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그리스건축 : 고대그리스의 건축은 그 대상이 신전건축에만 한정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전건축에는 석재를 재료로 사용했으며 기둥과 보로 구성된 매우 단순한 구조형식의 건축미, 오직 그것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즉, 그리스 신전건축은 매우 한정된 특정의 건축유형을 세련된 건축언어로 만드는 건축미에 도달했으며 건물은 그것을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은 신전의 내부공간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외부공간을 더 중요시 했다. 그래서 매우 질서있고 짜임새가 있으며 대칭을 중시한 건축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외부를 중시한 결과 사람의 인체를 조각한 조각상들로 기둥을 삼는 등 장식적 특징도 보인다.-. 고대로마건축 : 행정과 법률의 강한 힘으로 거대한 건축과 토목공사 등 많은 건축물을 짓게 되었다. 건물의 형태는 축과 중심의 조합이 특징적이며 건축형태의 다양성도 그 주요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로마인들은 섬세함보다는 지속적인 힘을 선호했으며 경쾌함보다는 힘을, 아름다움 보다는 육중함을, 상징적인 성격보다는 사실적인 면을 중시했다.로마건축은, 건축이라는 것이 단지 벽, 기둥, 지붕 등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만들어진 공간 창조의 예술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비잔틴건축 : 비잔틴시대에 와서 정사각형 위에 펜덴티브(pendentive)라는 삼각형 곡면부를 도입하여 돔을 구성하는 방법이 새로이 창안되었다. 창은 돔의 밑부분에 만들어 졌는데 나중에 드럼이라는 원통부에 설치되었다. 큰돔을 중심으로 하여 작은 돔 또는 반원형의 돔이 서로크기와 높이를 달리하면서 회화적으로 구성되고 있음은 비잔틴 건축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건축 : 시각적인 예술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이슬람교의 교의에 의해 인간과 동물의 조각과 회화에 의한 장식을 엄하게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장식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과 추상적 형태의 문양, 문자의 장식적인 아치와 건축적 모티브의 장식등이 대단히 발달하였다. 아라베스크 라 부르는 이것은 종교적 목적으로 지어진 초기의 건물들은 메카를 향할 수 있도록만 배려되었을 뿐 이슬람 교도의 정복활동이 안정권에 들어서야 비로소 정주지에 대규의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었다.이슬람 건축은 건물의 확장을 의도하기 위한 구조적 기술을 이용하였는데 포인티드아치는 건물의 높이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이슬람의 포인티드아치는 후에 로마네스코와 고딕건축에서 대단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로마네스크건축 : 로마네스크 건축의 외관은 온건하고 단순하나 위엄이 있으며 탑이 건축물의 와관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로마네스크 건축의 외관이 갖는 특성은 아치의 연속과 중첩에 의해 형태상의 통일과 내부 기능의 기능적 형태가 그대로 외관에 명쾌하고 솔직하게 표현된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외관에 치중하기보다는 내부에 신중을 기했으며 숭고한 종교적 분위기를 소박한 수법으로 표현하는데 더 큰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딕건축 : 고딕건축은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에서 발전하여 형성된 것이며 그 완성단계라 할 수 있는데 고딕 양식의 특징은 특히 구조적인 발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첨두아치(pointed arch)와 플라잉 버트레스(frying butteress), 리브보울트(rib-vault), 클러스터 피어(clustered pier),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 등이 대표적이다.-. 르네상스건축 : 르네상스 건축은 명쾌한 수학적 비례와 오더 등 고대건축의 규범이 추구되었다. 일부 석공출신을 제외하고 당시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미술적 소질을 갖춘 화가였으며 조각이나 여러 가지 디자인도 수행했다. 르네상스 건축은 많이 지어지지는 않았다. 작은 규모의 양식이었으나 그 역사적 중요성은 크다.-. 바로크건축 : 타원의 평면과 회오리 같은 곡선 그리고 왜곡된 형태가 선호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단순한 형태는 피하려 했던 것이 명확했다. 정확성보다도 그것을 파괴하고 일탈함으로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던 시대가 바로크였다. 