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축제란, 이벤트의 한 종류로서 관광산업에서 특정한 관광자원 없이도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관광수입을 창출해 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크게는 국가적 차원에서 작게는 지역별로 축제를 만들고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하지만, 모든 축제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성공적인 축제와 그렇지 않은 축제의 사이의 격차(gap)은 대단히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여 진다.수업시간에 보았던 '산 페르민 투우축제'는 전자에 해당하는 세계적인 축제로서 자리 잡고 있는 좋은 예라고 보여 지며, 이 축제에 대한 분석 및 타 국가의 투우축제와의 비교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축제들이 가진 문제점 및 해결방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 론1. 이벤트의 정의이벤트(Event)란,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말로써 'e'는 'out(밖으로)'의 뜻을 지니며 'venire'는 'to come(나오다)'의 의미를 지니는 'Evenire'에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이벤트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 및 단체에서 정의를 내린바 있으며, 어느 부분이 강조되었는가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가진다.이러한 정의들을 종합적으로 보자면, 이벤트란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전에 계획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서 목표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개최되는 의도된 사건이라 정의 내릴 수 있다.이러한 이벤트는 규모 ? 주최 ? 목적 등에 따라 분류될 수 있으며, 축제는 이벤트의 한 종류에 속한다.2. 축제1) 축제의 정의전통적인 의미의 축제란 지역 주민들의 총체적인 삶과 전통 문화적 요소가 잘 반영되어 있는 종합적인 문화행사로 전통적인 지역 축제들은 바로 이러한 지역주민들의 공동체적 의식과 동질성을 확인해 주었던 의미 깊은 민속제로서 모든 축제의 기원은 공공의 향연과 의식이며 예술이나 의식, 제례를 통해서 특별한 기회를 기념하는 방법으로 거행되고 축제의 주제는 주로 문화적 가치의 공유를 참고로 하여 결정되어진다고 정의하도 있고, 이로 인해 이벤트의 폐회가 지적되고 이벤트행정의 재평가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그렇기 때문에 지역이벤트 사업은 일정 지역에서 만의 유일함, 독창적인 발상과 실천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고, 개최하는 목적이 뚜렷하고 지속적인 아이디어와 사업의 연계화가 필요하다(서영진 1996:98).성공적인 지역이벤트는 지역주민의 문화행사로 그 지방의 문화수준을 향상시킴은 물론 향토애를 부각시키는데 큰 몫을 한다. 즉 고용효과, 소득효과, 문예 진흥 효과, 전통예술보전효과, 향토정신 추구효과, 공연설비 투자의 효과 등을 가진다(최정순 1993).지방축제와 이벤트의 효과는 대단히 크다.첫째, 지역 경제적 효과로 축제이벤트의 경제적 효과는 가장 기본적인 효과이다. 행사를 위한 시설건축, 관람객의 입장료, 쇼핑, 숙박에 대한 수입, 고용창출, 지방정부의 세수입, 행사관련 사업비의 지출 등의 효과가 있다(이경모 2002:356). 축제이벤트의 비용절감 효과는 인건비 절감과 스폰서가 있는데, 축제 이벤트는 지역의 행사이므로 지역민이 기꺼이 자원봉사자의 역할을 맡게 되고 이에 따라 인건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또 축제 이벤트는 종종 기업의 스폰서를 유치하여 기업에는 광고효과를 주고, 주최 측은 축제이벤트 비용을 충당한다. 기업의 참여방법은 기부금 형식이나 자사상품을 제공하기도 한다(안경모, 1998:494).둘째, 지역의 사회?문화적 효과를 들 수 있다. 이는 특정지역에서의 축제 등의 이벤트를 개최한다는 것은 지역 내 각 관련 분야의 세계화 내지는 국제화 및 구조적, 질적인 향상을 기할 수 있으며, 지역주민들의 자부심 및 의식수준의 향상을 꾀할 수 있고, 지역고유의 문화, 전통, 풍습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게 되는 등 민간교류의 효과와 홍보 및 선전효과, 지역주민들의 국제 감각 교육효과 등 중요한 사회적 구심점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그러나 축제나 이벤트의 효과를 항상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지역진흥을 위한 이벤트의 구체적인 추진에 있어서 해당지역의 특성을 분작만으로 그치게 하기 위해서이다.4. 산페르민 축제[Fiesta de San Fermin]스페인은 유럽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 국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투우와 플라밍고 춤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알정도로 유명하다. 이런 스페인에서는 지역별로 투우 축제가 열리고 있다.그 중, 산페르민축제는 매년 7월 6일 정오부터 7월 14일 자정까지 열린다. 3세기 말 팜플로나의 주교였고 도시의 수호 성자인 산 페르민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매일 아침 8시에 반복하는 소몰이이다. 오후에 열릴 투우에 쓰일 소들이 투우장까지 거리를 질주하는데, 하루에 6마리의 소가 투우경기에 출전한다.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사육장에서 출발하여 투우장까지 825m가량 되는 길을 가는 데는 3분정도가 소요된다. 소몰이 시에는 여러 안전장치가 설치되며 소가 지나가는 길은 이중벽으로 막아놓는다. 이는, 흥분한 소들이 돌진할 때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해놓은 안전장치로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바로 눈앞에서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소들을 생생하고 안전하게 구경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 기간에는 시민들이 소몰이 구경이 가능한 전망 좋은 발코니를 대여해 준다는 광고를 내걸기도 하며, 많은 음식점들은 이 축제를 위해 내부를 꾸며놓는다.이 축제 기간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일을 놓고 , 축제에 전념하며 길거리에서 드럼을 치거나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등의 다양한 형태로 참여하게 된다. 또 이 기간에는 모든 사람이 흰 색옷에 빨간색 스카프를 매는 전통의상을 갖추어 입는데,관광객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복장은 관광객과 그 지역시민들이 하나가 되도록 돕는다. 소들이 지나간 뒤, 사람들은 거리 이곳저곳의 작은 공연을 즐기거나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 하이라이트인 거인인형 퍼레이드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리아우 리아우'라는 거인인형들의 퍼레이드는 사람들이 큰 인형탈을 쓴 채로 걸어가면서 가끔씩 들고 있는 솜뭉치로 어른아이, 관광객 할 것 없이 사정없이 때리며 장난요하다. 