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1◈ 2003년 1학기 심리학의 이해 기말 레포트 ◈심리학을 변화시킨40가지 연구소속 :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학번 : 2000130355이름 : 안 무 현연구자명 : 해리 할로우( Harry Harlow)..PAGE:217. 사랑의 발견연구자 : 해리 할로우( Harry Harlow)..PAGE:3*발달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 (Harry Harlow)*초기 삶의 경험이 성인기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함.접촉의 중요성에 대한 연구를 함.= ‘접촉연구의 아버지’프로이트 이후 이 분야에 가장 위대한 공헌을 세운 사람으로 평가...PAGE:41. 사랑에 대한 생각이전까지는 ‘사랑은 다른 본능적인 또는 생존적인 욕구에 대하여 이차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함.그러나 할로우는 사랑과 정서의 욕구는 배고픔, 갈증만큼이나 강한 욕구이며 심지어는 그것보다 더 강한 일차적 욕구라고 함...PAGE:52. 이론적 제안우유병으로 먹는 것을 더 좋아하도록 실험실에서 인간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하고, 그들 어미원숭이에게보다 더 효과적으로 질병으로부터 보호된 새끼원숭이들이 우리 바닥을 덮는데 사용되는 천 조각에 매우 집착함.→ 새끼 원숭이에게 있어 배고픔이나 갈증과 같은 일차적인 생리적 욕구에 덧붙여 편안하고 부드러운 어떤 것에 밀접하게 접촉하려는 몇 가지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고 이론화...PAGE:63. 방법첫 번째 대리모는 매끈한 나무물체 위에 고무 스펀지와 테리천으로 싸여졌으며, 우유를 주기 위해 가슴에 수유병을 매달았고, 따뜻하게 하기 위해 내부에는 밝은 전등을 켜두었음. 다른 대리모는 나무로 된 형태와 같은 모양, 같은 조건이지만 철사 그물망으로 만들어졌음. 새끼원숭이를 무선적으로 두 집단에 할당한 후 각각의 엄마와 직접적인 접촉으로 보낸 시간을 기록.그 후 열린-공간검사(새끼 원숭이를 여러 가지 사물이 포함된 작고 낯선 방에 두는 것. 엄마가 있는 또는 없는 상황에서도 적응하고 탐색하는 경향을 조사하기 위한 것)도 시행...PAGE:74. 결과*천엄마에게 양육된 원숭이 *철사엄마에게 양육된 원숭이천엄마와 철사엄마에게 수유 받은 원숭이들이 모두 천엄마를 선호...PAGE:84. 결과열린-공간 검사의 경우 새끼원숭이들은 천엄마가 없을 경우 민감한 정서적 행동을 보임. 철사엄마가 있을 때도 그들은 엄마가 없는 조건에서와 같이 정확하게 똑같은 행동을 함.→ 철사엄마의 경우 별로 도움이 안됨.30일의 격리 기간 후 천엄마와 재결합 했을 때 엄마에게 올라타고 머리와 얼굴을 엄마의 몸 위에 문지르는 행동을 보임. 그 전처럼 사물을 가지고 놀거나 탐색하지 않음.→ 탐색보다 접촉위안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함...PAGE:95.논의이 논문에 보고된 연구들은 새끼 원숭이와 그들 어미와의 애착발달에 있어 접촉 위안이 압도적으로 중요함을 증명함. 실제로 유대관계에서 이러한 요인들은 유아들에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우유를 제공하는 엄마의 능력보다도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은 기본지식이 받쳐주지 않는 나에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번역본을 읽다보니 번역본 특유의 어투로 인해 더욱 이해하기 힘든면도 있었다. 아무튼 책을 사고 2주간 씨름을 하며 어떻게든 한자라도 더 이해해 보려고 노력 하였지만 기초가 없는 바닥에 공사를 하는 것 마냥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나마 글의 분량이 많지 않고 많은 그림과 함께 설명이 되어 있었기에 어느정도 읽기를 반복하자 어렴풋이나마 작가의 의도를 이해 할 수 있었고, 조금씩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 할 수 있었다. 책의 원제목인 “Ways of seeing”에서 알 수 있듯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볼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인 눈의 ‘본다’라는 기능은 인간의 삶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이 받아들이는 정보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시각정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보를 숨쉬고 산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있어 정보는 마치 공기처럼 인간의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다. 이 정보는 지금 우리 사회의 사방에 가득차 있으며 그 정보중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좋은 정보도 있지만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와 같은 정보도 많다. 결국 우리는 이처럼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에게 유익한 정보만을 선별 수용 할 필요가 있는것이다. 