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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컴퓨터공학] 레드블랙트리 자바로 구현(소스코드 포함)(A+자료) 평가A+최고예요
    • BTNode.java Binary Tree의 Node를 구현해 놓은 class로, Data와 parent, left child, right child에 대한 pointer로 구성됩니다. 필요에 따라 Node들 간의 link를 연결해주고 끊어주는 operation들과, Inorder, Preorder, Postorder traversal operation을 구현해 놓았습니다. • BSTree.java Red Black Tree를 만들기 위한 Binary Search Tree class입니다. Insert, Remove, Find, Rotate를 위한 Operation을 구현해 놓았습니다. • RBTree.java BSTree class로부터 상속 받아 Red Black Tree class를 구현해 놓았습니다. BSTree에서의 Insert, Remove operation을 기본으로 하여 Insert, Remove 후 색상을 조정하는 operation을 추가하였습니다. • BSPanel.java JPanel에서 상속받아 Binary Tree를 그리는 Panel을 구성하였습니다. Inorder traversal을 통해 Node의 좌표를 구한 다음 Postorder traversal을 통해 Node를 그려나가는 operation을 구현해 놓았습니다. 또한 Node의 depth(level)을 얻어오는 operation과 색상을 얻어오는 operation이 있습니다.• RBTreeViewer.java Red Black Tree를 window에서 보여주는 class입니다. Node의 좌표 사이의 width와 height를 넘겨주며 BTpanel을 생성합니다. value값을 입력할 수 있는 value field와 Find, Remove, Insert button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밖에 자세한 소스 설명은 소스 안에 주석 처리로 해두었습니다.
    의/약학| 2003.11.27| 1페이지| 2,000원| 조회(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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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컴퓨터공학] 하노이타워 (자바로 구현, 소스코드 포함)
    n=3일 경우 출력 화면Move disk 1 from position A to position B Move disk 2 from position A to position CMove disk 1 from position B to position CMove disk 3 from position A to position BMove disk 1 from position C to position AMove disk 2 from position C to position BMove disk 1 from position A to position B**** MOVES COMPLETED **** The Number of Moves : 7
    공학/기술| 2003.11.27| 1페이지| 1,000원| 조회(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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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역사]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A+받았음) 평가A좋아요
    I. 머리말서른 개 정도나 되는 주제 중에서 '백범 김구'를 주목해보려 한 것은, 대학 3학년이 되도록 그 유명한 '백범일지'조차 읽어보지 못한 데 대한 자괴지심이 문득 생겨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읽었던 삽화 위인전 내용 중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동학 농민 운동에서 큰 활약을 하고,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관련하여 어느 일본인을 살해했다는 것 등 단편적인 사실 몇 가지뿐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마도 그 위인전은 어린이를 위해 쓰인 것이라 가시적 활약상에 초점을 맞춰 그려져 있었던 것 같다. 중, 고등학교 국사 시간은 수험에 대비할 목적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백범의 독립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기회가 없었을 뿐더러, 역사 전반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더군다나 40년대 이후의 독립활동은 수학능력평가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업 내용에서 외면받기 일쑤였다.五山고등학교 출신이라 남강 이승훈 선생의 독립 운동 조사를 염두에 두어보기도 했지만, 어렴풋이만 알고 있던 '백범 김구'의 행적을 백범일지를 비롯한 관련 서적을 직접 탐독해 보며 알아보는 것에 더 마음이 끌렸다.백범일지의 원문을 읽기는 힘들다고 판단되어서, 학술 원판이라고 되어 있는 최근에 출간된 책) 『백범일지』(학술원판), (서울:나남출판), 2002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 시간적 추이를 따라 글이 진행되었지만, 역순으로 가거나 중첩되는 내용이 있을뿐더러 日誌라기 보다는 회고록의 성격이 강한 글이었다. 