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 있는 경영”을 통해 얻은 나의 깨달음교육대학원 20077057 국어교육 최미선대학생 시절 졸업 인증제를 통과하고자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이라는 경영서를 읽은 이후 정말 오랜만에 다시 경영서를 손에 들었다. 아쉽게도 이번에도 역시나 자발적인 이유라 할 수 없는 ‘과제를 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에 의해서이다. 그만큼 경영서는 내게 있어서 관심 밖의 분야라는 뜻이 될 것이다. 왠지 내가 알 수 없는 전문적인 용어들만 눈앞으로 튀어나오며 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과, 경영이라는 단어는 나와 거리가 멀다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앞문장의 ‘같다는’에서 이미 드러나지만 사실 경험도 해보지 않은 채 막연히 가지고 있는 선입관이었다. 그런데 이 ‘깨달음이 있는 경영’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경영이라는 것이 꼭 어떤 커다란 기업이나 조직을 가진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규모가 작더라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임이라면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한 학급 같은 규모의 모임에서도 경영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자 이 책은 경영서라는 딱딱한 껍질을 벗고 친근하게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책의 앞부분에서 다섯 명의 경영 구루(대가)라고 소개되어진 피터 드러커, 마이클 포터, 게리 하멜, 톰 피터스, 잭 웰치는 저자의 소개대로 경영이라는 한 분야에서 걸출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기억하고 싶은 중요 어구에만 표시하며 읽어야겠다고 생각해 꺼내 들었던 형광펜을 내려놓을 사이도 없이 여기저기 책 마지막 페이지까지 밑줄을 긋고 말았다. 이번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한번에 다 읽었지만 다 읽고나니 이 책은 그렇게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 책은 한사람씩 나누어 읽고 며칠동안 소화시켜 자신 안에 새겨 넣은 후 다시 읽기 시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책인 것 같다. 한 사람이 한 분야에서 대가로 인정받으며 얻은 깨달음이기에 어쩌면 그 정도의 여유가 필요하다 말하는 것도 오만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쉬운 대로 설혹 수박 겉핥기식으로 얻은, 다섯 명의 경제 구루들이 깨달은 깨달음의 그림자뿐인 얄팍한 깨달음일지라도 이 감상문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나누어 보고자 한다.먼저 1장은 피터 드러커를 통해 경영의 본질과 기업의 사명 등 가장 기본적인 경영의 원리를 정리하였다. 드러커는 기업의 존재 목적은 오직 하나 시장을 창조하는 것이요, 기업의 존재 이유는 고객 만족에 있다고 말한다. 또한 기업의 목적과 사명의 출발점을 오직 고객에게서 찾았듯, 드러커는 사업의 정의 역시 고객에서 찾았다. “고객 만족이야말로 모든 기업의 목적이자 사명이다.” 라는 그의 말에서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나또한 많은 범인들처럼 당연히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했었기 때문이다. 이윤이란 다만 고객만족의 과정에서 떨어지는 우수리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진정한 목적과 사명을 찾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임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때로 아니 자주 고객보다 이윤을 얻는 것에 목적을 둔다. 그렇게 우선순위가 잘못된 목적과 사명을 가질 때 ‘먹을 수 없는 먹을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포장하여 팔다 국민들에게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바닷가 모래를 시멘트에 섞어 지어 몇 십 년 안에 건물이 무너지는 황당한 일을 겪게도 한다. 학교도 예외일 수 없다. 학교를 하나의 기업이라 본다면 고객은 학생들이 될 것이다. 학교의 목적이 바로 이 학생들의 만족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학생들의 만족은 어쩌다 운 좋으면 따라오는 우수리가 되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현재 학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이런 잘못된 목적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한 학생이 학교의 짱으로 지칭되는 아이와 다른 친구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했는데 이를 학교 측에서 무조건 덮으려고 하여 아이가 정신적으로 심한 충격을 받게 돼 이상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잘못된 목적이 불러오는 결과일 것이다. 