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 전을 다녀와서..나는 이번 학기에 ‘미술의 이해’ 라는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미술에 호감이 있었지만 마음먹고 가까이 가질 못해서 이번 기회에 미술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업을 해서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수업을 못 들어 아쉬움이 남았지만, 교수님께서 미술관 감상문을 과제로 내주셨다. 그래서 자의든 타의든 샤갈 전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가기는 어색하고 해서 여자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미술관으로 향 했다. 미술관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아침이지만 시립미술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미술관에는 마당에는 단체로 소풍을 왔는지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천진한 모습을 뒤로한 채 나는 여자친구와 표를 사고 미술관으로 입장했다.미술관 현관을 지나 샤갈의 작품이 전시된 곳으로 향 했다. 샤갈의 일대기와 생전 사진들이 에필로그가 앞부분에 전시되었고, ‘연인’이란 주제의 본격적인 그림이 전시되었다. 이번 샤갈 전은 주제별로 그림을 분류해 놓은 것 같았다.첫 번째 주제는 ‘연인’ 이였다. 샤갈의 초창기 작품과 196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이 바로 연인을 소재로 그린 것 이었다. 50년의 차이로 그려진 이 그림들은 대부분 연인, 가족, 꽃, 담고 있는데 이러한 소재들은 바로 자유와 행복을 나타내는 샤갈의 의도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이번전시전의 포스터로 쓰인 초창기 그림인 ‘도시위에서’ 는 젊은 샤갈의 자유와 행복을 갈망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인상 깊었다.두 번째 주제는 ‘상상’ 이였다. ‘상상’ 에 있는 그림들은 ‘연인’에서 보여준 자유와 행복이 더욱더 확장된 느낌 이였다. 이 그림들도 대부분 초창기 그림들 이였는데, 동물들이 이상한 형태로 등장하는 등 샤갈의 초자연적이고 초현실적인 화가 적 특성을 잘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림 설명에 꿈의 세계와 무의식 속에서 의식화된 그림이라고 써있었는데 정말 그런 표현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그림이 많았다.세 번째 주제는 ‘파리’ 였다. 샤갈이 비록 러시아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파리는 샤갈의 제2의 고향이다. 그런 만큼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들은 모두 1950년대 이후의 작품 이였다. 이 작품들에는 파리의 명물인 에펠탑과 센느강, 샤갈이 살았던 파리 옆의 작은 마을 생폴의 성벽과 종탑 등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배경 소재만 현실적일뿐 실제 묘사는 역시 초현실적으로 나타난다. 노틀담 성당을 유령으로 그리는가 한편 바스티유 광장을 동물로 표현한 것은 그러한 성향을 잘 나타내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었다.네 번째 주제는 ‘서커스’ 였다. ‘서커스’ 는 샤갈의 대표적인 명작들 중 하나로 러시아에 팽배하던 추상에 대한 반발과 민속 주제를 통한 구상회화의 복원을 염원으로 그린 그림이다. 모스크바 유대인 극장 내부 홀의 벽화에서 이러한 성향이 잘 나타난다고 한다. ‘서커스’ 라는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그림들의 주된 소재는 서커스와 관련된 광대, 곡예사, 악사, 서커스단원 들이다. 샤갈은 광대나 곡예사, 악사, 서커스단원들은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기쁘게 하고 또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그림들의 특징은 인물이 다른 주제들보다 상세하게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서커스’ 에서만은 샤갈의 주된 특징인 초현실성을 잘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추상에 대한 반발과 민속주제의 염원이라는 설명과 일치하는 그림들이 아닌가 생각되었다.다섯 번째 주제는 ‘성경’ 이였다. 여기서는 내가 어디선가 본적 한 작품도 보였다. ‘성성이야기’ 는 샤갈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만큼 샤갈 자신이 애착을 가졌던 작품들이다. 성서 내용 표현보다는 색체 사용에 중점을 두고 종이습작과 유화 습작을 반복 하므로 써 그림의 완성도를 높인, 그야말로 색채의 마술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림들 이였다.여섯 번째 주제는 ‘오디세이’ 였다. 바로 호메루스의 대서사 오디세이에 삽화를 샤갈이 그린 것이다. 대부분의 삽화는 지중해의 풍경이 그려졌는데 이는 샤갈이 당시 살던 지중해 마을 ‘방스’를 기원으로 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마지막 주제는 ‘지중해의 세계’ 였다. 샤갈의 말기 작품들로써 야자수, 꽃다발, 해안풍경, 성벽, 중세 탑, 니스해변 등을 주제로 하였다. 말기작품인 만큼 정말 노인의 생각이 깃든 그림들인 것 같았다. 해변 가와 자연을 중심으로 긍정적 세계관과 평화 그리고 조화로운 세계를 강조하는 모습이 마치 동양의 철학사상 같다고 생각되었다.총 7개의 주제로 열린 샤갈 전 관람은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샤갈이 1990년대의 화가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우리와 가까이 있는 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의 소재들도 정말 친숙한 것들이고 그 소재들을 통하여 나타내는 주제들은 모두 우리의 생활과 관련 있는 것이었다. 사랑, 자유, 행복, 조화 이러한 것은 누구나 갈망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잊기 쉬운 것들이기도 하다. 이번 샤갈전은 이런 것들을 한번쯤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샤갈은 예술가들 중에서는 장수한 편에 속한다. 그만큼 다작을 남겼고, 또 같은 주제의 작품이라도 샤갈이 그린 나이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미술관이라는 건물 안에서 샤갈의 자유세계를 느끼고 나오니 입장할 때 보았던 어린이들이 아직도 뛰어놀고 있었다. 