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다 보면 올리버 스톤의 영화 '7월 4일생'이 떠오른다. 그저 잘생긴 톰 크루즈가 좋아서 보게된 영화지만, 수년이 흘렀음에도 내 기억 속에 그 줄거리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유일한 전쟁 영화가 아닌가 싶다.주인공의 이름은 론 코빅이다.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기꺼이 베트남으로 가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무고한 민간인 학살과 전우의 죽음에 대한 자괴감, 부상으로 불구가된 하반신뿐이다. 전쟁터를 뒤로 하고 귀향하지만 베트남 참전 용사에 대한 차가운 냉대와 거세지는 반전 운동의 기운에 그는 부상보다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 결국 그는 전쟁 자체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반전 운동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전쟁에 참여한 자가 전쟁을 극구 반대하고 나서는 아이러니. 어쩌면 그것은 아이러니가 아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전쟁의 무의미함을 넘어선 참담함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전쟁이 어떤 식으로 인간의 정신을 황폐화시킬 수 있는가? 책의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수많은, 평균 연령 18~19세의 감수성 예민한 청년들이 목적도 없는 전쟁에서 미쳐 갔다. '미쳐 갔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미라이 양민 학살 사건'같은 경우는 전쟁의 광기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베트남 전에서 전투 현장을 경험한 병사의 25%가 마약 복용과 관련하여 체포되었다는 사실, 병사들이 상관 장교를 살해하는 하극상의 풍조 만연, 이런 것들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기나긴 전쟁으로 고통받는 베트남 민중들 못지 않게 그들 역시 피해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의 가치관이, 신념이 분열되어 갔다. 애초부터 베트남의 진정한 통일에는 관심이 없었던, 명분뿐인 이데올로기, 지리한 정치 놀음에 농락당한 희생양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병사들은 전투를 피하지는 않았으나 결코 찾아다니면서 싸우지도 않았다」는 대목은 이 전쟁에서 미군들의 동기부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자유 민주주의의 수호? 베트남의 참된 평화? 병사들은 그들이 싸우는 의미에 대하여 깊은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국제 사회에서는 명분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한가보다. 이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다. 세계 제1의 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자존심은 실로 오랜 기간 그들의 발을 전쟁터에 붙들어 놓았다. 나의 얄팍한 지식으로 가타부타하기는 좀 뭣하지만 미국은 지금까지도 너무 지나친 영웅주의에 빠져 있다. 그러한 영웅주의가 질식사해버린 한 곳이 바로 베트남이 아닐까? 오늘날에도 세계 경찰 국가로서의 미국'의 이름으로 자행되어지는 만행을 보며 나는 가끔씩 어이없음을 느끼곤 한다.인류는 끝없는 분쟁과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가?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했지만 전쟁이 화염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수많은 지역에서 전쟁은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시아에서 아프리카, 중동에서 발칸까지 TV에서 흘러나오는 이 처참한 살육 현장에 관한 보도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왜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인가.「전쟁이란 인류의 얼굴에 남기는 상처고 오점일 뿐이다」p.387실로 베트남전은 미국의 얼굴에 남긴 크나큰 상처고 오점인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궁금했던 점은 과연 베트남전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하는 것이었다. 조금 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이 참담한 전쟁의 의미도 재평가될 것이다.일전에 읽은 어떤 잡지에서는 매년 30만명의 어린이들이 전쟁의 총부리에 쓰러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이란 아무리 떠들어봐야 실제로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은 그저 책이나 TV영상을 통한 피상적인 것들이다. 결국 전쟁에서 남는 것은 우리가 결코 완벽히 이해하지 못할, 힘없는 민중들의 무고한 희생과 치유 불가능한 휴유증 뿐이다.이 책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은 일본의 패전에 이어진 베트남의 독립 선언부터 기나긴 전쟁의 끝에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기 까지의 과정을 매우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가 배치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시간적 배열이라기 보다는 일정한 주제를 두고 교차적으로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약간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말이다.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소설 못지 않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서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