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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철학] 내가 바라는 교육의 방향
    내가 생각하는 교육 청사진1. 들어가면서우리는 누구나 나라면 지금처럼 교육을 이끌어가지 않겠다고 하며 교육부의 정책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범인과 다를 바 없다. 단지 전에는 아주 막연하게 고등학교 입시만 생각을 했는데 지금도 역시 막연하게 생각을 하는 것이긴 하지만 전과 달리 고등학교 입시만 바라보지 않는다. 내가 교육대학원을 와서 바뀐 것이 있다면 교육 정책이 교육을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교육 정책도 온전히 사람만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단지 여러 교육 정책의 맛을 보았던 사람 중 하나로 이런 것은 좀 고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펼쳐보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2. 내가 생각하는 교육 개혁1) 대학우리의 대학은 요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선전을 하고 있다. 그 선전을 위해 매체를 통한 광고를 한다. 그 광고를 위한 돈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지 알 길이 없지만 광고에 혹하여 대학을 가보면 그 광고로 인해 기대하게 된 만큼의 대학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시설적인 면만 신경을 쓸 뿐 그 외 면에서는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 조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일 때가 많다.도대체 왜 대학은 학생을 끌어오기에 여념이 없을까?1980년대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긴 여러 대학은 대학생이라는 말이 주던 옛날의 값어치를 떨어뜨리고 오히려 옛날의 입시를 통해 들어가는 고등학교 수준이 되어버린 느낌을 주고 있다. 어느 순간 어느 정도 공부를 하면 누구나 대학생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세칭 일류대라고 부르는 대학이 아니면 누구나 대학을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대학의 정원이 어느덧 학생 수보다 많아졌다고 한다.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이 기현상은 우리의 교육 정책을 탓해야 할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와 싸우는 학생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학생수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1980~90년대에 대학을 들어가는 인원만 생요한 연구보다는 눈 앞에 결과가 나타나는 단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로 인해 교수 연구의 양은 늘어났을지는 몰라도 질이 늘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대학이 살기 위한 정책이 되지 못한다. 대학이 진정으로 살려면 전공 교수들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양적·질적 연구가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단지 양적 실적을 위해 전전긍긍하게 되면 질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동계열의 전공교수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질적 성과물이 많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전국지 발표 논문은 몇 점식의 평가가 아닌 한 논문에 대해 인용횟수에 대한 평가와 동계열 전공 교수들의 평가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평가가 이루어지면 단기 연구에 치중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10년 이상의 장기계획이 필요한 연구는 어림잡기가 힘들기 때문에 장기적 안목을 지닌 교수라 하더라도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도전하는 기간동안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능력부재의 교수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는 학술진흥재단(?)인지에서 연구에 대한 연구비를 대줄 때 단기 프로젝트에 대한 육성뿐만 아니라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육성책도 세워 그런 연구에 대한 지원도 검토하여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국어학의 경우 장기프로젝트 중에서 유명하게 알려진 것은 21세기 세종계획인데 이는 우리말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의 학문에서 단지 장기적 안목이 필요한 것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정도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중요하고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프로젝트의 경우는 장기적 지원이 필요하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일종의 보상책을 세워 기존의 교수 실적 평가에서 불리한 면을 지닌 부분을 보상해주는 방법이 실시가 된다면 외국과 같은 장기 연구 과정이 필요한 연구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다음으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대학 특성화에 관한 면이다. 정부에서는 앞서도 말했듯이 입시에 치이는 학들이 살기위한 기회로 여기며 그 조건에 맞추기 위해 연합을 불사하였다. 그리고 결국 몇 대학을 선택하여 선택된 각 분야에서 그 대학에서 제출한 연구계획서를 통해 연구비를 지원하며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갔다. 그런데 지금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BK21의 사업 내용을 보면 어느 계열이든 상관없이 교수 밑에 대학원생들이 연구원으로 다수 포진해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실제로 인문·사회 과목의 경우 논문은 과학계열의 논문과 달리 1인이 모두 집필을 한다. 실험이 필요한 논문이라 하더라도 대개 혼자서 해결하고 있으며 실험이 이루어져도 그것은 과학계열처럼 공동 논문이 아닌 개인 논문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인문·사회 계열의 경우는 관점에 따라 모든 값이 달라질 수 있으며 자연계열의 논문들처럼 객관적 자료로 나타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형프로젝트가 아닌 경우는 개인이 혼자 한다. 그런데 BK21사업을 보면 이 점을 간과하고 지원을 한다. 그러다보니 인문·사회계열은 교수 밑의 연구원들이 자연계열처럼 교수가 하는 사업을 위해 어느 분야를 담당하기 위한 분야별 담당자가 아니다. 이런 것을 통해 볼 때 BK21정책의 경우 각 계열별 특징을 알아보고 그것에 맞게 정책을 세웠어야 한다. 게다가 현재의 BK21은 주관대학과 참여대학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주관대학이나 참여대학들은 대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학이다. 오히려 지방대 특히 사립 지방대는 찾기 힘들다. 적어도 내가 알기엔 그렇다. 그렇다면 BK21은 우수 인력 육성정책은 아니다. 지방대라고 하더라도 우수인력은 교수가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우수인력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게 보면 BK21은 사람들 말대로 되는 놈 더 키워주는 정책인 것이다. 그런데 되는 놈 더 잘되게 하는 정책도 다소 어패가 있다. 국문학의 경우 우리가 알기에는 고려대와 동국대가 유명하다. 그런데 오로지 고려대만이 한국학이라 하여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차라리 잘되는 놈 잘되게 하는 정책이만 받아서 학교를 꾸려나가기에 연연해할 뿐이다. 그렇게 보면 학생들은 일종의 봉인 셈이다. 