이시대의 건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관찰자를 놀라게 하고 극적이며 강렬한 인상을 부여하려 했다. 색과 형태, 장대함 등 모든 면에서 사용된 장식도 가능한 한 화려하게 시공되었다.-. 18세기건축 : 중유럽에서 바로크 건축의 전성기를 맞이한 18세기 전반 프랑스에서는 바로크 양식으로부터 로코코양식으로 전이해갔다. 로코코는 짧은 시간에 유럽으로 파급되었으며 독일에서 큰 발전을 보았다. 따라서 독일 바로크건축은 로코코적인 요소를 상당부분 지니고 있게 된다.-. 19세기건축 : 로마의 위대함과 그리스의 고귀한 단순함을 최고의 목표로 하는 경향 등 여러 가지 특징을 포함하고 있다. 고고학상의 새로운 발견과 조사연구는 고대 건축에 여러 가지 양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으며 다수의 출판물들이 건축가에게 고대의 지식을 제공했다. 이런 신고전주의는 19세기 전반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19세기 중엽부터 신고전주의의 힘은 쇠퇴하였고 네오-르네상스와 네오-바로크양식이 그것을 대신하여 19세기 후반부터 소위 여러 양식의 리바이벌이 있었다. 리바이벌양식은 또한 각 국가의 전통과 혼합되었으며 하나의 건물에 다수의 양식이 절충되는 일도 있었다. 리바이벌은 건축의 격을 향상시키기 위한 중요한 표현매개로서 계속 사용되었다.
인상주의와 인상주의 화가들 에 대하여인상주의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먼저 인상주의가 일어나게 된 시대적 배경을 알아 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대부분의 문학, 예술 부분에 있어서 큰 전환점을 맞는 부분에는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적 흐름이 아주 중요한 일종의 촉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원만하게 따르는 것이든, 아님 거기에 반기를 든 일종의 쿠데타든지 간에 말이다.인상주의는 19세기 말 프랑스의 파리에서 시작되었다. 파리는 전 유럽의 미술가들이 동경하는 대상이었다. 예전 한창 번영하던 로마는 고전적 이미지의 한계에 부딪치고 그 대신 파리가 새로운 미술의 메카로서 급격히 부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파리는 도시적 특성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파리가 프랑스의 도시로서 뿐만 아니라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도시적 관념이 심어진 것도 이때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상응하는 대표적인 예술 양식이 바로 파리에서 시작된 인상주의였다. 즉, 도시인들의 삶과 도시인들의 의식을 반영해주는 예술 양식으로서 말이다.인상 이란 표현은 한 미술기자가 인상주의(그 당시에는 이런 말이 없었겠지만) 화가들의 작품전을 보고 매우 인상적인 그림들이라고 했던 데서 유래된 것이다. 물론 이 인상 이란 말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뜻이 아니라, 더없이 순간적이고, 신뢰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다. 새로운 문화가 생겨날 때 마다 겪는 필연적인 고통이라고 할까? 그 당시에는 인정을 못 받고 무시당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재해석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인정받게 되는... 인상주의 역시 그렇게 시작되었다.인상주의 화가들은 일반적으로 회화 작품이란 언제나 무겁고 장중해야하고 또한 언제나 영원성의 관념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안된다는 당시의 의식에서 탈피하여 일상적 주변의 모습을 또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나 스쳐가는 대상을 신속한 손의 움직임으로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들은 물결의 흐름, 수면의 움직임,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의 미묘한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서 바닷가나 강변, 공장 굴뚝의 연기를 직접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작품 「조각배」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 모네가 조각배에 앉아서 센강의 모습을 그리는 것을 담고 있다. (모네가 그린 대부분의 야외 풍경은 바로 센강이라고 한다. 그림 속의 조각배도 모네가 센강의 모습을 더욱 가까이서 보기 위해 직접 장만한 것이라고 한다.) 즉 야외에서 작업하는 인상주의 화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또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색채를 팔레트 위에 짜내어 다른 색들과 일정하게 섞어서 사용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가능한 원색 그대로 사용하려고 했다. 