학교의 명예나 안정도 중요하지만 학생은 그 무엇보다 우선된다. 고객이 없으면 기업이 없듯이 학생이 없으면 학교도 없다. 학생은 학교 모든 정책의 중심에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드러커를 통해서 얻은 나의 깨달음이다.다음으로 2장은 마이클 포터 교수의 연구를 통해 기업 간 경쟁이라는 화두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포터는 경쟁에서 비교우위는 어떻게 남들과 다를 것인가에 달려있으며 차별화에 대한 비전이 없으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가장 평균적인 맛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장면이라고 한다. 물론 조금씩 맛의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기에 잘 알지 못하는 지방에 갔을 때 식사를 해야 한다면 자장면을 시키면 실패확률이 적다고 한다. 자장면 다음으로 전국 어디를 가도 대동소이할 뿐 대체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학교가 아닌가 한다. 자신과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할지라도 교과서로 배우고 쉬는 시간이 있고 수업시간에는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는 등 학교에서의 모습을 충분히 상상 할 수 있다. 몇몇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러할 것이다. 과거 우리 기업들이 어떤 특별함 없이 단순히 모방만 하여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과거에는 학교도 그런 평균적인 모습으로도 큰 부작용 없이 존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 세계는 무역 국경이 허물어지고 경쟁에 돌입하면서 기업에게 남들과는 다름을 요구하기 시작하였고 그 요구는 학교에도 적용되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궁핍하고 빈곤한 환경으로 배우는 가 배우지 못하는 가가 관건이었다면 이제는 배우되 무엇을 배우는 가가 관건이 되었다. 환경의 풍족함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높였고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학교는 시대의 흐름에 유연하게 변화하지 못하고 차별화에 대한 비전이 없어 점점 경쟁에서 도태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기호와 기질,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닌데 같은 교육으로 묶어두려 하니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엄청난 규모의 사교육이 그런 부작용의 일면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적으로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도 학교의 다양화에 대한 요구의 반영이기도 하다. 결국 포터의 말을 생각해볼 때 학교가 나아갈 길도 하나라고 생각된다. 바로 학교 하나하나가 차별적인 특성을 가지고 그럼으로 전체적으로는 학교가 다양화 되어 여러 모습의 아이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3장에서는 신진 경영학자 게리 하멜의 이론을 핵심 역량이라는 주제하에 요약하였다. 게리 하멜은 핵심 역량 경영, 비즈니스 모델 혁신 등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을 역설하였다. 앞에서 포터가 아웃사이드-인의 시선으로 기업 외부의 경쟁자들을 분석한 뒤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추구하라고 했다면 반대로 하멜은 인사이드-아웃의 시선으로 자신을 먼저 살펴 자신이 가진 장점에서 해답을 발견하고 그것을 강화하여 경쟁 자체가 안 되도록 하라고 한다. 우리의 교육현실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교육열이라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이 교육열을 생산적 교육열로 바꾸어 주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또한 우리의 교육 중에서 경쟁력 있는 부분인 사교육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이후 세계의 무한교육경쟁시대에 대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4장에서는 경영혁명의 전도사로 불리는 톰 피터스의 이론이 정리되었다. 그는 우수성을 달성해 초우량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경영관행을 파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작은 실험을 계속하고 실패를 장려하라고 하였으며 확실한 권한 위양과 동기부여로 분권화를 실현하라고 하였다. 