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림 형제’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통해 바라본 감독의 의도와 오늘날의 의미동화의 이해 수업을 들으면서 동화의 거장인 그림형제(Grimm Brothers)를 통해 독일의 동화의 발달과정을 배우게 되었다. 때를 같이하여 할리우드의 상업영화인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그림형제’가 개봉을 하였고 다시 한번 독일 동화의 거장 그림형제에 대한 많은 토론 거리가 대두하였다. 토론거리의 핵심이었던 이성의 세계를 대변하는 프랑스적인 문화와 환상의 세계를 대변하는 독일적인 이미지에 대한 갈등구조를 통해서 테리 길리엄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의미들이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고찰해 보겠다.두 갈등구조에 대해 고찰하기에 앞서 실존인물인 그림형제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먼저 그들의 살던 시대의 독일의 상황은 영화에서와 같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암울했던 시기이다. 그런 시대에 살았던 그들은 독일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그네들의 구비설화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했다. 그들이 수집한 동화는 구전동화에 속하는데 독일어로 Volksmärchen로 민족을 뜻하는 Volk와 동화를 뜻하는 Märchen의 합성어 이다. 그림형제가 구전동화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동화는 집단 성 근원을 가진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민족이 전체로서 동화에 관여한다는 점을 중시 여겼다. 그렇기에 그림형제는 민족에 내제된 정신을 동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있으면서도 독일의 문화적 자주성을 잃지 않고 민족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동화를 문자로 정착시킨 것이다. 그것이 곧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다 할지라도 독일민족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전통과 민족정신을 보존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그림형제가 보인 구전동화라는 과거에 대한 관심은 독일의 문화적 정치적 무기력을 보상받기 위함이 아닌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과시하여 그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독일민족의 미래를 보장받으려 했던 의도를 엿볼 수 있다.반면 테리 길리엄 감독의 ‘그림형제’에서는 그림형제는 실존인물과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지역설화의 마귀들을 이용하여 마을사람들을 겁주고 자신들이 처리하여 그 대가를 챙기는 사기꾼으로 묘사가 된다. 테리 길리엄은 영화 ‘그림형제’를 통해 그림형제의 일대기가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마법과 전설을 믿지 않는 윌은 감독의 자아가 투영된 캐릭터이고, 반대로 그것들을 믿는 제이크는 어린 시절 그림형제의 동화를 보고 상상력을 키웠던 테리 길리엄의 또 다른 자아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이러한 두 가지 차이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케릭터들 뿐만 아니라 그가 보여주는 프랑스와 독일의 갈등구조 또한 이 두 가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굉장히 현실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군대는 그 전까지의 전략과는 다른 새로운 5가지 전쟁원칙을 가지고 있었고, 그 원칙이 프랑스가 멀리까지 원정을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프랑스는 영화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조직적이고 현실적이며 전설과 환상 따위는 염두 하지 않는다. 물자를 현지 조달하였기 때문에 독일인들과의 쓸데없는 불화를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들의 전설에 관한 민원이 들어왔을 때 군대를 투입하지 않고 자칭 퇴마사인 그림형제를 투입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반면에 독일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전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영화 초반 그림형제가 그러한 전설을 먼저 파악하고 한바탕 사기극을 준비하고 마을 관리로부터 상당액의 퇴마 수수료를 챙기는 식의 사기행각을 할 수 있는 원인이 된다.또한 영화 ‘그림형제’에서 테리 길리엄은 현실의 프랑스인과 환상의 독일인으로 나누어 설정을 했는데 역사적으로 바라봤을 때는 전설에 대한 독일인들의 자주성을 잃지 않았음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독일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순수 미국인인 테리 길리엄이 그런 점까지 고려했으리라 생각되진 않는다. 그는 단지 그림형제라는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는 점은 그의 다른 영화들을 생각한다면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브라질’과 ‘12몽키즈’를 고려하면 두 영화의 공통점은 현실과 환상의 조화에 있다. 시작은 현실과 환상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어 둘이 과연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영화의 중 후반으로 가면 그 둘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러한 그의 영화관은 ‘그림형제’에서도 여실히 들어난다. 