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문학사韓國의 假傳文學目 次Ⅰ. 서론Ⅱ. 가전의 성립1. 당에서의 성립2. 고려에서의 성립Ⅲ. 가전의 개념1. 명칭2. 형식3. 장르Ⅳ. 가전 작품1. 고려시대2. 조선시대Ⅴ. 결론 - 가전의 문학사적 의의※ 참고문헌Ⅰ. 서론假傳은 列傳, 혹은 本紀의 형식을 조술하여 인간 주변에 산재하는 동물 ? 식물 ? 무생물 및 심성을 소재로 한 의인傳記로서, 교훈성 ? 풍자성 ? 탁전성 ? 오락성 등을 골고루 포함하는 우의적 滑稽의 문예장르이다.)이러한 假傳은 800년의 긴 역사를 이어 오면서 40명의 작가를 배출시키고 50편에 가까운 많은 작품을 탄생케 한 격조 높은 우리의 문학 장르이기도 하다. 이 긴 세월동안 그 고유한 특징을 지켜 孤高한 문학세계를 이룩했다. 또한 질 ? 양적인 측면에서 모두 찬란하게 開花하여 마침내 假傳의 발원지인 중국을 능가하게 되어 우리 漢文學史上 중국보다 발전한 유일한 장르가 되었다.)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假傳에 대한 연구는 깊이 있는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假傳文學에 대한 성격 규명마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그간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아직 정설이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假傳文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에서 假傳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알아볼 것이며, Ⅲ에서는 假傳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되, 중요 쟁점을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쟁점들을 살피게 되면 자연스럽게 쟁점에 대한 각 의견들을 따지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또 자연스럽게 假傳文學을 파악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假傳의 발생배경과 개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Ⅳ에서는 우리나라의 假傳文學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Ⅴ에서 假傳의 문학사적 의의를 알아본 뒤, 결론을 맺겠다.Ⅱ. 가전의 성립1. 당에서의 성립동방假傳의 남상은 멀리 唐代 산문학의 종장인 한유가 붓을 인격화시킨 假傳인〈모영전(毛穎傳)〉에 둔다. 그 이전까지는 史傳을 본받아 한 인물의 평생을 기록한 家傳이나 혹은 어떤 인물에 가탁하여 寓意하고자 하는 托傳은 있었지만 사물을 立傳하는 예는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假傳文學이 나타나게 된 배경은, 당시에 傳文學이 상당히 발달하여 있었고, 또한 의인화한 작품이 상당히 유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假傳文學 형성의 배경은 한유의 文筆欲에서 찾을 수 있다. 古文復興運動의 제창자였던 한유는 質朴한 古文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며 文學과 道는 하나라고 보았는데, 더 나아가 몸소 그러한 글을 쓰고자 하였다. 그의 강렬한 古文創作에의 집념은 마침내 《사기(史記)》에서 傳의 文體를 발견해 내고, 그리하여 나타난 작품이〈모영전(毛穎傳)〉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이러한 몇 가지 사실을 배경으로 假傳文學은 탄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탄생은 결코 평탄할 수만은 없었다. 당시 한유와 더불어 古文運動을 함께 일으켰던 유종원은‘〈모영전(毛穎傳)〉을 읽고 나서는 世人들이 이를 비난할까 두려워하여 이에 대한 변명으로 數百言을 지어서 前聖들도 俳戱를 반드시 죄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고 하면서 변호하였다.) 이 내용으로 보아 당시의 형편이 이런 俳戱之文을 용납할 정도가 아니었던 듯하다. 그후 장적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 한유를 공격하고 비방하니 한유 또한 맞서서 대항하였다. 이렇게 한유에게서 발원된 假傳은 당시엔 저작하는 자가 없다가 약 70년 뒤에 사공도가 거울을 立傳한
자연재해의 이해Ⅰ. 서론우리 나라에 가장 많은 피해를 주는 자연재해는 홍수와 가뭄이다. 6월 말부터 9월까지 집중되는 강수와 태풍으로 인한 홍수는 외출을 힘들게 하고, 집이 물에 잠기며, 심할 경우에는 사람을 물에 휩쓸려 죽게 한다. 이러한 몸으로 직접 느끼는 피해들로 인해 우리는 홍수를 큰 재해라고 생각하며 대비하고자 한다. 그러나 가뭄은 과소평가 되고 있다. 뉴스에서는 매년 봄이 되면 가뭄이 지속되어 농작물 피해가 예상된다고 하지만, 아주 오랜 가뭄이 아니면 수돗물이 제한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도시에 살고있는 나는 그러한 피해가 내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더구나 비가 오지 않아 맑은 날이 계속되면 외출하거나 생활하기에도 편해서 오히려 좋아하곤 하였다.그런 나에게 홍수보다 가뭄으로 인한 피해가 훨씬 크다는 교수님의 말씀은 조금 충격이었다. 당연히 가뭄보다 홍수가 큰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가뭄에 무심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홍수 못지않게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많이 겪고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도 2002년 4월부터 2년간 계속된 호주 가뭄에 대해 조사하였다. 