내용의 10~20%는 견문록이라 해도 될 정도로 여러 지방으로 피신하여 활동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백범은 이를 힘든 내색 없이 의연하게 서술해 놓았다.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처음 느낀 것은 정말 솔직한 태도록 쓰였다는 점이다. 자신의 부족한 생각과 그릇된 행동조차 외곡 없이 진솔하게 표현해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왔던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다.백범의 독립 운동에 대해 정리하기 전에 백범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慶科)에 응시하였으나, 시험장에서 비리와 부조리가 성행함을 알게 되고 과거에 미련을 버렸다. 그 후 《상서》를 공부하는 도중 자신의 관상을 보았으나 얼굴과 온몸이 천격(賤格), 빈격(賓格), 흉격(胸膈)만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고 비관에 빠졌으나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김구, 위의 책, pp.38-39"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백범은 내적 수양에 힘써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마음 좋은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였는데, 이는 이후 백범일지를 통한 그의 행적에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었다.백범의 독립 운동을 언급하기 전에, 독립 운동 사상과 이념이 정립되는 과정을 정리해 보았다. 다른 요소들도 있겠지만, 그의 사상 정립에는 종교적, 교육적 영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1. 종교적 배경과거에 낙방하고 사회에 회의를 갖게 된 백범에게 큰 희망을 준 것은 동학에의 입문이었다. 18세 되던 해 그는 동학의 도리에 매료되어 입도하게 된다.) 김구, 위의 책, p.42신분에 따른 차별대우 철폐와 새 나라 건설에 대한 의지가 발단이 되어, 동학에서 그는 애국사상과 항일의식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이듬해 고부접주인 전봉준이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자 백범도 해주를 중심으로 동학군의 선봉장으로서 맹활약했다. 비록 일본군과 부패한 지배층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으나, 동학의 교리인 척양척왜(斥洋斥倭)와 만민평등사상(萬民平等思想)은 그의 민족주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써 반일민족주의 의식을 제고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밑에서 언급할 일본인 쓰치다(土田) 살해 사건, 일명 치하포( 河浦) 의거로 인해 인천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백범은 1898년 3월 탈옥 후 잠시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당시 백범은 평생의 한이 되던 상놈의 껍질을 벗고 평등하기보다는 월등한 양반이 되어 평범한 양반에게 당해온 오랜 원한을 갚고자 하는 생각이 가슴 속에 가득하였다) 김구, 위의 책,//www.kimkoo.or.kr)기독교로의 개종은 서양학문을 접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수용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고, 그로 인해 서양의 문명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고능선 선생을 마지막으로 문안드릴 때 나눈 대화) 김구, 앞의 책, pp.168-170에서 드러나듯이 기독교에의 입문은 지금까지의 왕조중심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민중자강의 애국적 운동으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경환, 『백범 김구 연구 I』(부산:신지서원), p.42, 19992. 교육적 배경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백범의 학문에 대한 기대와 욕구는 상놈의 처지를 벗어나고자 한 욕망의 표출에서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심한 양반 콤플렉스) 손세일, "김구 선생의 민족주의", 『나라 사랑』, 제21집, p.72, 1975에 젖어 있던 백범에게 과거 시험 낙방은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환멸과 좌절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동학 운동에 직접 참여한 후 1895년 유학자 고능선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백범의 애국 사상과 항일 의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백범은 고능선으로부터 의리와 대의명분의 유교적 교육을 받았으며 이는 백범의 가치관에 큰 줄기를 형성하였다.