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 서평 및 분석1. 이용규 선교사《내려놓음》의 저자인 이용규 선교사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여 이 땅에서는 벽돌로 지은 집에 살지 않고 장막 안에서 살았던 믿음의 족장들처럼, 이용규 선교사도 안전한 거처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본향 찾는 나그네, 곧 천국 노마드를 자처하여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자리에 섰다. 그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도미 유학, 하버드대학교에서 중동지역학 및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자마자 안락한 미래의 보장과 인간의 기대를 전부 내려놓고 척박한 땅인 몽골 선교사로 헌신하여 ‘이레교회’의 담임사역자로 몽골인들을 섬겼다. 그는 현재 몽골의 크리스천 대학인 몽골국제대학교(Mongolia International University)의 부총장으로 봉직하고 있다.'내려놓음'이란 나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삶의 결단이다. 매일의 필요를 채우는 물질, 안정된 미래, 명예와 인정받음에 대한 욕구 등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절묘한 때를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이용규 선교사의 말이다. 또한 유목생활을 하는 몽골인들을 바라보며 살아온 경험을 통해 이른바 '천국 노마드(heavenly nomad)'의 개념을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가지려 할수록 공허해지는 욕심을 내려놓고 진정한 영적 가치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례자의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르틴 루터가 자기 시대의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자국민들이 복음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했듯이, 이용규 선교사도 복음을 우리 시대, 우리의 언어로 번안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쉽게 전달하는 큰 은사를 지니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죽었다”라는 복음의 핵심 주제를 ‘내려놓음’으로 명쾌하게 번안했다. 즉, 십자가가 이 시대의 언어로 완전 번역된 것이다. 그는 십자가를 이 시대의 언어로만 번역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핏덩이와 살점으로 식자했다. 즉, 십자가가 구두을 의지하게 되고 돈이 우리의 신앙이자 안식처이며 성벽이 되기 십상이다""기대했던 사람에 대한 서운함이나 아쉬움 같은 감정들은 근본적으로는 내가 임시적 공급척에 목을 맬 때 오는 현상이었다."이는 나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에도 던지는 메시지가 매우 크다. 이미 기복주의와 물질주의라는 신앙의 독(毒)에 너무도 깊이 빠진 한국교회에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일시적 행복이 아닌 비록 작은 것이지만 그로부터 큰 행복을 도출하는 것, 그리고 그 빈자리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충만히 채워 넣는 것을 오늘날 한국교회는 너무도 쉽게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미디엄 커피 한 잔, 피자 한 판으로부터 오는 행복으로도 즐거워했던 저자와 그의 아내의 유학 생활은 즐거웠던 것이다. 오늘날 이런 작지만 큰 행복을 누리는 사람, 특히 크리스천이 매우 드물다는 사실은 너무 비참한 삶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이 위대한 명제를 몸소 자신의 몸속에 체화시켜야 한다. 행복은 반드시 소유와 소비를 통해서 오는 것은 아니다.4장과 7장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바로 인간 스스로의 경험과 지식에 의거한 선교사역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우리의 경험과 지식에 의거해서 일상적으로 일을 계획하고 진행시킨다면 그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는 어렵다. 달리 말한다면 한국교회는 선교 사역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충만히 채우시리라는 믿음의 삶, 즉 내려놓는 삶의 방식을 사는 것이 아닌 자신의 계획, 준비, 결론맺는 것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다. 몽골로의 단기 선교사역을 준비하는 한국교회의 사역 팀과 저자가 빚은 갈등은 이를 증명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그들의 철저한 준비가 오히려 현지 선교사들을 지치고 힘들게 한다. 아울러 더 크게는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를 모두 차단하는 것이 된다."이것은 정확히 사역의 열매를 단기간 내에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만져 주심을 이용규 선교사는 책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용규 선교사가 하버드 대학에 가는 경위에서부터 몽골에 가게 되는 모든 과정들을 간증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골똘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과연 나라면 한 번의 응답하심에 과연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하버드의 교수자리도 보장받은 입장에서 그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미국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이용규 선교사가 가려고 했던 곳이 바로 몽골이라면 그런 결정을 누가 쉽게 할 수 있겠는가? 사실 내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봐도 그런 결정의 순간에는 쉽게 결정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결정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에는 못가겠다고 두 손 두발 다 들어버리는 일도 내게 생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규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몽골 선교사로 불렀다는 강력한 소명의식을 깨닫고 아내에게 말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 아내의 반대로 인해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그런데 이용규 선교사의 아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는 관점에서 이용규 선교사보다 더 대단한 것은 바로 이용규 선교사의 아내되는 분이 더 대단한 결정을 했다고 본다. 남편의 결정에 아무 말 없이 따른 아내가 더 큰 용기가 있다고 본다. 사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몽골에 간다고 남편이 이야기했을 때, 선뜻 따라나서는 것을 보통사람이라면 망설이고 힘들어 할텐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따라간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것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고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지의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이 따라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 매뉴얼이 주어진다고 해도 따라가기 힘든 판에, 더군다나 몽골이라니. 이용규 선교사도 대단하지만, 그 가족들이 대단하다.어떻게 보면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그럼 예수님이 제자에게 내려놓은 자세도 말하는데, 그 가르침은 제자가 선생을 따르는 자세와 태도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하나님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부르셔서 그들을 낮추시는 장소를 광야로 선택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에굽에 있었던 죄악된 습관들을 태도들을 벗어내도록 바로 정리 정돈하도록 계획하셨으나 이들은 자신을 내려놓기보다 하나님께 자기요구에 간구하기를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게 죄악된 습관들을 벗어내기를 내려놓기를 꺼려했던 무리들이다. 