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뒤르케임의 다소 보수적인 성향이 학부 입학시절부터 줄곧 관심대상이었지만 내용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 먼발치에서 책 제목들만 구경하였다. 그러나 평소에 책을 왠만해서는 절대 안사던 나도 이번을 계기로 마음을 먹고 '직업윤리와 시민도덕'을 구입하였다. 책을 읽다보니 처음에는 역시 난해하였으나 차차 읽다보니 내용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이해가 되기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이해일뿐 나의 이야기로 풀어내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다. 더구나 이 내용을 요약한다는 것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보다도 더 험난해 보였다. 하지만 핵심내용을 중심으로 간략히 요약해본다면 의미전달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시민도덕편을 보며 이제껏 단순한 개념정도로 파악했던 국가나 민주주의를 뒤르케임을 통해 보다 논리적으로 바라보게되었다. 또한 특히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뒤르케임의 대안과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책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보고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을 살펴보겠다.뒤르케임(1857~1917)은 인간의 사회문제를 파악하는데 있어 생물학적 해석이나 심리학적 해석을 거부한채 사회구조적 요인을 중시하였다. 이에따라 사회적 실재를 개인에 두지 않고 집단에 두었으며, 사회적 사실을 개인적 사실로 환원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그의 사후에 출간된 '직업윤리와 시민도덕'에 역시 잘 드러나있다. 이 책은 그의 3회에 걸친 '직업윤리'에 관한 강의록과 '시민도덕'에 관한 15회의 강의를 묶어 발간한 것으로 뒤르케임의 미발표 강의록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사회적 질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직업집단'을 대안으로 제시한 그의 견해를 살펴볼 수 있었다.뒤르케임은 먼저 국가의 정의에 대해서 논하였다. 그는 국가를 정의하기 이전에 '정치적'이라는 것에 대해 먼저 정의하고자 하였다. '정치적'이라는 것은 확립된 권위를 뜻하는 것이며 개인은 이에 종속된다. 그러나 이는 분명 가족, 부족사회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전체와 부분은 동시에 조직화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전체는 부분을 전제하고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 부분이 전체를 전제하고 형성되는 것이 아닌 서로 상호의존적으로 서로를 조건지운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개념들의 정리에 따라 국가는 주권적 권위의 대행자로, 정치사회는 국가를 최고기관으로 하는 복합적 집단으로 정의내린다.다음으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한다. 뒤르켐은 여기서 개인주의의 발전정도는 과학기술이나 철학의 발전으로 평가할 수 없으며 또한 이론이 아닌 개개인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발전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다. 그리고 국가는 개인을 풍족하게 하지만 종속시키기 때문에 모순이 일어나지만, 개인의 권리가 천부적인 권리가 아닌 국가의 산물이기 때문에 서로 상호보완될 수 있다고 바라본다. 국가의 활동 본질은 개인을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가 강할수록 개인은 더욱 존중된다. 즉, 국가는 권리의 현실을 창조하고 조직하고 만드는 것이며, 개인은 국가를 통해서만 개인주의가 가능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사회가 커질수록 개인의 권리는 더욱 향상되지만, 그 한계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뒤르케임이 바라본 그 한계는 사회가 커질수록 등장하는 부분적인 집단들, 즉 이차적 집단들이 특수지역적, 직업적으로 개인을 억압시킬때 개인은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그리고 뒤르케임은 애국주의에 대해서 얘기한다. 여기서 뒤르켐은 천부적 권리라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이는 인위적인 과잉 단순화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의 권리에 기초하는 것은 사회가 이 권리를 실천하고, 바라보고, 평가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자율성은 상대적이며, 이는 사회의 정신상태, 즉 공론의 상태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뒤르케임은 국가가 본질상 개인주의적이며, 개인의 권리와 자율성을 위해 노력하기는 하지만 이는 각각의 개인이 아닌 개인일반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아가 종교적 숭배를 대체하는 숭배가 모든 사회생활의 정신과 의주의를 부정하며 진정한 세계주의의 발현을 위해 각 국가내부의 도덕적 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애국주의를 그 한부분으로 본다.마지막으로 민주주의에 대해서 말한다. 이 부분은 뒤르켐이 자신의 생각을 총집약해놓은 것이다. 뒤르켐은 우선 민주주의에 대해 다른 정치사회와 구분을 명확하게 하고자 시도한다. 민주주의는 귀족제, 군주제, 전제와 통치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에 따라 구별될 수 없다. 또한 부족적이라고 부르는 구조와 일치하다고 말하지만 이것 또한 국가가 사회적 사고의 기관이며, 민주주의는 분산된 집합적 대중 이외에도 중앙집중화 되어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옳지 않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대중 전체를 통해 스스로를 통치하는 사회의 정치적 형태라고 한다면 용어상 모순이라고 한다. 그 까닭은 마치 집단속에서 고도의 명료화를 통해 존재하는 국가가 없는 정치사회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늘속에 놓여진 대중을 문명화된 정신의 소유자들이 빛을 가지고 사회 심층을 관통하면서 비판에 대해 넓게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변화를 함께 수반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는 심의와 반성을 통한 고도로 명료화된 통치의식에 의해 더욱 더 유연한 변화를 수반하고 이것이 대중과 소통을 하며 확대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각 정치사회의 특징은 소통의 농담에 따라서 구분될 뿐이다.그렇다면 정치사회에서 나타나는 두가지, 통치의식과 대중적 의식, 특징이 민주주의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지 살펴보아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민주주의는 발견된 것도 부활한 것도 아닌 명확한 사고의 소통에 대한 농담의 차이에 있을 뿐이다. 