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序1920년대는 우리 문학사적으로 볼 때 현대문학으로 가는 전환점을 마련해준 시기로써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정책으로 인해 문예활동이 상당히 활기를 띠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는 『창조』, 『폐허』, 『백조』, 『조선문단』 등의 문예지 및 『개벽』 등의 종합지가 상당히 활성화 되었고 아울러 동인의 활성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따라서 유능한 시인이나 소설가가 배출되기도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김동인이다. 『창조』의 창립 동인이기도 한 김동인은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비롯하여 「배따라기」, 「감자」, 「광화사」,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등의 남겼고, 특히 시제의 문장표현을 실천에 옮긴 점이나 삼인칭 단수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 받고 있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김동인의 작품세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Ⅱ. 김동인의 작품 세계 개관) 조연현, 한국현대문학사 (현대문학 32호, 1957. 8)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http://www.seelotus.com)김동인의 작품 세계를 개괄적으로 설명할 때 크게 네 가지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는 표현상의 특징, 창작영역, 경향성, 형식 등인데,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표현상의 특징이다. 김동인 소설의 표현상의 특징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문장이 간략하다. 군더더기의 수사나 화려한 문체가 보이지 않는다. 둘째, 구성이 평면적이다. 이는 주로 그의 소설이 단편에 보다 강점을 지니는 이유가 된다. 셋째, 충격적인 수사의 내용이다. 당대의 문장으로 보면, 참신성과 독창성을 지닌 국면이다. 김동인을 직선적인 작가라고 한 이도 있는데, 이 '직선적인 작가'라는 말은 김동인의 정신적, 문학적 기질과 결부된 것이지만, 표현상의 조건만 가지고 말할 때에는 문장의 간략성과 구성의 평면성을 의미한다.둘째, 다양한 창작 영역이다. 김동인은 소설, 평론, 수필 등 산문 문학의 여러 영역에 걸쳐 특이한 면모를 보였다. 소설에 있어서는품에는 낭만주의 인도주의 등의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상반되는 각종 경향은 작품에 따라 엄격히 구분되기도 하지만, 동일한 작품 속에서도 이러한 상반되는 혹은 이질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광화사'나 '광염소나타'는 탐미주의적인 경향의 작품이면서도 자연주의적인 인생관이 깃들여 있으며, '발가락이 닮았다.'는 인도주의적인 경항의 작품이면서도 자연주의적인 요소가 강하게 풍긴다.넷째, 형식의 특이성이다. 소설의 경우, 액자식 구조로 된 것이 많고, 그것도 단순 액자로서 외부 이야기와 내부 이야기의 단일 구조로 된 것이 많다.Ⅲ. 김동인의 생애와 작품세계1. 김동인의 생애)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http://www.seelotus.com)김동인은 평안남도 평양 출생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호는 금동(琴童)·금동인(琴童人)·춘사(春士)이며 창씨개명명 이후로는 곤토 후미히토[金東文仁]로 불리었다. 일본의 도쿄[東京]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졸업,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를 중퇴하였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創造』를 발간하는 한편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하였으나, 출판법 위반 혐의로 일제에 체포·구금되어 4개월 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목숨》(1921) 《배따라기》(1921) 《감자》(1925) 《광염(狂炎) 소나타》(1929)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혁신의 측면에서 높게 평가 받는다.한편 김동인은 이광수(李光洙)의 계몽주의적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寫實主義的)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1925년대 유행하던 신경향파(新傾向派)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를 표방하고 순수문학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1924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1931년 서울 행촌동(杏村洞)으로 이사하여 《결혼식》(1931) 《발가락이 닮았다》(1932) 《광화사(狂畵師)》(1935) 등을 썼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를 지내고, 1944년 친일소설 《성암(聖岩)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에는 장편 역사소설 《을지문덕(乙支文德)》과 단편 《망국인기(亡國人記)》의 집필에 착수하였으나 생활고로 중단하고 6·25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에서 작고하였다. 소설 외에 평론에도 일가견을 가졌는데 특히 《춘원연구(春園硏究)》는 역작이다.특히 김동인은 작중인물의 호칭에 있어서 'he, she'를 '그'로 통칭하고, 또 용언에서 과거시제를 도입하여 문장에서 시간관념을 의식적으로 명백히 했으며,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이른바 간결체를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 받았는데, 1955년 사상계(思想界)에서는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동인문학상(東仁文學賞)'을 제정·시상하였으나, 1979년부터 조선일보사에서 시상하고 있다.2. 