학생이 봉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학의 재정이 어느 정도 이상은 되어 주어야 한다. 그 재정의 한도와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복지 혜택 등을 교육 정책상 설정해서 그 수준이하인 경우는 과감하게 대학을 없애야 한다. 기존의 있는 대학을 없애기가 어렵다는 통합을 시켜서라도 대학의 수를 줄여나가야 한다.그리고 지금의 대학은 대체로 대학원 위주로 돌아간다. 정부에서 연구를 위해 지원해주는 혜택은 모두 대학원에 투자가 된다. 그리고도 모자라 물가 인상에 맞추어 오르는 등록금도 대학생들보다는 대학원 위주로 투자가 되고 있다. 이런 식이 된다면 대학생은 여전히 봉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학생은 대학에서 놀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회로 나가기 전에 쉬기 위해 오는 것도 아니다. 그들도 엄연한 연구자로 보아야 한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취업할 수 있는 우리 사회에서 그들은 좀 더 심화된 공부를 위해 온 것이다. 그런 심화된 공부는 현재 고등학교 때까지의 그런 일방적 지식 전달형식 공부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알아내야 한다. 단지 그것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실수를 줄여주는 차원에서 교수는 코멘트를 할 수 있다. 교수가 학생이 잘 모르는 것을 알 수 있게 코멘트를 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선 교수 대 학생수가 더 많이 줄어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지금과 같이 낭비되는 고급 인력의 수가 줄어들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안정된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다.2) 고등학교7차 교육과정으로 바뀌었어도 수준별 교육이 교육과정 내에 들어왔어도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입시는 어떤 교육과정의 교육이든 모두 말라죽이고 있다.지금의 입시가 어떻게 되어야 고등학교가 정상적으로 수업을 할 수 있을까?지금의 고등학교 교육은 입시 위주이다. 교육과정이 어떻게 바뀌는 지에 관련이 있는 교육이 아니라 단지 대학을 다. 지금의 수능은 단지 자격시험으로 바뀌고 그 자격에 합격한 자들에 한해 자신이 원하는 몇 개의 대학을 선택하여 선택한 대학의 입시 유형에 맞게 시험을 보고 합격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단 대학별의 입시는 다양한 사고력이 필요한 그리고 각 계열의 특성에 맞는 것으로 한다는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고등학교의 수업은 지금과 같은 입시 위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공교육이 정상화되기 위해 필요한 수월성 교육과 보편성 교육고등학교의 경우 지금처럼 70%정도가 사립에 의존하는 형이 아니라 그 만큼이 공립에 의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 존재하는 사립의 경우 스스로 재정 자립이 되지 않는 무늬만 사립인 경우는 공립으로 전환을 유도하고 스스로 자립이 되는 것은 그들 사립이 가진 이념을 반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을 정부에서 지정하되 그 교육과정에 맞는 교육의 방법이나 교과 내용 등은 각 사립에서 알아서 책정할 수 있는 자립권도 부여하여야 한다. 이는 공립과 사립 모두에게 부여를 하되 공립은 평준화에 묶어 보편화 교육을 하고 사립은 학생을 선발할 자율권을 부여하여 수월성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한다면 교육의 질이 좀 더 올라 갈 것이고 학생들 간의 지나친 이질화로 인한 수업의 어려움이 줄어들 것이다.학생들을 선발하고 난 뒤에는 중학교에서 이루어진 교육의 연장이되 지금과 같은 공통학년과 심화학년이 더불어 있는 것이 아닌 심화학년으로만 이루어져 교육내용의 심화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한 과목을 자율적으로 학습이 가능하도록 교사가 도움을 주는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학생들은 보다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수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업을 위해 교사가 수업 연구를 많이 하여야 하고 1교사당 많은 학생 수일 때는 학생들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학습하는 것에 대해 도움을 주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
    교육학| 2004.06.18| 6페이지| 1,000원| 조회(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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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철학] 자연주의가 우리의 교육 현실에 주는 시사점 평가B괜찮아요
    자연주의 교육사상의 핵심 의미는 나는 교육 전체에서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원칙을 들겠다. 그 원칙이란 시간을 버는 게 아니라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고 자연주의 교육사상이 오늘날의 우리 교육 현실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이겠는지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십시오.루소는 자연주의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루소의 자연주의에서 보이는 '자연성' 의 개념은 타락한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가장 선한 자연 상태 그 자체의 성격 또는 특성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한 유명한 말-'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의 의미는 물리적 환경으로서의 자연(공간적 의미)으로 돌아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타락하기 이전의 선한 상태를 회복하자는 의미인 것이다. 루소에 따르면 현재 사회는 행복한 자연 상태가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제도화되면서 발생한 불행한 사회로 사회제도와 정치제제는 모순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자연성'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사회성'의 개념과 배치되거나 모순의 관계에 있는 개념이 아니다. 인간 개개인뿐만 아니라 불행한 현재 사회를 선하게 바꾸기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루소는 인간성 회복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루소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인간은 자연적 자유-타락한 사회적 관습과 제도로부터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인간이 고립된 채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주체적으로 맺은 여러 사회적 계약이나 약속, 제도, 법규, 도덕 등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자유를 동시에 구현하고 있는 사람, 즉 절대적 또는 궁극적 자유를 구현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인간의 내적 가능성을 믿고 이를 계발하고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능·지식·태도를 갖추게 하는 데 교육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발달은 자연에 순응하는 데서 이루어지며 가장 바람직한 생활은 순박하고 평화로운 자연의 길을 밀접하게 따르는 생활이기도 이 차원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에 어린이이기를 바라고 있다. 만약 이 순서가 바뀌면, 우리는 설익어서 맛이 없고, 금방 썩어버리는 설익은 과실이 된다. 