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해 표 기 문 제- 역사적으로 살펴 본 동해1. 서 론동해의 명칭이 한 ? 일 간의 현안으로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는 2002년에 국제수로기구(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이하 IHO)가 발간하는〈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제4판의 발간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자는 1929년에 초판을 내고, 1937년, 1953년 각각 개정판을 낸 이래 줄곧 '동해'의 명칭을 '일본해'로 표기해 왔다. 문제는 이 책자가 해도(海圖) 제작의 기준이 되어, 세계 각국이 이를 근거로 바다 명칭을 정한다는 점이다.동해는 2000여 년 동안 우리가 불러온 명칭이며, 세계지도 상에서는 16세기 경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19세기 전반까지는 세계적으로 ‘동해’가 통용되어 왔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일본의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 1910년 한일합방 등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국제수로기구가 1929년 발간한〈해양과 바다의 경계〉초판에는 일본해라는 이름만이 표기되게 되었다. 그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 있었으므로 국제수로기구에 대표단을 파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제3차〈해양의 바다와 경계〉수정판이 발간된 1953년에도 한국은 전쟁의 혼란 속에 있었기 때문에 동해의 명칭을 정당하게 국제사회에 주장할 수 없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일본해라는 명칭이 국제사회에서 굳어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제 지도에서 ‘일본해’의 표기가 97%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동해가 일본해란 명칭으로 지도상의 표기가 계속된다면 한국의 영해는 물론 한국의 이익이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대륙붕, 배타적 경제수역이 지도나 해도 상으로는 일본의 바다로 불리게 되며 또한 21세기 해양시대에서 국제 전략, 국제정치 및 경제, 국제관계, 해양 전략 등에 문제점이 제기된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해 지명에 관한 역사적 주요한 활동으로 하고 있으며 모나코에 본부를 두고 있다. 국제수로기구가 간행하는〈해양과 바다의 경계〉라는 책자는 국제 해도 제작의 기준이 된다. 1929년 초판이 발간되었고, 1937년, 1953년 각각 개정판을 냈으며, 현재 제4판의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국제수로기구(IHO)가 발간하는〈해양과 바다의 경계〉는 세계 각 바다의 명칭 결정에 중요한 근거가 된다. 국제수로기구(IHO)가 제3차 개정판을 내놓은 것은 지난 1953년으로, 제4차 개정판에서 ‘동해’ 병기가 이뤄지지 않으면 향후 40-50년간 ‘일본해’ 가 공식 명칭으로 계속 사용된다. 따라서 정부는 5년 만에 열린 국제수로기구(IHO) 정기 총회에 외교부, 국립해양조사원, 학계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파견, 동해 병행 표기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수로기구(IHO)에 많은 분담금을 내는 일본이 ‘일본해 단독 표기’를 고집하고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최근 국제수로기구는 동해의 표기 문제와 관련해 한 ? 일 양국의 논의가 끝날 때까지 〈해양과 바다의 경계〉개정판 발간을 연기하기로 하였다.2) 동해 표기의 역사(1) 동해 표기의 사례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나라에서는 BC.59 이래 문헌상에서 동해로 불러왔으며 광개토왕릉비(411)를 비롯하여 삼국사기(1145)와 삼국유사(1284)에서도 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게다가 현존하는 고지도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의 ‘팔도총도’에도 ‘동해’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그 밖에 16세기 편찬된 동국지도에는 ‘동저대해’라 적고 있다. 1740년대 편찬한 영남지도에도 동해, 18세기 중엽에 편집된 관찬지도인 여지도에도 역시 동해라 표기하여 범국가적으로 동해명칭을 통용하여 왔음을 증명하고 있다.18세기이후 편찬된 많은 군현지도도 동해명칭이 사용되었으며 20세기 초 일본 식민지가 되기 전에 개화기에 사용된 많은 지리교과서에서도 동해, 조선해, 대한 해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이미 일부 교과서에서 일본해라고 사용통용은 러일전쟁(1905)때 체결된 조약문에 쓰기 시작한 것이 처음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그러나 중국에서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리치가 소장하였던 세계지도를 중문으로 번역하여 1602년 북경에서 판각된 ‘곤여만국지도’ 에는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여 현존하는 중국지도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지도는 외국인이 중국에서 번역하여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제작 당시 한국보다 일본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이 지도는 중국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으며 이후 일본해 명칭이 중국 지도상에 나타난 것은 1875년경이었다.