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의 식생활 문화의 차이1. 서론식생활 문화는 한 사회 또는 집단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식생활의 양식이다. 어떤 상품을 어떤 방법으로 조리하거나 가공하여 어떻게 먹는가 하는 여러 가지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한 민족의 식생활 문화는 식품의 생산과 조리, 가공, 상차림, 음식 먹는 습관, 용구와 식기 등 여러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져 있으며, 각각의 요소마다 그 나라의 자연적 사회 경제적 조건과 그 민족의 특성이 내재되어 있다한국이나 일본 모두 바다로 에워싸인 입지조건은 비슷하므로 해산물은 풍부하다 할 수있겠다. 또한 사철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농작물을 손에 넣을 수가 있기 때문에 요 리의 재료는 거의 같다. 한국과 일본 모두 주식은 쌀이며 밥과 반찬 국 등이 올라오는 것도 비슷한 점이다. 그러나 비슷한 재료를 사용했어도 맛은 아주 다르다. 또한 식사법이나 그릇 등에서도 차이가 많다. 이처럼 한국 음식과 일본음식을 여러 면에서 비교해보다 보면 미묘하고 흥미로운 유사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음식을 통해서도 일본의 문화를 볼 수 도 있을 것이다.바다로 둘러싸인 일본은 다양한 기후와 지진, 화산활동에 의한 내륙의 복잡한 지형 등 다양한 식생활을 하게한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지리적 특성 다음으로 일본의 식생활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불교라고 할 수 있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다양한 어장을 가질 수 있었던 지리적인 특징 외에도 육류와 육식을 금지하는 불교나 일본의 민족 종교인 신도의 교의로 어류음식과 채소를 주로 먹어 왔다. 불교로 인한 육식의 금기가 뚜렷해진 때는 8 세기 이후였다. 이렇게 육류를 이용하지 않고 채소와 어류를 이용한 일본 요리는 향신료의 사용이 작은 것이 특징이며 담백한 음식 맛 역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한국은 여름엔 고온 다습한 한반도의 기후적 특성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전국토의 70퍼센트 이상이 산으로 되어 있는 지리적 여건이 우리의 식생활에 그대로 반영되어 한국음식의 특징으로 나타나 있다. 여름의 고온 다습한 기후는 작물 생산에 있어서 미작중심의 쌀농사를 가능케 하여, 쌀밥을 주식으로 삼도록 했다. 쌀밥을 주식으로 함에 따라 이에 따른 부찬으로써 밭에서 갖가지 곡류와 소채류를 재배하여 이용하게 되고 굴곡이 많은 해안에서 조개류를 비롯하여 갖가지 어물과 해조류를 채취하여 여러 가지 찬을 만들어 부식으로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의 기후와 지리적 특성이 한국음식의 가장 큰 특징인 주식과 부식 확연히 구분하는 특징을 이루도록 한 것이다.2. 본론일본의 음식은 언제든지 각자의 접시와 그릇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릇에 들어다 먹는데 공통으로 사용하는 젓가락이나 국자가 없으면 자신이 사용하던 젓가락 중 입을 대지 않은 뒷부분을 사용한다. 음식은 기본적으로 젓가락만을 사용하는데 밥을 흘리지 않기 위하여 밥그릇을 왼손으로 받쳐서 입 가까이 두고 젓가락을 이용해서 먹는다. 국은 밥그릇을 놓고 왼손으로 들고 건더기를 젓가락으로 건져 먹고 국물은 국그릇에 입을대고 들어 마신다. 하지만 카레라이스를 먹을 때에는 숟가락을 사용하기도 한다.(1) 일본음식의 특징1) 일본 음식은 소량의 조미료만 사용흔히 일본 음식은 달고 싱겁다 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일본음식에 사용하는 주된 조미료는 설탕, 소금, 간장, 식초, 된장 등 다섯 가지이다. 이들이 각 요리 속에 어느 정도 씩의 비율로 배합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맛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미림이나 정종이 첨가되어 일본 음식 특유의 맛을 내기도 한다.2) 주식과 부식의 개념이 뚜렷하다.일본 요리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쌀이 주식이고, 생선과 채소, 콩 등을 부식으로 하는 기본 유형을 유지해왔다. 