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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얼리즘문학]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Ⅱ. 리얼리즘 작품 감상하기(「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목 차1. 서론2. 리얼리즘의 특징3.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차이점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드러난 리얼리즘적 성격5. 2005년 12월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6. 결론*참고문헌*1. 서론문학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이상과 현실의 문제, 낭만과 사실의 문제는 항상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 현실의 문제, 사실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민중들이 살기 힘든 시기에 더욱 많이 나타났다. 배불리 먹고 무엇을 해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면 그 누구도 현실에 불만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업자가 늘어나고, 학교를 나와도 딱히 전공을 살릴 수도 없는 요즘 같은 시기일수록 현실에 대한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시대에 따른 최저 임금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아가면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많은 불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점차 누적되어 결국은 폭발을 하게 된다. 그 폭발은 데모, 시위, 집회와 같은 적극적인 것 일 수도 있다. 또는 부조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작품을 통해서도 실현할 수 있다. 이 때에 현실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기 위해 등장한 일련의 작품들을 리얼리즘 문학에 포함시킨다. 이러한 배경을 인식하면서 리얼리즘 문학이 가지는 현실 폭로의 문제에 대해 접근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2005년의 대한민국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따라서 여기서는 조세희의 대표작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중심으로 당시에 나타난 사회에 대한 인식과 현재의 모습이 어떻게 닮아 있는 지를 살펴보고, 그를 통해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방법에 대해 모색해보도록 하겠다.2. 리얼리즘의 특징리얼리즘(Realism)이라는 단어는 실재라는 의미의 ‘Realis'에서 유래하였다. 철학적으로는 명목론인 'Nominalism'에 대립하여 등장함으로써, 각각의 실체에서 추출해낸 개념과 이성에 의해 파악된 것만이 본질이라고 보게 되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명분과 도의에서 탈피하여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라가는 것에 치중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하여 등장하였다. 그리고 문학적으로는 철학에서 차용하였으나 그것을 더욱 심화, 발전시켜서 19세기 중엽부터 발달하기 시작했다. 또한 감성으로써 세계를 인식하며 현실을 부정했던 낭만주의에 대해 반발하는 경향을 가지며 등장하였다. 이러한 리얼리즘의 발달에는 산업의 발달로 중산층이 확고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부의 추구와 함께 현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는 것이 바탕으로 작용한다. 또한 물질적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리얼리즘이 더욱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학의 발달로 인해 진화론과 자연주의가 관심을 끌고, 낭만주의가 추구하던 이상세계가 신념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에 의해 리얼리즘은 더욱 발전하게 된다.리얼리즘은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사회의 모순에 대해 개선과 변화를 추구한다. 따라서 현실적 상황과 대결하는 구도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의 어두운 면과 추악한 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고전주의가 추구했던 조화의 아름다움, 낭만주의가 추구했던 개성과 독창성의 아름다움을 탈피하고 부정적 현실까지도 그대로 드러내는 진실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었다.3.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차이점리얼리즘 문학은 대부분 현실적 인물, 그 중에서도 하층민들의 이야기에 대해 다루는 것이 많다. 따라서 그 주제 또한 사랑과 같은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빈부, 선악, 신구와 같은 대결의 구도를 보여 주는 것이 많다. 그리고 작가는 될 수 있는 대로 자신의 정체를 숨김으로써 작품에서의 객관성을 획득하고 이를 통해 현실 문제를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내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사건을 제시함에 있어서 화자, 혹은 작가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것은 묘사라는 방식을 통해 실현되며 우리는 이를 통해 현실의 문제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리얼리즘은 평민층의 현실 삶을 객관화하고 산문화하여 이야기 형식으로 엮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이에 반해 모더니즘은 지식인이 등장하여 자의식을 드러냄으로써 전개된다. 그리고 불만과 불안에 가득 차 있지만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작품속의 인물은 한정적이고 상징적인 배경 속에서 자신만의 생각으로 일관되게 주위의 일들은 인식한다. 따라서 고백적 성격을 바탕으로 한 내적독백의 형식이 주로 사용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모더니즘에는 자기 스스로의 마음을 그려낸 심경소설(심리소설)과 주위의 일상 사람이나 생활을 솔직하게 그려낸 신변소설(사소설)이 많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모더니즘이 그 음울하고 내적인 면에 집착한 것에 초점을 두어 ‘지하’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리얼리즘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시간을 바탕으로 하기에 ‘지상’의 문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드러난 리얼리즘적 성격난쏘공에서 특이한 점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제시된 이야기이다. 