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론 >Ⅰ. 케인즈 경제학모든 사회 사상이 그렇듯 경제 이론도 시대적 산물이다. 고전학파 경제 사상이 생산성 향상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했던 것과 같이 케인즈 경제학도 세계 대공황이라는 절대 절명의 실업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대를 그 배경으로 하고 태어났다. 그리고 그 시대 상황이 변함에 따라 불황 극복의 경제 이론으로 그토록 명성을 날리던 케인지안 경제학도 한 순간 그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경제 현안이 다시금 생산성 문제로 복귀했다.)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가 폭발적으로 확장함에 따라 주식시장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주식자를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장하였다. 1929년 10월말 역사상 최고의 호경기를 구가하였던 뉴욕 주식시장의 붕괴는 미국경제를 파탄에 빠뜨렸고, 나아가서 세계경제를 와해시켰다. 1차대전 동안 미국의 경제가 폭발적으로 확장함에 따라 주식시장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주식투자를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장하였다.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케인즈 경제학은 누군가가 “불황의 경제학” 이라 부른 적도 있듯이, 1930년대의 세계적인 대불황을 배경으로 탄생하였다. 1929년 가을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에서의 대폭락을 발단으로 하여 지구상에는 수천만의 실업자가 생겨났다. 대부분의 공장이 조업을 정지하는 등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불황의 시대를 맞이하였다.이와 같은 자본주의체제의 위기를 어떻게 해서라도 회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공산주의세력은 착실하게 힘을 키워 나가면서 자본주의 붕괴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공황이 존재할 수 없었다. 공업화는 급속한 템포로 진행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새로운 사회체제는 언젠가는 자본주의에 대한 두려운 경쟁상대로까지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자비하고 많은 희생이 따르는 공산주의적 정책만큼은 채택하고 싶지 않았고 그 결함을 효과적으로 시정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했다. 그는 고전학파 모델 중에 중요한 몇몇 가정은 필요 없거나 단지 특수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가정이어서 고전학파의 이론은 특수 이론이고 그런 가정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자신의 이론은 일반 이론이라고 했다.)이렇게 새로운 가정 아래 케인즈가 제시한 정책은 기존의 고전학파 정통 이론가들이 제시한 정책과는 근본에서부터 대립되는 정책이었다. 고전학파 모델에서는 단지 생산 함수와 노동 시장에서의 균형만으로 총생산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총생산은 총수요에 따라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케인즈의 새로운 모델에서는 경제가 침체되어 과잉 생산 설비를 갖고 있을 때에는 총수요가 늘면 산출량도 바로 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침체기에 총수요를 늘일 수만 있으면 총생산까지 늘이는 것이 가능해진다.영국을 비롯하여 많은 나라의 경제학자들과 경제에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정치가들은 총수요를 늘여 고용을 늘이고 생산량도 늘이자고 하는 케인즈의 경기 처방책을 크게 환영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스스로가 고용을 늘이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통화량을 늘인다든가 경비 지출을 늘여 총수요를 늘이는 일을 하고 싶어 했고 오로지 그것이 그 당시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성 있는 유효한 실업 해결책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그 후 케인즈의 경제 정책에 근거하여 실업 퇴치라는 명분 하에 댐 건설을 비롯한 이와 유사한 거대한 공공 투자 사업이 세계 각국에서 실시되었다.) 그리고 이런 정책들은 즉각적으로 효력을 발휘했다.이렇게 해서 케인즈 경제 이론은 1930년대의 실업 문제 해결에 혁혁한 전공을 거두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최강국이 된 미국을 선두로 자유 진영의 모든 국가에서 경제 정책 수립에 케인즈 이론을 본격적으로 도입했고, 그 효과로 세계 경제는 장기 성장을 계속했다. 때문에 적어도 2차 대전 후 1970년대 초까지 케인지안 이론은 소위 황금기를 맞고 있었다. 이때 케인지안 모델은 경제학에서 유일한 거시 경제 모델이었다. 1970년대 초에 심지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우리는 지금 모의 수급에 의해서 이자율이 결정되고 그것이 자본수익룰과 더불어 투자규모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이자율이 비싸면 아무리 투자수익이 높다 해도 투자는 못하므로 투자수익과 이자율의 상관관계에서 투자의 규모가 결정되며, 이것이 고용수준과 소득수준을 결정한다. 따라서 화폐는 중립적이 아니고 능동적이므로 경제의 규모를 결정한다.넷째, 케인즈 이전에는 단순히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을 두었으나. 그는 고용수준의 안정적 균형을 최고의 관심사로 삼았다. 모든 경제행위는 궁극적으로 사람이 잘 살기 위한 것이므로 생산과 소비의 균형 자체는 별로 의미가 없으며, 인간이 잘 살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갖고 있어야 하며 모든 생산시설이 완전 가동되어야 하므로 고용이 제일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고용수준의 안정을 최고의 정책목표로 삼았고 수요, 공급의 균형이 반드시 완전고용수준과 일치하라는 없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즉 불완전고용하에서도 재화시장의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고용시장의 균형과 재화시장의 균형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과감하게 이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다섯째, 계측이 가능한 변수들을 주관심사로 삼았기 때문에 국민소득계정과 계량경제학의 발전에 자극을 주었다. 이전에는 추상적 변수로써 이론을 전개하였으므로 실제로 검증할 수 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고전학파의 장점은 수요, 공급곡선을 그래프화 시키면서 사라졌다. 