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런 말이 유행한적이 있었다.“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 밑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유구한 5000년의 세월동안 자신들이 가꿔온 전통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고 맹목적으로 좋을 것이라며 착각하고 받아들이던 서구문명에 대한 주제적인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자칫 국수주의로 들릴 수도 있는 이 슬로건은 우리의 전통에 대해서 좀더 알고 자부심을 가지게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우리 자신의 뿌리를 앎으로 좀더 발전적인 방법을 모색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종합예술이라고하는 건축이 빠질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며 건축학도로서 지혜로운 조상들이 이루어놓은 토속건축을 아는 것이야말로 건축을 알고 자신의 뿌리를 아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Shelter로서의 집의 발생모든 동물은 원천적으로 자연환경 속에 놓여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환경은 제반 생물체들이 살아나가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혹독한 조건을 강요하기도 한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와 여름의 더위, 홍수, 각종 해충, 비바람등 제반 생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들은 무수히 많다. 이러한 제반 혹독한 자연 환경은 생물체들로 하여금 생존전략을 강구하게 한다. 이러한 제반 자연환경 조건에 대응하여 생존의 전략을 만들어 나가는 대표적인 것중의 하나가 '집' 이다.동물 중 상당수는 자신의 집을 짓고 사는 경우가 많다. 새들의 경우 흔히 보듯이 자신의 둥지를 짓는 것을 볼 수 있고, 벌이나 개미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듯이 자신의 집을 짓고 산다. 이외에도 수많은 동물들이 자신의 집을 여러 가지 형태로 구축한다. 우리는 동물들의 경우 집을 짓는 이유가 주로 새끼를 키우거나 먹이를 저장하거나, 비바람, 추위를 피하고,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동물들의 경우 집이 이러한 기본적인 생존전략 뿐 아니라 짝을 구하기 위해 치장하는 등의 이유가 있다고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동물들의 경우에는 그 또한 번식의 본능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동물의 집은 쉘터(shelter)로서의 기능에 국한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은 혹독한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상존하고, 이러한 필요에 의하여 집을 짓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인간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인간이 집을 짓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역시 추위와 비바람, 눈보라 등의 혹독한 자연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 할 것이다. 또한 원시인류의 경우에는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것도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였다- 구석기 시대 동굴주거구석기 시대의 동굴주거는 자연적인 동굴을 인간의 주거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비바람을피하는 거처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아직 집을 지을 줄 모르는 인간은 자연적인 동굴을 거처로 삼아 수렵과 채취생활을 영위한다- 신석시 시대의 수혈주거동굴로부터 벗어난 인간은 땅을 일정깊이로 파고, 움막 형태의 집을 짓는 방식으로 거처를 마련하였다. 평면은 원형 내지는 타원형이 주류를 이룬다. 이제 정착이 이루어지며,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장치로서 집이 필요해진다- 청동기 시대의 주거이제 수혈주거의 모습은 그대로 이지만, 평면은 네모형태의 모습을 갖게 되고, 부분적으로 수직의 기둥이 세워지는 모습을 갖게 된다. 평면에서는 명확한 구획은 아니지만 남성공간과 여성공간의 개념적 분화 현상이 보인다.- 청동기 시대의 수혈주거기둥이 생겨나고, 서까래를 얹는 등 건축물의 기본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주택이 가지고 있는 기본요소가 대부분 포함되어져 있다- 초기 철기시대의 주거귀틀집이라 부르는 통나무집이 만들어지고, 고상주거가 생겨난다. 이러한 형태의 집들은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실제 이용되고 있다.?