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고이치우리 조에서는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 중에서 한 일본의 과학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훌륭한 과학자들이 많지만 굳이 일본의 과학자를 선택한데에는 그 일본 과학자의 성과가 우리에게 혹은 우리나라 과학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어느 무명의 일본 노벨상 수상자의 성공담과 가치관을 통해서 ‘과학자’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나아가 일본과 비교되는 우리나라의 과학 정책까지 함께 다루어 보고자 한다.지난 2002년 일본은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명예교수의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 발표가 있었다. 이에 이어 다나카 고이치가 노벨화학상을 수상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이것은 일본이 경제 불황에 있음에도 기초과학에서는 여전히 세계최고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일본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주목하는 것은 단지 일본이 기초과학 강국임을 다시 한번 알려 주었기 때문이 아니며 연속 3년 노벨화학상 수상을 달성한 위업 때문도 아니다. 여러 수상자 가운데 노벨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에 주목한다. 수상자가 발표되었을 때 본인은 물론 가족 그리고 과학성까지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가족들은 동명이인이 아니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 때 그의 나이가 43살이었고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놀란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가 석사도 박사도 아니며 당연히 교수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학사 출신으로 일본에서 흔히 꼽히는 명문대 출신도 아니었다. 이는 그가 고시바 마사토시나 다른 역대 수상자들과는 매우 다른 점이다.1. 다나카 고이치 소개다나카 고이치는 1959년 8월 3일 일본 도야마현 도야마에서 태어나, 1983년 도호쿠대학을 졸업하였다. 같은 해 일본의 분석기기 제조회사 인 교토의 시마즈제작소에 입사해 연구센터 분석계측사업부 연구소 연구원(주임)이 되었다. 이후 연구를 계속 하고 싶어 승진시험도 거부한 채 주임 직위를 고집하면서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미국 버지니아주 코먼웰스대학교의 펜, 스위스 연방공과대학교의 뷔트리히와 함께 생물체 속 고분자 단백질 구조를 질량분석법과 핵자기공명 분광법을 통해 밝혀낸 공로로 2002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생명과학 연구의 주요 목표는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기능을 규명함으로써 생명 현상의 원리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질병의 원인을 찾아 치유하는 데 있다. 그렇지만 거대분자인 단백질은 기체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기존의 질량분광법으로는 분석할 수 없고, 삼투압이나 침강 등을 이용한 분자량 측정 역시 그 대략적인 값만 결정할 수 있었다. 다나카는 1987년부터 2년에 걸쳐 일정 주기로 발사되는 레이저를 이용해 단백질 분자를 분사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연성 레이저 이탈기법'을 개발하였다. 이 기법을 이용하면 고분자 단백질의 종류와 양을 효과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어 생명과학과 신약 개발 뿐 만 아니라 유방암·전립선암의 조기 진단과 같은 의학 분야에도 이 기법을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화학상을 받았는데, 이로써 일본은 2000년과 2001년에 이어 3년 연속으로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더욱이 다나카는 민간기업 연구 부문에 종사하는 연구원으로서, 역대 노벨화학상 수상자들 가운데 교수·박사 등의 감투가 없는 수상자로는 두 번째이고, 학사출신의 수상은 그가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새로운 발상과 독창성을 가진 민간 연구자의 업적만으로 세계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다.2. 다나카 고이치의 성공배경그의 인생을 보면 그는 그리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패가 더 많았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런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의 연구에 대한 열정과 그 열정을 소홀히 하지 않는 기업문화가 그것이다.연구에 대한 넘치는 열정다나카 고이치는 도호쿠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였으며, 별로 우수하지 못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대학을 나온 직후 소니사 입사 시험에 떨어져 들어간 곳이 시마즈 제작소였다. 두 차례에 걸친 런던 지사 근무가 그의 해외 경력 전부였고 일본의 전형적인 ‘평범한 직장인’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그가 노벨 화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연구에 대한 넘치는 열정과 정열 때문이었다. 그는 평생 연구만 하겠다는 생각에 승진시험도 마다했다. 