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목적은 보다 분명하다. 예레미야와 바룩은 그들이 살았던 격동의 시대에 대한 기록, 그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 이스라엘과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남기기를 소원했다. 요시야는 640년에 유다의 권좌에 오른다. 당시 그는 8세 였다. 그의 31년 간의 통치는 중동의 국제적 세력 구조에 있어 급진적인 변화를 보였던 시기였다. 앗수르의 앗수르바니팔은 부왕 엣살 하돈에게서 거대한 제국을 물려받았으나 통치 기간 중에 내외적인 압력으로 인해 그의 지배력은 약해지기 시작하여, 마침내 임종 때에 이르러서는 앗수르가 몰락 직전에까지 이르게 된다. 프사메 티쿠스 1세가 다스리던 애굽은 앗수르로부터 그 독립을 선언했는데, 이 때가 아마도 665년이었을 것이다. 앗수르의 북쪽 경계에서는 메대와 그 동맹 국가들인 리디아와 키메리오스가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 왔다. 652년에 바벨론은 혁명을 일으켰으며, 4년 간의 전투 후에 평온을 찾게 되었다. 자신의 제국을 유지하려는 앗수르바니팔의 노력은 상당한 정도의 성공을 누렸으나, 수십 년 간의 노력은 앗수르의 모든 자원을 고갈시켰으며 필연적인 몰락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앗수르가 강대국과 문제를 일으킴으로써 요시야는 민족적인 르네상스를 추구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었다. 요시야는 자신의 종교적, 제의적 개혁으로 기억되는 인물이지만, 또한 기억되어야 할 것은 이 개혁이 정치적인 국면도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요시야의 개혁에 관해서는 두 가지 전승이 존재한다. 역대기 저자에 따르면 개혁은 628년에 유다에서의 산당과 모든 이교 제의의 자취들을 제거하는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어서 므낫세, 에브라임, 시므온, 납달리에 이르기 까지의 동일한 운동으로 계속 되었다. 그 당시, 즉 예루살렘 성전 개혁이 이루어지던 622년의 율 법책의 발견과 함께 이 개혁은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유월절의 준수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예 루살렘에서의 제의 개혁을 수행하게 된다.
제4종의노래(사52:13-53:12)의속죄개념에대한구약신학적배경연구;제4종의노래와신약과의관계선지서제4종의노래와 신약과의 관계Ⅰ. 서론이사야서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the Holy One of Israel) 사상을 이사야서의 중심신학으로 인식해 왔다. 이사야서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정을 심판하시는 진노의 하나님으로, 그의 백성을 다시 구원하시는 제 2출애굽의 구속자로, 끝으로 시온의 회복자로 그려지고 있다.이사야 52:13-53:12은 기독교 시대가 열리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이 본문의 여러 논쟁점들 가운데 고난 받는 종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그 중심에 서 있다. 기독교 전통 안에서는 초대교회 시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신약성경의 본문들에 근거하여 제 4종의 노래의 ‘종’을 메시야로 간주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메시야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8세기에 비평적 학계에서 제믈러(J. S. Semler), 코페(J. B. Koppe), 아이크혼(J. G. Eichhorn) 등에 의해 이사야 40-66장이 이사야의 저작임이 부인되고 넷째 종의 고난 받는 종은 바벨론 포로기의 고난 받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황에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남에 따라 ‘종’에 대한 메시야적 견해는 점점 약해지고 ‘종’을 집합적 공동체로 보는 견해가 비평적 학자들 간에 우세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둠(B. Duhm)이 네 개의 ‘종의 노래’ (사 42:1-4; 49:1-6; 50:4-9, 52:13-53:12)가 이사야서 40-50장에 삽입된 노래이며 종의 노래들의 ‘종’을 집합적 공동체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함에 따라 ‘종’의 정체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둠의 제안 이후 종의 노래들에서의 종의 정체에 관하여 학자들 간의 논의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채 계속 진행 중이다.Ⅱ. 본론1. 제 4종의 노래에서 ‘종’의 정체“종이 누구스라엘의 운명에 비유하여 집합적이 존재로 본다. 넷째, 이스라엘이 양으로 비유된 구약성경의 다른 본문들, 예컨대 에스겔 37장과 시편 44:22(“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에 비추어 보면 넷째 종의 노래의 종을 집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위의 네 논지는 넷째 종의 노래의 종을 집합적 이스라엘로 해석하는 데 있어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지 못한다. 따라서 종의 정체를 이스라엘로 판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위해 고통 받을 수 없다. 만약 이스라엘의 고통이 이스라엘의 포로기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면 포로기에 이스라엘이 받은 고통은 죄가 없는 고통도 아니고 다른 이를 대신하는 고통도 아니기 때문에 넷째 종의 노래의 종의 묘사와는 현격히 다르다. 또한 이스라엘은 본문이 묘사하는 바와 같이 온유한 양과 같이 순순히 포로지로 끌려가지도 않았다. 본문의 ‘우리’는 다른 민족을 지칭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지칭한다. 만약 ‘우리’가 다른 민족을 지칭하고 ‘종’이 이스라엘을 지칭한다고 가정할지라도 구약성경 어디에도 다른 민족의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이 고통을 받는다는 사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 가정은 적절하지 않다.? 이스라엘의 경건한 소수일찍이 1792년에 파울루스 (H. E. G. Paulus)는 제 4종의 노래에서 종의 정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그의 이론을 제안하였다.