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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종 이방원의 삶에 대한 소평전
    Ⅰ.서론몇 년 전 ‘용의 눈물’이라는 사극을 보면서 학교에서 배우던 조선의 태종 이방원과는 사뭇 다른 인물로 묘사된 것을 보면서 내심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이방원이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알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번 기회에 떠오른 사람이 바로 이방원이었다. 보통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아들로 이방원을 형제나 정적을 비참하게 죽이고 왕위에 오른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방원을 제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태종 이방원을 둘러싼 당시 주변의 환경을 알고 그에 대한 재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방원의 삶에서 고려조에서의 이방원의 활동과 조선이 건국된 후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시기와 왕위에 오른 후, 그리고 세자책봉과 선위파동을 하는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Ⅱ.본론이름은 방원(芳遠)이고 자는 유덕(遺德)이다. 아버지는 태조 이성계이며,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이고, 비는 민제의 딸 원경왕후이다. 조선 제3대 왕인 태종으로 1400년부터 1418년까지 재위하였다.1. 고려조에서의 이방원이방원은 1367년에 아버지 이성계와 어머니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길재와 같은 마을에 살면서 학문을 강론하기도 하였으며, 일시 원천석을 사사하였다. 1382년에는 당시 대제학이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다. 매우 영특하여 1383년(우왕 9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1388년(창왕 즉위년)부터 1389년까지 고려왕실을 보호할 의도에서 명나라에 파견된 정사 문하시중 이색의 서장관이 되어 남경에 다녀왔다. 그는 정치적 판단이 매우 뛰어나 아버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할 때 개경의 민심이 아버지 이성계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도록 木子得國이라고 하여 결국 이씨가 새로운 나를 건설할 것이라는 선전 선동활동을 총괄 지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데 반대하였던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제거한다. 이성계와 정몽주도 한때는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벗이었지만 정치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되면서서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이방원조선이 개국(1392년)되기는 하였지만, 태조 이성계는 많은 부담을 떠안고 있었다. 고려를 버리고 많은 충신이자 정적들을 제거했어야 했다는 것에 대해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조선 개국 공신 중 정도전은 스스로를 킹메이커로 인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자신의 정치적 이상향을 실현하려고 한다. 정도전은 왕권국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재상이 나라를 총괄하는 내각중심의 국가를 꿈꾸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방원은 그런 정도전과 정치색이 매우 달랐다. 이방원은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았고, 현실주의적이고 강력한 왕권중심의 국가를 꿈꾸었다. 이들은 당시 정치 세력의 중심이었고 서로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입장이 매우 달랐는데, 이방원은 명에 대해 사대를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도전은 급진 개혁파로 요동정벌을 내세웠다. 정도전의 정치관은 매우 혁신적이었던 것 같다. 자주국가를 이루기 위한 그의 정치관이 매우 뛰어난 것이지만 그는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 그는 현실을 너무 간과했고 정치에 있어서 숨고르기를 하지 못했던 것이 결국 그의 정치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이었던 것 이다. 더구나 이방원은 조선 개국 이후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개국 공신들보다 더욱 조선 건국에 큰 힘이 되었으나 조선 개국 이후 이방원은 정안군으로 책봉되었을 뿐 정도전과 아버지의 계비인 강비의 배척으로 인해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아마도 정도전이나 강비 뿐만 아니라 태조에게도 이방원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결국 이방원은 세자책봉에서도 제외되었다. 