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한류의 개념1. 한류(韓流)‘한류’란 중국에서 ‘한국유행문화’를 축약해 일컫는 말로서 1990년대 말부터 중국과 동남아의 화교권에서 일기 시작한 한국대중문화의 열기를 말한다. 1996년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중국에 수출되고, 2년 뒤에는 가요 쪽으로 확대되면서 중국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이 일기 시작하였다. 한류는 중국에 일고 있는 이러한 한국 대중문화의 열기를 표현하기 위해 2002년 2월 중국 언론이 붙인 용어이다. 이후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은 중국 뿐 아니라 대만, 홍콩,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2000년 이후에는 드라마, 가요, 영화 등 대중문화만이 아니라 김치, 고추장, 라면, 가전제품 등 한국관련제품의 이상적인 선호현상까지 나타났는데,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이러한 모든 현상을 가리켜 한류라고 한다.2. 한류열풍의 생성 원인1) 文化史潮의 시대적 변화 및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의 혼돈20세기 접어들면서 문화의 중심이 자본주의 가치관의 영향으로 대중문화로 옮겨가게 되었다. 식민지 경영을 통해 시장을 확보하던 제국주의적 팽창의 한계로 자본주의는 문화를 상업화 하면서 새로운 내부 시장을 모색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매체들이 속속 등장하여 대중문화는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었고 방송, 음악, 영화 등이 대중문화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또한 위성방송의 발전, 컴퓨터와 통신분야의 급속한 발전과 기술적 융합은 21세기 경제를 주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었다.80년대 동아시아 가치논쟁이 잇따른 아시아 지역의 외환위기로 크게 흔들렸고 특히 유교문화의 종주국인 중국은 사회주의의 경험으로 유교문화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중국 인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서구문화는 영화, 패션 등 문화전반에서 독보적으로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으나 직접적인 서구문화의 모방은 사회정서상 시기상조 였으며 기존에 아시아권에 큰 영향을 미쳐온 일본 대중문화의 독특함과 자극성, 엽기으로 방영하는 케이블 TV방송국이 있을 정도이다.1인당 GDP가 높은 대만의 한류 열기는 본토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대만 팬들은 드라마 촬영지 방문 등 연계 관광상품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가을동화], [겨울연가] 드라마 답사 상품은 대만지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방한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3) 홍콩99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인기를 얻은 뒤 [쉬리], [텔미썸씽], [비천무], [퇴마록] 등 영화를 시작으로 한류열풍이 고조되었다. 2000년 방영된 [젊은이의 양지], [간이역], [그대 그리고 나] 등의 드라마가 좋은 반응을 보였다.4) 베트남LG 등 대기업의 방송국을 상대로한 문화마케팅이 주효하였다는 분석이 주목을 끈다. 드라마 전후에 광고를 내보내는 전략이 성공하여 높은 시장 점유율을 달성하였다.드라마 [모델]에서 주연한 탤런트 김남주의 영향으로 LG의 ‘드봉’이 ‘샤넬’보다 고급 브랜드로 인식되는 것이 좋은 예가 된다. 한류는 한때 적국이었던 한국의 이미지를 바꾸었으며 한국문화를 제대로 배워보자는 움직임이 베트남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5) 일본99년 [쉬리]가 1백 3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을 비롯 [공동 경비구역 JSA], [엽기적인 그녀],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흥행하였다.작년 월드컵의 공동개최 및 한국의 선전에 힘입어 한국 문화에 대한 젊은이의 관심이 증가하였다. 최근 소녀가수 보아가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전지연 등을 비롯한 연애인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6) 몽골한 해에 1만 5000여명의 몽골인이 소규모 공산품 수입을 위해 한국을 찿고 있고 5000여명의 한국인이몽골을 방문한다.몽골에서는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한국산 제품이 최고로 인식된다. 심지어 한국 중고품이 몽골에서 최상품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한국의 중고 자동차가 자랑스럽게 유통되는 실정이다. 또한 한국음식도 고급으로 자리잡아 몽골 대통령궁에서 열린 토대형 연회가 갈비, 김치로 차려지기도 한다. 한국의 대중문화도 당 있다. 관광공사가 2004년 상반기 중 초청한 해외주요 언론이 한국관광에 대하여 기사화한 실적은 616건으로 6월말 기준으로 이미 전년연간 기사화 657건수의 94%에 육박하고, 광고료환산금액은 1,167억원으로 전년연간 실적 862억원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한국관광공사는 2004-2005년을?