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1. 국어과 교육 과정 개정의 배경……………………………………… ~12. 국어과 교육 과정의 변천………………………………………………~13. 국어과 교육 과정 개정의 중점………………………………………~24. 국어과의 성격………………………………………………………… ~25. 국어과의 목표 …………………………………………………………~36. 국어과의 내용 …………………………………………………………~187. 국어과 과목별 교육과정………………………………………………~248. 국어과의 교수 학습 방법…………………………………………… ~269. 국어과의 평가…………………………………………………………~2810. 국어과 신?구 교육과정의 비교……………………………………~291. 국어과 교육 과정 개정의 배경가. 학습자 중심의 교육과 창의적 한국인의 육성나. 국어과 교육 과정의 내적 문제 개선(1) 국어과 교육목적 체계문제(2) 국어 교육의 내용 선정 준거와 기준 문제(3) 교육내용의 중복 제시와 수준과 범위 문제(4) 방법 항에 제시한 지침의 실제적 유용성 문제(5) 평가 항에 제시한 지침의 실제적 유용성 문제2. 국어과 교육 과정의 변천구분1차 교육과정2차 교육과정3차 교육과정4차 교육과정5차 교육과정6차 교육과정구성 방향-기본적 언어 습관, 언어 사용 기능 향상에 역점,-경험을 통한 지도-언어 사용 기능 신장-가치관 교 육 강화-지도 사항 의 계열화-교과의 특 성 명료화-언어 기능 신장 강화-학습 내용 적정화-언어 사용 기능 신장을 궁극 목표로-결과보다 과정 중시-교육과정 구조의 체계화-목표 체계의 구조화-내용의 정구성 방향-내용 영역 을 표현?이 해, 언어, 문 학으로 구분-학생이 교 수?학습 상 황의 주체로선 및 내적 구조화-지도와 평가 사항의 구체화구성 체계-교육과정 구성의 기본 체계는 교과 목표, 학년별 목표 및 내용, 지도 및 평가상의 유의점-목표, 내용, 방법 등 국어 교육 전반에 관한 상세한 사항 제시-기본 체제가 1.성격, 2. 목표, 3.내용 (내용 체계, 학년별 내용)이, 주제와 글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되, 특히 국어지식과의 관련성을 강조하여 언어 단위도 중시하여 배열(마) 국어 지식 내용의 학년별 내용은 지식의 난이도와 순차성, 언어 구조의 복잡성, 동일학년 내에서 다른 영역의 교육 내용과의 관련성을 중시(바) 문학영역의 학년별 내용은 내용 자체의 난이도, 텍스트 등을 고려하고, 계열성과 반복성을 강조하여 배열하였다.(3) 학년별로 제시한 각 영역별 ‘내용’에 대한 ‘수준별 학습 활동의 예’를 제시하여 교육과정에 제시한 ‘내용’의 지도와 지도 후 성취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예로 활용되도록 하였다.(4) ‘수준별 학습 활동의 (예)’에서【기본】학습 활동은 계열성과 통합성을 고려하여 예시하였다.(5) 보충 학습 활동은 교육 과정에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듣기-[7-듣-(1)] 듣기와 읽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안다.【기본】동일한 내용을 글로 읽을 때와 말로들을 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한다.【심화】듣기가 읽기보다 효과적일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를 안다.[7-듣-(2)]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며 듣는다.【기본】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고, 사실을 표현한 부분과 의견을 표현한 부분을 구별하며 듣는다.【심화】의견을 표현한 부분이 사실을 표현하는 부분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말한다.[7-듣-(3)] 내용의 짜임을 파악하며 듣는다.【기본】이야기를 듣고, 내용의 전개 방식을 파악한다.【심화】들은 내용의 짜임을 그림으로 나타낸다.[7-듣-(4)] 내용의 통일성을 평가하며 듣는다.【기본】토의나 토론을 듣고, 참여자들의 말이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평가한다.【심화】내용의 통일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안다.[7-듣-(5)] 메모하면서 듣는 습관을 지닌다.【기본】설명이나 보고를 들을 때, 메모하면서 듣는다.【심화】자신만의 효과적인 메모 방법을 개발한다.-말하기-[7-말-(1)] 말하기와 듣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안다.【기본】말하기와 듣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한다【심화】말하기와 듣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하는 글을 쓴다.[7-말-을 생성해 말한다.【기본】어떤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토론 결과에서 내용을 선정하여 말한다.【심화】효과적인 토론 방법과 토론 내용을 정리하는 방법을 안다.[8-말-(3)] 응집성 있게 내용을 조직하여 말한다.【기본】문장과 문장이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여러 가지 표지를 사용하여 말한다.【심화 말의 응집성을 높이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안다.[8-말-(4)] 시청각 보조 자료를 활용하여 말한다.【기본】효과적인 내용 전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보조 자료와 그 활용법에 대하여 말고, 이를 활용하여 조사, 관찰한 내용을 발표한다.【심화】시청각 보조 자료를 활용했을 때의 전달 효과에 대해 토의한다.[8-말-(5)] 말하는 이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말하려는 태도를 지닌다.【기본】말하는 이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토의나 토론이 원만히 진행되도록 기여한다.【심화】말하는 이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아서 토의나 토론이 파행적으로 진행된 예를 찾아보고, 그 문제점과 폐해를 말한다.-읽기-[8-읽-(1)] 읽기가 문제 해결 과정임을 안다.【기본】글을 잘못 읽어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을 말해보고,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하여 토의한다.【심화】읽기가 문제 해결 과정임을 알려 주는 예를 조사하여 발표한다.[8-읽-(2)] 내용과 내용의 관계를 알 수 있는 표지에 유의하며 글을 읽는다.【기본】여러 가지 표지를 단서로 글의 짜임과 내용을 파악하며 읽는다.【심화】읽기 자료에 나오는 여러 가지 표지의 종류와 기능을 조사하여 정리한다.[8-읽-(3)] 글 전체의 짜임을 파악하며 읽는다.【기본】문단과 문단의 연결 관계를 파악하여 글 전체의 짜임을 말한다.【심화】글 전체의 짜임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이를 설명한다.[8-읽-(4)] 내용 전개 방식을 파악하며 글을 읽는다.