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과 현대단학의 장생관 비교 연구Ⅰ. 머리말Ⅱ. 동학의 장생관Ⅲ. 현대단학의 장생관Ⅳ. 맺음말Ⅰ. 머리말인간의 가장 큰 욕망은 늙지 않고 병 없이 오래 사는 데 있다. 이것을 ‘무병장수(無病長壽)’ 혹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이라고 부른다. 불로장생을 꿈꾼 황제라고 하면 진시황제를 떠올릴 수 있다. 진시황은 태어날 때부터 별로 튼튼하지 않아 통일을 한 시점부터 불로장생을 염원한 그는 불로장생 연구가인 방사를 곁에 두게 됐다. 그리하여 그 가운데 뛰어난 방사 서복을 동남동녀(童男童女) 500명과 함께 동쪽으로 보내 불로초(不老草)를 구해 오도록 했으며, 서안에서 서쪽으로 20km 떨어진 함양(咸陽)에 아방궁을 짓고 그곳에서 궁녀들과 영원히 살고자 했다. 그런데 그렇게 갈구하던 불로초는 없었으며 그의 주치의들은 '수은'을 처방하게 되어 진시황은 영생불멸의 물질로 '수은'을 사용하게 되었다. 진시황은 수은 중독으로 죽게 된다.진시황의 수은 중독은 도교의 연단술 중에 하나인 외단에 해당한다. 외단(外丹)은 수은, 납, 금 등 광물질과 약초를 섞어 만든 물질로 간주하면서 그런 약을 잘 달여 만들어 복용함으로써 불로장생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내단은 단전호흡을 통해 단전에서 기를 모아 내적으로 형성해내는 단약이라고 간주하며 내적 수련을 통해 불로장생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진시황이 찾고 싶던 불로초의 욕망은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도 수많은 건강과 의료상품을 향한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욕망은 최근에 인도의 요가와 명상법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웰빙(well-being)에서 그 시대적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그러나 육체적 정신적 삶의 조화를 통해 건강한 심신을 유지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을 의미하는 웰빙이 말 그대로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본 연구에서는 최근의 웰빙 열풍과 함께 잘 산다는 것, 오래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근대의 동학과 현대의 단학에서 말하는 장생에 관한 철학적인 의미를 살펴보는데 있다.Ⅱ. 동학의 장생관동학은 18년 4월에 최제우(崔濟愚)가 창도한 종교이다. 그 교지(敎旨)가 시천주(侍天主) 신앙에 기초하면서도 보국안민(保國安民)과 광제창생(廣濟蒼生)을 내세운 점에서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종교이다.‘동학’이란 교조 최제우가 서교(西敎:천주교)의 도래에 대항하여 동쪽 나라인 우리 나라의 도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며, 1905년에는 손병희(孫秉熙)에 의하여 천도교(天道敎)로 개칭되었다. 창도 당시 동학은 한울에 대한 공경인 경천과 시천주신앙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이 내 몸에 천주(??님)를 모시는 입신(入信)에 의하여 군자가 되고, 나아가 보국안민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경천사상에 바탕한 나라 구제의 신앙이었다.동학의 장생관은 최제우가 ??님과 영적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발견된다.“뜻밖에도 4월에 마음이 섬뜩해지고 몸이 떨리어 무슨 질병인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말로 그려내기 어려울 즈음에 어떤 신선의 말씀이 문득 귀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 일어나 밝히려고 물으니 이르기를 두려워 말고 두려워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한다.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나타난] 그 연유를 물어보았더니 이르기를 나도 공이 없어 너를 세상에 내어 이 법(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려하니 의심치 말고 의심치 말라. 묻기를 서도(그리스도교)로써 사람을 가르치렵니까.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내게 영부(靈符)가 있다. 그 이름은 선약이고 그 모양새는 태극이요 다른 모양새는 궁궁(弓弓)이다. 나로부터 이 영부를 받아 질병에서 사람들을 건지고 나로부터 주문(呪文)을 받아 나를 위하도록 사람을 가르치면 너 또한 장생하여 세상에 덕을 펴리라.나는 그 말씀에 감동하여 그 영부를 받아써서 [물에 타] 마셨더니 몸이 윤택해지고 병에 차도가 있어 비로서 선약임을 알았다. 이 [영부] 병에 써 보니 혹은 차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까닭을 알지 못하여 연유를 살펴보니 성실하고 또 성실하게 ??님에게 지극한 이는 매번 적중되었고 도와 덕을 따르지 않는 이는 한결같이 효험이 없었” )동학은 “나로부터 이 영부를 받아 질병에서 사람들을 건지고 나로부터 주문(呪文)을 받아 나를 위하도록 사람을 가르치면 너 또한 장생하여 세상에 덕을 펴리라.”에서 장생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살펴볼 수가 있다.첫째, 상제 ??님에 대한 믿음(信)최제우가 상제 ??님을 처음 만날 때 ‘마음이 섬뜩하고 몸이 떨리어’ 라는 표현과 ‘그 말씀에 감동하여 그 영부를 받아써서 마셨더니 몸이 윤택해지고 병에 차도가 있어’ 라는 표현은 그만의 종교적 체험에 해당한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와 ‘의심치 말라’ 그리고 ‘성실하게 하?님에게 지극한 이’ 라고 하는 대목에서 상제 ??님에 대한 믿음과 체험이 장생에서 가장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둘째, 영부(靈符)와 주문(呪文))장생을 위해서는 질병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수단으로 ‘영부(靈符)’가 있어야 하며,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주문(呪文)’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수도의 길을 걸었던 최제우가 아니더라도 영부와 21자 주문을 통해 누구나 장생의 길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말한다.셋째, 포덕(布德)장생 이후의 삶은 곧 “세상에 덕을 널리 펴리라”라는 말에서 정리될 수가 있다. 여기서 장생을 최제우 혼자만 구원받았다는 기독교적인 영생의 개념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상제 ??님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곧 구제의 도(道)임을 말한다.근대에 들어와 기울어진 민족의 운명을 되살리고자 노력했던 동학은 최제우의 영적 체험에 기반하여 21자 주문을 통한 종교적인 방식으로 장생을 알렸다는 점이다.결론적으로 동학의 장생은 단순히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는 육체적인 장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학의 신에 해당하는 ??님을 위한 영(靈)적인 장생임을 알 수 있다.Ⅱ. 현대단학의 장생관현대단학은 1980년 일지 이승헌이 모악산에서 수행 후 선도수련법을 세상에 널리 보급하고자 공원에서 중풍 환자 한 사람을 대상으로 직접 수련지도를 시작한데서부터 비롯되었다. 현대단학은 선도수련법을 ‘단학’ 및 ‘뇌호흡’ 이라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국내외에 널리급하고, 나아가 선도실천법인 ‘홍익인간弘益人間ㆍ재세이화 在世理化’ 운동을 ‘지구인 운동’이라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국내외에서 실천하고 있다.)