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은*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2
검색어 입력폼
  • 자살 -기독교적 관점포함
    얼마 전 수학 능력 시험이 끝나고 성적을 비관하여 어느 건물에서 뛰어내린 여고생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요즘 뉴스에는 누군가가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온다. 어느 대기업의 회장이 회사의 경영난으로 인하여 몸을 던져 버린 일과 부모가 아이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해버리는 등의 이야기는 뉴스에서 자주 들어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남의 죽음까지도 익숙해져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을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일까?나는 자살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자살이 죄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살의 개념을 조금은 나눌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한 사람이지만 사회적으로 많은 저항을 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들은 앞으로 내가 말 할 자살의 일반적인 예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두어야 할 것 같다. 예컨데 일제시대 조국의 광복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의 자살, 노동인권의 신장을 위해 온 몸을 불태운 전태일 등의 몇몇 사람들의 자살은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분들은 정말 죽음을 원해서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상황에서 살기를 바라고 자신도 더 좋은 상황에서 살기를 바랐던, 죽음이 아닌 삶을 갈망하신 분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자살이 아닌 여름에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사람의 모습처럼 여겨진다.그러나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서의 자살은 죄이며 잘못된 것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닥친 위기 상황은 힘들고 버겁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여고생에게는 앞으로 많이 노력하여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청춘이 있었고, 대기업 회장에게는 그 간 회사가 경영난을 겪었다고 할지라도 큰 기업을 이끌 수 있는 경력과 능력이 있었으며, 아이들을 살해하고 자살한 부모에게는 비록 잘못된 판단이었지만 그만큼 힘든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자식에 대한 큰사랑이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잘하는 것이나 남보다 유리한 점하고 자살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절망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가진 외로움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적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더 이상 추구할 쾌락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한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살이 일어나는 원인은 그 당사자만이 알 수 있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단지 추측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당사자가 생각하기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일지 몰라도 내가 생각했을 때는 다른 사람이 그 상황에 처해있다고해서 그 사람마저도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전처를 밟을 것 같지는 않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상황의 절망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이들이 자살을 할 것이라 상상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에 삶의 의지를 잃고 생을 포기하는 일도 있겠지만 그 반면, 그 상황을 새로운 기회로 삼아 도약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로움도 마찬가지이다. 동등한 상황에서 그 상황을 즐기는 이도 있을 것이고 그 상황을 못 견디게 힘들어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 있어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극복하는 이도 있고 그것에 좌절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똑같은 컵에 물이 반이 차있다고 할 때 '반이나 있다'고 하는 것과 '반 밖에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인식의 차이 때문에 자살이 생긴다는 것이다. 개인의 의지 차이도 자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헨리 뉴엔 신부가 장애우들의 공동체인 라르슈에 머물 때 일기에 이런 구절을 적었다고 한다. '네 스스로를 판단하지 말라. 너 자신을 단죄하지 말라. 너 자신을 배척하지 말라.' 이 말처럼 자기 스스로 자신을 판단하여 비하하는 일없이 사회적인 상황이 아무리 메말라 있어도 조금 더 큰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자살이 급증하는 원인은 개인에게도 있지만 사회적으로도 그 책임이 막강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 60년대보다는 훨씬 나아진 경제 수준이지만 그 시절에는 노력하면 잘 살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 있었고 현재는 잘 사는 사람은 계속해서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계속해서 못산다는 좌절감이 팽배해져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살은 거의가 아노미적 자살인 것이다. 얼마 전 자살사이트가 유행을 하면서 이런 사이트를 통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린 사례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사이트가 유행처럼 번질 정도로 사람들은 점점 메말라가고 있고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우선 나부터도 뉴스에 나오는 남의 죽음의 소식을 들으면 '오늘도 어디서 누군가가 죽었군'이라는 생각만 들뿐이지 그 이상의 생각이 들어서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는 잘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 어떤 일을 하려해도 자신의 생명이 우선적으로 주어져야 가능한 일인데 이렇게 기본적인 조건을 포기하면서까지 왜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삶을 버리고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점점 바쁜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사람들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여유가 없어졌고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가는 이들이 생기게 되었다. 