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답사계획과 목 :학 과 :제 출 자 :담당교수 :한해 약 7000만 명이라는 엄청난 관광객을 자랑하는 프랑스는 이제 세계 제1의 관광국으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프랑스가 그만큼 매력적인 나라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지금 유럽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프랑스를 빠뜨릴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유럽의, 아니 세계의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오랜 역사를 자랑해온 프랑스는 누구나 한번쯤은 여행을 꿈꿔보았을 듯 한 낭만의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에 우리는 파리속의 이곳저곳을 5박6일의 일정에 맞춰 날짜순에 의해 여행을 계획할 것이다. 이왕 멀리서 유럽여행을 왔으면 파리 한곳만 보고 갈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한 달 동안 답사 계획을 짰고, 이 부분은 영국을 거쳐 유로스타로 도버해협을 건너 파리로 온 것이다. 지금 그럼 파리 여행을 떠나 봅시다.? 파리지도 (여행 동선)1DAY2DAY3DAY4DAY5DAY6DAY1DAY라데팡스? 콩코드 광장 ? 샹젤리제 거리 ? 개선문-영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오후에 도착한 상황이라 우선 숙소를 정하고 파리 북서부지역을 둘러본다.1) 라데팡스 (☆☆☆)이 거대한 대형 아치는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가 John Otto Von Spreckelsen의 설계로 건축되었다. 세계적인 행사와 각종 비즈니 모임을 행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크고, 첨단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개선문에서 서쪽으로 멀리 보이는 라데팡스는 1958년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상업지구이다. 그랑드 아르쉬는 덴마크인 건축가 본 스프레켈손이 설계한 것으로 36층의 사무실과 전시실을 가진 현대식 건물이다.open:10:00~18:30요금: 7.50유로, 학생: 6.00유로교통: M-1,PER-A Ladefense2) 콩코드 광장 (☆☆)18세기 `루이 15세 광장'으로 건설되었으나, 프랑스 혁명시 `혁명의 광장'으로 개칭.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 등에 들어온다.개선문이 있는 에투알 광장으로부터 12개의 대로가 방사선형으로 뻗어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 방향으로는 콩코르드 광장, 튈르리 공원, 루브르 박물관 등이 이어져 있다.open: 10:00~22:30요금: 8.00유로, 18~25세 5.00유로교통:M-1,2, 6 Charles de 등2DAY베르사유 궁전? 루브르 박물관? 파리시청사? 퐁피두 센터? 포룸 데일-어제 라데팡스에서 파리의 미래를 보았다면 오늘은 파리절대왕정시대를 느끼러 베르사유 궁으로 가보자.5) 베르사유 궁전 (☆☆☆☆)루이14세가 전국 각지에서 끌어온 재료들로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완성시킨 베르사유 궁전이 있는 곳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에게 익숙한 베르사유 궁전은 규모면에서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프랑스는 물론 전 유럽을 지배했던 절대 왕권기에 루이14세의 막강함을 실감케 하는 화려함의; 극치를 감상할 수 있다. 호화로운 예술의 결정체를 만들어낸 인간의 최고 권력의 위대함과 동시에, 결국은 국민들의 분노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권력의 허망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open: 09:00~18:00close: 월요일교통: 앵발라드, 생미셀 등에서 PER-C선을 타고 Rive gauche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15분 정도.6) 루브르 박물관 (☆☆☆☆)필립 오귀스뜨 왕의 요새로 시작된 왕궁은 르네상스를 거쳐 현재의 모습에 접근하며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며 새로운 입구로 웅대한 유리 피라미드가 건설되고 재경부 청사가 베르씨로 옮겨가며 현재의 그랑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유럽의 예술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로 부터 시작하여 프랑스 낭만주의까지와 유럽에 큰 영향을 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예술품울 소장하고 있다.open: 09:00~18:00 수, 금요일 (~21:45)closed: 화요일요금: 8.50유로, 18:00 이후: 6.00유로7) 파리 시청사 (☆☆)검푸른 빛을 띠는 지붕과 펄럭이는 삼색기, 그리꼽힌다.파리는 역사적으로 미술창조의 요람으로 그 국제적 위상을 지닌 곳이었다. 양차 대전 이후 '예술의 중심지'라는 타이틀을 미국에 넘겨주었던 파리. 이러한 미술사적 위상을 굳건히 유지하기 위한 대대적인 국ㆍ공립 현대미술센터의 인프라는 퐁피두 대통령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동시대에 길이 남을 건축 및 도시 계획적인 총체를 파리 시에 부여하겠다는 그의 방침을 그대로 실행한 것이 바로 퐁피두센터이다. 퐁피두 센터는 예술적 고립을 타파하고 국제적 규모의 전시회를 유치함으로 미술상의 교류를 목적으로 새 천년, 명예 회복을 노리는 프랑스인들의 야심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open: 11:00~21:00close: 화요일요금: 5.50 유로, 학생:3.50 유로교통: M-11, RER-A,B,D선, 버스 37 47등9) 포룸 데알 ( ☆ )중세시대부터 상인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노천시장이 1969년 파리 교외로 이전하면서 포룸 대알이라는 초현대식 복합상가가 드어섰다.거대한 쇼핑, 문화 공간으로 건물 자체만으로도 볼거리인 건물이다.3DAY생 샤펠? 노틀담 성당? 아랍문화원? 소르본 대학? 팡테옹? 에펠탑10) 생샤펠 성당 (☆☆)재판소 가운데 정원에 있는 성 루이 왕이 건립한 고딕 양식의 걸작품 중 하나이다. 노트르담 대성당과 거의 같은 시기에 지어 졌다. 성당 내부에는 성서속의 이야기들을 표현해 놓은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데 햇빛에 비치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매우 아름다워 '파리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open: 09:00~17:00요금:: 6.10유로, 18~25세: 4.10유로교통: M-4 Cite, 버스 21 24 27 38 47 85 9611) 노틀담 성당 (☆☆☆☆)프랑스 카톨릭 신앙의 중심.