직책이 연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화학상 수상 이후에도 바뀌지 않아 회사에서는 화학상 수상의 공로를 인정해 연봉 800만엔의 계장에서 연봉 1,200만엔의 이사로 승진시켜주겠다고 제의했으나 이를 극구 사양했다. 이사가 되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큰 기업의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도 지금 일터에서 충분히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할 정도였다. 이렇게 연구만이 자신의 삶이라는 그의 뜨거운 열정이 그를 오늘날 성공으로 이끌게 한 큰 원동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대학보다 더 학구적인 연구 풍토를 가진 기업’그는 노벨상 수상이 결정된 후?나는 실험을 거듭하면서 많은 실패를 했다. 만약 연구비를 낭비한다고 질책하는 회사였다면 벌써 해고됐을 것이다. 다행히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하던 1985년쯤 회사 형편이 매우 좋아 경영진이 ‘3~5년후 활용할 만한 신기술이라면 아무 것이나 연구해도 좋다?며 연구예산을 쉽게 배정해 줬다?며 회사에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일본 재계에서는?대학보다 더 학구적인 연구 풍토를 가진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시마즈 제작소의 기업문화도 그의 성공에 있어 큰 힘이 된 것이다.3. 무명의 일본 노벨상 수상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본 대졸 출신 기업연구원의 노벨 화학상 수상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기초과학분야에 있어서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차지한 일본 과학기술의 실력은 부러워 할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에 비해 초라한 우리의 과학기술 현실과 학사학위 정도로는 취업이 어려워 석사에 박사까지 받고도 제 길을 못 찾는 우리의 사회적 학력 낭비현상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물리 화학 의학 등 기초과학분야에서 아직 한 명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반면 일본은 연속 3년째 수상자가 나왔다는 점에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노벨상만으로 한 나라의 과학기술 정도를 판가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노벨상 수상은 한 세기 이상 꾸준히 이어진 일본 대학과 기업의 과학기술연구 전통이 이뤄낸 업적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단기적인 성과주의에 급급해 오히려 연구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우리 사회에서 이공계 출신들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푸대접은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마저 초래했다. 과학영재를 가르치는 과학 고등학교의 학생들조차 대부분 경제적인 대우가 나은 의과대학만을 고집하는 실정은 일본이 경제개혁에 실패해 장기불황을 겪고 있음에도 과학기술의 투자에 있어서만큼은 소홀히 하지 않는 것과 극명히 비교된다. 우리의 과학기술과 기업의 역사는 일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과학기술의 업적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도 없다.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시급히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육성정책을 되짚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첫 번째 -「대량 생산 시대의 개막」「대량 생산 시대의 개막」을 보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 시대가 질이 아닌 양적 생산에 치중했던 시대라는 것이다. 이 시대에 유럽과 미국은 혁신적인 진보와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속엔 여러 가지 폐단이 숨겨져 있었다.그 과정부터 살펴보면, 20C 들어 새로운 기계의 도입과 더욱 빨라진 생산속도는 보다 높은 이윤을 발생시켰고 경제적 진보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20C 들어 가장 대표적인 진보는 일괄 작업을 통한 대량생산이었다. 20C초, 시골에서부터 엄청난 인구가 도시로 이동해 오기도 했는데 유럽과 미국에서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었다. 증기기관의 시대는 물러가고 바야흐로 세계에는 전기와 석유의 시대가 도래 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작업의 형태도 크게 바뀌게 되었다. 그 중에서 노동자들의 작업 방식을 바꿔놓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자동차였다. 이 때 미국은 자동차의 기술과 생산 면에 있어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는데 그 당시 생산 체제를 바꾸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꿈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세계의 공장들에 일괄 생산이라는 혁신을 가져온 ‘헨리 포드’였다. 포드는 구매자가 만족할만한 싼 자동차「모델T」를 생산하기 위해 자동차 조립방법을 바꿔야 했는데 이 것은 노동자들의 작업 방식 또한 바뀌어야함을 의미 했다.