기후환경을 극복하려는 시도- 온 돌한민족은 춥고 찬바람이 불고 눈이 많이 내리는 긴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방바닥을 따뜻하게 해주는 '온돌'이라는 난방시설을 사용하였고, 덥고 비가 자주 내리고 습기가 많은 여름을 지내기 위해서 바닥이 시원한 '마루'를 사용하였다. 추운 북쪽지방에서는 온돌방이 발달하였고, 더운 남쪽 지방에서는 마루가 발달되었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온돌과 마루라고 할 수 있다. 한옥을 짓는 재료는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와 흙, 돌 등을 활용하였고, 골격은 주로 나무를 사용하였고, 지붕은 나무를 사용하였고 그 위에 풀을 덮거나 흙으로 구운 기와를 사용하였다.온돌의 원리를 살펴보자.온돌은 열의 전도, 복사, 대류를 이용한 한국 고유의 난방 방식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는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춥기 때문에 가옥의 구조에도 계절적 온도 변화를 고려하였다. 방을 따뜻하게 데우는 구들과 여름이면 사방으로 바람이 통하도록 되어있는 시원한 대청이 공존하는 가옥 구조를 만들었다. 추운날에는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방바닥 밑의 구들장을 데워 방안을 따뜻하게 하였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그 열기로 인해서 음식이 조리되며 경사진 부넘기를 넘은 열과 연기는 아궁이로 내닫지 않고 개자리에 이른다. 열과 연기는 개자리에서 머물다가 굴뚝을 통해 빠져 나가므로 구들은 오랫동안 온기를 유지할 수 있다.- 마 루습기가 많고 더운 지방에서 발달한 개방형의 오두막집 형태로 부터 비롯된 것이 바로 마루이다. 중부 및 남부에 나타나고 관북지방에는 없는 마루.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대청마루는 중부, 남부의 여름을 나기위한 기후에 대응하기위한 구조였음을 알수 있다. 또한 추운겨울을 나기위한 것으로 온돌이 발달되었는데 온돌과 마루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 우리 한옥의 특징이라고 볼수 있다. 온돌 구들아래에 방고래라는 중렬구조가 되어 있는데, 마루에도 앞뒤가 트인 통풍구조가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루의 판마루는 사이를 두어 만들어졌는데, 그 이유는 마루 아래쪽으로 흐르는 바람이 판마루 사이를 통해 위로 올라와 그위공간을 시원하게 만들 수 있는 구조로 만든 것이다. 더욱 앞 뒤 문을 열어 놓으면 공간과 공간이 탁트여 맞바람을 이용하여 통풍이 잘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마루는 기온 조절뿐만 아니라 습도조절에도 매우 기능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다습한 지방의 가옥일수록 마루의 높이가 높아짐을 알수 있다. 마루와 땅과의 간격은 토습 즉 땅이 가지고 있는 습도를 막고 어떤 습기도 조절할수 있는역할을 하고 있다.- 흙 벽흙은 고착력이 약하고 잘 바스러져 건축재료로 사용하기엔 조금 힘들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통해 우리 선조들은 흙을 벽의 재료로 사용하였다. 그 이유에는 우리 기후에 맞기 때문에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밝혀지고 있는 것들은 흙벽과 흙 바닥이 우리 몸이 좋다는 과학적인것도 증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황토방이라든지 황토를 이용하여 나온 마감재료등이 많이 나오고 있다. 여름의 혹서와 겨울의 혹한을 막기 위해 현재처럼 단열재를 사용하지 않고도 우리 선조들은 여름과 겨울을 날 수 있었다. 흙은 외부의 열을 단절시키는 효과가 커서 무리 더운 여름철 햇볕에도 그 햇볕을 막아 그 안공간이 서늘하고 시원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한서의 차도 클 뿐 아니라 습도의 차도 크다는 게 우리 기후의 특징인데, 장마철에는 높은 습기와 겨울철의 건조함은 많이 들 경험하였겠지만 사람들에게 불쾌함을 줄뿐이다. 그러는 반면 흙은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습기를 흡수하고 또, 습도가 낮은 겨울에는 가지고 있던 습기를 내보내는 그런 조절기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벽을 토벽(흙벽)이라고 하였는데 벽에 외를 엮고 흙을 발라서 꾸민집으로 토담집이라고도 하였다.
나의 인생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간다’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어차피 죽어가는 인생 한방에 화려하게 살다가 한방에 죽는거야’라며 무식하고 무모하게 이해했지만 10년여가 지난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길면 80세를 사는 사람이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인생이란 항해를 할 때 사람은 제각각 다른 방법으로 죽음에 도달하게 된다. 