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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학]한국의 여성문학 (개화기 이전까지) 시대별로 누가 무엇을 썼는가 ,그것을 쓰게된 동기, 그작품의 문학사적 의의와 그것들을 중고등학교 학생에게 왜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서..
    ★한국의 여성문학 (개화기 이전까지) 시대별로 누가 무엇을 썼는가 ,그것을 쓰게된 동기, 그작품의 문학사적 의의와 그것들을 중고등학교 학생에게 왜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서..1.근세 이전의 여성문학한국 시가 발생의 기원과 여성.당신은 물을 건너지 마오당신이 물을 건너가다가물에 빠져 죽으면당신을 어이하란 말가이시는 고조선의 조선진이라는 나루터에서 곽리자고라는 뱃사공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백수광부가 달려와 물에 빠져 죽으니 이를 안타까이 말리며 뒤따라오던 여자가 아비의 죽음을 슬퍼하여 강변에 앉아 공후를 타고 ‘공후인’을 부르고 자신도 따라 죽었다는 설화가 있는 시이다. 이 사실을 곽리자고가 아내 여옥에게 알리자 여옥이 노래로 정착시켜 후세에 전해진 것으로 문헌상으로 한국문학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시가이다.ㆍ삼국시대 여성과 시가: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더 많은 여성 시가들이 배출되었을 것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삼국유사에 전하는 실전시가 14수의 신라 향가 중 2수인 “도천수관음가”와 “원왕생가” 그리고 악학궤범에 전하는 “정읍사”가 백제 여성의 시가로 전해지고 있다.먼저 눈먼 아들을 위하여 천수관음 앞에 간절히 비는 어머니의 모성애와 관음 숭배 사상이 드러나 있는 기원 시가 “도천수관음가”의 전문을 보면 이렇다.무릎을 낮추면두 손바닥 모아천수관음 앞에기구의 말씀 두노라천의 손에 천의 눈을하나를 높아 하나를 덜어두 눈 감은 나니하나를 숨겨 주소서 하고 매달리누나아아 나라고 알아 주실신댄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그리고 서방 정토에 가 있는 지아비를 따라 서방으로 가지를 간절히 희구하는 신앙시인 “원왕생가”를 전문을 보면 이렇다.달이 어째서서방까지 가시겠습니까무량수불전에보고의 말씀 빠짐없이 사뢰소서서원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러 바라보면두손 곧추모아원왕생 원왕생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아아 이 몸 남겨 두고사십팔대원 이루실까.마지막으로 멀리 장사길을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백제 여인의 사랑이 담긴 시, 정읍사를 보면 이렇다.달이여 높이높이 돋아멀리 멀리 비치어라전주장에 이르셨나요진구렁을 밟을까 걱정입니다무엇이나 다 놓고 오시라내가 가는 데 저물까 걱정입니다.위에서 살펴본 시에 대해서 살펴본다면 “도천수관음가”가 관음 신앙의 반영이라면 “원왕생가”는 아미타 신앙의 본보기인 동시에 신라 향가 14수 중 유독 개인 기원문의 성격을 뚜렷이 갖춘, 그러나 서로 다른 기원조를 드러내는 기원시의 쌍벽으로 분휴할 수 있다. 전자가 관음보설 앞에 직접 대좌하여 축수하는 즉석 기원문이라면 후자는 달이라는 매개물을 의인화시켜 서방정토에 인도하는 안내자로 고백하는 간접기원문의 형식인 것이다. 또한 “정읍사의 ‘달’은 천지신명임을 의미하였고 달 자체를 신격화하여 가시의 세계 안에서의 생의 애환과 그리움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편들은 다른 신라 향가와 마찬가지로 당대를 풍미한 사회 이념, 즉 불교 신앙과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또한 이 세편의 시가가 모두 기원자는 여성이요, 그 기원의 내용은 남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2.고려시대 여성문학고려조에 들어오면서 신라 향가에서 보이는 종교적 도그마는 후퇴하고 가사 문학과 구전 시가가 성행하는 한편 이 지상에 발을 붙이고 역경과 수난의 삶을 헤쳐가는 인간주의 문학, 즉 인간을 주제로 하고 인간의 애환을 묘사하는 문학이 등장한다. 그러한 고려 문학을 대충 분류해 보면 귀족층 사회를 터반으로 형성된 한문체의 ‘경기체 시가’와 이두로 표기된 향가 계열의 시가, 그리고 민간의 구전으로 전승된 속악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중에서 고려조를 대표하는 시가는 속악이라 할 수 있다. 고려사의 속악조에 전하는 45편의 시가 중 이름이 게재되어 있고 내용을 알 수 없는 28수를 뺀 실전 가요 17편, 이것이 바로 고려 여성 문학의 참여 범위로 바로 이 속악에 한정되고 있는데, 이 고려 가요 전승층 여성을 일별해 보면 고려사 혜종에서부터 등장하는 궁녀와 무녀 및 기녀 그리고 막중한 조공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서민층 여성이었다.천민이라 하여 고려 일반 사회에서는 인간적 대우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무녀와 기녀, 그리고 삶의 절절한 아픔과 역경 속에서 꾸밈없는 감정과 애환을 노래한 기층 여성들에 의하여 전승된 고려가요가 오늘날 우리 국문학의 원류가 되고 있음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17편의 실전가요 중에는 8편(정읍사, 사모곡, 서경별고, 동동, 쌍화점, 가시리, 이상곡, 만전춘별사)이 여성 시가로 분류되어 왔고 기녀 동인홍과 용성기녀 오돌의 시가 기면으로 남아 있으나 대부분 여성 작품으로만 간주될 뿐, 이름을 달지 않은 구전 가요라는 데 특징을 담고 있다. 