【기본】내용 전개 방식의 유형을 알고, 내용 전개 방식을 파악하며 글을 읽는다.【심화】글에서 여러 가지 내용 전개 방식이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 토의한다.[8-읽-(5)] 읽은 글의 일관성을 평가한다.【기본】읽은 글의 중심 내용과 뒷받침 내용간의 화】문장의 중요도를 파악하며 글을 읽는 것의 효과에 대해 토의한다.[9-읽-(3)]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여러 글을 읽고, 주제나 관점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파악한다.【기본】하나의 문제에 대하여 주장하는 내용이 다른 여러 글을 읽고, 주제나 과점을 비교한다.【심화】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여러 글에서, 글쓴이의 논지나 관점에 따라 내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토의한다.[9-읽-(4)] 읽은 내용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판단한다.【기본】하나의 주제에 대한 여러 사람의 글을 비교하며 읽고, 읽은 내용의 신뢰성과 타당성에 대하여 토의한다.【심화】읽은 내용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판다하는 기준을 알아보고, 글을 읽을 때 적용한다.[9-읽-(5)] 표현이 효과를 평가하며 글을 읽는다.【기본】글에 나타난 표현의 특징을 알아보고, 그 효과를 평가한다.【심화】효과적인 표현 방법에 대해 조사하고, 글을 읽을 때 이를 적용한다.[9-읽-(6)]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양한 매체를 찾아 활용하는 습관을 가진다.【기본】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글의 이해도를 높인다.【심화】영상 매체나 청각 매체 등이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떤 효과가 있는지 토의한다.-쓰기-[9-쓰-(1)] 쓰기가 사회 문화적 과정임을 안다.【기본】사회 문화적 배경이 글 속에 담긴 정보나 사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토의한다.글 속에 담긴 정보나 사상이 사회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토의한다.【심화】글쓴이, 독자, 글, 사회, 문화의 관계를 그림으로 나타내고, 이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글을 쓴다.[9-쓰-(2)] 쓰기에 필요한 자료를 선별하고 정리한다.【기본】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의 독자, 주제, 목적 등을 고려하여 자료를 적절하게 선별하고, 이를 정리하여 글을 쓴다.【심화】자료를 선별하고 정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쓰기에 활용한다.[9-쓰-(3)] 표현의 효과를 고려하여 내용의 조직 방식을 조절하며 글을 쓴다.【기본】모범이 될 만한 글의 내용 조직 방식을 모방하여 글쓰기에 창조적으로 활용한다.【심화】상황을 고려하여【기본】항상 자신의 읽기 활동을 인식, 점검, 보완하면서 글을 읽는다.【심화】자신의 읽기 활동을 조절하면서 글을 읽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토의한다.유능한 독자의 읽기 전략을 조사한다.-쓰기-[10-쓰-(1)] 쓰기가 의사소통 행위임을 안다.【기본】의사 소통으로서의 쓰기의 특성을 설명한다.【심화】신문이나 잡지에서 논쟁이 이어진 예를 찾아보고, 쓰기가 가지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 토의한다.[10-쓰-(2)] 상황에 따라 내용을 적절하게 생성하여 글을 쓴다.【기본】독자, 주제, 목적 등을 고려하여 여러 가지 자료에서 필요한 내용을 선정하여 글을 쓴다.【심화】자신만의 독창적인 내용 생성 원리를 적어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용을 생성하여 글을 쓴다.[10-쓰-(3)]내용 조직의 일반 원리에 따라 효과적으로 내용을 조직하여 글을 쓴다.【기본】 독자, 주제, 목적 등을 고려하여 내용의 전개 방식을 조절하고 통일성과 응집성에 유의하여 글을 쓴다.【심화】자신만의 독창적인 내용 조직 원리를 적어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용을 조직하여 글을 쓴다.[10-쓰-(4)]표현의 일반 원리를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글을 쓴다.【기본】독자, 주제, 목적 등을 고려하여 다양한 표현 방식과 적절한 문체로 글을 쓴다.【심화】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 원리를 적어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10-쓰-(5)] 고쳐쓰기의 일반 원리를 사용하여 글을 고쳐 쓴다.【기본】고쳐쓰기의 일반 원리를 사용하여 자신이 쓴 글을 고쳐 쓴다.【심화】고쳐쓰기의 일반 원리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고쳐 쓴다.[10-쓰-(6)] 창의적으로 글을 쓰려는 태도를 지닌다.【기본】자신만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글을 쓴다.【심화】창의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왜 가치가 있는지 말한다.-국어지식-[10-국-(1)] 언어와 주변 세계의 관계를 안다.【기본】언어와 사고, 사회, 문화의 관계를 말한다.【심화】언어와 사고, 사회, 문화의 상호 영향 관계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10-국-(2)] 국어의 개략적인 역사를 안다.【기본】현대 국어와 강조
REPORT...20C 한국사 전개과정을 잘 드러내는 이미지과 목 명 :담당교수 :학 과 명 :학 번 :성 명 :제출일자 :☞1948년 7월 24일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정·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이승만 대통령. 나는 역사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의미하며 또한 어떠한 사건이 원인이 되어 다른 결과를 낳는 인과관계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한국사의 전개과정이 잘 들어내는 역사적 사건을 꼽기가 애매모호할 수 있다고도 생각이 든다. 한국 근현대사는 20세기 초 즉, 구한말부터 일제의 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남북 분단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을사조약, 한일 합병, 8.15 해방, 남북분단 6.25 동족상잔, 등등 커다란 사건들이 많다. 