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communicate with other people, you need to use common language that is agreed throughout the country. Being influenced by globalization which has been led by colonization of United States, English has come to take the most important part as a second language throughout the world. In Korea, it is not an exaggeration to explain that Korea is suffering from an English syndrome. Every student, even infant aged under three, goes to the private educational institute to study English, which they believe may give them a chance to widen opportunity to get a better job. This phenomenon looks reasonable because English is the most dominant language for the fields of academics, diplomacy and economy all over the world. Is there something else to understand this phenomenon? Getting a better job can be a short-term goal to study English in Korea...(후략)
< 학습학 소묘 >* 학습학의 안드라고지- 인간의 배움 정신과 그것의 이론적인 틀거리/스스로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인간 본연의 배움에 관한 이론들로 가득 찬 학습의 실천꺼리⇒ 이를 시대에 맞게 복원하는 작업의 필요성 대두* 인간에게 무언가를 손쉽게 가르칠 수 있는 것, 인간 스스로 이해하기 쉬운 것 - 자연→ 자연이 가르치는 삶과 죽음의 가운데 여백이 바로 인간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몫→ 그 정신적 여백과 사상적 공간은 문화, 사회, 경제, 교육 등등의 이론의 체계화를 거 친 학문으로 채워짐. 이 공간을 넓히는 과정에서 얻어진 경험과 배움의 결과들을 서 로 나누며 서로 성장하는 모습을 ‘가르친다’라는 말로 표현.(but, 강요적 성격을 가짐)* 배움 - 인간의 본능적 실천.(인간은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결핍존재로 태어나기에 그 결핍과 부족을 메꾸기 위한 배움 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배움에 관한 본능을 갖고 태어났기에 배우고 익히도록 되어 있음.)⇒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낸 갖가지 문화?윤리가 인간본능의 다양한 기능을 결핍시킴◎ 인간이 배운다는 것의 의미- 자연의 몫을 둘러싸고 생기게 되는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인 여백을 서로 나누어 갖고, 그로부터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익숙해짐- 예지활동과 맥을 같이함 ;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 일생 동안 추구해야 할 인간학습의 좌표, 자아실현의 시작- 자기주도학습방법 : 사물과 사건에 대한 앎을 통해 그것들의 본질을 알아내고, 그로부 터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 학습의 원형이 인간 자신 이며, 그것의 방법이 자기주도적인 배움* 인간 성장을 해치는 학습 vs 촉진하는 학습⇒ 교사중심의 반강제적 학습, 소외조장의 학습 vs 경험학습, 학습소비자를 존중하는 학습(학습자의 학습욕구와 동기를 존중하는 학습)* 학습의 본질은 ‘의미 찾기’와 ‘의미 만들어내기’- 학습자 스스로 학습을 통해 의미를 찾아내고, 의미를 만들어 쓰임새 있게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의미의 효용성 : 학습자의 삶 속에서 차지하게 된, 학습자에게 전달되는 의미의 의의 성이나 심장성의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르게 결정됨※ L=MS2 : 세상만사의 모든 것들은 의미(M)들이고 그 의미들이 바로 배움(L)이다. 세 상만사의 의미들이 그 나름대로 학습자에게 쓰임새를 높여주는 문제해결력 (Solution)과 실천적인 효용성(Significance)을 제공해 주면 줄수록(S2), 그 것은 더욱 배움의 크기와 질, 그리고 배움의 흐름을 보강해 준다.→ 의미들의 생성과 파급은 인간의 자기학습주도?관리능력에 의해 서로 달리 작용되며, 이 런 학습능력과 조건들이 바로 배우는 동물인 학습인간들에게 학습의 효능감과 배우는 일의 즐거움을 맛보게 함→ 자기학습주도능력은 수단이나 방법이 아닌, 개인의 의지와 실천의 결단 능력*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포스트모던의 현대인들은 자기주도학습과 그 관리에 투철, 지역공 동체의 문화적 이해관계를 위해 열성→자아실현을 위한 자기학습(자신들의 학습?주거환경,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학(學), 사(思), 습(習)”⇒이는 배우고 생각하며 그것을 일상생활의 개선을 위해 응용?