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가옥과 숲의 아름다운 조화-본 리포트에서는 숲과 조화되고, 그 안의 목재들을 바탕으로 지어지는 전통 가옥의 변천과정에 대한 우리 조상들과 숲(자연)과의 관계를 조사 분석하고, 앞으로 숲과 건축이 아름다운 조화를 위해 나아가야할 방향을 예측하는 모형을 제안하고자 한다.[ 점차 중시되고 있는 일상생활에서의 숲 ]1) 산림 휴양 기능산림이 주는 공익적 기능 중 휴양 기능은 오늘날 사회적으로 크게 요구되고 있는 기능이다. 특히,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산림 휴양의 수요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울창한 숲은 풍요롭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하며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는 효과가 대단히 크다. 피톤치드(phytoncide)라는 방향성 물질을 발산하기 때문에 사람의 건강에 큰 효과가 있다. 산림을 찾는 휴양객 대부분이 도시 생활에서 오는 피로 회복과 휴식, 도시로부터의 탈피, 혼자의 시간을 갖는 것 등을 휴양 동기로 밝히고 있다.2) 대기 정화 기능최근에 심각한 환경 문제 중의 하나로 부각되는 지구 온난화 현상의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산림 자원의 극대화를 제시할 수 있다. 온실 효과의 방지를 위해서는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을 줄이거나 녹색 식물을 통하여 이산화탄소의 제거를 시험하여야 하나 선진국이나 개도국, 후진국 모든 국가의 경제 발전과 연관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의 배출량 감소 문제는 난제로 남아 있다.3) 수자원 보호 기능숲의 수자원 함양 기능은 숲이 빗물을 머금었다가 서서히 흘려보내는 인공 댐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하여 녹색 댐이라고 불려진다. 녹색 댐 기능은 강우 시 홍수 유량을 경감시키는 홍수 조절 기능,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도 계곡의 물이 마르지 않게 하는 갈수 완화 기능, 수질을 깨끗하게 하는 수질 정화 기능 등을 말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산림 지역에서 내리는 물의 양은 수자원 총량 1,267억 톤의 약 65%인 823억 톤에 달하고 이 가운데 수목의 잎이나 가지, 지표면에서 증발산으로 손실되는 양은 수자원 총량의 45%인 567억 톤에 달하며,고 강물이 많으며 사계절이 분명하고 청명한 일기를 갖는다. 이와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한국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는 생활 철학을 갖게 되었으며, 그것이 건축 문화에도 영향을 주어 한옥은 자연에 순응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한국의 전 국토의 약 75%가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험준한 산이 비교적 적은 노년기 지형이다. 산봉우리는 완만하고 작은 구릉이 모인 준평원, 산간분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규모의 시내가 모여 강을 이룬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마을 뒤쪽이 산으로 둘러싸인 배산지형을 택지로 선정하기가 용이하였다. 이러한 택지선정에는 일찍부터 ‘풍수지리설’이 적용되기도 하였다.-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이름난 안동 하회 마을전경-주택을 짓는 데는 양질의 화강암, 편무암, 안산암, 석회암, 사 등의 석재가 이용되었고 특히 건축물의 초석과 기단, 담장에는 화강암이 널리 이용되었다. 또한 강우량이 적고 공기가 건조한 까닭에 삼림이 풍부하지는 못하여 양질의 목재를 얻기 어려운 형편이었으므로 목재를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한 많은 기술적 발전이 있었다.따라서 본 절에서는 이렇게 형성된 전통 풍수지리설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숲과 건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ⅰ.풍수지리설 [風水地理說]풍수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땅에 관한 자연이치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풍은 바람으로 기후와 풍토를 가리키며, 수는 물에 관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자연의 모습을 구별하여 인간의 운명과 연결시키는 생각이 풍수사상이다.풍수의 기본원리는 도참사상과 결합하여 깊은 믿음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땅 속에는 꿈틀대는 정기가 있으며 이것은 인간 몸속의 피처럼 일정한 길을 따라 움직이는데 이를 타고난 사람은 복을 받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이것이 뭉친 곳에 집을 지으면 가운이 뻗쳐 대대로 번창하며, 도읍을 정하면 나라가 번성하고, 조상의 무덤을 쓰면 위대한 인물이 태어난다고 하였다. 즉 집터나 마을터, 무덤 자리의 좋고 나쁨이 인간의 길흉화다고 해석된다.『 전남지역의 대목들은 다른집을 헐어 목재를 사용할 때에는 여러 집의 목재를 섞어 쓰는 일을 금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머릿대만큼은 새로운 목재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안채를 뜯어 행랑채에 사용하는 일을 금했다고 조사되었는데, 그 이유는 안채가 주인을 의미하므로 안채의 재목이 행랑채에 사용되는 것은 목재의 격이 강등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식에서 보여지듯이 목재는 신격체의 일부로서 신성하게 다루어진다. 인체의 용모가 골격에 따라 결정되듯이 신체의 뼈대를 선택하는 일은 좋은 신체를 만들어 내기 위한 신성한 의식의 일부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종 목 : 중요민속자료 126호명 칭 : 여주김영구가옥(驪州金榮龜家屋)분 류 : 가옥수 량 : 일곽지정일 : 1984.01.10소재지 : 경기 여주군 대신면 보통리 190시 대 : 조선시대 초기소유자 : 김영구평면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ㅁ자 모양이지만 서쪽으로 작은 사랑채가 곁달리고 사랑방 앞으로 누마루가 시설되는 등, 집 앞에 一자로 늘어서 있었다는 행랑채가 헐렸는데도 일견 사대부의 개인 취향적인 우수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안채는 남도형(南道形) 안방과 대청을 가로로 두고 서쪽에 부엌과 동쪽에 건넌방을 붙이면서 꺽어 배치했다. 