즉 어차피 죽음에 이른다는 것은 똑같지만 그 방법상에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사과나무를 심어서 키우며 인생의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가 하면 다른 이는 불우한 사람을 도우며 살아가듯 제각기 다른 인생의 나침반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이들과는 다르게 일정한 나침반이 없이 삶에서 바람이 이끄는 대로 표류만을 하는 것은 나침반을 가진 이가 죽음이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는 경우 인간이 느끼는 보람과 후회의 정도는 천지차이일 것이다.과연 위에서 말한대로 내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회한을 최대한 적게 남기고 인생의 끝에 도달하기위한 나의 인생관은 있는 것일까? 있다면 난 어떤 인생관은 가지고 있는 것일까?인생의 본질?의미?가치 등에 관한 총체적인 견해라고 하는 인생관을 아직은 쉽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관은 뭐이다라며 딱 한 문장으로 줄여서 쓰기에는 내가 살아온 인생의 깊이와 시간이 너무나 빈약하다. 성철 스님같이 위대한 분도 살아생전 인간에 대해 수많은 강론들을 했어도 열반하실 때에 이르러서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로 삶에 대해 나름대로의 간단한 결론을 내리셨으니 그 분보다 한참은 우매한 내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난 아직도 저 명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 인간관계론을 배우는 입장에서 대인관계에 대해 살아오면서 느끼고 세운 인생관들을 나열하며 그 인생관의 의미를 곱씹어보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을 금번 레포트의 목표로 하겠다.「사람에게 정을 가지고 다가서자.」수능시험을 치루자마자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싶은 욕심에 새벽 5시부터 8시 30분까지 4개월간 아파트나 주택에 세워놓은 고객들의 차를 찾아 세차를 하는 출장세차 아르바이트를 했다. 추운 겨울이었고 새벽부터 일어나야하는 부담감에 망설여졌지만 각 구역에서 고객을 많이 확보하면 보너스를 주겠다는 사장님의 말에 혹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른 이로 하여금 부러워하게 고객들의 차를 열심히 닦는 전시효과를 노렸지만 내가 맡은 구역에서는 고객 숫자에 변화가 없었다. 고심을 하던 중에 생각해낸 방법은 친근하게 다가서기였다. 고등학생인 내게는 거금인 2000원을 들여 포스트잇을 산 후 고객에게는 운전석에 그날의 명언이나 활기찬 인사말을 적어서 붙여놓고 안면이 있는 분께는 간단하게 유리창만을 닦아놓고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또한 고객이든 아니든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는 주위 상황을 봐주기 등의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하자 꽤 많은 사람들이 내게 흥미를 가지고 대해주었고 한달이 지나자 많은 분들이 세차서비스에 등록을 해주었다. 이 기간 동안의 일은 내게 두둑한 보너스 봉투와 함께 인간을 대할 때는 인간적으로 대해야한다는 확신을 심어주며 지금까지 변함없는 내 인생의 큰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되었다.「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고 싶었던 내일이다.」훈련소생활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를 받은 후 이등병 생활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군본부로 파견을 나갔다. 그곳에는 계급이 없이 병장이든 이등병이든 똑같은 직위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만을 충실히 하면 누구도 뭐라하지 않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힘들어하는 군생활 그 중에서도 이등병 생활의 편안함과 안락함은 내게 큰 축복이라고 생각했고 그 편한 생활은 약 1년간 계속되었다. 하지만 한 달도 지나기 전에 하루하루가 변함없이 똑같은 일상은 일의 고됨보다도 더 한 권태로움이란 고통으로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아침 기상시간부터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컴퓨터에 앉아 일하는 시간, 밥먹는 시간, 모든게 변함없는 그 곳의 하루는 편안한 천국으로 시작해서 편안한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잡지책에서 랄프 W. 에머슨의 어록이라며 나온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고 싶었던 내일이다.」란 구절은 1년간을 거의 동물적인 욕구로만 헛되이 살아온 내게 큰 충격이 되었다. 어제 죽어간 이와 비교하면 난 정말 소중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곤 똑같은 일상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비록 하루는 똑같지만 그 하루가 가진 의미를 각각 다르게 두고 싶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5권의 일기에는 비록 반복되는 하루라도 똑같은 내용이 하나도 없는 나만의 글로 채워지고 내가 하고 있는 컴퓨터에 대해 좀더 알고자 전문서적을 구해서 보며 영어단어를 위해서 단어집을 사서 늘 외우고 다녔다. 