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에 대한 홉스봄의 견해-179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를 중심으로1. 서설누군가 나에게 민족주의는 초역사적 산물인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다음과 같은 대답 정도는 해줄 수 있다. 민족은 근대적 개념이고 민족주의 역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며 발전했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시대에 따라 다른 이데올로기로 작동되었으며 때로는 진보의 논리로, 때로는 사회 통합의 논리로 이용되어왔다. 따라서 민족주의를 규정하는 것은 민족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영토, 언어, 종교와 같은 원초적 요소와 내집단의 응집력이나 민족의식과 같은 역사적 요소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덧붙여서 근대 이전의 민족체가 민족이 될 수 없는 이유(예를 들어 사회의 수직적 통합의 부재)를 몇 가지 덧붙인다면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답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 나타난 민족이 실체를 가졌는지 아니면 단지 허상에 불과한지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하기 곤란함을 느낀다. 민족을 단순한 논리적 고안물이 아니라 사회적 총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실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임지현,『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소나무(1999) p.25아니면 인공적인 가공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일축해버릴 수도 있다. 후자의 견해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아마도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라는 책을 쓴 Eric John hobsbawm일 것이다.{) 홉스봄이 민족주의나 민족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취급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민족을 민족 주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홉스봄은 1917년에 오스트리아계 어머니와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케임브리지 출신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중의 한 명이며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은 1789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의 부제인 -프로그램, 신화, 실체에서도 확인 되듯이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 글에서는 홉스봄의 저서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를 중심으로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알아보려 한다.2. 민족 개념에 있어서 언어-종족적 기준우리는 민족을 정의하는 데에 있어서 언어나 종족, 종교 등과 같은 객관적 요소들을 상당히 강조한다. 하지만 홉스봄은 민족 개념에 있어서 언어-종종적 기준을 필수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버린다. 그는 프랑스 혁명 때의 혁명적인 민족 개념에 훗날 민족주의자들이 내세운 기준인 종족, 언어, 종교 등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홉스봄,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창작과 비평(1994) p.39물론 언어가 민족 개념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분별하지 않는 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언어적 차이에 의해 의사 소통이 안되는 집단들이 민족으로 간주될 수 있는 실체들을 분리시킨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책 p.75즉 초등교육이 이뤄지기 이전의 시대의 mother tonge(모국어라기 보다는 일상용어로서의 모어)이 민족어 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가 민족문화나 민족심의 모체가 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민족어는 반인공적인 가공물로서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언어가 민족주의의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영향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홉스봄은 이에 대해 몇가지 이유를 제시 하였는데 엘리트 공동체의 존재, 활자화된 공통어의 영속성, 공공교육 등이 그것이다. 홉스봄은 종족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한다. 그는 유대인의 예를 들어 핏줄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사회조직 형태로서의 종족 집단의 기반은 문화적이라는 사실과, 민족국가의 인구구성이 이질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들어 종족의 중요성을 부정한다.{) 같은책 pp.90∼91종족과 언어의 부정으로 홉스봄은 민족을 이루는 객관적 요소들을 배제시켜 나간다. 이는 민족이 존재하는 실체임을 부정하고 그것을 민족주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듯 홉스봄이 민족주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것이 가지는 반동성 자체보다는 그것이 동원된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3.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언어나 종족이 민족을 형성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라면 어떻게 민족이 개념지어 질 수 있으며, 또 만들어 질 수 있는 걸까? 홉스봄은 그것에 대해 밑으로부터의 시각을 강조한다. 그에게 국민 또는 민족을 특징 짓는 것은 특수이익에 대한 공동이익, 특권에 대한 공공선을 이야기한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민족국가를 원하게 되고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국가가 민족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라는 민족국가를 만들어 냈으며 알자스는 프랑스에 속하기를 희망하였기 때문에 프랑스에 속하게 되었다. 