부엌앞에는 하님의 방인 상방을 두고 앞에는 고방을 배치했다. 건넌방 앞은 작은 부엌과 광 및 동쪽으로 꺽어져서 작은 사랑방과 작은 사랑대청, 앞퇴의 툇마루로 이루어지는 작은 사랑채를 곁들였다. 사랑채는 서쪽으로부터 큰사랑, 큰사랑대청, 사랑방, 머리대청을 一자로 배치하고 앞퇴에는 길게 툇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사랑방 앞에는 마당으로 내밀어서 높은 누마루를 만들었다. 중문(中門)은 서남쪽 모퉁이에 있는데 큰사랑과 상방마루 사이에 ㄱ자로 구부려 진입토록 했다. 지금은 서쪽 담장에 설치된 조그만 문을 주로 이용하나 아마 이것은 이 집의 협문이었을 것이고 원래는 앞의 행랑채에 있었을 것이다. 집 뒤뜰에는 一자형의 광채가 길다랗게 놓여있다.바깥마당의 정원시설은 이미 파괴되었으므작을 때었고 취사용으로 솔갈비가 가장 뛰어났으며 조리에는 송탄(松炭)을 사용하였습니다. 경국대전에는 각 지방에서 장정들을 징집해서 소나무로 숯을 구워 바치도록 하였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을 정도이다.②우리 문학속의 소나무소나무는 사군자인 [매.난.국.죽]과 함께 우리 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소재로 형상화되었던 식물중의 하나이다.모든 식물이 두려워하는 추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겨울에도 푸르고 생싱한 잎을 간직하면서 산중에 홀로 피는 그런 모습을 두고 우리 선인들은 주위에 어떠한 고난과 변화에도 굽히지 않는 군자의 모습으로 비유해 예술의 소재로 삼았던 것이다.조래산 아래 나룻 늙은 공이 풍상때문에 옛얼굴을 고치지는 않는구나.가장 한(恨)하는 바는 주공이 동쪽으로 수렵간 후부질없는 명성을 얻어 진나라 봉호를 받음이라.-160호 제주시 곰솔 (흑송)-'풍상 때문에 얼굴을 고치지 않는' 행위는 바로소나무의 세속을 벗어나며 상정(일상의 마음)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예를 한가지만 들었지만 국가의 수호자나 무인의 기상 등을 표현하기도 하며, 훨씬 다채롭고 다른 관련 사물들과도 자유롭게 결합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드러낸다.』③ 소나무의 민간요법옛부터 솔잎은 장기간 생식하면 늙지 않고 몸이 가벼워지며 힘이 나고 흰머리가 검어지고 추위와 배고픔을 모른다고 해서 신선식품이라 했다. 동의보감에도 "솔잎은 풍습창을 다스리고 머리털을나게 하며 오장을 편하게 하고 곡식 대용으로 쓴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의 민간요법에서도 솔잎에 함유되어 있는 옥실팔티민산이 젊을을 유지시켜주는 강력한 작용을 한다고 밝히고 있다향약집성방에 의하면 솔잎을 먹는 방법은 솔잎의 적당량을 좁쌀알처럼 잘게 썰어 부드럽게 갈아 한번에 8g씩 술에 타서 먹으라 했으나 먹기가 쉽지 않다.그래도 몸이 거뜬해지고, 힘이 나며, 추위를 타지 않는다.한방에서는 약술 형태로 하여 복용하는게 많으며 수렴성 소염작용과 통증을 진정시키고 피를 멎게 하며 마비를 풀어주는 작용으로 인해 다친데, 습진, 옴, 신경쇠약증, 주관에 바탕을 둔 한국인의 의식 세계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서 이러한 의식에 바탕을 둔 것이 우리의 전통문화였으며 우리의 색채문화였던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한국인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마음속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친환경적인 건축 움직임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조경이 아름다운 아파트사람들이 도심을 벗어나 전원으로 가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자연’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절반 이상의 인구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실정에서 완벽한 자연을 곁에 두고 사는 일은 한 해 한 번 어렵게 떠나는 휴가 때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직장, 편의시설, 문화시설 등에 대한 불편함만 없다면 그래도 최상의 주거환경으로 전원주택을 꼽는 것이 이런 점에서 일 것이다. 이러한 부족함을 조금이나마 채워 주는 것이 현재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조성된 조경이 아닐는지 생각된다.최근에는 입주민들이 저녁시간이면 산책로를 가득 메우고, 인라인 스케이트장에는 아이들로 북적댄다. 다양한 테마를 적용하고, 편의 시설 등을 갖춰 도심이지만 최대한의 자연 환경을 담아 아름답기까지 한 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에 최대한의 녹지를 확보하고, 생태공원 등을 통해 자연의 이미지를 담아 입주민에게 푸른 자연과 건강의 혜택을 돌려주는 아파트 단지 조경 사례를 소개한다.① 자연을 테마로 담은 아름답고 건강한 아파트아파트 단지가 바뀌고 있다. 최근 들어는 ‘웰빙(well-being)’이라는 트렌드와 맞물려 그 중요성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제는 아파트 입주민들도 쾌적한 실내공간 뿐만 아니라 늘 오가는 ‘외부공간’ 역시 ‘질(Quality)’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이 공급하고 있는 아파트의 조경 아이템을 둘러보면 테마공원을 방불케 할 정도의 다양한 코스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② 주차장의 지하와 필로티 구조를 활용한 ‘녹지 확보’최근 아파트들은 주차장을 최대한 지된다.