는 루소의 말이 시간을 버는 게 아니라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교육의 과정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점진적이고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므로 학생에게 교과를 무조건 가르치기보다는 그들의 발달 단계와 수준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학생의 관심·흥미·욕구·능력을 고려해서 교육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루소는 학생의 교육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루어진다고 보았으며 어린아이 시절의 본성이 가장 선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 선한 본성이 사회화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족성을 잃어버리면서 모든 평등했던 것들이 불평등한 관계로 바뀌게 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루소는 아이들의 자족성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이들의 발달이 이루어지는 모습에 맞추어 수준을 고려하여 가르쳐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루소는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아이들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으며 아이들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학생을 망치는 결과를 나을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즉, 발달단계가 다른 교육을 위해 아이들의 상태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학생의 단계에 따라 교육을 하되 인간답게 만드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스스로 배울 생각이 있는 한, 천지 만물 중 하나도 스승이 아닌 것은 없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스승이 있다. 하나는 대자연, 둘째는 인간, 셋째는 사물이다. 나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 라고 루소는 보았으며 주입식 교육은 인간을 기계로 만드는 교육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소는 인간을 인간답게 기르기 위해 지식을 지식 그 자체로 가르치지 말고 실제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학생기(6-12세)에 도달하면 감각기관이 발달하는 시기에 맞게 각 기관들을 이용한 언어습득과 오관 훈련을 통해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통한 즉 체험학습을 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또 소년기인 13-15세가 되면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 판단이 일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지식을 수련하는 시기로 삼고 자연과학이나 노작교육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해서 그 나이에 맞는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16-20세인 청년기 교육은 덕에 대한 개념과 가치관이 생기는 시기이기에 도덕교육, 종교 교육을 받고 그런 교육과정들을 통해 공동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언급을 했다.결국 루소는 어린 시기에는 소극적인 그러나 감각적인 교육을 위주로 자연본성의 보존과 성장을, 그리고 청소년기 이후에는 비교적 적극적인 교육을 언급하고 있으며 사회성의 성장을 의도하고 있다.루소의 말대로 아동의 발달과정을 실험해본 페스탈로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말대로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들이 발달하는 단계에 맞추어 교육을 하면 내적 기반이 형성되어 지적인 면모와 도덕적인 면모를 함께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다. 특히 자연은 감각 기관을 통해서만 바르게 인식될 수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루소의 교육 방법은 실재에 대한 지식의 근본으로 감각적 경험을 내세웠기에 상당히 실제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다.루소가 「에밀」을 통해 단계를 밝힌 것은 인간의 발전 단계를 무시한 교육은 무의미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단계에 맞추어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자연 질서와 원리를 잘 이해하고, 그 교육적 힘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으며 학생의 성장 발달의 과정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또한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허용할 줄 아는 교사가 되어야 하고 교사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깨닫게 하는 안내자이며 조력자이고 보조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많은 분야가 무너져 사회 질서가 올바르게 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루소의 견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소는 시간을 버는 게 아니라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 원칙이라고 언급을 한 것이다.오늘날 우리의 교육은 교육을 받는 주체인 학생에게 관심이 없어서 학생들의 발달 수준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학생들이 혼란한 가치관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탄핵이니 자살, 강도사건 등 사회에 좋지 않은 면을 많이 보여주면서 긍정적인 모범이 되는 어른이 점점 세상에서 줄어들고 있는 지금의 시기는 자신들이 받은 교육이 질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하여도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다. 또한 학생들의 학습상태가 모두 제각각일 뿐만 아니라 선행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선행학습에 대한 교육이 더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상관없이 시간이 흐르면 한 학년씩 진급을 한다. 그리고 성적만 우선시 되는 경쟁적 학습체제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교육의 목적이 단지 대학에 입학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과 같이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교육은 지나치게 학교 교육에만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아주 어린 아이들-3~4살의 아이들에게 우리의 교육과정상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하는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사교육기관인 학원을 보낸다. 또 학원에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빨리 진도를 나가 다른 학생들보다 더 뛰어난 학생이 되길 부모님들은 바란다. 이처럼 지금 우리의 교육은 학생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 지에 관심이 거의 없이 학원에 과외 등을 포함한 사교육을 많이 시키고 있으며 사교육이 지금 현재 교육이 해주지 못하는 선수 학습 부족분에 대한 보충이나 지금 배우는 내용 이외에 학생이 관심이 있는 혹은 심화하여 알아두면 좋은 부분들에 대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기 훨씬 이전 단계를 사교육기관에서 배우고 있을 뿐이다.분명 이런 우리의 교육은 자연주의 교육관에 의하면 많은 부분이 잘못된 것이다. 