결국 그들이 선택받았으나 그에 합당하지 못하자 바벨론에 포론가 되어 추접한 사람들로 살아갔지 않는가?이 구약에 있었던 역사는 오늘날도 분명하게 재현되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악됨은 죄인의 후손을 통해 출산되어졌기 때문이다.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생활되어지는 말씀과 삶이 병행되어져야만, 비로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듯이 자신을 내려놓는 죽음의 길로 또는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제자의 길로 가게 된다. 하나님은 세상과 다르게 스스로 자만하고 교만한 사람을 높이 세워주기 보다는 사람이 하나님이 하심을 자랑하며, 하나님에 존재를 경외하는 사람을 바로 겸손한 사람을 높이 치켜 세워주신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신앙생활에 접속되어진 삶에 적응하기까지는 자기를 낮추는 훈련이 필요하게 된다. 물론 그 훈련 장소는 사군학교 중에도 영적 사관학교인 광야이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드신다. 광야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하며 경외하는 믿음을 올바로 세워진 사람으로 재창조 하신다.에굽에 있던 사람들을 종된 생활하던 사람들을 모세를 통해 이끌어내는데, 신기하게도 선택했다고 해서 모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쟁취하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 두 사람은 여호수한 교만의 자리에 올라가본 사람만이 겸손의 자리로 내려와서 경험되어진 깨달음이다.사람은 죄인의 후손에서 출생되어졌기 때문에 아무래도 죄의 속성 즉, 죄악된 성품은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이다. 사람이 속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물이나 그 속에 담겨진 유전이다. 죄의 유전을 갖고 출생되어졌으니 각각의 사람마다 겪게 되는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저 광야의 생활 속에 겪는 고난과 아픔을 통해 비로소 치유와 회복에 희열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픔을 겪지 안아본 사람은 하나님에 깊고 넓고 풍성하신 사랑을 경험하기가 어렵다. 고난을 통해 참된 믿음을 얻은 욥이란 인물. 고난도 고난이더라도 다 같은 고난이 아닌 것은 죄가 있어 매를 맞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인 반면에 선행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며 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바울도 자신이 받는 고난을 영광의 고난이라고 선언하는 것도 참된 고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내려놓는 말은 단순하게 짐을 내려놓는 것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으나 신앙인의 입장에서 내려놓는 것이 있는데, 그 짐은 죄악에 짐을 내려놓으나 여기에 끝나지 않고 이제는 복음에 짐을 짊어지고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존 번연이 기록한 천로역전에서 섬세하게 재연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우여 곱절을 겪고 다니면서 알게 되었으나 이에 끝나지 않고, 이제는 천국에 이르는 과정에 접속하여 천국에 가기까지에 믿음을 지키며 생활되어지는 모습을 자신에 외적인 행동과 내적인 성품관리에서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다.오늘도 나는 죄악에 짐을 짊어지고 슬픔에 젖어 괴로워하여 누구에게나 위로받고 싶어 하는 자리에 있지 않는가? 자리도 낮은 자리에 앉을지라도 그 사람이 앉는 목적이 다를 수 있다. 이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 낮은 자리에 앉은 것은 섬기기 위해 함께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물론 범죄 하면 지위를 막론하고 추한 자리로 앉아야 한다. 반면에 의와 진리로 인한 복음의 짐을 짊어지더라도 기쁨이 가득하여 이다."
내려놓음 독후감1. 들어가며이 작품《내려놓음》에서는 우리가 내려놓으면 모두 빼앗긴다고 세상이 유혹하지만 진리는 우리가 내려놓을 때 온전한 우리 것이 된다고 약속함을 말한다. 우리 인생에는 ‘분명한 내 것’처럼 보이지만 남김없이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 힘겹게 쌓아올린 명예, 꼭 움켜쥔 재물, 미래의 불안과 생명의 위험까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을 때 진정한 쉼과 참된 평안을 체험할 수 있다. 하버드 명예도, 미래의 보장도, 가족의 안전도, 심지어 헌신의 열매까지도 “너는 그저 내려놓으라”는 하나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인도하심 따라 천국 노마드의 삶을 누리는 몽골의 이용규 선교사. 우리는 그를 통해 크리스천의 제일 덕목이 되는 ‘내려놓음’의 진수를 맛본다. 그렇다면 ‘천국 노마드’(heavenly nomad)란? ‘노마드’란 ‘유목민,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을 해온 몽골 민족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천국 노마드’란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한다. 또한 하버드 박사학위를 받고 몽골 선교사로 헌신한 이용규 교수(몽골국제대학교)가 복음을 전하는 하늘나라 유목민이 된 것을 일컫는 말인 동시에, 진정한 영적 가치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사모하는 참된 크리스천이 헛된 가치를 내려놓고 하나님나라를 향해 가는 믿음의 순례자가 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진정한 내 것을 얻으려면 내려놓아야 한다. 아들 동연이가 두 살 때 함께 장난감 가게에 간 일이 있다. 동연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버즈 장난감을 두 팔로 꼭 움켜쥔 채 가게를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장난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계산대에 올려 점원이 바코드 판독기로 읽게 해야 했다. 그래서 점원이 동연이의 팔에서 장난감을 넘겨받으려고 했을 때, 동연이는 울며 장난감을 꼭 쥔 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장난감이 진정한 자기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잠시 계산대에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구에게나 광야의 시간들, 자기의 것을 포기하고 세밀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주님 앞에 내려놓는 훈련과 아울러 실제 사역의 현장가운데에서도 계속적인 하나님의 음성듣기와 순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이 책에서 저자의 주옥같은 간증과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사역자로서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위한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으로써 저자는 처음에 “복에 통로가 되는 광야로의 부르심”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의 실례를 들어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야학교를 거쳐야 한다고 말하며, 저자 역시 유학시절을 통해 철저히 주님께 훈련되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광야학교에서는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기대하고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갖고 순간순간 주님만을 신뢰하는 훈련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체질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힘들고 어려운 이 과정을 통해 ‘어느 곳에 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를 깨닫고 자기의 것을 포기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위한 훈련에 들어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광야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작은 부분도 철저히 내려놓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저자의 고백처럼 주님께 내 일생을 드리며 헌신하여 복음을 선교사의 삶을 살겠노라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두 번째로 저자는 유학의 시기를 통해 미래의 계획과 물질, 생명과 안전, 경험과 지식, 죄와 판단, 명예와 인정 또한 사역의 열매를 내려놓게 된다. 