캥거루가 뛰놀고, 멋진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깨끗하고 밝은 호주가 그렇게 극심한 가뭄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지 몰랐었다.Ⅱ. 본론1. 호주의 가뭄 피해 상황호주 기상청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시드니 비행장에 매년 평균 1,108밀리(mm)의 비가 내리는데 태양열이 강해 증발하는 양은 더 많은 1,789밀리나 증발한다. 계절로 보면 여름철인 1월에는 98밀리가 내리는데 증발하는 양은 217밀리가 되어 내린 비의 양보다 배가 더 태양열에 날라 간다. 겨울철에는 비교적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라 126밀리가 내리는데 증발양은 크게 줄어서 78밀리로 북쪽에서 온 이민자들에게는 쾌적한 기후이다.그런데 시드니보다 내륙에 있는 “켄베라”만 해도 크게 다르다. 연간 내린 비가 631밀리가 되는데 증발하는 양은 무려 1,691밀리가 수증기로 되어 증발 해 버리는 것이다. 더운 여름철SW 주의 깊숙이 있는 코바(Cobar)를 보면 연간 강우량이 406밀리로 아주 적지만 증발한양은 2,448밀리이다. 여름철인 1월에는 51밀리가 내렸는데 증발양은 360밀리이며 6월중에는 24밀리에서 증발은 66밀리가 된다.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비가 없는 대신 증발력이 강해 거의 사막에 살고 있는 것과 같다. 호주의 탐험가들은 몇 달 전에 그곳을 다녀온 사람이 그곳에 강이 있다고 하여서 지도에 표시 했는데 2-3개월 안에 그곳에 가면 다 말라 벼렸기 때문에 많은 탐험가들이 물이 없어 죽어 갔다. “물이 없는 나라 건조한 땅”이 호주 대륙의 대명사이다.호주는 2002년 당시 100년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으로 경제난이 심했다. 엘니뇨에 따른 극심한 가뭄으로 농산물 수출이 27% 줄었으며, 이에 따른 여파로 2003년 경제성장률이 전년보다 1%정도 떨어졌다. 가뭄이 2년 연속 이어졌기 때문에 그 피해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 피해 상황을 부분별로 나누어 살펴보겠다.가. 농업 피해우선 농산물 비중이 큰 호주이기 때문에 농업 피해가 매우 컸다. 수출 감소로 2002년 무역적자는 2년만에 최대로 늘어났다. 호주 밀 위원회(AWB)는 가뭄 때문에 당시 밀 수확량이 평소보다 60% 적은 1000만톤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한 피해액은 50억 호주달러에 이르렀다.나. 축산업 피해또한 호주는 한국을 비롯 미국, 일본, 캐나다, 동남아 등지에 쇠고기를 공급하는 세계적인 육류 수출국이다. 그에 따라 축산업의 피해도 컸다. 호주 육류. 축산업 그룹은 당시 쇠고기와 양고기 생산량이 예년에 비해 최대 14%까지 떨어지고 향후 몇 년간은 생산 하락 폭이 더 클 것으로 발표했다. 현지 축산업 분석가 피터 위크스는 올해 말까지 육우용 소가 7% 감소한 2천600만두(頭)로 떨어져 쇠고기 수출이 87만5천t(5%) 줄어들고, 양은 53년 만에 최저수준인 1억700만두로 줄어든데 이어 내년에는 9천850만두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다. 생태학적 피해호주를 상징하는 캥거루가 사냥약'이나 '그러나'같은 단서를 달 필요도 없이 레드 캥거루는 10년 안에, 그레이 캥거루는 2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또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호주에서는 폭발적으로 급증한 메뚜기떼로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한동안 가뭄이 지속되면 곤충 번식이 급증하는 것이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이번에 나타난 기이현상에 대해 호주 당국은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그리고 호주 야생동물단체 관계자는 가뭄으로 먹이가 부족해진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도로로 나왔다가 차에 치어 죽고 있다고 전했다.)라. 산불 피해호주는 가뭄에 이은 산불태풍으로 몸살을 앓았다. 2002년 4월부터 시작된 가뭄으로 온 산야가 화염물질처럼 변해 있는데다 고온 건조한 기후를 타고 시드니를 비롯한 NSW주 전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특히 시드니 남부 미타공(Mittagong)지역을 비롯한 100여 군데에서 산불이 발생해 수십 채의 가옥과 건물이 전소되는 등 막대한 재산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같은 가뭄에 이은 산불 피해는 매년 호주가 겪고 있는 고질적인 자연재해이지만 당시에는 가뭄 기간도 유난히 길고 산불 규모도 커 더욱 심각한 피해가 초래되었다. NSW주 소방방재서는 지난 수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은 관계로 호주 내 모든 천연국립공원이 인화물질로 변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산불이 전국 도처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전국이 고온 건조한 상황에서 한번 산불이 발생하면 시속 60Km의 강풍을 동반해 무서운 속도로 계속 번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을만한 별다른 대책이 없어 산불진화작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2. 가뭄 대책 방안호주는 아주 가뭄이 심한 나라다. 한가운데가 사막으로 돼 있어서 더하다. 가뭄 피해도 대단하다. 