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맥잡기“한권으로 마스터하는 구약성경 (여호수아, 사사기 [Rp6])”땅에 대한 약속의 실현1..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획득여호수아서의 목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땅의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서술하는데 있다. 지파와 씨족과 가족에게 분배되는 가나안땅 분배에 관한 상술은 우리에게는 별로 흥미롭지 않은 일이나, 이스라엘에는 여호수아서의 가장 중요한 진술이기도 하다2. 약속의 성취로서의 땅 분배(땅 정복)이스라엘 민족에게 전쟁을 통한 가나안 정착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들은 가나님 민족들과 도시국가들에 대한 승리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적 언약에 대한 신실함을 체험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적을 물리치시고 땅을 주셨다. 땅이 분배되기전 그땅은 먼저 정복되어야만 했다.3. 하나님의 전쟁이스라엘의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힘이 결정적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한 이해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철저히 각인되어 있다. 구약은 ‘거룩한 전쟁’이 아니라 ‘야훼의 전쟁’을 언급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군사의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이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중요한 관건은 실제적인 전쟁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과 개입을 전개하는 것이다.전쟁에서의 인간의 행동은 보고될 필요가 없다. 구약의 수많은 전쟁보고는 이스라엘의 전쟁 행위에 대해 전반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님의 활동으로 ‘두려움’이 적들에게 임한다. 적들은 혼란을 겪으며 사기를 잃는다.하나님의 전쟁 동안 이스라엘의 태도┃하나님의 전쟁 동안 합당한 삶의 방식┃법궤는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며 그들을 위해 싸우셨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전쟁을 위해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만 했다.┃징집┃전쟁의 위협이 발생하면 나팔로 신호를 전달함으로써 병역의무를 지닌 남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징집되었다.┃공격 개시를 위한 하나님의 명령┃하나님의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은 신탁이나 꿈을 통해서 공격에 대한 명령을 내리셨다.┃헤렘(진멸)의 관습┃헤렘은 이스라엘의 전략이기도 했다. 헤렘은 하나님의 전쟁에 대한 신앙으로 강화 되었다.┃조심스러운 이스라엘의 전쟁보도┃사사시대 이후 백성을 통치한 이스라엘의 왕들은 인자하다는 평판을 받았다.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이스라엘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전쟁에서 여성을 욕보이거나 땅을 태우는 전쟁도 거부된다.┃이스라엘의 전쟁은 결코 제국주의적인 전쟁이 아니다┃하나님은 적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생존을 위협할 때 그들을 도우셨다. 가아안 정착은 영토의 확장이 아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땅에 대한 약속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신앙의 훈련’으로서의 ‘하나님의 전쟁’┃하나님의 전쟁에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백성을 도기 위해 개입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이스라엘의 믿음이 중요한 관건이다.4. 신앙고백서로서의 여호수아서여호수아서는 언약의 파트너인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의무를 부과함으로 결말을 맺는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행위에 감사하며 그것을 인정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 것이라는 약속을 하게된다. 여호수아서는 이미 이루어진 가나안 정착 이라는 결과로부터 하나님의 땅에 대한 약속의 실현을 묘사하려고 한다.5. 이스라엘의 땅 정착에 관한 또 다른 성경적 증언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은 매우 오랜시간에 걸쳐서 이루어 졌다. 여호수아서의 정복과 구약의 다른 가나안 정착에 관한 보고들은 역사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여호수아서는 신앙 고백으로서 가나안 정착에 대한 정확한 과정보다는 땅에 대한 약속의 성취를 하나님의 업적으로,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서술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땅에 정착한 이후의 위기1.. 사사기는 정착한 이후의 시기를 모순의 시기로 묘사한다.사사기는 약 200년 동안에 관한 보고 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혼란 스러웠던 시기이다.2.. 땅에 정착한 이후의 위기엄격한 구별을 유지하던 족장들의 유목생활, 고센 땅에서와 광야에서의 구별된 생활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가나안 땅과 그 주민들을 곧바로 완벽하게 진압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땅으로 진입했다. 그 땅에서 이스라엘은 이제까지 존재하던 가나안 주민과 그들의 문화 그리고 그들의 종교와 대결해야 했다.3. 이스라엘에 끼친 가나안의 생활방식의 영향광야에서 불안정한 생활양식으로부터 가나안 땅에서의 정착과 농경 문화로 변환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불안정한 면을 내포 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문명지에 알맞은 삶의 방식을 배움으로써 불안전한 면들을 극복하려 했다.4. 바알제의의 매력가나안 사람들로 부터의 학습과정은 필수적이였으나 위험한 요소도 있었다. 가나안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바알 신앙으로 강렬하게 각인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정착 이후 바알제의와의 대결이 불가피함을 인식하게 되었다.5. 바알 그리고/혹은 하나님첫째, ‘가나안 땅의 주’로 간주되는 바알과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신 ‘야훼’가 동일시 되는 것이다.
