플레이아드 시파가 페트라르카 풍의 서정시를 창작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종교전쟁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문학은 기울기 시작하였으나, 이 어려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M.E.몽테뉴(1533∼1592)는 고대의 영지(英智)를 밑거름으로 하여 3권의 을 집필, 인간성의 본질을 추구하였다.영국의 르네상스는 네덜란드의 의 저자인 에라스무리자베스 여왕시대에는 연극이 개화 윌리엄 셰익스피어, 벤 존슨 등이 출현하였다. 독일은 한스 작스의 사육제극을, 폴란드는 J.코하노프스키의 서정시를 낳았다.이 시기의 극은 전체적으로 중세 극으로부터 이탈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성질은 각국의 사정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궁정과 그 주변의 귀족을 관객으로 삼았던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는 고대극 부흥의 색채가 농후한 데 비하여, 서민층의 관객이 많았던 에스파냐와 영국에는 중세극의 형태가 남아 있었다. 연극운동은 어느 시대나 문학운동보다 뒤늦게 나타나는 것이 상례이다. 이탈리아에서 고전극을 바탕으로 한 격조 있는 비극과 희극이 나타난 것은 16세기 들어와서이며, 비극의 작자 G.G.트리시노가 최초의 작가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문학이 이미 쇠퇴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극은 무의미한 잔학과 음산한 분위기를 과장할 뿐 별다른 걸작을 낳지 못하였다.희극은 라틴극을 모방한 운문극과 대본이 없는 즉흥극(코메디아 델 라르테)으로 나뉜다. 운문 극으로는 L.아리오스트의 와 , 마키아벨리의 등이 유명하다. 코메디아 델 라르테는 줄거리만 있고 대사는 없어, 극도의 배우술을 발달시킴으로써 루찬테, 스칼라 등의 명배우를 낳았다. 이탈리아가 만들어낸 르네상스 시대의 또 하나의 장르는 전원극으로, 타소의 , G.B.구아리니의 는 전 유럽의 화제가 되었다. 또한 이 시대의 이탈리아가 세운 공적은 직업극단을 성립시킨 것(이는 각국의 대세였으나 여배우를 최초로 쓴 것은 이탈리아이다)과 프로시니엄스테이지라고 불리는 새로운 극장양식을 낳은 것이다. 황금세기(16세기 중엽∼17세기)의 에스파냐 극은 고대극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가톨릭교회의 세력이 확고부동했고 중세의 종교극에 익숙한 민중의 힘이 막강했기 때문에 비극이나 희극을 상연하는 경우에도 성찬신비극 막간희극 등의 덤이 따른 것은 중세의 흔적이며 무대도 여인숙의 안뜰을 이용한 가건물로 삼면이 무대를 향한 반 중세양식의 것이었다. 에스파냐의 코메디아 속에는 C.L.F.
매춘의 합법성 여부에 관하여순천향대 영문과 20011032 김설아성(性)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인가..?며칠전 원조교제로 인해 유명 연예인 이경영씨가 구속, 수감되는 사건이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또다시 원조교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다 알다시피 성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중 하나이다. 태초 이래로 인간이 아담과 이브로 구분지어진 이상, 또한 모든 생물의 생리적 특성상 성(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섹스)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자 기본 구성 요소이다.이처럼 인간에게 있어 근본적인 문제이기에, 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 문제는 우리 생활과 항상 밀접한 연관을 맺어왔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한 가지, 예전엔 찾아볼 수 없었던 큰 변화가 생겼는데, 바로 성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이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섹스란 추잡하고 타락적이란 인식이 강하였다. 따라서 감히 성문제를 공론화하고 당당하게 섹스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개방적 성 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많은 이들이 자유로운 성생활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당당하게 섹스의 아름다움을 외친다. 더 나아가, 성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며 성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에 대한 합법성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논의해보고자 하는 매춘 문제 역시, 한마디로 말해 자신의 성을 상품화해 돈을 버는 행위이다. 과연 이것이 옳은 행동인가, 잘못된 행동인가... 사실 이런 문제에 대해 절대적인 해답을 찾을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레포트를 통해 좀 더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매매춘 문제에 대해 접근해보고, 실태를 파악해 가장 합리색인 해결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우선 매춘의 정의에 대해 알아보자. 