따스한 햇빛 아래서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을 샤갈이 보았더라면 또 한 폭의 멋진 그림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샤갈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간단하게 조사를 해 보았다.Marc Chagall (1987~1985)러시아 출신 유대계 프랑스 화가. 비텝스크 출생. 고향마을의 미술학원에서 배운 뒤, 190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왕실미술장려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이듬해에는 L. 박스트의 미술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유럽근대미술에 관한 지식을 배웠다. 10년에 파리로 가서 14년까지 머물렀다. 그 사이에 A. 모딜리아니·C. 수틴·J. 들로네 등을 알게 되었고, 시인 B. 상드라르·G. 아폴리네르 등과도 친분을 맺었다. 또 11년의 앵데팡당 전에 첫 출품을 하고, 14년에는 베를린 데어슈투름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지기 위해 독일을 방문, 그 길로 고향에 돌아왔으나, 제 1 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그대로 러시아에 머물렀다. 15년 벨라 로젠펠트와 결혼하였는데, 이것은 샤갈 작품의 중요한 영감(靈感)의 원천이 되었다. 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비텝스크지역 미술위원에 임명되었으며, 미술학교를 창설하였다. K. 말레비치와 E. 리시츠키를 교수로 초빙하였는데, 말레비치와의 의견대립으로 19년 위원직에서 물러난 후, 모스크바로 옮겨 국립유대극장의 벽화를 그렸다. 22년 베를린, 이듬해에는 파리로 돌아가서 화상 A. 볼라르의 의뢰로 N. 고골리의 《죽은 혼》의 삽화에 손을 대는 등 차츰 파리의 유력한 화가로서 주목을 받는 동시에, 환상적인 작풍은 초현실주의자들로부터 높이 평가되었다. 41년 뉴욕근대미술관 초청으로 미국으로 가서, 제 2 차세계대전중에는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보냈고, 발레 의상과 무대장치를 담당하였다. 47년 파리로 돌아갔으며 50년에는 남 프랑스 방스에 머물렀다. 52년 V. 브로드스키와 재혼, 20세기 회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제작활동의 폭이 넓어 유채·구아슈·판화, 파리 오페라극장의 천장그림, 예루살렘 하다사병원의 스테인드글라스, 그 밖에 조각·도기·무대장치에까지 미치고 있다. 개인적이며 자전적인 내용, 러시아에 대한 향수, 유대인 특유의 전통과 상징에 대한 경애 등 그의 작품의 기조(基調)는 초기에 이미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파리에서 색채의 발견, 입체파의 영향, 상드라르나 아폴리네르 등 전위시인과의 접촉은 그의 예술에 새로운 자양분이 되었다. 색채와 형태에서 자연주의적인 사고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이미지를 시적으로 구성하였다. 입체파의 경향은 곧 색채가 넘쳐흐르는 보다 자유로운 스타일로 전환되었고, 그 뒤 그의 환상적 우의표현(寓意表現)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샤갈미술관에《성서의 메시지(1969∼73)》 작품이 있다.
REPORTSKT와 국민은행KT와 KBS 사례를 통해본 전략적 제휴담당교수 : 문 용은 교수님학 과 : 경영정보학과학 번 : 199891066성 명 : 문 경호제출날짜 : 2003. 12. 8(수)목차Ⅰ. 서론Ⅱ. 본론1. 전략적 제휴의 개념2. 전략적 제휴의 특성3. 전략적 제휴의 이유1) 위험 분산2) 규모의 경제를 통한 제품표준화와 신제품 개발속도의 단축3) 보완적 자원의 공유4) 새로운 경쟁구도의 형성4. 전략적 제휴의 형태1) 자본의 공동 조달 및 융통2) 인력의 상호교류3) 생산원자재의 공동구매 및 공동사용4) 상호 기술개발 및 기술 공동사용5) 원가 절감 방식 및 시장 확대 노력6) 정보 및 시스템의 공유5. 사례 분석1) SKT와 국민은행의 전략적 제휴(1) SKT의 입장(2) 국민은행의 입장2) KBS와 KT의 전략적 제휴(1) KBS의 입장(2) KT의 입장Ⅲ. 결론Ⅰ. 서론한진그룹 계열의 시스템통합(SI) 업체인 한진정보통신은 이달 중 한국후지쯔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해 아웃소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관계사 IT 시스템을 한국후지쯔 인프라로 교체한 후 후지쯔 기술을 활용한 온 디맨드 서비스 형태의 아웃소싱 서비스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최근 들어 우리는 언론매체를 통해 전략적 제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무한 경쟁시대를 맞이하여 기업 간에는 적대적 경쟁과 동시에 협력도 추구하는 새로운 조류가 대두되었는데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 우위 확보 전략으로 전략적 제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경영환경이 촉박할 경우 기업 간의 과열된 경쟁은 자칫 소모전을 초래하여 상처뿐인 패자만을 낳게 될 수도 있는데 산업과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냉엄한 경쟁과 함께 때로는 공생하는 win-win전략을 하는 것이 필수적 이다.전략적 제휴는 경쟁력이 없거나 실패하는 회사의 선택이 아니라 IBM, GE, 도요타 등과 같은 세계 산업의 리더와 같은 기업들이 선택하는 방식이다.전략적 제휴는 80년대 중반일반적으로 협력과 경쟁의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전략적 제휴는 기존의 기업 협력과 구분되는데 상품거래, 하청, 기술판매 등은 기업 간 협력이기는 하지만 전략적인 의미가 약하고 일방적인 관계로 지속성이 약하다는 점에서 전략적 제휴가 아니다.전통적인 기업 협력과 전략적 제휴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구분전통적 기업 협력전략적 제휴협력 목적? 경제적 보완? 범세계적 경쟁우위 확보협력 관계? 선?후진국간의 수직적 분업관계? 주로 선진국 경쟁기업간의 수평적 네트워크? 경쟁이 치열하고 제휴 기업간에도부분 경쟁협력 분야? 기술이전 및 생산하청 등 단순협력? 기술표준 설정, 기술교환, 공동개발?생산?판매 등 광범위하고 복합적3. 전략적 제휴의 이유1) 위험 분산전략적 제휴는 사업과 관련된 비용과 위험을 제휴 관계의 특정 기업이 전적으로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주요수단이다. 