실천함으로써 사회의 개조를 꾀함 ≒ 학습인)* 교사 중심의 페다고지(pedagogy), 가르치는 일 중심의 교사학 패러다임의 절대성?효용성 상실 ⇒ 학습학 패러다임의 요구 증대(인류의 문명사는 가르치는 교사학으로써의 교육이 아닌 배우고 익히는 일상생활로 시작)* 학습본능(기초적인 생존을 위해 동원되는 생물학적 본능)과 학습력(학습본능이 다양한 형 태로 개조되어진 문화적인 확장)※ 호모 에루디티오(Homo Eruditio) : 인간은 그의 생존을 위해 죽는 순간까지 환경에 적응하며 개조해나가는 존재 ⇒ 배우는 동물, 학습인간* 생물학적 본능으로서의 학습이 인간으로 하여금 환경에 적응시키기 위해 일차적으로 그가 접한 환경으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획득하게 함→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과제 해결을 위해 새롭게 조작?전환하여 개조→조작/변형/개조된 정보의 쓰임새에 대한 타당성과 유효도를 확인⇒ 이러한 일련의 환경과 정보 조작행위를 거쳐 생물학적 인간의 학습본능은 문화적 변 형과 연계되며 이 과정에서 길러지는 학습자들의 문제해결능력이 바로 인간의 학습력, 학습역량(사회문화의 변형능력. 인간 스스로 그가 접하는 환경이나 정보로부터 자기 삶을 위한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을 때 보다 더 강력한 예지일탈에로의 힘을 갖게 됨)* “교육의 질은 가르치는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 가르치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교육환경이 배우는 사람에게 중요하다는 의미에도 불구하 고 인간의 학습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함.(∵인간은 학습력이 있는 배움의 동물로서 새로운 지혜를 찾아 나서는 탐구의 존재. 삶을 배움과 익힘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을 추구, 마음의 눈을 열어감. but, 교사는 한정된 지식만을 가르침, 무한한 배움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음 ⇒ 교사의 위대함 < 학습의 위대함)* 학습인간 - 마음의 눈을 통해 본성적으로 지혜를 향한 욕구와 의지를 갖고 자기 삶의 문 제를 끊임없이 새롭게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존재※ 안드라고지(andragogy) : 인간지혜의 의지와 지혜의 공유를 하나의 지역사회공동체에 드러내놓고 서로 익히고 성장하는 문화적인 일. 인간학습.- 인간의 예지일탈력(지혜를 영원히 갈구하는 인간의 의지)은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든 감성적 존재이든 관계없이 그의 일상생활을 통해 끊임없이 표출, 하나로 모아 서로 나누는 문화적 일을 생산함* 지혜에로의 의지는 학습자 스스로의 자활감을 요구 ⇒ 학습에 대한 새로운 집착과 실천※ 쁠레시적 학습과 쥐쌍스적 학습- 쁠레시적 학습 - 습관적으로 경험하는 배움의 즐거움, 일상적인 독서학습으로부터 얻 을 수 있는 것, 문자를 해독함으로써 얻는 지식 획득 등- 쥐쌍스적 학습 - 자연스런 배움의 본질에 접근된 학습쾌락, 단순하게 기대하던 안락 한?편안한?텍스트의 고정된 의미가 아닌 실험예술적인 새로운 경험
新羅 華嚴의 圓融思想과 王權1. 성기론적 화엄관의 성립? 우주 만물의 생성 원리를 緣起)사상으로 설명? : 부처, 혹은 眞如일 수도 있는 절대적인 진리? 緣起 -(연기)->둘 -(연기)->넷 -(연기)-> …… -(연기)->우주의 삼라만상화엄사상 -(연기)-> …… -(연기)-> 무수한 차별의 事相)? 性起)연기의 역작용우주의 삼라만상이 연기되기 전의 원칙적인 로 되돌아 가려는 것무수한 사상이 파괴되어 원칙적인 로 되돌아 가는 것? 무수한 차별의 諸法相은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현상계를 생성->이에 대한 두 가지 견해-연기된 제법상의 실체를 인정하려는 견해: 중국의 법장을 대표로 하는 緣起建立的 성격의 화엄관-연기된 법상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견해: 연기된 법상은 근본적인 하나에서 파생한 단상에 불과하다고 하여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음. 신라 의상의 性起趣入的 성격의 화엄관? 의상智儼으로부터 法印을 전수받음.“譜法과 軌則을 받아 가지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의상의 질문에 지엄이 “너는 능히 가졌다”고 하면서, “옷갓(衣體)을 들면 모든 실오라기가 가지런히 되고 벼리 줄만 잡으면 모든 그물 눈이 바로 잡힌다” “아래로는 世俗의 법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中道의 實相”이라고 답하였다. 이는 世俗의 諸法을 포함하여 가장 근본적인 것인 중도사상을 옷갓과 벼리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원효근본적인 을 중시하는 사상 경향거의 모든 경전에 대하여 註釋을 붙이는 등 諸法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初地를 고수함.을 강조. 一心의 근원을 밝힘에 있어 二門(眞如門과 生滅門)을 설정.진여문은 實相論에 의거하여 不可得의 空을 내세우고, 생멸문은 緣起論에 의거하여 諸法이 인연에 의하여 생멸함을 주장함. 