쌀로 지은 밥은 부드럽고 광택이 있으며 찰기도 있어 젓가락만을 사용하여 먹을 수 있다. 또한, 매끼의 식사에 거의 미소(miso)라는 왜된장을 넣은 국과 일본식 김치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채소를 절여서 발효시킨 쯔께모노가 포함된다.3) 계절감, 색채감을 중요시한다.일본은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므로 모든 음식에 있어서 계절감을 상당히 중요시한다. 또한 연중 대체로 온난 다습한 기후로 인하여 담백한 맛을 선호하므로 재료 자체의 풍미를 살리기 위하여 향신료를 진하게 쓰지 않는다.일본인은 음식을 입으로 먹기 이전에 눈과 코로 먼저 먹는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음식은 물론이고 그릇에 기울이는 정성 또한 대단하여 사용하는 식기의 재질도 도자기이외에 목기, 칠기, 죽제품, 유리제품 등 다양하다. 음식의 종류에 따라 식기의 재질뿐만 아니라 모양도 달라지며, 음식 담는 법, 음식과 그릇의 색채와 조화, 함께 차려내는 다른 그릇, 기구와의 조화까지도 고려하여 요리를 종합 예술의 경지까지 끌고 가려는 노력을 기울인다.4) 날것으로 먹고, 구워서 먹고, 끓여서 먹고, 버리지 않는다.일본인은 신선한 먹거리는 가능한 가공하지 않고 소재 그 자체의 맛을 최대한 즐기며, 날것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신선하지 못한 경우 할 수 없이 튀기거나, 굽거나, 끓여서 먹는다.k 이러한 식철학에서 생선회인 사시미와 초밥요리가 발달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에는 필요한 만큼만 소중하게 먹는다 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음식을 남길 만큼 많이 조리 하지 않는다.5) 해산물을 많이 사용한다.풍부한 어장을 갖고 있어서 연중 다양하고도 신선한 해산물을 구할 수 있는 일본은 이 재료들을 적절히 요리에 응용하는 조리기술을 갖고 있다. 600여종 이상의 생선이 횟감의 재료로 사용된다는 것은 일본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해산물을 먹거리로 개발하였는지를 단적으로 표현해 준다. 반면, 역사상 오랜 기간 육식을 금기시해 온 일본의 고기요리의 역사는 매우 짧지만 메이지유신 이후(100여년 전) 서양 및 중국요리의 영향을 받아 크게 발전하였다.6) 지역적 특성이 뚜렷하다.일본요리에서는 관서풍 또는 관동풍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관서풍 요리는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발달한 요리이다. 관동풍 요리는 도쿄의 옛 이름인 에도를 중심으로 발달한 요리이다. 도쿄만과 스미다강에서 잡은 어패류를 사용한 초밥, 덴뿌라, 민물장어와 메밀국수 등이 대표적인 관동풍의 요리이다. 교통의 발달과 교류로 인하여 지역적 특성이 거의 없어졌다고 하는 지금도 소바와 우동을 모두 취급하는 국수가게 간판의 경우 도쿄에서는 주로 소바가게, 오사카에서는 우동가게라고 써 놓은 것만 보아도 두 지방의 지역적 차이를 알 수 있다. 국물 또한 관서풍의 경우는 소재의 맛과 색을 최대한 살리기 위하여 연하게 간을 하며, 국물 양이 많은 것에 비하여 관동풍은 주로 진간장을 사용하여 맛이 농후하며 따라서 국물의 양이 적다.(2) 한국음식문화 특징1) 주식과 부식이 확연하게 구분된다.이 부분은 일본과 공통점이다. 주부식의 구분이 애매한 서양 음식이나 중국 음식과는 달리, 쌀·보리·조 등으로 지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채소·해조·어패·수육·콩류로 만든 갖가지 반찬을 부식으로 한다. 이에 따라 부식의 가짓수가 많다.2) 곡물류의 가공·조리법이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다.곡류를 주식으로 할 수 있도록 생산량이 많아 이를 이용한 국수·죽·떡과 술·간장·두부·엿·유과류·식혜 등이 다양하게 조리되어 식생활을 풍요롭게 한다3) 저장식품이 발달했다.4계절의 기후가 뚜렷이 차이가 나므로 각 계절에 많이 생산되는 음식을 중심으로 가공 저장하는 다양한 저장방법이 전래되었다. 김장 담그기를 비롯하여 계절마다 먹을 수 있는 젓갈·장아찌·육포·어포가 각 고장과 가정마다 저장식품으로 크게 발달하였다.4) 자극적인 음식을 즐긴다.국물이 있는 뜨거운 음식을 즐기는 한국인은 또한 강한 향신료를 좋아한다. 즉 이는 맛이 담백하고 단순한 쌀밥위주의 식생활에 있어 음식 섭취간 맛의 조화 면에 있어서 부식은 강한 맛을 요구하게 된데 기인한다. 