이 축제가 열리고 있는 스페인의 팜플로나는 스페인 북동쪽 피레네 산맥 기슭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써 평소에는 매우 조용한 도시이나, 이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정열과 활기가 넘쳐흐르는 도시로 탈바꿈 한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지역주민의 참여가 적극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그 지역의 축제분위기를 띄우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며, 이는 타 지역의 관광객들에게 매력요인으로써 작용되어 함께 축제를 즐기고 싶어 하는 욕구를 자극하게 된다.둘째, 통일된 축제 의상의 착용이다.이 축제 기간에는 시민을 비롯한 관광객 모두가 흰 옷에 빨간 스카프를 매는 통일된 의상을 함께 착용한다. 이러한 행위는 지역민과 관광객에게 친밀감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모두가 하나라는 통일된 사고를 형성해 주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관광객에게 진짜 스페인의 팜플로나 지역민이 되어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이와 같은 심리적 반응은 관광객이 일상생활을 벗어나 다른 문화를 느끼고 체험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줌으로써 한 번 참여한 관광객이라 할지라도 다시 불러오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셋째, 사상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사실, '소몰이'가 진행될 때 많은 남자들이 소를 따라 뛰거나 앞서 뛴다. 이러한 행위는 흥분한 소에 대해 자신들의 용기를 시험하는 것으로 남성들의 남성성과 용감함을 상징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이런 행위는 소들을 더욱 흥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산페르민 축제 전에 팜플로나에서는 이중으로 된 안전장치를 소들이 뛰어가는 거리와 인도 사이에 설치하여 관광객들의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이러한 안전장치가 만약 조금이라도 부실하게 설치되었다면 많은 사상자를 내었을 것이고 이 축제는 아마 최고의 사상자를 기록한 축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한 축제에서 현재까지 사망자가 총 14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앞에 대우의 일례로 정월 들어 첫 번째 맞는 축일을 소날이라 하여, 이 날은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고 쇠죽에 콩을 많이 넣어 소를 잘 먹였다. 원래 소싸움이란 구전으로 전해져 오기를 신라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소싸움은 이 땅에 농경문화가 정착한 시대에 목동들이 망중한을 즐기기 위한 즉흥적인 놀이로 시작되었다. 점차 그 규모가 확산되어 부락단위로 번져 서로의 명예를 걸고 가세 또는 족세과시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이 후 보통 추석날에 소싸움을 벌였는데, 싸움 날 아침이 되면 소 주인은 소를 깨끗이 씻어준 뒤 여러 가지 천으로 꼰 고삐를 메우고, 소머리에는 각색의 아름다운 헝겊 장식을, 목에는 큰 방울을 달아준다. 순서에 따라 도감이 호명하면 주인이 소를 끌고 들어온다. 이때 소와 소 사이에는 포장을 쳐서 가려두어 미리 싸우지 않도록 한다. 싸움에 이긴 소는 꽹과리 장단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는 주인을 따라 목에 오색 끈을 두르고 당당히 시내를 가로질러 승리의 시위 행렬을 벌였다.? 문헌상 1949년부터 시작일부 문헌에는 1949년부터 소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되어 있으나 1934년에 사용된 소싸움을 배경으로 한 우표를 볼 때 훨씬 이전에 소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소싸움에 대한 자료는 위암 장지연이 1909년에 '진양잡영' 12수를 발표하면서 소싸움의 내용을 담은 시가 10번~11번째의 시에서 발견되었다. 이 시를 통하여 "탕지의 투우가 실히 성하여 일천100명의 같은 무리들이 크게 충돌을 벌이면 그 등약하고 포효하는 모습이 진실로 일대 장관이더라"고 소싸움을 평했다.? 현재의 소싸움우리나라의 소싸움은 소가 한곳에 모여 풀을 뜯다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겨루게 되고, 소의 주인도 자기네 소가 이기도록 응원하던 것이 발전하여 사람이 보고 즐기는 소싸움으로 변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소의 크고 작음에 구애받지 않고 힘과 기술로 한판승부를 겨루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무게에 따라 갑, 을, 병으로 나누어 체급별로 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일단 있다.
5년 전, 내가 대학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시절 처음 독후감 과제의 책이 바로 이었다. 사실, 나는 이 책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들을 갖고 있다. 그것은 내가 이 책의 주인공에 대해 굉장히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상식적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행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했으며 자신의 행동에 잘못이 있다는 사실 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러한 부분들이 나를 이 책에서 멀어지게 했으며, 더 이상은 책을 읽고 싶지 않다고 느낄 정도로 분노와 불쾌감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 이후, 다시는 읽을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나는 예전의 기억에서 온 불쾌함과의 엄청난 신경전을 벌여야만 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나서 다시 읽게 된 은 예전에 내가 읽었던 그 책이 아니었다. 나의 오래전 기억들이 정말 제대로 형성된 것일 까 하는 의문마저 생길정도로 이 책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동안 내 기억 속에서 좋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던 ‘뫼르소’는 새로운 ‘뫼르소’가 되어 나의 마음 구석구석 파고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책에 줄까지 그어가며 그의 시선을 따라 책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다.‘도데체 왜 나는 예전에 읽었을 때 뫼르소를 지독히도 싫어했던 것일까?’ 에 대해 의아해 가며 책을 읽던 중 나는 깨달았다. 그가 살아온 방식과 내가 살아온 방식이 틀렸다는 점과 예전에 내가 이 책을 읽을 당시 나는 정서적으로 미성숙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에 한참 길들여져 나의 사고방식 자체가 너무나도 굳어져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내 입장에서만 그를 이해하고자 했었던 것이다. 프랑스인들이나 그들의 국민성, 더 나아가 그들의 문화를 접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프랑스인 뫼르소에게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책을 읽게 되었다.