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의 시세계-순수서정에서 현실인식까지-- 차례 -1. 김영랑의 생애2. 김영랑의 시세계2.1 ‘내·마음’과 시심(詩心)의 발원(發源): 과거 회상성과 미래 지향성2.2 물과 달빛: 강물의 역동성과 ‘바다·달빛’의 관조2.3 5월과 시적 비유: 새와 ‘모란’2.4 촉기(燭氣)와 민족정신: 역사의식과 현실인식1. 김영랑의 생애전남 강진 출생, 본명은 允植, 5백석 부잣집에서 한학을 배우며 성장. 1917년 휘문의숙에 입학. 1919년 3ㆍ1운동이 일어나자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경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다. 1920년 아오야마학원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이 무렵 박용철과 친교를 맺었으며 로제티, 키츠의 시를 탐독하여 그의 서정 세계를 확대했다. 휘문의숙때는 테니스 선수였고, 서양 명곡과 국악, 특히 아악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시작활동은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등과 시문학 동인을 결성하여 1930년에 창간된 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등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의 목표는 순수예술로서의 시의 옹호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시에서 실천하는 일이었다. 해방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활동에 참여하여 대한독립촉성회, 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했다. 1949년에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다. 1950년 9ㆍ28수복 당시 서울에서 유탄에 맞아 죽었다. 1935년『영랑시집』과 1949년『영랑시선』을 간행했다.그의 시세계는 전기와 후기로 나눠진다. 전기시는 『영랑시집』의 시편들이 해당되는데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 비애의식이 표출된다. 그러나 그 비애감이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지 않고 마음의 내부로 향해져 정감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탐미주의자로서 감미로운 고독을 즐기고 있다. 요컨대 그의 전기시는 내면지향의 서정성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1940년을 전후하여 발표된 「거문고」,「毒을 차고」같은 작품에서는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민족의식이 번째 부인의 죽음을 ‘4행소곡’으로 남겼다.)김영랑의 시집『영랑시집』에 수록된 ‘4행소곡’에 해당하는 열 번째 시에서부터 서른일곱 번째 시까지 총 28편의 시에서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는 시의 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으며, 괄호속의 숫자는 시의 번호를 의미한다. “님두시고 가는길의 애끈한 마음이여”(10), “좁은길가에 무덤이 하나”(13), “밤ㅅ사람 그립고야”(14), “그색시 서럽다 그얼골 그동자가”(19), “밤이면 고총아래 고개 숙이고”(29),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얼골”(33) 등이 있으며, 그 중에 열세 번째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좁은길가에 무덤이 하나이슬에 저지우며 밤을 새인다나는 사라져 저별이 되오리뫼아래 누어서 희미한 별을위에 인용된 시에는 아내의 무덤을 찾아간 김영랑이 그 무덤가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는 점과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별이 되겠다’는 점이 나타나 있다. 전자의 경우에서는 그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길 없어 그 무덤을 찾아 왼 밤을 지새우면서 그 곁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에서는 ‘희미한 별’에 암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죽은 아내에 대한 시인의 그리움은 그 다음에 그 전문을 인용한 쉰 번째 시「마당 앞 맑은 샘」에서 절정을 이루게 되며, 이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마당 앞 저 깁흔 땅속에맑은새암을 드려다본다 편히누은 넛 잇서이밤 그눈 반작이고저 깁흔 땅밑에 그의것몸 부르심 가터사로잡힌 넉 잇어언제나 머ㄴ 하날말 마당앞내어다보고 계심 가터 맑은새암은 내령혼의 얼골별이 총총한맑은새암을 드려다본다아내가 자주 드나들었음직한 “마당앞/ 맑은새암”을 들여다보면서 김영랑 자신은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회상하고 있으며, 그러한 추억과 그리움을 지하세계와 연결 지은 까닭은 아마도 ‘아내의 영혼세계’와 자신의 일상생활을 일치시키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맑은새암’, 즉 아내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고 잇으려니이밤 옴기는 발짓이나 들려오리라이 시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업는듯이안져’이며, 이 부분은 궁극적으로 ‘긔척도 업는달’, ‘생각업시’, ‘뜻업시’, ‘말업시 몸짓업시’ 등에 의해서 시적 자아가 ‘없음’을 인식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인식은 ‘대상화된 자아’와 ‘자아화된 대상’의 완전한 일치를 전제로 한다. 김영랑은 이 시에서 자신의 순수한 존재를 순수한 무의식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절대적인 무’와 ‘상대적인 무’ 중에서 그의 무의식은 가능성을 긍정하고 현실성을 부정하는 후자 쪽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무의식은 김영랑에게 있어서 온갖 사유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하면 ‘업는듯이안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무의식의 발상은 ‘있다’와 ‘없다’의 대립, 곧 존재와 비-존재의 대립이 되며, 자신의 존재를 상대적인 무로 파악하는 하나의 가능성은 달이 솟아오르고 그 달빛이 자신의 존재를 밝히리라는 사실을 긍정하게 된다. 달이 떠오름에 따라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감나무 그림자’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그림자’ 및 그것과 ‘마주 않은 나’로 하여금 내적 성찰과 관조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시인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한 지고(至高)의 비경(秘境)에서 성찰과 관조를 하게 된다. 