총 12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들어가고 나오는 부분에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먼저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 씨의 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 씨의 병을 우선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면 기존 관념을 깨뜨린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난쏘공에서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고, 하나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가 교차하며, 공문서와 같은 현실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등 기존의 관념을 넘어선 형식상의 특성이 나타난다. 이것을 단순히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파악한다면 난쏘공에서의 형식적 특이성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존의 관념, 질서로 대표되는 것들이 뒤틀리고 잘못되어 있어 교정을 요구한다는 점을 형식적인 특이성에서 발견해야 한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이것을 내용의 측면으로 좀 더 살펴본다면, 안과 밖이 공존하는 뒤틀린 세상을 제시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개인이나 가정이라는 내부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 역시 현실이라는 바깥의 테두리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이 바탕이 되어 있을 때, 우리는 난쏘공에 대해서 좀 더 심도있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다음으로 하고 많은 유형의 사람들 중에서 왜 난장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는가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난장이는 국가의 강압아래에서 끊임없이 노동을 해야했고, 그에 따른 제대로 된 보상 한 번 받지 못했던 당시의 노동자들과 하층민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생각이 있고 그것을 통해 사고 할 수 있지만 누구도 그들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단지 키가 작다는, 돈이 없고 남들보다 속한 계층이 조금 낮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신체적 한계를 통해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는 노력을 하여도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는 조건으로 인해 차별을 받고 고통을 받는 모습에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나약하다는 이유로,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궁지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난장이라는 인물은 생득적인 한계를 지녔다는 특징과 함께 반대의 의미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제시된다. 철거촌에서 집을 사서 많은 이익을 남기고 팔아 넘겼던 중계인들, 대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들은 모두 하나같이 멀쩡한 육체의 소유자이다. 난장이는 키가 작음으로써 낮은 곳에 있는 것들을 더 자세히 보게되고 그로 인해서 작은 생명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명의 소중함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희망 또한 지니게 된다. 그러나 정상인인 사람들은 권력을 쥐고, 경제력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밑은 보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난장이라는 인물설정을 통해 현실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로 접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끊임없이 노력해도 남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 상황에서도 소중한 꿈과 희망을 놓지 않는 하층민에 대한 연민의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앉은뱅이와 곱추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유 역시 난장이의 등장과 같은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난쏘공에서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소재나 인물의 설정면에서는 다소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면에서 접근하는 특징을 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관념성은 오히려 현실의 문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해볼 필요성을 제시한다는 점이 의의라 할 것이다. 그 외에 난쏘공에서는 현실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제시하는 부분이 많다. 수도를 고치러 갔다가 다른 수도업자들에게 매를 맞고 돌아오는 난장이, 집안을 위해 공부를 포기한 영수,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몸을 파는 영희, 그 속에서 방황하는 영호 등의 모습을 상세하게 그려놓았다. 또한 난쏘공은 은강이라는 기계도시 속에서 얼마나 착취를 당하며 일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은강 노동자 가족의 생계비’에 대한 처절한 설명까지 듣고 난 뒤에 독자들은 사장을 죽이러 나서는 영수의 발걸음을 그 누구도 막지 못하게 된다. 이 역시 난쏘공만의 매력이라 하겠다.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 씨의 병처럼 복잡하기만 하고 어느 쪽으로도 뚫고나갈 방도가 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의 선택을 독자 역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표현이나 구성상에서의 뒤죽박죽 혼재된 많은 요소들을 통해 차라리 모더니즘적 특징을 보인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당대의 현실 문제에 대해 이렇게도 집요하고 끈질기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조세희는 난쏘공이라는 리얼리즘 문학의 극치를 보여주게 된다.