러시아가 제작한 이 지역의 지도는 모두 1639년 러시아인이 처음 태평양 연안에 도착한 이후에 제작된 것들이다. 1687년 Nic Witzen의 ‘Noord en Oost Tartarye’는 동해를 동양해(Oceanus Orientalis)라고 했으며, 1725년 N. Goman의 지도에는 동해(Eastern Ocean)로, 1734년 I. Kirilov 역시 동해(Vostochnoe)로, 1737년 Peterbourg Academy of Sciences에서 출간한 아시아지도에서는 한국해(Kopeckoe Mope)로, 이후 1745에서 1791년에서 발간한 대표적인 지도들이 모두 한국해라고 표기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1844년 발간한 최후의 공식지도에서도 동해를 ‘한국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후 러시아 해군과 많은 지도들은 유럽식 표기를 따르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반면에 일본에서 18세기 이후 발간된 권위 있는 지도 가운데 많은 지도가 1870년까지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고 있어 일본해 명칭이 뒤늦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10년의 ‘신정만국전도’, 1838년의‘만국전도’, 1850년의 ‘지학정종도’, 1855년의 ‘지구만국전도’, 1870년 ‘명치개정. 만국여지분도’ 등의 지도는 대표적으로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출간된 일본지도는 예외 없이 모두 일본해로 표영백과사전 초판에 Sea of Corea로 표기 되까지 17-18세기에는 동해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현존하는 상당수의 고지도에 대한 검토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19세기 후반에 동해가 어떻게 일본해로 대치되었는가에 대한 연유를 파악하기에는 대단히 힘들지만, 분명한 사실은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이 확대되고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일본에 대한 정보가 쉽게 세계지도작성에 반영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특히, 17세기∼18세기의 고지도에는 동해표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보아 18세기까지는 주로 ‘동해’로 표기하였으나 18세기 이후부터 일본의 국력이 강해지고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국력이 약해지면서 ‘일본해’ 표기가 많아지게 되었고,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1910년 국권이 상실된 상태에서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가 책자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여 간행함으로써 이후 국제사회에서 ‘일본해’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연 도국 가제 작 자지 도 명동 해 표 기BC59한국김부식의 삼국사기(권13, 고구려본기 제1) 및이상국의 동국이상국집에 "동해" 이름 언급東海(...東海之濱有地 號曰迦葉原...)414한국광개토대왕기념비東海1440이탈리아카르피니(수도사)빈렌드 (세계지도)mare Occeaum Orientale1530한국이행, 홍언필新增東國輿地勝覽 八道總圖東海1602이탈리아마테오리치坤與萬國全圖日本海 (일본해표기 최초지도)1613중국창왕四海華夷總圖東海1615포르투갈고딘호 데 헤레디아아시아지도MAR CORIA1647영국로버트 두들리동아시아지도MARE DI CORAI1700프랑스Danet GL'ASIXE DRESSEEMER DE COREE1705프랑스기욤 드릴인도-중국지도MER ORIENTALEou MER DE COREE1710이탈리아TI 슈포트지나제국도(IMPERIUM SINICUM)MARE COREANUM1737러시아러시아 정부세계지도KOPRCKOE MOPE1748프랑스해군기술장교중국대륙지도MER DE COREE17HE AMPIRE OF JAPANCOREAN SEA1800프랑스드조쉬아시아지도MER DE COREE표 1. 동해 표기의 역사표기 명칭지도 수한 국 해34한국해, 일본해 병기3중 국 해11일 본 해6기 타5표 2. 캐임브리지 대학 도서관 소장 서양 고지도표기 명칭16 C17 C18 C19 C합 계한 국 해--62-62동 해-17-8한국해, 동해 병기--2-2일 본 해--6410중 국 해1-3-4무 기 명--134표 3. 영국 국립도서관 소장 서양 고지도표기 명칭17 C18 C19 C연도표가 없음합 계한 국 해-93304127동 해-----한국해, 동해 병기-1--1오리엔탈, 한국해 병기-1--1일 본 해--9211기 타-2--2무 기 명764926?표 4. 미국 남가주대 소장 지도위의 표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서양의 고지도의 경우 ‘한국해’, 혹은 ‘동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2) 일본해 표기의 사례 - 파워포인트 지도 참조지도설명: 20세기 경의 지도로 아쉽게도 한국해의 자리에 japan sea 라고 표기하고 있다.3) 일본해 주장의 부당성(1) 일본의 주장 - 일본 측의 일본해 단독 표기에 대한 논거① 현재 일본해는 이미 국제적으로 확립된 표기로서 전 세계지도의 97%에서 사용되고 있는 명칭이므로 현 단계에서 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불필요한 혼란만 초래할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국제적으로 확립된 명칭에 관해 한국 측이 지명 분쟁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② 일본해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서양에 의해 확립된 명칭으로서 한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19세기 말 일본의 국제적인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일본이 일본해 명칭의 사용을 의도적으로 강제하여 현재와 같은 일본해의 세계적인 확립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③ 일본해는 태평양을 일본 열도가 분할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을 감안하여 붙여진 명칭이며 일본의 소유권을 주장하여 붙여진 명칭은 아니다.④ 한국이 동해 명칭 사용을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
