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OFA 협정이 왜 불평등한가. 그리고 개선점에 대한 자신의 견해(구체적으로)한미 SOFA는 미군들에 대한 편의 제공 차원을 넘어 한국의 주권을 상실할 정도로 다른 나라 협정에 비해 지나치게 불평등하다. 그럼 왜 불평등한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1966년에 제정된 한미 SOFA는 91년에 1차개정, 2000년 12월에 2차개정을 거쳤으나 그 근본문제를 고쳐지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불평등을 타국가의 SOFA규정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4조 그리고 행정협정 제2조~제5조의 시설과 구역에 관한 불평등 사항이다. 미군들이 사용하고 있는 시설과 구역에 대한 토지사용료와 임대료도 없이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기간이 무기한으로 되어있다는 것, 미군기지의 반환여부도 전적으로 미국의사에 달려있고 시설과 구역의 관리도 한국측에서 간여할 수가 없다. 미군이 사용하던 토지를 반환 받을 때 환경오염이 심한데 그에 대한 원상회복과 손해배상이나 보상의 의무를 면제받고 있다는 점, 주한미군의 주둔비 및 지나친 방위비를 부담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경우는 미군이 사용하는 토지에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는 것과 필리핀 25년, 일본 10년씩의 기한을 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둘째, 본 협정의 제22조 형사관할권행사에 관한 불평등 사항이다. 그 내용으로는 형사재판권의 적용대상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된 사항, 재판관할권이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한국측이 재판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사항, 공무의 범위가 너무 확대되었고 공무에 대한 판단도 미국만 할 수 있다는 사항, 수사권행사·증거수집활동 및 판결집행 등이 제약된 사항, 미군경찰권의 남용과 미군피의자에 대한 지나친 특혜부여, 한국법원에 대한 재판거부권, 검찰의 상소권 제한, 미군국외범의 부처벌, 적대행위 발생시 또는 계엄령 선포시 형사재판권의 정지 등 한국의 사법권을 무시한 규정을 들 수 있다. 이점도 일본이나 독일에서 미군의 형사재판권이 제약되고 자국의 사법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것과 달리 한미 SOFA의 제22조 조항은 아주 불평등하다. 마지막으로 환경에 대한 직접적인 조항이 없다는 내용이다. 일본이나 독일에 맺은 규정에는 환경오염 제거비용 부담과 환경정보 공개 등 엄격한 환경 관리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상의 조항들은 일본이나, 독일에 비해서 아주 불평등하다고 생각된다. 일본이나 독일은 패전국인데 반해 우리는 주권국으로써 협정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아주 못 미친다.지금까지 한미 SOFA의 많은 불평등한 사항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해서 개선방안을 제시해야한다. 즉, 한미 SOFA도 다른 나라인 일본, 독일과 같은 수준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그 내용으로 첫째, 시설과 구역에 관한 조항에 대한 개선해야 할 점이다. 현재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기지 및 시설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통해 주둔군의 활동범위 및 기지의 규모가 합리적으로 재산정되어야 하고 불필요한 시설 및 기지는 반환되어야 한다. 한국은 주둔국인 미국에 대해서 토지 및 시설에 대한 원상회복의 권리 내지 손해배상청구의 권리를 확보하고 미군기지의 환경오염과 관련 한국정부에 환경조사권이 신설되어야 한다. 또한 토지사용료와 임대료를 지불할 것, 미군시설과 구역 안에서 미군의 위험한 무기 반입 또는 군사작전을 사전에 한국정부에 통보하는 의무조항을 신설해야할 것, 그리고 과다한 방위비 분담의 기초인 주둔경비특별협정 을 폐지하여야 한다. 둘째, 형사관할권 행사에 관한 조항에 대한 개선해야 할 점은 인적적용범위의 축소가 필요하며 한국형사관할권 제약요소의 조항, 한국판결집행간섭 배제 조항, 국외범 부처벌 조항, 미국당국의 대표의 입회 없이 미군피의자의 예비수사와 그 재판진행 불가능 조항, 합중국 군대의 위신에 합당하는 조건이 아니면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권리조항, 검찰의 상소권제약 폐지 조항 등은 삭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피의자 신병인도시기가 공소제기 후 가능케 그리고 중범인 경우에는 공소 전에도 가능케 개선되어야 하고 공무의 최종 판단이 미군 장성급에서 한국법원으로 개선, 적대행위 및 계엄령 선포시 한국형사관할권 즉시 정지 조항의 개선되어야 하고 적대행위 발생시 양국이 즉시 협의 가능하게 해야한다. 이와 같은 상기 개선안 내용과 모순되는 양해사항 삭제하고 여타부문은 합의의사록으로 수렴해야한다. 셋째, 환경과 관련된 조항을 신설해야한다. 미군당국의 원상회복 및 손해보상이외에도 협의 및 사전통보의무, 시설 및 구역에의 접근보장의무, 환경오염피해조사요청 허가의무, 환경오염관련자료의 제출의무, 환경오염규제 및 방지의무, 책임자처벌 및 재발방지보장, 손해배상청구에의 협조 등과 같이 의무를 규정해야 한다. 이것은 국제 관습법적으로 확립되었기 때문에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 없더라도 한국정부는 상기 권리들을 원용할 수 있어야한다. 마지막으로 여성과 아동이 인권 보호조항 신설, 기지촌의 미군에게 성적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에 대한 지원방안 신설, 이에 대한 혼혈아동의 친부확인을 적극적으로 주선하고 친부에게 양육료를 부담하게하는 조치를 신설, 미군의 주둔국 배치 직전과 직후에 주둔지역의 관습과 법, 사회적인 남녀관계, 지역정서와 문화 등에 대한 교육을 의무화하는 조항신설, 미군차량의 보험가입 의무화 조항의 신설 등이 필요하고 미군범죄의 한국피해자에 대한 배상절차 명시와 고엽제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대책 마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먼저 책을 보기 전에 이책은 열린 세계를 지향한 자유주의자 Karl R. Popper(1902∼1994)가 지은 책으로 먼저 그가 태어나고 살아온 과정을 적어보겠다. 그는 오스트리아인으로 태어났고, 1946년이래 영국인이었다. 1994년 9월 17일, 영국 런던 교외의 버킹엄셔에서 92살의 생애를 맞쳤다.일생을 통해 전체주의와 투쟁하며 맑스의 역사적 결정론에도 반기를 들었던 철학자 칼 포퍼는 1902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계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변호사 가정에서 자란 포퍼의 어린 시절이 어려웠다고는 할수 없지만, 그는 그 도시의 빈민촌에서 아주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일찍부터 사회정의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곧 사회활동과 정치활동에 뛰어들었다. 