「모델T」를 생산하기 위해 공장을 재조직하면서 헨리 포드는 능률 전문가인 ‘프레드릭 테일러’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테일러는 작업시간을 재고 모든 움직임을 낱낱이 기록하면서 작업 여건을 조정했고 그 성과로 어떤 작업이든 빨리 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하루 200대의 자동차 밖에는 생산되지 않았다. 여기서 포드는 아주 혁명적 변화를 도입했는데 그것은 정확한 지점에 부품을 나르는 컨베이어망 시스템이었다. 노동자들이 일일이 부품을 손으로 날랐던 그전의 작업환경을 생각하면, 이는 노동자들에겐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노동자들에게 최적의 조건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행하도록 했다. 또한 기업들은 복잡하던 동선을 단순하게 줄이고 노동자들에게 저마다 한 가지 파트를 전담하게 함으로써 전문성을 갖게 하는 등의 여러 방법을 이용해 제품생산 시간을 몇 배로 단축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고 이처럼 이윤의 극대화를 높이기 위해 노동자의 생산력을 증가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 같은 상황 때문에 담배를 피울 단 몇 분의 시간도 용납되지 않고 인간의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도 감시를 당해야 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심한 고립감과 소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연히 이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이 늘어났지만 포드는 전례 없는 높은 임금 지급함으로써 그것을 무마시켰다. 노동조합 또한 금지였으며 대화와 협상도 당연히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몰려들었다. 이러한 대량생산설비와 취직의 움직임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전 분야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를 낳았고, 이는 또 더 많은 대량생산을 불러왔다. 이 과정에서 갖가지 폐단도 나타났는데 1932년 출간된 책《용감한 신세계》에서는 대량생산이 지배하는 잔혹하고 표준화된 인정 없는 사회를 폭로하기도 했고 찰리 채플린의 영화《모던 타임즈》에서는 능률 전문가들이 작업속도를 증가시킴에 따라 자기 일에 사로잡혀 광폭해지는 노동자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결국 「대량 생산 시대의 개막」은 대량생산이 불러온 행복과 비극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대량생산으로 누구나가 다 값싸고 손쉽게 제품을 구입하고 그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인간은 점점 물질주의에 빠져들게 되고 인간이 기계의 한낱 부품 따위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시대가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현재는 다양성이 살아 숨쉬고 보편성보다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가 달려온 대량생산의 시대의 폐단들을 거부하며, 획일주의 가치관을 버리고 개성과 다양성의 시대로 변화한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량 생산의 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산은 21세기인 지금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산 체제임에는 분명하다. 대량 생산체계는 현재와 같은 엄청난 번영을 가져다주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소외와 빈부의 격차를 크게 만드는 등의 인간적사회적 폐단들을 만들긴 하지만 위와 같은 절망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좋은 면을 부각시켜간다면 앞으로 전개될 우리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다.두 번째 - 「선택 받은 민족」1933년 베를린. 거리 곳곳엔 온통 나치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히틀러’ 가 있었다.히틀러가 등장하게 된 그 당시 독일국민은 전쟁(제1차 세계대전)에 지고 난 뒤 자신감을 잃었으며 또한 그때 닥친 경제공황으로 인해 희망을 잃고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히틀러는 어떻게 하면 독일국민들이 자신을 믿고 따르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히틀러는 자신 없고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국민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열쇠라 생각하였다. 히틀러는 독일 정치인들의 나약함과 열강들의 무리한 요구를 격렬히 비판하였고 독일국민들은 이러한 히틀러에 점차 매료되었다. 정치적 거래로 총독이 된 후 히틀러는 독재적인 정치체제 마련에 힘을 썼다. 그는 반대파를 숙청하고 일당 독제체재를 굳혀갔다. 일단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는 절대적인 독재권을 확립시켜나갔다. 히틀러는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을 기본으로 여기고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 혜택을 확대하고, 국가 재정을 통한 대규모 건설 계획을 실행함으로써 실업문제 해결에 힘썼다. 이러한 결과로 독일의 경제는 차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히틀러에 대한 대중의 인기는 올라갔다. 히틀러가 나타나면 독일 국민은 열광하며 그를 환영했다. 