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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문학] 이즈의 무희 감상 평가A+최고예요
    이즈의 무희(伊豆の踊子)「이즈의 무희」는 일본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처녀작으로 여겨지는 초기 중편소설로서 1926년 1, 2월 《문예시대(文藝時代)》에 발표되었고, 1927년 킨세이도(金星堂)에서 간행한 제2단편집 《이즈의 무희》에 실렸다.「이즈의 무희」의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는 일고(一高)에 다니는 스무 살 청년인데, 여행지인 이즈에서 떠돌이 예인(藝人) 일행과 알게되어 길동무가 된다. 떠돌이 예인 일행은 40대 여자와 젊은 부부, 두 명의 십대 처녀로, '나'는 그 중에서 가장 젊은 '무희'에게 첫대면부터 강하게 끌리고 있었다. 찻집의 노파에게조차 멸시받는 떠돌이 예인들이지만, 그 소박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휩싸이는 동안 '나'는 점점 자신이 고아근성으로 인해 비뚤어졌다는 감정의 굴레를 벗어버리게 된다.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 문학사상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다. 그는 1968년 69세의 나이에「설국(雪?)」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일본인들은 「설국」을 일본 문학사상 최고의 불후의 명작으로 여기며, 세계와 견줄만한 그들만의 문학의 자존심으로 단연 가와바타를 꼽는다고 한다.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은 지극히 '일본적인 미(美)'를 강조하고 있어서 일본의 정취가 물씬 베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주로 역사적 전통이 깊은 가마쿠라(鎌倉), 교토(京都) 등을 소설의 무대배경으로 했고, 일본의 전통적인 축제나 음악, 그림, 그리고 다도(茶道) 등을 자주 묘사했을 뿐 만 아니라, 내용면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일본 정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했다.가와바타는 메이지(明治) 32년(1899)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로 한시와 문인화를 즐겼으며 문학에도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으나 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다음해 어머니마저 사별한 후 누이 하나와 조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다시 누이는 백모 댁에서 양육되었으며 그와 조부모, 단 세 식구가 되었으나 7세 되던 해에 할머니가 사망하였고 몇 년 후 누이도 뒤따라 세상을 뜬다. 할아버지마저 잃고 결국 청소년기 이후로 그는 혼자 지내게 된다.가와바타는 자신의 성질이 '고아근성'으로 비뚤어져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즈의 무희」의 ‘나’ 역시 작품 속에서 자신이 고아근성으로 비뚤어져 있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여행을 왔다고 말하고 있다. 가와바타는 19세 때, 자신의 비뚤어진 성질에 대한 반성을 겸하여 이즈(伊豆) 지방으로 첫 여행을 떠나는데 여기에서 알게 된 떠돌이 예인(藝人) 집단의 소녀에게 마음을 끌리게 되어 이후 자주 이즈 지방을 여행하게 되고 이즈와 특별한 인연을 갖게 된다. 이 때의 체험담은 일본인들에게 불멸의 청춘문학으로 꼽히며 이즈 지방과 관련되면 반드시 떠오르는 명작 「이즈의 무희(伊豆の踊り子)」를 낳았고, 가와바타는 '이즈의 무희'였던 여인과 28세가 되던 해에 결혼한다. 즉 이 작품은 가와바타 자신의 체험을 소설화시킨 사소설(私小說)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이 소설을 읽으면서, 서민에게조차 천대받는 일본의 떠돌이 예인들의 모습과 우리나라의 남사당패의 모습이 겹쳐졌다. 