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느의 투쟁」을 읽고두 심벌의 이분화를 중심으로들어가며처음으로 마리안느의 투쟁 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나는 지금까지 많은 책들이 그랬듯이 프랑스 혁명의 전개과정을 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쓴 글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마리안느의 성급한 친구들을 위한 몇 마디 글 이라는 챕터가 있었고, 나는 거기에서부터 나의 무지함을 뼈저리게 깨달으며 이 책의 한 장 한 장을 읽어나갔다.책은 어려웠다. 물론 개인차가 많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졌다. 이 책은 그동안 제법 여러 번 들어서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프랑스 혁명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프랑스의 연대기를 뒤적거리면서까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책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옛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회화나 조각품, 동전 등에서 나타난 마리안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이 책은 잘 맞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나의 무지의 탓도 크겠지만,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느꼈던 프랑스 적이다 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이해한 마리안느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마리안느(Marie Anne)우선 마리안느라는 이름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자. 아귈롱은 마리-안느(Marie-Anne) 라는 이름은 마리(Marie)와 안느(Anne)로 나눌 수 있으며, 그 두 이름은 평범하고 대중적인 이름이기 때문에 민중적이고 대중적인 정치체제를 가리키기에 적합하여 공화국을 지칭하는 데에 쓰인다고 말한다.{) 「마리안느의 투쟁」, 모리스 아귈롱, 한길사. p.46그것 외에도 마리안느는 하나의 단어이며, 그녀는 폭군 헤로데 왕에게 박해를 받았던 고대 유태의 공주로서 의심스럽지만 널리 유포되었던 정통 카톨릭의 전설이 예수 탄생 이전의 주인공으로 복권시킨 인물{) 한국방송대학교 교양교육원 홈페이지 (http://course.knou.ac.kr)이라는 가정도 있지만, 아귈롱의 의견(좀 더 정확히는 아귈롱이 동의한 앙드레 게랭의 의견)이 훨씬 설득력 있다고 생각된다. 후자의 의견은 일반 시민들에게 퍼지기에는 보다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후자의 의견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마리안느는 위에서 아래로 퍼져나갔어야 한다. 하지만 마리안느는 민중의 언어에서 지식인 세계의 언어로 스며들어갔으며{) 「마리안느의 투쟁」, 모리스 아귈롱, 한길사. p.259, 그 과정에서 마리안느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변화는 바로 프리지아 모자 에 관한 것이다.1)프리지아 모자초창기(1792)의 마리안느는 프리지아 모자를 쓰거나 혹은 들고있는 창에 모자가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리지아 모자는 고대 로마공화정시대에 확립된 전통으로서, 당시에 행해진 노예해방의 의식에서 해방되는 노예의 머리 위에는 이 모자가 씌워졌다. 그리고 그러한 모자를 자신들의 상징물인 마리안느의 머리에 씌웠다는 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다름아닌 자유이고, 마리안느가 자유의 여신 임을 뜻한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들라크루아의 이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중학교에 다닐때에 이 그림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 여인이 잔 다르크 라 고 배웠었고, 그림의 제목은 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 으면서 그 그림의 제목은 였고, 그 여인의 이름은 마리 안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대 로마풍의 긴 옷을 입은 여인은 한쪽 가슴을 드러내고 깃발을 들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녀의 머리 위에도 역시 프리지아 모자가 자리잡고 있다.그리고 공화국 최초의 국새에도 프리지아 모자가 걸려있는 창을 들고 서 있는 여인이 사용되었다. 이 책을 한 번 읽을 때에는 이에 대해 별로 느끼는 바가 없었으나,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보았을 때 이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하여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의 -소위 말하는-권력층들은 이 프리지아 모자에 대하여 매우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1792년 당시는 혁명이 이루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이기 때문에 그러할 수도 있지만, 국새에 프리지아 모자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아 그들이 자유 를, 그리고 그 자유의 주체인 시민을 존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프리지아 모자는 반드시 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반 민중들이 실제로 썼던 모자들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유의 모자를 대중적으로 만드는데 일조 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양교육원 홈페이지 (http://knou.ac.kr)2)시민왕과 마리안느1830년대로 들어서면서 루이 필립이 다시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는 시민왕을 자처하고 -적어도 내가 파악한 내에서는- 그리 반동적인 인물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시대가 되면 국가에서 설치하는 조각이나 기념물에서 프리지아 모자는 사라지게 된다. 