다른 감각기관에 비해 눈의 ‘본다’라는 기능이 정보에 가장 빈번히 노출되며 대부분의 정보를 무의식적이며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때 이처럼 무의식적이며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제대로 읽어낼줄 아는 힘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듯 영상이미지를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문제를 7개의 개별 에세이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첫 번째 에세이인 ‘영상과 이미지 언어’에서는 이미지를 보는 행위를 통해 해 보면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무한히 많은 장면으로부터 한 장면 만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의 보는 방식이 그의 주제 선택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화가의 보는 방식도 그가 캔버스나 종이에 그려낸 상징들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이와 같이 사진가나 화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한 대상을 어떻게 보았는가 혹은 한 대상이 관찰자에 의해 어떻게 보여졌는가를 드러내 주는 것으로 이미지를 만든 사람의 특정한 시선이 하나의 기록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의 어떠한 문자기록이나 유물도 이미지만큼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증언이 될 수 없으며, 이미지야 말로 문학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풍부한 증언이 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사람은 사물을 볼 때 자신의 지식이나 신념등과 관련지어 보게 된다. 예술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예술 작품을 볼 때 우리는 예술을 신화화 시켜버리게 되고, 과거의 예술품들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멀어져 예술의 감상이란 영역으로 넘어가 버리게 된다. 옛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관련 속에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작품을 볼 때 바라다보는 방식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주관적인 오류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원근법을 통해 인간의 눈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신 같은 위치에서 사물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 장소에서 한 순간에만 존재 할 수 있는 인간에게 모든 현실의 이미지를 그 중심으로 배열하는 것은 원근법이 본질적으로 내포한 모순인 것이다. 사진기의 발명으로 이와같은 원근법의 과정이 갖는 모순이 보다 명백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진기는 드러나는 형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하기 때문에, 이미지란 시간성과 관련이 없다는 관념을 깨뜨려 버린다. 당신이 본 것은 당신이 어느 순간에 어디에 있었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며, 무엇이 보여진다는 사실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 제약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대상을 원근법에 맞춰 인간의 눈에 수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사진기의 발명은 또한지에 의한 새로운 언어가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으로서 그리고 역사의 주체로서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서 역사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 것임을 주지시킨다. 따라서 중요한 문제는 이들 이미지의 언어들이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 의해 사용되는가 하는 것이다.이 책의 3장은 ‘예술에 나타난 여성이미지’라는 제목하에 남성위주의 그림 소유자의 시각에서 누드의 모델이 된 여성의 전형에 의문을 제기하며 관찰자와 관찰당하는 자로서의 이중적 여성의 정체성과 벌거벗음과 누드의 상관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이처럼 통념화 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생각들은 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남성의 현재적 모습은 힘과 힘의 행사라는 측면과 관련되어 그려진다. 즉 남성의 현재의 모습은 그가 당신에게 혹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 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여성의 현재적 모습은 여성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 여성은 늘 남성에게 비춰질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가꾸는 것이며 많은 경우에 여성은 바라다 보이는 대상, 즉 하나의 풍경으로 전락한다. 유럽 회화사에 나타나는 누드화는 그 좋은 예이다. 작가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통해 벌거벗음이라는거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이는 바라보는자의 마음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것이라고 한다. 이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바라보는 사람인 관객 때문이라는것이다. 