--낭만적 사랑과 합류적 사랑을 비교하고 양자가 현대사회의 구조변동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고 그 의의는.?--열정적 사랑이란 가장 원초적인 사랑의 형태이다. 들끓어 오르는 사랑의 감정과 욕망의 파도에 모든 것을 맡기고 거기에 심취하는 것, 따라서 열정적 사랑은 사랑과 성적 애착이 결합된 것으로, 여기에는 어떤 형식도 제약도 필요치 않다. 이런 사랑에 빠지게 되면 현실감이 사라지기도 한다. 앞뒤를 가리지 않는 만큼 파괴적인 속성도 지니고 있다. 어떤 희생이나 극단적인 선택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과 무관하게 결혼이 이루어졌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열정적 사랑이란 위험적인 요소였다. 서구의 경우 18세기 전까지 귀족 계층에게 결혼이란 지위와 재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었고 평민층에서도 경제적인 목적을 실현하려는 도구였다. 흔히들 모두 낭만적인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랑은 인간 내면에 잠재해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한 것일까? 근대 이전, 인류 사회에는 자유로운 성이 통용되었다. 이는 앞에서 본 열정적 사랑이다. 18세기에 시작된 자본주의의 발전은 도시화, 산업화 과정이였다. 이 과정에서 일터와 가정이 분리되었고,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 확실히 분리되면서 경제적 요소가 사적영역에서 공적영역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인간 사회의 토대를 무너뜨리게 되었다. 이는 개인과 자신이 중시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낭만적 사랑이 출현하게 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생겨난 ‘낭만적인 사랑’은 결혼 및 사랑과 모성을 결합시키는데, 그것은 한번 결합되기만 하면 영원하다는 관념에 의해 오랫동안 사랑의 형태를 정형화해왔다. 낭만적인 사랑은 영원한 결혼이 이상화되던 시대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사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 임노동(이 임노동 덕분에 한사람이 여러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되면서 가부장제는 공고해진다)이 형성되면서, 남성을 바깥일에, 여성을 가정영역에 그 활동 영역을 고정시키게 된 성별분업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것은 국가나 기업이 문명의 발전이나 지배력의 강화를 위해 혹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개인의 성을 조직적으로 통제(억압)함으로써 시작된 ‘성의 정치화’의 결과이다. 여기서 열정적 사랑은 철저히 배제되고 결혼 안의 섹스만이 허용된다. 열정적 사랑이란 사회적 질서나 경제적 생산성의 관점에서 볼 때 위험한 것이고 결혼의 골칫거리이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사랑은 가족 헌신적인 여성상을 이상화하게 되었는데, 여성은 가정을 이끌어가고 자식과의 친밀성을 쌓아가는 ‘점잖은’ 현모양처의 슬픈(?) 운명을 걸어야 했다. 즉 여성은 ‘점잖은’ 여성이라는 표시로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결혼에 감금당하게 된 것이다. 낭만적인 사랑은 일상과 의무로부터 단절되지 않으면서, 자유 및 자아실현과 결합된다. 낭만적인 사랑은 숭고한 사랑을 성적인 열정의 요소보다 중시한다. 이로써 가장의 권위는 모성에 자리를 내준다. 이처럼 모성 및 여성성과 결합된 낭만적인 사랑은 ‘여성화된 사랑’을 의미한다. 이것은 결혼과 관련된 사랑이다. 근대 이전에는 사랑은 결혼과 별개의 것이었다. 이렇게 사랑과 결혼과 모성의 결합의 의해 만들어진 낭만적 사랑은 성적 파트너쉽과 확실히 구조적으로 적합한 것처럼 보였다. 그 결과 종종 오랜 불행의 나날이 초래되기도 하였다. 결혼하기 위한 맹세로서의 사랑과 일단 결혼한 이후 계속해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요구 사이의 연관이 워낙 빈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낭만적 사랑에서는 서로의 차이점이나 갈등의 요인들이 간과되고 축소된다. 최근 시기에 와서 낭만적 사랑의 이상은 여성의 성적인 해방과 자율성의 압력 아래 파편화되는 경향이 있다. 낭만적 사랑의 순수한 관계 사이의 충돌은 다양한 형태를 띤다. 낭만적 사랑은 장래의 파트너들이 서로 매혹되고 연결되는 수단으로서 타자와의 일체감을 동일시하는 데에 의존하는데 이는 오히려 친밀성에 의존해서 지속되는 관계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합류적 사랑은 새로운 정체성을 협상해 가는 그러한 사랑을 말한다. 합류적인 사랑에서는 나는 나이고 너는 너임을 확인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낭만적 사랑의 속성인 ‘영원’과 ‘유일’의 허구성은 합류적 사랑이라는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만들었다. 낭만적 사랑에서는 바로 그 특별한 ‘사람’이 중요하지만, 합류적 사랑에서는 그 사람과의 특별한 ‘관계’가 더 중요하다. 낭만적 사랑에서의 여러 결과의 관점에서 볼 때 언제나 불균형적이었다. 낭만적 사랑은 오랫동안 평등주의의 부담이 되어 왔다. 이 부담은 합류적 사랑의 감정적인 기브앤 테이크에서 평등의 부담을 줄여준다. 이 사랑의 유대가 순수한 관계의 원형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욱 그러하다. 합류적 사랑은 관능의 기술을 결혼 관계의 핵심에 도입한 최초의 사랑이며, 그리하여 성적 쾌락의 상호적 성취를 결혼 관계의 유지 또는 해소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만들었다. 성적인 텤닉의 배양과 성적 만족을 일으키고 느끼는 능력은 다양한 성 정보와 충고와 훈련을 통해 남녀 양편 모두에게 성찰적으로 조직되었다. 이런 에로틱한 테크닉들은 합류적 사랑 이전에는 거의 언제나 특수한 집단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합류적 사랑 이후에 소위 ‘점잖은’ 여성과 정통 사회생활 밖에 있는 여성 사이의 구별이 소멸됨을 가정한다. 합류적 사랑은 낭만적 사랑과는 달리, 반드시 일부 일처제적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또한 매우 중요한 대비가 한가지 더 있다. 합류적 사랑은 이성애와 특수한 연관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동생애적 사랑에까지 확대되었으며, 동성의 파트너 사이에서 발전된 여성성과 남성성 구분과도 어느정도 연결된다.