테크놀로지의 인간지배현상과 그에 대한 인간의 입장I. 서론매트릭스 속에 나타난 2199년, 바로 AI 컴퓨터에 의해 인간세상이 지배당하는 시대이다. 매트릭스에서 가상공간의 실제 시간은 2199년이지만, 인간은 매트릭스 프로그램에 따라 평생 1999년의 가상세계에 산다.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인공두뇌를 가진 컴퓨터 AI가 만들어낸 인공자궁에 갇혀 AI의 생명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고, AI에 의해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이 입력된다. AI는 인간의 뇌를 철저하게 검색하는 매트릭스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인간의 모든 기억을 입력되고 삭제하고 이로써 인간은 꿈의 세계를 현실처럼 한평생 살게 된다.{) 김기봉, 영화에 나타난 역사의 종말, p.206매트릭스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마치 자신의 의사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도 자신의 의사대로 움직이는 것은 없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가 있다.(음식을) 입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맛있다는 신호를 보내 주죠.그런데 기계들은 어떻게 그 맛을 알고 있냐 말이죠.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죠. 내가 알고 있는 그 맛이 실재로는 오트밀이나 참치 맛 일 수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치킨 맛을 예로 들면 치킨 맛을 몰라서 다른 비슷하게 만든 건지도 모르죠. {) 메트리스중에서위의 말은 사이퍼가 한 말이고 밑의 말은 마우스가 한 말이다. 이 대사에서 보면 인간은 맛조차도 자신의 의사대로 느끼지 못하고 매트릭스가 보내주는 맛있다는 신호에 의해서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매트릭스가 잘못된 맛을 그 맛으로 신호를 보내면 그 맛이 그 음식의 맛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우리는 이 영화를 지금 현실과 동떨어진 허무맹랑한 과학공상영화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영화는 인간이 발전시킨 과학에 의해 인간이 조종당하고 지배를 당하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과학기술의 인간 지배현상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발생하고있는지 그리고 인간은 그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학 사상은 정치, 철학, 예술, 종교를 포함한 모든 인간 사고와 행동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학 사상은 이전 시대의 사회적 배경에서 도출되며, 과학적 실험을 거쳐 대개 부분적으로 변형된다. 이러한 과학 사상은 다시 사회 사상에 영향을 미친다.{) 이만기, 인간과 과학기술, p.253이러한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의 생활양식은 더욱 편리해졌으나, 그와 함께 심각한 현상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지구 생태계의 파멸 위협, 핵전쟁의 공포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정보기술과 생명공학으로 야기되는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정보 기술에 의해 개인의 전자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를 통해 사람들은 통제 받기 쉬워지게 되었으며 생명공학으로 인한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결과까지 낳았다. 이에 대해 본론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2. 본론1) 정보 사회와 전자 감시오늘날 과학 기술 발달의 정점은 컴퓨터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이 기계를 매개로 해서 이룩되었다면, 21세기 정보혁명을 선도하는 것은 컴퓨터이다. 오늘날 우리의 생산활동과 일상생활은 점점 컴퓨터 통신망이라는 새로운 기술 환경에 맞게 재편성되고 있다. 미래학자들 의 견해에 따르면 2020년경이 되면 편재하는 컴퓨터 의 시대가 도래해서 인간이 모든 활동공간에 컴퓨터가 장치되고 심지어 옷이나 넥타이 신발 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 컴퓨터가 부착될 것이라고 한다. 산업과 직업의 정보화는 인간 삶을 점점 컴퓨터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에 의존하게 만들고, 여가활동 또한 정보공간에서 점점 많이 이루어짐으로써 이른바 사이버 문화 가 지배문화로 등장할 만 할 전망이다. {) 김기봉, 영화에 나타난 역사의 종말(학위논문) p.204이미 일반화된 언어이며 경험인 사이버 공간 은 미래를 상징하는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낙관론자들은 사이버 공간의 기본 성격을 열림 으로 규정한다. 사이버 공간은 특정한 방향성이 부여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정보의 독점이나 맞이할 것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자동화에 의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할 일 이 없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한다.(1) 현대인의 일상 생활 속의 전자 감시오늘날 컴퓨터 데이터 베이스 안에는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의 활동 상황이 수록된다. 이 같은 일은 정부와 대기업의 대형 컴퓨터 데이터 베이스 안에서 매일 빠짐없이 일어난다. 더욱이 본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 관한 정보가 척척 처리되어 나가는 것이다. 이 같은 익명적 감시는 현재의 전자적 특성 때문에 증폭되다. 대부분의 감시는 디지털 암호의 영역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일어난다.{) 김주환, 디지털시대와 인간의 존엄성, (나남출판, 2001) p.30물론 이러한 감시는 우리가 상상하듯이 비밀스럽고 음모적인 방법이 아니라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고, 전화를 걸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잡다한 우편물을 받고,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해외 여행을 하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컴퓨터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우리의 거래를 기록하며 그 모든 세부 사항을 점검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사자 본인이 청구서를 제대로 받았고 그 대금을 제대로 지불하였는가도 확인한다. 