어린 자식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한 어머니가 이웃집 할머니에게 "교회를 다니면 마음이 편해요?"하고 물었다는 보도는 사람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절박한 이의 눈에조차 쉽게 띄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사회구조자체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즉 인정이 메말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빈부의 차이가 가져오는 상대적인 박탈감도 큰 이유로 작용할 것이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도덕적인 규범 또한 흔들리게 되고 이것이 생명의 존귀함마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늘어가는 자살의 책임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우리는 흔히 자살하는 사람을 보고 '죽을 바에는 그 정신으로 산다'는 말을 한다. 나도 늘 그런 생각을 해왔고 자살한 사람들의 고민 같은 것다. 이전 같으면 나도 자살에 이르는 사람을 그저 무감각하게 살아가는데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하며 한심해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제를 하면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기까지는 얼마나 어려운 고민이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를 넘는 일인데 쉽게 선택하는 사람은 정말 충동적이지 않고서야 잘 없을 것이다. 그런 고민을 사회가 등 뒤돌아 모른 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도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이 사회에 필요한 일원임을 알아야 하고 사회도 그런 이들을 포근히 안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뉴스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은 희망이 없기 때문에 한다는 말을 들었다. 주위의 사람이 희망을 줄 수 있는 작은 한마디라도 해준다면, 우리 모두가 마음을 열고 희망이 없어서 죽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희망의 메시지라도 줄 수 있다면 자살율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그렇다면 여러 종교계에서는 자살을 어떻게 바라볼까? 대부분의 유신론적 종교에서는 자살을 신에 대한 죄이며, 벌받을 행동으로 생각한다. 스스로 생명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릴 권리 역시 없다는 것이다. 유신론적 종교에서는 자살은 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중세 기독교에서도 자살한 사람의 교회 예식에 따른 장례식은 거부되었으며 이슬람교 역시 경전을 근거로 하여 자살을 비난한다. 인도의 윤회론 자들도 인간의 업보가 육체의 소멸과 함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여 자살을 비난했고 불가에서의 해탈이라는 개념도 육체가 다해 정신과 분리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자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수양하여 무(無)에 이르기 위해 집착을 버리는 것이 해탈인데 자살은 그것이 아닌 현실에서의 도피이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자살은 자살한 사람이 자신의 업보를 치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살한 사람은 자살할 수밖에 없도록 살아왔고, 그 결과 자기 목숨을 끊었다는 말이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등도 자살을 비난했다.그러나 자살을 죄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다. 또한 자살을 인간의 자유의 시각에서 긍정하는 이도 있는데 이들은 자살이 인간의 권리라고 주장한다. 신이 생명을 주셨다면 자신이 선택하여 죽을 수 있는 권리도 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에 관한 법안이 통과되었다. 인간은 존엄하게 살 권리도 있지만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이 인간이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또한 법으로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위협받고 있다.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어떻게 바라볼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자살을 죄라고 생각한다. 도덕 신학적 교리전통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근거하여,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생명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절대적이시며,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대여 받았을 뿐, 생명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받지는 못했다고 주장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세 가지 이유에 근거하여 자살을 반대했는데 그 첫째는 인간이 자기사랑, 자기보전으로 이것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의무라고 했다. 둘째는 인간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으며 셋째로 생명의 처리권한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은 인간의 권한 밖인 것이다. 여러 자료들을 찾아본 결과 기독교인들은 올바른 기독교인이라면 자살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살한 사람들이 가지는 마음은 나쁜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몰랐기 때문에 온다는 것이다. 어쩌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했고 모든 것에는 길이 있다고 했다. 삶 역시 다를 바 없다. 사람이 따라야 하는 길이 있고 그대로 살아야 제대로 살고 제대로 죽는다. 그런데 그 길을 알려주시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기독교인들은 말한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신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간다면 사람은 결코 자살을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기독교인들은 자살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그 믿음을 따라.