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정면에서 보는 좌, 우의 균형이 일품이며, 건물의 외벽에 조각된 여러 부조와 내부의 장미의 창이 볼 만하다. 높이 69m 의 탑 위에서의 보는 파리 전망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이다. 프랑스 고딕 양식의 꽃으로 불리 전신이다. 13세기의 소르본신부가 상젤르만 데 프레 교회에서 배우고 싶어하는 가난한 신학생들 13명을 위해서 세운 기숙사였다고 한다.루이 13세의 재상인 리슈류가 교장이 되자마자 시설을 확장시켜서 프랑스 최고의 고등교육의 장으로 발전되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명소 판테옹의 북측에 위치하였으며, 리슈리에의 묘가 있는 소르본 교회를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교통: M-10 Cluny La Sorbonne, 버스 21 27 38등14) 팡테옹 (☆☆)파리의 수호신인 생트 즈느비에브에 봉헌된 교회를 루이 15세가 개축하여, 18세기 이후 프랑스의 자유에 이바지한 위인들의 묘소가 되었다. 볼테르, 루소, 졸라, 위고 등의 위인들이 묻혀 있다.안으로 들어가면 높은 돔에서 빛이 들어와서 장식된 벽화를 비쳐주는데 차가운 정적이 감돌아 웬지 모를 신비스러운 느낌이 감돈다.open: 10:00~17:30요금: 7유로, 18~25세: 4.50유로교통: RER-B Luxembourg, 버스 84 8915) 에펠탑 (☆☆☆☆)1889년 만국 박람회를 위해 엔지니어 구스타브 에펠의 건축되었다. 높이 317미터 7500톤의 무게 1652계단을 가지고 있는 이 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만든 20세기 파리의 상징물이다.당시 에펠탑을 매우 싫어했던 모파상은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에펠탑 뿐이어서 에펠탑 위에 있는 식당에서의 식사 초대에만 응했다고 한다. 재치 있는 농담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로 에펠 탑의 찬, 반론은 강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매년 1억 5천만 이상의 관광객이 에펠탑에 오르고 있으며 전세계가 파리와 에펠탑의 이미지를 혼동할 정도가 되었다.open: 09:30~23:00요금: 1층: 4.1유로, 2층: 7.5유로, 3층:10.70유로교통: M-6 Bir-Hakeim, RER-C Champ de 등4DAY사크레쾨르 성당? 오르세 미술관? 마들렌 사원? 오페라 하우스? 로댕 미술관? 앵발리드16)사크레쾨르 성당 (☆☆)몽마르트언덕의 테르트르광장의 가로질러 하얀 를 기념하여 완공한 이곳은 원래 기차역이었다.그래서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이후부터1814년 작품까지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있고, 1814년부터 1914년까지의 작품은 이곳 오르세에 그리고 1914년 이후 현대까지의 작품은 퐁피두센터에서 우리가 만나볼 수 있다.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상파 화가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음은 우리가 파리를 여행함으로써 얻게 되는 하나의 행운이 아닐까 싶다.open: 10:00~18:00closed: 월요일요금: 7.50유로, 18~25세: 5.50유로교통: M-12 Solferino, RER-C, 버스 24 68 69 7318) 마들렌 사원 (☆☆)나폴레옹 1세가 프랑스 군대의 영예를 찬양하는 뜻에서 지은 그리스 - 로마 양식의 사원이다. 1764년에 건축되기 시작한 이 성당은 프랑스 대혁명이 끝난 후에 완성되었다.마들렌 사원과 콩코드 광장, 부르봉 궁으로 이어진 전경이 매우 아름답다.교통: M-8, 12 Madeleine19)오페라 하우스 (☆☆)돌과 대리석이 혼합된 회색 빛 건물에 군데군데 금박을 입힌, 가운데 돔 위에는 황금하프를 든 청동의 아폴론상이 있는 이 건물이 바로 오페라 극장이며1862~1875년 샤를 가르니에 Charles Garnier에 의해 지어져 ‘가르니에 오페라’ 로 불리운다.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대리석으로 꾸며진 난간과 중아계단, 호화롭게 장식된 중앙홀, 그리고1964년에 그려진 샤갈의 천정화 ‘꿈의 꽃다발’이 유명하다.open: 10:00~16:30요금: 6.40유로교통: M-3, 7, 8 Opera, RER-A Aulber20) 로댕 미술관 (☆☆)원래 '호텔 비롱(Hotel Biron)' 이라 불리던 아름다운 저택이었던 로댕 미술관에는 조각가 로댕의 불후한 명작들과 그의 제자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이 전시 되어 있다.입구를 지나면 나무들 사이로 있는 로댕의 대표작 이 보인다. 그리고 앞 정원에서 그 유명한 이 있으며 을 볼 수 있다. 특히 앞쪽에는 망원경이 있어서 지옥의 B-28
Ludwig Mies van der Rohe건축발표Mies의 생애1886 독일 아헨. Aix-Chepelle 에서 5월 29일 태어남 1897-1900 Aix-Chepelle 소재의 Cathedral School을 다님. 1900-1902 Aix-Chepelle 소재의 Ecole des Arts et Metiers에서 공부. 석공이었던 아버지의 일터에서 일함. 1902 현장주임으로 일함. 1903-1904 석공세공인의 공방에서 치장벽토의 장식을 그림. 1905-1907 베를린에 있던 부르노 파울의 스튜디오에서 견습 가구디자이너로 일함. 1908-1911 베를린에서 피터베런스와 일함. 1912-1937 베를린에 건축사무실을 open. 1921-1925 11월 그룹의 전시회를 개최. 1926 독일공작연맹 전시회 대표 건축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바이젠호프 주거 단지 1926-1932 독일공작연맹의 부회장Mies의 생애1929 바르셀로나의 국제전시회를 위한 독일 파빌리온의 건축가. 1930-1933 뎃사우와 베를린의 바우하우스 교장 1931 베를린의 구축전시회에서 '우리시대의 주거' 라는 제목의 공작연맹파트의 대표 1938-1958 시카고에 위치한 일리노이 공과대학의 건축대학학장. 캠퍼스에 새 로운 건물을 디자인. 1938 시카고에 건축사무실을 open. 1948 시카고 고층건물 계획안에서 유리와 철의 커튼월을 처음 적용함. 1950 대구조 스팬 시스템을 적용함. 1959 독일연방공로상 수상.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영예와 존경을 받게됨. 1963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Presidenial Medal of Freedom 을 수상함. 1969 시카고에서 8월 17일 사망.미스의 건축 – less is more1.구조의 진실성과 논리적 문제 해결은 명쾌하고 단순한 구조적 건축을 가능케 한다. 2.유니버설 스페이스는 대소공간의 위계를 잘 조합할 수 있다는 공간의 질서를 재인식시켜준다. 3.유니버설 스페이스를 형성함으로서 공간의 무한한 확장성을 암시한다. 4.구조와 비례 그리고 재료의 능숙한 사용이 유니버설 스페이스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요건이 된다. 5.용도에 따라 새로운 공간감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평면적 크기와 천정고의 상관관계가 중요하다. 6.