여기서 고려 여성시가의 내용을 보면 그 주종은 ‘낭만주의 연애시’라고 말할 수 있으면 ‘무속신앙시’, ‘대동놀이시’ 등 서너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중에서 여성 시가의 특질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연애 시편들의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1) 얼음 위에 댓잎자리 보아 임과 나와 얼어죽을망정얼음 위에 댓잎자리 보아 임과 나와 얼어죽을망정정둔 오늘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외로운 침상에 어느 잠이 오리요서창을 여나니 도화 만발하구나도화는 시름없어 봄바람에 웃누나 봄바람에 웃누나넋이라도 임과 함께넋이라도 임과 함께우기시던 니는 누구이니까오리야 어린 비오라애여울이랑 어디 두고 소에 자러 왔느냐소 곧 얼면 어율도 좋나니 여울도 좋나니남산에 자리보아 옥산을 베고 누워금수산 이불 안에 사향각시를 안아 누워남산에 자리보아 옥산을 베고 누워금수산 이불 안에 사향각시 안아 누워藥든 가슴 맞춥시다. 맞춥시다.아아 임아 원대평생에 헤어질 줄 모르압세 -만전춘별사 의역-2)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몽고아비 내 손목을 잡더이다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거들랑조그만 새끼광대 네말이라 하리라더러듕성 다리러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함께 하는 후렴구)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위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그 잔 데같이 울창한 곳 없거니삼장사에 불공 드리러 갔더니그 절 주지스님 내 손목을 잡더이다이 손문이 이 절 밖에 나거들랑조그만 상죄중아 네 말이라 하리라(함께 받는 장단)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위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그 잔 데같이 울창한 곳 없거니-후략- -쌍화점 의역-3) 가시리 가시릿고 날 바리고 가시릿고날더러 어찌 살라고 날 바리고 가시릿고잡사와 두어리만은 섭하면 아니올세라설혼님 보내옵나니 가시난 듯 바삐 오소서 - 가시리 의역-이러한 고려조 여성 시가의 세 유형을 이해함에 있어서 국문학적 해석을 차치하고서 말한다면 “만전춘별사”는 연애시로서 희곡성과 통일된 정서를 갖춘 참된 사랑의 시이면, 윤리적 타락을 유감없이 발휘한 시가라고 보는 “쌍화점”은 여성이 처한 참단한 억압 사회를 풍자와 고발로 연희화한 대동놀이시이고 고려조 이별시로 대표되는 “가시리”는 현대시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서정시, 즉 소월의 “진달래”등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따라서 산라의 ‘향가’가 당시의 종교적 도그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포교시의 영역이라면 고려 여성 시가는 문학을 통해 인간을 발견한 낭만주의 문학의 형성기로 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3.조선시대여성문학인간중심적이고 민중적인 고려 여성 시가들은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유교 가부장제 교리와 만나 다시 커다란 변모를 겪게 된다. 남성중심적이고 권위주의 일변도인 유교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남성의 주변인물로 종속시키는 한편 남성은 하늘, 여성은 땅이라는 이분법적 율법을 고착화시켜 삼종지덕의 굴레를 명분화시켰다. 일례로 ‘여자는 재주를 날려서도, 글을 써서 읽혀서도 안 된다’는 노예윤리는 이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여성들은 어깨너머로 학문을 깨우치고 독학으로 우리 글을 익혀 내방 가사와 시문을 지었으며 이조 규방 문학을 형성하였다. 여기서 문집을 남긴 여성 작가를 간략히 나열해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 이계생, 이옥봉, 등 다수이다.그런데 이들 문학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주제 정신은 종교적 윤리 도덕이 으뜸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자신의 생활 처지를 한탄하는 시문이며 그 다음은 풍류, 멋, 효심, 모성애, 서경묘사 순으로 집계되고 있다.이렇듯 이조 당대의 사회 이념인 유교 정신의 영향을 받은 시문이 주종을 이룸에도 불구하고 이조 규방 문학을 통틀어 가장 큰 두각을 나타낸 3인 작가가 있었는데 즉 황진이와 허난설헌과 이옥봉이었다. 이들 3인 작가의 문학세계는 규방 문학의 주종을 이룬 종교적 색채를 뛰어넘은 인간의 사랑과 쓸쓸한 낭만을 탁월하게 표현했는데 이들 작품을 보면 이렇다.
    인문/어학| 2006.04.11| 5페이지| 1,500원| 조회(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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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학]신재효는 어떤인물인가?