우리에 관한 조그마한 사실, 본인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경제적 ,법적, 국가적인 상황도 어김없이 전자적으로 기록, 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그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감시의 대항이라는 것을 거의 모르게 된다. 설사 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은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 상당히 포괄적으로 알고 있을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포괄적인 정보 파악 앞에서, 거대한 데이터 베이스 앞에서 현대인은 언젠가 무력해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자 기술에 의한 감시 사회가 서서히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2) 기업 자본주의와 소비자 감시현대 자본주의는 기업적 제도, 즉 전국적 또는 국제적 범위를 가진 집중업 자본주의를 지원하게 된다. 예를 들면 정보 기술을 기업 활동의 분권화 전략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동시에 중앙 집중화된 통제를 가증하게 한다. 이는 일련의 전자 기술을 이용하여 지역적으로 분산된 지점들을 쉽게 감시할 수 있고 업무 수행 결과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 같은 정보 처리 기술 및 통신 기술을 이용하여 주요 정보 서비스를 얻게 되었다. {) 김주환, 디지털시대와 인간의 존엄성(나남출판, 2001) p.104이 같은 정보화는 시민에 대한 감시의 강화로 표현된다. 감시가 확장되는 경제적 목적은 자본주의 관계를 강화하는데 있다. 정보 통신 혁명은 사람들의 일상 생활 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어 소비자 자본주의를 강화시킨다. 기업의 감시 활동에는 화폐 유통량에서부터 주재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분석과 같은 많은 차원이 있지만, 특히 시장조사와 같은 소비자 감시가 중요하다. 이 감시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신용 조사 기관이다.이들은 구매자의 재정 상태를 조사할 뿐만 아니라 기업에 넘겨 줄 목적으로 잠재적 구매자들의 주소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거래 정보는 일상적 활동의 과정에서 매순간 기록된다. 이러한 생활 속의 일상적 정보를 모아서 기업은 소비자들의 생활 양식에 대한 매우 자세한 그림을 얻게 된다. 이 같은 정보는 기업의 판매 전략을 매우 향상시켜 줄 수 있는 감시의 유형이다. 예를 들어 특정한 유형의 소비자만을 대상으로 한 광고물을 기획함으로써 그들의 구매 욕구를 끌어 낼 수 있다.(3) 익명의 전자 감시의 위험전자 감시는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정보 기술을 독점한 세력이 개인 신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개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도 모르게 수집된 정보가 그릇된 사고방식을 가진 집단이나 권력에 의해 남용될 수 있다. 또한 전자 감시는 사회 통제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수집된 정보가 조작되어 국민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전자 감시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확대되어야 한다의 시작이다. 이렇게 감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확신되면, 정부와 기업도 전자 감시를 사회 통제 수단으로서 활용하기 어려워 질 것이다.(4) 우리가 해야 할 일프라이버시 보호는 신기술 발달 과정에서 이전부터 고려되어 온 이슈이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취한 이전의 노력들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온라인 세계에서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국제적 노력의 출발점은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기존의 국제적 장치들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두번째 노력은 국경을 넘어서 법규를 적용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국경을 초월하여 프라이버시 권리를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한편으로 프라이버시 보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술의 가능성을 무시해서도 된다. 그러나 진짜 개인보호 기술과 사이비 기술을 구별하는 데 주의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책, p.115~116.2) 생명공학기술과 인간의 존엄성2000년 과학계의 최대 성과가 인간 게놈 지도 초안의 완성이란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리고 게놈(genom)으로 상징되는 (첨단)생명 과학이 정보 과학과 더불어 21세기의 과학 기술과 산업을 선도하리라는 점에서도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우리 나라는 다른 과학의 기술 분야와 달리 생명 과학의 발전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정보가 지난해부터 10년 동안 해마다 약 100억원을 인간 유전체 기능 사업 에 투자하는 등 생명 과학 분야에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하였다. 한편 정부는 생명 과학 분야의 개발 뿐만아니라 그 안전성과 윤리성의 확보에도 눈길을 돌려, 보건 복지부 산하 기관인 보건 사회 연구원에 용역을 주어 관련 법안을 작성토록하였다. 이에 과학 기술부는 1999년 11월에 구성한, 생명 윤리 자문 위원회 에서 생명 과학의 윤리적 측면을 검토하여 생명 윤리 기본법 의 뼈대를 마련했다. 또한 과학 기