그런 여러 가지 잘못된 사항들에게 자연주의 교육관은 시사하율적으로 이루어져 지금과 같은 지초 학문의 부실 사태가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에 자연과학적 지식, 실용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한편 일상생활과 관련된 국어 교육이나 시민적 자질을 기를 수 있는 과목을 중시해야 한다. 또한 교육은 맞벌이 부부가정이 많아지면서 학교에서만 행해지고 부모가 직접 아동이 사회에 나가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을 하는 경우가 드물어지고 무엇을 해도 야단을 치지 않는 교육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은 지금처럼 학교에서 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교사가 같이 책임을 지는 성정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교육은 연계성을 가지게 되고 학생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어 학생의 한 부분으로 습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자연교육의 원리는 학생들에게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들이 무엇을 하든 관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면모를 바람직하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교사는 학생들이 발달 수준에 맞는 관심 대상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사회생활에 필요한 실용적 지식을 터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지금처럼 지식위주로 교사 중심의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중심으로 수업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지식 암기 위주의 교육이 되면 학생들은 배운 지식을 사회에 쉽게 활용하지 못해서 사회에 적응이 쉽지 않게 된다. 그리고 지식 암기 위주의 획일적 교육만 하게 되면 학생들은 창의적 사고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져 우리가 교육을 통해 변화되어지는 학생을 육성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교사는 인간 발달을 자연에 일치시키고 학생의 발달 수준에 알맞은 관심의 대상을 포착하고, 학생 개인의 적성과 관심을 이해하여 교육하며 창의적인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 스스로가 학생들에게 특히 인성적인 면에서 긍정적인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하여 학생들의 교육이 성인의 모범을 통한 자연스러운 모방학습(경험을 통한 학습
    교육학| 2004.06.17| 4페이지| 1,000원| 조회(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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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존철학] 실존 철학에 관심이 있는 교육자의 신념과 태도
    A교사는 실존 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수업에 임하는 A교사의 교육자적 신념과 태도는 어떠할 것이라고 생각됩니까?실존은 단순한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의 존재에 대하여 질문하고 자각하며 자유를 행사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에 의해 해소되지 않고 공통성에 의해 나뉘지 않고 다른 것에 견줄 수 없는 인간 존재를 실존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존은 존재의 특수성과 개별성을 강조하고, 실존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실존철학은 인간이 상실한 자기의 본 모습을 되찾고 본래의 자기에게 귀환함으로써 자기소외, 자기상실 상태에서 자기회복, 즉 인간의 주체적 자각, 결단, 실천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그런 까닭에 샤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고 언급을 한 것이다. 그런 실존의 관점에서 보면 실존주의 교육철학은 인간의 존재 그 자체를 문제 삼고 있으며 인간 소외 현상과 미래에 대한 절망과 불안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실존주의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존주의 교육 이론에서는 교육을 개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선택과 판단에 의하여 자신의 생활과 운명을 결정짓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아 실현적 인간의 형성을 도모하는 것 이라고 본다.결국 실존주의에서는 개인의 삶에 있어서 철저한 선택과 책임, 그리고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자유를 가지는 반면에, 철저하게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완전한 자유 속에서 스스로 선택을 하되, 자신의 선택에 대해 철저한 책임을 지도록 하게 만들기 위한 교육을 행한다. 따라서 실존주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식이란 인간의 조건들과 각 개인이 행해야만 하는 선택에 관한 것이라고 보며, 교육이란 선택의 자유 그리고 선택의 의미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에 관해 의식을 일깨워 주는 과정으로 본다.실존주의 철학자 중에서 보르노(Bollnow)는 "만남이 교육에 선행한다. 즉, 서로가 인격적으로 만나 끌리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고 언급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교육을 비연속적 형식을 지닌다고 본다. 그리고 비연속적 형식에 속하는 요소로 위기, 각성, 충고, 상담, 만남, 모험, 좌절을 들고 있다. 보르노에 의하면 한 인간이 교육적으로 발전을 하는 것은 전통적인 관점에 따른 것처럼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 부분에서 어떤 자극이 이루어지면 좀 더 발전적 변화를 가지게 되어 교육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결국 그가 말한 비연속적 형식의 요소는 자극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 자극의 형식을 교육에서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실존주의의 입장에서 교육을 보는 사람들은 종래 전통적 교육관을 비판하며 전통적 교육관에 따른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량생산하는 것은 공장에서 상품을 대량생산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보고 그와 같은 교육은 개인의 선택 자유를 제한하는 획일화 교육이라고 비판하였다.이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을 가진 교사라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수많은 선택 가운데 그 자신의 길을 선택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하며 학생이 하는 선택을 일방적 획일적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게다가 학교는 학생들에게 적응이나 순응하게 하기 위한 압력을 가해서는 안되며 학생들의 자유를 신장하고 창조적인 개성을 갖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학교의 임무는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주체적인 인간의 성장을 도모하는 곳이며 각자의 자아실현을 돕는 곳이기 때문에 교육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존재는 바로 실존적 주체로서의 학습자 개개인이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게다가 교사, 커리큘럼, 시설, 환경 등은 한 인간이 성장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것이다. 