그렇게 난 현재의 삶에 불평만하며 안주하지 않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으로 나머지 군생활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마음속의 잔잔한 일상에 돌을 던져 파동을 일으키는 자세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진정한 정답은 내가 맞다는 것을 상대방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배움에 대한 열정에 가득차서 복학을 한 후 건축설계라는 전공 수업을 들었다. 그 수업의 목적은 정해진 실제 대지 위에 건축사 역할을 하는 내가 주택 건물을 짓기를 원하는 의뢰인인 교수님과 상의를 해서 편안하고 안락한 주택을 계획?설계한 후 모형을 만들어 교수님께 평가를 받는 과목이었다. 설계과목만은 A+을 원하던 난 전에 이 과목을 들었던 많은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작품을 보았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구해서 설계의 방향을 정한 후 교수님과 면담을 하던 날, 교수님은 내가 하고자하는 설계의 방향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난 내가 생각한대로 논리적으로 설득을 하려하였지만 교수님은 무조건 자신의 뜻을 따르라고 호통을 치셨다. 30여분 동안 밀고 당기는 설득 작업 끝에 자신의 스타일을 요구하시는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방문을 조용히 빠져나오며 내가 생각한 대로 밀고나가기로 결심을 했다. 하지만 한 학기가 끝나고 받은 C+ 학점을 보고 친구들과 선배들은 다들 어이없어 했고 객관적으로 나보다도 낮은 수준의 작품을 제출한 애들의 학점이 좋은 것을 안 나는 끊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다른 작품의 사진을 보여드리며 비슷한 수준인데도 C+이란 학점에 대한 이유를 여쭤보고 교수님의 답변을 듣고 나서야 내 입에서는 ‘감사합니다’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다. 엄청났던 분노는 없어지고 내 자신에 대한 반성과 무지함을 질책했다. 교수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니 말이 맞더라. 하지만 아무리 니가 맞다고 하더라도 의뢰인을 무시하고 나온
퐁 네 프 의 연 인 들Les Amants Du Pont-Neuf중학교 때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의 선전을 보고 벼르다가 친구와 비디오를 빌려봤다. 대학교에 와서 여자친구와 같이 보기까지 재미없는 영화로 각인되었던 그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은 후에 불꽃놀이 장면 때문에 제작자 2명이 파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아~ 그 영화 망할만했지.이번에 레포트를 쓰기위해 본 것까지 세 번을 봤다. 이제야 느끼는 것이지만 지겹도록 졸리지만 결코- -졸지못하게 하는 이상한 영화이다.(세번째 전까지는 미치는줄 알았다.) 주인공은 가출한 여자와 거지 남자, 주로 하는 대화는 거의 없다. 아니 있어도 별볼일 없다. 남자는 중얼거리고 여자는 모르겠다. 묘한 것은 둘이서 대화가 통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축제의 폭죽이 터지는 밤이다. 그들의 취미는 남자는 자해공갈 여자는 밤낮으로 그림그리기 이다. 인상적인 대화는 ‘아무도 나에게 이별하는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뿐이다.수업시간에 배운 파워포인트 자료를 검토해봐도 누워서 영화의 내용을 골똘히 생각해봐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영화였다. 매력은 있지만 물처럼 또렷하게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을 알기위해 인터넷을 뒤져봤을 때 이 허접한(?) 영화에 무려 250억원이 투자되었고 수많은 인력들이 5년이란 세월을 이 영화 한편에 매달렸으며 10만자가 넘는 NG필름을 남겼다는 사실에 입이 떡 벌어졌다. 블록버스터형 영화도 아닌게 무슨 볼게 있어서 이런 투자를 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이 난해한 영화의 설명(?)을 읽고나서 퐁네프를 보통의 영화처럼 시각이 아닌 시선으로 바라보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매료된다.눈 멀어가는 여 화가 미셀, 불을 뿜는 거리의 곡예사 알렉스, 죽은 아내의 기억 속에 방황하는 한스, 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세상에서 버림받은 듯한 존재이다. 이들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닥친 현실에 마냥 비틀거리기만 한다. 때로 사랑은 흉기가 되어 가슴을 후벼 판다. 사랑할 수 있는 자유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게 없는 사람들은 가슴을 베일 줄 알면서도 거기에 모든 것을 건다. 삶이 그 무게를 나누어 싣지 못하고 사랑이란 외줄에만 온 체중을 실을 때, 그 사랑은 끝내 줄을 끊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어둠에 묻혀 상처를 핥던 그 슬픈 짐승들은 어디 갔을까. 갈 곳 찾지 못해 다리 위에서 서성대야 했던 퐁네프의 그 연인들은.