관념적인 평면구획보다는 자유로운 대공간으로부터 개체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7.유니버설 스페이스는 Open Plan으로 처리되어 어떤 용도에도 대응이 가능한 융통성있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Mies의 주요 작품German Pavillion Fransworth House 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 North Lake Shore Drive Apartment The Villa TugendhatMies의 주요 작품Alumni Hall Chapel IBM Building Illinois Center Seagram BuildingGerman Pavillion십자형의 철골기둥 이 건축의 초점은 십자형의 철골 기둥에 의해서 받쳐진 수평한 지붕 슬라브화 자립한 벽과 유리 스크린에 의해서 구분되는 유동적인 공간이 있다.피막, 기둥의 발견 미스가 기둥과 벽의 문제의 결정적인 의미를 알게 된 것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 있어서다.이것은 기둥만으로 지붕을 떠받쳐 구조에서 개방된 자립벽과 스크린이 자유롭게 공간을 한정한다고 하는 근대적 건축의 공간 개념을 순수하게 표현한 건축이 되었다.건물이 아닌 건물'이것이 과연 건축물인가 아니면 조형물인가' 우아함과 상징의 기능 외에는 특별한 기능이 없었다.Seagram Building (뉴욕, 1954~1958,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필립 존슨)38층의 고층 사무소는 대지 경계면에서 27m후퇴하여 주요 도로와 2개의 옆길로 구분된 광장에 치솟아 정면성이 강한 축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평면 및 외관 로비는 타워의 주파사드로부터 깊숙이 들어가 있는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대칭적인 평면을 갖고 있다. 전체적인 타워의 현태는 T자모양의 형태 2개가 조합하여 있으며 주요도로 전면의 파사드는 마치 인간의 직립상과 같다. 최상층에서 외관 처리는 4개의 층을 묶어 수직적 요소를 강하게 취하고 있으며 옥내 기술 장비가 들어간다. 약간 경사진 대지 면에 수평적으로 건물이 지탱하기 위해 뒤쪽 평면이 앞쪽 평면보다 좀 더 낮게 위치한다.Seagram BuildingI형강이 수직 뮬리언(mullion)으로 사용됨에 따라 I형강이 구조적 요소가 아닌 시각적 강조 요소로 명백히 나타나며 기둥은 약간 안쪽으로 위치하여 타워의 로비 부분인 1층과 2층에만 보여 지고 있다.공공 플라자기존의 원칙 고층 건물은 적어도 지층만은 전체의 대지를 가득 메우고 한참 위로 올라간 층에서만 평면이 줄어들게 설계하는 것이 원칙 미스의 시도 지층을 비우면서 건물을 받침 기둥위에 올려놓고 전면에 두개의 분수가 있는 광장을 계획하여 대도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빛을 선물유리커튼월이 건물은 전면이 온통 유리인 네모진 38층 높이의 상자다. 앞에서 보면 160m높이의 유리창은 창틀을 빼면 거의 아무런 구조물이 없어 보인다. 정면부는 청동색 T자 건축재로 채워졌다. 색은 위스키 제국의 소유주를 암시하는 것으로 결정된 듯 하다. 부지와의 배치 계획에서도 이것은 균질하게 연장되는 공간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단독으로 고립하는 물체임을 강조한다. 조각조각 맞춘 유리 커튼월, 여기에는 내부와 외부로의 침투성이 없고 그 피막은 어디까지나 외부의 공간을 강하게 보호하고 있다.구조의 표현콘크리트로 철골 피복 철골 본래의 맛을 잃어버리고 묵직한 콘크리트 건물로 보이게 된다. 미스는 콘크리트로 된 피복의 외부에 아주 작은 철골을 하나 덧대는 간단한 방법으로 구조의 표현을 시도Mies van der Rohe 건축의 특성그의 전생애를 통해 건축해 놓은 여러 작품의 특성을 3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작품의 대표적 특성 중 하나는 '단순미'로 표현 할 수 있는데 재료뿐 아니라 공간속에서 간결하고 명쾌한 단순미가 드러난다. 그의 뛰어난 비례감과 재료에 대한 높은 식견은 이러한 단순미를 배가시켰고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그는 순수한 건축형태를 추구하였다. 둘째, 다른 하나의 작품특성은 '시간적 변화를 수용하는 공간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급속히 변화하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대해 공간의 형태뿐 아니라 기능에까지 융통성을 부여하므로서 시간적 변화를 수용하고 있다. 그러한 대표적 건물로는 1929년 바르셀로나 국제전시회의 독일 파빌리언과 1930년 브르노(Brno)에 건설된 투겐타트 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그의 작품의 특징 중 하나로서 건축의 가능성을 새로운 형태에서 뿐 아니라 경제적 구조와 기술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그의 그러한 건축세계가 엿보이는 1950년 일리노이드 공대에서 행한 강연문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Mies van der Rohe에 대하여…미스의 건축에 보편성을 가지고온 건축적 문제 - 기둥과 피막 미스가 자주했던 Less is More 는 말수가 적었던 시절의 성격을 나타낼 뿐 아니라 철저히 아이디어를 정제해 내는 그의 제작 태도를 이야기 해 준다. 솔직함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라는 문제의 답은 철과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강함을 나타내는 건물의 뼈이다. 유리는 빛나는 베일처럼 그 뼈를 감싸는 외피이다. 미스의 마천루 계획안에서 뼈와 외피가 완전히 분리되어 뼈는 안에, 유리 외피는 밖에 두고 바닥과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는 일과 날씨로부터 실내를 지키는 일 사이에 시각적으로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역할과 기능이 부여되어 있다. 실용 목적은 물질적 진보의 척도일 뿐이다.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는 일이야말로 문명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무엇이 기능이고 무엇이 가치있는 일인가를 하나씩 명확히 해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끝 맺 음'건축은 그 시대에 존재하며, 그것에 내재되어 있는 구조를 구체화시키고, 그 형태에 의해 서서히 전개되어 왔다. 공업과 건축이 밀접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것들이 동시에 성장하게 되는 것이고, 또 언젠가는 한편이 다른 편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실현된 건물을 비로소 우리는 건축이라고 명명하고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건축은 우리시대의 정확한 상징이다.'{nameOfApplication=Show}