그 어느 것도 자기 것으로 취하는 것 없이 철저히 하나님 것임을 100% 인정하여 주님께 내어 맡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사역의 열매’부분에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사역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역인 것을 가끔씩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실망했던가! 사역의 동기를 늘 점검하고 구체적인 부분들 모두 내려놓아야 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저자의 모습은 한마디로 하루하루 십자가의.3. 천국으로의 길, 노마드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도미 유학, 하버드대학교에서 ‘중동 지역학 및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수여하자마자 안락한 미래의 보장과 인간의 기대를 전부 내려놓고 가족 모두가 몽골 선교사로 헌신, 미국 보스턴 케임브리지 연합 장로교회로부터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 받아 몽골 울란바토르에 오병이어 선교회에서 설립한 ‘이레교회’를 담임목회하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온 저자의 삶은 그야말로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몽골의 유목민을 가리키는 ‘노마드’를 연상케 한다.그렇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자신의 간증을 통해 말하고 있다. 걸음걸음 마다 ‘내려놓음’의 시험을 통과한 흔적이 역력하다. 내려놓음은 하나의 시험이며, 또한 시련이다. 내려놓지 않고는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를 볼 수 없다. 하지만 내려놓으면 내가 죽을 것만 같아 보인다. 그래서 더욱 움켜잡으려 하고, 움켜잡으려 하면 할수록 공허해진다. ‘내려놓음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왜냐하면 내려놓음은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 때문이다.저자는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비우라고 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기 위한 전 단계로 비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 비움의 목적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저자가 경험한 다음과 같은 내려놓음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미래의 계획을 내려놓는다.텅빈 물질 창고까지 하나님께 내려놓는다.생명과 안전에 대한 염려마저 내려놓는다.결과를 예상하는 경험과 지식을 내려놓는다.죄와 판단의 짐을 내려놓는다.명예와 인정받기의 욕구를 내려놓는다.사역의 열매를 내려놓는다.하지만 내려놓는 것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과의 오랜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신뢰하 와중에 계속적으로 내가 이해하고 또 행하고 있는 순종의 모습이 자꾸만 드러나서 마음이 씁쓸했다. 타인을 향해서 성경의 원리대로 살지 않는다고 질타했던 내게 '잠잠하라'라는 메세지를 던져왔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원하시는 방향을 알기위해서는 타인들을 의식하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나의 모든 의식이 집중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의 필자도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과의 밀착되는 관계로 변화되는 모습 속에서 진정으로 내게 예비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발견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그렇게 되는 방법이 바로 '내려놓는 것'이었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무엇을 부여잡아야 되는가?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기 목적과 자기위안, 자기 인정의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는 말씀을 내가 믿는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나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어려움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선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그것은 곧 자기중심적 삶의 모습이다. 우리는 흔히 내 일이 잘되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기고, 내 일이 잘못되면 사탄이 방해해서 그렇다 라고 여기며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끈질기게 구한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의 축복이냐 아니냐의 기준이 나의 일이 잘되고 안되고에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결국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내가 중심이고 하나님을 나를 도와주는 존재의 모습으로 전락시켜 버린다.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바로 하나님의 허락하심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일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나의 중심성은 조금씩 고쳐질 수 있을 것이다. '내려놓음'의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과 동등된 존재자이지만,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려놓으신 예수님. 그 속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인정하셨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해야 내 속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거룩한 소원으로 채워져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로 이해된다. 하나님 안에서 그의 자녀로서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내세우지 않고 모두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참된 삶이 바로 '내려놓음'의 삶인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영적 세계에서 비움은 채우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라는 명제로 도출된다. 이러한 명제는 크리스천의 참된 삶은 세상에서의 물질조건에 탐닉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닌 영적 세계, 즉 천국에서의 삶을 지향하는 비움의 세계에의 지향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러한 영적 세계에의 실제적 체험을 이 책 전체에 옮겨 놓은 것이다. 저자는 직접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우리가 내려놓기 전에는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없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일단 내려놓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너무도 쉽게 망각한다. 