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토다케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4월 18일, 고3 중간고사를 치르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그 날도 중간고사를 잘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공부를 하다가 공부에 지친 나머지 TV를 틀었는데 그 때 TV에 나온 한 청년을 보게 되었다. 팔도 없고, 다리도 없고, 그런데 너무나 해맑게 웃는 한 사람, 그가 바로 오토다케 히로타다(이후 ‘오토’로 기록)였다. 오토의 모습은 나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팔 다리가 없는 사람이 어찌 저렇게 잘 다닐 수 있으며, 또한 어떻게 저렇게 행복한 모습인지.. 고3 수험생의 스트레스를 받는 그 시점에서 오토의 모습은 나와는 너무 먼 얘기일 뿐,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그럴 것이다.’ 라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론을 맺고 넘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2년 전, 특수교육시간에 다시 한 번 오토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때는 고3때와는 달리 특수교육을 배우는 학습자 입장에서 보다보니 오토 자체보다는 오토의 주변 환경이라던가, 그 가운데서 장애우들의 삶을 위주로 보게 되었었다. 그러다 이번 특별활동 강의 덕에 다시 한 번 오토와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교대 4학년이 되었고, 예비 선생님으로서 준비를 하는 시기다보니 오토와의 만남보다는 오토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다카기 선생님과 오카 선생님의 모습이 주로 눈에 띄게 되었다. 오토가 현재의 모습을 이룩하게 된 것은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신념의 영향도 많은 작용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독후감에선 오토의 초등학교 선생님의 모습을 살펴보고, 나는 어떻게 초등학교 교사로서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오토의 초등학교 선생님은 두 분이셨다. 오토가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는 다카기 선생님이, 그리고 5,6학년 때는 오카 선생님이 오토의 담임선생님이셨다. 이 두 선생님은 오토를 이끌어 가는 데에 다른 방법을 취하셨다. 먼저 다카기 선생님은 도와주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독립심을 길러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분명 오토는 장애우이므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계셨음이 분명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장애우들은 장애우를 보면 “안됐네~” 혹은 “불쌍하다~”라는 생각을 하며 장애우들이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자신의 생각으로 장애우들을 대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래서 “장애우 = 무능력자”라고 정의해버리는 사태가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다카기 선생님은 그러한 생각에서도 앞으로의 오토의 모습을 보신 것이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게 한다면 학급의 단결 측면에서는 분명히 도움이 되지만, 오토 자신에게는 타인의 도움을 당연시 여기는 상황이 될 수 있음을 다카기 선생님은 판단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토에게 자립심을 길러주기 위한 방법을 취하심으로써, 오토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면서 못하는 일은 학급에서 함께 해 나가는, 그러면서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한편, 오카 선생님은 오토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구별하여 오토만의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아무래도 오토가 고학년이 되면서 성장속도가 빨라지는 나이가 되다보니,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 현실적으로 많이 줄어든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서, 오토가 할 수 없는 일을 오토가 할 수 있는 일로 대체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쉽게 판단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진데, 오카 선생님은 아이들의 발달단계까지 고려하면서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을 시키고 있음이 오토를 통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두 선생님들의 모습은 대충 이렇다. 두 분 다 자신의 교육적인 신념을 오토를 이끄는 방법에 반영했지만, 두 분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오토를 특별하게 대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일반 학생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또한 오토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였다는 것, 오토의 현재모습보다는 미래의 오토를 보면서 교육을 한 것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공통점은 두 분의 선생님 모두 오토를 장애를 가진 학생이라고 보기보다는 다른 학생보다 조금 불편한 학생으로 인식한 듯 하다. 사실 이러한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나에게 상당한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내가 2년 전 특수학교로 봉사를 나갔었던 경우를 생각해보면, 보조교사로 아이들 앞에 서 있었지만, 결국 나는 아이들의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데는 실패를 하였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물론 그 친구들은 오토와는 달리 중증 정신지체 아동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난 그들을 단지 조금 불편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장애 때문에 할 수 없는 게 많은 사람들로 인식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싶은 나에게 이러한 생각이 있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이끈 다카기 선생님이나 아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서 지도한 오카 선생님과 비교해서 보면 역시 난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지도할 때 있어서 오카선생님처럼 선생님으로서의 권위나 체면보다는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교실마루바닥에 털썩 앉을 수 있는 용기는 아직 내게는 없다. 아마도 앉게 된다면 그나마 쪼그리고 앉게 되지 않을까?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눈높이로 바라보는 것은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한걸음 내딛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다카기 선생님이나 오카 선생님만큼의 능력도, 그리고 그만한 열정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학교에 교과목이 없다면? 그리고 학년이 없다면? 시험이나 숙제가 없다면? 방학이 자주 있다면? 아마 우리가 학교 다녔을 때를 생각해보면 위에 언급한 것이 적용되는 학교를 동경해왔을 것이다. 