- 파리 도심의 건축물 조사.○ 파리 시내 지도○ 지하철 노선표▲ 건축물 리스트에펠탑, 스탈린그라드(재개발)광장, 베르나르 위에 라빌레뜨관문 , 팡테옹 , 루불박물관 , 까날레 플러스방송국, 아랍세계연구소 , 라빌레뜨공원, 라빌레뜨 호텔 , 전몰기념관 , 로슈집, 루브르궁, 대루블, 국립도서관, 오페라극장, 라 마들렌, 느가르슈집 ,짜라집, 사크레쾨르성당 , 몽마르트르의 성 쟝 성당 , 서민주거와 수영장 , 프랑스공산당본부 , 라빌레트 관문 ,Rotonde(르두) ,대중음악공연장 , 과학기술박물관, 성 드니수도원, 쿠르당글 , 문서보관소, 오텔드빌 , 파리대성당 , 성 샤펠 , 유태인학살기념관 , 바스티유오페라극장 , 성 앙트완느병원주방 , 피카소미술관 신관 , 퐁피두센터 , 샹젤리제극장 , 카날르쁠뤼 방송국 , 에펠탑 , 프랑클린가 아파트 , 유네스코본부 , 무용(음악)학교 , 공공토목박물관 , 자울집, IBM사옥 , 빌라사브와 , 베르사이유궁 , 로슈집, 카스텔베랑제 , 아가르가 아파트 , 베르사유로 아파트 , 프랑스와밀레가 아파트 , 라퐁텐느가 아파트 , 앙리 엔느가 아파트 , 귀마르집 , 팡테옹, 성제네비에브도서관 , 사서의 집 , 오텔드클뤼니 , 제르맹데프레성당 , 성 제르베성당 , 소르본느예배당 , 성 쉴피스성당 , 올세박물관 , 달사스집, 오장팡화실 , 스위스학생숙소 , 네델란드학생숙소 , 구세군호스텔 , 노인아파트 , 오트포름가 아파트 , 브라질학생숙소 , 올림픽 조직위 , 안느비크집(현 전화국) , 랭시 노틀담교회 , 사크레 쾨르 학교(현 아파트) , 당페르로셰로가 8번지 집 , 립쉬츠집 , 피에르퐁드 성 , 모르네백작묘 , 마르나발레 , 아브락사스 사회주거 , 호수아케이드아파트 , 고가수조, 피카소아레네 아파트 , 호수아케이드아파트 , 칼마르크스 학교 , 보 르 비콩트 성 , 레 폰드욘 양계장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가는법샤를 드골 공항에서 시내로버스: 에어 프랑스의 리무진 버스가 05:40~23:00에 12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개선문행 60F착2.몽마르뜨언덕(파리에서 제일높은곳으로 대충 위치파악가능)3.사크레 쾨르성당4.개선문(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대로가 방사선 형태로 뻗어있는데 파리의 도시계획을 한눈에 파악할 수가 있다)5.샹젤리제거리 지남 (개선문에서 콩코드 광장까지 이어지는데 길이가 약 2km인 거리)6.콩코드광장7.마들렌사원(파리 사람들의 결혼식장으로 많이 이용되며, 포숑과 같은 고급 식료품점이 늘어서 있으며 주위에는 꽃시장이 늘어서있다)8.오페라하우스(파리의중심지)9.루브르 박물관10.퐁피두센터(구조노출,미완성 건물로 보이지만 기능적으로 설계되어 있다)11.노트르담성당 12.파리시청사13.생뜨샤펠성당(스테인드글라스가 너무정교하고 아름다워 파리의보석이라 불림)14.꽁시에르쥬리건물(마리앙뚜아네뜨가 2,600명을 가두었다는 감옥)15.뽕네프다리16.생미쉘광장(라틴구역이라불림,소르본 교수와 학생들이 이 지역에서 라틴어로 대화하며 학문의 지평을 넓혀나간데서 유래)17.소르본대학 18.팡떼옹19.뤽상부르공원과미술관,귁상부르궁전(상원의사당)20.생쉴피스성당(르네상스양식)21.생제르맹데프레교회(파리에서 제일 오래된교회)22.오르세미술관 23.앵발리드 24.음악학교와 양로원25.국회의사당(부르봉궁) 26.로댕미술관 26.에펠탑27.일본문화원 28.수정타워사무실 29.까날플러스본부 30.샤이오궁○ 파리의 상징, 에펠탑프랑스 혁명 100주년인 1889년에 세운 높이 320.75m의 탑 으로 구스타프 에펠이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운 파리 의 상징이다. 탑 아래 위치한 샹 드 마르스 공원 왼쪽에 는 나폴레옹의 유해가 있는 앵발리드, 그 근처에는 로댕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의 전 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건너편 샤이오 박물관에서 보는 에펠탑의 야경은 장관이다.?입장료엘리베이터 이용성인요금: 1층까지 21F / 2층까지: 43F / 3층까지: 60F11세 이하:1층까지 12F / 2층까지 22F / 3층까지 31F계단 이용성인 어린이 :15F 고정요금○ 개선문지름 240m의 원 Fosse, Antoine Coypel등과 같은 화가의 프레스코양식의 미술 작품으로 장식되어있다. 이러한 예술적인 분위기의 유적을 방문하는 것은 무척 뜻깊은 경험이 될 것이며 군사학교 앞 정원의 푸른 잔디밭은 방문객에게 하나의 휴식공간으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지하철역: Varenne, la Tour Maubourg?전화: 01 44 42 37 72?입장료: 교회- 무료박물관,돔, 묘지 - 성인 38F, 학생 28F, 12세 이하 무료?개관 시간: 앵발리드 건물 - 7h 30 ~ 19h/ 생 루이 교회 - 10h ~ 16h 30(하절기 17h 30까지)/ 돔 & 묘지 - 10h ~ 16h 45/ 10h ~ 18h 45(6월 15일 - 9월 15일), 10h ~ 17h 45(4월 1일 - 9월 30일)/박물관: 10h ~ 17h(10월- 3월) 10h ~ 18h(4월 - 9월)?휴무일: 1월 1일, 3월 1일, 11월 1월, 12월 25일○ 퐁피두 센터건물 내부, 그것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꽁꽁 숨겨놓는 것으로만 여겨지던 하수관과 통풍관들이 건물 외벽을 장식하 고 있는 조금은 묘하게 생긴 건물이 파리 시내 한가운데에 떡하니 세워져 있다. 바 로 프랑스 현대건축물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퐁피두 센터(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 Pompidou)이다. 1977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던 조르쥬 퐁피두 대통령은 파리에 조각, 회화, 도서, 영화, 비디오, 음악 등 모든 형태의 현대 예술작품들이 모여있는 복합 문화센터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에 건축가 Renzo Piano와 Richard Rogers는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탈피한, 조금은 우스쾅스럽고, 왠지 아직도 건설중인 것같은 오늘날의 퐁피두 센터를 세웠다.지하 1층, 지상 6층의 건물로 그 중 2, 3층이 도서관이고 4, 5층은 국립현대미술관, 7층은 현대미술 전람회장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05년 이후에 창작된 예술작품을 4만5천점 이상 소르주리(conciergerie)마리 앙트와네트가 처형을 당하기 전에 지냈던 곳으로 원래는 14세기의 필립 4 세의 궁전의 일부분으로 지어졌다고 한 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시에는 재판을 받기전의 대기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마리 앙트와네트가 마지막을 보냈던 방 을 재현해낸 곳도 있는데, 이곳은 현재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탑의 최상 층을 이미지해서 만들었으며, 큰 건물 3개의 탑의 원형모양의 지붕은 검은색을 띄고 있어서 그당시의 감옥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프랑스 혁명시에 혁명가나 귀족들을 체포해서 가둬놓았다고 전해진다콘세르쥬리의 근처에는 마리앙트와네트의 사형재판을 선도한 최고재판소가 있으며, 샹 쟈펠이 있다.