여행 중 잠시 들렸던 고갯길 찻집의 노파가 주인공에게 예인들을 경멸하듯이 말하는 모습과 각 마을마다 떠돌이 예인집단 출입금지 라고 써붙인 팻말을 보면서, 그 예인집단들의 슬픔이 느껴졌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그들과 고아로 전락한 ‘나’의 유대감이 소설이 전개되면서 점차 깊어지게 되고, 그들의 상처가 서로의 교감으로 인해 치유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가 고아가 되었다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 과정을 보자면 고갯길에서 뒤따라오는 여자들이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평하는 것을 듣게된 ‘나’는 '고아의식'에 비뚤어진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다는 것을 알게되자 감정의 굴레로부터의 해방과 안도감을 느낀다. 이 부분이야말로 이 소설의 절정에 해당하는데, 여기에서 ‘나’는 자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심신의 정화를 얻는다. 타인으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음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일본인의 자신의 마음가짐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더 높이 쳐주는 것을 내포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개인적으로 소설 속에서 ‘나’라는 남자에 대한 여성들의 존대 의식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시모다로 가는 지름길인 산속에서 약수터 장면에서 보이는 여성 예인들이 약수물을 먹지않고 ‘나’가 올때까지 기다리면서 자신들이 먼저 먹으면 부정타고 더러워진다는 설명을 하는 모습을 통해 당시 여성의 처지가 이렇게 남성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작중 화자인 ‘나’의 무희에 대한 연정을 소설 초반부터 느낄 수 있었는데, 무희가 춤추는 것을 한없이 바라다보는 모습과 떠돌이 예인들의 행로를 예측하면서 따라가는 모습을 통해 ‘나’가 사랑에 빠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무희의 나이를 17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자신과 사귀기에 어울리는 나이인지를 셈하는 무의식적인 발로인 듯하다.근데 이 무희에 대한 사랑은 ‘나’의 육체에 대한 욕망을 나타내는 것인듯 하다. 고갯길 찻집의 노파의 예인들에 대한 경멸성 말을 듣고, "그렇다면 무희를 오늘밤은 내 방에서 묵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을만큼 나를 부추겨주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것이 그후에 여관방에서 40대 여자의 "어머나! 아이 보기싫어. 이 애는 이성에 눈뜨기 시작한 모양이야. 어머머......."하는 "뜻밖의 말"을 통해 자신의 의식하지 못했던 육체적인 잠재적 욕망이 확인된 것이다. "문득 나 자신을 반성했다"라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에 육체적 욕망이 있었던 것을 자각하고 반성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공상이 딱 깨지는 것을 느꼈다"는 것은 무희를 오늘 밤 자신의 방에서 재운다는 생각을 단념했다는 것이리라.하지만 이러한 욕망은 쉽게 단념되지 못한다. 무희의 북소리는 그에게 마음의 평온을 주기도 하지만, 무희의 북소리가 그치면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준다. 그는 무희가 더렵혀질까 괴로워하며 잠못이룬다. 이러한 ‘나’의 번민은 다음날 온천장에서 단숨에 해소되어 진다. 수건 하나 걸치지 않은 무희의 알몸을 본 후 그 소녀가 아직 어린아이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 오동나무처럼 다리가 보기좋게 쭉 뻗은 허연 나체를 바라다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고 깊은 숨을 내쉬고 나서 깔깔깔 웃었다. 어린아이였다. 우리들을 발견한 기쁨에 겨워, 발가벗은 채 햇빛 속으로 뛰쳐나와 발돋움을 하고 몸을 온통 쭉 뻗칠 정도로 어린애였던 것이다. 나는 명랑한 기쁨으로 깔깔깔 웃어 젖혔다. 머리속이 씻어진 듯이 해맑아졌다.” 이렇게 무희에게서 '여자'로서의 육체가 소멸됨으로써 ‘나’는 무희에 대한 욕망을 정화시키게 된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5.06.23| 4페이지| 1,000원| 조회(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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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천국의 혁명적 성격-동학혁명과의 비교- 평가A+최고예요