또한 학생들은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주체적인 존재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교육은 전통적 교육관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개인을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삶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태도 그 자체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교육은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 데 지속적인 노력만으로 인간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 불안, 고통, 위기 등과 같은 어두운 측면과 자유, 선택, 책임, 개성 등과 같은 주체적 측면을 통해 비연속적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교사와 학생간의 만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을 할 것이고 교육을 통해 작품 속의 인물 또는 역사적 위인과의 만남을 가져 학생에게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또한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을 가진 교사이기 때문에 육체적, 감각적 또는 종교적인 각성, 벌, 설교, 명령, 호소 등에 의한 훈계나 조언 등의 방법도 필요하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그러나 교육적 전환이나 비약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만남이라고 생각을 하고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도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전통적 관계를 벗어나 인격을 지닌 상호 주체적 관계로 파악하여 교사는 학생들 각자가 자신의 선택을 현명하게 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존재이면서 학생들의 심적 갈등과 어려움을 깊이 공감할 줄 알고 학생들의 스스로의 생활 방식을 통하여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하고 학생들의 독립성을 존중하며 교육할 수 있는 존재라고 교사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교육학| 2004.06.17| 2페이지| 1,000원| 조회(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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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우리 사회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해결책
    1. 우리 사회의 현실과 문제점을 근대성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어떤 해결책이 가능하겠는지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하시오우리 사회는 근대성이 자생적으로 제대로 발달이 되기 이전에 외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 문물에 놀라야 했고 그 놀라움이 우리의 근대로 미처 정착이 이루어지지 못한 시점에서 식민지 치하가 되면서 근대는 왜곡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이 식민지 시기였기에 우리의 근대는 물질적 근대에 그쳤을 뿐 정신적 근대는 미처 성숙하지 못하였고 그 여파는 지금도 많은 부분에 남아 모습은 근대이지만 속은 중세인 아니 전근대적 성향을 띠고 있다.근대와 전근대에 대한 설명을 통해 우리의 근대 면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우리에게 미처 제대로 전파되지 못한 서양의 근대는 전근대에 비해 인식 이 변화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전근대는 전체, 집단, 사회를 가장 우선 시하며 교육의 목적도 사회 질서 안정과 유지에 두었다. 게다가 평등 개념이 없는 사회였기에 계급과 계급 사이의 구별이 뚜렷하였고 계급과 계급 사이를 오가는 것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육은 지배층의 통치 수단이 되어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결국 전근대는 차별 이 존재하는 불평등 한 사회였던 것이다.그에 반해 근대는 인간 즉 개인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는 개인주의를 그 기본적인 관점으로 삼고 있다. 개인은 신성하고도 절대적이다. 그런 까닭에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인간의 특성이 고루 개발될 필요가 있었고 특히 인간의 특성에는 사유 능력이 포함되고 또한 정신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정신이 자유롭게 되기 위한 조건으로 인간의 신체에 대한 자유 역시 생각하게 되면서 자유 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거기에 교육도 인간이 인간다움을 실현할 수 있는 교과목 즉 실생활에 유용한 교과목을 가르치는 것에 초점을 두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인간이 인간답기 위한 지적 측면이 강조된 교육을 받으면서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하게 되고 드디어는 동조하는 생각이라고 본다. 그럼 왜 왜곡이 되었을까? 근대의 물결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천주교의 유입이 시작된 무렵이라고 볼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근대의 문물이 들어온 것은 고종 무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무렵 이미 쇠약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외국에서 들어온 문물을 이전의 시대처럼 자체적으로 걸러가며 유입해낼 수 있는 저력을 이미 상실해버린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 수많은 근대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대개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로 유입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을 통한 유입이 많았다. 우리의 근대가 왜곡되기 시작한 것은 결국 근대 문물의 유입과정에서 첫 단추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체주의 국가이다. 신분의 평등과 같은 것은 있을 수 있겠지만 절대 천황과 자신들이 동급의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개인은 천황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전체 속에서 비로소 존재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을 하여서 자신들은 천황이 통치하는 국가를 위해 충성을 해야 한다는 사고가 뿌리 깊게 박힌 나라이다. 그런 나라였기 때문에 일본은 강력한 국가권력이 국민생활을 간섭 통제하는 것을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고 개인은 그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그 안에서 평등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 특성을 가진 일본의 냄새가 배어있는 근대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는 근대에 대해 오류를 범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생각하는 근대는 당시가 계급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그 계급이 철폐가 되어 평등이 되는 것이었고 그 속에서 우리의 것보다는 정갈하게 느껴지는 외래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다수가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일본의 관리들과 친한 사람들이나 왕가에 빌붙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잘 살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근대는 좋지 않은 인상을 주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식민지로 