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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운명의 딸
    1. 이사벨 아옌데『삶과 죽음은 나란히 있는 것. 인생은 어차피 극복할 수 없는 혼돈인 것을…. 하지만 나름의 인생 틀이 있음을 깨닫고 보면 삶은 좀더 견딜만하다.』이사벨 아옌데는 42년 생이니까 벌써 초로의 나이를 넘겼다. 갓 20대를 벗어난 1973년, 아버지 살바도르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이 미 CIA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 장군의 쿠데타로 암살되면서 인생 변혁기를 맞는다. 도시공학을 전공한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며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행복을, 군사정권에 쫓긴 망명길에 오르며 분실하고 만다.곧바로 조국 칠레와 라틴아메리카의 시대적 숙명을 배경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지를 떠돌며 망명생활을 하던 중 할아버지 임종 소식을 전해듣고 편지를 쓴 것이 작가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지난 85년 미국에서 출판된 첫 작품 「영혼의 집」은 정치와 폭력에 관한 책이다. 그 무대 위에 파란만장한 4대 가족사를 올려 곡절많았던 자신과 동족의 삶을 투영했다. 처녀작이지만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노벨상 수상작 「백년동안의 고독」에 필적하는 걸작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두번째 작품 「사랑의 그림자」에선 독재와 잔혹행위에 따른 고통과 분노를 토해내며, 칠레 지식인들에게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세번째 소설 「에바 루나」에는 여주인공이 애인에게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전하는 형식으로 23개 이야기를 담았다. 모두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경제적 혼란과 민생 파탄, 정의 부재를 못내 가슴 아파하는 내용들.미국 캘리포니아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던 아옌데는 또 한번 죽음이 곁에 있음을 체험한다. 88년 첫 남편과 이혼한 후 미국인 변호사와 다시 가정을 이룬지 4년만이었다. 잇단 수작 발표로 세계적 필명을 얻었지만, 선천성 질병에 시달리던 딸 파올라(당시 29세)를 끝내 저세상으로 보낸다. 생체효소결핍증에 고생하던 딸은 1년동안이나 혼수상태를 헤매다 기어코 어머니 아옌데 가슴에 묻히고 만다.아옌데는 이후에도 「파올라」 「신의 섭리」 등 꾸준히 매인 소머스 가족과의 생활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자율적인 생활을 하면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하지만 엘리사는 호아킨이라는 족쇄에서는 여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엘리사는 한편으로는 호아킨을 찾으리라는 희망을 부여잡고, 다른 한편으로는 타오 치엔과의 우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인 마을에서 수백 명의 어린 중국 소녀들이 이곳으로 팔려와 성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한 타오는 엘리사와 함께 이들을 구출하기 시작한다.한편, 칠레의 로즈는 엘리사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다. 그러다 누군가 캘리포니아에서 엘리사를 봤다는 소식을 전하고, 로즈는 엘리사의 출생의 비밀을 털어 놓는다.4. REVIEW*의 무대는 19세기 칠레의 무역항 발파라이소와 골드러시 시대의 초창기 캘리포니아다. 캘리포니아 초창기 모습은 서부영화에서 본 적이 있어서 그리 낯설지만은 않지만 칠레의 ‘발파라이소’는 남미 토착 인디오의 신화와 전설, 대영제국의 근대 문물, 카톨릭 이데올로기와 히스패닉의 정열이 한데 뒤엉킨 매혹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그 속에서 자라난 사생아 엘리사. 미스 로즈로부터는 영국 문물을 , 마마 프레시아로부터는 인디오 문화를 배운 엘리사는 태생의 어려움, 여자로서의 한계를 하나씩 극복해 나가면서 성적인 억압이나 왜곡된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자기 삶을 열어가는 믿음직한 모습이다. 그것 때문에 페미니즘 소설로 분류되는지도 모르겠는데, 일부 페미니즘 소설의 특징. 특정한 목적 때문에 소설로서 가지는 현실 세계의 인과 관계로부터 거리감이 느껴지는 일은 없다.페미니즘적 요소를 굳이 얘기하자면 코르셋에 대한 거부나 남장을 하고 남자 행세를 하던 엘리사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자신감있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랄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다. (여성의 자위행위를 아름답고도 결정적으로 보여준 작품은 나로서는 처음이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다. 그 재미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장소와 시간을 현실감있게 재현미국인 남편과 함께 현재 샌프란시스코 근교 소살리토에서 살고 있다.2. 세계일보: 남미의 대표적인 여성작가로 오랫동안 군림해온 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 59)의 최근작 (권미선 옮김. 민음사)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아옌데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마르케스의 뒤를 이어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남미의 역사와 여성의 현실을 결합시켜낸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명성이 높은 작가다.그녀의 작품들은 난해한 관념적 테크닉을 구사하기보다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만의 묵직한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줄 아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혹자는 그녀를 대중작가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이른바 고급문학과 대중문학의 가교역할을 하면서도 천박하지 않게 한 시대의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은 분명 부러운 자질임에 틀림없다.