이스라엘 민족전체를 여호와 예배자로 볼 수 없다. 단지 여기서는 이스라엘 민족 중순전하게 여호와를 예배하는 일부가 집합적으로 언급된 것이다. 그들이 나머지 유대인들 때문에 고통 당했다. 소수의 유대인들이 나머지 유대인들과 함께 고통 당하고 그들을 위해 고통당한 것이다.분명히 이 이론은 이스라엘 전체를 종으로 간주하는데 있어서의 큰 어려움, 즉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위해 고통 받는다는 모순을 어느 정도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파울루스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그룹과여호야긴, 모세등이 강력한 후보로 대두되었다. 예레미야가 그 종임을 증명하기 위해 예레미야서와 넷째 종의 노래의 절들이 비교되었다. 이사야 53:2의 연한 순은 예레미야 1:6에 나타난 예레미야의 고백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에 비교되었고, 이사야 53:7의 “마치 도살로 향하는 한 양처럼”은 예레미야 11:19의 “나는 끌려서 도살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양과 같으므로”에 비교되었으며 이사야 53:12의 “내가 그에게 많은 것을 할당할 것이고”는 예레미야 40:5의 “ 그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에 비교되었다.? 예언자 자신넷째 종의 노래의 종이 예언자 자신을 지칭하느냐의 의문은 일찍이 사도행전 8:34의 에디오피아 내시의 질문(“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르킴이냐”)에서 발견되고, 모빙켈 (S. Movinckel)은 넷째 종의 노래의 종이 이사야 자신을 지칭한다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이 입장은 본문에 비추러 볼 때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 후겐버거가 잘 지적하듯이 이사야 53:1 이하에서 “우리”는 예언자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 민족을 지칭하는데 그렇다면 53:6에서 예언자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 민ㄴ족의 죄악을 담당한 ‘그’가 예언자 자신이 될 수 없다.? 메시야이사야 넷째 종의 노래의 종을 메시야로 간주한 고대의 대표적인 유대문서는 요나단의 탈굼이다. 요나단의 탈굼의 이사야 52:12은 “보라, 나의 종, 메시야...”로 시작한다. 이후 유대 공동체의 탈무드와 미드라쉬에서 이사야 넷째 종의 노래의 종을 간헐적으로 메시야로 보기도 하였지만 일반적으로 유대교 전통에서는 그 종을 집합적 이스라엘로 해석하기를 선호하였다. 이는 넷째 종의 노래의 종을 메시야로 해석하고 그 메시야를 예수와 연결하는 기독교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물론 기독교 안에서는 18세기 이전까지 넷째 종의 노래의 종을 메시야로 보는 견해가 정설로 인정되어 왔고 그 입장의 근거는 넷째 종의 노 승리와 존엄의 상이 노래의 처음과 끝의 신탁부분에 함께 나타난다. 넷째 종의 노래의 종을 메시야로 보는데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이 위의 제안과 같이 해소 될 때 넷째 종의 노래의 종의 정체는 그의 고통을 통해 그의 백성을 구원하는 메시야로 볼 수 있다.2. 제 4종의 노래와 신약과의 관계이사야서의 예수 그리스도 관련 예언들 중에서 백미는 여호와께서 당의 구속을 통한 구원의 원리 내지는 법을 이 땅에서 성취하도록 예비하시고 파견하신 메시야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여러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네 편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 (Song of the Lord’s Servant)라 할 수 있다. 네 번째 노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구원 받은 성도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 수난을 받으시고 구속 수난을 성취하신 이후 여호와로부터 높이심을 받은 그 전과정을 조망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이 ‘고난 받는 종의 노래’에는 구약 성경 가운데 그 어떤 본문보다도 메시야 예수의 인생의 구속을 위한 수난 사역의 세부 요소들이 생생하고도 비장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메시야의 숭고한 희생의 자세와 그 위대한 결과에 대한 감격과 찬탄 및 구속 수난의 수행을 위하여 처절하게 낮아지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역동적 승귀에 대한 기쁨 등 기독교 진리의 핵심 요소들이 눈에 보이는 듯한 생생한 이미지들과 가슴 울리는 시적 운율에 담겨 표현되고 있다.하나님과 그분의 방법들에 대한 보편적 진리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믿음에서 극히 중요한 것으로서, 속죄일에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짐승의 희생을 통한 것만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자원하는 사람을 통한 대속의 원리이다. 유익의 수령자들이 희생을 통하여 자신을의 죄를 고백하고 그 사람이 자신들을 위해 죽었다고 인정할 때 (사 53:4-6), 그리고 주권자가 그 속죄의 효력을 인정한다고 동의 할 때 (53:10-12), 그 속죄는 효력이 있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을 이러한 관점으로 고찰해53:12의 내용대로 그는 자신을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는” 것을 감수할 것이고, 또한 “자기 영혼을 버려 사람에 이르게 하며...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이사야서의 고난 받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야웨의 종’으로 간주하신 것이다.2) 마가복음 10장 45절에 나타난 예수의 종되심예수는 이기적이고 헛된 영광을 구하는 제자들에게, 비록 죽음을 코 앞에 둔 시점이지만, 겸손과 섬기의 도에 관하여 교훈하실 때 사 53:1, 12을 간접인용하면서 막 10:45의 말씀을 하신다. 고난 받고 다른 많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는 ‘야웨의 종’으로서 그리스도는 자신이 가르치는 교훈의 살아있는 직접적인 모본이 되신다. 본 절의 ‘인자가 온 것은’이라는 어구는 이 구절의 맥락을 메시야적으로 만든다.