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의 성격과 의미이번 학기 ‘신화와 철학’ 강의를 계속 들어오면서도, 복사물을 받아들기 전까지도 나는 그리스 비극에 관한 고찰을 해보리라고는 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었다. 그리스 비극이라. 그리스 신화를 토대로 여러 가지 신화에 관심이 많은 나였다지만 그 비극 자체에 중점을 두고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기에.하지만 김상봉 선생님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를 읽으며 이에 대한 상당한 관심이 생겼다. 그저 무심코 웃고 울며 지나치던 수많은 비극들이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가. 또한, 지금까지 전해오는 모든 비극의 토대가 되는 그리스 비극이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가 말이다.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회는 그리스 비극에 대한 지식과 그 단상에 대한 정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그리스 비극에 대해 고찰하기 전에 먼저 ‘비극’에 대해 생각해보자. 비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슬픔의 자기반성이다. 슬픔이 자기를 거울에 비추어보는 것, 그것이 바로 비극이다. 여기서 거울이란 곧 정신이다. 슬픔은 정신 속에서 자기를 되돌아보고 반추한다. 거울의 역할을 해주는 정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슬픔은 어디에서도 자기를 비추어볼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오로지 거울을 통해서만 슬픔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크기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슬픔의 거울, 정신. 이것이 없었더라면 슬픔은 오로지 그 자체로서만 종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 속에서 자기반성을 할 수 있기에, 슬픔은 결국 영속적인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이처럼 정신이 슬픔은 자기 속에서 드러내기 위해서는 슬픔만큼 깊어져야 하고 슬픔만큼 넓어져야 하며 또한 슬픔만큼 커져야만 한다. 슬픔을 소화할 수 없는 정신이라면 거울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뿐더러, 그 큰 슬픔을 받아들일 수조차 없다.비극은 이렇게 슬픔이 정신을 만나 피운 꽃이다. 그것은 그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큰 정신의 거울 속에서 반성되고 형상화된 슬픔이다. 또한 그것은 슬픔을 통해 깊어지고 넓어진 바로 그리스에서 비극이 일상적으로 공연되던 시대였고, 그가 접할 수 있었던 작품의 수가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공정하고 정확하게 그리스 비극의 공통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으리라 사료되기 때문이다.『시학』제 6장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비극은 행동의 모방이고, 그 모방은 아무런 행동이라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비극이 모방하는 행동은 우선 크기를 가진, 즉 위대한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탁월하고 고귀하며 완전한 행위이다. 여기서 완전한 행위랑 모든 열정을 다 바쳐 최선을 다해 자기를 전개하여 그 극한에 도달한 행위를 말한다. 그렇게 자기의 극한에 도달한 행위라는 의미에서 비극의 대상은 최고의 완전성 속에 있는 행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이란 이런 의미에서 고귀하고 완전하며 위대한 행위의 모방인 것이다.그 다음으로 비극의 형식에 관해 논해보면, 비극은 쾌감을 주는 말을 통해 모방한다. 여기서 쾌감을 주는 말이란 리듬과 멜로디를 가진 말, 즉 음악적이고 심미적인 쾌감을 주는 말을 뜻한다. 이와 동시에 비극은 서술을 통해서가 아니라 행위를 통해 모방하기 때문에 서사시와 구별되어진다. 스토리가 있다는 점에서 서사시와 비극은 같지만 비극은 연극이기에 모방되는 행위를 직접 행위 속에서 모방한다. 그렇기에 이는 가장 긴밀한 참여이고 고귀하고 완전하며 위대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이러한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통해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완수하게 된다. 비극이 모방하는 것은 고귀하고 완전하며 위대한 행위이기에 비극의 제1차적 모방의 대상은 정신의 위대함이지 슬픔이 아닌 것이다.이로써 그리스 비극에 관한 기본적 정의가 내려진다. 비극적 모방은 오직 연민과 공포의 카타르시스를 통해 완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의 고통은 비극의 본질적 요소이다. 