그러나 회화의 전통이 점차 대중화 됨에 따라 누드화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들 모두에 공통점으로 발견되는 점이 작품의 모델인 여성이 관란객에 의해 보여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듯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그림속의 누드를 훔쳐보는 사람처럼 우리도 그림속의 누드를 훔쳐보는듯한 느낌을 주며, 그림속의 모델은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벌거벗음'과 '나체'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케네스 클라크에 따르면 ‘벌거벗음’이란 단순히 아무런 옷도 지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과정에서 어느 순간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벌거벗음의 익명성' 때문에 그 이미지는 평범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인간은 벌거벗음을 나체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즉, 대상과 바라다보는 사람을 일반화시키고, 성적 고유성을 없앰으로서 욕망을 환상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유럽 나체화에서 화가와 관람자, 소유자는 언제나 남성이었고 작품의 대상은 언제나 여성이었다. 이와 같은 불평등 관계는 사람들의 의식에 내면화되었기 때문에 여성들조차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가치와 태도는 대중매체를 통해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를 누리고 있다.‘유화의 사회사’라는 제목이 붙은 5장은 자본이 어떻게 모든 대상을 물화하였는와 소유와 재산이라는 가치로 고전 유화에 담겨진 사물과 인물, 풍경의 과시욕을 설명하고 있다. 화자는 그림안에 그림들이 들어있는 그림을 통해 그 그림들이 예술작품이 아니라 소유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라고 설명한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있어 회화란 지식의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소유의 수단이었다라고 한다. 르네상스의 회화는 그당시 프로렌스와 같은 도시들에 축적외어 왔던 엄청난 부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의 돈많은 부유층들은 화가를 예술가라기 보다는 자신의 부를 확인시켜주는 중개상 정도로 생각 했던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여러 그림을 통해 자세히 설명 해 주고 있다. 홀바인의〈대사들〉에 나타난 두개골은 죽은사람의 존재를 끊임없이 되새겨 주는 상징이다. 또한 그림에 나타난 두 주인공의 시선과 선반위의 물건들을 사회적 배경과 연관지어 해석해 보면 식민지의 개척과 유럽 문화의 우수성등의 해석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건축물들을 묘사한 그림은 이상적인 건축작품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유물로 그려진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묘사는 수업시간에도 한번 들은적이 있는 겐즈버러의〈앤듀르스 부부〉의 그림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 그림에 드러난 그들 소유의 토지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이 토지는 단순한 배경과는움이나 이익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란 실제적 대상을 통해 어떠한 즐거움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지 즐거움을 제공하는 어떠한 실제적 대상도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마치 짝사랑처럼 일방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선망의 대상이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선망 해서는 안된다. 결국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무관심한 표정을 지어야 하며 무관심이 잘 드러 날 수록 그 사람의 선망의 대상으로서의 위력에 대한 환상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바라보는자임과 동시에 상품을 구매함으로서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우리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위해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광고를 소멸해 가는 시각 예술의 마지막 형태라고 언급하고 있다. 광고가 유화에 나타난 시각적 언어 형식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유화의 바라다 보는 방식과 광고의 바라다 보는 방식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광고는 과거의 작품 그 자체를 모방하기도 한다. 광고에 인용된 작품은 부유함과 정신적 깊이를 나타내 주는 동시에 광고된 상품을 사는 행위가 곧 사치스러움과 문화적 가치의 표현임을 보여준다. 유럽 유화의 전통에서 드러난 작품과 소유자의 관계가 광고의 경우에는 상품과 소비자의 관계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유화의 언어형식은 그대로 광고에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화와 광고에서 나타나는 시각적 이미지는 너무도 일치하기 때문에 둘의 유사성을 찾는 것은 너무나 쉽다. 게다가 양자에 사용되는 기호의 체계도 유사하다. 그러나 유화와 광고의 언어형식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수행한는 역할은 크게 다르다. 유화의 소유자는 유화를 통해 그가 향유하는 부와 삶의 방식을 보여줄 수 있었다. 반면에 광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광고는 상품을 구입하면 그의 삶이 윤택해진다는 논리를 통해 대안을 제시해 주는 셈이 된다. 광고는 소비사회의 문화형식이며 사회에 내재하는 신념체계를 지한다.