청소년 시절의 그는 무료진료소에서 무보수로 일하며 기아들을 돌보았고, 스스로가 노동자가 될 생각을 하고 토목일꾼 노릇을 하는 한편 직업 훈련원에서 가구세공 실습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년 동안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의 당원이었다. 그는 빈 대학에 들어가 심리학, 문학, 역사학, 철학 등을 배웠다. 26살 때 철학박사학위논문을 완성하는 한편 고등학교 수학·물리학·화학교사 자격증을 땄다. 그의 다양한 글쓰기는 서로 긴밀한 상호연관 속에서 수행되었지만, 그 글쓰기가 다루고 있는 분야를 억지로 분리시키자면 그것은 크게 과학철학(인식론)과 사회철학(실천론)으로 대별된다. 전자가 그의 최초의 저서이자 유일한 독일어 저서인 '탐구의 논리(1934년)'에서 그 큰 틀이 완성된 뒤 '추측과 논박'(1936년) 및 '객관적 지식'(1972년)에서 더 정교화했다면, 후자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년) 과 '역사주의의 빈곤'(1957년)이라는 두툼한 선언문에서 그 확고한 표현을 얻었다.그의 인식론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이 '반증가능성'에 있다는 명제다. 상상으로라도 그 이론이 반증될 수 있는 관찰적 증거가 어떤 것인지 알수 있을 때만 그 이론은 시험 가능한 것이고, 시험가능할 때에만 그 이론은 과학적 이론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보기에 프로이티즘 이나 맑시즘은 과학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어떤 관찰에 의해서도 반증이 불가능하고, 맑스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이론을 끊임없이 수정함으로써 반증의 기회를 봉쇄하기 때문이다. 포퍼의 이 인식론은 '추측과 논박','객관적 지식' 등 후속 논문집을 통해서는 물질의 세계(세계1),마음의 주관적 세계(세계2)와 구별되는 예술·과학·언어·윤리·제도 등 인간의 마음의 산물이면서도 그 인식주체와 독립해 존재하는 '세계3'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앎의 진화론을 구성한다. '최초의 문제 - 시도된 해결방안 - 제거된 오류 - 새로운 문제'라는 공식의 피드백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고 진화하는 객관적 지식은 인식주관이 없는 지식이다. 그리고 그러한 객관적 지식이 최종적 진리는 아니다. 단지 그때까지의 관찰들이 그것을 지지해 주고 있고, 그러므로 그 이전까지의 이론보다 더 많은 예측을 해줄 뿐이다. 그 자신이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이름 붙인, 앎과 과학에 대한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는 그의 사회철학에서는 전체주의적 유토피아에 대한 근본적 불신으로 나타난다.포퍼는 1937년 나치즘을 피해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로 망명했고, 그 곳에서 '전체주의와 전쟁을 하는 태도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썼다. 1945년 영국에서 출판된 이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의 하나'에서 포퍼는 인류를 '닫힌 사회'로 이끌었다고 그가 판단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히테, 헤겔, 맑스같은 철학자들을 격렬히 비난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정의를 향한 인간의 노력은 그것이 개인의 자유의 신장을 수반할때에만 진정한 진보를 구성한다. 개인의 자유를 아주 무시해 버리는 종족적·집단주의적 조직으로서 그런 '닫힌 사회'의 실상을 그는 그 책을 집필하고 있던 당시의 세계에 창궐하고 있던 두 개의 정치조류, 곧 파시즘과 볼셰비즘에서 확인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에 우호적이었고 국가의 제한적 간섭주의를 옹호했던 포퍼가 맑시즘의 모든 면에 대해서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비합리주의에 대한 거부가 맑시즘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했고, 바로 그점에서 그는 '비판적 합리주의'와 맑시즘은 공유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포퍼는 맑시즘의 기본이 되고 있는 역사주의, 곧 역사 진행의 밑바닥에는 경향성·법칙·유형·리듬이 있고 이를 발견함으로써 역사적 예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과학의 접근법을 단호히 거부했다. 역사주의로서의 맑시즘에 대한 비판은 뒤에 '역사주의의 빈곤'으로 더욱 구체화했다. 그의 인식론에서의 '객관적 지식'의 형성과 동일한 피드백 과정을 거쳐서, 곧 경험적 시험과 비판적 토론을 거쳐서 오류를 제거해 가며 자유의 신장과 고통의 극소화에 기여하는 '점진적 사회공학', 인내심과 조심성을 요구하는 이 '산문적 정치학'이 그의 사회철학의 핵심이다. 그를 '자유주의자'라고 부르든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든, 그의 정신은 사회 혁명의 정신이 아니라 산문과 진화의 정신이었다.포퍼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와 경제학자 하이에크의 도움으로 영국에 정착해 런던 경제대학에서 가르쳤다. 그러나 막상 영국에서 그는 자신이 만년의 나이에 이른 1960년대 이후에야 사상의 거장으로 대접받았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의 포퍼 열풍에 비하면 상당히 뒤늦은 인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영국의 경우는 프랑스의 경우보다 훨씬 나았다. '탐구의 논리'가 '과학적 발견의 논리'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어판을 얻은 것은 영역판이 나온 지 13년 뒤로, 포퍼가 67세의 나이로 강단에서 은퇴하고 3년이더 흐른 1972년이었다. 그가 영어로 쓴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 프랑스어로 번역된 것은 그 책의 한국어판이 나오기 얼마 전인 1979년이었다. 맑시즘이 지식인 사회를 장악하고 있던 프랑스에서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의 내용을 이루는 반교조주의, 반전체주의, 회의주의가 '자본주의 사회와 미국식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반동적 호교론'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포퍼는 역사를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투쟁과정으로 파악하면서, 열린 사회의 합리주의적 정신에 의해서만 역사의 진보가 가능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가 말하는 '열린 사회'란, 방법론적 개체주의의 원리에 입각해 있는 사회로서, 전체주의에 대립되는 '개인주의의 사회'이며, 사회 전체의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점진주의의 사회'이다. '열린 사회'는 불변의 규칙이나 전통적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자유 및 인간에 대한 박애의 신념에 의존한다. 