아마도 당시의 조선 내의 여론에 의해서도 이방원이 대세였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성계는 정몽주의 일 이후로 이방원을 미워하고 있었고, 정도전과 강비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이방원을 배척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강비의 둘째 아들인 방석이 세자에 책봉된다. 이로 인해 이성계의 첫째 부인이었던 신의왕후의 여섯 아들들이 불만을 품고 게 패해 유배를 가게 된다. 이렇게 여러 번의 피를 보게 된 이후 결국 이방원은 1400년 왕위에 오르게 되고,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이 된다. 왕위 하나를 얻기 위해 같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난 형제들이 서로 칼을 겨누는 것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당시의 왕자들의 입장에서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걸린 것이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한다.3. 태종 즉위 후의 이방원이방원은 태종에 즉위했으나 이성계와 마찬가지로 정통성확보에 문제가 있었다. 아버지를 몰아내고 형제들을 죽여가면 등극했다는 것은 명분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조선은 충효를 앞세우는 유교국가였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태종은 태조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 번 멀어진 태조 이성계의 마음은 열리지 않았다. 왕위에서 물러난 뒤 태상왕이라는 존호를 받았지만 허울뿐이어서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이성계는 태종에게 옥새를 넘기지 아니하고 소요산, 금강산, 오대산 등으로 떠나버렸고, 다시 함흥으로 옮겼다. 함흥은 그가 무장시절부터 장악해 온 땅으로 아직도 그 곳 백성들은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었다. 태조는 무려 2년 간이나 철저하게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함흥 별궁에 머물렀고, 그 2년 동안 태종의 차사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함흥차사였다. 거기에다 당시 안변부사였던 조사의와 합세하여 조정에 대항하여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마침 태조의 오래 된 친구인 무학대사가 태조를 회유하여 태조가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다시 이방원을 죽이려고 했지만, 이방원이 죽음을 모면하자 결국은 이방원에게 옥새를 넘기고 왕으로 인정하게 된다. 태종은 다른 왕들처럼 궁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 아니라 사가에서 자라 과거를 통해서 벼슬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조정 관료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진정한 왕으로 인정받은 태종은 왕권의 강화와 중앙집권 확립을 위하여 공신과 외척을 대량으로 제거하려고 한다. 시범 케이스가 이거이와 이저 부자였는데, 이거이는씨 외에 많은 후궁을 두었다는 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설일 뿐이고, 호탕한 기질에 사냥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했다는 것으로 봐서 추측일 뿐인 것 같다. 이와 함께 1414년에 잔여공신도 부원군으로 봉하여 정치일선에서 은퇴시켜 말년에는 왕권에 견제가 될 만한 신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태종은 중앙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1401년에 종래까지 의정부 합좌에 참여하였던 삼사·예문춘추관·삼군총제를 제외시키고 의정부 구성원으로만 최고 국정을 합의하게 함으로써 의정부제를 정립하였다. 또한, 간쟁을 관장하던 문하부낭사를 사간원으로 독립시켰으며, 삼사와 삼군부는 사평부와 승추부로 개정하였다. 1405년에는 육조직계제로의 전환에 따른 의정부기능 축소와 육조의 기능 강화책으로 육조의 장관을 정3품 전서에서 정2품의 판서로 높였고, 전곡과 군기를 각각 관장하던 사평부와 승추부를 폐지하고 그 사무를 호조와 병조로 이관시켰다. 한편 좌·우정승이 장악하였던 문무관의 인사권을 이조와 병조로 이관하였다. 같은 해에 대언사를 강화하여 동부대언을 증설하고 6대언으로 하여금 육조의 사무를 분장하도록 하였으며, 육조의 각 조마다 세 개의 속사를 각각 설치하고 아울러 당시까지 존속한 독립관아 중에서 의정부, 사헌부, 사간원, 승정원, 한성부 등을 제외한 90여 관아를 그 기능에 따라서 육조에 분속시켜 각각 육조로 하여금 관장하거나 지휘하게 하는 속사제도와 속아문제도를 정하였다. 