이러한 二門을 眞, 俗으로 상대하여 둘이 아니면서 또한 을 不守한다고 하였음. 둘이 아닌 까닭에 一心이며, 하나를 지키지 않는 까닭에 몸을 일으켜 둘이 된다는 것. 진여와 생멸에 의한 제법상의 無盡한 연기를 주장. 하나 속에 제법상을 융섭하려는 성기론적인 성격.2. 신라 화엄의 )원융사상? 의상의 一乘圓敎와 원효의 一乘滿敎는 만교가 원교에 別敎를 더한 것으로 볼 때 모두 원교에 기반한 원융사상을 가진 것으로 봄. 이는 융섭적인 불교사상으로 융섭의 주체인 을 강조하였음.? 황진법계관: 의상, 원효. 하나를 강조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제법상을 융합하려는 화엄관의상의 설명: 十層十塔, 一名口許연기된 제법상의 차별을 분명하게 설정하지 않음. 원효의 경우 융섭된 제법상의 차별을 어느 정도 설정, 의상의 경우는 인정하지 않음.? 수진법계관: 법장. 근본적인 하나의 이해뿐만 아니라 그 나머지의 부분 부분에 대해 차별을 인정, 그것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함. 十層十塔의 이해에 있어서의 차이. 初層의 初塔에 대한 이해는 물론 그 나머지의 九層九塔에 대해 모두 이해하려 함. 一名口許에 대응하여 自名口許의 비유. 연기된 제법상의 차별을 설정? 의상의 원융사상-三乘漸敎와 一乘圓敎를 구별. 3승인 점교에 의해 차별로 인식되는 제법상도 일승원교에서는 하나로 같이 이해될 수 있음. 원칙적인 하나의 이해로써 전체를 관조하려는 황진법계관의 입장에서 성기취입적 화엄 사상의 경향을 지님 -> 원칙적인 하나 속에 제법상을 융섭하면서, 전체적으로 화엄사상의 보편적 성격인 조화와 균형을 유도함.-‘一卽一切多卽一 一中一切多中一’: ‘一中一切’, ‘一卽一切’는 연기사상을, ‘多中一’, ‘多卽一’은 성기 현상을 가리킨다고 이해. 이 세상의 삼라만상이 만들어지고 일면으로 부서져간 현상을 화엄사상의 보편적 원리로 설명. ‘一微塵中含十方 一體塵中亦如是’와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를 각각 ‘一中一切多中一’과 ‘一卽一切多卽一’을 통해 설명하였다.-방편으로 六相)의 차별을 설정 -> 원융무애하여 융섭하게 됨.6상은 3승에서는 차별상으로 나타나지만 일승에서는 원융하게 됨. 3승 차별의 6상도 원융하여 일체의 법상을 융섭함으로써 하나가 됨. 그것을 이라 부름.? 원효의 화엄관-황진법계관을 바탕으로한 융섭적인 화엄관의상과 비교하여 융섭된 제법상의 차별을 설정하고 있으나, 연기된 제법상을 원융무애하다고 설명.-無障無碍法界: 법계의 제법상이 서로 원융하여 융섭하게 될 수 있음. 구별의 여러 법상이나 법문이 없게 되지만, 또한 여러 법상이나 법문이 아닌 것은 없음.-융섭된 여러 법상 사이의 차별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그의 사상은 의상과 마찬가지로 매우 융섭적. 때문에 불교 교단이 내세우는 여러 교리 사이의 상호 모순을 극복하려는 和諍論을 내세우게 됨.3. 원융불교사상과 왕권? 원시불교사상정복국가나 왕권과 연결된 불교신앙이 많이 나타남. 轉輪聖王 관념이 대표적.전륜성왕: 世間的인 正法王. 하늘로부터 輪寶를 받아 천하를 정복하고 正義, 正法으로 국토와 인민을 통치하는 이상적인 국왕상으로 자리잡음. 실제로 인도의 전 지역을 최초로 통일한 아소카왕은 전륜성왕으로 자처.석가 생존 당시의 불교는 크샤트리아, 곧 왕자에게 유리한 면을 지녔고, 강대국 중심으로 인도를 통일하려는 정복국가의 이념에 어울리는 것으로 보여짐. 실제 아소카왕의 기록에는 그가 카링카왕조를 정벌하였을 당시의 비참함과 함께 佛法에 의한 정벌이 最勝이며, 아울러 그리스인의 영토에 불법을 전할 것을 적고 있음. 이런 면을 통해 세존 당시의 원시불교가 王者 중심의 정복국가 이념에 합당한 면을 지녔을 것으로 봄.? 원시불교경전 속의 불교원시불교경전에서는 國王觀으로 國王契約說과 王權神授說의 두가지 면을 모두 기록.국왕계약설-원시 상태의 인민들이 전답이나 재산 문제로 다투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대중 가운데에서 신체가 장대하고 용모가 단정하여 성덕을 갖춘 사람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고 설명. 이렇게 추대된 국왕은 신성시되지도 못하며 절대시되지도 않음.왕권신수설-마누법전 등의 인도의 원시경전 속에는 국왕의 존재가 지극히 존엄한 것으로 강조되어 있음. 국왕의 전제적 행동을 정당화 내지 신성화하기 위해, 국왕을 신에 비유하기도 하고 국왕은 세계수호신의 化神이라고도 하였음. 이러한 국왕의 神聖이나 불가침성을 강조하는 사상은 국가, 즉 국왕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성립됨.? 신라에서의 불교 공인당시의 중국 불교의 양상은, 북조에서는 왕권을 절대시하려는 사상이 성행하였고, 전통적으로 귀족세력이 강한 남조에서는 왕도 수행자에 불과한 사상이 퍼져있었음. 고구려에 전해진 북조 불교의 전통인 사상이 귀족세력이 강대한 신라에 유입되어 포용되지 못하는 현상을 보임. 그리하여 귀족에게도 거부감이 없는 남조의 사상을 수용하면서 신라 불교는 국가불교로 공인.진흥왕과 법흥왕이 출가한 것도 사상을 실천한 것. 그렇지만 그들은 전륜성왕으로 관념하였음. 또한 百高座를 열었으며 궁중에서는 ‘金光明鏡’을 읽는 법회가 자주 열리는 등의 王法과 佛法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음. 불교의 이상적인 국가관과 군주관을 통해 연결.? 불교와 국가권력의 관계신라 중대에 왕실의 전제주의가 강화되어 가는 시기에 의상의 화엄사상도 크게 퍼지고 있었음. ‘一卽一切多卽一 一中一切多中一’로 표현되는 화엄의 원융 논리는 에서 一切를 생성하는 연기 현상과 一切가 하나로 돌아가는 성기 현상을 함께 나타내고 있음. 一多가 相卽하여 하나 속에 일체가 있고 일체는 곧 하나가 됨으로써, 객관적인 현상과 주체를 구별하지 않고 보려함 -> 중앙집권적 왕권과 연관하여 파악가능