그것의 한 예로 의원메달 을 살펴보도록 하자.한쪽 면에 루이 필립의 얼굴을 새긴 의원 메달은 다른쪽 면에 5명으로 구성된 집단 알레고리를 새겨넣었는데, 그 중앙에 법률판을 들고 서 있는 여성은 태양관을 쓰고 있다. 옛날부터 존재하던 태양 심벌을 새로운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입헌적 자유 또는 자유주의적 프랑스를 상징하고자 한 것이다.{) 「마리안느의 투쟁」, 모리스 아귈롱, 한길사. p.113위의 글에서 보면 태양관을 쓴 여성이 자유주의적 프랑스를 상징한다고 되어있다. 이처럼 자유의 상징에게도 프리지아 모자가 아닌 태양관이 씌워졌다. 마리안느가 권력에 의하여 변화된 것이다.이해할 수는 있다. 공화정 을 상징하는 마리안느{) 마리안느는 공화주의자에게는 자유 로, 사회주의자에게는 여성-구세주 로서 숭배되었다.가 루이필립에게는 정치적으로 방해가 되는 세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7월의 기념원주 위에 올릴 조각상을 여성 대신 남성으로 대체하고 들라크루아의 그림도 루브르의 창고로 보내버린 것이 아닐까.{) 「마리안느의 투쟁」, 모리스 아귈롱, 한길사. p.121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기독교적인 숭배{) 마리(Marie)는 물론 성모의 이름이며 안느(Anne)는 성모의 어머니 이름이다. 성모숭배 (Mariolatrie)에 기인한 18세기의 대중적인 이름에서 공화국이 새로이 내세운 숭배 (Marian-nolatrie)대상의 명칭이 유래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창작과 비평』여름호, 1997,「역사와 상징-프랑스 현대사 속의 마리안느」, 전수연. p.360이든 아니든 간에- 많은 사람들의 숭배를 받았고, 시민의 여신으로 자리잡았다.3)상징물의 양극화1848년 2월 24일, 승리를 거둔 민중운동은 축제의 분위기를 띄었다. 당시 파리의 거리에 불을 밝히고 거리를 행진하던 사람들은 두 군데에 깃발을 든 여인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바로 살아있는 알레고리 였던 것이다. 이것은 근엄한 사람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민중들에게는 그들의 자유의 여신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하지만 내가 이 장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살아있는 알레고리보다는 공화국 콩쿠르이다. 루이필립이 있을 때에는 그로써 국가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하여 표현할 수 있었지만, 다시 공화국이 성립되고 공화국은 새로운 시각적 물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이 공화국 콩쿠르에 대한 반응들이 굉장히 적나라하고 흥미로우며, 앞으로의 책의 진행에도 큰 줄기가 된다고 생각하여 이 부분을 조금 자세히 다루어볼까 한다.{) 실제로 책의 뒷부분에는 앞에서 잠시 언급되었던 살아있는 알레고리가 다시 한 번 언급 되고, 여기서 양극화 시킨 상징물을 보여주고 있다.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심사위원들은 첫 단계를 거친 작품들을 보고는 아무에게도 상을 주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 문제에 대하여 아귈롱은 미국인 예술사가 앨버트 보임의 의견을 가져왔으나, 나는 아귈롱의 이분법적인 분석 쪽에 손을 들어 주고 싶다.응모자 대다수는 그야말로 남자 같은 여자, 성질이 거센 여자, (...중략...) 깃발, 창, 총검들을 곤두세우고 있다. 불그레한 섬광 신호 빛에 의지하여 도로 포석, 들보, 부서진 통, 넘어뜨려진 합승마차의 산더미 위로 기어오르며 모든 것을 태워버리겠다는 듯이 부싯돌을 휘둘러대고 있는 모습이다. (...후략...){) 「마리안느의 투쟁」, 모리스 아귈롱, 한길사. p.178위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초기의 혁명적, 투쟁적 마리안느에 대한 적대감이다. 결국 그들은 최종까지 진행되었던 조각 콩쿠르에서 전통에 충실하고 모자없이 떡갈나무와 별로 머리를 치장하고 엄숙한 자세로 서 있는 공화국을 채택하였다. 또한 5프랑 은화에서도 밀, 월계수, 떡갈나무로 머리를 장식하고 별 목걸이를 쓴 우디네를, 최초의 우표에서는 그와 유사하게 밀과 포도 등으로 장식한 고대 로마의 농업과 풍요의 여신인 세레스를 닮은 우표를 채택하였다. 제 2 공화국의 국새도 이삭으로 만든 관을 쓴 목에서 발까지 고대풍의 의상으로 감싼 여인의 앉은 모습이었다.제 2공화국의 국새는 자유의 상징이던 프리지아 모자 대신에 이삭으로 만든 관을 썼고, 혁명적이고 역동적인 마리안느와는 달리 목에서 발까지 옷을 엄숙하게 갖춰입었다. 여기에서 부르주아 자유주의파들의 알레고리와 민중적 반항파의 그것의 이분화 현상에 확연히 드러난다.부르주아 자유주의파는 단정한 머리모양을 하고 가슴을 가리며 엄숙하게 부동의 자세를 취한 알레고리를 선택했으나, 민중적 반항파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프리지아 모자를 쓴 역동적인 젊은여성을 알레고리로 선택했다.{) 같은 책. p.198
-매스컴의 이해-우리 주변의 매스커뮤니케이션 이론 연구계획서Agenda-setting 이론을 중심으로2003130213 김은란1. 연구의 배경4.15 총선이 치러진 지 한 달이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강화된 선거법으로 인해 조용한 가운데에서 치러진 지난 총선은 합동 연설회 등이 없어지고 정당투표로 인해 후보자 개인보다는 당 중앙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매스컴의 중요성이 한층 커지게 되었다. 옆에서 쿵쾅거리지 않으니 TV나 신문, 인터넷 등에 관심이 모이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많은 매스컴들은 같은 사실을 두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 이야기가 반드시 진실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총선을 두고 매스컴, 특히 신문에서 나타난 총선에 관한 기사를 읽고 분석할 예정이다. 신문 중에서는 흔히들 가장 보수언론이라 이야기하는 조선일보 와 진보언론이라 이야기하는 한겨례 신문 을 비교, 분석할 계획이다.2. 