김동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다양한 견해) 김상선, 김동인-「감자」와 「광화사」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작가론4 (서울 : 집문당, 2000), pp. 189∼192.김동인에 대한 연구 논문은 상당히 많지만 간략하게 광복 전과 광복 후로 나누어 생각하면 다음과 같다.ⅰ. 광복 전의 작품세계광복전의 것으로는 먼저 벌꽃의 《성격파산》) 벌꽃 , 《性格破産》-東仁君의 〈마음이 여튼 者여〉를 봄, 『창조』, 1921년 1월호, pp. 2∼8.을 들 수 있다. 《동인군의 〈마음이 옅은 자여〉를 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비평문은 〈마음이 옅은 자여〉에 나오는 K(김동인)의 성격을 東浮西流, 공상적 모방적이며 자기 학대적 성격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하였고, 결말은 키를 잡지 못하는 성격적 표박의 생활이 있다고 말하였다.이것과는 약간 성격이 다른데 《조선문단》(1925년 6월호)에 전영택, 김억, 유지영, 춘해 등이 동인에 관한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간단히 살펴보면, 전영택은 《김동인론》) 전영택, 《김동인론》, 『조선문단』, 1925년 6월호, pp. 65∼69.에서 동인을 자아가 몹시 굳센사람이라고 단정을 내렸고, 김억은 《김동인》) 김억, 《김동인》, 후의 작품으로는 우선 왕명의 《김동인론》) 왕명, 《金東仁論》-「붉은 山」을 中心으로, 『白民』, 1947년 1월호, pp. 30∼31.을 들 수 있다. 라는 부제가 붙은 이 비평문은 동인을 단편작가의 일인자라 칭하면서 「붉은 삼」을 조선에의 열렬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라 칭찬하면서 이 작품의 방향으로 작품을 정진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또한 왕명은 동인의 작품에 자연주의적 색채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는데 이후 이러한 계열의 주장은 이후 김동리, 조연현, 박영희에게로 이어졌다. 특히 조연현은 동인의 작품에 여러 가지 경향이 혼미하였으나 이후 1940년대를 전후하며 「김연실전」으로 대표되는 자연주의로 귀결되었다고 정리하였다.) 조연현, 《金東仁》, 『韓國 現代作家論』(靑雲出版社, 1966.) pp. 226∼230 참조.한편 김동인의 작품을 '사실주의'라 칭하기도 하는데 김기진과 백철이 대표적인 인물이다.이 밖에도 김동인을 교문학적인 시점에서 언급한 사람이 있었는데 김상규, 구창환, 김학동, 권도현 등이 그들이다. 이외에도 김우종, 김윤식, 윤홍로, 장백일 등도 빼놓을 수 없다.3. 「감자」와 「광화사」를 통해 본 김동인의 작품세계) 김상선, 김동인-「감자」와 「광화사」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작가론4 (서울 : 집문당, 2000), pp. 196∼201.동인의 문학세계는 한마디로 말해 「감자」와 「광화사」라는 뚜렷한 두 봉우리로써 가름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저마다의 분명한 색깔을 지니고 있을 분만 아니라 각기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우선 「감자」를 살펴 보면 「감자」는 1925년 『조선문단』 신년호에 실린 단편 소설로써 주인공 복녀가 성적으로 타락해 가는 과정을 여실하게 보여준다.복녀의 첫 번째 타락은 기자묘 솔밭의 송충이를 잡으러 가서였다. 자신을 비롯한 많은 인부가 열심히 송충이를 잡아서 돈을 받는 반면 젊은 여 인부 여남은 일도 열심히 안하는데도 품삯을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난 복녀는 어느날 감독의 부름을 받는다. 이로부터 복녀의 도덕관이 완전히 고 이렇게 이루어진 교섭은 왕서방이 수시로 복녀네에 가거나 그 반대로 복녀가 왕서방네로 가는 경우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복녀의 남편은 이런 사실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저 궁하지 않게 지내는 것만으로 만족해했다.그런데 왕서방이 백원으로 처녀 색시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에 분개한 복녀는 낫을 들고 왕서방네 집에 들어가고 왕서방을 죽이려던 복녀는 오히려 왕서방에 의해 죽고 만다. 이후 며칠동안이나 복녀의 시체는 무덤으로 가지 않았다. 나중에 왕서방이 복녀의 남편과 한방의에게 얼마의 돈을 쥐어 주었고, 다음날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복녀의 시체는 공동묘지로 가게 된다.이처럼 이 작품은 복녀의 성적으로 타락하는 과정과 죽는 장면, 그리고 그 주검을 가운데 놓고 왕서방과 남편이 돈으로 흥정하는 장면을 객관적으로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심리변화를 여실하게 보여 주고 있는데, 이러한 과학적인 태도는 자연주의적인 빛깔을 보여 주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하겠다.이러한 계열의 작품으로는 「명문」, 「발가락이 닮았다」, 「김연실전」 등을 들 수가 있다. 이중 「발가락이 닮았다」는 염상섭을 모델로 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발가락이 닮았다」는 남편이 생식 불능자인 줄 모르는 M의 아내가 자신이 죄의 씨를 잉태했다는 불미스러운 사실을 폭로했다는 점, 「김연실전」은 성욕묘사가 대답하게 시도됐다는 점에서 자연주의 소설의 양상을 엿볼 수가 있다.이러한 계열의 소설과는 달리 「광화사」는 탐미주의적) 탐미주의 : 유미주의라고도 하는데, 아름다움을 인생지상의 것으로 여겨 미의 창조 가운데서 인생의 보람을 찾아 본능 그대로의 쾌락이나 찰나적 향락을 맛보려는 주의이다. 19세기 영국의 문예평론가 페이터에서 출발하여 스펜서의 '유희 본능설'에 자극되어 보들레르·와일드 등에 의해 주장되었다.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자연주의 문학이 인 반면, 탐미주의 문학은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광화사」의 주인공 솔거가 화가라는 점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