중국의 지배구조 변천사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유가적 관점에서 본 가족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서론.1. 들어가는 말: 현대사회의 가족 문제와 해결책 모색본론 및 결론.2. 가족의 해체 현상(이혼율 증가, 입양 기피)과 해결책3. 유가적 관점에서의 가족 복지의 확립4. 가족 교육의 필요성참고문현1. 들어가는 말날로 심각해지는 현대 사회의 가족 문제와 가족의 해체 현상에 대해서 사회학과 유가사상을 전공한 학자로 스스로를 가정하고 기자와 얘기를 나누는 방식을 택하여 그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해보려고 한다. 이러한 질답과 가벼운 토론 형식을 통하게 된 것은 자칫 도식적이고 원론적인 사상의 나열에 그치기 쉬운 함정에 빠지지 않고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서 채택하게 되었다. 사회학적 관점을 가미하여 간단하게 현상분석을 하고 유가적 관점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구조로 만들어보려고 한다.기자: 우리의 가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부모를 살해하여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무색하게 요즘 신문을 보면 어렵지 않게 가족의 집단자살, 폭력, 이혼, 살인 등의 사건들을 접할 수가 있는데요, 이러한 기사들을 꼼꼼히 읽다보면 나타나는 사건들의 발단은 가족들 간의 크고 작은 불화로 인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가족 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공동체라고 보는데요, 고도로 문명화된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가족 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릴 만큼 가족체계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가족을 근간으로 성립되어 있는 사회에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 모색의 일환으로 가족을 가장 중요한 핵심단위로 삼고 있는 유가 사상을 통해서 현대의 가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개선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2. 가족의 해체 현상과 해결책기자: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날 한국 가족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면서 요즈음 가속화되고 있는 '가족 해체현상'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을 찾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족 해체의 문제가 근원적으로는 유가의 이념을 근간으로 한 전통적 규범의 쇠퇴 내지는 붕괴로 인한 것으로 보고 그 치유책을 전통의 회복에서 찾는 견해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가족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그렇고 또 한 국 사회에서 다시 가족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이렇게 상반된 진단과 처방에 내려지고 있습니다. 홍길동선생님께서는 사회학적 입장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홍길동 : 전체적으로 보면 그동안 한국사회는 구조적으로 는 농업 중심 사회에서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로 이행해 왔고 이념적인 측면에서는 평등주의 이데올로기가 확산되어 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틀에서 본다면 과거의 질서에 문제가 많고, 질서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질서를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갈등과 마찰이 생겼습니다. {주역}에서 말하는 하늘과 땅, 음과 양은 실제는 협력관계를 의미하는데도 남존여비 남녀차별로 가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변화를 요구하고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입장은 이러한 차별을 개선하려는 입장입니다. 최근 가족해체가 문제가 되는 것도 이런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들은 지금 받는 대접이 불공평하고 부당하고 억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같으면 참고 넘어간 것도 지금은 해체 요인이 됩니다. 