그렇다면 현대단학에서 말하는 장생은 무엇일까?‘장생’은 병상에 누워서 오랫도록 사는 것이 아니다.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이 동일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게 사는 것을 장생이라고 한다. 80대를 살면서도 30, 40대처럼 삶의 철학, 꿈과 비전을 갖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 곧 장생의 의미이다.)장생의 3가지 조건은 아래와 같다.첫째, 정신적 연령Spritual Age이 젊어야 한다. 정신적 연령은 ‘당신은 꿈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답해보면 알 수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꿈이 없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늙은 사람이며, 이들은 육체적으로도 빨리 늙는다.둘째, 기적 연령Energy Age이 젊어야 한다. 기적으로 젊다는 것은 항상 기분이 좋고 행복한 것이다. 오래 살려면 긍정적이어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은 주위 사람과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조화로운 인품을 갖게 된다.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정보가 많은 사람은 쉬이 피로해지고 인간관계에서도 부딪침이 잦다.셋째, 육체적 연령Physical Age이 젊어야 한다. 육체적으로 젊어지기 위해서는 편안한 호흡과 바른 걸음, 근육의 힘과 관절의 유연성이 중요하다. 아랫배나 단전으로 하는 호흡은 기운을 아래로 내려주어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기운을 축적하게 하며,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도와준다. 나이가 들면 호흡이 점점 위로 올라와 기운이 거슬러 오르기 쉽고, 손과 발에 힘이 빠진다. 그래서 내쉬는 호흡을 주로 자주 하고, 손가락과 발가락에 힘을 주는 운동을 해주는 게 좋다.)그러나 현대단학의 장생은 단순히 육체physical, 에너지energy, 정신spiritual을 만족시키는 젊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생의 목적은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살리는 길’ 곧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이다.) 이를 위해 단학은 개인, 사회지구적 차원의 힐링을 말한다.힐링에는 개인적 차원에서 하는 힐링이 있고, 사회적 차원에서 하는 힐링이 있고, 지구적 차원에서 하는 힐링이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하는 힐링은 상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움츠러든 영혼에 희망과 용기를 주어 본래의 완전한 모습을 되찾게 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하는 힐링은 모든 사람이 건강과 행복을 누리며 살고, 그러한 자연스러운 삶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영적 완성을 이룰 수 있는 율려의 문화를 창조하고 보급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구적인 차원에서 하는 힐링은 인구, 자원, 환경, 제도,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인류 문며이 지속될 수 있는 지구 평화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개인의 상처 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곪은 상처까지 치유한다는 뜻인 힐링healing은 단순히 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잘 사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장생문화長生文化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현대단학의 웰빙well-being이다.따라서 현대단학의 장생관은 개인의 육체적, 기적, 정신적 건강 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힐링소사이어티healing society 운동에 기반하기 때문에 사회철학적 장생임을 살펴볼 수 있다.)Ⅲ. 결론일반적으로 ‘장생’이라고 하면 고대의 진시황제가 수 백명을 동원하여 찾고 싶던 불로초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배계층을 위한 욕망의 소유물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회자되고 추구되는 이른바 웰빙이란 세속적-육체적 측면에 한정되어 중산층 이상의 자기 과시적 소비와 여가활동, 그리고 자본의 또 다른 이윤창출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그런데, 동학은 지배계층의 부패와 외국 열강들의 침탈에 의한 사회적 혼란으로 민중이 고통이 가중되고 있던 암울한 시대에서 탄생하였다는 점이다. 태평성대의 나라의 사람들에게나 무병장수(無病長壽) 혹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을 꿈꿀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학은 민중들에게 장생(長生)의 도(道)를 가르쳤
달라이 라마 과학과 만나다.|. 들어가며Ⅱ. 뇌과학과 불교철학Ⅲ. 맺음글|. 들어가며최근 한국의 학문트렌드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이 있어야하는데, 그것은 ‘통섭’ 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담론이다. 그러나 한 우물이 아니라 여러 우물을 동시에 파내야 한다는 ‘통섭’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를테면 어떻게 공통분모가 있느냐에 달려있고, 이는 학문 평행선에 지나지 않느냐는 논란이다.이러한 때에, ‘통섭’이 놓치고 있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을 ‘뇌’로서 소통시킬 수 있다는 담론이 형성되어 주목된다. 지난 5월 12일, 서울에서 열린 두 학술대회는 이러한 학문 트렌드를 ‘뇌’ 로서 새롭게 지평을 연 계기였다.그 하나는 국제뇌교육협회가 주최한 제2회 뇌교육심포지엄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철학연구회가 주최한 ‘뇌과학과 지능·감각기술의 철학’ 학술대회였다. 전자는 대중강연의 형식을 띤 것이었고, 후자는 뇌과학을 철학의 주제로 잡아 발표하였다는 데 주목할만하다.)2007년 상반기만 60여편의 ‘뇌’ 관련 도서 출간의 홍수속에서, 필자는 1987년부터 무려 10년 이상의 대화를 전개한 ‘달라이 라마 과학과 만나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책은 바로 ‘마음과 생명 콘퍼런스’ 6회에 걸친 논의중에서 제2차 콘퍼런스를 정리한 것이다. 달라이 라마로 대표되는 불교철학과 신경과학자 및 정신의학자로 대표되는 뇌과학과의 오랜 만남속에는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뇌와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하는지에 대한 동서양간의 인식의 차이와 보편적인 이해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최근 신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 없이는 도덕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프로그램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라는 토론주제를 내놓은바 있다. 