‘선[禪]’ 을 읽고이번 학기에 ‘좌선법의 이해와 연습’과목을 수강하면서 처음으로 참선[參禪]에 대해서 접하게 되었다. 이제 겨우 참선을 배운지 반 학기, 시간으로는 20시간정도 되는 듯하다. 참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하기에는 턱없이 배움이 부족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름대로 느끼고 이해한 것이 없지는 않다. 내가 지금까지 느낀 참선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그로 인하여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괴롭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하소연을 하거나 때를 쓰거나 하며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근래에는 홀로 앉아서 명상을 해본다. 마치 어질러있는 방을 정리하는 것처럼 뭔가 정리가 된다는 기분이 든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참선인지, 잘못 접근하고 있는지, 아예 다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이해한 참선을 통해서 나를 통제하기가 보다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이번에 교수님께서 내주신 ‘선[禪]’이라는 책은 나에게 선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일깨워주는 그런 책이었다.이 책 역시 한번 읽는 것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았다. 내용이 처음 접하는 것들이고 워낙 어렵다보니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아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읽었다는 것이 더 바람직한 표현인 것 같다. 무지에서 오는 이해부족으로 감상문이라기보다는 책에서 배울만한 글귀와 그에 대한 나의 느낌과 결론에 대해서 감상문을 써내려가겠다. 결국에 이 책을 읽은 나의 결론은 ‘마음으로써 진리를 깨닫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우선 책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첫 번째 장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선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 무슨 선이 있느냐 의아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조차도 부정적으로 받아 들였을 것이다. 허나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선은 마음 찾는 그것 이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무슨 뜻인지 이 구절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찾아야한다. 여기에서는 ‘마음’은 몸속에 있고, 또 몸밖에 있다고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난다와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마음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여러번 읽어 보았지만 객관식 답처럼 간단명료하게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음은 무엇인지... 마지막부분에 지은이는 ‘마음’을 놈이라 표현하면서 궤변을 말라고 한마디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이란 이 ‘마음’의 물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이해하였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마음 먹은대로 흘러가며 그 마음먹기에 따라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마음속에서 선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두번째장에서 제목부터 막혀버렸다. ‘서화와 선’. 서화가 무엇인가 하고 한참을 생각하였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서화[書?]’란 명사로서 ‘글씨와 그림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이라 명시되어 있었다. 서화란 뜻을 알고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어떻게 글씨와 그림이 선과 관련이 있을까하고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첫장에서 말하였듯이 선은 일상생활 전체에서 찾을 수 있다 했으니, 서화도 그런의미인가?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무슨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한장 한장 읽어 나갔다. 책에 있는 글귀를 보고 생각을 해보았다.‘붓을 마음에 맡겨 물 흐르듯 가면 저절로 묘를 얻을 수 있다.’‘마음의 형상화는 동양의 예술, 특히 서,화에서 매우 중요시되어 왔다.’여기에서 보듯이 첫 번째 장과 마찬가지로 ‘마음’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오고 있다. 재미난 사실은 선은 문예도 풍류도 아니면서 글씨와 그림은 선이라 말한다. 서화란 문예를 문예이게 하며, 풍류를 풍류이게 하는 그 근원이며 생명, 그 자체에의 귀환이다. 그 깨달음의 경지가 붓끝을 통하여 파도쳐 나오는 것, 그것이 선의 서요, 화다. 그러하기 때문에 서화는 일반 예술과는 차원을 달리한다고 말하고 있다. ‘서화와 선’ 이번장에서는 솔찍히 어려웠다. 서화에 대한 지식이나 문학 예술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그냥 글자를 읽는 것 자체였던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선승으로서 서에 빼어나신 분들을 열거하였는데, 어떤 글씨인지 그 힘을 한번 나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요즘 시대에는 ‘차문화’가 거의 사라진것 같다. 우리 젊은 사람들만 보아도 커피나 일반 탄산 음료수를 마시지, 차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웰빙이다 하여 마시지만 이는 선과 관련이 있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생각해서 약과 같은 의미로 마신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비록 그 공과 능력은 없으나 기에 응하여 쓰면 오히려 우레울림과 같다.’