쓰치다 살해 사건으로 인천 감영에 수감되었을 때에는 감리서 관리의 호의로 중국에서 발간된 『태서신사』(泰西新史), 『세계역사지지』(世界歷史地誌) 등을 비롯한 저술을 통해 서양 문물을 접하게 되었는데) 김구, 앞의 책, pp.108-109, 이는 국수주의적인 의식을 변화시켜 서양 문물의 근대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III. 백범의 독립 운동백범의 독립 운동은 우리나라 독립 운동의 역사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일생은 독립 운동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백범일지 상권 마지막 부분에 보면, '기미년에 건너온 이후로 지금까지 10여 년에 그 동안 지내온 일에 대해서는 중요하고 진기한 사실들이 많으나 독립 완성 이전에는 절대 비밀로 할 것임') 김구, 앞의 책, p.293이라 하고 있으나, 주요한일본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쓰치다를 살해한 행위가 그 예이다. 살해 사건으로 인해 투옥된 백범은 심문장에서 일본 순사 와타나베를 향해"지금 소위 만국 고법이니 국제 공법 어느 조문에 국가간 통상, 화친 조약을 맺고서 그 나라 임금이나 왕후를 죽이라고 하였더냐.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하여 우리 국모를 시해하였느냐. 내가 살아서는 이 몸을 가지고,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 맹세코 너희 코 너희 임금을 죽이고, 너희 왜놈들의 씨도 없이 다 죽여 우리나라의 치욕을 씻을 것이다.") 김구, 앞의 책, p.101라고 꾸짖었는데, 이를 통해 그의 배일사상이 왕조 중심의 애국충군사상(愛國忠君思想)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동학 운동을 할 때까지만 해도 백범은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2. 제2기 - 애국 계몽 운동2기는 백범이 예수교에 들고, 애국계몽운동과 신민회 활동을 펼치던 시기로 잡았다. 백범은 쓰치다 살해 사건으로 인해 인천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 서양 서적을 접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수용함에 한편,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장련읍에서는 예수교를 믿으면서, 교육 활동에 힘을 쏟았다. 당시 황해도에는 해주와 장련에 공립학교가 설립되는) 김구, 앞의 책, p.178등 구국 운동으로써의 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많이 부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을사년에 신조약이 체결되자, 재야 학자들은 의병을 일으켰는데, 군사 지식은 없고 단지 하늘을 찌르는 의분심(義奮心)만 가지고 일어나 도처에서 실패하였다. 먼저 의병을 일으킨 재야 학자들이 구사상 쪽이라면, 예수교인들은 신사상 쪽이었는데 함께 모여서 논의한 결과 상소(上疏)를 하기로 했다.) 김구, 앞의 책, pp.185-186상소를 한 다섯 지사가 경무청에 구금되고 나서, 종로에서 공개 연설을 하다가 접전이 일어 중단되었다. 모였던 지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애국사상을 고취하고 신교육을 실시하는 근본적인 방안에 힘쓰기로 하였으며, 백범도 황해도로 돌아가 교육에 종사하였다. 해주, 배천다.1909년 10월, 백범은 안중근의 의거로 잠시 해주 감옥에 수감되었으나 무혐의로 곧 출감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 연말 '안악 사건(일명 안명근 사건)'에 연루되어 15년 징역을 언도 받았고, 수감 중에 터진 '105인 사건'에 걸려 또 2년을 추가 받아 17년의 징역을 치르게 되었다. 처음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14년에는 17년 전 치하포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던 인천 감옥으로 이감되어 항만 축조공사 등에 강제 노역 당했다. 백범일지에 나와 있는 그의 옥중 생활은 끔찍하기가 비할 데 없었으나, 결연한 태도로 담담히 진술되어 있는 것을 보니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는 항일에의 의지를 다잡는 결심의 표로 이름을 구(九)라 하고, 호를 백범 연하(蓮下)에서 백범(白凡)으로 바꾸었다. 이름을 바꾼 것은 일제의 호적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이고, 호를 바꾼 것은 "우리나라의 하등사회, 곧 백정(白丁) 범부(凡夫)들이라도 애국심이 지금의 나의 정도는 되고야 완전한 독립 국민이 되겠다는 소원을 가질 수 있겠다") 김구, 앞의 책, p.266는 생각에서였다. 지금까지 백범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무안해졌다.1914년 인천 감옥에서 가석방된 백범은 안악으로 돌아왔다. 그는 부인이 교원으로 있던 안신학교의 일을 돕다가 신천 동산평의 농감이 되어 농장 내의 소작인들에게 근검절약, 상부상조의 질서를 가르치는 한편, 학교를 세워 자녀교육에 힘쓰도록 하였다.정리하며 살펴본 것처럼, 1900년대 초반의 애국계몽운동은 그 전 동학에서의 항일 운동과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우선 충군 사상에서 민족주의로의 사상적 변화가 있었으며, 무장활동에서 교육 및 계몽 활동으로 실천 방법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3.1운동을 전후로 해서는 활동 무대 자체가 국내에서 국외로 바뀌고, 대외 활동을 전개하는 등 큰 변화를 한 번 더 겪게 된다.3. 제3기 - 상해에서의 임시 정부 활동기미년에 3.1 운동이 발발하였을 때 백범은 국내에서의 독립 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상해로다