원래 뇌는 컴퓨터처럼 프로그램 되어 있는가? 아니면 뇌와 분리되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있는가? 라는 문제이다.Ⅱ. 뇌과학과 불교철학“정신상태는 육체적 뇌의 상태인가 아니면 뇌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그 기억은 특정방식으로 조직돼 운영되는 내 뇌의 상태인가? 내가 무엇인가를 볼 때, 그것은 육체적 뇌의 상태인가 아니면 그밖에 다른 무엇의 상태인가?”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한쪽은 뇌를 마음으로 보는 입장과 다른 한쪽은 뇌와 마음은 분리되어 있다고 보는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뇌를 마음으로 보는 뇌과학의 입장을 살펴본다.)많은 신경과학자들은 마음이 뇌에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 다시 말해 마음이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기능하는 뇌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는 서양과학에 뿌리내린 수많은 개념들과 관념들을 정식화한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막대기를 물속에 찔러 넣었을 때 생긴 지각을 통해 알 수 있다. 막대기는 굽은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우리가 막대기를 지각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의 또 다른 부분의 인식은 막대기를 실제대로 곧은 것으로 표상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사물들이 ‘보이는’ 방식과 ‘실제로’ 나타난 방식을 우리가 구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따라서 우리는 시각ㆍ청각 그리고 촉각과 같은 다른 감각양식으로부터 감각 표상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사물에 대한 사유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억 표상도 포함할 수 있다. 곧 우리는 이 모든 두뇌 과정들이 표상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더 나가서 우리가 곧이어 할말을 생각하여 머릿속으로 그 말을 만들거나 말을 구성하는 시점이 바로 우리가 언어 표상에 착수하는 때이다. 정리하자면 이러한 모든 일들이 뇌속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뇌에는 아주 뚜렷한, 그리하여 비물질적 영혼이나 마음과 같은 어떤 다른 작인을 가정할 필요가 없는 듯이 보이는 구조적ㆍ기능적 의존성이 있다. 이러한 마음/뇌의 의존성은 뇌장애와 뇌수술을 받은 환자의 뇌를 통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을 입으면 그 장애는 심리적 적응을 방해하거나 변화시킴으로써 시각이나 기억, 경험과 사유방식에 있어서의 변화를 초래한다. 그리 대해, 뇌의 특정 부위가 자극을 받게 되면, 환자는 발화(發話)하고 싶은 특정 단어들을 표현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그들은 얘기치 않게 먼 과거에서 생긴 아주 특이한 기억을 경험하게 되거나, 아득한 시절의 오래된 음악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다시 말해 뇌손상의 위치와 분포 그리고 지각ㆍ정서ㆍ판단ㆍ행동 능력의 상실로 인한 심리 기능의 붕괴 또는 퇴화 사이에는 주목할만한 상응성이 있는데, 바로 시각, 언어 혹은 기억력의 상실이다. 만일 뇌로부터 독립된 의식이 존재하고, 죽는 순간 의식이 뇌를 떠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의식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기억을 가져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뇌가 쇠퇴하고 죽는 순간 기억 역시 그에 상응하여 소멸할 때, 혹은 만일 죽기 훨씬 전부터 뇌가 퇴화하고 그와 유사하게 기억 역시 미리부터 쇠진하고 있었다면, 영혼은 기억을 온전한 상태로 저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이처럼 신경과학자들은 마음과 물질이 자기 존재적 사물 혹은 실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실체이원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서양의 유대-기독교 전통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지만, 불교에 눈을 돌릴 때에는 표적을 잃고 만다.)왜냐하면 불교는 이러한 실체이원론을 명시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이다. 불변의 고정적 실체로서의 물질이나 정신, 그밖에 다른 어떤 존재의 경우에도 실체로 간주되는 한 그런 존재방식은 부정된다. 불교에서 물질이란 변화하는 현상으로서의 물질이다. 즉 실체로서의 존재가 전제되고 그것들이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존재하고 그 관계의 양 끝에 존재가 연결된다는 식이다.신체와 마음에 관한 티베트 불교의 관점 중에서 마드야마카 학파의 관점(중도주의적 관점))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마드야마카 학파의 관점은 마음이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실체 혹은 사물이라는 관념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또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적 현상들이 사물 자체라는 입장도 거부한다. 우리가 경험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현상들로부터 독립된 자기 존재를 부인한다는 점에서, 마드야마카 학파의 관점 그리고 현대 유물론 혹은 물질주의 특징으로 보이는 실체 이원론 양자 모두와 결별한다.마드야마카 학파의 관점은 유뮬론과 마찬가지로 외양들과 실재 사이의 차이를 강조한다. 물론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정신적 현상들과 물질적 현상들은 마치 그 자체로, 그 스스로, 우리의 지각과 개념 양식으로부터 전적으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현상들은 사물들 그 자체로 존재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호의존적인 연관 사건들로서 존재한다. 그 의존성은 3중의 의미를 지닌다. 1)현상들은 선행하는 인과적 영향 인자들에 의존하여 일어난다. 2)그것들은 그 자신의 부분들 그리고 또는 속성들에 의존하여 존재한다. 3)우리의 경험세계를 구성하는 현상들은 그것들에 대한 언어적 지시작용에 의존한다.서양의 신경과학과 티베트 불교철학 사고방식의 근원적 차이는 무엇일까? 이는 묻는 방식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전자의 답은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후자의 대답은 (인과)관계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논쟁의 함의다.두 번째 논쟁은 달라이 라마가 서로 다른 의식 유형을 구별한 것과 관련이 있다. 불교심리학은 거친(gross) 의식에서 미세한(subtle) 의식까지 의식의 스펙트럼을 구분하는데, 거친 의식은 서양과학에서 알고 있는 측면들, 즉 뇌에 의존하는 그러한 의식의 측면들에 대응한다. 스펙트럼의 한 극단에는 미세한 의식이 있는데, 이 의식은 물질적 뇌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다.달라이 라마는 “우리들이 뇌 기능의 미세한 층위에까지 내려갈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마음 혹은 의식의 더 거친 층위들은 물질적 뇌에 크게 의존한다. 