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당권과 주택임차권자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시오.① 저당권저당권은 채권자가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목적물을 제공자(채무자 또는 제 3자)로부터 빼앗지 않고 그 사용, 수익의 권한을 담보물소유자에게 맡겨 놓은 채, 채무의 변제가 없는 경우에 그 부동산을 처분해 그 가액으로부터 우선적으로 변제를 받을 수 있는 담보물권입니다.저당권의 법률적 성질은 교환가치를 직접적, 배타적으로 지배하고, 장부에 권리를 등기, 등록할 수 있는 공시제도가 존재해야 한다. 또한 교환가치로부터 경매를 통해 우선변제가 가능하고, 특정채권을 담보함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특정채권이 무효, 취소인 경우 효력을 상실합니다.저당권의 종류에는 보통저당권과 근저당권이 있으며, 은행 실무에서는 부종성이 완화된 근저당권이 일반화 되어있습니다.구 분보 통 저 당 권근 저 당 권부종성성 립저당권 성립당시 피담보채권이 존재해야함.저당권 성립당시 피담보채권이 존재하지 않아도 됨.존 속피담보채권이 소멸되면 저당권도 소멸됨.피담보채권이 소멸되어도 저당권은 소멸되지 않고, 근저당권의 말소를 청구할 수 있음.채권의 특징여부특정채권을 담보불특정채권을 담보등 기 금 액특정채권금액을 등기채권최고액을 등기담보 내용(우선변제채권)원본+이자+위약금+저당권실행비용+원본의 이행기일 경과후 1년분의 지연이자채권최고액 범위내에서 원본+이자+위약금+원본의 이행기일 경과후의 지연이자(기간제한없음)+저당권 실행비용② 주택임차권자의 대항력과 소액보증금주택임차권자는 계약체결 당시 기준으로 주거용인 경우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거 임대차의 보증금이 보호대상이 됩니다. 이는 주택의 등기하지 아니한 전세계약에 관하여도 준용하여, 미등기전세도 동일한 보호대상이 됩니다.주택임차권자는 주택임차권의 대항력으로 저당권과의 관계를 정하게 됩니다.주택임차권의 대항력이란 임대인이 임대주택의 소유권을 제3자에게 이전 시키거나, 임대주택에 제한물권을 설정하더라도 임차인이 그 신소유자나 제한물권자에 대하여 임차인으로서의 지위를 주장하고 임대주택의 사용, 수익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이 때 대항력 취득에 필요한 조건은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전입신고)입니다. 대항력의 취득시기는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한 때에 그 익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규정합니다.소액보증금은(2001.9.15~현재) 지역에 따라 차등적용되며, 수도권중 과밀억제권역에서의 보증금이 60백만원 이하일 때에 20백만원, 광역시(군지역, 인천 제외)에서의 보증금이 50백만원 이하일 때 17백만원, 기타의 지역에서의 보증금이 40백만원 이하일 때 14백만원입니다.이 때 한도액은 소액임차권자가 다른 담보물권자보다 우선변제 받을 수 있는 범위는 대지가액을 포함한 주택가액의 1/2에 한정됩니다.(주임보 8-3) 또한 하나의 주택에 임차인이 2인 이상이고 그 각 보증금의 합산액이 주택가액의 1/2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그 각 보증금의 합산액에 대한 각 임차인의 보증금의 비율로 그 주택가액의 1/2에 해당하는 금액을 분할한 금액을 각 임차인의 보증금으로 봅니다.(주임보령 3-3)보증금이 이를 초과하는 때에는 그 전액에 대하여 우선 변제권이 없습니다. 따라서 당초의 보증금액 또는 계약 갱신에 의한 보증금액이 위의 금액을 초과하는 때에는 그 금액 전부에 관하여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③ 근저당권과 주택임차권자의 대항력과의 우선순위주택임차권자가 대항력을 취득하면 최우선변제권이 성립하여 소액보증금에 대해 저당권보다 선순위로 변제 받게 됩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는 무주택영세서민의 생존권적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소액보증금을 임대인에게 지급한 임차인에 대하여는 일반임차권자로서 가질 수 있는 권리에 더하여 임차주택의 환가대금으로부터 다른 담보물권자보다 자기채권의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주고 있습니다.소액임차인이라도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한 특별보호를 받으려면 동법 제 3조가 규정하는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의 대항요건을 모두 구비하고 있어야 합니다.즉, 주택임차권자의 소액보증금은 저당권보다 우선하는 최우선변제권의 보호대상이며, 소액보증금을 초과하는 임대차보증금은 채권이지만, 예외적으로 물권인 저당권과 일자를 기준으로 선순위를 정하게 됩니다.2. 근저당권 계약체결과 관련하여 피담보채무의 범위에 대하여 설명하시오.① 채권자는 피담보채무의 범위를 달리하는 계약 유형 가운데(예: 특정근, 한정근, 포괄근) 어느 하나를 설정자가 선택하여, 근저당권설정계약서에서 정한 채권최고액 범위내에서 이자, 지연배상금 기타 부대채무 포함한 현재 및 장래 발생할 채무에 대해 근저당권의 효력이 미칩니다.특정근담보는 특정된 거래계약(예: 년 월 일자 여신거래약정서)으로부터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채무를 담보하며, 그 채무가 기간연장된 때에도 담보합니다. 그러나 재약정 또는 다른 여신으로 전환된 때에는 담보하지 않습니다.예) 2010년9월8일 여신거래약정서한정근담보는 특정한 종류의 거래(예: 증서대출, 어음대출, 외국환거래 등)에 대하여 이미 맺어져 있거나 앞으로 맺게 될 거래계약으로부터 현재 발생되어 있거나 앞으로 발생하게 될 채무를 모두 담보하며, 그 채무의 기간연장이나 재약정은 물론 같은 종류로 전환된 때에도 담보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여신으로 전환된 때에는 담보하지 않습니다.