수용소를 탈출해 퐁네프에서 노숙하던 알렉스는 어느날 다리 한 가운데서 잠든 미셸을 만난다. 미셸은 사랑을 잃고 시력까지 서서히 잃어가자 자포자기 심정으로 거리를 헤매는 화가. 아무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은 둘은 이 다리 위에서 지독한 사랑에 빠져들었다. 1989년부터 2년동안 보수했던 이 다리 위에서 지옥과도 같은 한철을 보내던 미셸은 이불에 비닐까지 덮고 차가운 밤을 견뎌냈다.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퐁네프는 역설적이게도 세느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한다. 작은 벽돌을 부채살모양으로 촘촘히 박아 차도를 만들고 우아한 교각에 갖가지 조각을 아로새긴 퐁네프는 16세기말 30년간에 걸쳐서 완공됐다. 다리 이름과 역사가 지닌 역설은 사랑의 의미에 대한 역설이기도 했다. 진로와 퇴로를 미리 모색해두는 허다한 사랑들 사이에서, "잊는 법을 배우지 못해" 권총으로 손가락을 날리는 알렉스의 낡은 사랑은 얼마나 새롭게 느껴지는가. 지을 땐 새로운 다리였지만 어느새 가장 오래된 다리가 되고만 퐁네프 운명처럼, 새로움을 기약한 그 많은 사랑들은 또 얼마나 쉽게 군내 풍기는 사랑이 되고 마는가.엄청난 물량이 퐁네프 다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30여 만평 규모의 퐁네프의 다리를 재현한 세트는, 길이 100미터, 폭 15여 미터의 실제 퐁네프 다리를 그대로 재현하였는데, 원료는 모두 대리석이 사용되었으며, 수심의 깊이는 실제 세느강의 깊이와 똑같이 20여미터 깊이로 땅을 파 강으로부터 물을 끌어올려 맨땅을 물로 채워 넣었다. 이 세트를 짓기 위해 20000여 명의 인원이 동원되었고, 프랑스의 유명한 건축가 크리스티앙 마지 외에 설계사, 조각가, 연극 무대 디자이너 등이 함께 참여하여 1년 7개월의 제작 기간과 1억 9천여만 프랑을 투자하였다. 이 퐁네프 다리 세트는 관광 명소로 이용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꼭 그렇게 투자를 했어야 했나 의문이 간다.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 제작비가 차지하는 의미를 알 수 없다.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고 본다. 영화라곤 하지만 현실성이라곤 거의 없이 미친 것처럼 보이는 알렉스. 물론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고 그만큼 미쉘을 소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이해는 되긴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보고 나서도 개운한 기분이 들기보다는 기분이 언짢다. 모든 사건의 흐름은 인과성보다는 순간적인 감정의 폭발로 이루어진다. 우선 미쉘의 예술에 대한 집념과 실명하는 것에 대한 좌절을 좀 더 묘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실패했다. 의도했는지 아니면 하다보니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알렉스와의 관계에 대하여 부수적인 요소로만 미쉘의 숨은 이야기가 파묻히고 말았다.퐁네프 전철역이 생각난다. 점점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미셸이 그곳에서 작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알렉스는 재주를 넘는 큰 동작으로 그녀를 웃긴다. 하지만 실종된 미셸을 찾기 위해 가족들이 내건 포스터가 지하철 환승 통로 벽을 뒤덮은 걸 보자 알렉스는 미셸을 떠나보내지 않으려 방화를 시작한다. 포스터에 일일이 불을 지르던 알렉스는 방화죄로 3년형을 선고받는다. 형기를 마친 알렉스는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 퐁네프에서 미셸과 재회한다.에서 감독은 알렉스의 미셀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불?이라는 이미지로 상징화하고 있다. 알렉스가 불을 뿜으며 곡예하는 씬에서 휘발유를 머금은 알렉스의 얼굴과 그의 입에서 뿜어나오는 휘발유 줄기가 불길로 변하는 장면이 급격한 커트에 의해서 교차되어 보여지고, 한 불길이 채 다 그어지기도 전에 다른 각도에서 뻗치는 불길의 선이 화면 앞으로 덮쳐온다. 여기에서 불은 미셀에게 직접 말할 용기가 없는 알렉스의 강렬하고 시각적인 유일한 사랑의 표현이지만 미셀의 잃어가는 시력은 이런 알렉스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힘들다.이러한 불의 이미지는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일의 화려한 불꽃놀이에서 극치를 이룬다. 낮보다 더 밝게 느껴지는 밤하늘의 불꽃 아래서 격정적으로 춤을 추는 두 사람의 모습이 롱 테이크로 보여지며 알렉스의 사랑이 미셀과 공유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때 흐르는 흥겨운 음악으로 인해 롱 테이크이면서도 불꽃의 격정적인 이미지가 무리없이 잘 표현되고 있으며 과장된 동작의 춤은 그들이 갖는 처지에 대한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역사란 무엇인가?- 바이마르공화국 -{- -우리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역사를 배워왔다. 매 수업시간마다 무덤의 형식, 정치제도, 위인이 행한 일들, 사건이 일어난 년도를 배우고 중간고사, 기말고사 100점을 맞기 위해 교과서가 마르고 닳도록 줄을 치고 외운다. 