만일 ‘그’ 층위의 의식은 자극에 대한 반응에서 일어나는가? 또는 뇌의 미세한 활성화는 마음의 미세한 변화 혹은 그밖에 다른 어떤 것, 가령 신체 외적인 것에 의해 발생하는가?” 라고 은 “반드시 뇌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물론 반드시 그렇다는 것을 입증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와 정반대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라는 것과 함께 “뇌 속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사실 우리의 주의력 범위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어떤 것, 즉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수도 있는 사유의 흐름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유의 흐름은 여전히 규칙적인 뇌 메커니즘에 의존하고 있었을 아주 다른 사고의 흐름과 연관되어 있다” 고 대답했다.또한 달라이 라마에게 인식 능력이란 그 앞에 선행하는 의식의 계기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뇌로부터 생겨나지 않는 의식의 연속체가 있다고 본다. 즉 뇌 자체가 형성되기 전, 수태 순간부터 직접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수태 순간에 다른 존재로부터 이동해온 의식, 즉 결생식(結生識)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태아의 의식이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다.그러나 앨런 홉스는 의식적 인식은 뇌의 발달 과정 중 어떤 단계에서 일어나며, 그런 단계는 의식 활동을 지원하기에 충분한, 정교한 연결고리를 가진 충분한 뉴런이 존재하게 될 때라고 본다. 그러므로 선천적 의식은 없고 그것은 뇌 속에서 생성되며 생물학적으로 충분히 진화해온 뇌들의 수에 따라 본질적으로 확장 가능한 것이다.두 번째 토론에서는 언제 의식이 시작되는가를 결정하는 문제로, 미국 사회를 양분한 바 있는 낙태 찬반토론에 있어 핵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기체가 의식적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기준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Ⅲ. 맺음글서양의 신경과학자들와 달라이 라마간의 대화속에서, 우리는 수세기 동안 서양과학과 종교 영역으로 갈라놓았던 가장 기본적이고 어려운 문제들을 대면케 하였다. 첫 번째는 마음은 뇌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과정의 부수적 효과에 불과한가? 두 번째는 의식의 형태들은 너무 미세해서 과학은 아직 그것들의 본질을 밝히지 못하고 있
한국선도의麻姑神話와 檀君神話에 담긴 仙道적 의미Ⅰ. 서론Ⅱ. 마고신화Ⅲ. 단군신화Ⅳ. 결론Ⅰ. 서론21세기는 20세기가 겪었던 이데올로기의 대립 못지 않은, 문명간의 대립과 충돌을 낳고 있다. 9.11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침략,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카슈미르 분쟁, 중국과 인접국가간(티베트, 몽골, 한국)의 분쟁 등, 일련의 사건들은 ‘나’ 라는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치는 민족, 인종, 종교간의 혼돈을 야기시킨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곧 ‘인간’을 제대로 아는 것만이 해결이 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마고신화’와 ‘단군신화’는 가장 쉽게 이해되는 ‘신화’이지만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해석의 가능성’이 폭넓게 열려있는 사유체계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다시 말해서, 수천년이 지나도록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서 창세와 건국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천황제와 중국의 중화주의 그리고 유대인들의 선민의식들은 고대의 신화를 재해석하는 작업(역사왜곡, 동북공정)을 통해 인접국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필자는 한국 고대의 신화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마고신화’와 ‘단군신화’에 21세기가 겪고 있는 대립과 충돌의 세계관을 극복할 수 있는 조화와 상생의 평화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두 이야기에 대해서 서사구조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에 관하여 다각적인 해석이 요구된다.본고에서는 한국선도의 삼원사상에 입각한 인간론과 수행론을 살펴보고자 한다.먼저 한국선도의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하나(一)로 보되, 이것이 성ㆍ명ㆍ정(천ㆍ인ㆍ지) 삼원(三元)의 차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삼원사상에 있다. 한국선도의 삼원사상은 선도경전인『천부경(天符經)』ㆍ『삼일신고』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특히『삼일신고』의「진리훈」을 살펴보면, 인간은 만물과 달리 삼진(三眞)을 온전하게 支巢氏), 제족의 장자로서 포도열매의 사건을 책임지고 복본의 서약을 위하여 천산주로 향한 황궁씨(黃弓氏)를 살펴본다.Ⅲ장에서는『삼국유사』에서 3천의 무리와 함께 신시를 건립한 환웅(桓雄), 동굴수행에서 실패한 호녀(虎女), 동굴수행을 극복하고 한웅과 결합하여 단군을 잉태하는 웅녀(熊女)에 대하여 살펴본다.Ⅱ. 마고신화최근 부산에서 발견된『부도지』는 신라 눌지왕때의 충신 박제상의 저서로 알려진 것으로 한국의 독특한 창세기를 담고 있다. 『부도지』는 충렬공 박제상 선생이 삽랑주간으로 있을 때, 그 전에 보문전 태학사로 재직할 당시 열람할 수 있었던 자료와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비서를 정리하여 저술한 책이라고 전한다. ‘부도(符都)’라는 말은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나라, 또는 그 나라의 수도라는 뜻이다.)『부도지』에 나오는 내용 중 창세신화는 제1장에서 제10장까지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이를 다시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천지 창조과정, 낙원의 삶, 포도를 따먹음, 낙원의 삶 잃어버림”이다.)이러한 ‘마고신화’에 대해서 김은수는 고대 한민족의 발상지로서 파미르고원의 마고성(麻姑城)을 낙원(paradise)이자 이상향으로 상정하고, 이를 구약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Eden)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본다.) 반면에 이승헌은 인류 문화의 원형을 담은 이야기로 마고성의 이야기와 에덴의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상정하고 있지만, 에덴의 이야기는 축복과 저주라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신이 인간을 창조해서 신과 인간이 분리된 이야기인데 반하여, 마고성의 이야기는 축복과 저주는 없었고, 원래 신과 인간은 합일된 신인으로 존재했던 신인합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대조적으로 본다.) 