이 책을 처음 한번 읽는데 무척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예술에 기초적인 지식도 없던 내게 이 책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고, 몇 번을 읽어도 무슨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예술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로 전문적이었고 현학적이었다. 책 내용 중에는 관련 사건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고, 간간히 튀어나오는 뜬금없는 내용들과 주제와 별 관련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내용들이 많아서 내가 이해 하는데 끊임없이 방해가 되었다. 다행히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신화적 부분과 수업시간에 들은적이 있던 내용들을 토대로 어느정도 이해 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의 이해를 통해 전체적으로 이해해 보고자 노력했다. 교수님이 항상 말씀하셨던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와 닿았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처음 읽으며 이해했던 부분에 겹쳐서 더 많은 부분을 이해 할 수 있었고, 회독을 거듭 할 수록 점차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선사 시대의 예술부터 예술의 발전 과정을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나 예술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였던 일들과 관련지어 풀어 내고 있었다. 중간에는 ‘그 정도까지 유추해 내는 것은 억측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아! 여차여차해서 그렇게 발전하게 되었구나!’ 라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또한 부분부분 삽입해 놓은 그림들이 설명과 어우러져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의 글머리에는 별자리를 바라 보는 우리의 변해버린 시선에 대한 작가의 안타까움이 드러나 있는데, 과거의 사람들이 별자리를 예술의 대상이자 미학의 관점으로 바라보았고, 아름다운 별자리에 대한 예찬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 속에서 이러한 감성은 잦아들게 되었고, 별자리는 단지 과학의 대상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미학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를 되살리고자하는 바램을 드러내고 이라는 설이다. 유희기원설은 남아도는 에너지 방출통로로 예술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고, 노동기원설은 예술이 노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관점으로 원시시대의 회화는 의사소통을 위한 신호에서 나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희기원설과 노동기원설은 구석기인의 생활이 유희로서 예술을 할 수 있을만큼 편했을지와 원시인들이 그 힘겨운 삶 속에서도 예술을 해야만 했을지에 대한 의문에 부딪히게 된다. 결국 가상을 통해 현실의 소망을 이루려는 주술적 신앙에서 예술의 기원을 찾는 주술기원설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사냥감을잡는 동작을 반복하는 주술을 통해 원시인들은 사냥의 절차와 기술을 반복학습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사냥을 더 잘 할수 있게 된 원시인들은 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게 된 것이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와 달리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가상은 곧 현실이었고, 현실의 삶이 곧 예술이었던 것이다. 원시인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계절의 순환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다. 그들은 차가운 겨울이 찾아오면 따뜻한 봄이 다시 오지 않을까봐 두려워했고, 그래서 주술을 통해 당연히 다가오는 봄을 이끌어내기를 염원했다. 그들은 주술을 했기 때문에 봄이 온다고 생각했고, 그 주술행위는 그들의 현실삶의 일부이자 곧 예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술은 시간이 흘러가며 종교와 철학 그리고 예술로 분리되게 된다. 그 중 예술은 현실과 가상이 분리되는 순간에 탄생한다. 그들이 현실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주술행위는 언제부턴가 한갓 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이러한 신성한 사건은 한편의 재미있는 연극이 되고 만다. 이처럼 현실에서 분리되어나온 가상은 곧 그 존재이유에 대한 물음에 빠지게 된다. 이에 대한 답으로 후세의 철학자들은 가상이 진리를 전달할 수 있을거라 여기며 가상을 변호한다. 결국 이 책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상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가상과 진리라는 개념에 대한 두 철학자의 상반된 관점일 것이다. 플라톤은 예술이 가상을 포기해야 진리에 도달할 것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 결과 추상적, 기하학적 양식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그리스 회화는 인물을 과감하게 정면에서 보이는 대로 그렸다. 이를 ‘단축법’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 예술이 이집트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 예술도 처음에는 딱딱한 기하학적 양식에서 출발했지만, 곧 거기에서 벗어나게 되고 찬란한 고전기에 이르게 된다. 