연구개요1)문제제기이번 매스컴의 이해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fact는 truth와 다르며, 매스컴은 fact를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면 당연하다 는 생각이 들지만, 듣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오랫동안 매스컴이 정부나 권력기관의 수구 노릇을 해 오기도 했고, 정치나 경제의 권력과 관계되어 있어 더욱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정치는 특히 논란의 대상이었으며, 오랫동안 수용자에게 영향을 미쳐 온 것이 신문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신문은 매스컴 중에서 개인이나 신문사의 의도가 수용자에게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신문 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보수언론의 대표라 흔히 이야기하는 조선일보와 진보언론의 머리로 떠오른 한겨례신문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2)연구의 범위와 기간우선 연구의 범위는 조선일보와 한겨례신문에 나타난 총선과 관련된 모든 지면을 활용할 계획이나, 만약 그렇게 해서 쓸데없는 내용이 많아지거나 한다면 사설 부분을 중점적으로 비교 할 것이다. 그리고 종이이나 각 의원들의 비리에 관한 부분, 혹은 투표율 등의 기사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던 기사는 총선 이전의 선거활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날짜를 줄여서 4월 15일까지로 잡았다.또한 총선과 관련된 모든 기사를 사용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인터넷 토론방을 활용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토론방을 활용한다면 나의 의견 을 쓰기가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은 배제하였다. 사설을 위주로 연구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신문의 입장이 명백하게 눈에 보이는 사설보다는 일반 기사에서 드러나는 시각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그것이 알게 모르게 독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사설보다는 일반 기사를 위주로 연구하려하였다.그리고 모든 날짜에 기재된 일반 날짜의 기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간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었던 주요 사건들이나 신문마다 다른 의도가 명확히 보이는 기사들을 위주로 서술할 것이다.처음에 사용하려고 했던 이론은 Agenda-setting{) 대중매체가 수용자로 하여금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 지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으로써, 미디어 의제가 수용 자 의제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 과거에 비해 오늘날은 수용자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root가 많아져서 언론이 사회적 Agenda를 만들기가 힘들어졌으나, 여전히 잔존하며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이론 하나였으나, 조사를 하다 보니 한 쪽 신문에는 다루고 있으나, 다른 신문에는 다루지 않은 기사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Agenda-settng 이론을 바탕으로 하되, 두 신문의 News value{) 뉴스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것만이 뉴스가 된다는 개념으로, Gate Keeper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도 이야기 해 볼까 한다.신문은 종이신문을 구하려고 했으나, 3월의 신문은 구하기가 힘들고, 종이신문을 사용할 경우 스크랩을 따로 하고 인용을 따로 하면 읽는 데에 어려움이 생겨, 나의 생각을 표현하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 모두 인것은 천막당사 라는 하나의fact에 대해 두 신문이 각각 어떻게 다른 입장을 전달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이 천막으로 당사를 옮겨서 고생하면서도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있다 라는 시각을 설정하는 한편 한겨레는 한나라당이 또 가식적인 모습을 보여서 쇼를 하고 있다 라는 시각을 설정한 것을 알 수 있다.이렇게 기사의 부분만을 떼어놓고 차이점을 강조하기 위해 글을 쓰는 데에 사용하지 않고 만약 매일 같은 신문을 구독하던 독자가 앞에서부터 읽어나가면서 이 기사를 보았다면 아마 신문사 측에서 의도한 그대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할 때, 언론사의 의도는 성공적으로 독자에게 침투한 것이다{) 이것은 수용자 효과 이론 중 강 효과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효과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따로 다루 기로 하자..한나라 ‘차떼기’ 이전 지지율 회복 VS 盧대통령 고향서도 “야, 박근혜다”위의 것은 한겨레신문(전자)과 조선일보(후자)의 같은 날짜 신문의 같은 기사의 제목이다. 제목만 보아서는 두 신문이 서로 같은 사실을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두 기사는 모두 한나라당 특히 박근혜 대표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2)News Value신문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던 것은 한쪽에서는 기사를 다루고 있는데 한 쪽에서는 다루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나갔었으나, 돌이켜 보니 그것은 두 신문사가 생각하는 뉴스의 가치, 즉 News Value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News Value는 Agenda-setting에 못지 않게 커다란 입장차이를 가진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박근혜 선배님! 