물기 하나없이 갈라진 땅 위로 생명이라고는 풀 한 포기 살아남을 수 없고 그로 인해 죽게 되는 동물도 수가 엄청나기 때문에 호주 정부는 해마다 물을 아끼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한다. 그래서인지비가 오면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가뭄이 들면 사용하는 물통이다.정원에 물을 주는 시간도 제한돼 있다. 물을 주는 시간은 오전 7시 이전이나 오후 5시 이후에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집 앞에서 물을 죽죽 뿌려대며 세차하는 일도 흔한데 정원에 물을 주는 것까지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위반하면 벌금도 많이 물어야 한다. 이웃 주민들의 신고 정신도 투철한 편이어서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세차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호주인들의 평균 하루 물 사용량은 340리터이다. 한가정당 평균 사용량은 900리터인데 사용내용을 보면 식수 및 부엌일에 13%, 샤워 24%, 빨래 20%, 변소 16%이고 정원 용수등 외부 사용량이 27%이므로 현재 잔디나 자동차 닦는 것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호주의 물 문제에서 가정의 급수문제는 8%에 불과하다 농업에 70%가 사용되고 있으며 그 외로 공업용으로 많이 사용된다.또한 2002년 가뭄 당시 주요 댐의 물이 거의 바닥을 드러냄에 따라 수자원공사는 수자원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식수를 제외한 물은 가급적 허비하지 않도록 캠페인을 펼쳤으며 멜버른의 저수량은 47.5%, 브리스베인은 61%이었다. 특히 멜버른 지역을 비롯한 빅토리아주에서는 가정에서부터 수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 '가족 함께 샤워하기' 캠페인을 실시하는 등 호주 전역이 수자원 부족에 대비한 노력을 기하였다.그리고 가뭄 극복 차원에서 해수욕장의 샤워시설 가동도 중단했다. 이로써 퀸즐랜드주 골드코스트 해안에 설치된 208개의 야외 무료 샤워시설은 2주간 사용이 금지되었다.)나. 구조적 대책시드니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안이 제시 되어 있는데 가장 빠른 방법은 시드니 남쪽의 쉘하벤(Shoalhaven)강에 땜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다음에 거론되는 것은 바닷물을 끌어들여 바로 소금을 없애는 공장을 설치하는 것이다. 다음에 고려되고 있는 것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물을 재처리 하는 방안이다.새로운 땜을 건설하는 것이 가장 싸게 들지만 저수지로 인한 환경파괴와 의 비가 오지 않을 경우는 바닷물을 끌여들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 방법은 사막지대인 중동지역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과거에는 많은 돈이 들었지만 첨단기술이 발달되어 많이 개선되었다. 그다음에 하수도를 재생하는 방법도 많은 예산이 소모되고 있다. 현재 시드니에 새로 건설된 올림픽 촌 Newington 지역과 Rouse Hill에는 재생물이 50%로서 다시 활용하고 있다.하워드 수상은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퀸스랜드 , NSW 주, 빅토리아, 남부 호주를 흐르는 2,520킬로의 강을 소금물에서 정화하기 위해 5억불을 투자하기로 하였다. 이 강 유역에서 호주 농업 생산량의 30%이상이 생산되고 특히 양털생산의 50%, 곡물 생산에 50%, 소고기 우유 제품에는 25%가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물의 흐름이 약해서 간혹 갈대밭으로 막혀 있거나 바닷물이 들어와 농토를 폐허로 만들고 있다.호주 정부는 농업 가뭄이 발생해도 국가가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가뭄을 대비하는 방법을 택한다. 국가는 가뭄의 진행 정도를 즉시에 국민에게 알려 주는 일을 더 중시한다. 그래서 국민 각자가 가뭄에 대비하게 하여 가뭄대비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식시켜,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로 봐서 가뭄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전략이다. 가뭄 시에 가뭄을 대비하는 농기구 가격을 하락하여 농가의 부담을 줄여 주는 정도가 고작이다.)3. 가뭄의 원인 - 엘니뇨엘니뇨란 남아메리카 서해안을 따라 흐르는 차가운 페루해류 속에 갑자기 이상난수(異常暖水)가 침입하는 해류의 이변현상이다. 페루해류는 남동무역풍이 2∼4월을 중심으로 페루 연안을 지나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영양염이 풍부하고 플랑크톤이 풍부한 세계적인 정어리 어장을 이룬다. 그런데 남동무역풍이 약해지는 9월에서 다음 해 2월에는 엘니뇨 현상이 일어나며, 발생지역은 열대 태평양 적도 부근에서 남아메리카 해안으로부터 중태평양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발생간격은 불규칙적으로 2~7년의 주기를 가진다. 적도 쪽으로부터 북풍과 함께 이상.