공급곡선은 가격에 비례해서 증가되고 소비는 감소한다는 사실은 구체화하는 데 어려움이 많으며 시장가격과 수급량의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에 비해서 케인즈의 변수들 즉 국민소득수준, 화폐개량, 이자율 등은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리계량경제학이 꽃을 피우게 되고 또한 그것은 케인즈 경제학과 동일시하게 되었다.여섯째, 힉스에 의해 불황의 경제학 이라고 명명된 케인즈 경제학은 시장 만능주의를 주장하는 세이의 법칙을 부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케인즈는 말더스와 마르크스와 같이 경기 침체를 유효 수요 부족으로그래서 현실의 가격과 이자율이 자동조절 기능을 다하지 못해 균형 가격이나 균형 이자율보다 높거나 낮아 만성적으로 수급 불일치 현상이 생긴다고 보았다.특히 노동시장의 기능에 대해서는 두 학파의 이론에 큰 차이가 있다. 고전학파에서는 실질 임금이 오르내리면서 노동 수급은 항상 일치하게 된다 주장한다. 그러므로 실업은 항상 자발적 실업일 뿐이었다. 그러나 케인즈 이론에서는 화폐 임금은 언제나 하방 경직적이므로 실질 임금에 의한 노동 수급 조절 기능은 상당 부분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성적인 비자발적 실업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런 시장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케인즈는 정부 개입을 당연시했지만 고전학파는 시장의 조절 기능을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만을 정부가 해야 한다고 보았다.이외에도 이자율의 움직임을 케인즈는 화폐적 현상으로 본 반면 고전학파 이론가들은 실물적 현상으로 보았다. 한편 케인즈는 저축이 소득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보았고, 투자는 이자율의 높낮이에 의해 그 크기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정 인자가 서로 다른 이 저축과 투자는 균형 소득이 결정될 때라야 일치하게 되고 그 외에는 보통 불균형 상태로 남게 된다고 이해했다. 그러나 고전학파 이론가들은 저축을 대부 자금 시장에서의 공급으로 보고 투자를 그 수요로 보아 모두 이자율의 함수로 간주했다. 따라서 수요와 공급의 크기가 변하면 그에 따라 이자율이 오르내리며 변할 뿐 수급은 언제나 일치하게 되는 것으로 파악했다.2) 고전파 비판케인즈는 ‘고전파’를 다만 리카도와 그의 직접적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리카도 경제학과 이론을 채택하고 선호한’ 학자들을 총칭하였다.케인즈 이론과 고전학파 이론의 차이를 정리하여 보기로 하자. 고전학파의 모델에서는 세이의 법칙이 대변하듯 수요는 공급의 종속 변수에 불과했다. 고전학파 이론가들이 공급을 중시한 것은 그 당시 심각한 생산성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등장한 케인즈 이론은 공급이 수요의 종속변수였다. 스로 수요를 창출한다.” 라는 판로의 법칙을 내세워 경제의 일반적인 불균등이 만성화할 가능성을 부정하였다. 이러한 세이의 법칙에 대해서는 일찍이 맬더스. 홉슨, 마르크스 등에 의한 비판이 있었고, 또 저축, 투자의 균등론에서 슘페터, 한 등의 비판이 있었지만 리카도, 밀 등의 고전파 주류에 있어서는 대체로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이론의 전제로 되어 왔다. 케인즈는 저축 또는 그 이면의 소비는 이자율에 의하여 규제되는 것이 아니라 소득수준에 의하여 규제되는 반면에 투자는 자본의 한계효율과 이자율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저축. 투자가 각각 다른 요인에 의하여 규제된다면 저축과 투자가 반드시 균등해야 할 필연적인 보장은 없는 것이다. 사실 저축. 투자의 균등은 고전파와 케인즈에 있어서 전연 별개의 역할을 한다. 고전파에 있어서 그것은 이자율의 결정을 가져오지만 케인즈에 있어서는 국민소득수준의 결정을 가져온다.넷째, 케인즈의 고전파 비판의 또 하나의 대상은 화폐수량설이다. 화폐수량설은 소박한 형태로 전개된 이후 고전학파와 신고전학파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화폐이론의 주요한 유산으로 인정되어 왔고, 20세기에 들어서 피셔에 의하여 가장 체계적으로 정립된 이론이다. 이 이론의 근본 특징은 MV = PT ( M:통화량, V:화폐의 유통속도, P:물가수준, T:총 거래량)이라는 항등식으로 물가수준 또는 화폐가치의 변화원인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인데, 단기 또는 정상 상태 하 에서는 V와 T는 비교적 안정적인 것이므로 물가수준을 움직이는 요인은 주로 통화량의 변화에 기인하다는 것이다.고전파 경제학은 재화의 가치결정의 문제를 주축으로 하는 것이었고, 모든 재화의 교환가치의 체계는 수급균형의 원리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화폐가치의 결정을 논할 때는 수급균형의 원리는 사라지고 화폐가치는 M, V, T등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전연 별개의 원리가 등장한다. 케인즈는 이 점을 비판하여 가격의 이론과 화폐의 이론이 두 개의 이론적 차원 위에 양립할 것이 했다.
Ⅰ. 중상주의 시대의 배경(1) 중상주의의 시대적, 역사적 배경중상주의란 유럽 중세적 봉건사회의 말기에 발생하여 특히, 15세기 중엽부터18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에서 지배적이었던 경제정책 및 그에 관련하는 여러 사상의 총칭이다.이 시기에는 기독교도들이 십자군원정으로 동서문명이 상호 교류하게 되었으며 항해술의 발달, 신대륙의 발견, 인도항로의 발견 및 금광의 발견과 채굴 등은 내외경제를 발전시켰다. 이에 따라 화폐의 중요성이 인식되었으며 자본의 축적으로 새로운 산업이 발생?발전하게 됨으로써 중세까지 지배하여 왔던 지방적인 지배력만으로는 불충분하여 통일적인 지배력이 요구되었다.그리하여 유럽 및 신대륙, 유럽 대 동양간의 무역을 발달시키는 크나큰 계기가 마련되어 연안무역의 영역으로부터 원양무역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유럽의 일부 국가는 대외무역의 힘을 경주하였다. 따라서 대외무역에 의하여 금?은 등 귀금속과 재화가 막대하게 유입됨에 따라 봉건제도와 중세적 도시국가는 드디어 붕괴되었고, 한편, 중앙집권적 국가의 지도하에서 화폐를 중심으로 한 개방적인 교환경제가 확립되었다.또 이로 말미암아 일 국이 타국에 대한 무역정책과 태도를 수립할 필요가 생겼으며, 바로 여기에서 중상주의라고 하는 최초의 상업정책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아래 그 당시의 경제사상은 어디까지나 금?은 등의 귀금속을 중요시하고, 이것을 획득하기 위해서 상권을 확대하여 그 방법으로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장려하는 일련의 보호 간접적 무역정책에 편중하고 있었다는 점에 특색이 있으며, 그 당시의 학자들이 이것을 이론적으로 전개하려고 노력하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①중상주의의 경제학적 배경중상주의는 절대군주의 국가적 시대에 자본의 성립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자본의 본원적 축적(원시적 자본축적)의 시기로써 경제사적으로 근대 자본제 사회의 성립기이다. 또한 화폐의 경제가 발전함으로써 자본 축적과 함께 새로운 산업이 함께 일어났다.