어쨌든 민족국가로서의 프랑스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새로운 현상이 되었다. 이제 국가는 국민을 민족적 통치기관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았다. 먼저 여러 가지 기술행정적 문제를 낳았으며 더 중요한 문제인 국가 및 통치체제에 대한 시민의 충성 및 일체감이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같은책 pp.112∼113그것은 국민적 통일성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국가적 교육, 병역)의 필요성을 증가시켰다.{) 홉스봄, 자본의 시대 , 한길사(1998) p.218그 이유는 국가이익이 일반시민의 참여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정권의 확대로 노동자 및 시민의 정치적 태도는 매우 중요해 졌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민족 을 국가와 동일시 하는 것이었다. 교육, 특히 초등 교육은 크게 확대 되었다. 초등교육의 중요한 목적은 애국심을 심어주는데 있었다. 초등교육을 통해 민족의 이미지와 유산을 전파하고 민족 소속감을 이용해 애국심을 고취시킨 것이다. 또한 교육을 통해서 국어 가 진정한 민족어가 될 수 있었다. 시민은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 민족국가와 일체감을 느껴갔고 그것은 국가애국주의로 발전되었다.중요한 사실은 민족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객관적인 조건을 가지지도 않고 본래적으로 주어진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홉스봄은 계속해서 민족에 의해 국가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민족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에게 있어서 민족주의는 정치 권력 또는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국가들이 민족주의를 지속적으로 강제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도 그것이 불완전한 논리적 산물이었기 때문이다.4. 전통과 상징의 창조국가와 정권은 상상된 공동체 인 민족의 감정과 상징을 이용하여 국가애국주의를 강화하려하였다.{) 홉스봄,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p123사실 민족, 국가의 일부가 되는 역사는 대중들에게 그렇게 기억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 서술, 대중화되어 제도화 된 것에 불과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민족은 최근의 상징과 관련성이 깊다. 따라서 19세기 후반에 동원된 상징이 국가애국주의를 강화하는데 이용되었다면 그러한 전통은 역시 19세기에 대량으로 생산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전통은 공식적인 방식과 비공식적인 두 가지 방식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공식적인 방식은 정치적이었으며 비공식적인 방식은 사회적이었다. 그리고 전통을 만들려는 나라에서는 공식적인 것과 비공식적인 것이 결합되었다.5. 정치적 동원의 목적지금까지는 민족 그리고 민족주의가 정치적 동원에 불과하다는 논의를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동원이 누구를 위한 동원이었는지 그리고 누구를 위한 동원이었는지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홉스봄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마르크스주의적 역사학자이다. 그가 아래로부터의 시각을 강조한데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자유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위로부터의 시각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민족국가는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상당히 큰 역할을 하였다. 국민 경제의 필요성은 자유 방임을 주장하는 자유주의들조차도 알고 있었다. 민족은 국민경제의 체계적인 성장을 의미했으며 그것은 보호주의의 형태를 띄었다. 그런데 한 민족의 경제가 발전하려면 충분한 규모를 가지고 있어야만 하며 이를 규모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 규모의 원칙은 마찌니가 제시한 미래의 유럽 지도에서 잘 드러난다.{) 홉스봄, 『자본의 시대』p.204
생명의 시작과 끝을 읽고생명에 관한 논의가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낙태, 인간복제, 안락사 등의 문제를 포괄해서 다루는 분야는 생명의료윤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에 대한 책을 구입했다. 책의 제목은 생명의 시작과 끝 이며 생명의료윤리를 철학적으로 논증한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논리적인 증명과 그 증명에 대한 반론으로 가득 찬 이 책이 내 생각을 정립시키는 데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지만,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생명에 대한 책들은 모두 기독교적 생명관을 반영하고 있었으며 종교적인 가정을 깔고 논의를 시작하는 책들을 중심으로 글을 쓰는 것은 개인적으로 그리 탐탁지 않았다. 생명의 시작과 끝 이라는 책에 나와있는 저자의 논증과정을 여기에 그대로 옮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책을 읽으며 생명에 대해 내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중심으로 이 글을 쓰려 한다.1. 생명의 가치우선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생명이라는 가치의 절대성에 관한 의문이다. 우리는 생명이라는 가치가 절대적이라고 배우며 생명이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존엄하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런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돈이 없어서 수술을 받지 못하고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극빈자의 생명권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생명의 가치란 말을 논할 수 있는 것인가? 아직도 지구에는 수많은 사람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 터진 아프가니스탄과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역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 직접 칼을 대서 태아를 죽이는 낙태는 비윤리적인 짓이며, 어떤 사람이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면 그 사람을 굶주려 죽게 만든 행위는 직접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므로 정당한가? 