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명*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7
검색어 입력폼
  • 영화 ‘매트릭스’와 ‘생활의 발견’의 철학적 접목
    - 영화 ‘매트릭스’와 ‘생활의 발견’의 철학적 접목 -Verse 1. 매트릭스(The Matrix, F: La Matrice)물론 이미 시중에서 이야기되었던, 인간 인식의 환각의 문제, 인간의 인식세계의 실재성과 가상성에 대한 문제, 인공적 기계와 관련된 사이보그 인간 또는 디지털(그래픽) 인간, 생물적 변형으로서 질료적(l'ectoplasme) 인간(생물) 또는 DNA를 확장한 인간(또 다른 인간종) 등처럼 인식과 인식주체의 변형에 대한 것이 중요한 것일 수 있고, 또 다른 한편, 제국주의적 권력이 미세한 인식까지도 지배할 때, 그에 순응하는 인간의 삶과 저항하는 인간은 인간의 행복에 대해 어떤 해답을 줄 것인가라는 도덕적 인간문제에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주는 의미가 ‘기존의 헐리우드 영화처럼 거짓이나 비밀로는 이 세상을 지배하지는 못하며, 결국에는 진실과 진리는 드러나게 마련이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구태의연한 의미 전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흥미를 한껏 끌어올린 것은 인간의 구원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주제는 철학적으로 오랫동안 전개해 왔으나, 아직도 문제 거리로 남아 있는 일자(The One, l'Un)에 대한 것이다. 이 일자를 인격화하여 인격(La Personalite)으로 또는 성령(L'Espirt)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유태-크리스트 전통(서방 전통)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 일자와 다자의 문제 또는 인격과 타자의 문제에서 다자와 타자가 배제된 것은 이 영화가 인간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추구 대상 즉 목적 대상에 대한 문제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물론 영화는 재미로 본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영화의 주제가 고진감래, 권선징악, 사랑의 승리, 부활, 내세존속, 행복으로 마침(해피 앤딩) 등을 첨가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 이 영화는 승리자의 고뇌와 고통의 훈련, 이미 규정된 또는 이미 보아온 대상에 대한 회의를 한 후에 진실에 접근, 인간의 심성 밑바탕구원자는 아니다. 말하자면, 그는 매트릭스 세상의 새로운 슈퍼스타이다. 여전히 인간의 환상을 구현하는 인간상으로 만들어진 상품성의 인물이 되었다. 마치 여성으로 성 전환한 하리수가 새로 만들어진 여성으로 여성의 여성상이 되려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상품성을 조장하는 것에 기여하는 것처럼, 네오는 인공지능의 시뮬레이션 세계, 즉 사이버세계에서 하이퍼 세상을 만드는 한 개척자로 보인다. 모든 사람이 전부 다 정신 나간 착각 속에서, 한사람이 현실의 착각을 착각이라고 알고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한사람 정도가 있다고 말함으로서 그 사람이 관객의 미래인 것으로 더 큰 착각을 만들고 있다. 나는 예외일 수 있다는 착각을 지니고 살아갈 수도 있다고 믿게 한다. 문제는 매트릭스의 체계를 고장 내고 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거기에 답이 없는 이 영화는 슈퍼맨 영화와 람보 영화를 겹친 전자 오락영화였다.단지 기억, 무의식, 환각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무의식을 진실로 다룬 영화는 아닐 것이다. 이 영화가 무의식의 측면을 다루고 있기보다, 환각의 측면을 다루면서 미래의 인간상에 대해 지레 겁먹게 만듦으로서 차라리 공포에 대한 안도감을 주려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영화와 같은 영화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것은 그 많은 ‘전설 따라 삼천리’가 인간 본성의 발현에 관심을 맞추기보다, 기존 군사 정치적 문화 제도를 고착시키면서 또한 제국주의 지배 하에 인간상으로서 굴종과 노예의식으로 침잠하도록 만들어 졌던 것과 궤도를 같이한다. 사실 죽음과 지옥 등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많이 왜곡된 ‘전설 따라 삼천리’는 우리나라 정서를, 불교의 내용에 유가적으로 윤색하듯이, 종교적으로 유일 신앙적 또는 선에 대한 선전제 의식으로 고착화시킴으로서 무언가 하나(The One)를 요구해야만 하는 것으로 정착시켰다. 그 하나가 한번도 우리의 의사대로 또는 우리의 합의대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중국의 천자(天子)처럼 또 하나의 제국주의 천자(하나님의 아들; 게임기의 주인공이 죽었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네오는 다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해커출신으로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네오가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요원 스미스의 총을 맞았으나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면서, 프로그램을 다른 방식으로 곧바로 전환하는 능력만 있으면 살아나게 된다. 결국 잉여자기이미지에 대한 확신은 3인 매트릭스 요원들의 자체들이 디지털로 된 이미지들이고, 세상도 디지털로 이루어진 것을 알다. 게다가 영화상으로 그는 프로그램에 들어갈 수 있는 해커로서 스미스라는 (프로그램)몸 속에까지 들어간다. 그리고 스미스를 단순히 이미지로서 죽음이 아니라, 이미지 전체를 파열시킨다. 그런데 매트릭스 안에서 네오 또한 업그레이드(고차적) 잉여자기이미지이며, 프로그램상의 이미지이다. 차원이 낮은 프로그램은 차원이 높은 프로그램에서 작동이 안 되지만, 높은 프로그램 속에서 이미 포화되어 변형된다.이렇게 보면, 실재의 인간, 미래의 개념적 인간, 프로그램의 인간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실재의 인간은 우리의 신체와 별반 다를 바 없고, 현시점에서 우리임을 표현한다. 