필자는 ‘마고신화’는 에덴신화와 마찬가지로 인류 문화의 원형으로 기능하고있으면서 그 속에 한국선도의 인간관과 수행관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본장에서 ‘마고신화’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인 마고(麻姑)와 지소씨(支巢氏) 그리고 황궁씨(黃弓氏)를 살펴보겠다.1. 마고『부도지』의 제1장과 제4장까지의 도(道)인가! 포도의 힘이로다.” 라고 경탄해마지 않는다. 하지만, 마고성의 자재율(自在律)이 파기되면서 열매를 먹은 사람들이 변이하게 된다.“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겼으며, 그 침(唾)은 뱀의 독(毒)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수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올빼미 같이 하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혈육이 탁(濁)하게 되고, 심기(心氣)가 혹독하여져서,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하여, 걷되 뛸 수가 없었으며, 태정(胎精)이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게 하였다. 명기(命期)가 조숙(早熟)하여, 그 죽음이 천화(遷化)하지 못하고 썩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수(數)가 얽혀 미혹(迷惑)하게 되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오미(五味)의 변(變)이라 일컬어지는 지소씨의 포도열매를 따먹은 사건은 마고성의 사람들을 신인의 상태에서 짐승의 상태로 전락하게 만들 뿐만이 아니라 전체의 수증(修證)으로 조율되던 마고성의 존립기반마저 무너지게 하였다.이것은『삼일신고』에서“사람과 만물이 모두 性?命?精이라는 三眞을 받았는데, 만물은 편벽되게 받았고, 오로지 사람만이 온전하게 받았는데 사람이 善惡, 淸濁, 厚薄이라는 망령된 인식(妄念, 분별심)을 냄으로 인해 삼진(三眞)이 삼망(心ㆍ氣ㆍ身)으로 바뀌게 된다고 하였다. 또 三眞과 三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三途, 곧 감정(感), 호흡(息), 감각(觸)이 생겨나 사람들이 이를 전전하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고통에 이르게 된다.”)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즉 마고성의 사람들이 신인의 상태에서 오미의 변 이후수성의 상태로 전락해가고 있는 모습은 삼일신고에서 인간이 삼진(三眞)의 상태에서 삼망(三妄)ㆍ삼도(三途)의 상태로 떨어진다는 타락론(墮落論)과 비교할 수 있을 밝혀주는 점과 동시에 한국선도의 인간론과 수행론을 담고 있다.‘단군신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3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환웅의 신시건립, 호녀와 웅녀의 동굴수행, 환웅과 웅녀의 결합과 단군의 잉태” 이다. ‘단군신화’의 서사적 구조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논문이 나와있는바, 앞장에서 살펴본 마고, 지소씨, 황궁씨와 마찬가지로 본장에서는 환웅, 호녀, 웅녀를 중심으로 한국선도의 인간론과 수행론을 살펴보겠다.1. 환웅먼저 환웅에 대해 살펴본다.“옛날에 환인의 여러 아들 가운데 환웅이 있었는데 자주 하늘 아래에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기를 탐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태백을 내려 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다고 보았다.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다스리라고 보냈다.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의 산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이를 신시(神市)라 일렀다. 이 분이 환웅천황이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면서,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맡아 인간 세계를 다스리고 교화시켰다”)천지의 조화와 질서를 위해 마고는 그의 두딸인 穹姬·巢姬,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四天女·四天人, 또 四天女·四天人의 후예이자 인간의 시조(人祖)인 天人들이 3000명이 필요하였다. 마찬가지로 환웅도 신시를 건립하기 위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비롯한 3000명이 필요하다.)환웅이 신시를 건립한 목적은 인간세상에 보다 더 나은 이로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신이 인간세계에 동참하여 신인합일을 지향하는 목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의 360여가지의 일을 맡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2. 호녀‘마고신화’에서는 지소씨가 포도열매를 따먹으면서 짐승의 상태로 변이하였다고 나온다. 그런데, ‘단군신화’에서는 호녀와 웅녀가 정반대로 짐승의 상태를 극복하고 인간의 되고자 한다을 마치고 인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웅녀가 인간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서 “쑥, 마늘, 동굴, 100일”에 대하여 살펴보면“쑥은 쓴 것의 상징이요, 마늘은 매운 것의 상징이다. 동굴은 생명이 탄생하는 자궁이고, 햇빛이 없는 동굴은 답답하고 무겁게 밀폐된 공간이다. 그렇다고 하면 신령스런 쑥과 마늘을 먹고 햇빛이 없는 동굴에서 100일을 참고 견디라고 한 의미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당면하는 쑥처럼 쓰고, 마늘처럼 맵고, 동굴처럼 암울한 100일 동안을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통과의례의 목적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는데 어떠한 유형의 사람인지는 명확하지 않다.“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원했다.”)웅녀는 동굴수행을 통하여 짐승의 상태에서 인간의 상태로 거듭났으며, 인간의 상태인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는다. 그러나 선도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통공완?홍익인간’ 에 있다고 할 때, 단군의 탄생은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마고신화’의 황궁씨가 수증(修證)의 삶으로 일관하여 죽음에 이르러까지 돌이 되었던 이유도, 인세의 미혹(迷惑)됨을 남김없이 없애고 복본(復本)의 서약을 성취하는데 있었다고 할 때,) ‘단군신화’에서 웅녀가 겪었던 동굴수행은 단군(弘益人間 理化世界)의 탄생을 통한 전체완성을 도모하는데 궁극적인 이유였음을 알 수가 있다. 개체의 삼원과 전체의 삼원을 같은 논리로 보는 한국선도의 개전일여(個全一如)사상은 ‘마고신화’와 ‘단군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Ⅳ. 결론한국선도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하나(一)로 보되, 이것이 성ㆍ명ㆍ정(천ㆍ인ㆍ지) 삼원(三元)의 차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삼원사상이다. 이러한 삼원사상은 개체와 전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개인의 삼진회복을 인류 차원의 성통공완사상과 홍익인간 이화세계사상으로 확대?적용된다고 할 수