초반 윌이 소를 마법의 콩으로 교환해 온 장면에서 그들의 여동생이 콩에 의해 살아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들이 마르바덴의 숲으로 갔을 때는 현실일수 없는 전설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에서의 설정은 그림형제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로서 자신 또한 그들에 못지 않은 이야기꾼임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이다. 이야기꾼이라 하면 하나의 뼈대에 여러 가지 흥미를 끌만한 이야기로 살을 붙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면모는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지속적으로 여러 동화가 패러디 형식으로 나오는 점에서 엿볼 수 있다. 그가 어린 시절 그림형제의 동화를 보고 자라왔으며 이를 통해 상상력을 키워왔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점인 동시에 자신이 그림형제에 못지않은 이야기꾼임을 과시하려는 단적인 예이다.테리 길리엄, 그는 프랑스인도 독일인도 아닌 순수 미국인이다. 그런 그가 그림형제를 소제로 한 영화를 만들었을 때 그것이 프랑스나 독일의 정서가 묻어 나와야 할 필요성은 없다. 또한 할리우드 자본이 바탕이 되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다만 그가 사업적 영화를 만들던 예술 영화를 만들던 그가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영화 ‘그림형제’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의 영화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애매한 경계를 통해 사람들은 좀더 현실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환상이라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환상이라는 것이 때로는 현실에서의 도피도, 민족의 자주성에 대한 고찰도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현실과 환상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현실에서의 난관을 해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영화의 이해(중간고사 Report)Report. 1김지운감독 작가론작가 연보서울예전 연극과에 입학했지만 도중에 그만두고 연극 현장에서 활동했다. 연극에서 영화로 활동영역을 옮겨 시나리오를 썼는데, “조용한 가족”이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시나리오를 직접 영화화해서 데뷔를 하게 된다. “조용한 가족”은 코믹 연쇄 살인극이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시도였다.( HYPERLINK "http://www.cinesourl.com" www.cinesourl.com에서)약력( HYPERLINK "http://www.movist.com" www.movist.com에서)1994년 : 연극 연출1995년 : 연극 연출1997년 : ‘프리미어’ 시나리오 공모 - 가작 당선1997년 : ‘씨네21’ 시나리오 당선 - 당선1998년 : 장편영화 연출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 영화제 ‘베스트 필름’상 수상 / 스페인 시체스 영화제 /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 / 베를린 국제 영화제 포럼 부문1999년 : 장편영화 연출홍콩 국제영화제 / 토론토 국제영화제 / 밴쿠버 국제영화제 / 런던 국제영화제/타이페이 국제영화제 / 도쿄 필름엑스 국제영화제 /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부문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 / 도빌 판아시안 국제영화제2000년 : 인터넷 단편영화 연출2002년 : 한국-홍콩-태국 3국 합작 옴니버스 영화 의 한국편 연출2003년 : 연출베를린 국제 영화제 영 포럼/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브뤼셀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프랑스 게라르메 판타스틱 영화제 그랑프리 등2005년 : 연출2. 김지운감독의 작품세계김지운감독,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무언가 남들과는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관중들에게 넌지시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HYPERLINK "http://www.nkino.com" www.nkino.com에서의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 또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선 “조용한 가족”, “반칙왕” 같은 코믹 영화에서도 “장화, 홍련” 같은 호러 영화에서도 최근에 개봉한 “달콤한 인생” 같은 누와르 영화에서도 그가 영화 속에서 이야기 하고자 했던 부분은 삶의 두려움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정신 세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달콤한 인생” 촬영을 마치고 영화평론가 하재봉과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왜 굳이 없어도 될법한 마지막 씬을 삽입하여 누와르 장르의 비장미를 약화시켰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게 답을 했다. 그 자신이 그러하다고. 그 자신이 무언가 몰두하다 보면 스스로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된다고. 하나에 푹 빠지는 것이 두렵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 그의 성격이 그의 영화 하나하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3. 시기구분굳이 그의 작품에 시기를 구분하자면 제 1 기로 “조용한 가족” 과 “반칙왕”, 제 2 기로는 “메모리즈”, “장화, 홍련”, 제 3 기로 “달콤한 이생” 이라 할 수 있겠다.