한류관광의 해’로 선포하고, 주요시장별로 한류스타를 활용한 TV광고와 한류상품 개발 및 판촉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4월에 일본에서 방영되어 시청률 19%를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겨울연가를 활용한 방한상품은 한국상품의 저가이미지를 쇄신하였으며, 서울, 남이섬, 춘천, 용평스키장을 잇는 10만엔(100만원)대의 고가상품으로 40-50대 중년 여성층 모객에 성공하여 올 상반기에만 일본관광객이 106만여명(전년대비 33.4% 증가)으로 증가했다.대만에서도 한류 확산과 한국관광이미지 개선으로 상반기에만 14만 명을 유치, 전년 동기 대비 2배가 넘는(228%) 폭발적인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으며 중국관광객 도 2003년 상반기에 비해 49.1%가 증가하여 3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3) 겨울연가의 경우‘겨울연가’의 효과로 남이섬의 경우 외국인 관광객의 60~70%가 일본인이고, 그 가운데 90%가 여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분야별로는 숙박비가 102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연간 20만 명의 외국인이 찾는 남이섬의 입장료 수입은 8억 원에 달했다. 또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 등에서 이뤄지는 식사 비용과 남이섬 측의 기념품 판매 수익까지 합칠 경우 160억원 이상의 관광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겨울연가 상품이 일반 한국관광 상품의 1.5~3배의 고가임에도 겨울연가 관광 상품을 판매하는 일본 여행사는 21개 업체(29개 상품)에 이르고 있다. 겨울연가 방영 이후 촬영지를 방문한 일본 방문객은 남이섬 3만 1420명, 중도 9960명, 용평 1만 6830명이다.4)한류 외래객 직접 유치 실적연도일자국가단체명방한인원활 동 내 용20014월말-연말대 평가가 3.45점으로 상대적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2) 한국관광 이미지 평가【조사결과 분석】한국에 대한 14개 항목별 평가 결과, 모든 항목에서 ‘훌륭하다’는 긍정적 평가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세부 항목별로 살펴보면, ‘쇼핑’ 항목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5점 척도 평균 3.70점으로 다른 항목에 비해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 ‘환경’(3.65점), ‘자연경관’(3.61점), ‘친절성’(3.60점) 등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여행가격’(3.35점)과 ‘역사유적’(3.38점) 항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홍보전략 수립시 ‘쇼핑’, ‘환경’ 등을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아울러 여행가격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이 이루여져야 것으로 보인다【국가별 결과분석】중국 지역에서는 한국관광 이미지 14개 항목 중 ‘여행가격’ 항목을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 긍정 평가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반면, 대만은 전반적으로 낮은 평가를 하고 있어 주목된다. 홍콩에서는 ‘자연경관’에 대한 평가가 3.78점으로 상대적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특히, ‘여행가격’ 항목에 대한 평가가 3.65점으로 중국(3.28점)이나 대만(3.23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5. 한류관광상품 관련인식1) 한류와 관련된 관광상품의 예①해외팬의 팬미팅 행사충북 보은 서당골에서 개최되는 한류열풍의 원조스타 안재욱의 '안재욱과 함께하는 여름캠프'행사에는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관광객 300여명이 참석했다.또, 에버랜드와 양지파인리조트 일대에서 개최하는 '신화 썸머스토리'에도 일본, 싱가폴 등 신화의 외국팬 200여명이 국내팬 2,000여명과 함께 했다. 한편 관광공사는 2004년 9월 한류스타 해외팬클럽 회장단 50여명을 한국에 초청해 명예 한국홍보대사 임명장을 수여하고, 이들을 관광마케팅의 첨병으로 활용했다.②드라마 활용 관광상품2004년 8월부터 추진해 온 드라마 `대장금' 관광상품 개발이 결실을 보게 돼 `겨울연가'에 를 보이고 있으며, 대만 거주자(방문 의향자 166명 대상)들도 ‘완전 단체여행’(43.4%), ‘부분 단체여행’(41.6%), ‘개별여행’(15.1%)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홍콩 거주자(방문 의향자 358명 대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완전 단체여행’(43.0%), ‘부분 단체여행’(33.0%), ‘개별여행’(24.0%) 순으로 조사되었다.6) 한국 여행시 희망 관광활동【조사결과 분석】향후 3년내 관광목적 방한 의향자 1,501명을 대상으로 한국여행시 희망 관광활동에 대해 ‘자연미 감상’(76.7%)과 ‘한국음식 시식’(73.8%), ‘쇼핑’(70.1%)을 제시한 의견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고, 그밖에 ‘역사유적 감상’ (57.9%), ‘놀이공원 방문’(48.2%), ‘야간유흥(night-life)’(42.5%), ‘도심관광’ (41.6%), ‘야외활동’(37.9%) 