내려놓는 삶의 참된 의미는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과 하나님께서 그것을 채워주심이라는 두 가지 항(項) 사이에는 시간적 개입이 필수적이다.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는 것은(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실 때 충족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시간적으로 자신의 욕망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 다음에 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멋있는 예화 중 하나인 저자가 자신의 아들 동연이가 장난감 가게에서 계산대 위에서 장난감을 내려놓지 않은 사건을 통해 발견한 내려놓는 삶의 비밀은 이를 분명히 한다. 동연이가 자신의 장난감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계산대 위에서 그것을 내려놓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했던 것이다.저자는 이 내려놓는 삶은 성경에서의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선진들에게서 충분히 증명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예수님 등은 모두 이 내려놓는 삶을 살아가는 경험을 했는데 그것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영적 공간은 바로 '광야'이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을 때 이런 말씀
내려놓음 감상문1.《내려놓음》작품개관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은혜이건만 우리는 끊임없이 내 것을 주장하곤 한다. 내 생각, 내 욕심, 내 소유... 그렇게 내 것 챙기기에만 골몰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신다. 이때 영적인 어린아이인 우리는 내려놓으면 빼앗긴다고 생각하여 선뜻 순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정 내려놓음은 무엇이고,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내려놓으라고 하실까? 이 책에 따르면 내려놓음이란 나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삶의 결단이다. 또한 하나님이 내려놓으라고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것이 진짜 우리 것이 되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며 고백하며 몽골 광야를 선택한 하버드 박사 이용규. 현재 그는 몽골에서 아내와 두 자녀 동연, 서연과 함께 몽골 국제대학교 역사학 교수로, 몽골 이레교회의 평신도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다.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것을 내려놓게 된 과정과 그것을 내려놓은 이후에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에 대해 나누고 있다. 그는 미국 유학생활과 몽골 선교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하나씩 내려놓는 삶을 배워간다. 가정, 학교, 교회 등의 일상 속에서 그는 자신의 것을 비웠을 때 온전히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역사를 경험한다. 그는 자신의 빈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울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그가 말하는 내려놓음의 대상은 앞날의 방향과 미래 계획, 매일의 필요를 채우는 물질, 생명과 안전, 결과를 예상하는 경험과 지식, 죄와 판단의 짐, 명예와 인정받기의 욕구, 사역의 열매 등이다. 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절묘한 때를 만날 수 있고, 공급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직접 채우심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가장 안전한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나의 경험과 지식을 뛰어넘음으로써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를 차단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선택 것을 포기하고 세밀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주님 앞에 내려놓는 훈련과 아울러 실제 사역의 현장가운데에서도 계속적인 하나님의 음성듣기와 순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의 주옥같은 간증과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사역자로서의 모습을 보게 된다.(1) 제1부 복의 통로가 되는 광야로의 부르심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위한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저자는 처음에 “복에 통로가 되는 광야로의 부르심”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의 실례를 들어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야학교를 거쳐야 한다고 말하며, 저자 역시 유학시절을 통해 철저히 주님께 훈련되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광야학교에서는 다른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기대하고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갖고 순간순간 주님만을 신뢰하는 훈련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체질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힘들고 어려운 이 과정을 통해 ‘어느 곳에 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를 깨닫고 자기의 것을 포기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위한 훈련에 들어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광야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작은 부분도 철저히 내려놓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저자의 고백처럼 주님께 내 일생을 드리며 헌신하여 복음을 선교사의 삶을 살겠노라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2) 제2부 가장 좋은 것을 붙들기 위한 내려놓음저자는 유학의 시기를 통해 미래의 계획과 물질, 생명과 안전, 경험과 지식, 죄와 판단, 명예와 인정 또한 사역의 열매를 내려놓게 된다. 그 어느 것도 자기 것으로 취하는 것 없이 철저히 하나님 것임을 100% 인정하여 주님께 내어 맡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사역의 열매’부분에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사역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역인 것을 가끔씩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실망했던가! 사역의 동기를 늘 점검하고 구체적인 부분들 모두 내려놓아야 함을 다시 한번 우리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내려놓는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적극적으로 던지고 그 안에서 답을 찾으며 그를 통해 내려놓는 삶을 실천할 때에 이 책을 제대로 다시 읽을 수 있을 것이다.3. 한국 교회의 위기오늘날 한국 교회는 치유할 수 없는 정체모를 질병에 걸린 듯하다. 그 질병은 가시적/비가시적으로 교회 공동체 전체를 좀 먹고 있다. 정체를 알면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종교적 역설. 기복주의 신앙, 목회자 세습문제, 교회의 기업화, 목회자와 평신도의 계급적 권력 관계 형성, 교회 안과 밖의 양극화 심화, 수구-보수 기독교 세력의 정치화와 제도정치적 공론장(場)에의 비이성적 질주 등.