제 1 기에서는 코믹물로써 “조용한 가족”에서는 열심히 살아가려 하지만 자꾸만 일이 꼬이기만 하는 가족이 결국에는 빈집처럼 조용하게 집에서면 숨어 살게 된다는 내용이고, “반칭왕”은 볼품없는 은행원이지만 밤이면 가면을 쓴 레쓸러로 변신 스스로의 자아를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두 개의 작품은 얼핏 같은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상반된 표현 방법을 가지고 있다. “조용한 가족”에선 계속적으로 투숙객들이 죽어나가자 장사를 망칠 수 없다는 집념으로 스스로 그 시체들을 묻어버리나 결국에는 들통날 위기에 몰려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는 내용으로 얼핏 보면 안쓰러워 보이면서도 아이러니한 상황이 우리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마지막에 어떤 심정을 가지게 될지는 뻔하다. 이것은 삶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반칙왕”에서는 조금 다르다. 상황은 정 반대다. 항상 능력 없는 모습만을 보이던 은행원이 레쓸링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자신감을 찾아가는, 어쩌면 레쓸링을 하기 전에는 그의 삶은 두려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루하루 언제 쫒겨날지 모르는 직장생활, 집에서는 아버지의 구박. 이런 두려운 삶 속에서 레쓸링을 하면서 가면속에 가려지긴했지만 자아를 찾아가고 또한 자신감도 갖게 된다는 내용이지만 역시 그런 일상들을 다소 코믹하게 다루고 있다.제 2 기는 호러물로써 “메모리즈”, “장화, 홍련”을 들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그의 작품세계와는 다소 벗어난 듯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먼저 ”메모리즈”에선 실종된 아내를 찾는 남편과 아내가 집을 찾아가면서 서서히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호러물의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숨겨져 있는 아내와 남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다루고 있다. 역시 그 일상적인 삶 속에서 그들이 찾게 되는 일상적이지 않은 해결방법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장화, 홍련”에서는 그 구조적 상황 설정만이 구전동화 “장화홍련전”을 연상시키지만 그 안의 내용은 전혀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당시 한참 유행했던(나만 좋아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반전영화라고나 할까.호러이면서도 호러가 아닌 듯한 인상을 깊게 새겨준다. 정확히 서술하자면 심리호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무언가 갈등을 다루고 있다. 새엄마와 그에 반발하는 아이. 그리고 그 아이가 겪게 되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 이 두 작품을 통해서도 김지운감독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그 바탕에 깔려있는 생각은 “삶”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이 삶을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 그러한 삶들이 두렵지는 아니한가.제 3 기는 최근에 개봉한 “달콤한 인생”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누와르 였다.” ( HYPERLINK "http://www.movist.com" www.movist.com에서 발취)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명백하다. 그는 언제나 영상적인 아름다움 속에 잔잔한 음모와 인간의 어두운 열정, 비정함 등이 그의 모든 작품에 녹아 들어가 있다. “조용한 가족”에선 아버지가 그러했고, “반칙왕”에서는 임대호가 그렇게 변해갔으며, “메모리즈”에선 남편의 비정함을, “장화 홍련”에선 새엄마의 어두운 열정과 음모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달콤한 인생”만큼 완벽하게 누와르를 표방하지는 않았었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 그가 하고 싶었던, 어쩌면 그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형적인 누와르답게 어느 곳 하나 놓치고 싶은 장면이 없었다. 장면 하나하나가 아름다웠으며 선우의 액션이 영화에 빨려 들게 만들고 있었다. 여기에서도 감독은 오프닝 크래딧 올라가기 전과 마지막 엔딩 크래딧 올라가기 전, 나레이션을 통해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장 달콤했던 순간이 지나고 가장 처참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선우를 통해서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인생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4. 작품세계그의 작품들은 얼핏 보기에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없이 산발적인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정신세계가 여과 없이 녹아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삶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거리감이 스스로를 객관적이고 다소 냉소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듯, 영화에서 아이러니컬한 상황과 반전이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에의 몰입이 아닌 다소 거리감을 두고 영화를 바라보게 한다. 