韓國仙道의 하느님에 관한 小考Ⅰ. 서론Ⅱ. 귀신 神과 하느님Ⅲ. 초월적인 하느님Ⅳ. 내재하는 하느님Ⅴ. 결론Ⅰ. 서론한국선도는 외래삼교인 유ㆍ불ㆍ도(儒ㆍ佛ㆍ道)가 들어오기 이전에 있었던 한민족 고유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을 두루 포괄하고 있었던 종교이자 문화였다. 이에 대해 신라시대의 최치원은『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풍류(風流)라는 현묘한 도(道)’가 있었다)고 말하였다. 풍류도의 기원을 자세히 기록한 『선사(仙史)』가 선(仙)의 역사책이었음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윤내현은 풍류도(風流道)의 원명이 선도(仙道)) 라고 논증하기도 하였다.또한 신채호는『동국고대선교고(東國古代仙敎考)』에서 고유의 선도(仙道)가 이미 도교 수입 이전부터 형성되었다)고 하였으며, 이능화는『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에서 일찍이 우리 선도사상과 문화가 중국으로 전파되었다가 신라 말기의 최치원 등을 통해 다시 들여왔던 사실을 밝혀내기도 하였다.)그렇다면 외래삼교와 차별되는 한국선도의 사상적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하나(一)로 보되, 이것이 성ㆍ명ㆍ정(천ㆍ인ㆍ지) 삼원(三元)의 차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삼원사상이다.) 한국선도의 삼원사상은 선도경전인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一(三眞)↔三妄↔三途↔ 三修行 이라는 논리적인 체계를 갖고 있다. 삼원사상에서는 삼진회복을 위한 수행법으로 지감?조식?금촉을 제시하고 있다.본 稿에서는 이러한 한국선도의 사상적 체계 위에 자리한 하느님에 관하여 초월적인 면과 내재적인 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Ⅱ장에서는 선도경전에서만 나타나는 하느님 자에 대해 알아보고 귀신 神자와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보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선도경전에 나타난 하느님의 초월적인 부분에 대해 살펴본다. Ⅳ장에서는 선도경전에 나타난 하느님의 내재적인 부분을 살펴보고 이것이 하느님의 초월적인 부분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 살펴본다.Ⅱ. 귀신 神과 하느님한국선도의 하느님은 그 한자 쓰임에서부터 해석이 달라진다. 일반적수신(水神), 용왕신(龍王神) 등 대소제신(大小諸神) 들에게 두루 쓰이는 글자로 온갖 잡귀, 잡신들을 표현한 글자이며, 특히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또는 신관을 말할 때 이 ‘신神’자를 쓰고 있다.” 라고 말한다)백포 서일)은 『회삼경(會三經)』에서 “신 은 神의 고자(古字)니 대주재(大主宰)를 지칭한다.” 라고 밝히고 있다.이를 통해“ ‘’자는 선도경전이 쓰인 고조선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가 대종교 주요경전『회삼경(會三經)』,『신사기( 事記)』,『신리대전( 理大全)』등에서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하느님 신 자를 살펴보면, 보일 시(示), 감싸안을 포(?), 해일(日), 달월(月), 한일(一)의 각각의 의미가 한데 모아져 “하늘과 땅, 해와 달을 포함한 천지간에 있는 모든 것을 상징하는 글자” 이다.)하느님 신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전은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중에 ,『삼일신고)』만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선도경전중에서도 삼일신고에만 나타나고 있는 하느님에 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Ⅲ. 초월적인 하느님한국인의 신앙구조는 푸른 창공을 지칭하는 ‘하늘’에다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말인 ‘님’자를 붙인 ‘하느님’, 즉 천신(天神)을 신앙의 최고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하느님은 한국의 전통적인 신관으로서, 초월적인 하늘과 인격적인 님이 합성된 낱말임을 알 수가 있다.전통적인 한국인의 하느님과 달리 타 종교에서는 하느님을 어떻게 보는지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표적으로 유교인 경우에는 ‘천(天)’을 “모든 원리의 근원이며,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그 천은 법칙적(法則的)인 천(天)이요. 인성에 내재하는 도덕율(道德律)로서의 천(天)인 것이다.” 라고 하였다. 즉 유교의 ‘천’이라는 것은 법칙적인 원리로서, 그것은 인간 내부의 도덕률로서 잠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는 궁극적 관심의 대상인 ‘法’(darma)은 궁극적인 우주의 원리라고 볼 수 있으며, 이 법은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로 살펴볼 수 있다.在無上一位 有大德大慧大力 生天 主無數世界 造??物 纖塵無漏 昭昭靈靈 不敢名量 聲氣願禱 絶親見 自性求子 降在爾腦.하느님은 시작도 끝도 없는 근본 자리에 계시며, 큰 사랑과 큰 지혜와 큰 힘으로 하늘을 만들고 온누리를 주관하여 만물을 창조하시되 아주 작은 것도 빠진 게 없으며 밝고도 신령하여 감히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언어나 생각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다고 해서 그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통해 하느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너의 그 머리 속에 이미 와 계시리라.)「신훈」에서 정의하는 하느님은 ‘시작도 끝도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큰 지혜’, ‘큰 사랑’, ‘큰 힘’을 지닌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속성으로서 ‘하늘을 창조한다’, ‘헤아릴 수 없는 세계를 주관한다.’ ‘많고 많은 만물을 만들어 낸다.’ 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爾觀森列星辰 數無盡 大小明暗苦樂 不同一 造群世界勅 日世界使者 轄七百世界爾地自大 一丸世界中火震? 海幻陸遷 乃成見象呵氣包底 煦日色熱 行?化游栽物 繁植끝없이 널린 저 별들을 보라. 이루 셀 수가 없으며 크기와 밝기가 다 다르다. 하느님께서 온누리를 창조하시고, 우주 전체에 걸쳐 수백 세계를 거느리고 있으니, 너희 눈에는 너희가 살고 있는 땅이 제일 큰 둣하나 한알의 구슬에 지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온누리를 창조하실 때 중심의 거대한 기운 덩어리가 폭발하여 무수한 별들이 생겨나고 바다와 육지가 이루어져 마침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하나님께서 기운을 불어 넣어 땅속 깊이까지 감싸고 햇빛과 열로 따뜻하게 하여 걷고 날고 허물벗고 헤엄치고 흙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이 번성하게 되었다.)「세계훈」에서 신은 “첫째, 온 세계를 창조하며 둘째 우주 전체에 걸쳐 수백세계를 거느리며, 셋째, 만물에 기운을 불어넣어 낮은 곳 땅 아래까지 감싸고 태양의 색과 열기로 만물을 따뜻하게 만든다.” 고 한다. 이를 통해 ‘신’은 생성과 변화와 성장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력(大力)이 땅(地)의 만물에 부여된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三 神性(大德, 大慧, 大力) [天] +地(萬物)삼진(三眞: 性, 命, 精)Ⅳ. 내재적인 하느님홍암이 조천하기 전에 소운 황병욱에게 도감(道監)으로 전한 글을 살펴보면,소운 형장(兄丈)께 도감(道監)을 삼가 드립니다.「신훈」에서 말한 “자성구자 강재이뇌(自性求子 降在爾腦)”는 신(信)의 근본이며, 「진리훈」에서 말한 지감?조식?금촉(止感?調息?