    독후감/창작| 2006.06.22| 4페이지| 1,000원| 조회(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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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문]물랑루즈감상문
    목 차1. 작가는 사회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2. 작가는 왜 왕이 아닌 떠돌이 악사와의 사랑을 꿈꾸었나?3. 변화하는 사회, 앞으로의 선택.1. 작가는 사회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문학, 영화, 뮤지컬, 연극 등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작품은 관객에 대한 신경을 쓰고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특히 그 관객이 자신들의 작품에 경제적인 지원을 담당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은 관객이 작가가 가장 신경쓰는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아마 ‘돈’문제와의 관련성 때문일 것이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내면에서 발생한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작품을 쓴다. 그러나 작가가 백만장자가 아닌 이상, 작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이중의 부담을 안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돈’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대상에 대해 작가는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약자의 입장에서 작가가 쓴 작품에는 어떠한 식으로든 권력자, 또는 관객에 대한 의식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단순히 작가의 배려라고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사회의 권력 구조에 편승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지금부터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2. 작가는 왜 왕이 아닌 떠돌이 악사와의 사랑을 꿈꾸었나?남자 주인공이 작품을 써야하는 이유, 여자 주인공이 공작에게 잘 보여야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공작의 금전적 지원을 얻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작가라는 직업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칠만한 작품을 쓰기 전까지는, 그리고 자산이 넘칠만큼 풍부하지 않을 경우에는 누군가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지원을 얻기 위해 권력자나 재벌가를 찾게된다.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나타내는 것이 천직이기에 그것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와는 달리, 권력자나 재벌가는 자신의 흥미와 관심에 맞는 작품을 손에 쥐길 바란다. 여기에서부터 갈등은 시작되는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쓰는 이유는 현실에 대해 하고 싶은 말, 내뱉고 싶은 생각이 많은 까닭이다. 현실이 만족스럽고 행복한 사람은 작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된다고 한들 이상주의, 낭만주의에 빠져 공주와 왕자만 나오는 동화같은 작품만 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작가라면 현실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저항의 형식이든, 미적 승화가 된 형식이든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창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할 말이 많다는 것이고, 이러한 작가의 말은 작품에 녹아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의 사회에 대한 저항, 또는 반항과는 관계없이 권력자와 자본가는 자신의 위치에 도움이 되거나 자신의 흥미를 끌 수 있을 만한 것에 투자를 하고자 한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대기업이 영화나 드라마에 투자함으로써 자신들의 기업을 선전하고, 그를 통해 또 다른 이익을 창출하려는 속셈과 맞닿아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이윤을 남겨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권력자와 자본가이기 때문이다.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결말을 악사와 여주인공이 함께 사랑을 약속하며 떠나는 것으로 설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투자자인 공작은 그것을 반대하고 왕과 함께 사는 것으로 끝을 맺으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아마 공작이 자신의 위치에 대해 위협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자신의 말을 순종하며 들어야 하는 작가와 여주인공이 그를 배신하고 서로의 사랑만을 이루려 하는 데 대해 자신의 권위를 보이려 함이었다. 이것은 당대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의 핵심부라 할 수 있는 귀족들에게 점차적으로 서민들은 도전을 하기 시작했고, 서민중에서도 자본가가 나올 정도로 사회는 급변화 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귀족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발악으로 더욱 강하게 하층부의 사람들을 억압하였던 것이다. 만약 작품의 결말이 왕과 여주인공의 결혼으로 끝이 났다면 그것은 아직 그 사회가 귀족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은 결국 일반인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것은 밑에서부터의 저항이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저항은 작가의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영화의 시작이 모든 사건이 끝난 뒤, 남자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며 그 이야기를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쓰는 것이었다. 