그는 이러한 반전을 통해 단지 비장하고 멋진 외형적이 측면에의 몰입이 아닌, 그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자신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거리감을 둘 때가 있다라고. (영화평론가 하재봉과의 인터뷰 중에서) 그러한 그의 정신세계가 그의 작품에도 너무나 잘 녹아있어 그의 그런 영화 속 장치들이 때로는 관중들을 안심시키는, 때로는 관중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계기로서 작용하고 있다.5. 결론 그리고 앞으로의 한국의 영화영화라는 하나의 개체를 통해 김지운감독은 그의 정신세계를 한편의 영화로 담아내려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그는 대스타들에 의한 장편을 만드는 와중에 “메모리즈”, “커밍아웃” 같은 단편을 만들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측면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도적정신이 자칫 상업문화에 물들 수 있는 영화산업을 다시금 하나의 문화로써 생각할 수 있는 개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가 한국 영화산업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기에 그의 작품을 통해 한국의 영화 산업은 한 걸음 한 걸음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한국의 영화산업을 떠받치고 잇는 하나의 기둥이듯 아직은 그가 해야 할 일, 그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조금은 더 있으리란 생각을 하며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물론 다음 작품 또한 관중을 실망시키지 않는 좋은 작품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참고자료김지운 (1998)김지운 (1999)김지운 (2002)김지운 (2003)김지운 (2005) HYPERLINK "http://www.movist.com/movies/movist.asp?id=208" http://www.movist.com/movies/movist.asp?id=208 HYPERLINK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3603"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3603 HYPERLINK "http://www.nkino.com/People/People.asp?id=2298" http://www.nkino.com/People/People.asp?id=2298http://cafe.naver.com/krieit.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533
박은희 20113455 교육학과예술이자 오락이며 산업인 동시에 테크놀로지의 산물인 영화는 연극이나 기타 예술 장르와는 다르게 카메라의 앵글, 각도, 샷의 길이, 음향, 대사와 화면구성 등 여러 가지 다양하고 다채로운 요소를 이용하여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중에서 카메라 기법은 감독의 의도를 가장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장치 중의 하나이다. 헐리우드의 대부분의 액션영화들은 샷의 크기를 늘렸다 줄였다하여 사물의 감정과 영화관전의 포인트를 줄 수도 있고, 각도를 조절함으로서 인위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또한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도 있다. 이렇듯 영화에서의 카메라 기법은 영화의 시나리오나 음향 못지않게 감독의 의도를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요소이다. 영화 에서 허진호 감독은 깔끔하고 간결한 카메라 기법으로 일상에 던져진 사랑의 상처와 치유에 대한 사랑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칫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는 롱샷 크기의 샷과 롱 테이크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이 영화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영화에서 눈을 땔 수 없게 만드는 신비로운 영상의 흐름과 구성이 아닐까 싶다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야기의 흐름은 얼핏 상우와 은수의 단편적인 사랑 이야기인 듯 한 인상을 준다.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카메라는 이 둘을 계속적으로 비추며 그들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헤어짐 등 그 둘의 사랑의 흐름의 과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카메라 기법이란 수단을 사용하여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를 암시적 또는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허진호 감독은 이 둘의 사랑이야기를 주로 고정샷과 Eye level shot 그리고 풀샷과 롱샷 같은 큰 크기의 샷과 롱 테이크를 사용하여 나타내고 있다. 이 기법들의 특징은 인위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먼저 영화전반에 드러난 카메라의 샷을 눈여겨 살펴보자. 허진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고정tit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관객들로 하여금 받도록 하였다. 한 폭의 회화를 보는 듯한 이미지를 통해 관객들은 스크린 속에서 보여지는 장면에서 어떤 것에 포커스를 두고 감상해야 할지 고민 할 필요 없이 모든 스크린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허진호 감독의 라는 영화의 카메라 기법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카메라를 여러 각도로 이동시키며 캐릭터의 감정을 스크린의 그려낸 것이 아닌 그들의 감정변화를 아무런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감독이 관객들에게 주는 관전 포인트를 철저히 배제하고 관객들 나름대로의 사고관과 세계관으로서 영화를 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의도한 허진호 감독의 배려인 듯싶다.