그 중에서 20세기의 한국사의 전개과정이 잘 들어나는 역사적 사건으로 나는 이승만 정권의 등장을 선정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봉건 조선왕조의 몰락 후 일제 강점기를 거쳐 우리나라 최초 민주주의 공화국의 정권이었고 국민들의 힘에 의해 대통령직을 하야한 첫 정권이기 때문에 한국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 근현대사에 어떠한 큰 영향들을 끼쳐서 선정하게 되었는지 선정 이유를 들어 보겠다.1) 이승만 정권 등장1945년 9월 4일 남한에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으며 1945년12월에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신탁 통치 결의를 거쳐 미?소?영?중 의 강대국들에 의해서 신탁통치가 이루어졌다. 1947년 9월UN의 남북한 총선거를 결정하게 되었으며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총선거에 출마하였다. 총선거는 제헌 의원 선출을 하였으며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 선출, 부통령에 이시영을, 국무총리에 이범석을 임명하여 이승만 정권이 출범하게 되었다. 이를 미루어 보아 먼저 이승만 정권은 세계대전 후 미?소 간 냉전의 산물 ( 미국의 정치적 개입)이었다.2) 반민족 행위 처벌법의 좌절대한민국이 건국된 후 친일파 청산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민특위의 최대걸림돌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였다. 그 자신은 친일파가 아니었지만, 이승만은 취약한 권력기반을 굳히기 위해 강력한 반공노선을 채택하고 친일파의 아성인 군, 경찰, 한민당 등에 의존했다. 친일파 또한 반공과 친미를 내세우고 최고 권력자인 이승만에게 충성함으로써 생존을 보장받고자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은 자신의 수족을 자를지도 모를 친일파 청산 과업에 빈번히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광복 후 청산되지 못한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쓰여지게 만들었다.3) 농지개혁과 귀속재산의 처리농지개혁법의 제정과 실시는 반봉건적 토지소유를 타파하고 농민적 토지소유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으나 농지개혁의 내용과 방법 면에서 지주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분배 대상농지 중 40%미만이 분배되고 나머지는 대부분 시가를 기준으로 강매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농지개혁의 주체가 농민이 아니고 정부와 구 지주계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 형식상의 변화만을 가져왔으며 보상규정만을 엄격히 밝혀 놓았기 때문에 실효성에 문제가 있었다.미군정과 정부 수립 후 두 차례에 이루어진 농지개혁이 한국사회에 미친 정치 경제적 결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될 수 있다.첫째, 농지개혁은 농촌지역의 불평등을 어느 정도 완화하고 소규모 자영농민들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는 데 기여하였다.둘째, 급진좌파세력이 농촌지역에서 지지기반을 상실하고 정치적 갈등의 초점이 농촌지역에서 도시지역으로 옮겨졌다는 점이다.셋째 지주계층의 몰락과 이들이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4) 발췌개헌안1950년 5월 30일 선거 결과 야당이 압승하여 대통령 이승만의 재선이 어려워지자, 1952년 5월 25일 임시수도였던 부산을 중심으로 23개 시,군에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야당 국회의원 50여 명을 국제 공산당의 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씌워 헌병대로 연행했다. 7월 4일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내각책임제 내용을 혼합한 개헌안이 경찰의 삼엄한 포위 속에서 기립표결로 통과시켰다.5) 사사오입 개헌1954년5월20일의 총선거에서 원내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 자유당은 이승만의 영구 집권을 향한 법적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 제한을 철폐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을 9월8일 국회에 제출하여 11월27일 국회 표결에서 재적 의원 203명 가운데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를 얻었다. 다시 말해 헌법 개정에 필요한 3분의 2의 찬성표, 곧 136표에서 1표가 부족했다. 자유당 소속의 국회부의장 최순주는 어쩔 수 없이 부결을 선포했다. 그러나 자유당의 지도부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자유당은 비록 135가 203의 3분의 2(대략 135.33)에 못 미치기는 하지만, 재적의원의 3분의 2는 그 소수점 이하를 사사오입해 135명이면 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만들어내 뒤, 이틀 후 부결 선포를 번복하고 가결을 선포했다. 사사오입 개헌은 절차상으로 정족수에 미달했다는 점에서 위헌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함으로써 평등의 원칙을 위배했다는 점에서도 위헌적이었으며, 헌법개정이 집권자에 재집권이나 집권연장의 법적 기반은 마련해주는 수단으로 도구화시켰다.※ 3) 발췌개헌안, 4) 사사오입 개헌은 독재화와 권력을 계속 영유하기 위하여 신성한 헌법 등을 개정하며 장기 집권을 위해서는 각양각색의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후일 박정희, 전두환 등에게 영향을 미쳐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의 효시이다.6) 진보당 사건진보당 관계자들은 대부분 일제 시기 독립운동과 좌익운동에 참여한 이들이었는데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걸림돌이 되자 ‘진보당 사건’으로 당수인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사형시키고 혁신적이었던 진보당을 탄압하였다. 진보당의 불법화됨으로써 혁신정당이나 진보정당이 한국의 정당체계 내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 없는 요인이 되었으며 보수주의의 토대가 강화되기 시작했다. 정치세력들은 모두 보수를 표방했다. 정치는 이념이 상실된 채 완강한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한 보수 세력끼리의 정권다툼으로 변질되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실패는 보수적 정치지형의 뿌리 깊음을 보여준다.