" 경기관람체험 리포트“과 목 : 스포츠비즈니스마케팅Ⅰ. 서 론저는 평소 개인적으로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경기장을 종종 찾았습니다. ‘LG 트윈스’의 팬으로서 잠실야구경기장을 홈경기장으로 함께 쓰고 있는 ‘두산’과의 시합은 그 뜨거운 응원 열기를 직접 몸으로 느끼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관람을 해왔습니다.그러나 4학년으로 점점 취업 준비로 인해 여유가 없어짐에 따라 유일하게 스포츠를 관람해왔던 야구 경기를 관람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번 OCU “스포츠비즈니스마케팅" 과목 2차 리포트 “경기관란체험평가” 과제를 하며 오래간만에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과천경마공원”에서 “경마스포츠”를 관람하는 것은 리포트와 별개로 “경마스포츠”의 매력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즐겁고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다음 본론에서는 “경마스포츠”의 서비스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와, “프로야구”와 같이 국민들에게 좀 더 친숙한 대중 스포츠가 되기 위해 어떤 개선점들이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Ⅱ. 본 론1. “경마스포츠” 관중과의 인터뷰; 10명의 관중과의 인터뷰를 목표로 했으나, 경마가 시작된 이후에는 마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또 결과에 따라 배당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분주한 분위기로 인해 막상 인터뷰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경마가 시작하기 전에 “과천경마공원” 안에서 경기장이 아닌 경기장 밖에 조성된 공원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질문은 과제 시 주어진 6가지 질문을 위주로 ‘경마스포츠’의 특성을 감안해 질문과 그 순서를 조금 수정했습니다. 질문항목의 반복을 방지하기 위해 시작 전에 질문을 나열하고 ,이후 번호로 대신하겠습니다.- 질 문 -① 얼마나 자주 경마경기장에서 경기를 관람 하십니까?② 경기경마장에서 관람을 하신 건 얼마나 되었습니까?③ 오늘의 경기일정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④ 당신이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 승리하는 것이 경기 관람 만족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하십니까?⑤ 당신은 경마스포츠를 하며 금전적으로 얼마나 손익을 보았습니까?⑥ 오늘 경기 관람 체험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⑦ 경기관람 체험의 만족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구단/협회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1) 부천시 원미구 중1동, 강OO (50)① “석 달에 한번 정도? 주말에 그냥 친구들이랑 오는 거지 머”② “7년 전쯤 된 거 같네. 친구 따라 그냥 왔다가 재미로 오는 거지 머. 돈도 따고 스트레스도 풀고(허허)”③ “주말이면 하니까, 머 알고 말고 할 게 없지”④ “아예 안 중요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이기는 게 좋지. 그런데 나는 별로 크게 (베팅을) 안 하니까 이기면 좋고, 안 이기면 좀 아쉽지(허허)”⑤ “난 운이 좋았어. 처음 친구랑 왔을 때 그 때 첫 게임에 5만원 따고, 할만하다 싶어서 그 때 돈을 20만원을 가져왔는데 다 까먹고, 그 때부터는 재미로 했지. 그냥 이래저래 본전인거 같애”⑥ “오늘 내 말이 역전하거지.(하하)”⑦ “여자들이 좀 좋아할만 한 거 그런 거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지금도 와이프가 주말에 내가 여기 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해”2)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수동, 강OO (24)① “오늘 처음 왔어요. 인터넷에 데이트 코스로 경마장이 있길래 와봤습니다”② 생략③ “인터넷의 사이트에서 매주 주말이면 경마경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④ “아직 경마 경기는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공원에 폭포도 있고, 큰 잔디밭도 있고 데이트 코스로 좋은 것 같습니다. 안에 경마경기장에 들어가서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기대됩니다”⑤ 생략⑥ “경마가 끝나고 난 뒤에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영화를 볼 예정입니다. 요즘 데이 트 코스로 경마장을 많이 오는 거 같은데, 이 곳에 좀 더 젊은 층들을 위한 시설 이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3) 평택시 비전동, 김OO (43)① “한 달에 서너 번 정도 와. 취미생활이지”② “한 10년 더 됐지. 우리 때 10년 전에 경마가 한 번 유행처럼 됐었어”③ “자주 오니까, 그냥 오게 되는 거지. 주말에는 경마 하니까”④ “내가 건 말이 1등으로 들어오면 그 때 기분이 좋지. 스트레스도 풀리고”⑤ “그냥 재미로 하는거지. 이거 돈 따려고 했으면 이렇게 오래 못왔어. 주위에서 큰 돈 잃는 사람도 종종 보고”⑥ “단식은 앞에서 나눠주는 경마잡지 보면 대부분 맞추는데, 복식 맞출 때가 그래도 제일 잼있지”⑦ “글세.. 많이 좋아졌어. 공원도 생기고”4) 서울특별시① “자주는 아니고 그냥 가끔 데이트 할 겸 와요”② “작년에 처음오고 이번이 두 번째예요”③ “인터넷 사이트에서 경마장에 대한 추천을 보고 오게 되었어요”④ “적어도 반절 이상은 이기는 게 좋은 거 같아요(웃음) 남자친구랑 함께 같은 팀이 될 수 있어서 좋은데 자꾸 지는 것 보다는 이기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같이 응원도 하고. 그리고 말이 들어올 때 그 뜨거워지는 분위기가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요”⑤ “저번에 왔을 때 5천원 인가 돈을 땄어요. 