책에서는 차의 능력을 우레울림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차생활을 하며 한잔의 차를 통하여 우주의 한없는 은혜를 자각하는 지은과 보은의 그것이라 하며, 증정의 도를 지켜가는 길이라 말하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부분은 선과 차가 떨어질 수 없는 것은 의학적 효과 때문이라는 글귀였다. 읽어보면서 차를 많이 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한모금 한모금 마실때마다 선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봄을 찾아 진종을 헤매었어요짚신이 다 닳도록 헤매었어요뒤뜰 앞, 매화나무 가지 끝에봄이 달려 있는 것을,아주 재미있게 읽고, 생각을 많이 한 시였다. 무언가를 찾기위해 시간을 허비하였더니 마침내 그것은 내 바로 옆, 내 바로 주위에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무엇을 잡을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멀어지는 것이며, 마음을 비우면 그 멀었던 것들도 바로 주위에서 볼수 있다는 말로 이해되었다. 네줄짜리 시이지만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나에게 가르침을 준 좋은 시였다.네 번째 장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 이였다. 본문 중에 ‘청원과 석두’의 이야기는 정말 교육에 대해, 선생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글이였다. 책에서는 선과 교육에 대한 연관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현 교육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까지도 아끼지 않고 있다. 나조차도 아니 지금 모든 중,고,대학생들은 모두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다. 이는 죽어있는 교육이다. 그러면 살아있는 교육은 무엇인가... 책에서는 체험을 통한 교육이 산교육이라고 말한다. 끝으로 선의 교육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하나의 손놀림에서부터 하나의 걸음걸이까지가 모두 교육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앞의 첫번째장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일상생활 전체가 선이며 그것으로부터 배움을 얻는 것이 진정한 선수행이라고 이해되었다. 지금까지 잘못알고 있었던 좌선에 대한 배움이 큰 이득이였다. 좌선은 무슨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좌선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무엇을 바라고, 부처가 되기 위해, 건강을 위해서 하는 좌선은 사선이라 말한다. 여기에서는 이 문구로 교육자와 교육받는자를 비판하고 있지만, 한없이 내가 작아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할 수 있었다.
선의 나침반을 읽고..Ⅰ. 서론선의 나침반..왠지 제목부터 나에게 무언가 방향을 제시해 줄 것만 같은 책이다. 목록을 보았을 때, 이것은 불교서적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 신자인 나에게 불교란 조금 거리가 있는 종교였다. 우리나라 토속 신앙과 관련이 있어서 그런지 불교는 왠지 친근한 느낌이다. 서양 종교인 기독교 보다는 동양 종교인 불교가 더 공감이 가게 된 것은 사고가 비슷해서 인 것 같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마음이 편안해 졌다. ‘공수래 공수거’의 정신이 책의 모든 부분에서 느껴졌다. 정말 마음을 비우면 세상의 고통스러운 일이 없을 것 같다. 마음을 비울 수 없는 이유는 모든 것에대한 집착 때문인데, 나는 성격이 집착스러운 면이 많아서, 이 책이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은 정말 놀랄 만하다. 소승불교의 ‘연기’ 라는 부분을 보면, 자기 자신이 시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나온다. 맞벌이 하는 부부를 예로 들어, 남편과 아내가 5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남편은 5시에 왔지만 아내는 6시 30분이 다되도록 오지 않았다.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은 남편에게는 기다리는 시간으로 매우 지겹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아내에게는 일 때문에 바빠서 매우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다. 1시간 30분이라는 같은 시간이 이 두 사람에게는 다른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좋게 혹은 나쁘게, 행복하게 혹은 슬프게 만든다. 우리의 생각하는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런 사소한 일과 마음을 원인과 결과로 설명하여, 불교가 정말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종교라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최근 서양 사람들이 불교에 흥미를 느낀 것은 아마도 이러한 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에는 소승불교, 대승불교, 선불교 이렇게 나누어진다. 소승불교는 삶이란 언제나 변하며 고통임을 깨닫는 자각이다. 자기 자신이 삶은 고통임을 깨닫는 것이다. 대승불교는 공을 깨달은 뒤에는 대자대비를 행하는-열매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는 것이다. 대승 불교적 가르침은 ‘수박은 푸른 껍질과 검은 줄을 갖고 있으며, 약간 무겁다. 서양 사람들은 럭비공을 연상할 것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축구공을 연상할 것이다. 속은 붉고 부드러우며 달지만, 겉은 딱딱하고 껍질 맛은 쓰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 는 것이다. 선불교는 ‘여기 있다. 먹어라’ 이다. 어떤 말이나 단어, 수백 권의 책, 수백 가지 법문도 수박을 한입 깨물어보는 것 이상의 가르침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선불교의 기본이다. 