대속의 죽음을 앞둔 예수는 이사야의 고난 받는 종으로서 자기 자신을 확실히 동일 시 했고, 자기의 제자들에게 ‘종들’이 되기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두려움 많았던 그들이 나중에 진정한 ‘종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야웨의 종’의 대속의 사역과 모본에 의해 가능했다.3) 마가복음 9장 12절에 나타난 예수의 종되심막 9:12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설명되었듯이, 제 2의 엘리야라고 할 수 있는 세례 요한은 메시야로서의 예수에 대한 예비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절과 고난에 대한 선구자였다. 거절과 고난의 이러한 패턴은 엘리야와 이사야의 ‘야웨의 종’과 요한과 예수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까지 적용된다. 사 53이 막 9:12에서 사용된 것은 신약에서의 구약 본문의 전형적/패턴적인 사용의 예이다. 이것은 몇 가지 구약 구절과 암시적 인유와 몇가지 인물 이미지와 사건 이미지의 복함적 사용 등을 통한 구약과 신약 사이의 상호본문적 세계의 복잡한 성격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그 안에서 살았던 문헌적, 개념적 세계였다.4) 정경적 종합: 그 종(The Se여준다.
바울서신과 신학빌립보서 2장 5-11절 석의빌립보서 2장 5-11절 석의1. 서론빌립보서는 옥중서신으로 바울이 가이사랴보부터 로마에 호송되어 감옥에 갇혀 있을 당시 기록된서신이다.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2년 동안 갇혀 있었으며 이 기간에 4권의 옥중서신을 기록한다. 에베소서는 교회론에 대한 깊은 진리를 말하고 있고, 골로새서는 기독론을 보여주고 있다. 빌립보서는 교회 생활에 대해, 빌레몬서는 믿는 자의 개인 생활에 대한 교훈을 보여준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교리적인 책으로 본다면, 빌립보서와 빌레몬서는 실제적인 생활에 교훈을 주는 책으로 볼 수 있다.본문 2장은 빌립보 신자들과 지도자들에 권면하는 편지이다. 빌립보서에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인간미와 사랑이 깊게 서려 있다. 당시 빌립보 교회의 분파문제를 전해들은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을 것을 권면하면서 하나가 되라고 당부하고 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신자들과 지도자들이 닮아야 할 최고의 모범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짐을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짐을 통해 성도들이 이것을 본받고, 그들도 겸손과 자기희생적 사랑으로 공동체의 하나 됨을 이루라고 권면하고 있다.2. 빌립보서 개관1) 저자와 수신자빌립보서는 바울이 저자라고 주장된다. 그 이유는 언어와 문체 그리고 빌립보서에 나타나는 관용구와 바울이 사용하는 개념 등은 다른 서신서에서도 나타난다. 바울의 문체, 언어, 사상, 거짓교사들에 대한 반박 등이 잘 나타나 있어서 바울의 저작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바울이 빌립보서의 단독 저자라는 것을 의심 없이 믿고 있다.2) 기록 장소 및 연대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한 장소에 대하여 학자들마다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로마설, 에베소설, 고린도설, 가이사랴설 등인데, 빌립보서에 ‘시위대’라는 용어의 등장으로 인해 고린도설의 가능성은 희박해 진다. 따라서 로마, 에베소, 가이사랴로 함축이 되는데, 빌립보서의 저작 장소는 에베소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구조분석Ⅰ. 바울의 인사말 (1:1-11)Ⅱ. 바울이 처한 상황 (1:12-26)Ⅲ. 바울의 권면 (1:27-2:18)A. 핍박 가운데서 굳게 서라 (1:27-30)B. 겸손으로 하나가 되라 (2:1-4)C. 그리스도의 본을 기억하라 (2:5-11)D.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 되라 (2:12-18)Ⅳ. 바울의 동역자 (2:19-30)A. 디모데 (2:19-24)B. 에바브로디도 (2:25-30)Ⅴ. 바울의 경고 (3:1-4:1)A. 율법주의에 대해 (3:1-16)B. 불법 행위에 대해 (3:17-4:1)Ⅵ. 바울의 훈계 (4:2-9)Ⅶ. 바울의 감사 (4:10-20)Ⅷ. 바울의 작별인사 (4:21-23)3. 역사적 배경빌립보가 로마 제국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그 곳 사람들이 로마 시민권을 얻게 된 것은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보다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역사적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첫 번째 사건은, B.C. 42년 줄리어스 시저를 살해한 부루터스와 카시우스의 공화국 군대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군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게 되고, 이 전투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자기 휘하의 장교들과 군사들을 이 빌립보에 정착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두 번째 사건은 BC 31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간에 유명한 악티움 해전이 벌어지게 되는데, 여기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여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가 되어 자신을 ‘아구스도’로 부르고, 빌립보를 그의 중요한 군사기지로 삼았었다. 그는 빌립보에 많은 로마 군인들, 제대 군인들, 이탈리아로부터 쫓겨난 안토니우스의 부하들을 이곳에 거주시켰다. 그래서 이 빌립보를 로마의 특별 식민지로 만들고, 그곳 시민들을 로마의 시민들로 대우하며 ‘이탈리아의 벗’이라 불렀고, 이탈리아 반도 내의 로마인들에게 부여했던 동일한 특권을 그들에게 부여했던 것이다.빌립보는 제 2의 로마였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히 빌립보 시민들은 로마의 시민으로서의 긍지가 대단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기소한 이유가 무엇이었μενο?· κα? σχ?ματι ε?ρεθε?? ?? ?νθρωπο?NIVrather, he made himself nothing by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 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by becoming obedient to death-- even death on a cross!