그러나 이처럼 고통이 비극에서 요구되는 까닭은 고통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극이 그려 보이려 하는 정신의 크기가 오직 정신의 고찬가에서 유래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옳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리스 비극의 모습이 그것의 발전 과정 속에서 조금씩 변모해왔다고 상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비극이 다소 이질적인 것으로부터 변모하고 발전해온 것이기 때문에 비극작품 내에서도 아주 일관되게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뿐 아니라, 다양한 성격의 이야기들이 같이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계속해서 디오뉘소스 찬가에 대해 살펴보면, 디오뉘소스는 모든 개별자의 경계를 뛰어넘어 자유자재로 이행하는 신이기 때문에 하나인 모두를 모두 상징하는 신, 원래 하나의 신이지만 무한히 다양한 인격으로 변모할 수 있는 신이기 때문에 영웅들의 생애가 디오뉘소스의 무한한 삶과 인격 속에 녹아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디오뉘소스 신을 찬미하는 노래 역시 영웅들의 수난과 위대함, 이런 것을 회상하고 찬미하는 방식으로 변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이것이 결국 비극으로 넘어온 것이다.그렇다면 이처럼 디오뉘소스 찬가가 영웅들의 생애에 대한 회상과 찬미로 변모했을 때 그리스 인들이 원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은 디오뉘소스적 변모와 이행을 통해 영웅들의 삶에 참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참여를 통해 영웅적인 위대함을 닮는 것, 아니 스스로 위대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리스 인들이 디오뉘소스 제전에서 영웅들의 삶과 고난을 회상하고 찬미하기 시작했을 때 마음에 품었던 욕구가 아닐까. 이렇듯 미적인 도취 속에 사람들이 영웅적인 인물의 위대함과 숭고에 참여해 그들 자신이 그 영웅들처럼 위대해지는 영웅적 상승의 의지 속에서 비극은 태동하게 된 것이다.그리스 비극의 근원적 과제는 영웅적 숭고와 위대함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비극의 가장 내밀한 본질은 영웅숭배이다. 그런데 이런 영웅적 정신의 위대함이 오직 비극적 고통과 수난 속에서만 자기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그리스 인들이 깨달았을 때 영웅 숭배의 예술은 비극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처음에 디오뉘소스 찬가의 형식에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그리스 비극의 본질은 영웅숭배에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어떻게 단지 비극의 경우에만 국한된 일일까. 처음에 그리스 땅에서 문학이 태동했을 때부터 문학을 통해 표현된 가장 근원적인 욕구는 영웅숭배였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의 주인공들이 누구이던가. 아가멤논과 오뒤세우스, 그리고 아이아스 같은 영웅들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들은 나중에 다시 비극의 주인공으로 부활했던바, 서사시에서 비극에 이르는 그리스 문학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욕구는 영웅들처럼 위대해지려는 충동이었던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비극이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라 하여 그리스 비극을 염세주의나 허무주의의 소산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오히려 정 반대이다. 신적인 것을 향하여 무한히 상승하려는 욕구, 전설 속의 영웅들처럼 위대해지려는 삶의 충동이야말로 모든 그리스적 비극정신의 본질인 것이다.또한 이 충동 속에서 그리스인들이 추구했던 영웅적인 위대함이란 눈에 보이는 업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의 위대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비극의 사명은 보이지 않는 정신의 크기와 위대함을 형상화하고 드러내 보이는 데 존립했던 것이다. 정신은 고통 속에서 수난받음으로써만 자기의 크기를 증면한다. 안티고네가 죽음에 직면하지 않았더라면 무엇을 통해 그의 용기를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며, 오이디푸스가 운명을 거슬렀다 해서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았다면 무엇을 통해 그의 고귀한 성품이 증명될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것 속에서 정신의 크기를 보는 것은 현실에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위대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위대함이 오로지 비범한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깨달음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그렇기에 그리스인들은 경탄 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정신의 숭고와 위대함이 정신의 고통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고통없이 위대한 정신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것이야말로 한갓 정신의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 순금이 모니까 그리스 비극은 기원전 5세기에 꽃피었던 문학형식인 것이다. 하지만 기원전 5세기는 그리스 역사에서 전혀 비극적인 시대가 아니었다. 