◎ 들어가기전에..나는 평소에 정치나 한국 민주주의의 현 상황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민주주의의 미래라는 교양 수업을 통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번 레포트를 쓰기 위해 읽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나에게 한국의 민주주의 현황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처음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을 때는 딱딱한 제목 때문에 조금은 부담스러웠었다. 그러나 어려운 주제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의 내용을 정리해 놓은 책이라서 그런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을 간단히 설명하면 최장집교수가 총 6회에 걸쳐 진행했던 "민주주의 특강"을 하면서 강의했던 내용이나 준비했지만 강의에서는 사용하지 못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글이다.다음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주요 내용을 쟁점별로 정리했다.제 1장 민주화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1.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이다. 지난 2002년 8월 8일에 있었던 1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투표율이 30%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의 '참여'와 정당에 의한 '대표'를 그 핵심으로 하는데 이렇게 낮은 투표율은 그 자체로 '참여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자 '대표성의 위기'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번 보궐선거 투표율하나로 이런 말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유권자의 투표참여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는 사실이 일회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투표율이 감소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젊은 유권자 층의 낮은 투표율 때문이다. 따라서 신규 유권자가 늘어날수록 투표율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 지난 월드컵 당시 온 거리를 가득 채울 만큼 집단적으로 표출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이 투표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더욱 비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정부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부패했다. 국회의 모습은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금전적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 뿐 이었다.떤 중심축을 갖지 못한 것은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38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에 각각 미국과 소련의 군정이 시행되면서 38도선은 곧 정치적. 이념적 경계선이 되었다. 냉전이 국내정치에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정치적 혼란은 대체로 세국면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 국면인 해방공간초기에는 좌파 세력이 우세를 모였다고 할 수 있다. 두 번WO 국면은 1945년 말부터 다음 해 초 이른바 '탁치정국'(모스크바 3상회의 이후 신탁통치안을 둘러싼 좌우파간의 갈등정국)을 기점으로 좌파의 기세가 꺾이고 우파의 기세가 상승하면서 좌우각축이 이루어졌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국면은 해방 이후 최대 규모의 아래로부터 저항이라고 할 수 있는 1946년 '10월항쟁' 이후 좌파 세력이 현저하게 약화되면서 우파 우세가 뚜렷해지고 1947년 7월 제 2차 미소결렬 이후 우파 헤게모니가 확립된 시기이다.좌우 이데올로기의 극단적 대결이 불러온 결과 중 하나는 강력한 국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국가의 발전은 외부로부터 냉전이 부과되고 분단국가가 만들어진 결과만은 아니다. 해방이후의 사태 전개가 과거의 유산과 제도를 다시 불러들이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 강력한 국가가 전통적으로 지속되어 왔던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공간에서 냉전의 전개와 이데올로기적 양극화, 분단국가의 수립 과정에서 사회가 탈동원화되는 과정은 과거 식민지 국가기구의 역할이 다시 복원되는 과대성장국가의 출현과 맞물리게 된다.2. 이념적 양극화에 따른 정치적 대립축의 전치일제 식민지 통치하에서 저항운동의 발전은 민족주의라는 최초의 이념과 이를 중심으로 한 운동의 출현을 가져왔다. 국외에서 혁명적 민족주의 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에 국내에서는 교육문화운동을 중심으로, 방법에서는 평화적이고 문화운동적이며, 이념적으로는 보수적인 민족운동이 발전했는데, 여기에는 주로 국내의 토착 지주 세력이 참여했다. 해방을 맞이하여 독립국가 형성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함에 따라, 누가 새로운 독립국만들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민족분쟁이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 내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전쟁으로 치달은 사례를 통해 국민적 통일성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주의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한국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하겠다. 국민적 통일성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가치와 신념을 결여한 채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는 사실은 끈ㄴㅎ임 없는 제도적 불안정과 실천과정에서 문제점을 드러내는 원인이 아닐 수 없다.조숙한 민주주의를 말할 때 민주주의의 핵심적 제도로서 보통선거권이 도입된 시기와 그 최초의 제도적 실천으로서 1948년 5·10 선거의 정황을 보는 것은 한국민주주의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보통선거권이 1948년 5·10선거를 기하여 일거에 부여되었지만, 제도를 제외하고는 서구에서와 같은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커다란 정치적 혼란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투표율은 95%를 상회했고 이는 일반 투표자들의 자발적 참여의 결과라기보다는 권력에 의해 위로부터 동원된 매우 수동적인 정치참여의 의미가 더 컸다.