사실 작은 조직은 모두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더 원활한 협동 작업이 가능하다. 또 더 원활한 의사소통 및 정보 공유가 가능하며 모든 사람들이 의사 결정 및 여타 경영 프로세스에 참여할 수도 있다. 톰 피터스의 말을 학교에 적용시켜보면 학교 또한 더 작은 조직으로 구성되어져야 함을 볼 수 있다. 작은 조직의 장점은 앞에서 피터스가 말한 것처럼 서로 간에 더 원활하게 협동과 의사소통, 정보공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교실붕괴의 가장 큰 원인을 개인적으로는 교사와 학생 간 개인적인 관계성이 맺어져 있기 않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교사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잡무 외에 한교사당 책임지고 있는 아이의 수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자와의 인격적인 사귐의 시간을 갖고 싶지 않을 교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교사가 수업과 사무적인 일들을 감당하며 몇 십 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일일이 나누어 줄 시간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교사는 아이들을 뭉뚱그려 단체로서 대하고 거기에는 끈끈한 사제의 정이 자라날 확률이 희박 할 수밖에 없다. 학교도 사람이 모인 장소이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유대감이 필요하다. 만약 교사가 능력이 부족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었더라도 학생과 교사 사이에 이 유대감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교실상황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피터스가 제안한 것 같은 작은 조직과 같이 교실도 더 작은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아이들과 더 많이 대화할 수 있고 더 많이 친밀감을 쌓으며 서로를 알아가고 협동한다면 교실의 분위기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문학사 시대구분론우리 문학사의 구분은 지금까지도 정확한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문학사 구분의 어려움은 문학+역사=문학사라는 어휘 자체에서 벌써 암시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국문학자들은 주로 왕조별, 삼분법, 시대 정신 등으로 문학사를 구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구분 방법에는 각자 장단점이 있다. 그 여러 가지 의견 중에서 나는 특히 김윤식과 김현, 조윤제의 문학사 구분에 주의하여 보게 되었다. 우선 간단히 그들의 시대구분을 알아보자.♣김윤식과 김현의 문학사 시대구분1)근대 의식의 성장 (1780~1880년에 이르는 영.정조 시대)2)계몽주의와 민족주의의 시대 (1880~1919년에 이르는, 개항에서 3.1운동에 이르는 시대)3)개인과 민족의 발견 (1919~1945년에 이르는 3.1운동후에서부터 해방까지의 시대)4)민족의 재편성과 국가의 발견 (1945~1960년에 이르는 해방 후에서 4.19에 이르는 시대)♣조윤제의 문학사 시대구분1) 태동시대(상고-전기-문학)2) 형성시대(상고-후기-문학)3) 위축시대(중고-전기-문학)4) 잠동시대(중고-후기-문학)5) 소생시대(근고-전기-문학)6) 육성시대(근고-중기-문학)7) 발전시대(근고-후기-문학)7) 반성시대(근대-전기-문학)8) 운동시대(근대-후기-문학)9) 유신시대(최근세문학)10) 재건시대(현대문학)이들의 시대구분을 눈여겨 보게 된 것은 먼저 문학사를 구분하는데 있어서 일원론적 기술원리를 잘 만족시킨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국문학자들은 시대구분에서 한문학과 국문학 고전 문학과 현대문학 등 이원적으로 나누는데 그러나 어떤 분기점을 기준으로 하루아침에 새로운 문학이 생성되는 것이 아니니 만큼 이것은 오류를 낳으며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서 전통 단절론, 이식문학론 등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김윤식과 김현, 조윤제는 근대 의식의 성장에 따라 문학사의 시대구분을 하며 조윤제도 마찬가지로 문학적 현상의 집적을 정신사의 변모에 의거하여 시대구분을 하고 있다. 이렇게 시대구분을 할 때 문학사의 유기적인 변화가 잘 느껴지게 된다.다음으로 사상이나 의식의 변모에 따라 문학사의 시대구분을 할 때 또한 우리 문학사가 제반 여러 역사적 갈래와 어떤 갈래를 이루며 전개되어 왔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고대문학을 형성한 문학사상적 배경의 문제, 언어와 양식의 변천, 시대정신과 창작 담당층의 변화, 장르의 생성과 소멸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새로운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점"한글 전용을 내세우고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이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점이다."