이러한 모습들은 21세기 최첨단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개신교회의 실재, 그 자체이다. 1907년 평양 성령 대부흥의 100년이 넘는 현재, 일부 기독교 세력들은 표면적으로는 그때의 집합적 열광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하는 염원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수구 보수 세력의 정치적 선전 세력을 자처하는 야뉴스의 얼굴로 자기 자신을 변모시키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목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오늘날의 한국의 개신교회는 왜 그토록 우울하고 그로테스크한 광기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용규 선교사의 '내려놓음'은 한국 개신교회가 처한 오늘날의 이같은 총체적 위기 상황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 문제제기에 대한 충실한 해답을 제공한다.이에 이 책을 읽는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과연 이 책, '내려놓음'은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의 크리스천에게 제대로 읽힐 수 있을까? 만약 이 책이 우리에게 제대로 읽힐 수 있다면 그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국 개신교회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 우리는 더 나아가 이 책을 우리가 제대로만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진 슬픈 연극의 장막 너머로 드리워진 그늘을 없애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것이다.먼저, 저자의 '내려놓음'의 삶이란 어떤 삶인지를 저자의 개념적 정의를 통해서 살펴보자. 내려놓는 삶은 한마디로 온유함을 이루는 삶이다 라고 '내려놓음'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다. 여기서 온유한 자는 내 속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거룩한 소원으로 채워져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로 이해된다. 하나님 안에서 그의 자녀로서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내세우지 않고 모두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참된 삶이 바로 '내려놓음'의 삶인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영적 세계에서 비움은 채우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라는 명제로 도출된다. 이러한 명제는 크리스천의 참된 삶은 세상에서의 물질조건에 탐닉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닌 영적 세계, 즉 천국에서의 삶을 지향하는 비움의 세계에의 지향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러한 영적 세계에의 실제적 체험을 이 책 전체에 옮겨 놓은 것이다. 저자는 직접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우리가 내려놓기 전에는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없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일단 내려놓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너무도 쉽게 망각한다. 내려놓는 삶의 참된 의미는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과 하나님께서 그것을 채워주심이라는 두 가지 항(項) 사이에는 시간적 개입이 필수적이다.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는 것은(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실 때 충족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시간적으로 자신의 욕망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 다음에 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멋있는 예화 중 하나인 저자가 자신의 아들 동연이가 장난감 가게에서 계산대 위에서 장난감을 내려놓지 않은 사건을 통해 발견한 내려놓는 삶의 비밀은 이를 분명히 한다. 동연이가 자신의 장난감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계산대 위에서 그것을 내려놓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했던 것이다.저자는 이 내려놓는 삶은 성경에서의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선진들에게서 충분히 증명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아브라함, 이삭, 살 것인가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맡기는 삶, 다른 말로 내가 비워지고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삶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성취욕, 세상을 향한 야망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명분이 뒤섞여 있는 상태에서 정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거룩한 내려놓음이며 어디까지가 두려움에 의한 포기이며, 혹은 패배자의 변명이나 게으름에 대한 핑계인지 본인 스스로도 정확한 진단은 어려웠던 것으로만 생각되었었다.하지만 이 책은 미국 유학과 그 준비과정, 그리고 선교의 현장과 삶의 전반에서 경험하는 하나님과 그분이 주시는 깨달음, 우리가 내려놓았을 때의 그분께서 직접 채우시고 일하시는 과정을 바라보며 저자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생생하게 담아내었다."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단지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뜻이 아니다. 그렇게 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 둘 다 누리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세상을 잡고 있는 것이다. 양쪽에 걸치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십자가 아닌 세상을 택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우리가 자신의 권리로 여기던 무엇인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진짜 행복을 얻었다는 증거이자 우리가 성장했다는 증거이다."고로 내려놓는 삶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삶이 된다. 진로의 선택에 있어서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들과 동일한 것이 작가에게도 있었다. 그가 유학 초기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도 그 자신 안에 있던 두려움 때문이었다.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한 불안감 실패에 대한 걱정,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것에 대한 초조함이 스스로를 두렵게 했던 것이다. 우리는 학교나 직장을 선택할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어느 학교나 직장이 자신의 사회적 성공이나 경제적 성취에 유리한지에 늘 관심이 쏠린다.우리 모두가 현재의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이것이 주는 경제적 넉넉함과 주변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여다.