개역개정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8BGT?ταπε?νωσεν ?αυτ?ν γεν?μενο? ?π?κοο? μ?χρι θαν?του, θαν?του δ? σταυρο?.NIV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by becoming obedient to death even death on a cross!개역개정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9BGTδι? κα? ? θε?? α?τ?ν ?περ?ψωσεν κα? ?χαρ?σατο α?τ? τ? ?νομα τ? ?π?ρ π?ν ?νομα,NIVTherefore God exalted him to the highest place and gave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개역개정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10BGT?να ?ν τ? ?ν?ματι ?ησο? π?ν γ?νυ κ?μψ? ?πουραν?ων κα? ?πιγε?ων κα? καταχθον?ωνNIV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개역개정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11BGTκα?는 뜻으로 이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이 중심축이 되시는 삶은, 주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바울은 빌립보 신자들이 갖기 원하는 그 마음을 예수님의 낮아짐에서 배우도록 권고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이 마음을 가지라고 권고 하고 있다. 이것을 통해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는 신앙의 자세를 버리고 그들이 가져야 할 바른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2)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6절)‘본체(μορφη)’는 ‘형태’, ‘외모’, ‘모양’ 등의 뜻을 지니는데 7절에서도 ‘모양(σχημα)’이 등장한다. 6절의 ‘모양(μορφη)’과 7절의 ‘모양(σχημα)’은 차이가 있다. 6절에서는 상징적인 모양으로 내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7절에서는 감정, 언어, 체질, 행동, 습관 등과 같은 외형적으로 세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6절의 모양, 곧 ‘본체’는 그리스도가 원래 하나님이시라는 정체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7절의 ‘모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외형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6절에서 그리스도는 성육신 이전과 이후가 본질상 내적으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에서처럼 성육신 이후에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서 영광만 내어 놓은 것이지 하나님 되심을 중지 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본체는 하나님의 신성과 신적 위엄을 나타낸다. 동등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의 정의에 따르면 어떤 사물이 크기와 양, 질, 성질, 수치에서 정확히 동인한 경우를 가리킨다, 모든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며 그분의 지상 사역 기간에도 그 동등성은 끊임없이 주장되었다. (참고, 요5:18; 10:33, 38; 14:9; 20:28; 히 1:1-3)3)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7절)‘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십자가 죽음은 완전한 낮추심이요, 완전한 복종을 의미한다.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저주 받은 것으로서 거리끼는 것이 되고 이방인에게는 모든 형벌 중에 가장 가혹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성육신보다 더 낮은 낮아지심이었다.5)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9절)“이러므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한 결과로서라는 의미를 가지고, 이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주신 것이다. 즉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내어주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한 그리스도를 동등한 본체로 회복시킨 것이다.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신다. 이 높임은 ‘최고의 높은 자리로 올리다’는 말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주셨다. 이 높아지심은 순차적으로 또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그를 가장 높이신 것이다. “지극히 높여”는 예수 그리스도가 낮아지신 성육신보다 더욱 위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높이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높이심은 지극히 높이셨고 모든 만물 위보다 더욱 높아져서 최고의 권위 있는 자리로 높아지셨음을 뒤따르는 절들은 보여준다.그를 높이신 것은 바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다. “이름”은 어떤 개인을 구별하는 수단이고, 그 개인의 본성인 내적 존재를 밝히는 수단이고, 성격과 신분의 지표이다. 하나님은 죽으신 예수를 높여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본성과 존재와 신분과 성격을 가지신 분으로 세우셨다. 예수님에게 주어진 뛰어난 이름은 11절에 나타나는 “주”라는 것이다. “주”는 모든 만물과 우주의 통치자, 주권자, 주인임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여 뛰어난 이름을 주셨는데 그 이름은 “주”이다.6)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10절)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높이신 분명한 이유는 모든 이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