출애굽기 다시보기1.저자소개 및 책의 대한 개요저자 : 차준희서울신학대학, 연세대학교 대학원, 독일 본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남현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하였다. 한세대학교 구약학 교수, 한국구약학회 총무, 구약논단 편집위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 한국기독실업인회 지도 목사이며 설교전문지 월간 ‘프리칭’ 편집위원이다.책의 목차제1장 애굽에서 학대받는 이스라엘(출 1장)제2장 모세의 출생과 도주(출 2장)제3장 모세의 소명(출 3장)제4장 소명을 거부하는 모세(출 4장)제5장 모세와 바로의 첫 대결: 마지막 승리를 위한 첫걸음(출 5장)제6장 모세의 재소명(출 6장)제7장 모세와 바로의 재격돌(출 7장)제8장 하나님의 재앙(1): 개구리, 이 그리고 파리(출 8장)제9장 하나님의 재앙(2): 돌림병, 악성종기 그리고 우박(출 9장)제10장 하나님의 재앙(3): 메뚜기, 흑암 그리고 첫 소생의 죽음(출 10-11장)제11장 유월절과 열 번째 재앙(출 12장)제12장 홍해를 건넘(출 14장)제13장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출 16장)제14장 광야의 목마름과 전쟁의 시련 속에서(출 17장)제15장 이드로의 방문(출 18장)제16장 시내광야에 이르러(출 19장)제17장 십계명(1): 서문과 제1-2계명(출 20장)제18장 십계명(2): 제3-6계명(출 20장)제19장 십계명(3): 제7-10계명(출 20장)제20장 언약법전(1): (출 21장)제21장 언약법전(2): (출 22장)제22장 언약법전(3): (출 23장)제23장 시내 산에서의 언약체결(출 24장)제24장 금송아지 사건(출 32장)제25장 하나님의 동행(출 33장)제26장 파기 된 언약의 갱신(출 34장)2. 서 론출애굽은 구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 중에 하나이다.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와 언약의 성취를 체험 할 수 있었고 시내산 언약을 통해 택함 받은 백성의 의무와 책임을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출애굽과 그리고 시내산의 계명이 있는 출애굽기 ‘출애굽기 다시보기’ 이 책은 그 동안의 관점의 출애굽기가 아닌 새로운 관점으로 출애굽기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도 이런 책을 통해 한정적인 관점이 아닌 넓고 깊은 관점을 지니도록 하자이 책은 출애굽기를 그 동안의 일반적인 사건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출애굽기 다시보기’만의 눈으로 재조명하여 바라보고 있다. 이는 성경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하는 자신감을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출애굽기의 대한 새로운 자신의 관점을 지니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출애굽기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새로운 뜻과 또한 우리가 다른 각도로 바라보아야만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는 성경을 배움으로 넓은 이해와 다양한 관점 지니도록 하자 출애굽기 속에서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놀라움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느끼는 시간 되도록 하자3. 본 론책을 읽을 때는 저자의 의도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저자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써는가는 제대로 파악하다면 책은 거의 다 읽은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한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책을 서술하고 있기에 그의 의도를 아는 것은 저자와 같은 관점으로 책을 바라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 있다.나는 전체적으로 이 책을 3가지 파트로 나누어 설명 하려고 한다. 첫 번째 파트는 바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과의 출애굽 이다. 제 1장에서 제 12장까지 이다. 이 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억압과 모세의 탄생 그리고 모세의 성장과정과 소명을 받아 왕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모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는 여정 까지 나타내고 있다. 이 장을 읽으면서 나는 사랑의 하나님을 내 자신 속에서 발견 하였다. 