권영민씨는 "특정 문화코드, 즉 한문체제가 붕괴되고 국문이 일반화된 서막인 1896년을 근대의 기점"으로 설정했다. 국문의 확대야말로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제도의 확립과 그 실천을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가치를 한문에서 구하는 중화주의적 사고가 무너지고 새로운 문물과 지식과 가치가 모두 국문으로 수용되고 재창조되기 시작한 이때가 근대문학의 기점이라는 것이 권씨의 주장이다.▣나의 시대구분 방법먼저 나는 앞에서도 설명하였다시피 김윤식, 김현의 시대 구분과 조윤제의 시대 구분 방법인 사상이나 의식 민족 정신등의 변모에 따라서 문학사의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에 전폭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타당성을 느끼었기에 이들의 구분방법을 바탕에 두고 문학사의 시대구분을 하고자 한다. 또 이들과 다른 것은 한글 전용을 내세우고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이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점이라고 여기는 것과 한국 전쟁이후의 문학을 분단 문학으로 구분하였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문학평론가 권영민(54.서울대 인문대학장)씨가 최근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새롭게 주장한 것인데 그 의견이 타당성이 있어 수용하였음을 밝힌다.
♠작가소개전남 장흥 출생. 서울대 독문과 졸업. 1965년 월간 의 신인 문학상에 이 당선되어 등단. 1967년 로 동인 문학상 수상. 78년 로 이상 문학상 수상. 그의 작품 경향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 인간의 심리적 내면적 고통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하며, 주로 지적 방법으로 현실 세계의 부조리, 불합리를 정밀하게 해부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과 진실에 대해 성찰하는 경향을 보임. 이청준의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삶과 현실은 대단히 다양하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첫째 "줄", "매잡이", "과녘", "줄광대" 등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장인에 속하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 둘째 "빈 방", "황홀한 실종", "퇴원"과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과거의 어떤 정신적인 상처가 개인의 정신적·생리적 이상현상을 일으킨 삶, 셋째 "서편제", "남도 사람들", "선학동 나그네" 등 남도의 '소리'를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세계, 넷째 '언어사회학 서설'이라는 부제가 붙은 "떠도는 말들", "자서전들 쓰십시다", "지배와 해방", "다시 태어나는 말"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말'의 상실 및 추구의 세계, 다섯 번째가 "개백정", "뺑소니 사고" 등에서 볼 수 있는 폭력적인 현실의 체험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 , , , 을 비롯한 많은 소설집이 있으며, 작품에 이밖의 작품으로 등 다수가 있다. 관념과 지성의 깊이, 그리고 한의 정서를 독특하게 보여준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손꼽히고 있다.♠줄거리'나'는 부업으로 화실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화가이다. 최근 들어 나는 며칠 동안 화폭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된 것은 형이 쓰고 있는 소설을 훔쳐보고 난 다음부터이다. 형이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게 다소 터무니없고 납득할 수 없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형의 본업은 의사이기 때문이다. 형이 소설을 쓴다며 자기 방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한 것은 어떤 소녀를 수술하다가 그 소녀가 죽은 뒤부터이다. 그런데 소녀의 죽음은 전부 외 김일병에 대한 살의로부터 비롯된다. 떨어져가는 식량에 대한 절박감과 탈출해야 한다는 위기감은 나로 하여금 관모의 김일병 처치에 대해 체념적 동조를 유발한다.