바울서신과 신학바울서신 장별 요약바울서신 장별 요약로 마 서1. Opening* Sender? 1:1 ? 발신자를 밝힘? 기록시기 : 3차 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서 기록했다.“…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행20:1-3)?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로 부르심 받음,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 입은 자* Receiver? 1:2-6 ? 수신자의 정체성?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모든 이방인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 받은 자* Opening Greeting? 1:7 ? 로마교회에 문안?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함.2. Thanksgiving & Prayers? 1:8-17 ?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을 알림? 쉬지 않고 로마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방문하기 위해 노력함.?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3. Body* Body-opening? 1:18-32 ?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만물에 하나님의 능력이 보여 알려짐. 그러나 하나님을 배반하는 피조물.?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의 악함을 나열하고 있다.* Body? 2:1-15:13 - 1-11장 교리적 부분, 12-15장 실천적 부분? 1:18-5:11 죄와 율법과 그리스도와 믿음? 5:12-8:39 죄와 그리스도와 율법과 성령? 9:1-11:36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유대인의 불성실함? 12:1-15:13 하나님의 의의 실제적 시행* Body-closing? 15:14-33 ? 바울, 이방인 선교, 로마? 로마 방문을 위해 노력했지만 여러 번 길이 막혔음을 밝힌다.? 성령의 능력으로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전함.4. Closing? 16:1-27 ? 성도들에게 인사와 문안?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할 것을 권면.? 동역자들과 교회에 문안하고 하나님의 찬양하며 마무리.고 린 도 전 서1. Opening* Sender? 1:1 ? 바울 자신의 정체성과 소스데네? 기록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권면한다.? 7:1-40 결혼한 사람들을 위한 교훈 : 부부는 분방하지 말고 자기 몸을 자기가 주장 하지못한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정욕을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 8:1-11:1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고 우상 제물 먹는 것은 믿음이 약한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우상숭배를 피하라. 다 하나님의 영광을위하여 하라.? 11:2-16 예배 중에 수건을 쓰는 문제? 11:17-34 성만찬을 두고 일어난 분열? 12:1-14:40 성령의 은사는 다양한데 사랑 안에서 할 것이고 남용하지 말라.? 15:1-58 성도들의 육체의 부활* Body-closing? 16:1-12 ? 성도를 위한 연보? 1-4 헌금준비? 5-9 바울의 여행계획? 10-12 디모데의 방문 제안, 아볼로 귀환 문제4. Closing? 16:13-24 ? 스데바나 가정의 모범과 각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 스데바나 가정의 경건한 모범 :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주 예수의 은혜가 함께하길 문안함.고 린 도 후 서1, Opening* Sender? 1:1 ? 바울과 디모데?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형제 디모데* Receiver? 1:1 ? 수신자 고린도 성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 Opening Greeting? 1:2 ? 은혜와 평강?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2. Doxology? 1:3-11 ? 위로와 고난?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 고난을 주심.3. Body* Body-opening? 1:12-2:13 ? 계획 변경에 대한 바울의 해명?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으로 서신을 쓰고 있음을 밝힌다.* Body? 2:14-13:14 ? 해결된 위기와 새로운 위기에 대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말미암는다.? 3:1-4:31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그것이 의로 여김 받았듯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다.? 5:1-12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자로써 오직 사랑으로서로 종노릇하고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5:13-26 성령을 따라 행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 Body-closing? 6:1-10 ? 짐을 서로 지라? 짐을 서로 져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무엇을 심을 것인가! : 육체 or 성령4. Closing? 6:11-18 ? 오직 십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믿음으로 새로 지으심을 받은 것이 중요하다.에 베 소 서1. Opening* Sender? 1:1 ? 발신자를 소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고전1:1)?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고후1:1)* Receiver? 1:1 ? 수신자 소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골1:2)* Opening Greeting? 1:2 ? 은혜와 평강?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롬1:7)2. Doxology? 