색채는 화학적인 물질이기 때문에 혼합이 거듭되면 그 만큼 순도가 떨어지고 탁해지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고자 했던 자연의 색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인상주의 화가들은 무엇보다 색채에 모든 관심을 기울였다. 반면 대상을 이루는 형태에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이러한 조류에 회의를 품고 나타난 대표적인 화가가 후기 인상주의 대표적인 화가라 할 수 있는 폴 세잔(Paul Cezanne),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폴 고갱(Paul Gauguin)이었다.세잔은 모든 사물을 묘사하는 데는 색채뿐만이 아니라 그 사물의 모양, 형태 또한 그 사물의 고유색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태양광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의 정물화를 묘사함으로써 얻은 형태와 고유색에 대한 확신을 시작으로 인물, 풍경으로 이어지는 그림에도 전(前) 인상주의 화가들이 소홀히 했던 아니 무시해 버렸던 사물의 형태와 고유색, 또한 인상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색채까지도 완벽하게 조화시켰다. 즉, 세잔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추구한 보이는 대로만 그린 것이 아니라, 실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려 했던 것이다.
옵셋인쇄평판인쇄는 화선부와 비화선부가 동일 평면 위에 있고 수분과 기름의 반발을 이용하여 인쇄하는 방식으로 잉크를 직접 인쇄하지 않고, 고무원통에 전사해서 인쇄하는 방법을 옵셋이라고 한다.평평한 판면에 유성 먹물로 그림을 그리고 다른 부분을 기름성분이 묻지 않도록 처리해서 친수성이 있는 면으로 만든다. 이것을 물에 적시면 그림부분은, 물을 밀어내고 다른 면은 물과 융합한다. 그 뒤 유성잉크는 롤러를 묻히면 친수성이 있는 면은 잉크가 묻지 않고 유성부에만 잉크가 묻어서 인쇄할 수 있다.이렇게 해서 간단한 방법으로 고속으로 양질의 인쇄를 얻을 수 있는 옵셋인쇄기가 1905년 미국의 인쇄업자 루벨에 의해 우연히 발명되어 옵셋인쇄는 오늘날에 인쇄판식의 주류가 되고 있다.옵셋 원고의 종류는 크게 나누어 3가지가 있는데 칼라-분해를 해서 4색으로 인쇄하는 칼라원고, 단색으로 농담이 있는 것으로 일반사무용 서류양식, 책자. 포스터 등에 사용되는 단색(모노크롬) 사진원고, 농담이 없는 선이나 면만의 원고로 원색포스터. 캘린더. 잡지표지, 패키지, 카다로그 등에 사용되는 다색(모노크롬) 선화원고가 있다.. 옵셋은 사진의 그림이나 명암을 점의 대소로 나타내는데 밝은 부분의 망점은 작고 어두워짐에 따라 망점은 커지고 곧 먹판 속에 흰 점이 있는 상태가 된다. 스크린 선의 수로 미세함을 나타내며 망점의 가늘기는 스크린의 가늘기에 따라 정해지고 스크린은 가는 선의 Mesh로 구성된다.또한 인쇄 색으로 사진이나 그림의 색이 바뀌며 칼라인쇄는 4색의 망판을 겹쳐서 인쇄한다.. 다색인쇄의 경우 옵셋은 원색판에 비해 제판, 인쇄비가 싸므로 값싸게 대량생산이 가능하여 경제적이며, 다른 판식에 비해 융통성이 있고 제판의 조작이 간편하여 능룰적이다. 실린더가 유연한 고무 블랑켓이기 때문에 울퉁불퉁한 비면에도 인쇄가 가능하며 어떠한 종이질에도 인쇄가 가능하다.그러나 잉크가 판면에 직접 옮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농담이 진하지 못하여 강한 볼륨이 없고 물로 인한 습기 때문에 인쇄면에 광택이 적다. 또한 전체가 소프트해서 문자의 힘이 없다.. 모노크롬(단색)에 비해 칼라 분해해서 인쇄하는 것을 칼라(다색)인쇄라고 부르는데 칼라는 적청황먹의 4색을 기본으로 해서 인쇄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4색(4C)라고도 한다.4색으로 인쇄하더라도, 칼라분해를 하지 않는 경우는 칼라(다색)이라고는 하지 않고 몇 가지 색으로 인쇄하든지 모노크롬(단색)이라고 해서 확실하게 구별하고 있다.. 칼라 원고는 모노크롬 사진에 비해 분해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체로 며칠 정도를 예정해 둘 필요가 있으며 한 장의 칼라사진은 적, 청, 황과 먹의 각색으로 분해되어 4장의 같은 사이즈의 사진이 생긴다. 그 가운데 한장만을 보면 보통의 모노크롬 사진과 다름없이 보이고 특히 먹판은 거의 같다.이 분해된 각 색의 필름을 망점으로 바꾸어 4판분을 각각의 색으로 겹쳐서 찍으면 소위 칼라 인쇄가 된다. 분해와 망촬영의 2공정을 1공정으로 제판하는 방법을 다이렉트 제판이라고 하고, 샤프한 제판을 빨리 만들 수 있다.2공정 제판은 분해와 망촬영이 별도의 공정이 되기 때문에 상태의 수정을 쉽게 할 수 있고 소프트해서 자연스러운 제판으로 하기 쉽다.. 교정쇄의 원리는 본격적인 옵셋인쇄와 같은 공정인데, 손작업으로 간편하게 하고 쇄판으로 인화해서 인쇄 잉크를 롤러로 쇄판에 담아 색교정은 한 장 한 장 손으로 찍어서 한다.실제로 인쇄하는 경우에 비해 약간 잉크 담기가 좋아지는 경향이 있고, 인쇄하는 종이에 질에 따라서도 완성도가 달라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그라비아인쇄그라비아(Gravure) 인쇄는 대량생산용의 기계적 방법으로 오목판 인쇄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판식이다.