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는 말구약성경의 역사서들에는 동일해 보이는 사건들이 종종 등장한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술하는 각기 다른 두 성경의 본문을 평행 본문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성경의 독자들에게 평행본문이 주어진 목적은 같은 장면에 대한 다른 강조점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함이라고 알려져 왔다열왕기와 역대기에도 수많은 평행 본문들이 있는데, 이번 역사서 기말 과제를 기회로 나는 특별히 여호야다에 대한 내러티브를 살펴보았다. 사실 여호야다에 대한 기사는 요아스 왕과 연결되어 다소 긴 편이다. 그래서 ‘여호야다의 개혁 준비 과정’이 기록된 왕하 11:4-20과 대하 23:1-21의 두 부분만 보고자 한다.이 평행 본문 분석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 될 것이다. 먼저 2장에서 여호야다의 개혁 준비 과정 기사를 개관하면서 두 본문을 비교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3장에서는 두 성경 본문이 보이는 차이점과 난제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이러한 주제에 대한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는 2장과 3장에서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며 이 평행 본문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2.여호야다의 개혁 준비 과정 기사의 개관과 본문 비교A.여호야다 기사의 개관하나님 나라를 표방하는 유다의 심장부에서 아달랴는 여호와를 배격하고 바알ㅇ르 신으로 섬기는 악행으로 6년간 통치했다. 그 때 여호사브앗(왕하 11장에는 여호세바)이 유일한 다윗의 혈통인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 키우게 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여호야다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반란이 진행된다. 아달랴의 통치 제 7년에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유력자들을 성전에 모이게 하고 다윗에 대한 여호와의 언약에 따라 다윗의 혈통을 가진 ‘왕자’가 즉위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리고 무장 병력을 성전 요소요소에 배치한 후 즉위식을 갖는다.철저한 경계 속에서 요아스에게 왕관을 씌우고 왕이 지켜야 할 율법을 낭독하며 기름을 부음으로써 즉위식을 마친다. 이 광경을 목격한 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그러나 이 소출번자들에 대한 경비 지침대하 23:6-여호와의 전에 대한 지침-왕하 11:8-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라대하 23:7-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라-무기를 잡은 자는 누구인가?즉위식왕하 11:9-12-다윗 왕의 무기 수여-요아스에게 왕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음대하 23:8-11-다윗 왕의 무기 수여-요아스에게 면류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주고 여호야다와 그의 아들들이 기름을 부음-다윗 왕의 무기가 의미하는 것은?-율법책은 무엇인가?-기름부음의 차이?아달랴숙청왕하 11:13-16-소리를 듣고 아달랴가 성전에 옴-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에서 죽임을 당함대하 23:12-15-소리를 듣고 아달랴가 성전에 옴-왕궁 말문 어귀에서 죽음-‘암무드’는 무엇일까?-아달랴 죽음의 장소?종교개혁왕하 11:17-18-언약을 세움-바알신당 파괴-성전 관리자 세움대하 23:16-17-언약을 세움-바알신당 파괴-유다에 바알 신당이?대하 23:18-19-성전 관리자 세움왕하 11:19-20-왕궁 입성-아달랴 죽음 기사와 성의 평온함대하 23:20-21-왕궁 입성-아달랴 죽음 기사와 성의 평온함-호위한 자들의 차이?-아달랴의 두 번째 죽음 기사가 부여하는 의미?3.각 본문이 가진 차이점과 강조점 그리고 난제에 대하여A.차이점과 강조점① 대하 23:1의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 : ‘히트하자크’의 원형 ‘하자크’는 본래 강하게 붙잡거나 견고하게 세력을 유지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본문에서는 재귀형(히트파엘)으로 쓰여서 여호야다가 스스로 마음을 담대하게 다잡은 사실을 나타내는데 왕하 11:4에는 사용하지 않은 단어이다. 이것은 아달랴의 폭정 밑에서 6년 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제사장 여호야다가 하나님의 때가 무르익었음을 깨닫고 혁명을 일으킬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역대기 기자가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② 대하 23:2 ‘유다의 모든 고을에서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 족장들’ 이란 구절은 열왕기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이 것은 이 사건이 단순히 예루살렘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모든 백과 달리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또한 사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사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하기 원하는,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역할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역대기 기자의 성향 때문이다. 