30년만의휴식 독후감1. 이무석 의학박사《30년만의 휴식》의 저자 이무석 박사는 전남의대를 졸업했고, 전남대에 정신과를 창설한 김성희 교수에게 정신의학을 배웠다. 영국 런던대학과 미국 샌디에이고 정신분석 연구소에서 연수. 국제 정신분석학회장을 역임한 런던대학의 샌들러 교수에게 정신분석을 배웠고, 영국 정신분석학회의 교육분석가인 베이커 박사와 샌디에이고 정신분석학회의 교육분석가인 타이슨 박사에게 350여 시간에 걸친 개인분석을 받았다.한국 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2005년 한국 정신분석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전남의대 정신과 교수이며 대표적 저서로는 가 있고, 역서로 , 가 있다. 논문으로는 외 50여 편을 발표했다. 스스로 받은 개인분석 경험을 더하여 환자들이 마음의 자유와 휴식을 얻게 하는 분석으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2. 들어가며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내면이다. 같은 상황을 놓고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다. 누구는 분노하고 좌절하지만 누구는 긍정적인 면에 포커스를 맞춘다. 저자는 이런 반응의 차이는 각자 삶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내면의 차이 때문이라 한다. 30년만의 휴식은 30대 직장인 휴(休)의 스토리를 통해 우리의 심리적 현실을 좌우하는 내면을 이해하는 길을 읽기 쉽게 제시한다. 또한 이를 통해 자기가 만든 감옥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살며 다른 사람과도 행복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소개한다.이 책에는 세상의 휴들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분노하고, 좌절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교만하고, 의존적이고, 두 얼굴을 가지기도 하는 세상의 휴들. 저자는 그들에게 마음을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의식을 이해하고, 참된 마음의 쉼을 누리기를 바란다. 이처럼 이와 같은 일들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30년만의 휴식은 세상의 또 다른 휴들에게 내가 내 마음을 이해함으로써 행복해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또한 이 책에서는 특히 어린시절 부모의 사랑과 인정이 한 사람의 인격형성에 절 형태의 새로운 개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휴(休)테크 역시 ‘잘 놀고 쉬는 것이 경쟁력이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이다. 휴테크 전략을 세우거나 경쟁력 있는 여가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처세서 또는 실용서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분야의 책을 읽었을 때 한편으론 마음 속이 공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가장 큰 이유는 책을 읽는 머리와 나를 지배하는 마음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마음 속으로는 휴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대도 머리로만 열심히 떠나고 쉬는 휴식을 이야기하니 그 불균형이 야기하는 공허함일 것이다. ‘30년만의 휴식’, 이 책은 마음 속으로 휴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기 위한 책이다. 다양한 심리 상담을 통한 경험과 저자의 심리학적 지식을 토대로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 책을 다루고 있으나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는 여행서와 같은 느낌을 준다.이 책에 등장하는 30대 직장인, ‘휴’의 모습에서 나를 대비시켜 나가며 그가 고민하고 갈등 하는 일, 관계, 존재 등의 문제가 나의 고민, 갈등이고 자신을 발견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휴’는 바로 내 자신이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각각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서로 다르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가지의 해결책이 모든 문제들을 일사천리로 풀어나갈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심리학적인 문제 역시 한가지의 해결책이 여러 가지-얽히고 설키고 꼬일 대로 꼬여버린-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 한가지의 해결책은 바로 내 마음 속의 아이를 찾고 내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고흐는 ‘나는 보기위해 눈을 감는다’라고 하였다. 내 마음속의 아이를 찾아 보듬기 위해 눈을 감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 의식과 무의식, 머리와 가슴 등의 대립과 충돌 속에서 이 책을 통해 이제는 보이지 않는 부분, 무의식, 가슴을 들여 다 보도록 노력해야겠다. 내 자신이 철부지 어른(Adu매우 수월하게 느껴졌고, 또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새롭다. 근래 읽은 어떤 책도 이만큼의 수월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없었다.한마디로 책의 요지를 정리한다면 나의 오늘 행동이나 반응은 내 어릴 적 상처의 미해결상태를 드러내는 궤적이라는 것이며 현재의 문제해결은 과거의 원인파악에 의해 정확하게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하겠다. 누구나 겪는 어릴 적 그 시기의 어떤 상처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나 자신에게 남아 있어 그 문제에 관한 한 나 자신은 성장을 멈추고 어린 아이로 남아 그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큰 고통을 수반한 사고를 겪은 사람이 그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유사 상황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을 만성화돼 버린 상처의 고정된 반응이 나의 행동방식을 규정하고 고착화시켜 놓았음을 똑바로 인지하고 다시 과거 특정 시점의 현실과의 조우를 통해서 지금의 내가 충분히 그때 그 상황을 통제하고 해결할 수 있음으로 인해 나의 문제가 근본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이다.사실상 우리 자신은 과거의 이슈에 대해 회피하기를 쉽게 선택하는데 바로 맞서 볼 수 없다면 전문적인 도움까지도 받아서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지어진 우리들이기에 흠 없고 상처 없이 온전하게 그 모습처럼 자라남이 타당하겠지만, 불완전한 인간사의 관계는 언제나 우리 의사와는 관계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게 된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관계 속에서 너무나 쉽게 우리는 상처주기와 상처받기에 노출되는 것이다. 우리 안의 어린 아이는 가족의 충분한 사랑 속에서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했으므로 성인이 된 시기에 이르러서라도 그 사랑의 주고받기를 통해서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평안해지며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책이 아닐 수 없다.5. 내면의 아이들이 책에서는 내면의 아이 이야기가 나온다. 정신분석에서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지금 현재에 문제를 일으키는 많은 이유가 내면에 있는 아이자긍심을 키워가면서 많이 성숙해 졌음을 느낀다. 물론 앞으로 나아갈 길이 더 멀고 험난하기도 하겠으나 그 것은 나를 위한 길이므로 두렵지도 어렵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나의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그러면서 내가 느끼는 행복감이 점점 커질 것이라는 굳은 믿음과 함께.(1) 성난 아이이들의 모습은 화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가 죽어 있고 복종적인 태도를 보인다. 분노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내가 작아 보인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나를 작게 느끼게 하기 때문에 분노가 생기는 것이다.이 감정을 없애기 위해서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에 대해 떳떳할 수 있는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 나를 작게 만드는 사람에게 나를 판단할 전권을 주지 말라.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관계없이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2) 질투하는 아이마음속의 시기하는 아이는 다른 형제보다 부모로부터 더 많은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데 받지 못해서 생겨나는데, 비교의식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질투하는 아이에게서 벗어나려면 다른 사람보다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스스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존재이유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인 것만으로도 존재이유가 충분함을 깨달아야 한다.