    인문/어학| 2003.11.27| 7페이지| 1,000원| 조회(2,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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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음악] 라 트라비아타 감상문 평가A좋아요
    『La Traviata』를 보고『라 트라비아타』는 예전부터 많이 들어오던 오페라였다. 중학교 때인가 교과서에서 처음 제목을 접할 수 있었고, 부끄럽지만 고등학교 때가 되서야 "라 트라비아타"라고 띄워 읽는 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등장인물은 누구인지, 또 그 줄거리는 어떤지 전혀 못하고 있었고, 단지 이탈리아 오페라라는 것 정도만이 직접 『라 트라비아타』를 감상하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전부였을 것이다.) 입시 과목만을 위주로 하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서의 음악 교육의 현주소가 아닐까?물론 대사와 자막이 모두 외국어였기 때문에 직접 감상하였을 때도 그 내용을 잘 이해하기는 힘들었고, 감상 후에 장면을 떠올리며 도서관에서 찾은 몇 권의 책들에 소개된 내용을 읽고 나서야 어느 정도 『라 트라비아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라 트라비아타』는 이탈리아어로 '방황하는 여인'라는 뜻으로, 베르디의 28편의 오페라 가운데 열여덟 번째의 작품이다. 라 페니체 극장에서 신작 오페라를 의뢰받았을 때 베르디는 제한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에서 벗어난 작품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 전혀 새롭고 방대한 수법으로의 전환을 꾀했는데, 맨 먼저 선택한 것이 『리골레토』요, 다음이 『라 트라비아타』라고 한다.) 이덕희, 오페라를 찾아서 , 서울:예하, 1991, p152어렸을 때부터 클래식에는 별 관심을 느끼지 못했고, 오페라를 직접 관람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베르디의 작품 세계의 전환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6살 때부터 피아노를 9년가량 배웠지만 체르니 50번 이후 쇼팽과 베토벤 작품 중 몇 개만을 다루었고, 이후엔 Jazz와 Newage 쪽에 흥미를 느꼈다. 오히려 피아노를 그만 배우고 나서 클래식 음악-정확히 말하면 기악 음악-에 관심이 생겼지만 (이 수업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오페라를 직접 관람한 적은 없다.다만 『라 트라비아타』는 아리아 중심이라는 것과, 화성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라 트라비아타』의 첫 장면은 정말 화려했다. 잘 꾸며놓은 비올레타의 집은 마치 궁전의 한 부분 같았다. 몇몇 사람들이 등장하고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에게 소개된 후, 알프레도가 손님들의 권유로 '축배의 노래'(Libiamo libiamo ne'lieti Calici)를 부르니 비올레타가 일어나 잇따라 부르고 주변의 인물들이 즐겁게 모두 이에 합류한다. 혹시 지루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 오페라를 보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첫 장면에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나와 한결 편안하게 감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익숙한 멜로디가 '축배의 노래'라는 제목을 가졌다는 것은 오페라를 보고 나서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참고 서적들과 매치를 해보았을 때다. 다른 모든 아리아들의 제목도 같은 방식으로 알게 되었다.옆방에서 춤곡이 흘러나오자 다들 그 방으로 춤을 추러 가는데, 갑자기 비올레타는 기침을 하며 의자에 주저앉는다. 얼마 후 정말 창백해 보이는 얼굴을 거울에 비춰볼 때 알프레도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비올레타는 거절하다가, 그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네주며 그 꽃이 시들면 다시 오라고 한다. 알프레도가 떠나고 나서 혼자 남았을 때 부르는 '아, 그대였던가'(Ah, fos e lui)는 사랑을 찾은 비올레타의 청순한 면을 표현해 주는 듯 했다. '아, 그대였던가'는 단조로 시작하는데, 참사랑을 찾은 기뻐해야 할 순간에도 자기의 처지를 생각하며,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불행하게 하지 않을까 우려해 볼 수밖에 없는 그녀의 가련한 상태를 슬픔의 어조인 단조를 사용해서 표출시킨 후 후반부에 가서야 비로소 장조로 전환된다.) 