모래의 책포스트 모더니즘의 선구자이며 환상적 리얼리즘 문학의 대가라는 보르헤스의 이름은 많이 들어 보았었다.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썼기에 '20세기의 도서관' '사상의 디자이너'로 불리며 미셸 푸코,루이 알튀세, 자크 데리다, 움베르토 에코 등 20세기 서구 지성사의 핵심적 인물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그의 단편 소설집인 《모래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차츰 읽어나가던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의 작품들은 두서가 없고 황당해서 한마디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래의 책》에 실려있는 여러 단편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도 비교적 쉬웠던 〈모래의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혼자 살고 있던 나는 어느 날 이방인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는 타르 사막의 변경에서 구입했다는 성스런 서적을 사라고 한다. 그 책은 한번 본 페이지는 다시 볼 수 없으며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를 찾을 수 없는 무한한 페이지의 이상한 서적이다. 이방인은 이 책을 팔았던 사람으로부터 ‘모래는 시작도 끝도 없으므로, 이 책은 모래의 책으로 불린다는 것을 들었다’고 말한다. 모래의 책을 구입한 나는 그것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다가 결국 그것이 악몽의 대상이며 현실을 욕되게 하고 부패시키는 음흉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국립도서관 책장 선반 중에 슬며시 묻어버린다. 그리고 다시는 그 책을 찾지 않는다.내가 처음 이 작품을 읽을 때에는 어느 정도의 기대치가 있었다. 그것은 비단 이 작품을 읽을 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을 읽던 간에 우리는 어떤 기대를 하고 읽게 된다. 특히 보르헤스와 같이 문학적으로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작가의 작품인 경우에는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은 그런 나의 기대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다. 실망스러웠다. 나의 기대란 ‘훌륭한 문학 작품이란 작가의 가치있는 체험을 현실에 있을법한 일로 형상화하여 미적으로 나타낸 언어구조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문학에 대한 나의 기대가 지극히 편파적인게 아니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현실의 문제나 인간의 고민을 전형적 상황과 전형적 인물로 드러내면서 반성이나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주의 문학에 익숙해져서 그것만이 최고의 문학이라는 고정관념이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일반 사람들에게 페이지가 무한한 책이 있다고 하면 실없는 소리 한다며 상대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르헤스가 이야기 하면 진짜 국립 도서관 어딘가에 그러한 책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이 묘한 설득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일반 SF 소설이나 환상 소설이 처음부터 환상임을 전제하고 이야기를 펼치는 것과 달리, 보르헤스는 자신의 삶과 같은 구체적인 현실 사이 사이에 환상을 끼워 넣는다. 에서 페이지가 무한한 책을 제외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루터의 성경, 멕시코 가에 있는 국립도서관등은 현실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현실 사이에 끼여있는 환상까지도 현실과 같은 것으로 믿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을 읽고 나면 다른 소설들과 달리 어떤 줄거리가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한 구절이나 장면이 떠오른다.나는 불을 생각했다. 하지만 무한한 책의 화염은 책과 동일하게 무한하고, 따라서 이 지구를 연 기로 질식시킬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몸을 떨며 두려워했다.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무한한 책을 태우면 그 화염도 무한할 것이라는 생각은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가진다. 이와 같이 보통 사람보다 한 차원 높은 그의 상상력은 참 재미있다. 그래서 강렬한 인상을 준다.그렇다면 보르헤스는 모래의 책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려 했을까? 모래의 책은 참된 진리를 비유하는 것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물음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는 복잡해지고 답은 알 수 없다. 주인공이 모래의 책의 무한한 페이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였지만 결국은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인생의 참된 진리에 대한 답은 논리적인 사유를 통해서 얻을 수 없다. 논리적인 사고에 얽매일수록 진리를 보는 눈은 가리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도서관에 묻어버린 것처럼 차라리 참된 진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보르헤스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인생의 참된 진리에 대한 해답은 알 수 없으니 생각하지 말자’가 아니다. 보르헤스는 분명 어떠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알 수 있었다.