오목판 인쇄인 그라비아 인쇄는 사진 기술을 응용하여 제판한 오목판으로 인쇄하는 것으로, 화선부가 오목하게 되어 잉크가 오목한 부분에 채워져 피인쇄체로 옮겨감으로써 인쇄되는 방식이다.인쇄시 두꺼운 잉크피막이 생겨 박력 있는 선의 표현이 가능하며 농담이 풍부하여 세밀한 묘사의 인쇄물과 색채의 풍부함으로 고급 인쇄물에 적합하다. 제판 비용이 비교적 비싸며 위조가 불가능해 유가증권, 지페 등에도 쓰인다. 판의 종류에는 조각오목판, 그라비아판이 있다.그라비아 인쇄는 사진인쇄에 적합하며 인쇄용지의 선택의 폭이 매우 넓어 종이 이외에 재질인 플라스틱 금속에도 인쇄할 수 있으며, 건조가 빨라 매우 능률적이다. Plastic film 포장이 많이 사용되는 식품이나 제과류에 그라비아를 활용하는데 laminate 포장이나 film류의 포장은 광택이 좋아 제품포장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반면, 제판이 고도의 기술을 요하므로 가격 면에서 제판비가 많이 들어 소량의 인쇄물에서는 단가가 높아져 소량인쇄에는 비경제적이다. 또한 일단 판이 만들어진 후에는 부분적인 판의 수정이 불가능하므로 수정이 필요할 때에는 film의 따붙임 작업에서 완전히 해 두어야 한다.. 그라비아 인쇄물을 보면 언뜻 보기에는 농담차가 풍부하여 선명하게 사진과 같이 보이지만 넓은 면적에 잉크가 두텁게 묻은 부분을 자세히 보면 Mottling이라고 부르는 얼룩현상이 흑색을 제외한 녹색이나 청색계에서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옵셋인쇄나 사진볼록판과 같이 망점의 대소가 농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정방형의 동일한 면적의 망점인 잉크 포켓의 심도에 따라 농담이 나타난다.
영국ㆍ미국형 지방자치제도근대 시민적 민족통일국가를 건설한 유럽에서 성립된 지방자치제도는 대립적인 두 가지 유형으로 발전되어 왔는데, 지방자치단체는 고유한 자치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가라 할지라도 고유의 자치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견해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은 국가 통치권의 일부를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범위 안에서만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두 가지의 대립적인 견해가 주민자치와 단체자치의 사상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지방정부와 주민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주민이 지방의 정치ㆍ행정에 참여하는 점에 중점을 두고 지방자치를 이해하려는 견해를 주민자치라 하고, 지방자치단체와 국가라는 측면에서 지방단체의 자치권을 중심으로 지방자치를 이해하려는 견해를 단체자치라 한다.지방자치제도의 대립적인 두 가지 유형 중에서, 여기에서는 영국ㆍ미국에서 발달된 자치관념으로서 주민자치에 대해서 알아본다. 주민자치는 주민들이 자기 지역공동사회의 공공ㆍ공동의 관심사를 주민이 조직한 지방자치단체에 의하여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으로서, 정치적 관점에서 정치와 행정을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에 착안하여 주민자치라 부른다. 이는 정치적 관념을 중시한 주민자치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지방자치로 영국 지방자치의 역사와 전통에 그 근거를 두고 있어 영국형 이라고도 부른다. 영국형 주민자치란 지방의 조세로서 경비를 지출하고, 국가의 법률에 따라 지방주민의 의사와 책임하에 스스로 또는 주민이 선출한 대표자를 통해 정치ㆍ행정사무를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의 자치권은 자연법사상에 기초를 둔 고유권설의 입장에서, 주민의 자치권은 국가가 위임하거나 부여한 것이 아니라 천부의 고유한 인권으로 파악된다.이러한 주민자치는 영국과 미국에서 발전하였으며, 이제 영국과 미국의 지방자치제도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영국의 지방자치제도1. 개요영국은 의회중심의 민주주의 국가로 영국의 정치적 경험은 세계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많은 나라들이 영국의 정치제도도시지역의 자치제도가 개편되었고, 이 법의 시행으로 1990년대에는 전 지역에 대한 자치계층 단층제화가 추진되었다.1970년대의 지방제도 개혁에 의하여 종래에 복잡하였던 지방자치단체의 종류가 총 정리되어 전 지역에서 자치제의 계층구조가 2계층제로 통일되었다. 즉, 전국을 47개의 농촌지역(non-metropolitan area)과 6개의 대도시 권역(metropolitan area)으로 나누되, 어느 쪽에서든 광역자치단체인 county와 기초자치단체인 district의 2계층을 두었고, 대도시에 카운티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특별시(county borough)를 두어 대런던 권역(Greater London Area)에도 대런던시와, 그 밑에 London borough 또는 City of London을 두는 2계층제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보수당정부에 의한 1986년의 개정에 의하여 대런던 의회(GLC)와 6개 대도시권역의 카운티 의회가 폐지됨으로써 런던을 포함한 대도시에는 기초자치단체만의 단층제 지방자치제도를 가지게 되었다.