그 말은 자신의 입장에서 귀족과의 대립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작품을 썼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말을 악사와의 사랑으로 끝낸 것 이상의 저항이라 할 수 있다. 귀족들은 권위주의에 빠져 자신들의 말 한마디, 손가락 하나의 까딱임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더 이상 그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일반인들의 생각이 드디어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랑루즈에서 있었던 일을 작품화하는 남자 주인공의 행동은 모든 것을 폭로하고 공작을 벌거벗겨서 사람들 앞에 세우고자 한 것이다. 과거라면 생각도 못했을 이러한 반항은 작가에게 조금씩 자유가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더 이상은 권력에 휘둘리고, 투자자에 휘둘리는 작품을 쓰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지 표출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잠깐 나온 한 장면일 뿐이지만 물랑루즈의 사장이 공장을 패는 장면 또한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다. 이것은 역시 당시의 사회가 부르주아에 의해 귀족 세력이 무너져 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가 귀족과 맞서는 방법이 재력의 획득이었다면, 작가가 귀족과 맞서는 방법은 자신의 작품을 자기의 뜻대로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작품은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말을 건내기 위해 썼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과거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오로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많고 모든 것을 다 해 줄 수 있는 왕과의 결혼이 아닌, 가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사랑할 수 있는 악사와의 사랑으로 끝을 낸 것은 단순히 애정이라는 면에서 볼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권력 때문에 방황하던 작가가 드디어 그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뜻을 작품에 반영할 수 있게 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독후감/창작| 2006.06.22| 3페이지| 1,000원| 조회(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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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친절한 금자씨 감상문
    목 차1. 들어가며2. 주제와 창작의도3. 극적요소1) 플롯2) 인물3) 배경4. 시각요소1) 영상2) 카메라의 움직임3) 편집5. 음향과 영화음악1) 대사2) Ost6. 나오며1. 들어가며 - 친절한 금자씨와 친절하지 않은 금자씨‘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는 오히려 친절하지 않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이영애의 아름다운 외모와 의상 등을 보고 반해서 보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그녀의 처절한 복수극에 오히려 놀라고 만다. 그렇다면 과연 ‘친절’하지 않은 금자씨를 왜 ‘친절’하다고 했을까? 순수했고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의 금자, 정말로 친절했던 그녀가 친절하지 않게 되어버린 이유를 영화에서는 제시한다. 이렇게 제목에서부터 감독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영화속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과 무서움의 공존, 착한 척 하며 하는 금자와 그 이면에 숨겨진 복수심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의미를 제목을 통해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금자씨는 단순히 예쁜 여자 배우가 나오는 영화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아름다움과 피로 물든 복수가 공존하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 김기덕이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우리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친절한 금자씨’가 ‘친절하지 않은 금자씨’로 바뀌는 과정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영화의 요소들을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2. 주제와 창작의도‘친절한 금자씨’는 감독의 복수 시리즈의 세 번째이자 완결작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주제를 단순히 복수라고 볼 수는 없다. 금자가 복수를 끝내고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한 이후의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사람들은 금자의 복수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죽은 원모가 나타나 금자에게 재갈을 물리며 ‘너도 가담했잖아’라고 하는 장면을 보면 결국 감독의 의도는 처절한 복수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감독은 어느새 자라나 성장하고 담배까지 피는 원모를 나타냄으로써, 복수라는 것 자체에 의문을 제시한다. 원모를 위해, 다른 죽은 아이들을 위해 복수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죽은 아이들을 모는, 어른들의 복수심과는 상관없이 고통을 받으며 죽어갔던 아이들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감독은 원모가 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른이 된 원모가 그 고통스러웠던 경험 때문에 정상적으로 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비친다. 그리고 이왕에 저질러진 살인에 대해, 원모가 원했던 것은 백선생에 대한 복수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원모가 복수를 원한 것이라면 다른 죽은 아이들과 함께 금자에게 나타나 천진한 얼굴로 행복하게 승천하는 모습이라도 나와야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원모는 오히려 복수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 금자를 조롱이라도 하듯 그녀를 대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복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복수를 주제로한 영화는 아닌 것이다. 