이렇게 쉬운 예시를 줌으로써 이 세 가지의 명확한 구분을 할 수 있었다.이제부터 불교의 세 가지 중의 한가지인 소승불교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자. 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었고, 처음 펴신 가르침이 소승불교이다. 소승불교는 세 가지 통찰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데, 무상관, 부정관, 무아관이 그것이다.무상관은 우리 삶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무상관에서는 인생의 8고가 나온다. 생로병사,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온이 8고이다. 오온이라는 것은 ‘나’라는 것은 일시적인 요소, 느낌, 표상, 의지, 의식이라는 다섯 가지가 뭉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이것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생기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러한 8고가 극복이 된다는 것을 무상관에서는 말해준다. 이것은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두 번째 통찰인 부정관은 일체가 깨끗하지 않다고 보는 생각이다. 육체 그 자체를 더럽다고 보는 경우도 있고, 마음의 욕망이 더럽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몸에 대한 더러움은 재물욕, 색욕, 명예욕, 음식욕, 수면욕 이 5가지를 말한다. 인간의 고통은 가만히 보면 이 다섯 가지 욕심으로부터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5욕에 휘둘려 살지만 깨달으면 이런 것들이 우리를 묶지 않아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욕심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이 욕심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면 안되고, 다른 중생을 위해 어떻게 쓸 것인가를‘무지개’의 예에서 무지개는 누가 만든 것이냐는 질문에 태양빛이 만든다고 대답했지만, 태양빛은 누가 만드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답은 무지개는 태양, 물, 그리고 우리의 눈 이 세 가지가 아우러져 만든다고 한다. 내가 여기 있으면 무지개는 저기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 없으면 무지개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읽고 정말 대단한 논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세상 모든 시간과 공간은 내가 만든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십이연기는 수행을 통해서 연기의 고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성제는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치시게 되었다. 사성제는 고집멸도로 나누어진다. 고는 일체가 모두 고통, 집은 십이연기의 순환, 멸은 십이연기의 순환을 끊음, 도는 팔정도를 말한다. 팔정도는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을 의미한다.삼법인은 제행무상인, 제법무아인, 열반적정인이다. 제행무상인은 만물은 항상 변한다는 것이다. 제법무아인은 모든 법은 인연에 따라 생기고 사라지므로 자아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을 알게 되므로 어떤 것에도 집착을 하지 않게 된다. 열반적정인은 생사를 윤회하는 고통을 벗어난 피안이다. 이경지에는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소승불교는 이 삶도 죽음도 없는 완벽한 정적과 소멸의 상태인 열반을 얻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다.소승불교에 세 가지 수행이 있는데, 그것은 계, 정, 혜이다. 계는 계율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것은 도로의 표지판 같은 것으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정은 바른 참선 수행을 말하는 것으로, 언제 어디서나 항상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혜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으면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만 이 세상의 본질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소승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알아보았다.다음으로는 대승불교의 가르침에 대하여 알아보자. 대승불교는 소승불교처럼 고통에서 시작하현상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깨닫는 것 자체가 참 자아이다. 환은 환을 볼 수 없다. 따라서 모든 현상을 무상한 것으로 관하는 것 그 자체가 참 자아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명확하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바깥 모양을 절대로 보며 그 절대를 소리로 찾으려 하면 참 나를 찾을 수 없다. 삶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이며, 이슬이며, 번갯불이다. 모든 것을 이렇게 알아야 한다. 이름과 모양은 변하고 또 변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무상하다. 모두가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이 만들어낸 분별의 세계에 집착하지 말고, ‘오직 모를 뿐’ 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수행을 하여야 한다.반야심경에 대해 살펴보자. 반야심경은 지혜로 가는 위대한 길을 의미한다. 5온이 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모든 중생을 괴로움과 번뇌에서 구한다. 공에 대한 가르침은 매우 중요하다. 열심히 수행하여 반야심경 5온의 핵심을 통찰하면 이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를 모든 고통과 욕심으로부터 구해준다. 