즉, 고춧가루·마늘·생강·겨자·파 등이 음식마다 거의 쓰이고 있는데 이들 양념은 식욕을 돋아 주는 한편 음식의 저장 보존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향신료는 소화기관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결점도 없지 않으나 6, 7종이 섞이는 복합적인 양념의 맛 자체가 특성을 이루고 있다.(3) 김치와 기무치1)김치의 특징1. 자연 발효를 시켜서 만든다.2. 김치의 유산균은 일본 기무치의 유산균보다 166배나 많다.김치는 삼국시대에서부터 먹어 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간단히 채소절임으로 먹어 왔으며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고추가 들어와 소박했던 김치에서 다양한 김치로 매운 맛의 고추를 사용하여 붉은 김치를 담그게 되었다. 단순한 절임 상태에서 고추, 파, 마늘, 생각ㅇ과 같은 양념과 젓갈등 각종 해물들을 함께 사용하며 오늘날과 같은 100종이 넘는 다양한 김치로 발전하여 우리의 식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2)기무치의 특징1. 자연 발효대신 식품첨가물을 넣는다.2. 대량생산과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일본에서 만드는 기무치는 원래는 아사츠케(일종의 겉절이)와 비슷한 형태의 발효가 안된 김치였으나, 94년도부터 한국식 김치붐이 조성되면서 현재는 우리나라의 김치와 비슷한 방식의 김치 생산량이 계속 증가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기무치는 발효과정이 생략되었다는 것을 뺀 나머지는 김치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훗카이도강진 9월 26일일본 북부의 홋카이도(北海道)에서 26일 새벽 리히터 규모 8.0에 달하는 강진이 세차례 이상 발생해 300여명이 다치고 정전과 화재 등 피해가 속출했다.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리히터 규모 8.0을 기록한 첫번째 지진은 새벽 4시50분께 훗카이도 동남부에 있는 구시로시 80km 앞바다 해저 42km지점에서부터 시작됐다.이어 오전 6시7분께 5.8을 기록한 두번째 지진이 발생했으며 약 한시간 후 7.0의 지진이 세번째로 훗카이도를 강타했다.그러나 여진이 10여일간 계속될 수 있다고 기상청이 밝혀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이날 지진으로 도마고마이(店小牧)시 서항에 있는 이데미쓰(出光興産) 홋카이도 정유소가 화염에 휩싸였다. 정유소에는 유조탱크 100여개가 있다.일본 국철 JR 네무로선에서 삿포로를 출발, 쿠시로로 향하던 5량짜리 JR네무로(根室)선 하행열차중 2번째 차량이 탈선해 승객 39명 중 1명이 부상을 입었다.훗카이도 지역의 철도는 운행이 전면 금지됐다.또 쿠시로시 관계자는 지역 공항의 관제탑 지붕이 무너졌으며 주요 고속도로는 통행이 금지됐다고 전했다.홋카이도 도카치시(十勝)에서는 선반에 올려놓은 TV 등 가재도구가 떨어져 2명이 다쳤다. 현지 관계자들은 현재까지 3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말했다.사마니(樣似) 어항에서는 소형 어선 3척이 전복되고 동부 우라가와에서는 4명이 다쳤으며 에리모항에서는 해안에 세워둔 자동차 3대가 해일에 휩쓸렸다.지진으로 홋카이도 동부와 중부의 해안가 지역에 지진해일 경보가, 홋카이도 북서부 지역의 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등에는 지진해일 주의보가 내려졌다. 에리모 일대 주민들에 대해 해일에 대비, 대피 명령을 내렸다.에리모 시청의 와타나베 히데키는 ?아직 피해가구의 수가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지만 상당수의 가정집 및 상가에 전기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홋카이도전력은 ?지진의 여파로 아쓰마 지역의 화력발전소 4호기(70만㎾)가 가동이 중단돼 인근 지역의 전기 공급이 끊겼다?고 밝혔다.홋카이도전력측은 ?현재 발전소 가동률은 55%선으로 추가로 일어날 수 있는 여진이나 해일피해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홋카이도에 있는 도마리 원자력 발전소는 지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피해 확인작업이 진행되고 있다.한편 홋카이도 지진 이후 안부를 확인하기 위한 통화량이 폭증하면서 통신시설에도 비상이 걸렸다.이동통신회사 NTT도코모측은 ?국번없이 ?171?만 누르면 되는 재해용 전용다이얼을 이용해달라?며 ?