②중상주의의 사상적 배경문예부흥운동인 르네상스와 함께 종교개혁이 일어남으 증대는 외국무역의 번영에 의해 또한 그 정도에 따라 일어난다는 것과 외국무역을 매개로 하는 국민의 부를 증대하기 위하여서 국가는 각종의 강력한 보호와 통제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아담 스미스의 해석은 그 후의 중상주의의 해석에 대해 하나의 초석을 제공하였으며 이러한 좁은 의미의 해석에 대해 중상주의의 본질은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착안되어 양자의 결합에 있다고 하는 넓은 의미의 해석이 나타났다. 슈롤러와 벳혀는 이러한 의견을 따르고 있다.슈몰러는 그의 논문 "중상주의와 그 역사적 의의"에서 '중상주의는 그 진수에 있어서는 국가건설이다. 국가건설이라는 것은 동시에 국민경제의 건설이다. 그 본질은 결코 화폐 증가라든가 무역 차액 학설 속에서나 관세장벽 보호관세 및 항해조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 및 그 조직 국가 및 그 제도를 전면적으로 변혁하는 것, 지방적?영역적 경제정책에 대신하는 국가적, 국민적 정책을 가지고 행하는 곳에 있다'라고 진술함으로써 근대국가에 있어서의 정치적, 경제적 측면의 평행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요컨대 넓은 의미의 해석은 중상주의를 16세기 이후의 근세적 국가성립기에 있어서의 국가주의적 경제상상 및 경제 정책으로 총칭하고 있다. 중상주의는 일반적으로 근세의 서유럽의 본원적 자본 축적기에 있어서의 경제정책체제 및 그것의 기초를 형성하는 경제사상 내지 경제이론 체계라고 주장된다.(3) 중상주의 의의13세기경부터 18세기에 이르는 그 사이에 행해진 경제상의 정책이나 논조를 총괄하여 사람들은 이것을 '중상주의'라 부른다. 결코 중상주의는 하나의 계통적인 논술도 아니며 또한 개인 혹은 어떤 학파의 손에 의해 창작된 것도 아니다. 다만 수세기에 걸쳐서 행해진 무수한 경제적 시책, 이것을 설명하는 또한 옹호하는 수많은 논의와 저술의 집적으로 인정하는 경향에 지나지 않는다.중상주의의 시초는 이미 13세기에 있어서라고 인정된다. 그러나 소위 중상주의시대는 중세의 붕괴로부터 '자유방임주의'가 성하였던 때까지이다. 소위 초기자본주의 시대, 무역차액론으로 완성되었다.④ 산업론 : 중상주의자들의 공업에 관한 견해는 둘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무역차 액론의 공업적 성격과 결부하여 공업을 적극적으로 육성. 장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과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2) 중상주의 경제정책중상주의의 거시경제이론에 대한 기여는 지대하다. 그들은 인간의 경제활동의 기본적 동기는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욕구라고 믿었다. 가격은 시장에서 경제적 활동에 의해 결정되어지고 이러한 가격형성의 원인 등은 연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의 의지와는 독립된 자연법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다. 비록 중상주의자들의 가격이론이 논리적일 관성의 발전은 없었지만 자유경쟁은 공정가격을 형성하고 이런 한 사회에서는 만약 개인이 이익을 취한다면 유리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더군다나 순 생산의 본질은 오직 농업이며 세금의 부담은 결국 토지라는 단일한 담세 라고 결론지었다.중상주의자들은 경제 안에서 많은 중요한 것들 중에서도 다양한 요소들의 활동을 통합하는 가격의 기능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마치 통찰력 있는 중상주의자들처럼 그들은 시장 경제에서 독립적으로 일하는 한 개인은 실제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사실과 그 근본적 원인은 바로 가격이라는 매커니즘에 의해 통합되어진다고 인식했다.그들의 미시적 분석은 상세함이 결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자유경쟁은 자원의 최적배분의 결과라는 논쟁에 대해 상세한 부연설명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과 가격의 상호 연관된 기능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이 언급은 후대 아담 스미스에 의해 인용되었다. 그들은 중상주의와 다르게 시장에서 인위적인 조정이나 규제 없이 인간의 의도하는 바 이상의 우월한 자연의 명령과 역할을 믿었듯이 경제에서 정부의 적절한 역할이라는 것은 자유방임정책을 따르는 것을 주장하여 아담 스미스와 후대의 경제학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서구문명사사의 커다란 원칙으로 남아있다.중농주의자들은 경제발전의 근본적 장애는 외국과의 무역에서 규제를 가의 대외확장에 크게 기여한 것이 동인도회사였다. 동인도회사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특허장을 받아 설립되었는데. 1615년 이 회사는 인도와 인도양의 섬, 인도네시아, 일본 등에 20여 개에 달하는 무역기지를 확보했고, 1628년에는 페르시아와 봄베이에 진출하였다. 영국은 1629년 북아메리카의 퀘백, 1655년 자메이카를 차지하였고, 1663년에는 1626년 네덜란드가 세운 뉴암스테르담을 구입하여 이듬해 뉴욕으로 개칭하였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도착한 이후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구축하였다. 이 사이에 영국의 무역은 무려 10배 증가하였다.당시 영국에서는 상업과 매뉴팩처가 급속하게 발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를 필요로 하고있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영국을 유럽의 중심적 산업 및 상업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 앞에서 언급한 항해조례였다. 크롬웰은 항해조례를 선포하여 유럽의 수출품은 오직 영국선박이나 그 상품의 원산국가의 선박만으로 운송될 수 있으며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의 생산물은 오직 영국 및 그 식민지의 선박으로만 수입될 수 있도록 하였다. 1660년의 항해조례는 이를 더욱 강화하여 선장과 승무원의 2/3 가 반드시 영국인이 되도록 규정하였다. 항해조례가 1660년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계속 효력을 유지한 이유는 정부의 대외정책이 무역상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다.사실 1651년 제 1차 항해조례 이후 네덜란드와의 제1차 전쟁는 크롬웰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역상인들을 위해 수행된 것이다. 1654년에 시작된 스페인과의 전쟁은 반대로 상인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즉 청교도 혁명 이후 영국 정부와 무역은 사실상 상인들에 의해서 완전히 지배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상인들의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영향력은 이미 절대 왕정기에도 날이 갈수록 확대되어 군주는 이미 국가의 주요 시책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특히, 각 무역회사가 각자의 특권에장확보와 외국시장의 확충을 통한 산업자본축적과 수출산업을 육성함으로써 국제무역수지를 개선하는 것이고 할 수 있겠다.2) 프랑스 중상주의프랑스는 일찍부터 중앙집권적 정치의 확립을 이룬 국가였다. 