억압과 고난을 해방하시고 그 가운데에서 참된 평화를 만든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동시에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 성취의 신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모세를 향한 끓임 없는 사랑과 동시의 그를 위한 하나의 배경적 훈련은 이 책을 충분히 이해하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인간적 사고로 바라보기에는 모세는 아직 많은 부분이 미완성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그를 사용하신 분이 완전하기에 그의 불완전성은 감추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본적 강조 없음을 나는 아쉬움 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모세의 소명을 재조명한 부분은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재발견 또한 재신임을 나타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특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 장면에서는 인간적인 모세의 장면을 다고 있음으로 책 속에서 모세의 행위가 우리의 행위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언약의 성취라는 부분 또한 이 장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점 중에 하나였다. 출 1: 7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 역사적인 사실로 성취되는 사건 애굽 왕의 이스라엘 민족을 몰살하고 자손이 번성하는 것을 막으려고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처럼 부리며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명령까지 하며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한다. 그럼 상식적으로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수가 줄어 들을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이러한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 넘어 우리의 관점으로 생각할 수없는 방법으로 더욱더 이스라엘 자손들은 번성한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은 어떠한 상황이든지 또한 이루어지는 시점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함을 알고 깨닫게 된다.그리고 또한 한 부분은 제13장에서부터 16장 까지 광야에서의 생활이다. 그 안에서도 출애굽 사건처럼 광야생활 또한 쉽지만은 않았다. 출애굽 후에도 그들의 불만은 멈추지 않고 점점 더 그들은 자신들에게 이익 되는 것들을 원한다. 그들은 항상 그들의 주의 배경 속에서 자신의 삶의 기쁨을 찾기 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대한 불평과 불만으로 지도자에게 도전자하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 들을 사랑으로 품으셨다. 그리고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진정한 하나님의 선민으로 거듭나는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다. 거둠과 나눔의 영성, 안식일을 거룩히 생각하는 영성을 통해 그들은 점점 더 하나님의 백성들도 거듭 나기도 했지만 그들은 항상 불평과 불만의 모습을 모여 준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모습과 흡사하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날마다 삶의 기적을 체험 하지만 쉽게 그 사실을 잊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내 멋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과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과연 실천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도입: 성경과 믿음1. 나는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사용하신 하나님의 도구이다. 믿음이란 두 인격 사이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관계이다.2.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경험을 담아내고 있다.성경은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고 수집된 것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경험을 통해 형성된 하나님의 말씀이다.창조1.성경의 창조기사와 자연과학.자연과학측면에서 세상의 생성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다.자연과학자들은 세계 생성에 관하여 지금과 전적으로 다른 진술을 제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성경의 창조 이야기들은 어떻게 이야기되어야 하는가?성경의 처음 두 장에서 상당히 다른 두 개의 창조의 서술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은 지구의 생성방법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성경은 세상을 누가 창조 했는지와 같은 또 다른 질문들에 답을 주고 있다.첫 번째 창조 이야기에선 하나님은 인간을 맨 마지막에 창조 하셨다. 하지만 두 번째 이야기에 의하면 처음에 사람을 창조하셨다.하나님은 사람을 처음에 아니면 마지막에 만드셨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누가 모든 것을 창조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창조 되었는지와 같은 질문들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두 가지의 다른 창조 이야기는 이 질문들에 동일한 답을 준다.보다 오래된 창조 이야기(창2:4b-25)는 야웨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사람이 창조의 중심이다”라는 본질적 진술을 명확히 나타낸다.보다 후대의 창조 이야기(창1:1-2:4a).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피조물 가운데 인간이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진술을 한다.이 두 가지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진술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중 인간이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는 두 가지의 사실이 일치함을 알 수 있다.창조보도는 곧 신앙고백이다.성경의 창조 이야기들은 사실 신앙고백이다. 