나 또한도 아주 많이 동경했었다. 내가 사는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고등학교도 대학교처럼 지원해서 시험보고 들어갔기 때문에 더더욱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학교에 대한 안 좋은 추억들이 나름대로 많았다. 그래도 저런 학교는 존재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나를 비롯한 친구들의 생각이어서 그냥 “이 지긋지긋한 학교, 빨리 졸업이나 해야지.”하는 나름대로의 목표 아닌 목표를 가지고 학교를 다녔었던 것이 생각이 난다. 그러나 시험도 없고 숙제도 없는 학교는 있었다. 서머힐 학교, 발도르프 학교, 일본의 키노쿠니, 우리나라에선 반디학교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내가 학교에 다녔을 때는 이런 대안학교가 많이 언급되지 못했었는데, 지금의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는 이러한 학교의 필요성이 많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학교의 모습은 어떠할까? ‘키노쿠니 어린이 마을’을 통해서 키노쿠니의 모습을 살펴보고, 현재 교육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 알아보겠다.키노쿠니는 체험학습을 위주로 하면서 아이들에게 교육을 한다. 그래서 교과목의 필요가 없다. 매년 초, 4개의 프로젝트 학급이 구성이 된다. 학생들은 한 달 정도 구경도 하고, 관심을 가지고 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선정한다. 이러한 것을 하려면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가 그만큼 전문성을 띄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사의 능력이 되는 것으로 프로젝트 팀을 만들기 때문에 교사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점이 바로 여기이다. 우리의 교육현실에 비추어 봤을 때,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필요는 많이 느끼지만, 그 전문성을 발휘하기 보다는 교과서 내용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교육에서는 이러한 전문성이 그다지 많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키노쿠니 선생님들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선생님 자신이 가진 관심 분야를 준비해가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고, 그러면서 선생님 자신도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높은 이상을 갖지 않았다. 그것은 높은 이상이 아이들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되고, 아이들이 그러한 이상에 구속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완벽을 요구하기 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기쁨을 택한 것으로, 교사에게는 그러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아마 이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글이나 말, 수 같은 기초학습은 어떻게 지도합니까? 나 또한도 이것이 궁금했다. 아이들의 흥미 위주의 수업은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잘못하면 기초학습에 대한 것을 소홀히 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체험학습이 단순한 체험학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초학습과 연결되서 이뤄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똑같이 나눠야 한다면 우리들은 전체의 길이를 잰 후 그것을 몇등분 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할 것이다. 그러나 키노쿠니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그것을 접거나 하는 활동을 통해서 스스로 발견하고 있었다. 과연 그것이 교육적으로 어떠한 효과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 다시 한 번 나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계산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계산은 우리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도록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식이다. 우리는 이러한 계산을 정확하게 하였는가, 하지 못하였는가 자체를 놓고 아이들에게 다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키노쿠니는 이러한 것을 아이들의 생활에 풍요롭게 하도록 하는 도구로서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체험학습을 통해 가르칠 것은 가르치면서, 그 내용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 작용하도록 하는 데에 교육의 초점이 있다고 하겠다.키노쿠니에서는 아이들의 결정을 중요시한다. 담임선생님, 학습 내용, 소풍이나 수학여행 등 여러 가지 것들을 아이들 스스로가 결정을 한다. 아이들 스스로가 정한다는 것 때문에 어른들은 그저 놀기만 하겠거니 했을 테지만, 아이들은 노는 모습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것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아이들을 너무 연약한 존재로만 인식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키노쿠니의 학생들은 자기 스스로 결정을 하고, 의견충돌이 일어났을 경우 다수결의 방식으로 손쉽게 해결하기 보다는 대화를 통해서 오래 걸리더라도 서로의 의견을 조정하면서 결국은 합의점을 이끌어낸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다수가 많은 의견이 주가 되는 것 보다는 모두가 함께하는 것을 중요시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국어, 과학, 산수, 사회 같은 교과 이름이 없다.체험학습 중심의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실제적인 지식을 쌓아가며 살아있는 공부를 한다.‘선생님’이라 불리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이 담임을 선택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스스로 선택한다.학년이 없지만 학습 속도나 내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관심분야에 따라 수평적으로 학급을 구성하며, 지역사회는 교실의 연장으로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가 이루어진다.시험이나 숙제가 없고 누가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율적으로 학습한다.키노쿠니 학교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와 같다.키노쿠니는 체험학교이면서 자유학교이다. 이러한 체험은 학습의 보고요, 지식을 창조하고 생각을 넓히는 힘을 길러준다. 그 동안 우리는 교육에 대해 지식을 전달하는 것 그 자체로만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식전달 측면에서 효과적인 방법을 교사의 능력으로 커버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학습하는 것은 학생이고, 학생의 경험이 위주가 되기보다는 어른들의 생각이 주가 되어서 교육을 이끌어 왔다. 이로 인해 학습자들이 무엇을 위해서 교육받는가를 알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학습을 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면을 볼 때, 키노쿠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