이것은 역시 제목인 ‘친절한 금자씨’의 반어성과도 연관된다. 복수를 하는 순간 세상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처럼 후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원모에게 마저 인정받지 못하며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죄책감으로 남는 것이다. 이것은 ‘올드보이’와도 비슷하다. 딸의 정체를 알아버린 몬스터로서의 오대수가 죽기를 바랬으나 결국 남은 것은 몬스터였다. 따라서 ‘올드보이’에서도 주인공 오대수는상처와 아픔, 딸과 아버지라는 진실을 평생의 짐으로 가지고 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것은 용서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혹은 모두 지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과거의 상처는 치유되기 힘들다는 것이다.이러한 점에서 살펴보았을 때, ‘친절한 금자씨’의 주제와 감독의 창작의도는 남에 대한 복수보다는 차라리 그 자신을 돌아보는 진실한 반성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3. 극적요소1) 플롯‘친절한 금자씨’를 보고 백선생을 금자와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처절히 죽이는 부분을 가장 충격적으로 인식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 복수 부분을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감독의 숨은 의도를 위의 2에서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살펴볼 때, 클라이막스는 어른이 된 원모와 금자의 만남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이 복수를 끝한 부분은 눈이 오는 배경에서 금자가 하얀 케이크를 들고와서 제니와 함께 먹는 장면이다. 이 부분은 진정한 복수란, 백선생과 같이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용서하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 인물극중 인물들은 하나 같이 이중적인 면모를 지닌다. 금자 이외에도 감방 동기로 나오는 여러 여성 또한 자기의 내면을 출소와 함께 모두 정화 받은 듯 깨끗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금자를 위해 백선생의 아내 노릇을 하던 여자, 아름다운 장식을 만들지만 그 의도는 아름답지 못했던 여자 등이 이중적인 면모를 보인다. 가장 중심인물인 금자 역시,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남편과 상대여자를 죽여 먹었던 마녀라 불리던 감방의 여인과 다를 것이 없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것은 백선생을 죽인 후 부모들과 둘러 앉아 핏빛 케이크를 먹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마녀라는 여인이 했던 행동과 금자의 핏빛 케이크가 전반과 후반에 교묘하게 배치되어 금자의 행동이 정당화 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또한 여기에서 무엇이든 아름다운 것이 좋은 것이라고 얘기하는 금자는 오히려 행동은 아름답지 못하게 함으로써 대비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금자’라는 이름과 ‘백선생’이라는 이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금자’는 누구나 들으면 수용가능한 평범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외모는 너무나도 아름다워 그 평범한 인물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 누구나 금자와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뜻하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또한 아름다운 외모와 평범한 인물의 대비를 통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복수의 미와 그것을 넘어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슬쩍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백선생의 경우도 비슷하다.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은 깨끗하거나 아름답지 못하고 추악했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이름을 통해서도 이중성과 반어성을 나 폐쇄적이며 죄수라는 공통 분모의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다. 폐쇄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 사이에서 우정이 더 깊어 질 수 있는 것이고, 이미 한 번 죄를 지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금자의 복수에 적극적으로 가담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감옥은 주변인물들이 금자의 복수에 발 벗고 나설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해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금자가 일하는 제과점은 먹을거리를 파는 곳이다. 그런데 그 곳에서 일하는 금자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살았던 인물이다. 이것은 사람을 먹여서 살리는 일을,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맡긴 것으로 역시나 아이러니컬하다. 또한 금자가 만든 아름다우면서 맛있는 케이크 뒤에 숨겨진 금자의 이면을 나타내기 위해 제과점이라는 공간이 사용 된 것이라 생각한다.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얼핏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공간이 학교속의 교실이다. 영화를 보는 중에 학교 교실이라는 공간에 대해 단순히 깊은 산 속에 있고 폐교가 된 곳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백선생이 죽인 아이들을 유치원이라는 배움의 터에서 만나 죽인 것에 대해, 백선생의 죽음 또한 배움의 터이며 아이들의 공간인 교실에서 진행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4. 시각요소1)영상영상에 있어서 영화의 전반을 지배하는 것은 화려함과 어두음의 대비이다. 금자의 케이크 만드는 장면, 화장을 하는 장면 등은 모두 화려한 영상을 위해 분장과 조명, 주위 벽지 등이 모두 아름다운 것으로 치장되어 있다. 