심의와 반성과 비판정신이 공무과정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면 할수록 국민은 더 민주적이 되고, 공론이 지배하면 덜 민주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민주적이라는 것은 봉건제와 군주제를 통해 준비되어 왔으며 진보했다. 이 진보는 사회의 범주가 점점 복합성이 증대될수록 더 많은 반성이 요구되고, 유동성이 커짐에 따라 이루어졌다. 따단이 된다는 것은 그가 굴복해야할 필연성을 이해한다는 것이며 그에 따른 충분한 지식을 갖고 필연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즉, 법칙을 내면화 시키면서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하여 스스로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가와 시민이라는 사회구조의 양 당사자 사이의 조화가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조화라는 것이 국가가 단순히 시민의 '다수'의 의견을 좇거나 시민들에게 예속되고 그 의지를 반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이 양자가 어떤 중간자적 존재 없이 직접적인 관계에 있을때면 문제가 생긴다. 국가가 개인을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개인이 국가를 마음대로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표자를 뽑는 선거에 있어서도 문제가 드러난다. 대중의 표만을 의식한 대표자가 얼마나 현명하게 통치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때문에 두 개 이상의 단계를 거쳐 투표를 해야한다는 주장이 있어왔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그렇다면 민주주의에 필요한 중간자적 존재, 이차적 집단으로 나타나는 지역적 집단과 직업집단을 살펴보겠다. 이차적 집단이라는 것은 국가와 개인사이에 서로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어떤 저항집단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이 이차적 집단의 가장 기초적 형태는 지역적 집단이다.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지역적 집단이 의회라는 이름으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지역적 분할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은 어쩌면 우연히 머무르게 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속력을 쉽게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직업집단이 강조된다. 우리의 이해관심은 지역의 행정경계를 훨씬 벗어난 개인의 직업에 따른 이해관계이기 때문이다. 직업집단에 따른 정치집단은 놀라운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예견한다. 우선 집단의 특징상 독립성이 보장되면서도 이해관계에 의해서 집단간의 소통은 전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선발할 때 그 대표자는 각 집단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으로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대 모든 것은 민주주의가 전적으로 시민들의 의지를 통해 법률과 투표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기에 그에 따른 시민도덕의 필요성이 요구되며 각 조건들이 요구되는 것이다.지금까지 뒤르켐이 얘기하는 바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를 오늘날 한국의 상황에 대입해보면 어떻게 될까. 먼저 오늘날 한국의 애국주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한국은 애국심은 타 국가에 비해 실로 엄청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2002년 월드컵의 시청앞에 모인 많은 시민들, 각국을 순회공연하는 우리의 사물놀이패 등을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인의 모습은 실로 애국에서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가를 지키기 위해 의무적인 국방의 의무를 당당하게 수행하는 대다수의 젊은이의 모습에서 아직 한국은 애국의 정신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면에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에 이민, 취업하기를 희망하며 군을 면제받으려 하고, 한국적인 것 보다 서구적인 것을 더욱 가치있게 평가한다는 점, 그리고 이 모든 부분이 사회에서 특수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닌 전반에 걸쳐서 고루 형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혀 애국적이지 못하다. 또한 해외로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는 것 마저도 자체적으로 싸구려라는 인식이 상존해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국가적 활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로 향하는 국가적 활동마저도 반짝 효과에 그칠뿐 해외에 한국 문화원을 설치한다던지, 해외기업, 주외대사관 등에 한국적인 것을 홍보한다는 등의 활동은 전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앞서다고 규정되는 선진문물이 하루속히 우리의 내면화 되기를 원한다. 때문에 이는 곧 국가적 활동이 내부로 향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 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부모의 세대는 암울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어디에서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불렀던 것을 기억한다. 또한 잊혀져있던 수많은 위인들이 위인전을 통해 숭배화되어 나타났던 것을 기억한다. 때문에 당시의 부름이다.
서 문과제를 처음 접할때만 하더라도 단순히 조선시대 교육을 보고 오늘날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해나가야 한다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내 생각이 한없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조선시대교육 마저도 오늘날의 교육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또한 수업시간에 배운바와 같이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음은 나로써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가만히 되돌이켜보니 우리가 중.고등학교때 국사수업을 통해 배웠던 과거의 교육모습에 대해서 아무도 바람직한 교육모습이었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즉,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 거짓을 말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우리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대중매체를 통해 당연한 과거의 교육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는 위인전의 역할 또한 매우 크다. 