    - 目次 -Ⅰ. 序論-----------------------1Ⅱ. 태평천국 농민운동-------------2{Ⅲ. 동학농민혁명-----------------8Ⅳ. 태평천국 농민운동과 동학농민혁명의 유사점------------------------11Ⅴ. 태평천국 농민운동과 동학농민혁명의 차이점------------------------16Ⅵ. 태평천국 농민운동의 혁명적 성격-19Ⅵ. 結論 ----------------------20*參考文獻 --------------------21Ⅰ. 序論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을 거치며 자본주의를 핵심으로 자율적 역량에 의해 근대화를 이룬 서구와는 달리 동아시아의 근대화는 외세, 즉 선진자본주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강제에 의해 자본주의를 수용하며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의 근대화는 필연적으로 밖으로 외세에 대한 반제, 안으로는 반봉건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근대적 과제로서 서구의 시민 과는 성격이 다른 민중 이 역사의 전면에서 변혁의 주체가 되어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동아시아의 근대는 민중 이라는 단어를 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며 동아시아의 근대사는 민중 의 역사로서 기술할 수 있겠다. 나아가 그들의 민중 운동 은 자각된 역사의 주체로서 역사의 전면에 나서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자한 그들의 결집된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역량을 보여준 역사의 큰 흐름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단순히 외세와 지배 세력에 핍박받는 존재, 억압된 존재,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저항과 투쟁으로 점철된 역동적인 역사를 전개시킨 세력이 바로 민중이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민중 운동은 동아시아의 근대사의 핵심으로 동아시아 각 나라의 민중운동의 흐름을 살펴보고 비교해보는 것은 매우 의의 있을 것이다.19세기 하반기에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두 차례의 대규모 농민혁명이 발생하였었는데, 바로 중국의 태평천국 농민운동과 조선의 동학농민혁명이었다. 이 두 농민운동은 시차는 조금씩 차이가 북왕으로, 석달개를 익왕으로 봉하였고, 서왕 이하 각 왕은 모두 동왕의 지휘 하에 두었다.그 사이 청군은 영안을 포위하였으나 수복하지 못하였고, 태평군은 이 곳을 돌파, 광서에서 호남으로 들어가 익주(益州)와 악주(岳州)를 점령하고, 다시 호북으로 들어가 한구(漢口)와 무창(武昌)도 점령하였다. 청군(淸軍)에게 포위되어 있는 기간에 영안의 식량이 거의 다 소비되어 홍수전은 포위를 돌파하기로 하였다. 4월 5일 밤에 영안을 돌파한 태평군(太平軍)은 6월 3일에 전주를 함락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풍운산이 전사하였다. 풍운산의 전사는 홍수전을 고립되게 만들었다.1953년 2월 9일에 무한에서 수륙 양면으로 나누어 하류로 내려와 1853년 3월 20일 태평군은 남경성에 임박하였다. 이때 천왕 홍수전과 동왕 양수청은 군대를 나누어 홍수전은 하남으로 들어가려 하였는데 호남의 선원이 양수청에게 하남은 물과 양식이 적어 불가함을 말하여 양수청은 29일에 천왕을 남경으로 들어오게 하였고, 이에 홍수전은 남경을 천경(天京)으로 고쳐 태평천국의 수도로 삼았다. 드디어 태평천국정권을 건립한 것이다. 이들은 봉기한지 불과 2년여 만에 강남 6성을 차지하였고, 배상제회의 신도도 2만에서 100만 명으로 늘어났다.세력을 확대하고 국가조직을 갖추어나가면서 사회제도 역시 정비되어 갔다. 태평천국 내의 백성은 모두 평등한 형제자매였으며, 전족을 없애고 여자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았다. 또한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천조전무제도(天朝田畝制度)가 만들어졌으며{) 이 제도는 토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심이었지만, 그 내용은 정치, 사회, 군사, 문화 등 여러 방면의 정책을 다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지나치게 공상적인 사회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실시 여부에 관하여 훗날 이의를 제기하게 된다., 사유재산은 인정하지 않았다. 