과거에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열등한, 불평등한 관계에 있었던 것은 여성들이 경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점차 여성들도 직장을 갖게 되고, 경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이 직장을 갖고 사회활동을 하고 경제력이 있어야 만이 대등한 관계, 남녀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부부관계의 불안정한 측면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런 과정을 통해 노인부양 문제 자녀문제 등도 동시에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가족문제를 지적하면서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는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돈버는 이 쌓이게 됩니다.기자 : 저도 한국 사회를 바라볼 때 상당히 혼란을 느낍니다. 추석과 설날을 전후해서 민 족 대이동이 일어나는 현상이라든지 이산가족 문제도 그렇거니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투입 하는 교육비의 비중 등을 고려한다면, 한국 사람들에게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미 언급된 가족의 해체현상도 아주 뚜렷하게 나타나 고 있고, 지금의 이혼율을 보면 그 증가속도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거의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에서 혼란을 느낍니다. 한국의 이혼율은 지금 아시아에서 최고입니다. 현재 가족의 해체 현상이 분명한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가족구성원들 간의 유대감은 세계 유래가 없을 정도로 아직도 강한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해체 경향 역시 심각해지는 모순된 현상을 접할 때 상당히 혼란스러운 느낌을 갖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홍길동 : 혼란스럽게 느끼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대가족제가 와해되어 빠르게 핵가족화하고 있고, 그 핵가족 사이에서도 대가족에서 경험하던 것 못지않은 문제들이 야 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핵가족에서는 부부와 자녀만 사는데도 가족 사이에 일체 감이 과거 대가족에서보다 훨씬 희박해졌습니다. 보기 나름이지만 이것은 과거 대가족의 경우보다도 못하게 된 점입니다. 사회적인 여러 가지 규제 장치가 도덕 외에도 있었으니까 그랬겠지만 과거에는 가족을 일체시하는 관념이 대단히 강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를 대신해 자녀가 죽을 수도 있었는가 하면, 자녀를 대신해 목숨을 던지던 어머니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피가 물보다 진함을 보이는 거의 본능적인 행동입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에도 더러 일어납니다만, 옛날과 지금은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거나, 부모가 자녀를 또는 부부가 상대를 살해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만약 예를 들어 가까운가 있습니다. 아니 도 덕 이전에 사람들에게서 사랑의 마음씨가 메말라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부부간의 이혼율 이 높아 가는 것은 남녀평등 관념의 팽배와 아울러 직업을 가진 부인의 경제적 여건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녀가 가정에서 따듯하고 안락한 느낌이나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정말 큰일입니다. 물론 핵가족에서는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가 대부분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 역시 이기적인 인간을 형성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져야 함을 생각하면 애정의 결핍이나 과잉보호는 핵가족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기자 : 이혼문제를 두고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유가 사상의 영향 탓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모든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가계계승의 의무를 지니고 있고 혈연이 결국은 가계계승의 원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혈연을 중시하다 보니까 이혼의 효과가 자녀에게 특히 아주 참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선 우리나라 사람은 혈연이 다른 사람을 키우지 않습니다. 