그 후 1990년대에는 노동당정부에 의하여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지역에서는 county와 district가 폐지되고 새로운 단층제를 채택하는 지역과 2층제를 채택하는 지역 및 단층ㆍ2층제를 혼합하여 채택하는 지역으로 다원화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는 대런던지역에 1986년부터 해체되어 있던 상층정부를 부활하여 런던시청(Greater London Authority)을 주민직선으로 다시 설치하여 자치계층을 2층제로 환원하면서, 전통적인 기관통합주의 국가에서 기관대립주의 지방정부형태를 창시하였다.20세기 후반 수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지방제도 대개혁에 의하여 영국의 지방자치단체 수는 광역자치단체의 수가 약 2분의 1로 줄었고, 기초자치단체의 수는 약 4분의 1로 줄었다. 이것은 지방자치구역이 과거에 비하여 2배~4배로 확대된 것을 의미한다.3. 지방정부의 기능배분지방정부의 기능은 매우 광범위하지만, 영국의 국회법에 따라 부여된 권한의 범위 내에서만과 원칙에 관한 문제는 전체회의에 상정하여 해결하며 사무에 대한 세부적인 행정집행은 의회의 위원회와 사무직원의 임무이다.행정집행의 주체-의회전통적인 영국 지방자치단체의 최고 의사결정권은 의회(council)에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집행은 근원적으로 의회에서 이루어지며 의회 자체가 법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지방의회는 기관통합형으로 의결기관인 동시에 집행기관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자치 제도와는 다른 것으로 지방의회가 곧 집행기관의 주체가 된다. 영국 지방자치제도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카운티와 디스트릭트에는 그 자치단체를 대표하는 장(長)이 없으며, 다만 도시권역과 런던 바로우 등 일부 자치단체에만 시장이 있을 뿐인데 이러한 경우에도 시정을 통괄하는 실질적인 권한은 없다. 실질적인 행정권은 지방의회의 각 분과위원회가 관장하고 있는데, 의회는 자신의 행정집행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의무적 또는 임의적으로 위원회를 설치한다.의원의 임기는 4년이고, 의원의 수는 county의 경우는 평균 80명 정도이고, district의 경우는 평균 50명 정도이다. 의장(chairman 또는 chairㆍperson)은 의원 가운데서 호선되며, 그 임기는 1년이며 의장은 해당 자치단체를 대표한다.위원회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의회에 본의회와는 별도로 각 행정부문마다 위원회를 설치하여 일상적ㆍ전문적인 사무처리를 행하게 하며, 직원을 고용하여 위원회의 사무를 보조하게 하고 있다. 의회 본회의의 위임을 받아 행정각부의 행정집행에 관한 의사결정과 지휘ㆍ감독을 행하는 기관이 각 위원회(committee)이다. 위원회에서는 상임위원회(상설)와 특별위원회(임시)가 있으며 교육ㆍ경찰ㆍ복지 등에 관하여는 위원회의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다.(법정위원회)모든 지방정부에 의해서 활용되는 위원회제도는 의원들로 하여금 지방정부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하며, 위원회제도는 의원들로 하여금 지방정부의 한 분야 또는 그 이상의 여러 분야에 전문가가 되게 한다.사무조직영국의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조직법률상 의무로 되어 있는 직무집행을 소홀히 하는 경우에 그 직무를 강제적으로 수행토록 하기 위하여 법원이 발하는 명령을 말한다.행정적 통제행정적 통제는 중앙정부의 각종 행정수단을 동원하여 지방정부를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에 대하여 조례의 승인, 위임입법, 지휘ㆍ감독, 검사, 회계감사, 시정명령과 대집행, 직원 임면에 대한 통제, 사업계획의 승인, 기채허가제도와 국고보조금 지급 등을 통하여 광범위한 행정적 통제를 행한다.지방 옴부즈맨(local ombudsman)에 의한 통제지방행정에 대해 중앙정부는 1974년에 지방행정심사위원을 임명하였는데, 이를 지방 옴부즈맨(local ombudsman)이라 한다. 지방 옴부즈맨은 잉글랜드에 3명이 임명되어 담당지역을 나누어 맡고 있으며, 지방정부의 실정을 주민의 호소에 근거해 조사한 후 이를 지방정부에 통지하면 지방정부는 시정조치를 취하여 지방 옴부즈맨에게 보고한다. 지방옴부즈맨은 자치 단체 스스로 부정행위를 시정하도록 촉구하며, 지방행정 당국에 시정을 명령할 권한은 없다.미국의 지방자치제도1. 개요미국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제도를 성공적으로 진행시켜 오고 있다. 미국의 지방자치제도는 원래 영국적인 것이었으나, 독립 후 각 지역에서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하였고, 일반적으로 주민참정의 폭이 넓은 것이 특색이다.미국의 총면적은 937만㎢, 인구는 2억 8,000만명이다. 국토가 지역적으로는 워싱턴에서 하와이로, 또 알래스카에 이르기까지 워낙 광대하기 때문에 기후와 주민기질 및 지방제도 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또한 인종의 전시장이라 일컬어질 만큼 많은 인종과 민족들을 구성원으로 하고 있어 한층 더 다양성을 띠고 있다.