즉, 밭이 있으면 함께 경작하고 음식이 있으면 함께 나눠먹고 돈이 있으면 함께 쓰며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혜택받을 수 있는 평등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또한 멸망흥한였으나 이 또한 좌종당(左宗棠)과 이홍장에 의하여 평정되었는데, 그 일부가 베트남으로 들어가 뒷날 흑기군(黑旗軍)이 되었다.태평천국의 실패원인은 운동의 전과정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지만 구태여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첫째, 태평천국이 그 출발에서 그려낸 유토피아(농민의 소박한 절대 평균주의)는 청조 봉건지배체제를 대치하는 이상사회로서 빈곤과 차별과 압정으로 고통받는 중국민중을 결집하는 데 일단 적극적 역할을 수행했지만 이상과 현실과의 거리는 너무 지나치게 커서 실생활에서 민중의 요구를 충족시키기까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둘째, 초기의 태평천국을 특징지었던 엄격한 규율, 도덕적 생활 또는 금욕주의, 인간평등의 지향, 그같은 혁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참신한 정신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차 상실되고 대신에 봉건적인 제제도(諸制度)의 부활, 출신지에 따른 파벌의 형성, 참가의 선후(先後)에 따른 대립이라는 퇴행적인 자세 등 소극적 측면이 현저하게 되었다. 즉 처음 영안에서 태평천국의 제도를 제정할 때 천왕(天王)이니 동왕(東王)이니 하는 봉건적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혁명적 색채가 감소되었고, 천경 사변이후에도 90여 명을 왕으로 봉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습 제도가 회복되는 등 봉건화의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또한 천왕 홍수전을 비롯하여 여러 왕들의 사치와 향락이 더욱 약화를 가져왔다.셋째, 내부적 원인으로 결속이 약화되었다. 후기에 지도층 내부의 권력투쟁의 격화, 피를 피로써 씻는 항쟁은 그 전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태평천국 진영의 결속을 현저하게 약화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즉 천경 사변과 같은 지도자의 내분 이외에 초기에 연합 세력이었던 천지회(天地會)가 이탈하고 광서인과 광동인의 대립은 물론 광서 기병 때 참여하였던 고참들과 호남·호북에서 참여한 신참들의 대립도 심각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태평천국 후기의 군사력 중심이었던 충왕 이수성(李秀成)과 영왕 진옥성(陣玉成)의 대립으로 계속되었다.넷째, 열강의 청조지원이다. 탄생 기반이 모두 같은 농민 천민이었기 때문이다. 동학농민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해로운 것이었다. 국토는 전쟁으로 황폐해졌고 양편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넓은 지역이 전장이 되었고 또 많은 농민들이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농업활동이 중단되었다.일본군은 농민 전쟁의 잔존 세력을 뿌리뽑기 위해 전라도, 황해도, 강원도 등지에서 농민군을 끝까지 추적하여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군의 만행으로 산천은 조선 민중의 피로 물들었고, 수많은 마을과 거리들이 잿더미로 변하였다.이처럼 갑오농민전쟁은 실패로 끝났지만 각지로 흩어진 농민군은 수십 명 혹인 수백 명씩 집단을 이루어 활동하면서 이후 반일의병투쟁의 주력이 되었고, 농민군이 폐정개혁 요구는 1894년 후반기 이른바 갑오개혁에 반영되었다.Ⅳ. 태평천국 농민운동과 동학농민혁명의 유사점1. 역사적인 면에서 볼때, 모두 본국의 근대 역사에 있어서 규모가 제일 큰 농민혁명이었다.중국과 조선은 모두 농업국으로 농민이 인구의 대부분을 겸하고 있으며, 농민문제는 양국의 중요한 사회문제였다. 한중 양국의 고대와 근대의 역사에 있어서 일찍이 크고 작은 수많은 농민기의(農民起義)가 발생하였었는데, 태평천국 농민운동과 동학 농민혁명은 한중 양국의 근대 역사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영향이 제일 컸던 농민혁명이었다.중국 태평천국 농민운동은 1851년 금전기의(金田起義)로부터 1864년 천경(天京)의 함락까지 전후 14년간 지속되었다. 