즉 열린 사회는 각자가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판단을 내리며, 다른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고 형제애 속에 살 것을 동의할 때만 존재하는 사회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포퍼의 열린 사회의 이념이 자유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서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이와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 '닫힌 사회'는 불변적인 금기와 마술 속에 살아가는 원시적인 사회 또는 '집단적 사회'이다. 소위 국가유기체 이론이나 생물학적 이론은 상당한 범위까지 이 닫힌 사회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닫힌 사회에서는 국가가 크든 작든 시민생활의 전체를 규제하려 든다.열린 사회를 파괴하고 그 발전을 저해하는 최대의 적(enemies)은 역사주의라 불리는 신탁의 철학이다. 역사주의란 결국 인간의 역사를 '닫힌 사회'로 이끄는 이데올로기가 되는 셈이다. 포퍼에 있어서 역사주의란 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역사주의는 본질적으로 방법론적 원리로서 규정될 수 있는데, 방법론적 개체주의에 대립되는 방법론적 전체주의가 그것이다. 이런 규정에 따라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등이 대표적인 역사주의자들로서 등장하며, 이들에겐 전체주의적 방법론이 지닌 다음 몇 가지가 공통된 것으로 간주된다. 첫째로 사회구성원인 개인들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 전체가 존재하며, 이것은 개체주의적 방법으로 파악될 수 없다. 둘째로 이런 사회 전체의 발전 법칙들이 존재하며, 이런 법칙들에 의해서 미래에 일어날 사건의 방향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셋째로 이러한 방법론적 원리에 따라 사회 전체를 통제하거나 변혁하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포퍼에 있어서 역사주의란 전체론, 역사적 법칙론, 유토피아주의, 이 세 사상을 합쳐 놓은 형태의 사상이다.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대립은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의 대립으로도 표현될 수 있으며, 이 두 주장의 대립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할 최대의 지적 과제이기도 하다. 열린 사회가 추구하는 합리주의의 태도는 진리의 추구에 있어서 우리는 상호 협력할 필요가 있고, 논증의 도움으로 우리가 언젠가는 객관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적 태도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열린 사회의 지주가 되는 '비판적 합리주의'는 어떠한 사람도 그 자신의 심판자일 수 없다는 공평의 사상에 기초해 있다. 이성에 대한 신뢰는 그 자신의 이성에 대한 신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성에 대한 신뢰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합리주의는 다른 사람도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의 주장을 변론할 권리를 가진다는 사상이다.포퍼는 공산주의와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는 스스로를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하는 공통점이 있음을 증명했다.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는 절대적 진리가 인간의 영역밖에 존재하기 때문에, 독재권력에 의존해 그들의 비전을 강요하게 된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서이 책을 읽기 전에 말로만 듣고 영화도 나왔다던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왜 안 읽어보았는지 모르겠다. 교수님께서 수업 레포트를 하기 위해서 잠시 읽지 말고 책을 한 권싸서 읽으라는 말을 알 것 같다. 전태일의 정신이 우리에게 배울점이 많다는 것이다. 어린나이에 가난에 허덕이면서 꿋꿋이 이겨내는 과정이 참으로 대단하고 어린 노동자 시다동생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받쳐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보여준 용기도 대단하다. 전태일은 자기가 가난하고 힘든 노동자 생활을 겪었기 때문에 그 어린 노동자들을 그대로 묵과 할수 없을 것이다. 아마 나도 그럴수 있을까? 이 책을 읽은 만큼 그럴수 있을 것이다. 평범하면서도 대범한 전태일. 그는 누구인가? 어느 청년 노동자이다. 일반 시민이다. 사랑할 줄 알고 사랑 받아야 하는 인간이다. 평범하면서도 대범한 그 생애와 활동에 적어보겠다. 내용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해서, 전태일의 성격이나 가치관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좀 길어진 것 같다.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경북 대구에서 출생했다. 부친 전상수는 피복제조업계 봉제 노동자였으며 해방 직후 대구의 노동자 파업에 가담했다가 고통을 겪었다. 모친 이소선은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부친이 일제 경찰에 의해 학살된 후 개가한 모친을 따라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처녀 시절 데이신타이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 도망쳤으며, 8·15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 전상수와 결혼하였다. 1954년 여름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가족 모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동냥, 노숙, 채소행상을 하면서 이겨내고 있었다. 1956년 2년간 모은 돈으로 재봉틀 한 대를 마련한 아버지는 개인 사업을 다시 시작하였다. 전태일은 남대문초등공민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처음으로 짧은 학교 생활을 시작하였다. 1960년 아버지 사업이 잘 되어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4·19혁명 전후로 부친이 브로커에게 속아 사업이 망하면서 가족은 이태원 외인주택 근처의 판잣집으로 이사하였다. 