자기 혈연이 아닌 사람을 입양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우니까 미국으로 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재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같은 경우에서는 이혼할 때 가장 중요 한 분쟁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누가 양육권을 가지냐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서로 양육권을 가지지 않으려고 싸우는 경우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일단 자녀를 데리고 이혼을 하면 그 자녀들을 데리고 혈연을 달리하는 사람과 재혼을 하는 것이 그만큼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유가 사상에서 얘기하고 있는 혈연에 대한 관심, 이런 것들이 현실적으로 우리가 당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을 제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장애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고려해 봐야 하는 문제점입니다. 혈연 공동체를 강조하다 보니까 나하고 피를 나누지 않는 사람들은 키운다는 것에 대해 크게 거부감을 느끼게 되고, 이것이 이혼에 따르는 문제를 외국에서보다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유가 사상에서 비롯한 가족 관념이 혈연을 핵심으로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제도화라든지 사회규제 같은 것들이 조선시대에도 많았습니다. 이혼의 경우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범하면 이혼의 조건이 성립되었다고 했지만 그런 때에도 다른 한편 '삼불거(三不去)'에 저촉되면 실제로 이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으므로 만일 까닭 없이 이혼하는 경우에는 장(杖) 팔십으로 벌했습니다. '칠거지악' 의 관념 못지않게 '삼불거'라는 기제가 있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더욱이 이러한 관념이 공허한 관념에 그치지 않고 관습화했고 그 관습은 결국 법제화되는 데에 영향을 주었습니다.입양에 있어서 오늘날에도 우리가 혈연을 중요시하여 같은 혈연이 아니면 입양을 꺼리는 경향에는 유가적 사유가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같이 복잡하고 혼란한 사회에서는 같은 혈연의 사람이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동고동락하기에 믿음성이 더 있다는 생각 또한 작용하고 있을 것입니다.아무튼 입양과 같은 경우야말로 공자가 말한 인애(仁愛)로서의 효심을 확대하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나 합니다. 인애와 관련된 효 관념의 핵심적 근거는 '보은'에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오늘날 수혈을 받고 장기까지 이식 받는 현상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 현상은 바로 인간 전체를 하나의 혈연관계로 파악하게 하며, 인애와 보은의 심정을 모든 인간에게 느끼고 구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혈연을 초월한 입양문제는 우리에게서도 해결될 날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3. 유가적 관점에서의 가족 복지의 확립기자 : 미국 학자들 사이에서는 사실 미국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회문제들과 관련해 그 해결의 단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가족제도에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린 사실 아직도 사회복지제도가 제대로 형성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부모부양은 어쩔 수 없이 자식들이 맡아야 하고, 자식들이 맡게 되면 적어도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시십니까.
朱子와 朱子學Ⅰ. 주자학의 성립배경중국 남송(南宋)의 주희(朱熹;朱子)가 완성한 신유학(新儒學)이다.육조시대(六朝時代)부터 수당시대(隋唐時代)의 사상계를 석권한 불교와 도교(道敎)를 극복하고, 번쇄하고 공허한 자구해석(字句解釋)에 빠졌던 장구학(章句學)에서 탈피하여 경서의 참된 정신과 공맹(孔孟)의 근본이 되는 취지를 밝히려는 송대(宋代)유학의 완성이다.이 학설은 북송(北宋)의 주돈이?장재(張載)?정이?소옹(邵雍) 및 그 학통과 관련되는 도학자의 학설을 집대성한 것으로, 특히 정이의 학통을 이어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그러므로 정주학(程朱學)이라고도 한다. 주희에 따르면 주장이정(周張二程)) 등은 요(堯)?순(舜) 이래 성인에게 전수되어 공자(孔子)에 이르고 또 공자의 가르침을 바르게 조술(祖述)한 맹자(孟子) 이후 단절된 참된 를 다시 부흥시킨 이들로, 자신은 그 계승자라고 자처하였다.