그리고 왕하의 간략한 기록과는 달리 나머지 백성들이 ‘성전 뜰들’에 있었다고 기록하는데 이것은 성전의 기능과 거룩성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역대기 기자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영역과 레위인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을 명확히 구별하기 위함이다.④ 안식일에 나가는 자에 대한 기록?(왕하 11:7)역대기에는 안식일에 나가는 자들에 관한 언급은 없다. 그래서 왕하 11:7과 불일치하는 부분에 대한 해석이 학자들 마다 다르다. 우선 Keil은 왕궁 수비에 들어갈 세 부대의 구성원들이 모두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조직되어 있었다고 보기 때문에 안식일에 나가는 자들의 두 대를 역대기에서는 단지 ‘모든 백성들’이라고만 밝혔을 뿐이다 라고 한다. Bahr와 Rawlinson은 안식일에 들어온 세 부대에 관한 본문의 언급은 군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며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열왕기의 기록과 역대기의 기록이 이렇게 일치하지 않는 가운데 역대기가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기록했다는 것과 열왕기는 전체적인 사실에 대한 언급이라고 생각하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다.⑤ ‘모든 백성은 여호와의 명하신 바를 지킬지며’(대하 23:6)본 구절은 열왕기에는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역대기 기자의 특별한 관심을 표현한다. 왕하 11:7에는 앞에서 언급된 경계의 임무에 연결해서 왕의 보호를 위하여 성전을 지키라는 말이다. 하지만 대하 23:6에서는 일반인들이 성전에 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것에 관한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라고 훈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동일한 단어인 ‘미쉬메레트’가 두 병행 구절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됨을 의미한다. 곧 열왕기에서는 실제로 성전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며,는 열왕기의 명령은 역대기에서 다른 사람이 전에 들어오거든 죽이고 로 변형되었다.⑦ 경계를 서는 것은 호위병인가(왕하 11:11)? 모든 백성인가?(대하 23:10)열왕기는 왕의 ‘호위병’들이 경계를 서는 것으로 되어 있고 역대기에는 ‘모든 백성’이 경계를 서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역대기 기자가 모든 백성이라고 한 것은 그 동안의 이 반정의 계획이 단순히 몇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온 백성들의 합의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역대기의 ‘백성들’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먼저 이들은 비 레위지파 족장들과 여호야다와 언약을 맺은 5명의 백부장들이 선발한 왕의 호위병들이 포함된 백성이라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안식일에 출벌하고 입번한 레위 지파 사람들로서 왕을 호위할 호위대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이다. 여기서는 전자의 견해가 타당해 보인다.⑧ 기둥인가?(왕하 11:14) 문기둥인가?(대하 23:13)기둥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암무드’는 지금까지 왕상 7장에서만 솔로몬 왕궁(왕상 7:23,6)과 성전(왕상 7:15-22, 41-42)의 기둥들로 등장했다. 맥락을 고려할 때, 여기 언급되는 것은 야긴이나 보아스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의 기둥 옆에 서 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다윗 왕조를 여호와의 능력으로 떠받치고 세울 것임을 나타낸다. 한편 대하23:13에서 ‘문’이라고 짧게 번역된 ‘밤마보’는 직역하면 ‘출입문에’로 위치를 나타내는 전치사 ‘베’와 축약된 정관사 ‘하’ 그리고 동사 ‘보’의 파생 명사인 ‘출입문’을 의미하는 ‘마보’가 결합된 것이다. 특별히 이 구절은 열왕기에는 언급되지 않는 내용으로 역대기 기자의 성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성전의 문안으로는 왕이라 할지라도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⑨ 요아스 왕을 호위하여 왕궁으로 함께 간 자들은 누구인가?(왕하 11:19 vs 대하 23:20)대하 23:20에서 여호야다는 네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왕을 모시는 전쟁하는 일에 가담하는 용병으로만 보는 사람도 있다. 