걱정됩니다”"탄핵 가결- 아버지 향수 자극"학생들은 편지에서 “몇몇의 따뜻한 봄을 위해 대다수 국민을 한겨울 살얼음판으로 몰아넣는 16대 국회를 보면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고, 이런 한국정치 중심에 선배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령 선거에서 지역적 몰표가 등장한 것을 바탕으로 등장한 이론으로 써, 자극(Stimulus)과 반응(Response) 사이에는 중개변인이 존재하는데, 그 중개변인에 따라 정보의 2단계 흐름이론과 태도 변용 이론으로 나뉜다. 정보의 2단계 흐름 이론은 미디어가 수 용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여론지도자가 존재하여, 그 여론지도자가 임 의로 정보를 변경할 수도 있다는 이론이며, 태도와 관련해서는 제한적이라는 제한효과이론의 범주 안에 속한다.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기사가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파악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대신에 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의견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의견지도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의견지도자라고까지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들이 하는 역할은 분명히 다른 네티즌들의 의견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는 지도자적인 그것이었다. 또 **님이 글을 쓰셨네요. 정말 명쾌하고 시원한 글이에요, @@님 말씀이 맞아요 등의 리플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그들의 특징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이미 기사화 된 내용을 비평하는 글을 주로 많이 쓰며, 명료하고 깔끔한 문장을 구사하여 독자가 그 글에 대해 신뢰성을 가지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정보의 2단계론에서 등장하는 의견지도자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기사화 된 내용을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여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면 잘 된 것으로,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것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림으로써,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에 따르게 만들기 때문이다.물론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올렸을 뿐이지만, 신문 기사 하나만을 읽는 것 보다 그 신문기사에 대한 피드백적인 성격의 글을 읽었을 때 독자는 신문기사보다는 논의 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자신과 마찬가지인 또 다른 한 독자의 생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잊기 쉬운 이러한 현재의 현상이 이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2)인 효과를 가지게 되지만 수용자는 그 의견지도자의 의견에 동의하게 되는 것은 의견지도자에 의해 강효과론 적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이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견지도자의 성격일 것이다. 그들에 따라 수용자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를 여전히 과거의 의미 그대로의 대중매체, 미디어 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시각을 바꾸어 의견지도자들 또한 미디어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하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Ⅲ. 결론이번 연구를 준비하면서 내가 가장 알고자 했던 것은 과연 조선일보가 사람들이 비난하는대로 보수적인 언론인가 하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내가 얻은 답은 No 였다.분명히 조선일보는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Agenda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의 Agenda에 맞는 기사들을 선택하여 보도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사람들에게 비난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흔히 진보신문이라 이야기하는 한겨레신문 역시 한겨레의 Agenda를 가지고 그 Agenda에 맞는 뉴스를 선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단지 보수정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부모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받았던 제일교포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여기에서 같이 생각해 볼 만한 문제는 언론의 다양화가 아닐까 한다. 요즘은 과거와는 달리 매스컴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접할 수 있는 매체도 많아졌다. 신문만 해도 아침에 지하철에서 나눠주는 작은 신문에서부터 오래 전부터 아직까지 남아있는 조,중,동 까지 종류는 두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언론이 이렇게 다양해지면서 많은 언론은 같은 사실을 두고도 서로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언제부터인지 사회적인 문제로 등장했다.그렇게 되면서부터 우리에게 필요하게 된 것은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언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론이 보수적인 것을 알아내는 것과 자신에게 맞는 언론을 고르는 것,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언론도 항상 회복