등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국가별 결과분석】중국(방문 의향자 977명 대상)의 경우, ‘자연미 감상’(78.8%), ‘한국음식 시식’(78.7%), ‘쇼핑’(69.3%), ‘역사유적 감상’(63.1%) 등의 순으로 높게 나타난 반면, 대만(방문 의향자 166명 대상)에서는 ‘쇼핑’(64.5%), ‘자연미 감상’ (62.7%), ‘한국음식 시식’(59.6%), ‘역사유적 감상’(52.4%) 등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한편, 홍콩 거주자(방문 의향자 358명 대상)들은 ‘자연미 감상’ (77.4%), ‘쇼핑’(74.9%), ‘한국음식 시식’(66.8%), ‘놀이공원 방문’(47.2%), ‘역사유적 감상’(46.4%) 등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6. 한류의 파급과 관광 산업 발전 효과한류의 파급효과는 국가이미지 제고를 통해 한국 상품 수출 확산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외래관광객 유치로 이어지는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중화권 및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2001년도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 답사 상품이 구성되어 여행단 30,000여명이 한국을 방문하였고 이듬해에는 [겨울연가]
한이 서린 여성민요- 가상 인터뷰를 통한 여성 민요의 접근-1. 머리말민간에서 자생적으로 구비 전승되어 온 노래가 민요다. 민요가 어떻게 생성되어왔는지에 대한 논의설은 몇 가지 있지만 공통점은 원작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구비 문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발생을 떠나 민요가 전승되어 오는 과정에 민중들은 그들의 생활감정과 세계관을 그 속에 담아 솔직하게 표현하여 왔다. 따라서, 민요(民謠)에는 민중들의 생활감정, 의식, 세계관 등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사람들은 민요를 통해 삶의 희노애락을 토로했고, 또한 생활의 활력을 찾았다. 특히 이러한 양상은 여성 민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조가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여성민요로 여성의 슬픔과 고난을 표현한 민요를 찾아 옛 여성의 삶의 모습을 재구성 해보고 자칫 알아듣기 어려울 수 있는 민요 사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한과 아픔을 함께 느껴보도록 할 것이다.2. 여성민요의 특징여성민요는 여성들의 노동이나 유희에서 불리어지는 노래가 주를 이루는데, 베틀노래?길쌈노래?강강수월래?시집살이노래 등이 있다. 짧은 가창민요 외에, 길게 이어지는 음영민요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여성민요 가운데는 여성생활의 슬픔과 고난을 절박하게 담아낸 것들이 많다는 것과 관계가 있다. 여성들의 민요는 비교적 독백이기에 진실한 고백이 되기도 한다. 불안과 갈등 그리고 시기와 저주,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갈등이 진실하게 표백되어 있는 것이 여성 민요이다. 남성 민요에는 찾을 길 없는 눈물과 고독을 비롯하여 부자유를 호소하는 그들의 소리는 남성 노동요가 지향하는 밝고 즐거운 세계와는 대조가 되는 슬프고 우울하며 어두운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 여성의 세계가 자립적, 주제적이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것이며 천부적 속성이되 다만 그들의 민요 속에 솔직하게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진실된 민요문학이다. 딸로 태어나 구박을 받는 설움, 결혼과 함께 찾아오는 시집살이의 고통과 남편의 부재로 인한 슬픔 등 대부분의 여성민요는 그들의 한과 설움을 여실히 담고 있는 것이다.3. 여성의 삶과 민요1)딸로 태어난 설움지금도 그러하지만 민요가 많이 불려지던 당시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우리는 한이 서린 여성 민요를 생각할 때 시집살이요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것은 시집살이요에 여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가장 많이 담고 있고 있으며 그 수가 많기도 할뿐 아니라 직설적으로 그들의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시집가기전, 딸로 태어나자마자부터 구박을 받고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특히 위로 여자 형제만 줄줄이 있을 때에 그것이 더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르다. 같은 여자로서 안쓰러운 마음으로 정을 듬뿍 담아 딸을 달랬다.* 가상인터뷰1) “나 태어났을 적에 우리 집에 내 위로 딸만 줄줄이 여섯이었다제. 그래서 우리 아부지가 술을 양껏 먹고 와서는 큰소리를 고레고레 지름시로 또 딸이냐고 얼마나 성질을 내면서 애기 이름은 섭섭이로 하라고 엄마한테 그리 말했다하데. 또 딸이어서 섭섭하다 그거였것제. 그래서 내 이름이 섭섭이여. 박섭섭. 우리 어메가 내가 어찌나 안쓰러웠는가 나를 달래면서 곱게 곱게 잘 크라고, 오동나무 구리장에 오동숙을 걸어줄테니 곱게 잘 크라고 노래를 불렀었제. 옛날에는 다 그랬어. 대를 이어야헌디 맨 딸만 나온께 딸이 어디 사람 취급이나 받았당가. 그저 구박받고, 눈치보고 그랬제. 먼 죄가 있다고.”