조숙한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초인 헌법을 보는 것은 한국민주주의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다. 헌법이 밖으로부터 주어지고, 한국사회와 유리되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함축한다. 첫째.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게 되었던 역사적 경험과 이론 또는 이념의 발전 없이 일거에 그 이념과 제도를 받아들였다. 둘째, 현실 정치를 규율하고 제도화하는 기본법으로서의 의미보다 통일된 국가를 전제한 희원이랄까, 규범을 밝히는 데 더 초점이 두어졌다. 우리의 헌법은 내용적으로 밖으로부터 주어진 결과 일반국민의 커다란 관심사가 되지도 못했고, 의회 내에서 정파들 또는 대표들 사이에서 헌법조문을 둘러싼 토의나 논쟁이 심도 있게 이어지지도 못했다. 이로 인해 헌법과 현실은 큰 괴리를 갖게 되었다.미국의 경우 헌법제정에 참여한 당시 지도자들의 탁월한 지혜와 시민적 덕에 힘입어 헌법이 만들어 졌을 뿐 아니라 공화주의적 원칙을 준수하고,년대와는 다르게 강력한 민주화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권위주의 체제로부터 이탈의 경로를 만들어 낸 것은 민주화 운동이었다.박정희 정권이 이루어낸 특정 형태의 사업화가 이후 민주화 과정에 미치게 될 영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거의 통제불능 상태로 팽창한 재벌의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는 재벌을 통하여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사회에 관료적 권위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이 민주주의에 가져다 준 세 번째 장애는 거시경제 운영원리의 중요한 축의 하나를 이루었던 권위주의적읜 노동통제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과 뒤이은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 남긴 부정적 유산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권력과 언론의 유착이다. 언론은 정치화된 국부 엘리트, 재벌, 국가기구내의 테크노크라트와 더불어 군부권위주의를 지탱시켰던 핵심적인 권력블록의 구성요소였다. 언론이야말로 구체제의 기득 세력 중의 기득 세력이 된 것이다.제 4장 민주화 이행의 보수적 종결과 지역정당체제1. 한국에서의 민주화 이행의 특징1987년 6·29선언을 민주화의 기점으로 삼을 때 한국에서의 민주화는 서구와 비교해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비약적으로 전개되었다는 특징을 갖는다. 한국의 민주화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운동이 결합하여 만들어 낸 '운동에 의한 민주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제도권 야당들이 강력한 권위주의 정권 시게에 의회에서 반대 세력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한국에서의 학생운동은 정치적 기회구조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행위집단이 아니라, 이를 창출하여 다른 주요 운동집단들이 운동이 사이클 속으로 뛰어들도록 견인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했다.1970~80 년대의 유신체제와 전두환 체제에서의 민주화운동은 앞선 1950~60년대의 운동과 매우 상이한 질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거이었다. 군부권위주의 시기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하부구조직 수준에서의 국가이다. 다른 하나는 위에서 말한 국가의 하부구조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정부적 수준에서의 국가이다. 지난날 권위주의하에서 이 두 수준은 서로 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분리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민주화가 되면서 국가의 이 두 수준이 분리되기에 이르렀고 이는 곧 선출된 집권 정치 엘리트와 행정관료 엘리트 사이에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관계설정이 필요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후의 국가가 보여 주는 가장 큰 특징은 '무력한 국가' 이다. 무력한 국가가 등장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존재한다. 주로 정치사회 밖에서의 힘 관계에 초점을 둔 헤게모니의 약함과 같은 요소가 민주적 개혁을 흐지부지하게 하고 정부를 무력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의 거대한 행정관료기구와 같은 공식기구를 운영하는 원리로서 절차적 보편성과 개방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집권 엘리트들이 그들을 지지한 투표자들에 대해 가져야할 책임성의 인식이 약했던 결과이며,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약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무력한 국가가 나타나게 되었는가'하는 문제를 사회적 기반이 없는 야당의 문제로 돌릴 수 있다. 그들은 국가를 어떻게 개혁하고, 재벌은 어떻게, 노동문제는 어떻게, 시장은 어떻게 개혁하려 했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구체제하에서 성장한 야당의 정치 엘리트들은 집권과 함께 이내 공직배분을 둘러싼 계파간 암투와 그들 자신의 이익추구에 몰두하기 때문에 이런 현실에서 결국 대안적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은 운동의 몫이고 지식인의 몫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2. 무력한 국가와 관료제의 문제민주화 이후 국가의 문제는 새로운 집권 엘리트들이 헤게모니의 중심가운데 하나인 기존의 관료행정기구 내지는 관료 엘리트를 대면하면서부터 발생한다. 민주적 국가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할 때, 민주주의의 규범에 걸 맞는 국가발전의 이념 및 들었다.