생명, 가장 평등하고 가장 소중한 것-독일의 생태시-1.들어가는 말내가꾀꼬리를 사랑하던 시절 -저 위에서 울려오던종소리, 나뭇잎 덮힌 집채 속으로잠잠히 가라앉았다.우리들 숲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적에,풀섶 위엔 빠알간 딸기들이주렁지고, 머리 희끗한 유대인마부가작은 마차를 몰고길을 지나갔다.해가 중천에 걸리면 소들은오리나무 칠흑같은 그늘 속에 서서,화가난 듯 꼬리를 탁탁 치며파리떼를 쫓고 있었다.그러다가 열린 하늘에서 강물이 밀려오듯,홍수가 쏟아졌고, 빗방울마다흙덩이처럼칙칙한 어둠의 맛이 스며 있었다.(.......)-요하네스 보브롭스키 -맑은 햇살아래 강물이 반짝이고 한가로이 새가 나는 전원, 그리고 그런 전원 속의 고향. 이 것이 이 시의 주된 모티브이다. 그리고 주된 정서는 정지용의 와 같은 포근함으로 나에게 다가왔다.하지만 그것은 과연 진실이었을까? 이 시인(요하네스 보브롭스키)의 시가 발표된 1950년대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 시는 허공을 향한 손짓임을 알 수 있다. 세계 제 2차대전 이후의 독일의 환경과 생태계는 급속도로 파괴되었고, 생태계는 그 자정능력마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보브롭스키의 이러한 노래는 동경하는 이상의 세계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힘들게 되었던 것이다.2.다른것과 구별되는 생태시, 생태주의우선 자연시와 생태시 사이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도록 하자. 얼핏 들으면 둘 사이에는 차이점이 없을 것 같이 느껴진다. 자연 과 생태 라는 것은 전부터 들어 익숙했던 단어이며 거의 생태는 자연의 하위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時 가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연시 와 생태시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강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자연시는 사진을 찍듯이 현실을 여과없이 진단하고 고백하는 생태시와는 달리 메타포나 상징, 리듬과 운율 등의 미학적 장치를 사용하여 자연을 실제보다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요하네스 보브롭스키의 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현실을 은폐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동시대의 사회현실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자연은 아름다운 이상속의 것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생태시의 정신적 바탕이 되는 생태주의 와 환경주의 역시 차이점이 존재한다. 환경주의는 정치, 경제, 문화와 관련된 기존의 정책과 의식구조,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토대 위에서 환경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는 난관주의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 성격은 보수적이며 개량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태주의는 그렇지 않다. 생태주의는 바닥에서 부터의 전면적 혁신을 주장하기 때문이다.3. 생태주의, 생태시그럼 지금부터는 비슷하게 들리지만 확연히 다른 생태주의와 생태시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생태시는 1950년대 이후에 발흥되기 시작하였다. 생태시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에른스트 헤겔으로써, 생태학 이라는 뜻의 kologie 와 시 라는 뜻의 Lyrik 이 합쳐진 단어이다. 생태시는 예술 지상주의에만 묶여있던 언어의 미학을 손상된 세계 로 끌어내려 미학의 저항 을 요구한 현대시의 대표적 유형이다.생태시의 정신적 밑바탕은 인간중심주의를 부정하는 생명중심주의의 사상이다. 모든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서 평등하다는 생각 아래 평등의식을 대중에게 일깨우고 보편화 시킴으로써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것은 생태시의 기본 정신인 만큼 모든 생태시의 밑바탕이긴 하지만, 특히 1960년대 생태시에서 잘 드러난다. 모든 종은 동등한 생명권을 가지고 있다는 생명중심주의 사고를 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과 자연은 불평등하다는 고정관념을 반성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한스 위르겐 하이제의 ,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어제 우리는마지막 남은 늑대들을 쏘아 죽였다이제들판은 영영 정복된 셈이다사과나무도 잔디도 우리의 것이 되었고세상은 온통 정원으로 변해가리라우리는 머리 속에 그려본다집 밑에들쥐들이 모여드는새로운 초원의징후를 -한스 위르겐 하이제의 전문-4. 하나의 모티브. 나무요즘 하는 TV광고 카피 중에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인다 는 카피가 자주 들린다. 물론 이 광고는 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나는 나무야말로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이고, 또한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전통적으로 나무는 인간과 더불어 세상을 구성해 왔다. 그러한 나무의 중요성은 김현승의 시 에서 잘 찾아 볼 수 있다.하느님이 지으신 자연 가운데우리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나무이다.그 모양이 우리를 꼭 닮았다.참나무는 튼튼한 어른들과 같고앵두나무의 키와 그 빨간 뺨은少年들과 같다.우리가 저물녘에 들에 나아가 종소리를들으며 긴 그림자를 늘이면나무들도 우리 옆에 서서 그 긴 그림자를늘인다.우리가 때때로 멀고 팍팍한 길을걸어가면나무들도 그 먼 길을 말없이 따라오지만,우리와 같이 위으로 위으로머리를 두르는 것은나무들도 언제부터인가 푸른 하늘을사랑하기 때문일까?가을이 되어 내가 팔을 벌려나의 지난 날을 기도로 뉘우치면,나무들도 저들의 반 손과 팔을 벌려치운 바람만 찬 서리를 받는다, 받는다.김현승 전문하지만 독일 생태시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나무의 현 주소는 그렇지 못하다. 