딸아딸아//망난딸아곱기나먹고//곱기나입고곱기곱기//니잘커라오동나무)//구리장에오동숙을//걸어주마곱기곱기//니잘커라(딸 어루는 노래, 박섭섭, 경북 성주군)여자로 태어나 온갖 눈치를 보는 딸을 안쓰러워하고, 여자로 태어나 시집가서 고통을 아는 어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에 딸을 안고 이러한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2) 시집살이 시작어린 나이에 시집을 간 소녀는 낯선 시집살이에 외로워하기 시작한다. 아직 어른이 채 되지 못한 어린 소녀에게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시댁식구들과 그 낯선 환경에서 예전과는 다른 혹독함을 느끼게 된다.* 가상인터뷰2) “내가 열다섯에 시집을 갔어. 열다섯살 짜리가 머 아는 것이 있었것는가. 그래도 내딴에는 잘할라고 징허게 노력했당게. 그래도 시집살이는 무섭데. 언제는 집 마당에 석류꽃이 떨어졌었제. 시어메가 석류꽃을 징허게 좋아했었어. 그란디 꽃이 떨어져 있은께 노발대발이 아니제. 그란디 못된 시누이가 그 꽃을 내가 꺾었다고 그짓말을 한거여. 그 뿐이간 먼 놈의 제비 새끼까지 내가 건들었다하고. 찰부침이 먹고 싶다한께 해놨드만 내가 다 먹어블었다고 구박하고. 시어메고 시누이고 참말로 나를 징허게 서럽게 했어. 얼마나 서러웠는가 그 어린 나이에 참말로 무섭데. 나 혼자 많이 울었었당께.”열다섯에//시접)을오니시접살이//살라하니나안꺾은//석루)야꽃도날꺾었다꼬//탓이로세나안건디린//제비새끼날건디맀다//탓이로세나안묵은//찰부낌이)도날묵었다꼬//탓이로세무섭더라//무섭더라시집아살이가//무섭더라(시집살이 노래, 오춘자, 경남 거창군)처음 대하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응할 새도 없이 시집 식구들은 시집 온 어린 소녀를 구박하기 시작하고, 그 누구도 소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낯설고 외로운 시집살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3) 고된 노동시집살이는 혹독하게 시작되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온갖 구박과 눈치를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과 함께 찾아오는 육체적 고통도 시집살이의 설움과 아픔에 한 몫을 했다. 옛날에는 며느리를 들인다는 것을 하나의 노동력의 확보로 생각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일을 시켰고, 그 양은 끝이 없을 정도였다. 가난을 이겨내는 것 또한 여성에게는 큰 짐이었던 것이다.* 가상인터뷰3) “시집살이라는 것이 눈치살이라고 하지만은 그게 다가 아니여. 애기 아부지는 새벽에나 들어와서 아침 일찍 또 나가블고 그라믄 인자 시어메가 게으름 피우지 말고 일찍허니 일 시작하라고 구박이제. 청소하고 빨래부터 시작해서 인자 식구들 먹여살릴라믄 내가 일을 안 할 수가 없었어. 그저 방아를 찧기 시작하면 찧고 찧고 또 찧어도 끝이 없이 그렇게 일을 했제. 그라고 날마나 방아를 찧을 때면 참말로 설움이 그지없데. 그라믄 나 혼자서 끙끙앓음서 노래나 부름서 내 더런 운명을 탓했제. 복도 없다. 참말로 더런 복을 지녔구나하고 말이여.”콩닥콩닥//찧는방애이방아찧고//내어하니이방애로//찧어내여저어갖다//바칠낀꼬)골병들어가미//방아찧어이방아찡어//묵고사니이런서월//오딨더노)더럽고도//더런복을징깄구나)(방아타령, 정분자, 경남 의령군)시어머니의 눈치를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더라도 당시에 여성이 짊어져야 할 일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서부터 먹거리와 관계된 밭일, 이불이나 옷을 짓기 위해 길쌈일을 해야 하는데, 길쌈일은 목화송이나 삼대를 채취해 다듬는 일부터 시작해 물레질·베틀질, 그리고 옷을 만들고 꿰매는 마름질과 바느질 등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쉽고 간단한 일만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가난까지도 며느리가 검소하고 부지런하지 못한 탓으로 돌려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4) 남편의 부재정신적 고통에 육체적 고통까지 더하니 그 설움은 극에 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고개를 돌릴만한 대상은 남편이다. 당시 여성에게 있어 남편이란 한평생을 어떻게 살아가게 되느냐 와도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여성의 삶은 크게 보면 남편의 삶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인 입신출세하기라도 하면 그 부인 또한 귀해지는 것이고 그 남편이 천하다면 부인 또한 천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당시 여성에게 있어 인연을 맺게 될 지아비란 평생을 함께 살아 갈 가시버시의 의미를 넘어서 나의 운명을 결정하고 때로는 나의 꿈을 이뤄줄 수도 있을 거대한 존재였던 것이다. 게다가 부부 사이는 무촌이라고 했다. 시집에서 남편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이 어디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민요에서 보면 그런 남편은 여성에게 여성이 꿈꾸곤 했던 것처럼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 되어 주지 못했던 듯 하다.*가상인터뷰4) “아무리 딸이라고 집에서 구박을 받았어도 자석은 자석이라고 울집에서는 나를 애지중지 좋은데로 시집을 보낼라고 중매쟁이를 불러다 가리고 가려서 시집을 보냈는디. 방안을 들여다본께 바람만 나데. 그래도 내가 몸 두고 마음 둘 데라고 들어선 방인디. 서방은 매일 집을 비우고 오덜 안했어. 그라고 혼자 덩그러니 방에 앉아 있으믄 시집올 때 해온 오동나무 장롱이 나를 보고 비웃는거 같었어. 둘이 덮자고 지은 비단이불은 나만 덮고 서방은 덮도 못하고, 둘이 베자고 지은 베게도 나 혼자 베고 잤제. 생각해보게 내가 얼마나 눈물바람을 많이 했것어. 방에 걸어논 수건이 눈물로 다 젖을 지경이었당께. 안그래도 시어메 시누이 구박땜에 서러운디 내 심정이 어쨋것는가.”울오매라//날설적에)애정요로//나를새와)열달이라//배실러서)이내나를//낳았건데옥일런가//금일런가애지중지//키완부모열다섯이//나이드니양사방서//구인오네)북에남에//서에동에중신아비//들어들자