위인전에서 나오는 선비, 양반들의 모습은 언제나 공부만을 하며 과거공부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책을 섭렵한다. 물론 위인들은 진정 그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인전 역시 다른 일반적인 대중의 공부모습에 대해서 보여주지 않은 것 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과거의 공부모습을 오해, 왜곡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과거의 공부모습을 사실 그대로를 알게되었으니 그때와 다르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통해 그 당시의 모습은 어떠하였으며,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과거의 공부모습과거공부과 과거의 공부모습은 의미전달에 있어서는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동일한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사실 책에서는 과거공부의 모습에 대해서 주로 말하고 있지만 실은 과거의 공부모습이 과거공부였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에 여기서는 과거의 공부모습이라고 포괄적으로 우선 나타내보았다. 그렇다면 먼저 과거시험 자체의 모습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고, 과거시험을 공부하던 모습을 살펴보며, 그 문제점이 무엇인은 단순히 벼슬이나 부때문이 아니었으며 그 시대의 인간의 조건이었기 때문이었음을 실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인간의 조건이란 현 가문을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이야 했고, '학생'이라는 호칭을 없애야 했으며, 합격시에 동네방네 축제를 여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소위 SKY 대학에 합격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에도 집안이 대대로 SKY 대학ㅡ이는 특히 특정한 한 대학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ㅡ출신일 경우 그 자식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더 좋은 특수한 대학이나, 약간 떨어지는 학교를 합격한다고 하더라도 재수나 삼수를 통해 결국 과를 떠나서 최소한 간판이라도 얻어내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어쩌면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의 합격유무는 오늘날 SKY대학의 합격유무보다는 훨씬 더 중요했으리라 생각된다.그렇게 중요한 과거시험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조선시대의 학생들은 보통 사서오경 뿐만이 아니라 각종 서적을 열심히 공부하였을 것이라고 믿고있다. 하지만 당시 중국과 비교하였을때 우리의 경제사정이 그렇게 좋지 않아 종이가 귀하고 또한 서적이 매우 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그 당연한 사서오경조차 매우 드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모습에서 학생들이 읽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초집'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과거 예상문제 및 답안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은 이를 과거를 보기전에 모범답안을 달달 외움으로써 운이 좋아 과거에 동일한 문제가 출제되면 합격할 수 있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과거의 공부모습을 동경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우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공교육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는 흔히 과거의 서당의 모습을 상상하고 또한 성균관이라는 최고학부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이는 허상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서당의 모습은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인 국학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잘사는 명문가의 차이가 생겨난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앞에서 제시한 바와같이 서적의 품귀현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서적이 없다보니 공부할 수 있는 자료라고는 초집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초집이 중국과 달리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은 어떠한 차이로 인한것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별시의 시행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중국에도 별시가 존재했지만 중국에서는 대체로 별시를 시행하지 않고 3년에 한번씩 실시하는 식년시를 고집함으로써 과거응시 가능횟수를 줄이고 별시보다 난이도가 높다보니 초집과 같은 요행이 통할 수 없었다. 반면 조선의 경우에는 거의 매년마다 간략히 실시되는 별시를 실시하다보니 시험응시 가능횟수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았고, 간략한 한두차례의 시험으로 합격여부가 좌우되다보니 그에따라 요행을 바라는 행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즉 과거공부의 방법을 파행적으로 이끈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은 바로 별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기능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쉽게 별시를 없애지 못하였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서적이 귀하다보니 초집을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시험에 있어서는 서적을 가지고 있는 재력있는 집안에서만 공부가 가능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대부분이 가난한 유생들이었기 때문에 중국과 같이 몇십년간 학업에만 매달리게 될 경우 경제생활이 더욱 피폐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조선에서 별시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과거를 응시하지 못하는 유생들이 많은 수를 형성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한 유생들은 국가의 상당한 불만세력으로 잠재되어있다가 어느순간에는 표출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에서는 쉽게 별시를 없애지 못하였고, 또한 따라서 초집도 없앨 수 없었던 것이다.