○ 판테옹(PANTHEON)로마에도 판테옹이라는 신전이 있으나, 프랑스 의 판테옹은 루이 15세의 병세가 호전되기를 바라 는 마음으로 그리스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신전이 다. 지하의 묘지에는 볼테르, 루소, 에밀졸라, 위 고, 장물랭등의 당대의 지성인들이 잠들어있다.높이가 83미터에 폴이 84미터의 돔으로 이루어졌 으며, 지하철 메트로 CHARDINAL LEMOINE역에서 하 차하면 된다. 4~9월은 09:30~18:30, 10~3월은 10:00~18:15 까지 입장이 가능하다.사원내에는 기념품 판매점과 그림엽서를 파는 매점이 있고, 내부에서의 사진촬영은 금지되고 있다.○ 소르본 대학(La Sorbonne)파리 대학의 구 문학부과 구 인문부를 통칭하는 말 로, 파리대학의 전신이다. 13세기의 소르본신부가 상젤르만 데 프레 교회에서 배우고 싶어하는 가난 한 신학생들 13명을 위해서 세운 기숙사였다고 한 다.루이 13세의 재상인 리슈류가 교장이 되자마자 시 설을 확장시켜서 프랑스 최고의 고등교육의 장으로 발전되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명소 판테옹의 북측 에 위치하였으며, 리슈리에의 묘가 있는 소르본교회를 중심으로 건물이 지어져있다.중간에는 초기활자본이나 사진자료책등 270만권의 귀중한 장서를 가진 상드쥬느비에브 도서관은 대학도서관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지하세기에 걸쳐서 건조된 프랑 스 제1의 고딕 성당으로 탑의 옥상 난간에는 기괴한 조수모양을 한 악마의 조각이 새겨 져 있다.○ 베르사유궁전 (Palais de Versailles)파리 남서쪽 베르사유에 있는 바로크양식의 궁전.1668년 루이 14세 때에 짓기 시작하였으며 루이 13세의 전용 사냥숙소를 둘러싸고 있 는 일련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소재지 :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시대 : 17∼18세기?규모 : 전체길이 680m원래 루이 13세가 지은 사냥용 별장이었으나, 1662년 무렵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고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다.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었다. 이때 정원 쪽에 있던 주랑을 '거울의 방'이라는 호화로운 회랑으로 만들고, 궁전 중앙에 있던 방을 '루이 14세의 방'으로 꾸몄다.거울의 방은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으로서 거울이 17개의 아케이드를 천장 부근까지 가득 메우고 있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다.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사용되었으며, 화려한 내부장식을 한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으로 이어진다.전쟁의 방에는 색조 회반죽으로 된 타원 모양의 커다란 부조가 있는데, 말을 타고 적을 물리치는 루이 14세의 위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남쪽에 있는 평화의 방 역시 유럽 평화를 확립한 루이 14세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1783년 미국독립혁명 후의 조약, 1871년 독일제국의 선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조약체결이 거울의 방에서 행해지는 등 국제적 행사 무대가 되었다. 프랑스혁명으로 가구·장식품 등이 많이 없어졌으나 궁전 중앙부, 예배당, 극장 등을 제외한 주요부분은 오늘날 역사미술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프랑스식 정원의 걸작인 정원에는 루이 14세의 방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
웰타임 사옥을 통하여바라본 우리 건축이 나아갈 길과 목:학 과:학 번:이 름:담당교수:-설계 개요-? 설계자공철1964년생으로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AA GDG를 마침하버드 건축 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음현재 Kc건축연구소 소장1998년 하노버 엑스포 2000 한국관 설계경기 당선을 계기로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주요작품: 일산 제일 산부인과, 목동 멀티플렉스 영상관? 위치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63-8? 규모대지면적: 330.5㎡ ? 재료건축면적: 195㎡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연면적: 822.8㎡ 외부마감 : 알루미늄 쉬트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건폐율: 59%용적률: 178% 시공 : 주. 장학건설규모: 지하 1층, 지상 5층 구조 : 주, ALT 구조전기 :주, 우림 전기? 용도: 상업시설 설비 : 주, 한국설비작년에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걷다가 어느 골목에선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건축물이다. 당시 그 특이함에 지나가다가 우연히 찍어두었는데 후에 어느날 건축 잡지를 뒤적거리다가 그 건축물이 있는 것을 보고 엄청 반가워했던 기억이 난다.이 건축물은 건축가 공철 씨가 지은 ‘웰타임’ 이다.웰 타임 사옥을 보면서 그의 호기심이 면 기존 건물들에서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 반듯한 벽에 규칙적으로 뚫어져 있는 창문들은 한순간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바퀴가 달려 건물이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도시에 건조하게 서 있는 무표정한 건물들에 색다른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작가의 말을 빌려보면“건물에 변환을 주고 싶었다. 시간이 되었든 이벤트가 되었든 장치를 통해서 건물에 변환을 주는 것이 내 설계개념이었고 욕망이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그러한 장치를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이 건물이 기존 건물과 달리 변환되어진 것으로는 슬래브에 의해 고정된 벽을 건물의 구조 체와 분리. 독립시켜 스킨 개념으로 치환시켰고, 반드시 벽이라 볼 수 없는 형태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이 건물의 스킨을 알루미늄 쉬트로 만들었다. 빛을 반사시키는 알루미늄은 수십 가지의 빛을 연출하여 입면의 다양성을 창조해낸다. 웰 타임 사옥은 스킨의 표현을 가능케 하는 가장 합리적인 재료를 고려함과 동시에 재료를 다루는 작가의 기술에 따라 스킨 , 곧 형태는 달라질 수 있음도 간과하지 않고 작업에 들어갔다. 규칙 없이 만들어졌을 것 같아 보이는 웰 타임 사옥의 입면은 사실은 갑옷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하지 때 태양 빛이 바닥과 내부 벽에 직각을 이루며 떨어지도록 하나하나 입면 선을 잡아 나간 것이다. 