통화량이 계속 늘면 해저케이블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2. 지진의 원인지진의 직접적인 원인은 암석권에 있는 판(plate)의 움직임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직접 지진을 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형태의 지진 에너지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판을 움직이는 힘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침강지역에서 판이 암석권 밑의 상부맨틀에 비해 차고 무겁기 때문에 이를 뚫고 들어가려는 힘, 상부 맨틀 밑에서 판이 상승하여 분리되거나 좌우로 넓어지려는 힘, 지구내부의 열대류에 의해 상부맨틀이 판의 밑부분을 끌고 이동하는 힘 등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들이 어느 정도의 비율로 작용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암석권(lithosphere)은 지표에서 100km 정도 두께의 딱딱한 층이며 그 밑에는 암석권에 비해 덜 딱딱하고 온도도 높아 쉽게 변형될 수 있는 층이 존재하는데(상부맨틀)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깊이의 한계는 여기까지로 지표로부터 약 700km의 깊이이다2-1. 탄성반발설(Elastic rebound theory)이 이론은 1906?캘리포니아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레이드(H. F. Reid)가 산안드레아스 단층을 조사하여 샌프란시스코지진의 원인을 규명한 것이다. 이것은 지면에 기존의 단층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이 단층에 가해지고 있는 힘(탄성력)에 어느 부분이 견딜 수 없게 되는 순간 급격한 파괴를 일으켜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으로 이 이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1) 지진은 장기간에 걸쳐 지각의 일부에 변형이 축적되어 암석의 강도(strength) 한계를 넘게 될 때 이 지각이 파쇄되며 발생한다.2) 지진발생시, 파쇄전 암석의 양쪽은 변형이 없는 위치로 급속히 튕겨가고 이 운동은 파쇄부에서 멀어질수록 감소한다.3) 지진에 의한 진동은 처음엔 파쇄면의 작은 면적에서 시작되며 이 면적은 곧 빠른 속도로 팽창해나간다(단 이 속도는 P파의 속도보다는 느리다). 파쇄와 이에 수반하는 진동이 맨 처음 시작되는지각내의 한 점을 진원(focus 또는 hypocenter)이라 부른다.4) 지진발생시 방출된 에너지는 파쇄되기 직전 변형된 암석의 탄성에너지이다.그러나 모든 지진들이 단층운동으로 일어난다고 설명하는 것에는 불충분한 면이 많다. 무엇보다 지진이 단층운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 단층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로부터 유래하는가가 다음의 문제로 되는데 이것을 설명하는 학설이 판구조론이다.2-2. 판구조론(Plate tectonics)남미의 동부 해안선과 아프리카의 서부 해안선이 잘 들어맞는 현상은 과거부터 하나의 수수께끼로 제시되어 왔다. 1912년 독일의 지질학자인 알프레드 베게너는 이에 대한 설명으로서 현재 지구의 지각은 약 2억년전에 팡게아라는 하나의 초대륙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대륙이동설이 원동력이 되어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판구조이론은 현재까지 가장 성공적인 지구물리학 이론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판구조론에 따르면 지구의 표층이라고도 하는 수십km 혹은 그 이상의 두께를 가진 암석권은 유라시아판, 태평양판, 북미판 등 10여개의 판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들은 각각 서로 부딪치거나 밀고 때로는 서로 포개지면서 각각 매년 수cm 정도의 속도로 점성이 있는 맨틀위를 제각기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지각판들의 운동은 그들의 가장자리 사이의 마찰에 의하여 경계부위에서 저항을 받는데 이는 두 개의 벽돌을 맞대고 문지를 때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지구적인 힘이 판의 마찰저항을 초과할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면 갑작스런 미끄러짐이 일어나며 이것이 바로 지진이다. 따라서 지진이 발생하기 쉬운 지역은 보통 판경계(interplate) 부근이지만 판내부(intraplate)에서도 종종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판과 판의 경계에서는 마그마가 분출하기도 쉽기 때문에 지진발생 빈번지역과 화산이 주로 발생하는 지역은 서로 유사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 이론은 대규모 수평면운동이 지진, 화산 및 조산현상의 원인임을 설명 할 수 있다