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앞에서 과거제도를 살펴보며 우리는 오늘날의 교육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과거와 오늘날의 공통점은 사회적으로 배운사람을 높게 대접한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나 학생부와 같은 그나마 공정한 기준을 중시하고 인정하는 풍토에서, 그리고 '학력'을 중시하고 그것에 목숨을 거는 이 풍토에서 추천제 입학은 많은 물의를 야기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선행으로 추천을 받았다면 그 추천받은 학생이 남보다 더 선행을 많이한다는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이는 교장, 교사들이 촌지를 학부모에게 받는 사건이 종종 회자됨에 따라 기본적으로 우리의 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교사들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기도 한 문제이다.대표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해결방안은 과연 있는 것일까? 사실 과거제도가 처음 시행된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방법을 쓴다고 하더라도 이같은 현상을 피할 수 없는 것일까.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에 그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학력 위주의 사회이다. 이는 능력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무엇보다 그 근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학력이라는 것이 우수한 인재들이 취득하는 것이고 우수한 인재들이 취득한 학력에 따른 실력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낮은 학력을 소유한 인재들이 취득하는 실력에 비해 객관적으로 인정받기 쉽고, 또한 학력내부에서의 경쟁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학벌위주의 사회라는 것이 국가관료 및 기업에 까지 뿌리깊게 자리매김하고 있어 학력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가장 근본적인 대책으로 대학의 공립화를 주장한다. 이는 어쩌면 매우 개념이 없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사립대학교의 문제에 있어서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대학의 공립화만이 우리나라 교육의 단 하나 남아있는 근본적 해결방법이라는 것이라는 것에는 확신이 있다.다만 그 방법에 있어서 많은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으로서 내세울 수 있는 방법은 지역별로 단위를 나누고 . 만약 재단에서 세금을 걷지 못한다면 그것은 대다수의 국민에게 세금으로 부담지워질테니 사학재단의 비순수성을 폭로하고 국민투표를 해서라도 시행해야 할 것이다.이 제도가 안고있는 문제점은 사실 매우 많다. 그 중 몇가지를 지적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겠다. 우선 현재 각 대학이 전공만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다른 전공을 동시에 배우고자 하는 학생 또한 많다는 것이다. 물론 각 대학은 그 대학이 필요로 하는 교양과목들을 가르치고자 하며, 학생들 또한 지루한 전공과목보다 교양과목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지역내의 학교에서 모든과목을 들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옮겨다니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겠지만 이는 시간표의 배분이 종합적으로 요일별로 적절히 고려되어 작성된다면 해결 될 수 있다. 오히려 다양한 캠퍼스를 느낄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될지도 모르겠다. 또다른 문제점으로는 전체적 수준의 학력저하의 문제이다. 오늘날 학력위주의 풍토가 많은 부작용을 낳는 것은 사실이지만 높은 수준의 지식(타국가와 비교했을때)이 형성되는 것은 사실이며, 과거시험이 없으면 공부자체를 하지않았던 조선시대와 같이 학력을 취득하는데 대한 어려움을 느끼지 않음으로써 별다른 노력없이도 학력을 취득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때문에 이는 전체적인 학력저하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지원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대학입학정원을 고등학생의 70%정도로 정하고 이에 대한 학생부성적의 자격요건을 '학력고사'-뒤에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전과목 모두 50점 이상 평균 65점 이상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봉사활동, 영어능력평가 등의 점수제 도입을 자격제로 바꾸어서 봉사활동 50시간 이상, 토익 700점 이상 등으로 단지 자격만을 부여하는 것이다. 다만 그 자격을 의도적으로 높게 잡아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만약 이러한 제도가 실시된다고 한다면 서울로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오거나 혹은 문이다.
감독 소개 - 미야자키 하야오미야자키 하야오는 1941년 1월 5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비행기 회사에서 공장장으로 일하고 있었던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때 이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심했으나 단지 기교만을 배우기 위해 미술학교에 진학하기 싫었던 그는 학습원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일본산업론을 전공했다. 미야자끼는 대학 재학시절 만화에 뜻을 두고 만화연재를 시작했는데, 그것을 실은 매체는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인 아카하타였고, 이라는 제목의 SF와 마르크스주의를 결합시킨 만화였다.1963년 대학 졸업 뒤에는 도에이 동화에 입사해 애니메이터가 되는데, 입사이유는 "미제국주의 디즈니에 대항하는 애니메이션을 일본에서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연수를 마친 뒤부터 , 등의 작품에서 동화를 맡았다. 이즈음 소련의 장편 애니메이션 을 보게 되고 자신의 길에 확신을 얻는다. 그곳에서 미야자끼는 주도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서기장이 되었고, 당시 부위원장이었던 다카하타 이사오를 만나는데, 그뒤 둘은 평생 창작의 동지로서 함께 하게 된다.그 시절 미야자끼는 사상과 철학, 사회주의에 식견이 깊은 다카하타의 영향을 받으며, 다카하타가 감독을 맡게 된 라는 장편 만화영화의 제작에 주제작진으로 참여하여 그 무렵 상업 만화영화로서는 획기적인 여러 실험들을 한다. 