이해 전태일은 여섯 가족의 생계를 이어갔다. 위탁소판매소에서 받은 삼발이, 솥, 조리, 방빗자루, 적쇠 등을 동대문시장에서 판매하였는데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던 무렵 어느날 위탁판매소에 갚아야 할 미수금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전태일은 생애 첫 가출을 하였고 서울에서 1년 동안 구두닦이 생활을 하였다. 1962년 여름경 몹시 지친 전태일은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에 도착한 첫날 부산 토박이 구두닦이들에게 붙잡혀 몰매를 맞고 구두통까지 빼앗긴 데다 바닷가에서 정신을 잃어 죽음의 공포를 맛보았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후 열차에 무임승차했으나 실수로 영천역에 내린다. 그곳대합실에서 주운 백원짜리 지폐다발로 배를 채우고 대구행 기차를 타고 외갓집에 들른 전태일은 외할머니로부터 그전에 이미 대구에 내려와 있던 가족의 소식을 듣게 되고, 1년 만에 가족과 재회하였다. 1963년 아버지는 작은집의 도움으로 집에서 재봉틀 한 대를 놓고 삯제품일을 하며 착실한 가장 노릇을 하였다. 전태일 역시 아버지를 도와 재봉틀을 돌리는 일에 제법 익숙해져갔다. 5월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해 낮에는 아버지 재봉일을 도와주고 오후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면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겨울, 부친이 학교를 중퇴하고 집안의 재봉일 전적으로 도우라고 하자 동생 태삼과 함께 서울에서 고학하고자 무작정 가출, 상격했으나 사흘 만에 귀가하였다. 울화병이 도진 부친의 폭음과 폭행이 심해지면서 집안살림이 나날이 기울었고 마침내 사업도 망해 가족은 대구시 내당동 맹아학교 부근의 흙벽돌로 지은 토막의 단칸방으로 옮겨갔다. 1964년 아버지의 폭음과 폭행이 심해가던 2월, 설을 하루 앞둔 날 어머니가 식모살이를 한다고 서울로 떠나갔다. 뒤이어 전태일도 막내동생 순덕이를 데리고 어머니를 찾아 서울로 가출하였으며 그후 동생 태삼도 가출해 서울에서 거지생활을 하였다. 동생을 돌볼 능력이 없던 전태일은 시청 사회과에 찾아가 순덕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나 후 구두닦이, 신문팔이, 아이스케이크장수, 우산장수, 평화도원 이란 음식점에서 주방 식모로 일하고 있던 어머니 소식을 듣고 찾아가 만난다. 어머니는 건강이 몹시 쇠약한 상태였으나 생활 터전이 없어 함께 생활하지 못하였다. 건강이 다소 회복된 어머니는 중앙시장에서 우거지를 주우며 거지아이들과 생활을 같이하였다.여름경 전태일은 중부시장에서 순옥이를 만나고 그곳에서 재단일을 하고 있던 부친과도 재회하여 가족이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이어 천호동 보육원에 맡겨져 있던 막내동생 순덕이르 데려온다. 가을, 전태일은 평화시장 내 삼일사에 견습공(시다)으로 취직을 하였다. 1966년 미싱일에 경험이 있었던 전태일은 남달리 빨리 기술을 익혀 곧 미싱보조가 되었으며 가을에는 평화시장 뒷골목의 통일사에서 어린아이들의 막바지를 만드는 미싱사로 취직하였다. 그러나 평화시장의 지옥과 같은 처참한 노동현실이 가슴을 압박해왔으며 평화시장의 노동참상에 대해 억울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평화시장에서 재단사가 되면 업주와 협의하여 시다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전태일은 미싱사 월급을 포기하고 한미사에 재단보조로 취직하였다. 당시 도봉산 기슭에 살던 전태일은 버스값으로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집까지 걸어다니다 통금시간에 걸려 파출소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1967년 2월 24일 드디어 한미사 재단사가 되었으나 원하는 대로 여공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자신 또한 매우 혹사당한다. 전태일은 처음에 호인이라 생각했던 한미사 주인의 이중성을 겪으면서 업주와 종업원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연말에는, 직장 내의 여공들에게 너무 인정이 많은 전태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한미사 주인에게 해고당해 직장을 옮겼다.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밝힌 근로기준법 이 있음을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1968년 전태일은 낮에는 직장에서 재단사 친구들을 틈틈이 찾아다니며 재단사 모임을 조직하는 조직자로, 밤에는 판잣집에서 근로기준법 조문을 뒤지며 밤이 새는 줄 모르고 내일의 밝은 노동조건을 꿈꾸는 청년노동자로 성숙해가고 있었다. 봄쯤에 합을 가졌으며, 모든 재단사들이 자신처럼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데 실망을 하기도 하였다. 6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6월 말경 전태일이 주도한 재단사들의 모임인 바보회가 창립총회를 가졌으며, 회장에 선출되었다. 바보회의 활동 목표는 첫째, 평화시장 일대의 3만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이 근로기준법대로 준수되도록 투쟁하다, 둘째 조직을 확장하고 근로기준법 및 노동운동에 대해 알아보고 함께 토론하고 정보를 교환하자, 셋째 근로자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해 근로감독관에게 시정토록 요구하자, 넷째 독지가를 찾아내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모범업체를 만들자 는 것이었다. 그후 빚을 내어 심태식이 지은 『축조 근로기준법 해설』을 구입해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일고 또 익혀나갔다. 한문투성이인 책을 읽느라 어려움을 겪은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 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였다. 이즈음 평화시장 일대의 근로조건 실태를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바보회 소문이 퍼져 위험분자로 낙인이 찍힌 전태일은 늦여름경 직장에서 해고당하였으며 바보회 또한 사실상 해체되고 만다. 가을에는 두 달 가량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였다. 1970년 1969년 가을부터 1970년 봄까지 번민을 거듭하면서 각성된 밑바닥 인간의 사상인 전태일 사상 을 형성해 나갔다. 4월부터 서울 삼각산의 임마뉴엘 수도원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4개월 가량 잡역부로 일하였으며, 이시기에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형제들 곁으로 돌아가고자 완전에 가까운 결단 을 내린다. 9월, 다시 평화시장에 모습을 나타낸 전태일은 왕성사 재단사로 취직하였으며 바보회 회원 중 남아 있던 6명과 새로 규합한 6명의 재단사들과 새 모임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전태일은 틈나는 대로 서울시청, 노동청, 신문사, 방송국 등을 찾아다니며 평화시장의 근로조건 실태를 진정하였다. 