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시개론Reading Response2004. 10. 26교수님“If Thou Must Love Me” (by Elizabeth Barrett Browning)이 시를 읽고 처음 이런 말이 생각났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을 왜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시인의 표현처럼 미소, 외모, 고운 말씨, 용케도 생각한 바가 나와 꼭 맞고. 정말 어느 날은 내게 부담을 주지 않아서 라고 이렇게 조목조목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참 생각한 후에 잘 모르겠다든지 아니면 그냥 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시인은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사랑하기 때문에 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또 자신의 사랑을 전제로 상대방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특정한 어떤 점을 사랑하였다면 아마 그건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기보다는 그 부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 부분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혹시 그 상대방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실망하고 사랑이 변할 수도 있고 또는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게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나의 사랑이 상대방에게는 부담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데 한 사람이 다른 상대방의 옷이나 머리 등을 자신의 취향대로 바꾸려 한다든지 할 경우에 결국에는 싸움이 일어나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또는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쁘게 해주려고 그 사람에게 과도한 관심이나 친절을 베풀어 오히려 부담을 느끼고 이야기할 때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시인이 말하는 사랑만을 위한 사랑이라는 말과 반대되는 예라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엔 시인도 자신의 생각을 완벽히 실천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나도 텔레비전을 보거나 주변에서 앞에서 말한 예와 같은 장면들을 볼 때면 시인과 같은 생각을 하고 또 평소에도 시인과 같은 사랑만을 위한 사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만 누구나 실제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생각대로 행동하기 참 어려운 것 같다. 머리로는 사랑만을 위한 사랑을 외치지만 두 사람이 함께 하다보면 어느 순간엔 서로 기대어 위로가 되어 주기도 하고 의지도 하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로 인해 어느 순간 갑자기 그로 인해 사랑을 잃게 될 수도 있지만 그게 지나치지 않다면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의문이다. 시인의 사랑만을 위한 사랑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위로조차도 사랑을 잃게 할 수 있다는 말에는 나는 반대 입장이다. 오히려 앞에서 말한 위로, 의지 이런 감정이 없다면 사랑을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힘이 들 때는 가족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위로를 더 바라게 되고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으로나마 의지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짝사랑을 할 때는 아마 시인이 말한 것처럼 아무것도 바라지도 요구도 하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사람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 바람이 상대방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바람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과하면 좋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위로나 의지도 지나치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사랑만을 위한 사랑도 역시 지나치면 마찬가지로 좋지 않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사랑만을 위한 사랑이길! 눈물을 닦아주는 사랑도 금물`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대의 사랑이 자칫 지나치지 않기를!` 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아마 나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 그런데 어쩌면 시인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보다는 주변에 지나친 사랑으로 사랑을 잃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거나 아니면 시인 자신의 애인이 자신에게 너무나 지나친 사랑을 베풀어 그게 힘들어서 혹은 부담스러워서 그 사랑을 외면하게 될까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이런 시를 쓴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도 누군가 나를 그렇게 좋아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누군가 나에게 지나친 사랑을 베푼다면 부담을 느끼다가 결국 그 사랑을 외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이라면 시인처럼 시로써 연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또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면 나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지나친 사랑을 베풀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시인도 그럴 수 있을 테고.
" Tears, Id{Reading Response학 과학 번성 명담당교수님제출일교수님2004. 9. 7le Tears " by Alfred Tennyson처음 어떤 시를 읽을까 하고 시의 제목들을 쭉 봤을 때 이 시는 제목만 보고도 뭔가 좀 음산한 기분이 느껴졌다. 헛된 눈물. 눈물을 흘려봤자 소용없고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이야기 같았다. 이 시는 시인이 아주 많이 나이가 들어서 혹은 큰 실패감을 맛보고 쓴 시 같다. 시인은 지나간 날들에 대해서 너무나 큰 미련을 가지고 있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큰 실패감을 느끼고 좌절하였다기보다는 왠지 나이가 들어서 병들고 약해져서 지금은 할 수 없고 지나간 시절에는 할 수 있었던 일들을 후회하는 것 같다. 지금 내가 공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고 있어서인지 시인이 아마 젊었을 때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시 쓰는 것을 좋아해서 공부를 별로 하지 못했다가 이제 공부를 새롭게 시작해보려고 하지만 너무 늙어 몸도 약하고 머리도 별로 따라주지 못해서 아~ 예전에 열심히 공부할 것을.. 