미국은 연방국가로서 50주와 약간의 연방직할시로 구성되어 있다. 연방은 연방헌법에 의하여 부여된 권한만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하여, 주는 연방헌법 또는 그 주헌법에 금지되지 아니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지방제도의 형성에 관한 권한도 각 주가 가지고 있어 각 주별(다. township은 중부대서양 연안의 여러 주와 중서부주에만 존재하며, 비법인인 town은 New England 지역 6주(코네티컷, 메사추세츠, 뉴햄프셔, 로즈 아일랜드, 버몬트)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special district는 전국에 산재하며, 대체로 도시지역에서는 city, village가 있고, 농촌지역에는 town, township이 있다.미국의 지방자치제도는 계층구조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각 주의 지방제도는 일률적으로 2계층제나 3계층제를 택하고 있지 않으며, county와 township 및 town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county가 상급ㆍ광역단체의 성격을 가지나, county와 township 사이에는 적절한 기능분담을 통하여 양자가 모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비하여, town이 존재하는 New England 지방에서는 county의 기능이 약화되고 town이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반대로 township이나 town이 존재하지 않는 남부 및 서부의 여러 주에서 county는 지방자치단체와 같이 가장 기본적인 지방단체로서의 광범위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 외에 일반적으로는 city가 기본적인 기초자치단체이고 county는 준자치단체이다. 또한 종류가 다른 수개의 지방단체의 관할구역은 항상 중복되고 있으며, 각기 분담하는 행정사무 면에서는 각 지방단체 상호간에 분담ㆍ조정되고 있는 경우도 많다.3.지방자치단체의 종류광역자치단체(County)county는 광역단체의 성격을 띤다. 주는 보통 county로 분할되며, county는 city 등의 기초자치단체로 분할된다. county는 가장 일반적ㆍ포괄적ㆍ광역적인 지방단체이나, 그 성격은 준자치단체이다. 즉, 주의 사무를 집행하기 위하여 설립된 주의 일선기관이면서, 동시에 자주 입법권을 갖고 주민복지적 사무를 처리한다. 현재 county는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간주되어진다.county의 규모는 인구 1만~2만 5천명 수준이 대부분이나 1천명 미만의 것이나 25만.
고대 그리스 건축을 시작으로 유럽의 전통을 되돌아보려 한다.서구 유럽의 전통에서 미학적으로 가장 완벽한 일군의 작품을 남긴 고대 그리스 건축은 이후 세계 곳곳에서 발전한 여러 양식의 토대가 되었다.그리스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전 고전기로 알려진 황금기(BC 800~323)에 사회의 기초로서 도시국가가 확립되고,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었으며, 침략해온 페르시아인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아테네가 패권을 차지했다. 5세기는 최절정기에 달했는데 이 시기가 고전기 최고의 절정기로 알려진 것은 이때 철학과 건축, 미술, 문학, 연극이 눈부시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 도시국가의 독립성은 인도까지 정복의 손길을 뻗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파괴되고, 그의 사후인 기원전 323년부터 시작된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의 제국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그리스 왕국으로 분할되었다가, 결국 기원전 30년에 로마제국에 합병되었다.아주 공격적이면서도 방어적인 이 모든 문명이 험한 세상에서 생존과 지배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기원전 3000년경에 훨씬 부드러워 보이는 문명과 만나게 된다. 이것은 나중에 그리스가 된 지역의 최초의 문명으로 크레타 섬에서 발생했고, 이는 크노소스 궁전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것이 바로 크레타 문명(BC 3000~ 1400)인데, 이 시기 위대한 건축물의 배치는 어느 모로 보나 당대 어느 나라 건물 못지않게 복잡했다. 그 후 크레타 문명을 계승한 것이 미케네와 티린스 문화(BC1600~1050년경)인데, 이들 문화는 건축에서는 섬세하고 우아한 면이 떨어질지 몰라도, 깍아지른 듯한 고지에서 아르고스 평원을 굽어보는 미케네의 요새에서 볼 수 있듯 훨씬 호전적이고 무서웠다. 그리스 국가 대부분이 지니고 있던 호전성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사나운 무사로서 명성을 떨치며 초기에 이룩한 위대한 문명의 유산을 파괴하는데 진력했고, 페르시아인들은 분명 그의 피비린내 나는 승리를 예술과 질서정연한 삶의 파장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코린트식을 좋아했다. 