? 생각해 볼 문제 ?1. 티베트 내에 거주하는 중국인의 수를 파악하기 힘든 이유티베트 민족이 소수 민족이라고 불리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수치상의 문제일 것이다. 중국 전체 중 92%가 한족이고 나머지 8%에 해당하는 55개 민족이 바로 소수 민족이다. 이러한 소수 민족 중 티베트는 6번째로 큰 민족이기도 하다.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의 소수 민족일지는 몰라도 최소한 사진의 민족이 거주하는 지역 안에서는 다수 민족이었다. 그러나 한족 이주 정책이 철저히 이루어지면서 티베트 민족들은 이제 그들의 거주지에서조차 소수 민족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족 이주 정책은 티베트의 사회, 문화를 깨트리기 위한 하나의 정책이다. 티베트를 무너트리기 위해 계속 한족을 티베트로 이주 시키고 있으므로 티베트 내 중국인의 수를 파악하기는 힘든 일이다.2. 중국이 티베트를 놓아주지 않는 이유티벳 지역이 인구는 그리 많지 않아도 엄청난 크기의 영토를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순전히 영토의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첫 번째로 티베트 지역에는 원유, 석탄, 철광석 등 많은 지하자원이 매립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원 난에 허덕이는 중국의 마지막 보고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두 번째로 지정학적 위치입니다. 티베트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next big thing 인도를 견제할 수 있음은 물론 자원과 안보의 요충지 중앙아시아를 향해 진출할 수도 있다.세 번째로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 때문이다. 티베트가 독립하면 티베트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위구르족, 회족, 묘족, 조선족 등등 수십 개의 민족이 다 자치를 주장하면 중국은 구소련의 뒤를 이어 해체의 수순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3. 티베트 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 이유이번(98년 6월) 미국 대통령의 클리턴의 중국방문에서 논의된 주제 중의 하나는 티베트문제였다. 클린턴이 직접 티베트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말을 강택민 주석에게 할 수 없는 처지였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되는 것이겠기에, 그가라는 것을 달라이 라마가 인정하는 일이었다.중국정부로서 볼 때, 89년의 천안문 사태나, 대만 독립 문제나, 중국내의 인권 문제 등을 외국인들이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 성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티베트나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며, 중국의 인권문제도 역시 중국내의 문제이므로 내정 간섭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조금 거리를 떼어놓고 본다면, 미국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티베트문제를 거론하는 것이나, 중국이 그것은 우리의 문제이니 간섭하지 마시오, 라고 하는 것 모두, 본질은 회피한 채 정치 외교적 수준에서 -말하자면 '외교꺼리'로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미국이 정말로 티베트의 독립에 관심이 있을까? 그것은 티베트 사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일까. 또 중국 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지역이 티베트 뿐만 아니라, 신장인들-동투르키스탄인들도 티베트보다 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독립을 추구하고 있고, 대만인들 역시 중국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대만을 독립국가로 세우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은 대만인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것을 이번 방문에서 인정하였다. 전략상 혹은 경제적 조건에서 볼 때, 대만이 가진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의 말 밖에는 안하는 것이다. 또 신장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미국여론이 별로 관심이 없거니와, 이번 클린턴의 방문에서도 그런 문제는 일언반구도 없던 것으로 보아, 이 문제는 '외교꺼리'가 되지 않음이 분명하다. 신장은 이슬람의 세계이다. 기독교도들이 이슬람 세계의 독립운동을 지원할 리는 없을 것이다. 