매춘이란 무엇인가? 위에서 대충 언급하였지만, 구체적인 사전적 의미는 돈이나 혹은 다른 이익과의 교환으로 다른 사람과의 성 접촉을 위해 자신을 제공하는 불법행위이다. 우리나라는 매춘을 법적용어로 사용하지 않고, '윤락행위'를 법적 용어로 사용한다고 한다. '윤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행위자(여성)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요즘은 법적 용어인 윤락행위보다 매춘, 한 걸음 더 나아가 매매춘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매매춘은 성을 사고파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성을 파는 여성에게만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성을 파는 여성과 이를 구매하는 남성이 공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그럼 현재 우리나라의 실태는 어떠한까?한마디로, 우리나라의 매춘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역전에 자리 잡은 붉은 불빛들, 다방에서, 심지어는 동네 골목어귀에서. 매춘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신고된 규모만 2~3조, 신고 되지 않은 매춘업계까지 모두 따진다면 우리나라 매춘업계의 연간 매출액은 약 43조원 정도라 한다. 접대부의 숫자 역시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의 가임여성인구 중 15~29세에 해당되는 숫자는 620만 명, 그 중 접대부의 숫자는 120~150명으로 5명당 1명꼴에 이른다. 그렇다면 더 이상 접대부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들의 바로 우리 주변 사람들이다.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매춘현장에서의 경찰은 별 다른 존재의미를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매춘에 관한 법률은 1961년에 만들어진 '윤락행위 등 방지법' 하나가 전부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매춘에 관한 별다른 대책마련이 없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매춘녀들의 가장 큰 목적인 돈이 그녀들에게 순순히 가지 않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점 아닌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매춘업을 벌이고 있는 그녀들의 주변 인물들(심지어 경찰들 까지도)이 대부분의 돈을 착취를 해가고 그녀들에게는 엉뚱한 빚을 만들어주고 있다. 결국 그녀들은 매춘에 종사하며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빚은 계속 쌓이고, 사회에서는 온갖 멸시를 당하고, 사람의 인생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인권 유린을 당한다. 요즘 대중매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듯이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악화 되어가고 있다. 심지어는 떼죽음으로 까지 몰아가고 있으니 말이다.그렇지만 사실 매춘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의 더 타임스에서는 세계에서 연간 1백만 명의 여성들과 아이들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성(姓) 노예시장'에서 매매되고 있다고 최근 보도하면서 성 노예시장으로 밀매되는 여성과 아동들의 숫자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자, 그럼 결론을 내려보자.우리의 실태가 이러한데도 과연 매춘의 합법화는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내가 생각하기로는 매춘의 장점은 없어 보인다. 처음에는 매춘이 사라진다면 성범죄는 급속히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매춘은 사회적 필요악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매춘이라는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성범죄가 더 많지 않은가? 한 때 매춘이 급속히 성장할 1980년대에는 매춘의 수요에 못 미치는 공급을 위해 인신매매가 성행하기도 하였었다. 매춘은 '돈'을 매개로 하여 성폭력을 합법화 하려드는 것 이고, 또한 매춘은 성의 욕구를 합법적으로 분출시킬 방법을 제공할 뿐이다. 매춘을 합법화 시킨다는 것은 매춘행위를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처럼 고민하고 논쟁하지 않을 우리 다음 세대들은 매춘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매춘은 없어질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버리고, 가만히 내버려둔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계속해서 문제들은 생겨나고, 늘어나고 있다. 