그러나 개념적 인간들, 네오든 트리티니든 모피어스든, 즉 머리에 광케이블을 연결한 인간들은 우리의 인격 형성의 양상들을 표현해준다면, 매트릭스 속에서 요원들의 지배 방식에 저항하며 싸우는 이미지로서 저항군들이나 그곳에서 일상적 생활을 하는 평범한 이미지들은 인물의 한 단면으로서 공간적 표현물(기호)일 뿐이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세 요(소)인의 관계를 철학적 맥락에서 보면, 실재, 개념, 표현의 구조를 상징화한 것이다. 이를 구조주의 방식으로 해명해 보면, 실재는 개념이나 표현과 무관하다는 것이 성립한다. 이 영화에서 트리니티나 네오가 매트릭스 속에서 활동을 할 때, (느부갓네살에서 구형인간)탱크가 자료를 입력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실재와 인공지능이 만든 하이퍼 세계(매트릭스)에서 인물과 무관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개념으로서 느브갓네살에 누워있는 네오와 표현으로서 - 20세기의 인간상의 한 단면일 수 있다.내가 이 영화를 과대평가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마음은 없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많은 문제 거리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지정학적 의미에서 제국주의적 방식의 침투의 한 일면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실재를 배제한 개념과 표현사이를 보면서, 현재로 젊은이들이 사이버세계(컴퓨터 안의 세계)에 몰입하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사이버세계는 통속적 의미로 자신의 욕망의 일부를 투영하는 세계이다. 이 세계가 자신의 세계의 전부로 비친다면, 또 하나의 매트릭스 세계일뿐이다. 이런 가능성의 세계가 어디엔가 있을 것으로 여기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의 전부를 삶의 일부에게 내 맡긴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실재에서 구체적으로 모색하며 합의를 도출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인간 스스로 만든 착각과 환각에 대한 인간 자신의 경계는 언제나 자기반성의 노력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 세상이 네오(그)의 세계가 아니라, 느부갓네살의 세계라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오라클의 가정과 같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해야할까?느부갓네살의 세계, 즉, 쫓기고, 무미건조하고, 춥고, 어쩌면, 맛없는 음식을 시장을 반찬으로 추억의 상상의 덧보태어 먹는 썰렁한 세계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지각 하려하는가? 아니면 애써 외면하면서 자신만의 세상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며, 될 듯 말 듯, 닿으려하면 멀어져만 가는 지평 같은 기표(표현)를 바라면서 살아가는가? 그것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여기서 참고로 이 영화에 관하여, 대진재학교의 철학과 교수 김성환님과 철학아카데미 원장 이정우님의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전자는 인간의 인식에서 환각(hallucination)의 문제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회의 변형과 자본의 논리에 대한 반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후자는 이 영화 환각체험은 몸과 마음, 생각과 해동의 통일성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자의식의 눈으로 보면 방해꾼이거나 배신자이다.다른 한편, 사회 구조론에 따르면, 기술은 사회구조와 사회세력 관계에 맞추어 발전한다. 기술의 사용은 중립일 수 없으며 사용하는 사람과 사회 특히 자본의 논리에 따른다. 이 영화에서 인공지능도 사람과 사회의 변화의 산물이다. 21세기 초에 완성된 것으로 설정된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은 20세기의 에너지 위기와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정보 기술을 육성한 자본의 논리에서 비롯했다.맥루한에 따르면 기계는 사람의 확장이다. 안경은 눈의 확장이고, 자동차는 다리의 확장이며, 컴퓨터는 뇌의 확장이다. 기술은 끝없이 다양해지는 사람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을 미끼로 사람에게 계속 새 기술을 개발하라고 요구한다. 사람 특히 두뇌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끊임없이 새 기술을 임신하는 기술의 생식기관일 뿐이다.이 영화는 기계가 ‘시스템 다운’이 될 때까지 저항군이 인공지능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네오가 경고하는데서 끝난다. 그러나 정보 사회의 현실과 미래에 비추어 보면 매트릭스와 인공지능의 시스템이 끝장날 가능성은 없다.진실과 저항이정우, 『기술과 운명-사이버 펑크에서 철학으로』, 한길사, 2001, pp. 141-182.이 글의 모두에 라고 쓰고 있다.매트릭스: 모든 존재들이 어떤 거대한 구조의 부속품일 뿐인 세계, 그럼에도 그 세계 속의 각자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는 그런 세계, 누구도 저항하지 않는 세계, 오직 그 세계 구축자 만이 자유로운 세계, 그런 세계가 매트릭스의 세계이다. 「매트릭스」는 그런 세계 안에서 살아가다가 진실을 깨닫고 거짓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146). 인간은 참과 거짓을 구분한다. 그런데 「매트릭스」는 진리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不知周之夢爲胡蝶 與胡蝶之夢爲周與” [“장자가 꿈속에 나비가 되었는지 또는 나비가 꿈속에 장자가 되었는지를 모르겠다.”]견디기 힘든 현실이 자신을 둘러쌀 때 사람들은 말한다. “이건 꿈).