반면 티베트는 불교 국가이니까, 독립해도 미국에 대립적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또 잠시 동안이나마 영국의 지배를 받은 까닭에 앵글로 색슨의 문화가 어느 정도 침투해 있어, 반서방적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달라이 라마의 친서방적 외교 정책도 한몫을 할테고. 여하튼 미국 내에는 티베트의 독립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인사들이 많고 다면, 대만에 대해서나 신강에 대해 위와 같은 이중적 태도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4. 티베트 분쟁에 대한 주변 열강들의 입장중국의 티베트 정복과정에서는 사실 제국주의 냄새가 난다. 18세기 중엽 청조 아래서 티베트의 내분을 계기로 군사침략을 감행하여 그곳을 보호국으로 둔 이래, 티베트 문제는 중국 역사에서 또 티베트의 역사에서, 다시 이곳에 인도 식민의 차원과 러시아의 남하저지를 위해 영국이 침략해 들어온 이래 아시아의 중요 문제로 떠올랐다. 영국은 이곳을 러시아의 방어진지로 여겼고, 반면 청은 이곳을 통해 영국이 중국 본부로 들어오는 것을 저지하려고 하였다. 청말 사천 총독을 지낸 정보정이라는 사람은 사천을 지키기 위해 티베트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로 티베트를 봉쇄하였던 것이다. 영국은 최종적으로 티베트에 군사적 침략을 단행하였고, 그 결과 13세 달라이 라마가 쿠룬(현재의 울란 바트로)까지 도망하는 신세가 되었다.5. 티베트 분쟁에 대한 우리나라의 입장우리나라에서는 현재 티베트 독립운동을 단순보도하는 사실 이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들은 것이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국 내에도 티베트에 관심이 있어서 그곳에 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그러나 티베트의 독립이나, 티베트인들의 현실적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 홍진 문명세계를 벗어나 영혼의 안식처로 그리워하면서 여행하고 있는 듯하다. 티베트 기행문에 보면 대개 그렇다. 아직 영화로 보지는 않았지만, 하인리히 하러의 자전기 {티베트에서 7년}에서도 티베트 불교의 영험이 하러를 영적 세계로 이끌었다. 티베트 붐이란 대개 이런 정도일 것이다. 이런 기회에 티베트의 독립이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중국 내의 '소수민족'들이 독립 국가를 갖게 된다면, 분명히 '거대 중국'에게는 불행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근대라는 것이 하나의 민족이 자기의 국가를 갖는 시기였다고 본다면, 중국 내의 '소수민족'에게도 그것은 당연하지다 '중간국' 혹은 소국들이 많아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6. 유럽의 입장현재의 현상들을 피상적으로 본다면 오리엔탈리즘에 젖은 유럽인들이 티베트를 일종의 예외로 대우해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학 강단에서 티베트의 ‘내면적 근대성’이 서구의 ‘외면적 근대성’보다 우월하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면 그게 오리엔탈리즘의 대척점이 아닐까? 그런데 유럽인들의 티베트관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면 티베트를 우러러보는 그 태도의 내면에 오리엔탈리즘적 요소들과 정책적인 계산들이 내재돼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유럽인으로서 최초로 티베트를 정탐한 17~19세기 가톨릭 선교사들은 사찰의 지옥도(地獄圖)나 공포스러운 모습의 호법신(護法神)들의 그림에 경악해 티베트 불교를 중국 불교보다 더 사악하게 묘사했다. ‘라마교’(Lamaism)라는 비칭이 붙은 티베트 불교에 대해서 19세기 말 영국 탐험가들은 “신도들의 복종만을 요구하는 정신적 테러리즘”이라고 혹평했으며, 1904년 영국군의 티베트 침략에 종군해 나중에 란 베스트셀러를 낸 에드문드 챈들러(Edmund Chandler)는 티베트 승려들을 “미신을 수단으로 혹세무민하여 민중에 악정을 베푸는 무리”로 봤다. 그 “미신”이 “지구를 구할 진리”로 탈바꿈한 것은 1920~60년에 이루어졌다.세계 공황·대전들의 시대에 서구적 근대성에 회의를 느낀 서방 지식인들에게는 폭력의 도가니에서 구해줄 ‘이질적이며 신비스러운 존재’가 필요했는데, 신지파(神智派·theosophy)라는 소수의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세계의 영적 중심’으로 해석된 바 있던 티베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이슬람권과 달리 유럽과 경쟁한 역사도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은 적도 없는 그야말로 ‘경계선 밖의 오지’, ‘우리’에게 저항한 적이 없는 ‘그들’을 영적 스승으로 받아들이기에 별 거리낌이 없었다. 근대성에 회의를 느낀 지식인들이 신좌파 등 ‘불온 사상’에 빠지기는 걸 방지하려 했던 미국 등지의 주류 보수주의자 입장에서도, 1959년부터 망명하여 대중국 독립 투 같은 ‘동양 스승’인 마오쩌둥이나 호치민보다 낫지 않았겠는가? 또한 무엇보다 티베트는 인도와 중국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망명 중인 티베트 정통 지배자들과 서방 지성계 사이의 두터운 연결고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공포스러운 미신’은 거의 100만명에 이르는 미국인의 신앙·애호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그러면 그 효과로 티베트에 대한 서방인의 태도는 오리엔탈리즘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나는 게 아니라, 비하 위주의 ‘부정적인 오리엔탈리즘’ 대신 낭만적 소비로서 ‘긍정적 오리엔탈리즘’이 서구가 티베트를 보는 프리즘이 된 듯하다. 