뫼르소는 북부아체 어디서부터 였을까? 어디서부터 그의 삶이 바뀌어 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시점을 바로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가 양로원으로 찾아갔었던 시점으로 보고 있다. 어머니의 별세는 그의 삶에 있어 사실상 직접적인 변화는 주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장례식 직후에 해변에 가 해수욕을 했고, 예전 사무실의 타이피스트였던 마리를 만나 코믹 영화를 보고 정사를 나누기 까지 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그에게 있어서는 이미 큰 영향을 미치는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표면상 그의 생활에는 큰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일상은 반복되어갔고, 그는 마리와의 첫 만남 이후로 사랑이냐고 묻는 것에 아니라고 대답하면서도 그녀와의 만남을 계속 지속해 나갔고, 아파트 이웃에 사는 건달 레이몽이 친구로 지내자고 하자는 말에 엉겁결에 그렇게 되어버린다. 그 일 이후로 그는 레이몽과 더욱 자주 만남을 갖게 되고, 결국 우발적으로 레이몽의 정부였던 여자의 오빠인 한 아랍인에게 총을 겨누어 죽이고 만다. 그리고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부터 뫼르소의 행동방식이 왜 나와 다른 것인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되었다.처음에 그는 감옥에 들어가고 처음으로 자신의 변호를 맡게 된 변호사를 만나게 된다.그의 변호사는 그에게 사전조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니의 장례식 때, 그가‘태연 했었다.’ 라는 증언이 있는 것이 재판을 불리하게 이끌 수 있다며 그에게 그날 그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했었다.’라고 말하라는 요구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건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딱 잘라 대답한다. 자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재판과는 관계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신의 주관대로 할 뿐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주장하여 결국은 그를 도우려는 변호사를 화나게 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그는 자신에게 아무리 유리한 처사가 된다 할지라도 상대방의 의견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되면 그에 따르기 보다는 오히려 자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 자신의 살인행위에 대해 후회하고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후회 한다기보다는 권태를 느끼고 있을 뿐이라는 대답을 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전부 드러내 놓았으며, 죽음을 앞두고 신부가 계속해서 하느님을 믿고 구원받으라고 끈질기게 찾아왔을 때조차도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뫼르소는 마리가 사랑 하냐고 묻는 물음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숨기거나 바꾸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마음 그대로를 표현하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그가 프랑스인의 기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인들은 매우 솔직하며 자기생각을 분명히 밝히려는 기질이 있으며,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양시론'을 매우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주 말다툼이 있으며,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할지라도 쉽게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경향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 책에 나온 인물들은 대부분-마리도 레이몽도 예심판사나 변호사, 그리고 신부-이 사실은 자신의 주관에 따라 뫼르소에게 어떠한 부분에 대해 끝까지 주장하고 있고 뫼르소는 그러한 부분들이 자신과는 다르기 때문에 끝까지 자신의 주관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우리나라사람들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보다는 우회하는 방법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언행-즉,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할 줄 아는 것까지도 포함한 언행-을 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말을 적어도 세 번은 생각해보고 말해라.’ 라는 부모님과 어른들의 지적을 많이 받아 왔는데, 그것은 사실상 내 마음에 있는 말이라 하더라도 바로 내뱉지 말고 여러 번 듣는 이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말하라는 것 이였으며 이렇게 유교적인 문화 아래에서 예절교육을 받고 자란 나로서는 뫼르소의 행동이 이상하게만 여겨졌던 것이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당시 나는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들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매우 피곤했었고 졸렸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고,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어머니가 죽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말을 뫼르소가 했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전에는 ‘어떻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피곤하고 졸린다고 할 수 있는 가?’ 라는 생각에 매우 분노 하며 그를 미워했으나, 지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사실,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면 누군들 피곤하고 지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뫼르소도 어머니를 매우 사랑했다. 하지만, 다른 일반인들과는 표현방식이나 사고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그가 어머니를 사랑 했던 것조차 부인되고 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뫼르소는 아랍인을 살인한 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어머니의 죽음에 너무 태연하게 반응하며 옳지 못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영혼도 없고 인간미도 없는 인간으로 매장되어 사형을 선고 받게 된다. 어떻게 하다가 어머니의 죽음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게 된 것일까?