전통한옥의 미 답사 레포트소 속 : 공주대학교유아교육과 학 번 : 200300351 제출자 : 김 지 현 제출일 : 2005. 5.31 담당 교수님 :서 정 호답사 일정논산 쌍계사 2005년 4월 5일논산 윤증고택 2005년 4월 16일 논산 이삼장군고택 2005년 4월 16일논산 쌍계사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可也谷面) 중산리(中山里) 불명산(佛明山)에 있는 조계종(曹溪宗)의 절고려 초기에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218)을 건조한 혜명(慧明)이 창건하였다 한다. 경내에는 보물 제408호로 지정된 쌍계사 대웅전이 있고, 그 밖에 쌍계사 중건비(重建碑)와 9기(基)의 부도(浮屠) 등이 있다.쌍계사부도9기(基)의 부도(浮屠)가 있었는데 몇몇의 사람들이 쌍계사를 보러 왔지만 부도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해서 안타까웠다.물론 나같이 답사를 목적으로 온 사람이라면 꼼꼼히 살펴보겠지만, 가볍게 이름있는 절이라고 해서 온 사람들은 쌍계사 앞에 설명문이나 유래 등을 살펴보다 대웅전을 보고 그 앞에서 몇 분 서성일 뿐이였다. 여기저기 기억에 남겨야 겠다는 생각에 부도까지 찍게 되었지만 찍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도는 작은 무덤이다. 이 절을 지키셨던 스님들의 넋이 고즈란이 담겨있는 것인데 인사를 못 드리고 절에 들어가는 것을 실례가 아닐까? 주인이 허락도 없이 집에 들어가는 거니까 말이다^^*감상후기쌍계사 대웅전대웅전은 정면 다섯칸 측면 세 칸의 웅장함을 자랑한다. 좁은 절 마당을 꽉 채우고 있다. 돌로 쌓은 축대를 바탕으로 세워진 화려한 공포의 다포식 단층 건물로 지붕은 팔작이다.대웅전 꽃문양살정면 다섯 칸에 달린 여닫이문들을 보면 모란, 연꽃, 국화 무늬 등 서로 다른 꽃문양살로 만들어져 있다. 본디 채색되었던 것이 세월과 함께 퇴색되어 더욱 고졸한 멋을 풍긴다.대웅전의 꽃 문살은 대웅전을 상징하는 첫번째일 것이다. 내가 답사를 간다고 할 때 인터넷에서 알아본 것 중 가장 먼저 검색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름 값은 하는 것 같다. 오래된 대웅전의 뿌리인 굵다란명한 대웅전에서 말이다.^^감상후기쌍계사의 명부전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 협시로 도명존자(道明尊者)·무독귀왕(無毒鬼王)을 배열하고 그 좌우에 명부계(冥府界)의 시왕상(十王像)을 배열명부전 기둥과 공포봉황루봉황루는 새 건물 같았으며 대웅전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법고 하나가 있었다.봉황루의 법고일반적으로 법고는 잘 건조된 나무로 만들며 특히 양면에는 음양의 조화가 깃든 소리를 얻기 위하여 장구를 만들 때처럼 법고의 한쪽 면에는 암소 가죽을, 다른 쪽 면에는 수소의 가죽을 댄다. 짐승을 비롯한 땅에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하여 두드린다. 쌍계사 법고는 직경이 무려182cm나 된다.봉황루의 법고법고를 처음 보았을 때 신문고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너무 새것이고 모양도 고급스러웠기 때문에 서민의 손을 탈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고는 중생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두드리는 일종의 주술성을 가지는 것이다. 지금 이 법고 주변에는 조금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청에 도깨비 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도깨비는 나중에 안 것이지만 쌍계사에 있는 4개의 도깨비 중 2개라고 했다. 이런 의미 있는 것 을 모르는 상태에서 찾았다는 것이 기뻤다.감상후기봉황루의 도깨비봉황루로 가면 새 단장한 단청 속에 두 마리 도깨비가 바깥쪽이 푸른 얼굴이고 안에 있는 것이 붉은 얼굴이다.윤증선생고택조선시대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1929-1711)선생이 건축하였다고는 하나, 후대의 개수 등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현존 건물은 19세기 중엽의 건축양식을 보이며 이 고택의 파평 윤씨들의 세 거지인 옛 이산현에 있는 이산은 배산하여 인접한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배치 되어 있다.윤증(尹拯1629-1711)본관은 파평, 호는 명재(明齋). 아버지 선거가 성흔의 외손인 탓에 가학(家學)이 성리학이었으므로 어릴 적부터 성리학에 전념. 29세 때에는 송시열에게 주자학을 배우기도 했다. 효종 말년에 학업과 행실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천거되어 관직에 나갔으나 36세 이후에이었다. 봄의 전경이 그대로 살아있는 그리고 그 곳의 기품과 아름다움을 더욱 높여주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서 엄마와 사진을 찍고 음료수는 아니지만 과자를 먹으면서 논산에 이런 운치 있는 곳이 있구나 늙으면 이런 곳에 집 짓고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존재인 것 같다. 아직은 번화가가 좋을 나이인 나지만 좀 더 나이가 들고 생활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런 곳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감상후기우물과 그 옆의 돌절구사랑채2단의 기단 위에 세워진 정면4칸 측면2칸 중앙에 전퇴를 2칸 사랑방 오른쪽 대칭 왼쪽- 누마루(사랑방보다 바닥 높음) 하부에 부엌을 둔 작은 사랑방 사랑방 뒤 퇴=작은 마루방=작은 사랑방과 사랑방을 연결 공사 중 이어서 자세히 볼 수 없었다.남성들의 전용공간으로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대칭구조로 사랑방을 중심으로 대칭구조를 벗어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좌우 양쪽에 대청마루와 누각형태의 누마루가 있다. 시각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누마루를 두어 일정한 여유를 두었다. 균형 잡힌 형태와 기능을 부여한 고전적이지만 현대적인 느낌. 민흘림 네모기둥이며 툇마루 양모서리는 팔각기둥이다.안채중앙에 정면3칸, 측면2칸의 대칭 대청왼쪽 2칸 윗방, 2칸안방(안방정면에 4칸의 부엌이 돌출) 오른쪽 2칸 건너방, 1칸 마루방(마루방 앞으로 2칸사랑방과 1칸 작은 사랑방) 대청뒷면 심벽, 쌍여닫이 골판문, 전면은 그대로 개방 개방된 툇마루와 함께 안마당 공간을 더 넓게 느낌안채의 모습과 천장기둥얼마 전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윤씨네는 남자들의 수명이 짧기 때문에 이 고택에는 과부들이 많이 기거한다고 말씀하셨다. 참 안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혹시 이 고택이 풍수지리상 그런 형태를 지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고택은 안채가 많이 발달해 있었고 다른 곳에 비해 사용도가 높았다. 