그렇기는커녕 이 시대는 가히 그리스의 황금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그리스의 역사에서 가장 밝고 행복한 시대였다. 대체 어떻게 그들은 그렇게 찬란한 황금시대에 그토록 어두운 운명의 심연을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일까?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그렇기 때문에 그리스 비극은 그런 불가능한 일의 실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정신은 때로는 아무런 재료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상상력만으로 아름다운 조각상을 빚어낼 수 있는 것이다.노예적인 정신은 정신이 이룩한 업적 속에서만 정신의 흔적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정신은 도리어 인간이 영웅적으로 패배하는 지점에서 정신의 크기와 위대함을 발견한다. 승리가 아닌 패배, 생존이 아닌 죽음, 행복이 아닌 불행, 요컨대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이 아니라 비참한 종말 가운데서 자유로운 정신은 도리어 우리를 감동시키고 고양시키는 정신의 무한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발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비극적 영웅이 패배하고 파멸한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기서 정신이 발견하는 인간성의 크기와 숭고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가는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서만 창조적으로 표상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는 자유의 완성이고 정점이다. 창조하는 자는 자기 아닌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무로부터 무엇인가를 스스로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시인들은 상상력을 통해 인간 정신의 숭고를 창조적으로 형상화해 보임으로써 자유로운 정신의 크기를 보여주었음은 물론 그들 자신이 자유로운 정신 세계의 창조자가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동료 시민들을 자유로운 정신의 세계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더불어 자유롭게 했던 것이다.이외에도 비극은 예술로서 우리에게 쾌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과연 없다.
그리스 신화의 정신과 현대적 의미신화란 대체 무엇인가?우리는 대게 '신화'라고 하면 거짓말, 꾸며낸 이야기, 혹은 폭넓게 신뢰를 얻고 있는 허구의 이야기를 연상한다. 그러나 지금 다루고자할 '신화'란 진실을 뜻한다. 신화는 우리의 오감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작용하기 시작하는 그 무엇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신화가 단지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 거짓말을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것이 끊임없이 우리를 매혹시키겠는가? 몇 세기가 지나도록 신화가 생명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신화'가 어떤 한가지 의미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며, 다양한 단계와 수준에서 작용하는 여러 가지 견해이기 때문이다.우리가 알다시피 신화는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설명하려는 최초의 서툰 시도이다. 다시 말해 과학의 선조인 것이다. 또한 신화는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를 설명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신화는 종교와 철학의 본체이다. 신화는 문자로 기록된 역사 이전에 일어났음직한 일들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역사 이전의 역사이다. 신화는 가장 초기 형태의 문학 -- 대개 구전 문학 -- 이다. 신화는 고대 사람들에게 그들이 누구이며 온당한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인가를 이야기해주었다. 신화는 도덕성과 통치 방식과 민족 정체성의 토대였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신화는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들 사이에 늘 변함 없이 존재해 왔다. 그리고 특히 그리스 신화는 종교로서 또는 신학으로서 그 의미는 소멸되었지만 문학과 예술부문에 있어서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는 서양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그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고금의 시와 회화에 있어서 최고의 걸작품들은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해는 서양의 역사와 문화 이해에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그리스 신화가 현재의 우리의 삶과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전제 하에, 지금도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면 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이에 관해 상세히 다뤄보도록화의 제우스에 해당하는 로마의 최고신) 미사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다고.