나는 그가 우리나라사람으로 태어났더라면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을 때, 검사 측에서는 증인으로 양로원 원장과 수위를 내세운다. 그들은 뫼르소의 살인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고 계획적인 것이었음을 뒷받침해주는 증언을 하기위해 나온 것으로 그것은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했던 행동들을 바탕으로 뫼르소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아무렇지 않으며 인격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나온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뫼르소는 수위의 증언을 듣고 나서 자신이 처음으로 죄인이었음을 느끼게 되는데 그들은 장례식 당시 뫼르소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세세히 관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뫼르소의 행동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수위는 직접 뫼르소에게 밀크커피를 타다 주기도 했고, 뫼르소가 어머니 앞에서 담배를 펴도 되는지 고민하다가 담배를 그에게 건네었을 때에도 아무 말 없이 그는 함문에 그 당시에는 자신이 하는 행동이 모두 ‘죄’가 될 수 있으며, 그 ‘죄’로 인하여 자신 또한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나는 이 부분-뫼르소가 그때서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다고 하는 부분-에서 가장 마음이 찡 했었다. 자신도 모르게 한참 실수를 하고 상대방이 그것에 대해 아무 말 없길래 이해하고 지나갔으리라고 생각했던 일이 어느 날, 다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두 다 ‘죄’가되어 돌아온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까?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그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이런 일을 당할 확률이 더욱 적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개인의 특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며 상대방을 관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내색하지 않고 그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하더라도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일에는 손수 나서지 않고 지나쳐버리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단체주의적 ? 가족주의적 성향이 강하며 유교적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개성보다는 한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규범양식을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의 잘못이나 불의에 대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지적하고 고쳐주는 성향이 강하다. 만약 그가 우리나라의 장례식장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였다면 주변에서 먼저 뫼르소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고쳐주려고 했을 것이며 뫼르소가 잘못을 깨닫도록 하여 ‘죄’를 저지르기 전에 그것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나는 뫼르소를 직접적인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뫼르소의 살인이 아니라 바로 프랑스사람들의 이러한 특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의 관찰과 추측만으로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매장시켜버린 개인주의 성향이 뫼르소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 이다. 이러한 면에서, 나는 상대방이 누구든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 자리에서 고쳐주고 알려주는 우리나라에서 커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들었다.
곡물 ·채소 가공하지 말고 통째로 먹어라식생활 통해 ‘음양의 균형’ 맞추는 ‘매크로바이오틱’, 국제 운동으로 자리 잡아 안티쿠킹(Anti-cooking)·오가닉푸드(OrganicFood)·슬로푸드(SlowFood)·매크로바이오틱(Macrobiotic)등 다양한 음식문화운동은 ‘과연 어떻게 먹어야 건강해질까’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서 비롯되었다.특히 일본의 사쿠라자와 유키카스(櫻澤如一·1893~1966)에 의해 제창된 건강 식이요법인 매크로바이오틱 운동은 1927년 일본에서 ‘식양회’(食養會)가 발족된 이래 점차 알려져 현재 미국을 비롯해 유럽·러시아에까지 지회가 조직돼 있는 국제적 음식문화운동으로 자리잡았다.매크로바이오틱의 기본 취지는 바른 식생활을 통해 음양의 균형을 맞추자는 것인데 존 레넌과 제인 폰다, 그리고 톰 크루즈나 마돈나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참여하면서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운동에 의하면 음양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동양 전래의 식양법(食養法)에 따라 바른 먹거리를 취하면 암·당뇨병·고혈압·비만·치매 등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해 생기는 갖가지 현대의 난치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가 된다고 한다. 도정하지 않은 곡물과 야채·콩류를 먹으면 다이어트·노화방지에 효과가 있고 특히 현대인의 환경병인 아토피 피부염의 근본적 치유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매크로바이오틱의 기본 식사법은 육식을 자제하고 유기농으로 길러진 곡류나 채소를 중심으로 먹는 것이다. 이때 곡류와 채소는 원칙적으로 자신이 사는 곳에서, 계절에 맞게 기른 것을 먹어야 한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원칙이 강조된다.이 개념은 우리의 몸과 환경은 결국 하나라는 노자의 자연사상과 음양 원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매크로바이오틱의 어원은 ‘불로장수, 장수하는 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일본·구미 지역에서는 동양적인 식사법을 지칭하는 말로 인식되고 있다.매크로바이오틱에서 말하는 또 하나의 원칙은 ‘일물전체’(一物全體)인데 어떤 음식이든 껍질이나 뿌리·잎 등 가능하면 버리는 부분 없이 잎등을 포함해 완전한 모습으로 있을 때 비로소 영양상으로 균형이 생기고 그렇게 먹었을 때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씨나 열매는 그대로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력으로 가득찬 음식물로 인정된다.이런 원칙 아래 곡물류는 가능한 한 도정이 덜 된 것이 좋고, 잎 채소라면 뿌리까지 먹는 것이 좋으며, 뿌리 채소일 경우에는 잎도 버리지 않고 먹어야 하며, 생선 역시 작은 생선일 경우에는 통째로 먹는 것이 좋다. 