    인문/어학| 2007.12.01| 13페이지| 2,500원| 조회(271)
    미리보기
  • 성정체성의 다양함에 관련한 사랑과 결혼에 관한 토로
    성정체성의 다양함에 관련한 사랑과 결혼에 관한 토로사람이란 어쩌면 인생을 사는데에 있어서 자신의 성격이나 외향적인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사랑을 얻고 결혼을 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그로인해 많이 결정되어 진다고 생각합니다.드라마 “백설공주”에서 나오는 캐릭터들 또한 그 환경에 자신을 맞추고 또 나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성격이나 외모에 대한 부단한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개개인을 판단하기도 하지만... 저는 성역할과 관련한 이론들과 함께 이 캐릭터를 분석해 보려고 합니다.마영희, ANIMA와 ANIMUS 사이에서 존재하는 캐릭터...마영희, 그녀는 우리가 일상에서 가끔씩 접하는 보이시한 매력을 소유한 여자입니다. 남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힘’, ‘활동성’등이 강한 남자가 보기에는 그렇게 여성스러운 매력은 없는 듯한... 그런데 드라마 안에서 이런 영희를 나타내는 것이 또 하나 있느니 바로 ‘안경’입니다. 영희는 투박한 검은테 안경을 쓰고 나오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안경은 마법의 도구입니다. 안경을 벗으면, 멍청해 보이는 기자가 슈퍼맨이 되고(이상, ‘Superman’) 그전까지 데이트 한 번 못해본 못생긴 여자도 미녀가 되기도 합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멋진 이성에게서 사랑 고백도 받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안경은 마법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거의 평생을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던 ‘영희’가 안경을 벗자, 성형수술 없이도 상당한 미인이 됩니다. 심지어 그녀가 몇 년을 두고 짝사랑 해온 ‘진우’마저 사랑을 고백할 정도니까요... 안경은 극중에서 영희의 캐릭터를 나타내는 중요한 도구로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안경은 외모라는 속성을 감추어 버리고 있는 매개체입니다. 안경을 벗음으로써 자신이 그토록 매달렸던 ‘진우’가 자신에게 매달리게 되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개인의 인품보다는 외향적인 면이 중요시되고 또, 드라마에서도 이런 부분을 부각시킨다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집니다.(작가의 의도는 어떤 방향인지는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저의 생각은 그렇습니다)‘영희’는 남이 아닌 자신을 향한 안경을 벗은 것입니다. 못생겼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잔뜩 웅크려있던 사람이 안경을 벗으면서 자신감을 얻고 자신의 진짜 가치를 알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도 정말 타고난 외모가 아니라면, 그 사람을 멋지게 보이게 하는 건 얼굴이나 몸매가 아니라 그가 가진 것으로부터 나오는 당당한 자기 스타일이 아닐까요. 안경을 벗음으로써 여성으로서 누구나 꿈꾸는 대우를 받으면서 영희도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가 만들어버린 굴레의 틀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럼 주지에서 말했듯이 Anima와 Animus로 ‘마영희’를 분석하겠습니다. 아니무스는 독일인 의사이며 분석심리학자인 융(JUNG)이 설명한 무의식의 한 개념으로서, 인간의 외적 인격인 페르조나(PERSONA)를 보완하는 내적 인격체를 말하는데, 남성의 무의식속에 숨어 있는 여성적 인격을 아니마(ANIMA)라 하고 여성의 무의식속에 숨어 있는 남성적 인격을 아니무스(ANIMUS)라고 합니다. 페르조나는 단지 그 사람이 외부에 보여 지는 것으로서 남성, 여성의 사회적 구별과 교육 문화 환경으로서 그 사람에게 기대되고 또 성장되어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내적 인격인 아니마나 아니무스는 애당초 페르조나와 같이 태어나지만 거의 환경적으로 억제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아니마나 아니무스는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는 것이지만 아니마의 원형, 혹은 아니무스의 원형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이성의 모습이나 성격이 제각각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극중에서 마영희에게도 Animus가 작용하고 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性을 유지한 채, 그 안에서 자신만의 Anima 혹은 Animus를 키워 나가는 것입니다. 배우자를 선택하게 될 때에도 그 사람이 가진 아니마가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합니다. 아주 강한 남성적 페르조나를 가진 남자는 보다 유약한 자신의 아니마에 걸맞게 누구에게 선가 보호받아야 할 것 같은 허약한 페르조나를 가진 여성과 결혼을 하고, 반대로 섬세한 남자는 자신의 강한 아니마와 걸맞게 좀 괄괄한 페르조나를 가진 여성과 잘 어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극중에서 진우도 그런 이유로 인해 영희에게 호감을 느끼고 매달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한진우, 그녀들이 찾는 야수의 표본야수는 미녀의 꿈의 대상입니다. 