그레이와 몽고메리는 특별히 가리사람이 프삼페티쿠스의 이집트 궁정에 있었던 카리 사람들의 관습을 따른 것으로 유대 궁정에 대한 용병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로 본다.이 의미는 역대기는 여호야다의 왕정 복고 운동이 순수한 유다의 힘으로 성공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열왕기는 이방인의 세력이 혁명군에 가담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② 요아스의 나이가 7세 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여호야다는 개혁을 시도해야했는가?역대하 24장을 읽어보면 여호야다는 130세에 죽는다. 그는 요아스가 아직 왕위에 있을 때 죽었는데 요아스 왕의 재위 말기쯤이다. 요아스는 나이 40세에 죽었는데 가령 요아스가 38세 때에 여호야다가 130세로 죽었다면 요아스가 태어날 때 여호야다는 아흔 두 살 쯤이었다. 그 때에 아달랴의 쿠테타를 경험한 것이다. 요아스가 7살이 되었을 때 여호야다는 거의 100세에 가까웠다. 여전히 대제사장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만큼 기력이 온전했지만 인간적으로 아달랴의 폭정을 계속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요아스의 어린 나이가 아니다. 핵심은 다윗의 혈통이다. 7년이라는 시간은 여호야다가 준비하고 계획한 요아스의 왕좌 복권 운동의 절정의 시점이었다. 요아스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새로운 소망을 가졌던 여호야다에게 마침내 때가 온 것이었다.③ 다윗 왕의 무기의 의미여호야다는 왕궁 호위대에게 일상적 호위임무에 대한 지침을 하달 한 뒤, 임무 수행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한다. 그는 여호와의 전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방패를 주었다. 이는 아마도 다윗 왕이 아람 왕 하닷에셀을 무찌르고 가져온 금 방패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병기고에 대한 어떠한 참고구절도 존재하지 않는다. 몽고메리는 “창과 방패”는 경의를 표하는 무기, 즉 성전에 간직되어 있는 관직을 나타내는 휘장이나 배지라고 한다. 그레이는 몽고메리의 견해에다 창은 왕실의 상징이었다는 자신의 견해를 첨가한다. (왕하 WBC)한편, 방패로 번역된 히브것이다.
근현대 교회사 소논문목 차Ⅰ.서론 ????????????????????????????????????????????????????????????????????????????1Ⅱ.본론 ????????????????????????????????????????????????????????????????????????????11.프로테스탄트 (Protestante) 시기(1500 ~ 1551) ??????????????????????????12.위그노 (Huguenot) 시기(1551 ~ 1685년) ?????????????????????????????????21)위그노의 유래 ??????????????????????????????????????????????????????????????22)위그노 교회 ?????????????????????????????????????????????????????????????????33)위그노 전쟁(1562~1598) ???????????????????????????????????????????????????44)위그노와 낭트칙령 ??????????????????????????????????????????????????????????45)루이 14세와 퐁텐블루 칙령 ???????????????????????????????????????????????56)위그노 망명 ?????????????????????????????????????????????????????????????????53.광야교회와 까미사르(Camisard) 시기 (1685 ~ 1789) ????????????????????61)비밀집회 ?????????????????????????????????????????????????????????????????????62)무력저항 ?????????????????????????????????????????????????????????????????????74.프랑스 대혁명 이후 과도기(1789 ~ 1905) ???????????나 그의 사상으로 인해 결국 카톨릭에 의해 1519년 이단으로 정죄를 당해 파문당하고 모(Meaux)지역의 감독으로 있는 제자이자 친구인 기욤 브리쏘네의 초청으로 피신을 하게 된다. 모(Meaux)지역은 특별히 쯔빙글리의 개혁사상을 받은 도시들과 교류가 있었기에 르페브르는 모(Meaux)지역에서 인문주의적 종교개혁을 발전시켰는데, 1523년에 신약 불어성경을, 1526년에 구약 불어성경을 번역하여 간행했다.당시 정치외교적으로 왕이었던 프랑수와 1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인 카를 5세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기에 대외적으로 독일에서 일어난 신교중심의 개혁을 지지했고, 카톨릭 중심의 소르본 학파를 견제했었다. 이로 인해 모(Meaux)지역에서 시작한 성경인문주의 운동은 초기에 큰 저항없이 발전하면서 주변의 다른 도시로 확산될 수 있었다.그런데 복음주의 개혁운동에 관대했던 프랑수와 1세의 처지가 바뀌면서 프랑스 개신교인들도 위기에 처하게 된다. 발단은 프랑수와 1세가 파비아 전투에서 패배하며 그의 라이벌인 카를 5세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였다. 이때를 틈타 카톨릭 신학 중심인 소르본 학파들이 일어나 복음주의 개혁 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한 것 이다.