(3) 의존적인 아이어릴 때 엄마의 보살핌이 부족해서 생긴 두려움으로 인해 타인에게 과도한 의지를 하거나 약물, 섹스 등에 중독이 되는 증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모습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깨달아 가는 방법밖에는 없다.(4) 열등감에 사로잡힌 아이열등감은 이상적 자기와 현실의 자기 사이에서 차이를 느낄 때 생긴다.(5) 의심 많은 아이"나는 사랑받은 자격이 없는 아이"라는 자아상을 가지고 있고 "세상은 위험한 곳이고 세상 사람들은 나를 불행하게 하려고 음모를 꾸민다"고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정말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6) 잘난 체하는 아이3살 무렵 아이들의 자기애가 최고조에 달할 때 주변에서 그런 인정을 받어야 성숙한 인간이다.(8) 외로움에 시달리는 아이어릴 때 외로움을 경험한 사람으로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 두고 주변인에게 관심이 없을 때 많이 나타난다. 타인에 대한 관심을 기를 필요가 있다.(9) 두 얼굴을 가진 아이세상을 이분법으로 보고 좋은 이미지와 나쁜 이미지로 구분하여 대응한다.6. 마음 속 감옥에서 벗어나오는 법소크라테스가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 ‘30년만의 휴식’이라는 책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크리스천 정신과 의사인 이무석 교수는 여러 내담자와의 상담과 치유과정을 '휴'라는 가상인물을 통하여 진정한 내면의 자유함, 휴식을 얻게 되어지는 과정을 소개한다.쉼은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지만 충분히 쉬는데도 불구하고 늘 몸이 아프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이처럼 이 책은 성공은 했으나 행복하지 않은 30대 성공주의자 '휴'(休)의 내면여행을 담은 것이다. 늘 조급하고 지나치게 성취 지향적이어서 쉴 줄도 몰랐던 그가 30년 만에 마음에 진정한 쉼을 얻고 자유로워진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도 심리적 현실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속에 감옥’을 갖고 있다. 그 감옥 속에 자신을 가둬두고 그곳이 안전한 곳인 양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그 감옥 때문에 인간관계가 어려워지고 인생이 힘들고, 마음에 쉼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마음속 감옥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어릴 적 상처다.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한 열등감, 불공평한 대우로 인한 분노, 완벽한 부모로 인한 조급함이 그것이다. 우리가 마음의 진정한 쉼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상처를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그 상처의 감옥에서 당당히 걸어 나오는 것이다.성난 아이, 질투하는 아이, 의존적인 아이,한다.
30년만의휴식 서평1. 들어가며《30년만의 휴식》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자기계발서로 성공은 했으나 행복하지 않은 30대 성공지상주의자 휴(休)의 내면여행을 담은 책이다. 늘 조급하고 지나치게 성취 지향적이어서 쉴 줄도 몰랐던 그가 30년 만에 마음에 진정한 쉼을 얻고 자유로워진 이야기를 통해 이를 접하는 이들도 심리적 현실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성공이 모든 것을 보장할 것이라 믿는 휴. 인정받기 위해 제대로 된 휴식을 경험한 적이 없던 어느 날, 정신과 의사를 만나면서 사람을 이끌어 가는 동력이 무의식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휴는 자신을 몰아쳤던 내면의 '어린아이'로부터 벗어나 성숙해지고 진정한 휴식을 누리게 된다. 이 책은 '휴'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세상의 '휴'들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분노하고, 좌절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조급하며, 교만하고, 의존적이며, 두 얼굴을 가지기도 하는 세상의 '휴'들. 저자는 그들에게 마음을 들여다볼 것을 권하며 자신의 무의식을 이해하고 상처 난 무의식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길로 안내한다.우리는 틈만 나면 쉬길 원한다. 이처럼 쉼은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충분히 쉬는데도 불구하고 늘 몸이 찌뿌듯하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조급해지고, 열등의식에 휩싸이고, 우울하고…. 이럴 경우 먼발치에서 자신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속에 감옥’을 갖고 있다. 그 감옥 속에 자신을 가둬두고 그곳이 안전한 곳인 양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그 감옥 때문에 인간관계가 어려워지고 인생이 힘들고, 마음에 쉼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마음속 감옥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어릴 적 상처다.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한 열등감, 불공평한 대우로 인한 분노, 완벽한 부모로 인한 조급함…. 우리가 마음의 진정한 쉼을 누리기 썰을 풀어내는 것을 보면 '아, 이거였구나! 나는 그때 그랬지..'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글을 통해 자연적으로 정신이 치유되는 것이다.또한 그가 사례로 언급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보면, '누구나 다 고민은 있고 힘들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진리 같다. 자신만 고통이 있는 게 아니다. 그 고통을 누군가는 발전적으로 풀어내고,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표출한다. 그래서 전자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 후자는 더 괴로워하게 된다.물론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너그럽고 여유롭게 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면, 스스로가 자유로워짐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 자신 또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조급한 아이와 의존적인 아이가 조금은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그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고 다짐했다.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것에서 벗어나 내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진정한 휴식을 만끽하고 싶다. 그리고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어릴 적 경험이 자신도 모르게 내면의 벽으로 쌓여 후에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인간의 어릴 적 경험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모다. 사랑과 신뢰를 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건강한 내면을 갖고 자라지만, 부모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거나 부모 성격대로 성장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내면에 남은 어릴 적 상처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부정적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일수록 더욱 신중히, 소중히 키워야겠다.그래, 내 자신, 특히 나의 내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며, 평안과 자유를 찾고 더욱 강해지자. 