{고려 속요의 주요 작품1. 가시리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다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다위 증즐가 大平盛代날러는 엇디 살라 힝고빛리고 가시리잇고 나다위 증즐가 大平盛代잡싶와 두어리마다다선힝면 아니 올셰라위 증즐가 大平盛代셜온 님 보내잎노니 나다가시다 딪 도셔 오쇼셔 나다위 증즐가 大平盛代[樂章歌詞. 歌詞 上][時用鄕樂譜(歸乎曲 俗稱 가시리]가시겠습니까, 가시겠습니까,(나를) 버리고 가시겠습니까?→ 원망적 애소(起)나더러는 어찌 살라하고버리고 가시겠습니까?→ 애소의 고조 (承)붙잡아 두고 싶지만서운하게 생각하시면 아니 오실까 두려워→ 절제와 체념 (轉)서러운 임 보내옵나니가시는 것처럼 곧 돌아오십시오.→ 기도자적 애소 (結)이 노래는 에는 귀호곡(歸乎曲)'이라는 제목으로 한 연(聯)만이 실려 있다.전 4연으로 각 연은 2구씩이며 연 사이에는 여음(餘音)이 삽입되어 있고, 연 구분이 뚜렷하여 기·승·전·결의 간결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내용은 남녀간 이별의 정한(情恨)을 노래한 것으로, 애절한 정서와 순박한 사랑을 부드러운 율조에 실어 진솔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이 이별의 정한은 민요 '아리랑'이나 소월의 '진달래꽃'에 접맥되어 있으며, 이렇게 볼 때, 시적 정서와 내용 면에서 이 같은 전통적 정조가 우리의 문학사 속에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또, 악곡으로 연주되었던 관계로 음악적 여운을 주는 후렴구가 첨가되어 있음도 주목된다.2. 정과정 (鄭瓜亭)내 님믈 그리사힝와 우디나니山(산) 졉동새 난 이슷힝요이다.아니시며 거츠르신 딪 아으殘月曉星(잔월 효성)이 아링시리이다.넉시라도 님은 �愎� 녀져라 아으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過(과)도 허믈도 千萬(천만) 업소이다.밑힛마리신뎌싶읏븐뎌 아으니미 나링 힝마 니짜시니잇가.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樂學軌範 卷5. 時用鄕樂呈才圖儀. 鶴蓮花臺處容舞合設]내가 임을 그리워하려 울고 지니더니두견새와 나는 비슷합니다.(제가 역모에 가담했단 말이) 옳지 않으며 거짓인 줄을 잔월 효성이 알고 있을 겁니다.→ 자연물에 빗댄 자와 후렴구를 빼고 의미 단락으로 나눌 때는 3개의 단락으로 구분된다.에는 첫 구절과 후렴구가, 소악부에는 2연이 칠언절구의 한역시로 전해오고 있다. 악지에 '서경'이라는 명칭이 있으나 그 해설문을 보면 이 노래와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성종이 고려시대 노래를 정리할 때 이 노래를 남녀상열지사의 대표적인 것으로 지적한 것을 보면 당시의 관념으로는 용인될 수 없는 음사로 간주된 것이 분명하나 현대적 안목으로 보면 남녀간의 농밀한 애정이 문학적으로 잘 표현된 작품이라 할 만하다.의미 단락상 첫 번째와 세 번째 단락은 화자가 여인이고 두 번째 단락은 여인을 달래는 남자 화자로 되어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정설은 아니다.(려증동)내용상의 두 번째 단락은 「정석가」의 끝 연과 같은데, 이것은 두 작품간의 영향관계로 보기보다는, 그러한 내용이 당시의 유형가사(類型歌詞)로 존재하고 있으면서 두 작품 모두에 흡수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김택주, 별곡의 구조, 「고려시대의 언어와 문학」, 1975).이 노래에서는 이별의 배경으로 '강'을 설정하고 있는데, 대동강을 이별의 강이라고 본다면 서경은 이별이 없는 사랑의 세계라는 의식을 담고 있다. 또한, 같은 이별의 정한을 담고 있으면서도 「가시리」의 여성 화자가 인고와 순종의 미덕으로 미래를 기약하며 자기 희생과 감정의 절제를 통해 기다리는 여인상을 보여주었다면, 이 노래의 서정적 자아는 이별에 임하여 현실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함께 할 행복과 애정을 강조하는 활달한 여인상을 보여줌으로써 좋은 대조를 이룬다.4.만전춘(滿殿春)어름 우희 댓닙 자리 보와님과 나와 어러주글만뎡어름 우희 댓님 자리 보와님과 나와 어러주글만뎡情둔 오다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경경(耿耿) 고침상(孤枕上)에 ]어느 짜미 오리오서창(西窓)을 여러힝니도화(桃花)l 발(發)힝두다도힝다 시름업서소춘풍(笑春風)힝다다 소춘풍힝다다넉시라도 님을 �便�녀닛경(景) 너기더니넉시라도 님을 �便�녀닛경(景) 너기더니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뉘러시니잇가올하 올하아련래는 현전하는 유일의 백제가요이자,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최고의 노래이다. 고려て조선조를 통하여 삼국 속악의 하나로 오랫동안 궁중에서 무고와 함께 연주되었으며, 특히 조선조에 들어서는 섣달 그믐날 궁중 나례 뒤에 처용무, 봉황음, 삼진작, 북전과 함께 연주되었다.이 노래의 해석에는 구구한 이설이 있으나, 대체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순박한 마음이 달을 빌어 표현된 것으로 생각된다. 어둠을 밝게 비추는 달, 그 달에 의탁된 아낙네의 심정은 행상 나간 남편의 야행 침해에 대한 염려를 '즌 데를 드데올세라'하여 진흙물에 더럽혀짐에 비유하여 우의적으로 표현함은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달의 광명은 남편이 무사하기만을 비는 간곡한 여인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나아가 달은 그들의 인생 행로의 어둠을 물리치는 광명의 상징일 수도 있다.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순박한 마음이 달에 의탁되어 나타난 이 노래는 아내의 지순한 사랑이 잘 드러난 노래이다. 