처음엔 강제이다시피 그녀를 소유하지만 차차로 그녀에게 교화되는 것이 바로 미녀가 찾는 야수 같은 남자입니다. 극중에서 한진우는 바로 그런 존재로서 여성들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여기서 이 드라마와 같은 제목의 동화 “백설공주”와, 백설공주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미녀와 야수”의 예를 들어 그를 분석해보고자 합니다.(이 드라마가 나아가려는 방향 그것은 동화 “백설공주”와 그 길을 같이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제목을 지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백설공주”와 “미녀와 야수”는 같은 동화이지만 내용은 상당히 다른 것입니다. 백설공주는 수동적이고 그에 반해 야수의 미녀는 능동적이며, 또한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왕자는 처음부터 기다려 온 이상형의 남자라고 할 수 있지만 미녀에게서 재교육을 받고서야 인간이 되는 야수는 처음부터 이상형의 남자는 되지 못합니다. 여기서 한진우는 처음에 마영희에게 왕자의 이미지로 다가가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왕자보다는 야수의 이미지를 조금씩 갖게 됩니다. 영희가 원하는 이상형. 그것도 왕자에서 야수로 변하고 있고, 다르게 생각하면 진우 자신이 야수가 되기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여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점차 백설공주보다 야수의 미녀에게 더 공감을 하게 된 것도, 가만있어도 행복이 찾아지는 백설공주의 비현실성보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행복을 얻는 미녀와 야수의 상황이 훨씬 현실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배웠던 ‘신데렐라 Complex’와 그 의미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영희, 희원) 신데렐라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또 만약 그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다시금 야수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무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백설공주”나 “미녀와 야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동화로 표현한 것으로 설명이 됩니다. 바로 일상적인 모녀간의 갈등을 극대화하여 어머니를 계모나 마귀로 형상화시키고 주인공이 박해받는 딸이 되어 집에서 도망 나가 독립하는 것이 “백설공주” 이야기로서, 많은 소녀들이 어머니에게서 야단을 맞으면 한번쯤 꿈꾸어 보는 이야기입니다. 도중에 그녀를 도와주는 난쟁이 할아버지는 부성(父性)을 상징한다고 보이는데 남성으로서의 능력이 거세되어서 성적으로는 안전한 난쟁이인 것입니다. 따라서 백설공주가 얼마간 피신하는 대상은 되지만 그녀를 마녀로부터 영원히 지켜 주는 데에는 일곱 명으로도 부족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꼭 맞는 젊은 왕자가 나서야 지만 비로소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반면에 “미녀와 야수”는 오이디푸스적 부녀간의 사랑이 주제입니다. 주인공이 아버지를 찾아 낯선 곳으로 떠나가는데, 아버지를 대리할 수 있는 강한 야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위하여,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는 대신에 미녀는 거친 야수에게 자신을 던지고 희생합니다. 결국은 그녀를 잘 이해하던 아버지 대신에 낯선 야수와 짝을 이루고 점차로 야수 같은 한 남자를 그녀 마음대로 길들이는 데 성공하여 행복을 찾는 것 입니다.진우는 스스로 왕자를 꿈꾸고 또 영희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영희가 안경을 벗어 던진 것처럼 그녀 꿈속의 사랑과 남성은 점차 변해가는 것입니다. 또, 진우도 그것에 맞추기 위해 야수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남자는 누구나 멋진 왕자를 동경하고 되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의 환경은 야수에 더 적합한 것
    인문/어학| 2007.12.01| 5페이지| 1,000원| 조회(258)
    미리보기
  • 영화 행복 Marketing 기획서
    Ⅰ. 서론시작할 땐 우리들을 한 없이 행복하게 만들다가도, 이별 앞에선 후회와 상처와 미움으로 지독하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게 사랑입니다. 영화 은 바로 이런 사랑의 양면성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은 사랑의 낭만만을 변주하는 동화 같은 로맨스가 아니라, 한번쯤 연애를 해본 성인이라면 누구나 딱 내 얘기라며 웃고 울며 공감할 수 있는, 연애의 쓴맛 단맛을 모두 버무린 진짜 연애 이야기입니다.2005년 , 2006년 을 잇는, 2007 가을 감동 멜로 . 사랑 이야기꾼 허진호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어우러진 영화 은, 2007년 또 한편의 well-made 흥행 멜로 탄생을 예감케 합니다. 이 기획서는 영화 을 "허진호 감독 멜로 영화의 시리즈 化"와 "블록버스터나 타 멜로영화와의 차별성"의 큰 두 가지 입장에서 설명할 것입니다.Ⅱ. 