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고...96126632 이제우그가 나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함석헌이란 이름과 내가 그로부터 받는 그 무엇인가는 분명 한가지 확실한 것 하나를 내게 선물 해 주었다. 그리고 책을 덮은 순간은 많은 내 상식과 내가 소위 부르던 역사의 지식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이 책은 내가 듣는 이 수업과의 관계에 대해 의심하였던 나를 어리석게 바라보게 하며 이 감상문 아닌 감상문의 첫 페이지를 시작하려한다.우리의 역사와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런 질문은 어리석은 발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속에 나의 존재의 가치와, 길을 다시 설정한다.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가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아직도 그 답을 정확히 모르겠다. 흑백논리로 보기에도, 낙관적으로 보기에도 나의 지식으로는 그 답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한다.하지만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현실은 한가지 통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한가지는 하나의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에게 하늘은 많은, 너무 많은 시련을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비굴하게 그 한 가닥 숨을 붙잡고 있는지 모른다. 책에서 나온 늙은 창녀처럼 그저 죽을 수 없어서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5000년이란 세월이 시간의 위대함이라든가 아님 단지 역사의 시간적 길이가 우리의 자랑은 결코 아니다. 만약 역사의 시간이 그 민족 혹은 국가의 힘을 대변한다면 아마 이 지구상에는 문명의 발상지라 불리는 곳만이 그 힘을 자랑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이 지구상에는 소위 강대국이라는 나라와 약소국이라는 나라로 나뉘며, 이것이 현실이며 힘의 균형에 의해 역사는 만들어지고 있다. 하느님의 이상적인 청사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단지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그냥 아무 힘없는 아이처럼 울고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가?우리의 역사에 대해 그래도 남보다는 많은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였금은 잃어버린 역사라고 한다. 그리고 그 곳을 눈물 흘리며 잃었고 다시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수 없이 있었으나 우리는 다시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만주라는 땅을 잃어버린 것일까? 아님 우리의 민족의 얼을 차버린 것일까? 우리의 역사속에 수많은 위인은 단지 우리의 위인일 뿐,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우리끼리 그 자만을 자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왜 우리의 조상은 탁상공론에 빠져 아직도 그 더러운 습관을 계속 주고 있는지? 답답하기 그지없건만 해답은 보이질 않고, 우리는 계속, 계속 진흙에 빠진 장님처럼 허우적 거라는 것인가?우선 우리의 현주소를 알아야한다. 그리고 특히 우리의 믿음을 다시 공부해야한다. 왜 우리나라는 수 많은 신도와 불자들이 있는데 우리의 사회는 그것들이 말하는 사회에 근접하지도 못한가?얼마전 신문에 국제투명성기구(TI)는 북유럽의 핀란드를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없는 나라로 3년 연속 선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핀란드를 가장 깨끗한 국가로 만드는 것일까?언론에서 말하기를 핀란드 의회는 지난 6월 국회의원의 뇌물수수를 범죄로 규정해 처벌하는 법안을 놓고 진통을 겪었다고 한다 "굳이 그런 법이 왜 필요하냐"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었으며 법 없이도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공연히 법을 만들면 핀란드가 마치 부패한 나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핀란드 의원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이 법안은 결국 통과됐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럽연합(EU) 차원의 부패근절 대책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상징적 입법조치였을 뿐이라고 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핀란드의 물 만큼이나 핀란드 사회는 구석구석이 유리알처럼 투명하다고 한다. 