새로운 사업 또는 시장으로의 진출에 따른 위험을 분산 할 수 있고, 제휴 파트너와의 협력에 의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전략적 제휴는 상대 기업의 전문지식과 경쟁적 우위 비교를 통하여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큰 사업에 진출할 때 활용될 수 있다.2) 규모의 경제를 통한 제품표준화와 신제품 개발 속도의 단축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을 통합하는 것은 통합 후 비대해진 기업을 운영하기 위한 관리비용이 증가 하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제휴 파트너가 지역 또는 기술 특화를 통해 달성한 규모의 경제는 산업 기술을 표준화하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며 제휴를 통해 달성한 규모의 경제는 신제품 개발 속도를 크게 단축할 수 있게 해준다.3) 보완적 자원의 공유전략적 제휴는 제휴 당사자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기술이나 여타의 숙련된 기법을 이전함으로써 전략적 혜택을 만들어 내어 기업 간의 단순한 지식 이전 이상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상호이질적인 자원을 보유한 기업이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여 협력함으로써 보완적 자산에 대한 탐색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된다. 또한 배타적 자원 협력관계가 가능하게 된다.2) 인력의 상호교류2개 이상의 기업 간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교차 활용하는 제휴방식이다. 여러 업무 분야에 걸친 전략적 제휴를 통한 인적 자원의 상호교류를 함으로써 서로 보완적으로 인적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즉, 공동연구 개발이나 생산?마케팅 등의 제휴에 있어서 기술자나 관리자의 상호 교환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다. 공동연구 개발의 경우, 게스트 엔지니어링(guest engineering)제도를 활용하여 대기업들이 완제품개발과정에 협력업체의 기술진을 참여 시켜 부품 설계 및 개발을 공동으로 수행함으로써 효과적인 기술제휴를 달성한다. 기술교환의 또 다른 방법인 교차 라이센싱 협약에서는 각 회사의 기술자들이 파트너사로 파견돼 기술이전에 참여함으로써 상호인력교류를 통한 전략적 제휴를 이룬다.3) 생산원자재의 공동구매 및 공동사용기업 간에는 원자재 시장에서의 유리한 입장을 견지하고 또 원자재 구매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생산 원자재 구매에 관련된 제휴도 많이 맺고 있다. 즉, 생산제휴의 일환으로서 생산원자재의 공동구매 및 공동 사용을 통해 최소비용 생산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합작투자를 통한 공동 생산에 있어서 원자재의 일괄구매는 생산 원가를 낮추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또한 부품 공용화를 통해 공동 구매 및 공동사용을 촉진함으로써 생산 원가를 낮추기도 한다.4) 상호 기술개발 및 기술 공동사용R&D 비용 및 위험의 경감이나 신기술의 급속한 개발 및 확보를 위해 기업들 간에 상호기술 교환 및 기술공동개발을 도모함으로써 기업의 시장지위를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 전략적 기술제휴이다. 기술의 대형화와 복잡화로 인하여 신기술?신공정?신제품 등의 개발에 따른 투자비용이 대규모화 되어 있고 이에 따른 불확실성이나 위험성도 증대되고 있다.제품의 선두주자만이 시장 지위 구축이나 개발 비용회수 등에서 상대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세계적 기술 경쟁력의 격화로 기술 및 제품수명주기도 짧아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 개발 및 신제 제고를 가져올 수 있다. 특정한 분야에 관련된 핵심정보를 정기적인 기업 간 회의interfirmconference)를 통해 상호 교환하는 정기적인 정보 교류회는 대표적인 정보공유의 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R&D제휴와는 달리 지식교류의 범위를 사전에 명확하게 결정함으로써 상호 교류될 지식의 형평성을 유지하기 용이하고 공개할 지식을 사전에 통제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단점으로는 기본적으로 관련된 핵심 기술 정보기반이 없는 기업들은 사용하기 곤란하며 제한된 범위 내에서 정보교류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하지만 포괄적인 기업 간 정보교환의 전초단계로 사용할 수 있다.5. 사례 분석유비쿼터스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오늘날 방송+통신+금융 산업의 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유무선 인프라를 보유한 우리나라는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방송+통신+금융의 융합 시대에서 우리는 이종 산업 간의 전략적 제휴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통신과 금융에서 SKT와 국민은행의 제휴, 그리고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따른 KBS와 KT의 전략적 제휴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1) SKT와 국민은행의 전략적 제휴"통신 + 금융 시대에서 SKT와 국민은행의 제휴"이동통신 산업끼리 모바일 뱅킹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격돌 했던 국민은행과 SKT가 10월 1일 부로 제휴를 통해 'M뱅크'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 동안 국민은행과 대립해온 SKT가 먼저 손을 내민 결과지만 두 회사의 제휴는 모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러한 제휴가 이루어진 배경에 대해 각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로 하겠다.(1) SKT의 입장SKT는 국내 최대의 이동통신사로 KTF, LGT와 3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특히 SKT와 KTF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KTF는 국내 최대 유선통신 사업자인 KT를 등에 업고, 위성DMB(SKT)와 지상파DMB(KTF), 휴대인터넷, 그리고 앞으로 방송, 통신, 금융 융합 시대의 유?무선통신 사업자로서 하게 되었다.또한, 앞으로 통신+금융 융합 서비스에서 타 통신 사업자에 대한 경쟁력을 높였다. 모바일 뱅킹은 통신+금융 서비스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SKT는 국내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뱅킹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이번 제휴를 통해 어느 정도 모바일 뱅킹 이용이 확대될 전망이다.