그러나 독재정치가 진행되어 국민생활은 획일화되었고, 언론집회의 자유를 비롯한 각종 자유가 사라졌으며, 히틀러의 반대파는 강제수용소에 수용되거나 살해되었다.하지만 히틀러가 내세운 정책엔 당의이념을 국민에게 세뇌 시키는 전략이 숨어있었다. 추수감사절에 나치는 감사절 행사에 나치의 이념을 대인으로 그들은 아무리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을 실시하더라도 그들의 천성적인 열등성과 해악성은 개선되지 않으며, 항상 주위환경을 부패시키거나 또는 해악을 만연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우수한 민족은 그들의 열악성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을 격리시키거나 또는 절멸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념을 심어주기위해 그들은 역사적 사실까지 조작하여 독일인의 우수함을 증명하려하였고 나치친위대를 조직하여 독일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선봉대로 삼았다. 또한 반 유대정책 하에 그들은 유대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대한 불매운동을 펼쳤고 라디오를 통해 유대인들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같은 유대인을 몰아내려는 정책이 잇따라 실시되고 이에 세뇌당한 국민들은 유대인을 점차 배척하게 되었다. 인종청소라는 명목 하에 집시인들과 정신질환자들 또한 강제 배척하였고 이러한 것들은 1942년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이때 나치당에서는 “유태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을 논의했고 이 회의에서 취해진 결정은 모든 유태인을 체계적으로 동부에 있는 수용소로 이주시켜 이들을 “적절하게 처리한다”는 것으로 유태인 일부는 철저하게 학살 될 것이며 그 밖의 유태인은 거대한 노동부대로 편성될 것이지만, 소모적인 노동과 빈약한 식사로 그들은 결국 죽음을 맞이하거나 집단학살 수용소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계획이었다.영화《쉰들러리스트》에는 수용소에서의 그러한 유태인의 생활이 묘사되어 있는데, 수용소에서 나오는 독일인 장교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총을 집어 들고 아무런 서스름 없이, 일을 하지 않는 유태인을 쏘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당시 독일국민들이 유태인을 어떠한 존재로 생각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람의 존재로 유태인을 생각하지 않고, 단지 일을 하는 기계로 생각하는 필요 없으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부속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밑바탕에는 나치즘에 기본을 둔 인종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비디오에서는 이러한 당시 사회분위기와 사건들을 그 당시 현장에 들이 주장했던 종족우월성에 대한 허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의 삶과 행위는 인류 역사상 엄청난 변환이었으며, 그러한 상황은 결코 되풀이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도 어디선가 파괴적이고 광포한 애국심에 미쳐 권력을 잡고자 하는 제2의 히틀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어두움도 역사의 조명을 받게 마련이며, 어떠한 악행도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세 번째 - 「냉 전」'Cold War' 로 일컫어 지는 이 시대에 와서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이념과 체제싸움은 극에 달했다. 독일은 어느 체제에 지배되느냐를 결정해야했고 결국 동서독 두 국가, 두 체제로 나뉘고 만다. 베를린 또한 동서 베를린으로 나뉘어 각 체제에 지배받았는데 연합국의 관계가 강화되고 런던협정으로 서독에 연방국이 세워질 기미가보이자 소련이 1948년 6월말에 베를린의 서방점령지역으로 이르는 통로를 봉쇄하였다. 1945년부터 점령군의 공동통치 아래 놓여있던 베를린은 소련점령지역 깊숙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봉쇄는 굶주림을 의미하였다. 결국 베를린은 항복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서방측은 비용에 상관없이 베를린에 항공기를 통한 공수작전을 펼치며 아이들에게 쵸콜릿을 떨어뜨리고 구호물자를 수송함으로써 그 봉쇄에 대항하였다. 그 때문에 베를린 시민들은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이러한 베를린봉쇄는 결국 서방측의 승리로 끝났고 1년간 지속된 위기의 기간이 지난 후인 1949년 5월 스탈린은 패배를 인정하고, 베를린에 이르는 통로를 개방하였다.하지만 베를린봉쇄를 계기로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두려움은 더욱 더 커졌다. 세계는 더욱 더 미국과 소련의 초강대국 지배체제로 나가고 있었기고 그 결과로 동서유럽의 분단은 더욱 심화되었다. 미국과 소련은 끊임없는 흑색선전으로 자신의 체제의 우월성을 내세우며 소모전을 펼치다 결국 1961년 베를린에는 베를린장벽이 세워졌다. 동독주민들은 장벽 밑 통로를 통해 서독했다.
j: hey, where would you like to go in this summer vacation?h: I would like to go somewhere exiting. do you have any ideas?j: do you want to go a foreign country?h: I don't care