안녕의 수호자격인 '달'은 우리의 소원 성취를 기원하던 전통적인 달인데, 이 노래에서는 아내의 애정이 서려 있는 함축성이 내포된 달이다. 이러한 달이기에 남편의 귀가길과 아내의 마중길, 나아가 그들의 인생행로의 어둠을 물리치는 광명의 상징이기도 하다.제 1연에서의 걱정은 제2연에 와서 '즌 데를 드데욜세라'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되었고, 3연에서의 '지고 가는 행랑을 어디에든지 놓고 위험을 피하십시오 내 임이 가는 곳에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라는 표현은 서정적 자아의 간절한 기원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이러한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는 평민의 삶에서 벌어지는 소박한 감정과 애환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6. 쌍화점 (雙花店)雙花店에 雙花 사라 가고신딪回回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이 말싶미 이 店밧힝 나명들명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긔 잔 딪까티 덥거츠니 업다三藏寺애 브를 혀라 가間地獄)에 떨어져바로 죽어갈 내 몸이,때때로 벼락이 쳐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바로 죽어갈 내 몸이,임을 두고 다른 임과 걷겠습니까?이이 할까 저리 할까이리 할까 저리 할까게 어떤 것이 우리의 기약인가요.아소, 임이시여, 임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기약뿐입니다.작자와 연대가 미상인 고려가요 중의 하나로 에 실려 있는데, 별다른 설명을 발견할 수 없기에 상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으나, 작품의 가치는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가 된다. 작품의 형식이나 내용, 운율적 정조의 흐름으로 보아 고려 속요에 가깝게 추정되는 작품일 뿐이다.이 노래는 임에 대한 환상과 정욕의 번민에 떠는 여심을 노래하였다고 하여 등과 함께 남녀상열지사에 해당한다고 일컬어왔다. 그러나 이 노래에서 시적 화자는 지금을 함께 하고 있지 않은 임을 그리워하되, 현실적 삶의 고통과 고뇌를 상징적으로 노래하면서, 그 삶의 고통과 임에 대한 그리움을 불교적 경지로까지 심화시켜 삶의 고통을 초월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남녀상열지사의 작품보다 수준이 다소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8. 사모곡(思母曲)호밑도 다히언마링다낟까티 들 리도 업스니이다.아바님도 어이어신마링다위 덩더둥셩어마님까티 괴시리 업세라.아소 님하어마님까티 괴시리 업세라.[樂章歌詞. 歌詞 上] [時用鄕樂譜 (俗稱 엇노리)]호미도 날이지마는낫같이 잘 들리도 없습니다.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위 덩더둥셩어머님같이 아껴 주실 이 없어라.아! 님이시여 어머님같이 아껴주실 이 없어라.이 작품은 어머니의 절대적 사랑의 가치와 의미를 칭송(稱頌)한 고려 가요이다. 신라 때부터 불리어진 노래가 아닌가 생각된다. 에는 속칭 '엇노리'라 하여 에 실린 것과는 표기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여기서 부모의 사랑을 비교하되 아버지의 사랑은 '호미'에, 어머니의 사랑은 '낫'에 비유한 것은 매우 재치 있고 신선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호미와 낫을 비교하여, 같은 연장이지만 그 예리도(銳利度)에서 서로 다름을 나타내었는데, 곧 아버지의 사랑을 '호미'에, 어현실적으로 소외된 지식인이 고뇌를 잊기 위하여 자연을 찾고 또 술에 의지한다는 내용으로 보는 관점인데, 제8연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둘째, 실연한 여인의 고독을 주된 내용으로 보는 견해로서, 제4연에서 보는 것처럼 독수공방의 외로운 처지에 놓인 여인이 그 아품을 잊기 위하여 자연을 찾는 노래로 보는 입장이다.셋째, 유랑민(민중)의 처지를 노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로서 고려 후기의 거듭된 내우외환으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잃어 버린 유랑민의 서글픈 처지를 노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인데, 제3연이 주된 근거이다.10.정석가 (鄭石歌)딩아 돌하 當今(당금)에 계샹힝다.딩아 돌하 當今(당금)에 계샹힝다.先王聖代(선왕성대)예 노니잎와지힝다.삭삭기 셰몰애 별헤 나다삭삭기 셰몰애 별헤 나다구은 밤 닷 되를 심고힝다.그 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그 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有德(유덕)힝신 님믈 여힝잎와지힝다.玉으로 蓮(연)가고즐 사교힝다.玉으로 蓮(연)가고즐 사교힝다.바희 우희 接主(접주)하요힝다.그 고지 三同(삼동)이 퓌거시아그 고지 三同(삼동)이 퓌거시아有德(유덕)힝신 님믈 여힝잎와지힝다.므쇠로 텼릭을 밑아 나난므쇠로 텼릭을 밑아 나난鐵絲(철사)로 주롬 바고힝다.그 오시 다 헐어시아그 오시 다 헐어시아有德(유덕)힝신 님믈 여힝잎와지힝다.므쇠로 한쇼를 디여다가므쇠로 한쇼를 디여다가鐵樹山(철수산)애 노호힝다.그 쇼ㅣ 鐵草(철초)를 머거아그 쇼ㅣ 鐵草(철초)를 머거아有德(유덕)힝신 님믈 여힝잎와지힝다.구스리 바회예 디신딪구스리 바회예 디신딪긴힛딪 그츠리잇가즈믄 힝링 외오곰 녀신딪즈믄 힝링 외오곰 녀신딪信(신)잇딪 그츠리잇가.[樂章歌詞. 歌詞 上]징이여, 돌이여. (임금님이) 지금(우리 앞에) 계시옵니다.징이여, 돌이여 지금에 계시옵니다.태평성태에 노닐고 싶습니다.바삭바삭한 가는 모래 벼랑에바삭바삭한 가는 모래 벼랑에구운 밤 닷 되를 심습니다.그 밤의 움이 돋아 싹이 나야,그 밤이 움이 돋아 싹이 나야만덕(德)이 있는 임과 이별하고 싶습니다.옥으로 연꽃을 새깁니다.옥으로 연꽃을 새한다.