울리 하르트의 나 하랄드 크루제의 , 발터 헬무트 프리츠 에서 보이는 나무의 현 주소는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하다.처음엔 나무들이눈 앞을 가로막아숲을 볼 수 없었지만나중엔 모든 나무들이뿌리 채 뽑히는 바람에더 이상 숲을 보지 못했다.콘크리트를 밟는 사람들은 알리라이곳에선 풀이 자라나는 소리가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을울리 하르트의 전문이 시의 나무의 모습은 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희생당하고 있다.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던 나무들이 인간중심적인 사고에 의해 희생당하는 모습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리며 식물과 인간의 정서적 교감 단절을 고발하는 것이다.도시 안에 또다시주차장들을 지어야 한다는군.무너지는 플라나터스 나무들그들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우리는 그들 곁에 있을 때마다친구로서 그들을 따뜻이 맞아주었거든.그 시절엔 나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 조차범죄나 다름없는 일이었지.나무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평화그들에게 깃드는 새들과 바람.그들이 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이란 있을수도 없는 일이었지발터 헬무트 프리츠 전문그리고 위의 시에서는 아름다웠던 과거의 자연을 예찬하고 있으며 또한 진한 그리움의 정서가 배어나온다. 과거의 자연친화적 세계를 그리워하는 의식의 흐름을 통해 잃어버린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희망을 노래한 것이다. 이 시는 희망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힘은 생명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5. 마치는 말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생태시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자연의 파괴는 하나의 현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일어나게 한 인간성 자체의 문제로 더 깊이 들어감으로 인간의 각성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즉 환경오염은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자연과 격리되었을 때 발생한 것이고 그 문제는 지구생태계의 망가짐에 따른 가시적인 멸망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다움의 상실의 문제로 이어진다. 현대의 생명 경시의 문제-인간관계의 피폐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간성의 문제는 인공적인 것으로 회복 불가능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르쉰의 과 체호프의 비교연구-주인공의 관념세계와 저자의 의도와 사상을 중심으로- 과 은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정신병원이라는 막힌 공간과, 그 막힌 공간을 상징하는 쇠창살의 이미지도 그러할뿐더러 그러한 막힌 공간의 의미가 확대되어 상징하는 것 또한 같다. 하지만 두 작품이 풍기는 이미지와 그 결말은 반대라고 해도 될 만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 두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 하자.1. 붉은 꽃이 글은 제목부터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붉은 색은 이 글의 중요 모티브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붉은 색은 희망이나 희생을 뜻하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처음 접하는 붉은 방도 주인공에게 지옥이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처럼 이 붉은 꽃처럼 마귀나 악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붉은 색이 사람의 감정을 격양시킨다는 점에서 붉은 색을 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우리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이름을 알 수 없다. 그것은 비단 주인공뿐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환자, 의사, 조수 등의 그들이 맡은 역할만을 부르고 있다. 이것에 대해 좀 생각을 해 보았는데, 직접적으로 이름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는 작가의 의도적 장치 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을 익명성의 표현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붉은 꽃의 주인공은 악을 상징하는{) 붉은 꽃(프린트) 450p. 「꽃은 그의 눈에는 일체의 악의 권화로 비쳤다. 그것은 죄도 없이 흘 린 피를 남김없이 빨아먹어 (그래서 저렇게 새빨간 것이다) 인류의 눈물이나 담즙까지도 샅샅 이 빨아먹었다.」 는 구절에서 주인공이 그 붉은 꽃을 악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붉은 꽃 세 송이를 꺾음으로써 세상의 악을 말소한다. 과거의 악과 현재의 악, 그리고 미래의 악을 상징하는 꽃 세 송이는 {) 붉은 꽃(프린트) p.454. 「꽃은 꽃잎을 다물고 이슬에 젖은 풀 속에 뚜렷이 떠오르면서 그 머 리를 검게 드러내 보였다.」 가는 장면이다. 앞의 두 송이는 꽃 이 피어 있었지만, 이 장면에서의 꽃은 아직 피지 않은 상태 -꽃잎을 다문 상태- 이므로 아직 열리지 않은 미래의 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주인공의 집착에 의해 꺾어졌고, 그 악을 다시 토해내지 못하도록 주인공의 품속에서 으스러져 소멸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꽃을 꺾어 악을 일소하는 주인공의 행위는 병원에 스스로 찾아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붉은 꽃(프린트) p.430. 「....