그렇게 배워왔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단순한 암기만으로 정작 우리 자신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객관적, 주관적으로 상대방을 납득시킬만한 답변을 할 수 없다. 아니 그러한 질문이 있는 것이 새삼 놀라울 뿐일 것이다. 마치 지구의 형태가 왜 구냐고 묻는 것인냥 우리는 지구가 구처럼 둥글다같은 역사적 사실에만 집착을 했을 뿐 그러한 사실들이 왜 그런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 또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미시사적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1초 마저도 역사적 순간이다.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 순간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고민하고 있는 지금도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과연 내가 지금 쓰고있는 역사 란 단어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과연 내가 생각하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위해 책 한 권을 읽고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려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어리석어 보이지만 난 여태것 하지 않았던 이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도서관에 가서 거의 두 시간을 헤맸다. 독후감을 써야하는 만큼 책을 고르는데 신중해야만 했다. 선택한 책을 읽고 역사에 대해서 드는 느낌과 생각을 글로서 또렷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만 하고 저자가 역사를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만한 책을 찾아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바이마르라는 네 글자가 꽤나 거슬렸다. 시험문제에도 인용했던 스트레세만이란 사람이 떠올랐고 바이마르가 존재했던 시대적 상황이 1차, 2차 세계대전 사이이기에 전에 보았던 전쟁영화들을 떠올리며 목차를 보았다. 오인석이라는 저자의 약력을 읽고 내가 원하는 독후감 그리고 역사에 대한 나의 답변을 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실한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내려갔다. 그렇게 오인석의 바이마르 공화국은 일주일동안 틈틈이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저자는 1918년에 일어난 독일혁명으로 1919년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성립부터 히틀러의 나치스 정권 수립으로 찾아온 소멸까지 14년간의 과정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대외 정책등에 대한 것들을 거시사적 관점에서 카테고리로 나눠서 설명하였다. 그리하여 바이마르 공화국의 성립과 소멸의 시대상황을 전승국들과의 관계와 국내의 정세를 연계시켜서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나하는 것을 여러 문헌을 참고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작가는 냉철한 분석을 통해 독자에게 설명을 한다. 즉 기록으로서의 역사와 함께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켰다.바이마르에서 새 독일 의회가 소집된 1919년부터 1933년까지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라고 한다. 1918년 8월에 제정된 바이마르 헌법에 따르면, 독일은 연방공화국이며 연방의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고 임기는 7년이다. 대통령은 수상을 임명하고 의회를 해산할 권한이 있으며 긴급령을 내릴 권한도 부여받았다. 연방수상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지만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그 외에 바이마르 헌법은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주는 등 법적으로 남녀간의 평등을 보장하였고 사회보장제도와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했다.그러나 독일의 첫번째 의회제 공화국은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으로 시달렸다. 공화국은 처음부터 전쟁 피해보상금과 인플레이션, 경제적인 위기들과 대량 실업 등의 부담을 지고 있었다. 많은 정당들이 난립하여 파업과 혁명, 쿠테타를 통해 정부를 전복하고자 했으며, 좌익과 우익 세력 모두가 가혹한 조건의 강화조약체결에 대해 정부를 격렬하게 비난함으로써 국가의 권위가 무너졌다. 이로 인해 공화국에 대한 회의가 생겨났고, 그 결과 국내 정치가 불안해졌다.전후의 혼란은 1923년 그 절정에 달했으나, 그 후 미국의 대규모 차관으로 독일은 경제적 회복과 함께 정치적으로도 안정을 찾았다. 