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코스장안문->북동포루->화홍문->방화수류정->북암문->동북포루->동장대->노대->창룡문->동일포루->동포루->봉돈->동이포루->동삼치->동남각루->팔달문->남포루->화양루->사남암문->서포루->서장대->서이치->서북각루->화서문->서북공심돈->북포루->북서포루->장안문이번 답사는 같이 수업을 듣는 2명의 학우와 같이 총 3명이 수원에 자리 잡은 수원화성을 답사했다. 10월 3일 개천절 휴일은 답사하기에 적당한 날이었다. 답사라는 것을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막막하고도 약간의 흥분과 함께 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답사를 핑계로 디지털 카메라도 사고 군제대후 첫 외출을 나갔다. 사당역에서 오전 10시에 일행을 만나 7770을 타고 약 30분가량 이동후 도착한 곳은 북문,즉 장안문이었다.날씨는 더 없이 좋았고 약간 더운듯한 기운이 도는 날이었다.장안문을 끼고 도는 로타리,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장안문은 수원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 했다. 여기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먼저 장안문 옆에 자리한 안내소에서 팜플렛을 받았다. 수많은 여행객이 다녀갔다는 것을 말해주듯이 안내소안에 아주머니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단숨에 알려주셨다. 장안문 옆에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화성이라는 곳이 어떤 용도로 쓰였으며 대략적인 화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커다란 성곽의 모습으로 하나의 폐곡선을 이루고 있다.축구장이 몇개 들어가고식의 비교는 불가능할 정도의 크기,영화에서 보아왔던 그래서 내 기억 속의 성곽과는 적지 않은 차이점이 있었다. 성안에 자리 잡은 현대식 건물들을 보면서 과거 누군가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하면서 서있을 생각을 해본다. 언제 화살이 날아 들어 자기 심장에 꽃힐지도 모르는 상황, 해가 진 후에는 햇불에 모든 시력을 의존해야하는 상황, 얼마전에 군제대를 한 나로서는 남다른 감회에 젖은 순간이 었다.윗 사진을 보면 벽에 네모난 구명이 나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로 사진을 찍었다.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올라오는 적을 막기위해 기름을 부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같은 용도가 아닐까한다. 물론 지금 사진에나온 것은 6.25 이후 손상된 것을 1975년에 시작해 3년간 복원된 것일 것이다.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구멍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까? 그것도 온몸에 화상을 입고..’ 하는 생각에 언젠가 티비에서 본 피묻은 단두대를 봤을 때처럼 섬뜩한 기운이 발끝에서 머리까지 흐름을 느꼈다.근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복원의 상태였다.여기에서 뿐만 아니라 여기 저기 복원한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사진에서도 보면 네모난 돌 주위에는 시멘트를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리 현대 첨단 건축 기술로 갈고 닦으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사업차원에서 이루어 지는 문화재 복원 사업인데 대부분의 문화재라 함은 사람손 (수원성의 경우는 거중기가 사용되었다지만)의 힘들 빌어 그들의 피와 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아닌가? 가령 팔만 대장경이든 석굴암이든 현대기술로 만들어 낸다고 하자. 물론 첨단 기술의 힘은 놀랄 만한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 현대판 대장경이고 석굴암이 유네스코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냥 과거 그대로 복원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었구나 그래도 이렇게 까지 해놓은게 어디냐..하고 이해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복원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과거 축성 당시 쓰인 돌과 복원시 쓰인 돌을 구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성을 쌓을 땐 같은 크기의 돌을 쌓은 것이 아니고 모서리 부분을 세심하게 다듬어 이를 맞추고 맞추어서 쌓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이런 작업을 할려면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갔을 것이다. 위의 사진은 팔달문의 사진인데 바닥에 놓여있는 돌과 사진 왼쪽 아래에 둥근 모양을 하고 있는 문을 둘러싸고 있는 돌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다음에 눈에 들어 온 곳은 ‘동일치’라는 곳이었다.치(雉)라는 것은 “꿩”이라는 뜻으로 본래 꿩은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잘 엿보기 때문에 시설의 용도와 그뜻이 통해서 치라고 한다.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서 성벽에 접러한 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다산 정약용은 '치가 없으면 성이 아니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고 한다.