본 정신 병원의 사열을 선포한다」,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여긴 이미 작년에도 당신들과 같이 오지 않았소」라는 주인공의 대사에서 주인공이 이 곳에 처음 온 것이 아니며,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병원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열 이 라는 단어를 사용하므로써, 자신 스스로가 악을 찾아내러 왔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2. 6호실6호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은 의사인 라긴이다. 하지만 그는 현실에 충실한 인물이기보다는 때가 지난 역사책이나 철학 책을 뒤적이는 약간의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모습을 가지고 있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 6호실의 환자인 그로모프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생각이 너무나도 이상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그것을 깨닫게 되고 라긴 역시 자폐증과 같은 증상을 보이다가 결국 6호실에 들어가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 은 보다 수량적으로 많기 때문인지 처럼 세부적인 소품에서 상징성을 찾기보다는 스토리 그대로를 상징화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내가 소품에 담긴 특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라긴이 과거를 답습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철이 지난 서적 과 쇠창살 정도였다.그 중 쇠창살은 의 쇠창살과 마찬가지로 실제 거리상으로는 정말 얼마 떨어지지 않은 두 공간을 확실하게 격리시키고 환자들을 구속, 억압한다. 이것은 당시의 인텔리겐쨔들을 억압했던 사회 제도를 상징한다고 확대해서 이해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3. 과 의 주인공두 글에서 주인공이 가장 눈에 띄게 다른 주인공은 정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목표했던 것을 이룬다. 하지만 에서의 주인공인 라긴은 그러하지 못하다. 라긴은 자신의 생각{) 6호실(프린트) p.212. 「인간의 평안과 만족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내부에 있으니까요」 라 는 라긴의 말은 에 「나는 영겁을 통해 삽니다. 나는 공간 이외에 살고 있고, 어느 곳에나 있고 또 어느 곳에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나를 이 곳에 가두어 두건 방면해 주건, 이 몸이 자유롭건 속박되어 있건 나에게는 마찬가지입니다.」 라고 한 주인공의 말과 거 의 일치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그로모프에게 현실적인 이유로 논박당한다.이 뜬구름과 같았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간다. 결국 자신의 의사 자리를 탐내던 호보또프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히고 나서 까지도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다.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쇠창살 너머로 밖을 바라보거나 쇠창살을 흔드는 것 정도이다.내가 생각하는 라긴의 그러한 행동의 이유는 그의 생각이 다 정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오랫동안 가졌던 생각이 흔들리는 것이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라긴이 그로모프를 만나기 전에 가졌던 생각은 자신의 선택대로 살아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의사가 되고, 부족함 없이 세상을 살았던 라긴으로써는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그로모프의 말에서 잘 알 수 있다. 6호실(프린트) p.212. 「그런 철학은 오렌지 꽃 피는 따스한 그리이스에 가서나 설교하시죠. 여기선 풍토가 맞지 않으니까요.」 라고 함으 로써 그로모프는 라긴의 철학에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비단 그 부분 뿐만이 아 니다. p.214에서도 「한 마디로 말해서 당신은 생활이란 걸 보지 않아서 생활을 전혀 모르고 있고 다만 이론적으로 현실을 알고 있음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로모프는 라긴의 비 현실성을 지적하고 있다. 나는 라긴의 이러한 철학은 부족함 없이 살아온 그의 결론으로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그리고 그러한 라긴의 철학은 미하부딪힘으로서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것이 무너져 가는 과정에서 라긴은 죽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라긴이 조금 더 살아있어서 그로모프와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면,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은 당시의 팍팍한 러시아 사회를 6호실이라는 공간으로, 그 사회의 억압적인 제도들을 쇠창살로 상징화했다. 폭력을 휘두루는 간수인 니끼따는 러시아 전제정권의 주구, 혹은 국가 기구의 폭력성을 나타내었고 모이세이까는 순박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민중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모이세이까가 니끼따에게 동냥해서 얻어온 돈을 털리는 것은 국가 권력의 횡포를 표현한 것이다.그리고 작품의 주된 두 인물인 라긴과 그로모프는 당시의 인텔리겐쨔들의 대표적인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 6호실은 체홉이 사할린 정치범수용소에 다녀오고 나서 쓴 작품으로서, 회의적인 지식인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Anton Pavlovich Chekhov과 그의 작품세계: 박혜정(서울시립대 영문과 석사과정)에서 발췌.