모양이 공이고, 공이 모양이다. 나타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더러움도 깨끗함도,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없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이 이렇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모든 법은 공하다. 깨달음도 깨달을 바도 없다. 그것이 열반의 세계다. 진정한 깨달음은 말과 단어가 필요 없다. 탕! 공은 인식과 깨달음도 없는 절대이다. 정등정각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말한다. 일체 만산을 두루 아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는 “간다 간다 간다 고해를 넘어 고통이 없는 곳으로 간다.”라는 말이다. 이것은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함과 진리를 얻는 것에 대한 것이다.대열반경에 대해 알아보자. 모든 것은 무상하다. 모든 것은 나타났다 사라진다.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없어질 때, 일체가 끊어진 적멸의 경지이다.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 마음이 있으면 나타남과 사라짐이 이름과 모양이 없다. 오직 참선 수향만이 완벽하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이 경험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될 때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법성게의 가르침이다.업과 윤회에 대해서 알아보자. 인간은 육근(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가지고, 육식(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을 가지고, 육진(모양, 소리, 냄새, 맛, 감각, 마음)을 가진다. 이것을 18계라고 한다. 7식으로 분별심, 8식으로 의식의 저장고를 가진다. 우리가 죽을 때는 몸은 ‘나’가 아니고, 공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7식과 8식은 죽지 않는다. 그들은 새로운 안식처를 찾으면서 6개의 영역(천당, 아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을 돌아다닌다. 업이 몸을 만들고 몸이 업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육도윤회라고 한다. 본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 바퀴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육도윤회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100% ‘오직 모를 뿐’을 지녀야 한다. 마음에 어떤 것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업에 의하여 이러한 육도윤회가 결정되는데, 순수한 본성으로 좋은 업을 쌓는다면 천당으로 갈 것이다.카르마는 불교에서 말하는 업으로 산스크리트로 카르마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이미 전생에서 만들어진 습관의 힘에 의해 상당량 결정된다. 우리는 이 업을 다른 중생을 돕는 데 쓸 것이냐, 아니면 우리 자신만을 위해 쓸 것이냐 이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간단히 표현하면, 보살업-대자대비, 선업-행복, 악업-고통, 적업-소결, 동업-동행, 원인, 연기, 결과 이렇게 나타낼 수 있다. 모든 것은 업을 통해 나타나고 업을 통해 사라진다. 마음이 나오면 법이 나오고, 법이 나오면 모양이 나오고, 모양이 나오면 고통이 나온다. 마음이 사라지면 법이 사라지고, 법이 사라지면 모양이 사라지고, 모양이 사라지면 고통이 사라진다. 우리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 이제까지 대승불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마지막으로 선불교에 대하여 알아보자. 선불교는 불교의 이론적인 것을 공부하여 깨닫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 경험으로.
1. 결정구조모든 결정체의 구조를 기술하는데 격자(lattice)라는 것을 사용하며 각 격자점에 원자의 집단을 부착함으로써 하나의 결정을 만든다. 이와 같은 원자의 집단을 단위구조(basis)라고 부르며 이것을 공간 내에 주기적으로 반복해 놓음으로써 결정구조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어떤 주어진 구조에 대해서 한 개 이상의 격자가 항상 가능하며 주어진 격자에 대해서도 한 set 이상의 결정축이 항상 가능하다. 이와같이 일단 격자와 사용코자 하는 축이 선택되면 단위구조가 정해진다.-결정체의 구조 : lattice(격자) + basis(원자,분자)-* 결정 병진 연산 ( lattice translation operation )* 기본 병진 벡터 (,)벡터>=+u+ u(u, u는 정수)라고 할때,T = u+u+u(u,u,u는 정수) 만큼 변위시키는 것으로 정의한다. 어떠한 두 격자점도 이와 같은 형태의 벡터로 연 결 된다.-원시축 a, b, c 에 의하여 정의되는 평형 육면체를 원시세포(primitive cell)라고 부 른다.* 주어진 격자에 대해 다양한 primitive cell을 정할 수 있다.1. 원시세포는 최소의 체적을 가진 세포이다.2. 하나의 원시세포나 원시단위구조 내의 원자의 수는 주어진 결정구조에 대해서는 언제나같다. (언제나 원시세포 한 개당 한 개의 격자점 존재)원시세포와 관련된 단위구조를 primitive basis 라고 부른다.- 그림에 보인 primitive basis중 1,2,3은 원시세포로 사용할 수가 있다. 평형사변형 4의 면적은 원시세포의 면적의 두 배이므로 원시세포라 할 수 없다.-이차원에서의 공간격자의 격자점-wigner-seitz cell ( 원시 기본 세포를 다른 방법으로 선정하는 방법 )1. 주어진 격자점으로부터 모든 인접한 격자점에 이르는 직선을 긋는다.2. 이들 선분의 수직이등분선 또는 수직 이등분 평면을 그린다.3. 이와 같은 수직이등분선 또는 평면에 의하여 둘러싸이는 체적 중 가장 작은 것이 wigner-seitz cell이다.4. 이와 같은 세포들도 원시세포와 마찬가지로 전 공간을 채울 수 있다.