물론, 굶주리고 있는 사람의 생명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태아의 생명권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생명이 절대적인 것이라 해도 그것은 현실의 권력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생명이 절대적이라고 단정짓고 시작하는 논의는 그저 그럴 듯한 논리는 만들어 낼 수 있지만 현실에 있어 많은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우리는 또한 생명이라는 가치와 다른 가치와의 관계 또한 생각해봐야 한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 시장에서 분신 자살한 전태일의 경우, 생명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그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일이 중요하고, 그 방법이 자살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생명을 버리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아픔{) 조영래, 전태일 평전, p193을 해소시키려는 그의 노력이 그의 생명보다 더 가치 없는 것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생명이라는 가치가 다른 가치와 부딪힐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2. 낙태낙태의 문제는 산부의 자율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의 갈등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생명의 시작과 끝 에 따르면 낙태를 바라보는 관점은 태아를 어느 시점부터 인간으로 보느냐에 따라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진다. 자유주의적 입장은 출생 이전까지 자의식을 갖지 못한다는 점. 출생시점에서야 모체로부터 완전히 독립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보수주의적 입장은 태아 또한 유전적으로 우리와 동일한 잠재적 인간이라는 점을 근거로 단세포 접합체 시점부터 생명권을 지닌다는 견해를 표명한다.{) 착상 시점부터 생명권을 가진다고 주장절충주의적 입장은 태아의 연속적인 발달 단계 중 어떤 시점{) 예. 난할시점. 착상시점. 지각력을 갖추는 시점 등등부터 태아의 생명권이 인정된다는 주장을 편다.시점의 문제는 사실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어느 시점부터 생명권을 지닌다면 그 시점이전에는 태아에게 생명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시점의 문제보다 태아의 생명권과 임산부의 자율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출생 이전의 어느 시점이라는 것은 매우 인위적일 수밖에 없으며{) 임종식, 생명의 시작과 끝 p217태아가 착상시점부터 생명권을 가지더라도 임산부의 자율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앞선다면 결국 임신 전 기간에 걸쳐 낙태가 허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낙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었다. 낙태라는 것은 결코 남녀 당사자간의 문제가 아니며 태아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남녀간의 성관계에는 임신의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으며 성관계에 동의하였다는 것은 임신의 위험성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에 대한 책임은 자신들이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강간과 같은 원하지 않는 경우의 성관계의 결과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낙태로 해결하려는 것은 자신이 입은 피해를 태아에게 전가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낙태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뀌었으며 지금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낙태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가 반대하는 낙태의 경우는 성감별을 통한 낙태, 기형아에 대한 낙태 시술과 같은 선별적 낙태이며, 임신 자체가 산모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에 낙태를 하는 경우에 있어서의 낙태는 법률 관계를 떠나서 도덕적으로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태아의 생명 또한 소중한 것이며 그 정도가 임산부의 자율권보다 작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낙태는 임산부의 자율권뿐만 아니라 부모의 생명권과도 부딪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권은 단순히 죽음의 문제 뿐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혼모의 경우 그녀는 아이로 인해 앞으로의 삶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언제나 낙태가 합당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으며 낙태는 최후의 수단 정도로 인식돼야 한다. 임산부가 임신을 정말로 의도하지 않았다면 태아에게 임산부의 몸을 이용할 권리가 없으므로 그녀에게는 출산을 해야할 의무는 없을지 모르지만{) THOMSON,Judth J. 낙태의지지, p49인간관계라는 것은 의무-권리 관계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4. 인간 복제인간 복제 문제는 상당히 애매한 문제이다. 체세포 복제가 성공한지 5년도 채 되지 않은 지금 복제 기술이 완벽하지도 않고 복제 기술이 나아갈 방향조차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다. 윤리적으로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인간 복제 찬성론자들의 주요 논거는 그 것이 가져올 효용인데, 복제 인간을 만드는 행위가 아무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해도 그 결과 자체가 복제 인간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니며, 복제 기술 자체의 도덕성 또한 따져야 한다. 복제 기술이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그 효용에 관계없이 폐기되어야 한다.나는 인간 복제 행위를 반대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타락한 행위라고는 보지 않는다. 