어떠한 문제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 탓을 하기 이전에 내 자신의 내면에 이상이 있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자.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라는 말, 참이다!3. 행복의 조건앞서 설명한 바와 이 마음속의 아이를 이해하고 그 아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우리의 숙제이다. 먼저 나를 바라봐 주자. 그 동안 수고했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인정해주자. 그리고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면 그 상처를 싸매 주자. 상처를 준 사람을 이해해 보도록 하자.그에겐 그 몫의 상처가 있어 나를 아프게 했던 것이라고 말이다. 그를 용서하고, 이젠 내가 그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자.이 책은 나에게 휴처럼 마음의 휴식을 생각하게 해 주었으며, 그 휴식을 통해 나를 찾아가보는 기회가 된 책이다. 그저 드러난 모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아무런 생각 없이 일에만 달려가는 사람들, 마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한 인생을 살 권리가 있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말이다.이젠 이무석 정신의학 박사와의 상담을 끝내고, 치유된 정신으로 세상에서 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가야겠다. 또 다시 좌절을 느낄 때 신앙의 힘이든 30년만의 휴식이든 또 찾아서 힘을 얻으면 되지 않겠는가? 책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힘이 세다는 것을 느끼는 책이다.자기 자신이 불만스럽고, 남과 비교해서 열등감으로 고통받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에 미숙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4. 삶을 바꾸는 6가지 생각버트란트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 예수는 오른 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 뺨을 돌려대라고 했다. 이것은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자학적인 요구다. 어떻게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나는 이런 요구를 하는 예수를 믿을 수가 없다." 이에 대해 그의 논리를 반박할 말이 없어 이무석 교수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다 김성희 교수가 "예수의 오른 뺨을 돌려대라는 말씀의 의미는 어른스러운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 앵무새 죽이기의 '아빠'의 행동처럼 그 사람이 살았던 방식이 이런 거였다. 그 삶의 방식이 작은 진동으로 돌아왔다. 그 진동을 계속 울내 마음의 주인이다.5.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 좋은 반사 대상을 만들자6. 내가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 내가 먼저 손 내밀자(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이다)큰 제목만 보면 그 말이 그 말 같다. 이런 말들도 처음 들을 때보다 자꾸 듣다 보면,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잘 들어다 보려고 해야 알 수가 있는 거 같다.‘내게 이러 이러한 문제가 있어’ 라고 머리에서 논리적으로 풀어서 알아진 지식은 도움이 안된다. 그것을 감정적으로 충분히 반복해서 스스로 알아채어지는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된다.5. 무의식에 살아있는 마음속의 아이30년만의 휴식이라는 이 책은 자신을 여러 번 돌아볼 수 있는 도서이다.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그렇다. 책은 역시 정말 내 마음을 치유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다른 책들과는 좀 방향이 다르다. 다른 자기계발서들은 보통 외부로 초점이 맞춰있지만, 이 책은 자신의 내부로 초점이 맞춰있다. 외부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근본 원인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 볼 기회가 우리에게 얼마나 있었을까?책에서는 "마음속의 아이"라는 내용으로 개인의 유형을 분류했다. 어릴 때 받은 상처가 마음속의 여러 형태의 아이로 무의식 중에 살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형태의 아이는 어른이 된 우리의 모습 속에서도 전혀 자라지 않은 아이처럼 불쑥 튀어 나온다. 생각보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어른이 되어서 무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은 나의 어린 시절 삶을 여러 각도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또한, 아이에 대한 부모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도 되돌아 볼 수 있게 하였다. 엄마의 의미 없는 태도와 말들이 아이 마음에 상처가 되어서 전 생애를 지배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 되는 것일까? 하지만, 또한 상처 없이 아이는 자랄 수 없다. "고통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Pain is God's gift but nobody want)"라고 품고 여전히 성공을 위해 달리는 선박사들. 사람이 사람에게 약이다.사람의 정신 통합을 유지시켜 주는 힘은 자기 확신이다. 억지로 변화시키려는 노력 없이 그저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분노는 자율신경을 긴장시킨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눈물로 씻겨 지지 않은 슬픔은 몸을 울게 만든다.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관계없이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남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가진 내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여 살고 있는가 자문해 봐야 한다. 시기하는 아이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해 남보다 나아야 안심한다. 자기존중감이 부족한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스스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행복은 높은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평지에 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도 사랑 받을 수 있다. 상대가 좀 섭섭하게 하더라도 관계를 싹둑 잘라 버리는 행동은 참아야 한다. 일시적으로 섭섭하게 한 사람도 지내 놓고 보면 다시 좋아지는 것이 인간관계다. 비위가 상할 때 잘라 버리는 것만이 정직한 것이 아니다. 참아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 성숙한 인간관계이다.혼자 있는 것을 못 견디고, 고독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 옆에 같이 있어 줄 사람을 찾게 된다. 그러나 대인관계를 지속시키는 능력이 없으므로 친근한 관계는 곧 구속으로 느껴진다. 가까워질수록 상대방에게 먹혀 버릴 것 같은 위협을 느낀다. 정상적인 남녀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만족감을 얻는데, 오히려 위협을 느끼고 달아날 구실을 찾는다. 자신감이 없다. 어느 곳에서 누구에게라도 떳떳이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내적 확신이 없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다.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상대에게 구속될까 봐 초조하다. 대인관계가 지속성이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상대방이 나를 싫다고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버릴 구실을 찾는 것이다. 먼저 나를 바라봐주자. 사람은 자신을 알아갈수록 편안하고 자유로워진다.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