그리고 또 인상적이었던 곳은 ‘동장대’와 ‘동북공심돈’이라는 곳이었는데 동장대는 화성의 2개 장재중 하나로 일명 연무대라고도 부른다. 연무대라는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이 화성장대가 군사령관의 지위소라면 동장대는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곳으로 지형은 높지는 않지만 사방이 트여있는 낮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현대군대를 생각하면 연병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창과 활을 든 군인들이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잘 정돈된 잔디가 있었을 지는 의문이지만 잘 훈련된 병사들이 칼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그때도 ‘조교’라는 사병들을 훈련시키는 또 다른 사병이 있었을까? 과연 그들도 욕을 해가면서 혹은 구타를 해가면서 사병들을 가르쳤을까? 커뮤니티 질문란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북공심돈은 화성의 2개 공심돈중 하나로 창룡문과 동장대 사이에 있다.내부가 속이 비어있고 나선형 모습으로 되어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일종의 망루로서 수비와 공격을 할 수 있고 포를 쏠 수 있으며 검정 벽돌로 둥글게 축조한 건물은 우리나에선 화성에만 있는 특이한 건물중 하나라고 한다. 과연 소라모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을 말할까해서 안을 들여다 볼려고 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그냥 생각에는 내벽을 따라 나선형으로 길이나있어 바닥에서 포같은 무기를 끌고 갈 수 있게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든다. 참고로 사진에 나와있는 사람은 같이간 멤버중에 한사람이다.다음으로 볼 수 있는 곳을 ‘동일 포루’라는 곳인데 여기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포루는 성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 대기소와 같은 곳이다.이곳의 지형은 평탄하고 넓어서 멀리 관찰할 수있도록 포루 중 성벽에서 가장 많이 돌출되어 있다.옆의 사진은 안에서 본 모습이고 밑의 사진은 밖에서 본 모습이다. 밖으로 위에 따로 지붕을 만든이유가 거기 있을것이다. 과거 전쟁당시 벽에 난 구멍에는 화약 냄새가 끊이질 않았을 것이다. 포루 안에는 직접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위로 카메라를 집어 넣어 찍는 관계로 사진에는 정확하게 나오진 않았지만대포 혈석2개를 뚫었고 좌우면 3개의 혈석을 놓은 위에는 벽돌을 쌓았고 삼면은 판자를 깔았으며 총안 15개를 뚫었고 내면은 성탁에 의지하여 전부 돌로 쌓았다고한다.다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봉화대였다. 그날 오후에 소나기가 왔었다. 날씨가 점점흐려지는 관계로 사진이 좀 어둡게 나왔다. 왼쪽 사진에서 보면 가운데 문이 있다.그문으로 들어가보면 위 그림중 오른쪽과 같이 불을 뗄 수 있게끔 되어있다.낮에는 연기로서 서로 연락을 취하고 밤에는 횃불로서 연기를 대신했다는 것 정도는 상식이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볼 때 이런 장치가 얼마나 효율적이었을까하는 생각을 안해볼 수가 없다. 비가 많이 와 불을 올릴 수 없는 경우라든지 바람이 심하게 불어 상대방이 볼 때 연기를 뿜고 있는 봉화의 개수 식별이 어려울 경우, 어떻게 연락을 했었을까?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게 내 생각이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사극이나 영화속에서의 전투신은 맑은 날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음도 이런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기가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이것만큼 빠르고 확실한 통신 수단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도대체 이곳의 정체를 밝힐 수가 없었다. 대충 보기에는 이동로 같은데 잔디보호 차원에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하지만 한가지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깃발의 색깔이다. 처음 장안문에서 시작한 깃발은 검정색이었고 시계방향으로 돌았으니깐 장안문을 대충 북으로 잡으면 동쪽에 꽂혀 있던 깃발은 청색 (‘동일치’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고 지금 옆에 깃발은 적이다.내가 알기로는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라고 했다. 왼쪽은 파랑 오른쪽은 흰색 남쪽은 붉은색 북쪽은 검정이라는 함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통 북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왼쪽이 서쪽이고 순서는 이런 나의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검정 다음으로는 청색 그리곤 붉은색. 만일 이 깃발들의 색깔이 내 머릿속의 그런 의미가 아니라면 다음에 나오는 색은 흰색이 아닐 가능성이 있지하고 결과는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계속 답사를 진행했다.