그러나 너무 왕성했던 열정과 회사와 마찰로 말미암아 제작이 지연되었고, 결국 흥행에서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은 기존의 만화영화에서 볼수 없었던 인간 내면 심리의 묘사, 군중 드라마, 일반 민중 생활상의 자세한 묘사 들이 훌륭했으며, 나중의 '지브리' 작품들의 원형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부터 미야자키 만화 영화들을 관통하는 이상주의적 주제,사실적 표현기법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권력과 폭력에 맞서는 이상적 사회건설의 희망을 읽을 수 있다.1971년에 다카하타와 함께 A프로덕션으로 옮긴 뒤인 1978년에 TV 애니메이션 을 통해 연출자로 데뷔를 하였으며,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연출 데뷔는 5년 오랫동안 자신의 작화 감독으로 일해온 콘도 요시후미를 < 귀를 기울이면>을 통해 감독 데뷔시켰다. 과 함께 자신의 단편을 상영한 미야자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알려진 를 97년 여름에 개봉하였다.는 미야자키가 5년만에 내놓은 마지막 작품이다. 구상기간 16년, 제작기간 3년, 작화 장수만도 14만 4천장등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새로운 기록을 수립하였다. 1997년 의 대히트에 이은 은퇴선언과 그후 4년만의 재기작인 (2001)으로 제52회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의 영예에도 불구하고 재차 은퇴를 선언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을 다시 번복하여 스스로 감독을 맡기로 하였다. 그리고 현재 2004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제작하고 있다.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속의 특징미야자키하야오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악역들이 미워할 수 없는 정다운 악역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상적인 현실세계의 가치 관으로서의 그들의 직 업은 약탈자 이며 범죄자이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만큼은 정다운 악역이다.꿈과 환상이 살아있는 작품하늘과 구름 그리고 커다란 나무 이 세가지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등 장하는 부분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잃어버린 동심에 대한 자연의 향수라고도 할 수 있는 이것들을 다른 감독들의 작품에는 찾아볼 수 없 는 꿈과 환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등장 인물 분석1아시타카 : 에미시 왕가의 혈통으로 용맹과 지혜를 겸비한 소년이다. 월령공주에서 약간은 사건과 동떨어져 관망하는 면모를 보이고 있지만, 어느날 까닭없이 마을을 습격한 재앙신을 물리치는 도중 재앙신의 저주를 받음으로써 줄거리의 발단을 마련하는 인물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재앙신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그의 여정에 따라 이뤄진다. 그는 자연과 인간문명 사이에 어느정도 가교/중재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둘 사이에서의 갈등을 보여주는 주인공이다. 하지만 작품에서(쉬쉬카미의 밤 모습)의 목을 손에 넣는데 성공하지만 아시타카와 산에 의해 결국 사슴신의 목은 되돌려 주게된다. 이 인물은 중간에서 이득을 얻으려는 기회주의자, 그리고 자신의 야심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음흉함을 상징하지만 그 모습 또한 인간의 필연적인 다른 모습이라고 평가한다.5쉬쉬카미(디다라 봇지) : 생명을 주기도 하고 뺏기도 하는 숲의 신이다. 달과 함께 태어나달이 기울면 죽고 다시 달이 차면 다시 태어난다. 이는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달은 그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황폐화되는 자연은 그 놀라운 생명력에 의해 다시 소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자연은 생명의 시작이요, 끝이며 순환하고 계속되는 것이다. 낮과 밤의 다름 모습은 이러한 생명력의 확대와 은폐(인간에 의해)를 상징하는 것같다. 쉬쉬카미는 자칫 개념화/추상화할 수 있는 자연의 구체적인 실체로 등장시킴으로써 에보시, 지코와의 대립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6모로노 키미 / 옥코토누쉬 : 모로노 키미는 300살 된 늙은 암캐이다. 매우 현명하고 힘도 세다. 산을 길렀으며 산을 딸처럼 생각한다. 쉬쉬카미의 근위병 역할을 하며 어느 정도 온건하고 이성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에보시에게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에서 옥코토누쉬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할 수 있다. 옥코토누쉬는 500년 된 멧돼지로 멧돼지 정령들의 리더이다. 인간들에 대해 앞을 가리지 않는 강경한 모습을 보인다. 이로 인해 들개의 정령들과 약간의 대립이 있다. 내용 분석1. 무로마치 시대산과 숲은 신이 사는 성지이다라고하는 사고방식이 성립된 시기2. 재앙신 등장 1) 아시타카는 막으려 하지만 마을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죽임재앙신을 죽이며 저주받음.2) 재앙신의 마지막 말 역겨운 인간들이여 나의 고통과 회한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현재 인간이 자연에 얼마나 엄청난 고통과 회한을 안겨주고 있는가를 초반부에 제시한다3) 저주신의 등장과 또 저주를 풀기위해 서쪽으로 감- 흐림없는 눈 으로 세상을 보라고 함.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줌2) 다타라 마을의 정체- 다타라(제철장) 마을은 철을 만들기 위해 많은 양의 나무가 필요한 곳이다. 즉 생업을 위해 자연을 해쳐야만 하는 곳이다.3) 여자가 남자에게 대들고, 족장인 에보시를 비롯한 여자들이 남자들을 상대로 웃음- 여자의 위치가 남성에 못지않음4) 이곳의 족장인 에보시는 여성으로 여성들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제철소의 힘든일을 시키고 또한 장애인(문둥이)들 또한 보살피며 총을 만드는 기술직을 시킨다.- 바로 현대산업사회의 모습을 왜곡없이 상징적으로 드러낸다.7. 이 곳에서 멧돼지가 재앙신이 된 이유를 알게됨.8. 아시타카는 에보시를 자연을 해치고 신을 해친데 대해서 증오를 나타내며 해치려 하지만 그곳의 병자가 에보시 덕분에 이곳에서 병자들도 남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한다고 함- 현대사회의 자연파괴라는 단점이 있지만 반대로 남녀평등, 장애인 고용 등 장점도 많으므로 일방적인 자연파괴에 대한 비판만을 할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음9. 산에 사는 숭숭이(원숭이)들은 나무를 언제나 심는다.- 자연은 스스로 복구하려는 의지가 있으나 인간들의 훼손이 더 큼에보시는 사슴신의 피가 환자들을 치료해준다고 믿음.- 자연에 대한 맹목적 기대, 믿음, 무한한 요구10. 아시타카가 여자들이 일하는 곳에 들렀을 때여자들이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하며, 이 곳 생활이 고생스럽지만 산아랫동네보다는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남자들이 큰소리를 치지않아서 좋다고 한다.- 남녀평등으로 여권신장이 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줌. 현대사회의 장점11. 