    사회과학| 2003.11.29| 6페이지| 1,000원| 조회(533)
    미리보기
  • [감상문] 태교 평가A좋아요
    이 비디오를 보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계획적인 임신의 중요성이었다. 아이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비디오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능력이 있는 부모아래서 자라난 자식은 태어나기 전부터 많은 준비와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이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비디오에서는 태교와 아이의 뇌 발달의 관련성에 관해서 보여줬는데 이전부터 태교의 중요성은 익히 들어 알고있었지만 비디오를 시청한 후 다시금 그 중요성에 관하여 깨닫게 되었다. 태교도 무작정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태아와 태아의 뇌 발달 단계에 따른 태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뇌에는 1천억 개의 세포가 있으며 태아기에 모든 뇌 세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나니 태교에도 어느 정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태아도 가족을 느낄 수 있는지에 관한 실험을 할 때 아이가 엄마의 심장 소리, 장에서 나는 소리, 산모의 동맥 혈류 소리 등을 듣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래서 산모는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산모가 음악을 들으면 α파가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엄마와 아기의 심장 박동수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안다면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정서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또한 산모의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실험에서도 알 수 있었다. 이 실험에서 쥐를 좋은 환경 그룹, 보통 그룹, 스트레스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쥐가 스트레스 그룹에서 태어난 쥐보다 뇌 무게가 더 많이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스트레스 그룹에서 태어난 16마리의 쥐 중 2마리가 기형이라는 것을 보니 태교와 산모의 안정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쥐는 출생 후 나쁜 환경에 있어도 운동 능력이 어느 정도 떨어지기는 하지만 방어력이 높아서 괜찮았던 반면에 스트레스 그룹의 쥐들은 출생 후 좋은 환경을 마련해줘도 회복이 되지 않았다. 이를 통해서 아이를 낳은 후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가졌을 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독후감/창작| 2003.11.29| 1페이지| 1,000원| 조회(632)
    미리보기
  • [문학]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는 7년의 터울로 태어났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두 사람은 한번도 서로를 만나지 못했다. 동시대를 살면서 그들은 서로에 관해서 어떻게 느꼈을까? 그들은 비록 만나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칭찬했다. 책이 나오면 읽고 공감하고 극찬했다. '같은 시대 두 천재가 만났더라면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을 텐데...'하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처럼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서로가 만나지 못했던 이유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문학에 그의 인생을 모두 걸었던 반면에 톨스토이는 문학 외적인 여러 방면으로도 관심을 기울여 문단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두 사람을 문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더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감히 누가 이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평가 내린다는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가 문학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면 톨스토이 또한 다른 의미로 여러 독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므로 누가 더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이 두 사람의 성장배경은 조금 다르다. 톨스토이가 부유한 귀족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톨스토이에 비하면 부유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는 것은 두 사람이 비슷한데 이에 관한 태도는 또한 사뭇 다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버지는 비교적 엄했다. 어릴 때 환자들과도 이야기 나누고 싶고 사람과 대화하고 싶었지만 엄한 아버지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에 대해서 한평생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충격이 큰 탓도 있겠지만 평소 엄한 아버지에 대해 사랑을 많이 느끼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아버지는 자상했는데 톨스토이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매우 사랑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어느 만큼 깊은지 모르고 있었다는 그의 말은 그가 아버지께 느낀 사랑을 보여준다.도스토예프스키의 성격은 깔끔하고 깨끗했다고 한다. 언제나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하루 일과도 규칙적이었다. 또한 그는 가족을 많이 사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간질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는데 그의 성격에 양면성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간질 환자는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부족해서 평소 생활에는 절도가 있고 단정하다. 