예를 들면, 1연에서 ‘나, 달, 생각, 뜻’에 관계되는 ‘없다’는 ‘절대적인 무’를 의미하고, 2연의 ‘감나무 그림자’와 달빛에 의한 ‘빛갈의방석’이 공유하고 있는 ‘마루 위’의 ‘있다/없다’의 대립은 시인이 존재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서의 ‘상대적인 무’를 부분적으로 암시하고, 3연에서의 ‘나와 내 그림자’는 내적 성찰로서의 ‘상대적인 무’의 세계를 이끌고 있다. 시적 자아의 이러한 내적 성찰의 단계는 ①절대적인 무(제1연)→②상대적인 무(제2연)→③지고의 무(제3연)로 정리할 수 있으며, 그것을 다시 ‘나’와 ‘자아’의 관계로 보면 ①미분화 상태(제1연)→②분화과정(제2연)→③완전한 분화(제4연) 등으로 파악할 수 있다.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김영랑의 시에서 에게 있어서 오월을 상징하는 ‘꾀꼬리’가 ‘소년의 새’에 해당한다면, 그의 시에서 ‘두견’은 ‘중년의 새’이자 ‘원한의 새’로 등장한다. 그러한 예는「오월아침」의 “두견의 가슴 찟는 소리 피어린 흐느낌”과 “새벽 두견이야 오-랜 중년이고”,「천리를 올라온다」의 “내 모습 내 마음 두견이 울고 두견이 되고”,「오월 한(恨)」의 “아무리 두견이 애달파 해도”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점은 그의 수필「두견과 종다리」에 집약되어 있다.나는 새움 나와 하늘하늘한 백일홍 나무 곁에 딱 붙어서고 말았다. 내 귀가 째앵하니 질린 까닭이로다.···온전히 기름만이 흐르는 새벽, 아-운다. 두견이 운다. 한 5년 기르던 두견아. 하늘이 온통 기름으로 액화되어 버린 것은 첫째 이 달빛의 탓도 탓이려니와 두견의 창연한 울음에 푸른 물든 산천초목이 모두 흔들리는 탓이요, 흔들릴 뿐만 아니라 모두 제가끔 푸른 정기를 뽑아 올리는 탓이다. 두견이 울면 서럽다. 천연히 눈물이 고인다. 이런 조고만 시골서는 아예 울어서는 안될 새로다.‘내 귀가 째앵하니’ 창연하게 울음을 우는 두견의 이미지는 김영랑의 시「두견(杜鵑)」에 반영되어 있다. ‘꾀꼬리’가 황금색의 밝은 색조를 띄고 소생과 상상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두견’은 중년의 성숙한 자태로 어둡고 암울한 음조를 띄고 반성과 회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인 자신이 백일홍나무 곁에서 새벽녘에 한 5년 기르던 두견의 울음소리를 듣는 장면은 존 키츠(1795~1821)가 자신의「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송가」에서 아침나절에 너도밤나무 아래에서 듣던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와 동일한 장면에 해당한다. 우선 김영랑의 시「두견」의 전문은 다음의 인용과 같다.“평생을 원한과슬픔에 지친 적은새”인 ‘두견’과 “서럽고 외롭고 여윈 이몸”으로 묘사된 김영랑 자신은 그의 시「두견」에서 서로 닮은 모습이 된다. “너 아니울어도 이세상 서럽고 쓰린 것을”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김영랑은 현실을 고통스러운 존재로 파악하고 있으며, 그것을 우리는 다시 영랑 자신은 “나는 눈이 어둡지 않아 이렇게 좋은 데가 없소이다. 귀가 막히지 않아 이리 복될 데가 없습니다.”라고 언급하면서, 꾀꼬리, 종다리, 혹은 두견보다도 더 점잖은 새에 해당하는 호반새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완성하고자 했고 그 깊은 정취를 느끼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호반새 소리’, ‘동백이 떨어지는 소리’, ‘햇빛’ 등은 자연과 ‘나’의 합일 및 그러한 예찬을 통해서 그 자신의 시의식을 심화시키고자 하였다.이처럼 김영랑은 ‘오월’을 통해서 인생의 기쁨과 절망에 대한 미적 경험을 동시에 체험하게 되며 이 모든 것을 종합하고 있는 정점에「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자리 잡고 있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즉 나의봄을 기둘리고 잇을테요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날나는 비로소 봄을여흰 서름에 잠길테요五月(오월)어느날 그하로 무덥든날떠러져누은 꼿닙마져 시드러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뻐처오르든 내보람 서운케 문허졋느니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말아삼백(三白)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을테요 찬란한슬픔의 봄을위에 인용한 시의 소재가 되고 있는 ‘모란’을 김학동은 김영랑의 ‘정신적 은거처로서 이상의 실현에 보다 강렬한 집념의 표상’으로 파악하였고, 김상일은 ‘농경민의 교환의 원리’로 파악하였으며, 이 시의 연의 구분을 김상일은 ‘4행 1연’으로 파악하여 전부 3연으로 파악하였고, 장만영은 이 시가 연의 구분을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우수한 시’이기 때문이라고 파악하였고, 김종철은 이 시를 네 개의 부분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이 시를 살펴보면, 이 시는 우선적으로 ‘봄’을 중심으로 하는 ‘모란’과 ‘나’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으며, ‘모란이 피다-봄을 기다리다’와 ‘모란이 지다-봄을 여희다’라는 엄격한 대립에 의해서 모란의 개화와 봄의 도래 및 모란의 낙화와 봄의 소멸을 나타내었다. 특히 이러한 부분에서 두어(頭語)의 반복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까닭은 두어반복(頭語反復)이나 수구반복(首句反復)있다.
Ⅰ. 국내 사회주의의 출현 배경우리나라에 사회주의 사상이 출현하게 되는 시기를 살펴 보자면 대략 3?1운동을 기점으로 해서 유입되고 보급되었다. 기존에 틀을 유지하던 조선의 유학이라는 사상과는 약간 다른 체계로서 일본의 독점자본 유입과정에서 식민지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되면서 농민층과 노동자층이 증가하게 되고 이와 함께 이들의 민족의식 등이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민족의식이 발전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민족해방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지도자층들 사이에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이 사이에 3?1운동이 실패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지도자 상을 갈구하게 되며, 또한 국외에서 소비에트 혁명의 성공으로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또한 그동안 핍박받던 하위 계급의 사람들 역시 서학이나, 동학 등의 영향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상 또한 널리 퍼지면서 이런 사회주의의 사상은 자연스럽게 노동자나 농민 등 하위계급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Ⅱ. 조선공산당 재건운동1. 조선공산당 재건운동1)초기 재건운동(1929~1931년)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출현한 당적 조직은 1918년 노령(露領)에서 결성된 한인사회당이었다. 