이러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육조직계제를 단행하여 육조가 국정을 분장하도록 하면서 왕 - 의정부 - 육조의 국정체제를 왕 - 육조의 체제로 전환시켜 왕권과 중앙집권을 크게 강화하였다. 그 밖에도 태종은 지방제도를 정비하고 군사제도와 조세제도를 개혁하기도 했다. 1413년에 이르러서야 지방제도를 개편하였는데 완산을 전주, 계림을 경주, 서북면을 평안도, 동북면을 영길도, 각 도의 단부관을 도호부, 감무를 현감으로 각각 고치고 아울러 군·현의 이름에 있는 ‘주(州)’자를 ‘산(山)·천(川삼군부를 승추부로 개편하여 왕명 출납과 군기를 장악하게 하였고, 1403년 삼군부를 삼군도총제부로 부활시키면서 승추부는 군기를, 도총제부는 군령을 나누어서 장악하게 하였다. 1405년 승추부를 병조에 귀속시켜 병조가 군사 지휘권까지 장악하게 하였고, 1409년에는 삼군진무소를 설치하여 다시 병조는 군정을, 진무소는 군령을 담당하게 하다가 곧 삼군진무소를 의흥부로 개칭하였다. 그뒤 1412년에 의흥부를 혁파하고 병조가 군정을 전장하게 하였다. 한편, 지방군은 1409년 11도에 도절제사를 파견하였고, 1415년경까지 해안을 중심한 영진군, 수성군을 정비하였으며, 1410년경부터는 군역에서 제외된 향리, 공사노비 등으로 잡색군을 조직하여 유사시에 내륙을 수호하게 하였다. 수군은 시위패의 일부를 수군으로 충당하여 강화하였고, 1403년에는 각 도마다 경쾌소선 10척씩을 만들어 왜구에 대비하게 하였고, 1410년부터 1412년까지 병선 200여척을 새로 만들었으며, 1413년부터 1415년까지는 거북선(이순신의 거북선과는 다르다.)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1412년과 1417년에는 축선법과 연훈법을 채택하도록 하였다. 사법·경찰은 1402년에 고려말 이래의 순군만호부를 순위부로 개칭하였고, 1403년에 순위부를 의용순금사로 개편하여 도적을 방지하면서 반역죄인 등을 사찰, 심문, 처벌하게 하였다. 토지제도는 1405년부터 이듬해까지 6도를 양전하고, 1411년부터 1413년에 걸쳐 평안도, 함경도까지 양전함으로써 모두 120만여결의 전지를 확보하였다. 사전의 지배를 강화하여 나갔는데, 1401년에 별사전을 개혁하여 새로 벼슬한 자에게 지급할 것을 정하였고, 이듬해는 과전법을 개정함으로써 종래까지 무세지였던 사원·공신전을 유세지로 편입하였다. 또한 고려말의 전제개혁에서 제외되었던 사원전을 개혁하여 5만∼6만결을 새로이 확보하였다. 1412년에는 원종공신전의 세습제를 폐지하고 외방에 퇴거한 자의 과전을 몰수하였다. 1414년에는 수신전·휼양전의 지급을 제한하였고, 1417년
    독후감/창작| 2007.10.27| 7페이지| 1,000원| 조회(2,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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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양철북-귄터 그라스
    양철북-귄터 그라스양철북은 일반적인 사회와 제도를 거부하는 한 개인이 어떻게 사회 현실과 부딪히고 또 어떻게 그 사회와 화해를 하는지의 과정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사회와 화해를 해 나가기 위해 상당한 굴절과정을 겪게 된다.이 소설은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독일의 일그러진 역사가 주인공인 난쟁이 오스카르에 의해 서술된다.이 소설은 오스카르의 어머니의 출생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독일과 폴란드 접경지역의 넓은 감자밭에서 병사들에게 쫓기던 요셉은 감자를 굽던 안나의 네 겹의 치마 속에 숨어 위기를 모면하나 그 일로 인해서 오스카르의 어머니인 아그네스가 태어나게 된다. 그렇게 태어나서 성장한 아그네스는 독일인인 마체라트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폴란드인인 얀과도 사랑을 하고있어 그녀가 낳은 아들 오스카르는 누구의 아들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1924년, 독일과 폴란드의 접경지역인 단치히에 오스카르가 태어난다. 하지만 두 아버지의 사이에서 자란 오스카르는 자신의 세 번째 생일을 맞는 날, 어른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반항하는 표시로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하고, 일부러 사다리에서 떨어진다. 오스카르는 생일 선물로 받은 양철북을 두드리거나 괴성을 지르는 것으로 어른들에 대한 반항의 표시를 한다.이러한 행위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군악대의 리듬을 바꾸어 재즈가 되게 하는 등의 위험한 장난을 하며 갖은 소동을 일으키게 된다.외적으로 보면, 오스카르는 94cm의 난쟁이에 불과하지만, 사실 정신적으로는 태어날 때부터 성인의 지성을 갖추고 있다. 오르카르의 지성은 세 살짜리의 시야로 현실에 내재하는 부조리를 고발한다.오스카르의 스승인 베브라는 이 소설에서 오스카르를 이해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오스카르는 베브라를 통해 정치적인 상황에 눈을 뜨게 되고, 자신이 속한 계층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베브라는 그러한 정치적 상황을 명확하게 감지하지만 나치의 선전관이 되며, 직접 실천하지 못하는 예술가나 지식인이 어떻게 부정적인 상황에 적응해 가는가를 보여준다.