내가 답사했던 시간은 점심시간 이였는데 고부들간에 식사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화목해보였다. 나중막리, 동주막, 서주막, 마근동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골은 입구가 마치 병목같은 형국이며, 마을을 들어서면 북쪽으로 가옥이 배치되어 있고 남쪽으로 농경지와 구릉이 형성되어 있다. 대문채, 사랑채, 안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구성된 이삼장군 고택은 앞으로 'ㅡ'자형 사랑채를 두고, 그 뒤로 'ㄷ'모양의 안채를 연결한 튼 'ㅁ'자 집으로, 동쪽에 정면 4칸의 대문채를 세우고 안채의 동북쪽 구릉 위에 담을 둘러친 사당을 배치해 두었다. 대지는 다른 가옥에 비해 급한 구릉. 고택 앞을 지나 동쪽에 위치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의 측면과 안사랑채가 보이고 그 사이에 안채로 이어지는 중문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의 전면에 대문이 있는 것에 비해 이 가옥에서는 동쪽 측면에 솟을대문이 있으며 대문과 중문은 같은 선상에 있어서 안채로의 출입이 매우 개방적이다. 더구나 사랑채와 안사랑채라는 남성 전용공간 사이로 안채 중문을 배치한 점도 이채롭다. 대문이 집의 앞이 아닌 우측에 위치한 것은 가파른 경사지에 앉은 가옥에 살림채가 남향으로 길게 앉다보니 여유가 없어서 우측으로 튼 것과 풍수상 대문은 동쪽이 좋다는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 결과이다.집의 동쪽은 여유가 많아서 대문채와 살림채 사이의 마당도 크고 동향의 안사랑채를 여유롭게 앉힐 정도이다. 대문 앞의 중문을 지나 들어선 안채는 다른 충청남도 지역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특히 사랑채와 안채의 관계는 윤증고택의 축소판이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거의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고 부엌도 안방과 건넌방이 따로 소유한다. 안방 서쪽의 앞마당도 무척 크며 동향의 건넌방은 툇마루를 두고 담장까지 두르고 있다. 이 가옥의 담장은 모든 영역을 철저히 나누고 있다. 사랑영역, 안방영역, 건넌방영역, 뒷마당영역, 사당영역이 모두 폐쇄적인 담장으로 분명히 구분되어 있으나 그 영역은 답답하지 않고 각 영역의 아늑함을 최대로 보장한다.대문채와 그 주변전경윤증고택을 답사한 후에 가까이 제자인 이삼장군의 고택이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이곳을 찾게 숲과 나무들이 어우러 진 전경이 들어와서 이곳에 대청마루를 만들기에 참 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감상후기사랑채전면과 사랑대청의 모습사랑채는 남자들이 주로 머물고 손님들이 거쳐가는 곳이라고 했다. 그 옛날 남존여비사상을 고려하면 사랑채는 그 집을 대표하는 곳이고 가장 전경이 멋있으며 클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역시 사랑채는 내 생각대로 크고 대청마루에서 보는 풍경 또한 그 집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졌다. 이삼장군고택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아서 그런지 고요한 맛이 있었다. 사랑대청에 올라서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을을 바라보며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노라면 시나 그림도 저절로 써지고 그려질 듯 하다는 생각을 했다.감상후기사랑채의 기둥의 흰 모습과 안 사랑채와 사랑채 사이의 주춧돌안사랑채로 연결 된 문사랑채와 안사랑채를 연결하는 문으로서 공간의 구획이 명확한 이 고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안사랑채 앞의 마당마을과 연결이 되어 있었고 대문이 따로 없이 담벼락이 띄어져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아마도 하인들이 짐을 다르거나 기구를 쓰기 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감상후기이 집 또한 담장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계단모양이었다. 산 구릉에 집을 지었는데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담장을 세웠기 때문에 담장이 계단모양을 취하고 있었다. 일손도 덜 들고 일부로 모양을 낸 듯한 우리 조상들의 미적 감각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담장이었다. 안사랑채와 연결되는 이문은 하인들이 기거하는 곳과도 연결되어있는 듯 했다. 주위에 곳간과 화장실도 보였으며 나가는 출입문이 없이 그냥 담장을 헐어 놓은 모습이었다.감상후기처음에는 지게나 소같은 것들이 지나 다닐 수 있게 문 대신에 헐어 놓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것도 아마 양반과 상민이 다니는 길에 차별을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문이 없더라도 도둑맞을 것이 없는 상민들의 형편을 고려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감상후기안채안채에는 부엌이 2개가 있었고 실용성과 동선을 위해서ow}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 1564~1642){이탈리아 천문학자이며 물리학자 수학자이기도 하다. 피렌체의 시민계급출신이다. 성과 이름이 비슷한 이유는 장남에게는 성을 겹쳐 쓰는 토스카나 지방의 풍습 때문이다.피사의 사탑에서 실시한 낙체에 대한 실험으로도 유명한 그는 1579년 피렌체 교외의 바론보로사수도원 부속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마치고, 1581년 피사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였는데, 이 무렵 우연히 성당에 걸려 있는 램프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단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하였다. 1584년 피사 대학을 중퇴하고 피렌체에 있던 가족과 합류하였다. 이곳에서 아버지 친구이자 토스카나 궁정수학자인 오스틸리오 리치에게 수학과 과학을 배우면서 대단한 흥미를 느꼈다. 이때 습작으로 쓴 논문이 인정을 받아 1592년 피사대학의 수학강사가 되었고, 같은 해 베네치아의 파도바 대학으로 옮겼다. 파도바대학에서는 유클리드기하학과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가르치는 한편,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리치에게 배운 응용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은 이 시기의 저서이다. 