이 시기를 보통 ‘아르케익’시대라 부르는데, 이 시기는 이집트 예술의 영향을 받은 시기로서 독일의 비평가 빙켈만은 이 시기를 고대양식이라고 부르며 그 특징을 ‘엄격함과 딱딱함’으로 규정했다. 그리스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전성기를 맞은 시기에는 예술도 오리엔트의 지배에서 벗어나 찬란한 고전기를 맞게 된다. 이 시대를 빙켈만은 ‘숭고양식’이라고 부르며 ‘위대함과 거대함’으로 규정했다. 이 시대의 조각가들은 인체비례를 완성하는데 주력했는데, 이처럼 한치 오차도 없이 실제 인체비례를 따르고 있는 인물들이 딱딱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어질 로마의 예술을 빙켈만은 예술의 사멸로 보며, ‘모방자의 양식’ 이란 이름과 ‘보잘 것 없음’으로 규정했다. 그는 예술이 그리스에서 완성되었으며 그리스 이후에 예술은 그 당시의 완전한 모범을 모방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다음으로 가상을 넘어라고 이름붙여진 중세예술의 첫 부분은 빛과 어둠이라는 것의 대비를 보여주며 시작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우리를 밝은 세계로 이끄는 것이 바로 에로스, 즉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근원적인 일자라는 것을 설명하며 이 세계가 일자, 정신, 영혼, 자연으로 나뉜다는 플라티노스의 세계관을 언급하고 있다. 일자는 근원적인 것으로 그 자체가 곧 선이자 미이다. 여기서 밝은빛이 흘러나와 영혼이 되고, 영혼의 정신세계를 본떠서 자연이 만들어지며 영혼이 이 자연 속에 들어가 식물이 되고 동물이 되고 인간이 된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보는 자연 속에 희미하게나마 비치는 일자의 빛이 아름다움인 는 반대로 아름다움의 속성으로 고대예술의 균제와 같은 것을 들고 있다. 모든 아름다움은 결국 수로 귀착되는데 이러한 미의 관념은 전통적인 그리스적 관념이다. 그가 그리스 미술과 구별되는점은 추를 아름다움의 일부로 본 점이다. 그는 추를 비록 그 자체로는 아름답지 않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미를 한층 복잡하고 풍부하게 해주는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중세 예술의 임무는 감각적인 것으로 초월적 진리를 표현하는 것인데 이를 위한 방법이 바로 알레고리이다. 알레고리는 글자 그대로 ‘다른 것을 말하는’것으로서 중세회화에 등장하는 양은 그냥 양이 아니라 신의 어린양, 곧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중세의 건축양식은 건물 자체가 두껍고 견고한 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부 분위기가 어둡고 무거운 로마네스크 양식을 거쳐 중세 말 고댁 양식의 이르게 되는데 고딕 양식에서는 건물 내부의 두껴운 벽이 사라지고 빛을 받아들이는 부분도 넓어지게 된다. 로마네스크성당이 악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신의 성체였다면 고딕 성당은 사람들에게 현실세계에서 벗어난 천국이었다. 중세의 조형 예술은 독자적인 의미를 갖지 못했는데, 이는 당시의 조형예술이 대중화되지 못했던 성경을 대신해 성경의 내용을 전달하는 의미로서 존재했기 때문이다. 결국 중세의 조형예술은 성당에 종속된 성당의 일부일 뿐이었다. 중세의 예술은 플라티노스에서 유래한 빛의 상징으로 압축될 수 있는데 밝은 빛과 화려한 색채로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비스러움을 표현하는게 중세회화의 큰 특징이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살았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미를 사람의 즐거운 감정과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데 외부의 형상과 내부의 형상이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부드럽게 맞아 떨어질 때 미적 쾌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미에 대한 인식을 대상을 주관에 동화시키는 것으로 보았는데, 뒤에 칸트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미를 지적인식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미적 주지주의는 고대와 중세는 물론 르네상스까지 이어지는 유서깊은 생각이다.마지막으로 저자 첫째로 바로크 회화는 회화적, 곧 시각적인데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의 외관이다. 둘째, 바로크 회하는 겹침을 강조하는데 인물들이 깊이에 따라 배열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눈이 앞, 뒤로 움직이는 듯이 상상하게 된다. 셋째, 바로크 회화에서 각 부분은 독립성을 잃고 전체 테마에 합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넷째, 바로크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전체의 효과이므로 명확한 디테일의 묘사는 의미가 없다. 이는 결국 형태의 불명료함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루벤스의 바로크가 유행하던 17세기에 프랑스에서는 고전주의로의 회귀가 일어나는데 푸생의 바로크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미란 ‘질서’, ‘비례’, ‘척도’로 표현된다고 하며 예술은 이성과 엄격한 규칙에 따라야하고 중요한 주제와 그 주제를 분명히 드러내는 명료한 형식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은 ‘미는 선이나 진’에 ‘예술은 도덕이나 종교 또는 철학’에 종속시켰다. 수천년동안 사람들은 ‘순수예술’, 즉 진리나 도덕적 교훈을 주지 않는 예술은 타락한 것으로 여겼는데 이를 벗어나 예술이 오늘날처럼 자기 고유의 자율성을 갖게 된 것은 칸트 덕분이다. 미에 대한 판단은 인식이 아니다. 미는 사물의 객관적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주관의 즐거움과 불쾌함의 판단일 뿐 대상에 대한 인식이 아니다. 