11월 8일 토요일,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에 설레임과 함께 해인사로 향했다. 말동무가 없다는 것이 섭섭했지만 깊은 관찰과 감상을 위해 단독으로 간 것이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옷을 두툼하게 입고 있어 추위를 느끼진 못했다. 합천행 버스에 몸을 싣고 1시간 반정도의 시간동안 홀로 떠난 여행이니 만큼 많은 것을 보고 느끼리라 다짐했다. 합천역에 내린 후 다시 해인사행 버스를 타니 한시간이 채 안되서 목적지에 도착한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버스에 내린후 1km를 산길로 올라가다보면 해인사가 나온다.가야산 정상에서 실 핏줄처럼 시작한 개울은 해인사쯤에서는 제법 요란한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세속의 번뇌를 다 씻고 산간으로 들어오라는 암시인양 맑은 계곡물을 계절에 관계없이 쉼없이 흘러 내려보내고 있다. 몸을 떨게만드는 차가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달다.신라말 최치원은 계곡 옆으로 난 좁은 산길을 걸으며 온갖 자연의 소리를 담아 내려오는 홍류동 계곡물을 보고 이렇게 시를 읊었다.미친 듯 바위에 부딪치는 물이 산봉우리를 외치게 하고사람 말소리를 지척에서도 듣기 어렵네항상 시비하는 말 귀에 닿을까 보아흐르는 물소리로 산을 다 감싸 놓는가그의 시가 해인사 입구 바위에 새겨져 있어 그 마음을 전해져 오고, 겨울이라 미친 듯한 계곡물 소리는 없어도 도시의 온갖 때를 묻혀온 속세의 잡스런 소리를 조금은 채로 걸러 준다.해인사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만 가야산 남서쪽 기슭에 자리한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다. 해인사에 세계적인 보물로 손꼽히는 팔만대장경(국보32호)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그 밖에 장경각(국보52호), 석조여래입상(보물518호), 반야사원경왕사비(보물128호) 등 국보급 문화재가 많다. 가야산은 철 따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데 특히 봄철에는 해인사 진입로 양쪽에 펼쳐진 벚꽃의 파노라마가 장관을 이룬다. 진달래와 철쭉, 울창한 노송이 어우러진 홍류동 10리 계곡의 봄도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라고 한다. 쌀쌀한 날씨라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해인사 일주문이 보일 무렵 세월의 때를 다 입고 있는 듯한 작은 3층 석탑이 보인다. 탑이 사리를 보관하고 금당 앞에 자리 잡고 앉아 경배의 대상이 되는데 절 입구 길옆에 자리한 이 3층 석탑의 의미는 무엇일까? 세월이 어수선한 신라 진성여왕 9년(895)에 해인사를 침범한 무리를 막다가 56명의 승병이 전사하고 이를 위로 하고자 탑을 세웠다는 탑지가 있어 오늘의 충혼탑 성격을 지닌 듯 하다. 이 깊은 산사에 무슨 긴급한 사태가 있어 50여명의 스님이 전사했을까? 의아한 생각이 든다. 모자이크처럼 작은 역사의 조각을 모아 하나의 완성된 역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우리들 몫이다.한겨울에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은 전나무, 가문비나무가 의장대처럼 푸른 옷을 입고 일주문 주위에 서 있다. '가야산 해인사(伽倻山 海印寺)' 가야란 인도의 부디 가야란 지명에서 온 말일 테고 해인(海印)은? 불교의 대표적 경전 화엄경에 보면 해인 삼매란 경구가 있는데 이 세상을 넓은 바다로 생각하고 중생의 온갖 번뇌 망상이 멈춰 파도가 잔잔한 거울처럼될 때 삼라만상 모든 이치가 바다에 비치는 경지를 말한다.'