매춘을 아예 합법화 시켜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 다면 더욱 많은 여성들이 계속해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1.문제의 현황1)노숙자의 정의홈리스를 위한 전국연맹과 유엔의 기준에 따라 우리상황을 보면, 길거리나 공원, 지하철역이나 기차역 등에서 기거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각종 임시보호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 정기적이고 일정한 요건의 주거시설을 갖추지 못해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사람들, 부랑인 수용시설 등 각종 수용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 모두가 넓은 의미의 노숙자 범위에 포함된다.2)노숙자의 실태서울역과 을지로 주변 무료급식소를 이용하는 노숙인 들은 capture-recapture방법을 사용(희망의 집 입소자 수 1,976명+서울역과 을지로 주변의 무료급식소 이용자 2,707=4,683명+ (서울역, 을지로 이외의 지역의 노숙인)) 하였다.현재 우리나라 전역의 노숙인 수는 1만여명 정도이다.그러나 위의 수치는 부랑인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약 1만3천여 명의 노숙인은 제외되었으며, 형제, 친지, 친구 집에 얹혀사는 사람들, 쪽방, 함바, 여인숙, 만화방 등지에서 일세방 형태의 주거생활을 하는 사람들, 정상적인 최저주거 기준에 미달되는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이다.2. 문제의 원인1)노숙자 발생요인[사회구조적 모순] IMF 경제위기 이후 노숙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실업과 사업실패 등의 외부적 충격은 노숙생활을 촉발시킨 계기이지만 그것이 근본원인은 아니다. 이미, 노숙자들의 대부분이 노숙생활 이전부터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하였고 이것을 극복할 사회적 자원-사회보장제도, 민간의 지원 등-의 부족이 노숙자 발생을 촉진시켰다.[사회적 관계망의 결여] 이처럼 노숙생활로 전락하는 대부분의 과정은 빈곤계층의 빈곤화 경향과 거의 일치한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노숙자들의 경우, 오랫동안 혼자서 생활하면서 생긴 비정상적인 주거 생활이 더 주된 요인으로 부각될 수 있다.[개인적 취약함] 노숙생활로 전락하기 직전에 실직, 이혼, 파산 등 특별한 외부의 충격이 있었다고 한다.->불우한 성장배경, 안정되지 않은 직업, 취약한 가족 구성, 외부의 충격 사고2)노숙제 문제로 초래되는 심각한 결과노숙자의 사망문제- 서울시내 거리에서 사망한 노숙자 인원; '98년 479명, '99년 467명, '00년 413명, '01년 313명 등으로 4년 동안 1천 672명에 이르고 있다.늘어나는 알코올 중독자의 문제- 노숙자 심야상담에서 파악된 거리의 알코올 중독자는 전체 노숙자의 80%에 이른다. 거리의 사망자중의 대다수가 알코올에 의한 사망일 것이라고 추정된다.3. 문제에 대한 현재대책많은 수용소가 있고 또한, 급식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여러 응급대책들도 실시하고 있다.4. 대책의 문제점여전히 '수용'중심의 대책이다- 노숙자를 '권리의 주체'인 국민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단속과 격리'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거리 노숙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실무행정에 있어서도 많은 혼선이 생기고 있다.아직도 응급구호 차원의 '임기응변식'단기 조치이다- 노숙자 응급구호 대책은 노숙자가 우리 눈에서 안 보이도록 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예산의 불균형한 분배와 체계성 없는 지원으로 인해 엄청난 예산낭비를 초해하였다.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행정프로그램- 현재의 노숙자 보호대책은 법적 근거 없이 시행되고 있다. 이는 언제든지 정책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근시안적인 대책이 노숙자를 만들어 낸다. - 노숙자 발생원인을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빈곤', '실업', '가정해체'등과 연계하여 바라보지 않고 '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 그 자체로만 바라봄으로써 재활이 가능한 대부분의 노숙자들에게 재활을 포기하고 쉼터에 안주하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노숙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민간 부문의 효율적인 지원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98년 겨울에 갑자기 늘어난 노숙자들에게 지역 사회의 민간 활동이 지원될 수 있었다면 보다 원활한 대처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물론, 노숙자 보호를 위한 사회적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노숙자 대책에 참여하게 된 민간단체들이 정부의 정책에 관리되어지는 형식으로 운영됨으로 지역과의 합의를 이루어 내지 못하였다.5.대책의 대책노숙자 문제는 우리사회의 '빈곤 없애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