(2) 국민은행의 입장국민은행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지점과 가입자를 보유한 국내 최대 은행이다. 국민은행이 SKT와의 모바일 뱅킹 서비스 제휴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이익은 이용 고객을 얻었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의 활동 고객 1300만명 가운데 60% 가까이가 SKT 고객과 중복된다. 모바일 뱅킹 서비스는 지난 9월달 말로 이용자는 100만명을 넘어섰고, 모바일 뱅킹을 통한 이체금액도 올 1분기 1조3720억원에서 2분기에는 58.1% 늘어난 2조1690억원에 달하는 등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큰 분야이다.)국민은행은 각종 금융 서비스를 통한 수수료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앞으로 주택청약 접수와 로또복권 판매까지 할 수 있게 되면 그 수익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2) KBS와 KT의 전략적 제휴"통신 + 방송 시대에서 KT와 KBS의 제휴"융합(Convergence) 시대인 요즘 통신방송 융합 분야도 예외일 순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뽑히는 것이 SKT가 준비 중인 위성 DMB서비스이며, 그 외 거의 KBS, MBC, SBS를 포함한 방송사들 및 지역 케이블 방송업체(SORO), 이동통신 사업자(KTF, LGT)가 참여할 것으로 보이는 지상파 DMB가 있다. 여기에서 SKT가 준비중인 위성 DMB 서비스는 위성 제공업체인 TU-Media가 SKT의 자회사라는 점을 들어 전략적 제휴를 통한 e-파트너쉽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KT와 KBS는 SKT가 준비 중인 위성 DMB시장에 진출이 좌절된 사업자로써, 그들이 새로운 사업영역 확보 및 수익 창출을 위한 지상파 DMB시장 진출에서의 전략적 제휴 배경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REPORT환율시장 동향 및 전망담당교수 : 장 병기 교수님학 과 : 경영정보학과학 번 : 199891066성 명 : 문 경호제출날짜 : 2003. 12. 8(월)- 목 차 -환율시장의 동향 및 전망1. 환율시장의 동향◎ 환율 하락세 비상! 희비 교차~2. 환율시장의 전망◎ 엔화 강세 요구 적극화◎ 중국 위안화 절상 압력 증가◎ 외국인 주식투자 환율변화와 밀접히 관련◎ 외국인 주식투자 증가세 지속 예상◎ 북한 핵문제 원화 폭등 불씨◎ 추가적인 강세 수출경쟁력 약화※ 참고 문헌- 환율시장의 동향 및 전망 -1. 환율시장의 동향◎ 환율 하락세 비상! 희비 교차~- 2분기 중 원달러 환율은 전분기말비 5.2% 절상, 전년말비 0.6% 절하돼 1193원을 기록하고 있다. 북핵 보유 관련 소식 등에도 불구하고 미국 달러 약세의 용인, 무역수지 개선 및 외국인의 증권투자자금의 급유입 등에 따라 원달러 환율 하락세가 급진전된 것으로 분석된 것으로 파악된다.요즘 같이 침체된 경제 속에서 그나마 희망을 갖고 있는 수출업계에 최근 비상이 걸렸다.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 있어서 환율 안정 만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최근 몇 개월째 하락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연내 목표 흑자는 물론 목표 경제 성장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지난 2분기 동안만 원달러 환율은 1258.00원(4.4일)의 최고치에서 1184.00원(6.17일)의 최저치까지 큰 차이를 보였고 최근 들어서는 1100원대까지 떨어졌다. 이로써 2분기 원달러 환율은 전분기말에 비해 61.6원 하락하고, 전분기말대비 5.2% 절상했고 전년말대비로는 0.6% 절하된 것으로 평가됐다.이같은 원달러 환율 하락세는 무엇보다도 최근 들어 미국 정부가 달러화 약세(달러화 가치 하락)를 용인한 것에 본격적으로 힘을 받아 무역수지의 개선 및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대규모 순매수세 등에 기인해 도를 지나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일평균 기준 원달러 환율 변동성은 4월중 북한의 핵보유 시인 등 북핵문제의 영향으로 전분기(4.5원)보다 증가한 5.5원까지 증가했으나 5월 이후부터는 주요국 통화에 대한 달러 약세 및 증권투자자금 유입으로 변동폭이 축소돼 지난 분기(4.5원)와 비슷한 4.1원을 기록했다.급작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환율 하락세에 희비가 교차함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수출 기업들은 환율 하락세에 수출상품의 경쟁력이 저하되는 등 가격 경쟁력마저 떨어져 울상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수입물가 하락세에 따른 '국내 물가 안정세'와 외화부채 상환에 대한 부담도 경감도 기대되고 있다.한편 외환시장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의 7월 현재 발행잔액은 올 초 5조원에서 8000억원으로 추정되는 등 발행잔액이 빠른 속도로 바닥을 보이고 있어 정부의 환율 급락을 위한 적극적인 시장개입 참여를 읽을 수 있는 반면 한도액 소진에 따른 환율 방어 능력 저하가 예상돼 충분한 자금확보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2. 환율시장의 전망- 국제외환시장에서 아시아 통화에 대한 절상요구 논의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주식투자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원화환율이 당분간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화환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1,200원 전후를 기록하던 원/달러 환율은 6월에는 1,190원을 중심으로 움직이더니 7월 중순 들어서는 1,170원대로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화는 지난 4월 초의 최고에 비해 80원 가량 하락해 6.8%의 절상률을 보이고 있다. 교역상대국가의 교역량으로 가중 평균한 후 물가변동을 감안하여 계산되는 실질실효환율 면에서도 지난 3개월간 4.1% 절상된 것이다.한국경제 연구원에서는 원화의 하반기 평균환율을 미 달러 당 1,190원으로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외환시장의 여러 가지 상황변화로 LG경제연구원,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은2004년 전망치를 1,190원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엔화 강세 요구 적극화- 달러화 약세의 초점이 유럽에서 아시아 쪽으로 이동하면서 엔화는 물론 중국 위안화와 대만 NT달러, 원화에 이르기까지 절상 요구 논의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해 이후 달러화는 유로화 등 주요국 통화에 대해 약세를 보여 왔다. 