유기농 음식이 생산 농법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면 매크로바이오틱은 그뿐만 아니라 조리법·활용법까지 자연친화적일 때 음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완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미시적이고 분석적인 마이크로의 세계에서 출발한 현대 의학과 영양학은 많은 지식을 주었지만 동시에 편협한 인식체계로 인해 새로운 문제들을 낳았다. 동양 전래의 음양 원리에 의한 식양법 매크로바이오틱은 서양의 육식문명을 지양하고 곡류·채식 중심의 전통적 식생활로 회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슬로푸드 운동1) 슬로푸드 운동의 등장과 전개슬로푸드 운동은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대에서 비롯되었다. 이 운동의 시작은 198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이탈리아 로마에 진출하자 현재 슬로푸드 운동 회장인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와 그의 동료들이 맛을 표준화하고 전통음식을 소멸시키는 패스트푸드의 진출에 대항하여 식사, 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의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이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이 국제적인 운동이 되는 것은 1989년 파리의 코믹극장에서 슬로푸드 선언문이 채택되면서부터이다. 현제 슬로푸드는 전 세계 50개 국가에 6만 5천명의 유료회원을 가진 세계적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최근에 광우병이나 유전자 조작 식품 등이 현안이 되면서 회원 가입이 늘어나고 있고, 미국에서 슬로푸드 운동의 확산이 주목할 만하다.슬로푸드 운동은 본부와 개별국가에 있는 지부단위로 활동을 전개한다. 본부는 그 철학과 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해 행사와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행사 중 주요한 것으로는 포도주 컨벤션, 미각의 전당, 슬로푸드 시상대회 등이 있고, 장기프로젝트로는 미각의 방주, 슬로푸드 프래시디아(Praesidia), 포도의 유전자 조작 반대(anti-transgenic vines) 운동, 미각교육 등이 있다.현재 550여 개가 조직되어 있는 지부도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에서 지부는 역사, 문화, 음식의 측면에서 동질적인 지역의 목소리를 나타낸다. 모든 지부들은 지식, 미각, 즐거움을 위한, 대륙을 초월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지부 목표 중 일부를 소개하면, "즐거움을 누린다. 즐거움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지역의 전통 및 고품질의 상품을 장려한다. 슬로 철학을 널리 전파한다. 다른 지부를 방문하는 여행프로그램을 조직한다" 등이다. 지부에서 벌이는 행사는 매우 다양하다. 이 중 일부를 보면, 포도농장 방문 및 시음, 특정나라의 음식으로 된 저녁식사, 토론회, 칼로리 저녁식사, 시음 및 시식회, 생산자들과의 대화, 술과 음식 궁합 찾기,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간담회(음식구성의 역사, 식사습관, 요리의 역사적 발전 등), 특별 저녁식사(크리스마스 디너, 발렌타인 디너), 음악을 곁들인 식사, 와인 양조장 그룹 투어 및 시음, 슬로 생활 심포지엄 및 식사, 다른 지부의 방문여행; 상호이해의 증진, 가정음식 및 과일경연대회, 시음 워크숍, 초청특강 등이다.2) 슬로푸드 운동의 이념슬로푸드 운동이 지향하는 이념은 선언문, 지침, 슬로푸드 시상대회 등에서 볼 수 있다. 다음의 슬로푸드 선언문은 1989년 11월 9일 프랑스 파리의 코믹오페라에서 채택된 것으로 이 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준다."산업문명의 이름 하에 전개된 우리 세기는 처음으로 기계의 발명이 이루어졌고, 이후 기계를 생활모델로 삼고 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으며, 우리의 습관을 망가뜨리며, 우리 가정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우리로 하여금 패스트푸드를 먹도리 모두를 굴복시키고 있다.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에 상응하기 위해서 사람은 종이 소멸되는 위험에 처하기 전에 속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보편적인 어리석음인 빠른 생활에 반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물질적 만족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미 확인된 감각적 즐거움과 느리며 오래가는 기쁨을 적절하게 누리는 것은 효율성에 대한 흥분에 의해 잘못 이끌린 군중에게서 우리가 감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방어는 슬로푸드 식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역요리의 맛과 향을 다시 발견하고, 품위를 낮추는 패스트푸드를 추방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의 이름으로, 빠른 생활이 우리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환경과 경관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진취적인 해답은 슬로푸드이다.진정한 문화는 미각을 낮추기보다는 미각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는데는 경험, 지식, 프로젝트의 국제적인 교환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슬로푸드는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한다. 슬로푸드는 그것의 상징인 작은 달팽이와 함께 이 운동이 국제 운동으로 나아가는데 도울 능력을 갖춘 다수의 지지자를 필요로 한다."이 선언문에서는 현대문명을 속도전쟁으로 보고, 패스트푸드도 속도전쟁의 산물로 보고 있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는 속도에 대한 강조가 우리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고, 환경과 경관을 위협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을 추구해야 하며, 그 대안을 슬로푸드에서 찾고 있다.슬로푸드의 지침도 슬로푸드 운동이 추구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 지침은 다음과 같다.(1) 소멸위기에 처한 전통적인 음식, 식재, 와인 등을 지킨다.(2) 품질 좋은 재료를 제공하는 소생산자를 보호한다.(3) 어린아이들 및 소비자들에게 미각(taste)을 교육한다.이 지침을 보더라도 이 운동이 단순히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대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전통적인 음식을 유지, 보존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미래에 대비하여 적극적으로 소생산자를 보호하고, 아이들과 소비자들을이념은 슬로푸드 시상대회에 잘 나타나 있다. 