이처럼 미가 대상이 아니라 주관에 달려있다고 보게 되면 미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를 뛰어넘는 규별의 기준이 있는데 이를 ‘보편타당성’이라고 한다. 우리가 피카소의 작품과 이발소 그림을 보며 미에 대한 구별을 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주관적 보편타당성 때문인 것으로 이것은 인간 주관의 구조가 똑같은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또한 칸트는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인지 판정할 보편적 규칙이 없음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는 대상이 타인에게도 똑같은 만족감을 주게 되리라 믿는 감정을 공통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느 이 공통감을 ‘있다’
최근 여성패션의 트렌드인 스키니진과 초미니 스커트로 인해 하이힐도 덩달아 유행하고 있다. 다양한 하이힐 들이 거리를 수놓고 있는데, 그 굽의 높이가 낮게는 7cm에서 높게는 13cm까지 거리는 온갖 종류의 하이힐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미국에서 앞굽이 10~15cm인 플랫폼 힐이 유행하면서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아 아찔하리만큼 높은 하이힐들을 신고 다니는 여성들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굳이 현재의 유행이 아니더라도 하이힐은 정장을 입을 때나 신체적인 결점을 커버하기 위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많은 여성들에게 가장 사랑받아 온 신발 중 하나이다.여성들이 하이힐을 즐겨 신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하이힐이 여성의 몸매를 좀더 맵시 있게 보이게 해 준다는 것이다. 하이힐을 신으면 체중이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몸을 뒤로 젖혀야만 똑바로 설 수 있게 된다. 결국 하이힐은 배는 들어가게 하고 가슴은 나오게 해 주며, 엉덩이가 튀어 나오게 해 뒷모습을 맵시 있게 할 뿐 아니라 두꺼운 다리를 좀 더 가늘어 보이게 하며, 가는 다리는 더욱 미끈해 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또한 하이힐은 남성들에게 여성을 좀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 주기도 한다. 가늘고 높은 굽에 의존해야 하는 하이힐은 안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걸을 때 마다 발과 발목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게 되고, 이러한 동작이 여성의 걸음걸이를 더욱 섹시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또 하이힐을 신을 경우 굽의 높이만큼 키가 커보이게 되는데 다리는 상대적으로 길고, 허리는 짧아 보이게 해 준다.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키가 작은 여성들에게 남성과의 키를 맞춰주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게 된다.하지만 이처럼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하이힐을 꼼꼼히 따져 보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 실제로 미적인 면을 제외하면 하이힐이 주는 실용적인 가치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기능적이거나 실리적인 가치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이힐의 높은 굽은 구두에 붙어있는 부자연스러운 장치에 불과하며 서있거나 걸어 다니는 것을 위태롭게 하고 다리를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또한 하이힐은 안전사고를 일으키며, 장기간 착용할 경우 발과 신체에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힐은 여러 세대에 걸쳐 끊인 없이 의사들의 비판을 받아 왔는데, 의사들은 하이힐이 많은 신체 이상을 유발한다고 경고한다. 많은 여성들이 유행을 따르기 위해 혹은 하이힐이 주는 아름다움 때문에 하이힐을 신고 있지만 그들의 구두굽이 높아질수록 여성의 건강은 위협 받게 되는 것이다. 대다수의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은 하이힐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건강을 해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이힐이란 무엇이며, 그 부작용과 해결책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일반적으로 하이힐이라 하면 보통 높이가 7cm 이상인 신발을 뜻하는데 정확히 언제부터 하이힐을 신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현대 하이힐의 선두자인 플랫폼 구두는 15~18세기에 유럽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초핀이라는 스타일이었다. 이것은 높은 받침대 혹은 속이 빈 원통 위에 얹힌 신발로, 높이는 평균 6~18인치였으며 30인치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 초핀이 16세기에 들어서 변형 되어 하이힐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하이힐이 처음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초 로써, 피렌체의 명문가인 메디치가 출신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파리의 앙리2세에게 시집가면서 작은 키를 좀 더 커보이게 하기 위해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고, 이것이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켜 유럽 전역에서 유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시대를 거듭해 오며 유행하던 하이힐은 1954년 프랑스의 구두 디자이너 로제 비비가 현재의 일반적인 하이힐의 모양인 뒷굽이 가는 모양으로 정착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유행을 지속해 오고 있다.