몽유록의 주요작품원생몽유록대관재몽유록사수몽유록금화사몽유록강도몽유록피생명몽록달천몽유록운영전「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줄거리주인공 원자허(元子虛)가 강개한 선비로 야(野)에 묻혀 살아가던 어느날 밤, 꿈에서 죽은 사람들이 사는 영계로 우연히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복건자(幅巾者, 南孝溫)의 마중을 받아 왕(단종)과 다섯 신하가 있는 정자로 가서 이들과 어울려 고금의 흥망사를 의론한다.마음이 격하여 있던 복건자는 요(堯)·순(舜)·탕(湯)·무(武)의 네 성군을 적시(賊視)하는 발언을 한다. 이들은 선양(禪讓)을 빙자해서 찬탈의 선례를 역사에 남겼다는 것이다. 왕은 이에 이를 빙자하는 자가 나쁠 뿐이지, 결코 성군을 탓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일동은 술을 마시며 지난 일들을 시로 읊어 회한을 토로한다.왕의 노래를 시작으로 신하들이 차례로 음영하고 마지막으로 자허는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을 흘리며 시 한수를 읊으니 일동이 듣고 비감에 젖게 된다. 이 때 씩씩한 장부(兪應孚에 해당)가 자리로 뛰어들어와 왕에게 인사하고 썩은 선비들과는 대사를 이룰 수가 없다며 칼을 뽑아 춤추며 큰 소리로 노래한다.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며 비바람이 치고 우뢰가 한 번 울리자 자허는 꿈에서 깨어난다는 이야기이다.* 작품 해설조선 중기에 임제 ( 林悌 )가 지은 한문소설. 필사본. 일명 원자허전(元子虛傳) 이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임제의 〈화사花史〉 와 합철된 단권 필사본 이외에 ≪조야첨재(朝野僉載)≫권8에 수록된 본문, 〈육신전(六臣傳 )〉에 수록된 국역본 등이 현존하는 필사본이다.그 밖에 인간본(印刊本)으로는 ≪장릉지(莊陵誌)≫, 남효온(南孝溫)의 ≪남추강집(南秋江集)≫, 원호(元昊)의 ≪관란유고(觀瀾遺稿)≫, 임제(林悌)의 ≪백호문집(白湖文集)≫등에 수록된 것들이 전한다.작자에 대해서는 김시습(金時習)·원호를 주장하는 이설이 있었다. 황여일(黃汝一)의 ≪해월문집(海月文集)≫의 기록에 의하여 임제임이 확정되었다. 작품의 제작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작품 말미의 연하고 자신의 시론(詩論)을 인정받는다. 그는 당률(唐律)에 혹탐(酷耽;아주 탐닉함)하는 풍조를 반대하는 김시습(金時習 )의 난을 일반의 소영비법(嘯半煉法;시가 따위를 읊는 비법)으로 격퇴하여 공을 세운다.천자가 당천자(唐天子) 두보(杜甫)·이백(李白)과 노닐고 아국(我國)의 인재가 부족함을 한탄한다. 주인공은 이 나라에서 부귀와 공명을 누리다가 천자로부터 대관선생(大觀先生) 의 사호(賜號)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다.그런데 이색(李穡)이 주인공의 장부(臟腑)를 묵즙으로 쓰기 위하여 금도(金刀)로 찌른다. 그 아픔에 놀라 꿈에서 깨어난다. 꿈을 깨고 보니 현실은 자신의 배가 불러 북과 같았다. 그리고 잔등(殘燈)이 가물거리는 가운데 병든 아내가 누워서 신음하고 있었다.* 작품 해설조선 성종 때에 심의(沈義)가 지은 한문소설. 안정복편(安鼎福編) ≪잡동산이(雜同散異)≫에 수록되어 있는 유일본 한문 몽유록이다. 총 24면, 매면 13행, 매행 20자 정도이다. 일명‘대관재기몽(大觀齋記夢)’또는‘몽기(夢記)’라고도 한다.〈대관재몽유록〉은 문인의 희필적 성격(戱筆的性格)이 강하다. 그렇지만 정치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이상적인 문인왕국(文人王國)을 그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향락적·반동적·이념옹호적인 유형적 특질을 가지는 ‘이념제시형(理念提示型)’몽유록의 최초작품으로 분류된다.〈대관재몽유록〉에서 그 특색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첫째, 작품의 시점은 꿈속에서나 꿈을 깬 뒤에도 일인칭 자기 체험고백의 화자(話者)로 일관되어 있다. 몽유자는 서술자이며 작자 심의 자신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현실세계와 몽중세계가 주인공에 의하여 밀착되어 있다.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사건은 주인공의 행위와 관련되어 연결되고 작품에서 의미는 집약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서술 유형상 ‘주인공형’ 몽유록에 속할 수 있다.둘째, 〈대관재몽유록〉의 꿈을 꾸고 또 꿈을 깨는 과정은 다른 작품에 비하여 아주 공교하게 설정되어 있다. 용의주도하게 설정된 입몽과 각몽 과정 그리고 孔子)와 같은 대현 (大賢)이 뜻을 얻지 못하고 천하를 방황한 것을 원망하고 한탄하였다. 그러던 중에 청의동자(靑衣童子)의 안내를 받아 승천하였다. 거기서 유생은 옥황(玉皇)에게 질책을 받고 공자가 문성왕으로 있는 사수(泗水)의 소국(素國)으로 인도되어 갔다.소국에는 공자의 제자를 비롯한 중국 역대의 유학자들과 우리나라 역대의 유학자 등, 11명이 제각기 관직을 맡아 문성왕을 보필하고 있다. 전후 4차의 양(楊)·묵(墨)·노(老)·불(佛)의 침략이 있었으나 맹가(孟軻)를 비롯한 제장이 그때마다 대전(對戰)하여 승전한다.문성왕은 제신들과 더불어 유도(儒道)를 강론하고 자공(子貢)으로 하여금 역대의 인물을 논평하게 한다. 끝으로, 자공은 문성왕 치세의 소국을 요순(堯舜)과 비견하였고, 한유(韓愈)는 당우 삼대(唐虞三代; 요순시대와 하,은,주 시대를 이르는 말)에도 없었던 태평성대라 칭송하였다.그리고 이 사실을 기록하여 인간에 전해야 한다고 하였다. 유생에게 적은 것을 주어 돌아가게 하였다. 