왜냐하면 기록자들은 그리스도 보다 10 하며 살아갈 때 이 땅의 주권자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위탁받았고 이 땅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할 때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 때 보시니 좋았더라 라고 하신 판단이 유효하게 된다.4중적 평화첫 번째 창조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상대자로 창조하셨으며 땅의 주권자, 협력자로 위임하셨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두 번째 창조이야기에서는 인간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언급한다. 인간이 하나님과 상대하여 어떻데 자유와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창조 이야기를 포함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이야기가 타락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이미 파괴된 상황에서 기록 되었다. 이것은 현 상황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과거의 의도를 역추적 해야 함을 의미한다.1. 인간은 하나님과 평화로운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창세기 2:8-15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먹기에 좋은 열매들과 매혹적인 나무들이 있는 울창한 숲에 인간을 두셨다. 이 정원은 에덴에 위치한 에덴동산이다. 인간의 삶은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과의 충분한 신뢰 속에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영원히 살아야 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들지 않으시고 책임을 지닌 자유로운 하나님의 상대자로 만드셨다.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롭고 동시에 책임적인 상대자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영원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존재로 선정된 것이다.2. 인간은 자기 자신과 평화로운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자신의 가치를 건강하게 지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후 남편과 아내는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알게 된다. 그 순간 그들은 서로의 수치를 느끼며 앞치마를 만들고 자신의 벌거벗음을 가린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도 숨는데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나서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계명을 어긴 것에 대한 책임을 거부 할 때처럼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 앞에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설 수 없었다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다.3. 인간의 죄의 결과로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죄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삶속에서 ‘소외’로 경험 된다. 소외는 죄, 즉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등을 돌린 것이다.4. 죄는 4중적 평화를 파괴한다.하나님과의 불화- 인간이 하나님 아래에 있는 존재란 사실에 만족하지 못함이 보여진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게 된다.자기 자신과의 불화- 타락이전엔 벗었으나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명을 어긴후에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고 벌거벗음을 부끄러움으로 여겨 앞치마로 가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감춘다.다른 사람들과의 불화- 계명을 어기고 난후 벌거벗음은 다른 사람들과 상대할 때 특히 고통을 느끼게 했다. 앞치마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벌거벗음을 감춘다. 또한 여자가 권해 열매를 먹었다라고 말함으로써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의 연대성을 깨고 행위의 책임을 여자에게 돌린다.환경과의 불화- 하나님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파괴된 결과에 책임을 물어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낸다. 남자는 동산 밖에서 땀을 흘려서 식량을 얻어야 했고 여자는 해산의 수고를 겪으며 자녀를 낳게 된다.5. 하나님은 죄인을 멸하지 않으셨다.하나님은 인간에게 계속해서 은혜로운 태도를 취하셨다. -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직접적인 교제가 가능하진 않았지만 하나님과 인간의 접촉은 계속 이어진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할수 있다.하나님의 목적은 자신과의 교제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다. - 하나님은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소명을 통해 인류를 축복하신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이 만든 인간을 구원하는 목적을 갖는다.6. 부록: 죄와 죄책감죄-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김으로써 죄를 짊어지게 되었다. 인간의 어떠한 행동도 죄에서 자유롭게 할수 없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할수 있다.