1:3-14 ?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찬양?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음.? 하나님의 예정하심, 경륜, 영광을 찬송3. Thanksgiving & Prayers? 1:15-23 ? 감사와 기도?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시고 교회의 머리되신다.4. Body* Body-opening? 2:1-10 ?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목? 긍휼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으나 구원 받은 우리? 우리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음 받았다.* Body? 2:11-3:21, 4:1-6:9 ? 바울의 감사와 기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복음 실천하는 결과?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히 됨* Body? 2:1-4:1 ? 그리스도인의 삶,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영적 기대? 2:1-18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귐? 2:19-30 디모데를 천거,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설명? 3:1-4:1 영적인 간절한 기대* Body-closing? 4:2-9 - 교훈? 마음을 같이하고, 기뻐하고 기도하라4. Closing? 4:10-23 ?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에 대한 감사와 끝맺음?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함을 배움.?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로 풍족하게 되었고 축복을 빔.골 로 새 서1. Opening* Sender? 1:1 - 발신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바울과 형제 디모데* Receiver? 1:2 - 수신자?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 Opening Greeting? 1:2 ? 은혜와 평강?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을 기원.2. Thanksgiving & Prayers? 1:3-8 ? 감사의 기도? 기도할 때마다 너희를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에바브라에 대한 칭찬과 신뢰하고 따를 것을 권면? 골로새 성도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표현함.3. Body* Body-opening? 1:9-2:5 ?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교회의 머리되심? 예수님은 모든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그를 위하여 창조됨을 밝힌다.?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되시고 화평을 이루신다.?바울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의 일꾼으로 세움 받았다.* Body? 2:6-4:1 ?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로 살라? 예수그리스도의 모든 충만하심 안에 있는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다. 다시 살리심을 받은우리는 위의 것을 찾고 세상의 정욕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의 실천은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다.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녀, 상전과 종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Body-closing? 4:2-6 ? 계속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고 깨어서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삶을 살 것을 권면올 것이다. 주의 날은 밤에 도둑같이 임할 것이니 깨어 있을 것을 권면한다.* Body-closing? 5:12-22 ? 성령 역사 안에 거하라? 사랑 안에 화목하고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라4. Closing? 5:23-28 - 끝인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기도하고 미쁘신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다.데 살 로 니 가 후 서1. Opening* Sender? 1:1 - 발신자?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Receiver? 1:1 - 수신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Opening Greeting? 1:2 ? 은혜와 평강?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2. Thanksgiving & Prayers? 1:3-12 ? 부르심에 합당한 자의 삶?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 인내와 믿음을 지키는 교회에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부르심에 합당한 자의 삶을 살도록 기도한다.3. Body* Body-opening? 2:1-12 ? 미혹되지 말라? 사단의 권세에 미혹되지 말고 진리를 붙들라* Body? 2:13-3:5 ? 진리를 붙들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라? 복음을 붙들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로 들어가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Body-closing? 3:6-15 ? 게으름을 경계하라? 게으름을 경계하고 부지런히 수고하고 일하라.4. Closing? 3:16-18 ? 끝인사, 축복? 평강의 주께서 항상 함께 하실 것이다.디 모 데 전 서1. Opening* Sender? 1:1 ? 발신자?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으로 사도가 되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Receiver? 1:2 - 수신자?