머 작은 돈이지만 데이트 하면서 돈을 번다는게 재미있었어요”⑥ “여기 두 번 째 와보는데 처음 올땐 몰랐는데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놀이시설도 되어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나중에 아이가 생겨도 함께는 오지 못할 것 같 아요. 왠지 아이들에게는 위험할 것 같기도 하고. 아직 경마는 스포츠 보다는 도박 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아요. 이런 점에 대한 이미지 변화 노력이 필요하겠죠”2. 관중들의 경기관람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부수적 요인 평가1) 입장권 구입 절차경마장에 입장할 때 느끼는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제가 미리 입장했던 것이 이유이기도 하고, 경기 시작 전에 경마공원을 구경할 겸 미리 미리 입장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던 것이 그 이유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경마가 시작된 이후에도 계속되는 게임에 맞추어 추후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입장하는 사람들이 분산되는 경향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크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비교를 해보면, 빠르면 30분, 길게는 1시간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던 야구경기에 비해 편했습니다.2) 경기장내 사인경기장 안에서 사인을 보는 것은 매우 편리했습니다. 경마의 경기 특성상 대형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이 전광판에 경기 전 말들의 입장과 기수의 얼굴, 그리고 경마시합의 내용과 결과까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야구경기장과 비교해보면 야구경기장에서도 대형전광판이 있지만 주로 경기의 내용보다는 기록에 치중하는 반면, 경마장에서는 경기의 박진감이나 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좀 더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3) 좌석많은 경마스포츠 관람객에 맞게 좌석은 매우 많았습니다. 경마경기를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경사가 있도록 만든 좌석의 규모에서 조금은 놀라기도 했습니다. 좌석은 편리하다 보다는 조금은 작았고 좀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습니다.4) 경기장내 매점매점은 매우 편리했습니다. 좌석에 있다가도 음료수나 과자 등을 사기위해 계단을 나가면 곧장 매점과 편리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매점에는 인스턴트 음식뿐만 아니라, 국수와 같이 간단히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메뉴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매점에는 각 종 수많은 경마 잡지가 비치되어 있었습니다.5) 경기장 시설① 마권사는 곳마권을 사는 곳은 매 게임마다 중간 중간 마권을 사기 위한 사람들도 줄이 섰습니다. 저도 마권을 사 보았지만, 줄이 길어도 빨리빨리 진행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매우 간단한 시스템과, 여러번의 반복으로 인해 이러한 절차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그 이유인 것 같았습니다.② 초보경마교실직접 상담을 받아보진 않았지만, 이름처럼 이곳은 경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같았습니다.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람은 젊은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친절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됩니다.③ 어린이 휴게실어른들이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어린이휴게실”이 있었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했습니다. 아직까지 어린이들이 경마장에 많지 않은 것이 큰 이유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경마장의 고객을 생각하는 이러한 노력은 좋다고 생각합니다.6) 경기장 분위기 (아나운서, 음악, 관중행동, 응원, 프로모션 등)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경기장 분위기는 바로 말들이 골인하기 직전 마지막 트랙을 도는 그 순간입니다. 얼핏 보아도 수천이 넘어 보이는 모든 관중들이 모두 다 일어나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손에 경마 잡지나 신문을 들고 응원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러한 광경은 매 게임마다 일어났으며, 그 열기는 매번 마치 야구경기에서 9회말 2아웃에서 역전이 일어났을 때의 열기와 같았습니다.그리고 모바일을 이용한 마권 구입을 홍보하는 부스가 있었으나 그 호응은 매우 미비한 수준이었습니다. 아나운서는 경기에 대한 진행과 경마의 결과에 대해 빨리 정확하게 전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음악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민족으로부터 역사를 구출하기”경영학과 4학년========================================================================Ⅰ. 서 론Ⅱ. 본 론1. 프라센지트 두아라의 “민족으로부터 역사를 구출하기- 근대 중국의 새로운 해석”2. 