그러나 복수에 들어가서는 어두운 조명과 우울한 톤의 배경으로 나타난다. 햇빛을 받으며 걸어가는 금자는 얼굴에 빛이 난다고 생각될 정도로 환한 조명을 통해 부각시키고, 백선생을 만나 응징할 때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의 조명을 사용하였다.그리고 중간에 금자가 눈벌판위로 개의 모습을 한 백선생을 끌고가는 부분은 비현실적 요소로 작용하여 금자의 내면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원모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도 담배연기와 함께럼 우울하거나 암울하지 않은 장면이 마지막 끝 장면이다. 흰 조명을 마치 하늘에서 달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설치한 전봇대 앞에서, 금자와 딸 제니가 만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 부분은 역시나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금자의 내면이 전보다는 안정을 찾았으며, 그것이 희고 밝은 조명처럼 무언가 깨달아서 평온한 상태가 되었음을 나타내 주는 장치라 하겠다.2) 카메라의 움직임이 영화에서는 인물을 사선에서 비추는 장면이 많다. 카메라의 각도가 일반적으로 사람의 시선과 비슷하게 가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색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금자가 걸어갈 때는 아래쪽에서 비스듬히 비추어 금자의 경쾌한 발걸음을 강조하고, 누군가를 만나 복수에 대해 이야기 하거나 기도를 드리며 회개하는 장면에서는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 찍었다. 이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금자를 밑에서 올려다 볼 때는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금자의 위상을 상승시키게 하고, 위에서 내려다 볼 때는 뭔가 금자의 내면 속에 있는 속마음을 훔쳐보면서 그 내용을 알고 싶게 만든다.3) 편집이 영화에서는 진행이 빠른 것이 특징이다. 앞서 말한 카메라의 사선 구도 또한 장면내에서 속도감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편집에 있어서도 빠른 장면 전환을 통해 속도감을 획득하고 있다. 짧은 샷을 통해 금자가 진행하는 복수의 빠른 전개를 보여준다. 이것은 13년가 이 복수를 얼마나 고대했는지를 나타내는 장치라 볼 수 있을 것이다.금자와 죽은 아이들의 부모가 복수를 하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차례로 순서를 정해 들어간다. 그런데 순서를 기다리는 장면과 백선생을 고문하기 위해 장비들을 들고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 다음에 바로 피가 흥건한 채로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어 붙였다. 이것은 그들이 진행하는 복수의 핵심적인 내용을 편집을 통해 잘라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정확히 어디를 어떻게 고문했는 지에 대해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 속에서 관객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들이 들고 갔있다.
    독후감/창작| 2006.06.22| 6페이지| 1,000원| 조회(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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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와 문학]표현주의 평가A+최고예요
    Ⅰ. 표현주의목 차1. 서론2. 표현주의의 발생3. 시대정신과 문학사적 고찰4. 표현주의의 문학사적 위상과 평가5.‘양철북’과 표현주의6. 결론*참고문헌*1. 서론표현주의는 20세기의 출발점에서 발생했고 일종의 문학 혁명적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그 후의 현대 문학의 여러 흐름에 대해서 영향된 바가 적지 않다. 이제 21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그 점을 다시 한번 검토하고 재음미하는 것이 의의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표현주의는 독일 뿐 아니라 영미문학, 불문학 등 유럽 각국의 현대문학과 연관이 되어 있고 유기적인 영향의 수수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에 비교문학의 관점에서도 중요시되는 것이다.따라서 여기에서는 표현주의의 발생과 본질 및 문학사적 의의에 대해 생각해 봄으로써 그 특징이 후대의 문학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 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양철북’에 나타난 표현주의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2. 표현주의의 발생표현주의는 일반적으로 1910~20년 사이에 발생하였다. 이 시기는 1차 세계 대전을 전후 한 것으로, 독일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내용에 있어 아주 혁신적이고 반항적이며 격렬했다. 이로 인해 문화와 예술의 분야에서 뿐 아니라 그 당시의 시대 정신과 사회사상 전반에까지 심대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개념의 명쾌한 정의라든지 문학사적 의미는 아직 이론의 여지가 많다고 할 것이다. 표현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발은 이미 1920년 이전에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발생 초기의 열기가 강했던 만큼 냉각의 속도도 빨랐다. 비판은 비단 보수적 부르주아 세력에서 뿐만 아니라 젊은 기수층과, 심지어 그 운동을 함께 추진했던 동지들 가운데서도 일어났다. 이후 표현주의에 대해 많은 논쟁이 전개되었다. 그 후 2차대전이 일어났고, 이것은 1910~20년대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전개를 보이며 나타남으로 인해 이후에도 표현주의에 대한 연구는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3. 시대정신과 문학사적 고찰표현주의의 발생 당시에 사람들은 정치 사회적인 불안감에 덧붙여, 밀어닥치는 기계 문명의 물결 속에서 가장 소중한 인간의 정신적 존재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절박하고 저항의식이 강한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 모든 권위와 전통이 부정되었고 자연주의의 비인간적 객관성에 반발하는 것은 물론이요, 멀리 거슬러 올라가 독일 고전주의 및 낭만주의 시대의 전통에까지 반발한 것이다. 이것은 인상주의가 외부로 받은 인상을 소극적으로 재현하는 데 반하여, 표현주의는 자신의 내부의 부르짖음을 표출하는 데에 특징이 있다. 그래서 명칭상으로도 인상주의가 Impression인 데 비해 표현주의가 Expression으로 대조적인 것이다.