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 Opening Greeting? 1:2 ? 은혜와 긍휼과 평강?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기원2. Body* Body-o.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그는 순교자인가 침략자인가?한국기독교회사로버트 토마스 선교사.hwpⅠ 서론전 세계 각처에 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있다. 대한민국 역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고 또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그 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순교자들 역시 존재한다.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 사람들을 우리는 ‘순교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순교자를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순교자인지 침략자인지 나뉘는 경우도 있다.지금 대한민국 땅에 자리 잡은 지 100년이 훌쩍 넘어선 기독교가 어떻게 전해졌는지, 그 과정 중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그 중심에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를 볼 필요가 있다. 토마스 선교사를 향한 평가는 양분 되어 있다. 순교자인가 침략자인가? 그의 순교에 대한 증언들은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평양직역 선교의 개척자 사무엘 마쳇은 1909년 한국선교 25주년 기념식 때 한국의 “복음전도사역”이라는 자신의 논고 맨 서두에서 “한국에 들어온 첫 선교사” 토마스로 증언했고, 장로교 개척선교사 언더우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국에 입국하기 전 1884년 여름 영국 런던선교회를 방문해 그곳에서 런던선교회 소속 토마스 선교사가 한국에 입국했다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토마스의 순교를 높이 평가한 것은 장로교 선교사들만이 아니었다. 1915년 미 감리교 개척 선교사 존스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온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을 “최초의 복음주의 선교사가 그 땅에서 순교자의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평가했다.한국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심어준 토마스를 우리는 깊이 알아야 한다. 큰 부흥을 경험했고, 지금은 위기에 있는 한국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의 모습을 통해 ‘복음의 초심’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Ⅱ 제너럴 셔먼호는..1. 제너럴 셔먼호는 어떤 문제에 있는 제너럴 셔먼호 관련 기록은 보고 형식이기 때문에 보고서가 그렇듯이 사건 발생과 장소와 날자가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었다. 에 있는 제너럴 셔먼호 사건 기록에 담겨진 셔먼호 입국 과정을 먼저 면밀하게 검토한 후 선교 관력기록과 의 사료문제를 살펴보려 한다.1866년 7월 29일 제너럴 셔먼호가 천진을 출발 할 때, 그 배에는 토마스, 프레스턴, 윌슨, 페이지 등 4명의 외국인들만 승선했다. 그러나 지푸에 도착하였을 때 영국인 호가스를 화물관리인으로 그리고 메도우 회사 소속 한 관동사람 금전교환인을 승선스켰다. 1866년 8월 9일 지푸를 떠날 때 제너럴 셔먼호에는 5명의 외국인들과 중국인과 말레이시아인 19명 등 총 24명이 승선했다. 1866년 8월 9일부터 8월 16일까지의 1주일 간의 일정을 재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고종실록에 의하면 이 기간 제너럴 셔먼호는 백령도, 초도곶, 석도를 거쳐 대동강을 향해 항해를 계속했다. 민경배는 8월 16일 셔먼호가 평남 용강현 다미면 영주포에 도착했다고 기록하나 고종실록에는 이 부분이 나타나지 않는다.2.1 고종실록에 실린 제너럴 셔먼호 선교 관련 기록 문제토마스의 제 2차 내한과 선교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 담긴 선교 관련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은 조선 측의 입장을 중심으로 기술했기 때문에 제너럴 셔먼호에 승선한 토마스의 선교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교와 관련된 기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은 음력 7월 12일 [양력 8월 21일] 문정관에게 최난헌이 종교적인 질문을 던진 사실도 기록하고 있다.최난헌 [崔蘭軒 : Thomas, Robert Jermain] 말하기를, 『귀국은 무엇 때문에 천주교인들을 쫓아내는가? 지금 우리 예수성교는 천도를 체험하고 인심을 바르게 하여 나쁜 풍속을 교화시키기 때문에 인의충효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종교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법으로 금하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감히 마음대로 익히지 못한다고 대답해 력 7월 15일자에는 이팔행이 두 번이나 청국인이라고 기록했다가 음 11월 5일자 기록에서는 덴마크 인으로 기록되었다. 은 문정 첫날부터 기록상의 여런 문제를 안고 있다. 은 이들 서양인의 생김새를 기록하면서도 5명 중 4명만 언급하고 있다. 그 외 다른 의 많은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고종실록에 실린 제너럴 셔먼호 관련기록 문제점 제너럴 셔먼호 기록 문제실 제고종실록 오류1상선의 국적미국영국2제너럴 셔먼호 전체 탑승자24명30명3탑승 서양인들 수5명4명4탑승 서양인 5명의 국적미국, 영국미국, 영국, 덴마크5탑승자 신분민간인문관과 무관, 1품, 4품6탑승 아시아인들 수19명24명7탑승 아시아인들 국적청국, 말레이시아청국, 태국8탑승 서양인 나이 (예, 토마스)27세38세9토마스민간인문직 1품10호가스민간인무직 1품11프레스톤민간인무직 1품12뻬지미국인덴마크13덴마크 위치1500리14리바항덴마크 인확실히 의 제너럴 셔먼호 관련 기록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의 셔먼호 관련 기록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기록의 부정확성은 국내 다른 관련 기록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종교의 에는 활자본에는 1866년 9월에 일어난 사건을 고종 5년 1868년으로 기술하고 있고 영국인 토마스 선교사도 프랑스 선교사로 기술하고 있다. 