기독교계열에서는 인간 복제를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행동으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 인간 복제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행위는 아니다. 때문에 그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권 보호 차원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 복제 행위가 실험 과정에서 또는 그 기술의 활용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때문에 복제 연구는 인권 보장이 확실해진 상태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그 활용 역시 생명의 상품화가 아닌 인류의 복지 증진 쪽으로 이뤄져야 한다.5. 안락사 문제안락사에는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와 적극적 의미의 안락사가 있다. 적극적 안락사라는 것은 죽임 의 문제이며 소극적 안락사라는 것은 죽게 방치함 의 문제이다. 1973년 미 의사협회는 의도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끊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방면 생물학적인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확고한 증거가 있는 경우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특수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인다.{) 생명의 시작과 끝 p302환자의 죽음을 의도하는 경우인 적극적인 안락사는 허용될 수 없는 반면 의도하지 않은 경우인 소극적인 안락사는 허용될 수 있다는 입장은 이중결과원리에 의존하고 있다. 이중결과의 원리란 좋고 나쁜 두 가지 결과를 의도하지 않고 단지 예견된 부수적인 결과로서 초래케 한다면 허용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같은책 p115즉, 적극적 안락사의 경우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이므로 생명의 존엄성에 위배되지만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에는 직접 죽인 것은 아니므로 허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하지만 내 생각에는 안락사를 그런 기준으로 나눠서 구분한다는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죽이는 것과 죽게 방치하는 것 사이에 어떤 도덕적 차이가 있겠는가? 적극적 안락사를 소극적 안락사와 굳이 구분하는 것은 사람을 죽인다는 의미에 너무 집착하여 안락사의 본래 목적을 잊어버린 것 같다.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 모두 환자를 불필요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는 인간적이 동기에서 시술되는 것이라면, 그에 대한 논의는 환자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과 생명의 가치 중 어느 것이 더 소중하냐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나는 안락사를 환자를 실질적으로 돕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명을 절대적인 가치로 인정한다면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것으로서 개인이 함부로 처분할 수 없는 것이지만{) 박홍식, 안락사 논쟁의 합리성에 관한 연구, 동시에 인간의 자기 결정권 또한 중시되어야 하며, 생명의 존엄권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억지로 생명 유지 장치에 한 사람의 생명을 묶어 놓는 행위는 의료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비극에 불과하며 오히려 생명의 가치를 무시하는 일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인간다움에 기초한다면, 모든 인간다움이 사라지고 고통만 남은 채,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이 환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과학 기술이 발전할 만큼 윤리관 또한 개방적으로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환자에 대한 예우에 가까울 것이다.
박정희와 김일성의정치사상과 리더쉽 비교1. 서론김일성과 박정희를 비교 분석하라는 레포트의 주제를 처음 보았을 때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한국현대사를 체계적으로 공부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기본적인 지식부터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체제의 두 지도자를 비교한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두 인물을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비교해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예시에는 노동 문제, 여성 문제, 역사 의식 등이 있었지만, 박정희와 김일성 모두 한국 현대사에서 장기간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볼 때, 정책의 미시적인 측면이나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접근 이전에 보다 포괄적인 정치이념이나 정치사상, 또는 통치이데올로기 등의 측면에서 접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체제 유지 이데올로기로서의 두 인물의 정치 사상을 비교해 봄으로써 논의를 시작해보려 한다. 하지만 두 인물이 전혀 다른 체제 속에서 정권을 획득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두 인물의 정치 사상(특히 체제 유지 이데올로기로서의)을 비교하는데서 멈춘다면 역동의 시대를 살아간 두 지도자의 차이가 아닌 자본주의-공산주의의 대결 구도로 묻혀버릴 우려가 있다.따라서 나는 이 글의 논의를 두 지도자의 개인적인 리더쉽으로 확장시켜 보려고 한다. 다소 상투적인 주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두 인물이 모두 장기적인 독재를 했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데올로기를 통한 헤게모니 지배만으로는 그것을 돌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도자의 정치적 리더쉽이 필수적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두 지도자가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 방식이 어느 정도는 같았지만, 어느 정도는 차이가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는 논의일 것이다.