김원경, , 1978, 19p2막에서는 서로 깊이 사랑하게 된 알프레도와 비올레타가 시골 별장에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2막은 1막으로부터 3개월 후이다.둘이 산책을 나가서 뛰어 놀다가 호수에 빠져서도 즐겁게 노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를 비롯한 시골 생활 장면들은 영화가 아니었다면 그 표현에 많은 제약이 가해졌을 것이다. 그 곳에서 잠시 동안 행복한 세월을 보내지만, 알프레도가 돈을 벌기 위해 파리로 떠난 사이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나타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제르몽은 처음에는 비올레타가 아들의 돈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녀를 힐책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귀중품까지 전부 팔아가면서 모든 지출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베르몽은 그녀의 과거 때문에 아들과의 관계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며, 그녀의 고귀한 성품으로 알프레도를 떠나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떠나고, 알프레도는 분노한 모습으로 파티가 열리고 있는 플로라의 집에 찾아간다. 비올레타는 두폴 남작과 함께 입장하고, 알프레도와 두폴 사이의 긴장은 고조되어만 간다. 알프레도와 단둘이 있게 됐을 때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에게 떠나달라고 하는데, 남작을 사랑하느냐는 그의 물음에 비올레타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의 격분은 폭발한다. 그는 모든 손님들을 소리쳐 부르고는 그 앞에서 비올레타를 잔인하게 모욕하고, 비올레타는 기절한다. 2막에서는 극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였는데, 극적인 장면들도 모두 음악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현실성을 많이 잃는 듯 했다. 오페라라는 장르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부분이 일반인-대중문화에 익숙한-들에게 오페라 감상을 조금은 낯설고 버겁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3막에서 비올레타는 폐결핵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의사는 그녀가 몇 시간 밖에 더 못살 것이라 진찰한다. 병상에 누워 잘못을 뉘우치는 제르몽의 편지를 꺼내 읽어보는데, 거기에는 알프레도가 곧 용서를 구하러 갈 것이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편지를 읽고 나서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며 그녀는 이제 자신의 삶이 끝났다는 것을 슬프게 노래한다. 'Addio del passato bei sagniridenti'에서는 애련하고 처절한 비올레타의 모습이 느린 속도로 표현된다. 이윽고 제르몽과 알프레도가 비올레타를 찾아왔으나, 결국 그녀는 알프레도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라 트라비아타』는 그 동안 내가 갖고 있던 오페라에 대한 선입견-지루하고 따분할 것 같다는-을 많이 없애주었다. 오페라를 단지 한 편 보고 나서 오페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라 트라비아타』를 보면서 오페라라는 장르의 특색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감상한 『라 트라비아타』는 좁은 오페라 무대 위에서의 공연을 찍어 놓은 것이 아니라, 무대의 제약성이 없는 영화의 형식을 빌었기 때문에 좀더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감상을 할 수 있었다.『라 트라비아타』를 보면서 19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일 텐데 당시 시대 상황에서 볼 때 상당히 부도덕하고 자극적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라 트라비아타』가 공연된 이후 목사들과 사회 보수층은 엄청난 규탄을 퍼부었고, 이는 오히려 더할 나위없는 광고 효과를 내었다고 한다. 비평가들과는 달리 당시 대중들은 이 작품에 열광했고, 이러한 대중들의 선택과 호응은 초연 이래 거의 150년이 되는 오늘날까지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 중의 하나로 존속해 올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 베르디는 타고난 상업적인 작곡가였기 때문에, 청중들을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주로 비평가들을 무시하고 매표 수입에 주의를 기울여라'라고 젊은 신임 흥행사에게 충고한 일화는 베르디의 생각을 잘 나타내 준다.