건물에는 네모진 창이 없다. 아니 없는 것이 아니라 알루미늄 표피 안에 숨겨져 있다. 기하학적으로 절단된 틈새가 창이 된다. 이곳을 통해 빛은 들어와 실내는 길고 짧은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 시종일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야간은 그 반대이다. 실내의 밝은 조명이 기하학적인 틈새의 창 사이로어두운 밤 속으로 뿜어져 나와 낮과는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웰타임 사옥이 고전이 될 수 없는 이유1. 외관의 한계무엇보다 외피 틈사이로 투사되면서 수도 없이 내부를 쓰다듬는 빛의 파편은 웰타임의 주제이다. 하지만 웰타임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쉽게도 여기까지가 한계로 보여진다. 외부 경관을 포기하면서까지 빛을 향연을 구현하려고 했던 것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시각적인 빛의 아름다움을 위해 채광은 완전히 희생되어졌다. 건물 외피의 갈라진 틈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빛이 유일한 채광이다. 독방 속에서 한줄기 햇살을 받는 죄수가 생각이 난다. 그는 얼마나 자유의 햇살을 만끽하고 싶을 것인가?빛으로 장식되는 건물 내부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과 반대로 내부에서 바라보는 외부의 모습은 그 효과가 어떨지 생각해 본다면 웰타임의 빛의 연출의 한계가 느껴진다.웰타임의 알루미늄 표피와 내부 벽체와의 공간과 그 표피를 지탱해주고 있는 저 많은 구조들을 보면서 과연 이 외관이 과연 합리적인지 의구심이 든다. 이 건물 대지를 직접 보면서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건물 위치 자체가 한적한 그런 곳이 아닌 압구정 로데오 거리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바로 옆건물과의 공간이 엄청 협소하다. 그러한 곳에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대형 외피를 덮었다는 것이 너무도 비합리적으로 보인다.빛의 아름다운 연출을 위해 너무나도 많은 공간의 낭비와 외관을 받치기 위한 비효율적인 투자, 내부 경관을 위해 외부 경관을 포기한 점. 이 많은 것들을 포기한 것에 비해 건축가 공철이 얻은 것은 너무도 없어 보인다.2. 서구 건축의 모방과거 한국 건축가들에게 있어서 서양건축은 경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모방의 대상이었다. 자기작품이 원류를 모방한 아류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가정하고 창작행위를 시작해야 되는 거세된 예술가의 모습이 그동안 한국 건축가들의 모습이었다. 일반대중에게 있어서도 건물은 적어도 감상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정해진 기일 내에 무사히 지어지는 것이 건축가에게는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건축물에 대한 문화 예술적인 판단이 부재한 사회에서 당연히 저어지는 건축물은 ‘지어지는’ 관점에서 평가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서양건축은 언제나 모방의 대상이었을 뿐, 작가의 예술적 자존심을 건 경쟁의 대상일 수는 없었다.하지만 이제 서양건축은 더 이상 우리에게 원류문화로서 절대적 문화를 가질 수 없다. 이제 한국건축들에게는 우리 것을 이용하여 혹은 서양 것을 가지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서양인과 경쟁해서 이겨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이 주어지고 있다. 마치 삼성이 반도체나 전자산업의 최고가 된 것처럼 말이다.웰타임의 외관이 갑옷에서 그 모티브를 가져왔다지만 그 외관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다니엘 리베스킨드가 설계한 ‘유태인 박물관’ 이미지와 많이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태인 박물관의 외관도 웰타임처럼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하여 차가운 느낌을 주며 두 건물 외관에 날카로운 사선이 그어져 그 속으로 빛을 받아들이고 있다. 비록 그 사선의 외관의 이미지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달라 보이나 내부에 빛이 든 모습은 너무도 비슷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빛이 들어오는 양과 외관의 형태는 다르나 사선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효과를 기대한 점이나 외관의 재질 등이 너무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 둘은 비슷하기만 하였지 그 이상은 아니다. 유태인 박물관 외관의 날카로운 사선은 유태인들의 억압과 핍박을 받는 억압의 채찍을 상징하는 것으로 빛의 효과로 더욱 극적인 연출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웰타임의 주제인 빛의 연출 효과는 서두의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단지 심심한 건축을 벗어나고픈 욕망에서 외관의 변화를 준 장난에 지나지 않는 이유없는 외관이다.‘근거 없는 장식은 죄악이다’아돌프 루스가 한 말이다. 비록 지금이 모더니즘 시대는 아니지만 이 말은 현재 세계에도 충분히 통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작년에 이 건물을 처음 접하였을 때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었는데 유태인 박물관을 알고 난 뒤 다시 이 건물을 접하였을 때는 하나의 아류작을 보는 기분이었다. 작가가 그것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것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웰타임은 그것을 뛰어 넘지 못하고 단지 하나의 아류작에 머문듯한 인상을 준다. 바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서양 건축을 단지 모방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되고 그것을 이용하여 더 나은 건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배고파서 남의 것을 무조건 받아 들이는 시대는 아니란 말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주변을 생각하지 않은 이기적인 건축작년에 웰타임을 처음 접한 것이 로데오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본 것이어서 이번에 다시 웰타임 답사를 가려고 하니까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여자친구와 둘이서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걸어 다녔는데도 건물이 보이지 않아 답답해 하던 찰라에 우리 눈 앞에 ‘씨네 씨티’ 극장 건물이 보였다. 