1) 원령공주의 마을침입2) 원령공주와 에보시와의 싸움에서 아시타카는 분노하며 저주의 힘으로 둘을 기절시킨다.- 에보시의 자연에 대한 정복욕에 대한 분노와 원령공주(자연)에게 절대적 불리한 싸움이었기에 살리고 싶은 마음12. 아시타카를 마을사람들이 막음- 관료주의의 모습 : 이들이 총에 맞은 아시타카와 기절한 원령공주를 살려주고 보살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위의 명령이 없다는 이유로, 당신을 적으로 삼지만 저주를 풀어주지는 않는다.- 생명을 주고 저주를 풀지않음으로써 평생 저주를 안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라는 의미, 반면 아직 할일이 많이 남았음을 의미하기도함16. 이때 멧돼지들이 인간을 죽이고 숲을 지키러 나타남재앙신(나고의 대장)의 죽음 밝힘17. 에보시의 전쟁 승리 - 인간들에게 역시 강력한 정복욕을 보임지코와 사슴신의 목을 훔칠 계획 - 지코 : 현실인정, 돈,권력에 충실에보시의 당부 무서운 것은 도깨비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의 욕심이 그 어떤 것보다 무서운 것이다.18. 모로와 아시타카의 대화모로에게 들린다는 멧돼지들로 황폐해진 숲의 비명소리- 인간 뿐만 아니라 어떤 동물이든 자연을 해칠 수 있다.아시타카는 원령공주는 인간이니 풀어달라고 하지만 모로는 그것이 인간다운 멋대로의 생각이라 말함- 인간은 모로가 무서워서 원령공주를 내버렸는데, 이제와서 인간이니 인간세상으로 데려가려하니 너무 이기주의적이다.아시타카는 떠나며 원령공주에게 정표를 남긴다.- 인간의 모습(남자와 여자), 원령공주의 인간의 모습19. 멧돼지와 인간의 전쟁이 일어남 - 비참한 패배20. 아시타카가 모든 것이 끝난 전장에 도착모로족(들개) 하나가 멧돼지에 깔려 있는 것을 보고 살리려 하자 인간들은 두려워하며 없애려한다. 그러나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마을을 구해줄 것이라 하자 살리는데 도와줌.- 이해관계가 얽히자 도와주는 인간의 모습21. 멧돼지 대장 옷꼬또누시 가 피흘리며 원령공주와 사슴신에게 가고있음멧돼지 덮어쓴 인간 옷꼬또누시 이용함. 결국 재앙신으로 변함- 인간은 죽음 직전의 동물들까지 철저히 이용함22. 모로가 옷꼬또누시에게서 원령공주를 구출하려함. 그러나 사슴신이 나타나자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아시타카에게 도움을 요청함- 재앙에 파묻혀있는 자연속의 인간을 대자연이 구출해내려 하지만 역부족, 결국 인간 스스로 구해야함.23. 에보시는 사슴신에게 총을 쏜다. 그러나 죽지 않고 오히려 웃음.- 뒤에 사슴신이 머리를 잃고, 쓰러지지만 그것 또한 죽지 않는 것이라는 복선사슴신은 옷는거야
영화 The Mission 에서 나타난 구조와 행위의 모습나는 원래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에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고, 게다가 원주민을 선교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렸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이 영화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다. 과거의 선교는 지배하기위한 수단으로써 존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분명 서구중심적으로 그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나에겐 너무나 불편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기독교적 입장에서 서구중심적 시각에 국한되는 영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를 보며 내가 선입견 속에 갇혀있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영화 전체에 흐르는 구조에 따라 행위자들이 억압을 받으며 투쟁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화를 영화한 이 영화의 간단히 줄거리 요약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브라질과 파라과이의 국경선 부근의 폭포 위에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과라니족이 있다. 당시 남이의 스페인과 포르투갈령의 식민지에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던 예수교의 선교사가 그곳에서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이후 책임을 지고 파견된 가브리엘 신부는 이들을 개화시키는데 점차 성공을 거둔다. 또한 노예상인이던 멘도자가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괴로워할 때 가브리엘 신부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하며 과라니족의 선교에 동참시킨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을때 1750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오랜 국경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마드리드 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으로 인해 과라니족의 마을은 노예거래를 법적으로나마 제한하는 스페인령에서 법적제제가 아예없는 포르투갈령으로 편입된다. 때문에 가브리엘, 멘도자 신부 등은 추기경을 설득시키며 막아보지만 결국 두 신부는 서로 다른형태로 포르투갈 군대에 대항하다가 모두 전멸당한다.앞에서 언급했듯이 영화의 전반에는 서구중심적인 시각이 원주민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기존 원주민들의 생활양식과 일명 개화된 생활양식을 관객으로 하여금 비교하게끔 하면서 개화된 생활양식을 아름답게 바라보도록 강요하는 듯 했다. 배경음악의 설정이 그러하였고, 짐승들이 인간처럼 살아간다는 대화내용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제국주의적인 식민지 건설 시대에 상대주의적 관점이 반영되지 않은 입장에서 정복자의 위치에서 식민지의 원주민을 바라본다면 누구나 원주민을 개화가 덜 된 노예정도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복자들의 시각은 개개의 것이 모여 원주민을 억압하는 구조가 되어있었다. 이를테면 원주민을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바라보며 이들에 대한 사냥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자신들과 같은 형태의 문명을 이루어야만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그나마 어느정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개개의 시각을 넘어선 암묵적이든 공개적이든 하나의 거대한 구조적 시각이 되어있었다.하지만 영화속에서 이러한 구조를 극복하려는 예수교 신부들의 행위는 높이 살만하다. 예수교 신부들은 원주민들을 평등하게 같은 사람으로 바라보고 선교하며 함께 일을 하고, 식민지배층에게 원주민이 짐승, 노예가 아니라 신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인간임을 보여주려 했다. 즉 서구중심적인 구조에서 지배층의 부류가 앞장서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 했다. 