    독후감/창작| 2003.11.27| 4페이지| 1,000원| 조회(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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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음악] 살로메 감상문 평가B괜찮아요
    I. 오페라 "살로메"백과사전에 따르면, 살로메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인물이라고 한다. 성서에는 이름은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유대의 역사학자 요제프스(37? 100?)의 《유대 고사기(古事記)》에서 살로메라 적고 있다. 헤롯의 생일축하연에서 춤을 추었는데, 헤롯이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하자 어미의 사주(使嗾)를 받은 살로메는 세례자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여 이를 얻어낸다. 이는 세례자 요한이 헤롯과 그 형수 헤로디아와의 결혼을 평소 나쁘게 생각하여 그 행위를 나무랐기 때문이다. 이 일화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에서 사뭇 다르게 해석되어 나타난다. 살로메는 어미의 사주를 받았다기 보다는 자신의 일방적 사랑을 거부하기만 하는 요한에 대한 복수심으로 요한의 목을 받아내고자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는 1905년에 완성되었는데, 바그너를 뛰어넘는 최초의 중요한 음악극으로 취급된다. 슈트라우스는 이곳에서 바그너의 기법을 발전시켜 풍부한 색체의 새로운 음향세계를 만들어낸다.II. Richard Georg Strauss (1864.6.11~1949.9.8)독일의 작곡가 지휘자. 뮌헨 출생. 아버지 F.슈트라우스도 뛰어난 음악가로서 뮌헨 궁정관현악단의 제1호른 주자 겸 왕립음악학교 교사를 지냈다. 부모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이어받은 그는 11~16세 때까지 그곳 궁정악장(宮廷樂長) 마이어에게 사사하여 12세 때 《축제행진곡》(작품 1)을 작곡하고 13세 때는 멘델스존의 협주곡과 바흐의 평균율(平均律)을 연주하였다 한다. 1882년~83년 뮌헨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공부하고, 쇼펜하우어에 심취하였다. 또 그 사이 자기의 작품을 가지고 빈 베를린 등지로 연주여행을 하면서 뷰로와 사귀는 등 그의 재능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84년 《교향곡》(작품번호 12)이 뉴욕필하모니에서 초연되고, 같은해 뷰로의 뒤를 이어 마이닌겐관현악단의 악장에 취임, 지휘자로서도 활동하게 되었다. 브람스에게 재능을 인정받은 것도 이 무렵이다. 슈트라우스는 철저한 반(反)바그너주의자였던 아버지의 감화로 바그너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그 후 점차 리스트와 바그너에 심취, 마침내는 열렬한 바그너 신봉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오페라에서는 바그너보다 감미로우면서도 관능적인 선율로, 교향시(交響詩)에서는 리스트보다 자유로우면서도 광범한 내용 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켜 나갔다. 87년에는 소프라노가수이자 자신의 가곡에 대한 가장 뛰어난 해석자가 된 파울리네와 결혼하였다. 그 후 그는 뮌헨 바이마르 베를린 빈 등지의 각 오페라극장 지휘자를 역임하였으며, 또 베를린필하모니와 빈필하모니의 지휘도 맡고, 잘츠부르크음악제를 비롯한 유명한 음악제에서도 지휘를 맡았다. 1908년 뮌헨 근교에 산장을 짓고 때때로 연주여행을 하는 이외에는 주로 그곳에서 음악 창작에 몰두하였다. 슈트라우스의 생애에 오점이라 할 수 있는 비극은, 만년에 그가 나치스정권에 협력한 결과가 된 몇몇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으로부터 주의 사상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독일 후기낭만파의 마지막을 대표하는 대작곡가로서의 공적은 부인할 수 없다. 주요작품으로는 《살로메》(1905) 《엘렉트라》 (1909) 《장미의 기사(騎士):Der Rosenkavalier》(11) 등 15개의 오페라, 《돈 후안 Don Juan》(1889)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돈키호테 Don Quixote》(98) 《영웅의 생애:Ein Heldenleben》(99) 등을 비롯한 10곡의 교향시, 그리고 수많은 가곡과 약간의 실내악곡 등이 있다.III. 