민족으로부터 한국-일본의 역사 구하기Ⅲ. 결 론========================================================================Ⅰ. 서 론오늘날 민조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불안하다. 민족이라는 논쟁적이고 우연적인 개념이 민족사(national history)를 통해 시대를 거쳐 진화해 온 동일한 민족적 주체라는 허위의 실체로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은 왕조?귀족?성직자?(봉건)관료를 극복하여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힘을 체현하여 새롭게 실현된 지고의 역사주체로 등장하게 된다. 민족이야말로 근대라는 미래에 그 운명을 실현시키는 집단적인 역사주체가 된 것이다.)역사를 보는 관점에는 지배층의 지배체제의 변화라던지, 지배-피지배층과의 갈등관계를 살피는 등의 여러 관점이 있지만 최근들어 민족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일 또한 많다. 역사라는 것이 단순 나열로 그치지 않고 해석하고 재생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가가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결국 이 책을 통해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족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마냥 비판한다기 보다는 이미 어느정도 국민국가로서 민족중심의 역사보기 자체의 큰 틀을 부정하고 있진 않다.크게 저자는 책의 내용을 두 부분으로 나눴는데 제 1부에서는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족에 관한 이론적 문제이고, 제 2부는 양지분기 개념에 따른 역사 서술을 시도한, 경험적 연구에 비중을 둔 논문 다섯편이다.앞으로 본론에서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간략한 내용과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둘러싼 일본과의 역사문제에 대해 서술해보고자 한다.Ⅱ. 본 론1. 프라센지트 두아라의 “민족으로부터 역사를 구출하기 - 근대 중국의 새로운 해석”제 1장. 단선론적 역사와 국민국가이 장에서는 그동안 비교적 획일화되었던 역사보기관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을 읽었다는 가정하에 세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이러한 비교적 획일화된 역사보기의 시초는 세계 열강들의 제국주의라고 생각한다. 제국주의 이전에는 세계에 다양한 민족들의 신앙이나 관습등이 있었다. 하지만 영국, 독일, 프랑스 등과 같은 세계 열강들이 아프리카나 인도 등 세계 곳곳에 식민지 지배를 함에 따라 이와같은 다양한 민족들의 모습은 억눌러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이러한 지배를 정당화 하기 위해 자신들의 문화를 우등한 것으로 그렇지 않은 토착문화를 열등한 것으로 인식시킴에 따라 이러한 단선록적 역사관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고 생각한다.제 2장.먼저 양지분기란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책에 나온 개념을 살펴보면, 양지분기 개념은 과거는 일직선으로 단지 전달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의미 역시 시간과 공간으로 산포된다. 양지분기 개념은, 과거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역사’서사와 언어가 산포된 역사를 현재의 필요에 따라 전유하는 과정을 지적하고 결과적으로 현재가 과거의 형태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폭로해 준다. 동시에 바로 그 전유의 과정에 주의함으로써 양지분기 개념은 우리에게 전유 담론의 ‘저 너머’에 존재하는 역사성을 회복시킨다.) 저자는 이 개념을 통해 단선론적이고 단순한 인과론적 역사의 억압적인 목적론을 극복(또는 최소한 자각)함과 동시에 역사성을 되찾으려 했다.제 3장. 반 종교운동과 피억압자의 귀환중국은 인도에 비해 종교적인 측면에서 진보(근대)화 되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두 나라를 비교함에 있어 절대적인 것은 없다. 즉, 한 나라가 다 앞서고 한 나라가 다 뒤쳐질 순 없는 것이다. 3장에서는 이렇게 앞장에서 다뤘던 단일화/획일화된 관점에서 이에 예외가 될법한 역사적 사실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은폐)에 대해 말하고 있다.제 4장. 중국 공화혁명 시기의 회당과 혁명담론사실 중국은 물론 지금도 공산주의 국가로써의 면이 남아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중국은 우리 한국이란 나라, 한민족의 기백이나 용기를 부러워하고 배우고자 했다. 그 이유는 윤봉길 의사의 이토히로부미 저격과 3.1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은 우리나라처럼 일본의 반지배시기동안 민족전체가 씻을 수 없는 아픔도 겪었고 또 후에는 공산당의 집권에 의해 자유가 억압당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이러한 비극적 시기에 중국또한 이를 타개하기 위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러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일본과 비교한 중국의 늦은 근대성, 후진국성을 설명하는데에는 맞지 않다. 3장과 연계하여 4장은 이러한 자신의 관점에서의 예외적인 사실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사례인 것이다.제 5장. 봉건의 계보학 : 시민사회와 국가에 관한 서사중국에서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 과거를 재서사화려고 노력했던 19세기 말의 역사적 행위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중국역사에서 “봉건”이라는 관점을 살펴보며 봉건이라는 것은 역사의 진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이는 19세기 말 역사를 재서사화할때에 봉건의 초기적 의미를 억압하게 된다. 