본론우선, 저는 영화 "행복"을 분석하여 그 강점과 기회를 부각시켜 관객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SWOT 분석을 하였습니다.o Strength1)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멜로 감독 "허진호" 감독의 영화 ( 이전부터준비한 슬픈 사랑의 프로젝트)2) 흥행배우 황정민과 임수정 주연 (살아있는 캐릭터)3) 우리나라 영화음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성우 음악감독과 리처드 용재 오닐의 만남4) 허진호 감독의 사랑을 주제로 한 멜로 영화 시리즈의 선상에 있음5) 시나리오의 구조적 흐름상 관객의 호흡과 일치o Weakness1) Scale이나 반전 등 관객들이 열광하는 Impact의 부족2) 코믹과 위트의 부족 ⇒ 전체적으로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3) 평범한 스토리 라인으로 관객들에게 구태한 멜로드라마로 인지될 가능성o Opportunity1) 이후 well-made & Issue 멜로 영화의 부재2) 계절성(가을) : 계절성 우울증(SAD) 등 계절에 민감한 여성 관객들에게 감성적소구 가능3) 블록버스터 시즌 마감o Threat1) , , 등 개봉2) , , 등 동일선상 영화들의 개봉3) 국내 영화의 침체기위에서 제시한 SWOT 분석을 토대로 상황분석을 하면,초대형 블록버스터 시즌의 마감,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사람들의 well-made 멜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는 시점에 멜로 영화계에서 손꼽히는 허진호 감독의 신작 개봉을 하였습니다. 황정민, 임수정의 스타효과가 있지만 평범한 스토리 라인의 약점과, 관객들에게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로 인지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High Concept(Wyatt, 1944)을 토대로 영화 을 살펴보면,1)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배우와 감독이 참여 : 허진호 / 황정민 & 임수정2) 스토리 라인이 명확하고 간단한 문장으로 전개 : 구태한 아이템이 오히려 장점으로부각될 가능성3) 하나의 이미지로 마케팅하고 기억되는 것 : 허진호식 멜로 영화4) 전작, 현재 상영중인 작품, 히트한 음악과 연계 : 허진호 감독의 영화들의 연장선상에 위치상황분석을 토대로 관객들에게 소구할 컨셉(Marketing Concept)을 설정하면,1) 허진호 감독 영화의 시리즈화2) 블록버스터에나 여타 최루성 멜로 영화와 차별화이 두 가지 컨셉이 도출되었습니다. 영화 의 궁극적 타켓은 20~30대 연인 및 여성관객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제일기획의 조사(2000)에 따르면, 극장객석의 50%는 제 발로 찾아온 고객(Active customer), 20%는 뜨내기 고객(Passive customer), 30%는 다른 사람을 따라서 극장에 온 구경꾼(Outsider)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저는 50%의 Active customer(오피니언 리더)를 1차 마케팅 타겟으로 설정하여, 나머지 50%의 궁극적 타겟에게 자연스럽게 전파될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하였습니다.저는 인스턴트식 사랑의 시대 속에서 되돌아보는, 사랑의 낭만만을 변주하는 동화 같은 로맨스가 아닌 진정한 사랑과 삶의 의미라는 주제의 을 viral marketing을 이용하여 1차 목표공중에게 전파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의 선상에 있다는 것을 소구하는 동시에 여타 멜로 영화와 차별점을 내세울 것입니다. 그래서 WOM(Word of mouth) 효과에 기반하여 관객들의 인지에 확고한 포지셔닝을 할 것입니다.관객들에게 소구할 Key Message로,“2007년 가을에 찾아온 허진호 감독의 4번째 사랑이야기”, “사랑의 행복, 아픔을 모두 보여주는 현실적 사랑이야기” 두 가지 메시지를 취할 것입니다. 허진호 감독 멜로 영화의 시리즈 化와 여타 멜로 영화와의 차별점을 염두에 두었습니다.위에서 도출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전술(Communication Tactics)로 네 가지 주요프로그램을 실시할 것입니다.1) 바이럴 마케팅 => 행복의 이슈화 : 영화관련 유명 블로그 및 클럽, UCC를이용하여 오피니언 리더로 하여금 궁극적 타겟에게 전파2) 영화ㆍ음악관련 Radio 및 TV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의 감성적 소구에 호소⇒ 조성우 음악감독, 리처드 용재 오닐 출현 및 OST 소개3) 영화관련 잡지 및 사이트 특집기사 (ex:허진호 감독 인터뷰) : 전작들과 의연계성 위주4) 허진호 감독 영화 시리즈 상영 이벤트 : , 와함께 을 시리즈 상영함으로써 전작에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소구하고,이슈화 함으로써 Publicity로서의 효과를 기대Ⅲ. 결론순제작비 35억이라는 초특급 멜로 영화로 멜로라는 장르의 제작비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최루성 멜로 영화의 호조와 함께 주연배우와 감독의 인지도 및 선호도만으로도 영화 의 시장 진입과 관객에게 어필하는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고 판단됩니다. 그 외에 기대되는 모든 요소(허진호식 멜로, OST 등)는 관객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과학| 2007.12.01| 3페이지| 1,000원| 조회(502)
    미리보기
  •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 나타난 ‘직업’으로 바라보는 바람직한 양성성에 대해..