1986년 경기도 화성, 한가로운 시골길가 도랑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손과 발이 묶인 채 살해당한 여인. 그 후로 6년 동안 총 10명의 여성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강간, 살해당했다. 그러나 끝내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 그 당시 형사들에겐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었을 것이다.영화 은 실제로 벌어졌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살인의 추억...나쁜 기억조차 추억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 또한 들게 만드는 제목이다. 86년에 일어났던 이 사건은 내가 갓난아기 때 벌어진 사건이라 기억할 수 없지만 , 그 때 한국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 그 때 그 사건" 이라며 떠올릴 법 한 대사건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살인사건 그 자체와 함께 주변부의 잔상들을 하나씩 섬세하게 짚어나간다. 지금부터 인물, 사건, 배경을 중심으로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배경영화의 배경인 80년대는 폭력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슴지 않고 폭력을 자행했던 시기다. 이런 폭력은 80년대 사회 전반에 걸쳐 공공연히 자행되었으며 이런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는 거리 곳곳에 넘쳐 났고 영화 안에서도 그 기운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연쇄 강간 살인 사건을 소재로 삼은 것도, 박형사가 고의적으로 증거를 조작해 고문을 곁들여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과정과, 시위대를 진압하는 경찰들의 모습, 사건이 일어나는지 뻔히 알면서도 시위 진압 때문에 경찰 병력이 없는 모습 등은 80년대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고유한 장면들이다. 이런 폭력과 광기에 찌든 한 시골에 그나마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서형사가 사건이 주는 비이성과 폭력에 의해 잔인한 광기에 물들어 가는 모습은 비단 80년대의 작은 시골에서 벌어지는 강간 살인 사건과 80년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던 모습들이 결코 다름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사건은 공간적 배경이 되는 한적한 농촌에서 벌어진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리라 뻔히 예측되는 밤에도, 방공훈련 사이렌 소리에 사람들은 겁 많은 두더지처럼 재빨리 자기 집 불을 끄고 가게의 셔터를 내리고 숨어버린다. 수사에 협조는 커녕, 범죄 현장에서 보존되어야 할 유품들마저 동네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어버리고, 아이들은 형사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놀려먹기 바쁘다. 이 곳 사람들은 범죄에 대한 아무런 경각심이나 생각이 없어 보일 정도로 무감각하다. 무엇보다 특징적으로 이 지역에는 거대한 공장이 괴물처럼 버티고 있다. 살인사건은 이 공장을 상징으로 그 주변부에서 일어나며, 범인으로 지목된 청년은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거대한 레미콘이 돌아가는 공장의 투박한 철재 구조물은 마치 마을의 수호신이나 상징물처럼 마을 어디서나 보인다. 또 다른 한명의 용의자가 도주한 뒤 들어간 곳은 거대한 공사장. 형사들은 용의자를 쫒아가지만, 그 곳에는 용의자와 똑같은 작업복과 작업모를 쓴 수십, 수백명의 인부들이 뒤섞여 움직이고 있다. 평화로웠던 농촌 마을이 갑작스런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면서, 아마도 이 지역은, 갓 개발되기 시작한 다른 많은 지역이 그랬던 것처럼, 타지에서 들어온 뜨내기들이 많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익명에 익숙해지고 낯을 가리기 시작하며, 밤이면 문을 단속하기 시작했을 것이다.#인물영화 속에서 박두만과 서태윤은 각각 ‘시골형사’와 ‘도시형사’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누가 누구인지 빤한 시골에서 형사 생활을 하는 박두만은 큰 사건이랄 게 있을 리 없는 그 곳에서 당연히 체계적이고 정확한 수사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는 반면 서태윤은 대학물 먹고 서류와 계산에 박두만 보다는 빠삭하게 묘사된다. 당연히 둘은 함께 있으면 상대적으로 더더욱 대조되어 보이고, 이들의 불협화음은 그것만으로도 영화의 한 축을 이끌어가는 스토리가 된다. 이 영화는 뉴스나 신문기사를 모아 재연하는 ‘실화극장’도 단서를 여러 개 덧붙여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는 ‘그것이 알고 싶다’도 아니다. 거칠게 분류하면 스릴러지만 감독의 관심은 범인 물색보다는 오히려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들의 심리 변화에 있는 것 같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영화 초반 소위 ‘육감수사’와 ‘과학수사’로 대변되던 대조적인 수사방법에 차이를 보이던 두 형사가 영화의 종반에 접어들면서 희생자가 점점 늘어나자 그 차이가 점차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인물이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는 서태윤의 캐릭터인데 처음 자리배치를 받을 때 구석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나 어두운 곳에서 회전등을 켜놓고 서류를 치밀하게 검토하는 그의 편집증 적인 행동에서 보이듯 치밀한 과학적인 수사방법이 사건이 점차 미궁으로 빠져들면서 자신이 유력한 용의자라고 생각했던 박현규에게서 아무런 증거가 포착되지 