또 봉건의 해방적 비젼또한 사라져 버리게 된다. 또 봉건자체가 공격당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시민사회의 역사로서의 봉건을 매장시켜 버림으로써 중국역사에서 봉건은 사라지고 봉건이 가지고 있는 자생적인 역사 전개또한 매장당하게 된다는 이야기다.이 또한 전체적인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동학을 놓고 여러 가지 분분한 의견이 있는데 이를 시민사회로 가기위한 디딤돌로 볼 것인가 그저 단순한 난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한 가지 역사적 사건에 대해 한가지 의견만 있을 순 없지만 분명 그 해석으로 인해 큰 흐름이 바뀔 수 있음으로 인해 자신의 생각과 끼워맞추기식의 역사해석은 매우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제 6장. 국가에 대한 성(省)의 서사 : 근대 중국의 연방론과 집권론중국은 나라도 크고 사실상 소수의 민족이 다양한 다수의 민족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상당수는 동화되었고 한 나라로써의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실이 중국의 큰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도 보고있다. 이렇게 큰 나라이기에 중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지역차원의 성차원의 역사도 존재할 수 있다. 물론 일본도 성문화가 있지만 중국과 그 개수나 지역크기 면에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성에대해 20세기초 중국은 연성자치운동이 일어나는데, 이러한 지역차원의 역동적인 문화발전에 대해 집권층은 그 집권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억압하게 된다. 이 또한 역사가 누구에 의해 쓰여지는지, 누구에 의해 바라보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내용이라고 본다.제 7장. 인도와 중국에서의 근대성 비판이 장은 20세기 전반 중국과 인도에서 대안적인 문화 개념을 활용하여 ‘역사’의 주장에 대항하고자 했던 인물들이 전개한 근대성 비판에 대한 평가이다.) 서양의 역사관점에서 근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는 나라는 열등하고 이는 곧 식민지 지배에 대해 열등하기 때문에 당한 것이라는 인식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대성 여부에 대한 획일화된 역사보기에 대항했던 의견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대한 부분이다.2. 민족으로부터 한국-일본 / 중국의 역사 구하기(1) 일본의 식민지 지배 정당화① 일본의 임나일본부說임나일본부설이란, 일본의 야마토왜[大和倭]가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하였다는 설이다. 이는 야마토 왜의 '남선경영설(南鮮經營說)'이라고도 불린다. 이 주장은 현재 일본의 교과서에 수록되어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편견과 우월감을 조장하고 있다. 일본의 임나일본부에 관한 연구는 이미 17세기 초에 시작되어 19세기 말에는 본격적인 문헌고증에 의해 정설로 뿌리를 내림과 동시에 각국에 소개되었다. 이를 통해 3세기경에는 외국에 식민지를 건설할 정도로 일본의 고대사회가 발전하였다는 논리로 나아갔고, 한편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하였다.이처럼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행위를 과거로의 환원으로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일본인과 한국인은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다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함께 표리관계를 이루면서 35년간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하는 관념적 버팀대로서 기능했다.)② 임나일본부說에 대한 나의 생각이러한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내용은 쉽게 찾아볼수 있으므로 간략이 이 정도로 소개만 하려한다. 이러한 임나일본부설은 역사적 고증자료를 통해 결론을 내린게 아니라,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 정당논리에 의해 역사의 자료가 끼워맞춰진 사례이다. 이러한 일들은 일본의 지배논리 전개에 있어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억지논리는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조직행동 - 21세기 바람직한 리더쉽”경영학과 4학년Ⅰ. 머리글“21세기 바람직한 리더쉽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수업에서 배운 여러 리더쉽에 대해 다시 찾아보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어느 하나를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왠지 21세기에 어울릴법한 리더쉽은 분권화된 권력일 것 같고 또 뭔가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한 리더가 발휘하는 리더쉽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수업시간에 배운대로 어떤 리더쉽이 최선이라는 결론은 없으며 상황에 따라 달리 해야 조직에 최고의 효과와 효율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21세기 바람직한 리더쉽에 대한 이번 과제에서 주제를 한국의 기업에 걸맞는 21세기 리더쉽으로 생각해 보았다.