그러나 결벽증 같은 것이 있어서 이치에 맞지 않거나 도리에 어긋난 것은 용서하지 못하는데 그의 성격의 원형은 그의 지병에 있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톨스토이는 내성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아집이 강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타협할 줄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 다른 귀족과 마찬가지로 그의 부모와 가정교사에 의해 수업을 받았는데 가정교사에 의해 이런 성격이 형성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의 가정교사는 냉정한 성품을 가지고 엄격한 규칙을 만들고 시간표를 작성해서 톨스토이에게 강요했는데 이것이 어긋날 때면 회초리로 때리거나 방에 감금하는 등의 처벌을 내렸다. 그는 이런 것에 큰 반감을 품었고 어떤 때는 반항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그는 누구에게든 강요당하거나 설득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을 지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신이 스스로 지켜야 하는 사항들을 만들기도 했는데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서 자신을 묶거나 즐기고는 했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소 깔끔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데 비해서 톨스토이는 스스로가 규칙을 만들고 그것에 대해 반성하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이것이 두 사람 성격의 큰 차이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유아교육과'라서 그런지 어릴 때의 경험은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내가 죽어서 누군가 내 모습을 쓸 때 내 성격은 어떻게 쓰여질까?' 하고 생각하니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이 두 사람은 작품 모티프도 서로 비슷한 경향을 띄고 있다. 톨스토이가 『부활』을 쓰게 된 동기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을 쓰게 된 동기는 '돈'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개인적으로 돈이 필요했었고 톨스토이는 사회운동을 위해서 돈이 필요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때 아주 빈곤한 처지에 놓여있었는데 돈이 절박할 때 작품을 구상하다 보니 돈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라스꼴리니코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톨스토이의 작품은 실화를 소재로 작품을 써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이 제목을 통해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도 서로 비슷한 면인데 『죄와 벌』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저지르는 죄와 죄진 자에 대한 법의 문제를 주제로 하여 썼고 톨스토이도 역시 그 점에서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인간의 부활도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주제로 하여 썼다고 할 수 있다.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코프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도스토예프스키적 인물이고 『부활』의 네프류도프 역시 톨스토이가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이다. 라스꼴리니코프는 간질을 앓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성격적 특징을 반영하고 네프류도프는 비판적인 성향을 띠는 톨스토이의 개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각자 구원받는다는 점도 비슷한데 이런 과정을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는 작품 속에서 추구하는 가운데 여러 문제점을 제시했다. 그들이 제시한 것 중 일치하는 것은 바로 인간성 회복이다.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러시아는 부조리한 사회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이들은 스스로 그런 것들을 느끼고 작품 속에 그 문제점들을 나타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내면적인 성찰에 의해 인간의 선과 악에 관해 토로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약화된 것에 대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면서 러시아의 모습에 대비시켰다. 톨스토이는 밖으로 보이는 사회 부조리에 관하여 많은 것을 느끼고 그가 생각하는 방안을 그의 글 속에 쓰고 표현하려 했었다. 『부활』에서 톨스토이는 토지 문제에 관해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산 것도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재산이라기 보다는 백성들의 재산이라는 인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러시아의 부조리와 죄악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랑으로 속죄하려 했다면 톨스토이는 행동으로써 속죄하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를 가리켜 지식 계급의 대표작가라고 부르고 톨스토이는 러시아 정신의 표현자라고 말하는 것이다.『부활』에서 네흘류도프는 꺄츄사의 타락 원인이 자기의 무책임한 행동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녀의 감형운동을 위해 감옥에 드나드는 동안에 그는 도움을 바라는 무고한 죄인들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냉혹한 불합리를 목격하게 된다. 일신상의 정리를 위해 자기 영지에 내려가서 농촌의 궁핍을 눈앞에 보게 되고 그 동안 귀족 사회의 경박함과 부패를 인식하게 되는데 재판소에서의 인상이 사회 비판과 현대 문명에 대한 규탄으로까지 확대된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생활들은 당시의 사회를 아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귀족의 모습은 혁명이 불가피했음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한 러시아 정교회의 공허함이 풍자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부활은 러시아의 부정인 동시에 새로운 러시아의 예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불완전한 사회제도 아래 신음하던 국민의 이상과 고통과 양심이 작가의 양심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다. 톨스토이가 러시아 정교회를 공격하자 그는 파문 당함에 이르렀다. 그는 교회의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고 교회 자체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가 파문 당한 후 그는 어떠한 권력도 신으로부터 자신을 파문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성명으로 응수했다. 그는 인간이 불화와 위선을 버리고 자유로운 협조와 형제애를 소중히 여기려고 애쓰기만 한다면 이 지상에서도 신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예체능| 2003.11.29| 4페이지| 1,000원| 조회(614)