않자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개성있는 두형사의 역할을 맡았던 송강호와 김상경 모두 뛰어난 연기력으로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낸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시골형사 박두만의 연기를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는 송강호뿐이다’라는 감독의 말을 신문에서 본적이 있는데 나 역시 송강호의 뛰어난 연기력과 애드립이 박두만을 더욱 빛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김상경 역시 영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뛰어난 집중력과 폭발력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특히 조사실에서 등불아래 범인을 노려보는 김상경의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이 둘의 연기력뿐 아니라 조연들의 연기력 또한 빛났다. 사건의 중요 증인이었던 백광호와 유력한 용의자로 비춰진 박현규,, 그 밖에 숨어있지만 각자 맡은바를 충실히 소화해낸 조연들까지.. 주역에서 단역까지 잘 조율된 연기들이 이 영화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사건은 당시의 사건 자체를 중심에 둔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살인사건이란 외형적 틀 속에 1980년대의 혼란스런 상황들을 깊이 생각하게끔 할 수 있는 요소들로 채워져 있는 작품이다. 그도 그럴것이 영화 속에서 국내에서 정액의 유전자 분석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 육감과 체력에 의지해 수사하던 시골 형사 두만과 ‘거짓말 않는 서류’를 믿고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서울 형사 태윤에게 현장에 단서하나 남기지 않는 범인의 존재는 막막하기만 해 보인다. 수많은 용의자들이 수사망에 오르내리고 ‘족쳐서’ 여러 번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지만 형사들을 비웃듯 사건은 또 다시 터지고 수사는 늘 제자리걸음만 하고 목격자도 단서도 없는 사건에 시달려 그들은 점차 무력하고 황폐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궁지에 몰리는 건 범인이 아닌 형사들이었다. 수사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형사들은 부적을 사오기도 하고, 범인이 무모증이라고 믿고 남탕을 뒤지는 촌극을 벌이기도 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러한 형사들의 절박한 심정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그 압박감과 절박함이 따스한 시골마을의 배경과 어울리지 않게 스산하고 황량하기만 하다. 이러한 섬뜩한 이야기임에도 영화는 시종 반짝반짝한 유머를 통해 사건에서 오는 긴장감을 단번에 해소하고 오히려 인물들의 진지한 행동까지도 웃음으로 승화 시킨다. 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사회에서 최후를 맞아야 했던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과 추모의 영화이며 범인에 대한 분노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방관했던 당시 사회를 간접적으로 비꼬는 영화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비춰진 대로 화성 연쇄 사건이 일어난 당시 정부는 정권유지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공권력은 시위 진압, 반정부세력 타도에 투입되었고 따라서 국민을 지켜줄 경찰은 부족하기만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감독 또한 영화를 통해 연쇄살인사건의 미해결의 원인으로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자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질을 갖고 태어난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넘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호기심 많아 늘 두리번거리는 아이도 있고 혼자 노는 것을 즐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주위 사람들을 늘 필요로 하는 아이도 있다. 어린 나이에도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듯이 보이며 쾌활하고 상냥하게 걸음마를 하는 아이는 만사를 몸으로 때우는 아이와는 아주 다르다. 이러한 아이의 기질은 부모, 또래 집단, 학교, 기타 제도에 의해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거부되기도 한다. 아이는 점차로 사회 - 특히 오늘날에 있어서는 가부장제 가 요구하는 표준 여성상, 또는 남성상에 자신을 꿰어 맞추려고 애쓰게 되면서 본래의 자기의 일부분들을 잘라내 버리게 된다.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융 심리학자, 진 시노다 볼린은 이십여 년 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융의 유형론과 여성주의를 결합하여 여성과 남성을 보는 새로운 심리학적 관점을 제시한 책을 펴냈는데 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저자가 지은 「우리 속의 남신들」이라는 책도 있었다. 제목 그대로, 남성들의 성향이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신들의 원형에 대한 임상 연구서이다. 