이 시기에 독일의 미술, 음악, 과학과 사상이 크게 발달하여 황금의 20년대라는 번영기를 누리며 다시 몇년만에 세계적인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은 1929년의 세계경제공황과 함께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결국 몰락하게 되었다. 경제가 거의 미국 차관에 의존해 있던 독일은 경제공황으로 가장 심한 타격을 받았다. 몇달 사이에 6백만명의 실업자가 생겨났고 절망에 빠진 대중은 독일 공산당과 나치스당과 같은 급진적인 정당으로 기울었다. 특히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 운동은 불안한 정세를 틈타 1930년 이후 도약적으로 발전하여 1932년에는 가장 강력한 정당이 되었다. 1933년 히틀러는 선거에서 승리하여 수상으로 임명되었다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알 수 있다. 20세기말 구소련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 그리고 북한 주민의 기아와 같은 사건들은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증명하였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후 독일의 지도층은 의회제 공화국이라는 근대적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음에도 국민들은 국수주의에 사로잡혀 결국은 히틀러의 독재정치와 함께 시작된 2차 세계 대전은 패망과 분단이라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즉 그 시대에서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처음에 책을 읽고나서 난 독일 국민이 생각보다 우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프랑스처럼 자신들의 정치권을 격렬하게 요구하지도 않았는데(노동자들의 혁명은 있었지만) 지도계층에서 먼저 제시를 법에 명시하면서까지그들의 참정권을 인정해주었는데도 그것을 거부하고 다시 세계 대전이라는 구덩이로 빠지는 모습은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포트를 쓰기 위해 수업시간에 필기한 노트를 보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히틀러를 위대한 사람으로 보는 독일 할머니도 있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우토반을 만들고 사회보장제도를 확대시키는 것들을 통해서 그 분이 젊었을 때 분명 히틀러는 위인이었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정리했던 위인의 정의처럼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었고 지금은 독일인들이 후회하고 반성한다고 하지만 분명 그 시대의 사회세력을 대표하는 독일의 위인 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바이마르 공화국이 국민에게 제시한 민주주의라는 사탕은 히틀러가 제시한 사탕과는 달리 그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에 달지 않았던 것이다. 1차 세계 대전의 패배 이후의 인플레이션으로 국민들의 기아와 굶주림은 극에 달했고 전승국들의 불법적인 점령행위는 국민에게 현 체제에 대한 반감은 참정권의 신장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었던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지만 어쩌면 바이마르 공화국의 그 시대 사람들은 현재 이라크 사람들이 미국에 의해 세워진 과도정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을 바라봤을 것이다. 결국 시대상황이 어떠했듯 우둔한 국민이 아니라 우둔한 정부가 국민의 바람을 읽지 못했기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단명한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의문제점과 대책Ⅰ. 들어가기환경 과학 시간에 배운 바에 의하면 지구는 폐쇄계이기 때문에 물질 교환이 외부와 이루어지지 않아서 우리가 생활하면서 버리는 쓰레기가 없어지지 않고 지구 환경 내에 쌓이기 때문에 쓰레기 및 산업폐기물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우리의 모든 생명활동의 여건을 제공하는 지구 생태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곧 미래에 우리 인류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강한 회의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오염의 문제점을 인식한 사람들은 정부 주도로 사회의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여서 자원재활용 및 쓰레기 배출에 대한 일정 금액을 지불하게 함으로써 가정 내에서 방출되는 쓸모없는 쓰레기의 양을 줄이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쓰레기 분리수거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 자체의 목적은 나무랄 것이 없지만 분리수거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람들의 인식 부족과 무관심, 이기심 등으로 인해 분리수거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으며 자원 재활용에서도 경제성 등의 문제 때문에 폐지 및 깡통 등을 이용한 재활용 업체가 운영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기사도 자주 볼 수 있다.