의 전반적인 카메라 기법상의 두 번째 특징은 Eye level shot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화면의 왜곡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카메라 각도라고 볼 수 있다. Hige angle이나 Low angle 같은 경우 감독의 의도에 따라 관객이 장면으로 하여금 느끼는 감정을 변형시킬 수 있다. 이는 감독의 생각을 인위적으로 관중들에게 전달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에서 허진호 감독은 이번에도 그런 인위적인 요소를 배제시키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샷을 eye level shot으로 그려냈으며, 그 외의 샷을 최소화함으로써 관중들에게 영화를 이해하는데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샷의 크기는 대부분을 풀샷이거나 롱샷을 주로 사용하였다. 영화의 복선으로써나 캐릭터의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기위해서 쓰인 클로즈업이나 익스트림 클로즈업샷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다면 풀샷이나 롱샷을 사용하여 영화 속의 포인트를 관객들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그에 대한 판단은 관객들에게 맡기고 있다.마지막으로 샷의 길이를 살펴보면, 몇 몇 장면들을 숏 컷이 아닌 롱 테이크 위주로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인물의 심리를 여과 없이 전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롱테이크는 스크린에 흐르는 시간이 관중들이 느끼는 시간과 똑같이 흐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업영화의 감독들은 롱테이크를 필름의 낭비라고도 표현을 한다. 몰론 롱테이크로 찍게 되면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장면들이 영화에 삽입하게 되는 불필요한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허진호 감독은 롱테이크로 찍음으로써 캐릭터가 느끼게 되는 감정이 그대로 관중들에게 전달하고 있으며, 관객들은 이를 통해 케릭토와의 이화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이러한 상황이 단지 캐릭터에게 동화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경험에 빗대어 영화를 바라보게 한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여운을 깊이 간직하게 하는 마지막 장면의 유지태가 갈대밭으로 향하는 장면과 갈대밭에 도착하여 소리를 새로 녹음하는 장면은 긴 롱테이크로써 두 컷으로 처리하고 있다. 카메라는 핸드핼드 기법을 사용하여 유지태의 흔들리는 걸음을 부각시키면서 서서히 그의 사랑의 상처가 치유되고 있다는 암묵적인 인물의 심리 상태를 컷 없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의 사랑의 추억을 간직했던 테잎)과 동시에 사랑을 추억을 흘려버리기 위해서 새로운 녹음을 하는 장면을 크레인을 이용하여 롱테이크로 점점 넒은 화면에서 좁은 미디엄 샷으로 그의 모습을 카메라로 화면에 담으면서 유지태의 한없이 아름답고 감성적일 수 있었던 사랑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단지 카메라 자체라는 단일적인 기법이만으로 영화 "봄날은 간다"를 찍었다면 이 영화의 아련한 감정의 전달이라는 것에 실패했을 것이며 관객들에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고 그런 멜로영화들은 영화 시장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카메라와 음향효과의 결합이라는 부분이다. 음향, 즉, 소리라는 매체는 상우와 은수의 직업이 갖는 공통분모이자 영화를 더욱 미각화 시켜주는 요소이다. 소리는 둘을 엮어주게 되로 서로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지만 소리를 통하여 이루어진 그들의 사랑에는 엇갈림이 있다.) 그러한 그들의 상반된 입장을 카메라는 소리라는 것과 카메라는 그러한 그 둘의 사랑의 장벽을 객관적인 장면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이런 그들의 사랑의 행태는 몇 컷 있지 않은 high angle shot과 low angle shot에는 빠짐없이 이런 음향 효과가 결합되고 있다. 처음 상우와 은수가 같이 녹음하게 되는 대나무 숲에서의 바람소리 씬이 그러하다. 카메라는 위에서 그 둘의 모습을 바라보다 점점 그 둘에게 가까워지게 되고 다시 대나무 숲 속의 하늘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그들의 시선이 같이 향하고 있는 대나무 숲에서의 하늘의 영상과 바람에 솨솨 스치는 갈대의 소리의 절묘한 조화를 통하여 관객들에게 앞으로의 그들의 아름답지만 애절한 사랑의 앞길을 예견하도록 하고 있다.
1. 서론 : 영화 'DEAD POET SOCIETY' 에 대한 이해카르페 디엠! (Carpe diem!)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이 Seize the day를 의미한다. 이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반성과 희망을, 미래를 살아갈 우리의 후손들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피터 와이어(Peter Weir)의 1989년 작품『죽은 시인의 사회』는 개봉된 때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변함없는 감동을 준다. 광복이후 7차 교육과정을 겪은 우리 나라의 교육현실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영화라고 여겨진다. 광복이후 수많은 교육과정의 논의와 발전의 노력이 있었지만, 우리 나라의 교육은 획일화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주입식 교육으로 메말라 가는 현실에서 따뜻한 인간애와 자유로운 정신을 심어주는한 교사의 참교육을 다룬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반성과 지각의 기회를 준다. 