경제정책도 전제국가의 목적에 의하여 그 지침이 결정되었으며, 프랑스의 중상주의자는 보호간섭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프랑스에서는 강력한 왕권에 의한 절대적 전제주의가 행하여져 점점 중앙집권의 실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그 상징적 존재인 루이 14세는 1661년에 콜베르를 기용하여 그가 재정행정의 책임적 지위에 있음으로 소위 콜베르주의라고 불리어질 정도로 철저한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하였다.콜베르는 랭스 출생으로 루이 13세 때 재상 J.마자랭에게 발탁되어 그 측근이 되었으며, 루이 14세의 친정이후 재정총감 N.푸케의 독직사건을 적발하여 그를 징계하고, 1664년 스스로 그 후임에 올라 재정 이외에도 상공업 ?농업 ?토목 ?식민문제 ?해군의 업무를 담당하여 한때는 재상과 같은 권력을 휘둘렀다. 특히 경제개혁에 주력, 중상주의정책을 추진하여 프랑스의 국부를 증대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의 구상에 따르면 당시 모든 유럽국가들의 금 ?은의 보유량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국부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중상주의에 바탕을 두고 수출?입을 통하여 금?은의 보유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콜베르티즘)의 일환으로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자국의 상선을 증가시키는 한편, 국내의 생산을 일으켜서 수출산업의 진흥에 힘썼다.또한 길드조직의 재편성을 단행하여 필요한 인원을 필요한 생산부문에 할당하고, 왕립 매뉴팩처를 창설하여 공업을 보호?육성하였다. 그러나 콜베르티즘은 국력의 물질적 기초를 구축한 반면, 국가규제의 원칙이 상업의 발전적인 요소를 저해하였으므로 1670년경부터는 차차 반발을 사게 되었으며, 1683년 그의 죽음으로 무산되었다.루이 14세는 권력정책을 재정적으로 타개하기 위하여 중상주의 정책을 실행하였다.왕립 매뉴팩처를 설립하고 외국기술의 도입을 도모하였다. 인두세와 .
** REPORT **신용장론 -비신용장 결제방식학과 :학번 :담당교수 :제출일 : 2003. 5. 13이름 :# 목차 #- 비신용장 결제방식-Ⅰ. 국제팩터링1. 국제팩터링의 개념2. 국제팩터링의 거래절차3. 국제팩터링의 기능 및 이점Ⅱ. 국제포페이팅1. 포페이팅의 개념2. 포페이팅의 거래절차3. 포페이팅 거래의 장. 단점4. 포페이팅의 거래당사자 및 특징Ⅲ. 전자상거래1. 전자상거래의 개념2. 전자상거래의 유형3.전자상거래의 특성4. 전자상거래의 동향5.전자상거래의 문제점과 활성화 방안Ⅰ. 국제팩터링1. 국제팩터링의 개념팩터링이란 판매자가 구매자인 고객에게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발생하는 외상매출채권과 관련하여 팩터링 회사가 판매자를 대신하여 구매자에 관한 신용조사, 신용위험의 인수(지급보증), 매출권자의 관리 및 대금회수, 금융제공 및 기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의 금융서비스를 말한다. 즉 팩토링은 수출자의 신용위험을 인수한 팩토링 회사가 바이어의 파산 혹은 재정상의 문제로 대금지급이 불가능한 경우가 생겨도 이를 다시 수출자에게 상환청구하지 않는다.국제팩터링은 전세계 팩터의 회원망을 통하여 무역신용장방식의 무역거래시 팩터링회사가 신용조사, 신용위험 인수, 금융제공, 대금회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거래 당사자는 수출업자. 수출팩터, 수입업자, 수입팩터 등 네 당사자로 이루어진다.수출팩터는 수출업자와 거래약정을 맺고 수출채권 매입한도를 결정하며, 수입팩터는 수출팩텅의 신용조사의뢰에 따라 수입업자의 신용상태를 조사하고 이에 근거하여 수출팩터에게 지급보증에 해당하는 신용승낙을 통보, 이에 따라 수출업자는 안심하고 선적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거래방법이다. 이 방식은 신용장거래보다 간편하기 때문에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중소규모의 무역거래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국제팩터링방식의 거래대상은 수출의 경우 무신용장 인수도조건(D/P)의 방식과 송금방식의 수출로서 수출대금전액을 선적 후 1년 이내에 영수하는 경우), 수입은 송금된 대금을 즉시 수출팩터에게 송금한다.⑬ 수출대금 지급3. 국제팩터링의 기능 및 이점1) 국제팩터링의 기능국제팩터링의 주요한 기능은 신용위험의 인수, 전도금융의 제공, 회계업무의 대행 등 3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수출팩터와의 약정에 따라 수입팩터는 수입업자의 신용을 조사호고 신용위험을 인수하여 대금회수를 보장하기 때문에 수출업자가 안심하고 이 거래를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또한 수출팩터도 수출업자와의 약정에 따라 수출채권을 관리하고 전도금융을 제공함으로써수출업자의 자금조달에 기여한다.그 밖에 수출팩터나 수입팩터 모두 수출업자와 수입업자의 회계업무를 대행해 줌으로써 수출입업자의 복잡한 업무를 처리해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2) 국제팩터링의 이점① 수출업자의 이점첫째, 수출대금의 회수를 수출팩터가 보증하기 때문에 수출에 따른 신용위험을 회피할 수있다.둘째, 수입업자에게 유리한 무신용장방식이므로 거래선 발굴 및 신시장 개척이 용이하다.셋째, 신용장방식이나 인수도조건보다 거래가 간편하다.넷째, 수출팩터의 회계업무 대행으로 생산 및 판매에만 전념할 수 있고 이로 인하여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다섯째, 전세계 팩터링 기구의 회원사를 통해 신속하게 해외시장 정보를 획득할 수 있고 국제적 지명도를 제고할 수 있다.여섯째, 필요시 전도금융의 수혜로 자금조달이 용이하며 기타 경영 상담뿐만 아니라 다양한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② 수입업자의 이점첫째, 수입팩터가 지급보증을 함으로써 신용한도 설정 내에서 신용구매가 가능하다.둘째, 수입보증금 예치에 따른 자금부담이 없다.셋째, 신용장 발행에 따른 비용부담이 없다.넷째, 수입결제자금이 부족할 때 금융 수혜가 가능하다.다섯째, 수입팩터로부터 회계관리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Ⅱ. 국제포페이팅1. 포페이팅의 개념포페이팅은 불어의 forfait에서 유래된 말로 현금을 대가로 채권을 포기 또는 양도한다는 뜻이다. 포페이팅은 수출환어음이나 약속어음을 받은 수출업체에게 일체의 상환④ 포페이터는 매입어음을 유통시장에서 제2의 포페이터에게 재매각하거나 어음을 만기까지 보유하여 보증은행으로부터 어음금액을 상환받는다.- 인수통보가 접수되면 포페이팅이 실행되고 할인된 수출대금이 입금만기에 포페이터가 개설은행으로부터 수출대금회수3. 포페이팅 거래의 장. 단점1) 수출자에 대한 장단점먼저 수출자에 대한 장점으로는 고정금리 조건으로 어음이 할인되므로 포페이팅 비용이 사전에 확정되고 소구권포기 조건으로 어음을 매각하므로 수출대금 미회수위험이 없으며 수출상품 선적후 즉시 수출대금을 회수할 수 있어 유동성이 제고되고,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어 은행의 여신거래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수출대금 회수를 위한 추가 경비를 지출할 필요가 없으며 금리 및 환율변동위험과 수입자의 신용위험을 수출자가 아닌 포페이터가 부담하게 되며 거래절차가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수출자는 포페이팅 거래와 관련된 제반 위험요소를 수출계약금액에 미리 반영함으로써 포페이팅 거래비용을 수입자에게 전가시킬 수 있는 편리점이 있다.