죄책감- 인간 자신이 내적으로 의무적인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리라”-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은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는 구체적인 약속으로 시작된다. 성경은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시고 구원하시며 또한 도우려고 하실 때에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인류를 구원하려 하시는 길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한사람을 택하심으로 부터 시작이 되었다.의무: “너는 복이 될지라.”- “그리고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는 그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한 복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자신만을 위한 창고에 쌓아 놓을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해야하며 이를 통해 다른 이들도 하나님의 복을 누려야 한다.3.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는가?인간이 하나님의 방식을 규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아브라함, 야곱, 모세, 베드로, 사도바울도 인간적인 약점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인간적 완전함은 하나님이 인간을 선택 할때의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일을 위해 선택된 이들의 특징이 있었다. 그들이 같은 성향을 기질적으로 갖고 있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활동과 말씀에 대한 개방성을 가지고 있었다.4. 아브라함의 모범적인 신앙.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며 거하는 곳마다 하나님을 섬기는 외적 표현으로 제단을 쌓는다. 그리고 무릎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겸손함을 알수 있다. 특별히 아브라함의 믿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나이가 많은 사라에게 어렵게 얻게 된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5. 하나님의 미래적 목적: “땅의 모든 족속들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대한 신앙은 온 세계에 증언하도록 부름받는다. 이스라엘은 강력한 나라가 되지만 세계의 축복이 되어야 하는 자신들의 운명에 부응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매번 배척하고 우상을 숭배한다. 그 결과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개입하시고 속해 있으며 바빌론의 종교와 구별되 있음을 나타내는 신앙고백의 행위가 되었다.할례의 의식은 이스라엘 사람의 순종을 목표로 한다 할례가 외적인 의식으로 전락할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할례는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사람의 순종을 목표로 한다3.구별은 이스라엘의 공동의 신앙을 고무시킨다공동의 신앙을 통해 이스라엘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세계로부터 구별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신앙을 통해 처음부터 그들을 둘러싼 주변 세계로부터 스스로가 이질적인 존재임을 경험했다. 이 같은 공동의 경험은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가 되게 했다단일신론으로부터 유일신론으로의 발전 유일신론 이전에 이스라엘의 의식속에는 한 신에 대해서만 의무를 다하는 ‘단일신론’의 개념이 존재했다. 이는 한신에 대해서만 의무를 다하는 헌신이었다.구별없이는 특별한 신앙적 인식이 불가능하다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이스라엘의 인식은 아스라엘이 구별에 대한 촉구를 순종하고 다른 종교의 영향력을 차단 하는 것과 연관되었다. 그러한 인식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가 되게 하였다.4.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는 이스라엘을 하나로 통합한다.공동의 희망적 재료인 약속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에세 자신의 땅에서 커다란 민족이 될것과 온세계의 축복이 될것이라는 희망의 약속을 하셨다.성취된 약속의 문제 광야시대 이후의 세대들은 약속의 성취를 개인적으로 체험했다. 그러나 그 이후 세대에게는 희미하게 사라져갔고 그 가나안땅에서의 삶을 당연시 여기고 하나님을 이탈하는 원인이 되었다.예언자들은 그 약속을 미래로 전용시켰다 후대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미래로 전용시켰다. 새로운 언약이 제시되었고 이스라엘의 사명은 미래에 유효한 것이 되었다.요약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은 이전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공했다. 위기의 시대 이후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로 묶는 희망의 빛을 얻게 되었다.5.위기의 시기는 이스라엘을 더욱 밀착시킨다고난의 경험을 통해 성숙한다 하나님은 우리다.