우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 안의 의미 있는 장면과 말을 살펴본 후, 교육적 시사점을 생각해보도록 하겠다.2. 본론(1) 영화의 줄거리빽파이프 연주를 앞세우고 교기를 든 학생들이 강당에 들어서면서 1859년에 창립된 일류대학 진학 예비학교인 명문 웰튼 고등학교(Welton Academy)의 새학기 개강식이 시작된다. 남학생들만 있는 명문 기숙학교 웰튼에서는 학생들이 엄한 규율하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진학하도록 하는 것을 교육의 최종목표로 삼고 있다. 웰튼의 교사들 역시 학생들을 미래의 법률가, 의사 혹은 과학자로 길러내기 위해 고심한다. 이 학교에 새로 전학 온 토드(Todd Anderson: 에단 호크)는 어린 신입생들과 마찬가지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숨길 수 없다.그리고 이 학교 출신인 키팅 선생(John Keating: 로빈 윌리암스)이 영어 교사로 부임한다. 그는 첫 시간부터 파격적인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오늘을 살라'고 역설하며 참다운 인생의 눈을 뜨게 한다. 닐(N들은 권위와 압박의 상징인 책상 위에 올라가 "Oh Captain, my captain"을 외치며 눈물의 작별을 고한다. 그들을 지긋이 바라보던 키팅은 마지막 말을 한다. "Thank You Boys, Thank You".(2) 영화의 표면적 내용 분석따뜻한 인간애와 자유로운 정신을 심어주는 한 교사의 참교육을 다룬 작품으로 81년에 발표한 톰 슈만의 소설을 영화화하였다. 미국은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크게 호응을 받았던 이 영화는 명문교의 전통과 권위에 저항하는 청춘 세대의 향수를 따뜻하게 그려내었다. 우선 이 영화의 표면적인 구성을 살펴본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A. 발단-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 키팅 선생과의 만남.B. 전개-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해 알게 됨. 키팅 선생의 파격적인 수업 방침에 몇몇 학생이 동감을 표시.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이어가며 선생의 말처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함.C. 위기-녹스가 미식 축구부 주장과 싸움, 토마스가 부모님이 선물한 선물세트를 버림 등의 작은 에피소드들이 그들의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며 닐이 연극을 시작함.D. 절정-연극 공연 중에 부모에게 들킨 닐. 자신의 삶을 일구지 못한 닐이 부모와 자아와의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유를 꿈꾸며(월계관을 쓰고) 자살.E. 결말-책임 추궁으로 쫓겨나는 키팅 선생과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학생들. 특히 가장 우유부단했던 토마스 앤더슨이 제일 먼저 책상 위로 올라가(리더격이었던 닐의 용기에 변화한 모습을 보여줌) Oh Captain, my captain!을 외침. 많은 학생들이 교장에게 반기를 들며 눈물로 선생을 송별함.스토리 구성이 남고 넘침이 없이 훌륭하다. 상영 시간의 한정된 상황에서 아주 적절하게 표현된 것 같다.(3) 영화의 개인 해석적 분석1) 카르페 디엠(라틴어) 즉, "Seize the Day"(현재를 즐겨라. 오늘을 붙잡으라) {) 17세기 영국의 문학은 metaphysical poetry 와 cavalier poetry의 두 굽히라고 하며 자신의 주위로 모이게 한 다음 키팅은 ' 카르페디엠!' 즉 "오늘을 붙잡으라!"고 속삭인다.◈인상깊었던 대사"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거두라.""그 감정의 라틴어 표현은 카르페 디엠이다." "현재를 즐겨라.(Seize the Day.)""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시인은 왜 이런 말을 하지?" "인간은 반드시 죽기 때문이다."2) A Midsummer Night's Dream이 영화 중에 학생들이 공연하는 셰익스피어의 이라는 연극도 이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한다. 은 인간내면의 욕망적 꿈의 세계를 풍자적 희곡의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이면적 세계인 그림자, 다시 말해 꿈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정직하고 깨끗하고 순결한 인간의 이성적 세계와 대립하고 있는 탈선의 세계 즉 욕망의 세계이며 그림자의 세계를 꿈의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에서 등장하는 연극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연극에서 닐의 대사는 인상깊었다.{) (관객들에게) 우리들은 그림자. 우리들 그림자가 때때로 여러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더 라도, 그것은 잠시 꿈꾸 는 동안의 일이라 생각하세요. 언짢은 꿈자리 때문이라 생각해서 용서하세요. 이 연극이 초라하고 허황된 것이 라 하더라도, 그것은 꿈같은 것이니 나무라 지 마시고 용서하세요, 앞으로 고쳐 나가겠습니다. 나는 정직한 요 정 퍽이랍니다. 여러 분이 칭찬을 해 주시면 격려라 생각해서 더욱 분발하죠.3) 죽은 시인의 사회란?이 영화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관객의 필수 의무란 생각이 든다. 키딩선생님으로부터 아이들이 이어간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해준다.우리가 다 시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다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다 배우는 아니지만, 노력하면 배우가 될 수도 있다는 등 여러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학교 혹은 직장이정한 현실세계로부터 고개 돌리는 이들이 모이는 순수문학의 사람들. 그들이 모이면, 죽은 시인의 사회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죽은 시인의 사회 책을 보면 학생이 키팅 선생에게 묻습니다."