가야산 해인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일주문을 지나고 봉화문, 해탈문, 구광루 등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해인사 중심 전각인 대적광전에 이르는데 해인사에는 문과 누각마다 몇 개의 현판을 달고 있어 이채롭다. 글씨 하나하나에 함축된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뜻을 다 파악하지 못한 채 눈뜬 장님이 그림 보듯 보고 세속의 사람들은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간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사방에 궁현당, 관음전, 범종각 등 여러 전각에 둘러싸인 널찍한 마당에 큼직한 석등과 석탑이 서 있다. 석탑은 높은 2중 기단 위에 3층을 올리고 지붕돌 모서리마다 녹슨 풍경을 매달고 상륜부까지 간직한 온전한 탑이지만 해인사란 큰 이름의 위세에 눌려 얼굴을 제대로 펴지 못한채 기념 촬영 장소로 자신의 몫을 다하는 듯 하다. 그러나 해인사 사적기에 의하면 창건후 몇 번이나 불이 나 거듭된 중창으로 오늘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 숱한 화재에도 석탑과 석등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을 보존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한다.옛날 많은 사람들이 가야산 자락을 메우는 이유 중의 하나가 법보 사찰임을 자처하게 하는 팔만대장경과 성철 큰스님일 것이다. 가야산 제일 높은 백련암에서 주석 하시며 삼천 배를 해야 뵐 수 있었다는 성철 스님은 이 시대 불교를 이끌어간 정신적 지주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비록 지금은 이 세상 분이 아니지만..그분이 하신 법어(法語) 중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말은 당시 세인들 입에 오르내리며 많이들 인용했지만 나의 지식으론 그 뜻을 헤아리지는 못한다. 그 말의 의미가 어렴풋 다가오지만 내 지식과 경험의 범위 안에서 맴돌 뿐이다. 이쑤시개 하나를 끝을 잘라가며 몇 번을 썼다는 근검성과 철저한 무소유로 살다 가신 스님은 그의 법력을 영롱한 사리로 남겨두셨다. 스님은 가고 없지만 그분의 향기는 가야산 전체를 덮고 아직도 면면히 남아 해인사를 해인사답게 한다.대적광전을 둘러보고 발길을 돌리는데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600여년동안 팔만대장경이 장경각 속에 보관되고 있다. 국보 제39호인 팔만대장경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보로서 몽고의 침구에 의한 국난 극복을 기원하는 뜻으로 고려 고종23년부터 16년이라는 긴 세월에 거쳐 완성해냈다. 살창의 문이 잠가져 잇어 상세히 감상할 수는 없지만 우리 선조들의 혼이 담겨 있는 위대한 유산을 보니 무언가 가슴 속에서 벅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다. 빼곡이 차있는 경판들을 보고 있자니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해인사하면 모든 이가 팔만대장경을 연상할 만큼 해인사와 불가분의 관계인데, 고려말 몽고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왕실의 피난처 강화도에서 대장경 판각의 대 역사를 시작했다. 경판의 뒤틀림과 벌레를 방지하고자 자작나무를 바다에 3년이상 담갔다가 판을 만들어 다시 소금물에 삶아 그늘에 말린 후 대패질하여 경판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무판 하나 만드는데 온갖 정성을 다 쏟았는데 부처님 말씀을 새기는 판각 때는 얼마나 정성을 쏟아 부었을까? 일설에 의하면 한 글자 새기고 세 번 절하고 또 한 글자 새겼다는데, 그런 정성을 기울인 탓일까. 앞뒷면으로 새긴 대장경판이 팔만 개가 넘어도 오자나 탈자가 없다고 하니 신비롭다.대장경 판각을 고려 왕실이 했다면 그 보관은 조선 왕조가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지금부터 600년 전인 1398년 강화도 선원사에서 이곳 해인사로 옮겼으며 세조와 성종을 거쳐 대장경을 보관할 장경각을 지금의 규모로 자리 잡게 된다. 해인사에서 가장 위쪽 높은 석축 위 독립된 공간에 마련된 장경각은 앞에는 수다라장, 뒤에는 법보전 그 사이 양 측면에는 사간장이 있어 4개의 건물이 긴 직사각형 배치로 그 큰 건물 속에 대장경판이 빼곡이 보관되어 있다.그 방대한 양의 팔만대장경판을 왜 굳이 강화도에서 내륙의 해인사로 옮겨야 했을까? 