태평군(太平軍)이 전투를 하였던 성(省)은 18개에 달하며, 점령하였었던 도시는 당시 중국 강남(江南)의 최대 도시였던 남경(南京)을 포함하여 600여개에 달하였다.{) 김소중, 『중국을 정복하자』, 백산서당, 2002, 89쪽태평천국은 백만대군 을 스스로 칭하였었는데, 전쟁 중에 청조(淸朝)의 정부군과 지방무장세력 수십만을 소멸시켰었다. 태평천국은 청 봉건왕조와 대치되는 농민국가의 중앙정부와 지방정권들을 건립하였었다. 농민혁명강령인 천조전무제도(天朝田畝制度) 와 중국의 첫 번째 근대, 까치글방, 1994, 271쪽기독교의 전도 서적인 권세양언(勸世良言) 을 읽은 후, 그는 서방 기독교의 일부 교의(敎義)와 교규(敎規)를 이용하여 배상제교(拜上帝敎)를 창립하였다. 홍수전은 기독교의 지고무상(至高無上)하고 무소불능(無所不能)인 상제를 이용하여 기치를 삼고, 황제(皇帝)로부터 공자(孔子)에 이르기까지의 봉건 권위에 대항하였다. 그는 또 성경 중의 예술 부활 신화를 이용하여 자신이 걸렸던 병과 꾸었던 괴상한 꿈을 부회(附會)하여 상제로부터 명령을 받았다 고 말했다. 스스로 상제의 둘째 아들이자 예수의 동생이라고 칭하였으며, 상제의 명을 받들어 청조의 황제 염라요(閻羅妖) 를 토벌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기독교의 천당(天堂) , 천국(天國) 이상을 이용하여 농민들에게 태평천국 인간소천당(人間小天堂) 을 건설하자고 호소하였다. 그는 또한 기독교의 모세10경 등 계율을 빌려서 십관천조(十款天條) 등 규율을 제정하였다. 이같이 청조를 몰아내자는 농민혁명 위에 종교의 외투를 입혀 신비색채를 덧칠하였다. 홍수전은 상제의 아들이라고 자칭하고 상제로부터 명령을 받았다 는 것을 이용하여, 교주와 최고 지도자의 지위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기타 지도자들, 예를 들어 양수청(揚秀淸), 소조귀(消朝貴) 등도 상제의 아들을 자칭하거나 혹은 천부와 천형으로부터 말을 전해들을 수 있다고 칭하여 자신의 지위를 높이고 아울러 군중들을 호령하였다. 배상제교는 태평천국 운동이 발동되고 발전하는 단계에 있어서 일정한 긍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그러나 후기에 오게 되면 종교미신과 천명사상은 갈수록 부정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남경이 청군의 포위로 식량이 끊어진 후 홍수전은 여전히 주동적으로 포위를 뚫으려고 시도하지 않고, 천병(天兵)이 물보다도 많다 고 믿거나, 심지어는 상제가 하늘로부터 감로(甘露)를 내려 태평천국의 군민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편, 앞의 책, 553-554쪽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崔濟愚)는 경상북도에서 출생하였는데, 8쪽
    인문/어학| 2005.05.27| 22페이지| 2,000원| 조회(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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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드로 만든 집
    카드로 만든 집이란 영화를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였다.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로서의 행동과 더 나아가 내가 교사가 되었을 때,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이 영화를 7가지 주제로 나눠서 생각해보고자 한다.1)아버지의 죽음이 아이와 엄마에게 미치는 영향정신적으로 가정의 버팀목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족의 구성원들은 모두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우선 가족들은 유적지에서 돌아와서 엄마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며, 아들은 그런 엄마를 보살필 줄 아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간다. 하지만 샐리는 아버지가 달나라로 갔으며 아버지와 소통을 하려면 말을 하지 않고 명상을 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후부터 말을 하지 않고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하며,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않으면 ‘아 아 아 아’ 같은 소리를 내는 전형적인 자폐증적인 증상을 보이게 된다. 