단점으로는 수출자는 소구권포기 조건으로 어음을 매각하므로 포페이팅 관련 모든 서류를 면밀히 점검해야 하며 수출자는 수입자에게 포페이터가 인정하는 보증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해야 되고 포페이터가 신용장이 아닌 별도의 지급보증서를 요구할 경우, 포페이팅 비용이 여타 수출금융 비용보다 높아 수출자의 수출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는 불편이 초래된다.2) 수입자에 대한 장단점장점으로는 수입자는 고정금리로 수입결제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포페이팅 관련당사자들에 관한 정보를 비밀로 하는 포페이팅 시장의 관례에 따라 수입자는 자신의 재무상태 등에 관한 정보누출을 우려할 필요가 없으며단점으로는 지급보증서 발급비용 등이 포함된 포페이팅 비용은 여타 금융조달비용에 비해 다소 높은 편이고 금융비용의 증가로 수입물품의 가격을 상승시키는 면이 있다.3) 포페이터에 대한 장단점장점은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적은 분량의 서류를 받음으로써 신속한 금융지원이 가능하고 유통시장을 통해 할인매입금을 결제하는 자를 말한다.④ 보증은행: 보증은행이란 수입자가 발행하는 어음에 대한 지급보증을 행하는 은행이다. 포페이팅계약에 의하여 포페이터가 수출자의 어음을 상환청구불능의 조건으로 할인매입하기 때문에 어음에 대하여 지급보증하는 보증은행은 신용도가 높은 일류은행이어야 한다.2) 포페이팅의 특징첫째, 환어음 또는 약속어음의 할인매입은행인 포페이터는 그 이전의 어음소지자, 즉 할인매각자에게 소구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어음매각자는 채권회수 불능의 위험부담없이 수출채권을 현금화 할 수 있다. 수출자는 수출한 후 연지급어음을 포페이터에게 할인매각하면 포페이터가 수출자에게 어음소구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사후에 수입자가 지급불능상태에 빠지더라도 대금을 반환하지 않는다.둘째, 할인대상증권은 현재 환어음과 약속어음에 국한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기타 증권도 대상이 될 수 있으나 그 취득에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환어음과 약속어음은 오래전부터 무역결제에 이용되어 왔으므로 분쟁의 가능성이 적다).셋째, 대상어음이 포페이터가 인정하는 일류기업의 어음이 아닌 경우에는 은행지급 보증이나 aval(어음상의 지급보증)을 요구하게 된다. 포페이터는 어음소구권이 없기 때문에 수입자의 신용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에는 보증을 요구하여 이에 대비한다.넷째, 대상어음은 1년에서 7년의 자본재수출에 따른 연불수출어음이 대부분이며 포페이터의 채권만기선정은 해당거래의 위험과 시장조건에 따라 결정된다.다섯째, 대상어음은 고정금리로 할인. 매입된다. 그러므로 어음매각자는 수출상품의 인도에 대해서만 책임을 부담하며 금리위험은 포페이터가 부담한다. 포페이팅 비용이 단기로 할인되고 어음매각자가 수출상품의 인도이외에는 위험을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여섯째, 현재 대상어음은 미달러, 서독 마르크화와 스위스 프랑화로 표시된 것에 한한다. 왜냐하면 이외의 약세통화표시어음의 경우에는 매입채권의 재금융에 문제가 있고 환리스크를 부담하여 포페이터에게 불리기 때문이다.포페이팅은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비교해보면 전자상거래는 기업간의 효율적인 활동을 도와줄 수 있는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면서 사람과 사람간의 상호통신교류 및 자금의 이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즉 EDI가 회사간의 컴퓨터와 컴퓨터간에 기술적으로 사용될 목적으로 단일한 기술을 사용하도록 고안된 것인 반면, EC는 기업 대 기업은 물론이고 기업 대 개인, 개인 대 개인간에도 이용되며, EC를 유지하는 기술적 구성요소도 이용자간의 전자적 의사소통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EC는 EDI의 기술적 수단을 이용하여 거래상대방과의 관계성과 계약이행을 강화하는데 그 목표를 두게된다.전자상거래와 CALS를 비교해보면 CALS는 EC에 비해 보안성에 있어 더 안전한 바, CALS는 기존의 폐쇄적 기업통신망을 중심으로 안전한 폐쇄적 네트워크가 그 특징이며, EC는 개인 및 기업. 기관에 공개된 개방적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적용분야에 있어서도 CALS는 제조업이나 엔지니어링 등 특정 기업 간의 거래인 반면, EC는 유통업 또는 쇼핑 등의 분야로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까지도 거래단위에 포함시킨다.2. 전자상거래의 유형1) 전자상거래의 특성에 따른 분류전자상거래는 거래당사자와 거래가 이루어지는 네트워크의 특징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①구조화된 전자상거래 - 표준화된 거래형식과 데이터 교환방식에 따라 조직적이고 체계 적으로 이루어지는 전자상거래를 말하며, 협의의 전자상거래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 : 불특정 다수의 일반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쇼핑의 형태㉡ EDI : 제조업자와 유통업자 등 계속적 거래관계가 있는 기업 간 거래를 교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거래㉢ CALS : 정부조달의 전자화로 시작하여 민간부문의 기업들이 설계도면이나 부품의 데이터를 비롯하여 제품의 개발, 제조에서 유통 및 보수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도입하려고 하는 광속광 거래②비구조화된 전자상거래 - 거래당사자간에 특정한 표준 없이 자유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이루어지다.
** 목차 **제 1 장 - 서론제 2 장 - 국제상사중재제도1.상사중재 제도의 일반적 연혁2. 각국의 상사중재제도제 3 장 - 미국1. 미국 중재의2. 미국 상사중재제도 역사3. 미국중재의 자주성 및 특징4. 뉴욕협약제 4 장 - 프랑스1. 프랑스의 상사중재제도1) 국내중재법2) 국제중재법2. 프랑스 중재법의 자주성제 5 장 - 이탈리아1. 이탈리아의 중재법2. 비공식 중재제 6 장 - 결론제 1 장 - 서론중재제도는 인간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분쟁을 평화적이고 슬기롭게 해결하려는 인간의 욕구와 산물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행하여진 보편적인 분쟁해결 방법으로서, 소송이 갖고 있는 법절차의 복잡성과 엄격성에서 벗어나 중재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법원의 관할을 배제하고 전문가인 제3자에 의해 신속?간편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중재판정을 받아 분쟁해결의 효율성을 도모하는 제도이다.중재의 합의가 체결되면 당사자의 한쪽이 중재대상인 분쟁에 대하여 국가재판소에 제소하여도 그 제소는 상대방의 항변에 의하여 각하된다. 