특징적인 사실은 유로화 가치가 단기간에 큰 폭으로 절상된 데 반해 엔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는 절상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는 점이다. 7월 중순 현재 달러화는 지난해 12월 초에 비해 유로화에 대해서는 13.3%의 절하율을 기록했지만 엔화에 대해서는 6% 절하에 그쳤다. 급격한 엔화강세를 막기 위한 일본정부의 개입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 각국은 엔화에 대한 절상공세를 펼치고 있다.◎ 중국 위안화 절상 압력 증가- 엔화가치 상승과 더불어 관심을 끄는 것이 중국 위안화에 대한 절상 압력이다. 그간 미 달러화에 고정되어 있어 달러화 약세에 따라 위안화는 아시아 경쟁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제경쟁력이 크게 강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절상 압력이 위안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큰 폭의 대미무역흑자를 보이는 아시아권 전체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원화절상 압력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각국은 일본, 중국과 더불어 대만, 한국 등 아시아 각국에 대해 통화가치를 올릴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2002년 현재 미국 무역수지적자의 22%가 중국과의 무역적자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미국 무역적자의 43%가 이들 아시아 4국에 의한 것이다.◎ 외국인 주식투자 환율변화와 밀접히 관련-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주식투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 주식투자가 증가하면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화 공급이 증가함으로써 원화 강세 요인이 된다.지난 해 우리 나라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투자액은 월평균 2,300억원씩 감소해 연간 2조 7천억원이 순유출되었으나 올 들어서는 월 평균 4,800억원씩 유입되어 7월 중순 현재 3조 3,900억원이 순유입되었다. 특히 5월 이후 외국인 주식투자가 매달 순매입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속도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3월 이후 외국인의 국내주식투자는 주가지수 상승 효과에다 원화강세 요인이 겹쳐져 매우 높은 달러화 환산 수익률을 나타내고 있다◎ 외국인 주식투자 증가세 지속 예상- 향후 외국인의 주식투자 증가세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IT 산업이 이번 경기회복을 선도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국가경제 내에서 IT 제조업체의 비중이 높은 한국이나 대만 등이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향후 세계 경제가 서서히 침체에서 벗어난다면 이번 경기회복은 버블 붕괴로 1990년대 후반의 경기 활황세를 종식시킨 바 있는 IT산업이 선도하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예상이다. 최근 미국의 주가상승 과정에서 나스닥지수 상승률이 다우지수 상승률보다 훨씬 높은 사실도 이러한 예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아울러 원화 강세에 따른 환차익 기대도 우리 나라에 대한 외국인 주식투자 증가와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북한 핵문제 원화 폭등 불씨- 원화 절상으로 인한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우리 정부는 그 동안 중앙은행을 통해 외환매입을 늘림으로써 원화의 절상 추세를 제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부의 시장개입은 추세를 반전시킬 수는 없으며 다만 속도조절의 의미만을 가지므로 정부 개입을 통해 원화절상 추세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한 선진 각국이 아시아 각국에 대해 절상압력을 증가시키는 가운데 금리인하를 단행하는 등 환율전쟁에 나서고 있는 마당에 시장개입도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따라서 원화강세 요인이 여과 없이 시장에 반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와 같은 국제 정치적 요인은 여전히 잠재하고 있어 북한 핵문제가 불거져 나올 경우에는 원화환율이 폭등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3월 초 미국과 북한간 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감으로 NDF 환율(역외선물환 환율)이 폭등하면서 원화가 약세를 보인 바 있다. 향후 북한에 대한 미국의 경제봉쇄 등과 관련되어 양국간 위기가 고조될 경우 큰 폭의 원화약세도 예상된다.
REPORT조선시대의 과학기술담당교수 : 박 종범 교수님학 과 : 경영정보학과학 번 : 199891066성 명 : 문 경호제출날짜 : 2003. 10. 31(금)< 목 차 >1. 조선시대 과학기술2. 조선전기 과학기술1) 과학 기술(1) 조선전기(15C)의 과학 기술의 발달 배경(2) 인쇄 문화의 발달(3) 천문, 측량, 수학의 발달(4) 무기 제조 기술의 발달2) 과학서적(1) 농서(2) 병서(3) 의서3. 조선후기의 과학기술1) 서양 문물의 수용(1) 서양 문물의 수용 과정(2) 서양 문물의 전래2) 천문학과 의학의 발달(1) 천문학의 연구(2) 의학의 발달3) 농업 기술의 연구4) 어업 기술의 발달1. 조선시대 과학기술-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백년 이상을 조선왕조라는 하나의 체제 속에 살아온 한 민족은 안정된 사회 속에서 나름대로의 뛰어난 과학상의 업적을 이룩해 왔다.특히 과학기술의 발달은 15세기의 세종 재위기간(1418-1450). 그리고 18세기 전후에 두드러졌다.과학기술 역시 사회가 안정되고 다른 문화 활동이 활발할 때 더욱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세종 때에는 천문역산학, 기상학, 지리학, 의약학 등이 뚜렷한 발전을 보았고, 농업, 인쇄, 무기 기술 등 도 활발하게 개발되었다.특히 천문역산학에서는 앙부 인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해시계. 장영실의 자격루같은 물시계. 