티베트에 대한 상상은 ‘정체되고 신비스러운 오리엔트’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대상물의 복합성을 무시해버리는 타자에 대한 일차원적 의식의 형태가 원래 그렇듯이 그에는 폭력적인 이면들이 많다.7. 불교를 통한 제정일치 사회적 합의가 되고 있는가?티베트가 획일적으로 ‘불교의 낙토’로 상상되는 만큼 티베트 토착 종교인 본교 신도들이 몰이해를 당하게 되고,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의 대표자’로서 위치를 점하는 만큼 달라이 라마의 종교적 지도를 받지 않는 가규파(Kagyupa·?擧派) 등 소수 문중들이 소외당한다. 특정 대상물의 숭배적 신비화는 결국 타자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라는 불교적 가치에 대한 배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물론 일부 서구인들의 티베트 불교에 대한 감화를 기뻐할 수 있고, 중국과의 협상에서 세계 여론의 카드를 십분 이용해야 할 달라이 라마가 미국 정계와의 어쩔 수 없는 유착도 이해할 일이다. 그럼에도, 티베트 민중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티베트가 단지 구미인의 ‘상상적 이용’의 대상물이자 미 정부의 대중국 정책의 수단이 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티베트도 여느 다른 지역 못지않게 모순으로 찬 계급사회이며 불평등한 위계질서적 관계나 종교집단, 집권 파벌 사이의 갈등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티베트 불교를 존중한다면 티베트 불교의 신비로움을 즐기며 달라이 라마를 숭배하기보다는, 차 한다.
버킷리스트 감상문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두 남자가 2인실을 함께 쓰게 된 것이다. 가난한 흑인으로 태어난 자동차 정비사 카터와 재벌 사업가 에드워드는 인생부터가 달랐고, 인생관과 종교관, 심지어 결혼과 사랑에 대해서도 어느 하나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함께 병원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죽음으로 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카터는 어릴 적부터 가난했지만 꿈이 많았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아내인 버지니아를 만나게 되고 버지니아가 임신을 하게 된다. 그의 꿈은 무너져버렸고 현실에 시달리며 아내와 딸, 두 명의 형제를 위해 일생을 바치며 헌신적으로 살아왔다. 카터는 항상 그랬듯이 직원과 퀴즈문제를 풀며 자동차 수리를 하던 중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카터에게 갑자기 죽음이 닥치게 되고, 죽음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에 절망하며 자신이 죽는 날을 알기를 간절히 원한다. 어떤 사람도 자기의 죽음을 알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그 시간이라도 알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반면, 재벌 사업가 에드워드는 15살부터 일을 시작해서 돈의 가치를 일찍부터 깨닫고 그것을 키우는데 한평생을 받쳤다. 그래서 이미 자본세계에서는 높은 자리에 올라 있었다. 에드워드은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던 중 기침을 하면서 피를 토하게 되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병원주인 에드워드는 혼자 입원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카터와 한 병실을 쓰게 된다. 그는 네 번 결혼하고, 네 번 이혼을 했다. 오직 자신과 돈 밖에 몰랐던 그에게는 병이 심각해 입원을 하게 되어도 오직 그의 비서인 톰만 곁에서 그를 모실 뿐,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6개월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고 태연히 야구를 시청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죽음 앞에 돈의 힘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카터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대학시절 철학교수가 숙젤 내주었던 버킷 리스트를 떠올리면서 지금 이 순간 진정 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한다. 이 땅의 최고로 멋지고 장엄한 광경보기,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눈물 날때까지 웃어보기 등 다소 소박한 느낌이 들지만 그 리스트 들은 그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튿날, 에드워드가 그 리스트를 보고 웃음을 띄우자, 티격태격 한 끝에 협상을 벌인다. 둘은 타지마할에서 세렝게티까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허름한 문신집까지 일생일대의 모험을 한다.두 남자가 살아서 함께 같이 하지 못한 리스트는 3가지였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키스하기‘는 에드워드가 혼자 남아서 그리워 했던 딸을 만나면서 손자에게 해준 키스로 지워지게 된다.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는 카터의 장례식장에서의 에드워드가 모르는 이들 앞에서 하는 연설로 대신하게 된다. ’죽어서 재가되어 커피깡통에 담겨져 경치가 장엄한 곳에 묻히기‘는 에드워드의 담당 비서였던 톰이 눈덮인 산의 최고봉에 올라 카터의 유골이 모셔진 옆에 에드워드의 유골이 담긴 인스턴트 깡통을 내려 놓으면서 이루어진다.