씨네 씨티 외관을 바라보고 있으면 12층에 커다란 동그란 원형의 창문이 있다. 우리는 그 곳을 통해 웰타임을 찾았다. 12층 휴게실에서 내려다보면 압구정동, 청담동, 신사동 일대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평소엔 범접하기 힘든?'그들만의 세상'이 순식간에 미니어처가 되는 순간이었다.?평당가 3,4천만원인 거품 아파트,?소위 명품 백화점, 그럴싸한 레스토랑, 집 한채 가격의 외제승용차들이 땅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마치 내가 걸리버의 시선으로 제 잘난 맛에 살 움직이는 이곳을 보고 있자니?괜시리?우스워진다.이렇듯 이곳에서 바라본 압구정 일대의 모습은 거리를 걸으면 느끼는 기분과 너무도 틀리다. 화려하고 특이하게만 느껴졌던 분위기의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주변의 건축물도 대부분은 모더니즘의 단순한 정방형 건물이었다. 지금껏 벤츄리의 ‘장식된 오두막’ 의 개념으로 치장된 건물의 외관에 속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곳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웰타임의 존재는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 이 의문을 가지고 우리는 웰타임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의 우려는 현실이었다. 양쪽 바로 옆 건물들은 모더니즘의 단순미를 풍기고 있는데 웰타임은 마치 홀로 일어서 있는 마징가Z 분위기였다. 또한 좁은 골목에 위치하고 있어 건물을 감상하기에 한껏 올려다 보아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한다. 좁은 골목에서 이건물을 카메라에 가득 담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차라리 넓은 대로에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고 오히려 시원한 맛이 날 터인데 건물의 위치가 너무도 답답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 시작하는 글미스의 작가론이 아닌 파빌리온과 시그램 빌딩에 관한 보고서이지만 작가에 대한 전반의 이해가 있어야지 그의 건축도 이해가 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간단하게 작가론을 다루고 파빌리온과 시그램 빌딩에 관해 글을 전개하겠습니다.? 주요약력1886 3월 27일 독일의 아헨 지방에서 태어남1897-1900 아헨 소재의 Cathedral School을 다녔다.1900-1902 아헨 소재의 Ecole des Arts et Metiers에서 공부했다.석공이었던 아버지의 일터에서 일했다.1902 현장주임으로 일했다.1903-1904 석공세공인의 공방에서 치장벽토의 장식을 그렸다.1905-1907 베를린에 있던 부르노 파울의 스튜디오에서 견습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였다.1907 독립하여 잠깐 건축 활동을 함1908-1911 베를린에서 피터 베렌스와 일했다. 처음 월터 그로피우스를 만남.1912-1937 베를린에 건축사무실을 열었다.1919 11월 그룹에서 지도자로 활약.1921-1925 11월 그룹의 전시회를 개최했다.1926 독일공작연맹 전시회 대표 건축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바이젠호프 주거 단지1926-1932 독일공작연맹의 부회장1929 바르셀로나의 국제전시회를 위한 독일 파빌리온의 건축가.1930 튜겐 하트 저택1930-1933 뎃사우와 베를린의 바우하우스 교장1931 베를린의 구축전시회에서 '우리시대의 주거' 라는 제목의 공작연맹파트의 대표1938-1958 시카고에 위치한 일리노이 공과대학 건축대학학장. 캠퍼스에 새로운 건물을 디 자인하게 된다.1938 시카고에 건축사무실을 연다.1948 시카고 고층건물 계획안에서 유리와 철의 커튼 월을 처음 적용함.1950 대구조 스팬 시스템을 적용한다. 판스 워드주택1951 레이크 쇼어 아파트1953 독일 만하임 국립극장1959 독일연방공로상 수상.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영예와 존경을 받게된다.1962 대학의 크라운 홀1963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을 수상하였다.1969 시카고에서 8월 17일 사망.? 미스 반 데어 로에 주택은 전통적 양식에 의한 것이었지만 21세의 나이에 완성한 것으로 보면 뛰어난 작품이었다. 미스의 건축에 임하는 진지성과 그의 천재성을 예견하게 하는 작품이었다.이 때 미스는 독일의 권위 있는 건축가 피터 베렌스의 제의를 받고 그의 사무실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베렌스 사무소에는 이미 월터 그로피우스가 수석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고 있었고 미스가 들어가고 난 뒤 얼마 있지 않아 르 꼬르뷔지에도 이곳에 합류하게 되었다. (현대건축 4대 거장 중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1869년 미국태생으로 미스보다 한 세대나 앞섰던 반면에 1883년에 독일에서 태어난 월터 그로피우스와 1887 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르 꼬르뷔제는 미스와 같은 세대의 인물들이다) 현대 건축의 거장 4인-라이트, 그로피우스, 르 꼬르뷔지에, 미스중 3인이 베렌스 사무소 출신이라는 것을 보아도 베렌스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미스는 3년 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건축에 관한 모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베렌스와 함께 한 3년간은 그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미스는 베렌스의 아틀리에에서 일하면서 칼 프리드 리히 쉰켈의 작품세계에 심취 하게 되고, 쉰켈의 신고전주의를 자신의 건축에 적용시켰다. 신 고전적인 수단의 엄격성과 형태의 순수성, 비례의 완벽성, 세부 장식의 우아함, 표현의 장중함을 창조하는 것이 미스의 주된 목적이었다.1911년 베렌스 사무실 시절의 끝 무렵에 미스는 화란의 저명한 미술 수집가였던 크뢸러일가의 저택 설계를 의뢰받고 크뢸러의 제의에 따라 네델란드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베렌스에 버금가는 네덜란드 건축가인 베를나게의 작품과 철학을 접하게 되었다. 베렌스가 형태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면. 베를나게는 고전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고딕적인(재료와 구조에 관해 정직한) 표현에 가까운 19세기 윤리적 이론으로부터 자신의 건축 철학을 유추해 낸 사람이었다. 달리 말하여 베렌스는 형태를 강조했고, 베를나게는 구조와 재료를 강조한 것이다. 베를나게가 보여주는 구조의 진실성과 논리에는 독일 공작연맹의 초대 부위원장으로 지명되었다. 