9월 16일, 재단사 친구들과 함께 바보회에서 삼동친목회로 이름을 바꾼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으며 회장에 선출되었다. 이 모임은 평화시장의 불법적이고 비인간적 대신에 더 적극적인 투쟁방법을 계획하고 10월 6일에 회수한 설문지를 토대로 를 작성해 삼동회원과 노동자 90여명의 서명을 받아 노동청장 앞으로 보내고, 그 내용을 신문사들에 투고하였다. 10월 7일, 각 석간신문에 평화시장의 근로조건에 대한 기사가 실리자 평화시장은 축제 분위기로 들떴다. 특히 『경향신문』은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 이라는 등의 부제를 달아 사회면 톱기사로 다루었다. 10월 8일 전태일·김영문·이승철 3인은 삼동친목회 대표 자격으로 8개항의 건의 사항을 평화시장주식회사에 제출하였으나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 삼동친목회는 10월 20일 노동청 정문 앞에서 데모를 계획하였으나 근로감독관과 업주들의 회유로 중단하였다. 다시 10월 24일 평화시장 앞에서 데모를 계획했으나 미리 정보를 입수한 평화시장 측과 경찰의 삼엄한 경비로 실패하였다. 이때 업주들로부터 11월 7일까지 평화시장의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나 이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 삼동친목회가 중심이 되어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데모를 하기로 계획하였으며 이날 근로기준법을 화형에 처하기로 하였다. 11월 12일 아침, 전태일은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한 후 집을 나섰으며, 그날 저녁 친구 집에서 데모에 쓸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11월 13일 오전부터 평화시장에는 그전보다 불어난 경비원들과 출동한 경찰대에 의해 삼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낮 1시부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평화시장 앞에 모인 500여 명의 노동자들과 경찰 및 평화시장 경비원들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오후 2시경 석유를 온몸에 끼얹고 나타난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책을 손에 쥔 채로 몸에 불을 당겼다. 불길에 휩싸여 거리로 뛰쳐나온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하라! ,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 내 죽음을 헛되이말라! 는 회침과 함께 근로기준법의 화형식을 집행하였다. 숯덩이처럼 온몸이 그을린 전태일,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메디컬센터에다.
전체 보고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인간 복제문제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대하여...게놈 프로젝트란 미국 정부와 미국 국립 위생 연구소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에 의해 13년이라는 기간 동안 계획하여 1990년부터 시작하여 2003년까지 완전한 데이터를 얻는 것을 목표로 인간 생명체의 모든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놈을 해독해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유전자 배열을 분석하는 작업을 말한다.인체의 모든 생명정보를 담고 있는 분자구조가 디옥시리보핵산(DNA)이다. 23쌍 염색체에 있는 DNA는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의 4가지 염기가 나열된 이중나선구조. 4가지 염기가 3개씩 조합된 유전암호가 아미노산을 만들고 아미노산이 단백질을 형성한다. 아미노산을 만드는 메신저역할을 하고 사라지는 게 리보핵산(RNA)인데 메신저라 해서 mRNA라 부르기도 한다. 유전자는 이 구조가 세포 내에서 하나의 기능을 하는 기능적 단위이며 게놈은 총체적 개념이다. 하나의 유전자는 약 500개의 RNA를 낳는데 아무 기능이 없는 염기 절편을 포함하고 있어 유전자 하나를 구성하는 염기는 수십만개에 이른다. 인간의 유전자는 약 10만개, 염기는 30억쌍으로 추정된다. 게놈프로젝트는 이 염기순서를 모두 밝혀내는 작업이다.이 프로젝트는 인간 염색체에 담겨 있는 30억쌍의 DNA 염기 배열을 밝히는 것으로, 염기 배열 지도가 완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은 본격적으로 유전자 기능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어느 나라 어느 업체가 연구의 우위를 선점하느냐에 따라 유전자 특허와 이를 이용한 바이오산업전쟁에서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인간게놈뿐만 아니라 동식물과 미생물의 게놈정보를 밝혀내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이 때문에 HGP는 인간 게놈뿐만 아니라 동·식물과 미생물의 게놈(유전정보 전체)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이미 일부 박테리아와 효모 등에 대한 염기 배열은 밝혀졌으며 이를 활용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게놈 프로젝트는 크게 5라도 농작물, 과수, 동물 등 여러 가지 인간 생활에 유익한 부분에서 그 실용성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게놈 프로젝트의 현재 진행 상황은 매우 빠른 편이다. 당초의 계획은 2005년까지 유전자 지도를 완성한다는 목표아래 연구를 추진했으나 유전자 관련 의학들이 빠른 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당초 계획을 변경하여 2003년까지 그것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의 진행 상황은 2001년에 유전자 지도의 1/3이 완성되었고,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게놈을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에까지 확대시켜 벼 게놈 연구를 통한 벼의 품종 개량, 과수, 동물을 이용한 인간 장기의 개발 등에까지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게놈 프로젝트의 연구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진다. 하나는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가지는지 밝히는 기능 유전체학 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인간, 인종간, 생물간, 게놈 정보를 비교해서 차이점을 찾아내서 이로 인한 생체 기능의 차이를 추적하는 비교 유전체학이다.