禁觸)은 성(誠)의 근원이니, 이 말을 소중히 받들어 후대에 전하고 수행하게 하십시오.)위의 글에서, 홍암은 “자성구자 강재이뇌”를 삼일신고의 신훈에서 중요하게 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곧 인간이 삼진을 회복할 수 있는 단초로서 신성이 내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하느님은 만물에 존재하고 초월해 있으면서 인간에게도 내재하는 범재신론(汎才神論:panentheism)임을 알 수가 있다.그런데, 인간에 내재하고 있는 하느님은 어떻게 발현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삼일신고의 진리훈에서 3가지 차원의 속성을 지닌 인간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人物 同受三眞 曰性命精 人 全之 物 偏之 眞性 無善惡 上哲 通 眞命 無淸濁 中哲 知 眞精 無厚薄 下哲 保 返眞 一神 惟中 迷地 三妄 着根 曰心氣神 心 依性 有善惡 善福惡禍 氣 依命 有厚薄 淸水濁 身 依精 有厚薄 厚貴薄賤 眞妄 大作三途 曰感息觸 轉成十八境 感 喜懼 哀怒貪厭 息 芬란寒熱震濕 觸 聲色臭味淫抵. 衆 善惡淸濁厚薄 相雜 從境途任走 墮生長消病歿 苦 哲 止感調息禁觸 一意化行 返妄卽眞 發大神機 性通功完 是사람과 우주 만물은 다 같이 근본이 되는 하나에서 나왔으며, 이 하나가 세 가지로 표현되는 것을 굳이 말로 표현한다면 본성과 생명과 정기이다. 사람은 이 세 가지를 온전하게 받으나 만물은 치우치게 받는다. 참 본성은 착함도 악함도 없으니 가장 밝은 지혜 로서 두루 통하여 막힘이 없고, 참 생명은 밝음도 흐림도 없으니 다음 가는 밝은 지혜 되고 악하면 화가 미친다. 기운은 생명에 의지하는 것으로 청탁을 이루나니, 맑으면 오래 살고 흐리면 쉬이 죽는다. 몸은 정기에 의지하는 것으로 후박을 이루나니, 두터움은 귀하고 엷음은 천하다. 참됨과 망녕됨이 서로 마주함에 세 갈래 길이 있으니, 가로대 느낌과 숨쉼과 부딪힘이라. 이 세 가지가 굴러 다시 열여덟 지경을 이루나니, 감정에는 기쁨과 두려움과 슬픔과 성냄과 탐냄과 싫어함이 있고, 숨쉼에는 맑은 기운과 흐린 기운과 찬 기운과 더운 기운과 마른 기운과 젖은 기운이 있으며, 부딪힘에는 소리와 빛깔과 냄새와 맛과 음탕함과 만짐이 있다. 뭇 사람들은 착하고 악함과, 맑고 흐림과, 넘쳐남과 모자람을 서로 섞어서 이 여러 상태의 길을 마음대로 달리다가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깨달은 이는 느낌을 그치고 숨쉼을 고르고 부딪힘을 금하여 오직 한 뜻으로 나아가 허망함을 돌이켜 참에 이르고 마침내 크게 하늘 기운을 펴니, 이것이 바로 성품을 트고 공적을 완수함이다.진리훈을 요약하자면, 먼저 인간에게는 3차원의 존재로 구성되는데, 인간과 만물이 공통저으로 받고 태어나는 속성으로 ‘性?命?精’을 三眞이라 하였다. 그리고 三眞으로 돌아가기 이전에 ‘심?기?신’의 ‘三妄’, ‘삼진’과 ‘삼망’이 부딫혀 일어나는 ‘감?식?촉’의 ‘三途’‘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곧 삼진을 회복함으로써 반망즉진 성통공완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안에 내재한 하느님으로서 삼진(三眞)이 있음을 삼일신고는 설명한다.Ⅴ. 결론한국선도의 사상적 특징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하나(一)로 보되, 이것이 성ㆍ명ㆍ정(천ㆍ인ㆍ지) 삼원(三元)의 차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삼원사상이다. 한국선도의 삼원사상은 선도경전인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一(三眞)↔三妄↔三途↔ 三修行 이라는 논리적인 체계를 갖고 있다. 삼원사상에서는 삼진회복을 위한 수행법으로 지감?조식?금촉을 제시하고 있다.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한국선도의 사상적.
近代 民族宗敎의 등장과 仙道Ⅰ. 서론Ⅱ. 近代 韓國仙道의 등장1. 金廉白의 神敎2. 白峯敎團과 羅喆3. 檀君系列의 仙道단체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한국선도(韓國仙道)는 유ㆍ불ㆍ도(儒ㆍ佛ㆍ道)가 들어오기 이전에 있었던 한민족 고유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을 두루 포괄하고 있었던 종교이자 문화였다. 이에 대해 신라시대의 최치원은 난랑비서(鸞郞碑序) 에서 ‘풍류(風流)라는 현묘한 도(道)’가 있었다)고 말하였다. 풍류도의 기원을 자세히 기록한 선사(仙史) 가 선(仙)의 역사책이었음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윤내현은 풍류도(風流道)의 원명이 선도(仙道)) 라고 논증하였다. 신채호는 동국고대선교고(東國古代仙敎考) 에서 고유의 선도(仙道)가 이미 도교 수입 이전부터 형성되었다)고 하였으며, 이능화는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 에서 일찍이 우리 선도사상과 문화가 중국으로 전파되었다가 신라 말기의 최치원 등을 통해 다시 들여왔던 사실을 밝혀내기도 하였다.)그런데, 화랑세기(花郞世紀) 에 의하면 화랑은 신궁의 제사를 담당하였던 선(仙)의 무리였고, 나라의 큰 제사를 주관한 사제(司祭)였다는 것)을 통해 선도와 제천의례가 서로 관련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한국선도의 사상적 특징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하나(一)로 보되, 이것이 성ㆍ명ㆍ정(천ㆍ인ㆍ지) 삼원(三元)의 차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삼원사상이다. 한국선도의 삼원사상은 선도의 3대 경전인 천부경(天符經) ㆍ 삼일신고 ㆍ 참전계경(參佺戒經) 과 주요 선도사서(仙道史書)인 부도지(符都誌) , 한단고기(桓檀古記) 등에 잘 나타나 있다.)부도지(符都誌) 에서는 선도의 뿌리를 존재의 궁극 원리인 율려(律呂)로까지 소급하고 그 연원이 황궁족(黃穹族)-유인씨(有因氏)-한국(桓國)-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단군조선(檀君朝鮮)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황궁족(黃穹族)과 유인씨(有因氏)를 거쳐 한국(桓國)으로 이어진 선도의 맥이 선도수행법으로써 본격적으로 펼쳐진 시기는 신시배달국으로 보고 있다.)고조선 이후에 등장한 고대 한민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근대의 선도단체들 중에서 선도의 경전 및 제천의례를 처음으로 들고 나온 단체로 김염백(金廉白)의 신교(神敎)가 있다. 김염백은 묘향산에 들어가 수도를 통해 득도한 인물로, 단군천조를 모시고 제례를 올림으로써, 단군신앙의 선각으로 등장한다.김염백은 본관이 김해로 본명은 상겸(尙兼), 자는 국보(國甫)이며, 염백이란 그의 호이다. 그는 5~6세에 공부를 시작하여 총명함이 뛰어났고, 소년시절에 이미 유교경전은 물론 제자백가(諸子百家)ㆍ육도삼략(六韜三略)과 같은 병서에도 능통했다고 한다. 26세 되던 1852년(철종3) 김염백은 권력을 통한 명리를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백성의 복리와 재액구제를 위해 묘향산으로 수도를 떠난다. 김염백은 단군이 수도하던 중천굴(中天屈: 단군굴)에서 3년간의 지성으로 기도하고 정진한 끝에 득도하게 되었다. 그 후 각지의 순회를 통한 설교와 단군제사법(檀君祭祀法)의 전파를 통해 한반도의 북방지역을 중심으로 수천 명의 교인을 확보하며 교세를 확장해 갔다.)김염백의 신교(神敎)에 대하여, 유교적 음양론과 오행사상을 바탕으로 한 선악론에 토대를 두고 있어 선도의 삼원사상과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김염백의 신교는 후에 언급할 백봉교단(白峯敎團)의 활동에 대한 가능성이나 나철의 대종교(大倧敎) 그리고 단군계열의 민족종교들과 함께 근대 선도의 부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첫째, 김염백의 신교와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김선생염백기(金先生廉白記) 의 자료적 가치가 높다. 1871년(고종8) 영해 문경 등지에서 민란을 주도한 이강오가 자신을 단군의 화신이라 했음을 전하는 도원기서(道源記書))의 기사, 무속은 단군에서 기원했음을 주장한 19세기의 무당내력(巫堂來歷)이나 무당성주기도도(巫堂城主祈禱圖) 등이 있었지만, 이들의 자료는 극히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김선생염백기(金先生廉白記)의 자료를 통하여 19세기 단군에 대한 인식이 기층 사회는 물론 민중들에게 폭넓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둘째,가 되었다.)