여기까지가 형이 쓰다만 소설의 줄거리인데, 동생인 나는 뒷이야기에 매여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는 혜인의 갑작스런 결혼 통보도 한몫의 이유가 되고 있다. 혜인은 내가 고용한 화실의 미술교사로 나와 혜인 사이에는 희미한 애정의 끈이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나의 소극성에 실망한 탓인지 혜인은 어느날 갑자기 발을 끊은 이후 불쑥 결혼청첩장을 보내온 것이다. 얼크러진 나의 심사는 여인의 얼굴-선과 악이 같이 조합된 강렬한 얼굴-을 그려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쉽지 않다. 고심하던 '나'는 형의 방에 들어가 소설의 뒷부분을 직접 마무리해 버린다. 관모가 김일병을 몰래 처치하고 형은 모르는 척 관모와 함께 그곳을 탈출하는 것으로. 이후 나는 그리고 싶던 얼굴을 완성한다. 그런데 불쑥 형이 화실에 나타난다. 그리고 나의 그림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버리면서 하는 말이 "너는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사건이 있은 뒤 형은 소설의 뒷부분을 스스로 완성한다. 그에 의하면 김일병은 관모에 의해 사살되고, 형은 그러한 관모를 사살해 버린다. 이러한 결말을 짓고 난 이후, 형은 다시 병원 일을 시작한다. 일상으로 돌아간 형은 어느날 문득 또다시 술에 취해 돌아와서 원고를 불태워버린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에게 형은 "관모를 죽인 것으로 생각한 것은 나의 오해였다. 나는 오늘 관모를 만났다"는 엉뚱한 독백을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나를 가리켜 도망간 애인의 얼굴이나 그리고 있는 병신, 머저리라 비난한다. 나는 형의 이런 비난에 깊은 아픔을 느낀다. 그러나 그 아픔의 정확한 정체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일상에 다시 매여야 할 것임을 나는 고통스럽게 예감한다1.플롯▶플롯의 전개발단 : 의사인 형이 병원일을 그만 두고 소설을 씀.전개 : 동생인 '나'가 그 소설을 보고 형의 아픔의 근원을 발견. 나무들은 높고 산골은 소름끼치는 고요가 짓누르 고 있었다. 이상스런 외로움이 뼈 속으로 배어들었다. 그 때 갑자기 관모가 몸을 꿈틀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조금씩 꿈틀거렸다. 그것은 모래성에서 모래가 조금씩 흘러 내리는 것처럼 작고 신경에 닿아 오는 것이었다. 나 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 새 핏자국은 눈을 타고 나의 발등을 덮었다」▶compositional motivation구성에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다.액자 소설의 경우에는 액자 안의 이야기와 액자 밖의 이야기가 각각 떨어트려 놓아도 상 관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통일되어야 하는 것이다.병신과 머저리에서는 형의 고민과 그가 쓰는 소설의 내용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게 되지만 자세히 보면 형이 보여 주는 어떤 징후에 대한 반응과 형과 그 징후에 대해 동생이 보여 주는 반응이 비교 대조되고 있다. 액자 안의 소설이 나와야할 동기 부여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realistic motivation구성에 사실적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이다곧 그럴 듯 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오관모 같은 사람은 있을 수 있는 사람인가?그의 난폭함과 변태적인 모습, 비논리적이며 힘으로 지배하려는 성향 그리고 도움이 안 되기에 동료를 죽여버리는 비인간적 모습 등은 언뜻 생각하기에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오관모와 같은 캐릭터가 우리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그 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 때문이다. 그는 전쟁의 틈바구니에 있다. 전쟁이란 것은 인간이 가 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환상을 철저히 짓밟는다. 전쟁터에는 살기 위해 웅변을 하는 자들 은 존재치 않는다. 오직 강한 힘만이 그들을 지켜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관모 와 같은 캐릭터는 리얼리티를 가지게 된다.→ 동생과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은 존재할 수 있는가?6.25라는 확실한 아픔의 원인을 지닌 형에 비할 때, [나의 아픔 가운데에는 형에게서처럼 명료한 얼굴이 없었다]고 진술되는 동생의 아픔은 우리에게 설득력을 가질사실로써 설명될 수 있 다. 이들 주인공들이 경험한 세계는 진실을 말 로 바꿔 놓는 것을 금지한 세계이다. 