이어 1919년과 1920년에 걸쳐 국내에서도 여러 공산주의 그룹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화요파, 서울파, 상해파, 등으로 불리우게 되는 이들 그룹은 당시 국제혁명운동의 지도 기관 역할을 하면서 국제공산당으로도 일컬어지고 있던 제3인터내셔날, 곧 코민테른)으로부터 조선 지부의 승인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각 그룹 사이에서는 분열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일부 그룹의 연합에 의해 1925년 4월 조선공산당이 출범한다. 조선공산당은 1928년 7월부터 9월까지 열린 코민테른 제6차 대회의 46차 회의(9월 1일)에서 코민테른의 조선 지부로 정식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코민테른은 같은 해 12월 조선공산당의 의 대표자 회의나 열성자 대회(또는 전국적 정치 신문 발간) 등의 방식으로 당을 재건한다는 방침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콤그룹(안동콤그룹 등), 그룹(경성재건그룹, 조공재건경성준비그룹, 경성공자주의자그룹 등), 공산주의자협의회(영주군공산주의자협의회, 영암공산주의자협의회 등), 위원회(강릉공작위원회, 삼척노농공작위원회 등), 협의회(경성노농협의회, 고성사회운동자협의회 등), 동맹(함북공산주의자동맹, 웅기열성자협의동맹, 목포공산주의자동맹, 지도전위동맹, 영동적우동맹, 온성노농동맹 등), 당(울진공작당), 트로이카)(경성트로이카) 등 다양한 명칭의 지역 공산주의자 그룹이 전국 각지에서 결성되었다. 이들 그룹은 다른 그룹과의 공동 투쟁 및 통일을 모색했다. 나아가 혁명적 대중 조직의 강화라는 방침에 따라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이러한 조직 노선의 변화와 함께 생산 현장의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이전 시기의 계급 대 계급 전술을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기를 들자면,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이재유 그룹의 경우, 1935년 초까지는 민족 부르주아지), 민족개량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를 모두 적대 세력으로 간주한 데 비해서 1936년 초를 전후로는 인텔리를 포함한 소부르주아지에 대한 적극적인 포섭 정책을 채택했다.3) 일제 전시 파쇼 체제하에서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1937년-1945년)종전에는 이 시기의 사회주의 운동을 암흑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1937년 이후에도 새로운 방침에 입각해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 시기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을 규정한 가장 큰 요인은 코민테른이 채택한 새로운 통일 전선 방침과 중일전쟁(1937년)에서 태평양전쟁(1941년)으로 이어지는 일제의 전시 파쇼 체제였다. 코민테른은 1935년 들어 파시즘의 대두에 맞서기 위해서는 식민지에서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를 포함하는 반제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정한 바 있었다. 이미 실제 운동 과정을 통해 계고 있었고 학생가두층 조직도 많이 갖고 있었다.③상해파(上海派)1930년~1931년 사이에 각 파들이 맹활동을 하는 사이 상해파도 활동을 개시하였다. 1930년경 상해파의 윤자영, 박윤세, 김철수등의 발기로 만주 조선국내에 일대 조직공작을 전개했는데 이 사건을 ‘조선공산당 재건공작 준비위원회사건’ 라고 하며 가두 인텔리층이 동원된 규모가 가장 컸던 사건이었다.④태노계(太勞系)태노계는 1930년대부터 함경도 일대에 광범한 기반을 가지고 조직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원산에는 이주하가 알동하고 있었는데 그는 1930~1931년 원산 평양 제네스트를 지도하고 원산에 돌아와 있으면서 조직사업을 전개, 1937년 원산철도국의 사건을 주도하였다.⑤경성 콤 그룹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의 탄압은 일단의 강화를 가하였다. 이재유, 이주하가 피포, 혹은 도망한 후 이관술, 이순금 남매와 김삼룡, 장순명, 권오직, 등과 협의한 수 경성 콤 그룹을 조직하는 동시에 기관지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당시 울옥한 박헌영을 지도자로 하고 새로 출옥한 권오성, 정재철, 정태식 등을 모두 운동선상에 도원시켰다. 이 “콤 그룹”은 조선 운동의 퇴조기에서 당시 모든 운동자들이 운동선상에서 이탈해 버리거나 과거를 청산하고 나설 적에 말하자면 운동을 청산치 않은 사람들을 운동선상에 총귈기시킨 것이며 여기에는 ML계도, 상해계도, 화요계도 혼연일체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이 관리한 노조에는 금속ㆍ섬유ㆍ전기ㆍ출판노조등이 있었다.⑥소련파와 연안파(延安派)일본이 1931년 9월 18일 만주침략을 수행하자 중공은 1932년 길림탕원(吉林蕩原)회의를 열고 만주에 있는 조선독립군ㆍ조선공산군ㆍ마적ㆍ장학양(張學良)군 기타 사병들을 편재해서 만주 항일의용군 12군으로 편성하였는데 이 때 김일성은 제3군장 예하에 있다가 갑산 보천보사건(1937년))이후 계속 북한에 침입, 늘 신문에 선전되고 있었다. 그 후 일제의 공세로 어려움에 빠지자 무리들과 함께 소련으로 망명했다가 해방과 더불어 귀국하는데회적 해방을 위한 정치적 슬로건을 제기하여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저항하여 나서도록 호소하였다. 공산주의자는 노조, 농조를 통하여 노동자?농민의 혁명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위한 교욱활동을 다양한 방법으로 수행하였다. 그들은 서당, 도서관, 야학회, 독서회, 연극 등의 합법적, 비합법적 집회기관 등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이른바 ‘프로문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또한 비합법상황에서 노농대중의 교육활동을 위하여 비밀출판물을 발행하였다. 이들 출판물은 항일애국사상의 고취와 함께 노동운동 진영 내의 개량주의자들의 기회주의적 본질과 행동을 체계적으로 폭로하여 계극적 입장에 대한 각성을 높이거나 계급적 단결의 사상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을 하고, 노동자?농민의 궁극적 해방을 실현하는 데 있어 토지문제의 근본적인 해결과 노농동맹의 강화가 지니는 의의를 선전하였다.그러나 1930년대 전반기 혁명적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의 운동은 자기활동 속에서 많은 제약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주된 결함은 첫째, 좌익모험주의적 편향이었다. 운동의 과정에서 대주의 혁명적 역량을 확보하고 그것을 조직적으로 육성?확대하는 활동이 모자랐으며, 소부르조아적 초조감에 사로잡혀 주도면밀한 준비 없이 투쟁을 조직한 결과 혁명역량에 손실을 초래하는 약점을 드러냈다. 또한 농민운동에서 고용농과 빈농에만 중점을 둠으로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될 층을 배척하는 경향까지 나타났다. 그 결과 적지 않은 경우 조직이 광범위한 대중으로부터 이탈하여 운동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못하였다. 