도리아식이나 이오니아식보다 길고 지금은 폐허가 된 레바논의 바알베크에 있는 신전들처럼 아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로마의 신전에 잘 어울려 보이는 코린트식 기둥에서는 실컷 마시고 떠드는 바쿠스 축제의 환락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바알베크에 있는 신전에서는 두 개의 신전 가운데 작은 바쿠스 신전도 파르테논 신전보다 크다. 로마인은 그리스의 기둥 양식에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을 결합시킨 복합식과 도리아식을 더 뭉툭하게 변형시킨 에트루리아식 또는 토스카나식을 추가했다. 그러나 로마 건축의 특징은 구조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기둥을 사용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런 기둥은 대개 완전히 또는 일부분이 벽면에 파묻혀 있는데, 이것이 벽기둥 또는 반벽기둥으로 알려진 것이며, 기둥이 납작하고 단면이 사각형일 때도 있는데, 이것은 필라스터라고 부른다.이런 계획은 로마 건축의 또 한 형태인 개선문에서 뚜렷이 볼 수 있다. 흔히 포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이런 아치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따라서 개선 행렬이 환영 군중 사이를 전리품과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을 태운 짐마차를 몰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웅장해야 했다.기둥양식과 고전적인 모티브가 더 이상 구조적으로 요구되지 않으면서, 이제는 이런 형식을 장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폼페이의 실내장식은 벽의 회반죽 위에 채색을 해 대리석으로 겉치장한 효과를 노린 점이라든가 건물 내부에 화려한 장면을 그려 넣어 장식한 점에서 바로크 시대에 성행한 건축 장식의 전조가 되었다. 또한 로마인은 기둥과 들보구조에 기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건물을 지탱할 수 있는 진짜 아치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구조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로마인들은 양쪽에서 돌을 조금씩 내쌓아 중간에서 만나게 하는 내쌓기 아치와 달리 홍예석이라 불리는 쐐기 모양의 돌을 방사형으로 쌓아 각 돌에 가해지는 압력으로 지탱되는 진짜 아치로 향했다. 건물을 짓는 동안에는 아치건물이 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성 이레네 교회는 바실리카식 평면의 네이브를 덮는 크기가 다른 2개의 돔을 설치하였는데, 그 중 큰 것은 구멍이 뚫린 창문이 있는 드럼 부분 위에 돔을 축조한 비잔틴 초기의 건축 실례이다. 세로로 긴 이 교회의 평면형태는 성 세르지우스 교회와 산 비탈레 사원의 평면 형태인 좌우대칭의 중앙 집중적인 형태와는 다른 모습이다.성 소피아 사원은 장방형의 긴 평면 위에 돔을 축조한 최고 수준의 건축 사례로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위하여 532년에 콘스탄티노플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성 소피아 사원은 건축적으로 매우 정교하며 전체적인 외관은 매우 단순한 인상을 지니고 있다. 약 30m에 걸친 정방형의 모서리에 석재 피어를 4개 세우고 여기에 반원 아치를 접속하여 거대한 반구형 돔을 지지하고 있다. 중앙의 공간은 중심 돔을 지지하는 피어 네 개의 바깥쪽에 반원형 돔이 덧붙여짐으로써 평면이 동서로 확장되어 70m정도의 길이를 가진 넓은 타원형의 네이브가 형성되었으며, 바깥 부분에는 출입구, 나르텍스, 아일, 앱스 등 더 낮은 구조물이 놓여져 있다. 사원 내부는 돔과 벽에 창을 뚫어 채광을 하였으며, 다양한 색상의 대리석과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풍부하고 장식적인 디테일은 전체적으로 장중하고 간결한 의장과 대조를 이루는데, 이것이 비잔틴 건축의 정수인 이 건물이 보여주고 있는 특징이다.바실리카 양식이 서방 기독교 세계에 영향을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돔을 사용한 비잔틴 교회 건축은 동방 기독교 세계에 영향을 미쳐 천년 동안 동방 기독교 건축의 전형으로 남게 되었다.11~12세기의 서유럽에서 절정에 달한 건축양식이 있었음을 인지하고 그것에 처음 이름을 붙인 것은 19세기 비평가들이었다. 그들은 이것을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불렀는데, 이 건축 양식의 구조적 토대가 고대 로마 건축에 있었기 때문이다.로마네스크라는 명칭은 로마와 같은 이라는 뜻으로 고안된 말로 주로 건축에서 사용된다. 11세기 후반과 12세기 유럽의 전형적인 건물들이 두꺼운형성하고 미묘한 변화를 제공하고 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건축가들이 질서정연한 구획으로 공간을 분할한 반면, 12세기 이후의 건축가들은 기둥을 가늘고 길게 배열하고 벽면의 실질적인 구분을 약하게 하였으며, 지붕의 형태를 자유롭게 하고 공간을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는 등 연속적인 공간을 창출했다.