따라서 이 글에서는 먼저 박정희 체제와, 북한의 김일성에 의한 유일 체제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정치사상을 비교한 후에, 박정희와 김일성이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개인적인 리더쉽을 비교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두 인물을 분석하려 한다.2. 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와 정치 사상 비교2.1 박정희의 정치사상박정희의 정치 사상이 뚜렷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국가주의, 경제 성장과 근대화, 자주정신 등으로 말할 수 있다. 박정희의 이런 정치 사상들은 그의 인생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예를 들어 경제 성장에 대한 욕구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가난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전인권,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행동에 관한 전기적 연구 p.297그런데 박정희의 정치 사상을 단지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만 찾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히려 그의 정치 사상은 그의 역사의식에서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박정희는 당시의 상황을 민족 적 위기 상황으로 보았다. 또한 그 위기의 원인을 민족 의식의 결핍에서 찾았고 그 처방 역시 민족성을 개조하는 것에서부터 찾았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민족의 생존이었다.{) 김영수, 박정희의 정치리더십 , 『장면·윤보선·박정희』,백산서당 pp.227∼251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현재는 항상 민족적 위기 상황이고 자기만이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의식도 그의 정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박정희가 말하는 민족 은 민족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국가의 개념에 가깝다고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박정희가 일제시대 때 보여주었던 모습들은 결코 민족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가 갑자기 민족주의자로 돌변하였으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또한 그가 국가기구를 중심으로 폭력성과 지도성을 가미하여 조직화 시켰다는 사실{) 전인권,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행동에 관한 전기적 연구 , 2001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민족이 아니라 국가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 그의 이런 국가주의 사상은 해방이후 한국정치 현실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되었다고 판단된다. 정리하자면, 박정희의 국가주의적인 사고 방식은 그로 하여금 민족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식을 낳게 했다. 그에게 위기는 대내적으로는 가난이었고, 대외적으로는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이었다. 따라서 그는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절대 가치로 삼았으며, 한편으로는 반공사상을 강화하였다.그의 정치 사상은 박정희 체제에서의 지배이데올로기에 그대로 드러난다. 지배이데올로기는 일정한 시대에 특정한 사회집단이 담지하는 거시적 이념체계로서 권력집단이 권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고안한 제도적 기제들의 작용을 지원하며, 사회적 불만과 저항요인들을 체제 내부로 용해하여 갈등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임현진·송호근, 박정희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 , 『한국정치의 지배이데올로기와 대항이데올 로기』,1994 pp.178∼179박정희 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는 반공주의와 성장주의 그리고 권위주의의 조합이며 박정희의 정치 사상과 일치한다. 반공주의는 해방이후 체제가 재편성되는 과정에서 외부에서 부과된 것이다. 성장주의는 근대화와 경제적 풍요에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권위주의는 권력행사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배태된 지배계급의 집단의지의 표현이었다.{) 같은 책, p.182반공주의와 성장주의, 권위주의 모두 박정희 개인적 사상에서 나온 것들임과 동시에 지배계급의 권력독점을 위한 통치 이데올로기이기도 했다.하지만 박정희 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는 물질적 정신적 재생산 구조에서 단지 부분적인 역할밖에 없었고,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박정희는 유신체제의 명분으로 한국의 안보 상황의 급박함을 들었는데 국민들은 그의 상황인식에 동의하지 않았고 학생들을 비롯한 지식인층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김용철, 박정희의 정치적 리더쉽 연구 , 석사학위논문, 19843선 개헌, 유신 헌법 등 시간이 지날수록 박정희의 정치 사상들은 사람들의 동의를 잃어갔다. 체제의 지배 이데올로기 또한 변화할 수 밖에 없었다. 성장주의나 반공주의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합리성을 잃어버리고 권위주의를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변해갔다. 박정희의 정치적인 리더쉽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져갔다.2.2 김일성의 정치사상사실 김일성의 사상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게 없다. 몇 권 안 되는 참고서적에서 김일성의 사상 자체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굳이 김일성의 사상을 이야기하라 한다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을 들 수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레닌이 보완한 이론으로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를 통한 공산주의 혁명을 강조한다. 하지만 김일성만의 독특한 사상을 이야기한다면 주체사상을 빼놓을 수 없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의 현실에 맞게 적용한 것으로 북한 사회주의의 발전전략 이라 할 수 있다. 