다음으로 우리가 본 것은 ‘서노대’라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노대’는 쇠뇌를 쏠 수 있고 성밖의 적의 동향을 성내에 알리는 진지로서 벽돌로 높게 쌓아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쇠뇌라는 것은 활보다 멀리 쏠 수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고 쇠뇌의 촉은 아주 크고 청동으로 만들어져 살상력이 강했다고 한다. 쓰여진 벽돌들이 복원된 느낌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어 조금 아쉬웠지만 팔각형이라는 모양에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 마지막 깃발의 색은 흰색이었다. 옆의 사진은 답사를 마치고 우리가 내려왔던 길을 찍은 사진인데 깃발이 흰색임을 알수 있다. 그러면 남주작 북현무 좌청룡 우백호의 가정이 맞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인데 인터넷 상에서도 여기 저기 뒤져 봤지만 누군가 답을 해놓은 사람이 없었다. 이 역시 질문란에 물어봐야 하겠다.답사를 마치며...개천절을 맞이 하여 ‘수원 화성’이라는 곳은 적절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안내 책자도 외국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여러개의 언어로 작성되어 있고 중간중간에 세워져 있는 팻말도 영어와 한글로 적절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왠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최신식 화장실도 괜찮은 볼거리 였다.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용’ 열차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아닌가한다. 화성을 한바퀴 걸어서 완주하는데는 점심 먹는 시간을 빼고 대략 3시간 정도가 걸린다. 노약자나 어린이들이 걷기에는 무리가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열차의 컨셉도 수원화성에 맞추어 달구지나 최소한 ‘소’열차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현충탑도 수원화성과는 특별한 관련이 없을지라도 개천절과 같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답사의 의미를 좀 더 값지게 해주지 않았나한다. 6.25 전쟁에서도 살아 남은 수원.
실험 목적sulfite의 식품 첨가제로서의 여러 가지 기능을 살펴보기로 한다실험 기구 및 시약catechol, 감자, sulfite salt, 비이커, 강판, 시험관, 시험관 받침대, 피펫, 열 교반기실험 방법1. 1g의 catechol을 100ml의 물에 녹여 1%의 catechol 용액을 만든다.2. 200~250mlm이 물을 500ml 비이커에 끓인다.3. 약 30g의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약 200ml의 물에 넣어 흔든 후 여과지를 이용하여 걸러낸다. (여과된 용액을 추출물 A로 한다.)4. 약 1ml의 추출물 A를 시험관에 담아 끓는 물에서 약 5분간 중탕한 후 식힌다.(이를 추출물 B로 한다.).5. 다음과 같은 혼합물들을 준비하여 색깔의 변화를 5분 후와 1시간 후에 각각 관찰한다.시험관 1 : 2ml의 물 + 0.2ml의 추출물 A시험관 2 : 2ml의 1% catechol 용액 + 0.2ml의 추출물 A시험관 3 : 2ml의 1% catechol 용액 + 0.2ml의 추출물 B시험관 4 : 1.8ml의 1% catechol 용액 + 0.2ml의 2% sulfite 용액 + 0.2m의 추출물 A (sulfite 용액을 처음에 넣는다.)6. 갈색으로 변화된 혼합물에 0.2ml의 2% sulfite 용액을 넣은 후 그 색깔 변화를 관찰한다.결과 및 처리첨가물물+Acatechol+Acatechol+Bsulfite+A+catecholcatechol+A+sulfite반응 색깔색깔 없음진한 노란색색깔 없음색깔 없음색깔 없음1. Sulfite는 melanin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효소적 갈변반응은 페놀성물질을 함유한 식품들이 Polyphenoloxidase에 의해 산화되어 quinone을 형성하고 이들이 비효소적으로 중합하여 갈색물질인 melanoidine을 생성하는 것이다. 아황산계 표백제는 모두가 환원력이 강한 아황산을 발생하고 이것이 황산으로 산화되는 과정에서 착색물질을 환원하는 강한 표백작용을 나타낸다. 즉 sulfite는 melanin을 환원시킨다.2. 이 실험의 결과로 미루어 보아 갈색화 반응의 저해제로서 sulfite의 효과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sulfite는 효소적 갈변의 진행을 막기도 하고 이미 갈변이 진행된 것을 표백시키기도 한다.토의효소적 갈변을 억제하는 방법은 효소의 불활성화(데치기 등), 산소제거, 기질제거, 환원제(Na2SO3) 첨가, Fe나 Cu 등 금속이온 제거 등의 방법이 있다.실험에서 물과 추출물 A를 반응시켰을 때 갈변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기질이 없기 때문이고 추출물을 끓인 후 반응시켰을 때 갈변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효소를 불활성화시켰기 때문이다. sulfite를 먼저 넣고 추출물을 넣은 후 마지막에 catechol을 넣었을 때 갈변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sulfite로 인해 효소가 작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실험에서 이미 갈변이 진행된 것에 sulfite를 첨가했을 때 색이 없어진 이유는 sulfite가 형성된 색소인 melanin을 환원시켰기 때문이다.