이번에 국내에 소개된 '운명의 딸'은 그녀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영혼의 집'이나 '에바 루나'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비천한 출신의 한 여성이 어떻게 주체성을 확보하며 한 인간으로 우뚝 서서 자아의 무게중심을 찾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에바 루나'의 주인공 에바가 아마존 밀림에 버려진 아이였다가 독일인의 가정에서 양육되고 결국에는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는 틀이라면, '운명의 딸'의 주인공 엘리사 역시 칠레의 영국인 집 앞에 버려진 여자아이였다. 교양을 갖춘 영국인의 가정에서 잘 양육되지만 엘리사는 결국 그곳을 뛰쳐나온다. 영국인 양엄마의 필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생아 남자를 사랑했다가 그가 캘리포니아로 금광을 찾아 떠나자 중국인 한의사의 도움을 받아 그녀 역시 캘리포니아로 간다.페루에서 태어나 칠레에서 성장해 남미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아옌데는, 크게 보면 남미의 이중적인 정서에 지배받고 있다. 뿌리는 남미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오지만 그들을 장악한 유럽인들의 피가 섞여 토착정서에는 항상 이중적인 딜레마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이 때문인지 아옌데의 소설에는 늘 백인과 인디오 사이의 이중적인 상황이 설정된다. 그렇지만 결국 아옌데가 도달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여성의 정체성에 천착해 온 작가는 여기에서도 여성문제를 부각시킨다. 여성의 미는 남성을 위한 것이며,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당시의 전형적 사고방식을 로즈가 대변한다.그 반대편에는 남편의 동업자로 살아가는 칠레 여자 파울리나, 남자도 겁내는 수술을 서슴지 않으며 홀로 서기를 시도하는 남장 여인 엘리사가 등장한다. 다민족 공동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인종갈등도 작가의 주 관심사다. 하얀 피부를 가졌다는 사실 하나로 유색인을 멸시하는 백인의 모습은, 칠레라는 남의 땅에서 자신들만의 폐쇄된 모임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영국인들, 인디오를 내몰고 멕시코 칠레 중국인을 박해하는 미국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칠레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에 둥지를 튼 주인공의 궤적이 작가 자신과 일치하며, 아버지 없이 양어머니 밑에서 자란 주인공처럼 작가도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에 의지하며 자랐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자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작가는 이 소설에서 단지 1843~1853년의 10년만을 조명하려고 했을까. 역사는 되풀이되며, 현재의 교훈을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한 것은 아닐까. 21세기인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여성은 아직도 19세기적 사고 방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강대국은 자신들이 바로 ‘선’이므로,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를 다른 ‘기타’ 국가들이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세계화’라는 이름 하에 권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1849년의 ‘골드러시’ 때처럼 아직도 황금은 우리 인생의 목표인데, 멜팅 팟 (Melting pot)이라는 구호는 잦은 인종갈등 앞에서 공허할 뿐이다. ‘세계 인종’이라는 말로 치장한 중남미도 마찬가지다. 인디오라는 말이 미개를 상징하고, 백인의 피가 얼마나 더 많이 섞였나에 자부심을 거는 메스티조가 건재하는 한 19세기는 아직도 지속됨을 작가는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6. 중남미 소설에 나타난 마술적 사실주의지금까지 중남미 문학 연구는 주제 비평이나 전기 비평이 전부였다"이에 덧붙여 지루하므로") 얼마나 "의기소침"했는지 모른다고 실토했다. 피츠의 기억에 따르면, "존 퍼얼 주교는 몇 개월 동안 라틴아메리카 장편 소설과 단편을 정독하면서 [...] 야릇한 절망감을 느꼈다. 주교는 이들 작품이 형편없는 이류작임을 깨달았고, 스페인어권 천재들, 적어도 라틴아메리카 천재들의 작품 중에서 읽을 만한 것은 시와 에세이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에서 피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나는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와 마예아(Eduardo Mallea)는 예외로 친다. 이들의 작품은 일급이다."이러한 견해는 비록 신랄하고 극단적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이기 때문에 당혹스럽다. 소설 분야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어떤 거장도 내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피츠가 보르헤스와 마예아를 제외시킨 것을 라틴아메리카 전문가들은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피츠는 매우 섬세한 시인이고, 고대와 현대 문학에 모두 정통한 날카로운 평론가이며, 그리스 고전을 매끄럽게 번역한 사람이고, 현대 라틴아메리카 시 선집을 엮은 이다. 피츠가 보르헤스와 마예아를 예외라고 할 때 이들의 작품은 "무기력, 불확실, 모방, 질펀한 감상"이 없다는 말이다. 보르헤스와 마예아는 누가 뭐래도 이류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츠는 보르헤스와 마예아가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수년 전 나는, 피츠와 상관없이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보르헤스와 마예아를 비롯하여 뛰어난 라틴아메리카 소설가와 단편 작가들의 일반적인 경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나는 이 경향을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일컫는다.대상을 사진 찍듯이 묘사하려고 했던 사실주의가 막다른 골목임을 깨닫게 된 모든 예술-특히 미술과 문학-은 반기를 들었다. 1차 대전 시기의 수많은 유명 작가들은 상징주의와 마술적 사실주의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는 프루스트, 카프카, 키리코-회화에서 카프카 같은 존재-같은 걸출한 천재들이 있었다. 이들의 작품은 상당 부분 재발견이었다. 왜냐하면다.
    인문/어학| 2002.12.04| 15페이지| 1,000원| 조회(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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