    ★신재효는 어떤 인물인가?812(순조 12)∼1884(고종 21). 조선 후기의 판소리 이론가·개작자·후원자.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백원(百源), 호는 동리(桐里). 전라남도 고창 출생. 아버지 광흡(光洽)은 경기도 고양 사람으로 한성부에서 직장(直長)을 지내다가 고창현의 경주인(京主人)을 하던 선대의 인연으로 고창에 내려와 관약방(官藥房)을 하여 재산을 모았다. 어머니는 경주 김씨로 절충장군 상려(常礪)의 딸이다. 신재효는 어려서 총명하였고,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그런 이름을 지었다 한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수학하였고, 사십이 넘어서 부근에 살던 대석학과 학문을 의논하였다고 하는데, 그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는 고창현의 향리와 서민들과 깊이 사귀었을 뿐만 아니라, 죽은 뒤에 여러 향반(鄕班)들이 만장을 써 보낸 것으로 보아, 신분을 넘어선 폭넓은 교유를 맺었으리라 추정된다. 그는 아버지가 마련한 기반을 바탕으로 35세 이후에 이방이 되었다가 나중에 호장(戶長)에 올랐다. 1876년(고종 13)에 기전삼남(畿甸三南)의 한재민(旱災民)을 구제한 공으로 정3품 통정대부가 되고, 이어 절충장군을 거쳐 가선대부에 승품(陞品)되고, 호조참판으로 동지중추부사를 겸하였다. 신분 상승을 꾀하면서도 한시가 아닌 판소리에서 정신 세계를 찾은 그는 판소리를 즐기는 동시에 자신의 넉넉한 재력을 이용하여 판소리 광대를 모아 생활을 돌보아 주면서 판소리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직선적이고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성음을 갖추면서 박자가 빨라 너름새를 할 여유가 없는 동편제(東便制)와 유연하고 화려한 성음을 갖추면서 박자가 느려 너름새가 쉽게 이루어지는 서편제(西便制)의 장점을 조화시키면서, 판소리의 듣는 측면에 덧붙여 보는 측면을 강조하였다. 신재효는 19세기 후반(후기8명창시대) 지방향리 출신으로 광대가 아니면서도, 판소리의 심취한 후원가로서, 판소리 사설의 집성자로서, 이론가 비평가로서, 그리고 판소리의 지도자로서 창단의 바깥에서 당대에 가장 심대하게 판소리 광대들과 그 향유자(어전을 포함하여)들에게 영향을 미친 문제적 개인이다. 문제적 개인이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당대에 사회적?문화적?철학적으로 떠오른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사고의 영역을 개척하고 해법을 제시함을 통해서 후대에까지 전망을 열어주는 인물을 말한다. 신재효는 근대적 비평가가 작가와 독자를 매개?유통시키고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안목을 제시하고 작가에게는 지적인 거울을 제공함으로서 어떤 방향을 제시하듯이, 광대들과 그 향유자들 사이에 개입하여 광대들에게는 자신들을 뒤돌아볼 수 있는 사회적 거울을 제공하고 또 향유자들에게는 판소리 예술에 대한 규범과 비평적 안목을 제시함으로서 판소리를 지적인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렸으며, 어찌되었든 상하층을 아우르는 판소리의 국민예술화에 크게 기여했던 사람이다.신재효가 활동하던 시기는 판소리의 역사에서 ?후기8명창시대?로서 판소리가 무르익어 예술적 완숙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어떤 예술장르든지 완숙기에 접어들면 이론적 점검을 통하여 현재의 모습을 파악하고 새로운 발전과 중흥의 전망을 발견해나가기 위하여 수준높은 감식안과 비평으로서의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기 마련이다.신재효가 살았던 시대는 주지하다시피 조선봉건사회가 막바지에 이르러 사회변동을 예시하는 사건들이 가시화되면서 봉건적 가치체계에 무너지고 사회적 급변이 진행되던 시대였다. 그가 태어나던 해(순조 12년, 1812)는 홍경래가 세도정치의 전횡과 부패관료의 횡포에 신음하던 백성을 모아 관서지방을 뒤흔들며 일어나서 조선왕조의 지배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 해였으며, 이러한 왕조 말기적 사건을 시작으로 가렴주구와 불법적인 수탈에 못 이긴 백성들이 곳곳에서 무리 지어 일어나 혹독한 수탈을 일삼던 관리를 쫓아내기도 하여 동학농민봉기의 조짐을 보이기도 하고, 천주교가 일부 지식인과 민중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장차 서양문화가 우리나라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을 예고하던 시기였다.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시기에 신재효 가계는 그 아버지 대에 고창으로 이주함으로서 고창지방에 터를 잡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지방관청의 서울 일을 대신 해주던 경주인 노릇을 하다가 고창으로 내려 와서 관약방을 했던 사람이다.신재효의 향리활동은 그의 아버지가 고창지방에서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임진왜란 후부터는 그 지방의 토박이 세력 출신이 아닌 향리의 수가 많아지게 되었지만, 서울에서 옮겨온 이주민의 아들인 그가 고창지방에서 토호세력을 제치고 향리의 직임을 맡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 신광흡은 같은 성씨의 연고가 있는 신광택, 신성, 신백록, 신약문 등이 고창 현감으로 내려 간 것을 계기로 그 지방의 경주인 자리를 얻어서 그의 아들인 신재효가 장차 고창 지방의 향리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고창향토문화연구가 이기화 선생에 의하면, 신재효는 그의 아버지가 마련한 토대 위에서 철종 때의 고창 현감이었던 이익상 밑에서 이방으로 일하다가 호장에 오른 것이라 한다. 그가 이방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40세 전후에 이미 곡식 1천 석을 추수하고 50가구가 넘는 세대를 거느린 부호로서 확고한 기반을 닦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모양성 기슭에 터 잡았던 그의 집의 크기만도 2천 평이 넘었다니 그의 살림 규모를 알 수 있다. 지방향리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보면, 향리는 지방의 토호세력으로서 지방의 문화?행정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었다. 