그리고 간의(簡儀), 동표(銅表), 혼의(渾儀), 혼상(渾象)같은 전문기구들이 제작되고 사용되었다.세계에서 처음으로 과학적인 강우량 측정을 위해 측우기를 창제해서 전국에서 활용하기 시작했고, 한강과 청계천의 수량을 측정하기 위해서 수표(水標)를 설치했다. 태조 때 완성된 새 천문도 를 들에 새겨 놓은 것도 세종 때의 일로 보인다.또한 이런 천문역산학의 발달은 서울기준의 완전한 천체운동 계산법을 완성하여 1442년 으로 간행하기도 했다.임진왜란 이후의 문예 부흥은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두드러져 18세기를 전후해서 여러 가지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게 되었다.이시기의 변화에는 중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서양 과학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실학(實學)을 주장하는 관을 비판하고 새로운 과학기술에 눈뜨기 시작했던 것이다.17세기이래 서양의 과학기술은 발달을 계속해서 그 영향을 중국에 미치고 있었고, 중국에 갔던 사신들을 통해 조선에도 그 물결이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이익(李瀷)과 같이 서양 천문학을 예찬한 실학자가 있는가하면,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분명하게 지구의 자전을 주장한 홍대용(洪大容)같은 학자도 있었다.박제가(朴齊家)는 중국에서 서양 선교사들을 초빙해서 그들로부터 앞선 과학기술을 배우자고 주장했고, 19세기초에 정약용(丁若鏞)은 고학기술 수입 담당기관으로 이용감(利用監)을 세울것을 주장하기도 했다.이런 가운데 전통적 시계의 제작방식에 서양식 시계방법을 가미해서 1669년에 송이영(宋以潁)이 만든 것이 혼천(渾天)시계이다.전시된 유물들은 조선시대의 주요 과학기기 들로서 당시의 발달된 과학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다.2. 조선전기 과학기술1) 과학 기술(1) 조선전기(15C)의 과학 기술의 발달 배경ㄱ 부국강병과 민생안정을 위해 기술학을 장려하였다ㄴ 격물치지의 경험적 학풍이 유행하였다ㄷ 유학자가 기술학 겸하였다ㄹ 서역 및 중국의 과학 기술을 수용하였다.(2) 인쇄 문화의 발달* 계미자 - 1403년(태종 3) 계미년에 만든 조선시대 최초의 구리활자[銅活字].* 생생자 - 조선시대에 만든 나무활자로써, 이 목판자 제조의 목적은 종래 사용하 던 구리활자의 크기가 고르지 못하여 인쇄에 능률이 나지 않은 때문이 었으나, 1796년에는 이것을 자본으로 하는 정리자가 주조되어 폐물화 되었다.* 춘추강자 - 철활자로써, 1573년(선조 6) 처음으로 개주갑인자를 철 합금으로 주 조한 이래 춘추강자(春秋綱字:1797)가 쇠로 주조되었다.(3) 천문, 측량, 수학의 발달- 농업 진흥에 대한 관심에서 발달하였다.ㄱ 과학 기구의 발명* 혼의 - 1433년(세종 15) 정초·정인지 등이 고전을 조사하고 이천·장영실 등이 그 제작을 감독하였다. 이로부터 천문학의 기본적인 기구로서 조선시대 천문역법의 표준시계와 같은 구실을 하게 되어 1657년(효종 8)에는 최유 지가, 1669년(현종 10년)에는 이민철과 송이영이 각각 만들었다. 이 중 송이영의 것은 서양식 자명종의 원리와 특징을 잘 살펴 추를 시계장치 의 동력으로 이용한 것이다.* 측우기 - 측우기는 안지름이 주척으로 7치(14.7 cm), 높이 약 1.5척의 원통으로 되어 있는데, 비가 올 때 이 원통을 집밖에 세워 두면 빗물을 받을 수 가 있다. 측우기에 괸 물의 깊이는 자로 측정한다. 즉, 대를 관상감에 만들어서 측우기를 대 위에 올려놓고 비를 받도록 하는데, 관상감의 관원이 직접 주척으로 물의 깊이를 측정하여 보고한다. 조선 세종 때 의 측우기가 과학사상 뜻깊은 것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쓰였다는 사실 이다.* 물시계 - 적당한 용기에 물을 채우고, 아래쪽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물을 유출 시켜, 수면이 내려가는 것을 보고 시각을 측정하는 장치.* 해시계 - 지구의 자전에 의하여 물체의 그림자가 이동하는 것으로부터 시간의 경과를 측정하는 장치.♣ 정남일구(定南日구)- 지남철을 사용하지 않고도 정확한 시간을 재도록 고안되어 있으며, 가늠대와 지평환으로 천문관측을 통해 방위를 잡아 측정하도록 한 혼천의 해시계의 일종이다.ㄴ 수학* 산학계몽 - 조선시대의 기본 산서의 하나인 산학계몽은 그 후 여러 번 복각되어 간직되어 온 중간본이 청조에 이르러 발견되어, 다시 복각본으로 중 국에 역수입되어서 그 내용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 화산의 원류가 된 것도 조선판 산학계몽이다.(4) 무기 제조 기술의 발달ㄱ 화약 무기 제조ㄴ 병선 제조 : 거북선(태종), 비거도선2) 과학서적(1) 농서 : 우리 나라의 전통적 농법에다가 우리 풍토에 적합한 농사기술을 소개함* 농사직설 - 1429년(세종 11) 간행된 것으로, 종래에는 중국의 농서에만 의존하던 것을 풍토에 따른 농법의 차이를 고려하여, 각도 농부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국내 실정에 맞게 만든 것이다. 내용은 비곡·종마·종도· 종서속·종맥·종호마 등의 10항목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먼저 종 자와 토양 다루기를 설명하고, 각론에서는 각종 작물의 재배법을 간 결하게 서술하였다. 그 후 1492년(성종 23)에는 내사본으로 왕실에서 반포하고, 1656년(효종 7)에는 《농가집성(農家集成)》에 포함시켜 10행본으로, 86년(숙종 12)에는 숭정본으로 각각 간행되었다.* 사시찬요 - 강희맹(1424∼1483)이 세조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것이다. 내용은 1 년 4계절의 농사와 농작물에 관한 주의사항 및 1년 12개월 간 행하 는 행사 등을 기록한 것이다.(2) 병서 : 우리 나라의 지형에 적합한 전술. 역대의 전쟁사를 정리하였다.* 진도 : 우리 나라 지형에 적합한 부대 배치법을 정리하였다.* 병장도설 : 무기 제조술, 사용법을 정리하였다.* 동국병감 : 한 무제의 고조선 침략이후 고려말까지 우리와 중국과의 싸움을 정 리 하였다.(3) 의서* 향약집성방 - 모든 질병을 57대강문(大綱門)으로 분류하고 다시 그것을 959조의 소목으로 나누어 각 강문과 조목에 해당되는 병론과 방약을 출전 과 함께 일일이 논거하고 있다. 그밖에 책머리에는 자생경에서 가 려 뽑은 침구목록을, 책끝에는 향약본초의 총론과 각론을 각각 첨 부하고 있는데, 특히 총론 중에는 제품약석포제법이 실려 있다.* 의방유취 - 중국 역대 의서 수집하여 정리하였다.3. 조선후기의 과학기술1) 서양 문물의 수용(1) 서양 문물의 수용 과정- 우리 나라의 실학사상의 대두로 인해, 중국을 통한 사신의 왕래가 오가게 되며 천주교의 전래를 통해 서양 문물이 우리 나라로 들어오게 되었다.(2) 서양 문물의 전래{중종 3년명의로부터 서양포 전래선조 36년이광정이 유럽 지도 전래선조 ~ 광해군이수광이 천주실의 소개인조 6년박연에 의한 횻이포 제작인조 9년정두원이 천리경, 자명종, 천문세 전래인조 23년소현세자에 의한 과학, 천주교 서적 전래효종 4년하멜에 성력, 포술 전래효정 5년김육에 의한 시헌력 채택2) 천문학과 의학의 발달(1) 천문학의 연구ㄱ 이수광 : 일식, 월식, 벼락, 조수의 간만 등에 대하여 연구하여 언급하였다ㄴ 지전설 주장 : 김석문, 홍대용, 정약용, 이익등이 주장하였다.(2) 의학의 발달- 실증적인 태도에서 임상과 이론의 일치에 주력하였다.⊙ 17세기* 동의보감 - 허준은 실사구시의 실증적 학구의 자세와 명민한 관찰력, 그리고 고 전에 대한 해박한 학식을 토대로, 풍부한 임상경험을 살려 기본학리 가 임상에 직결되기까지 일관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의술의 구체화를 이룩하였다. 그 결과 14년 후인 1610년(광해군 2) 8월 6일 마침내 25권이라는 방대한 의서가 완성되었고, 《동의보감》이라 이 름하여 1613년 11월에 개주갑인자로 인쇄, 간행되었다. 이 책은 내과 에 관계되는 내경편 4권, 외과에 관한 외형편 4권, 유행성병·급성 병·부인과 소아과 등을 합한 잡병편 11권, 약제학·약물학에 관한 탕액편 3권, 침구편 1권, 목차편 2권, 계 25권으로 되어 있다.