따라서 금번 레포트에서는 일반 가정집을 중심으로 조사하여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쓰레기 분리수거의 문제점과 그것에 대한 대책 등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Ⅱ. 쓰레기 분리수거의 문제점{{종래에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다른 쓰레기와 마찬가지로 일괄적으로 쓰레기 종량제 봉투(이하 봉투)에 넣어서 버렸지만 올해부터는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처리를 한다. 여느 가정집과 같이 우리집에서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음식물을 따로 모아서 체로 물기를 빼낸 다음에 아파트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지만 이러한 음식물 쓰레기를 여름철과 같은 무더운 날에 물기가 빠지기까지 두면 메스꺼움을 느낄 정도의 악취가 느껴진다. 게다가 날파리와 같은 것들이 모여들어서 가정집 위생상 그곳이 다형도실이라고 하더라도 문을 열 때마다 거실로 들어와서 좋지 못하다.{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를 넣어서 버려야할 봉투가 모여있는 쓰레기통의 내부 모습이다. 봉투만 있어야할 곳에 약간의 수고만 들인다면 봉투에 들어가기 알맞은 크기로 잘라서 넣을 수 있는 나무 판, 화첩, 기타 여러 가지 품목들이 무단으로 투기되어 있다.{옷과 이불과 같은 것들을 버리기 위해 상시 비치해두는 의류수거함이다. 비좁아서 얇은 옷과 같은 쓰레기들은 버리기 쉽지만 두꺼운 겨울잠바나 이불과 같은 경우는 아예 안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안 들어간다고 의류수거함 앞에 비치해두면 동사무소에서 벌금이 청구된다.{폐형광등을 수거하는 비치함이다. 여러 종류의 형광등을 넣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아파트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1미터가 훨씬 넘는 형광등은 들어가지 않아서 주변에 방치되어 있다가 깨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그 밖에도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건전지의 수거함이 없다. 각종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고 폭발위험이 있는 폐건전지 수거함이 있었으나 1년이 지나도 수거를 해가지 않다가 결국 건전지에서 액체 등이 흘러나와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얼마 전 철거를 했다.Ⅲ. 쓰레기 분리수거의 문제점에 대한 대책위에서 열거한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으로는첫째, 현재 시에서 제공하고 있는 덮개가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보다 빠른 시일에 제공하여 분리수거를 하는 가정의 불편함을 없애서 악취나 청결 문제 때문에 음식물을 봉투에 넣어서 버리는 가정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둘째, 의류수거함에 들어가지 않는 두꺼운 이불이나 옷의 경우에는 라면 박스에 넣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같은 그 동네의 대표가 증명하는 스티커를 붙이면 수거해가는 제도를 실시해야 한다. 다만 그 제도가 실시될 때 큰 가구를 버릴 때처럼 동사무소에 작은 량의 돈일지라도 돈을 지불하는 일은 쓰레기 무단투기를 더 부추기는 행위이다.셋째, 폐형광등, 폐건전지와 같은 것들의 수거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넷째, 주택단지나 아파트단지에서는 폐지나 사용한 병 같은 것들을 각 가정마다 나름대로 분리하여 내놓고 있다. 그런 날 분리수거장에 가보면 유리병은 유리병끼리 모여있어야 하는데도 PET병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위에서 문제점으로 열거한 사진 중에 봉투에 집어넣지 않고 무단으로 투기한 사진이 시사하는 바는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고 실행이 되더라도 의식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쓰레기 분리수거는 늘 제자리 걸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이 환경의 일부분이라는 것과 후손들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환경을 물려받는다고 생각을 하면 자신의 몸이 순간적으로 편하기 위해서 전술한 바와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개인적, 제도적 차원에서 계몽 활동을 벌이며 후손에게 물려줄 이 환경을 보존하는 자그마한 일이 분리수거임을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