둘째, 중요한 결함은 운동의 분산성과 지방주의적 경향이었다. 운동의 분산성과 지방주의적 경향, 거기에 좌익모험주의적 편향이 나타남은 물론 당재건의 간판을 내걸고 파벌적 책동을 계속하는 한편 혁명적 노조와 농조를 자기 파벌의 세력 아래 두려고 하였던 것이다.2. 노동운동한국의 노동운동은 1920년대부터 이미 민족해방투쟁의 일환으로서 출발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와서 일제의 대륙침략이 시작되고 이에 따라 한국을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 삼으려는 일제의다. 많은 파업투쟁에는 전국 각지에서 조직되었던 노동조합의 개입과 지도가 있었다. 노동조합은 일반적으로 파업의 교섭과 중재자로 나섰고, 파업과정에 개입하여 이를 후원하고 지도하거나 혹은 파업을 직접 조직, 주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1,200여 명의 노동자들은 7월 13일 ?무산대중 단결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임금을 5할 올릴 것?, ?하루 3교대 8시간제를 실시할 것?, ?조선노동자와 일본노동자를 차별하지 말 것?등 13개 요구조건을 내걸고 파업을 시작했다. 자본가들은 요구조건을 들고 담판하러 들어간 노동자 대표들을 몰래 경찰에 넘기고 헌병까지 불러들여 파업을 깨려고 했다. 일본노동자를 데려와 멈춘 기계를 다시 돌리려고 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규찰대를 만들어 회사쪽에서 새 노동자를 모으는 것을 막고 파업단을 나누어 투쟁하는 등 새로운 파업전술로 자본가에 저항했다. 파업은 일주일 만에 끝나고 말았지만, 노동자들은 값진 투쟁경험을 얻었고, 일제와 자본가는 노동자의 단결에 충격을 받았다.연도발생건수(건)참가인원(명)평균 참가인원(명)19291028,2*************,*************17,1*************,8*************,8*************,0*************,1877219361388,248601937999,146921938906,92977출처 : 역사학연구소 지음(2004), 『함께 보는 한국근현대사』, 213쪽 재인용이 밖에도 크고 작은 파업투쟁이 곳곳에서 잇달아 일어났다. 일제와 자본가들의 탄압과 착취로 가득 찬 공장노동이었지만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에서 노동자대중의 파업투쟁은 분산적으로 펼쳐졌으며, 파업에 참여하는 인원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인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된 결과가 아니고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밖에도 일제는 수많은 노동자를 일본으로 끌어갔으며, 또 일종의 노동력 수탈을 위한 무임 강제노동인 부역제도를 전국적으로 강화하여 전쟁준비를 위한 했다.
공통사회교육론 과제 2세계화·지식기반사회를 위한 경제시민성 교육Ⅰ. 문제의 제기우리가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이 우리 사회가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시대적 추세로 되어버렸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앞에서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 경제의 지식기반경제로의 이행을 촉진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지식기반경제의 도래에 따른 새로운 문제에 대한 대응책과 이에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교육 정책적 대응도 필요하다.왜냐하면 지구와 인류는 전례 없는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제의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경제문제, 범지구적 환경의 질적인 저하 문제, 급격한 기술의 변화와 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 공동체와 공공선에 대한 공유된 믿음의 상실 문제, 국경을 넘나드는 수많은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문제, 테러와의 전쟁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한 국가만의 문제는 더 이상 아니고 다른 국가와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러한 문제들을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세계시민사회와 세계민주주의에 의한 세계적 관리(global governance)가 아직 충분하게 발달하지 않는 상태에서 지구와 인류는 신음하고 있다.어떻게 시민들이 지구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특정 국가의 국민으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사려 깊고 적극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선에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물음은 이 시대의 가장 긴급하고도 절박한 물음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빠르고도 효과적인 처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적확한 처방은 올바른 교육이 아닐까 한다.이 글에서는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함에 따른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온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활용함으글로벌 경제시민성의 특징시민성이란 개념은 시민이라면 갖추어야 할 지식과 가치와 기질을 포함한 개념이다. John J. Cogan은 시민성의 특성으로서 1 정체성 2 권리의 향유 3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의 이행 4 공적 업무에의 참여와 관심의 정도 5 사회적 가본 가치의 수용이라는 다섯 가지 범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John J. Cogan, 1998 : 2-7). 