    꽃보다 아름다워...남성성, 그것이 진정한 남성을 나타내는 지표인가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남성성, 즉 masculinity는 초기에 보여주었던 그 한쪽에 완벽히 치우쳐 있었던 사고가 변하게 되었습니다. “남자라면...” , “사내자식이...” 하는 지금까지 이어져왔던 일종의 관습은 이제 조금씩 깨어져 나가고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런 관습은 대체적으로 남자에게 무의식적으로 남아있습니다.‘재수’의 대사를 통해 그 부분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파출부가 뭐냐? 체면이 있지.” 재수 (-남성을 대변하는 인물)는 자신의 정신적 ? 경제적인 위치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다른 길은 돌아보지 않고, 남성성이라는 굴레에 묶여있는 인물로 생각되어 집니다. 남성의 성역할 굴레를 살펴보면 이러한 남성의 직업에 관한 굴레들이 몇 가지 나와 있습니다.첫째로「남성의 일과 직업적 성공은 남성성을 평가하는 도구이다.」라고 나타나 있습니다. 남성은 그것이 자의이건, 타의이건 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로 이어져 왔습니다. (어쩌면 이건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이야기부터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직업’이라는 객관적인, 아니 어쩌면 추상적인 단어 자체에서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잣대로 구분을 지어놓은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파출부나 미용사, 유치원 교사 같은 것들은 여성의 직업이다. 이런 논리가 지금껏 이어져온 것입니다. 이런 통념을 비판하고 있는 저도 얼마 전까지는 유아교육과에 다니는 친구를 만날 때마다 놀리고, 한심하게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와 지금 이 강의를 비롯하여 여러 ‘性’에 관한 학문을 배우면서 “양성성”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강의에서 실시했던 ‘Bem의 성역할 정체감 분류’와 ‘E. Berne의 Egogram’을 통해서였습니다. 저의 여성성이 남성성보다 약 30점이나 높게 나온 것입니다)두 번째로 「남성은 직업에서의 성취와 성공 그리고 능력을 통해 주로 자기를 정의하고 존중하며 가치롭게 여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남성의 직업은 곧 표면적인 성공과 능력을 나타내며, 어떤 여자를 만나느냐하는 원인이자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물론 모든 경우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러한 남성의 직업에 대한 굴레를 여성도 함께 만들어 나간 것은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여성들도 남성의 직업에 대한 어느 정도의 편견을 갖고 있고 또 그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결과적으로 결혼의 상대(동반자)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라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제가 아직까지도 순수하게 믿고 웃고, 눈물짓는 ‘사랑’이라는 믿음이 이미 많이 퇴색된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 기분이 씁쓸해집니다.저는 얼마 전에 “남자충동”이라는 연극을 보았습니다. 보면서 그 연극에 나타난 ‘이 사회의 전형적인 masculinity’가 얼마나 잘못된 영향을 초래하게 되는지 이번 report를 통해 꼭 한번 재조명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연극에서는 영화 ‘대부의 알파치노’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인간의 파멸과정을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충돌되는 ‘남성성’에 대해 다루고 있었습니다. 연극을 보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남자다움의 욕구를 가지게 한 것이 어쩌면 ‘가족 내에서 이루어진 오이디푸스 Complex’와 ‘가부장적 사회의 논리’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극중에서 남성성을 증오하는 인간으로 나타내어지는 역할이 한명 있는데 바로 성 전환자였습니다. 비록 이런 극단적인 역할로서 표현하기는 하였지만 이것은 ‘양성성’에 대한 토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연극에서 남성성의 상징인 주인공의 직업은 ‘조폭두목’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이처럼 우리가 ‘남성성’이라 여기는, 또 그 ‘남성성을 대변하는 직업’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어떤 고정관념의 틀 안에서 flaming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파출부로 대변되는 고정관념의 파괴와 양성성으로의 토로극본에서 어머니는 아들(남성)의 양성성 개발을 촉구하는 역할로 보여집니다.“참 재수야, 엄마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너 일자리 다른 거 구하지 말고, 파출부하면 어때?” 어머니는 다음 대사에서 이런 역할로의 촉구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번에 엄마가 테레비에서 남자파출부 얘기 나와서 봤는데, 돈도 많이 벌고 좋아 보이든데. 넌 방 치우고, 설거지하고 그러는거 좋아하잖아. 잘 하기도 하고. ­ 중략 ­ 체면 같은 건 안중요한 거 같은데, 엄만.”