기능 유전체학은 각 유전자가 가지는 기능의 차이를 알아내고 그것을 인간 생활에 이용하는 학문이다. 기능 유전체학을 통해서 어떤 유전자가 인간의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유전정보를 통해서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 인간 장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한다. 비교 유전체학은 말 그대로 각 유전자의 차이를 조사하는 학문으로 특히, 사람간의 유전자 차이를 조사하는 단일 염기 변이는 유전병을 발견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비교 유전체학을 통해서 각 환자들에게 가장 잘 맞는 약을 투약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치료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의료비 절감, 부작용 방지 등 많은 이점들이 있다고 한다.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많은 점에서 유익들이 있겠지만 특히 의학부분의 발전이 두드러지기에 의학 분야를 중점으로 다루겠다. 먼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힘든 질병의 초기인간 게놈과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 을 발표함으로서 인간 유전자 연구가 지녀야 할 윤리를 국제적으로 제정하였다.앞으로 인간 유전자 기능이 밝혀지면 질병 예방과 노화 연장 등 인류보건 증진에 획기적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동·식물 게놈 연구를 통한 유전 정보 규명은 또 다른 측면에서 인류 발전에 기여할 전망이다. 우선 맞춤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고객 취향에 맞는 동·식물이 선 보 일수 있다. 벼를 예로 들면 이른바 `슈퍼 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유전자를 조작해 단백질을 많이 함유토록 할 수 있고 성장 속도를 높일 수도 있다. 또 지금보다 훨씬 많은 낱알을 생산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일본이 벼 게놈 연구에 대대적 투자를 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벼를 생산, 식량산업을 주도하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애완 동물도 구미에 맞게 만들 수 있다. 흰색과 검정색, 혹은 황색이 대부분인 애완견 털을 고객이 원하는 색으로 바꿀 수 있고 심지어 얼룩무늬를 띄도록 만들 수도 있다. 푸른색 카네이션은 이미 선을 보였다. 미생물의 경우 오염을 없애는 기능을 가지도록 유전자를 조작해 환경과 에너지 산업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유전자 변형 작물(GMO)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이미 일고있는 만큼 인간과 음식물 유전자 조작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윤리 안전성 환경과 관련한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한국기독의사회, 한국 누가회,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낙태반대운동연합 등 15개 기독교 단체는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기독교 생명윤리단체 협의회'를 발족하고 기독교 생명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은 비윤리적이고 위험한 유전자 조작과 맞춤아이 생산을 예고한다"고 경고하면서 "생명의 가치는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동일하며 인간이 생명의 가치를 결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사회에 생명을 존중하는 법과 정책이 시행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현재 게놈 프로젝트는 ‘과학간복제가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논의되었고, 실제 우리나라에서 체세포복제방법에 의한 수정란이 배양되어 인간복제의 윤리문제가 대두되었다. 인간의 생식세포가 쥐의 정소를 이용해 생명력을 얻는다는 것은 이 시대 사람들의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생명질서의 일탈이 아닐까.불임치료는 많은 사람들에게 절실한 문제다. 생명공학은 전세계에서 연간 약 2만명의 시험관아기를 탄생시킴으로써 이들의 고통을 덜고 있다. 그러나 생명공학은 윤리적 토대를 상실한 과학자나 기업에 의해 인류사회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갈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브 호킹박사는 최근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새로운 인간이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생명공학의 발전을 북돋우면서 한편으로는 위험성에 대비해야 한다. 「쥐 아기」의 탄생은 다시 한번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생명공학에 대한 반성과 점검을 요구하고 있다.한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분만실에서는 아이의 발바닥에서 채취한 한방울 혈액의 디엔에이 분석을 거쳐 그 자리에서 그의 미래를 예언한다. 분만의는 부모가 지켜보는 앞에서 아이가 앞으로 걸릴 질병과 장애, 성격적 특이사항 등을 백분율로 환산해 알려준다. 최종적으로 예상수명을 몇살이라고 진단한다. 미국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국내에서도 상영됐던 영화 의 도입장면이다. A,G,C,T 네 개의 문자로 이루어진 유전자가 한 개인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멋진 신세계'에 대한 우려를 다룬 영화다.결론인간복제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것을 무조건 반윤리(反倫理)적이라고 매도하거나 아니면,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과학적 성과라고 무조건 경탄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자연과학자들의 과학적 실현의 욕구는 아무리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하더라도 이대로 자제하고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이론적 가능성을 인정하는 정도에서 끝내고 더 이상 그러한 연구를 못하도록 법적으로 제재함으로써 이 문제를 그냥 덮어버릴 수도 없는 문제이다. 