작년(2000년도) 이탈리아의 볼로냐 그리고 금년(2001 년도) 포르투갈의 포르토에서 개최된 슬로푸드 시상대회의 수상자들의 업적을 보면, 전통적인 영농과 생활방식의 보존, 식물과 작물의 보존 등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영역은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유기농업이나 환경농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3) 슬로푸드 운동의 의의슬로푸드 운동은 앞에서 지적한 현대 음식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이 운동이 처음 문제삼은 패스트푸드 반대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패스트푸드가 계속 확산되고 있고 그 부정적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형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슬로푸드 운동의 패스트푸드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며 의미를 갖고 있다.슬로푸드 운동은 패스트푸드 반대에 그치지 않고, 현대음식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현대 음식은 그 식재를 산업화된 농업에 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산업화된 농업에 대한 대안을 추구한다. 슬로푸드 운동은 산업형 농업보다 전통적인 농업을 더 중시하고, 특히 거대 기업농보다는 소생산자의 보호에 역점을 두고 있다. 슬로푸드의 방주(ark) 프로그램, 슬로푸드 시상대회도 전통적 농업 및 소생산자를 보호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다음으로 현대음식은 탈 지역화 된 농업에서 생산된 식재를 이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데, 슬로푸드 운동은 탈 지역화 된 농업에 반대하고, 지역농업을 중시한다. 슬로푸드 운동이 지역 농업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지역농산물이어야 소비자가 그것을 알고, 또 음식을 알고 먹을 때 먹는 즐거움이 커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농업생산도 세계시장을 위한 생산보다는 그 지역주민을 위한 생산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각 지역의 역사, 각 지역의 조건과 특성, 각 지.
1. 프로슈머(영어: Prosumer) 또는 생산 소비자는 영어의 생산자(producer) 혹은 전문가(professional)에 소비자(consumer)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결합된 경우는 소비자이지만 제품 생산에 기여한다는 의미이며, 전문가와 소비자가 결합된 경우는 비전문가이지만 타 전문가의 분야에 기여한다는 의미이다. 프로슈머의 개념은 1972년 마셜 맥루언과 베링턴 네빗이 《현대를 이해한다》(Take Today)에서 "전기 기술의 발달로 소비자가 생산자가 될 수 있다"라는 말로 처음 등장했으나, "프로슈머"라는 단어는 1980년 앨빈 토플러가 《제3물결》에서 최초로 사용했다.프로슈머는 기존 소비자와는 달리 생산활동 일부에 직접 참여하는데, 이는 각종 셀프 서비스나, DIY(Do It Yourself)등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인터넷의 여러 사이트에서 자신이 새로 구매한 물건(특히 전자제품)의 장단점, 구매가격 등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비판함으로써 제품개발과 유통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지식과 정보를 생산,공유한다는 점에서 위키백과를 집필하는 사람들도 프로슈머라 할 수 있다.프로슈머의 등장을 촉진한 요소는 다음과 같다.? 전체적 소득 및 여가시간의 증대? 인터넷 등 통신 매체의 발달로 인한 정보 확보의 용이? 전기/전자 기술의 발달로 인한 각종 장비 가격의 하락: 기존에 전문가들만 사용할 수 있 었던 제품들의 보급화? 초기의 프로슈머들은 제품평가를 통해 생산과정에 의견을 반영하거나 타깃마케팅의 대상 이 되는 등의 간접이고 제한적인 영향력만을 행사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이들은 보다 직접적이고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때로는 불매운동이나 사이버시위 같은 과격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한다.프로슈머는 소비자의 의견을 생산자에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으로 평가받지만, 인터넷 메체의 특성상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무조건적인 안티(Anti)문화를 형성하기도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2. 1. 단순 프로슈머 : 단순히 소비하면서 일정량의 캐쉬백이나 마일리지를 받는 소비자 -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이에 해당됩니다.2.생산에 참여하는 프로슈머 : 신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기전에 미리 특정소비자들(상품평가단,베타테스터 등)에게 미리 경험해보게 해서 문제점이나 개선사항들을 반영하여 출시이러한 사전경험 행위를 통해서 수입을 받는 소비자3.유통에 참여하는 프로슈머 : 제품의 품질, 가격, 서비스에 만족한 소비자가 구전광고를 통해서 제품의 우수성과 혜택을 주위분들에게 알려줌으로써 그에 따른 유통마진의 일부를돌려받는 소비자. 광고,총판,도매,대형마트 등의 중간 유통단계를 축소시킴으로서불필요하게 지불되던 비용을 소비자들에게 노력순으로 나누어줌.3. 가전업체들이 불황 타개와 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프로슈머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로슈머란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소비자를 뜻하는 신조어. 미래 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만든 말로 알려져 있다. 소비자들도 이런 기회를 잘 이용하면 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다.청풍은 고객체험 프로그램으로 적잖은 효과를 봤다. 지난해 7월 공기청정기 신제품을 내놓을 때 인터넷으로 색깔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파스텔톤’이 1위로 나왔다. 이 색깔을 실제 상품에 적용한 결과, 파스텔톤 제품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이 회사는 지난달에는 인터넷 홈페이지(chungpung.com)를 통해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제안공모전’을 열었다. 한달만에 1000여건에 가까운 아이디어가 모여들었다. 청풍은 이 중에서 하반기 제품 개발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상당히 얻었다고 한다.좋은 아이디어를 낸 이들은 청풍의 각종 제품을 받게 된다.삼성전자는 지난 6월에 20~40대 주부 20명과 대학생 20명으로 구성된 ‘모니터링·아이디어 그룹’을 모집했다. 현재 이들은 현장조사와 아이디어 제안 등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광고·판촉 교육과 현장 실무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된다. 삼성전자가 모니터링 제도를 시행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는데. 지난해의 1기는 모두 54건의 아이디어를 내놨다. 삼성 노트북의 사이버모델인 캥거루가 화장실에서 신문 대신 노트북을 들고 있는 광고가 대표적이다.쿠쿠홈시스도인터넷홈페이지(www.cuckoo.co.kr)와쇼핑몰바이쿠쿠닷컴( www.buycuckoo.com)을 통해 고객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쿠쿠의 장점은 빠른 대응. 