감상 후기오페라가 시작되면 나라보트가 살로메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살로메를 보며 시종에게 "How lovely is the princess Salome tonight"이라는 첫 대사를 읊어 살로메에 대한 그의 사랑을 표현한다. 살로메는 머리에 아름다운 장식을 하고 있다. 갑자기 정원의 수조로부터 요한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그 내용은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스를 비판하고 있었다. 살로메는 그 목소리에 끌려 수조 속의 인물 요한을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갇혀 있는 요한을 내보내지 말라는 헤롯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살로메는 나라보트를 유혹하여 수조에 갇혀있는 요한을 데려오도록 한다. 나라보트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살로메는 자신을 위해 그 일을 해줄 수 있을 거라며 유혹적인 눈빛을 보낸다. 살로메를 사랑하는 나라보트는 어쩔 수 없이 요한을 데려오게 한다. 요한은 털복숭이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얼굴과 목소리는 의연하였으며, 살로메는 그에게 반하게 된다. 살로메는 그를 육체적으로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 색정적인 모습으로 요한을 유혹하려 한다. 그녀의 시선은 body hair mouth로 이어지며 그와 짝을 이루어 색상의 전개 white black red도 이어져 요한의 육체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다. 그 사이에 살로메의 색정적인 모습을 본 나라보트는 괴로움에 못 이겨 자살하고 마는데, 상황 설정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졌다. 요한은 살로메에게 'daughter of babylon', 'daughter of sodom' 등의 욕을 하며 살로메를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다시 수조 속으로 되돌아간다. 살로메가 요한을 유혹하는 장면은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 연기가 상당히 잘 어울렸던 것 같고, 요한의 의연한 연기와 음성 역시 더할 나위 없었다. 다만, 카메라가 살로메의 시선에 맞춰 요한의 머리, 입 등을 클로즈업해서 오랫동안 보여준 장면은 조금 민망하였다.요한에게 거부당한 살로메는 복수심에 불탄다. 이 때 테라스에서 헤롯이 등장한다. 헤롯은 아내의 딸 살로메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정에 사로잡혀 있다. 몇 명의 신하들이 수조를 바라보며 요한을 처형하기를 요구하지만, 왕은 상당히 두려워하는 눈치다. 신하들 사이에서는 요한이 하느님을 알현했는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헤롯은 요한에 대한 얘기를 피하는 듯 살로메에게 관심을 돌리고, 자신을 위해 춤을 춰 달라고 한다. 그녀가 쉽사리 응하지 않자, 왕은 살로메의 춤을 보기 위해 어떠한 소망이라도 들어주겠다고 한다. 설령 자신의 왕국의 반일지라도 말이다. 자신의 아내의 딸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 또한 비정상적이지만, 자신의 왕국의 반이라도 내놓겠다는 헤롯의 말은 그가 탐욕스럽고 무지한 왕임을 보여준다. 살로메는 헤롯의 청을 수락하고, 드디어 그 유명한 '일곱 개 베일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일곱 개 베일의 춤'은 몇 번 들어서 알고 있는 곡이었지만, 일곱 개 베일로 어떻게 춤을 추는 것인지 항상 궁금했었다. 알고 보니 '일곱 개 베일의 춤'은 관능적인 누드쇼였다. 춤 자체는 멋스럽지 않았으며, 조금 어설프기도 하였다. 헤롯은 살로메가 베일을 하나씩 벗을 때 마다 점점 더 흥분해간다. 결국 음악의 템포가 빨라지면서 마지막 베일 하나까지 다 벗은 채 전라의 모습으로 헤롯 앞에 쓰러진다. 헤롯은 살로메의 관능적인 몸짓에 넋이 나가 그녀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한다.
    독후감/창작| 2003.11.27| 3페이지| 1,000원| 조회(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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