    미리보기
  • 빈센트 반 고흐 평가A좋아요
    수업시간에 접하게 된 빈센트 반 고흐... 고등학교 때 그에 관한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에 관해 더 많이 알아보고 싶었다. 이번 리포트를 통해 그에 관해 알게되면서 그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발전하는 서구시대는 부르주아의 시대였다. 그들은 그림을 장식용으로 생각했으며 고흐는 미술계층의 장식 취미에 관하여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다. 당연히 그런 이유가 고흐에게 있어 미술은 그의 전부였고 그가 신성시했던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 지는 지금의 나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처음부터 고흐가 화가의 길로 들어 선 것은 아니었다. 그의 성격은 매우 예민하고 순수했던 것 같다. 사랑했던 여자에게 거절당한 일로 인생의 좌절까지 느낀 고흐는 그 일로 인생과 사회에 대한 인식까지 바뀌어버린다. 그는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살아가기로 마음먹고 목사인 아버지의 일을 대물림하려했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예수의 임무와 동일시하였고 그에 따라 불행한 자를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집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어주고 땅바닥에서 잠을 드는 그의 지나친 희생정신을 광부들은 의아해하고 부담스러워했다. 탄광 폭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안전은 생각하지 않고 위험한 탄광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구하려 했던 그를 사람들은 마침내 비웃기까지 했다. 그 후 그는 추방당하듯 떠날 수밖에 없었다. 현재 그가 추방당했던 곳에 고흐 기념관이 세워져 있는데 이걸 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도대체 나는 무엇에 쓸모가 있는 것일까, 내 속에는 분명히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는데... 나는 크레용을 집고 다시 그림을 시작하겠다' 27세의 나이에 고흐는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화가로는 늦은 출발이었으나 2년에 200여 작품을 남겼을 만큼 그는 이미 사회, 문화적으로 성숙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림을 그림에 있어 평생동안 그를 괴롭힌 것은 정신적인 발작과 경제적인 궁핍이었다. 발전하는 시대, 예술의 후원자없이 그림을 한다는 것은 외로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려 먹고 살수 있다면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는 그의 말은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네덜란드에서의 그의 초기작품들에는 자연주의가 잘 나타나는데 테오에게 쓴 편지 중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란 작품에서 손의 노동을 표현하는 동시에 저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스스로의 양식을 얻어들였는가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대지, 노동, 인간에 대한 사랑의 길을 미술에서 실현하기를 바랬다.이 시절 고흐에게는 두 번째의 사랑이 찾아오는데 주인공은 외사촌 케이 보스였다. 그녀는 고흐가 집요하게 구혼을 하자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를 아버지를 통해 전한다. 편지를 읽은 고흐는 타고 있는 석유램프 불 속에 손을 넣고 케이를 데려 오라고 했다. 이것은 분노를 자학적으로 처리하는 고흐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흐의 성격은 사회생활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면이 많다. 그 한 일화가 모베에 관한 일이었는데 모베가 그림연습을 위해 석고상을 그리라고 하자 자신은 죽어있는 것은 죽어도 못 그린다고 하며 결별해 버렸다. 하지만 모베가 죽자 자기 그림 중 가장 좋은 그림을 '모베에게 드림'이라고 써서 그를 애도했다. 고흐는 마음이 여리고, 개성이 강했다. 속마음에는 정이 있었음이 보여진다. 또한 고흐의 주된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을 위대한 사람으로 보았다.1886년 고흐는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를 찾아 파리로 떠난다. 이때 2년간 동생 테오와 동거를 하게 된다. 이 시절이 그나마 사교적인 생활을 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생활은 싸움과 갈등, 무질서, 독한 술로 엉망이었다. 결국 동생 테오조차도 형이 떠나주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 고흐는 사교적인 사회생활에서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은 이러했지만 파리시절에도 그의 그림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었다. 2년 동안에 2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 이 때 고흐의 그림의 가장 큰 변화는 그림의 대상이 술집, 거리등으로 달라진 것과 어두운 색채의 사용에서 광선, 색채의 세계로 달라졌다는 점이다. 신인상파의 영향을 받아서 더 밝고 서정적인 그림 화풍을 볼 수 있다.파리 생활에 지쳐갈 때쯤 고흐는 아를르로 떠난다. '나는 왜 35살에 와서야 아를르에 오게 되었을까...'라는 고흐의 말을 통해 그가 이 곳을 얼마나 좋아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시절은 고흐의 창작생활의 절정을 이루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15개월 동안 190여 작품을 남겼다. 이 때 가장 큰 특징은 '해바라기'인데 해바라기를 통하여 자연, 노동, 인간을 미술로 승화시킨 세계를 보여주려 애썼다. 또한 2년간 22점의 자화상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나 내면세계를 늘 확인하려 했던 고흐를 알 수 있다. 