서양에서는 흔히 사무실에서 성격이 변덕스러운 직장 동료를 수은 같다(mercurial,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사자 메르쿠리우스에서 유래한 말. 메르쿠리우스는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와 동일하다.)고 표현한다. 또 같이 일하는 어떤 동료에게 에로틱(erotic,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성애의 신 에로스에서 유래한 말)한 감정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이 직장 생활에서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육체적 관계를 염두에 두고 직장 동료에게 접근했다가는 아킬레스의 발꿈치(아킬레스 건이라고도 함. 아킬레스는 '아킬레우스'의 영어명)를 잡히기가 십상이다.현대의 기술 문명은 팩스 기계, 전화, 모뎀 등을 통해 전세계 어디에서나 의사 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프랑스의 리용에 살고 있건 미국 조지아주의 에센스(Athen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이름을 딴 지명)에 살고 있건, 우리는 신화에 의해 몇세기 거슬러 올라간 과거와도 연관되어 있다.지금 본 예시문과 같이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신화는 존재하고 있다. 신화는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여 우리의 오감 너머에 존재하는 현실을 묘사한다. 그리하여 신화는 무의식의 이미지와 의식적 논리의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메운다.그리스 신화는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여러가지 도덕적 교훈과 함께 경고를 덧붙이고 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의 이야기이다.다이달로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건축가였다. 미노스 왕의 지시로 크레타에 거대한 미로를 지은 것도 바로 다이달로스였다.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다이달로스에게 영웅 테세우스를 그 거대한 미로에서 탈출시키려 하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미노스는 아리아드네와 테세우스를 도망치도록 도와준 벌로 다이달로스를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높은 탑에 가두었다.다이달로스는 탑에서 탈출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이달진 한계를 넘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신과 교류하게 되면 지나치게 방만해져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만다. 인간들은 신으로부터 이성과 기술을 받았지만, 그 기술을 서로를 죽이는 무기를 만드는데 사용한다. 우리는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유념하여 너무 높게도, 너무 낮게도 날지 말아야 할 것이다.이 외에도 아폴론과 마르시아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교만함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마르시아스는 실레노스였다. 염소 발굽에다가 털북숭이의 꼬리를 흔들며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자랑하는 반인반수의 존재였다. 장난이 유별나고 남의 일에 시시콜콜 참견하는 버릇이 있었지만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프리기아의 늪과 숲에서는 요정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텁수룩한 머리카락, 옹골차게 튀어나온 앞이마, 아무렇게나 눌러 놓은 듯한 납작코, 못생긴 수제비처럼 빚어진 귀 , 땅딸막한 체구는 결코 아름답다고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늘 부지런하고 쾌활하고 건강했다.어느 날 저녁. 숲 속에 갈대를 깔아 놓고 막 요정을 불러 낸 참이었다 분위기가 바야흐로 무르익는데 가까운 곳에서 이상한 기척이 났다. 호기심 많은 마르시아스의 귀가 쫑긋했다. 투정하는 요정을 모른 척 밀쳐 두고 살금살금 풀숲 사이로 훔쳐보니 낯선 여인의 옆모습이 보였다. 아테나 여신이었다. 아테나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오똑한 코와 깊게 빛나는 눈, 정갈한 입술은 대리석으로 빛은 것처럼 차가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지혜의 여신다운 풍모였다. 게다가 저녁놀에 물든 은빛 투구가 그녀의 얼굴에 광채를 더하자 마르시아스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흘렀다. 숲의 요정 따위는 댈 바가 아니었다. 더구나 아테나는 처녀신이 아닌가.얼토당토않은 마르시아스의 뱃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테나는 피리 불기에 열중했다. 나뭇가지를 다듬어서 만든 피리가 소리를 제대로 내는지 시연을 해볼 요량으로 늪가에 나왔다. 