인터넷 홈페이지에 있는 ‘고객과의 만남 게시판’에 접수된 의견에는 24시간 이내에 회신을 하게 되어 있고, 내용은 즉각 해당팀에서 공유된다. 성과도 많았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입맛에 맞는 밥을 짓는 기능을 넣어달라’는 요구에 따라 쌀 불림과 가열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가변형 회로를 개발했다. ‘밥을 오래 둬도 밥맛이 변하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2중 오븐’을 개발해 조만간 내놓는다. 이 제품은 아랫목에 밥을 놓아두던 옛 사람들의 지혜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밥솥으로 지은 밥을 퍼 담아두면 사흘간 밥맛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한다.동양매직도 지난해부터 고객 모니터요원인 ‘매직패밀리’를 2000명씩 뽑고 있다. 이들의 역할은 완성품에 대한 보강조사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개발할 제품에 대한 제안과 신제품 평가, 경쟁사 제품 평가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의
'오래된 라다크의 예를 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이 책의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지 호지(Helena Norberg-Hodge)는 언어학자이며 작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 라다크프로젝트의 설립자이며 상임이사로서 활동 하고 있다.그녀는 티베트 고원과 고대문화의 고장 라다크에서 보낸 1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라다크사람들이 경제개발에 따라 자신의 전통적인 문화를 벗어 던지고 현대적인 모습들을 받아들임으로써 달라지는 모습들을 전통과 변화와 미래라는 3챕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라다크(Ladakh)'는 ‘라 다그스(La Dags)'라는 티베트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 뜻은 ‘산길의 땅’이라고 한다. 위치는 히말라야의 그늘에 가려있는 거대한 산맥들에 둘러싸인 고원지대에 있으며, 문화적인 측면에서 티베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어서 ‘리틀 티베트’라고도 불리 운다. 인도의 잠무와 카슈미르에 속하며 인도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또 이 지역은 계절적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은 비교적 긴 8개월이며 그동안 영하 40도에 이를 정도로 춥다. 1년 중 작물이 자라는 기간은 고작 4개월로 보리를 주식량으로 하고 콩, 순무, 살구나무, 호두나무 등 다양한 지역적 특색에 맞는 작물을 재배하고 살아간다. 가축은 경제활동의 중심적 역할이 되며, 노동력, 운송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털은 옷감으로, 젖은 식량으로 ,배설물은 연료로 쓰여 모든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로 양, 염소, 당나귀, 암소, 야크, 조 등 다양하다. 바로 이러한 모습들이 라다크의 과거를 거시적으로 바라 본 것이라 하겠다. 나는 처음에 라다크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반도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환경과는 너무나도 다른 지리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이 부분을 읽고 바로 머릿속에서 그들의 모습이 떠올려 지지는 않았다. 그저 고산지그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 했을 때, 라다크는 우리나라와 지리적 차원에서는 매우 다르지만 전통적인 문화 요소들은 유사한 것이 많다고 생각된다. 라다크에서는 일을 할 때 노래를 하는데, 수확할 때나 곡물을 쌓거나 빻을 때, 그리고 키질을 할 때 등 제각기 다른 노래를 부른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통 민요를 떠올리게 하는데 마을단위의 단체작업과 공동 작업을 많이 하고 함께 라는 유대감을 중시하는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고 볼 수 있었다. 또 라다크에는 파스푼(paspun)이라는 공동체 조직이 있었는데, 이는 4~12가구 정도를 한 단위로 농사일, 출산, 결혼, 장례 등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공동체 조직은 우리나라에도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두레’와 비슷한 형태라고 생각되었다. 이외에도 몇몇 사람들의 역할은 우리나라와 흡사한 역할을 가진 사람들로서 그려질 수 있는데, 우선 암치(amchi)라고 불리우는 사람이다. 암치는 한마을에 한 두 명 정도 있으며, 우리나라의 한의사와 마찬가지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천연약재를 가지고 환자를 고쳐주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은 암치는 이웃사람들 사이에서 환자의 성격이나 습관 같은 것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표정과 목소리 톤, 화를 내는 등의 여러 가지 행동특성들을 더 잘 관찰하고 병을 고친다. 이외에도 라다크에는 라바(lhaba)라고 불리는 샤먼과 온포(onpo)라고 불리는 점성가가 마을을 고친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무당이나 역술가와 사뭇 비슷해 보이는데, 불임을 고치거나 결혼을 앞둔 남녀의 궁합에서부터 집을 지을 자리, 파종시기 미 수확시작일등을 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 말고도 비슷한 점은 생활 곳곳에서 보인다. 예를 들면, 아이가 태어날 경우 외부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산모와 아이가 외부로부터 차단된 방에서 안정을 취함으로써 병으로 부터의 위험을 피한다든가,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물물교환으로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주고받는 등의 모습들이 우리나라의 과거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그런 와중에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가진 안정감, 평온함, 만족 이라는 정신적 풍요로움에 대해 부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쁜 일상에 항상 쫒기면서도 그렇지 못 할 경우에 스스로 불안감을 느끼고 마는 나의 모습을 집어 던지고 그들처럼 정신적 안정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다크의 전통사회에서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덜하다 할지라도 심리적인 부분에서는 모든 라다크인들이 부자로 보여 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것만 자연에서 가져가고 남겨둘 줄 아는 미덕이 있었으며, 소박한 자신들의 음식과 옷차림 그리고 그들 전통의 흙집을 사랑하고 만족할 줄 알았으며, 늑대가 어린송아지를 물어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송아지가 평온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생명을 존중하는 가운데서 침착함을 가지고 있었고, 느긋한 속도로 일을 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여가시간을 보내면서 시간에 대한 여유를 가질 줄도 알았다. 