중재합의에 의거하여 중재인이 내린 중재판단은 당사자간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이에 의거하여 강제집행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중재제도는 국가의 재판제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므로 어느 나라에도 중재합의의 요건. 효력이나 중재절차, 중재판단의 효력 등에 관하여 당사자의 임의의 의사에 일임하지 않고 공익보호의 견지에서 법규로 여러 가지 규정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특별법인중재법에 의거하여 그 절차 및 중재의 효력과 강제집행 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리고 사단법인 대한상사중쟁원이 중재법에 의거하여 상사중재를 공정. 신속하게 하기 위한 절차를 규정한 상사중재규칙을 이행하고 있는데, 이 중재원은 한국의 상설 중재기관이다.각 국가의 이질성과 다양성으로 인하여 국제상사중재제도는 법적으로 반드시 중립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제상거래는 국제사회에서 거래주체들이 보기에 최적의 형태라고 보여 지는ommerce & Industry), 오사카상공회의소(Osaka Chamber of Commerce and Industry) 등 다수의 중재기관을 두고 있다.미국의 경우에는 세계최대의 상설중재기관이라고 하는 미국중재협회(American Arbitration Association : AAA)을 비롯하여 전미상사분쟁해결센터(Commercial Dispute Resolution Centre of Americas), 미주상사중재위원회(Inter-American Commercial Arbitration Commission : IACAC), 조정중재센타(Centre for Conciliation and Arbitration) 등의 중재기관이 있다.영국의 경우에는 런던국제중재법원(London Court of Inernational Arbitration : LCIA)을 비롯하여 중재인협회(The Chartered Institute of Arbitrators-International Arbitrational Centre), 런던해사중재인협회(The London Maritime Arbitrators Association) 등 다수의 중재기관이 활동하고 있다.그 외 카나다 프랑스 스위스 등 다수의 국가에서도 다수의 중재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중재 등 분쟁해결업무를 수행하고 있다.이들 외국의 중재기관인 일본국제상사중재협회(JCAA), 중국국제경제무역중재위원회(CIETAC),홍콩국제중재센터(HKIAC), 싱가포르중재협회(SIAC), 미국중재협회(AAA), 독일중재협회(DIS), 스위스중재협회(SAA)등외에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ICC ICA)이나 아아중재센타(The Asian-African Legal Consultative Committee Regional ArbitrationCenter), 투자분쟁국제해결센타(International Center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 ICSID)등의 국제적 중재기관이 활동하고 있다.이들 중재기관들은 국 중재규칙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중재의 활용이 아직 미흡한 상태이다.연방 중재법과 뉴욕주의 중재법 등 근대적 입법은 중재계약의 유효성과 철회불능 및 집행가능성을 인정하며, 중재합의에 대해 법원에의 제소를 저지하는 효과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주는 중재합의를 철회가능으로 규정하고 있다.중재인의 자격과 수에 대해 일반적인 규정은 없지만, 제3중재인은 다른 중재인가 동일한 권한을 가질 뿐이며, 영국의 `심판인`에 해당되는 것은 없다. 미국중재협회의 상사중재규칙에(제14조)에는 Neutal Atbitrator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제3중재인과 같은 뜻이다.판정은 서면으로 해야 하며, 당사자가 전원일치를 조건으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재인의 과반수가 서명하면 된다. 영국의 경우와 같이 판정에 이유를 붙일 필요가 없다.판정의 집행은 대체로 1년 이내에 할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법원에 신청하여 판정을 승인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경우에 법원의 심사는 통지 및 기한 등 절차 면에 한정된다.미국은 1923년 제네바의정서, 1927년의 제네바협약에는 가입하지 않았으나, 1968년 10월 뉴욕협약에 가입했다. 1968년 10월 이전까지는 주로 각국과 우호통상향해조약을 체결하고, 그 속에 중재에 관한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개별적인 2국간 조약에 의해 외국중재판정의 승인과 집행을 인정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우리나라와의 사이에는 한미우호통상해양조약과 뉴욕협약의 양자가 적용되고 있다.3. 미국중재의 자주성 및 특징미국의 상사중재는 영국보다 일찍이 법원으로부터 자주성을 인정하였다. 미국법 하에 중재는 일반적으로 당사자에 의해 결정되는 사적인 분쟁해결절차로 간주되며 사법심사는 아주 근본적인 절차상의 정의에만 국한된다.미국의 경제, 사회적 변화는 영국형 중재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근대적 중재법을 제정하였다. 이에 따라 영국의 판례에 의해 행해지던 중재활동을 통제하는 원칙들이 더 이상 미국법상에 통용되지 않게 되었다. 중재판정에 대집행에 관한 규칙도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이루어졌다.2) 중재판정의 승인과 집행뉴욕협약의 가입국은 외국판정을 구속력 있는 것으로서 승인해야 하고, 국내판정에 적용될 수 있는 절차에 상응하는 절차를 이용하여 이를 집행해야한다. 뉴욕협약 제 3조의 기본원칙은 어느 국가에서 내려진 중재판정은 동 국가가 뉴욕협약에 가입국인지 여부에 상관없이 뉴욕협약의 모든 가입국에서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협약은 중재판정을 집행하기 위하여 집행을 하고자 하는 당사자가 집행이 있을 국가의 법원에 중재판정과 중재합의의 원본이나 등본을 제공할 것만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서류들은 번역되어야 하며, 집행을 위한 구체적인 절차는 집행이 있을 국가의 법에 따른다.3)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의 거부사유① 중재합의의 준거법에 의하여 당사자가 중재합의를 체결할 의사가 없거나 중재합의가 무효인 경우② 상대당사자가 중재절차에 참가할 수 없거나 절차의 통지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③ 중재인이 권한을 초과하거나 중재에 의하지 않아야 할 사항에 대하여 판정한 경우④ 중재판정이 근거하는 법에 따라 중재판정이 당사자에게 아직 구속력이 없거나 배제된 경우제 4 장 - 프랑스1. 프랑스의 상사중재제도프랑스혁명 이후에 만들어진 1791년의 헌법에서는 중재부탁권리가 헌법상 권리로까지 격상되었으나, 그 후 프랑스혁명의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1806년 공포된 민사소송법에서는 중재는 법원판단의 전단계로 전락하였다.그 이후 프랑스의 중재 입법으로서는 나폴레옹 법전인 민사소송법이 있지만 중재에 관한 규정에는 불명확한 점이 많았다. 