이 글에서는 John J. Cogan의 시민성의 특성을 경제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경제적 시민성의 특성 내지 속성으로 규명해 보려고 한다.1) 정체성시민성의 첫 번째 요소인 정체서(identity)'은 대개 특정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단일한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세계화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다른 나라와의 상호의존성이 커지는 만큼 적어도 경제시민성은 국가적인 면과 초국가적인 측면을 동시에 포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애국주의와 세계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글로벌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의 시대에서의 애국주의는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연결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내 나라만이 중심이고 최고라는 우물 안의 개구리의 생각만으로는 세계 경쟁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세계주의의 기본 신념 하에 세계인을 모두 가족으로 어우르며, 나와 그들간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서로의 부족한 점은 함께 채워나가며 발전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따라서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를 살아가야 할 시민들은 문화적 다양성과 한정된 자원을 갖고 있는 세계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 기능, 실천 등을 포함하는 지구촌적인 관점(global perspective) 을 가지고, 전 지구적 안목에서 세계와 그 속의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2) 권리와 자격시민성의 두 번째 요소는 어떤 권리나 자격을 부여 받느냐는 것이다. 시민이 된다는 것은 한 집단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집단의 구 이해와 민감성, 책임질 수 있고, 협동적이고, 비폭력적인 갈등해결과 문제해결에 대한 다양한 수단, 3 환경을 보호하고, 인류의 권리를 방어하고, 공적인 삶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강화해야 한다.개인적 차원에서 시민으로서 우리는 경제적 측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위의 세 가지 시민역할이 기본 바탕이 되어 시민들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여, 국가의 발전 원동력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항상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며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이는 IMF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맞이한 위기들을 온 국민 하나가 되어 과 같은 하나되는 모습을 통해서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시민 하나 하나의 힘을 통해서 국가는 더욱 발전되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2) 사회적 차원시민성의 사회적 차원은 다차원적 시민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자질이 본질적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시민성은 사회적 활동이며 사회적 관계는 시민성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시민성의 사회적 차원은 Parker와 Jarolimek(1984)이 넓은 관점의 시민참여 라고 불렀던 개념과 관련이 깊다. 시민참여의 고전적이고 좁은 정의인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예를 들어 투표행위, 정당참여행위, 공무담임행위)뿐만 아니라 비정부기구에 대한 참여도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비정부기구는 지역-국가-국제적으로 조직된 자발적인 비영리 시민단체로, '비정부성'을 강조한 개념이다. UN(국제연합)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던 비정부기구의 개념은 UN에서 국가기구와 관계를 맺고 협의하는 조직, 곧 정부 이외의 기구로서 국가주권의 범위를 벗어나 사회적 연대와 공공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자발적인 공식 조직을 의미한다.공동의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특정목적을 위해 조직한 비정부기구는 다양한 서비스와 인도주의적 기능을 수행한다. 정부정책을 감시하고, 정보제공을 통해 시민의 정치참여를 장려하며 인권, 환경, 보건, 성차별 등의 특산자상 : 지식노동자.1) 조립공의 시대에서 설계사, 디자이너의 시대로한국의 산업은 국제 분업면에서 볼 때 위로는 선진국이 누르고 있고 밑으로는 후발국이 추격하여 마치 샌드위치와 같은 처지가 되면서 부가가치 마진율 경쟁에서 점점 뒤쳐지고 있다. 여기서 일정한 산업 혹은 제품의 부가가치 마진율(m)은 당해 산업 혹은 제품의 일인당, 시간당 부가가치(V)에서 일인당, 시간당 임금율(W)을 감한 마진(M)을 일인당, 시간당 부가 가치(V)로 나누어 준 값 (강철규, 1994 : 65)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를 수식으로 표시하면 m1 = M/V = 1 - (W/V)와 같다. 그리고 부가가치 마진율을 국가경쟁력에 적용할 때는 부가가치 마진율 비교우위란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를 수식으로 표시하면 m2 = 1 - (W+R+T)/V와 같다. 그런데 세계화·지식기반경제 시대에는 금리(R)와 조세 공과(T)는 세계적으로 평준화되어 간다고 볼 수 있으므로 m1과 m2는 실질적으로 같은 개념이다.부가가치마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가가치를 높이거나 임금률을 낮추어야 한다. 결국 부가가치마진율을 높여 부가가치 마진율 비교우위를 갖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볼 때 바람직한 길은 임금을 후진국 수준으로 다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부가가치를 높여 오늘날 선진국 수준의 부가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단순한 조립 가공에 의한 캣취업형의 산업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중급 정도의 부가 가치를 낳는 샌드위치형으로도 불안하다. 결국 21세기부터는 예상되는 임금수준에 비추어보아도 독자적인 설계 혹은 디자인 기술의 개척을 통한 부가가치의 상승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발전하게 된다.한국이 국제분업 체제 속에서 지금까지보다 한 단계 높은 위상을 차지하려면 중급 이상의 부가 가치를 낳는 새로운 산업구조로 중심이 옮겨 가든지 또는 기존 산업에서 제품차별화 등을 통하여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산업으로의 구조전환이나 기존 산업에서 부가츠는 자기 회사의 핵심인재 20명만 데려간다면 마이크로소프트사도 별 볼일 없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가의 중요성에 비추어 철저히 훈련되고 검증된 인재가 신중한 선발과정을 거쳐서 차기 기업가로 결정되어야 한다. 기업은 계속 나가야 한다. 기업가가 떠나더라도 후퇴하지 않고 더 발전해야 한다. 이것이 기업가에게 맡겨진 큰 사명이기도 한다.변화하는 시대, 글로벌 경쟁시대에서의 기업의 생존여부는 글로벌 기업인의 기업가 마인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4. 