베네치아의 여성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며, 파오로 사르피 같은 당대의 뛰어난 학자나 귀족 등과 친교를 맺었다. 1604년에는 에서 발표한 근대적인 관성법칙의 개념도 이미 그 전에 사르피에서 보낸 서한에 나타나 있다.1609년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수 망원경(갈릴레이식 망원경)을 만들어 여러 천체에 대하여 획기적인 관측을 하였다.예를 들어, 당시에는 완전한 구로 믿었던 달에 산과 계곡이 있다는 것,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생각하였는데 목성도 그것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위성(갈릴레이 위성)을 가지고있다는 것 등이었다. 1610년에는 이러한 관측결과를 로 발표하여 커다른 성공을 거두었다. 이 해에 교직생활을 그만두고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서 토스카나대공인 메디치가의 전속학자가 되었다.그 후로도 천문관측을 계속하여 1612~1613년에 태양흑점 발견으며, 1664년 학사학위를 얻었다. 1664~1666년 페스트가 크게 유행하자 대학이 일시 폐쇄되어 뉴턴도 고향으로 돌아와 대부분의 시간을 사색과 실험으로 보냈다.그의 위대한 업적의 대부분은 이때 싹트게 된 것이라고 하며, 사과의 일화도 이때 있었던 일이다. 1667년 재개된 대학에 돌아와 이대학의 펠로(틀별연구원)가 되고 이듬해에는 메이저펠로(전임특별연구원)가 됨과 동시에 석사학위를 받았다.1669년 I.배로의 뒤를 이어 루스카교수직에 부임하였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최초의 강의도 광학이였으며, 초기 연구는 광학분야에서 두드러졌다. 광학에 대해서는 이미 울즈소프 시절부터 스스로 수집, 정비한 실험기구를 이용해 빛의 분산형상을 관찰하였으며, 특히 굴절률과의 관계에 대하여 세밀히 조사하였다.한편 만원경 제착도 연구, 광절광은 스펙트럼을 만들었지만, 반사광은 그렇지 않는 사실을 기초로 , 반사식이 수차와 효율면에서 한층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1668년 뉴턴식 반사망원경을 제작했다. 이 망원경은 천체관측 등에 크게 공헌하여 이 공적으로 1672년 왕립협회회원으로 추천되었다. 그 해에 이라는 연구서를 협회에 제출하였는데, 그 내용은 백색광이 7색의 복합이라는 사실, 단색이 존재한다는 사실, 생리적 색과 물리적 색의 구별, 색과 굴절률과의 관련 등을 논한 것이었다. 1675년 박막의 간섭현상인 뉴턴의 원무늬를 발견하였으며, 빛의 성질에 관한 연구로 광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1704)을 저술했다.수학에서는 1665년 이항정리의 연구를 시작으로, 무한급수로 진전하여 1666년 유분법, 즉 플럭션법을 발견하고, 이것을 구적 및 접선문제에 응용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미적분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성과를 1669년에 발표했다. 1676년 그와 동일한 미분법을 발견한 라이프니츠와 우선권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졌는데, 이 무렵부터 그의 사고방식도 실험적 방법에서 수학적 방법으로 그 중점이 옮겨져 스스로를 수학자라고 하였다.뉴턴의 최대 업적은 물론 역학에 있다. 일찍부터 중요하다.자연선택동종의 생물 개체 사이에 일어나는 생존경쟁에서 환경에 적응한 것이 생존하여 자손을 남기게 되는 일로 자연도태라고도 한다. 생물은 다산하며, 또 개체마다 약간 다르다는 변이성을 가지는 데 기인한다. 다윈은 품종개량에서 행해지는 인위선발로부터 유추하여, 자연선택을 생물진화의 주된 요인으로 제창하였다. 오늘날에도 진화요인론과 관계가 깊은 집단유전학의 주요 개념이 되어 왔다. 가축이나 농작물의 다양한 품종이 생기게 된 것은, 인간이 자기의 목적에 적당한 형질을 가진 것만을 선택해 내는 방법을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택작용을 인위선택 또는 인위도태라고 한다. 물론 인위선택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개체간이 변이 이다. 즉 사람은 여러 변이종 중에서 자기가 목적하는 형질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것을 선택하고, 이과 같은 선택을 계속해 나가면 변이가 누적되어 처음과는 다른 특수화된 가축이나 재배식물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품종이 된다는 것이다.다윈은 자연계에서도 이와 같은 선택작용이 행해진다고 보았다. 즉 자연계에서 생활조건에 적합한 생물체는 생존하고, 적합하지 않은 것은 사멸한다. 생물개체간에는 끊임없이 이와 같은 생존을 위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결과 생활조건에 잘 적응한 것이 자손을 남기게 된다. 즉, 적자는 생존에 유리한 형질을 자손에게 전하고, 이것이 대를 거듭하게 되면 가축이나 작물의 경우와 같이, 적응된 형질은 점차 누적되어 결국에는 선조와는 다른 형질을 가진 종으로 변해 간다는 것이다. 자연선택의 예로 주목되는 것은 보호색이다. 영국의 공업도시에서 흑색 나방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공업암화라고 한다. 이것은 수목을 덮고 있던 밝은 색의 지의류가 매연에 의해 벗겨져서 암색의 수피를 닮은 흑색 나방이 보호색으로서의 적응성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종의 기원{영국의 생물학자 다윈의 생물의 진화론에 관한 저서로 1895년 11월 런던의 존머리사간행. 다윈은 1858년 7월 1일 린네의 학회에서 A .R 윌리이후에는 철도 전신수가 되어 미시간 주의 아드리안을 비롯하여 인디애너폴리스, 신시내티, 디트로이트, 뉴올린즈, 보스턴 등지를 옮겨다녔다. 그 동안 틈만 나면 여러 가지 실험 기구를 사 모아, 과학 실험에 열중하였다. 그 무렵의 미국은 1861년에 일어난 남북전쟁을 경계로 하여 여러 가지 산업이 새로이 발전하고 있었다. 약 20년전에 발명된 모르스의 전신도 실용화되기 시작하여 전신수가 많이 필요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에디슨은 전신수가 되고자 전신술을 배웠던 것인데, 그것이 동시에 자신이 발명가로서의 생애에의 제 1보를 내듣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동안 그는 보스턴에서 패러디의 라는 책을 읽고 커다란 자극을 받았다. 그리고 그 책의 설명이 명쾌한 데다가, 복잡한 수식을 매우 흥미를 느껴, 이 책에 나와 있는 실험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도 하고, 실지로 해보기도 하였다. 그밖에 이 무렵에 화학의 실험과 전신의 연구도 했다. 이리하여, 얼마 후 1868년에 전기식투표 기록장치를 발명하였으며, 최초의 특허를 얻었다. 이 기계는 너무나도 정확하고 편리했기 때문에, 도리어 연방의회에서는 채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서 주식 시세 수신기와 전신의 새로운 송신 방법 등의 발명도 했는데, 전신 사업의 자본가들이 너무도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데 환멸을 느끼고, 전신 방면의 연구는 단념해 버렸다.