이라고 후회하면서 공부 외에도 지나가 버린 날들에 대해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쓴 시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이 생각은 내가 너무 내가 요즘 몰두하는 일과 연관지어서 생각한 것 같고 어쩌면 반대로 이 시인이 아주 나이가 들어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 세월이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아름답고 좋은 기억, 추억이어서 자신의 지나온 세월에 대해 깊은 향수를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나온 세월에 대해 향수를 느끼고 아쉬워하거나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그 눈물이 다 부질없는, 헛된 눈물이다 라고 생각한 것 같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려서 무엇하겠는가 라며 자신을 다독이는 시인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을 위안하기 위해 지나간 세월을 추억하면서 흘리는 눈물을 헛되다고 표현한 것 같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추억에 젖어있는 시인에게 나는 시인 자신처럼 나중에 추억할만한 기억 없이 정말 무미건조한 삶을 산 사람보다는 당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지나간 세월에 대해 깊은 그리움을 느끼는 시인은 아마 젊었을 때 값진 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는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시인이 지나간 세월에 대해 느끼는 그리움을 비유한 표현 중 나는 마지막 연의 표현에서 정말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시인의 그리움,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는데 한가지 시인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은 지나간 세월은 삶 속의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삶 속의 삶이라는 것이다. 시인의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는 죽어버린 삶이 아니라 시인의 삶 속에 존재하는 삶이고 또 지난 세월만큼 길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는 삶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역시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활기차고 즐거운 법이니까. 시인뿐만이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하면서 아쉬워하면서 지금은 아파하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아예 그 세월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한다. 나도 지금 너무 바쁘고 힘든 생활에 가끔 옛날에 여행 갔었던 일, 좋았었던 일, 혹은 즐거웠던 일을 생각하면서 그 때를 그리워하고 또 그때로 돌아가고도 싶어하고 해서 오히려 전에 좋았던 일을 생각해서 지금과 비교해 지금 더 힘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쁘고 지치는 생활에서도 가끔 좋은 기억을 떠올리면서 순간 힘든 것을 잊고 즐겁기도 하다. 전에 좋았던 기억으로 지금 더 힘든다면 그건 정말 그 잠깐의 순간이고 오히려 좋은 기억으로 지금 힘든 것을 잊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시인은 지금 별다르게 힘든 일은 없어 보이고 단지 나이가 들어 공허함이나 무료함을 느끼고 지나간 시간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것 같지만 말이다. 처음 이 시의 제목을 보고 원문으로 읽을 때는 내용의 이해도 좀 안되고 그냥 Idle 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시인은 실패자이거나 매우 어두운 사람이거나 아니면 불우한 삶을 산 사람이거나 해서 매우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번역본으로 읽어보고 이 글을 쓰면서도 중간중간 반복적으로 시를 읽을수록 또 깊이 생각해볼수록 이 시인은 매우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나는 지나간 세월을 아니 시인의 표현대로 가버린 세월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 한다거나 생각하며 인상 찌푸리는 사람보다 시인처럼 그리워하면서 아쉬워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영미시개론Reading Response2004. 4. 28교수님Sonnet 60 (by William Shakespeare)시의 원문을 읽었을 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찾아서 다시 읽었다. 처음 느낌은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 나와 있는 시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주제가 인생무상, 시간의 덧없음 정도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자기 시 이야기를 왜 하고 있나 싶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그 부분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인 것 같았다. 시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시는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말에서 앞에서 쭉 나왔던 내용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미인의 이마에도 주름이 생기고 청춘을 파괴하고 하지만 그 많은 시간이 지나도 시는 미래에도 남는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시는.. 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설마 엄청난 자신감에서 이런 시를 지은 것 같지는 않고 그렇게 표현하고 있을 뿐 그냥 통틀어 전체적인 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이 시의 표현에서 잘 이해가 안가고 공감이 안가는 것이 두 부분이 있는데 파도가 밀려오듯이 시간이 끝을 향해 달리고 모든 것이 앞서 간 것과 자리를 바꾸듯 앞을 향해 모두 달려간다는 표현이 있는데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들어오듯 시간도 그렇게 쭉 끝을 향해 밀려가고 있다는 표현은 이해가 가고 그 장면이 그림도 그려지고 하는데 모든 것이 앞서 간 것과 자리를 바꾼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또 아이가 새로 태어나서 자라서 영광에 도달했을 때 불운이 그 영광을 방해하며 시간은 자기가 주었던 젊음이라는 선물을 다시 가져간다고 했는데 여기서 불운이 대체 무엇인지 한참 생각을 해야했다. 이 내용의 앞에서나 뒤에서나 계속 시간이 지날수록 좋지 않은 상태로 변한다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고 또 여기서도 시간이 젊음을 빼앗아 간다고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불운이라는 것도 그러한 것을 의미해야지 내용이 매끄럽게 맞는 것 같다. 그럼 그 불운이라는 것이 한 사람이 태어나서 열심히 노력해서 이제 영광스런 자리에 도달해서 그 동안의 노력의 대가를 누리면서 편안한 상태에 도달하면 그러니까 시에서 말하는 전성기에 도달하면 나이가 웬만큼 들었을 것이니 그 나이가 들어서 그 영광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을 불운이라고 했나보다.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외모나 생각도 많이 바뀌고 한때는 귀중한 것으로 취급받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거나 오히려 천대받기도 하고 하지만 가치 있는 시는 시간이 지나도 또는 지날수록 더욱 인정을 받거나 꽤 많은 시간이 지나도 그 시가 의미하는 바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시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시를 통해서 표현되고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던 사람들이 그 시를 읽고 그 가치를 깨닫게 된다거나 또는 시를 통해서 그 시대의 어두운 측면을 비판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교훈을 줄 수도 있다.