주체 사상의 원래 뜻은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진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 이다.{) 이종석, 북한의 유일체제와 주체사상의 기능 『한국정치의 지배이데올로기와 대항이데올로 기』p.260그런데 주체사상의 본질은 결국 맑스-레닌주의를 넘어서는 독자적인 사상이며 김일성주의화로 설명된다. 주체사상은 유일체제와 상보적 관계를 이루는데, 유일체제는 혁명적 수령관에 입각한다. 혁명적 수령관에서는 수령을 절대적이고 제도적인 존재로 만들며 수령을 당과 대중과 일치시킨다.{) 같은책 p.255∼257주체사상은 지도와 대중의 결합 의 태제를 통해서 유일체제를 합리화시키는 담론으로 작용해왔다.{) 같은책, p.263초기의 주체사상은 북한의 생존의 담론으로 이야기되었다. 김일성은 식민지 반봉건의 현실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를 하게된 것이다. 이렇게 합리적인 조건에서 출발한 주체사상은 곧이어 김일성개인숭배와 유일사상과 맞물려서 변질되기 시작하여 결국 시배권력의 통치담론으로 전락하게 된다.3. 박정희와 김일성의 리더쉽 비교박정희와 김일성 모두 정치사상과 통치 이데올로기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박정희는 장기 집권의 논리가 더 이상 대중들에게 먹혀 들어가지 않게 되었고, 김일성의 경우도 사회주의의 독자적 발전을 위해 주체사상을 도입하지만, 그것은 김일성주의로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 굳이 김일성의 정치 사상을 논하지 않더라도 북한의 현실 사회주의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모순을 극복해야 했으며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한계에 접할 수밖에 없었다.(모순은 1950년대와 60년대의 경제위기로 나타났다).{) 이태섭, 『김일성리더십연구』pp.485∼489게다가 혁명적 수령관으로 대표되는 유일체제는 논리적으로도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완벽한 수령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혹시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중들을 피동체로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유일체제와 주체사상의 기능 p.257결국 박정희에게 있어서 문제는 자신의 장기집권과 집권을 통한 근대화의 지속이었고, 김일성에게 있어서는 주체사상과 유일체제를 인민들에게 납득시키고 당적 지도 체계에서 수령 중심의 체계로 사회 체계를 재편하는 것이었다.박정희의 경우 이것을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으며 이것은 김일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로의 권력집중은 입법부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방법, 언론을 통제하고 집회결사권을 제한시키는 방법 등으로 이루어졌다. 반면에 김일성의 경우 행정 관료적 지도 체계를 당적 지도 체계로 확립하고 다시 당적 지도 체계를 수령 지도 체계로 권력을 집중시켜나갔다. 특히 수령 체계의 확립은 조직적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조직은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었으며, 개인주의, 자유주의적 경향을 근절하고 집단주의 사상을 배양하려는 목적에서 조직성과 규율성은 강화되었다.{) 같은책 p.461∼463
난쟁이 일가와 은강의 끝없는 대립-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작은 공 을 읽고1. 조세희와 1970년대조세희는 1942년에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났고, 서라벌예대 및 경희대 졸업하였으며 1965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돛대 없는 장선 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하지만 그 후 10년여 동안 작품을 발표하지 않다가, 난쏘공 연작을 쓰기 시작하면서 잠시 말문을 열었다. 난쏘공 연작은 75년 문학사상 12월호에 단편 칼날 이 실리면서 시작되었다.그의 소설이 본격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그 유명한 굴뚝청소한 두 아이 에피소드 가 들어있는 단편 뫼비우스의 띠 부터이며 연작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으로 대표된다. 12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는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에 있어서의 가장 근본적인 사회문제 중 하나를 제재로 다루고 있으며 1960년대에 시작된 물량적 차원에서의 경제성장 우선주의가 부른 사회병리현상을 해부하고 있다. 따라서 조세희의 연작은 70년대 한국의 모순을 파해진다고 할 수 있다.한국의 1970년대는 애매성의 시대였다. 여기서 말하는 애매함이란 성격이나 내용이 모호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아주 분명하고 확실한 그러나 상반되는 두가지 성격의 대립이 공존하고 있음을 말한다. 한편에서는 경제성장을 외치며 GNP의 상승에 환호하며 편안한 삶을 즐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농촌의 궁핍화와 대규모의 농민 이농, 도시 변두리에 밀집된 뿌리뽑힌 소외 계층,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당한 산업근로자' 등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그늘에 묻혀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이질적인 상극화은 경제적인 부분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정치적으로는 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되는 독재가 일어났으며 거기에 대응하는 재야의 반항세력들이 등장하였다. 문화적으로도 체제로의 순응주의와 비판적인 의식화의 고취가 대립될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조세희의 소설 난쏘공 의 분위기가 전하는 하고싶은 말과 해야할 말 사이의 간극 등은 모두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있다. 실제로 그는 난쏘공 을 서울 중구청 앞에 있는 작은 공원 벤치에서 대부분 썼다고 한다. 공공연하게 쓸 수 없었던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어디서도 마음대로 써내려갈 수 없는 태생의 이력을 가진 작품들이 눌변의 그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하지만 앞에서 확인 했듯이 70년대는 단순한 암흑기가 아닌 애매성의 시대로 규정되며 이는 하나의 커다란 사회적 힘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밑으로부터의 움직임들이라 할 수 있으며『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바로 이 힘을 의식한 사람의 이고, 그 시대를 향한 글이었다고 생각한다.2. 