물론 인상주의나 신낭만주의가 자연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탄생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표현주의는 혁신의 강도에 있어서 그들의 차원을 훨씬 뛰어 넘는다. 멀리 18세기의 ‘폭풍노도 Sturm und Drang’와 상통하는 파토스Pathos를 지니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들의 예술적 표현의 본질이 주관주의라는 점에서 자연주의와는 상반되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자아의 무한정한 확대가 시도되었고, 그레쯔만의 표현을 빌리면 ‘끊임없는 내면으로의 복귀, 자기표현의 욕구로 말미암아’ 자아가 무엇보다도 강력한 현실로서 이해된 것이다. 그래서 원초적인 표현양식이 등장한 것이다.표현주의 초기에는 시가 대표적인 형식이었다. 그와 같은 격정과 내면의 부르짖음을 표현하는 데 서정시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특히 트라클, 하임, 라스카?쉴러 등의 작품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문학이 점차 정치화되었고 희곡이 더욱 큰 영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표현주의 극작가들은 드라마를 통해서 세계를 변조시키려고 했다. 조명효과와 상징적 색채감, 판토마임과 비전의 표출 등 수법이 대담하게 사용되었다. 등장 인물의 추상화(처녀, 아버지 등), 부자갈등 등의 모티프 또는 반군국주의, 평화주의 등의 강조로부터 일부 혁명적 이념적 방향으로까지 흘러가기 시작했다(톨러, 베허 등). 특히 톨러의 ‘정거장식 드라마’는 전쟁체험과 인간비극을 강력히 부각시켰고, 극중 인물의 대사 또한 전보문형식으로서 표현주의적 효과를 가중시킨 것이다. 또한 1914년에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은 그들 젊은 표현주의자들에게 예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끔찍한 체험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도 전쟁 첫 해인 1914년에 슈타틀러, 리히텐슈타인, 에론스트 로쯔, 마케 등이 전사하였고, 트라클은 그로테크의 대살륙을 목도한 후 90여명의 전상자를 온자서 보살피다가 정신착란을 일으켜 자살하였다. 1915년에는 슈트람이 아깝게도 전쟁의 이슬로 사라졌고, 뒤이어 마르크, 라인하르트 조르게 등 쟁쟁한 표현주의의 인물들이 불귀의 객이 되었다. 전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표현주의는 변질되기 시작한다. ‘아크치온’지는 특히 과격한 행동을 표방하였고 또 실제로 정치적 행동주의로 이행한 표현주의자도 많았다. 그들의 분노는 우익 보수적 폭력 세력에 대해서 뿐만 아니었고, 공산주의자들의 잔학한 투쟁과 파괴에 대해서도 똑같이 화살을 겨누게 하였다. 1918~19년의 혁명에 실제로 개입한 작가는 소수였다. 몇몇은 젊은 나이로 죽었고, 대부분은 뿔뿔히 상반된 입장으로 발전해 나갔다. 예컨대 베허는 좌익으로 가서 당간부가 되었으며 되블린은 기독교 쪽으로, 벤은 한동안 파시즘에 동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베르펠 등 성공적인 작가도 있어서 자신의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개척하는 가하면, 라스카-쉴러는 굶주리는 망명작가 생활을 계속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아깝게도 밝은 세상을 누리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4. 표현주의의 문학사적 위상과 평가사회와 역사에 역류하여 대단한 기세를 떨치면서 돌진하던 표현주의가 의외로 급속히 냉각한 것은 1920년경이었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도 더 일찍이, 즉 그들의 부르짖음이 한창 절정에 달아올랐을 때 벌써 그것이 퇴조하는 징조가 나타났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여기서 표현주의의 흐름은 크게 두 갈래의 방향에서 관찰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예술적이며 추상적인 방향이고 그 후예는 다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 경향은 극단화들 때 오히려 예술성이 파괴되고 언어의 의미마저 상실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다이즘의 극단적 추상성이라든지 그 무차별적 유희화, 무의미성 동시성 등이 나타났다. 전쟁을 기피하여 취리히에 모였던 젊은 예술가들은 캬바레 보르테르를 본거지로 하여 새로운 예술운동을 일으켰으니, 그것이 곧 다다주의였다. 또 다른 하나의 갈래는 정치적 사회적 행동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아크치온’지를 발행하여 사회개혁과 반전 정치참여를 주장하였다. 그들 가운데도 여러 갈래가 있었고 주장이 서로 달랐지만, 대체로 문학은 인류해방을 위한 목적, 작가는 사회를 구원하는 사명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사는 초기의 예술, 형식, 사상 등으로부터 후기에 갈수록 현실정치, 참여, 투쟁 쪽으로 흘러갔다.다시 1920년대 상황을 살펴보자. 그 당시 표현주의의 퇴조와 더불어 대두된 조류가 세 가지 였는데, 그 하나는 앞에서 논의된 다다이즘이고, 그 밖에 신즉물주의와 초현실주의가 있었다. 이 세 가지가 표현주의를 대신해서 한 시대를 구획했다고는 하지만, 그 모두가 표현주의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우선 다다이스트들의 기행과 반예술 및 언어의 유희장화 등이 표현주의 작가, 특히 슈트람류의 언어예술이론과 연결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평가는 표현주의의 한 측면에 대한 긍정적 시각으로도 해석되며 주목할 만하다.반면 신즉물주의는 얼핏보기에 표현주의와 크게 상반되는 것 같지만 그 의도적인 현대서오가 대도시풍의 어법은 마리네티, 벤 등에서 이미 나타났던 현상이라고 보인다. 어느 의미에서 초창기 표현주의의 시풍이 1920년대의 신즉물주의에 매우 가까웠던 것 같다. 오히려 표현주의 절정기 또는 후기의 상징적이고 선언적 문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 신즉물 주의는 사실주의의 계열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모더니즘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영미문학 쪽에서는 그들의 모더니즘 문학이 독일 표현주의뿐 아니라 그 후계자인 신즉물주의에, 특히 그 회의적 또는 환멸적 전망에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6.06.22| 4페이지| 1,000원| 조회(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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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둠의 혼