비비에 의해 정착 된 오늘날의 일반적인 하이힐은 뒷굽이 가는 모양으로 인해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한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따르면 여성질병의 60퍼센트가 하이힐 때문이라고 할 만큼 하이힐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하이힐로 인해 겪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질병으로는 발과 발가락의 통증 및 변형을 들 수 있다. 실제로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의 경우 56%가 발가락에서 통증을 느끼며, 23%는 발바닥에서 통증을 느낀다고 해 하이힐로 인한 부작용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이힐은 사각형의 발을 삼각형 속에 억지로 구겨 넣는 것이어서 엄지발가락이 둘째 발가락 쪽으로 꺾이는 무지외반증이나 뾰족한 앞코가 발가락을 옥죄어 발톱이 살을 파고 들어오는 내향모조증을 일으키게 되는 등 전체적으로 발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하이힐은 맨발로 걷거나 또는 운동화를 신고 걸을 때 몸무게가 뒷꿈치부터 발가락 까지 자연스럽게 전달되는데 반해 발끝부터 바닥에 닿게 되어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게 되는데 발끝에 무게가 실리다보니 압력을 받는 발가락이나 발끝에 굳은살이 박이고 심하면 티눈까지 생기게 된다.하이힐로 인해 겪을 수 있는 또 다른 질병으로는 요통을 들 수 있다. 발과 허리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허리가 아프면 그 영향은 반드시 발에 나타나기 마련이며 발의 어떤 기능이 떨어졌느냐에 따라 허리의 어느 부위가 나쁜지를 판단 할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발이 불편해도 허리가 아플 수 있는데, 하이힐을 신으면 발이 불편하게 되고 결국 만성요통이나 허리 디스크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높은 하이힐을 신을 경우 뒤꿈치가 들리게 되고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척추의 S자 곡선이 앞으로 기울어진 모양으로 변형되어 더 이상 효율적으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게 되고 체중이 전방으로 이동하게 된다. 즉, 하이힐을 신고 걸을 때는 척추가 충격 흡수보다는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한 구조로 바뀌어 발이 바닥에 닿을 때 마다 발바닥에 가해지는 충격이 척추에 충격을 주게 되는 것이다. 척추는 인체를 지탱하는 가장 큰 골격 구조이면서 주축이기 때문에 그 만큼 견고하고 내구성이 강하지만 지속적인 척추의 기울어짐이나 비틀림이 가해진다면 결국 척추에 이상이 발생하게 된다. 요추가 스트레스를 받아 디스크가 외측 후방으로 밀려나가 신경을 누를 경우 디스크 증상이 생기게 되고, 근육통이나 다리 저림 등의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오랫동안 하이힐을 신고 다니게 되면 척추 곡선이 사라지면서 모든 물리적 충격이 곧바로 뇌로 전달되기 때문에 기억력이 감퇴하고, 쉽게 피로하며 작은 충격에도 잘 다치게 되고, 이유를 뚜렷이 알 수 없는 어깨 결림이나 두통 등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연히 체내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머리가 아프며 종합검진에는 잡히지 않는 증상이 하나하나 생기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비정상적인 골반상태도 하이힐로 인한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이다. 높은 하이힐은 힐 높이만큼 엉덩이가 뒤로 젖혀지면서 허리가 심하게 꺾이게 되어 골반이 서서히 뒤로 튀어나오게 함으로서 비정상적인 골반상태를 초래하게 된다. 골반이 삐뚤어지게 되면 그 위에 탑처럼 쌓인 척추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우리 몸의 좌우 균형이 깨지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골반이 감싸고 보호 하고 있는 장기들에 영향을 미쳐 생리통, 생리불순등 심각한 부인과 질환을 초래하기도 한다.또한 하이힐은 관절염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이힐의 경우 몸의 무게를 가늘고 높은 하이힐에 의존해 다니다 보니 무릎 관절에 무리를 주게 된다. 미 하버드의과대학과 스폴딩 재활병원 연구진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이힐을 신었을 때와 맨발로 보행할 때를 비교한 결과 하이힐이 무릎에 압박을 가함으로써 무릎관절 안쪽 부분이 소모 되면서 골관절염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한 앞굽과 뒷굽의 차이가 1cm이상이 되면 무릎 관절에 퇴행성관절염이 발생 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게다가 발목관절은 맨발일 경우보다 두 배 가까이 더 움직이게 되어 허벅지 근육의 피로와 통증을 유발하게 되며 아킬레스건이 파열될 확률도 높아지게 된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국 철강계의 거물이자 자선사업가인 솔로몬 구겐하임이 수집한 현대미술품들을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본관인 구겐하임 뉴욕 미술관은 원래는 1937년 비대상회화미술관이란 이름으로 개관하였으나 1959년 구겐하임미술관으로 개칭하였으며, 설립 초기부터 구겐하임재단이 운영하였다. 