1. 한국 통상정책의 변천과정(1) 한국 통상정책의 개관- 한국의 통상정책은 1960년대이래 경제발전의 주된 수단이었던 수출위주의 무역정책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성장이 수출에 의하여 주도되었지만 이는 수입의 증가를 불가피하게 수반하였으므로 결과적으로는 전반적 무역확대형 산업구조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통상정책은 이러한 구조적 특징, 세계경제환경의 변화, 그리고 경제규모의 확대에 따른 쌍무간, 다자간 통상관계의 변화에 따라 수립 및 집행되어 왔다. 1980년대 중반에는 거시경제의 안정을 이룩하였고 우리상품의 국제 경쟁력을 향상시키게 되었는데, 이는 그 당시 환율, 국제금리, 국제유가 등 3저현상의 대외적 요인이 호전됨에 따라 우리 경제는 1986년부터 4년간 상당한 규모의 국제수지흑자를 기록하게 되었다.이렇게 국제수지흑자가 시현됨에 따라 1988년에는 IMF8조국으로, 1989년에는 GATT11조국으로 각각 이행하였으며, 이는 앞으로 우리 나라가 외환거래 및 무역자유화를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약속한 것이었다.그러나 우리 나라의 국제수지는 1990년에 다시 적자로 반전되었다(표1 참조) 이러한 국제수지적자가 지속되는 가운데 1995년 WTO 출범시에 정식 회원국으로 참여한 우리 나라는 1996년에는 OECD에 가입함으로써 선진국 대역에 올라서는 듯하였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가 우리 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국내외환시장에서의 달러화 부족으로 원화 환율이 폭등하고 일부 금융기관들이 외채불능상태에 직면하는 등 외환위기가 증폭되어, 1997년 11월에는 IMF에 긴급 지원금을 신청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이러한 IMF 관리체제하에서도 1981년대부터 추진되어 온 개방과 자유화의 기조를 계속 유지하면서 국내산업의 구조조정과 함께 우리 나라의 경제규모에 맞는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제고하고 무한경쟁시대에 우리의 통상이익을 확보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통상정책을 전개하고 있다.(표1) 한국의 교역 추이{199019911계경제의총체적 후생극대화통상정책의 기본방향국가이익의 조정전략통상정책의 세부방향*중상주의적 정책기조-경쟁위주의 통상정책-수출지원,수입규제정책*수출을 통한 경제성장 전략 추진*수입규제 및 국내산업 보호정책 추진*다자간협상에 수동적참여*자유주의 통상정책으로 전환을 모색_통상마찰 심각화-소극적 통상정책*무역확대에 관심-수입의 긍정적 측면부각*통상마찰 해소에 초점-시장개방 확대*APEC참여-양자협상에 치중*상호이익이 되는positive-sum전략 추진-개방과 자유화 기조유지-국제적 정책조정 필요*무역의 확대균형-수출과 투자를 통한 IMF체제의 극복*외국인 투자 등 산업협력의 활성화 도모*다자 및 지역협상에 적극적 참여(표2) 우리 나라 통상정책의 변천과정자료 : 세계통상질서와 한국의 통상정책 신낙균 1998 P.94(3) 한국 통상정책의 특징- 한국 통상정책의 특징은 시기별로 다르다. 한국의 통상정책은 1960년대이래 경제발전의 주된 수단이었던 수출위주의 무역정책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통상정책은 이러한 무역확대형 산업 구조적 특징, 세계경제환경의 변화, 그리고 경제규모의 확대에 따른 쌍무간 혹은 다자간 통상관계의 변화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첫째, 한국의 통상정책의 시대별 특징을 살펴보면, 1970년대는 공업화의 추진과정에서 수반된 수출촉진 및 수입대체정책, 오일쇼크, 그리고 중화학공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인한 경제의 조정국면 등으로 인해 수입자유화 정책기조가 단속적으로 중단되고 보호주의적 정책이 강화되었던 것이 특징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물량위주의 수출로 인한 통상마찰과 소극적 통상정책의 추구되었으며, 전반적인 시장 개방화의 일환으로써 수입자유화가 가속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WTO{) WTO :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 제를 대신하여 세계무역질서를 세우고 UR(Uruguay Round of Multinational Trade Negotiation럽법과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의한 EC(European Community:유럽공동체)의 새로운 명칭., 일본 등 선진국의 통상공세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방어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마지막으로 한국은 지역간, 다자간 협상의 적극적 참여하고 있다. 최근 한국은 대미 수출의존도의 감소, 국내시장개방 확대, 무역불균형 해소, 그리고 WTO 체제의 출범 및 APEC, OECD의 가입에 따른 지역적, 다자간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WTO를 통한 다자간 통상분쟁의 해결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동안 축적한 통상분쟁 해결 지식 및 경험 등으로 과거의 순응식 통상관계 및 정책의 수립에서 어느 정도 적극적 통상정책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4) 한국 통상정책 수단의 특징- 한국의 통상정책은 타국에 비해 특별한 것은 없으며, 최근 WTO 체제의 출범에 따라 국제수준에 맞게 많이 정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수입에 있어서 약간의 품목에 대한 수량규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수입제도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통관절차를 간소화하고 있다. 