전락을 하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근대 문물이 우리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 라의 많은 사람들은 단지 우리 민족의 자유를 위해 투쟁을 했고 계급간의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일본과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등을 외쳤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면서 또 다른 근대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가진 미국과 사회주의의 이념을 가진 소련에 의해 국토가 양분이 되면서 자유와 평등은 다소 남과 북에 다른 의미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특히 북에서는 평등이 기회의 평등뿐만 아니라 재산의 평등이나 자유의 평등, 혜택의 평등 등 많은 부분에서 획일화에 가까운 평등을 외치면서 자유가 억압 되어 갔고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 북에서 말하는 평등 개념은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면서 자유보다 평등을 외치는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남쪽에서는 자유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된다. 거기에다 남쪽은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과 같은 장기 독재 정권이 탄생하면서 하고 싶은 말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만다. 더 불운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지배층을 차지한 많은 사람들은 일본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강력한 국가 권력이 국민생활을 간섭 통제하는 것이 근대와 상치된다는 것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었다. 게다가 박정희 정권은 우리나라를 근대화를 하겠다면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말한 근대성은 자본주의(경쟁적인 노동과 상품시장 안에서의 자본축적), 산업주의(자연의 변형: ‘인위적 환경’의 발달), 폭력수단(전쟁의 산업화와 관련된 폭력수단의 통제), 감시체제(정보에 대한 통제와 사회적 관리)와 그 관계들의 총합이었다. 게다가 평등이 지나치게 산업화위주로 가다보니 다른 면모의 평등 개념들이 약해지게 되었다. 결국 우리에게 근대성이란 자연과 사회적 삶에 개입하여 물질문명을 성취하는 동시에 그러한 개입이 경제적 양극화, 생태적 위기, 민주적 권리의 부정, 전쟁의 위협 등과 같은 ‘인위적인 불확실성’을 이 근대성의 중요한 요소임에도 개인 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디 가족주의는 전근대의 요소이다. 전근대와 근대의 구별되는 요소 중 하나가 집단 vs 개인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가족주의는 근대화 과정 속에서 약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는 양상을 보여 왔다. 조선 후기 이후 신분제 붕괴로 인한 형식적인 평등, 식민지 지배, 한국전쟁,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개인들은 물질적 생존을 위해 가족을 중심으로 뭉칠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필요한 복지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은 경제적인 폭력을 약화시키는 요소였다. 게다가 가족은 미처 근대에 적응이 제대로 되지 못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정서적으로 안정을 안겨주는 중요한 보호막이 되었다. 근대를 상징하는 자본주의 산업화가 정치, 사회, 문화적인 면과 더불어 차근차근 진행된 것이 아니라 지나치리만큼 한 쪽으로 치우치고 압축적으로 전개되다 보니 근대 개인주의 문화는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개인은 가족이라는 정서적 울타리를 통해 급속한 사회변동에 적응하고 삶의 불안감을 해소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가족주의가 학연ㆍ과 지연을 매개로 변형·확대되어왔다는 점이다. 60년대 이후 급속한 근대화와 도시화에 따라 전통적 농촌 공동체를 떠나온 사람들이 도시 속에서 그 공동체를 대신할 수 있는 동창회·계·종친회 등의 전근대적인 공동체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 집단들은 사회에서 지나치리만큼 많은 부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집단 이기주의를 강화시켰고 이는 지역주의로 표출되어 경제적 차이를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집단 위주로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면서 우리에게 희박하나마 존재하고 있던 평등 이라는 개념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가족주의에서 비롯된 집단 이기주의는 근대화 되는데 커다란 장애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근대성이 인간과 평등과 자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 억압적 감시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물질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결국 우리의 근대화는 정적 교육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은 현재 우리 사회가 근대화되는 과정에 정부가 주도였던 것처럼 교육 역시 정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의무 교육이나 보편 교육은 책임지고 이루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우리의 교육은 학생을 위한 교육이 아니다. 교사는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에도 수업내용을 연구할 수 있는 시간보다는 잡무처리에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하고 교육과정도 사회 발전에 맞게 바꾸어나가고는 있지만 너무 자주 바뀌다보니 교사 자신도 제대로 교육과정을 인식하여 그 과정에 맞추어 수업진행을 하는 면모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모든 평가는 학생의 학업성취도면모를 점수화하여 계산하는 방식이고 주요 교과목 위주의 교육을 실시하며 학생이라는 개인이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학생 개인을 고려하고 있지 못한 정책의 대표적인 것이 평준화 정책이다. 우리의 교육은 현재 고등학교 진학을 할 때 대다수 지역에서 평준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평준화 정책이라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평등 에 불과할 뿐 실상 학생을 고려한 정책이 아니다. 학생들은 앞선 교육을 받아오면서 자신의 적성과 특성 등 많은 면모가 제각각이 되어가는 데 우리의 교육은 지나치게 근대 교육의 성격 중 보편성만 중시하며 모든 학생을 하나의 틀에 맞추려하는 획일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우리의 사회는 학벌 위주가 되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좀 더 좋은 학벌을 가지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인성의 면모보다는 학벌을 따기 위한 공부만 하는 그래서 지적 수양에 비해 인격 수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게다가 그 학벌을 따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 대입시험을 국가가 주도하며 시험에 대해 객관식 답안을 요구하다 보니 학생들이나 교사들은 모두 자기 개발은 뒷전이고 단지 대입에 합격하기 위해 그리고 좀 더 많이 합격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학생들은 단지 답 하나만 맞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사고의 폭이 좁아지고 창의력이 없어지거나 떨어지게 된다. 그 예로.