그런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왕조는 모든 권력을 중앙정부에 집중시키는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갔기 때문에, 지방호족의 세력을 꺾기 위해서 고려왕조에서는 그 지방에서 주인행세를 했던 토박이 세력이 맡았던 향리직을 하급관리직으로 밀쳐 내려뜨렸던 것이다. 그 결과 조선조의 향리직은 신분직으로는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또 향리에게 일정한 급료를 지불하지 않았던 제도적 장치 때문에 이들은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부정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조에서 향리는 중앙정부의 서리, 역관, 기술관료, 서얼, 군교 등과 함께 중인층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조 후기에 이를수록 이들은 여전히 양반사대부에게 천대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사회적 변화의 과정, 즉 반상제도가 유명무실하게 되고 이에 따라 상업을 근간으로 한 근대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실리를 추구하여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현실적인 힘을 쌓아갔던 계층이었다. 문화와 예술의 중심도 점차 양반 사대부의 현실성 없는 한문학 중심에서 치열한 삶의 과정 속에서 문화생산자들의 삶의 한가운데에서 퍼 올려진 문화로 점차 문화적 중심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판소리는 그 생동하는 문화적 힘으로 기층민중에서 시작하여 양반, 어전에까지 침투해간 대표적인 예술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신재효와 같은 후원자이자 이론?논평가들이 크게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말할 것도 없다. 예술가들이 부유한 재산가의 지원을 받아 활발한 예술활동을 벌여 왔음은 세계사의 전개과정에서도 확인되는 일이다. 조선조의 예술활동도 양반사대부를 비롯한 재산가의 지원에 크게 힘입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민간부분에서 예술을 지원한 쪽은 돈많은 재산가들이었을 것이고, 이들 중에 서민자와 중인층이 상당한 몫을 차지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18?9세기에 이르면 중인층 출신의 예술활동 지원가뿐만 아니라 예술활동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시조가인으로 활동하였던 김천택, 김수장이 중인출신이었다는 점이 그 좋은 보기이다. 향리 출신의 신재효가 판소리를 지원하고, 판소리의 이론 정립과 비평 확립에 열성을 다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인문/어학| 2006.04.11| 2페이지| 1,000원| 조회(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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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통상전략]국제금융기구(IMF,IBRD,ADB,IDA,BIS)의 설립목적과 주요업무에 관해서 조사하시오. 평가B괜찮아요
    ★국제금융기구(IMF,IBRD,ADB,IDA,BIS)의 설립목적과 주요업무에 관해서 조사하시오.Ⅰ. IMF(국제통화기금)944년 체결된 브레턴우즈협정에 따라 1946년에 설립되어, 1947년 3월부터 IBRD(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세계은행)와 함께 업무를 개시한 국제금융기구다. 이 두 기구를 총칭하여 브레턴우즈기구라고도 하며, 약칭은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국제통화기금)이다. 2000년 현재 가맹국은 182개국이며, 본부는 미국 워싱턴에 있다.총회·이사회·사무국과 그밖에 20개국 재무장관위원회, 잠정위원회, 개발위원회 등이 있다. 최고기관인 총회는 각 가맹국이 임명하는 대표 1인과 대리 1인으로 구성되며, 회합은 연차회합과 임시로 열리는 특별회합이 있다.100억 달러로 출발해 여러 차례 증자를 통해 1970년 10월 30일부터 총액 289억 510만 달러가 되었다. 가맹국은 일정한 할당액에 따라 25%를 금으로, 75%를 자국 통화로 출자한다. 할당액은 가맹국의 요청에 따라 조정할 수 있으며, 이것은 각 가맹국이 IMF의 자금을 이용할 때 대출한도를 정하는 기준이 된다. 출자금은 SDR(Special Drawing Rights:특별인출권)로 표시한다.국제통화기금은 세계무역의 안정된 확대를 통하여 가맹국들의 고용증대, 소득증가, 생산자원개발에 기여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① 외환시세 안정:제2차 세계대전 전 평가절하 경쟁이 세계경제를 혼란으로 빠뜨린 경험이 있어, IMF를 설립할 때는 외환시세의 안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외환시세의 기초가 되는 각국 통화환평가는 금 또는 미국 달러 가치를 기준으로 표시한다. 각 가맹국은 IMF평가의 상하 각 1% 이내로 외환시세를 안정시킬 의무를 진다. 다만 가맹국의 경제에 기본적 불균형이 있을 경우에는 절상·절하 등 평가 변경을 인정하며, 10% 이내면 IMF의 사전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으나, 10% 이상이면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1971년 통화위기 때 무시되어 다각적인 평가조정이 이루어졌다.② 외환제한 철폐 :가맹국은 IMF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외환제한을 철폐할 의무가 있다. 첫째는 경상적 지불에 대한 외환제한의 철폐다. 가맹국은 IMF의 승인이 없는 한 상품무역이나 용역거래를 위한 지불에 제한을 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차별적인 통과조치의 철폐다. 쌍무적 무역협정이나 복수환율제 등 다른 나라와 다른 결제방법을 사용하거나 다른 외환시세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셋째는 외국인 자국통화 보유잔액의 교환성이다. 외국인이 보유하는 자국통화의 잔액을 요구하는 대로 금, 미국 달러, 상대국 통화로 교환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외환제한의 철폐에 관해서는 IMF협정 제8조에 규정되어 있으며, 이를 승인한 나라를 IMF 8조국이라고 한다.