원산지규정도 현재 WTO 및 국제관세기구(WCO)에서 추진 중에 있는 원산지규정 제정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정부조달협정 역시 한국은 UR 정부조달협정 확장협상에 참가하여 최종 양허안을 제출하였으며, 1994년 4월 협정에 가입함에 따라 1997년부터 본 협정의 적용을 받고 있다. 그리고 반덤핑법, 세이프가드{) 세이프가드 : 특정상품의 수입급증으로부터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취하는 긴급수입제한 조치., 보조금, 상계조치 등의 공정 및 불공정무역 관련 제도, 외국인 직접투자 및 서비스시장 관련 제도 등도 최근 대폭 정비되었다. 이러한 통상관련제도의 정비는 WTO, OECD 등의 다자간 협상, 선진국, 특히 미국의 통상압력, 그리고 IMF{) IMF : 세계무역 안정을 목적으로 설립한국제금융기구체제하의 외자조달의 원활화 등의 요인에 의해 추후 진전될 것이다.한국 통상정책수단의 특징으로 불공정 무역규제의 도입을 들 수 있는데, 이적인 조치에 근거한 부당한 통상압력으로부터 효과 적으로 보호할 수 있게 하였다. WTO는 지역무역협정이 역외국가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감시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이는 우리 나라가 어떠한 경제 블럭에도 속하지 않고 있음을 고려할 때 다자간 체제가 가져다주는 또 하나의 장점이라 하겠다. 이러한 다자간 체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각종 다자간 규범제정 논의의 초기단계부터 참여하여야 하며 분야별로 우리 나라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국가들과의 연합(coalition)을 통해 협상력을 높이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2) 능동적인 통상정책 구사- 우리 나라의 대외개방은 최근까지도 미국 등 외부로부터의 압력 때문에, 또는 우리의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추진해 온 경향이 없지 않다. 즉, 대외개방을 가능한 한 늦춤으로써 시간을 벌어 국내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정책담당자의 기본전략이었으며 우리 기업의 희망사항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미국 등 교역상대국들이 제기하는 개별 통상현안에 대한 문제의 해결이 우리 경제에 어떠한 효과를 가져다주는가를 판단하기 이전에 그것을 대부분 부당한 것으로 간주해 왔다. 이러한 통상 현안들을 교역상대국의 압력수준에 따라 마지못해 해결해 나가는 매우 소극적인 대응방식을 취해 왔다. 이제 OECD의 정식 회원국이 된 우리 나라는 미국 등 주요 국들과의 통상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겠다는 차원을 넘어 무한경쟁시대에서 생존하고 더 나아가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이루겠다는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차원에서 통상정책을 펴나가야 하겠다. 또한 우리는 세계 각국과 지역이 무역 및 투자의 자유화를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배타적인 경제 블럭화로 발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게 하였던 지역주의 현상도 최근에는 기본적으로 역내 무역·투자자유화를 가속화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이와 같은 자유화의 경쟁적 추진(competitive liberalization) 추세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이를 회피하기보다는 능동적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그 나라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국내 기업이나 국내 생산요소들까지도 가능하면 더 매력적인 경제활동여건을 찾아 국외로 진출을 모색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 산업공동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각국은 매력적인 경제활동여건을 제공함으로써 범세계화 움직임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경쟁적으로 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과연 우리 나라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 높은 토지가격과 임금, 매년마다 되풀이되는 갈등구 조의 노사관계, 미흡한 지적재산권 보호제도, 불투명하고 비합리적인 무역관련 정책 및 제도, 복잡하고 일관성 없는 외국인투자 절차, 낙후된 금융서비스 및 부자유스러운 자본·외환거래, 각종 행정규제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 나라의 경제활동여건은 경쟁국과 비교해서 뒤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결과는 매우 명백하다. 우리가 희망하는 핵심분야에 대한 외국인투자와 기술도입이 주변의 경쟁국들보다 부진한 것은 이미 통계가 말해 주고 있다. 특히 수년 전 엔고로 인해 일본기업의 한국진출 기회가 절정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기업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우리 나라의 경제활동여건이 얼마나 열악한 지를 잘 대변해 주었다고 하겠다. 또한 이로 인한 주요 국들과의 통상마찰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이제 우리 나라의 기업은 우리 나라 안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한국기업과 외국기업을 다함께 내포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경제활동여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정책, 제도, 관행을 검토하여 주변 경쟁국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여건조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인 경제활동유치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가 WTO 체제의 출범과 OECD 가입을 계기로 대외적으로 약속한 자유화조치 및 제도개선 사항들은 바로 이러한 여건조성의 일환으로 차질 없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4) 공신력 있는 대외개방전략의 추진- WTO, APEC, OECD 등 다역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