그 속을 들여다 보면 핀란드가 3년 연속 세계 최고의 청정국가로 선정된 것이 우연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핀란드의 문화중, 다른 서구국가와는 다르게 핀란드에는 팁이 없다고 한다. 어딜 가도 계산서에 포함된 봉사료 외에는 줄 생각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으니. 동전 몇 닢을 따로 건네는 건 관광객들국민의 90%가 믿는 루터교라고 하니. 종교의 믿음과 천당,지옥을 구분하기전에 그 고마움을 우리는 왜 배우지 못하고 있는가?청렴과 근면을 강조하는 청교도 정신이 이러한 핀란드의 투명한 사회의 밑바탕이며 거름이라고 하니 우리의 선교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신도의 수많 늘리고 있었는가? 아님 그 가르침을 모르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존재는 무엇으로 설명하는가? 함석헌님은 믿음은 개인의 천당, 지옥의 열쇠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하나님의 청사진에 가깝게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핀란드의 거울을 볼 수 있을 수 있을까?우리의 모습은 어떤한가? 국민은 정치를 불신하고 그들은 우리의 웃긴 기대에 항상 대답하는 이 현실 삼국이래 계속 이어져 온 우리의 모습, 붕당이 생기고 싸우고, 욕하고, 속이고 모두 국민의 잘못으로 결국 피드백 되는 현실 조선시대의 붕당부터 이야기 하기는 너무 한심하기에 그래도, 우리사회에 민주주의가 만들어진 불과 얼마 전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이번 대선을 앞두고, 새천년 민주당이 조만간 역사 속 또 하나의 붕당으로 그 이름을 지우려 한다 마치 노론, 소론, 북인, 남인, 공인, 서인 하듯 만들어지고 사라진 옛 붕당처럼 한 사람을 보고 만들어지고, 둥지를 만든 민주당은 불과 3년간 그 이름 그 자체, 국민들에게 의도한 바를 알리지 못하고 이슬처럼 지워지고 있다.물론 제대로 정착을 하지 못했어도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벌써 반세기가 흘렀고 무엇보다 현 정치권이라는 허울 좋은 무대에서 10년 넘게 그 이름을 유지해온 붕당, 아니 정당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우리가 매일 언론을 통해 듣는 이회창의 한나라당은 이제 기껏 5년이 지났고, 그래도 김종필의 지도아래 가장 오래 그 이름을 유지해온 자민련은 7년에 불과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결국 헌법이 만들어지고 민주주의 국가로의 대한민국에서 욕심인지는 모르지만 10년 이상 그 이름과 명분을 유지한 정당은 오직 제2공화국 구테타의 선구자인 박정희와 그의 화신인 공화당뿐이니 우금도 그 모습을 감추고 있고, 평민당, 신민당, 통합민주당, 국민회의를 거치며 만들어진 민주당 역시 이름과 슬로건은 바뀌건만 인물은 그대로이고, 왜 3김이니 지역이니 하는 이러한 더러운 구조로 허리가 잘린것도 억울한데 그 작은 몸마저 동,서로 갈리는것인가?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고 그 이름에 걸맞는 영국의 노동당과 보수당,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일본의 자민당과 비교할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民主主義 인가?제헌국회 이후 이루 수 없이 많은 정당이 국민을 구원하기에 수 차례 등장하였건만 지금처럼 그 이름을 유지하지 못한 이유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볼 때 위의 나라들과는 많이 다른 격동과 시련의 근현대사의 희생일 수 도 있지만 이유도 있겠지만, 함석헌님의 말처럼 무엇보다 각 당의 이념과 노선 즉 그들이 추구하는 천국이 그 하나님의 말씀과는 거리가 멀고 먼, 붕당(朋黨)이라는 잡귀가 아직도 우리의 몸안 깊숙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그러기에 우리의 붕당의 역사는 역사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여전히 우리의 주위에서 우리를 조롱하고 있다. 선거에 따라 갈라지는 정치판은 조선시대 왕과 외척에 따라 갈리고 자신들의 배속을 채우기 위해 싸우는 고귀한 위치에서 더럽게 싸우는 잡귀의 장난이다.비록 실패로 끝났고 그 이름은 단지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지만 우리시대에 홍경래같은 위인이 있는가? 아님 동학처럼 우리 국민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있는가? 그리고 남북이 대치하는 이 시점에서, 남북이 갈라진 이 현실속에서 함석헌님은 "38선은 민족의 가슴을 쪼갠 금"이라면서 "나라를 세우려거든 이제라도 뜻을 세우라"고 외쳤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을 단순히 한 민족이니 이제 다시 만나야 한다라는 당위성에만 근거하여 바라본다. 이것이 문제이다. 비록 많은 준비가 되었어도 민족의 한마음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하나된 마음 왜 우리는 그것을 목말라 하면서도 마시지 못한 체 누군가가 주기를 원하는가?