    독후감/창작| 2003.06.18| 1페이지| 1,000원| 조회(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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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주홍글씨를 읽고
    주홍글씨-나타니엘 호손'주홍 글씨'는 17세기 중엽, 청교도주의 정신이 지배하던 시대에 영국의 식민지인 보스턴에서 일어난 간통 사건을 소재로 하며, 그 사건으로 인한 세 사람의 죄인과 그들이 가지는 죄의식에 대해 다루는 심리 소설이다.이 소설은 보스턴 주민들이 모여서 지켜보는 가운데 한 여인이 생후 3개월쯤 된 아기를 안고 감옥에서 나와 처형대로 가는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여주인공인 헤스터 프린이 평생 그녀의 가슴에 달고 다녀야 하는 주홍글씨 A는 'Adultery'의 첫 글자로서 Adultery는 '간음'이란 뜻이다. 그러나 헤스터의 끈기있는 참회의 의지에 의해 이 글자는 'Able'의 A로, 더 나아가 'Angel'의 A자로 의미가 변화하기에 이른다.그녀는 남편이 행방이 묘연해지자 혼자 살다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고, 그로 인해 모욕를 당하며 사람들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함께 죄를 범한 딤즈데일 목사를 비롯하여 그 사회의 유력한 인물들은 헤스터에게 아이 아빠의 이름을 밝히도록 설득하지만, 그녀는 이를 끝내 거절한다.설상가상으로 이날 그 치욕의 현장에는 헤스터의 남편인 로저 칠링워스가 도착해 있었다. 고난을 벗어난 순간, 사랑하는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 그는 무서운 복수심에 사로잡힌다. 자기의 신분을 감추고 아내와 부정을 저지른 사람을 찾아내어 복수를 결심한다.한편, 함께 죄를 저지르고도 숨기고 살고 있는 딤즈데일 목사는 양심의 가책으로 고민하며 건강이 엄청나게 쇠약해진다. 그 무렵 로저 칠링워드는 딤즈데일 목사에게 접근하여 그의 주치의가 되고, 그는 계속 딤즈데일을 관찰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의 비밀을 알아낸다. 그리고는 심적으로 딤즈데일을 고문하고 삶의 의욕을 잃도록 조정해 나 간다.헤스터는 사형대 위에 올라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있는 딤즈데일 목사를 만나게 된다. 목사와 헤스터는 다른 나라로 도망치기로 하였으나 목사는 스스로 죄를 고백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헤스터와 보스턴에서 탈출하는 대신 딤즈데일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설교대 위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한 후 숨을 거둔다. 복수의 대상이 사라진 후 실의에 빠진 칠링워스는 잘못을 회개하듯 헤스터의 딸 펄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게 된다. 헤스터는 그 사회를 떠나지만 다시 뉴 잉글랜드로 돌아온다.이 소설에서 펄과 'A'자는 둘 다 죄를 상징하면서도 기능이 다르다. 'A'자는 청교도적인 도덕관에 의해 그녀에게 주어진 상징으로, 오히려 교만과 반항심을 유발한다. 하지만 펄은 그녀에게 사랑과 구원의 상징이다. 펄은 죄의 씨앗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독선적인 도덕관으로 사람을 구속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독후감/창작| 2003.06.18| 2페이지| 1,000원| 조회(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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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이방인을 읽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카뮈가 이 작품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카뮈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철학인 부조리의 사상을 제시하고, 그 속에서 삶의 근본적인 의미가 무엇인가를 탐구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메커니즘에 휩쓸려 삶의 의미를 상실해 가는 현대인에게 삶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여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하게 한다.모든 인간사, 모든 가치관에 대해 무관심한 주인공인 뫼르소가 자신에게 던져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인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조차 무관심을 보이는 것에서부터 이 '이방인'이라는 작품은 시작되고 있다. 즉, 전통적인 감정과 가치관에 대해 일체의 무관심을 보이는 뫼르소는 바로 이 사회에서 벗어나 있는 이방인이다.'이방인'인 뫼르소는 충동적으로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뒤, 이제는 자신에게 다가온 절실한 문제인 재판에 대해서까지 무관심한 채 사형을 선고받고 만다. 그러나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어떠한 해결도 바라지 않던 뫼르소는 자기의 생명이 곧 사라지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생명의 무한한 가치를 느끼게 되며 살고 싶다는 강한 저항감을 느끼게 된다.결국,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허망함과 그 속에서 느끼는 생에 대한 욕구가 공존하는 뫼르소야말로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뫼르소는 사형을 선고받고,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왜 그녀가 만년에 이르러 `약혼자'를 갖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엄마에게 있어서 그때가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뫼르소는 끝까지 `나는 처음으로 세상을 향한 온화한 무관심에 내 마음을 열어두었다. 