③ 자금 공여:가맹국의 국제수지가 일시적으로 불균형(적자)이 되었을 경우, 평가절하·수입제한을 피할 수 있도록 IMF가 외화자금을 공여할 수 있다. 이 경우 외화자금의 공여는 관계국 통화당국에 대해서만 이루어지며, 대가로 자국통화를 IMF에 지불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경상거래를 위한 지불에 필요한 경우에 한하며, 한 나라가 이용할 수 있는 외화자금의 양은 그 나라의 출자액의 125%까지고, 3∼5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였다.그러나 1980년 IMF·IBRD 합동 연례총회에서 비산유 개발도상국의 부채 격증에 따른 국제수지 악화를 집중 논의하면서 IMF 융자한도 600% 확대,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구조 조정차관 확대 등을 합의하였다. 그러나 1981년에 열린 IMF·IBRD 합동 연례총회에서 선진국들이 긴축정책을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하여 빈국들에 대한 원조증대의 기대가 무산되었다.Ⅱ. IBRD(국제부흥개발은행)국제부흥개발은행의 약칭으로 세계은행(World Bank)이라고도 한다. 1944년 브레턴우즈협정(Bretton Woods Agreement)에 따라 국제연합의 전문기관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후 각국의 전쟁피해 복구와 개발을 위해 1946년에 설립되었다.주요 목적은 ① 가맹국의 정부 또는 기업에 융자하여 경제·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② 국제무역의 확대와 국제수지의 균형을 도모하며 ③ 저개발국(개발도상국)에 대하여 기술원조를 제공하는 것이다. 자금은 가맹국에의 주식할당에 의한 자기자본, 특별준비금, 차입금(세계은행채의 발행으로 조달), 투자이윤 등으로 이루어지며 예금은 없다.주로 개발도상국의 공업화를 위해 융자를 해주고 있는데 5~6%의 이율로 융자조건이 엄격해 융자대상은 선진국과 중진국이 많다. 융자를 받기 위한 조건은 ① 차입자가 외화로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② 융자대상이 되는 개발계획이 실행가능해야 하고 ③ 정부 이외의 차입자에게는 정부보증이 있어야 한다.기구는 총회·이사회 및 사무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회는 최고 의사결정기관으로 회원국이 임명하는 위원과 대리 위원 각 1명씩으로 구성되며, 년 1회 회의를 개최한다. 총회는 IBRD 협정에 의해 총회 전권사항을 제외하고 이사회에 권한을 위임한다. 총재는 자신이 의장을 맡고 있는 총회에서 선출된다.회원국은 2004년 현재 184개국(IMF 회원국은 자동가입)이며, 한국은 1955년에 가입하여 1970년 대표이사국으로 선임되었다. 제40차 총회는 IMF 총회와 합동으로 1985년 10월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본부는 미국 워싱턴에 있다.IBRD를 비롯해 IBRD의 융자대상이 안되는 개발계획에 대해 조건이 완화된 융자를 해주는 IDA(Inter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국제개발협회)와 개발도상국의 민간기업을 융자대상으로 하는 IFC(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국제금융공사), MIGA(Multilateral Investment Guarantee Agency:다국간 투자보장기구) 등을 합하여 세계은행그룹이라고 부르고 있다.Ⅲ.ADB(아시아개발은행)아시아 지역의 경제성장과 경제협력을 증진하고, 지역 내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63년 아시아극동 경제위원회(ECAFE: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의 전신) 각료회의에서 구상이 제안, 1965년 12월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설립 협정에 조인, 1966년 12월 활동을 개시하였다.주요활동은 모든 회원국에 대한 대출, 기술원조, 실태 조사,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융자 등이며, 1990년 후반에 이르러 석유 위기에 의한 회원국의 무역수지 악화를 줄이기 위한 긴급융자가 늘어가고 있다.활동에 필요한 비용의 재원은 일반재원으로는 자본금 및 차입금이 있다. 차입금은 아시아개발은행채의 발행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밖에 다목적 특별기금, 기술원조 특별기금 및 1974년 6월에 발족한 아시아개발기금(Asian Development Fund:ADF)의 3가지 특별기금이 있다.가맹국의 별도 갹출금과 각국의 납입자본 중 10%를 재원으로 하고 있다. 1999년 현재 각국에 50억 달러를 빌려주었으며, 기술적 지원금은 1억 7300만 달러에 이른다.참가국은 1999년 현재 한국을 비롯한 역내 41개 국, 역외 16개국이다. 최고정책기관인 총회와 업무운영 관리기구인 이사회 및 총회가 선출하는 총재와 그 지휘하의 업무부문으로 구성된다. 본부는 마닐라에 있으며, 도쿄,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워싱턴 D.C.에 대표사무소가 있다. 한국은 1966년 8월 원가맹국으로 가입하였으며 17.8억SDR(출자비중 5.18%, 출자순위 8위)을 출자하였다.Ⅳ.IDA(국제개발협회)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원조를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금융기관. 약칭 IDA.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자매기구로서 1960년 9월 24일에 정식 발족되었다. 세계은행이라고도 부르는 IBRD보다 좀더 좋은 조건으로 융자해주기 위한 것인데 회원국이 되려면 먼저 세계은행에 가입해야 하며 임원진도 세계은행의 임원이 겸임한다. 재원은 부유한 회원국들의 기부금과 세계은행의 수익금을 전환하여 충당한다.상환기간은 35년이나 40년으로 10년 거치 후, 다음 10년간은 매년 원금의 1퍼센트, 나머지 30년간은 3퍼센트씩 갚으며, 무이자에 매년 0.75퍼센트의 수수료만 물면 된다. 또한 차입국 국제수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차입국 통화로 상환할 수도 있다.융자대상국은 2000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885달러 이하의 국가로서 2002년 현재 앙골라·캄보디아·네팔·알바니아·온두라스 등 전세계 79개 국이 수혜하고 있다. 융자대상국은 1인당 GNP 1465달러 이하의 개발국이다. 이자는 없고 0.75%의 수수료만 내게 된다. 대부기간은 10년의 거치기간을 제외한 최고 40년의 장기간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대상사업은 차입국의 경제발전에 긴요한 우선사업을 육성함으로써 국제무역과 민간투자를 촉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상환방법에 있어서는 대부금의 전액 내지 일부를 차입국 통화로 상환할 수 있다. 그밖에 차입국은 융자목적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해당 정부가 보증하도록 하며, 그 사업이 민간기관이나 기타 은행과 경합되는 업종이라고 인정되면 융자를 금지하고, 융자는 이 협회가 임명한 소관위원회의 신중한 검토를 거쳐 추천되는 경우에 국한된다. 본부는 워싱턴에 있다. 한국은 1961년에 가입하였다. 1998년 현재 가맹국은 160개국이다.