작품의 전체적인 줄거리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연작 소설의 형태를 뛰고 있다. 12편의 단편들은 각각 하나의 작품을 이루며 각각의 단편이 모아져 큰 이야기를 이루는 연작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다.난쟁이인 아버지는 채권 매매, 칼 갈기, 건물 유리 닦기, 수도 고치기 등을 하는 잡역부로 평생을 전전하다가 늙어간다. 그리고 어머니는 원목 껍질 벗기는 일로 생계를 꾸리고, 영수, 영호, 영희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한다. 그들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의 소외 계층을 대표한다.난쟁이 일가는 어려운 생활이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려 노력하지만 통장으로부터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철거 계고장을 받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그들은 철거의 대가로 겨우 공시가 15만원의 아파트 입주권을 받지만 아파트에 들어가 살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한 난쟁이 일가와 행복동 주민들은 입주권을 공시가보다 몇만원 많은 돈에 투기업자들에게 팔아 버린다. 난쟁이 일가도 입주권 가격을 많이 받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 보지만 결국 그들이 받은 돈은 투기업자들이 챙기는 돈의 일부 에 불과할 뿐이다. 아버지는 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어머니는 인쇄소 제본 공장에 나가고 영수는 인쇄소공무부 조역으로 일하며 생계를 겨우 이어나간다. 영호와 영희도 몇 달 간격으로 학교를 그만둔다. 희망을 잃은 난쟁이는 벽돌공장 굴뚝에서 떨어져 죽게 되고 영희는 투기업자에게 몸을 버려가면서까지 입주권을 훔친다.아버지를 잃은 난쟁이 일가는 은강 그룹이라는 대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영수와 영호, 영희는 모두 열심히 일하지만 그들이 일해서 번 돈으로 겨우 가족의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 정도이다. 영수, 영호, 영희는 이런 현실에 대해서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수는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회사를 상대로 투쟁을 벌이지만 실패하고 그는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영수는 서울에 올라가 회장을 만나려다가 회장의 동생을 죽인다.조세희는 소설에는 난쟁이 일가로 대표되는 노동자, 빈민 층의 이야기 외에도 윤호와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서의 경훈 등 난쟁이 일가를 전혀 다른 세계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윤호는 지섭의 영향을 받아 달나라를 꿈꾸고, 경훈은 은강그룹 회장의 아들로서 사용자의 시각에서 난쟁이 일가를 바라보는데, 결국 그들은 난쟁이 일가와 대립된다.칼날 에서는 신애네 일가로 대표되는 중산층 서민의 시각이 드러난다. 그들은 난쟁이 일가만큼 못사는 것도 당장 생계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심정적으로는 난쟁이 일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신애가 난쟁이에게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우리는 한편이에요 라고 말한 데서도 드러난다.3. 작품에서의 대립구조소설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난쟁이로 대표되는 가난한 노동자들과 재벌과 같은 가진 자들의 대립이다. 단편 12편을 꿰뚫는 이러한 대립 구조는 소설집의 프롤로그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뫼비우스 띠 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즉, 뫼비우스의 띠 에서는 관념과 현실을 잘 조합한 모습을 발견 하게 되는데, 교사의 질문과 대답은 매우 관념적이고 그 안의 곱추와 앉은뱅이 이야기는 그 관념을 구체화하고 있다.종이는 앞뒤 양면을 갖고 지구는 내부와 외부를 갖는다.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한번 꼬아 양끝을 맞붙이면 역시 안과 겉모양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한번 꼬아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 즉 한쪽 면만 갖는 곡면이 된다. 이것이 ..... 뫼비우스의 띠이다
판타지 소설의 신화적 특성대학 국어 강좌를 들으면서 읽기 과제로 뮈토스란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윤기씨가 소설화 시켜서 쓴 책인데 그 책을 통해 신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신화를 이야기하고 신화에 의거하여 행위를 함으로써, 원초에 일어났던 기적적인 창조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초자연적 사건이 재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신화가 실제로 살아 있고 인간은 신화 속에 삶으로써 일상적 세속적 시간에서 벗어나 태고와 무한의 성스러운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은 것이다. 신화는 이처럼 생활에 대하여 근원적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일상 생화의 모든 활동의 규범과 범형이 되는 기능을 다하고 있다.하지만 신화는 과거의 이야기이다. 현대에 와서 신화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정도의 의미로 쓰일 뿐, 현대인들의 꿈과 성스러움을 담을 수 있는 신화는 더 이상 쓰여지지 않는다. 현대 문화 속에서 신화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토마스 벌핀치가 정리한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지금 쓰여지는 신화라 보기 어렵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머리는 신화를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게 변해 버린 것 같다. 제우스가 자신의 친족들과의 관계를 통해 신들을 만든다는 사실에서 경악을 느끼게 되는 우리가 신화의 성스러움, 환상, 그리고 자유로움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환상 문학(판타지 소설)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래에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판타지 소설에서는 여러 가지 신화적 요소가 들어가 있으며, 그 내용 또한 신화적인 영웅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판타지 소설을 현대에 쓰여지는 신화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많다. 