Ⅱ. 본 론1. 21세기 한국에서 효율적인 조직.효과적인 리더쉽을 살펴보기 앞서 거꾸로 효과적인 조직을 생각해보았다. 한국에는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국이 삼성의 나라라는 조금은 과장된 표현이다. 그만큼 삼성이라는 기업의 영역이 정치, 경제, 군수 등 사회 전반에 걸쳐있으며 그 각각의 지위 또한 대단하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선 전문적인 기술, 영역을 강조하고 있는 현실에서 삼성과 같이 전방위에 진출한 기업은 어찌보면 세계 글로벌 기업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삼성이란 조직이 조직내의 반발이나 내부조직끼리의 지나친 경쟁을 지양하고 통일된 힘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고 있는 성공요인을 살펴보았다.① 권력의 집중화언뜻보면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권력의 집중화를 통해 삼성은 수많은 경쟁자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처럼 수많은 계열사의 수장들을 거느린 최고층의 자리에서 권력을 분산시키지 않고 집중화 한 것은 효과적이었다. 만약 계열사들이 서로 자기의 이익만을 챙겼다면 지금과 같은 큰 힘을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브랜드를 만들때에도 리더가 각 계열사에서 돈을 똑같이 거둬서 방법과 광고를 통일되게 함으로써 지금까지도 브랜드통합을 이뤄내지 못하는 대기업에 비해 효과적일 수 있었다.② 신속한 의사결정권력의 집중화로 인해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CEO는 자신의 장기계획을 소신껏 추진하기가 힘든데, 그 이유는 주주들이 장기적인 이익보다는 단기의 수익이나 배당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CEO들도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장기적 계획보다는 단기적인 수익에 치중한다. 이렇게 주주들이 의사결정에 많이 관여하고 영향을 끼치는 구조와는 달리 삼성은 집중된 권력을 바탕으로 CEO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고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분배하여 투입할 수 있었다.③ 전문적 경험과 지식삼성의 CEO는 모든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전에 직접 다 사용해 본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방면의 기술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직접 챙긴다고 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한국사람뿐만이 아니라 해외의 인재들을 영입한다. 이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그릇되지 않고 옳게 이루어질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요인이다.환경에 따라 리더쉽도 달라질 수 있다고 했는데, 삼성을 보니 그러했다. 임파워먼트와는 달리 권력을 집중해서 더욱 효과적이고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리더쉽이 계속해서 제일 좋은 방법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이렇게 집중된 권력은 후에 경영권을 승계했을 때에는 지금과 같이 효과적일지는 모른다. ③번과 같은 전문적 경험과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것이고 따라서 ②번과 같은 신속한 의사결정보다는 신중한 의사결정을 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리더쉽은 상황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다음은 삼성의 미래에 바람직하리라 생각하는 리더쉽을 설명하려한다. 이렇듯 리더쉽은 절대적으로 최고는 존재하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최고의 효과를 위해 리더쉽을 선택해야한다.
식민지 시대에 대한수탈론 vs. 근대화론과 목 : 한국사개설Ⅰ. 서 론식민지시기의 연구에서는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의 대립이 보다 더 첨예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두 방법론이 강조하는 수탈/개발의 입증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식민지근대화론은 식민지시대에 진행된 공업화가 조선사회 내의 사회적 분업의 심화나 수요 증대에 의해 촉진된 측면이 존재하며, 농촌부문도 이러한 공업화에 노동력 및 식량을 공급하는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을 주장하고 있다.식민지기 공업화가 진행된 동인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는 일제의 산업정책 (예를들면 소위 '병참기지화정책') 이나 일본인 자본 주도에 의해 공업화가 진전되었음을 강조하였다면, 최근에는 공산품 시장의 확대나 조선인의 능동적 대응의 측면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하지만 한일간의 관계만큼이나 이러한 관점들의 관계도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 일본이란 그만큼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면 그 주장을 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란 생각도 든다.이전에는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시간에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은 조선의 토지를 강탈하기 위한 정책이었다고 막연하게 알고있었다. 