진정 내 자신과 닮은 나를 찾는 중에 - 그렇게 깊은 형제애 속에서, 정말로 - 나는 지금까지 행복한 삶을 살아왔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모든 것이 완벽해 지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한가지 일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게, 그 날 나의 사형 집행일에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증오의 함성 속에서 나를 맞아주는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던 인물이다. 즉, 주인공인 뫼르소는 죽음을 새로운 세상을 향한 출발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3.06.18| 2페이지| 1,000원| 조회(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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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비교] 심판과 이방인의 인물의 비교
    이방인의 뫼르소와 심판의 요제프 k를 비교하라.1.이방인의 뫼르소(Meursault)주인공인 뫼르소(Meursault)는 크리스트교의 윤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 사회 내의 윤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분명한 `이방인'이다. 즉, 이때는 `outsider'의 의미로 이해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는 사회의 `바깥'에 남기를 끝까지 선택한 것도 아니고, 또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뫼르소는 젊은 중,하류층의 알제리 이주민을 완벽히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을 즐기며, 사회를 향한 적대감이나 반항은 전혀 고려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즉, 평범한 사무직으로 일하며, 때론 심심풀이로 시시한 영화보기를 선호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고, 싸구려 술집에서 술이나 마시고, 해변에 놀러가서 태양아래 몸을 내맡기기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어느날, 그는 마렝고에 있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양로원에서 뫼르소는 어머니의 관 옆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담배를 피워대는, 지극히 순박한 행동을 일삼는자가 그다. 어머니의 친구들과 밤을 지샌 후, 뫼르소는 알제리에서의 일상의 기쁨에 들떠, 어머니의 장례식은 안중에도 없다. 이례적으로 그 노인들 중의 한 사람은 장례식에 참석하는 게 허용되었다. 그는 바로 어머니의 약혼자 라고 불렀던 토마스 페로츠였다.알제리로 복귀하는 여행길은 그에게 거의 안락함 비슷한 것이었다. 알제리에 돌아와서.뫼르소가 느끼기에 아무것도 변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승진에 있어서도, 결혼에 있어서도, 그가 계속 주절거리는 말은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이다.뫼르소는 계단에서 시골 건달인 레이몽을 만난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보낼 편지 한 통을 써 줄 것을 뫼르소에게 부탁해온다. 레이몽은 뫼르소와 마리를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해변에서 하루 즐길 생각으로 초대한다. 그들은 해변에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러나 담배가게 앞에서, 레이몽은 한 무리의 아랍인들을 발견하곤, 뫼르소에게 손짓하는데, 레이몽 여자친구의 오빠가 그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들은 버스를 타고 알제리 외곽을 돌아, 레이몽의 친구인, 마송의 별장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레이몽은 아랍인 무리와 다툼을 갖고 결국엔 칼부림과 총을 사용하게 된다. 이제 레이몽은 붕대를 감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뫼르소와 함께 다시 그 해변가로 향한다. 그들은 두 명의 아랍인들을 다시 발견했다. 레이몽은 그 남자(여자친구의 오빠)를 쏠려고 생각했지만, 뫼르소는 레이몽에게 아랍인이 칼을 빼어들면 총을 쏘아야만 한다고 조언한다. 이때, 그는 레이몽의 총을 빼앗는다. 이글거리는 태양빛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 태양빛이 그들을 해변에 있는 별장으로 돌아오게 만든다.그런데, 뫼르소는 별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해변으로 돌아간다. 뫼르소는 태양빛, 오로지 태양빛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체포된 뫼르소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뫼르소는 법정변호인을 배정받았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그가 보인 행동은 그의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변호사는 뫼르소에게 알려주었다. 당시에 뫼르소는 몹시 혼란함을 느꼈고, 그 때문에 잠시 본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라며, 변호사는 재판에서 뫼르소가 이야기해 줄 것을 원했지만, 그의 변호가 진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뫼르소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공안검사의 신문이 진행되지만, 뫼르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붉은 빛을 발하는 모래와 태양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만 기억할 뿐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심지어 자기가 사건의 중심인 자신의 재판에서 이방인 이 되어간다. 그는 재판 진행절차를 지켜만 본다. 