    교육학| 2004.06.17| 6페이지| 1,000원| 조회(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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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 교육의 필요성과 학교 교육 문제
    1. 교육의 정의교육이란 학교 교육 이상의 것이면서 동시에 학습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학생들이 하고 싶은 바를 하는 것 이상의 것이다.{ 유현옥(1996) 현대 교육의 주제와 쟁점, 내일을 여는 책.즉, 교육은 크게 학교 교육과 학교 외 교육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학교 외 교육은 가정, 친구, 사회 등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질서나 도덕적인 가치 교육, 예절 교육 등 일상적인 생활에서 유용한 진리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학교 내 교육은 主知 敎科(주지교과) 에 의한 교육과 생활에 유용한 교육 으로 나뉠 수 있다.주지 교과에 의한 교육은 문학, 과학, 역사, 수학 등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를 통한 교육으로 배우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생활에 불편이 오는 것도 아니고 배운다고 해서 당장 생활에 도움이 되고 편리해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교과와 관련되는 현상을 보는 안목 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주지 교과와 관련된 현상을 보는 안목 이 없으면 우리는 문학, 수학, 과학, 역사 등이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를 볼 수 없게 된다.{ 이홍우(1998), 교육의 목적과 난점, 교육과학사.다시 말해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적용되는 교과인 것이다. 그러나 주지 교과를 잘 배운다고 하더라도 보는 것 에 대한 가치를 알기는 쉽지 않다. 안목을 가지고 현상을 보면서 살아가는 일이 어려운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는 것 에 대한 가치를 알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펼쳐져 있는 생활의 불편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 한다.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 교육은 생활에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 라는 말은 방해가 되는 편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병폐 중 하나인 입시 위주의 교육도 교육은 생활에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 라는 관점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입시는 교육을 통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등을 가지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런 현실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목적과 교육이 이루어진 이후의 결과가 능은 오늘날의 학교가 광범위하게 수행하고 있는 기능이며 과거의 학교는 지니지 않았던 기능이다. 오늘날 학교에 보호 기능이 추가된 것은 근대 사회가 전통 사회와 다른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과는 달리 일정 연령이 되면 아이들은 학교에 보내지게 되고 부모는 직장에 다니고 조부모들이나 다른 친지들은 분가하거나 시골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가 아니라면 딱히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할 수 있는 장소나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이들이 학교에 얽매이고 부모는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더욱 더 직장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만들고 있다. 원칙적으로 어린 아이들은 성장할 수 록 보호할 필요가 줄어들어야 하고 그로 인해 보호 비용도 줄어들어야 하는데 상급학교로 갈수록 학생들이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은 더욱 많아지고 이로 인해 보호 비용도 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학교가 유·소년기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기 중 일부인 대략 25세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보호 비용은 적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현대 생활 양식이 학교 직장 은퇴 라는 획일적인 양식으로 되어 있기에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학교는 자신이 미처 의식하거나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학생들의 생활과 인간성에 대해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이들의 생활은 성장기에 일어나고 있기에 현대인의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학교의 보호가 많이 필요한 시기에는 좀 더 많은 관심을 그리고 학교의 보호보다는 그 나이에 맞는 대우가 더 필요한 시기에는 그에 맞는 대우에 대한 개선을 우선적으로 행한다면 학교의 보호 기능이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두 번째 기능인 선별 기능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때로는 중학교 때 고등학교 진학을 인문계로 할 것인지 아니면 기타 실업계 고등학교나 예술 고등학교 혹은 특수 고등학교 등으로 할 것인지에 의해 직업 등이 달라진다. 그러나 어떤 고 만일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곳이라면 교육은 철학적 기초를 건설적인 방식으로 발달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학교가 방임적인 정책으로 나아간다면 이는 독립적인 사고의 조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주변 환경에 대응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으며 이에 대한 모종의 안내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 반응은 거의 대부분 우연적이고 산발적이며 결국에는 긴장으로 지치게 된다. 교사는 학생보다 좀더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제안할 수 있다. 결국 학교에서 교사는 통제하고 보호하는 기능을 위해 존재한다기보다는 좀더 올바른 방향으로 학생이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안내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는 각기 다른 네 가지 기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발휘하기 위해 지금 현재 학교가 가지고 있는 기능의 단점으로 파악되는 면을 보완할 대책을 마련해서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기구로 거듭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유현옥(1996) 현대 교육의 주제와 쟁점, 내일을 여는 책.3. 