§근친상간의 금지§◆목차◆1. 근친상간이란 2. 근친상간 금지의 인척으로서의 확대 와 축소 3. 근친상간 금지의 이론 4. 근친상간 금지의 의미 5. 오이디푸스와 올드보이1.근친상간이란 1) 친족의 의미 혈족은 혈연에 의한 관계들이고, 인척은 혼인으로 생겨난 관계이다. 친족은 혈족과 인척의 합을 말한다 2) 근친상간이란 인간사회에는 혼인이 금지되어 있는 일정 범주의 친척들, 혹은 성관계가 허용되지 않는 특정 범주의 친척들이 항상 존재한다. 금지된 친척들과 성관계를 근친상간이라고 한 다. 부부관계를 제외한 핵가족의 성원들간의 성관계는 전세 계적으로 근친상간이라고 간주된다.핵가족 근친상간의 금지 빨간색은 성관계가 금지되는 여성들이다. 어머니와 누이와 딸이다.3)근친상간의 금지의 8가지 명제 명제1 근친상간의 금지는 핵가족 내에서 性이 다른 성원 에게 적용된다. 명제2 근친상간의 금지는 핵가족을 벗어나면 그 적용 범위가 일률적이지 않다. 명제3 근친상간의 금지는 핵가족만 한정되지 않고 이차친척이나 혹은 삼차친척으로 확대된다. 명제4 핵가족을 벗어난 친척들이 핵가족 성원들과 동일한 친족용어로서 지칭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근친상간의 금지는 핵가족을 벗어난 친척들에게 핵가족 성원들보다 강도가 더 약하게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명제5 근친상간의 금지가 핵가족을 벗어난 친척들에게 적용될 때, 실질적인 혈연적 관계의 멀고 가까움과 일치하지 않는다. 명제6 근친상간 금지의 적용은 친족의 집단화와 강한 연관성을 보인다. 명제7 근친상간의 금지와 족외혼을 다른 성적 금지들과 비교해 보면, 그 특징이 금지의 강도가 강하고, 정서적 색채가 강하다는 점이다. 명제8 근친상간 금지의 위반은 발생한다.2. 근친상간 금지의 인척으로의 확대와 축소 근친상간의 금지가 인척으로 확대되는 원리 첫째, 근친상간의 금지는 그 인척이 나와 같은 혈족집단의 성원이면 그만큼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예) 부계사회의 숙모, 모계사회의 외숙모 둘째, 근친상간의 금지는 그 인척이 회피의 관계에 의해 나로부터 격리되는 사람이면 그만큼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예)장모, 며느리, 처남댁 셋째, 근친상간의 금지는 그 인척이 나의 배우자와 같은 혈족집단의 성원이면 그만큼 근친상간 금지의 적용은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예) 형수와 제수, 처형과 처제3. 근친상간 금지의 이론 1) 사회학적 이론 ◎ 말리노프스키 핵가족 근친상간이 일어나면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데 필요한 기성 세대의 권위가 파괴될 것이고, 핵가족 근친상간을 실행하는 사회는 자멸해 버릴 것이다. 2) 본능이론 본능이론은 근친상간의 금지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3) 무의식 이론(프로이트) 근친상간의 금지는 소년들의 심리적 내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본능적인 성적 충동, 곧 어머니와 어머니를 대신한 누이들과 성관 계를 가지고 싶어 하는 성적 충동을 무의식적으로 방지하는 메커니 즘이라는 것이다.4)성적 호기심 결여 이론 ◎베스트마르크 근친상간의 금지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 습관이다. 근친상간 을 회피하는 습관은 특정의 이성과 오랜 기간동안 같이 지 낸 결과 성적 욕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같은 집에서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온 이성들에게는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5)생물 유전학적 이론 잡종교배와 동종교배 근친상간 금지의 원인에 대한 설명 중에서 생물 유전학적 주장이 가장 명료할 것 같다. 잡종교배가 동종교배보다 교배 개체군들 간에 자연도태에서 유리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구석기인 들의 합리성 가설 동종교배 개체군에서 치사유전자의 발생률은 잡종교배 개 체군 보다 확실히 더 높다. 생물 유전학적 이론에 따르면 근 친상간 금지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구석기인 들 도 현대인들만큼 현명해서 동종교배의 상대적 불리함을 관 찰 할 수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4. 근친상간 금지의 의미 왜, 어떻게 근친상간의 금지가 발생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 도 없다. 그 원인이야 어떠하든 근친상간의 금지가 일단 확 립되면 긍정적이고, 자연 선택적인 장점들을 갖게 된다. 이 것은 유전적인 장점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진화적 장점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근친상간 금지의 기원을 설명 하는 것이 아니라 근친상간 금지의 결과를 검토해서 인간 사 회의 기반을 이해하는 일이다.★오이디푸스 이야기★★올드보이★{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