하지만 이번 과제를 통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어떤 기구에서 어떤 방법으로 행해졌는지, 그리고 생각했던 것 만큼 강제적이였는가 하는 의문도 가지게 되었다.그리고 이러한 질문들과는 별개로 수업시간에 배웠던 실증주의에 대해서, 정태헌님의 논문보다 조석곤님의 논문이 좀 더 자세한 수치나 기록이 많은데 이러한 기록들이 실증주의에 입각해서 더 좋은 논문인가? 혹은 주장이 좀 더 옳은가? 하는 의문에 대해 쉬이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조석곤님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정태헌님은 수탈론의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계신데 정태헌님은 조석곤님의 주장과 논거에 대해서 직접 반박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두 논문을 정리함에 있어 똑같이 서술한다면 조석곤님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비판당할 수 있다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최근 국내외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타난 식민지시대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도 이와 관련된다. 해외에서는 ‘한국자본주의의 식민지적 기원’이나 ‘식민지 관계의 중첩적?복합적 성격’에 주목한 연구성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으며, 연구의 대상도 사회사?문화사 등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중이다.(신기욱 1997) ...(중략)...근대는 자본주의가 형성?발전하는 시기이고, ‘근대성’역시 자본주의의 특성에 규정된다. 자본주의가 착취와 억압을 내포하는 생산체제인 한, ‘근대성’역시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19세기 후반의 식민지란 자본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착취와 억압구조가 국경을 넘어서 지역적으로 확대된 것이고, 그 본질이 ‘수탈’(자본주의적인 잉여수취라는 의미에서)적인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식민지 시대를 ‘수탈론’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은 일정한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기존의 ‘수탈론’은 일제의 수탈을 자본주의적인 수탈이 아니라, 지리상의 발견 시기에나 있음직한 ‘원시적 약탈’로 규정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중략)....특히 1960년대 이후의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 수출지향적 공업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대외적 조건에 힘입은 바 크지만, 모든 나라가 공업화에 성공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것을 가능케 한 내적 조건이 있었음도 분명하다.”⇒ 조석곤님은 ‘수탈론과 근대화론을 넘어서 - 식민지시대의 재인식’ 논문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시대에 대한 관점을, ‘원시적 약탈 ? 수탈’로 보고있는 현재의 통념을, 피해만 끼치고 부정적인 면만이 아닌 근대화를 가져다준 긍정적인 면을 고려해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나라가 식민지 시대를 겪었든 그렇지 않든 노력했지만 지금 우리나라처럼 가파른 성장을 하지 못했던 걸로 보아 분명 내적인 어떤 자본주의 체제의 성공 요인이 있는 것임은 인정하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통해 근대화를 이뤄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근거로 다음 챕터인 “토지조사 사할 환상 - ‘수탈론’비판“가장 먼저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신고주의를 통한 토지약탈의 가능성이다. 조석곤(1986)과 배영순(1988)은 김해의 토지신고서를 분석한 후 토지신고 과정에서 기존의 토지소유 관계를 무시한 채 토지약탈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지적하였다. 사업결과 창출된 국유지도 전체 대상 면적 490여만여 정보의 2.6%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또 분쟁지의 처리과정도 후술하는 바와 같이 국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중략)....수탈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추론을 통해 신고주의를 이용한 대규모 토지약탈이 일어났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조선인 토지소유자 중에서 토지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토지신고 절차를 몰랐다거나, 알았다 하더라도 한자나 일어를 기재할 능력이 없었거나, 아니면 일제에 대한 반감 때문에 신고 자체를 일부러 거부하였다. 이러한 토지는 모두 국유지로 편입되었다. 둘째, 토지신고서가 제출되지 않은 것을 안 지주총대가 자신의 소유지를 늘릴 목적으로 자신이나 자신의 이해관계인 명의로 거짓 신고한 경우도 있었다. 이는 지주총대가 지주의 대표로서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추론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역사적 사실은 전혀 달랐다. 첫째 무신고지에 대해 살펴보면 정해진 신고기간 이후에도 그 신고가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토지신고서를 접수하였다. 무신고지는 별도의 조사를 거쳐 지주가 밝혀지면 신고를 권유했고 신고할 의사가 없는 경우 무고지로 처리하였다. ‘사업’에서 무신고지는 9,355필로, 전체 2천만여 필의 0.05%에 불과했다...