현재로서는 인간복제가 인류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올 것인 그러나 아직도 그러한 존엄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것이 깡그리 파괴되지는 않았다는 증거일는지 모른다. 어쩌면 인간복제의 현실이 가져올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을지도 모를 마지막 존엄성의 파괴에 그치지 않고 그보다 훨씬 심각한 현실적 문제 즉, 우리가 지금까지 의미하는 그러한 인간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생존의 문제가 될지 모른다.그러나 현재 게놈 프로젝트가 오늘날 인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면이 많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복제로 인간의 존엄성이 하루아침에 파괴되거나, 인륜도덕이 완전히 사라진 사회가 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의식의 전환을 통하여 변화하는 현실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할 것으로 본다.인간 게놈과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A. 인간 존엄과 인간 게놈제 1 조인간 게놈은 인간 고유의 존엄성과 다양성의 인정, 그리고 인류 전체의 근본적 단일성의 기초가 된 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인류 유산이다.제 2 조a) 모든 사람은 유전적 특질에 관계없이 존엄과 인권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b) 그러한 존엄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개인들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특질로 환원시켜서는 안되며 개인의 유일함과 다양성을 존중해야만 한다.제 3 조인간 게놈은 본성 상 진화하기 때문에 변형될 수 있다. 인간 게놈은 개인 건강 상태, 생활 조건 및 영양 상태와 교육 등의 자연적·사회적인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발현될 잠재성을 지닌다.제 4 조자연 상태의 인간 게놈을 결코 영리 목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B. 인권에 관한 사항제 5 조a) 개인의 게놈에 영향을 끼치는 연구, 치료 및 진단은 반드시 그에 따른 잠재적인 위험성과 이익 을 엄격하게 사전 평가한 뒤, 국가법의 여타 요구사항들을 준수하여 수행되어야한다.b) 모든 경우에, 사전에 자유롭고 충분히 정보가 알려진 상태에서 관련 당사자에게 동의를 얻어야 만 한다. 만일 관련 당사자에게 동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당사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법이.
리 포 트사업계획서과목 : 21C 벤처창업분반 :교수 :학과 :학번 :성명 :※ 생과일 전문점 개업을 위한 사업 계획서Ⅰ. 사업계획서 목차Ⅱ.사업의 목적 및 개요/요약1. 사업의 목적2. 창업 동기3.기대효과Ⅲ. 사업에 대한 설명1. 사업(서비스)의 특성 설명2. 매장 개업을 위한 설비 비용3. 매장의 예상 위치4. 경영Ⅳ. TARGET 시장 및 마케팅 계획1. 타겟 시장 및 고객2. 관련산업의 최근 동향3. 업종전망4. 경영전략5. 가격책정6. MENUⅤ.재무관리계획1. 자금재원의 필요성과 총규모2. 자금 투자유치계획 및 차입계획3. 차입금 상환계획4. 영업수익 내역서Ⅵ. 특기사항1. 지원대상2. 지원조건3. 지원절차4. 2003년도 지원계획5. 보증서 발급기관Ⅱ. 사업의 목적 및 개요/요약(Executive Summary)1. 사업의 목적(MISSION)생과일 전문점을 통해 미용과 건강에 관심이 높은 소비자에게 각종 식품 첨가물에 대한 걱정 없는 먹거리를 제공하고자 한다.2. 창업 동기최근 여성을 주력층으로 하고 있는 사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또, 을 화두로 한 산업은 불황을 모르는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착안하여 두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생과일 전문점을 설립하고자 한다. 과일은 다양한 비타민, 유기산, 효소 등 몸에 이로운 성분을 다량 포함하고 있고, 영양 밸런스가 좋으며, 다량 포함된 식물 섬유는 씹는 횟수를 증가시켜 만복감을 주는 동시에 저 칼로리 식품이어서 다이어트 식품으로 적합하다. 이런 장점을 가진 과일을 상품으로 개발하면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Win-Win 하는 사업이 될 것이다.이를 약술하면, 소비자는 집밖에서 다양한 과일을 저렴한 가격으로 WMF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기존 외식 산업이 모두 고 칼로리여서 갈등하던 여성 고객의 딜래마를 줄일 것이다. 또 과일의 몸에 이로운 성분을 취함으로서 소비자의 건강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다.공급자는 TAKE OUT이 가능한 생과일 전문점을 통해 초기 자본 투자를 절약하여 창업의 위험을 줄일 응용이 가능함에 따라 사업 확장이 용이하다는 점이다.Ⅲ. 사업에 대한 설명1. 사업(서비스)의 특성 설명생과일쥬스 전문점이 국내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이미 그 이전부터 가정 및 카페등의 일반 업소에서 여름용 메뉴로써 생과일쥬스가 취급되긴 하였지만 전문점 성격의 본격적인 매장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생과일쥬스 전문점은 주로 백화점 식품코너나 대형 쇼핑센터의 2~3평 정도의 소규모 매장에서 운영되는 것이 보통인데 다양한 종류의 신선한 과일을 손님들 앞에서 직접 갈아 제공한다. 하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이런 종류의 전문화된 카레가 없어서 차별화 하여 생과일 쥬스를 포함한 생과일 전문점을 만들면 신선하고 색다른 분위기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인스턴트 식품과 과자에 입맛이 길들여져 불균형적이고 파괴적 형태의 식생활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자연의 맞은 생과일 쥬스, 생과일 세트메뉴는 한번쯤 먹어 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생과일 전문점은 생과일에 대한 다양한 메뉴를 취급하는 곳이다. (메뉴 참고.)생과일 전문점의 가장 큰 특징은 싱싱한 집밖에서도 과일을 부담이 즐기게 한다는 데 있다. 또한 생과일 쥬스의 경우, 커피 전문점인 '로즈버드'의 커피처럼 들고 다닐며 먹을 수도 있게 포장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세대들과 여성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생과일쥬스를 비롯한) 생과일 아이템을 한 점포에서 취급하는 생과일 전문점으로 구성해 수익성 높은 외식업종을 개발하는데 주력을 기하고자한다.2. 매장 개업을 위한 설비 비용(장비, 리스비용 포함)완제품 판매시 예상 창업비용은 10평기준으로 점포비용을 제외하고 4천5백만원. 세부내역은 가맹비 5백만원, 보증금 1천만원, 인테리어비 평당 1백50만원, 초도물품비 7백만원, 간판 2백만원, 냉장쇼케이스 6백만원(5∼6자 크기 2개) 등.