수직으로 우뚝 솟은 고딕 양식의 건물을 대할 때에는 이것이 통일된 신실한 종교 사회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더욱이 건물 자체의 위용을 보면 이러한 것이 실체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 전체의 통일된 의지의 결실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 일반 사회의 산물이며 사회의 소수 계층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소홀히 한다면, 이는 고딕 건축의 한 측면만을 파악한 것이 된다. 사실, 대성당은 신앙심이 풍부한 사람들이 신의 영광을 위해 지었지만, 역설적으로는 고딕 건축은 경제적으로는 교회의 도덕 적 견해와 반목하고 있던 신흥자본가 계층에게 의존하였으며, 또한 신앙과는 직접적으로 결부되지 않는 수학이나 물리학적인 지식을 토대로 하였고, 교회 외부에서 기술을 습득한 석공의 기술로 이루어졌다. 이들 요소가 상호 결합됨으로써 대성당이라고 하는 최상의 공간이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이다.고딕 건축은 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중세에서 자유롭고 현세적인 르네상스로 전환해가는 전환기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딕 건축은 서양 건축사에서 대단히 훌륭한 성과를 남기고 있다. 종교적인 믿음과 냉철한 이성, 폐쇄적인 수도원 사회와 팽창하는 도시의 대립을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훌륭하게 표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이 고딕 건축이다.프랑스의 고딕프랑스 성당의 전형인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초기 고딕 건축물로서 리브 볼트로 이루어진 네이브의 내부는 매우 높아서 첨두형 아치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32m나 된다. 평면 구성은 이중 아일에, 네이브는 좁아지고 트란셉의 길이도 짧아졌다. 트란셉은 건물 길이의 중간쯤에 위치있는 큐폴라는 끝이 뾰족한 8개의 만곡면으로 이루어진 돔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나로 모아주는 역할을 했다.물론 이 돔이 브루넬레스키가 이 새로운 운동에 유일하게 기여한 것도 아니며 가장 혁명적으로 기여한 것도 아니었다. 날씬한 코린트식 기둥 위에 올린 둥근 아치로 구성된 우아한 아케이드와 각 아치의 중심 바로 위에 있는 깔끔한 사각형 창문, 단순한 삼각형 박공벽 등이 간결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1421년 작품인 고아원도 르네상스 시대를 연 또 하나의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산타 크로체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에 파치 가문을 위해 지은 예배당은 완벽할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교본이기도 했다. 브루넬레스키의 위대한 두 걸작인 산 로렌초 교회와 산토 스피리토 교회도 바실리카 평면 위에 지어졌지만, 여기서도 어김없이 정확성이 견지되었고, 돔은 십자형의 교차부에 얹어졌다. 그의 디자인은 로마적인 형태의 부활이며, 동시에 비례와 균형을 중요시하는 르네상스 시기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문필가이자 화가, 조각가, 건축가였던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Alberti, 1404~72)는 회화, 조각, 건축의 규범에 관하여 글을 썼던 르네상스 시기의 중요한 이론가였으며 그가 지은 건물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는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에 엄격하게 비례를 맞춘 정면을 덧붙였으며, 이는 모든 정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정면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또 새로운 양식의 특징인 수평적 배치를 해치지 않고서 네이브와 그보다 낮은 아일을 연결시키기 위해 거대한 소용돌이꼴 장식을 설계했으며, 만토바의 산 안드레아 교회의 정면 대부분은 개선문을 본떠서 지었다.1502년 브라만테(Bramante, 1444~1514)는 성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에 템피에토를 세웠다. 비록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이 건물은 중앙 중심 설계의 완벽한 전형이다. 이것은 질서와 단순함, 조화로운 비례를 중시하는 르네상스의 이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작은 주택과 궁전의 설계로 유명한 팔라디오(Palla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