세계화·지식기반사회에서의 저축자·투자자·납세자상 : e-재테크 경제인부자 되세요 라는 말이 한 때 유행어가 되어 만나는 사람마다 덕담으로 인사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우리 사회도 부에 대한 관념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제 20세기의 산업경제시대로부터 21세기 디지털경제시대, e-Biz 시대, e-Crebiz 시대로 경제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바람직한 저축자·투자자·납세자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그렇다면 세계화·지식기반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게 되는 경제주체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가상현실 또는 가상공간 상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e-비지니스나 e-파이낸스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저축, 증권, 보험 등의 각종 금융상품을 이용한 e-금융재테크(e-finance-tech), 그리고 부동산 투자를 통한 e-부동산재테크(e-estate-tech), 각종 세금의 절세를 통한 e-세금재테크(e-tax-tech)와 관련된 내용들에 속달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이는 금융 관련 기구 홈페이지, 금융 포털사이트, 인터넷 뱅킹 사이트, 보험 & 부동산 사이트 등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관련 내용에 대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재정경제부 www.mofe.go.kr우리나라 경제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재정경제부 사이트. 우리 경제 바로 알기, 어린이 경제 교실, 경제정책 해설, 사이버 민원실 등의 코너를 구성했다. 최근의 경제동향,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 물가
올바른 교육 모델들어가며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무너지는 공교육의 대안은 없는가? 과연 공교육은 무너지고만 있는가? 공교육이 무너진다고 하면 그 대안은 무엇이 있는가? 올바른 인성교육을 위한 대안교육ㆍ대안학교 올바른 인간상을 위해 인간중심 교육을 실현하는 학교 학생들의 지식수준은 기존의 교육보다 많이 떨어짐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차별성은 존재하는가? 우리학교는 우리 힘으로..자립형 사립 고등학교 자립형 사립고와 공교육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립형 사립고는 과연 모든 교육의 해법이 될 수 있는가?공교육공교육의 형성 오늘날의 공교육은 19세기 이후 발달 프랑스혁명으로 군주제도가 무너지고 근대국가가 형성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산업사회의 요구 국민교육론과 자유교육론의 대립 국민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배권을 주장하는 국민교육론 시민들의 교육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는 자유교육론 공교육의 체계가 구체화 되면서 국민교육론 대두 급속한 민주주의 전환으로 교육적인 통제가 불가피해짐 국가의 안정성을 이유로 점차 가르침의 자유 확대 ☞ 교육이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의 필요에 의해서 운영공교육우리나라 공교육 제도의 특징 기간학제 : 단선형 대중평등주의 1991년 교육자치제의 시행 그러나 아직까지 중앙정부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음 식민지의 전제주의적 교육제도를 극복하지 못한 결과 독재정권의 장기 집권화 정권안정, 국가안보의 이유로 교육을 악용함 ☞ 반공교육, 반사상교육, 획일화교육 해방이후 고급교육은 미국에 절대적인 의존공교육공교육의 위기 1980년부터 꾸준히 제기됨 교실붕괴, 교권실추의 공교육 위기의 출발 최근 교실에서 왕따는 공공연한 사실 미국, 일본 문화에 대한 무차별적인 수용 우리나라 고질적인 문제인 문화사대주의의 결과 입시위주의 교육 지나칠 정도로 자주 바뀌는 교육과정 바뀌는 교육과정에 제대로 된 연수가 되지 않는 현직 교원 부실한 교원 선발과정공교육공교육의 위기 1980년부터 꾸준히 제기됨 교실붕괴, 교권실추의 공교육 위기의 출발 최근 교실에서 왕따는 공공연한 사실 미국, 일본 문화에 대한 무차별적인 수용 우리나라 고질적인 문제인 문화사대주의의 결과 입시위주의 교육 공교육과 사교육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함 지나칠 정도로 자주 바뀌는 교육과정 바뀌는 교육과정에 제대로 된 연수가 되지 않는 현직 교원 부실한 교원 선발과정대안학교대안학교의 등장배경 학벌중심의 사회 인간의 됨됨이보다 인간의 간판이 우선시 되는 사회 입시 위주의 교육 교육 본연의 목적보다 좋은 학벌을 위한 입시위주의 교육 민주주의와 협동의 장인 학교가 경쟁의 장소로 바뀜 단일한 교육과정과 교과서 다양한 아이들의 개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교육 기존 교육환경에서 도태된 아이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교육 교육 환경 획일적인 교육환경 교사 1인당 학생 수 OECD 회원국가 중 최악의 환경대안학교교사 1인당 학생 수 비교대안학교대안학교의 장점 인간성 존중의 교육 실현 개인의 자유 존중 공동체 정신과 지역사회 강조 생명존중과 자연 친화적인 생태계 회복 강조 현실 변혁적 경험을 중시 교육주체의 원상회복 강조대안학교대안학교의 단점 재정적 부담 사회적 인식 교사의 양성과 수급 대안교육의 공공성 문제 - 중산층만을 위한 교육 양적 한계 우리 교육 전체에서 대안학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1퍼센트 미만에 불과 질적 한계대안학교대안학교 최대의 기대사항 – 법제화 법제화의 장점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졸업자격을 인정받음으로써 검정고시의 부담을 덜어준다. 학부모 조합 고용구조에서 벗어나 교사로서의 사회적 지위 확보. 인가받음으로써 학생들의 심리적 콤플렉스를 덜어줄 수 있다. 대안학교 법제화의 문제점 최소한의 지원과 불필요한 규제만 받을 가능성 ☞ 학교의 고유한 철학, 대안교육의 순수성의 훼손가능성 인가여부를 가리기에 적절치 않은 인가기준 제도화된 대안학교 - 대안성을 희석시킬 가능성 대안학교를 사칭하는 학교의 등장대안학교대안학교 최대의 기대사항 – 법제화 법제화의 장점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졸업자격을 인정받음으로써 검정고시의 부담을 덜어준다. 학부모 조합 고용구조에서 벗어나 교사로서의 사회적 지위 확보. 인가받음으로써 학생들의 심리적 콤플렉스를 덜어줄 수 있다. 대안학교 법제화의 문제점 최소한의 지원과 불필요한 규제만 받을 가능성 ☞ 학교의 고유한 철학, 대안교육의 순수성의 훼손가능성 인가여부를 가리기에 적절치 않은 인가기준 제도화된 대안학교 - 대안성을 희석시킬 가능성 대안학교를 사칭하는 학교의 등장대안학교대안학교의 가능성새로운 가치와 세계관을 지향하는 대안교육의 확산은 교육뿐 아니라 사회의 성격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 대안교육은 공동체 정신, 생태주의와 생명사상의 실천을 중시한다.대안교육의 확산은 기존 학교교육의 변화를 촉진하는 촉매제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볼 때 대안교육현장은 대단한 의미 있는 교육공간이자 실천의 모범을 보여준다. 