구분품목내용금액비고설비냉장쇼케이스 (공조시스템 포함)5자∼6자 2개600만원기본평대 (이동 경사평대)저온창고믹서기0.8m x 2.0m2평x천정철거전면내부내외부 조명시설포함평대위실사옵션3. 매장의 예상 위치① 예상위치생과일 전문점의 주요 고객은 신세대와 여성층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젊은 여성들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입지로 적당할 것이다. 이런 곳으로는 신세대층과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자주 가는 대학가, 패션거리, 직장 여성들이 많은 사무실 밀집 지역 등이 유망하다. 이런 곳들 중에서 본 사업계획서에서는 을 입지로 선정하였다.♤ 주변 상권의 구분 - 경계구분구 분경 계 점특 성중심지먹자골몰 입구먹거리, 유흥, 기타 패션 잡화 등 거의 모든부분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지역이다.동 단체육공원상가지역이 끝나고 주택지역으로 접어드는 경계선이다.중심지와의 거리 : 150M서 단전대후문전대 후문으로 대학과 구분되는 경계선이다.중심지와의 거리 : 20M남 단북구청전대와 이어져 있으며, 큰 도로로 구분되어 지는 부분이다.중심지와의 거리 : 150M북 단공대쪽문전대 후문 상권의 영향으로 형성된 상권의 영향력이 끝나는 지점으로두암동으로이어지는 길로 구분되어 진다.중심지와의 거리 : 300M♤급지구분입지명급지평가주요 업종특 성후문앞 대로변상급지안경, 편의점,카패, 노래방 등가장 유동량이 많고 유동인구들의 체류시간이 긴 지역으로 대부분의 업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이면도로중급지주점, 당구장, 노래방 등실지 상급지와 그리 많은 차이가 나지 않으며, 거의 대부분의 업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단 이면도로 내부의 골몰에는 간혹 불황인 상점들이 있다.♤ 점포 평균 임대시세 (단위 : 만원)급지층수평형보증금월임대료권리금상급지1층104,000804,0002층204,000604,000지하203,000604,000중급지1층104,000503,0002층203,000403,000지하203,000403,000하급지1층102,000303,0002층203,000202,000지하203,000202,000② 개점시, 예상 임대 비용 or 구입 비용③ 위치에 따른 장· 단점 (단점의 대책포함)4. 경영ⓛ 예상 조직도② 종업원의 고용ⅰ. 교육을 철저히 실시한다.ⅱ. 유니폼을 단정히 착용하도록 교육한다.ⅲ. 기타.④ 점포 관리 안전 장치ⅰ. 보험ⅱ. 안전Ⅳ. TARGET 시장 및 마케팅 계획1. 타겟 시장 및 고객① 과일을 선호하는 중ㆍ고생 및 20~30대 여성들을 주 고객층으로 한다.② 타켓시장의 적정입지는 여성의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 주변의 번화가나 여성의류점 밀집지역이다.2. 관련산업의 최근 동향생과일 쥬스전문점이 국내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이미 그 이전부터 가정 및 카페등의 일반 업소에서 여름용 메뉴로써 생과일 쥬스가 취급되긴 하였지만 전문점 성격의 본격적인 매장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요즘 과일카페는 모 업체를 통하여 선보이며 많은 창업 예비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데 2001.7 기준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CD커피숍, 꽃집카페에 이어 최근 베이커리카페 등과 함께 커피전문점을 차별화한 아이템으로 급부상중이다.3. 업종전망현재 과일의 소매유통은 재래시장, 백화점, 할인점등이 주도하고 있으며 지역밀착형 과일가게와 트럭, 리어카상의 매출 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대형 유통업체는 산지직거래를 통한 저가공급이 가능하지만 트럭상이나 지역밀착형 과일가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 이 많음. 이들 트럭이나 동네 과일가게는 현대화된 유통형 태라고 할 수 없다.이러한 시장현황에 비추어 볼 때 현대화된 시설을 갖추고 지역밀착형으로 파고들어 자리매김 할 경우 성공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국내 과일시장규모는 약 2조5천억원에 이르며 건강을 중요시하는 현대인의 취향에 부응하여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국내 1인당 과일 소비량이 선진국인 일본을 앞지를 만큼 소비자들의 괸심도가 높고 발전하고 있어 시대변화에 민감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운영가능하다.4. 경영전략①창업 포인트과일은 생물이므로 신선도 유지에 항상 신경 써야 한다.ⅰ. 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확한 사입이 필요하다.ⅱ. 깔끔한 인테리어와 냉장 쇼케이스, 냉장고, 냉장 평대등 있도록 한다.ⅱ. 메뉴는 생과일 쥬스, 과일 빙수, 과일 샌드위치, 과일 케잎, 모듬 과일, 과일 샐러드, 과일 도시락 등으로 과일이 주종을 이룬다.ⅲ. 고객이 원하는 접시의 사이즈를 선택하고 원하는 과일을 선택하면, 과일 전문 바텐더가 멋진 솜씨로 예술같은 과일 세트를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ⅳ. 일반 카페에서는 다른 메뉴 보다 비싼 생과일 쥬스를 커피 가격보다 싼 2000원대에 판매하며, 토스트와 생크림등으로 서비스를 곁들여 제공한다.ⅴ. 음료와 베이커리 간의 맛의 밸런스를 고려하여 점심 대용으로 샌드위치, 감자, 모듬 과일, 생과일 쥬스가 나오는 과일 도시락을 메뉴에 첨부한다.ⅵ. 제과점등과 제휴해 생과자 등을 공급받는다.ⅶ. 선물을 원하는 이들은 과일 바구니 주문도 가능하다.ⅰ.차종류는 손님이 원할 경우 리필을 해준다.ⅱ. 아침 일찍 직접 농산물 공판장이나 청과시장에서 과일을 공급받아 매일매일 신선한 과일을 제공한다.ⅲ. 과일을 스스로 손질하기를 원하는 고객에게는 직접 과일을 깎아 먹을 수 있도록 칼과 용기를 제공하고, 직접 생과일 쥬스를 갈아먹을 수 있도록 한다.ⅳ. 피부 미용을 원하는 이들에겐 과일 미용팩을 무료로 제공한다.ⅴ. 1회용 테이크아웃 컵을 이용하여 고객이 테이크 아웃을 원하는 경우 서비스 제공한다.ⅵ. 잘 팔리는 상품으로 일정 기간을 정해 놓고 가격 할인을 시행하며. 할인 행사를 통하여 신규 고객 창출 및 기존 단골고객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달한다.ⅶ. 새로이 판매하는 청과물 또는 계절별 첫 출하되는 청과물의 홍보 및 단골 고객 수의 증가를 유도하기 위해 경품 제공 방식을 씀으로써 특히 중점 상품으로 키우고자 하는 청과물을 대상으로 시행하며 일정기간을 정해 놓고 시행한다.ⅷ. 방학, 시험 끝나는 날,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등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기념일에는 할인등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여 기념일을 철저히 챙긴다.③ 인테리어 전략시원하고 탁 트인 공간을 연출하기 위하여 유리창형 개방식으로 한다. 또한 밖이 보이게끔 테이블을 배치한다. 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