(중략)...한 사례연구에 따르면 김해 녹산면 지주총대 26명 중에서 경지가 한 평도 없는 사람이 무려 10명(38.5%)에 달하였으며, 5정보 이상의 경지를 보유한 사람은 3명에 불과하였다....(중략)....‘토지조사사업’에서의 분쟁지 처리에 있어 조선총독부가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례연구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 행한 것이며, 조선인들은 일어를 모르거나 그 절차가 까다로워서 신고율이 미비했으며, 일제에 대한 반발감으로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조석곤님의 논문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통념을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여 반박하고 있다. 먼저 실제적으로 토지조사사업은 국유화율에서 알수 있듯이 토지수탈이 그 주된 의도가 아니었으며, 지주총대가 대신 비교적 빠짐없이 신고를 했다고 한다.이에대해 정태헌님은 이러한 수치나 기록에 앞서 이런 정책이 나오게 된 이론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론은 후에 지세에 대한 부분에서 살펴보게 된다.“사업이 완료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지세가 부과된 1918년의 지세는 1917년에 비해 13%증가했는데, 이는 1918년 쌀값이 1917년에 비해 60%이상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큰 폭의 상승이라고 할 수는 없다....(중략)....조선총독부의 표본조사에서도 전체적으로 법정지가는 시가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었다....(중략)...지세는 이렇게 결정된 지가에 대해 일률적으로 1.3%를 부과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와같은 지세액의 결정은 일본과 비교할 때 토지소유자에게 대단히 유리한 것이었다. 지가선정용 공식으로부터 역산하면 지세는 조수익의 5%에 미치지 못했으며, 이 수치는 지조개정 후의 일본과 비교하면 1/6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또 토지소유규모에 따른 누진세율이 적용되지 않고, 일률적으로 부과되었기 때문에 토지소유규모가 클 수록 지세에 대해 느끼는 부담정도는 적었을 것이다.”⇒ 조석곤님의 논문을 살펴보면 토지조사사업이 끝난 뒤 일제의 지세에 대한 부분으로써, 수탈이 목적이었으며 국유화된 토지 말고도 조선인의 토지에 높은 지세를 물렸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낮은 지세를 물렸으며, 이는 일본 본토의 1/6 수준이었고 더군다나 누진세율이 적용되지도 않았기에 매우 적었다는 주장이다. 이와같은 지세를 책정했던 이유는 일본본토 로부터 일본인들을 유입시켜서 조선의 지배층을 형성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자본과 사람을 유입해다준 시기다, 여러 평가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 대한 많은 논쟁중 위의 두 논문의 소재가 되는 것이 바로 ‘토지조사사업’이다. 하지만 왜 ‘토지조사사업’이 이러한 잣대가 되어야 하는지 그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토지조사사업은 ??년 식민지 지배중 극초반에 8년에 걸쳐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조사는 후에 식민지 지배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조사가 되었다. 시기적으로 1919년 3.1절 이전이며 3.1절 이후에 일제의 지배 스타일이 ??적으로 변화했는데 그 이전인 것이다. 정태헌님께서 ‘수탈론의 속류화 속에 사라진 식민지’에서 말씀하셨던 토지에 대한 조세가 일본 본토의 1/5수준이었던 것이 일본인들이 조선에 건너와 지배층을 이룰 수 있도록 유도한 정책이었다는 점에 미루어 짐작했을때, 아직까진 식민지 지배 후반에 비해 그 지배력이 약하고 기존의 조선 지배층이 그 영향력을 적지 않게 끼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본다. 그리고 일제도 유화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정황에서 이루어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은 전체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의 근거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②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은 흑백논리의 오류에 빠지고 있진 않은가?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이 각각 수탈론과 식민지미화론을 통해 한 가지 의견에 대해 모두 맞거나 혹은 모두 틀린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이는 수탈론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 사건들이나 기록도 모두 수탈론의 관점에서 해석하게 되며, 식민지 근대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마찬가지 여러 사건이나 기록이 모두 식민지 근대화론 관점에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 살펴보자. 식민지근대화론이 한국근대사를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910년 이후 한국자본주의 성장의 장기추세를 살펴보면 고도성장의 지속과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라는 특징을 도출할 수 있다. 이러한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역사적인 조건들을 살펴보면 첫째 개방체제(무역과 외자도입) 하에서 후발성의 이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