탄압의 첫 대상자는 모(Meaux)지역의 감독인 기욤 브리쏘네였다. 그는 탄압과 위협 앞에서 내적인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카톨릭 교회에 완전히 굴복하였고, 카톨릭 교회의 명령에 따라 참회와 화해의 예식을 치루었다고 한다. 그 다음 목표가 르페브르였는데, 그는 미리 정보를 얻어 스트라스부르그로 도망할 수 있었다. 베르깽은 체포를 당했고, 파렐은 도피네 지역으로 갔다가 후에 바젤로 도피했다. 이시기에 르페브르의 신약 성경본은 불태워졌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탄압을 받고 화형에 처해지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모(Meaux)를 중심으로 시작된 복음주의 개혁운동은 1525년 결국 완전히 해체되었다.그리고 1529년 4월 19일 스피흐(Spire)에서 있었던 카톨릭 정치인 모임에서 프랑스 개신교인들을 향해 “protest에는 2,150 교회로 부흥하였다.특별히 위그노 교회의 성장과 부흥의 배후에는 제네바의 프랑스 선교라는 놀라운 동력이 있었다. 1555년부터 1562년 사이에 칼빈이 이끄는 제네바 목사회는 118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으로 나타났다. 목사라고는 고작해야 도시에 8명과 농촌에 10명 밖에 없었던 제네바 교회의 규모를 볼 때, 그것은 참으로 엄청난 사업이었다. 제네바는 왈도파 거주지 삐에몽(1555년 4명, 1556년 2명, 1557년 4명), 브라질의 프랑스 식민지(1556년 2명), 안트베르펜(1557년 1명), 토리노(1558년 1명), 런던(1560년 1명)에 선교사를 보냈는데, 주력은 프랑스에 88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이다.3)위그노 전쟁(1562~1598)위그노들은 급속히 확장되어 전 인구의 10% 가량이 되었다. 특별히 상공인, 변호사 등 중간계층이 합류했는데,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카톨릭의 탄압에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았다. 위그노들은 무장을 하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6년간 총 8차례의 전쟁을 하게 된다.1562년 바씨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던 위그노들은 카톨릭 교도들의 습격을 받아 오,육십 명의 위그노가 죽임을 당했고, 이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그렇게 위그노와 카톨릭 세력 간의 종교 전쟁이 시작되었다. 학살, 암살, 고문, 처형 같은 것들이 포위와 전투만큼이나 흔한게 벌어졌다. 양쪽은 극렬한 증오로 말미암아 서로 간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기즈와 그쪽 사람들(카톨릭 세력)은 위그노들을 교수형에 처하거나, 자루에 넣어 익사시켰고, 마차 바퀴로 돌려 찢어 죽였다. 위그노들도 똑같이 잔인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유혈, 질병 그리고 기아는 30년 동안 지속되었고, 프랑스 인구 가운데 3분의 1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것이 종교 전쟁이 치른 대가였다.가장 잘 알려진 전쟁은 1572년에 벌어진 성 바돌로매 학살이다. 샤를 9세는 카톨릭 세력과 위그노 사이의 화해를 위해 마고 공주와 위그노 지도자인 은 와해되었다위그노 박해의 결정타는 1685년 10월 18일 발표된 퐁텐블루 칙령이다. 이것은 그의 할아버지인 앙리 4세가 발표했던 낭트칙령을 완전히 철회하는 칙명으로 1-3조항에는 프랑스 개혁교회의 예배당을 모조리 파괴하고 개혁파 예배를 금지하라는 내용이 들어있고 4-6조항은 개혁파 설교자들에 대한 명령으로, 카톨릭으로 전향하든지 2주간 안에 프랑스를 떠나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개혁파 설교자가 카톨릭으로 전향할 경우 3분의 1의 봉급을 더 주겠다는 회유도 들어있었다.6)위그노 망명루이 14세의 낭트 칙령 철회가 프랑스 이탈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위그노들이 정겨운 고향을 떠나 인근의 나라들로 피신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1560년부터 1760년대까지 2백년 동안 놀랍게도 대략 20만 명 이상이나 되는 위그노들이 해외로 도피했다.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철회하는 퐁텐블루 칙령을 발표한지 겨우 열흘이 지난 1685년 10월 29일ㄹ에, 독일에서는 프러시아 공이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인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위그노들의 탈출을 도왔다. 마침 신성 로마제국은 30년 전쟁 동안(1618-1648년) 전쟁과 기아와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 1을 잃은 상태였는데, 바른덴브루크-프러시아의 사정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인구와 노동력의 절감을 보충해야 할 필요성이 극에 달한 차에 프리드리히 선제후는 베를린에 프랑스 위그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할애했다.1670년경에 프랑스에서 위그노의 총수는 약 90만명에 달하는 절정의 시기를 맞이하였는데, 낭트 철회의 결과로 가 가운데 20만명 정도가 탈출하는 극적인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당시 프랑스 신교 신자의 20%를 차지하는 것이며, 프랑스 전체 인구의 1%에 육박하는 것이었다. 