지도를 펼쳐 놓고 강화도에서 해인사까지 길을 더듬어 보면 산세 수려한 명당터도 많고 대사찰도 많건만, 당시 도로나 교통 사정으로 봐서 일일이 사람 손에 의존했을 텐데 힘들게 옮겨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름대로의 판단으로는 첫째 풍수지리적으로 물,불,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지형적 특수성과 바람의 방향과 세기, 온도 등 그 모든 것을 포함한 기후적 요소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과학적으로 설계된 장경각의 건물과 복합되어 세계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리 더 쉽리더쉽의 의의공익의 실현을 위해서 존재하는 행정조직은 하나의 기계처럼 짜여지고 움직여지며 그 관리기능은 상·중·하의 계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즉 행정조직은 계층적인 서열이 형성되어 있어 명령과 복종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데, 행정의 목표수행이 잘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은 이러한 조직의 구성원 상호간의 관계가 어떠하며, 상호작용이 원활히 되느냐 못 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직의 모든 구성원은 의사결정의 주체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인 까닭에, 상하간의 명령·복종관계가 잘 이루어져야만 그 조직은 목표수행을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조직구성원 상호간의 바람직한 협조체계를 확보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리더쉽(leadership)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1. 리더쉽의 개념행정에 있어서 리더쉽이란 조직의 바람직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조직 내의 여러 집단 또는 개인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유도·촉진하는 능력을 말한다.리더쉽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정인여·박동서·유훈·윤재풍 공저, 「행정학」(서울: 박영사, 1983), pp.230∼231.1) 리더쉽은 목표와 관련된다. 즉 리더쉽은 목표를 전제로 행동이 전개되는 과정으로서 조직관리에 있어서 불가결의 요소이다.2) 리더쉽은 지도자(leader)와 추종자(follower)간의 관계이다. 지도자는 그가 통솔하는 조직이나 집단 전체의 목표와 그 자신의 권위에 입각하여 추종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3) 리더쉽은 공식적 계층제의 책임자만이 갖는 것은 아니다. 리더쉽은 조직이나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 조직이나 집단구성원의 의견·태도·행동에 대해 효과적인 영향을 주는 능력이라고 이해한다면 리더쉽은 반드시 공식적인 조직책임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조직책임자의 직권력(headship)과 리더쉽은 구별되어야 한다.4) 리더쉽은 지도자가 추종자에게 일방통행식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호작용의 과정을 통해서 발휘되는 것이다.5) 리더쉽은 지도자의 권위(authority)를 통해서 발휘되는 것이다. 지도자의 권위는 공식적·법적으로 주어진 지위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기술능력과 기타 여러 가지 지도자의 자질과 특성에 내재하는 것이다. 지도자의 권위가 그 추종자들에 의하여 수락(acceptance)되는 정도와 그가 리더쉽을 발휘하는 정도간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2. 리더쉽과 유사개념1) 리더쉽과 직권력(headship)리더쉽과 헤드쉽의 관계는 애매한 점이 많아 명백하게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리더쉽과 헤드쉽은 모두 권위를 근거로 하지만, 그 권위가 어디에서 나오느냐에 차이가 있다. 