장래의 분쟁에 대비해 미리 중재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명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1925년에 상법 제 631조를 개정하는 법률이 공포될 때까지 법원은 중재조항을 무효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개정상법 제 631조에 따라 상상분쟁에 대한 상사재판소의 관할권이 확인되고 미리 체결된 중재계약의 효력이 인정되었다. 중재위원회가 핵심이 되어 1964년부터 집중적인 개정작업에 착수하여 198 인정하고 있다. 중재조항이란 계약당사자가 그 계약에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중재에 부탁하기로 약속하는 합의이다(제1442조). 반면에 중재계약이란 발생한 분쟁의 당사자가 그 분쟁을 1인 또는 복수의 사람에 의한 중재판정부에 부탁하는 합의이다(제1447조).구법에서는 중재계약이 원칙이며 예외적으로 중재조항이 인정되었는데 신법에 의하여 개정된 것이다. 중재조항은 주된 계약에서 또는 주된 계약이 인용하는 문서에서 서면에 의해 작성되어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 약정한 것은 무효이다(제1443조 제1항). 동시에 중재조항은 중재인을 지명 하던가 또는 지명방법을 정하여 두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동조 제2항). 그러나 상설중재기관의 중재규칙을 준용할 것으로 하면 충분히 유효하다. 중재계약은 분쟁대상을 특정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제1448조 1항).중재계약에서 항소권을 포기하지 아니하는 한, 중재판정에 대하여 항소할 수가 있다(제1482조). 그러나 실무에서는 당사자의 중재계약으로 항소권이 포기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재판정취소의 소는 항소권을 포기하였거나 또는 항소권의 명시적 유보 없이 우의중재의 권한을 부여하였기 때문에 항소할 수 없는 경우에 인정된다)(제1484조 제1항).중재판정의 취소사유는 중재계약이 없거나 무효인 중재계약에 의한 중재판정일 때, 또는 중재인 권한의 일탈, 중재판정의 이유불기재, 중재인의 서명누락, 공공질서를 위배한 중재판정 등의 경우에 인정된다)(동조 2항).2) 국제중재법1980. 5.14 국내중재법을 앞에서 설명한 대로 개정하였다. 개정내용에는 강행규정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강행규정이 국제사법상 중재사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되겠는가가 문제가 되었다. 국내중재법의 강행규정을 국제사법 해당사안에도 그대로 적용시키게 되면 국제중재사건의 유치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명백하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또 개정민소법에서는 중재판정의 집행허가에 대하여 구법에서 인정하였던 구제방법을 폐.
Ⅰ. 로잔느학파 성립배경사회주의 경제학이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자본주의체제의 변혁을 요구하는 극 단적인 노선을 걷는 데 비하여 사회주의 및 노동조합운동에 반대하면서 고전학파와 같이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유방임정책을 옹호하는 학파가 1870년대에 등장하였는데 이 학파가 한계효용학파이다. 1870년대에는 서구 각국의 경제가 대체로 지속적인 성장을 시 현하는 가운데 지속적인 성장을 시현하는 가운데 노동의 생산성과 모든 계급의 생활수준 이 향상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하에 한계효용학파는 사회주의 경제학파이론의 극단을 배척하고 자본주의의 장래에 대하여 낙관적인 견해를 가졌다. 왈라스를 중심으로 한 로잔느학파의 이론은 순수경제학의 대상을 사회적 부의 교환가치의 연구에 한정시키 고 여러 재화의 교환가치의 연구에 한정시키고 여러 재화의 교환가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고 상호함수적 성질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밝히면서 그런 교환가치의 배후에 숨어 있는 한계효용 즉 주관적 가치를 문제로 삼았다. 또 그는 순수경제학의 본질을 수학적인 것이라고 인식하여 수학적 방법을 사용한 수리경제학의 대성자였다.로잔느 학파는 1870년대 스위스의 로잔느 대학에서 교수를 지내며,효용 혁명의 주도적 인물이었던 프랑스인 경제학자 왈라스의 수리적 일반균형이론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그의 추종자를 일컬었으며, 원래의 로잔느 학파는 빌프레도 파레토, 엔리꼬 바론, 죠반니 안토넬리, 그리고 파스칼 보닌세그니 등의 이탈리아의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주축을 이루었던 까닭에 이탈리안 학파라고도 불렀다. 이렇게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즐비하게 참여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잔느 학파의 역사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그들의 이론과 업적들은 영국의 정통 마샬주의자와,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학파의 등장으로 그 영향력을 잃어가게 된다. 짧은 기간의 영광이긴 했지만, 어빙 피셔나 넛윅셀 등의 재능 있는 동시대의 경제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간과 할 수 없는 커다란 업적 중의 하나일 것 이다.지하고 있었다.Ⅱ. 로잔느학파1. 로잔느학파의 역사스위스의 로잔느 대학에서 왈라스에 의하여 창설된 이 학파는 뒤에 파레토에 의하여 이어 졌다. 오스트리아 학파와 함께 한계효용학파로 일괄되기도 하며 또는 좁은 의미 의 수리경제학파로 부르기도 한다. 왈라스는 제본스, 맹거와 더불어 한계효용학설을 주 도한 3인 중의 한 사람일뿐만 아니라 특히 수리적 방법을 도입하여 일반균형의 이론을 확립한 학문적 공헌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제본스와 마찬가지로 쾌락주의의 기초위에 효용이론을 구성하였으며 제본스나 쿠르노보다 더욱 본격적으로 수리적 방법을 전환 효용이론과 일반균형이론의 종합을 가능케 하였다. 즉 로잔느학파는 왈라스 교수에 의 하여 창설되어, 그를 계승한 파레토에 의하여 발전되었다.그들의 경제학은 지금까지의 경제학파와는 색다른 참신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경제학을 물리학이나 역학과 같은 정밀과학의 영역에 근접시키고자 노력한 것이었다. 경제학이 사회과학으로서의 체계를 정비하게 된 것이 고전학파에서부터였지만 마르크스학파와 오스트리아학파는 그것을 장대한 이론의 전당으로까지 건립하였던 것이다.고전학파와 마르크스학파 양자는 노동가치론으로 오스트리아학파는 효용가치론으로 각자의 토대를 삼았다. 반성은 여기서부터 생겨났다. 