뉴욕에 있는 이 구겐하임 본관을 중심으로 현재는 스페인에 구겐하임 빌바오, 이탈리아의 구겐하임 베니스, 독일의 구겐하임 베를린과 미국의 구겐하임 라스베가스까지 본관과 4개의 분관, 총 5개의 미술관을 운영중이다.구겐하임 뉴욕 미술관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본관으로서 구겐하임에 의해 최초로 건립 된 미술관이다. 1930년대 은퇴한 뒤 미술품 수집에 열중한 구겐하임은 1939년 뉴욕의 자동차 전시장을 개조한 미술관에서 첫 소장품 전시회를 열었다. 몇 년 되지 않아 그의 수집품은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마르크 샤갈의 작품 등으로 방대해졌고 그는 이 많은 미술품들을 전시할 미술관의 건립을 구상하게 된다. 결국 구겐하임은 1943년 라이트에게 “세상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집을 지어 달라. 미술관이 아니라 ‘영혼의 사원’을 지어 달라”고 주문하게 되고, 그로부터 16년 뒤인 1959년 10월 21일 뉴욕 5번가에는 거대한 컵케이크를 거꾸로 엎어 놓은 듯 괴상야릇한 흰색 콘크리트 빌딩이 문을 열었다. 당시로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대미술 컬렉션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새로운 구겐하임 미술관이었다. 큰 달팽이 모양의 외관과 탁 트여 통풍이 잘 되는 천장을 중심으로 한, 계단 없는 나선형 구조의 전시장이라는 독특한 설계로 인기를 모았고 준공되자마자 뉴욕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소장품은 현대미술의 장려와 진흥을 표방한 창립자의 의도에 따라 20세기의 비구상·추상계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피카소의 초기작품과 클레, 샤갈, 마르크 등의 작품도 전시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180점이나 되는 칸딘스키의 컬렉션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1976년, 현대미술품 수집가인 탄호이저 내외가 소장하고 있던 후기인상파들의 작품을 대거 기증하면서 미술관의 소장 작품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미술관 활동면에서도 각종 교육프로그램 및 기획전을 개최하는 외에 구겐하임상 국제미술전을 열고 있는 점 등은 현대미술의 발전·계몽을 목표로 하는 이 미술관의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본관을 제외한 4개의 분관중 가장 유명한 미술관은 스페인에 있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일 것이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경우 그 건물의 독특함으로 유명해 지게 되었는데, 이 구겐하임 빌바오미술관으로 인해 폐허화 됐던 스페인의 항구도시인 빌바오 시는 단숨에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1997년 10월 개관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미국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건축물로서 매년 전세계에서 1백만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 외장재료는 크게 티타늄, 돌, 유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티타늄 외장판은 미술관의 트레이드마크이다. 그러나 게리의 설계 사무소가담당 설계 사무소로 지정될 무렵에는 외장판이 스테인리스스틸로 잠정 결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게리는 스테인리스 스틸에 만족하지 않고 아연 및 구리 등의 여러 소재를 조사했다.그러나 이들 소재는 습한 빌바오 기후에 맞지 않았고, 이에 게리는 티타늄을 선택 했는데 빌바오 하늘의 빛을 그대로 반사해 주는 티타늄의 성질을 선호했다고 한다. 티타늄은 가격이 비쌌으나 때 마침 러시아의 최대 티타늄 광산이 대량으로 티타늄을 생산해 내어 가격이 현저히 감소했다. 티타늄은 가볍고 스테인리스 스틸에 비해 상당히 얇아서 실제 인부들이 장착하는 데에도 훨씬 수월했으며 수공품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 약간씩 휘어서 설치하는데도 용이했다고 한다. 두 번째 주소재는 외관과 내장을 장식 할 암석이었다. 빌바오의 비바람이 잦은기후에 적합한 베이지색 석회암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공급 예정이었던 석회암의 공급이 불안해지자 스페인의 남부 지방 그라나다에서 구하게 되었다. 이지역의채석장은 부도위기에 처해있었으나 프로젝트의 주공급원으로 선정되면서 다시 흑자로 돌아서게 되었다. 이 석회암은 매우 단단하고 다공성이 낮아 미술관의 구조가 요구하는 스트레스를 견디기에 적합했다고 한다. 마지막 주소재인 유리는 뒤틀리는 성질이 없기 때문에 복잡한 표면은 유리판을 구부리기보다 삼각 분할을 해서 맞추었다. 그 결과로 금속 외장 부분과는 달리 유리판의 70%는 각기 조금씩 다른 크기가 되었다. 이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에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클레이즈올덴버그의 설치 작품을 비롯하여 20세기 후반 40여년에 걸쳐 미국과 서유럽에서 활동한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추상표현주의계열의 뛰어난 작가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바스크와 에스파니아의 현대미술을 대표할만한 작가들의 작품도 수집하여 현대 미술의 최근경향을 볼 수 있다. 빌바오는 미술의 도시 파리를 제치고 가장 잘 나가는 미래의 미술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이 미술관은 마을 분위기를 휘어잡던 중세의 대성당처럼, 음산한 잿빛도시 빌바오를 밝히는 21세기의 사원이다. 그래서 구겐하임은 소장품보다 미술관 건물자체가 더 화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