{과 목 명미문학의 이해담당교수교수님학 과학번/이름『 Walden을 읽고...』처음에 과제를 접하고 Walden 보다는 Scarlet letter가 내용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Scarlet letter를 빌렸다. 영화로도 보고 이미 많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보다 크게 재미있지도 않고 Walden 이 영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한다는 말에 Walden을 다시 읽게 되었다. Walden을 읽기 시작한 나의 첫 느낌은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다. 대체 무슨 소린가 싶을 정도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은 Henry David Thoreau 가 2년 동안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고향의 Walden이라는 호숫가에서 살면서 쓴 것이다. 그런데 Thoreau는 왜 호숫가에 가서 살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느닷없이 간 것은 아닐 것이고 돈이 없어서 간 것도 아닐 것 같고, 나는 아마 다른 모든 유명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서 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점점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숲속에 들어간 이유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삶이란 그처럼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고, 도저히 불가피하기 전에는 체념을 익힐 생각도 없었다. 나는 깊이 있게 살면서 인생의 정수를 뽑아내고 싶었고, 강인하고 엄격하게 삶으로써 삶이 아닌 것은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숲속에 널찍하고 반들반들하게 길을 닦아 삶을 맨 안쪽까지 몰아붙인 다음 가장 비천한 상태까지 내몰아 그 삶이 정말 비천하다고 판명날 경우 삶의 모든 천박함을 있는 그대로 뽑아서 온 세상에 공표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 그 삶이 숭고한 것이라면 직접 체험함으로써 그 숭고함을 알고 싶고 다음번 여행 때에는 그것에 대하여 진정한 얘기를 할 수 있기를 원했다.{) Walden, Henry David Thoreau 저, 한기찬 역, 2002, 소담출판사라는 구절에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실제의 2년 2개월 동안의 생활을 1년으로 압축하여 전 18장의 형식으로 된 이 책은 제 1장에 해당되는“숲 속의 경제학”은 Thoreau가 자신의 생활 이념과 Walden에서의 생활을 하기에 이른 이유를 밝힌 부분이다. 제 2장“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는 봄의 내용을 담은 부분이고, 그 후 6장“방문객들”까지는 봄에서 여름까지 변화하는 과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제 7장“콩밭”과 제 8장“마을”은 여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제 13장“집에 불때기”에서는 가을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제 14장에서 제 16장까지의“전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겨울의 방문객들”,“겨울의 호수”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 겨울의 내용이다. 그 다음은 계절변화의 원천인 봄의 계절로 돌아와 제 17장“봄”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재생과정을 다루며, 마지막 결론에서 Walden의 생활체험을 총 결산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라는 굳은 땅에서 출발하여 “경악의 계단을 밟아 천국으로 올라가는”별과 더불어 끝을 맺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독자에게 자기와 더불어“자연처럼 신중히”계절의 사철을 보내기를 권하고 있다. 마치 하루 하루를 그리고 한시간 한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의미인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인지 Thoreau는 노동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며 최소한의 노동을 권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을 하고 있는 도시 근로자들을 불쌍하게 여긴다. Thoreau는 Walden에서 살면서 최소한의 노동으로 적은 땅에서 자신이 먹을 농작물들을 키우고 또한 그 농작물들을 내다 팔아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마련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 Thoreau는 단순히 책만을 통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지식의 습득을 강조한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면 최소한의 노동으로 자신이 살아가기 위한 생활필수 조건을 만족한 후에는 남는 시간동안 다른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라고 말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노동 후 자신의 지식습득을 위한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는 건 참으로 좋다고 본다. 