난 남자이다 보니 남신에 관한 책을 읽고 싶었지만 오히려 남신에 관한 책보다는 여신에 관한 책이 남자인 내가 읽기에 더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서론으로서 이른 감이 있지만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이란 책의 핵심과 주제를 말하면 이 책에서는 인간처럼 장점과 약점을 두루 가진 그리스 신들을 분석하여 오늘날 우리의 지각과 행위에 영향을 끼치고 우리를 형성시키는 심리학적 유산인 그리스 신화에서 가부장제 성립 과정의 단서들을 찾아내어 이 신화의 인물들이 3000년 동안 각 여성의 내면에 잠정적으로 존재해온 원형이라는 것을 밝히고 독자에게 자기성찰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여신과 남신을 굳이 구분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성과 남성이 생각하는 바가 서로 다르고 그러한 데에 인간의 문화가 한 원인이 된다고 여신으로 대변되는 사회 속 여성들의 모습에 적용시키면서 그 성향을 바르게 성숙시킬 수 있는 방법까지 살펴보기로 하겠다.우선 이 책에 관한 구성과 내용요소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여신들을 세 가지의 큰 특징으로 묶고 일곱 여신들의 개개의 원형을 설명하고 그에 따르는 여인들의 성향을 연령대별, 관계를 맺게 되는 사회구성원들 별, 성향에 따른 직업별로의 문제에 접근하기도 하고 그들의 심리적인 어려움과 성숙해지기 위하여 겪어야 되는 일과 가져야할 마음자세 등을 항목별로 설명해 놓았다.또 작가는 여신들을 세 가지의 특징적인 요소로서 분리시켜 나누어 놓았다. 첫째 그룹으로는 “처녀 여신들”로 구분 지었고 둘째 그룹으로는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 마지막으로 한 여신이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게 되는 “창조하는 여신”이 있다.첫 번째 ‘처녀 여신들‘첫 번째 그룹인 처녀여신들(아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은 한마디로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추구하는 원형으로 자율적이고 활동적이면서 관계 지향적이지 않은 여성들의 심리를 말하고 있다. 남성들과 떨어져 여성들만의 집단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하는 아르테미스적 원형, 남자들과의 동일화를 통해 남성 직종에서 성공하는 아테나적 원형, 주변의 사람들과 융화되기는 하나 경쟁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가 관심있는 일만 하는 헤스티아적 원형. 이들은 사랑을 쉽게 하지 않으며 독립심의 욕구가 강하고 충분한 능력이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아르테미스는 사냥과 달의 여신으로 자신감에 넘치며 독립적이고 성취 지향적인 여성의 기질을 의인화한다. 여성 운동이 이상형으로 생각해 온 성향. 즉, 경쟁력과 성취력, 남성들로부터 독립, 고통받는 자들과 힘없는 여성들과 어린이에 대한 배려를 지니고 있다. 아르테미스 여성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주위의 간섭에 상관 않고 추진해 나가고, 남성과의 이성적 사랑보다는 형제혹은 자매애에 더욱 끌리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타인과 감정적인 거리감을 유지하는 특성이 있으며, 자신이 괴성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성취지향적인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모습은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우리학교 내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학교 내 여학생회의 활동만 보더라도 교수의 성적농담에 대해 떳떳이 이의를 제기하고 시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며 여성에 대한 권리를 찾는데 말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서 아르테미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또 다른 여신으로 아테나가 있는데 아테나는 지혜와 수공의 여신으로 승리할 수 있는 전략과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며 가슴보다는 머리로 움직이는 논리적이면서도 자기 확신에 찬 여성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원형이다. 전쟁, 지혜, 공예의 여신인 아테나는 완전한 성인의 모습으로 아버지인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가부장적 제도를 옹호하는 여신이다. 아테나 여성들은 대체로 활동적이며, 실용적인 면을 보이며, 감정이 고조된 상황에서도 이성적이고, 갈등의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남성과의 관계를 친구/동료로 받아들이고 기존 제도에 순응하며 지적인 호기심이 많아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게 된다. 아테나 여성들은 주로 남성의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군대에 지원한 여성이나 프로축구에서 유일한 여성심판으로 활약하고 있는 임은주심판을 예로 들면 주로 남성이 다루기에 부족하다거나 간과하기 쉬운 점을 이성적이고 냉철한 여성의 장점으로써 활약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테나의 원형은 교육 과정과 직장 생활을 통하여 개발되는데 객관적인 사실을 배우며 정확히 사고하는 법을 배우고,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아테나여신의 성향이 성숙될 수 있는 것이다.마지막 세 번째 인물로 헤스티아가 있는데 화로, 가정의 여신인 헤스티아 여성은 남성들의 관심을 끌지 않고, 경쟁적 상황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헤스티아 여성은 자신의 이미지가 없고,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며, 자기 주장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 조용한 성품으로 내적으로 관심있는 일에 열중하고, 고독을 즐긴다. 