이것은 특히 추기경과 스페인, 포르투칼 총독, 예수교의 선교사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때 명확히 드러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총독은 과라니족의 한 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짐승이기에 소리는 낼 수 있는 것이라 하고, 가브리엘 신부는 모두 같은 영혼을 가진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자기 자식을 죽이는 원주민에 대해 인간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짓이라 비난하자 역시 가브리엘 신부는 노예사냥에서 도망치기 위해 두명만을 낳으며 세명째부터는 죽이는 것이라 대변한다. 즉, 이는 원주민들만의 합리성을 이해하고 불합리하게 억압된 구조에서 해방시켜주려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예수교의 한계는 존재한다. 원주민들의 합리성을 이해하고 선천적인 평등함을 바라보았을 뿐 예수교의 시각에서도 원주민은 개화가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단지 추기경을 어느정도 설득시켰을 뿐 양국의 총독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다. 당시 유럽의 종교혁명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예수교의 지위가 많이 약해졌을 뿐만 아니라 각 국가의 중상주의 정책으로 기독교의 본래 정신인 평등주의는 의미를 잃고 오직 국가과 개인의 이득만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스페인 령의 브라질 배후지에서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는데다가 남미에서 국가가 올리는 수입보다 교회가 올리는 수입이 더욱 많았기에 양국은 남미에서 교회를 없애고 전도사의 수를 줄이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실제로 9년뒤인 1759년 브라질에서 예수교가 추방된다.(전남대학교 http://altair.chonnam.ac.kr/%7Egeoedu/www/data/brazil/history1.htm)때문에 양국은 마드리드 조약을 체결했던 것이고 예수교는 형식적으로 추기경을 파견하여 의견을 수렴하려 한 것이다. 이같은 각 국가를 지배하고 있던 정책과 인종주의 적인 편견이 형성한 인식이 서구의 거대한 구조로서 단 하나의 조약으로 나타났고, 이 거대한 양국간의 합의인 마드리드 조약에 맞서 예수교의 가브리엘 신부와 멘도자 신부의 노력은 이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기에 그들의 노력은 실패로 끝이난다.그러나 가브리엘 신부와 멘도자 신부는 이처럼 조약이 내포하는 구조에 맞서 실패하게되고, 때문에 자신들의 선교회가 포르투갈 군대에 의해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들은 예수교에 맞서게 된다. 예수교 신부들의 가장 중요한 교리가 바로 복종 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교의 선교회 철수명령을 무시한채 선교회를 끝까지 지키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과 함께한 과라니 부족의 선량한 사람들이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자신들과는 달리 그곳에 남아 포르투갈 군대의 침략을 받아 죽음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가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두명의 태도는 각기 다르다. 가브리엘 신부는 그나마 예수교의 명령에 어느정도 복종하며 다만 함께 사라지겠다는 입장을 취하는 반면, 과거 노예상인이었고 과라니부족에게 구원을 받은 멘도자 신부는 조약과 예수교의 명령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직접 투쟁을 하는 입장을 취한다. 물론 이들의 노력은 어떤 형태였던간에 죽음으로서 나타난다. 이들이 예수교의 교리로서 나타난 복종 의 항목을 거역한 것에 대해서는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교리로 드러난 구조를 거부함으로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기에 실패라고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사랑과 평화를 전하는 것이 The Mission' 이지만 당시 악으로 대변되는 서구의 구조적 강압속에서 그것이 성공한다는 것은 어쩌면 Misson Impossible' 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원래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에는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고, 게다가 원주민을 선교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렸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이 영화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다. 과거의 선교는 지배하기위한 수단으로써 존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본 영화는 이런 내가 너무 선입견에 갇혀있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영화는 기대이상으로 재미가 있었고, 또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점을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보고 싶다.첫째, 선교에 성공하여 원주민들이 서구문명을 받아들인 것이 과연 정의이며 사랑인가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내가 이 영화를 보기전에 가졌던 선입견과도 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눈에 거슬렸던 부분이다. 영화는 기존 원주민들의 생활양식과 일명 개화된 생활양식을 관객으로 하여금 비교하게끔 하면서 개화된 생활양식을 아름답게 바라보도록 강요하는 듯 했다. 배경음악의 설정이 그러하였고, 짐승들이 인간처럼 살아간다는 대화내용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영화 자체를 비판하고자 함은 물론 아니다. 시대적 배경이 제국주의적인 식민지 건설의 시대였고, 식민지에서 원주민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려먹는 일이 비일비재 했던 것이니 당시로써는 당연한 시각고, 영화는 단지 그것을 보여준 것임은 알 수 있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사람들의 태도가 옳았냐는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예수교가 그들을 평등하게 같은 사람으로 바라보고 선교하며 함께 일을 하고, 식민지배층에게 원주민은 짐승,노예가 아니라 신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인간임을 보여주려한 부분은 당시로써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을 것 같다. 이러한 예수교의 모습은 나에게 역시 기존에 생각했던 선교,정복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안겨주었다. 영화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가브리엘이나 멘도자 등의 선교활동, 사상은 나에게 감명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예수교의 모습에서도 한계가 있었다고 보여졌다. 분명 성 카를로스 교회는 원주민과 동화된 상태에서의 예수교의 모습을 보여주어 이상적으로 보여졌으나 이들 서구사람들의 생각에 강한 바탕이 되는 서양제일주의적인 모습은 약간 아쉬웠다. 