왜 하필 죽은 시인의 사회죠? 죽은 시인의 시만 연구하나요?"키팅 선생님의 대답이..."죽어야만 그 클럽의 정회원이 될 수 있다. 죽지 않는 한 준회원이다."4) Oh Captain, my captain!대충 보면 키팅 선생님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떠나가서 단순한 새드 엔딩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키팅 선생님이 떠나가기 전에 처음에 키팅 선생님을 주시하던 선생님이 학생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수업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키팅 선생님의 새로운 수업 방식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키팅 선생님은 미소를 짓는다. 비록 키팅 선생님은 떠나가지만 그가 학생들에게 심어주려 했던 새로운 교육방식은 조금씩 전해질 것이다.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키팅선생님(로빈 윌리엄스 )이 학교를 떠나기 직전에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마지막 작별 메시지를 전하고 떠나려는 순간, 학급의 학생들이 하나씩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올라서는 바로 그 대목은 정말 눈시울이 뜨겁고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감동적이다. Oh Captain, my captain!3. 영화의 교육적 의미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열린 사고를 가진 깨어있는 교사, 그리고 더 이상 수동적이고 학교 당국에 휩쓸리는 교사가 아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가르치는 교사인 키팅과 그의 적극적이고 독특하면서도 진지한 가르침에 점차 변화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웰튼 고등학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학력(學歷)주의와 일류대학 입학이라는 제일주의로서 오로지 하나의 목적 -구체적으로 일류대학의 진학- 을 가지고서 일단, 자신의 꿈은 접어두고 오로지 목표달성만을 위하여 교육한다. 여기서 학생들의 개성과 인성과 삶에 대한 자신들의 욕망은 무시 될 수밖에 없다. 즉 획일화된 교육현상과 사회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ourselves again. 라고 말한다. 이 말 한마디가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키딩선생의 교육적인 가치관을 집약하여 보여준다. 즉, 그가 영화에서 말한 것은 기존의 다른 사람들이 이미 평가하고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읽고 배우는 식의 교육, 즉 요리사가 다 요리해 놓고, 그 요리감평사들이 평가해 놓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재료를 가지고, 나름대로 요리하여, 자신만의 색깔과 맛을 낼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을 그는 진정한 교육의 핵심으로 보았다. 이런 키팅의 생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수업이 바로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가는 그것이다. 즉 그는 책상 위에 올라가는 행위를 통해, 사물을 다른 식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학생들에게 주려했던 것이다. 즉, 여태까지 주어진 자리에서 앉아 수동적이고 일방적으로 공부했던 학생들에게 그는 일방통행의 방식이 아닌, 바로 그들만의 사물을 대하는 방법을 찾는 길을 마련해 준 것이다.즉, 자신의 존재감과 자신의 본성을 잊은 채 살아가는 학생들이게 이제는 이런 틀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자신의 것을 주장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라는 것이다. 즉, 이것은 한단계 나아가면 카르페 디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정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걷는 수업을 하는 것에서, 누구든, 자신의 길을 어떤 방식으로 걷든지, 또한 어떤 모습으로 걷는지간에, 자신만의 걸음걸이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그를 보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삶이 무엇인지, 학생들로 하여금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이런 수업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각자 내면에 들어있던 열정과 꿈들을 하나씩 찾도록 한다. 즉 이제부터 학생은 수동적이고, 늘 복종적인 모습이 아닌 능동적이며, 자기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다른 일반교사와 교장과는 달리, 키팅은 가르치는 자에 머물리 않고, 학생들과 함께 길을 가는, 그리고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는 선생으로 인식된 점이다. 즉, 사회의 기본권력의 구조적 속성이 폐쇄적이고 봉건적으로 나다.