그리고 그가 발병한 유니버살 인쇄기로 얻은 자금으로, 1870년에 쥬저지 주의 뉴아크에 공장을 열고, 발명에 전념하였다. 1876년 초, 가족들의 건강과 일하는데 편리한 점 등 때문에 뉴욕 근교의 작은 마을 멘토우파크로 옮겨가, 사는 집 옆에 공장과 실험소를 지었다(그리고1887에는 뉴저지 주의 웨스오린지로 이전했다)전화기의 개량같은 1876년 3월, 벨은 전화를 발명하여 특허를 얻었는데, 그것은 뉴욕, 워싱턴간의 통화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전해듣자, 에디슨은 즉시 그 얼개를 살펴본 결과, 그 결점이,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전자석식의 수화기와 똑같은 얼개의수 학교에 지원했다.벨은 그 뒤에도 발명을 계속해 선박을 보다 빠르게 향해 할 수 있게 하는 수중날개를 고안하였고 또한 사람들이 탈 수 있는 연을 만들기도 했다.전화의 발명과 사건전화는 미국에 정착한 영국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발명하였다. 벨은 보스턴에서 청각 장애인 교사로 있으면서 밤에는 고조파 전신기 실험을 했는데, 이 장치는 전신 메시지 몇 개를 전선 한 개를 이용해 메시지를 보내는 장치였다. 1875년6월 2일 고조파 전신기를 여러 금속판에 끼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벨의 조수인 토마스 윗슨이 이 진동판을 튕겨서 풀었는데 다른 방에서 있던 벨이 수신기에서 진동판 튕기는 소리를 들었다. 벨은 막 발견한 송신기를 실험하려 했었고, 윗슨은 다른 방에서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벨이 축전지를 든 산 용액을 쏟았다. 그는 왓슨 군, 빨리 와주게 라고 소리 쳤다. 송신기에서 나는 이 소리를 듣고 윗슨은 응답을 했고 이렇게 해서 벨은 세계 최초로 전화를 발명하였다.동전을 넣는 공중 전화기는 1889년 하트포드 월리엄 그레이의 특허이다. 그리고 최죄의 다이얼식 전화는 1923년 프랑스의 안토니 바르네가 개발하였다. 이동 전화는 벨 전화 회사에서 개발되어 1924년 뉴욕 시경이 사용하였다. 1946년에는 최초의 상업적인 이동전화가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후 40년이 지나도록 일반화되지는 못했다.1978년 벨 연구소는 미국 전화 전신 회사를 설립하고 지역을 육각형의 셀로 나누는 방식의 이동 전화 시스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통화자가 탄 자동차가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면 자동 전화 시스템이 다른 셀로 방해 없이 부드럽게 연결해 주는 것이다. 이 후 셀룰러 방식의 전화 시스템은 1981년 미국전역에서 시행되었다.벨이 전화를 발명하게 된 배경벨은 소리를 내는 음성 기관의 위치와 작용을 나타내는 음성학적 기호를 체계화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에딘버러 출신의 발성법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발성법 집안에서 자란 벨은 장성한 뒤 한다.
목차서론Ⅱ한국 전통사회의 유아교육(잉태 전~출생) 태교단계(출생~3세경) 한국 전통 유아교육의 제2단계무릎학교단계(3~5세)세 번째 단계자발적 학습단계(5~7세)Ⅲ초창기 유치원 교육(1897~1945)Ⅳ유치원 교육과정 제정 이후제1차 유치원 교육과정제 2차 유치원 교육 과정제 3차 유치원 교육 과정제 4차 유치원 교육 과정제 5차 유치원 교육 과정제 6차 유치원 교육 과정Ⅴ결론Ⅰ 서론과거 어느 때보다 오늘날만큼 유아교육의 중요성이 누구에게나 인식되고 있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유아교육은 일부 특수층 자녀들이 누리는 특권 이였지만 1990년에 접어들면서 유치원은 국민의 기초 교육기관으로 그 위치를 다져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유아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이다.유아교육의 중요성을 뒷받침해 주는 인간발달의 기본원리를 정범모(1976)는 '국가발전과 어린이'라는 세미나에서 인간발달의 네 가지 원리를 제시함으로서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첫째, 적기성의 원리는 인간의 여러 발달 과업들을 가장 적절하게 획득되는 최적의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결정적 시기라고 불리 운다. 이 결정적 시기를 놓치게 되면 과업 획득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아동의 언어발달, 성격발달, 그리고 신체발달에는 최적의 시기가 있다.둘째, 기초성의 원리는 어릴 때의 발달이 나중의 모든 발달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셋째, 누적성의 원리는 인간의 성장. 발달에 있어 전 단계의 발달에 결손이 생기면, 이 결손은 다음 단계의 발달에 계속적으로 누적되어 점점 발달장애가 심각해진다는 것이다.넷째, 불가역성의 원리는 특정한 발달과업 획득의 최적 기를 놓치면 그 후에 보완이나 교정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한국 전통사회는 인간은 태교부터 교육해야 한다는 태교사상을 발전 시켰을 정도로 유아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 사회였다. 이어서 초기 유치원이 생기고 일본인들과 미국인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초창기 유치원 설립시기의 발전과정을 람벽에 기대어 서지 마라.산과 들에 가지 마라.옛 무덤을 보지 말라.옛 사당에 가지 마라.바늘로 손을 상하기 하지 마라.잘 드는 칼을 쓰지 마라.몹쓸 냄새를 맡지 마라.밤에 외출하지 마라.약을 함부로 쓰지 마라.깊은 데에 가지 마라.높은 데 오르지 마라.무거운 것을 들지 마라.비바람 사나울 때 외출하지 마라.어깨 너머로 돌아보지 마라.오른쪽에 있는 것을 왼손으로 잡지 마라.서서 땅의 것을 집지 마라.왼쪽에 있는 것을 오른손으로 잡지 마라.음식에 관한 주의참새고기나 까마귀 고기를 먹지 마라.오리 고기를 먹지 마라.썩어서 떨어진 과일을 먹지 마라.냄새가 고약한 음식을 먹지 마라.설익은 과일을 먹지 마라.술을 먹지 말라.음식은 평소대로 하되 특이한 것을 먹지 마라.바르게 자른 것이 아니면 먹지 마라.참외나 날 채소를 먹지 마라.빛이 좋지 않은 음식은 먹지 마라.-구전태교문헌에 기록된 내용과 비슷하면 오히려 없는 내용까지도 갖추고 있음.중하류계층에서 통용.구전으로 전해지는 '칠 태도': 남부지방에서 최근까지 내려오던 민간 태교법제 1도아기를 낳을 달이 되면 머리를 감지말고 높은 곳을 오르지 말며 술을 마시지말고 무거운 짐을 지지 말며 험한 산길과 냇물을 건너지 않는다.제 2도임부는 말을 많이 하거나 지나치게 웃거나 놀라거나 겁을 먹거나 울지 않는다.제 3도임신 첫 달은 마루, 둘째 달은 창과 문, 셋째 달은 문턱, 넷째 달은 부뚜막, 다섯째달은 평상, 여섯째 달은 부뚜막, 일곱째 달은 학돌(절구와 비슷한 큰 돌), 여덟째달은 측간(화장실), 아홉째 달은 문방(서재)에 가지 않는다.