위그노의 해외 이주 통계는 다음과 같다. 영국 4만 명, 아일랜드와 미국 1만 명, 화란 5만 명, 독일 3만 8천-4만 명, 스위스 2만 명, 덴마크와 스웨덴 2천명, 러시아 3백-5백 명.해외 이주의 경로를 보면, 프랑스 북부이후에 20년 동안 강화된 온갖 모진 박해에 대항하여 특히 남 프랑스 세벤느 지역의 위그노들은 강력한 무력 항쟁을 펼쳤다. 1702년 7월 24일 섈라의 카톨릭 수도원장 프랑수와 드 랑그라드가 신교 신자들에게 살해를 당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1702년에서 1705년 사이에 왕군과 항군 사이에 격한 전투가 벌어졌고, 1710년까지 산발적인 전투가 이어졌다. 저항군은 주로 농민으로 구성되었는데, 까미자라고 알려진 흰색 셔츠를 입었기 때문에 까미자르(Camisard)라고 불리었다. 이것을 보통 까미자르 전쟁이라고 부른다.1774년 루이 16세가 왕위를 이어받았을 때, 시대는 자유를 구가하는 분위기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특히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전쟁을 지켜보면서 온갖 호화스런 사치로 부패한 왕정으로부터 자유를 쟁치하려는 마음을 자극받았다. 1785년 미국 독립전쟁으로부터 귀환한 마르끼 드라파예뜨는 프랑스 신교의 자유를 위해서 노력했다. 그는 루이 16세에게 위그노의 법적 존재를 인정하도록 마음을 움직였다.1787년까지 박해가 계속되었으나 루이 15세의 계승자인 그의 손자 루이 16세는 종교 관용 칙령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카톨릭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도 시민권을 인정받는 길이 열렸다. 이로써 개혁파 신자도 출생, 혼인, 장례에 국가 인명부에 기입되는 것이 합법으로 허용되었고, 양심의 자유도 보장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789년 8월 26일,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위그노들에게 예배의 자유를 보장해주었다.4.프랑스 대혁명 이후 과도기(1789 ~ 1905)프랑스 혁명은 세계와 교회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혁명이 옛 체제를 무너뜨렸다는 이유뿐 아니라, 합리주의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은 북아메리카 전쟁이 보인 것과 같은 신앙의 자유를 위한 싸움이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종교를 무너뜨리고 이성을 신으로 왕좌에 앉히기 위한 무자비한 반란이었다.프랑스 .
과연 회복할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기독교계의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소식들이 자주 접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청소년 및 청년 기독교인들은 부끄러움 때문에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꺼려한다고 한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언론에 공개되는 불미스러운 일들은 대중적으로 발각된 것만 보도된 것이고, 보도되지 않고 쉬쉬하고 넘어가는 문제들은 예전부터 이미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그런데 이 문제는 비단 오늘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400여년 전 요한 아른트가 살았던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인 듯하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거룩한 복음이 매우 수치스럽게 오용되고 있음은 입으로는 그리스도와 말씀을 찬양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세계가 아닌 이방에 거주하는 이교도들처럼 경건하지 못하게 생활하는 비기독교인의 불경건한 삶의 증언이 있다.’는 저자의 고발을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후에도 마치 오늘날의 문제를 보는 듯 한 상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그래서 진정한 기독교가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순수한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사실 요한 아른트는 17세기 후반 시작되어진 경건주의 운동에 많은 영향을 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히 그 중에서도 아른트의 신비주의 색채 때문에 개혁신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써 그의 책을 접할 때에 약간의 편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우려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반적으로 그의 책 “진정한 기독교”는 이제 세상의 지탄과 염려를 받게 된 기독교계에 좋은 자극제가 된다고 생각한다.‘사람들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부인되고 조롱받고 멸시받고 모욕을 당하고 매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한다’는 아른트의 분석에 나는 동의한다. 