독일 공작 연맹의 부회장으로 있던 그는 슈투트가르트시에서 열린 바이센 호프지들룽이라는 건축전시회를 주관하여, 장식이 배제된 현대 건축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1929년 의 바르셀로나 박람회 독일관과 이후의 몇 개의 건축물에서 그는 돌, 철, 유리, 카펫 등의 재료를 현대적으로 가공 처리하는 풍부한 소재사용 능력을 보여주었다. 1930년에 그로피우스의 권유에 따라 국립종합조형학교인 바우하우스 교장이 되었다. 그러나 1932년 극우익파의 압력을 받아 학교를 데사우에서 베를린으로 옮겨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베를린으로 옮긴 후 짧은 기간 동안 사설 학교로서 존립하다가 나치 정부에 의하여 1933년 문을 닫게 되었다. 호전적인 정치적 환경은 독일에서의 작품 활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1937년 여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건축사무소를 열고, 시카고 일리노이공대의 건축과장으로 초빙되어 캠퍼스 마스터플랜을 비롯한 포스트모던 이전의 기능주의 건축의 모범이 된 일련의 건축을 꽃피우게 된다. 그의 건축은 당시대 건축기술의 표현이었고, 건축공간의 융통성에의 적극적인 대응이었다. 단순한 모델을 진실하게 표현한 그의 건축조형은 비례와 재료질료 자체로 성립된다.?미스의 건축○ 건축사상미스의 건축철학의 핵심인 less is more는 그의 금욕적인 건축이념을 잘 나타내준다. “보다 적은 것이 보다 더 풍부한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단순성을 추구하며, 최선의 설계는 내면적 존재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미스가 20세기 건축에 끼친 영향으로 세계 각국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미시안건축의 양적 팽창을 들 수 있다. 그는 철과 유리로 된 단순한 상자형 건축을 일관되게 작업하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모색했다.1.구조의 진실성과 논리적 문제 해결은 명쾌하고 단순한 구조적 건축을 가능케 한다.2.유니버설 스페이스는 대소공간의 위계를 잘 조합할 수 있다는 공간의 질서를 재인식시켜준다.3.유니버설 스페이스를4년의 벽돌전원 주택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 개념을 제시하는 획기적인 프로젝트로서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아직 그 잠재 적인 가능성이 충분히 탐구된바 없다. 서로 직각방향으로 배열된 조적 벽면들 사이사이로 일련의 연결된 공간이 형성되고 몇 개의 조적벽들은 지붕을 구성하는 장방형의 한계를 벗어나 자연 속으로 뻗어 나가는 이 디자인은 5년 후 미스의 손에 의하여 지어진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공간감을 예고해주고 있다. 일년 앞서 1923년에 발표된 콘크리트 전원 주택은 콘크리트의 조소적 성격을 잘 나타내며 형태적으로 잘 정리된 주택 평면의Zoning개념을 보여주고 있다.그밖에 걸작품으로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시그램 빌딩, 시카고 컨벤션 홀, I.I.T.대학 크라운 홀, 판스워스 주택,튜겐하트 저택 등이 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미스 반 데로에 1929년 작?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라고 흔히 불리지만 정확히 말하면 바르셀로나 세계박람회 독일관이다. 이 건물은 53×17m 크기의 트라버틴 석재로 된 훌륭한 기단위에 세워졌다. 벽돌로 된 미스의 초기 저택건물들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서는 양단부에 트라버틴으로 된 2개의 '에워싸는" 벽체에 의해 내부공간이 형성되고 있으며, 이 벽은 계속해서 큰 푸울과 작은 푸울까지 에워싸고 있다. 이 두 개의 벽 사이에서 건물은 마치 무대 위에서 느린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파빌리온의 높이는 3,10m이다. 다른 벽들을 연결해주기 위해 만든 유일한 가로 방향의 벽은 젖빛 유리로 되어 있으며, 파빌리온의 내외부에 분산되 빛을 제공해주는 조명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이 건물에서 미스는 국제주의 양식이 이제 성숙되어서 과거의 다른 양식들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자유롭게 흐르고 있는 내부공간은 크롬도금을 한 8개의 십자형 철재 기둥으로 지지되는 직사각형의 지붕 슬래브에 의해 정착되어짐으로써 안정감이 얻어지고 있다. 미스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미스가 창안한 공간의 성질은 평탄한 슬래브로서의 지면에서 수 미터 떨어진 위치에 몇 개의 철주 위에 고정된 철근 콘크리트 구형의 수평면으로 형성된 우주 공간의 일부인 건축 공간인 점에서 그의 천재적 창조력을 알 수 있다.그 밖에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 주목할 것은 안쪽 중정에 세워진 게오르그 콜베가 조각한 무희 동상과 미스가 직접 디자인한 의자 등이 있다. 특히 이 '바르셀로나 의자'는 가구 디자인에서 고전적인 걸작으로 꼽히는 것이다.어떻게 지어졌나?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바르셀로나 박람회의 독일관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당시 독일공작연맹의 부회장이었던 미스가 독일정부의 요청에 의해 독일이 출품할 전시계획을 디자인하다가 뒤늦게 맡은 건물로, 전시나 다른 기능의 충족보다는 박람회 개관 시에 스페인 국왕이 개회를 선언하는 장소로서의 의전적 역할을 위해 설계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스는 이 건물이 박물관인지, 미술관인지, 극장인지를 따지지 않고 평소 자신의 concept 대로 하나의 조형물을 만들어내는 기분으로 설계를 한 것이 아닌가 싶다.지금 우리가 대전에 가면 엑스포 당시 지었던 건물을 다시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일부는 철거된 것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 20세기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29년 바르셀로나 박람회가 끝난 이후 철거되고 말았다. 그 후 당시 찍었던 사진으로만 그 명성이 전해지다가 1986년 사진을 토대로 바르셀로나에 다시 재건축되었는데, 당시 사진은 흑백사진인 관계로 색깔은 재현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건물색은 그냥 추측으로 칠해진 것이다)?피막, 기둥의 발견미스가 기둥과 벽의 문제의 결정적인 의미를 알게 된 것이 바로 이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 있어서다. 이전에도 프리드리히가 사무실용 빌딩안, 철과 유리의 마천루 (기둥의 배치를 연구했다고 생각되는 스케치가 남겨져 있으나 기둥배치에서 곡면 유리쪽이 선행하고 그것에 적합한 기둥배치가 고안되지 못했기 때문에 최종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