그 두가지 초석, 즉 노동가치론과 효용가치론이라는 두 가지 개념은 경제과학의 변하지 않는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노동량을 계산하며, 어떻게 하여 효용을 측정할 수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것의 과학적인 측정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이러한 비과학적인 개념을 근저에 둔 채 어떻게 경제학이 진정한 과학적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경제학이 가치라는 개념을 설정하여 그것을 이론적 분석도구로 삼아 자본주의 사회를 해명하고자 한 것은 이러한 방법에 의해서 비로소 사회를 통일적이고 전체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 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리적 방법을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적 인 방법을 사용하여 과학적인 트리아 학파는 균형관계가 어떻게 성림되는가의 원인을 밝힘으로써 인과관계와 인과법칙을, 로잔느학파는 균형관계가 엊제 성립되는가의 조건을 밝히고자하는 함수관계와 함수법칙을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셋째, 경제현상이 상호의존관계 일반균형관계에 있다고 본다. 가치론에 있어서도 고전학파가 투하노동설 오스트리아 학파가 한계효용설로 설명하는데 대하여 이 학파는 가치의 실재적 원인의 규명보다는 경제현상의 일반적 균형 안에서 상호의존관계로 가격이 어떤 점에서 결정되는가를 문제로 한다. 따라서 이 학파에 있어서는 가치론이 대주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가격론으로 되어 버린다.넷째, 일반균형이론은 마샬의 부분균형이론과 비교가 된다.마샬은 생물학적 방법에 의하여 실천적 현실적 성격을 갖는 부분균형이론을 전개하였으나 로잔느학파는 역학적 방법에 의하여 추상적 기계적 일반균형이론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현실성과 동떨어진 성격을 지닌다.다섯째, 일반균형관계를 본격적으로 수학을 사용하여 분석하여 수리경제학파라고 불렀다.로잔느학파는 경제제량의 상호관계를 분석하는데 수학의 이용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데 반하여 마샬은 경제이론에 가급적 수학의 이용을 회피하려고 하였다.여섯째, 로잔느학파는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일반균형이론을 자연과학적으로 분석한다.이 학파는 절대적, 일방적 원리에 따른 경제이론의 형성을 배제하기 때문에 모든 사상과 주의를 떠나 경제학이론을 정밀과학으로서의 순수성과 기술적 수단으로서 성격을 갖도록 하였다.또한 이 학파는 정밀 균형상태의 가설을 전제로 하는 무시대적 경제이론을 전개하고 있다.3. 로잔느학파의 철학 및 이론근대경제학의 주류를 형성하는 로잔느학파의 경제이론은 근대 자연과학의 정신을 이 어 받은 것이다. 모든 실체개념은 기능개념으로 대체시키며 질적인 것을 버리고 확고 한 경제현상 속에서 유출한 단순한 경제요인을 양적으로 규정한다. 고전학파의 투하 노동설이나 생산비 법칙과 주관적 한계효용의 법칙에 입각한 인과적 법칙 대신에 상 대주의 기능주의에 입각한 함수적 법칙으로 가격을 규정하기후의 주작 순수경제학요론 은 생산·교환·소비·화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경제제량 의 일반적상호의존관계의 인식을 기초를 하면서 명 개별경제주체가 극대행위(소비자 에 대해서는 소비효용의 극대, 생산자에 대해서는 기업이윤의 극대)를 한 경우에 있 어서의 경제제량의 결정관계를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었다.이 왈라스의 업적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사람은 파레토이다. 파레토의 업적은 첫째 왈라스가 불충분하게 취급한 소비자선택의 이론을 무차별선택의 이론으로 전개한 것과 둘째는 생산계수의 가변성의 이론을 전개한 것이었다. 그것이 지향한 바는 이론경제학을 경험과학화하기 위한 기초를 만드는 데에 있었다. 예컨대 주관적 한계효용의 이론에 있어서는 효용의 가 칙성이 문제가 되지만 무차별선택의 이론에서는 다만 경제적으로 무차별한 선택이 이 루어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어서 효용의 절대적측정은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다.먼저 왈라스의 이론을 살펴보면 제본스 및 맹거와 같이 한계효용의 이론를 이용하여 그의 이론을 전개하였지만 이들보다 더욱 넓고 깊게 이를 발전시켰다. 한계효용의 원리를 다수인이 참가하고 다수재가 교환되는 일반시장에 적용함으로써 수학적으로 교환이론 을 설명하고 이로부터 생산이론 자본형성의 이론 그리고 화폐이론, 나아가서 경제균 형이론의 전체계를 구성하였다. 즉 경제전체라는 개념과 경제균형이라는 개념을 사용 하여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은 손을 그의 이론체계 속에서 보이게 하여 자유경쟁 기구를 설명하였다. 그는 경제학을 순수경제학 활용경제학 사회경제학으로 분류하고 이 중에서 순수경제학은 완전경쟁의 전제하에 자유시장기구를 통하여 교환되는 재화 의 가격을 결정하는 과학이라고 보고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입각하여 수학을 사용 교 환가격을 함수관계로 표시하는 경제학을 확립하였다.파레토는 순수경제이론에 있어서 왈라스의 이론을 계승 발전시켰다. 그들은 다 같이 경제학도 자연과학과 같이 순수과학이 될 수 있다는 뜻에서 순수경제학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경제학 이프랑스 노르만디의 어느 시골에서 태어났다. 성년기의 절반 이상을 스위스에서 지냈지만 그의 국적은 프랑스이다.그의 부친은 오귀스뜨 왈라스로서 말단 교육행정요원으로 일생을 보낸 사람이었지만, 저명한 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꾸르노와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그는 나름대로 가치의 효용이론,토지의 국유화 및 조세제도의 혁파를 주장하기도 하고, 부의 본질과 가치의 근원에 대한 책도 저술 출판하는 등 여러 형태의 경제학적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의 반교회적 태도와 상급자와의 불화, 그리고 때 이른 효용가치론의 주장 등이 원인이 되어 당대의 경제학계에 받아들여지지 못하였으며 다만 그의 아들 레옹 왈라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1860년에 스위스 로잔느에서 개최된 국제조세 회의에 참석하였다가 스위스의 변호사이며 정치가인 루이 루숀네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그의 도움으로 왈라스는 로잔느의 교수가 된다. 1870년 12월 16일 그가 정확하게 만 36세 되는 날 왈라스는 그의 첫 번째 경제학 강의를 하고, 그 1년 뒤인 1871년에 영구적인 전임교수가 되었다.왈라스의 '순수경제학요론'이 포괄하고 있는 내용은 광범위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경제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한 연구를 들면 한계효용이론과 일반균형이론이다.1 한계효용이론소비수요의 결정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요론'의 제2부 및 제3부에서 소개되고 있다. 효용은 몇 가지 재화를 각각 일정한 수량씩 소비할 때 소비자가 느끼는 만족도를 양적으로 측정한 지표이다. 그러므로 소비자는 그의 소득범위 내에서 최대의 효용을 주는 소비행위를 선택하여 소비하게 된다.최대 효용의 소비행위에서는 소득 1원을 지출하여 어느 재화를 더 구입하더라도 효용증가분이 같아야 한다. 왜냐하면 1원으로 재화 A를 더 살 때의 효용증가분이 B를 더 살 때의증가분보다 크다면 B의 구매량을 줄이고 대신 A의 구매량을 늘림으로써 같은 크기의 소득으로 얻는 총효용이 증대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재화의 가치는 그 재화를 한 단위 더 소비할 때의 효용증가분 즉 한계효용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