그런데 위에서 유심히 지켜보게 된 것은 “돈도 많이 벌고 좋아 보이든데.”하는 대사였습니다. 돈... 돈이라는 것은 막연하게 추론해 보면 권력과 부, 나아가 지금껏 이어져 내려오는 남성성의 상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극중에서 재수의 특수한 경우를 우려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겠지만...어머니는 파출부라는 새로운 역할로의 Identity를 제시하고 있지만 돈이라는 어떤 관습은 깨기 힘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것은 여성문제에 대한 이론을 살펴볼 때 19C 중반의 과학적 사회주의를 배경으로 형성된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여성들도 은연중에 자본주의를 지지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내용을 방대하게 해석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아 있지만 제가 생각할 때 이 부분에서 그런 성역할의 굴레를 깨려는 부분과 은연중에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부분이 혼합적으로 나타나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과학| 2007.12.01| 3페이지| 1,000원| 조회(342)
    미리보기
  • 연극 `남자충동` 감상문
    1. 연극 '남자충동'을 보았다. 안석환의 연기는 언제 봐도 일품이다. 주변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나는 그것이 드라마로 보여질 때 감정과잉의 어색함으로 비춰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역시 그는 연극무대에서 진가가 발휘된다.안석환이 연기한 주인공 장정은 영화 '대부'의 알파치노를 숭배한다. 그렇기에 폭력성과 잔인함, 그리고 냉혹함까지도 숭배한다. 그의 삶에 있어서 '대부'는 기독교인으로 치자면 성서이고, 알파치노는 예수님쯤 된다.그에게 '남자다움'의 욕구를 가지게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 첫째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의 외디프스 콤플렉스일테고, 두 번째는 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회'의 논리가 아니었을까? 이 둘의 모순 관계에서 아버지의 손을 잘라내고, 상대편 보스의 손을 잘라내고,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고, 또 남동생과 호모 단단이를 떼어내고, 여동생을 욕보이려던 자기 부하를 흠씬 패주게 된다. 때로는 설명이 되면서도 때로는 설명이 안되는 이런 행위들에 장정(안석환)은 내면의 말로 독백한다. '이런, 냉정해야하는데...내가 왜 그랬을까?... 침착해야해...의연한 모습을 보여야해' 그는 아버지로부터 거세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는 외디프스의 불안과 그럼에도 이를 외부로 나타내려 하지 않는 가부장적 남성다움의 도그마 사이에서 어쩔줄 몰라한다.그에게는 어쩌면 그가 가장 보호하려했고 가장 아꼈던 자기 여동생 달래에게 죽을 비극적 운명이 예정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연극에서 남성과 여성은 극단의 모습을 보인다. 도박과 술에 찌들은 아버지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이에 저항하며 끝까지 아둥바둥하는 어머니. 결국 어머니는 그녀를 지금껏 억눌렀던 가족으로부터 해방을 시도한다.단단이는 남성성을 증오하며 스스로 여성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그에게 여성은 곧 안식처이자 해방구이다. 비슷한 처지의 유정(장정의 동생)은 우유부단 존재로 그려진다. 그는 힘에 굴복하며 자신을 잃어간다. 단단이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감을 극복하려하지만 쉽지 않다. 힘과 폭력이 주류인 사회에서 그의 재능과 의지는 무참히 짓밟힌다. 그러나 그는 싸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히 여성을 선택한 단단이는 저항한다.달래는 불안전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여성이다. 그녀는 보호받아야 하고 지켜져야할 대상으로 인식되어진다. 조롱과 멸시의 대상으로 자란다. 그러나 그녀의 상징은 폭력은 미워하고 평화와 사랑을 중시한다는 것에 있다. 그녀는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오던 오빠의 폭력성을 오빠의 칼로서 단절한다.연극의 여자들이 과연 실제 해방이 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든 삶에 부당히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의지로서 끊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가족제도로부터, 남성중심 가치관으로부터, 그리고 폭력과 억압의 구조로부터....조국에 대한 충성, 지극한 형제애,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또 다른 폭력의 미화, 굳은 의리와 남자의 멋....이런 따위가 흥행의 성공비결이 되는 요즘의 영화들에 대한 암울한 묵시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유쾌하지는 않았다.장정이 꿈꾸던 '대부' 알파치노는 무엇일까? 왠지 나는 리얼리티를 버리고 수컷적인 영웅을 창조해가는 이 시대와 정치판, 영화판에 대한 통렬한 비판처럼 느껴진다. 대부와 같은 세상이 이어지고 그런 영화들이 계속 나오는 이상, 또 다른 이장정의 모습은 없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2. 이 연극은 남자연출가에 의하여 철저하게(?) 