이렇듯 집안의 구성원의 죽음은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구성원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2)자폐증이 있던 샐리가 회복되어지는 과정샐리를 전형적인 자폐증이라고 진단한 비어랜더 박사는 내면 안에 갇힌 샐리의 의식을 바깥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그 방법으로 샐리에게 거울을 보여주면서 샐리라고 알려주며 샐리라고 발음하도록 시킨다. 샐리가 이러한 방법을 듣지 않으면 샐리가 하고자하는 행동을 못하도록 통제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샐리에게 더욱더 자신의 내면으로 몰두하게 만들게 되고, 급기야는 온몸에 나무와 같은색으로 물감을 칠함으로써 숨어버리려 한다. 반면에 엄마는 샐리의 현상을 자폐증이 아니라고 믿고, 아니 자폐증이라고 믿을 수가 없어서 샐리가 왜 그러한 행동을 하게되는지 알고자 한다. 여기서 엄마는 비어랜더 박사와는 정반대로 샐리의 입장으로 들어가서 샐리의 심정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한다. 결국 샐리의 카드로 만든 집을 보게 된 엄마는 카드로 만든 집을 바탕으로 실제로 나무판자로 만들어내어 샐리와 소통함과 동시에 샐리가 아버지에게 작별의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내면에만 갇혀있던 샐리의 자폐증 증세를 고칠 수 있게 된다.3)아동심리치료가 비어랜더 박사의 신념비어랜더 박사는 수년간 다양한 아동 자폐증 환자들을 지켜보고 치료해왔다. 그가 봐왔던 다른 아이들처럼 샐리 역시 전형적인 자폐증 환자라고 진단한다. 그는 자폐증 아이들 중 소수 숫자에 대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에 대한 샐리 엄마의 관심을 거절한다. 그는 그 아이들이 특별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평범한 일상의 아이들처럼 되도록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샐리 역시 역학적으로 완벽한 카드로 집을 만들지만 그에 대한 비어랜더 박사의 태도는 오히려 부정적이다. 하지만 결국 그 역시 샐리 엄마가 샐리를 자폐증에서 고치게 되는 것을 보고나서 자신의 방법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게된다.4)셀리에 대한 엄마의 태도비어랜더 박사가 샐리의 현상을 자폐증이라 진단하지만 샐리의 엄마는 샐리가 자폐증이 아닌 새로운 환경에 따른 충격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어랜더 박사의 병원에서 만난 소수 숫자를 말하는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그 아이들과 소통을 하려는 노력을 해서 그 아이들과 소통이 가능함을 확인하게 된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엄마는 샐리와의 소통에 대한 가능성의 확신을 갖고 샐리가 만든 카드로 만든 집을 실제로 만들어 보임으로써 샐리와 소통을 하려한다.5)셀리와 엄마가 만든 집이 상징하는 것은?샐리가 카드로 만든 집은 달나라로 갔다고 믿고 있는 아버지에게 닿으려고 하는 샐리의 무의식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카드로 만든 집 꼭대기에 달 모양의 카드가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샐리는 카드로 만든 집안에서 손으로 날갯짓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 또한 달나라에 닿고자하는 샐리의 무의식적인 표현이다.엄마가 샐리가 만든 카드로 만든 집을 보고 실제로 나무판자를 이용해서 만든 집은 샐리와의 소통을 함으로써 달나라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려고 하는 샐리의 욕구를 현실화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즉 안으로만 집착하는 샐리의 자폐증적인 의식을 바깥으로 끌어내려고 하는 도구인 것이다.6)한 인간을 화복하고 치유하기 위해 꼭 필요한 건 무엇인가?한 인간을 회복하고 치유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 환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과학| 2005.05.27| 3페이지| 1,500원| 조회(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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