1장 구약의 목회자오늘날 목회자들은 구약성서의 예언자와 제사장, 지혜자의 직무를 계승한 자들이라고 볼수 있다. 구약성서의 중요한 지도자들인 세가지 직분은 이렇다.중보자이며 ‘말씀의 전달자’였던 예언자. 흔히 예언자는 심판을 선포하는 자이고, 제사장은 중보하는 자라고 잘못된 생각을 하곤 한다.구약성서의 제사장은 여러 가지의 기능을 담당하는 자로 소개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토라[율법]의 전문가라는 사실과 온전한 제사를 책임을 진 자라는 것이다.지혜자는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에 적절하게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온 경험에 근거한 충고를 주는 자이다.오늘날 목회자들은 세가지 역할을 바로 알고 계승해야 한다. 중보기도 하고 하나님을 부터 받은 말씀을 가감 없이 진솔하게 전달하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늘 연구하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준비하고 인도해야 한다.2장 구약의 환경신학21세기 공동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인류는 과연 어떤길을 가게 될것인가?” 하는 점이다. 기독교는 자연은 단순히 인간을 위한 섬김이나 노예 혹은 희생양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인류 최대의 문제인 생태계적 위기에 대해 성서는 어떤 통찰을 제시하고 있을까? 우리는 새로운 종교를 찾지 않고 옛 종교를 고수 하며 그것을 재해석함으로써 답하고자 한다.칼뱅은 ‘자연의 타락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모든 피조물이 아담과 함께 타락함으로써 죄인 된 아담의 운명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즉 동물들이 강력한 악의 세력의 유혹을 받아 그들 나름대로 독자적인 타락을 경험했다는 것이다.정확히 말하자면 자연이 타락한게 아니라 인간이 타락하여 그 피해를 자연이 보고 있는 것이다.시편 104편은 창조주를 찬양하는 ‘찬양시’로 분류되며 ‘생태학적 시편’이라고도 불린다. 온갖 짐승들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관심이 먼저 언급되고 나중에 인간에 대한 관심을 진술한다.하나님의 창조를 논하는 자리에서 짐승들이 먼저 언급되고 뒤이어 인간이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하나기독교회가 하나님이 드러나도록 하는 운동이라 할수 있다.신명기 신앙은 세 단어로 정리된다. 즉 한 하나님, 한 민족, 한 성소로 규정된다. 야훼 신앙에서는 야훼 하나님 이외에는 그 어떤 신도 부인된다. 야웨 신앙은 야웨의 유일무이성을 특징으로 한다. 신명기는 야웨 하나님이 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숭배하는 예배도 한 장소에서 드려져야 한다고 요구한다.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차지하고, 그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분배하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별설교를 한다.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 모든 자파를 세겜에 모아 총회를 실시한다. 이스라엘 백성도 여호수아를 따라 야웨만을 따르겠다고 결단한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야웨 신앙의 배타성을 다시 상기시킨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란 한편으론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사랑이 없으면 질투도 생기지 않는다.또 다른 한편으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란 이스라엘로부터 사랑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나뉨이 없는 온전한 충성과 헌신을 요구하신다.이스라엘은 본디 혈연으로 묶여진 혈연 공동체가 아니므로 이집트에서 그들을 해방시키신 야훼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무리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이다. 신앙공동체는 상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일치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공동체이다. 서로다른 생활 습관과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야웨 신앙 안에서 상호간의 차이점들을 녹여버리고 하나가 되는 장을 세겜 총회를 통해 경험하였다.신명기 신앙의 핵심은 한 하나님, 한 신앙, 한 민족, 한 성소를 주장하면서 에큐메니컬 신앙을 지향하고 있다. 세겜 총회도 구약에 나타난 최초의 신앙일치 운동 이라는 면에서 최초의 에큐메니컬 총회인 것이다.4장 구약의 영 이해구약에서 영을 의미하는 는 히브리어로 378번 나오고 아람어로는 다니엘서에서만 나오는데 11회 언급되어진다. 이 단어는 첫째 이스라엘 초기 역사서 사사기와 사무엘상엣 두드러지게 많이 나타난다. 둘째 포로기 이전 예언시적인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계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가 동물을 포함한 사람과 관련되어 쓰인 경우는 129회에 달한다. 이 낱말은 특별히 사람안에서 움직이는 공기, 즉 ‘숨/호흡’의 의미로도 매우 자주 쓰인다. 이런면에서 바람으로서의 가 생명의 숨으로서의 로 발전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의 기상학적 의미로서의 바람이 자연현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면으로도 사용된 것처럼 사람의 영도 신학적인 의미로 쓰인다. 바람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과 같이 사람의 영인 생명의 숨/호흡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에 관한 관련성은첫째, 창조이야기에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고 숨을 불어넣어 주셨다.둘째, 시편기자는 창조주를 찬양하는 시편 104에 따르면 생명의 숨/호흡은 하나님만이 거두어 가실수 있고 또한 주실수 있다.모든 생명체를 포함하여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구약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일반적인 를 넘어서서 의 특별한 수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첫째, 소위 대사사라 지칭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에게 임하는 현상, 둘째, 황홀경 예언자들에게 임하는 현상이다.예언자 집단을 황홀경에 상태로 몰입 시켰던 의 현상은 포로기 이전 주전 8-7세기 소위 문서 예언자 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포로기 이전의 그 어떤 문서 예언자들도 스스로 를 통해 영감 받았다고 언급하는 경우는 없다.