그리고 검찰 측에서 이 사건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이 재판을 그는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재판이나 되는 듯이 여기고 있다. 재판 중에, 공안검사는 배심원들에게 공표한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의 시신을 보기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영안실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는 조는가 하면 커피를 홀짝였습니다. 존경하는 배심원여러분, 그의 어머니가 죽자 다음날, 이 남자는 수영을 하러갔고, 방종한 간통을 하였으며, 코믹영화를 보고 웃어댔습니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법정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수군거렸다. 다른 증인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한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나이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코믹영화를 보면서 웃는 그를 보았습니다.'판결과 처벌의 개념은 뫼르소에겐 아주 낯선 것이었다. 뫼르소는 단두대에서의 참형을 선고받았다. 뫼르소는 부조리한 주인공이 되고 있었고, 그는 그에게 선고를 내린 무의미한 세계를 받아들일 것이다. 상고를 기다리는 동안에, 뫼르소는 `부조리한 추리'를 시작하고 그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는 서른나이에 죽든 일흔나이에 죽든 그 두가지 선택 안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엔 여전히 죽음만이 도사리고 있을 뿐, 그 이후엔 아무것도 없었으며 따라서, 그는 그 자신의 상고를 거부하여야만 했다. 결국, 뫼르소는 만나길 거부하였던 감옥의 목사가 도착하고, 뫼르소는 그를 끝까지 모욕한다.뫼르소는 죽음을 새로운 세상을 향한 출발이라고 여겼다. 생에 처음으로 그는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왜 그녀가 만년에 이르러 `약혼자'를 갖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에겐 그때가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누구도, 어떤 사람도 그녀를 위해 눈물을 흘릴 권리는 없다. 그런 생각 끝에 이르러 이제, 그는 그의 분노가 씻기워지고, 특별히 그의 모든 희망까지도 정화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뫼르소는 끝까지 `나는 처음으로 세상을 향한 온화한 무관심에 내 마음을 열어두었다. 진정 내 자신과 닮은 나를 찾는 중에 - 그렇게 깊은 형제애 속에서, 정말로 - 나는 지금까지 행복한 삶을 살아왔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벽해 지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한가지 일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게, 그 날 나의 사형 집행일에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증오의 함성 속에서 나를 맞아주는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던 인물이다.2.심판의 요제프K'심판은 코미디처럼, 느닷없는 요제프K'의 체포로 시작된다. 요제프K는 서른 번째 생일을 맞는 것에 대한 동료들의 장난이라면 심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하지만. 그는 체포되었다는 표현으로 제지를 받게 되고, 감시원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법률을 주민들에게서 죄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죄에 의해서 끌려 다닌다는 것이다. 통상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체포가 아닌 이 체포 는 그만큼 요제프K자신에 관한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여기서의 체포나 재판으로 인해 K는 적어도 자기의 총체에 관한 총체적인 인식을 얻으려 한다. 감시인들은 그에게 은행에 갈 수 있게 하지만 세 명의 함께 보낸다고 했다. 요제프K는 감시인에 정신이 팔려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 걸 알고 깜짝 놀란다. 아침에 체포가 확인되고서 ,주간에는 은행에서의 근무를 종전처럼 무사히 끝내고, K의 일상성이 완전히 회복된 저녁이 되어. 하숙집으로 돌아와 그루바흐 부인의 보증을 통해 아무일도 아님을 인식하려 하지만, 결국 그것이 아무 의미 없음을 알게 된다. 요제프K에게 있어서는 현실 그 자체가 재판이었다. 요제프K는 뷔르스트너양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만나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려 하고, 그녀는 재판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지만, 체포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최초의 심리가 일요일에 행해진다는 전달이 근무 중에 전달되어진다. 요제프K는 6층에 이르러 심리실을 찾게 되고, 예심판사와 만나게 된다. 요제프K는 거기서 위법성을 주장하게 되고, 그것의 무효에 의하여 오히려 이 재판 의 초법성이 더욱 명확해진다. 요제프K는 첫 번째 심리를 끝내고 연락이 없자, 자신이 스스로 찾아간다. 하지만, 법정은 텅 비어 있다. 이 소설의 대상은 이성적으로 해명될 수 없는 일들이 요제프K의 삶 속에 침범한 것이다. 이 체포가 있기 전까지 요제프K는 이성적이고, 소시민적이었다. 그의 질서정연하던 일과는 불시의 체포 에 의해서 완전히 엉망이 되었고, 복구가 불가능해졌고, 그는 소송에 휘말리면서 결국 은행업무까지 소홀히 하게 된다. 결국 그는 높은 지위의 은행원이라는 시민적 지위를 저해받은 것이다. 이렇게 법정은 반시민적 원리로 구현되어 있다. 결국 요제프K는 어느 날 두 감시원에 의하여 끌려가서 처형당한다.
    인문/어학| 2003.06.18| 5페이지| 1,000원| 조회(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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