떠나는 학생의 유형{ 조혜정(1996),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또 하나의 문화. 위주로 언 급되어 있음.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의 유형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 조건상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와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 대한민국이 가난하던 시절 많은 어른들이 경제적인 여건이 되지 않아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80년대 이후 경제가 크게 발전하면서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학생의 수는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후자의 상황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른들에게 요즘 학생들은 후자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 후자의 경우 학생이 학교를 거부하는 경우라고 본다. 이는 학교 공포증, 학교 거부, 중도 포기, 등교 거부 등의 이름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심층적인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고 한다. 그만큼 이 현상들은 어느 나라나소년의 자아 형성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지금의 한국 청소년들은 본격적인 경제 성장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기에 전 세대와 판이하게 다른 논리와 감성, 욕망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소비 공간과 대중매체는 청소년들에게 학교와는 전혀 다른 논리와 욕망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고 이에 따라 청소년들은 이성간의 사랑과 성, 외모, 쾌락을 추구하면서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자아 실현을 형성해 가고 있다.위와 같은 상황적 배경을 가지고 보면 잠재적 중퇴자를 포함한 학업 중퇴자는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적극적인 중퇴자로서 학교 교육을 자발적으로 거부하는 경우이다. 그런 예로 하자 센터에 다니는 문지원 이란 학생이 학교를 그만 두고 국민일보에 보낸 글을 요약 해보면 다음과 같다.내가 얌전한 학생이었던 지난 10여년 동안 나를 가장 버겁게 했던 건 나를 설 명할 수 있는 언어를 내 자신이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내 주 변의 어떤 누구도 나만의 언어가 필요함을 이해하지 못했고 인정하지 않았다. 자퇴 한 지 넉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영등포에 있는 하자 센터(서울특별시립 청 소년 직업 체험 센터) 영상 디자인 작업장에서 공부하고 있다. 하자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배우는 동안 내가 얻은 것은 ‘세상을 낯설게 볼 줄 아는 힘’과 ‘혐 오할 것을 혐오할 줄 아는 예민함’ 그리고 ‘나의 언어’이다.10년이 넘는 학교생활 동안 내 몸은 온통 싫다고, 여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 는데도 나의 교육받은 이성은 그걸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다. 학교 안에 있는 학생들의 입에서 학교의 역겨움과 남성 주의와 안이함과 무지 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올 때,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스스로의 가 슴으로 느끼고 찾아낸 자신만의 언어일 때 학교는 쓸모 있는 배움의 공간으로 남을 수 있다. 이제, 힘겹게 찾은 내 언어로 말한다 “학교는 늙은 아버지 같다” 고.내가 이 말을 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늙은 아버지들은 화를 낼 것이다.점인 학생은 평균 50점이 되어 평균 70점을 받은 학생을 위한 교육에 희생되고, 평균 70점을 받은 학생은 80점을 받은 학생을 위한 교육에 희생된다.성적 위주의 사회는 점수형 모범형 순종형만으로 사회의 골간을 유지시킨다. 그들의 미래는 교과서와 시험지 안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고, 시험지에 의해 성공의 자격증을 얻은 ‘범생이(모범생)’들은 범생이의 자식을 키우기 위하여 밤낮 없이 정답을 외우도록 만든다. 아직도 이런 현실이지만 사회는 성적과 함께 졸업장을 요구한다. 중퇴보다는 중졸을 더 쳐주고 중졸보다는 고졸을 고졸보다는 대졸이 더 우대 받고 있는 사회인 것이다. 한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개인보다는 졸업장이 더 우선시되는 사회이기에 잠재적 자퇴자들은 단지 졸업장을 위해 학교를 다닌다. 그런 그들에게는 사는 목적이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다.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어렵게 돈을 벌고 싶은 생각도 없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학생들이다. 이들은 소극적으로 주어진 상태에 길들어져 있는 상태로 범생이 들과 비교 당해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학교의 보호 기능을 아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 학생들인 것이다. 이들은 학교 밖으로 나갔을 때 어떤 위험이 올지 모르므로 그런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기관으로서 학교를 선택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물론 이들 중에는 그런 생각도 없이 학업에 대한 의욕 상실증에만 걸려 자포자기가 되어 있는 학생들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내가 학교에서 경험해 본 바로도 그렇고 동생이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보아도 자신이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목적 의식 없이 학생이니까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랑 놀고만 오는 모습을 보아도 그렇다. 결국 동생이나 동생의 친구들 경우 학교에서 개기기 를 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개기기 를 하는 지 물어 보면 학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단다. 학교는 단지 사교 장소라고만 대답을 한다. 학원에서 배웠지? 넘어간다. 식으로 수업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당.
    교육학| 2004.05.12| 21페이지| 2,000원| 조회(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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