진실 을 진술한다는 것이 불온하게 취급당하고 무서움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이들이 말 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직업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근본 적인 이유를 내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그들은 진실의 진술이 필요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 라 마음에 드는 진술만이 필요한 사회에서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진실의 진술을 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들은 정신적인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 상처로 인해서 때로는 미치거 나 때로는 죽거나 때로는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이 글을 쓴다는 것 은 그들이 비논리가 지배하는 포비아의 상황에 말 로써 대항하는 것이지 힘으로 대항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청준의 소설 세계 전체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기막힌 알레고리의 세계임을 증언해 주고 있다.▶ 플롯 유한론액자 소설이라서 그런 것인지 결론도 두 가지가 나왔다.형의 경우는 comedy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형의 모습은 양심의 고통으로 괴로워 하는 모습이었지만 결국 소설 쓰기를 통해서 삶을 살아갈 새 힘을 얻게 되었기 대문이다.반면 동생의 모습은 처음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끝에는 자신의 환부 없는 고통을 깨 닫고 괴로워하므로 satire나 irony로 봐야 할 것이다.2.구성액자소설 (내부 액자 : 형의 소설 속 이야기)단편 「병신과 머저리」는 화자인 동생이 형의 방황과 그가 쓰는 내용을 추적하여 독자에 게 전달하는 중층 구조 형식을 지닌다. 소위 중층 구조 혹은 격자 구조라고 불리는 이 구 조 형식은 이청준의 성공한 단편들에서 주로 사용된 구조 형식이다. 이 액자 소설에 어떤 이점 이 있기에 그가 즐겨 이 구성 방식을 사용하는 지 알아보자.먼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상상해 보도록 하자.어둠에 잠긴 무대가 있다. 한 줄기 햇빛이 그 곳에 들이비칠 때 어둠에 잠겨 알 수 없던 많은 것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다. 그러나 그 수술의 실패가 꼭 형의 실수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피해자 쪽이 그렇게 생각했고, 근 10년 동안 구경 만 해 오면서도 그쪽에 전혀 무지하지만은 않은 나의 생각이 그랬다.】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화자는 나 라고 하는 작중 인물이고 의사인 형이 수술한 소녀가 달포 전에 죽었다는 것과 형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정보를 화자는 알고 있다. 이러한 정보는 화자가 독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두 사실 사이에 어떤 관 계가 있으리라는 추측을 화자가 만들어 제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도록 한다. 만일 화 자가 그 관계에 관한 추측을 하지 않았더라면 독자로서는 그 관계가 어떠할 것이라고는 생 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화자가 거론한 이상 독자는 그 화자가 일으켜 놓 은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독자의 관점은 이제 화자가 이끄는 데로 함 께 움직이게 된다. 일단 이처럼 추측을 하고상상을 하게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앞으로 화자와 함께 하게 될 여행이 미지의 모험으로 가득 찰 것임을 기대하게 하고 끝없는 의혹 속에 빠지게 될 것임을 느끼게 한다. 특히 서 두 다음에는 무언가 밝혀지지 않은 대목들이 있음을 이야기함으로써 바로 그 대목을 밝혀 가는 과정을 소설의 전개 과정으로 삼게 된다. 그리하여 탐정소설과 비슷한 수법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의혹을 제기하고, 독자의 호기심을 환기시키고 충족시켜가다가 결국에는 해 답 없는 종국적인 삶의 문제를 던져 놓고 사라져 버리는 열린 소설 의 특성을 갖는 것이 다. 탐정 소설의 패러디와 같은 이런 기법은 화자의 관점이 곧 독자의 관점인 듯 느끼게 하여 독자를 문제의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친화력을 갖게도 하지만, 동시에 작가 자신의 관점이 화자로 대변되는 듯 느끼게 하여 작가의 음성을 독자의 수준에 내리 맞추게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와 화자와 독자가 같은 수준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는 환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자신의 음성을 짐짓 낮추어 보여주는 작가의 이러한 기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