무엇보다도, 백봉교단(白峯敎團)에 의해 발굴(선택)된 근대 선도의 중흥적 인물인 나철이 주목된다.) 일반적으로 나철(羅喆)이라고 하면, 1905년 을사오적 처단을 주도한 우국적 인물이거나 단군신앙을 중심으로 대종교를 중광시킨 종교적인 인물로 세간에 알려진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항일구국운동의 방향에서만 차이가 날 뿐이다. 그가 평소 품어오던 ‘국망도존(國亡道存:나라는 망해도 정신은 존재한다)’의 가치와 신념에서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나철은 1905년 백전에 의해 단군교에 입교하고 1908년 두일백을 통해 단군교의 영계(靈誡)를 받아 1909년 정식으로 천제를 올림으로써 선도의 중광(重光)을 선포하였다. 백봉교단의 정통적인 계승자인 나철이 단군신앙을 통한 선도의 중광을 선포함으로써 개인적 수련으로 비전되어 오던 전통 수행을, 종교적ㆍ집단적?제의적 성격을 가진 선도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던 것이다.)나철은 중광(重光) 이후에 단군상을 모시고 단군관련 문헌간행, 개천절(開天節) 제정, 단기연호(檀記年號) 사용 등, 선도 부흥에 주력하였다. 대종교(大倧敎)는 한국인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선도 성향을 자극하여 불과 수년 만에 전국적으로 20~30만 명의 대종교도를 거느릴 정도로 일대 선도의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또한 나철은 ?단군교포명서?에 나타나는 음력 10월 3일 개극입도지경절(開極立道之慶節)을 개천절로 정착시켜나가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것은 1910년 9월 27일 의식규례를 제정발표하면서 제3항에 ‘개천절’은 강세일(降世日)과 개국일이 동시 10월 3일이라 경일(慶日)을 합칭(合稱)함이라고 규정)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대종교는 특히, 개천절에 거행된 제천의례를 대종교로 국한되는 종교적 기념일을 넘어서 범민족적 기념으로 인식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망명동포들이 거주하는 곳이면 때마다 기념행사를 거행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조국독립의 의지를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나철은 전국의 명산과 선도유적을 찾아가며 라리오. 내가 대교(大敎)를 받든지 8년에 이제야 비로소 이 땅에서 선의를 받들게 되니 지극한 원(願)을 마치었도다.”)이때 나철이 마지막으로 올린 제천의례는 오늘날 대종교 제천의례의 전범(典範)이 되고 있으며, 그 이름을 ‘선의식’이라 하고 있다.노길명은 “제천의례와 홍암의 순명은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며, 이를 계기로 대종교의 항일운동은 온건한 방법에서 무장투쟁의 방법으로 급격히 전환되기 시작한다.” 고 보았다.)그런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청산리 전투의 승리가 단순히 수많은 독립투쟁 중의 하나인 쾌거로만 단정지을 수 없는 기록이 발견된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이범석 장군의 증언에 의하면,“당시 만주 10여만 교포의 7할 이상이 대종교인이었고 청산리 전투의 승리 또한 대종교의 신앙과 민족정신에 불타는 신념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독립군들은 비록 이역만리(異域萬里)에 떨어져 있어도 10월 상달이 되면 돌로 제단을 쌓아 재정(財政)의 어려움을 무릎쓰고 돼지와 소를 잡아 제천보본(祭天報本)하고 우리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빌었다.”고 하였다.)3. 檀君系列의 仙道단체대종교 이외에도 선도(仙道)를 표방한 여러 단군계열의 민족종교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나철이 단군교를 대종교로 개명하자 정훈모가 교명 고수를 명분으로 독립한 단군교(檀君敎)를 들 수 있다. 정훈모는 1908년 나철과 함께 두일백 노인으로부터 영계를 받은 인물이다. 그리고 한말 대한자강회에 소속하여 논설을 발표하는 등 애국계몽운동에 종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나철이 1910년 7월 교명을 단군교에서 대종교로 바꾸자 단군교의 교명 고수를 명분으로 스스로 교주를 자칭하며 독립했다.정훈모의 단군교단 측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나철의 교단명 변경에 반대하여 교단의 분립을 꾀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그 이유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양하다.삿사 미츠아키는 대종교측의 자료를 인용하며 “그의 단군교 분립의 진정한 이유는 교명개칭 반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정훈모는자취를 감추게 되었다.)한편 ‘종신인조합(宗神人組合)’, ‘신리종교(神理宗敎)’, ‘서선신도동지회(西鮮神道同志會)’, ‘교정회(矯正會)’ 등은 일본의 국조인 천조대신(天照大神)과 단군(檀君)을 함께 숭봉한 단체였다. 그리고 ‘성화교(聖化敎)’ 와 ‘영신회(靈神會)’는 단군, 기자, 관우(關羽)를 숭봉하였고, ‘황조경신숭신교(皇組敬神崇神敎)’는 천조대신, 단군, 공자, 관우, 이태조, 명치천황(明治天皇), 신무천황(神武天皇) 등 7개 신령을 숭봉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단체들에서는 공통적으로 다른 종교단체의 신(神)에서 급기야 일본의 국조인 천조대신(天照大神)를 같이 숭봉하기에 이르러 선도의 본령에서 크게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한국 근대에 많은 선도계열이 등장하였으나 실상 선도 성인의 존재가 희미하였던 경우는 대부분 선도와 여타 사상들을 회통하려는 성향이 강하였고 그 결과 선도적 기준이 분명치 못했기 때문이다.)Ⅲ. 결론오랜 침체기를 거쳐 한국선도(韓國仙道)는 근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부흥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의 선도는 단군계열의 민족종교 방식을 취하였다. 민족종교에는 1860년에 나온 최제우의 동학(東學)을 기점으로 김일부의 정역(正易) 사상, 강일순의 증산교(甑山道), 박중빈의 원불교(圓佛敎) 등 다양한 민족종교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한국인 정신적 사유의 뿌리인 선도(仙道)를 근대적으로 발현시켰고, 민중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이 강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종래의 풍수사상이나 유교 그리고 불교의 사상적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기 때문에 단군 이래 연면히 흘러온 우리 고유의 선도의 근대적 계승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근대의 선도단체들 중에서 선도의 경전 및 제천의례를 처음으로 들고 나온 단체로 김염백(金廉白)의 신교(神敎)가 있다. 김염백은 단군제사법의 보급을 통하여 관서와 관북지역에서 선도를 알려나갔다. 김염백의 신교는 백봉교단(白峯敎團)의 활동에 대한 가능성이나 나철의 대종교(大倧敎) 그리고 단군계열의 민족종교들과 함께 근대 선