유생이 그것을 받아 가지고 섬돌을 내려오다가 실족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작품 해설〈사수몽유록(泗水夢遊錄)〉은 1942년 ≪인문평론(人文評論)≫(제2권 제4호)에 이명선(李明善)이 소개한 작자 미상의 필사본이 있고, 장서각(藏書閣) 도서의 〈문성궁몽유록 文成宮夢遊錄〉이 이와 일치한다. 〈사수몽유록〉은 유교주의적 왕도정치를 형상화한 작품이다.「금화사몽유록」* 줄거리청나라 강희(康熙) 말년에 산동(山東)에 사는 성허(成虛)가 금화사에서 얼핏 졸다가 중국 역대의 제왕들이 일당(큰 집)에 모여 연회하는 자리에 참여한다.한고조(漢高祖)를 비롯한 한족(漢族)의 창업주들이 다 제왕연(帝王宴)에 참석하였다. 그러나 원나라 태조를 초청하지 않았다. 자신을 잔치에 초청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난 원나라 태조는 이들에게 도전한다. 러자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가 그를 격퇴한다. 날이 새고 닭이 울자 연회가 파했다. 성생은 꿈에서 깨어난다.* 작품 해설〈금화사몽유록(金華寺夢遊錄)〉은 한문 필조라는 점에서 이 작품도 다른 몽유록과 같이 허구적 형식을 빌려서 서사적 교술 장르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또한, 몽유록은 주로 관료사회에서 소외된 사대부들의 사회적 갈등과 역사과정에 대한 관심의 고조에서 유발된 독특한 서사유형이라고 규정하려는 경향도 있다. 목격담의 형식은 감추어진 사태의 진상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자의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식할 수 있는 서사적 방안이며, 무고하게 희생된 원혼의 등장은 사회적 부조리와 역사과정의 모순을 부각시킬 수 있는 극화의 한 방안이다. 한편, 격렬한 규탄과 처절한 애소(哀訴)로 시종일관하고 있는 이 작품은 고발·비극·주정적인 특징으로 인하여 '원생몽유록', '달천몽유록', '피생명몽록' 등과 함께 현실비판형 몽유록에 넣고 있다. 또한 다른 작품과는 달리 희생된 원귀들의 비탄을 위무하고 내적 화해에 기여하는 몽유자의 극중 개입이 배제되어 있는 점에서 방관자형 몽유록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유형에 속하는 몽유록의 특징은 몽유자가 몽중세계가 단절되어 있는 것인데, 이 작품에서 몽유자인 청허선사는 완전히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이 작품의 내용상 특질로 지목될 수 있는 것은 부인들의 대화 가운데서 추출되는 불교적 내세사상 및 도교적 내세관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일본으로 '피생모유록'과 합철되어 있으며 고전소설의 그릇된 역사적 사실을 신랄하게 꼬집어 비판하고 기발하게 고발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피생명몽록(皮生冥夢錄) 」* 줄거리여강(驪江 : 경기도 여주) 땅의 피달(皮達)은 성품이 강개(慷慨)한 인물로, 천하를 두루 유람하기 위해 길을 떠나 원적산(圓寂山) 아래에 이른다. 어둠이 깔린 길에 그대로 드러난 썩은 뼈를 대하고 탄식하는 내용의 시를 읊는다.한 야승(野僧)을 만나 전쟁터가 아닌데도 해골이 이리 많이 드러나 있는 까닭을 묻자, 야승은 임진왜란 당시 서울의 많은 백성들이 피난길에 죽임을 당한 사실을 이야기한다.또한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원외(員外) 벼슬을 하는 이 작품들은 이민족(異民族)의 침략에 의한 민족 수난의 문제와, 민족 수난을 야기시킨 반동적 봉건관료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바, 〈피생명몽록〉에도 그러한 면이 뚜렷이 나타난다.부친에 의해 마침내 삼족(三族)이 멸해지고 부관참시(剖棺斬屍)의 형을 면키 어려울 만큼 패덕한 인물로 거론되는 이극신은 당대의 실존 인물로, 부패하고 부도덕한 봉건관료의 전형이었다. 금이(金伊)와 목환(木歡)을 장살하는 인물 염흥방 ( 廉興邦 ) 또한 고려 공민왕 때의 실존 인물로서 탐학한 벼슬아치였다.〈피생명몽록〉은 특히 중세적 신분 모순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김검손이 밝힌 이야기 속에는, 전생으로부터 차생에까지 이어지면서 벗겨지지 않는 강고한 신분질서의 질곡(桎梏)이 빚어내는 비극과 그것의 근원적 부당성이 여실히 부각되어 있다.피달은 후반부에 장자의 논리를 이끌어 와 시신이 제대로 거두어졌건 장사지냄이 후하건 박하건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잠깐 깃들임의 이치를 알고 인간 세상의 인연을 초월하여 우주를 바라볼 것을 일깨운다. 이는 현실초극(現實超克)의 심오한 사상성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한편 작품에서 제기된 어느 문제도 당대 현실의 구조 속에서는 변혁되기 어려운 것이라는 작자의 절망이 반영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달천몽유록(達川夢遊錄) 」 - 윤계선* 줄거리주인공 파담자(波潭子)는 호서지방을 암행하라는 임금의 봉서 ( 封書 )를 받고 여러 읍을 거쳐 충주의 달천(達川)에 이르게 된다. 이 곳에서 파담자는 임진왜란이 남긴 처참한 광경을 보고 시 3수를 지어 비분강개한 마음을 풀다가 잠이 든다.꿈속에서 큰 나비의 안내를 받아 임진왜란 때 희생된 여러 영령들이 넋두리하며 노래부르는 광경을 엿본다. 파담자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과 합석하니,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 가운데 세상에 전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천하의 요새인 죽령 ( 竹嶺 )을 끝내 지키지 못한 신립 ( 申砬 )에 대한 원망과 이에 대한 신립의 변명과 성패에는 이미 운수가 정해져 있었으니 시비가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