우리의 씨앗이 한반도에 떨어지고 그 싹이 자라고 있건만 50 않았으면... , 만약 효종이 그 뜻을 계속 밀었으면... , 대원군과 명성황후가 싸우지 않았으면... , 등등 우리의 역사는 온통 만약으로 시작한다. 만약이란 말은 말 그대로 아쉬움의 표현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난 시간이 아쉽고, 그래서 지금 아프다는 것이다. 개그맨 이주일이 담배를 피지 않았으면 하는 만약과 같은 이치다. 죽지 않으려면 이 만약이란 말을 되풀이해선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되풀이 한다.역사는 거울이며, 창이고, 미래이다. 그래서 이를 바라봐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필자도 역사에 대해 지금껏 공부하고 수 많은 역사책을 읽었지만, 수 없이 느끼는 바는 비록 우리가 지금 배불리 먹고 살고있을 지언정 우리의 땅은 좁아지며, 우리의 얼은 계속 죽어간다는 것이다. 좋은 것을 좋게 받아드리지 않고 다르게 받아드리는 우리민족, 불교가 그렇고, 유교가 그렇고 기독교가 그러한 우리나라. 그 뜻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한마음에 닿았더라면 이란 `만약` 하나만 이루어 졌다면 위의 만약은 없었을 것이다.한마음으로 찾자! 우리의 얼을 그리고 우리의 힘을. 그것은 우리가 잘났기에 남을 억압하고 우리의 힘을 과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먼저 한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청사진을 그리자는 것이다.그렇다면 민족의 한마음이란 무엇일까? 그 한마음이란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며 우리 만주주의의 가장 참된 가치이며, 그래서 아직 우리가 이루지 못한 것이다. 바로 민주주의 문화란 말로 바꾸어 말하고 싶다. 정부가 어리석고, 정치인이 더럽고, 우리나라가 항상 삐그덕 거리는데는 함석헌님이 말처럼 하나된 마음 또 하나로 보려는 마음이 없어서 이고 이는 온 국민이 민주주의 문화를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라 무엇인가?민주주의란 원래 귀족제나 군주제 또는 독재체제에 대응하는 뜻으로. 민주주의라는 말은 그리스어(語)의 ‘demokratia’에 근원을 두고 있다 ‘demo(국민)’와 ‘kratos(지배)’의 두 낱말이 합친 것으로서 ‘국민의 지배.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을 읽고96126632 이제우이 글에 대한 서평이라는 것이 우선 나의 무지함에, 저자의 뜻을 이해했는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본다. 과연 내가 이글을 이해하고 있는가?처음부터 필자는 이 글의 근간을 copy rigth, copy left의 이중법적인 생각으로 접하였다. 그래서 조금은 비딱한 그저 힘없는 국가들의 푸념으로만 이 책을 바라본았던 무지함에 스스로 반성한다. 저자 반다나 시바의 생각은 마치 노스트라 다무스의 예언처럼 그저 다가올 미래란 사실에 대하여 우리 인간이라는 무서운 종자에 대해 혐오감마저 느낀다. 책을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의 시간이란 것이 이 책에서는 모두 한순간 이었다. 그저 읽는 순간이 바로 나에 대한 생각으로 다가온다. 아니 우리국가에 대한 생각으로....바로 우리는 약탈자인가? 아님 희생자인가?분명 우리의 경제규모와 국민의 소비를 바라볼 때 우리는 약탈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위치는 먹이 사슬로 표현하면 뱀정도의 위치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머리속에 떠올리는 우리보다 강한국가는 그 위의 독수리,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간이 아닌지...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쥐, 그리고 쥐가 먹는 그 하위 생물체는 그저 먹이사슬이란 법칙으로 그 정당성을 그들의 생명으로 봐야하는가?분명 우리는 인간이고, 그래서 동물보다 우월한다는 전제하에 그 정당성은 무너진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먹이사슬에서 알 수 있듯이 삼각형구도의 법칙은 그 틀을 그대로 유지하게 해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인간은 다르다. 모두 그 틀에서 벗어라려고 노력한다. 마치 뱀이 독수리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날개를 만들고, 손을 만들고 하는 일이다. 그래야 먹히지 않기 때문이고, 또한 자연상태에서는 먹지 못하는 생물체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 과연 누가 먹히려고 노력할까? 아무도 없다. 하지만 아니다. 그래도 먹힌다. 그게 인간사회의 법칙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먹힌다. 뱀이 날개를 달고, 이빨을 더욱 날카롭게 하고, 심지어 눈을 그리고 그 원래상태에서 벋어나려는 노력은 결국 보이지 않은 무서운 결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바로 뱀이 눈을 갖게 되면 그 원래의 성질인 촉각을 잃는 원리이다.