남자들의 세계가 묘사되어진 그런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물론 너무 꼼꼼히 다뤄진 부분들이 많아 감정과 이해가 동시에 이루워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작품은 결국 "남자"라는 것을 완벽하게 표현해내는데 거의 성공을 한 샘이었다.남자가 남자를 비판한다?? 그러다 보니 너무 극단적인 비판을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가볍지 않다는것은 포스터만 봐도 짐작은 하겠으나, 나에겐 상당히 걱정이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연극은 거칠었지만, 연출가에 의해 섬세했고, 주인공"장정"역 [안석환] 으로 인해 부드러움이 있었다. 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조화"를 잘 이루웠다고 말하고 싶다. 대본과 연출과 배우의 완벽한 "조화"아는 것은 없지만, 무대는 그리 잘 활용화" 하지는 못했다고 판단한다. 너무 무대가 평면적이였다고 해야할까? 배우들로 인해 어느정도 무대가 입체적일수는 있었지만, 아쉬웠다. -연극의 요소중에 단점이라면 단점인 공간의 제약을 장점으로 나타내는데에 조금 부족함이 있어보였다. 결국, 이 연극은 남자를 고발하고 비판하고 풍자하는 듯 보이나, 어느새 "폭력"과 "남자"를 이해하게 만들어버린다. 주인공 "장정"[안석환]의 연기 덕분에 그 이해는 감정을 만들어내고 공감을 만들어냈고, 눈물을 짖게 했다.최대한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연극을 무대를 배우를 보려고 노력했었다. 물론, 내가 분명 냉소주의자는 아니기 때문에 좋은연극을 본 환희와 희열을 표현하지 않을수는 없지만, 그래도 연극을 보는내내 혼자 쿵쾅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보느랴 너무 많이 고생을 했던것 같다.3. 이장정,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를 흠모하는 그에게 있어 남성성은 곧 힘으로 정의된다.여기저기 폭력이 난무하는 목포의 한 작은 동네. 노름에 빠져 가장의 의무를 져버린 아버지와평생 무능력한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어머니 박씨가 사나이 이장정의 부모다.작은 조직의 보스행세를 하는 그에게는 형의 그늘에 가려 언제나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는 소심한 남동생 유정과, 자폐증세를 보이는 여동생 달래가 있다. 장정이 폭력을 이용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 사랑하는 가족이다. 그런데 어머니 박씨는 뒤늦게나마 자신의 삶을 찾겠다고 집을 나가려 한다. 이것은 장정에게 가족해체를 의미한다. 가족 하나 지키지 못하는 보스는 더 이상 보스가 아니라고 믿는 그이기에 어떻게든 이 사태를 막아야 하는 것이 도리였다.그러나 그의 선택은 피 냄새로 얼룩진 폭력이다. 아버지가 다시는 화투를 치지 못하게 만들면 될 거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된 해결책 모색은 결국 아버지의 두 손목을 절단하는 끔찍한 사태에 이르고 만다.무언가 한참 잘못 되어가고 있다. 그는 패륜아도 아니오,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더더욱 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의 몸속에는 언제나 따스한 피가 흐르고, 그에게서 가족이 차지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사람이다.그런데, 그는 친부의 양쪽 손목을 절단했고, 결국 어머니의 가출도 막지 못했다. 그는 매번 사회가 각인시킨 가부장적 남성성과 자신의 실제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때마다 그의 선택은 언제나 그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진정한 남성성이라 믿는 폭력으로 기울어버린다.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는 보스를 꿈꾸고, 사회는 힘 있는 자에게만 기회를 부여하니 말이다.형이 시대의 남성성을 대변한다면 동생 유정은 그 반대의 길에 서 있다. 재즈카페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유정에게 남자들의 세계는 동경의 대상일 뿐이다. 그에게 있어 베이스의 둔탁한 울림은 거친 남성의 심장소리와도 같은 것이다. 그가 동경해마지 않는 거친 남성의 심장소리 말이다.유정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순간은 오직 베이스를 연주하는 시간뿐이다. 섬세한 감성을 지닌 유정, 그 역시 명백한 남자이지만 가부장적 사회가 요구하는 인물은 절대로 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어깨는 언제나 날지 못하는 새처럼 늘어져있다.그런 유정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단단. 재즈카페를 운영하며 남성들의 무차별한 폭력성에 반기를 들고 여장남자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인물이다. 단단에게 있어 남자들의 힘자랑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수컷들의 재주부리기 같은 것이다. 단단 역시 남자들 사이에 흔히 오가는 폭력 속에서 상처 입은 영혼이다. 진정한 남성다움이 과연 폭력뿐일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 그의 선택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는 극단으로 치닫고 만다.
    독후감/창작| 2007.12.01| 4페이지| 1,000원| 조회(230)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7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1:54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