포로기 이전 문서 예언에서 의 언급이 적은 이유는 첫째, 문서 예언자들이 스스로가 황홀경의 예언자로 동일시 되는 것을 피한것으로 보인다. 둘째, 황홀경의 예언 현상이 이스라엘 고유의 것이 아니라 이방(가나안)에서 기원한 점도 를 회피하게 된 요인으로 보여진다. 셋째, 문서 예언자의 예언활동 본질에 의 개념은 적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포로기에 주로 활동하였던 예언자 에스겔에 이르면 문서 예언 이전 시대에 나타난 특징들이 되살아 난다. 즉, 영에 의한 영감, 황홀경 현상, 영광상태의 투시와 다른 장소로의 이동이라는 특징들이 나타난다. 포로기쌍방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말을 하나님의 복을 뜻하는 말로 받아 들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굳이 문제시할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축복이라는 개념은 히브리어로 에 해당된다. 동사 와 명사는 구약에서 398회 사용된다. 창세기에서 사용된 88회중 대부분이 족장전승에 집중에 있다. 이에 비해 오경 전승에서는 적게 나오고 있다. 민수기에선 17회의 빈도수를 보인다.시편에서는 총 83회의 빈도수를 보이는데 이중 절반이상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관계하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축복한다는 말은 정확하게 하자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인 것이다.그런데 이 단어가 예언서에서도 적게 쓰이고 있는데 예언서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언급하는 경우는 소수로 국한되는데 그 이유는 예언자들의 본질적 관심이 심판과 구원을 통한 하나님의 행동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하나님이 인간을 축복하는 경우 그 축복의 본래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학자들의 의견이 맞서 있다. 하나님의 축복의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 관계로 보아야 한다. 물질적인 면은 하나님의 호의를 보여주는 가시적 표시로 보인다.구약성서가 보여주는 초기 족장시대의 축복은 대체적으로 무조건적 이였다. 그러나 신명기의 축복은 조건적으로 바뀐다. 신명기에서는 축복이 언약과 연관되었고 결국 백성의 순종 여부가 축복의 조건이 되었다. 이러한 언약적 축복 약속은 양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구약성서에서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축복하는 경우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하나님과 축복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의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진술은 그 자체에 주술적인 힘이나 자발적으로 성취하는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의 축복은 다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을 진술하거나 기원하는 것이다.구약에서 인간의 축복이 기원적 축복이라는 사실은 축복의 근원이 인간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축복이란 인간이 원하는 대로 보존하거나 자신의 뜻대로 다른 이에게 나누어 줄수 있는 힘이 아니다. 축복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인간이 소 인간이 하나님을 축복하는 경우로 나뉜다. 보통 하나님의 축복을 말할 때,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축복하는 경우를 말한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영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이 모두 포함된다. 하나님의 축복에는 하나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무조건적인 축복과 인간의 순종과 결부된 조건적인 축복이 있다. 인간의 축복은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도록 기원하는 정도 이다. 축복의 근원은 철저히 하나님 한분뿐이시다.6장 구약의 계시와 이해계시란 바르트가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기 노출”이다. 하나님의 자기 노출은 역사적인 행위로 나오는데 이는 자신의 잭성과 맺는 공동체 관계 형성을 목쵸로 한다. 구약의 진술에 따르면 야웨가 이러한 공동체 관계를 세우고 보전하며 자신의 현존과 활동을 알리기 위해 사용한 도구와 심부름 꾼들이 신학적으로 계시라고 부르는 영역에서 다루어 진다.구약은 계시라는 일반적인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 히브리어에서는 그런 것을 지칭하는 단어조차도 없다. 계시라는 전문용어는 구약의 사유와는 정반대인 추상적인 개념적 사유에서 나오는 것으로 후대의 신학적인 숙고에서 도출된 용어이다. 구약은 오직 계시를 하나의 과정, 일어나는 그 무엇으로 알고 있다.구약에 따르면 야웨의 계시는 그것 자체가 목적이거나 그 자체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야웨는 계시를 통하여 인간, 집단, 자신의 백성 혹은 이반 민족들과도 당신과의 공동체 관계를 지속시킨다.구약에서 야웨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특별한 수단과 도구와 사람을 사용한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진영에 법궤가 도착한 것을 야웨의 오심과 동일시 하고 있다. 여기서 법궤가 계시의 도구로 간주된다. 창세기 20:3에는 꿈이 계시의 도구로 사용된다. 또한 야웨는 사자를 통하여서도 나타난다.“여호와의 사자”는 가장 중요한 천상의 존재로서 간주된다. 특히 하나님의 사자는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그리고 사사기에서 주로 등장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사자가 등장하는 곳에서는 이 사자가 곧 하나님의 계시 자체가 된다. 하나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