* 이차원의 격자형1. oblique lattice- 임의의 일반적인 격자- π및 2 π회전에 대해서만 항상 성립2.special lattice type- 여러 symmety operation(거울반사)에 대해서 불변인 격자형3. bravais lattice- 자연에 존재하는 결정격자의 type5가지 (2차원)* 삼차원의 격자형- 일반적인 격자형은 triclinic lattice이고 13가지 특수한 격자가 있다.cubic space lattice단순입방(sc : simple cubic) > 원시세포체심입방(bcc : body centered cubic)면심입방(fcc : face centered cubic)단순체심면심부피, 관습적인 세포aaa세포당 격자점수124부피, 원시세포aaa단위 체적당의 격자점수최인접 격자점수6812최인접 격자점간 거리a0.866a0.707a차인접 격자점수1266차인접 격자점간 거리2*aaa채우기 비율0.5240.6800.740- 입방 격자의 특징 -* miller index- 결정평면의 방위는 그 평면 내에 있는 세 점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물론 이 세 점은 동일 직선상에 있어서는 안된다. 이점들의 좌표를 a1,a2,a3로 표시함으로써 결정평면을 기술할 수 있다.- 평면이 세 축과 만나는 절편을 격자상수 a1,a2,a3의 배수로 표시한다. 이 축들은 원시이 거나 비원시 세포의 축이라도 좋다.- 이 세수의 역수를 취하고 이들과 동일한 비를 갖는 세 개의 정수, 보통은 최소의 정수를 계산하고 그 결과를 괄호 안에 놓은것 (hkl)을 그 평면의 지수라고 한다.- 원점에서 절편에 의해 생긴 평면에 수직인 벡터가 밀러 index이다. 지수 (hkl)은 한 개의 평면이나 평행평면의 한 세트를 나타낸다.-입방결정에서의 몇몇 중요한 평면의 지수2. Reciprocal lattice ( 역격자 )* 주기 함수어떤 함수 h(x)가 모든 실수 x에 대해 정의되 고, 모든 x에 대해서n(x+a)=n(x)를 만족하는 양수 a가 존재할 때 이 함수를 주기 a를 갖는 주기 함수라고 한다.*Fourier series ( 푸리에 급수 )- Fourier 급수는 cosine과 sine항으로 이루어진 급수이며 일반적인 주기 함수를 나타내는 중요한 실제적인 과제에서 나타난다.임의의 주기 a를 갖는 함수는 다음과 같은 fourier 급수로 나타낼 수 있다.n(x) = n+ccos()x+ssin()x+ccos()x+sin()x+.......+........=n(x+a)여기에서 c, c, s, s를 fourier coefficient(계수)라 부르며 적당한 값을 찾아내면 위의 급수는 n(x)에 수렴하고, n(x+a)=n(x) 를 만족한다.위의 fourier 급수는 다음과 같은 도형으로 쓸수 있다.n(x)=n+( Ccos(.px)+Ssin(.px) ---------------------------①식 ①의.p (p는 정수) 가 나타내는 점들을 reciprocal lattice 라 한다.- 1차원에서 이들은 선위의 점들로 나타내어진다.주기함수 n(x)를 fourier 급수로 표시하면 이 급수에서항이 나타내는 점들을 역격자 점이라고 한다.* reciprocal lattice 점들의 의미- 실격자점 -- 역격자점 -* 3차원에서의 reciprocal lattice,,를 real crystal 격자에서 원시기본벡터라 하면 reciprocal lattice의 원시기본벡터,,는?,,==>,,= ?ll =이기 때문에=이다.따라서,=2=2=2( 분자는 방향이고 분모는 체적이다. )< 의미 >1. real lattice의 원시기본벡터,,는 각각 reciprocal lattice 원시기본벡터,,와 아래와 같은 관계를 갖는다..= 2.= 0.= 0.= 0.= 2.= 0.= 0.= 0.= 2즉,은,가 이루는 평면에 직각이고,,도 같은 방법으로 작도할 수 있다.2. real lattice에서 병진벡터는=+++로 나타낼 수 있듯이 reciprocal lattice에서 병진벡터 G=++로 나타낼 수 있다.*입자와 파동의 성격빛이 에너지와 질량을 가진 작은 덩어리(입자)인가 또는 일종의 파동인가 하는 질문은 오랫동안 여러 천재 물리학자들을 고민하게 만든 문제이다. 입자와 파동은 물리학에서 서로 다른 개념이다. 입자는 하나의 알갱이로서 다른 알갱이와 상호작용해서 에너지와 운동량을 주고받는 존재이다. 반면 파동은 공간의 한쪽에서 생긴 교란이 다른 부분으로 퍼져 나가는 모양을 가리킨다. 파동은 간섭을 일으키는 성질이 있으며 파장(진동수)과 진폭에 대해서 말할 수 있지만 입자는 그런 성질을 갖고 있지 않다.그런데 빛은 어떤 때는 입자처럼 행동하고 다른 상황에서는 파동처럼 움직인다. 그래서 어떤 물리학자들은 빛을 입자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물리학자들은 빛이 파동이라는 실험적 증거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20년대에 들어서서 물리학자 중에는 빛은 입자일 수도 있고 파동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빛과 같은 하나의 대상이 입자일 수도 있고 파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종교적인 신비주의에서라면 몰라도) 과학에서는 무지한 이야기이다. 입자와 파동은 서로 완전히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은 빛을 입자라고 생각한 쪽이었으며, 호이겐스, 영, 맥스웰 등은 빛이 파동이라고 생각하였다.- 입자가 아주 작으면 파동적 성질을 갖는다입자파동운동에너지mvh=h=운동량(p)mv=?- 입자와 파동의 상관관계 (m,v) -고체물리학에서는 통상 파장대신 이론상의 여러 편리한 점 때문에 ''(파수베터)를 사용 한다.-m,v를 갖는파장, de broglie wave length는?E=mv====(m-10g , h=10ergs)* 빛의 간섭* 이중 슬릿에 의한 간섭(영의 실험)영국의 물리학자인 영(Young)은 1801년 이중 슬릿을 이용하여 스크린 상에 밝고 어두운 간섭 무늬를 얻었다.*빛의 회절* 단일 슬릿에 의한 빛의 회절*결정내 원자의 위치(=결정 병진 벡터)=- 결정내 원자의 위치에서만 산란되므로는?E()=Ai[.+.] 이다m,n,p에 대해 분해하면 laue 방정식을 구할 수가 있다.조건은.=2h.=2k.=2l이고 h, k, l을 laue-Index라 한다.*역격자 vector와 실격자 벡터의 상관관계.= 2.= 0.= 0.= 0.= 2.= 0.= 0.= 0.= 2*역격자의 여러 성격- 역격자 내의 임의의 병진벡터는 (hkl)로 주어진 miller 평면에 직각이며, miller-index와 Laue-index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성립한다(h k l)=n(h k l)- miller-index에 의해 주어진 평면들 간의 거리 d는 그것에 상응한 역격자 벡터의 절대값 에 반비례한다.d(h k l)=* Ewald 구 작도법1) 역격자점을 찍는다.2) 입사파와 격자면 (h k l)이 이루는 각이가 되도록 그리고 반사파‘ 끝점을 그림과 같 이 연결하면 Ewarld 구이다.또 ll = l‘l 가 이루는 각은 2* Laue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