    경영/경제| 2006.04.04| 4페이지| 1,500원| 조회(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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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학]기생의신분변화
    ★기생이라는 신분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나전통사회에서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춤 및 풍류로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여자. 일종의 사치노예(奢侈奴隷)라고 할 수 있으며, ‘기녀(妓女)’,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라는 뜻에서 ‘해어화(解語花)’, 또는 ‘화류계 여자(花柳界女子)’라고도 하였다.〔유 래〕이익(李瀷)은 ≪성호사설≫에서 기생이 양수척(揚水尺)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양수척은 곧 유기장(柳器匠)으로서, 고려가 후백제를 칠 때 가장 다스리기 힘들었던 집단이었다. 이들은 원래 소속도 없고 부역에 종사하지도 않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버드나무로 키·소쿠리 등을 만들어 팔고 다녔다.후에 이들이 남녀노비로서 읍적(邑籍)에 오르게 될 때, 용모가 고운 여자를 골라 춤과 노래를 익히게 하여 기생을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기(妓)와 비(婢)는 원래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하고, 그 중 비가 기보다 먼저 발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비나 기는 한 사회의 계급 분화과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기생의 발생을 무녀(巫女)의 타락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즉, 고대 제정일치사회에서 사제(司祭)로서 군림하던 무녀가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력이 분화되는 과정에서 기생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한편, 원래부터 세습되어 내려온 기생 이외에도, 비적(婢籍)으로 떨어져내려와 기생이 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반역을 꾀한 역신(逆臣)의 부녀자들이다.고려시대에 근친상간의 금기를 범한 상서예부시랑 이수(李需)의 조카며느리를 유녀(遊女)의 적에 올린 경우와, 조선 초기 사육신(死六臣)의 처자들을 신하들에게 나누어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조선 광해군 때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친정어머니를 제주감영의 노비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신 분〕 기생은 노비와 마찬가지로 한번 기적(妓籍)에 올려지면 천민이라는 신분적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기생과 양반 사이에 태어난 경우라도 천자수모법(賤者隨母法)에 따라 아들은 노비, 딸은 기생이 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기생이 양민으로 되는 경우도 있었다. 즉, 속신(贖身)이라 하여, 양민부자나 양반의 소실이 되는 경우 재물로 그 대가를 치러줌으로써 천민의 신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한편, 기생이 병들어 제구실을 못하거나 늙어 퇴직할 때 그 딸이나 조카딸을 대신 들여놓고 나오는데, 이를 두고 대비정속(代婢定屬)이라 했다.고전소설인 《추풍감별곡 秋風感別曲》에는 양반의 딸이 아버지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기녀가 되는 얘기도 있다. 이런 기생은 조선사회에서 양민도 못되는 이른바 팔천(八賤)의 하나였다.다만 그들에게 위안이 있다면, 첫째 양반의 부녀자들과 같이 비단옷에 노리개를 찰 수 있었던 점이고, 둘째 직업적 특성에 따라 사대부들과의 자유연애가 가능했다는 점이며, 셋째 고관대작의 첩으로 들어가면 친정을 살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분적 제약으로 인해 이별과 배신을 되풀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명 기〕 불후의 시조시인으로 꼽히는 송도 명기 황진이(黃眞伊)는 시조 뿐 아니라 한시에도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서경덕(徐敬德)과의 일화는 유명하다.부안 명기 이매창(李梅窓)은 당시 문인과 명신들인 허균(許筠)·이귀(李貴) 등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중종 때는 선비들이 그녀의 시비를 세워주었다. 그 밖에 송이(松伊)·소춘풍(笑春風) 등 시조시인으로 이름을 남긴 시기(詩妓)들이 많다.기녀들이 국문학에 끼친 영향 중 가장 큰 것은 고려가요의 전승이라 하겠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짙은 정한(情恨)의 고려가요는 대부분 그들의 작품으로 보여진다. 한편 진주 기생 논개(論介)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의기(義妓)로 꼽힌다.〔변 화〕 조선 말기에 이르면 기생이 일패(一牌)·이패·삼패로 나뉜다. 일패기생은 관기(官妓)를 총칭하는 것으로, 예의범절에 밝고 대개 남편이 있는 유부기(有夫妓)로서 몸을 내맡기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이들은 우리 전통가무의 보존자이며 전승자로서 뛰어난 예술인들이었다.