인어아가씨1.들어가기 전에.드라마란?텔레비전 드라마의 특징은 친근성, 동시성, 제한성을 들 수 있다.그럼 시청자들은 왜 텔레비전 드라마를 시청할까?우선, 드라마는 재미가 있다. TV드라마는 우리에게 대로는 신기하고, 아슬아슬하고, 두근두근한 상황을 보여준다. 또한 우리에게 눈물과 웃음을 선사한다. 이러한 드라마의 오락적 기능은 드라마의 존재 자체에 있어서 핵심적인 기능이다.또한 드라마는 우리들이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모르던 것을 알게 해준다. 이러한 간접경험을 통하여 드라마는 우리의 삶의 과정에서 바르게 생각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그리고 드라마는 사회현상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때문에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여론 도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사회를 변화시키고 규정하려는 시도로서의 기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드라마의 사회적인 기능도 권력에 의한 압력이나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이익집단에 의해서 객관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왜곡된다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역기능을 일으킬 수 있다.마지막으로 드라마는 인간의 표현이다. 인간 내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변화현상을 언어와 몸짓과 표정을 표출한다. 그런 과정에서 시청자는 배우의 심리적인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더욱더 몰입하고 동정과 연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이러한 이유에서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시청하고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드라마의 극본은 전체적인 구성도 중요하지만 매회분의 구성도 중요하다. 즉 매회의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어야만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여 줄 뿐 아니라 이야기의 맛도 우러나오게 하여 한시도 시청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작가 소개 - 임성한젊은 작가답지 않게 나이 든 사람들의 이야기, 또 결혼을 앞둔 아들과 딸을 둔 어머니의 입장을 썩 잘 묘사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는 신예작가 임성한. 1997년 MBC 극본 공모를 통해 데뷔한 작가는 그동안 의 '솔로몬 도둑' '웬수' '섹스 거짓??그리고 성격차이' 등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아세/ 김성택)장차 태양일보를 물려받게 될 사회부 기자. 자신을 오빠처럼 따르는 예영과 순조로운 교제를 하고 있었으나, 아리영이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결국 아리영과 결혼하게 된다..이성수 (53세/ 김병기)태양일보 회장. 문화부 부국장인 진섭과 사돈을 맺으려 했으나 진섭이 조강지처를 버린 사실이 들어나자 아리영과 예영 둘 다 며느리로 맞을 수 없다고 하지만...금옥선 (74세/ 사미자)남편이 쉰 셋에 암에 걸려 아들 이성수 회장을 일찍 결혼시켰다. 자신과 동성인 며느리 금실라 여사와 아주 사이가 좋은 찰떡 궁합이라 남들은 고부간이 아니라 금방울 자매같다고 농담들 한다..금실라 (54세/ 김용림)자신 역시 시어머니처럼 남편(이회장)의 사랑을 못 받아 대신 고부간의 동병상련으로 아끼는 마음이 남다르다. 부잣집 막내딸로 자라 성품이 순진하기도 하고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어머님'찾기 바쁜, 마마걸이 아니라 '어머님 걸'..조수아 (50세/ 고두심)강남에서 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다. 인정과 기품이 넘쳐 타인들을 감동시키지만 남이 잘 되면(특히 심수정) 그날 저녁, 배를 움켜잡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아주 치사하고 교활한 성격..마마준 (29세/ 정보석)회계사. 수아의 잘난 아들. 깔끔한 외모와 침착함 의젓함으로 여자들에게나 어른들에게 좋은 평을 듣지만 집에 들어서면 '어머니'란 호칭이 '엄마야~'로 바뀌는 원조 마마보이..마마린 (25세/ 이재은)친구 예영에게 '마가린'이란 야유를 들으면 뚜껑이 열린다. 엄마 수아가 몹시 가난하게 자란터라, 자식들한테 만큼은 특히 딸 마린에겐 갖은 호강을 다 시켜, 몸 전체가 명품으로 도배돼있다.. 줄거리첫 번째 미니시리즈의 성공으로 하루아침에 유명작가가 된 아리영은 다시 20부작 월화드라마 의 집필을 맡게 된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연출 김장오PD에게 극중 '도영심' 역으로 중견 탤런트 심수정을 꼭 캐스팅 해 달라고 조른다.아무것도 모르는 심수정은 욕심나는 역할이라며 아리영의 드라마에 출연하는데, 잘 나가는 중견 탤문지상에 아버지가 쓴 기사와 사진을 통해 재혼한 아버지가 부유층으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해서 아버지가 엄마와 자신을 내팽개친 게 실수였다는 걸 깨닫게 해 주겠다고 벼르며 자랐다. 그래서 방송작가로 성공해서 의도적으로 탤런트인 수정을 괴롭혔고, 결국 이복여동생(은예영)의 약혼자(이주왕)에게도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유혹하는데 성공한 것이다.한편, 이런 복잡한(?) 집안 사정을 알게 된 주왕의 집안은 당연히 예영과 아리영 모두 며느리로 맞을 수 없다고 당장 반대에 나선다.그런데, 주왕의 마음을 빼앗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복수로 얼어 있던 아리영의 마음은 서서히 녹아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그녀의 복수와 사랑은 새로운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데…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리영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약해진 그녀는 더욱 주왕에게 기대게 된다. 결국, 주왕의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고 그 둘은 결혼을 하게된다. 