오늘날 문제도 사실 이와 같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우리에게 어떤 삶을 명령하고 있는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실천의 삶을 살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그렇다, 결국 이 문제는 실천의 문제이다. 불신자들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기독교에 대한 대략적인 지식을 갖고 기대해 온 것이 있다. 그런데 세상보다 못한 모습에 그들은 실망하고 그래서 결국 우리의 그리스도가 영광과 찬양은커녕 조롱과 멸시를 받는 것이다.아른트는 다소 원색적으로 말한다. ‘공공연하게 죄 가운데 사는 것은 마귀 안에 사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내면에 그리스도의 삶이 없고, 회개도 없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다.’ 라고 한다. 그의 말이 맞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는 없다. 더욱이 빛의 삶과 어둠의 삶은 결코 함께 갈 수 없다. 빛을 소유했다면 빛의 길을 가는 것이 맞다.아른트는 그의 주장을 펼쳐나감에 있어 늘 성경을 근거로 제시한다. 다양한 본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근거로 삼는 그의 실력은 탁월하다. 이것은 그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 우리가 잘 알고 있던 본문의 내용이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아! 이런 의미로 묵상을 할 수도 있구나!’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다소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의 성경 해석은 알레고리적일 때도 있고, 본문 원래 의미와는 달리 문자의 의미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하곤 한다.아무튼 이 책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실천에 대한 그의 강조 때문이다. 아른트는 자기 사랑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오늘날 이 메시지는 교회 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교인들은 대부분 자기 사랑으로 뭉쳐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역에 대한 헌신이 참으로 쉽지 않은 시대이다. 힘들기 때문에! 자기 몸이 피곤해 지기 때문에 봉사를 하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들을 많이 본다. 지나친 자기 사랑 탓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든다. 이 아른트의 외침이 더 강력하게 전달이 되면 좋겠다.기독교의 타락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평화와 안정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핍박받고 고난받던 시절 기독교는 오히려 신앙의 본질을 잘 드러내 주었는데, 로마 시대에 국교로 인정되고부터는 기독교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른트도 ‘싸움’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특별히 옛사람과의 싸움을 말했다. 그는 ‘옛사람을 대적하여 끊임없이 싸워야 하고 그렇게 새 사람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그를 강하게 하며, 확인해 줘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삶인 것을 잊고, 평화로운 삶을 살기 시작할 때 옛사람이 내 안에 머물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실천의 핵심은 사랑이 아닐까? 아른트도 사랑과 관련하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서 당부한다. 특별히 ‘하나님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우리의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는 매우 강렬하다. 우리는 지금 한국 교회가 이 이웃사랑에 대해서 얼마큼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최근 서초구의 한 대규모 시위 인원이 화장실을 사용하고자 S교회에 들어갔는데, 다음 날 예배가 있기 때문에 이미 청소를 마쳐서 외부인들의 사용을 금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물론 일주일 뒤에는 시정이 있었지만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이웃은 꼭 믿는 사람만이 아니고, 또한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든 이들이 우리의 이웃이다. 이것은 교회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에서 반드시 실천되어져야 하는 사안이다.