동일한 문제가 구한말 매천 황현이 1864년부터 1910년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무슨 기록이던 기록의 의도와 성격이 반영되게 마련이다. 은 보고의 생명인 객관성을 상실하고 보고자가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보고한 부분과 사실적 오류를 상당히 담고 있으며 외 은 소문에 근거해서 기록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사건의 전후관계와 가장 기본적인 그 사건이 일어난 발생연도마저 틀리다. 그것도 실제 보다 2년이나 늦은 1868년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과 기타 국내 자료들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Ⅲ 토마스 선교사1. 토마스 선교사의 동향과 선교 문 위험한 조선에 입국해서 애써서 한국어를 공부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넷째, 토마스는 1차 선교를 하고 돌아와서 주변의 사람들을 방문하고 기도회를 계속 인도하며 선교열을 불태우고 있었다. 당시 쇄국정책에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국에 입국해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성경을 전해 주고 다시 한국인들에게 선교할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을 한국에 대한 선교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비록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이후 한 동안 위기를 만난 것이 사실이지만 이 때쯤에는 이미 토마스는 선교열을 충분히 재충전한 것으로 보인다.1차 내한 후에 토마스는 다시 한국을 방문하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1차 내한 후에 그가 보여주었던 일련의 행적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토마스는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열어 놓고 길을 찾았다. 그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한국에 입국하기를 갈망했다. 심지어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이 리델 신부로부터 세 명의 불란서 신부의 처형 소식을 전해듣고 한국정부를 문책할 목적으로 불란서 함대를 출동시켜 한국을 침략할 계획을 세우고 안내자 겸 통역으로 동승해 줄 것을 제안했을 때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갑자기 인도차이나 폭동이 발생해 로즈 제독이 그곳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한국정벌은 취소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토마스는 미국인 프레스톤의 소유인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조선에 입국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1866년 7월 “한국에서 반포하기 위해 몇 권의 중국어 성경을 가지고” 통역 겸 안내자로 승선했다. 토마스가 이 배에 승선한 목적이 무엇인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2. 토마스가 제너럴 셔먼호에 승선한 목적토마스의 2차 내한과 관련하여 확인해야 할 또 하나는 토마스가 제너럴 셔먼호에 어떤 자격으로 승선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가 셔먼호에 승선한 목적이 통역이라고 당시 토마스 관련 편지 문헌들에 등장하고 대부분의 2차 자료들이 이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보낸 마지막 편지에 짙게 담겨져 있다. “나는 상당한 분량의 책들과 성경을 가지고 떠납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생각을 하니 얼굴이 달아올라 희망에 부풉니다.” 토마스는 조선인들이 자신의 한국방문을 대대적으로 환영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1차 방문 때 조선인들이 보여주었던 복음에 대한 반응과 환대 그리고 그가 얻은 여러 정보들을 통해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토마스의 한국선교는 다음 몇 가지 면에서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첫째, 주지하듯이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반 외국인 정서가 정점에 달하고 있었다. 둘째, 당시 조선에는 불란서 함대가 조선을 공격해 올 것이라는 소문이 팽만했고, 조선 사람들이 외국인이라면 모두 불란서인으로 인식할 정도로 반불란서 정서가 충천했다. 셋째, 비록 상선이라고 하지만 중무장을 한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었다. 토마스가 셔먼호를 타고 조선에 입국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런던 선교회 총무 멀린스가 “무장한 선박을 타고 조선에 나간다니 이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요, 더욱이 당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 곧 북경에 돌아와서 당신에게 맡겨진 임무에 충실하십시오.” 라고 경고성 편지를 서둘러 보낸 것도 그 때문이다. 이 편지가 도착하기 전 토마스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조선을 향해 떠났다.3. 그의 죽음에 관련된 해석토마스의 죽음에 대한 서술과 해석에 대한 문제를 짚어 본다. 토마스의 마지막 순간의 진실을 재구성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은 단순히 지금부터 150년 전의 일이라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죽음과 관련하여 남겨진 1차 사료가 거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제너럴 셔먼호의 생존자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모든 정보는 조선군관측 기록, 증언에서 나온 것이다. 한쪽의 입ㅈ아이 반영된 자료라는 한계를 전제하고 접근할 수밖에 없다. 과 기타국낸자료, 지푸 주재 미 영사 샌포드가 북경 미국 공관 벌링게임에게 보낸 보고서, 제임스 게일의 “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