선교사들도 마찬가지로 원주민의 삶이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깝게 보여졌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삶의 양식이 훨씬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선교라는 뜻이 구원의 의미라면, 그 구원은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 동시에 서구의 이상적인 문명에 동화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추기경의 우리중 누구도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인디언들 입장에서는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는 말을 통해 이제까지의 불편함을 없앨 수 있었다. 분명 성 카를로스 교회는 자연과 동화된 문명형태였고, 기존사회에 바탕을 둔 서양문화의 유입이었으나 한 소녀의 싸늘한 시선이 말해주듯 그것이 결코 그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보다 나은 것이라고는 누구도 말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서구의 종교를 배우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문명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어느 누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무조건적인 학대와 학살로 인한 정복보다는 선교를 통해 그들을 유입하는 것이 보다 평화적이기에 정복의 방법에 있어서는 보다 바람직한 방법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일제시대의 문화정책과 마찬가지로 본래 원주민들의 정신을 말살시켜버린다는 관점에서 더욱 잔인한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두 번째로 인간의 탐욕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인간의 자비는 또 얼마나 한없을 수 있는 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초반에 멘도자가 자신의 동생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뺏겼음에 분노하여 결국 결투에 의해 약간은 비겁하게 죽인다.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자신의 동생에 대한 질투심에 의해 결국 친동생마저 죽음에 이르게 한 행동은 마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처럼 인간의 욕심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란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멘도자의 원주민 사냥과 포획한 원주민의 노예거래는 과연 인간을 얼마나 우습게 볼 수 있는 가에 대해 느끼게 해주었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짐승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탐욕을 더욱 무섭게 보여주는 부분은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교회를 없애버린 것이다.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각자의 영토를 한정짓는 마드리드 조약을 체결한다. 서로의 영토분쟁을 막는다는 것 뿐만 아니라, 남미에 퍼져있는 전도사들을 철수시켜 기독교의 세력을 줄이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남미에서 국가보다 교회가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기에 국가로써는 교회를 없앰으로써 자신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예수교는 유럽에서 당시 종교개혁으로 힘을 잃으면서 포르투칼에서 추방될 위기에 처해졌고, 때문에 예수교는 파라니강 연안에 있는 교회들을 폐쇄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국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간의 예수교의 선교가 너무나 무색할 정도로 잔혹하고 처참하게 공격하고, 불태워버린다. 또한 원주민들이 선교되어 하느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간이 아니라는 것으로 부인하는 무신론자가 배후조종하는 포르투칼 식민지로 편입시킨다. 성 카를로스 교회의 원주민인 과라니족들이 추기경과 가브리엘 신부에게 화내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배신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정글에서 살다가 예수교의 선교로 정글에서 나와 하느님을 믿으며 나름대로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탐욕에 눈이 먼 지배자들에 의해 선교활동이 중단되고 포르투칼의 식민지로 편입되어버렸다는 것은 그들이 합법적인 노예사냥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이 과라니족들은 지배자의 편의에 따라 모두 말살되고 말았다. 권력을 가진 인간의 탐욕 때문에 피지배자가 거리낌없이 제거되는 횡포는 정말 반인륜적이면서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느끼게 해 주었다. 반면 멘도자가 자신의 동생을 죽인 후 죄책감에 휩싸여 있을때 가브리엘 신부는 그에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인도한다. 그 어느 누가 노예사냥꾼이며 친동생마저 살해한 자에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멘도자는 가브리엘 신부의 인도에 의해 회개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이 사냥했던 과라니 족에게 가면서 스스로 온갖 고난을 겪는다. 결국 과라니족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 과라니족은 처음에는 경계하지만 이내 함께 웃어버린다. 자신들을 사냥감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죄를 뉘우치겠다고 찾아왔을 때 우리도 그렇게 쉽게 용서해줄 수 있을까? 아직도 일본을 쪽바리라고 부르며, 한.일전에서 패배하면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는 한국인에게는 그렇게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과라니족은 멘도자를 용서했고, 그 역시 열심히 그들을 도움으로써 씻을 수 없던 죄를 씻고 결국 신부가 되었다. 만약 과라니족의 크나큰 관용이 없었다면 멘도자는 또다시 좌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를 통해 인간의 탐욕과 자비라는 극적으로 대조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권선징악의 교훈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악이 승리하고 선이 패배하는 모습은 이 시대에 빛과 구원을, 사랑과 평화를 전하는 것이 'The Mission'이라면, 어두움과 죄악이, 미움과 폭력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것은 어쩌면'Mission Impossible'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