(아미노산 적정)1. 실험에서 얻은 data를 이용해서 아래와 같은 적정 곡선을 그려보고, 사용한 미지 시료가 무엇인지 알아낸다.그림에서 pH가 급격히 증가하는 지점이 제1당량점이다.NaOH 4.1mL 첨가했을 때의 pH가 5.33인 부분을 제1당량점으로 본다면 pKa1=2.47 pKa2=8.9이다.제2당량점은 8.2mL을 첨가했을 때이므로 pI=9.72이다.그래프를 통해 얻어진 값을 볼 때 가장 가까운 아미노산은 lysine라고 할 수 있다.2. 다음의 각각에서 이론적인 pH 값을 계산해 본다.a. 적정하기 직전의 pH농도를 알아야 계산 가능한거 같은데..ㅠㅠ(계산방법이요..)10-2.18 = (x2 / 농도-x) 여기서 나온 x가 수소이온 농도예요..b. 짝산과 짝염기의 농도가 같을 때의 pHH3L2+H2L+HLL-↓ ↓ ↓pKa1 pKa2 ↓ pKa3pIpH = pKa-log10([HA]/[A-])에서 짝산과 짝염기의 농도가 같으면 pH=pKa임.pKa1=2.18pKa2=8.95pKa3=10.53c. 당량점에서의 pH이것도 농도를 알아야 계산 가능할듯..d. 당량점을 훨씬 지난 후의 pH3. 위에서 계산한 pH와 실험에서 얻어진 pH들을 비교해 본다이론값과 실험에서 얻어진 결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고찰)결과를 이용해 적정곡선을 그리고 그 값으로 미지의 아미노산을 알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실험과정 중 사용된 NaOH의 부피를 읽을 때 약간의 오차가 발생했을 수 있다. 이번실험에서는 약간의 눈금을 잘못 읽는 것이 실험결과에 큰 영향을 줄 수가 있다. 특히 당량점 부근에서는 약간의 부피가 큰 pH의 변화를 일으킬 수가 있다. 이때 눈금을 잘못 읽었다면 적정 곡선이 잘못 그려지게 되는 결과가 생긴다.
목적쿨롱의 법칙은 두 전하의 크기에 비례하고 두 전하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두 전하 사이의 힘을 측정하여 쿨롱의 법칙을 확인한다.전기학 이론의 선구자였던 쿨롱은 1736년 프랑스에서 출생했다.그는 비틀림저울을 써서 전기척력에 대한 프리슬리(Priestley)의 법칙을 설명하고 인력의 경우로 확장했다.