    김원일 1. 작가 소개김원일은 1945년 3월 15일,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대구농림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영남대 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하였고 후에 단국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를 지냈다. 대표작품으로는 늘푸른 소나무(1993), 그곳에 이르는 먼 길(1992), 마당 깊은 집(1988), 겨울골짜기(1987), 바람과 강(1985), 환멸을 찾아서(1984), 도요새에 관한 명상(1979), 노을(1978), 오늘 부는 바람(1976), 어둠의 축제(1975), 어둠의 혼(1973)등이 있다.2. 작품 주제이 소설은 좌익 활동을 하는 아버지를 아들의 시선으로 보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여기서 아들은 아버지의 생각을 모두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 또한 아버지의 그러한 활동으로 가족들이 배를 곯으며 살아가는 비극적인 생활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비극을 보여 주는데서 그치지 않고 마지막에 이모부를 통해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시킴으로써 주인공이 그것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따라서 은 민족 분단과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가족의 비극과 그 극복의지를 주제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3. 단락① 발단갑해는 아버지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갑해에게 중요한 것은 배고픔이다. 그래서 먹을거리를 구하러간 어머니를 기다린다.이러한 굶주림은 광복 후에 아버지가 남들이 알지 못하는 공부를 시작했고 그 때부터 아버지는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않음으로 인해서 시작되었다.국민학교 이학년 때 쯤 갑해와 아버지는 산책을 나갔다가 청개구리를 보았는데 아버지는 청개구리가 하늘에 닿기 위해 매일 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갑해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느냐고 묻기도 전에 아버지는 죽고 없을 것이다.② 전개어머니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하지만 갑해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러 지서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가기 전에도 아버지에게 악담을 하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열흘 전 쯤, 순경들이 들이닥쳐 아버지를 내놓으라며 집안을 뒤지고 갑해의 어머니를 때렸다. 갑해와 누나 분임, 동생 분선이는 날이 샐 때까지 서로를 잡고 울었다.갑해가 정신을 차리고 얼핏 본 보라색 하늘은 아버지의 하는 일, 어머니의 피멍든 얼굴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한 이유로 갑해는 보라색을 싫어했다. 분임과 분선을 보는 갑해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분임을 보살피는 분선이 안쓰럽다. 분선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어머니를 찾으러 나가던 갑해는 얼핏 사립문의 꽃밭을 본다.동네 사람들이 자기 가족 걱정을 하는 것을 들으며 갑해는 해방되던 해의 추석날 성묘간 것을 떠올린다. 그날 갑해는 아버지에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물었고 아버지는 '모른다'가 답이라 했다.해방되기 전 갑해 아버지는 야학당을 차렸다가 그것이 폐쇄된 후 사상에 점점 빠져들었다.③ 위기갑해는 술집을 하는 이모네 집으로 어머니를 찾으러 간다. 어머니는 집을 지키지 않고 누나와 동생만을 두고 나왔다고 갑해를 나무란다. 이모는 그런 갑해를 감싸주며 국밥을 가져다준다.지난해 겨울 갑해가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잠시 눈을 떴을 때 아버지가 와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욕을 해댔고, 아버지는 금세 사라졌다. 갑해는 아버지가 왜 목숨을 걸고 도망 다니는지 알 수가 없었고, 그럼으로 해서 쑥대밭이 되어버린 집안이 서러웠다.④ 절정밥을 먹고 갑해는 지서를 찾아간다. 순경이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을 갑해는 장난인줄 알지만 이모부를 따라 들어간 지서 안에서 갑해는 아버지의 주검을 확인한다. 갑해가 안겨 재롱을 떨던 아버지의 가슴은 갑해가 그리도 싫어하는 보랏빛이 되어 있었다.⑤ 결말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갑해는 낙동강으로 달려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생각한다. 비로소 갑해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무엇인지 꼬집어 내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살아가는데 용기를 가져야 하고 어떤 어려움도 슬픔도 이겨내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4. 플롯은 액자식 플롯으로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소식을 듣지만 그 보다 배고픔이 컸던 갑해가 어머니를 찾으러 이모집에 갔다가 다시 지서로 가서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이 외부 액자이다. 이 외부액자 사이사이에 아버지가 사상에 심취하기 시작한 일, 어머니가 순경에게 잡혀간 일, 청개구리 · 닭과 달걀에 관해 아버지와 이야기 한 일 등의 내부액자가 삽입되어 있다. 결국 은 하나의 외부 액자에 여러 개의 내부액자가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5. 화자이 작품에서는 서술자가 나이 어린 소년으로 설정되어있는데 그것은 사건 자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 즉,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의식을 표면화하지 않으면서 이데올로기에 의한 갈등의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념적 갈등이 없었다면 비참하게 사형을 당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소년의 시각으로 처리함으로써, 작가는 우리 민족사의 어두운 측면을 똑똑히 증언하였다. 따라서 의 화자인 갑해는 사건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1인칭 관찰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3.11.03| 3페이지| 1,000원| 조회(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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