해바라기나 자화상에는 선, 소용돌이치는 점들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의 불안한 영혼을 말하는 듯하다.이 시절 고흐는 홀로 가기에는 험난한 예술의 세계를 고갱과 공동작업을 통해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서로 모든 게 너무 다른 두 천재들은 모든 것이 맞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비극적인 파국을 맞이한다. 고흐가 고갱과의 언쟁 끝에 발작을 일으켜 귀를 잘라 버렸기 때문이다.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는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결국은 여러 가지 일이 복합적으로 일어나서 그것에 대한 자학적인 처벌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이 후 발작에 대한 걱정으로 고흐는 생레미 요양원에서 지내게 된다. 이 시절 1년 동안에도 150여 작품을 남겼다. 아를르가 해바라기의 시대였다면 생레미는 측백나무 연작의 시대였다. 또한 이때 남긴 명작이 '별이 총총한 밤'이다. 이 시절의 그림은 다시 어두워졌다. 별을 통하여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고흐...그는 밤은 낮보다 더 생생하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그림을 보면 슬픈 느낌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
    인문/어학| 2003.11.29| 5페이지| 1,000원| 조회(703)
    미리보기
  • [기행문] 옥산 서원
    옥산 서원을 다녀와서..일년에 두 세 번 정도 차를 타고 시골집을 가면서 매번 봤던 표지판이 옥산서원이었다. 서원과 시골집은 한시간 정도의 거리를 두고있지만 가는 길에 표지판을 봤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게 난다. 옥산서원에는 어렸을 때 갔던 기억이 난다. 관광차 갔었는데 그 때는 너무 어려서 서원의 의미조차도 알 지 못했다. 이번 과제를 하게 되면서 서원의 기능도 새로 알게 되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옥산서원은 나의 선조이기도 한 16세기의 유학자 이언적을 모신 곳이다. 그래서 서원을 알아보며 느낌도 남달랐다. 아무 의미도 없이 느껴진 건물 하나 하나와 편액, 그리고 나무들까지도 과제를 하면서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원은 현재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방문을 하려면 미리 전화를 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정말 서원을 견학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말았다. 하지만 그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많은 자료를 보게 되었는데 집에서 자료를 보고 이미지들을 감상하니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옥산서원은 화개산, 자옥산, 무옥산, 도덕산 등 4개의 명산이 에워싼 명당에 중심대, 탁영대, 관어대, 영귀대, 영심대 등 5대(臺)로 불리는 반석이 계곡을 꾸미고 있는 4산 5대의 경승지다. 서원을 둘러싼 4개의 산을 배경으로 서원 앞을 흐르는 계곡에는 외나무다리가 있는데 원래는 이 곳이 서원을 출입하는 문이었다고 한다. 옥산서원은 몸과 마음가짐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다음에 서원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서원의 출입법도를 잘 알고 차분히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외나무다리를 건너면 세심대에서 마음을 씻어야 하는데 관어대, 탁어대, 영위대, 정심대 등 옥산서원의 다섯 대 중 이곳으로만 물이 흐르지 않았다고 한다. 세심대를 지나 서원정문인 역락문으로 들어서면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겸허히 한 후 들어가야 하는데 문을 들어서면 계곡에서 끌어온 물에 깨끗이 손을 씻어야 한다. 역락문은 논어의 첫머리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 "배워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벗이 있어 멀리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유명자원방래 불역락호),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치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인불지이불온 불역군자호)"에서 온 것이라 한다.역락문을 지나 정문으로 들어서면 2층 규모의 누각건물인 무변루가 있다. 무변루는 구조가 독특한데, 가운데 3칸은 아래위 모두 틔워 출입문과 대청으로 활용하고, 그 양쪽 1칸씩은 벽체로 막아 아래는 아궁이와 굴뚝을 설치하고 위는 온돌방을 들였으며, 양 끝의 1칸씩은 몸태에서 달아 내어 누마루를 돌리고 부섭지붕을 얹은 형태다. 대체로 누각건물이 개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것에 비해 무변루는 모두 개방이 제한적인 형태로 약간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무변루는 강당인 구인당과 마주하고 있는데, 가운테 3칸은 모두 틔워져 있고 그 양쪽 1칸씩은 막혀있다. 무변루를 지나면 서원의 조명을 밝히려고 횃불 등을 올려놓던 정료대가 있는 강당 마당이 나온다. 구인당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눈에 띄는 건축학적 특징은 없어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강당 뒤편에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사당 영역이 자리잡고 있는데, 사당, 체인묘, 전사청이 있는 이곳은 일반인에게는 개방하지 않는다고 한다.예전에 농기구에 관한 자료를 모으다가 박물관에서 안내해주시는 선생님께서 서원의 기능은 강학의 기능도 있지만 제향의 기능도 있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그 때 건축물들을 봤을 때도 밑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모두 흰색으로 별로 꾸밈없이 단정한 모습이 눈에 띄였지만 사당의 모습은 칠도 되어져 있어 서원의 건축 구조를 볼수 있었는데 옥산 서원은 다른 서원과 기본 구조는 같지만 건축양식이 조금 다른데 그래도 본 기능은 그대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어학| 2003.11.29| 2페이지| 1,000원| 조회(456)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3
3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1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9:03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