Ⅱ. 주자의 사상주희의 사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理와 氣의 두 개념이다. 두 개념은 직접적으로 주렴계의 ?太極圖說?과 장재의 ?西銘?, 그리고 정호와 정이의 철학으로부터 온 것이며, 주희는 이를 종합하여 자신의 독특한 학설을 내어놓았다. 주희가 理라고 한 것은 주렴계로부터 나왔으며, 그것은 본래가 불교의 「理事無石疑」(이치와 일 사이에는 거리낌이 없다)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의 개념이 신유학자들에 의해서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상당하는 개념으로 이미 道라는 것이 있었다. 신유학자들은 그 道를 理의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氣의 개념은 고대의 사상가들로부터 사용되어 온 것으로서 자연에 대하여 직접적인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상가들까지 포함하여 거의 모든 사람들의 작품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주자가 사용한 氣의 개념은 직접적으로는 장재와 정호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다.1. 理氣論(理氣二元論)경험세계의 모든 존재, 모든 현상을 理와 氣로 설명하려는 것이 주희의 사상이다.주희가 유숙문(劉叔文)에게 대답한 다음의 구절은 이와 기를 존재론적으로 보우는 존재론적 입장이며, (나)의 경우는 경험적 현실적 입장이다. 따라서 그의 理氣관계는 존재론적 입장과 경험적 입장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나)의 경우는, 경험계에서 사물을 분석할 때 理?氣는 함께 존재하며 그 어느 쪽이든 초월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다)의 경우는 理가 氣에 앞서 존재한다. 즉 理先氣後의 입장이며 理가 선재하고 뒤에 氣가 생성되는 논법이다.이와 같은 理先氣後說은 理의 가치를 氣의 가치보다 상위에 두는 가치관이 개입된 分開說이다.理氣共在의 경우 理와 氣는 각기의 다른 내용과 성격을 가졌는데 理先氣後에 대한 질문 대답할 때 氣는 理에 의하여 활동하고 氣가 모이게 되면 역시 內在한다고 하였다.“대개 氣는 능히 응결하고 作爲하지만 理는 情意가 없고 사고도 없으며 작위도 없다. 다만 이 기가 응취할 때 이는 내재한다. 가령 천지간의 인물?초목?금수가 生함은 종자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요, 종자 없이 백지에서 나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것은 도시 氣이다. 이는 ?潔空?(정결공활)한 세계 그대로요, 形迹(형적)이 없다. 理는 작위력이 없으나 氣는 곧 능히 釀?(양온)하여 物을 생성한다. 이 氣가 있다면 氣는 그 속에 內在한다.”여기서 理氣의 다른 성격이 들어난다. 기는 응취성과 작위성을 가졌으나, 반면에 이는 정의와 사고, 작위력이 없는, 이른바 의미적 존재일 뿐이다. 경험세계의 모든 사물의 존재와 현상, 작용을 氣에 속하게 하거나, 생출의 원인은 理에 속하도록 하였다.그러나 理의 세계에서는 존재, 그 자체와 현상 그것, 작용 그것과 구성요소 그것 역시 부정된다. 淨潔空?底世界란 모든 氣의 속성을 부정한 것이요, 감성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그러나 그것은 氣를 부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氣에서 그것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가)의 경우이다. 理는 氣를 독재하는 것이 아니나 양자는 서로 떠나지도 않고 또한 서로 섞지도 않는 不離不雜하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理는 一事一物이라는 상대적존재를 통하여 각기 사물에 스며들게 된다 그러한 바의 원인과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바의 원칙이 있다. 이것이 이른바 理이다.”理란 「所以然之故」와 「所當然之則」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안고 있다. 「所以然之故」는 사물자체의 존재, 현상, 활동에 내재하는 원리요 「所當然之則」은 物我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행위의 당위원칙이다. 이 양자는 理라는 두 가지 성격이라 하겠다.1) 理의 動靜주렴계가 “太極”이라고 표현한 것, 즉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궁극적 표준을 주희는 理의 개념으로 나타내었다. 理는 곧 모든 사물의 완전한 형식이며 또한 그 사물의 최고표준이다.경험계 사물의 존재 현상 작용 등은 氣에 속하며 理는 의미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所以然之故’ ‘所當然之則’이라 하였다. 따라서 理에 동정에 개입될 것이 없다. 동정은 ‘움직임’ 혹은 ‘작용’이므로 理에 속할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주희는 ‘動靜은 氣이다’(朱子語類, 94, 周子之書 銖錄)理의 동정은 주희의 ‘太極圖說解’와 관계가 있다. ‘太極을 理라’ 해석함으로써 태극의 동정이 理의 동정으로 전화된 감이 있는 것이다. 