제 4도임부는 조용히 앉아 아름다운 말을 듣고, 성현의 문구를 외고, 시를 읽거나노래를 들어야 한다.또 나쁜 말은 듣지 말고, 나쁜 일은 보지 말며, 나쁜 생각을 품지도 않는다.제 5도임부는 가로눕지 말고, 기대앉지 말며, 한쪽으로 기울여도 안 된다.제 6도임신 3개월부터 태아의 기품이 형성되므로 기품이 있는 물건을 가까이 두고감상한다.제 7도아이가 생긴 후에는 금욕을 한다.산달에 성교를 하 지닌 혈친인 조모 함께 칭찬 과 격려로써 이시기 발달과업을 수행.-배변훈련이 시작되고 완성됨(항문기적 성격특성): 배변훈련담당자가 칭찬과 격려 의 태도를 취하면 유아가 배변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협조적인 태도를 취함으 로 이후 인생의 생산성과 창의성의 기초가 형성. 반대의 경의 결벽성이 형성되거 나 규칙이나 질서에 무관심한 절제 성이 결여된 성격 형성됨.-언어 및 의지 행동의 발달: 성인언어를 모방하고 전문식 언어를 사용(토씨없음). 놀이로써의 자기 중심적 언어사용. 정서표현언어사용-조모의 무릎학교; 유아의 대리모로서 불안 제거 자로서 집단 지도자로서 자아옹호 자로서 판단 자로서 훈육 자로서 동일시대상으로서 지식자원자로서 놀이 안내 자로서 상담 자로서 적대감정의 표적으로서 애정상대자 역할을 함.-자장가: 어휘의 발달 개념의 형성 유머나 위트감각의 발달 사회성의 발달 표현행 동의 발달등 유아에게 교육적 의의가 큰 놀이-균형감각 유지와 모험심을 키우는 놀이: 목말타기 새날기 깨금 뛰기-소꿉놀이: 상상놀이는 자신의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역할이나 행동을 상상의 세계 속에서 실현해 봄으로써 정서적 만족과 사회조직에 대한 적응 기 술 태도 및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음.-수수께끼: 배변훈련을 돕기 위해 창안. 배변에 관련된 수수께끼로 어휘가 부족하 고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아직 미숙한 유아에게 도움이 됨.-베개놀이: 상징놀이로써 성 역할에 관심 자극. 태어날 동생에 관한 바람직한 태도 양성.-교육적 의의: 유아발달수준에 맞는 자장가, 소꿉놀이가 애용.육아보다는 유아교육의 특징이 발견.발견되는 전통유아놀이는 발달 장애가 되기 쉬운 발달 문제를 치료 해 주는 놀이 목표를 위해 발생됨.유아놀이에서 비로소 흙이나 모래 소꿉놀이 등의 장난감이 나타남.놀이 동작이 보다 거칠어지고 놀이 규칙이 도입됨자발적 학습단계(5~7세)-발달상의 특징: 자기 의 세계를 확대해 가면서 또래 지향적이 되어감. 자발적이고 다양한 학습의 기회를 획득. 후속 되는 엄격한 훈육과 본격적인 성역활 교육단 교육론 및 방법이 25년간 일본에서 그들의 사회. 문화적인 영향을 받은 뒤였으므로 순수한 프뢰벨 교육원리 및 방법이 우리 나라에 전수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움)-프뢰벨의 이론 중 자발활동의 원리와 같이 유아의 자유를 강조하는 면이 부각되지 않고 통제적이고 규제적이며 집단적이며 집단적 생활을 하는 면이 많이 강조됨1900년 인천 기념 공립 유치원1900년 경성 공립 유치원1909년 함경북도의 나남 유치원(일본인교사)-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최초의 유치원1913년 경성유치원- 1913년 친일파 한국인이 설립한 것으로 일본인 원장과 보모 밑에서 일본의 풍습과 습관을 가르쳤으며 이른바 '식민지 동화정책'을 위한 조기교육을 실시1914년 이화 유치원-(우리나라 최초유치원) 현존하는 유치원 중 가장 오랜 역사-브라운리가 이화학당 내의 정동 이화유치원 (현재 이화여자대교 부속유치 원)을 설립하면서 미국의 기독교적 정신에 입각한 유아교육이 도입-프뢰벨의 교육론에 근거를 두었다기보다는 기독교 이념에 근거를 둠-1915년 우리나라 최초 유치원교사 양성기관인 이화유치원 사범과 설치.1916년 중앙 유치원(최초의 민족 유치원)1922년 2월 4일 제2차 조선교육령(유치원에 관한 규정)1922년 2월 16일 소학교령(총독부령 제11호)(유치원규정 포함)-해방 후 우리나라의 교육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유치원의 유일한 법적 근거가 됨-유치원규정에 포함된 보육항목인 유의 창가 담화 수기 등의 교육내용은 일본의 유치원 보육 및 설비규정의 보육항목과 일치-1908년 4월 2일에 대한제국이 공포한 칙령 제22호에 나타난 유치원 관계 규정 과 비교해 볼 때, 취원 연령, 설립요건과 절차, 폐원절차, 보육 요지와 목적, 보육 항목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힘유치원 규정(大正 11년 2월, 總令 제 11호) 조선총독부, 1926.제1조 유치원은 연령 3세부터 7세까지의 유아의 보육을 목적으로 한다.제5조 유아를 보육할 때는 그 심신의 건전한 발달과 선량한 습관을 얻게 하고 그러므로 가에 중 일전쟁, 1941년에 태평양 전 쟁을 치르면서 한국을 병참기지화 함으로써 식민지적 수탈 관계가 강 화되어 유아교육은 앞의 확산기와는 달리 침체현상을 보임.- 1940년 시작된 창씨개명으로 유치원 어린이들의 이름도 대부분 일본식 으로 개명되었고, 집단생활의 질서, 규율훈련, 생활훈련을 중시하면서 유아의 개별적인 성장. 발달은 경시됨- 1920년대에 기독교계 유치원을 중심으로 질고 양의 양면에서 향상되고 개화하려던 유치원 교육은 많은 피해를 입고 변질. 영향이 광복 후 오 랫동안 지속됨대한민국 수립후 유치원 교육(1945~1968)1946년 교육 제도: 학령전 교육으로 유치원 포함1949년 교육법공포: 유치원 조항 제 146.147,148조에 근거하여 전국의 유치원은 잠정적으로 교육목적을 설정하고 교육과정을 운영제146조 유치원은 유아를 보육하고 적당한 환경을 주어 심신의 발육을 조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제147조 유치원 교육은 저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의 목표를 달성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①건전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일상의 습관을 기르고 신체의 모 든 기능의 조화적 발달을 도모한다.②집단생활을 경험시켜 즐겨 이에 참가하는 태도를 기르며, 협동자주와 자 율의 정신을 싹트게 한다.③신변의 사회생활과 환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태도를 싹트게 한다.④말을 바르게 쓰도록 인도하고 동화 그림책 등에 대한 흥미를 기른다.⑤음악 유희 회화 수기 기타 방법에 의하여 창작적 표현에 대한 흥미를 기른다.제 148조 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는 자는 만 4세부터 초등학교 취학시기에 달하기 까지의 유아로 한다.-이로써 유치원은 교육법 속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유치원교육의 목적, 목표 등을 정함.1952년- 대통령령 제633호로 공포된 교육법시행령을 통해 유치원 설립인가,원아수, 교육과목, 교육일수 등에 대한 규정으로 균등한 교육기반의 법적 근거가 마련.원아 수-1반 당 원아 수는 40인 이하.보육과목-건강, 사회, 자연, 언어 및 예능.보육일수-매 학 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