    인문/어학| 2006.04.04| 2페이지| 1,000원| 조회(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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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학교 국어과 교수학습전략
    < 중학교 국어과 교수 ? 학습 전략 >* 들어가며제 7차 국어과 교육 과정은 국어과의 성격을 “한국인의 삶이 배어 있는 국어를 창의 적으로 사용하는 능력과 태도를 길러, 정보 사회에서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국어 생활을 영위하고, 미래 지향적인 민족 의식과 건전한 국민 정서를 함양하며, 국어 발전과 국어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려는 뜻을 세우게 하기 위한 교과”로 규정하였다. 즉, 국어과는 국어가 사용되는 맥락과 목적과 대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국어 사용 향상과 내용을 정확하고도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사상과 정서를 효과적이고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능력과 태도를 기르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하는 교과임을 분명히 하였다.국어과의 성격에 제시된 교육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제 7차 국어 교과에 교육 과정에서는 교육 내용의 범주를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국어 지식, 문학의 여섯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전통적으로 국어 교육에서는 학습자의 국어 사용 능력 신장을 강조하여 왔다. 이 능력은 기존 지식의 단순 수용이나 표출 능력이 아니라 언어 기능을 통합적으로 운용하여 사고(의미)와 언어를 연결지어야 하는 지적 기능(知的技能, intelletual skills)으로서의 고등 전신 능력이다. 이 능력은 단순히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기초 기능이 아닌, 의미를 언어화(표현)하고 언어에서 의미를 추출하여 재구성(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 기능, 태도의 학습이 균형 있게 이루어질 때에 효과적으로 신장되는 능력이다. 이것이 제 7 차 교육 과정에서 국어 교과의 성격을 규정한 기본 관점이다. 이는 국어 활동의 지적 기반으로서의 지식 학습이 강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특히, 제 7 차 교육과정이 지향하고 있는 창의적인 국어 사용 능력은 언어 활동의 반복에 의한 숙달보다 언어 활동과 언어와 문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의 체계적인 학습이 성행될 때 효과적으로 향상된다. 언어 활동과 언어에 대한 지식은 언어 형상의 탐구와 국어 생활에 활용하는 능력을 신장시키는 데에, 문학의 대한 지식은 문학 작품을 수용하고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능력과 심미적 정서를 함양하는 데에 지적 기반이 된다. 이러한 지적 기반이 곧 국어 사용 능력 향상과 내용을 정확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능력과 사상과 정서를 효과적이고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능력과 태도를 길러, 국어 교육의 이념적 지향인 국어 문화의 이해와 창조에 기여한다는 관점에서 성격을 규정하였다.또한 국어과의 모든 교수 · 학습 계획은 교육 과정을 근거로 수립하여야 한다. 이 때에는 제 7차 국어과 교육 과정이 국민 공통 교육 기간으로 정한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10년간의 교육 활동을 전개하여 성취해야 할 교육의 목표와 관련지어 각 학년에서 다루는 교육 내용과 학년 내에서도 학기 간 다루는 내용의 수준과 범위를 고려하여 교수 · 학습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제 7차 교육 과정은 '내용 체계'의 '실제' 범주의 교육 내용)이 중심축을 이루므로. 교수·학습 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즉, 국어 교육 상황에서 다루는 언어 자료를 국어 사용의 목적과 관련지어 이해하고 표현하는 학습자 활동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어과 교수·학습 계획을 수립하고 실제의 지도 상황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이다.1) 듣기 영역듣기 영역의 학년별 내용은 듣고 말하는 언어 사용의 상호 작용성에 따라 긴밀히 조직되어 있다. 제 7차 교육과정에서는 특히 듣기와 말하기의 상호 작용적 특성을 고려하여 듣기 영역과 말하기 영역의 교육 내용이 유사한 경우, 관련 내용을 동일 학년에서 함께 제시하여 학습의 밀도를 높일 수 있도록 배열되어 있다. 따라서 교사는 실제 교수 ? 학습에서 이와 같은 짜임을 적극 활용해 볼 수 있다.듣기 지도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집중해서 듣는 활동을 강조해야 한다. 듣기 지도는 대화 듣기, 연설 듣기, 토의 듣기, 토론 듣기 등 다양하면서도 실제적인 듣기 활동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획해야 한다. 교사의 말 듣기나 학습자 상호간의 말 듣기,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한 듣기 등 가능한 한 다양한 듣기 경험을 제공한다. 이후 들은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내용의 정확성, 타당성, 효과성 등을 검토하는 교수 ?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 검토가 끝나면 교사는 학생들에게 말하는 이의 관점과 의견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학습 활동을 강조해야 한다.2) 말하기 영역말하기 지도에서는 말하기 상황에서 실제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식으로 말하되, 적극적이고 협동적인 태도로 의견을 교환하는 학습 활동을 강조한다.