나는 고향이 전라북도 남원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엄마랑 나물 캐는 것도 해봤고, 부모님을 따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니며 그야말로 자연학습을 하며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이러한 부분이 어느 정도 Thoreau의 생각과 일치한 부분인 것 같지만 솔직히 어릴 적 이야기지 지금 적용되기에는 어느 정도 무리가 있는 것 같다. 공부를 노동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중, 고등학교 시절엔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원가고 시간에 얽매이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마 Thoreau가 지금 시대의 사람이라면 나처럼 아주 좋은 생각이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Thoreau는 이 책에서 자기의 생활 방법에 관해 면밀한 관찰과 생활을 하며 매일같이 상세히 적어 둔 설명, 즉 자기가 관리함 음식, 이야기를 나눈 소수의 사람들, Walden 호수에 야생하는 생물 등에 관한 서술을 통하여 인습적인 인간생활에 대한 공격의 기반을 삼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간소한 생활보다 본질적인 생활에 충실하기를 당부한다. 또 우리 고을의 젊은이들은 불행하게도 농장이나 가옥이다, 창고다, 가축이다, 혹은 농기구다 하는 유산을 상속받는다. 이따위 물건들은 버리기보다 얻기가 더 쉽다. 그들이 차라리 허허벌판에 태어나 이리의 젖을 빨며 자랐던들 자기들이 일할 곳이 어딘가 하는 사명을 도 똑똑히 알아차렸을 것이 아니겠는가? 도대체 그들을 흙의 노예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Walden, Henry David Thoreau 저, 한기찬 역, 2002, 소담출판사
{Reading Response과 목영미시개론학 과교육학과학 번200200319성 명2004. 03. 31Sonnet 75 from Amoretti (by Edmund Spenser)시인이 부인과의 이별을 슬퍼하면서 지은 시 같다. 아마 `그녀`가 부인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부인이 불치병에 걸렸거나 해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부인은 그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이 시인은 그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고 부인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모래 위에 부인의 이름을 썼는지 아니면 그냥 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병에 걸린 부인과 마지막으로 바닷가로 여행을 가서 부인은 휠체어에 앉아 있고 시인은 그 옆에 모래 위에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모래 위에 부인의 이름을 써봤는데 파도가 밀려와 부인의 이름이 지워지자 마치 그게 지금 자기 부인의 상황인 것처럼 느껴져서 그러니까 파도가 밀려와서 부인의 이름이 지워지면 마치 부인의 생명도 그렇게 없어질 것처럼 느껴서 계속 다시 쓰고 또 다시 쓰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고 부인이 그러지 말라고 모든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는 거라고 누구나 그 글씨처럼 언젠가는 사라지는 거라고 오히려 자신이 남편을 위로하고 있는 상황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당사자인 부인은 자신의 상황을 다 받아들이는 것 같은 모습에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을지 몰라도 마음속에는 큰 슬픔이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부인의 그런 말을 듣고 남편은 그렇게 나약한 소리를 하는 부인에게 목숨은 자기가 어쩌지 못하지만 부인을 영원히 기억해서 자기 기억 속에서 시속에서 영원히 살게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또 자기 머릿속에서 계속 사랑할 것이라고 했던 그런 경험을 토대로 시를 쓴 것 같다. 시속의 표현에서 볼 때 부인을 너무 사랑했고 또 부인은 성품이 매우 바른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쓸쓸한 분위기 때문인지 계절이 겨울처럼 느껴지는데 겨울바다를 생각하니까 시가 조금 더 슬픈 것 같다.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꼭 `그녀`가 부인이라고 할 수도 꼭 `그녀`가 죽는다고 볼 수도 없는데 시인이 몇 살에 이 시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그 동안 영문학 책에서 봐온 시인의 모습이 나이가 좀 있어 보여서 그 나이에 `그녀`라면 당연히 부인 같고 죽음이 세상을 지배해도 라고 하는 것 보니 죽어도 계속 사랑하겠다는 말 같은데 그렇게 자꾸 보니까 너무 어둡고 슬프기만 한 시 같아서 밝은 면을 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보이질 않는다. 배경인 바다도 겨울바다 같은데 겨울바다도 나름대로 멋있지만 이 시의 바다는 왠지 바람도 많이 불 것 같고 햇빛도 없을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을씨년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그런데 자기의 시가 부인의 미덕을 영원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는데 이 시에서는 부인에 대한 시인의 사랑은 느껴지는데 부인의 미덕은 모르겠다. 부인의 미덕을 영원하게 만들려면 뭔가 좀 시적으로 빗대어 표현을 하더라도 그런 부분이 있어야할텐데 부인에 대한 스펜서의 또 다른 시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시에서처럼 `그녀`의 미덕을 자기 시에서 영원하게 하려면 시를 한편 더 써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