또 자신의 소유의 땅이 모든 가구에 있어 빈부격차가 거의 없으며, 신분차이는 있다고 할지라도 상호존중과 배려를 통해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었으며,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모두가 느껴 개인의 권리보다는 이웃과의 좋은 관계유지와 공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린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없는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베풀고 이야기하며 함께 했으며 그로써 정서적 유대감은 모든 계층과 나이에 상관없이 형성되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여성과 남성의 역할 차이는 존재할 지라도 일처다부제라는 결혼제도가 말해주고 있듯이 여성의 지위가 높은 편이 이였음은 물론이고 여성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언제나 활기차고 밝았다. 또 어린아이들은 어린나이부터 무조건적 사랑을 부모 및 친지들로부터 받고 자라며,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은 아무리 어린 나이라 하더라도 돌봄으로써 특별한 교육 없이도 책임의식이 길러졌다. 이러한 라다크 인들의 기쁨과 평화는 외부환경에 의해 좌우되지 않았고, 이러한 것은 깊숙한 라구조의 건설과 많은 관광객의 방문, 서구식 교육과 대중매체의 보급이라는 현대화 과정을 통하여 라다크의 전통문화와 정신적인 풍요는 점점 혼란을 겪게 된다. 2부에서는 1부의 전통적인 경험과는 달리 서구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변화과정을 담고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진심으로 많은 것을 느꼈으며, 현대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 볼 수 있었다.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나는 라다크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매우 동경하게 되면서 그들의 문화에 빠져들고 그와 동시에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왜 현대사회에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그 가치를 상실했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2부의 내용을 읽게 되면서 나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현대사회의 모습에 대한 실망감과 반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라다크 사람들의 가장 큰 재산이었던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빼앗아가고 그들에게서 물질적인 부족을 가져다 준 것은 바로 잘못된 현대화과정이었다고 보여 진다. 관광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됨과 동시에 서구문화의 영향력이 갑작스럽게 유입되고 그로인해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이 중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서구와 인도영화의 유입과 텔레비전의 보급과 같은 대중매체였다. 이러한 대중매체는 라다크의 젊은이들에게 저항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서구사회의 화려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물질적 측면에 현혹되게 만들었다. 그로써 그들은 자신의 문화를 부끄러워하게 되었고, 새로운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치중하게 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들어온 서구식 교육은 1970년대 처음 라다크에 들어온 이래로 계속 확산되어 현재 200여개의 학교에서 유럽중심의 모델에 기초한 고유의 환경을 무시하고 똑같은 자원을 이용하라고 가르침으로써 그들이 가지지 못한 자원에 대해 심리적으로 더욱 가난을 느끼게 하게 되었으며, ‘서양의 것들이 우월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현대식 교육은 라다크의 어린이들에게 관광객들에게 살구를 쥐식 교육은 더 나아가 젊은 층과 노년층이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정서적 거리를 벌려 놓았고, 상업적 활동과 경제적 활동을 주로 다루는 교과목을 통해 농부를 무시하고, 여성이 가정에서 행하는 일의 가치를 빼앗고 그들의 지위를 낮추어 버렸다. 이제 그들은 일처다부제를 부끄럽게 여기며, 핵가족을 지향하고 이웃과 자신의 것들을 나누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얻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또 서구식 교육은 도시지역에서 일을 위한 것이고 모든 일자리가 도시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도시로 이끌게 되면서 결국 의식주 생활의 자급자족이란 존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서로 더 이상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으며, 유대감 또한 상실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무기력해지고, 수동적인 생활태도와 불안감, 그리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따뜻함과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이러한 문제들의 깊숙한 곳에는 서구사회의 화려한 부분의 이미지만을 보고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다가 잃어버린 자신의 고유문화와 정체성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사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현대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들의 화려한 문화와 편리한 생활방식만을 보고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내가 올해 2개월 동안 필리핀에서 지내고 있을 때, 나는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체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었다. 그들은 이미 너무 많은 부분에서 서구화되는 과정에 있었고 그들이 가진 큰 빈부격차는 그러한 사실을 너무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미군이 버리고 간 지프차를 개조하여 만든 지프니와 수많은 선진국에서 들여왔을 중고차들이 뿜는 매연들은 필리핀 국민의 대부분을 천식환자로 만들고 있었으며, 일회용품의 무자비한 사용과 농약의 무분별한 사용, 원산지조차 알 수 없는 음식들은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길거리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가난한 아이들은 피부색이 조금만이라도 다른 관광객들을 보기가 무섭게 달려들어 ‘Give me m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