이러한 구조아래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도덕적 윤리를 앞세워 날개를 달지 말고 있는가? 아님 먹히지 않기 위해 날개를 달아야 하는가?반다나 시바의 생각을 필자는 100%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그저 느끼고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다루고 싶다. 인류는 인간의 먹이사슬안에서 그가 주장하는 다양성을 과연 이룰 수 있는가?분명 아니다. 그러나 해결의 방법 또한 없다는게 문제이다. 바로 현실의 냉혹함, 바로 먹히지 않고 먹기만 하려는 그 먹이사슬을 이기려는 인간의 욕심과 야망이 결국 인류를 검은 색으로 물들인다. 초국적자본 즉 신자유주의가 만들고 있는 먹이사슬의 구도가 이제는 새로운 이름아래에서 그 행위에 정당성을 넣어주고 있다. 선진국이 행하는 약탈의 정당성은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한 인간, 아니 선진국이라는 인간이 만든 날개와, 이빨, 그리고 발톱으로 상대적 약자인 후진국을 계속 그 하위먹이로 만들고 있다. 바로 고귀한 해적질인 것이다. 그들이 망치고 있는 자연에 대한 보상은 뒷전이고, 그들이 이것들을 아주 조금 조정하여 만든 여러 가지의 것들 이른바 지적 재산권은 이의 진정한 주인인 자연은 이를 정당하게 간주하지 않고 있음에 반해 초국적 기업 국가는이러한 정당성을 스스로 정당하게 만든다.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거창한 문제를 보지 않고도 우리의 현주소를 매일 오는 신문을 통해 알수니 이것이 저자 반다나 시바가 보고있는 미래가 바로 우리의 현실이 아니면 무엇인가?반다나 시바가 지적한 서구선진국들의 약탈행위 즉, 이 책의 원재인 생물해적질에 대해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그들의 정당성 즉 지적재산권이 보호되어야 하며 그래야 인류의 창조성과 발전이 이루워 진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나 알 수 있듯이 갑자기 만들어진 인류의 문화유산이 이 세상 어디 있는가? 인류의 시간만큼 지속되온 인류의/s가 만든 것인가?후진국은 그렇다면 그들의 문화적 유산을 이제서야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라는 것이 서구인들의 가치관이다.왕의 칙서를 받고 세계를 탐험, 아니 정복하려던 콜럼버스가 그가 찾았다고 하는 말도 안돼는 그 미개척의 땅을 왕에게 증여함으로써, 그들의 정당성을 당연시 여기고 비유럽인들을 식민화하고 몰살시켰던 것처럼, 그 시대로부터 500년이 흐른 지금 똑같은 그들의 가치관이라는 칙서가 ‘특허’와 ‘지적재산권’을 통해 훨씬 더 무자비하고 비도덕적이게 그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지 않은가? 이는 그들의 권리인가? 아니면 이를 막지 못한 비유럽인들의 어리석음인가? 그리고 이들은 유럽인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칼을 다듬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에서 다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한다.어떤 종자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다른 종에 삽입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작물을 유전자변형농산물(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GMO)이라고 하는데 예를들어 감자의 유전자를 옥수수에 넣으면 변형된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옥수수가 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GMO는 여러의미를 우리에게 시사하는데, 유전자 변형으로 인한 농산물 재배에 관하여, 미국 민간기관인 농업무역정책연구소(IATP) 소속의 찰스 벤브룩은 현실적으로 미국의 GMO 재배 농가가 지난 5년 동안 9,3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고, GMO의 재배를 늘리는 것은 “유전자변형 종자를 손에 쥐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몬산토, 듀폰, 바이어, 시그네타 등)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일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GMO가 결국 빈부의 격차만 심화시키고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또한 이들과 같은 비판론자들은 GMO의 과학적 성분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배량만 늘린다면 장기적으로 인류에게 거대한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시바가 말하는 다양성의 파괴에 따른 대가로 해석된다. 시바는 이러한 유전자 변형에 따른 초국적 기업의 횡포는 결국 인류를 어두운 길로 인국가의 환경단체들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며 GMO를 기피하고 있다. 