누가복음 속 제자도의 조건(9.51-19.44)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되어졌기에, 그는 그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시기를 알았다. 그래서 그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나기로 결심을 한다.(눅 9.51)그의 사역에서 중요한 한가지는 바로 제자들을 부르고 그들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제자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하셨던 일을 계승하기 위해서이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특별히 여정 중에 제자들을 향한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오늘날 제자라는 단어보다 크리스챤이란 단어가 더 친숙하다. 시대를 거슬러오면서 용어의 변화가 있는 것 같은데,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입은 우리 역시 제자란 것이다. 따라서 예루살렘 여행 중에 나타나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우리는 이제 눅 9.51-19.27 속에 나타난 제자들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누가 제자인가?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로, 안드레, 요한 등 12명에게 제자란 용어를 국한하지 않는다. 제자란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주님은 사람들을 그의 제자로 초대하셨다.(눅 14:16) 물론 몇 가지 조건들이 필요하다. 결코 쉬운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초청에 응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유는 다양하다.(14:18, 19, 20) 이와 같이 자신의 관심을 따라갈 때 우리는 제자가 될 수 없다. 그와 함께하지 않는다면(11.23) 우리는 제자가 될 수 없다.어려운 환경예수님은 제자들의 삶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해주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에 대해서 이리 떼와 같다는 비유를 하기도 했는데(눅 10:3)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여행에서 만난 첫 번째 반응은 바로 배척이었다. 그들은 사마리아 마을에서 배척당했다.(눅9:53)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배척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종종 들을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대답에 그는 큰 근심을 했다.(눅18:18-23) 그리고 더 이상 성경에서 그를 만날 수 없었다.탐심은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가는 모든 종류의 죄악된 성향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탐심을 버리라고 하셨다.(눅12:15) 그리고 재물의 헛됨을 친절히 말씀해주셨다.(12:20)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다.(12:34),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것이다.(16:13)기도예수님은 기도를 강조하셨다. 갈릴리 사역을 하는 2년 6개월의 시간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며 기도하는 예수님을 항상 보았을 텐데, 왜 이제서야 제자들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걸까?(11:1) 아무튼 주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친절히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기도는 특별히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이기에 제자의 삶에 필수적이다.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기도할 때 응답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끈기를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한다.(11:5-8)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길 것이기 때문이다.(11:9-13)둘째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18:1-8) 특별히 제자들이 살아가야 할 삶이 결코 쉽지 않은 환경임을 고려할 때, 이 가르침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셋째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습관보다 진실함이다.(18:9-13)겸손70인을 파송 하면서 당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중 한 가지는 어느 집에 들어갔을 때 먼저 말하라는 것이다.(10.5) 이것은 제자들이 친절하고 공손할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예수의 권위를 부여받고 그 권위에 도취되어 교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청함을 받았을 때에도 주님은 높은 자리를 택하여 앉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것(14:11, 18.14)이 주님의 가르침이다.