사할린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그가 한때 공감했던 기독교적 사랑과 악에 대한 무저항을 주장하는 톨스토이즘이나 그 밖의 인도주의적 철학이 러시아의 여러 가지 문제점 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실질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공허함을 느끼고 돌아왔다 는 사실이다. 그는 러시아의 현실 개혁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 지식에 대해 크게 염증을 느 끼고, 톨스토이즘과 금욕적이고 자폐증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해 인간성 해방에 눈을 돌렸다.라긴과 그로모프는 현실을 타개하려는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붉은 꽃의 주인공은 쇠창살을 휘어뜨리고 밖으로 빠져나가 붉은 꽃을 꺾는데 반해, -앞에서도 말했듯이- 라긴은 쇠창살 밖을 바라보거나 잡고 흔드는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라긴에게 현실을 바라볼수 있도록 도와준 그로모프 역시 죽어서 귀신이 되어 무언가를 하겠다는, 당장 현실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이상적인 계획만을 가실을 보기 보다는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던 당시의 인텔리겐쨔의 모습을 닮아있다. 그리고 라긴은 체호프의 제 2의 자아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들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는 인텔리겐쨔의 무기반성(無基盤性){) 강명수의 논문 「가르쉰의 과 체호프의 에 드러난 공간과 주인공의 세계」 , p.110, p.112. 그리고 그러한 무기반성은 가르쉰의 < 아탈레아 프린셉스>라는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열대 지방에서 이식되어 유리온실에서 자라고 있는 이 야자수는 이미 표제에서부터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는 존재로 규정되고 있다. 종국에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을 라긴에게 투영시킴으로써 체호프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는 아나키스트를 떠올렸다. 정치 권력이나 정부의 지배를 부정하고, 절대적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는 아나키스트. 당시의 러시아 정부에 회의를 느낀 인텔리겐쨔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4.가르쉰과 체호프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가르쉰은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데에도 그러했다. 에서는 영웅 한 사람이 나타나 세상의 모든 악을 일소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리고 체호프의 은 결론을 내리고 이러이러하다 라고 말해주고 끝난 것이 아니지만 그가 사상적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상황이 타개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한 점에서 오히려 체호프의 생각이 현실에 가깝다고 하겠다.하지만 두 글의 창작의도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팍팍한 현실속의 그들에게는 탈출구가 필요했을 것이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그러한 현실을 일깨워 주고 싶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정신병원같이 좁고 작은, 게다가 음울하기까지한 러시아{) 6호실(프린트) p.189. 못을 거꾸로 박은 병원의 회색 담장이 가로막혀 있다.붉은 꽃(프린트) p.440. 좁은 병실에는 네 개나 다섯 개씩 침대가 놓여있었다. 그러니까 환자 를 밖으로 내어 보내지 않고 쇠창살로 된 바깥문을 꼭 닫아두고 겨울철 같은 때는, 병원 안은 견딜 수 다.
1. 가장 잘 발달한 프랑스의 절대주의30년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베스트팔리아 조약에 뒤이어 피레네 조약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위세를 자랑하게 되었다. 적대국이었던 에스파냐와 독일은 패배하여 세력이 약화되었다. 1800만의 유럽에서 가장 많은 주민과 충분히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산물, 번성하는 산업은 프랑스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왕권은 신이 준 것이라는 왕권 신수설을 바탕으로 한 절대주의는 루이 14세에 극치에 이른다. 특히 그는 그 유명한 짐이 곧 국가이다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절대왕권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는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만들고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최종 결정권은 자신이 보유했다. 그러한 절대주의 원칙들은 경제에도 적용되었는데, 무역회사들도 국가가 설립함으로써, 원료의 안정된 공급을 위해 식민지 팽창의 토대를 닦기도 하고 그는 프랑스 교회의 세력마저 영도한다. 그리고 그러한 절대주의는 예술과 학문에서도 승리하여 문학과 예술의 창작목적을 왕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으로 변모시키기도 했다.2. 프랑스 혁명1)발발이유-귀족과 성직자가 많은 특권을 향유하고 있었으며 제 3신분인 평민은 국가의 재정을 부담하였으나 정치 참여가 배제되어 있었다. 거기에 계몽 사상과 미국 혁명의 영향으로 시민 계급의 개혁이 요구되고 있었다.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국가 재정의 위기로 국왕이 삼부회를 소집한데 있다 하겠다.2)진행과정-평민 대표로 구성된 국민 의회가 결성되었으나 국왕의 탄압을 받았다. 그리하여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것이 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그리고 혁명의 기본 정신을 표현한 프랑스 인권선언이 발표되고 입헌 군주제가 채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