이는 시바가 말한데로 초국적기업의 해적질이 가져다주는 해적질에 따른 보이지 않는 폐해를 우리가 느끼 수 있게 해준다. 이 발표에 의하면 해충에 강하고 수확량도 많으며 영양까지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GMO가 21세기의 식량난을 해결하고 인류 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생명과학기술임은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관심은 해적질의 정당성을 떠나 그것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진정한 식량의 유해성과 안정성에 그 가치를 두고 있다.우리가 쉽게 접하는 해적질에 따른 유해결과의 표본으로 자연의 섭리를 어겨 인간이 창조한 광우병을 비롯하여 구제역, 그리고 O-157 등 식품 관련하여 인간은 유전자변형 기술에 대해 높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이의 잠재적 피해는 어떤 기술로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 이전에 가장 문제는 이러한 문제 의식을 아는것보다 현재의 이러한 초국적 기업의 지적재산권이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모든 국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약탈지를 찾고 있다는게 문제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현재 전 세계에서 GMO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자료에 의하면 1994년 칼젠사(社)의 무르지 않는 토마토를 시작으로 1996년 몬산토사가 유전자조작 콩을 내놓으면서 GMO가 상업적으로 대량 재배되었다고 한다. 이후 미국 생명공학회사들은 제초제 저항성 콩과 면화, 바이러스 저항성 호박, 병충해와 제초제에 대한 저항성을 동시에 갖는 옥수수 등을 개발했다. 이와 함께 저장성이 강화된 고추와 카페인이 없는 커피 등도 개발 중인데. 현재 미국은 전 세계 GMO 재배면적의 6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특히 지난해 유전자변형농산물 재배 지지기관인 AABA가 공개한 보고서를 인용하면 GMO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재배 면적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 가져다주는 문제 인 것이다. 바로 서로 먼저 그 미개척지를 약탈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식량공급 WTO가입과 함께 지금은 미국에 이어 GMO 제조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이기도 하다. 다시말해 중국이 이제는 그 해적질을 앞서서 한다는 것이다. 그 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약탈의 도구를 만들고 있다.그러나 이는 먹히지 않으려는 당연한 몸부림이고, 바로 미국의 제국주의 아래에 먹히지 않기 위해 새로운 무기를 만드는 것이다. 얼마전 영국 BBC 방송은 지난 1월 중국이 생명공학에 쏟아 붓는 연구비가 세계 생명공학 발전 지출비의 절반 이상이라고 보도했다. 방송은 중국이 쌀을 포함해 50여 가지 작물의 유전자변형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밝혔다. GMO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유럽 등 다른 나라들과 달리 중국은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예산이 국가 차원에서 전폭 지원된다. 지난 2000년에만 137개 연구소에 2천 명의 과학자를 투입했고, 베이징에 거대한 생명공학연구센터를 건설했다. 중국은 오는 2005년까지 GMO 재배가 400퍼센트 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생명공학안전연구소는 지난 1995년부터 2000년까지 350여 건의 GMO 재배 신청 중 251건을 승인했다. 이 중 45건의 작물의 시험재배가 허가됐고, 65건은 시험재배에 이어 환경영향실험기간을 승인받았으며, 31건은 상업화 승인까지 받았다. 이는 유전자변형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아직까지 중국에는 특별한 조치가 시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 중국은 앞으로 다가올 식량무기전쟁에서 이기고, 그들이 찾아낸 새로운 종자를 상품화하기 위해서 이다. 그래야 먹히지 않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 있어서 경쟁심리를 불어일으키고 이는 각 국가간의 보이지 않은 약탈전쟁의 칼을 갈고 닦는 것이다. 그리고 이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문제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도 먼저 이러한 유전자적 기술을 아니 해적질의 도구를 만드는것이냐의 문제를 떠나, 바로 중국으로부터 많은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는현실에서 이러한 해적질의 보이지 않은 폐해가 어떤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