대학내, 직장내, 성희롱{) 직장 등에서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성과 관련된 언동으로 불쾌하고 굴욕적인 느낌을 갖게 하거 나 고용상의 불이익 등 유무형의 피해를 주는 행위.의 문제는 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까?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들이 있어야 하는지요? (학내 성희롱문제에 관하여)-- 우리나라 헌법 제 11조 1항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라고 양성평등의 이념을 밝히고 있으며, 이에 근거하여 1997년 7월 1일 부터는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이제 성희롱 의 문제는 남녀평등의 개념틀 안에 포섭되었다. 그러나 학교내 성희롱의 문제는 여전히 법망에서 제외된 채 개인적인 문제로 남아 학생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평등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 를 위협하고 있다.--칼럼에서--보통 대학에 들어와서 자주 접하게 되는 술자리 문화는 폭주ㆍ폭언ㆍ음담패설에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이는 남성성의 구연으로 나타나는 집단을 위해 개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주는 대로 마시고 학번 서열을 무기로 폭언과 음담패설을 조장하는 일정한 틀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대학문화는 군사문화와 밀접하계 관계맺음을 하고 있다. 군사문화는 가부장적 권위주위와 학번 서열을 대학문화와 융합하면서 폭력적인 술자리문화, 음담패설과 성추행이 일상화된 뒷풀이 문화를 만들어 왔다. 매년 신입생이 들어오는 시기에 강제적인 술권유로 인해 피해자가 나타나는 것이나 새터에서부터 성희롱이 일어나는 것은 이와같은 잘못된 술자리 문화의 역기능이라 할 것이다.학내 성희롱이 발생하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선후배간 혹은 동기간에 일어나는 성희롱의 발생원인이 무엇보다도 대학문화의 두가지 특징적인 성격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첫째, 우리나라 대학문화의 공동체적 성격이다. 대학 사회는 공동체 문화, 단결과 단합 등의 가치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러한 성격은 성희롱(성폭행 등 포함)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동체의 이념과 가치의 틀 안에서 은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둘째, 남학생을 기준으로 한 잘못된 평등의식의 요구이다. 남학생과 여학생간의 실질적인 차이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성차별적인 문화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미 남성중심적인 대학내 성문화를 여학생이 그대로 함께 따르기를 요구한다. 여학생들은 자신들이 직면하게되는 성희롱이나 성추행등을 무시하고 남학우들과 똑같이 즐기고 수용할 것을 요구받으면서 쉽게 (성회롱이나 성추행에) 노출되어진다.특히, 교수와 학생간의 성희롱은 학교내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며 심각성을 띠고 있다. 그 이유는 학교라는 사회가 사회의 기본적인 권력구조의 속성이 그대로 투영되고 나타나는 폐쇄적이고도 봉건적인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특히 교강사-학생 사이의 힘의 구도는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공식적 권력을 소유-우리사회 일상적 권력-하고 있는 반면, 피해자는 공식적(일상적) 권력에서 배제된 약자-여성-의 모습일 수 밖에 없는 일방적 관계라는 점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은 매우 크다.그렇다면 이런 학내 성희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한가.첫째, 성희롱을 조장하는 대학문화에 대한 고찰을 통한 해결방안이다. 음담패설은 집단주의적 공동체속에서 한사람의 구성원으로 있고자 하는 여학생들조차 자신이 동등한 구성원이 아니라 여성임을 느끼게 하며 곤란하게 만든다. 즉 성희롱은 남성과 여성를 뚜렷이 구분하는 잣대가 되곤 한다. 성희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언제나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는 서로 나뉘어 바라보게 된다. 남자들은 자신들이 앞으로 성희롱을 저지를지 모르는 예비 가해자인 것처럼 가해자의 입장을 변호하기도 하고 또는 왜 남자들을 다 성희롱의 예비 가해자로 보느냐고 항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현재 시점에서 우리안에 이미 성희롱의 문제가 들어 있음을 알지 못한다. 또한 성희롱이라는 사건에 대해 사회문제를 논하는 것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닫혀 있었다. 이제는 그런 범위를 넘어 일상안에 들어와 있는 불평등과 불안을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동등한 구성원으로써 캠퍼스 안에서 능률적인 환경에서 학습하고 생활한 권리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둘째, 권력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은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성희롱 피해를 드러내기 어렵게 한다. 가해자를 고발하고 처벌하는 대신에 가해자와의 고통스런 대면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 이로써 공적영역에서 오히려 피해자 여학생이 퇴장하고 가해자는 남아서 그 공간에 대한 권리와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모습이 되풀이 된다. 피해자만 사라지는 이러한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 공동체 모두가 개개인의 성적 자유권과 학습권, 생활권을 보장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즉, 대학당국에서 학내 성폭력을 학습권과 생활권의 침해로 규정하고 구성원의 인권침해를 구제할 것임을 선언하고 실행하는 정책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4년제대학 중 동아대 충북대 서울시립대 부산대 등 4개 대학은 작년 연말, 올초 자체적으로 학내규정을 마 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들 4게 대학은 성폭력을 범죄행위 구성여부와 관계없이 상대방의 성적 자기 결정 권을 침해하거나 성적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모든 언행 으로 규정하고 있고 학내에는 상담기관과 권리구제기관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