획일적인 학교교육에 새로운 교육, 새로운 학교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대안교육의 시도 자체가 우리 교육의 활력소를 키우는 계기가 된다대안학교대안학교의 부정적 시각현실 도피적 실험에 그칠 수 있다 2. 일부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귀족학교의 출현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3. 대안교육이 깊은 교육적 난제들을 푸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겠느냐대안학교대안교육에 대한 대안학교의 과제 교육에 대한 신념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을 것 학교 교육은 충분한 사전준비를 통하여 이루어 질 것 대안학교만이 갖는 독특하고 생동감 있는 프로그램 개발 자체적인 학교 운영이 가능한 방안을 강구할 것 대안교육에 대한 정부의 과제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 대안학교 전용 입시전형 개발 교육부 인가를 통한 불필요한 절차 해소자립형 사립고자립형 사립고의 정의 정부의 보조금 없이 학교 스스로 교과과정을 운영 학생ㆍ교사 선발, 교육비 책정 등 정부의 규제받지 않음 다양하고 특성화 된 교육을 할 수 있다 이공계, 인문계 모두 진학이 가능하다 설립배경 및 취지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문제해결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 교육체제 운영의 획일성에 따른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함 사학 본래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것 국가의 재정적 부담능력 부족 학교에 시장논리를 도입, 경쟁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 고등학교 진학시 학부모와 학생 선택 기회확대자립형 사립고우리 나라의 자립형 사립고민족사관고해운대고상산고현대청운고자립형 사립고자립형 사립고의 장점 지방분권 자립형 사립고 육성은 지방화 전략의 핵심과제라 할 수 있는 지방대학의 육성 및 지역산업의 발전과 연계해 지역 특성화 교육 및 다양한 지식기반 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추진될 것이다. 교육의 평등성 창의적인 인재양성 해외 교육 이민자에 대한 대책으로서의 역할 공교육의 질 향상 학교 선택권의 보장자립형 사립고자립형 사립고의 단점 교육의 불평등 조장 교육의 빈부격차 확대 교육부 신자유주의 정책 입시위주의 귀족 교화 입시명문학교 공평성, 평등성 저해 기형적인 사학구조의 문제, 부패사학 양산 정상적 학교교육만으로 자사고 입학은 불가능우리 교육의 방향..생각해 볼 문제 과연 3불정책 폐지로 학교 운영이 윤택해 지는가? 자립형 사립고로 사교육이 줄어들 수 있는가? 자립형 사립고에 들어갈 수 없는 가정은 어떻게 하는가? 교육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는데 대안은? 과연 학교에서 경쟁만이 살 길 인가? 협동하며 살아가는 학교는 대한민국에 필요하지 않은가? 대안교육이 과연 공교육의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인간중심 교육만 한다면 글로벌 시대에 뒤쳐지지 않은가? 우리 공교육의 문제. 언제까지 대책만 양산할 것인가?Thank you.{nameOfApplication=Show}
= 민 족 주 의 (Nationalism) =▶ 단원의 개괄프랑스 혁명에 그 기원을 가지는 근대 민족주의는 민족의 통합과 단합 그리고 발전의 이데올로기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와 같이 아직 하나의 정치체제로 통합되지 못하고 단지 혈통과 문화의 측면에서 일체감을 느끼고 있던 지역에서는 하나의 국가 속에 통합된 민족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반면 프랑스나 영국같이 이미 통합된 국가를 이루고 있던 나라에서는 민중의 권리를 확보하려는 민주주의의 움직임으로 한층 더 발전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강대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약소국가들의 독립움직임도 민족주의의 한 갈래로 생각할 수 있다.민족주의는 그 자체로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하지만, 여타 이데올로기와는 다르게 거의 모든 이데올로기들과 결합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민족주의가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하면 타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적 국가를 유지하려는 민족자결주의로 귀결될 수 있으나, 부정적인 기능을 발휘하면 제국주의나 국수주의등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 있으므로, 올바른 민족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학습목표1. 민족주의 운동의 의미와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2. 19세기 민족주의 운동의 전개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3. 민족주의 운동의 종류와 각각에 해당하는 국가의 예를 들 수 있다.4.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5.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의 민족주의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한국사와의 관계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비단 19세기 유럽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특히 민족주의의 종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약소국의 독립, 해방에 있어서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각국의 독립운동을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근대 초기 개화파의 입헌군주제 주장이나 위정 척사론자들의 애국 의식, 동학농민운동의 항일 구국항쟁등도 모두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Ⅰ. 민족주의1. 민족주의란?- ‘민족’을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합의)(4) 오스트리아와 전쟁- 오스트리아가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에서 징병 소집- 기피자와 탈영자에게 카부르가 피난처 제공 → 오스트리아 도발- 프랑스 2만명 군대 동원 - 롬바르디아 지방의 마젠타전투, 솔페리노 전투에서 오스트리 아군에 승리- 전쟁 중 프랑스는 단독으로 오스트리아와 휴전 (발라프랑카 조약)→ 프랑스와 접경하고 있는 이탈이아에 강력한 통일국가 수립을 원치 않음▶ 발라프랑카 조약-오스트리아는 롬바르디아 포기, 베네치아는 유지-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 연방 창설에 합의 → 베네치아의 지배자로서 이탈리아 연방의 일원이 됨- 1860 11월 나폴리 및 로마 시 제외한 모든 교황령 합병- 1861. 