입에 바람을 잔뜩 머금고 숨을 고르게 내보내자 피리에서 소리가 울려나기 시작했다 음의 대소와 스승 삼아 열심히 피리를 불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피리를 입에서 떼지 않았고, 잠자리에서도 입에 물고 있어야 잠이 왔다. 잠이 들면 마르시아스는 바람이 되어서 피리 속을 뛰놀았다. 마르시아스가 피리를 연주하는지 , 피리가 마르시아스를 연주하는지 알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음악의 신이라도 따르지 못할 궁극에 다다른 것이다.마르시아스는 음악의 신과 더불어 자신의 연주를 겨루고 싶었다. 아폴론이 그의 당돌한 요청을 순순히 수락한 것은 어쩐지 의외였지만, 그동안 연마한 솜씨로 음악의 신을 이길 수 있다면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라도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여름날 트몰로스 산정의 우묵한 분지에서 때아닌 연주회가 열렸다. 패자가 승자의 요구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조건이었다. 음악에 식견이 있는 미다스 왕과 트몰로스의 산신이 심사관으로 초빙되었다. 빛나는 월계관을 이마에 두른 아폴론은 키타라를 뜯었고, 마르시아스는 초라한 나무 피리를 불었다. 그러나 연주는 누가 보아도 마르시아스의 승리였다.이윽고 미다스 왕이 승자를 확정했다. 마르시아스의 입은 기쁨으로 벌어졌으나 아폴론신의 이맛살은 굵게 패였다 심사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신의 노여움을 산 미다스 왕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벌을 받았다. 음악을 제대로 들을 줄 모른다는 이유로 아폴론이 그의 귀를 당나귀 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러고도 아폴론은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아폴로도로스의 기록에 따르면 아폴론이 마르시아스더러 악기를 뒤집어 연주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키타라는 현악기여서 세우건 뒤집건 뒤로 돌리건 플렉트론으로 뜯으면서 연주가 가능하지만, 피리는 뒤집어 불면 소리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르시아스는 미처 몰랐다. 또 연주에 곁들여 시를 음송할 수 있는 키타라에 비해서 피리와 같은 관악기는 시를 곁들일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마르시아스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 싫었지만, 악기가 가진 약점 때문에 손 안에 쥐었던 승리를 빼앗겼다.아폴론은 신성을 넘보았던 마르시아스의 예술적 리기아풍의 연주가 울려퍼질 때면 나뭇가지에 걸어 두었던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이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고대 신화의 한 주제였던 마르시아스의 처형 장면은 후기 중세에 접어들어 신성을 깔보는 교만의 죄에 대한 합당한 대가'의 본보기로 인용되었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신화 해석이 더욱 다양해졌다. 마르시아스에 대한 아폴론의 승리가 '육체에 대한 영혼의 우위' 를 나타내거나 '아폴론적인 문예의 능력이 자연의 거친 무질서를 이겨내는' 상징적 예화로,혹은 신적인 음악을 통해서 지상의 고통을 벗어나는 비유적 가르침으로 예시되었다. 이 경우에 아폴론은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되었다. 또 가죽을 벗겨 내는 형벌을 통해 육신을 버리는 마르시아스의 고통을 두고 '동물적 욕구와 육탐의 혹독한 시험을 이겨낸 영혼의 승리' 로 해석 하기도 했다.마지막으로 그리스 신화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확립이다. 성경에 이브가 있다면, 그리스 신화에는 판도라가 있다. 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 물론 해석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 여성에게 원죄를 씌운 것이다. 즉 남성 위주의 세상을 만든 것이다. 세계의 여러 신화의 공통점은 태초에는 어머니 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가이아나 이집트 신화의 이시스처럼 말이다. 이러한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를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그리스 신화의 역할은 무시 못한다. 위대한 여신의 상징인 뱀이 영웅들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가 신화 곳곳에 있고,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살해한 후 용서받는 장면이나, 메티스가 제우스에게 통째로 삼켜 먹히고 아테네를 낳은 이야기, 아가멤논이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키는 이야기 등 가부장제의 원형이 올림포스의 가족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아테네는 어머니의 딸이기를 거부하고 아버지의 딸로서 활동을 한다.부계사회가 확립되어 갈 시기에 확립된 올림포스 신앙은 급속도로 퍼져가면서, 이전의 모계사회에 대한 기억을 점점 지워버린 것이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정착되는 과정인 것이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