대표적 예로 수도원에 들어가는 여성들이 있다기 쉬운 여신들’두 번째 그룹인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헤라, 데미테르, 페르세포네)은 전통적 여성상인 아내, 어머니, 딸의 원형으로 자신의 의미를 상대방과의 관계의 성공에서 찾는 관계 지향성을 갖으며, 소속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의 심리를 말하고 있다. 언약을 중시하는 아내로서의 심리가 잘 대변된 헤라적 원형, 모성이 지극한 어머니로서의 데미테르적 원형, 유아적 여성의 대표로서 딸의 심리를 갖춘 페르세포네적 원형. 이들은 학업, 직업 등은 모두 부차적인 문제로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소속감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룹이다.결혼의 여신인 헤라 여신은 남편 중심의 삶을 살게 되는데,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했을 때 남편이 아닌 상대 여성에게 분노를 가장 강하게 표출한다. 남편이 어떠한 잘못을 하건 간에 헤라 여성유형들은 남편과의 유대를 지속시키려 노력한다. 이러한 여성은 배반당하고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분노와 극도의 복수심을 표현하는 이른바 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여성들의 행동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모님들이 주로 애청하시는 ‘사랑과 전쟁’이라는 TV프로그램만 보더라도 바람을 핀 남편과 상대 여성에 대한 질투심이 지나쳐 증오심으로 까지 번지면서 이혼까지 이르게 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TV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남편의 외도 때문에 서로 싸우는 모습을 이웃 혹은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여기서 아내로서의 여성에게서 헤라와 같은 여성의 유형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헤라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강화시키길 원하는 여성 또한 존재하기 마련인데 예를 들어 결혼을 하려는 욕구가 강하지 않을 때는 의도적으로 헤라와 같은 아내가 되려는 결심을 통해서 자신 속의 헤라 원형을 강화시킬 수 있다.곡식의 여신 데미테르 여성은 모성 본능의 원형으로 암들을 보살핌으로써 기쁨을 느낀다. 이런한 여성은 반드시 어머니가 되지 않더라도 남을 돕는 직업인 선생님, 간호원, 카운셀러 등을 통하여 표출되기고 하는데, 지속적인 모성애는 훌륭하다다. 이것은 모든 여성에게 잠재되어있는 지극히 자연적인 모습일 것이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모성애는 선생님이나 간호원등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여선생님이 느끼는 모성 본능과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원에게서의 모성 본능은 어머니로서의 그것과 비슷한 개념일 것이다. 이러한 모성 본능을 성숙시키기 위해 자신 내부에 있는 데미테르를 활성화시키고 이 원형이 더욱 능동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차지하게끔 하게 해야 할 것이다.마지막 세 번째 여신으로 지하 세계의 여왕인 페르세포네 여신의 유형을 들 수 있는데 이 여신은 굴족적이고 수동적, 유아적 여성의 원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 또는 자기보다 강한 성격의 소유자들에게 쉽게 순응하고 바람이 부는데로 움직이는 갈대 같은 여성이다. 일곱 여신 중 가장 형체가 약하고 불분명한 여신으로서 추진력이 없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이 꼭 단점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원형이 지닌 이해심이나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는 태도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려는 것을 귀담아 듣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사물을 보려고 노력하며 비판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을 삼감으로써 의식적으로 개발될 수도 있다.세 번째 ‘창조하는 여신‘비너스로 많이 알려진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창조적인 여신으로 세 번째 그룹에 속한다. 그녀는 여신들 중 가장 예쁘고 매혹적이었다. 그녀는 수많은 연애를 통해 많은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사랑과 미를 만들고, 성적 매력과 관능미를 지녔으며, 창조적인 생활을 만들어 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하여 새로운 관계를 맺었으며 결코 상대방으로부터 희생당하지 않았다. 처녀 여신들처럼 자율성을 유지했고, 동시에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처럼 관계를 맺었다. 그녀의 의식은 집중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포용성이 있어서, 자신과 상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또한 아프로디테는 여성의 사랑, 미, 성욕, 관능의 즐기는 연금술의 신으로 여성들에게 창조적인 일을 하도록 부추긴다. 이러한 모습은 예술 활동과 연예활동을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