3 이탈리아왕국 탄생- 1866 오스트리아 - 프로이센 전쟁 참가 → 베네치아 회복- 1870 로마통합 : 수도 피렌체 → 로마로 옮김·- 통일 후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과 육해군의 강화로 인해 20세기 제국주의적인 식민지 획 득 경쟁에 참여Ⅲ. 독일의 통일과 발전1. 전개- 1833 관세동맹으로 독일의 경제적 발전을 촉진하게 되었고 정치적 통일의 길을 닦음.- 1848-1849 유럽에 혁명의 물결이 일어남 - 각국의 지배층 위협- 1848 3월 혁명 : 메테르니히 몰락- 1848 프랑크푸르트 의회 : 독일 통일 실현 목적으로 개최(프로이센 중심의 통일안 제시)① 大독일 주의와 小독일 주의의 대립② 오스트리아 : 오스트리아가 주도할 수 없는 독일 통일은 반대③ 프로이센 : 프리드리히 4세 - 동료제후들이 아닌 의회의 제안이라 거절→ 통일 실현 실패 : 통일의 주도권 쟁탈에 관한 결정이 나지 않아 실패④ 1850 프로이센 중심의 북독일 연방안 -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의해 좌절,통일 운동 침체2. 프로이센- 통일 운동의 실패 (1850년대 시대상황)① 정치 : 자유주의 중심의 통일 운동 실패 → 프로이센은 반동 보수적인 정치운영→ 민족통일운동도 침체② 경제 : 독일 산업은 두드러지게 발전관세동맹 : 국내 통산의 진흥 → 산업발전③ 경제적 발전 : 부르주아지의 세력 해산, 5월에 선거를 실시 → 공화당이 패, 왕당파 중심의 질서당이 다수당 이됨(보수주의자) → 노동자를 비롯한 가난한 하층민의 선거권을 박탈- 임기가 끝나가자 루이 나폴레옹은 대통령의 재선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의 개정요구→ 의회의 부결- 1851년 12월 2일 쿠데타 → 의회 해산, 보통선거제 부활 → 12월 21일 국민투표 실시(대통령 임기 10년 연장) → 통과, 10:1에 가까운 지지를 얻음- 1852, 1 헌법제정 : 루이 나폴레옹에게 독재적인 통치권을 부여 → 입법원은 법률의찬성 반대만 결의, 발의나 수정권 없음, 형식적으로 절락 →대통령의 권한 증대- 제정수립 : 원로원의 제안이라는 형식 빌려 국민투표 실시 → 1852년 12월 2일에 제정 선포, 나폴레옹 3세(1852 ~ 1870)가 되었다.→ 유산자, 무산자의 계급균형을 교묘히 이용, 보수적 농민을 기초로 그 위에서 민주정 치를 행함. 농민층에 대한 불충분한 정치교육 탓으로 그들의 정치의식이 얕았고 보통 선거라는 민주적인 방식이 역기능으로 작용함∴ 제2제정의 성립으로 자유주의는 침식.▶ 국민들이 나폴레옹을 지지한 이유?- 나폴레옹 전설의 혜택- 노동자, 사회주의자의 과격한 움직임이 부르주아와 소토지 소유농에게 불안감과 공포를 심어주어자신들을 지켜줄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 농민층에 불충분한 정치교육 탓으로 정치의식이 얕았고 보통선거라는 민주적인 방식이 역기능으로작용(2) 나폴레옹 3세의 정책“나폴레옹 3세 시대의 프랑스인은 자유를 잃고 번영을 얻었다.”① 정치- 쿠데타 반대파 체포, 추방- 언론 탄압 : 신문허가제- 노동자의 파업, 단결권 불허- 독재완화☞ 배경 : 황제파 가톨릭세력 이탈 + 자유주의자와 공화파반대☞ 가톨릭 신도, 부르주아 계급, 농민과 노동자, 군부 등 모든 계층과 부분적 타협→ 지식인의 지지 받지 못함☞ 1860년대 : 노동운동 → 1864년 폭력 수반하지 않는 노동운동 인정☞ 언론 탄압, 공직자에게 충성 서약 요구 → 대학교수를 비롯하여 많은 지식인들잠적, 망명 → 억압 전혀 없었으며 서로 상대방을 모욕한 것처럼 비쳤다. 이것이 파리와 베를린 사이에 고조되고 있던 전의(戰意)에 불을 붙여 7월 19일 프랑스는 전쟁을 선포했다. 이 사건은 힘에 의한 해결을 추구하던 프랑스와 프로이센 모두에게 구실을 제공했지만, 비스마르크가 엠스 전보를 실제 내용과 다르게 공표했기 때문에 결국 먼저 전쟁을 선포한 것은 프랑스였다. 이에 남부 독일 국가들은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에 협력했으며, 그 결과 오스트리아를 뺀 모든 독일 국가들이 오늘날의 독일로 통일되었다.- 전쟁에서 패함, 나폴레옹 3세 1871년 영국으로 망명→ 전쟁 패배에 대한 파리의 노동자 소시민층이 이에 불만 → 베르사유에서 국민의회는 국민방위군의 급료 지불을 중지하여 무장해제 하려함 → 무장해제 실패 후 정부와 군 대를 파리로부터 철수 → 국민 방위군은 행정권 장악하여 파리 코뮌을 수립하고 코민의원 90명 선출- 파리 시민과 지도층 임시정부 수립 → 프로이센에 항전(국민방위군) → 프로이센의포위, 식량부족으로 파리 함락 → 프로이센 왕 베르사유 궁전에서 대관식 거행▶ 프랑크푸르트 조약 (1871. 5. 10)- 티에르를 행정 수반으로 선출 (국민의회 선출)- 프로이센과 평화조약 체결- 알자스, 로렌의 일부를 프로이센에 양도, 배상금 지불- 배상금 완불까지 프로이센군이 프랑스 주요 요새 점령(4) 파리 코뮌- 티에르 : 파리의 국민방위군 해체 시도 → 파리 시민의 반대- 파리 시의회의 행정권 장악 → 파리코뮌 선포- 코뮌의 가담자 : 애국적인 공화론자, 과격한 반교회주의자, 일부는 1차 인터내셔널(국제 공산당)에 가입 했던 이들- 민주주의와 연방주의 내세움 - 자치운영주장, 위원회선출(관료임명, 국민방위군 새로이 설립, 교육문제 담당, 파리 징세권한 장악)- 국민의회가 코뮌 진압위해 군대 파견 → ‘피의 일주일’ : 코뮌 지지자들 2만명 희생2. 제3공화정의 확립(1875)- 질서를 회복한 국민의회는 항구적인 정부 수립에 착수- 1875 공화정 선포- 1879 공화파 : 상원, 하임금 노동자에 선거권 확대- 1868 디즈레일리가 수상이 됨(1차 집권) → 연말 선거에서 내각 교체 → 명예내각 성립 글래드스턴 집권(3) 명예내각① 교육개혁 : 명예내각의 가장 주목할 개혁1870 교육법개정 : 정부보조금으로 공립학교 설립, 1891년 지방세로 수업료 대처1880 모든 초등교육의 의무화 (5세에서 13세 까지)1891 공립학교의 수업료 폐지 (문맹률 : 1871 - 24%, 1910 - 1%)② 군제개혁크리미아 전쟁 - 영국군대가 약하다고 생각하고 보강국방부 신설, 복무상태 개선, 장교 임명장 매매 금지, 매질하는 처벌방식 폐지③ 1872 비밀투표법제2차 선거개혁법으로 노동자에게 투표권부여 → 지주나 고용주의 압력을 배제하기 위해 서 비밀투표법 제정④ 평화정책 : 외교, 식민지 기본정책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중립식민지 자치 확립, 아일랜드 국교회제도 폐지교회 1/10세 폐지, 아일랜드 토지법 등(4) 디즈레일리의 2차 집권 (토리당)- 명예내각의 개혁열 주춤 → 디즈레일리는 토리적 민주주의 주장하며 1874에 재집권- 민주주의, 토지젠트리, 일부노동자층 연합을 통해 1880년 까지 중요한 사회입법과 개혁 단행- 1875 노동조합법 철폐, 단체 교섭권, 노동쟁의권 확대 → 노동자 권위 확보- 1879 공장법 - 하루 10시간 노동 규정,- 공중위생법 제정 - 영국 위생 제도도의 기초→ 디즈레일리 내각시대의 사회입법을 통해 복지국가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딤(5) 복지국가- 인민예산안, 노년연금법(1909) : 부유층이 더 많이 부담, 부의 균등분배- 국민보험법(1911) : 의료보험법, 실직보험 → 정부, 고용주, 노동자 분담∴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전야에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달성하고 복지국가의 면모 갖춤▶ 공장법- 산업혁명의 폐단- 선거권 기반으로 하여 노동자의 정치 참여 → 공장법 제정- 1819년 공장법 : 아동의 야간작업 금지와 노동시간 12시간으로 제한but 면직물 공업에 한정됨, 실시여부 확인할 장치 마련 안 됨. 제대로 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