말하기 교육은 그 특성상 활동 중심 또는 과정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표현 방식과 표현 과정을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말하기의 내용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말하기의 과정을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적절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내용이 없는 말하기는 특정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용과 방법이 서로 결합할 때, 올바른 말하기 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토의나 토론 학습에서 되도록 많은 수의 학습자가 골고루 발언할 기회를 가지로 또 상대방의 발언을 존중하면서 적극적이고 협동적인 태도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지도하면 효과적이다. 교사는 특정 학습자의 발언 기회를 지나치게 많이 주는 것을 지양하고,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나기 전에 끼여들어 말을 시작하는 일이 없도록 학생들을 지도한다.또한 말하기 영역에서는 제 6차와는 달리 ‘발음과 발성’ 범주가 신설되어 정확한 표준 발음 학습의 근거가 마련되었음을 염두에 둔다.3) 읽기 영역읽기 지도에서는 글쓴이의 목적, 글의 형식과 특성, 읽는 이의 관점 등에 유의하여 능동적으로 의미를 형성하는 학습 활동을 강조한다. 특히, 읽는 글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는 토의 학습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학습자가 글(텍스트)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해 보는 교수 ? 학습 과정도 필요하다. 그 활동에는 글쓴이의 목적, 글의 형식과 특성, 읽는 이의 관점 등을 고려하면서 읽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읽은 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른 학습자와 나누고 사고의 지평을 넓혀 갈 수 있도록 소집단 협력 학습을 이요한 토의나 토론 학습도 자주 가질 필요가 있다.또한 읽기 영역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평가와 감상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교수 ? 학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정확하고, 해석적이며,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수준으로 국어 사용 능력을 확장시켜 학습자가 자신의 국어 세계를 넓혀 가도록 하기 위함이다.4) 쓰기 영역쓰기 지도에서는 다양한 목적과 읽을 이를 고려하여 실제로 글을 쓰는 학습 활동을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학교 신문에 글을 써 보게 하거나 특정 대상에게 부탁하는 글을 써 보게 할 수 있다. 특히 쓰기 상황과 조건을 분명하게 제시하여 글을 쓰게 하고, 쓴 글에 대한 자기 반성과 상호 검토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고쳐 써 보는 활동, 나아가 다른 학습자와 서로 돌려 읽으면서 잘못된 표현을 고치는 활동, 의미가 선명하지 않은 부분을 다듬는 활동 등이 그것이다. 교사는 이러한 학습 활동을 통해 글쓰기에 대해 학생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을 해소해 줄 필요가 있다.또한 쓰기 영역에서는 텍스트의 유형과 읽을 이, 주제와 글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되 특히 국어 지식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교수 ? 학습 전략이 필요하다.5) 국어 지식 영역제 4차부터 제 6차 교육과정까지 사용하였던 ‘언어’라는 교육 내용 영역명이 제 7차에 이르러 ‘국어 지식’으로 한정되었다. 국어의 교육 대상이 되는 언어는 ‘언어 일반’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국어 지식 영역의 교육 내용은 ‘국어의 본질’, ‘국어의 이해와 탐구’, ‘국어에 대한 태도’, ‘국어의 규범과 적용’의 네 가지로 범주화되어 있다.‘국어의 본질’ 범주의 교육 내용은 국어에 대한 지식인데, 이의 일차적인 교육 목적이 지식의 이해와 지식의 활용에 있다고 보고 탐구 중심의 학습 활동을 통해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 향상을 의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국어의 이해와 탐구’라는 범주다. ‘국어의 규범’ 범주의 교육 내용은 맞춤법 및 표준 발음 등 각종 규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교육 내용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기는 하였으나, 실제 교수 ? 학습 상황에서는 각 범주 간 상호 교섭성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다른 영역의 교육 내용과의 관련성을 중시하여 매 수업마다 이들을 연결시키는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따라서 국어 지식에 대해 지도할 때는 교사의 설명이 아닌 여러 언어 자료를 통해 학습자 스스로 지식을 터득할 수 있도록 탐구 학습 위주의 교수 ? 학습 과정을 짠다.
    교육학| 2005.06.08| 4페이지| 1,500원| 조회(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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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