결혼후, 아리영은 시어머니와 시할머니와 새로운 갈등을 겪게 된다.한편, 마준과 예영도 힘들게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집안에서도 새로운 갈등이 발생한다.요즘은 아리영, 시어머니, 시할머니의 갈등이 해소되고, 아리영은 축복 속에 아기를 임신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곧 주왕을 유혹하는 여자가 등장하여 다시 삼각관계에 빠질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3. 인어아가씨 바로보기. 제목이 왜 인어아가씨 일까?우리는 인어아가씨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가장 먼저 의아해 했던 점이 왜 제목이 인어아가씨일까? 였다. 우선 기본적으로 인어공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인어공주이야기에서 보면 인어공주가 왕자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자신이 물에 빠져 죽는다. 극중에서 아리영은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주왕이를 이용하려 하지만 주왕이를 사랑하게 된다. 결국 그를 이용하려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이렇게 아리영을 인어공주에 빗대어 볼 수 있다.그런데 이와는 달리 풀이한 예도 있다. 주왕과 결혼한 아로 이야기를 풀어갔다.한 갤럽조사에서 사랑의 배반에 대한 여성의 복수극 일수록 시청률이 높게 나왔다는 결과가 있다. 이는 예전에 심은하 주연의 『청춘의 덫』이 그렇게 인기리에 방영되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시청률 최고를 기록했던 방송부분이 마지막에 배반을 딛고 성공한 심은하가 자신을 버렸던 남자의 치졸한 용서에 차갑게 뒤돌아서는 장면 이였다고 한다. 한을 품은 여자의 복수라는 소재하나로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인어아가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이드라마의 중심인 극중 장서희가 연기했던 아리영의 복수구성 자체가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것도 지리멸렬한 복수가 아닌, 계획적인 치밀한 복수가 사람들을 더욱 끌어당겼다.. 대리만족 효과우리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리영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아리영은 만능 엔터테이너먼트로 그려지고 있다. 아리영은 가난하게 자랐지만 유명한 드라마의 방송작가에 수준 급의 드럼을 치고 살사를 즐기며 주변사람들에서 손수 실력 있는 초상화까지 그려주는 팔방미인이다. 게다가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이는 상당히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극중 인물들의 직업 또한 신문사의 사주와 부국장, 문화부와 방송부 기자, 현시대에 유명한 연예인, 강남의 부유층들만 오가는 의상실의 운영, 돈 잘 버는 회계사 등 화려한 사회계층의 모습은 부러움에서 동경으로 이어진다. 또한 새로운 직업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서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 화려한 모습들을 보면서 위화감을 느낀다는 의견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현 사회에서 가장 인기있고 관심이 가는 분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리만족과 간접경험은 시청률에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선인과 악인의 대립구조가 없는 드라마이 드라마에서 또 하나 매력적인 것은 등장인물들을 악인과 선인으로 구분 지어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실 사회에서는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만기드라마의 등장인물이 드라마 작가인 이와 같은 경우에 실제 그 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을 반영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김수현 의 불꽃 에서는 주인공 이영애를 역시 매우 고고하고 세련된 드라마작가로 묘사하면서 , 더불어 평소에 작가자신의 기준으로 아니다 싶은 배우에 대한 평가도 하고 있다.그리고 이를 통해 먼저 몇몇 연기자들의 조금은 오만한 행동을 꼬집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수정처럼 망가지는 역할은 하지 않으려는 연기자나 작가와 상의도 없이 맘대로 대사를 고쳐버리는 연기자들 말이다. 정말 그런 연기자들이 있다면 이 드라마를 보면서 좀 찜찜하지 않을까 싶다.또 한가지는 PD도 간접적으로 꼬집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 힘있는 중견작가들의 억지(?)나 불성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난감해하는 힘없는 PD들 말이다.물론 그런 연기자들이나 그런 PD들이 실제로 있는지 나는 모른다. 가끔씩 "촬영할 때에는 연기를 하다가 잘 안 맞는 부분이 있다 싶으면 PD와 잘 상의해서 대사를 고치기도 해요"라고 말하는 일명 '적극적인(?)' 연기자들의 기사나 인터뷰를 볼 때 난 작가의 역할을 문득 떠올리면서 '드라마 작가는 별로 힘이 없나보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기 떠문이다..극중극 구성인어아가씨 라는 극 속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극 사랑의 기쁨 을 보게 된다. 우리는 그 극속에서 과거에 벌어진 그 불륜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즉, 다시 말하면 과거에 벌어진 불륜의 현장과 불륜의 그 이후 현재를 동시에 보게 되는 것이다.사랑의 기쁨 에서 심수정이 한 대사는 어쩌면 아리영의 엄마가 과거에 했던 말일 수 있고, 사랑의 기쁨 에서 남편을 앗아간 그 후배의 대사가 어쩌면 과거 심수정이 했던 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리영은 심수정에게 가장 가혹한 벌을 주고 있다. 그것을 바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 진정으로 그 감정을 느껴보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극중극 사랑의기쁨 을 통하여 인어아가씨 의 심수정, 박근형, 아리영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