헤드쉽은 과장 또는 국장이라는 공식적인 직위 의 권위를 근거로 하는 데 비하여, 리더쉽은 그러한 직위와는 관계없이 일정한 사람 자체의 권위를 근거로 한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헤드쉽과 리더쉽의 구체적 차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1) 전자는 공식적 조직에 있어서의 공식적 권위자만이 이를 행사하는 데 비하여, 후자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2) 전자에 있어서의 권위의 근거는 제도에 있는 데 비하여, 후자의 그것은 인간(피지도자)의 심리속에 있다.3) 전자에 있어서는 일방성·강제성을 그 본질로 하는 데 비하여, 후자에 있어서는 상호성·자발성을 그 본질로 한다.4) 전자에 있어서는 직권자와 부하와의 사이에 공감이라는 심리적 유대가 없고, 따라서 그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하는 데 비하여, 후자에 있어서는 지도자와 피지도자 사이에 심리적 공감이 있고, 따라서 그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5) 전자에 있어서 직권자-피직권자 관계는 공식적 조직상의 상하관계가 끝남으로써 즉시 해소되는 데 비하여, 후자의 지도자-피지도자의 관계는 피지도자의 심리적 유대가 끝나지 않는 한 조직상의 상하관계의 해소에 관계없이 조속된다.리더쉽과 권력(power)리더쉽은 본질적으로 영향력(influence)의 문제이기 때문에 보통 권력(power)과 구별된다. 리더쉽은 직위에 상응하는 개념도 아니고, 또한 직위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권력은 계층제 내의 직위(position)에 상응하는 개념이며 직위에 의해서만 부여되는 것이다.리더쉽이론의 변천모든 조직이나 집단은 지도자를 필요로 하지만 누가 지도자이며 누가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리더쉽을 결정하는 요인에 관한 이론과 가정은 아직도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까지 전개된 대표적인 이론은 자질론과 상황론 및 상호작용론의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1) 자질이론(traits approach)자질이론은 다시 통일적 자진이론과 자질의 성좌이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1) 통일적 자질이론 가장 오래된 리더쉽이론으로서, 일정한 자질(또는 특성)을 지닌 자가 지도자가 되는 것이며,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이러한 자질(또는 특성)을 지녀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의 주장자들은 실제로 지도자적 역할을 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인 특색을 찾아내는 방법을 썼고, 그 결과 리더쉽의 요인으로 건강·성실·지능·근면·경력·분석력·판단력·지식·열의·자제력·철저한 기질 등 100여 종 이상을 들고 있다.(2) 성좌적 자질이론 성좌적 자질이론(constellation traits)은 전기한 통일적 자질이론(unitary traits)을 수정한 것으로, 지도자에게는 이절한 자질(또는 특성)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는 통일적 자질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각 지도자에게는 그에게 고유한 리더쉽을 구성하고 있는 자질의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격패턴은 그가 놓여 있는 지위·사정 등에 따라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이와 같이 통일적 자질이론과 성좌적 자질이론이 구체적으로는 차이가 있으나 양자 모두 리더쉽의 요인을 지도자의 개인적 자질에서 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하다.. 그러나 자질이론은 ⅰ) 그 구비해야 할 자질이 너무 많은데, 이러한 자질을 구비한 사람이 과연 현실에 존재할 것인가, ⅱ) 실제적으로 각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질들 간에는 모순된 것이 많은데, 이것들을 과연 통일성있게 파악할 수 있는가, ⅲ)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데에는 그 자신의 자질보다도 그가 처하는 상황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를 설명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점이 있다.{) 최창호·정세욱, 전게서, p.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