주자의 태극을 氣의 세계에 속하게 하면 그 동정은 오히려 자연스러울 것이로되 주희와 같이 태극을 理라 할 때는 모순이 생겨난다.왜냐하면 理는 정의와 조작이 없는 ‘所以然之故’요 ‘所當然之則’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동정이라는 운동은 氣에 속할 것이며 理 자체에 이러한 운동이 있다고 할 수 없다. 理가 동정한다고 할 때 그 理는 이미 형이하의 세계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動은 陽이 되고 靜은 陰이 되므로 음양은 형이하자이다. 朱子語類에 ‘氣라 할 때 이미 하나의 사물이다. 이것을 형이하자라 한다’고 하였으므로 동정의 理는 형이상이다. 이 理는 無動無靜하므로 이른바 ‘不可以動靜言’이라 하였다. 즉 理는 움직이는 원인이로되 동정 그 자체는 아니라는 뜻으로 보여진다.2) 理의 二重構造주희의 ‘理는 절대적 理와 상대적 理의 二重構造를 가지고 있다’하기도 하고 혹은 ‘총체적인 우주의 근거요 원리로써 理와 사물 개개의 원(語類輯略卷 1)理라 하여, 만물에 내재하는 태극 혹은 理를 性이라 하였다.둘째, 理는 초월적이며, 수량적?논리적인 최고 존재이다. ‘太極圖說’의 ‘無極而太極’을 설명할 때 주희는 有無의 대립을 부정하고 또다시 부정하여 긍정으로 되돌아오는 실체를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淨潔空?底世界’라 형용하였다.셋째, 理는 물질에 先在하는 실재요, 모든 것을 발생하는 근원적 존재이다.태극은 음양을 발생하고 음양은 五行을 발생하듯, 道에서 氣에 이르고, 理에서 氣와 質에 이르는 과정은 동일하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다.太極⇒陰陽⇒五行理⇒氣⇒質道⇒氣주희는 ‘理生氣’ 즉 理는 一次性, 氣는 파생적인 것으로 보았다. 理와 氣의 관계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관계다. 바꾸어 말하면 본체와 현상의 관계이다. 본체는 현상을 떠날 수 없으므로, 현상은 변화하고 본체는 근원적 실체이므로 천지만물은 실체를 본원으로 하는 동시에 이 본원의 分泌物이다. 氣(물질)는 理에 의하여 발생하므로 「理存氣先」이라 하고, 「理是本」이라 하였다.넷째, 理는 만물의 主宰者이며 자유자재로 세계를 형성하는 능력이 있는 우주의 최초원인이다. 理는 氣의 결정자이다. 따라서 ‘理爲氣之主’라 한다. 절대정신이 물질의 주라 하는 것과 같은 생각이다. 氣의 모든 운동을 배후에서 理가 주재한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관계를 구체적인 人馬에 비유하였다.氣와 理는 상대적이지만, 理는 氣에 대하여 일정한 제한을 가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것을 理의 主宰性이라 한다. 理는 우주정신이라 할 수 있으며, 上帝와 같은 능력의 소유자라 생각할 때, 그것은 이미 절대화되었다.중세적 절대주의 논거는 이러한 理에서 도출되었다. 이렇게 보아온 것이 ‘通史’의 理의개념 파악이다.4) 理와 봉건적 질서주희의 理를 봉건질서와의 관계에서 본다면 첫째, 理는 자연과 사회를 일관하는 영원한 절대적 존재이다. 따라서 현실적 사회질서는 절대적 진리가 현상한 불변의 자연질서이다. 그러므로 현실적 사회질서는 불변한다는 보편적 경향이 도출된다.둘째, 개인 治國과 平天下의 보편적 도덕율의 실현은 최고의 정치권력자인 황제에 의하여 실천될 수 있다고 볼 때 군주는 절대화된다. ‘군신의합’이라 하지만 신하의 군주에 대한 비판은 退去(퇴거)로 절대화된다.다섯째, ‘父子天合’을 理 그것이라 생각하여 가부장지배를 논리화하고 군신관계보다 우위로 생각한다.여섯째, 氣의 운동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當然而不然’ 즉 도리로써 그러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러나 理에 순종할 것을 강조하여 사회적 모순과 개인적 행동을 뒷받침했다. 주자의 理철학은 결국 理의 인식과 실천을 통하여 개인적 도덕의 완성, 체재내적 비판, 유교의 개량을 관념적으로 고장하고 또한 사회국가의 질서에서는 군주권과 가부장지배를 절대화하였다.2. 리일분수(理一分殊)모든 종류의 사물에는 나름대로의 理가 있고, 사물이 다르면 사물에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보편적인 理도 다르지만 사람의 실천은 반드시 상이한 대상들의 고유한 理를 따라야 한다는 것. 이러한 측면에서 만물이 하나의 이치라고 하는 것은 만물의 구체적인 규율 모두가 직접적으로 동일하다는 뜻이 아니라 한층 더 높은 차원에서 볼 때 그 규율들이 동일한 보편원리의 표현이면서 통일성을 지닌다는 것3. 미발(未發)과 이발(已發)두가지 의미를 가짐. 첫째, 미발과 이발은 심리활동의 상이한 단계나 상태를 의미. 사람이 태어나 죽을 대까지 마음의 작용은 그치지 않지만 이 끊임없는 마음의 작용과정은 두 상태 혹은 두 단계로 나뉠 수 있다는 것. 사려가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의 마음의 상태는 ‘미발’, 사려가 이미 생긴 뒤의 마음의 상태는 ‘이발’이라 함.둘째, ‘미발’은 성(性)이고 이발은 정(情). ‘성’은 일종의 본질적 범주로서 깊고 은미하여 아직 발현되지 않은 것이므로 ‘성’은 현상적인 의식 활동을 통해서 표현될 수 있음. 그러나 ‘정’은 일종의 의식 현상적 범주. ‘정’은 ‘성’의 표현이고, ‘성’은 ‘정’의 근거이자 근원. 미발과 이발은 성과 정 사이의 이러한 관계에도 적용된다고 함.4. 심통성정(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