판타지 소설에 나타나는 여러 요소들은 신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으며 단지 톨킨이 자신의 소설에서 사용한 세계관이 하나의 정형이 되어 이어질 뿐이다. 오히려 세계관에 나타나는 신화적 요소보다는 판타지 소설의 내용, 주제에서 고대 신화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1. 판타지 소설의 세계관에 나타나는 신화적 요소판타지 소설의 세계관은 유럽의 신화와 상당히 유사한 면이 많다.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종족, 몬스터들의 대부분은 유럽의 신화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판타지 소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엘프(elf)라는 종족의 경우 원래 고대 노르웨이어의 알브(alfr)에서 온 것으로 그 의미는 말 그대로 '요정'이다. 부국의 신화에서 엘프는 여러 가지 형태로 분화되어서 나타나게 된다. 판타지 소설에서는 이 요정을 인관과 동등한 관계의 유사인종 으로 개념지어지고 있는데 원래의 엘프와 다른 부분이 많다. 판타지 소설에서 엘프는 숲을 사랑하고 활을 잘 쏘는 종족으로 묘사되는데 톨킨의 소설 반지전쟁 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판타지 소설의 또 다른 종족인 드워프의 경우 판타지 소설에서는 키가 1m정도이고 신체는 강건하고 수명도 2백 살 이상으로 길며 지하에 굴을 파서 도시를 만들기 때문에 어둠 속 에서도 잘 볼 수 있는 종족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신체가 강건하여 뛰어난 대장장이, 전사로서 등장하지만 다른 종족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드워프란 본래 북구의 드베르그(Dvergr)라는 말이 영어화된 것인데 신체적인 특성에서는 신화와 판타지 소설간에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신화에서의 드워프는 사악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판타지 소설과 대조적이다.판타지 소설의 세계관에는 중세의 기독교 또한 많은 영향을 미쳤다. 판타지 소설은 먼저 중세 봉건 사회를 모델로 하고 있다. 신분제도가 존재하는 불평등 사회이며 기사, 성직자 등이 존재한다. 판타지 소설의 기사들은 기사도 정신을 지키는 정의의 용사로 묘사되며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판타지 소설의 몬스터 중에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은데 베헤모스의 경우 성서에 나오는 괴물로{) 성경 욥기 40장 15∼24판타지 소설에서는 대형 몬스터로 등장한다. 이외에도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몬스터, 악마는 기독교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이와같이 우리는 판타지 소설의 세계관에 갖가지 신화들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은 특정한 종교나 신화에 한정돼 있지 않으며 북구 신화, 기독교 신화, 희랍 신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것은 판타지 소설이 매우 개방성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만 신화와 판타지 소설 사이에 별 연관성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단지 환상적 요소 때문에 판타지 소설에 채택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것에서 신화적인 성스러움을 발견하는 것은 힘들다. 그렇지만 신화와 판타지 소설간에 직접적인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둘 사이에 연관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화가 당시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부터 생겨났다는 점, 그리고 판타지 소설이 자본주의화된 현대 사회에서 찾을 수 없는 설레임과 모험에 대한 열망을 채워준다는 점에서 현실에서 부족한 무언가를 찾기 위한 노력이라는 둘 사이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2. 영웅들판타지 소설은 영웅의 이야기이다. 기사, 또는 마법사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으며 모험을 통해서 아버지를 구한다든지(드레곤 라자), 왕국의 번영을 이끈다든지(위칼레인),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극복함으로써 사랑을 이룬다든지(세월의 돌), 복수를 이루는(태양의 탑) 성취적인 내용이 많다. 즉, 주인공은 운명 때문에 또는 다른 이유 때문에 모험에 뛰어들게 되며 그 모험의 결과로 어떤 것을 이뤄내는 것이 기본적인 구성이다. 이는 영웅신화와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며 이것에서 신화와 판타지 소설간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하지만 판타지와 신화에서의 영웅은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영웅신화에서는 영웅의 탄생이 비범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우리나라의 몇몇 신화만 확인해도 알 수 있다. 희랍신화의 경우에도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 대신의 아들로 고난을 겪은 후에 뛰어난 영웅이 된다.{) 이윤기 뮈토스 2권 영웅의 시대반면에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신분이 비천하거나 평범한 경우가 많다. 반지전쟁의 주인공은 평범한 호빗이며 드레곤 라자의 주인공은 초장이다. 이는 고대 사회와 현대 사회의 신분에 대한 의식 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고대 사회에서 신분은 절대적으로 주어진 운명과 같은 것이라면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는 도전의 대상이다. 따라서 신화의 영웅이 숭배와 존경의 대상이었다면, 판타지 소설의 영웅은 독자가 자신과 동일시 하고 싶어하는 대상인 것이다. 그렇지만 신화와 판타지 소설은 인간의 한계 그 이상을 꿈꾼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비록 판타지 소설이 현실과 관련없는 잠깐동안의 유희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인간이 드레곤을 해치우는 장면에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 쾌감은 헤라클레스가 케벨롭스를 굴복시킴으로써 인간이 죽음을 극복해 냈을 때 신화의 독자들이 느꼈을 쾌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