종으로서 우리가 할 일은 명령을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한 것 이라알아 냉철한 판단에 의해 따르기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14:28-30)Le disciple de Jésus ( Luc 9. 51 à 19. 44)Parce que la vie de Jésus et son ministère ont suivi le plan de Dieu, Jésus savait que sa mort et sa résurrection et son ascension allaient arriver. Ainsi Il a decidé d’aller vers Jérusalem pour accomplir sa mission.(9.51)Une chose importante à son ministère est d’appeler ses disciples et de préparer les disciples afin de succéder son ministère. En allant vers Jérusalem, Jésus a accompagné ses disciples et il a enseigné plusieurs choses qui sont nécessaires pour devenir disciple.Aujourd’hui, nous sommes plus famillers avec le mot “chrétien” que “disciple”. Parce que dans le cours de l’histoire, il y a eu des changements. En tous cas, ce que je veux dire, c’est que nous sommes aussi disciples de Jésus. Donc, on a besoin d’être tout yeux tout oreilles à son enseignement pour ses disciples. Nous allons voir ces enseignements avec Luc 9.51 à 19.44.Qui est disciple?On n’utilise pas le mot “disciple” seuens deviennent disciple de Jésus. Donc, Satan fait obstacle. Mais on n’a pas besoin du s’inquiter. Car dans la Bible, on peut trouver que Jésus remporte toujour la victoire. (10.17-20; 11.14)L’ordre prioritaireChacun a des choses précieuses. Ce sont peut-être les biens, la famille, etc. Mais Jésus demande à ses disciple de donner priorité à Jésus.Pour les Juifs, la cérémonie funèbre est plus important que les autres. malgré cela, Jésus a dit à celui qui a demandé la permission d’aller d’abord enterrer son père qu’il faut aller annoncer le royaume de Dieu.(9.59,60)Si quelqu’un veut devenir disciple de Jésus, il doit le préférer à sa famille et même à sa propre vie.(14.26) Il faut donner le meillieur amour au Seigneur.L’ordre prioritaire est comme la concentration. Le but de quelqu’un qui met la main à la charrue et cultive un champ est de tracer le sillon droit. S’il regarde en arrière à cause d’une autre préoccupation, il ne peut pas tracer le sillon droit. Le disciple doit avoir une pière, on doit prier avec de la patience.(11.5-8) Parce que Dieu repondra à coup sûr.(11.9-13) La deuxième, On doit toujours prier, sans se décourager.(18.1-8) La troixième, La sincérité est plus importante que l’habitude de prier.(18.9-13)L’humilitéJésus a dit aux 70 autres disciples de parler d’abord dans toute maison où ils entrent.(10.5) Jésus damande aux disciples d’être modestes. L’enseignement de Jésus est que toute personne qui s’élève sera aboussée, et celle qui s’abaisse sera élevée.(14.11;18.14) En tant que serviteur, il faut dire que nous sommes des serviteurs inutiles, nous faisons ce que nous devons faire, nous faisons tout ce qui nous a été ordonné.(17.10)Evangelisation(chercher les âmes perdues)Jésus est venu chercher et sauver ceux qui étaientt perdus.(19.10) Jésus a guéri une femme habitée par un esprit qui la rendait infirme depuis 18 ans(13.11) et un homme rempli d’œdème(14.4) et des lépreux(17.14) et un aveugle(18.42) et a pardonné à un pécheur comme Zachée(19.9) po-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