화학 실험-바륨의 원자량 결정-전기공학부2000-12839 허훈1.실험 목적무게 분석법(Gravimetric analysis)에서는 생성물의 질량을 이용해서 원래 알고자 하는 물질의 양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오늘 실험에서는 이러한 무게 분석법을 이용해서 바륨의 원자량을 확인하고자 한다.2.실험 기구 및 시약47Ag (107.8682 gmol-1)17Cl (35.4527 gmol-1)BaCl2 2H2O , ?AgNO3 (169.8731gmol-1) , HNO3데시케이터 , Hot plate , 오븐 (Oven)100 ml 부피 플라스크 (Volumetric flask) X 2 , 10 ml 피펫비이커, 거름종이 , 뷰흐너 깔때기3.실험 방법1) AgNO3 약 1g을 측정해서 100-ml 부피 플라스크(volumetric flask)에 녹인다.2) BaCl2 2H2O의 약 12.21g 정도를 정확히 측정해서 1)과 마찬가지로 1000-ml 부피 플라스크 (volumetric flask) 에 증류수로 녹인다.(위의 시료들은 110oC 오븐(oven)에서 1시간 이상 건조시킨 후, 데시케이터에서 식혔다.)(위의 1과 2 과정은 세 조당 하나씩 용액을 만들도록 한다.)3) BaCl2 용액 15ml를 피펫으로 정확하게 재어서 100-ml 비이커로 옮기고, AgNO3 용액 약 30ml 이상을 넣어 주고 변화를 관찰한다.4) 침전이 생긴 위의 용액을 10분 정도 가열한 후에 천천히 식히면서 변화를 살펴 본다. (옅은 보라색의 침전이 형성될 것이다.)5) 거름종이의 무게를 재고(0.001g까지), 침전물을 뷰흐너 깔때기로 거른 후 0.01M의 질산용액과 증류수로 여러 번 씻어준다.6) 거름 종이와 침전물을 약 110℃ oven에서 무게가 변하지 않을 때까지 건조시킨 후 그 때의 무게를 기록한다.4.실험 결과1) 측정된 AgCl의 무게로부터 원래 용액 속에 들어 있던 Cl-의 몰 수를 구해보자. 처음 BaCl2용액에 들어 있던 Cl-의 무게를 계산해 보자.AgCl의 무게 : 0.695g-0.495g=0.200gAgCl 분자량 : 107.87+35.453=143.323AgCl의 몰 수 :0.200/143.323=0.00140몰BaCl2 15.0mL에 들어있는 Cl-의 몰 수 : 0.00140몰BaCl2 1000mL에 들어있는 Cl-의 무게 : 0.00140 * (1000mL / 15.0mL) * 35.453 = 3.31(g)2) 처음에 측정한 BaCl2의 무게에서 Ba2+와 Cl- 에 해당하는 무게는 각각 얼마인가? 그리고, 이들의 무게비는 어떠한가?Cl- 무게 : 위에서 계산함- 3.31gBa2+ 무게 : 12.21g-3.31g-3.31*36.030/70.906=7.22g#BaCl22H2O에서 Cl과 H2O의 무게비:2*35.453:2*(2*1.0079+15.999)=70.906:36.030Ba2+와 Cl- 의 무게비 : 7.22 : 3.313) 이들의 비로부터 Ba의 원자량을 계산해 보자. (단, 전자의 질량은 무시한다.)Ba 원자량*1 : Cl 원자량*2 = 7.22 : 3.31Ba의 원자량=(2*35.453)*(7.22/3.31)=154.664) 실험에서 측정한 값과 알려진 Ba의 원자량과 비교해 본다실험에서 얻은 Ba 원자량-154.66실제 알려진 Ba 원자량-137.335.고찰실험 결과를 이용해 계산한 Ba의 원자량은 154.66으로 실제 Ba원자량인 137.33과 차이가 있었다. 실험과정을 정리해보면 얻어진 침전에서 Cl의 몰수를 통해 질량을 구하고 전체 질량에서 Cl이 차지하는 질량을 빼어 Ba의 질량을 구한다. 이렇게 구해진 Ba와 Cl의 무게비를 통해 Ba의 원자량을 알아내었다. 만약 Cl의 몰수가 실제보다 적게 측정되었을 경우 Cl이 차지하는 질량이 작아지게 되어 결국 Ba의 질량이 실제 함유된 양보다 크게 계산되었을 것이다. 이 결과로 Ba의 원자량을 계산하면 실제 원자량보다 큰 값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